오랜만의 파티였다.
키아란 베도야에게 쏠리는 시선이 무시무시했다. 핀레이 엑스타인은 멀리서 키아란 베도야에게 쏠리는 시선 중 하나를 보내고 있었다. 키아란 베도야는 52세에 수상이 된 이래 중간에 한동안 수상직을 스스로 사양했던 것을 제외하면 190년이 넘게 수상이었고, 헤레라 제국의 황제보다 유명한―그야말로 헤레라의 상징 같은 남자였다. 올해 293세, 같이 다니는 스태프들도 대부분이 오랫동안 그를 모셔온 자들뿐이다. 철벽 수비 속에서 꽃처럼 보호받는 금발의 미남자가 홀로 있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이렇게 최고위급 파티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최고위급 파티. 문신과 무신의 수장과 부수장급까지 총 여덟 명과 황제가 참석하는 파티였다. 파티의 주최는 문신과 무신, 혹은 황실에서 각각 돌아가면서 하는데 이런 파티는 무신 쪽 주최였다. 세 그룹의 파티는 각각의 개성을 띠는 편이었는데 문신 쪽 파티는 점잖았고, 황실쪽 파티는 호사의 극치였으며 무신 쪽 파티는…… 음란했다. 지금만 해도 고급 스트리퍼들이 나체로 음부를 드러내며 춤을 춰대고 있었다.
스트리퍼, 황제, 문·무신의 수장을 비롯한 권력자들, 홀을 오가는 고용인들이나 노예까지도 모두가 키아란 베도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본래 무신 쪽 파티는 음탕한 것으로 유명했지만 이번에는 그 도가 지나쳤다. 그러나 파티의 구성에 대해서는 주최 측에 맡기는 것이 전통이니 만큼 누구도 불만을 토해내지 않았다. 도리어 황제나 국회의원들은 즐기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스트리퍼의 허리를 잡아채 입을 맞추고 가슴을 더듬는 것은 예사였다. 하지만 키아란 베도야는 달랐다. 그는 술조차 마시지 않았다. 그는 생수만을 간간이 마시면서 주변의 이야기에 적당히 맞장구칠 뿐이었다.
“즐겁지 않으십니까?”
핀레이 엑스타인. 이 파티의 주최자이자 키아란 베도야의 정적이 말을 걸었을 때 사람들은 모두 정치의 정점에 선, 그러나 양극단에서 칼을 갈고 있을 두 남자의 해후를 지켜보았다. 스트리퍼의 젖가슴 뒤에서, 노예의 음부 아래에서, 날카로운 시선들이 빛났다.
“즐겁습니다.”
키아란 베도야는 엑스타인의 도발을 가볍게 흘려보냈다.
“물을 드시고 계시는데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일하시는 중은 아니고요?”
두뇌로 채널을 열어서 보고를 받는 중이 아니냐는 직접적인 비난에 키아란 베도야가 한숨을 쉬며 핀레이 엑스타인을 올려다보았다. 회색 눈과 검은 머리카락, 뚜렷한 이목구비와 짙은 피부. 엑스타인은 마치 사신처럼 보였다.
“아닙니다만.”
베도야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면서 두뇌에선 다섯 번째 채널을 열고 있었다.
◈ ◈ ◈
키아란 베도야는 휘청거리며 일어났다. 핀레이 엑스타인은 그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베도야의 완곡한 거절을 못 알아챈 체하며 옆자리에 앉아 술을 권해왔다. 예의상 한두 잔 마셨을 때쯤에 베도야는 갑자기 모든 채널이 끊기고 고립되었다. 파티의 주최자인 엑스타인이 연결 신호를 끊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즉 이 파티의 모든 이가 고립되었다는 걸 의미했다. 아닌 척하고 있었지만, 모두들 채널을 연결하고서 측근의 보고를 받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스트리퍼의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황제도, 노예의 음부를 핥는 무신의 부수장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당황했지만, 그들 모두는 프로였다. 당황은 한순간이었고, 곧 마치 채널 연결을 한 적이 없는 것처럼 음탕한 파티는 더욱 음란해졌다.
핀레이 엑스타인은 키아란 베도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모든 연결 신호를 강제로 끊고 배리어를 치도록 명령을 내린 순간부터 베도야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금발의 미남자는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과연 키아란 베도야다웠다. 정치가가 아니라 정치 그 자체라는 남자는 그럴 리가 없는데도 채널 연결이 끊긴 티를 조금도 내지 않았다. 무서울 정도였다. 채널이 강제로 닫히면 지독한 공포가 다가오기 마련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흔들리기 마련이고 핀레이 자신도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키아란 베도야는 평온하기만 하다.
“조금 더 독한 술을 권해도 되겠습니까?”
“별실에서라면, 마시죠.”
키아란 베도야의 말투가 조금 나른해졌다. 그게 술 때문인지, 아니면 교활한 정치가의 계책인지 엑스타인은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베도야가 일어서다 휘청거리자 엑스타인이 그를 느긋하게 부축했다.
“더 드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술은 모르겠지만, 대화라면 할 수 있을 거 같군요.”
베도야의 푸른 눈이 차분하게 엑스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엑스타인이 “그러죠”라고 말하며 베도야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베도야의 몸이 흠칫 떨렸다. 문·무신의 수장 둘이서, 채널 연결이 끊어져 고립된 가운데 별실로 들어간다. 1초쯤 음탕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적의와 살기로 가득 찼지만 1초 뒤 그런 일은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별실은 넓고 심플했다. 베도야를 에스코트하듯 안은 엑스타인이 별실로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갔다. 철컥, 소리에 베도야가 눈을 들었다.
“대화가 깁니까?”
베도야의 차갑고 사무적인 태도에 핀레이 엑스타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길지는 않을 겁니다.”
“자리에 앉지 않아도 되겠군요. 용건이 뭡니까?”
베도야가 물었다. 엑스타인의 팔 안에서 베도야는 머리를 잠긴 문 쪽으로 기대고 있었다. 술기운에 어지러워하는 남자의 부드러운 금발에 엑스타인이 입을 맞췄다. 베도야가 미간을 좁혔다.
“엑스타인 원수. 나는…….”
“당신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나는 알고 있어. 당신은 지금 흥분했어.”
엑스타인이 말했고, 베도야가 눈살을 찌푸렸다.
“취했군요.”
베도야가 엑스타인을 밀치고 나가려 했지만, 엑스타인은 밀리지 않았다. 도리어 엑스타인은 베도야의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반쯤 서 있는 성기가 타인의 손에 들어가자 베도야가 어깨를 떨었다.
“엑스타인, 미친 건가?”
베도야가 싸늘히 물었다. 엑스타인이 웃으면서 베도야의 귀를 깨물었다.
“글쎄. 내가 미쳤다면, 너는 변태인가?”
“엑스타인.”
베도야가 나지막이 경고했다. 엑스타인은 그러나 베도야의 성기를 아프게 주무르며 말을 이었다.
“재미있는 정보를 받았다. 당신이 백 년 전 수상직을 사양하고 은둔하던 시절, 어느 클럽에 들었던가 하는 이야기지. 당신은 친구의 권유로 사도마조히즘 클럽에 적을 뒀다. 그리고 딱 한 번, 그 클럽의 연회에 갔지. 그때의 영상을 가지고 있어.”
“성 취향은 개인의 자유다. 그리고 봤다면 이야기가 더 빠르지. 나는 그 연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베도야의 말은 정확했다. 베도야는 그때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의 파티만큼이나 음탕한 연회였다. 가면을 쓴 베도야에게 관심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었고, 베도야는 언제나처럼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앉아서 물을 마시며 정면에서 벌어지는 광란의 축제를 관람하기만 했다.
엑스타인이 짙은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저 타인의 행위를 지켜볼 뿐이었다. ―당신은 그 연회에서 가장 마지막에 나간 자였다. 어째서지? 권유했던 친구도 파트너와 함께 가버렸는데 당신은 남아서, 이렇게 물을 마시면서, 남들을 그저 지켜볼 뿐이었어.”
엑스타인이 걸려들었다는 것처럼 의미심장한 목소리를 냈다.
“몰랐나? 당신은 보면서 허리를 떨고 있었어. 당신의 앞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범해지는 남자와 똑같이.”
그 순간 베도야는 엑스타인을 강하게 밀어내었다. 베도야의 푸른 눈이 적의로 번뜩이는 순간, 엑스타인은 자신이 빙고를 외칠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키아란 베도야에게서 이런 시선을 받아낸 것은 자신 하나뿐이라는 사실도.
“질투 어린 눈으로 쇠사슬에 묶인 남자를 보고 있더군.”
“입조심해, 엑스타인.”
베도야가 낮아서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엑스타인은 베도야의 성기를 강하게 움켜쥐었고, 그 순간 베도야가 신음했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분명 애무가 아니었다. 성기에 대한 애무가 아니라 학대였는데, 베도야는 조금 더 발기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승자와 패자는 결정이 났다.
“엑스타인.”
베도야가 그를 이렇게 부른 적이 있었던가. 아니, 없었다. 애타고 당황한 목소리였다.
“날 놔줘.”
엑스타인은 대답하는 대신 베도야에게 바싹 몸을 붙였다. 잠긴 문과 엑스타인 사이에 낀 베도야가 옴짝달싹못하는 사이, 그의 다리 사이에 자신의 허벅지를 넣은 엑스타인이었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성기를 다리 위에서 움켜쥐었다.
“엑스타인!”
“거절하겠어.”
“엑스타인 원수, 지금 당신은.”
“수상을 강간하고 있지. 아니, 당신은 헤레라 제국 자체라고 하니까 제국을 강간하고 있는 건가?”
핀레이 엑스타인이 황음하며 유쾌한 목소리를 냈다. 베도야는 그런 엑스타인에게 아연해하고 있었다. 머리 한쪽으로는 내내 백 년 전 일을 떠올리고 있다. 정말 허리를 움직였던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장담할 수 없었다. 엑스타인은 제대로 꿰뚫어 보았다. 베도야는 쇠사슬에 묶여 범해지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무도 모르게 항문을 조였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물을 마시면서, 남들이 모두 본능을 드러내고 날뛰는 곳에서도 그는 그저 아주 작은 유희만을 즐길 수 있었다. 물을 마시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몸이 흔들리고 쇠사슬이 소리를 낼 때마다 항문을 조였다. 그러면서 혀를 아프게 깨물었다. 발기하지 않기 위해서.
추잡한 자신의 모습을 본 사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자 베도야는 머리가 아팠다. 엑스타인을 제거해야 하는 건가. 머리가 아프도록 움직인다. 엑스타인을 제거하면 무신은 들고 일어날 것이다. 가뜩이나 문무신 사이는 심상치 않은데, 엑스타인은 대전(大戰)의 영웅으로 원수가 된 자였다. 무신들의 영웅, 그야말로 전신(戰神). 암살에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암살한다 하더라도 뒷감당이 어려울 것이다.
“엑스타인, 후회하기 전에 놔.”
베도야의 목소리가 거칠어질수록 엑스타인의 웃음도 진해졌다. 키아란 베도야가 협박이라. 이렇게 어린애 같은 협박을 하는 키아란 베도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아주 괜찮았다.
“후회하고 싶은데? 그러나, 이렇게.”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단단하게 세운 채 할 소린 아닌 거 같군.”
“엑스타인!”
“걱정하지 마. 당신이 봤던 대로 해주지. 당신이 울며 애원해도 용서해주지 않겠어. 어때, 기대되지 않아, 키아란?”
베도야가 몸을 굳혔다.
키아란이라고 불려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무도 그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수상, 각하, 그리고 베도야. 그것이 그를 부르는 이름의 전부였다.
강렬한 충동이 달렸다. 여기서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 건지 베도야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너지고 싶었다.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무표정하게 정면만을 바라보며 두뇌에 채널을 대여섯 개씩 연결한 채 일을 하는 일상을 외면하고 싶었다. 실제로 그는 외면해본 적도 있었다. 백 년 전, 그는 50년 동안 은거했다. 하지만 제국은 끊임없이 그를 불렀고, 파파라치는 마이크로로봇까지 동원해서 그의 사생활을 촬영했다. 그는 포기했다. 차라리 수상 관저가 나았다. 50년 동안이나 수그러들지 않는 관심에 항복한 건 그였다. 그는 제국이 원하는 대로 수상직을 받아들였고, 헤레라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이름은 사장되었는데, 눈앞의 무뢰한이 도굴해냈다.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무덤 속에서 이름을 꺼내 든 남자가 유혹하고 있다.
베도야의 얼굴이 얼어붙었지만, 엑스타인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키아란 베도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실제로 베도야를 범한 뒤 자신은 암살당할지도 모른다. 베도야는 철벽의 정치가다. 모든 일에 퇴로와 대책을 마련해놓은 철저한 남자가 자신을 강간한 사내를 벌하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엑스타인은 이 수상이 무너지는 꼴을 보고 싶었다. 가슴이 들떴다.
“한 일주일은 구멍이 닫히지도 않을 거야. 당신이 본 그 노예 놈은 몸을 개조했더군. 대부분 구멍 쪽을 개조하지.”
베도야의 얼굴은 그대로 굳어져 화석이 될 것 같았다. 엑스타인은 베도야에게서 유일하게 인간답게 느껴지는 성기를 쥐어짰다. 돌로 깎은 조각 같던 베도야의 얼굴에 고통이 실렸다. 훨씬 사람 같다고 생각하며 엑스타인은 다시 한 번 베도야의 성기를 비틀었다.
“엑스타…… 인!”
베도야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당신도 개조하는 게 어때? 개조의 종류를 알지 못할 테니 알려줄까. 대부분은 구멍을 개조한다. 애액이 떨어지게 개조하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지. 그 외에는 아주 좁게 만드는 놈들도 있지. 그럼 어떻게 되는지 알려줄까. 매일 찢어진다. 아픔이 지독하지. 상상만으로도 황홀한가? 매일 밤 네 구멍이 찢어지도록 자지를 받아들인다는 것만으로도 쌀 거 같나?”
키득거리는 소리가 오싹하면서도 황홀했다. 베도야는 버릇처럼 혀를 깨물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정치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이렇게 약점을 잡힐 수는 없었다.
자신은 마조히스트인가? 키아란 베도야는 백 년이나 그 일에 대해 고뇌해왔다. 길지 않은 사생활의 대부분을 그 일을 생각하는 데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 몇 번 자신의 허벅지에 칼을 대본 적도 있지만 아플 뿐이었다. 전혀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었다. 수치에 반응하는 걸까 싶어서 자신의 목에 목줄을 감아본 적도 있었다. 타인이 한다고 상상해보다 기분만 나빠졌다. 그는 마조히스트가 아니었다.
허나 마조히스트가 아니라면 지금 왜 그는 절정에 오르기 직전까지 몰려서 헐떡이고 있는 걸까. 엑스타인이 속삭였다.
“싸버려. 그럼 편해져.”
그건 진실처럼 느껴졌다. 냉혹하고 말이 없는 군인 정치가 핀레이 엑스타인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눈앞의 이 무례하고 난폭한 사내는 도대체 누구지. 그렇게 생각하며 베도야는 물고 있던 혀를 놓았다. 그와 동시에 뜨끈한 것이 바지를 적셨다. 실금처럼 바지를 적신 베도야가 무너지려 했지만, 엑스타인의 허벅지가 그의 가랑이 사이를 받치고 있었다.
“치태가 제법이군.”
엑스타인이 젖은 손을 회음부로 미끄러트렸다. 손톱을 세우는 통에 베도야가 희미하게 신음하며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엑스타인은 그가 버둥대는 틈을 타 도리어 단단히 안아버렸다.
구멍에 손가락이 닿았다. 베도야의 눈이 커졌다. 베도야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거부를 음미한 엑스타인은 당연한 것처럼 항문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려 했다.
“안 돼.”
베도야가 소리쳤다.
“안 돼? 멋대로 오물거리면서 안 되긴 뭐가 안 돼.”
그렇게 말하면서 엑스타인이 손가락을 항문에 집어넣었다. 손톱이 들어간 것만으로도 더 이상 진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빡빡한 구멍이었다. 엑스타인은 희미하게 웃었다. 이 일 중독자인 남자는 아무래도 백 년간 아무도 이 구멍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모양이다. 그 영상에서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세상에서 가장 금욕적인 얼굴을 하고 세월을 흘려보냈나.
“키아란, 자신의 추잡한 모습을 알고 있나? 이 방은 영상이 찍히고 있다. 나중에 보내주지.”
“핀레이 엑스타인, 이게 나의 약점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너는 법정에서 나를 만나야 할 거다.”
베도야가 떨리는 목소리로도 분명히 말했다. 그것은 협박이 아니었다. 베도야는 정말 엑스타인을 법정에서 만날 생각이었다. 물론 이 영상은 그의 입지를 사정없이 좁히겠지만, 베도야는 정치에 뜻이 있는 자는 아니었다. 정치에선 빠져도 좋았다. 하지만 자신을 범한 이 무뢰배를 가만둘 정도로 녹록한 베도야는 아니었다. 올해 130세던가. 어린것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면 어떻게 되는지, 그는 몸소 가르쳐줄 것이다.
하지만 엑스타인은 재미있겠다며 웃었다.
“좋아, 나는 당신을 범하고 감옥에 들어가지. 아무래도 내가 이득인 거래 같군.”
그리고 엑스타인의 손가락이 억지로 들어왔다.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에 베도야가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자 엑스타인이 난잡하게 손가락을 흔들어주었다.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한 곳에서 점막을 뚫듯이 찌르고 긁으며 물러서는 손가락 하나가 지독했다. 베도야가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 마!”
베도야의 고함에도 엑스타인은 히죽거릴 뿐이었다.
“무신의 수장을 보내버릴 각오가 형편없군. 이건 아주 전초전일 뿐이야. 알아?”
그렇게 말하며 엑스타인이 손가락을 하나 더 집어넣었다. 베도야가 몸을 굳혔다. 이번에야말로 찢어질 것 같았지만, 그리고 고통이 찾아왔지만, 찢어졌는지 확실치 않았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하얗게 질린 얼굴의 여기저기에 엑스타인이 키스했다.
“식은땀이 나고 있군. 무섭나?”
“엑스타인…….”
“당신을 달아오르게 한 놈이 당한 짓을 그대로 당하고 싶지 않았나. 응? 내가 해주지. 그때에는 고작 서른 살 애송이에 불과했던 내가 해주겠어. 관장을 하는 법을 알려주지. 펠라티오의 방법도 알려주지. 오럴에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건 알고 있나? 생각보다 훨씬 순진하군. 순진한 건 별로 취향이 아니지만, 뭐 닳아 빠지는 데는 하룻밤이면 충분해.”
베도야가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베도야의 성기는 일어서고 있었다.
“엉덩이를 쑤셔져서 서는 변태가 헤레라의 상징이라니, 어처구니가 없군.”
베도야의 독기 서린 푸른 눈에 엑스타인이 혀를 집어넣었다. 베도야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안구가 핥아졌다. 타액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때까지 핥아진 안구가 끈적거리고 지끈거렸다.
“일단 관장하는 방법부터 알려주지. 가르쳐주는 대로 하고 와.”
그렇게 말하며 엑스타인이 손가락을 빼내었다. 그가 베도야를 놔주고 몸을 돌리자마자 베도야는 몸을 돌려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하지만 문고리는 돌아가지 않았다.
함정이었다.
엑스타인이 준비된 젖은 수건에 손가락을 닦고 다시 다가오자 베도야는 도망치려 했다. 엑스타인을 밀치고 무조건 도망치려던 베도야의 허리를 가볍게 낚아챈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목을 물었다. 따끔한 고통에 베도야의 몸이 힘없이 멈췄다.
“관장하지 않고 그냥 뚫어버리는 게 좋은가 본데 그렇게 해줄까? 이물질이라도 나오면 그걸 가져가서 DNA 검사를 의뢰하는 건 어때? 응? 수상의 배설물이라니, 마니악한 곳에선 인기겠는데?”
베도야가 엑스타인을 돌아보았다. 엑스타인의 회색 눈은 진심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엑스타인을 강간으로 처넣겠다는 베도야의 말이 진심이듯이, 엑스타인의 말도 진심이었다. 베도야는 엑스타인의 팔을 떼어내려던 손을 무력하게 떨어뜨렸다.
“하룻밤이면.”
베도야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하룻밤이면 이 모든 악몽은 끝나는 건가?”
킥, 엑스타인이 웃었다.
“당신에게 달렸지.”
“네가 하려는 게 어떤 거지?”
베도야가 엑스타인에게 물었다. 그 푸른 눈이 다시 이성으로 차는 것이 내심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엑스타인은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강간.”
“화간이겠지.”
“아니, 강간. 나는 섹스 따위엔 관심 없어. 고작 섹스를 위해서 내가 이렇게 위험한 다리를 건널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키아란? 나는 그 이상을 원해.”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머리카락을 잡아 빙글빙글 돌렸다.
“관장도 시키고 싶지만, 점잖은 당신이 미치는 꼴을 보기 싫어서 봐주는 거야. 알겠어? 구멍이 일주일은 열려 있어야 할걸. 구멍을 억지로 꽉 조이고 다니면 내 생각이 날 거야.”
그게 어떤 건지 베도야는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엑스타인은 정확하게 말하고 있었다. 강간. 섹스 따위엔 관심이 없다는 남자가 말하는 강간이라는 단어는 지독히 섬뜩했다.
관장은 단순한 행위였다. 액체를 넣고 참았다가 배설한다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심플한 행위에 베도야는 이미 흥분한 상태였다. 화장실에서 그는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자위라면 몇 번 했었지만 문밖에 엑스타인이 있는 상태에서의 자위는 내키지가 않아서 그는 버릇처럼 혀를 깨물며 참아냈다. 겨우 성기가 가라앉자, 베도야는 몇 번이나 항문을 세정하고 화장실을 나섰다.
베도야는 이미 나체였다. 엑스타인은 베도야의 옷을 전부 찢어발기고 화장실로 들여보냈다. 관장제가 든 튜브를 건네어 손을 내밀자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입으로 받으라는 말에 베도야가 푸른 눈으로 그를 쏘아보자, 엑스타인은 느긋하게 웃었다. 하룻밤으로 끝낼 생각이 없는 거라면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듣고는 어쩔 수가 없었다. 베도야는 엑스타인의 손 쪽으로 얼굴을 가져갔다. 이를 세워 관장제를 물고 베도야는 수치스러운 얼굴을 바닥으로 떨어뜨렸었다. 그러나 엑스타인은 베도야가 모르는 것을 하나 알고 있었다. 그를 쏘아보는 베도야의 푸른 눈은 정염으로 젖어 있었다.
베도야가 나오는 것을 보며 핀레이 엑스타인은 팔짱을 꼈다. 베도야의 몸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편이었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 같았지만, 생명 연장 차원에 불과한 듯했다. 육체를 교환한 뒤 주치의가 요구하는 만큼의 운동만 한 것이 분명했다. 하긴 시간도 없었을 것이고, 운동에 취미도 없을 것이다.
일부러 화장실에 타월을 두지 않았었기 때문에, 베도야는 성기를 가리지도 못하고 나왔다. 그래도 손으로 가리진 않는 것은 베도야의 자존심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꼴사나운 짓은 하고 싶지 않다는 거겠지.
엑스타인이 입을 열었다.
“돌아봐.”
베도야가 무표정하게 천천히 돌아섰다. 닦을 것이 없어서 엉덩이 사이에서 물이 흘러 다리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어느 누가 수상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할까. 오직 엑스타인뿐이었다. 남자에게 안기기 위해 관장을 하고 나온 키아란 베도야라니, 아랫도리가 뜨거워질 지경이다.
그러나 엑스타인은 욕망을 능숙하게 감추고 베도야에게 다가갔다. 일부러 발소리를 냈기 때문에 조금씩 가까워질 때마다 굳어가는 베도야의 몸이 똑똑히 보였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바로 뒤에서, 엉덩이 사이에 일부러 성기를 붙인 채 음탕하게 몸을 움직이며 베도야의 유두를 지분거렸다.
“좀 더 짙은 색의 유두가 좋겠지. 훈련하면, 유두만으로도 쌀 수 있어.”
엑스타인이 하는 말을 베도야는 가만히 들었다.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을 지경인데도, 이상하게 가슴이 뛴다. 이렇게 가슴이 뛰어본 일이 얼마 만이지? 누군가를 노려보고, 도망치려 하고, 붙잡히는 이 모든 것들을 그는 얼마 만에 해보았을까. 아주 어릴 때,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릴 때나 가능했던 일이었다.
“하룻밤이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베도야가 굳은 목소리로 묻자 엑스타인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당신 하는 바에 달렸다고 했잖아.”
몹시 부드러운 목소리에 베도야는 잠시 몸을 굳혔다.
“내 하는 바라는 게 어떤 거지?”
“순종?”
엑스타인이 쿡쿡 웃는 것을 들으며 베도야가 고개를 돌렸다. 엑스타인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베도야가 정말 자신을 감옥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 밤이 지나고도 네가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나?”
“아니, 당신은 무시무시한 책략가니까 날 기필코 없애버리겠지.”
엑스타인의 목소리에 기분이 상한 것은 베도야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즐거워하지?”
이해할 수 없어하는 베도야의 귀를 핥으며 엑스타인이 말했다.
“당신을 범할 거니까.”
엑스타인이 태어났을 때 이미 수상이었던 남자를, 헤레라의 상징을 범한다.
“여기서 그만둔다는 건 너에게 무리일까.”
베도야가 물었다.
기묘한 목소리라고 엑스타인은 생각했다. 문득 엑스타인은 의외로 베도야가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 낙천적인 생각에 웃음을 터뜨렸다. 문신과 무신. 결코 섞일 수 없는 사이였다. 게다가 키아란 베도야는 문신의 수장이었다. 그의 손에 배척당하고 파멸당한 무신의 수장은 도대체 몇이던가.
“당신에겐 불행하게도, 난 그만두지 않아.”
베도야가 입을 다물었다. 베도야의 유두를 만지고 있던 손이 어느새 뒤로 돌아와 목덜미를 만지고 있었다. 목을 잡은 채 천천히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허리를 숙이게 했다. 베도야의 손목을 그러모아 한 손에 움켜쥔 엑스타인이 허리를 완전히 숙인 베도야의 다리를 벌렸다.
“순종해. 하룻밤으로 끝내고 싶다면.”
엑스타인이 그렇게 말하며 베도야의 목덜미를 놔주었다. 그러나 완전히 놔준 것은 아니었다. 베도야의 팔을 잡은 채 그는 베도야의 엉덩이 바로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철컥. 베도야가 고개를 돌렸다.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팔을 움켜쥔 건 엑스타인이 아니었다. 어느새 팔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경찰들이 쓰는 진짜 전자 수갑이었다.
“당신의 육체도 결국은 내 것과 같을 테니, 당신도 여기로 배설하는 건가.”
엑스타인은 그렇게 말하며 베도야의 항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완전히 닫혀 있는 그것은 몹시 작았다. 얌전하게 오므리고 있는 모습에 엑스타인은 피식 웃었다. 그가 웃으면서 흘리는 숨결 하나하나에 구멍이 움찔거린다. 조신한 척하고 있지만, 그렇게 조신하진 못한 모양이다.
“깨끗하군. 방금 전 관장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야.”
“…….”
베도야가 뭐라고 신음했지만 언어가 되진 못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엉덩이를 내려치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엑스타인은 이미 내려치고 있었다. 아픔보다 타격음에 놀란 듯 베도야가 엉덩이를 살짝 튕겼다.
엑스타인이 손을 내밀어 베도야의 항문 입구에 손가락을 대었다. 가볍게 누르자, 손가락 끝이 들어갔다. 아까와는 다르다. 미묘하게 흐물흐물 녹아 있는 것을 보며 엑스타인은 웃음소리를 냈다. 그가 웃을 때마다 베도야의 몸이 떨리는 것이 더욱 재밌어서, 그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베도야가 숨을 쉴 때마다 작게 호흡하는 항문을 보며 그의 웃음이 짙어지자, 베도야가 숨을 멈추려고 했다.
“숨을 멈추면 사람은 죽어. 아무리 당신의 육체가 최고급이어도 말이지.”
엑스타인이 웃으면서 속삭였다. 귓가가 아닌 항문에 속삭이는 엑스타인이 문득 물었다.
“실은 기대하고 있는 거 아니야? 배설 때문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이 풀렸는데. ……아니면 당신, 평소의 스토익한 모습과는 달리 집에서는 여기에 볼펜이라도 쑤셔 넣는 건가?”
베도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차라리 무시하는 게 나았다. 입을 열면 백 년하고도 몇 십 년 만에 욕설이 튀어나갈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욕설이 엑스타인을 향한 것인지, 이런 일에도 가슴이 들뜨는 자신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을 것 같아 그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수치스럽고 모욕적이고 이 방에서 나가기만 하면 엑스타인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심장이 너무나 뛰었다. 분노 때문일 것이다, 분노 때문이어야 했다. 하지만.
“흐윽……!”
베도야가 감전된 물고기처럼 허리를 뒤로 젖혔다.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며 엑스타인이 피식 웃었다. 엑스타인의 손에는 스틱이 들려 있었다. 처음에는 메추리알 같은 구체로 시작해서 탁구공보다 큰 구체까지 일렬로 꿰여 있는 스틱이었다. 고작 메추리알 크기에도 베도야는 도망치려 했다.
베도야 같은 남자도 이런 고통에는 도망치는 건가. 엑스타인은 그것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를 정말 도망치게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곧 허리를 붙잡아 고정했다.
“놔줘!”
“발광하지 마. 정말 뚫어버리기 전에. 설마 엉덩이에 피 칠갑을 해서 비서실장과 스태프들 손에 실려 나가고 싶은 건 아니겠지, 응?”
그 말에 베도야는 도망을 포기했다. 엑스타인의 억센 팔 안에서 납작한 배가 사정없이 떨렸다. 한참 만에 베도야가 속삭였다.
“빼줘…….”
그것은 베도야의 항복과 다름없었다. 엑스타인은 기분 좋게 대답했다.
“안 돼.”
그리고 엑스타인은 연달아 세 개를 더 집어넣었다. 스틱이 들어가는 것이 유쾌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엉덩이, 그리고 그 사이의 항문. 거절하듯이 힘을 준 항문에 억지로 밀어 넣으면 저항하다 결국은 찢을 듯이 들어가게 된다. 구체가 네 개가 들어가자 베도야가 머리를 흔들었다.
“아파. 아파, 엑스타인.”
“내 물건이 들어가면 더 아플 거야. 참아, 키아란.”
“그렇게 부르지 마!”
베도야가 소리치자, 엑스타인이 피식 웃었다.
“그럼, 수상 각하라고 불러줄까?”
그러자 베도야가 입을 다물었다.
“자, 키아란.”
그 짧은 실랑이 사이에 베도야의 항문은 구체를 뱉어내려고 한다. 본래가 배출하는 기관인 것이다. 밀어내려고 입을 벌리는 구멍에 엑스타인은 하나를 더 밀어 넣었다.
“하윽!”
이물의 삽입감. 벌써 다섯 개째 삽입되어 속이 더부룩할 지경이었다. 조금 전 끝마친 관장이 생각나자 이제까지 숙이고 있었던 베도야의 성기에 힘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즐기다니, 제법인데.”
그 말에 베도야의 등이 파르르 떨렸다. 분노인지 성욕인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엑스타인은 그 등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러자 등이 더 떨리기 시작했다. 역시 분노인 모양이다.
입술에 문득 짠맛이 나는 것이 닿았다. 베도야가 식은땀을 흘리는 것이다.
“더 이상은 안 돼.”
베도야의 목소리에 흐느낌이 섞였다. 이것이 복종의 첫 단계이다. 하지만 오늘 밤만의 복종이고 아마 이 남자는 내일부터 엑스타인을 고꾸라트릴 계책을 세울 것이 틀림없다.
“그건 내가 결정해.”
엑스타인은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본래 파멸을 두려워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도리어 키아란 베도야처럼 화석이 되느니 화끈하게 파멸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엑스타인은, 그러나 화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흥미로운 남자의 엉덩이를 잇자국이 나도록 깨물었다.
그리고 엑스타인은 탁구공만 한 크기의 것까지 단숨에 집어넣었다.
“아아아앗!”
베도야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손이 뒤로 모여 있어 그는 뺨을 턱에 댄 채 기어가려고 했다. 내장을 범해지는 것이 어지간히 두려운 모양이었다. 엑스타인은 웃으면서 베도야의 앞으로 걸어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벌레처럼 기어오던 베도야가 그 무릎을 보고 머리를 땅에 찧으려 했다.
그 머리가 겨냥한 바닥에 엑스타인은 손을 깔았다. 그것은 순간으로, 베도야의 머리는 엑스타인의 손을 아프도록 박았다. 그 자신도 깜짝 놀라 엑스타인을 올려다볼 정도로 커다란 타격음이 울렸다.
“별거 아냐. 당신이 조금 뒤에 겪을 것에 비하면.”
“날 놔줘……!”
“안 돼. 그 좁은 구멍을 넓혀야 할 거 아니야.”
“무리야!”
엑스타인의 손이 베도야의 뺨을 철썩 내리쳤다. 뺨이 돌아갈 정도로 강한 타격이었다.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이 처음인 베도야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말했잖아. 그런 건 내가 결정한다고.”
엑스타인이 그렇게 말하며 베도야의 턱을 움켜쥐었다. 아프도록 들리는 턱에 베도야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원하는 게 있으면 빌어, 키아란. 최대한 애교를 떠는 거다. 필요하다면 발가락이라도 핥아서 얻어내는 거야. 이 방에선 그 수밖에 없어.”
베도야의 턱이 떨리는 것을 보면서 엑스타인이 경고했다.
“친절함도 여기까지야. 말로 안 되면 때려서 가르치는 수밖에.”
베도야의 시선이 엑스타인의 팔을 향했다. 이 남자가 누군지 안다. 이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무슨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전투에서 어떤 공을 세워서 어떤 훈장을 받았는지. 그 모든 것을 베도야는 알고 있었지만 그를 두려워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 순간은 두려웠다. 남자는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복수도 코웃음 한 번으로 날려버렸다. 베도야는 깨달았다. 그는 이 남자에게 복수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그럴 수 없었다. 그가 도망칠수록, 반항할수록 상황은 악화될 것이다.
“제발.”
베도야의 푸른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제발, 빼주세요.”
드디어, 베도야가 무너진다. 엑스타인이 한껏 다정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 가증스러움에 치가 떨렸지만 베도야는 잠자코 그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떻지?”
엑스타인이 잔인하게 물었다.
“배가, 배가 너무 아파요.”
“배만 아파?”
“거기도…….”
“거기가 어딘데?”
베도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더는 반항해선 안 된다. 더 심한 꼴을 당하게 될 것이다. 눈앞의 남자는 그가 알던 정치가 핀레이 엑스타인이 아니었다. 눈앞의 남자는 그가 모르는 사람이었고, 강간범이었다. 그는 강간을 당하고 있었다.
“하, 항문이.”
엑스타인이 기분 좋게 웃었다. 눈이 가늘어지는 것을 베도야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가 이렇게 웃는 사람이었던가. 아니, 베도야는 단 한 번도 그가 웃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경멸하는 듯한 시선이 전부였는데.
“착하다, 키아란.”
엑스타인이 웃는 것으로 조금 안도가 되었다. 무엇에 관한 안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엑스타인은 베도야의 등 뒤로 손을 뻗었고, 베도야는 그가 자신의 내장을 압박하고 있는 물건을 뺄 수 있도록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엑스타인은 심술을 부리지 않고 단숨에 빼주었다.
“하아아아아앗!”
위로 들려 올라가 빠져나가는 구체들에 베도야는 진저리를 치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대로 키아란 베도야는 바닥에 무너졌다. 폐허처럼 붕괴한 베도야를 엑스타인은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베도야의 배는 이런 꼴을 당하며 내뿜은 정액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변태였네, 키아란 베도야 수상.”
키아란 베도야에 대해 별 감정이 없었는데 순식간에 흥미를 느꼈다. 엑스타인은 베도야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몸이 지나치게 가벼웠다. 하긴 채널을 여섯 개씩 연결한다는 소문이 있는 수상이었다. 엑스타인도 물론 채널 보고를 받지만 아무리 칩이 들어 있다 해도 두뇌와 시스템이 연결된다는 감각은 범인(凡人)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채널이 하나만 열려도 역겨움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려 하는데 채널 연결을 대여섯 개씩 한다니.
그건 마치 기계가 아닌가. 정신이 모조리 까발려져도 상관없는 사람이 아니면 하기 힘든 짓이다.
평소엔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엑스타인은 왠지 베도야가 가여워졌다. 엉덩이로 구슬 몇 개 받아들이는 것에도 발작을 일으키던 남자가 어째서 정신 연결은 대여섯 개씩 해내는 걸까. 그건 마치 육체는 버리고, 정신만을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은가.
베도야가 눈을 뜬 것은 햇살 때문이었다. 너무 눈이 부셔서 더 이상 자고 있을 수 없었다. 일어났을 때 그는 자신의 배에 남아 있는 정액 자국을 보고 습관처럼 혀를 깨물었다. 입술을 깨물면 얼굴에 드러나기 때문에 곤란한 일이 있을 때마다 무표정하게 입술 안쪽으로 혀를 깨무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베도야가 아프도록 혀를 깨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제는 그토록 음탕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던 방은 의외로 간결한 느낌의 인테리어뿐이었다.
베도야는 접혀 있는 메모를 발견했다.
【하룻밤만으로는 안 되겠는데? 언제가 되지?】
언제가 되냐고?
베도야는 어이가 없어서 메모를 세 번이나 읽고 찢으려 했다. 그러나 찢으려 했을 때 문득 어젯밤의 자신이 떠올랐다. 울고, 애원하고, 도망치고, 잡히는. 아픔과 쾌락 속에서 허우적대고 망설임과 분노와 체념 따위를 느끼며 상대에게 뭔가를 애원하는 자신을.
물에서 금방 빠져나와 살기 위해 퍼덕거리는 물고기처럼, 생기와 절박함으로 넘치는 자신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키아란 베도야는 다시 메모를 읽었다. 몇 번이고 읽은 그는 메모를 침대에 버려두고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오자 빈 침대에 덩그러니 메모만이 남아 있었다.
베도야는 답변을 써 갈겼다. 이가 갈렸다. 엑스타인은 자신에게 삽입하지조차 않았다. 아니, 삽입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정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베도야를 가지고 놀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하룻밤만으로 안 되겠다고? 베도야를 이렇게 밑바닥까지 드러내게 해놓고선? 오랜만에 자존심이라는 것이 고개를 들고 입술을 깨물게 한다.
베도야가 메모를 빈 침대에 던지고 나간 뒤, 그 방에 들어온 것은 고용인이 아닌 핀레이 엑스타인이었다. 혹시 베도야가 자신을 보고 발작이라도 일으킬까 봐 그는 차마 베도야와 같은 방에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베도야가 답장을 쓰는 걸 모니터를 통해 본 엑스타인은 신기한 기분으로 고용인보다 먼저 방에 들어왔다. 뭐라고 썼을까? 죽어버려? 고상한 정치가는 자신을 강간한 남자에게 뭐라고 욕을 할까. 그런 기분으로 엑스타인은 메모를 펼쳐보았다.
【자신의 몸을 쓰지 않는 고자에게 줄 시간 따윈 없어.】
엑스타인은 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이건 만나주겠다는 뜻이잖아.
마침 부관인 해리 할슈버트 대장이 들어오다 엑스타인의 꼴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각하.”
할슈버트는 자신의 애송이 상관에게 할 말이 엄청 많았다. 어제 제멋대로 채널선을 전부 끊어버린 탓에 황실이고 문신 쪽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항의를 해오고 있었다. 덕분에 군부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는데 그의 상관은 왠지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할슈버트, 수상 관저에 기별을 넣어라.”
“……뭐라고 말입니까?”
엑스타인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상께 빠른 시간 내에 다시 뵙자고. 엑스타인 원수의 진가를 보여드리겠다고 해.”
이 와중에 문신을 도발할 생각인가. 할슈버트는 채널로 명령을 내리면서 피식 웃었다. 어제는 키아란 베도야 수상과 밤새 밀담을 나눴다고 한다. 베도야 수상은 평소와 같은 서늘한 얼굴로 원수 관저를 나섰지만, 수상이 입은 옷이 엑스타인이 준비시켜놓은 정장임을 모르는 스태프는 아무도 없었다. 즉, 수상은 원수와 뭔가 이야기를 나눴고, 원수의 호의를 받아들여 그가 준 옷을 입고 나갔다는 뜻이 되었다. 문신을 굴복시킨 것 같은 기분에 무신 진영은 상당히 들떠 있었다.
“알겠습니다.”
“아, 하나 더.”
엑스타인이 샤워실로 가다 말고 등을 돌렸다.
“친애하는 핀레이가, 라고 보내라.”
해리 할슈버트가 알다가도 모를 상관이라고 생각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엑스타인은 호쾌하게 웃으며 샤워실로 들어가버렸다.
어젯밤에 무슨 꿈을 꿨지? 그건 정말 악몽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