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면초가 (3/15)

어두운 밤, 위장용 헬리콥터―스파이 헬리콥터라고 통칭되는 KX-2570이 수상 관저의 상공에 모습을 나타내자 수상 관저의 스태프들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저 고급 군용기의 주인은 단 한 사람, 원수인 핀레이 엑스타인뿐이었다. 헤레라 제국에서 수상을 가장 죽이고 싶어할 남자가 수상 관저에 도착한 것이다. 수상 관저의 스태프 일동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에도 반응할 정도로 예민한 상태에서 국가 원수를 맞았다. 

핀레이 엑스타인. 검은 머리에 회색 눈을 가진, 냉혹해 보이는 야수 같은 사내가 양쪽에 기립해 있는 남자들 사이로 걸어 나왔다. 그 육체도 육체거니와 남자의 무시무시한 일화들이 수상 관저의 스태프들을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게다가.

“분명히 거절 드리지 않았습니까?”

비서실에서 뛰어나온 멧 테이버 비서실장이 소리쳤다. 헬기는 무소음 기체였지만, 수상 관저가 강가에 위치한 까닭에 강바람이 몰아쳤기 때문에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테이버의 말에 엑스타인이 차가운 눈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곳은 수상 관저입니다. 원수 각하께서 마음대로 드나드실 수 있는 곳이…….”

“전하라. 핀레이 엑스타인이 여기에 도착해 있다고. 수상께서 거절하신다면 가지.”

은테 안경을 쓴 멧 테이버가 싸늘히 미소 지었다가 천천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각하!』

채널 보고에서 수상이 웬일인지 원수를 만나겠다고 말한 것이다. 현재 수상은 과로로 인해 안정하라는 진단을 받은 상태였고, 분초를 다투는 그의 스케줄을 정리하느라 비서실은 이틀째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그런데 안정을 취해야 할 수상이 가장 안정을 주지 못할 상대를 만나겠다는 게 아닌가.

『실장, 그는 무신의 수장이다. 그대가 거절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야.』

『그렇다 하더라도 밀실에서 만난다는 건 무모합니다.』

『여기는 수상 관저다. 그도 함부로 움직이진 못해. 두 번 말하지 않는다. 밀실로 안내해라. 거기서 기다리겠다.』

심지어 ‘밀실’에서.

모든 전자파를 차단하는 밀실은 밀담을 위해서만 사용된다. 즉, 수상은 그와 긴밀히 할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멧 테이버는 수상과 원수 사이에 긴밀한 용건이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수상을 너무나 잘 알았다. 수상 키아란 베도야는 사생활이 아예 말살된 남자였다. 멧 테이버는 베도야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는 수상을 50년이나 모셔왔다. 수상에 대해 모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가 모르는 용건이 둘 사이에 있다니.

그러나 수상은 원수와 단둘이 밀실에서 만나길 바랐고, 그런 이상 그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수상께선 뭐라 하시지?”

엑스타인의 회색 눈이 시릴 정도로 차갑게 빛났다. 멧 테이버는 어쩔 수 없이 앞장서야 했다.

“이쪽입니다.”

◈ ◈ ◈

밀실에 들어선 엑스타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3개월이 넘도록 못 본 새에 베도야는 수척해져 있었다. 엑스타인의 유혹을 번번이 거절하던 베도야가 거절할 수 없도록 수상 관저까지 쳐들어온 엑스타인은 베도야가 자신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아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베도야는 환자임이 분명한데도 주름 하나 잡히지 않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나는 또 당신이 날 피하는 줄 알았지.”

엑스타인이 그렇게 말하며 밀실의 중간에 우두커니 서 있는 베도야를 향해 거침없이 걸었다. 베도야가 뒷걸음질했다.

“엑스타인 원수.”

베도야가 그를 거절하듯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관저 측에서는 거절한 것으로 아는데, 여기까지 오셨다면 긴급한 용건이라고 예상되기 때문에 밀실로 모신 겁니다. 용건을 말하세요.”

엑스타인은 잠시 팔짱을 끼고 베도야를 바라보았다. 그동안은 고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한 번 저 몸을 손에 넣어보자 꽤나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부드러운 금발, 지중해처럼 푸른 눈, 그리고 창백한 피부. 고통으로 흔들리는 금발은 밀밭 같고, 겁에 질린 푸른 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 같으며, 자국이 쉽게 남는 피부는 아무도 밟지 않은 설원과 같다.

“내 용건이 뭔지 몰라서 이야기해보라는 건가?”

엑스타인은 그렇게 말하며 베도야의 온몸을 느긋하게 훑었다. 그 노골적인 시선에 베도야의 안색이 새파랗게 굳었다.

“하룻밤으로는 안 되겠다고 말했었잖아, 키아란.”

어릴 때 눈이 내린 밭을 흙발로 짓밟아야 직성이 풀렸던 엑스타인이다. 베도야가 아닌 키아란으로 불린 베도야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러 이 밤중에 온 건가?”

베도야의 쓸쓸한 목소리에 엑스타인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문병하러 왔어.”

“필요 없다고 했을 텐데.”

“그래도 걱정이 되어서 말이지. 당신은 내 것이 될 테니까.”

엑스타인의 말에 베도야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저 하룻밤의 불장난이었을 뿐이야.”

“저런, 불장난은 하지 말라는 교육도 못 받았나 보군. 좋아, 내가 가르쳐주지.”

“엑스타인.”

베도야가 질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만두라고. 난 너와 그런 짓이나 하고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 너도 마찬가지일 테고.”

“왜?”

핀레이 엑스타인은 웃으면서 팔을 풀었다.

“한가하진 않지만, 사람 하나 만나지도 못할 정도로 바쁘진 않아.”

베도야는 엑스타인의 웃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엑스타인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밤에 이어 두 번째 보는, 엑스타인의 감정이 드러난 맨얼굴. 분명 베도야 자신도 난처하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을 것이다. 몸은 정말 피곤했고 체력도 바닥인데, 이 남자를 밀실에서 만나야 하는 상황이 그를 더욱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었다.

아니, 아니. 이 남자다. 이 남자의 존재 자체가 베도야를 한계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얼굴이 이게 뭐야.”

엑스타인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베도야가 보기에는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에 불과한 엑스타인이 베도야를 어린애 다루듯 하면서 혀를 차는 것에 그저 어이가 없어 실소하며 그 손을 내버려두자, 엑스타인의 손이 뺨을 쓸고 턱으로 내려왔다.

“얼마 만이지. 3개월…… 조금 더 되었던가.”

엑스타인은 웃고 있었지만 내심 욕설을 지껄이고 있었다. 베도야의 스태프들은 미친 것이 틀림없다. 베도야다. 키아란 베도야. 헤레라의 상징, 영구적으로 수상이 될 자. 온실 속의 꽃처럼 둘러싸고 있으면서 물도 양분도 제때 주지 못하는 무능한 놈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베도야가 그렇게 말하며 엑스타인의 손을 치워버렸다. 엑스타인은 비어버린 손끝에서 아직 남아 있는 온기를 느꼈다. 베도야의 체온이 정상보다 높았다. 그는 정말 아픈 것이다.

“무슨 눈? 당신 엉덩이가 찢어지도록 박고 싶어하는 눈?”

엑스타인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지만, 베도야는 고개를 저었다.

“어린애를 보는 눈.”

엑스타인이 말도 안 된다며 혀를 찼다.

“당신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내가 태어났을 때 당신은 이미 수상직에 올라 있었다고.”

“너는 나를 그렇게 봐. 너는 내게 위험한 짓만 골라서 해.”

베도야가 희미한 체념의 빛을 띤 얼굴로 대답했다. 엑스타인이 반문했다.

“강간 말이야? 당신도 나를…….”

키아란 베도야의 푸른 눈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내가 포기하고 잊었던 것들을 너는 다 끄집어내려 들어. 핀레이 엑스타인, 경고한다. 지금 여기서 나가서 다시는 내게 상관하지 마라.”

핀레이 엑스타인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는 베도야를 내려다보았다. 남자의 얼굴은 익숙했다. 신체를 바꾼다고 해도, 바꾸는 신체는 오리지널의 특징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인조 육체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키아란 베도야의 얼굴은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이 얼굴을 엑스타인은 늘 봐왔었다. 신문, 뉴스, 길거리의 대형 스크린, 국정 홍보 영상, 그리고 군인으로서 먼 곳에서도 몇 번. 원수가 되고 나서도 이 얼굴은 어디에나 있었다. 헤레라에 사는 이상 키아란 베도야를 하루라도 보지 않고 넘어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엑스타인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낯설기만 했다. 그는 모든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문득 엑스타인은 밀실을 둘러보았다. 거실과 세 개의 침실이 연결되어 있는 밀실. 베도야는 왜 굳이 엑스타인을 여기까지 부른 것일까. 수상 관저는 베도야의 성이다. 베도야가 원하는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그것으로 족했을 텐데, 어째서.

“키아란.”

엑스타인이 그를 불렀다.

“당신을 강간한 남자를 이런 밀실로 불러놓고, 당신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베도야가 엑스타인을 올려다본다. 그 흐려진 푸른 눈을 보자, 엑스타인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키아란 베도야가 약해 보인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베도야는 약해 보였다. 이제 곧 300살이 될 남자는 열여섯의 소년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단 한 번도 그렇게 보이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정말이지 그 외모 그대로의 나이로 보였다.

“돌아가, 엑스타인.”

이렇게까지 약한 베도야라니. 정복욕이 치밀어 올라, 엑스타인은 손을 뻗어 베도야를 당겨 안았다. 베도야가 몸서리쳤지만, 그는 베도야를 놓아주지 않았다.

“좀 더 심한 꼴이 되어서 울어봐.”

“엑스타인!”

“의외로, 별거 아니야. 보장하지. 아무리 심하고 추하게 울어도 어차피 아무도 몰라. 아는 건 나뿐이야.”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그 다정한 손길에 엑스타인을 밀어내던 베도야가 멈칫거렸다.

“키아란, 당신을 원해.”

“…….”

“그리고 당신도 나를 원해. 알고 있잖아.”

베도야는 대답이 없었다.

“당신은 알고 있어. 다 알고 있지. 나와 이런 실랑이를 해봐야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는 것도, 당신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체하고 싶어? 하지만 당신은 이미 알고 있잖아. 그걸 모르는 체하거나, 없는 일로 만들 방법 따윈 없다는 걸.”

“없진 않아.”

베도야가 말했다. 베도야는 입에 담지 않았지만, 엑스타인은 그게 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베도야는 암살이라는 수단도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당신 손에 죽어도 좋아. 그러나 죽기 전까진 당신은 내 것이지.”

엑스타인의 손이 와이셔츠 깃에 닿았다. 엑스타인의 얼굴에 생생한 욕망이 떠오르는 것을 베도야는 참담한 눈으로 보았다.

“찢기 전에 벗어.”

엑스타인이 욕정이 짙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엑스타인이 놔주자, 베도야는 엑스타인의 코앞에서 떨리는 손을 들었다. 엑스타인을 밀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원수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기에 매일같이 만나자는 연락을 취해오는 거냐고 묻던 비서실의 목소리도 생각났다. 그리고 매일 밤, 잠이 들어도 깨어 있어도 떠오르던 그 기억들에 숨이 막혔다.

고작 하룻밤 사이에 베도야의 모든 것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엉망으로 만든 건 엑스타인이었다. 그러나 엑스타인은 말하고 있다. 별거 아니라고.

그런 헛소리를 믿고 옷을 벗으려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베도야는 손을 올려 넥타이에 대고 말았다. 여기서 옷이 찢기는 건 곤란하다. 스태프들에게 뭐라고 해명할 수 있단 말인가.

베도야의 손이 움직이지 않자 엑스타인이 비열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싫다면, 찢어주지.”

베도야가 눈을 들었다.

“역시, 강간이 마음 편하시겠나. 고고한 수상 각하.”

엑스타인의 냉혹한 얼굴을 바라보다 베도야는 창백한 얼굴 위에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

“고자는 아닌가 보지?”

“진가를 보여주겠다니까.”

“진가라.”

베도야의 손가락이 넥타이를 끌어내렸다.

“그래, 너의 진가를 보지. 쓰레기인지, 보물인지.”

엑스타인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그다음에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키아란 베도야는 마음을 정했다.

엑스타인은 베도야에게 관장약을 건넸다. 저걸 가져왔다는 것부터가 이 남자는 처음부터 자신에게 이럴 생각이었나 싶어, 베도야는 손을 뻗으면서 씁쓸해했다. 가장 씁쓸한 것은 자신이다. 이런 것에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추잡한 자신. 손이 거의 엑스타인의 손에 닿는 순간, 엑스타인에게서 그래도 뺨을 맞았다.

베도야가 고개를 들자 엑스타인은 웃고 있었다. 그러나 설명해주지 않았고, 베도야는 저번을 떠올렸다. 엑스타인이 뭘 말하는지 그는 알 것 같았다. 읏 하고 무의식중에 신음을 흘릴 것 같았다. 비참하고 화가 나서.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하는 자신이 있었다. 좋아, 너를 버려야 할지, 받들어 모셔야 할지 결정해보자. 베도야는 입술을 벌렸다. 천천히 다가가 관장약을 이로 물었다.

“아래가 아닌 윗입으로 먹지 않게 조심해.”

엑스타인이 베도야를 놀리며 화장실로 들여보내주었다. 베도야는 일단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했다. 물에 젖은 얼굴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본다. 창백하고 겁에 질린 자신의 모습은 낯설기 짝이 없었다. 혼란과 기대로 찬 눈도 어색했다. 사람의 몸 위에 밀랍을 부으면 당신 같은 모습이 되겠죠, 라고 하던 전처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그런데 어째서 그는 저런 무뢰배의 앞에서 이토록 생생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관장을 하고 나오자, 침대에 앉아 있던 엑스타인이 손짓했다. 강아지를 부르는 듯한 행태가 불쾌하지도 않은 걸 보니, 정말 모든 게 다 변한 모양이다. 그 짧은 하룻밤에, 고작 이런 어린애에게…….

베도야가 천천히 다가가자 엑스타인이 다리를 벌렸다. 군복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야생동물 같은 다리가 그의 눈앞에서 벌어졌다. 베도야는 잠자코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꺼내.”

엑스타인의 말에 베도야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그뿐, 그는 망설이지 않고 손을 뻗었다. 엑스타인의 바지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리고 속옷을 헤쳐 성기를 붙잡은 순간 베도야는 들이켰던 숨을 뱉었다. 그리고 끄집어내었다. 이미 반쯤 서 있는 그것을 그는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흉악한 형태에 음탕한 냄새를 더한 성기라고 베도야는 생각했다. 이걸 몸에 넣는 건가. 불가능한 일처럼 생각되었지만, 많이들 하는 일이겠지. 전에 장난감으로 쑤셔지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눈앞이 새카맣게 물드는 공포가 함께했지만, 누군가에게 이런 일은 별거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베도야 자신도 가능하리라 생각했을 때 엑스타인이 명령했다.

“빨아.”

나체의 베도야가, 군복을 단정하게 입고 있는 엑스타인의 성기를 꺼내 입에 담아야 하는 것이다. 수치심에 울컥했지만, 베도야는 반항하지 않았다.

그는 혀를 내밀어 엑스타인의 형태를 따라 덧그렸다. 그리고 귀두를 핥았다. 흘끗 올려다보자 엑스타인은 나른하게 웃으며 그의 치태를 감상하고 있었다. 감상 중이라는 게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그 얼굴에 다시 시선을 내린 베도야가 반쯤 성기를 집어넣었다. 성기가 빨려 엑스타인은 길고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별거 아닌 애무인데도 환장하게 좋았다. 상대가 그 키아란 베도야라서? 문신 놈들이 재수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 수장에게 이런 짓을 하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났었던가.

아니, 아니었다. 그는 문신 놈들이 재수 없고 말만 앞세우는 협잡꾼들이라고 생각했고 특히 수상이 가장 지독한 놈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런 짓을 하고 싶기는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일단 베도야를 한 번 맛보자, 달려드는 건 자신 쪽이었다. 싫다는 베도야에게 몇 번이고 만남을 요청하지 않았던가. 결국은 이렇게 무작정 쳐들어오기까지 했다. 그를 이렇게까지 안달 나게 만든 남자의 뒤통수를 붙잡고, 그는 단숨에 집어넣었다.

베도야가 눈을 홉떴다. 숨이 막히는지 머리를 피하려고 하는 걸, 엑스타인은 힘으로 막고 자신을 빨게 했다.

“제대로 빨아, 키아란. 아니면 쓰러질 때까지 이러고 있을 테니까.”

베도야가 필사적으로 엑스타인의 것에 매달렸다. 그는 이미 엑스타인과 하룻밤을 보냈었다. 그것만으로도 엑스타인의 잔인함을 깨닫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혀를 움직여서 어떻게든 ‘제대로’ 하는 것이 되도록 빨자 그제야 뒤통수를 누르는 힘이 느슨해졌다.

“혀를 움직여. 그래…….”

베도야의 시선이 가끔씩 엑스타인에게 닿았다. 확인하는 시선이다. 엑스타인이 제대로 반응해줄수록 베도야의 펠라티오도 능숙하졌다. 베도야가 숨이 막히려 할 때마다 엑스타인은 교활하게 성기를 반쯤 빼주었고, 베도야의 숨이 안정되기 전에 다시 끝까지 집어넣었다. 끝까지라고 해도 베도야가 할 수 있는 것은 보통의 펠라티오에 불과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끝까지 넣지 않았지만, 베도야에겐 목 끝까지 닿은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삼킬 수 없어서 흐르는 타액과 입안에 들어찬 불쾌한 이물질, 체온보다 조금 높은 온도와 진해지는 음탕한 냄새, 그리고 흘러내리는 체액의 맛까지, 모든 것이 힘들게 할 텐데도 베도야는 어느새 열중해서 엑스타인을 애무하고 있었다.

“제법인데. 좋아, 잘하고 있어.”

엑스타인이 어린애를 칭찬하듯 베도야의 금발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베도야가 입술을 오므리고 볼을 좁혀 엑스타인이 움직이는 것에 맞춰 조여왔다. 할 마음이 생긴 베도야는 꽤 적극적이다. 그는 엑스타인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뒤통수를 잡아 자신 쪽으로 당기며 가능한 곳까지 집어넣자, 베도야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안에 뜨겁고 비릿한 것이 터져 나왔다.

“먹어.”

엑스타인의 말에 베도야가 눈을 한 번 떴다가 감았다. 고개를 끄덕일 수 없어서 대신 눈을 떴다 감았으리라. 베도야의 목이 움직인다. 꿀꺽. 꿀꺽. 베도야가 삼키는 소리가 엑스타인을 만족하게 했다. 한참을 삼킨 베도야가 입을 떼려고 하자, 엑스타인은 힘으로 막았다.

“안 돼, 조금 더 핥아.”

그 말에 베도야가 미묘한 얼굴을 한다. 찌푸리고 있는 것 같은데도 눈은 분명하게 젖어 있다. 베도야가 반항하지 않고, 엑스타인의 성기를 핥았다.

“청소하는 거다, 키아란.”

베도야가 눈을 감았다. 천천히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성기를 핥았다. 몇 번이나 입술을 미끄러뜨리면서 핥은 베도야가 눈을 뜨고 엑스타인을 바라보았다. 이제 되었냐는 눈에, 엑스타인이 미소 지었다. 엑스타인은 베도야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그를 침대 위 자신의 무릎 위로 끌어올렸다.

“개인적으로 온 게 아니라 장난감은 못 가져왔는데.”

엑스타인이 그렇게 말하면서 베도야의 성기로 손을 뻗었다. 애무의 손짓 한 번 닿은 적이 없는데 이미 베도야의 성기는 일어서 있었다. 그 성기를 스쳐 회음부를 지나 엑스타인은 입구에 닿았다.

“젖었네.”

엑스타인이 그렇게 말하며 잘했다는 듯 베도야의 뺨에 키스했다.

“소질이 있군.”

베도야의 눈이 깜빡거렸다. 사내의 성기를 입에 담은 채 필사적으로 빨았다. 숨을 쉬려면 그 수밖엔 없었다. 엑스타인은 성기를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빨면 뒤통수에 힘을 줘 당겼고, 베도야가 모든 힘을 다해 빨아야만 잠깐 동안 숨을 쉬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베도야는 발기했고, 여자도 적시지 않을 구멍을 스스로 적셨다. 추잡한 일이었다. 더러운 짓이었다. 그러나 엑스타인은 정녕 사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엑스타인이 천천히 손가락을 내부로 미끄러뜨렸다. 베도야의 눈이 공포에 질리는 걸 보면서 엑스타인은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흣. 베도야가 이물감을 참지 못하고 신음했다.

“여기가, 포인트지.”

엑스타인이 전립선을 건드리는 순간, 베도야가 비명을 억눌렀다. 엑스타인의 품 안에서 적당히 늘씬한 몸이 격렬하게 튕겼다.

“여기도 괜찮은 편이고.”

엑스타인이 내벽을 문질렀다.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어깨를 붙잡았다.

“여길 좋아하는 사람도 꽤 많지.”

입구 바로 옆을 문지르는 손길에 베도야가 머리를 흔들었다.

“다 좋아하는군. 소질이 있다니깐.”

엑스타인이 만족스러워했다. 그새 손가락이 하나 더 들어오는 것이 생생히 느껴졌다. 하지만 처음 하나가 들어올 때보다 이물감만 더해질 뿐 아픔은 없었다. 손가락이라서? 장난감이 들어올 때에는 그렇게나 고통스러웠는데.

“잘 느끼는 몸이네. 이런 몸으로 잘도 그렇게 딱딱하게 사셨군.”

내부에 들어온 손가락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안쪽을 벌리거나 긁는 듯한 움직임에 베도야는 흣, 신음하며 엉덩이를 조였다. 그 순간,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엉덩이에 따끔한 통증이 왔다.

“조이지 마. 찢어지고 싶지 않으면.”

“하지만……!”

“괜찮아, 이렇게 밝히잖아? 아는 건 없는 몸이 야하긴 지독하게 야하군. 내벽을 문지를 때마다 움찔거린다고. 벌써 흐물흐물해진 안쪽이 느껴져?”

엑스타인의 입술이 베도야의 뺨에 한 번 더 닿았다.

“마음에 들어.”

손가락이 세 개쯤 들어왔을 때, 베도야는 한 번 더 엉덩이를 조였다가 아까보다 호된 매를 맞았다. 베도야가 필사적으로 힘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동안 엑스타인은 베도야의 내부를 휘젓고 있었다. 처음에는 손가락 하나도 꽉 오므려 물고 있던 구멍은 세 개를 물고도 풀어져 있다. 나긋나긋한 입구와 달라붙어오는 점막을 즐기던 엑스타인이 손가락을 빼고 바로 베도야의 허리를 잡아 성기에 맞추었다. 힘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던 베도야가 멍한 눈으로 엑스타인을 바라보는 순간, 엑스타인은 그대로 베도야를 내리눌렀다.

“……!”

베도야는 소리 내어 비명을 지르지조차 못한다. 엑스타인은 귀두가 들어가 걸쳐진 것을 확인하고 손가락으로 결합부를 더듬었다. 주름 하나 없이 펴져 있는 그곳은, 상처를 입진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베도야가 허리를 올리려 한다. 그 도망치는 기색에 엑스타인이 재빨리 베도야의 허리를 감싸 안고 그 귀를 물어뜯었다.

“룰을 잊지 마, 키아란.”

엑스타인이 험악한 목소리로 경고한다.

“당신이 나를 거절하는 건, 내가 이 방에서 나간 다음이다. 그전까진, 당신이 뭔가를 얻으려면 방법은 단 하나뿐이야. 당신을 안기 위해 난 목숨을 걸었어. 그러니 당신도 룰 정도는 지켜야 할 거 아니야.”

다음에는 이 정도로 안 끝난다고 엑스타인이 나지막이 경고했다. 베도야가 그 회색 눈을 바라보았다. 내장을 꿰뚫리는 공포로 흐려진 눈은, 그러나 여전히 젖어 있었다.

베도야가 약간의 망설임 끝에, 망설임을 버리는 듯한 태도로 속삭여왔다.

“아파…….”

자신의 상태를 곧이곧대로 고하는 것이 어색한 듯 베도야의 목소리가 혼탁해져 있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뺨을 길게 핥으면서 다정하지만 단호히 말했다.

“곧 괜찮아져.”

“아파.”

“참아, 괜찮아지니까. 당신이 원한 거잖아.”

“그만둬줘.”

베도야가 약한 목소리를 내서 엑스타인은 그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 얼굴이 가까워온 것에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베도야는 다시 한 번 애원했다.

“제발.”

“안 돼.”

그러나 엑스타인은 베도야의 코를 가볍게 물고 베도야를 좀 더 내리눌렀다. 본능적으로 도망가려는 몸을 베도야는 어떻게든 억누르면서 엑스타인의 목에 매달렸다.

“제발, 안 돼. 제발.”

“돼. 힘 빼, 찢어버리기 전에. 이 경고가 마지막이야.”

엑스타인의 목소리에 정욕이 실려 위험하게 들린다. 베도야가 그 목소리를 듣고 눈을 감았다. 어떻게든 몸에서 힘을 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베도야의 허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남자치고는 보기 좋게 호리호리한 몸을 안으면서, 엑스타인은 베도야에게 “숨을 들이쉬어”라고 명령했다. 베도야가 흐윽흐윽 하며 숨을 들이쉬자 이번에는 내쉬라고 명령한다. 베도야가 숨을 내쉬는 순간, 몸이 그대로 눌렸다. 순식간이었다. 베도야는 내장을 아래부터 위로 뚫리는 감각에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아아아아―.”

베도야의 비명은 그의 엉덩이가 엑스타인의 허벅지에 닿은 다음에야 나왔다. 베도야가 머리를 흔들었다. 베도야가 일어서려 하자 엑스타인이 힘주어 안았다. 패닉의 전조가 보이는 몸에 엑스타인은 강하게 소리쳤다.

“키아란 베도야!”

베도야의 몸이 굳었다.

“키아란, 괜찮아. 다 삼켰잖아. 아무것도 아니야.”

“난 널 죽일지도 몰라.”

베도야가 덜덜 떨면서 속삭여서, 엑스타인은 피식 웃었다.

“그래, 내가 이 방에서 나가면.”

엑스타인이 허리를 움직였다. 내장을 후벼 파는 감각에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목에 황급히 매달렸다.

“그다음에는 그렇게 해.”

엑스타인은 즐겁다는 듯이 웃었고, 거친 허릿짓이 웃음 대신 자리 잡았다. 쾌감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통도 아니었다. 끝없는 이물감이 배 속을 강타할 뿐이었다. 베도야가 조일 때마다 엑스타인은 베도야의 엉덩이를 내려치면서 경고했다. 베도야는 힘을 빼기 위해 애쓰면서 엑스타인의 어깨를 잡고 손톱을 세웠다. 엑스타인의 난폭하고 거친 호흡이 귓가를 때렸다. 이어진 몸은 너무나 가까워서 밧줄에 묶인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베도야는 몇 번이고 이를 악물며 엑스타인의 성기가 주는 거칠고 기묘한 감각을 견뎌야 했다.

베도야가 울기 시작한다. 엑스타인은 턱을 움켜쥐고 그 얼굴을 똑똑히 보면서 허리를 움직였다. 푸른 눈에서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악물었던 입술이 열리고 타액이 질질 흘렀다. 훌쩍거리는 몸은 이미 사정을 한 번 하고 두 번째 발기해 있었다. 이미 정신이 나가버린 베도야의 우는 얼굴이 자극적이었다. 엑스타인은 사정을 견디면서 그 몸을 계속 흔들고 있었다. 사정보다, 그 얼굴이 더 마음에 들었다. 계속 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놓고 엑스타인의 손에 흔들리며 우는 베도야를.

그러나 끝은 찾아왔다.

“내 이름을 알고 있나, 키아란?”

사정 직전 엑스타인이 물었지만, 베도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눈물로 흐려진 눈을 감으며 베도야가 엑스타인을 끌어안았다. 그 절절한 포옹에 엑스타인은 입술을 깨물며 베도야의 허리를 아프게 쥐고 들어 올렸다가 끝까지 내리꽂았다.

마치 영원할 듯한 절정이 찾아왔다. 오래 참은 만큼 긴 사정이 베도야의 내부를 적셨다. 베도야가 잘게 몸서리치는 것을 숨이 막히도록 안으면서 엑스타인은 폭풍처럼 키스를 퍼부었다. 그 얼굴과 귓가에 목에, 키스는 끝없이 내렸다.

핀레이 엑스타인은 헬기 앞에서 자신을 배웅하고 있는 키아란 베도야를 바라보았다. 그는 섹스를 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정하고 고고했다. 남자에게 강제로 펠라티오를 하고, 울면서 범해졌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단아한 모습이었다. 그래, 이게 당신이지. 그는 한 번 웃을 뿐이었다.

다음이 있을까. 그는 베도야의 모습을 구석구석 바라보았다. 날씬한 몸을 빈틈없이 정장으로 감춘 키아란 베도야의 무표정한 얼굴엔 그의 흔적 따윈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그 피부의 감촉이 엑스타인의 입술과 손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배웅 감사합니다, 각하.”

엑스타인의 말에 베도야가 그린 듯이 미소 지었다.

“천만의 말씀을.”

“과로라 들었는데, 더 피곤하게 해드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베도야는 그렇게 말하며 핀레이 엑스타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회색 눈에서도, 시원한 입가에서도 웃음 한 조각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을 때리고 협박하고 달래고 끌어안고 키스하던, 그 남자는 저 무표정한 기계 인간의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헬기의 프로펠러가 돌기 시작하자 수상 관저의 직원들이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도야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앞으로 나와서 엑스타인의 코앞까지 도착했다.

“쓰레기는 아니더군.”

엑스타인의 회색 눈이 조금 커졌다. 아주 순간이었지만, 베도야의 눈에는 분명히 엑스타인의 눈을 스친 이채가 보였다.

“다음을 기대하지, 핀레이 엑스타인.”

그리고 베도야는 등을 돌렸다. 베도야가 등을 돌려 스태프들을 향해 걷자 스태프들이 재빨리 둘로 갈라졌다. 그 사이를 통과해 스태프들을 마치 가신처럼 끌고 사라지는 베도야의 뒷모습을 엑스타인은 삼킬 듯한 눈으로 바라보다 등을 돌렸다.

“가자.”

엑스타인의 말에 엑스타인의 부관들이 움직였다. 엑스타인과 베도야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엑스타인의 얼굴은 기계처럼 차가웠고 베도야는 무심하고 우아하게 옥상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뉴스에는 일제히 핀레이 엑스타인이 비공식으로 수상 관저를 방문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긴급을 다투는 문제에 대해 상의했고, 의견에 대해 부분 일치를 보았으며, 조만간 2차 회동이 있을 거라는 발표가 각자의 대변인으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문제인지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사방이 막혔다. 그러나 더 이상 출구는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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