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내린 정원 (4/15)

폭설이 내렸다. 헤레라에 10년 만에 내린 폭설은 지독했다. 사람들은 몇 백 년 동안 끊임없이 말해온 ‘자연의 대재앙’을 들먹였고, 최근 20∼30년 동안 유행하던 네이처 시티―자연으로 돌아가는 의미로 자급자족하며 문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소도시―는 전부 고립되었다. 자연으로 돌아가겠다느니 할 땐 언제고 문제가 생기자마자 정부는 그들을 보호해야 했다며, 보호를 위한 강제를 펼쳐야 했다고 주장하는 인물까지 나타났다. 그리고 키아란 베도야는 상황을 진두지휘했고, 네이처 시티 측에서 초래한 일이라는 황제를 설득해서 결국 구조를 명령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상의 개입에 모든 재앙은 재빨리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측근들조차 용건을 모르는 2차 비밀 회담이 원수 관저에서 열렸다.

델리 헬기. 본래라면 황제에게만 배당될 최고급 헬기가 상공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황제에게만―물론 돈 많은 재벌들도 개인적으로 구입하지만, 여하간 공공 기관에서는 황제를 위해서만 움직이는―제공되는 델리 헬기는 지금은 키아란 베도야 수상의 상징과도 같다. 키아란 베도야의 절대 권력을 보여주는 표식인 것이다.

베도야가 도착하자 곧 티타임이 시작되었다. 베도야도, 엑스타인도 거의 말이 없었다. 수상이 식사를 거절했기 때문에 첫 분위기는 싸늘했다. 그러나 정치가가 아니라 정치 그 자체라는 평을 받는 키아란 베도야는 몇 마디 말로 그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꿔놓았다. 엑스타인은 말이 없었다. 냉혹한 군인 정치가는 입을 다문 채 간간이 차나 쿠키를 입에 넣을 뿐이었다. 그리고 키아란 베도야는 차 외에는 아무것도 마시지 않았다.

엑스타인은 어떨지 몰라도 베도야는 사실 상당히 바빴다. 두뇌에 채널이 여섯 개나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 음식을 먹을 만한 기분도 아니었다. 차 외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은 베도야는 끊임없이 들어오는 보고와 결재 요청을 해치우고 있었다. 그리고 급한 일이 끝나자 베도야가 싱긋 웃었다.

“이제 일어서볼까요.”

거의 맞장구밖에 치지 않았으면서도 대화의 흐름을 자연스레 쥔 베도야가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거처가 아닌데도, 자신의 거처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엑스타인이 일어서자 무신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진전될 내용에 기대가 큽니다, 엑스타인 원수.”

“물론 흡족하실 겁니다.”

도대체 내용이 뭐냐는 얼굴을 한 수하들을 무시하며 키아란 베도야와 핀레이 엑스타인은 원수 관저에 있는 밀실로 들어갔다. 베도야가 먼저 들어갔고, 엑스타인이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순간, 엑스타인의 부관들은 키아란 베도야의 옆모습을 보고 있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다. 모두가 동시에 한 생각이었다.

시선을 감지한 듯, 냉엄한 푸른 눈이 똑바로 무신들을 쏘아본다. 무신들에겐 세상 그 어떤 적보다 막강하고 무시무시한 적의 눈동자다.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듯한 그 눈이, 천천히 닫히는 문에 가려지는 것을 무신들은 똑똑히 보았다. 밀실의 두꺼운 문이 닫힌 순간, 누군가가 가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 ◈ ◈

탁 하고 문이 닫히는 순간 키아란 베도야는 밀실을 둘러보고 있었다. 원수 관저의 밀실에 그는 열 번이 조금 넘게 들어왔었지만 주인이 바뀔 때마다 밀실도 약간씩 바뀌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라보면서도 눈에 그 인테리어가 들어오질 않았다. 그저 온몸의 신경이 뒤에 있을 남자를 향해 곤두서 있었다. 머릿속의 채널들이 닫히고, 자신의 두뇌가 온전한 자신의 것이 되자, 정말 온 영혼이 그 남자를 향하는 것 같아 베도야는 무표정한 입술 아래로 혀를 지그시 깨물었다.

“키아란.”

낮은 목소리와 함께, 엑스타인이 뒤에서 그를 껴안았다. 옷감 위로 느껴지는 뜨거운 체온에 숨이 막혀 베도야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엑스타인의 손은 거침이 없었다. 그의 손이 당연한 듯이 엉덩이를 움켜쥐자 베도야가 흣 하고 작게 숨을 내뱉었다. 잘게 떨리는 몸을 느끼며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귀에 속삭였다.

“돌아서봐.”

베도야가 몸을 돌렸다. 얼굴이 창백했다. 핏기라곤 보이지 않는 뺨을 한 베도야가 똑바로 엑스타인을 올려다보고 있다. 엑스타인의 손이 닿자 흠칫 굳으면서도 인내하는 것처럼 그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베도야에게 엑스타인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엑스타인의 억세고 거친 손이 베도야의 넥타이에 닿았다. 엑스타인이 천천히 베도야의 넥타이를 끌어내렸다. 그 손은 곧 베도야의 정장을 벗기고,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다정하네.”

베도야가 질려서 색이 옅어진 입술로 조용히 말했다. 저번과는 달리 날이 선 어투가 아니라서, 엑스타인은 상냥하게 웃어주었다.

“당신이 착하니까.”

베도야의 입장에서 핀레이 엑스타인은 어리고 또 애송이다. 그런데도 벌써 세 번째 이런 식으로 취급당하다 보니 익숙해진 건가. 베도야는 말이 없었고, 엑스타인은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다 베도야의 입술을 훔쳤다.

“키아란, 내게 키스해봐.”

베도야는 오늘 여기에 오기까지 꽤 많은 전 단계를 거쳐야 했다. 심적으로도 스케줄적으로도 여기에 오기 위해선 여러 단계가 필요했다. 그는 겨우 여기까지 도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겨우 온 그에게, 엑스타인은 키스를 요구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그를 요구하라는 뜻이다. 베도야는 엑스타인의 회색 눈을 바라보다 천천히 엑스타인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베도야의 입술이 어색하게 엑스타인의 입술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더.”

어느새 엑스타인은 베도야의 등과 허리를 안고 있었다. 바짝 자신에게로 잡아당기며 엑스타인이 요구했다. 베도야의 입술이 엑스타인의 입술에 닿았고, 떨어지기 전 베도야가 어색하게 엑스타인의 입술을 핥았다.

“더. 입술을 겹치고, 혀를 집어넣어.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는 건가?”

엑스타인이 물었고, 베도야는 얼굴을 찡그렸다. 물론 그는 키스를 할 줄 알았다. 한 적도 있었다. ―문제는 그가 마지막으로 키스를 한 상대가 전처였고, 그녀와 이혼한 지 백 년이 넘었다는 것이지만,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베도야는 엑스타인의 입술에 자신의 것을 깊게 겹치고 혀를 집어넣었다. 가만히 있는 혀에 자신의 것을 문지르자 엑스타인이 목 안쪽으로 웃었다.

“……!”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혀를 빨아 당겼다. 베도야의 혀뿐만이 아니라 그 입안의 타액까지 전부 빨아 당겼다. 타인의 타액을 먹는 것에도 부담이 있지만 자신의 타액을 타인이 먹는 것에도 거부감이 있는 베도야였지만 조금 몸부림치다 엑스타인이 꽉 움켜 안자 곧 얌전해졌다.

그들 사이엔 룰이 있다는 것을 상기해냈기 때문이었다.

엑스타인은 만족할 때까지 베도야의 입안을 맛본 다음에야 베도야를 놓아주었다. 베도야가 혼란스러운 눈을 하는 걸 보며 엑스타인은 씩 웃었다.

그가 다시 베도야의 와이셔츠를 벗기기 시작했다. 셔츠가 바닥에 떨어지자 엑스타인이 말했다.

“나머지는 스스로 벗어보지?”

“너는 왜 안 벗지?”

나머지를 벗은 베도야가 여전히 딱딱한 군복 차림인 엑스타인을 향해 물었다.

“벗길 바라나?”

엑스타인이 의외라는 듯 물었고, 베도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엑스타인이 “좋아” 하고 대답하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군복 셔츠를 벗자 그 안쪽에 회색 티셔츠가 나타났다.

그저 셔츠를 하나 벗은 것만으로도 베도야의 눈이 젖었다. 본인은 모르겠지. 엑스타인은 흡족해하며 티셔츠를 벗었다. 엑스타인의 강인하고 위협적인 육체가 나타난다. 불필요한 구석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몸은 베도야의 것과는 달랐다. 인조 육체에 관한 법률을 준수했다면, 저 육체는 엑스타인 본인의 것이다. 근육 하나하나까지도 오리지널―혹은 그전의 육체―을 따라야 하는 이상, 엑스타인은 순수하게 몸을 움직여서 저런 몸으로 만든 것이겠지. 근육이 움직이는 형태가 세세하게 보이는 저런 몸을, 엑스타인은 만든 것이다.

“당신도 날 벗겨줘.”

엑스타인이 웃으면서 다시 요구했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바지였고, 베도야는 침을 삼키며 그의 바지를 내렸다. 바지를 벗기는 것이 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베도야는 깨닫고 말았다. 바지를 내리려면 그는 무릎을 꿇어야 했다. 엑스타인의 바지를 내리고, 속옷을 내렸을 때 엑스타인의 것이 나타났다. 며칠 동안이나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던 엑스타인의 성기였다. 저번에 느꼈던 감각들이 모두 떠올랐다. 냄새나 온도나 형태 같은 것들이 그의 입을 바짝 마르게 했다.

베도야가 입을 열어 엑스타인의 것을 물려고 했을 때,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머리를 가볍게 쳤다.

“안 돼.”

사람의 머리를 갈긴 주제에 엑스타인은 웃고 있었다. 베도야는 그 회색 눈을 올려다보았다. 아까 차를 마실 때에는 그 회색 눈은 인간의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 회색 눈은 표정이 풍부하고, 가학욕으로 들떠 있었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턱을 아프도록 움켜쥐었다.

“너무 추잡하군.”

엑스타인이 힐난했다.

“허락도 없이 탐하지 마.”

“무슨……?”

“모르는 체하지 마, 키아란. 내가 너에게 원하는 섹스는 단순한 섹스가 아니야. 그 이상이지. 내가 주는 것은 모두 입으로 받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뭐든지 내게서 허락을 받아.”

베도야의 커진 눈에 대고 엑스타인이 소곤소곤 속삭여주었다.

“노예가 되는 거다.”

그 순간, 쾌감의 실체가 베도야를 후려쳤다. 백 년 전의 광경이 떠오른다. 사도마조히즘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그 클럽에 가서, 베도야는 멍하니 그들의 행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울부짖고 허락을 간청하는 남자들의 모습에서 그는 한순간도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그 행위에 몰두했고, 이후로 그는 아주 오랫동안 자신에 대해 번민해왔다.

엑스타인이 요구한다, 노예가 되라고. 베도야가 일어서려는 순간 엑스타인이 그의 어깨를 아프게 내리눌렀다.

“나를 화나게 하지 마, 키아란. 이 방 안에선 나를 거부할 수 없어.”

“그리고, 이 방을 나가면 널 죽여버리고?”

“물론, 원하시는 대로.”

엑스타인이 그렇게 말하고 눈짓했다. 옷을 마저 벗기라는 그 눈짓에 잠시 베도야가 망설였다. 일어서려면 지금이다. 엑스타인이 뭘 어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설마 그를 죽이기야 하겠는가. 반항하고 반항하면 엑스타인은 그를 놔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옷을 벗기게 되면 엑스타인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 지난번보다, 지지난번보다 더 수치스럽고 지독한, 게다가 베도야 측에서 움직여야 할 행위가 되리라는 걸 그는 예감할 수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엑스타인의 옷을 벗겼다. 나체로 주인의 옷을 벗기는 노예와 같다. 그 치욕이 베도야의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맛있었어?”

웃음기 어린 목소리에, 베도야는 정신을 차렸다. 자신은 어느새 엑스타인의 성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하긴 처음부터 빨면서 적셨었지.”

엑스타인이 그렇게 말하면서 가볍게 베도야의 입술에 성기를 문질렀다. 베도야는 눈을 감고 가늘게 몸을 떨었다. 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는 듯이. 엑스타인은 그런 베도야의 입술에 문지르면서 베도야의 항복을 기다렸다. 베도야는 철벽의 정치가지만, 불행히도 쾌락에는 약했다. 일단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면 그는 음란한 노예가 된다.

베도야가 입을 열었다.

“하, 하게 해줘.”

“뭘?”

베도야가 읏 하고 입을 다문다. 엑스타인은 베도야의 뺨에 자신의 것을 문질렀다. 약을 올리는 태도에 그 뺨이 수치로 붉어졌지만, 결국 못 참고 베도야는 입을 열었다.

“펠라티오.”

“아니지. 키아란, ‘빨게 해주세요’라고 해봐.”

그 말에 베도야가 고개를 들고 엑스타인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엑스타인이 손을 들어 베도야의 뺨을 쳤다.

“심한 짓을 당하고 싶다면, 계속 이런 식으로 나와보든지.”

엑스타인이 싸늘하게 경고했다.

베도야는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엑스타인은 심하게 때리지 않았지만, 꽤 아팠다. 반항이라. 베도야는 조금 전 자신의 생각을 비웃었다. 반항이 가당키나 한 걸까. 남자의 위협적인 몸을 보라. 남자는 베도야 따윈 한 손으로 때려죽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가 옳다. 베도야가 그를 거절하려면, 일단은 그에게 순종한 다음 이 방을 나서야만 가능하다.

“빨게…….”

어째서 이 순간 이렇게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일까. 선택지가 없다는 것은 차라리 마음이 편한 것인지도 모른다.

“빨게 해주세요.”

엑스타인의 대답이 없자, 베도야는 “제발” 하고 한 번 더 속삭였다.

엑스타인의 것이 다가오자 베도야는 허겁지겁 입에 넣었다. 이미 젖은 눈은 몽롱해져 있었다. 엑스타인은 목 안쪽으로 웃으면서 베도야의 입술에 자신의 것을 내맡겼다.

사랑스럽다.

엑스타인은 문득 생각했다. 베도야는 쾌감에 진 것에 불과하다. 그에게 어떤 감정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닐 텐데도 엑스타인의 성기를 물기 위해 추할 정도로 입을 가득 벌리고 있는 베도야는 지독하게 사랑스러웠다. 물어뜯고 싶어질 정도의 요염함으로 물든 미남자는 엑스타인의 성기를 문 채 황홀해하고 있었다. 만족할 때까지 빨아 당긴 다음에야 비로소 베도야는 그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입술을 빼고 첨단을 핥더니, 입술로 키스했다. 하아 하고 가늘게 내쉬는 숨에는 열락의 기운이 가득하다.

조금 전까지 도망치려던 남자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이 극단적인 모습이 엑스타인을 얼마나 몰아붙이고 있는지, 베도야는 알고 있는 것일까.

“안쪽까지 물어.”

그 말에 베도야가 입을 조금 더 벌려, 엑스타인의 것을 끝까지 물었다. 목 안쪽까지 들이는 베도야가 놀라울 지경이었다. 대부분은 시켜도 거기까지는 할 수 없을 텐데, 베도야는 마치 본능처럼 숨을 들이켜 목구멍을 열고 안쪽까지 머금었다. 그러나 베도야는 그 이상 뭘 어떡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을 들어 엑스타인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뒤로 빼.”

조금 뱉어진다.

“숨을 들이쉬어. 좋아, 입술을 조이면서, 다시 물어.”

축축한 점막이 엑스타인의 페니스를 쥐어짠다. 엑스타인은 짐승처럼 웃음을 흘리면서 베도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엑스타인 자신이 아닌 쾌감에 진 베도야지만, 순종적인 이 노예는 사랑스러웠다. 천천히 베도야가 머리를 움직였다. 그의 것을 빼면서 숨을 뱉고, 숨을 들이쉬면서 그의 것을 같이 문다. 그 나른한 행위를 즐기던 엑스타인이 갑자기 베도야의 머리채를 잡아 자신의 페니스에서 떨어뜨린다. 그러자 베도야가 당황한 얼굴로 그의 것을 다시 물려다가 포기하고 엑스타인을 올려다보았다. 빨게 해달라는 말을 하라고 했더니 도망치려고 했던 주제에, 베도야는 좋아하는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애처럼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난 콘돔 따윈 안 해. 엉덩이를 깨끗하게 하고 와.”

엑스타인의 말에 베도야가 눈살을 찌푸렸다. 싫겠지. 엑스타인은 즐겁게 웃으면서 침대로 다가갔다. 스탠드가 놓여 있는 협탁의 서랍을 열자 익숙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엑스타인은 그것을 집어 베도야에게 내밀었다. 관장약. 베도야는 잠시 그걸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하고…… 왔어.”

베도야의 말에 엑스타인이 베도야를 끌어당겼다. 베도야를 안고 가볍게 키스한 엑스타인이 “당신, 꽤 귀여워. 알고 있어?”라고 물었다. 베도야가 눈살을 찌푸리자, 그 찌푸린 눈주름에 키스하며 엑스타인이 피식피식 웃었다.

“관장 다음을 가르쳐주지.”

엑스타인의 손에 밀려 베도야는 침대에 엎드렸다. 엑스타인은 베도야의 머리를 누른 채 허리를 들게 했다. 엉덩이만 허공으로 세운 베도야가 힐끗 엑스타인을 돌아본다. 뺨을 시트에 대고 있는 베도야는 꽤 불안해하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엑스타인의 가학욕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베도야는 알지 못한다. 알 필요가 없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엑스타인은 장난감을 손에 들고 베도야의 얼굴에 문질렀다.

“두 번째지?”

메추리알 정도의 구체부터 탁구공보다 큰 구체가 일렬로 꿰여 있는 스틱, 일명 애널 비즈라고 하는 물건이다. 베도야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일품이었다. 엑스타인이 피식 웃으면서 장난감을 들고 베도야의 입구를 문질렀다.

“소, 손가락으로 해…… 주세요.”

베도야가 어색한 목소리로 애원했지만 엑스타인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베도야의 입구를 계속 문질렀다. 부드럽게 풀리는 구멍이 완연히 보일 지경이다.

첫 번째 비즈를 당연한 듯이 삼키는 구멍과는 달리 베도야의 헐떡이는 숨결에는 습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세 번째까지 받아들인 베도야가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배를 감쌌다.

“이상해.”

비즈를 삼킬 때 벌어진 구멍은, 삼키면서 다시 오므라든다. 손가락으로는 이런 절경을 구경할 수 없기 때문에 쓰는 것이라고, 엑스타인은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감내하고 있었을 뿐인 구멍이 더욱 탐욕스러워졌다. 베도야의 입에서 흐느낌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베도야의 몸은 그 흐느낌과는 전혀 반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뺨으로 침대를 밀듯이 힘을 주며 허리를 움직이고 있다. 다음 구슬을 삼키려는 듯이 애가 탄 몸짓은 우는 목소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농염하고, 추잡했다.

“너무 허리를 움직이지 마, 키아란.”

“하지만, 응……!”

마지막 비즈까지 삼켰을 때 키아란은 허리를 떨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자신을 달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엑스타인은 키아란을 똑바로 눕힌 다음 그 이마에 다정하게 키스했다. 잘했어. 그 목소리에 키아란이 눈을 감고 헐떡이는 숨을 어떻게든 진정해보려 한다. 그러나 그 숨결이 진정하기도 전에 엑스타인은 키아란의 손을 잡아 스틱의 손잡이로 이끌었다.

“직접 해봐.”

키아란이 손을 떼려고 했지만, 엑스타인은 키아란의 손을 잡은 채 못 떼게 막았다.

“그냥 하면 찢어져. 어차피 관장을 하고 올 거면 여기까지 하고 오도록 해. 말랑해졌을 때 안쪽을 휘저어서 넓혀놓으라고. 그게 당신한테 더 좋을 테니까.”

엑스타인이 키아란의 허리 밑에 베개를 밀어 넣었다. 허리가 뜬 상태의 키아란의 허벅지와 종아리를 한쪽은 넥타이로, 다른 한쪽은 바지로 묶자, 키아란은 어쩔 수 없이 허공에서 가랑이를 벌리고 국부를 노출할 수밖에 없었다. 키아란의 감은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엑스타인은 그 눈물을 핥아주었다.

“아프지도, 힘들지도 않아. 도리어 맛 들이면 내가 없을 때에도 휘젓고 싶을걸.”

그렇게 말하며 엑스타인은 천천히 그를 가르쳤다. 키아란은 주저주저하며 스틱을 잡았지만 조금 뒤에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엑스타인이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스틱을 움직였다. 휘젓던 움직임은 곧 피스톤질로 바뀌었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쾌감에 약한 몸이었다. 이런 몸을 하고도 그렇게 금욕적으로 살아왔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계기가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 본인의 의지가 대단했던 것일까.

스틱을 움직이며 키아란이 허리를 움찔거렸다. 벌어진 입에서 다디단 한숨이 연신 터져 나와 엑스타인은 쓰게 웃었다. 이러다간 엑스타인도 잊고 그대로 절정에 달할 듯하다. 어떻게 해줄까. 엑스타인이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베도야가 눈을 떴다. 젖은 채 흐려진 눈이 천천히 뭔가를 찾는다. 멍한 탓인지, 뭔가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이윽고, 엑스타인과 눈이 마주친 베도야의 눈에서 눈물이 솟아 흘렀다.

“엑스타인…….”

땀으로 젖은 금발이 흰 얼굴에 멋대로 달라붙어 있었다. 젖어서 색이 더 짙어진 푸른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눈가를 타고 흘러 시트로 떨어지는 그 눈물을 엑스타인은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베도야가 한 손을 뻗었다.

“구해줘.”

감각의 소용돌이에서 베도야가 엑스타인에게 도움을 애걸한다. 엑스타인이 잔인한 색의 웃음을 지으며 베도야가 움직이고 있는 스틱을 빼앗아, 단숨에 뺐다. 베도야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뺨을 아프지 않게, 그러나 정신이 들 정도로는 세게 두세 대 내려쳤다. 베도야가 흐린 눈을 어떻게든 제대로 떠서 엑스타인을 보려고 했다. 그 욕망과 눈물로 흐려진 눈을 혀를 넣어 핥자 베도야가 신음을 내질렀다.

타고난 요부.

……그러나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자.

“당신, 남창이었다면.”

엑스타인은 그렇게 말하고 베도야의 뺨을 한 번 쓸었다. 남창이었다면 돈을 제법 만졌겠다고 말할 참이었는데 눈물로 흐려진 채, 그래도 엑스타인의 팔뚝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을 보자 다른 말이 나왔다.

“당신 손님들은, 다 무사하지 못했어.”

“……무슨……?”

베도야는 눈을 떠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타액과 눈물로 젖은 눈앞은 흐릿하기만 했다.

“당신이 남창이 아닌 고고한 정치가 나리라 다행이야.”

엑스타인이 그렇게 말하며 벌어진 다리를 더욱 크게 벌렸다. 엑스타인의 것이 입구에 닿자 베도야가 몸서리쳤다. 그 뜨거운 것에 꿰뚫릴 때의 고통을 상기하자, 잔뜩 달아오른 몸으로도 도망가고 싶어진 것이다. 기억나는 것은 어떤 감각뿐이었다. 고통인지 쾌감인지, 그것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감각은 몹시 강렬한 것이었고, 그리고 자신을 잊게 했다. 타액을 질질 흘리면서 울던 것을 떠올리자 도망칠 뻔했지만, 베도야는 혀를 깨물며 참아냈다. 베도야가 입을 다문 것이 아니라 입을 연 채 혀를 깨무는 바람에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턱을 움켜쥐었다.

“입을 벌려.”

베도야가 힘없이 입을 벌렸다. 엑스타인이 그 입술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자신의 것을 콱 들이밀었다. 베도야의 몸이 격렬하게 튕겼다. 하지만 베도야의 발기한 성기는 그대로였고, 엑스타인은 그것을 확인하고 기분 좋게 웃었다.

“아파. 아파, 엑스타인.”

베도야가 울었다. 처음과는 달리 참거나 도망치려는 시도는 없었다. 베도야는 그저 울면서 엑스타인에게 매달렸다. 엑스타인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베도야를 안은 채 다정하게 쓸어내렸다. 베도야가 헐떡이며 손으로 배를 안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고, 거기까지 닿았을 리도 없지만, 체감만은 배가 뚫리는 기분인 것이다. 덜덜 떠는 베도야에게 엑스타인이 가능한 한 부드럽게 속삭였다.

“쉬, 괜찮아. 다 들어갔어.”

“왜, 왜…….”

베도야가 흐느끼며 말했다.

“왜, 이딴 거를 나는 바라고 있는 거지…….”

남자의 성기를 뒤로 받아들이는 이 비참한 감각을 왜 그는 바라고 있는 걸까. 이 순간, 그는 비참하고 추잡한 자신이 싫어서 눈물이 났다. 고통보다 그 혐오가 더 컸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던 엑스타인이 그의 눈물을 핥았다.

“더 울어.”

엑스타인은 진정 즐거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비참해져봐.”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비릿한 피 맛이 입안에서 도는데도 엑스타인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즐거워하면서 엑스타인이 허리를 움직였다. 검으로 찔리는 것처럼 푹 소리가 나는 난폭한 움직임에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품속에서 펄떡였다. 베도야는 몇 번이고 엑스타인의 손가락을 물어뜯었지만, 엑스타인은 그때마다 더 흥분되는지 신음 소리가 거칠어질 뿐이었다.

“잔뜩 조이는군. 응? 좋아, 키아란? 이렇게 흣, 젖은 몸을 해가지고, 그러고도 차가운 얼굴로, 잘도, 정무를 보는군. 응? 당신, 차라리, 흣, 남창이었으면, 말이지. 그랬으면, 내가, 샀을 텐데.”

엑스타인의 말에 베도야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것이었다. 베도야는 울부짖으면서 몸을 비틀었다. 때때로 엑스타인을 때리고 밀치려고 했다. 허벅지와 종아리를 같이 묶어놓은 넥타이나 바지를 풀려고 손을 내리기도 했다. 엑스타인은 그가 자신을 때릴 때에는 그것마저 쾌락이 되는 것처럼 내버려두었지만 묶인 다리를 풀려고 들자 움직였다. 베도야의 입안에서 손가락을 빼내어 그 손으로 베도야의 양쪽 손목을 그러잡고 머리 위로 올렸다.

“정말 질이 좋은 구멍이야. 음습하고, 탐욕스럽고. 당신, 헉, 당신, 내가 얼마나, 당신에게 이러고, 읏, 이러고 싶었는 줄 알아? 응? 완전히, 가버렸어? 내 목소리도 안 들리나?”

엑스타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기는 했지만, 머리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베도야는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움직였다.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드는 것밖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리는 접혀서 묶인 채 허공에서 덜렁거렸고, 손은 구속되어 있다. 움직일 수 있는 건 고개뿐이었다. 입을 열어 뭐라 애원하고 싶어도, 입에서 나오는 건 비명뿐이었다. 엑스타인이 뭐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온몸이 쾌감과 비슷한 열에 잠식되어 끝없이 추락한다.

“조이고 있어. 흣, 씹어 먹고 있다고. 당신, 정말 끝내줘. 이 얼굴도, 이 목소리도 구멍도―흣, 흐읏, 읏, 키아란. 키아란, 나를 불러봐. 응?”

엑스타인이 빈손으로 베도야의 턱을 움켜쥐었다. 베도야는 그저 울 뿐이다. 흠뻑 젖은 얼굴로, 그러나 입에서는 이미 난폭한 호흡과 함께 단 신음이 흐르기 시작했다. 흐읏, 흐읏. 베도야가 울면서 몸을 비틀었다. 엑스타인이 그를 잠깐 놓아주자,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주, 주인님?”

베도야가 젖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목소리는 조금 어색할지언정, 나긋나긋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키아란이 떨어지고 있다. 엑스타인의 품속으로, 그 손안으로. 고고한 정치가가 그의 품 안에서 울부짖으며 무너진다. 그것이 황홀하다고 여기며 엑스타인은 몇 번이고 베도야에게 키스해주었다. 엑스타인의 다정한 키스와 흉포한 피스톤질에 놀아나며 베도야가 몇 번이고 미끄러지는 팔을 엑스타인의 목에 걸고 매달렸다.

엑스타인이 이윽고 절정에 달했을 때, 베도야도 터뜨리고 있었다. 꽉 안기는 몸에 엑스타인은 웃으면서, 길게 울부짖었다. 눈앞이 새하얘지는 절정 속에서 그는 어릴 때의 풍경을 본 것 같았다. 눈 내린 정원. 온 세계가 하얗게 물든 입구에 어린 엑스타인은 서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하지만 곧 사라질 풍경이기도 했다.

그때의 그 안타까움이 왠지 목 안쪽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엑스타인은 웃는 채로, 베도야를 힘주어 안았다. 뜨거운 몸이 엑스타인의 몸을 녹여버릴 것 같았다. 엑스타인은 웃으면서, 그러나 입으로는 교성에 가까운 울부짖음을 낮게 뱉으면서 이를 드러냈다. 베도야의 어깨를 물었다. 이가 박히는 순간, 베도야가 흠칫 몸을 굳혔다가 기껍게 엑스타인에게 달라붙었다.

베도야의 냄새가 코로 들어온다. 이 음란한 냄새가 숨통을 틀어막는 것 같아, 엑스타인은 베도야의 어깨를 문 이를 조금 더 깊이 박아 넣고 있었다.

엑스타인이 도와주겠다는 것을 가볍게 거절한 키아란 베도야는 혼자 뒤처리를 하고 옷을 입었다. 스태프들이 관여했을 때보다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다정하고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모습이 되어 밀실을 나가려고 했다. 몸을 씻고 나와서 엑스타인이 준비해둔 정장을 입고 몇 번의 손짓만으로 그 차가운 ‘키아란 베도야’가 된 남자가 인사도 하지 않고 문을 나서려고 해서 엑스타인은 급히 그를 붙잡았다. 체액으로 젖어 엉망이 된 엑스타인이 고작 바지만을 입은 채 손목을 움켜쥐자 베도야가 서늘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뭡니까.”

“다음은 언제지?”

엑스타인의 회색 눈이 낯설다고 생각하고 베도야는 그런 자신이 우스워졌다. 핀레이 엑스타인의 눈에 대해 그가 뭘 안단 말인가. 하지만 정말 이 회색 눈은 낯설다. 즐거운 듯 잔인해진 눈도 아니고, 기계처럼 무심한 눈도 아닌, 이 인간적인 눈은.

베도야는 잠시 엑스타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엑스타인의 손은 조금 억세고 적당히 거칠었다. 그 손이 자신을 얼마나 농락했었는지를 깨닫고 베도야는 싸늘한 무표정 아래로 슬쩍 웃었다. 이 어린애에게 이렇게까지 휘둘려서는. 자신은 이 어린 애송이 앞에서 계속 추해진다. 추잡스러워진다. 그걸 알면서도.

“내가 내킬 때.”

엑스타인이 입을 달싹이다 그만둔다. 그가 천천히, 자신을 억누르는 듯한 표정으로 베도야의 손목을 놔주었다.

“나는, 이번에도 살아남은 건가?”

엑스타인이 물었다. 별거 아닌 듯 물었지만, 이 군인 정치가는 무표정이 아니면 어딘가 어설펐다. 기대하고 염탐하는 시선은 희미했지만,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도야에게는 노골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베도야는 잠시 망설이다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베도야의 팔이 허공으로 뻗었다. 엑스타인의 벗은 어깨를 잡은 베도야가 그를 끌어내렸다. 엑스타인이 부지불식간에 끌려오자 베도야가 그 입술을 사납게 물어뜯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며 베도야가 물러났다. 살점이 뜯겨 피가 상당히 많이 나는데도 엑스타인의 얼굴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베도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얼굴에 베도야가 입을 열었다.

“내 바지에, 채널칩이 있어. 케번 우드에 있는 내 별장의 컨트롤 키다.”

베도야는 귀족 출신이다. 베도야 가문이라면 천 년 전에도 유명했던 가문이고 현재 수장인 키아란 베도야가 그 가문의 시대에 정점을 찍었다고들 했다. 당연히 베도야 가문이라면 귀족들이라면 거들먹거리며 꼭 별장을 둔다는 케번 우드에 별장이 있을 만했다. 하지만 케번 우드의 별장들은 상징적인 의미에 불과하고, 그 네이처 시티에서 심심하게 놀 귀족 따윈 헤레라에 아무도 없었다.

“내가 만들어놓은 상처가 낫기 전에, 연락하지.”

그리고 베도야가 문을 열었다. 엑스타인이 차마 낚아채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베도야는 수많은 스태프들 속으로 몸을 감췄다. 그리고 엑스타인의 부관들이 들어오려는 순간 엑스타인은 자연스럽게 나와서는 밀실의 문을 쾅 닫아버렸다.

“확인할 게 있다.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

엑스타인의 명령에 보초들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경례한다. 엑스타인도 마주 경례를 하고 서둘러 헬기장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베도야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그 차가운 남자는 엑스타인에게 눈길도 주지 않겠지만, 그렇지만 그 푸른 눈은 분명 그만이 아는 음란한 빛을 띠고 있을 것 같았다.

어린 시절, 눈 내린 정원에 매료되었었다. 그것을 흙발로 짓밟았다. 그것이 정복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그 눈을 녹이는 자야말로, 그 정원을 가질 자격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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