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거 (14/15)

핀레이 엑스타인의 하루는 제법 이른 시간부터 시작된다. 

아침 운동이 첫 번째 일과. 그 이후에는 샤워, 식사로 이어진다. 연상의 애인과는 달리 스스로 신문을 보지는 않고 보좌관들의 간결한 보고만 듣는다. 식사를 할 때쯤에는 이미 보좌관들이 와 있기 때문에 종종 그들과 식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이제 각하께서도 세 번째 육체 교환을 생각하셔야겠습니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십니까?”

그레이엄의 말에 엑스타인이 사과를 먹으며 고개를 저었다.

“누가 육체 교환을 하나?”

엑스타인의 머릿속에 작년 검진이 떠올랐다. 아직은 괜찮지만 이제 기능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에 1∼2년 사이에 육체 교환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뭐, 괜찮겠지. 지금부터 스케줄을 비워야 1∼2년 안에 수술을 위한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 달을 통째로 비워야 하는 대수술인 만큼, 엑스타인으로서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렵다.

“수상이 여덟 번째 교환을 한다고 합니다.”

엑스타인이 씹던 사과 조각을 삼키고 사과를 내려놓았다.

사흘 전에 만났던 베도야에게서 그런 말은 듣지 못했다. 하긴 베도야는 말이 없는 편이었다.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예정이나 계획에 대해 둘은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렇지만 육체 교환이라니. 몸을 통째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 말을 해주지 않다니. 새삼스럽게 베도야가 무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나라도 아무 말 하지 않았겠지.

케번 우드는 마치 꿈처럼 달콤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베도야는 먼 곳에 있었다. 서로의 현실을 알아봐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베도야 한 사람을 제외하면 엑스타인은 여전히 문신들을 경멸했고, 베도야는 종종 무신들을 찍어 눌렀다. 현실에 대해 입에 담는 순간부터 둘은 어긋날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

“언제부터?”

하지만 수술은 한 달이나 걸린다. 베도야는 언젠가는 엑스타인에게 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한 달간 케번 우드에 오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하는 내용이니까.

“다음 주부터 한 달간입니다.”

그럼 이번 주에 만나면 이야기하겠군.

엑스타인이 다시 사과를 아삭, 베어 물었다. 좀 전까지는 분명 사과가 달았는데 왜 입안이 이렇게 쓴지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 ◈ ◈

베도야가 케번 우드에서 무인 택시를 탔을 때였다. 내내 어둡고 이를 갈듯 낮게 천둥이 울리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벼락 때문에 하늘이 번쩍거렸다. 베도야가 눈을 감았다.

5년째였다.

엑스타인과 이렇게 만난 지도 벌써 5년째. 이젠 무인 택시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몸은 안달이 난다. 달뜬 숨을 삼키려 애를 쓰며 주먹을 쥐었다. 엑스타인의 앞에 도착하면 이미 배설 기관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뒤가 질척거려 있을 것이다. 머금고 있는 딜도를 조이고 푼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이 어쩔 줄 모를 정도로 달아올라 제어가 되지 않는다. 베도야가 손을 올려 얼굴을 감쌌다. 택시 안의 보안 영상에 찍히면 곤란했다.

헐떡거리며 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비가 내리고 있었다. 택시가 서자 신용카드로 돈을 지불했다. 돈이 지불된 것을 확인되자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베도야가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시커먼 것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레이.”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앞에 서서 우산을 들이밀고 있었다.

얼마나 서 있었던 것일까?

엑스타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어두운 별장 앞, 희미한 불빛만으로는 엑스타인의 숨은 표정까지는 읽어낼 수가 없었다. 베도야가 그를 올려다보고만 있자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팔을 잡아 끌어냈다. 무지막지한 힘에 끌려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품에 안착했다. 엑스타인이 문을 닫았는지 쾅 소리가 나고 무인 택시가 멀어졌다.

“기다리고 있었어?”

알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베도야의 말에 엑스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가자. 빗소리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엑스타인이 말했다.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품속에서 의아한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별장 안으로 들어오자 정원등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인기척을 감지하고 불을 밝혀주는데도, 하나둘 단계별로 들어오는 그 불은 왠지 모르게 스산했다. 뺨에 닿는 비바람이 차갑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베도야는 생각했다.

별장 안은 훈훈했다. 베도야가 먼저 들어왔고 엑스타인이 뒤를 따라 들어왔다. 엑스타인이 먼저 온 덕분에 난방이 켜져 있었던 모양이다. 코트를 벗어 소파에 내려놓는데 뒤에서 엑스타인이 그를 끌어안았다.

“레이?”

분위기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도야가 고개를 돌려 엑스타인을 바라보았다. 밝은 불빛 아래에서도 여전히 엑스타인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엑스타인?”

엑스타인의 품은 편안하다. 베도야는 기분 좋게 그에게 기대며 눈을 감았다. 태어나서 자신을 가장 많이 때린 상대였다. 가장 많이 울리고, 괴롭히고, 추하게 만들었던 사람인데도 이토록 편하다. 배 속 깊숙한 곳까지, 영혼의 가장 추한 곳까지 까뒤집은 상대여서일까.

“몸을 교환한다며?”

엑스타인이 물었다. 낮은 목소리에 그가 우울하다는 걸 눈치채고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팔을 잡았다. 자신의 몸을 빈틈없이 끌어안고 있는 단단한 팔. 그 피부 위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튀어나온 혈관이 손가락에 눌리는 느낌이 좋았다.

“다음 주에 하려고.”

“여덟 번째였지?”

“그래.”

여덟 번쯤 되니 육체 교환도 그저 귀찮은 행사에 불과해졌다. 드물게 문제가 생기고 죽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지만, 대체로는 그저 수술일 뿐이다. 성형 수술과 비슷한 느낌으로, 눈을 뜨면 모든 것이 끝나 있다는 점에서 성형 수술보다 피수술자에게는 차라리 더 편할 수도 있는 수술이었다.

엑스타인의 손이 베도야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재킷을 벗겨 던지고, 셔츠의 단추를 풀어 내렸다. 평소에는 스스로 벗었었는데 엑스타인이 벗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흣. 베도야가 몸을 가볍게 떨었다. 엑스타인의 손가락이 유두를 강하게 짓눌러서 잔잔해졌던 쾌감이 갑자기 치솟았다. 입을 벌리고서 떨고 있으니 손가락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엑스타인의 손가락. 억세고 단단한 손가락이 혀 위를 문질렀다.

“새로운 육체라…….”

엑스타인이 중얼거렸다.

“네가 좋아하는 곳은 여기던가?”

손가락이 입안을 휘저었다. 베도야가 눈살을 찌푸린 채 엑스타인을 올려다보았다. 타액이 질질 흘러도 엑스타인은 손가락을 빼주지 않았다. 왜지? 베도야가 눈살을 찌푸렸을 때, 엑스타인이 혀의 깊숙한 곳을 문질렀다.

“아아, 여긴가. 네가 늘 내 걸 넣어서 문지르는 데가 바로 여기야?”

엑스타인은 꽤 심술궂은 남자다. 솔직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고 제멋대로에 난폭하기까지 하다. 다혈질이라면 차라리 귀엽다 해주겠지만 저런 성질에 걸맞지 않게도 냉혈한이었다. 그렇지만 엑스타인은 연애를 할 줄 알았다. 열정적으로 달려오고, 끌어내고, 화를 퍼붓고, 근사하게 웃었다.

그런데 오늘의 엑스타인은 음울하다. 평소와는 달리 우울한 심사가 얼굴 가득 퍼져 있다. 베도야가 목으로 신음하자 엑스타인이 물었다.

“좋아?”

베도야가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하는 대신 눈을 깜빡였다.

“토할 것 같은 곳을 누르는 게 좋아?”

엑스타인이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뒤늦은 질문이다. 자신이 평범하지 않은 취향이라는 걸 가장 잘 아는 사내가 이제 와 질렸다는 얼굴로 묻는 게 이상했다. 베도야는 엑스타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젖어 있는 푸른 눈이 관능을 되살렸다.

엑스타인은 비죽 웃었다. 베도야는 모르는 모양이지만, 엑스타인은 종종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다가도 베도야만 보면 다리 사이가 욱신거리곤 했다. 아마 엑스타인은 발기 부전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베도야의 이 젖은 눈에 응시당하는 것만으로도 바로 서니까.

“빨아줄까?”

엑스타인의 말에 베도야가 눈살을 찌푸린다. 뭘? 엑스타인은 늘 종잡을 수 없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심했다. 무슨 뜻인지 몰라 베도야가 올려다보고만 있자 엑스타인이 손가락을 빼내었다.

“네 거. 빨려볼래?”

베도야의 눈이 엑스타인을 훑었다.

왜 이러는 거야, 무슨 일 있었어?

물어보고 싶은 걸 참고 베도야가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사정하지 못한다는 걸 안다. 황홀하겠지만 그 뒤에는 가뜩이나 뜨거워진 이 몸이 더 미칠 것이다. 아니 하고 베도야가 고개를 저었다.

“입에 넣어줘.”

베도야의 말에 엑스타인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 그렇게 말하는 엑스타인의 얼굴은 여전히 우울했다.

나체의 두 사람의 모습이 온전히 빛에 드러나는 것은 벼락이 칠 때뿐이었다. 어둠에 갇힌 채 침대에 앉은 엑스타인이 다리를 벌렸고, 베도야가 그 다리 사이에 앉아 엑스타인의 성기를 핥았다.

엑스타인은 오늘 이상하다. 군부 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옷을 벗을 때에는 그런 생각들을 분명히 하고 있었는데 엑스타인의 성기를 맛보자 좋을 대로 되라는 기분이 들어버렸다. 하고 싶었다. 아니, 일단은 삼키고 싶었다. 비릿하고 더러운 액체를, 제대로 삼켜지지 않을 정도로 끈적거리는 것을 먹고 싶었다.

익숙한 것으로 입안을 애무한다. 입천장에 닿을 때마다 몸서리치게 좋았다. 베도야가 눈을 감고 헐떡이고 있을 때, 엑스타인이 고개를 숙였다. 귀에 입술이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심하게 깨물렸다. 읏……! 베도야가 입을 크게 벌렸다. 아니었으면 엑스타인의 것을 물어뜯었을지도 몰랐다.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것을 뱉고 고개를 들었다. 귀에서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보다는 엑스타인이 도대체 왜 이러는지가 더 중요했다. 머릿속은 여전히 쾌감으로 뜨거웠고 피를 봤는데도 불구하고 몸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베도야는 이성을 차리려 노력했다.

“레이?”

무슨 일 있었느냐고 물어봐야 답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서로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는 처지였으니까. 베도야가 손을 뻗어 엑스타인의 뺨을 감쌌다. 무슨 일이 있기에 사나운 이 남자가 이토록 우울해할까. 베도야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레이.”

“우울해.”

드물게도 엑스타인이 솔직하게 중얼거렸다. 베도야가 이유를 물어보려 했을 때였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허리를 감싸 당겨 안았다. 엑스타인이 끌어당기는 대로 침대 위로 올라온 베도야가 엑스타인을 사이에 두고 무릎 꿇은 다리를 벌렸다. 엑스타인의 손가락이 엉덩이 사이로 미끄러져 오는 것을 느끼며 베도야가 눈을 내리깐 채 가볍게 신음했을 때였다. 엑스타인의 손가락이 마개의 고리에 걸렸다고 생각한 순간, 마개가 단숨에 빠져나갔다.

히익. 베도야가 숨을 들이켜며 비명을 삼켰다. 고통인지 쾌감인지 이미 알 수 없는 감각이 머리끝까지 치달았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엉덩이를 쥐어 벌렸다.

“잠깐…… 아직.”

베도야가 말리려고 했지만 엑스타인은 묵묵히 베도야의 입구에 자신의 것을 댈 뿐이었다. 잠깐만. 베도야가 엑스타인에게 애원이라도 하려던 순간, 엑스타인이 무도한 손길로 베도야의 허리를 잡고 내리눌렀다.

“레이, 잠…… 읏, 잠깐, 아직……!”

베도야가 허리에 힘을 주고 엑스타인의 손길을 버티려 했다. 몇 초는 버틸 수 있었지만 엑스타인의 성기가 입구를 밀고 들어오는 순간 힘이 빠졌다. 엑스타인이 그대로 내리눌렀다. 베도야의 금발이 풀썩이고 삼키지 못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베도야는 어떻게든 몸에서 힘을 빼려고 했다. 찢어졌을지도 모른다. 지독하게 아팠다. 빡빡했을 리가 없는데도 젖지도 않은 곳을 그대로 찢어발기며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헐떡거리며 엑스타인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있자니 엑스타인의 손이 베도야의 주름을 매만졌다.

“멀쩡하군.”

엑스타인의 말에 베도야가 참지 못하고 그 어깨를 물었다. 콱, 물린 어깨가 아파서 엑스타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깨무는 정도의 귀여운 게 아니었다. 베도야는 이를 세워 물었고 피가 배어 나와도 박은 이를 빼주지 않았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머리를 잡고 어깨로 더 밀어붙였다.

“더 물어.”

그렇게 말하며 엑스타인이 허리를 움직였다.

눈앞이 새카매질 정도로 난폭한 움직임이었다. 마구잡이로 허리를 쳐올리는 걸로 모자라 베도야의 몸을 들어 찍어 내렸다.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어깨를 문 채 울음소리를 삼켰다. 내장이 울렁거렸다. 위로 출렁거리고 밑으로 쏠리고, 흉기 같은 성기로 찔려 올라간다. 토할 거 같았다. 베도야가 어느 순간 엑스타인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베도야의 머리가 힘없이 흔들렸다.

어느새 몸이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베도야가 넋을 잃은 눈을 하고 헐떡이자 엑스타인이 픽 웃었다.

“나도 상종 못 할 개새끼야.”

“…….”

“네가 아프니까 기분이 좋아졌거든.”

베도야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질렸다는 시선을 주자 엑스타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너도 구제 못 할 변태지.”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다리를 들어 올렸다. 다리만이 아니라 아예 몸을 반으로 접을 듯이 허리까지 올렸다. 음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동그랗게 벌어진 데다 입구가 솟아 음탕하기 짝이 없는 항문과 젖어서 번들거리는 회음부, 단단히 선 성기가 모두 보이는 자세였다.

“아파서 좋아하고 있잖아.”

엑스타인이 비웃었다.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스스로 다리를 더 벌려 보였다. 스스로 다리를 안아 벌리는 치태가 대단했다. 닳아빠진 창녀처럼 퇴폐적인 모습으로 베도야가 말했다.

“와.”

엑스타인의 얼굴에서 웃음이 천천히 사라져간다. 유혹치고는 단순한 제스처인데도 등골이 오싹했다. 베도야가 젖은 입술로 덧붙였다.

“입은 좀 닥치고.”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허리를 잡아 끌어당겼다. 침대에 닿은 등이 죽 끌려가고, 단숨에 처박혔다. 창으로 꿰뚫린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는 베도야의 몸을 더 가까이 당기며 엑스타인이 으르렁거렸다.

“힘 빼, 키아란. 찢어버리기 전에.”

이미 겁먹은 몸은 부드러워지지가 않았다. 베도야가 다리로 엑스타인의 허리를 감싸 끌어당겼다. 엑스타인이 뜨거운 숨을 토했다. 베도야가 그저 다리로 허리를 감아 당기는 것만으로도 사정에 오를 것 같았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늘 왜 이래?”

“……내, 가…… 묻고 싶은…….”

베도야가 헐떡거렸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떨리는 입술을 보다 피가 달라붙어 있는 귀로 시선을 올렸다. 보기 좋은 귀가 피로 엉망이었다. 엑스타인이 혀를 내밀어 베도야의 귀를 핥았다. 말라붙은 피가 녹아 입안으로 들어왔다. 그 비릿한 맛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제야 기분이 좀 풀렸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유두를 지분거렸다. 꼬집고 비틀고 유륜을 눌러가며 희롱했다. 익숙한 손이 주는 쾌락에 몸이 서서히 풀려간다. 그렇게 노력해도 부드러워지지 않던 몸이, 엑스타인의 손에는 쉽게도 흐물흐물해졌다.

“그렇게 좋아?”

“……좋, 흣! 좋아!”

“구멍이 착착 달라붙네, 응? 허리를 비틀어 짜는 꼴이 일품이야. 이렇게 게걸스럽게 자지를 먹는 것도 재주지.”

“읏, 으읏! 아, 거기, 읏…….”

“좋아? 머리끝까지 좋아?”

뭘 물어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도 알 수가 없다. 베도야는 눈을 감은 채 좋다고 중얼거렸다.

좋아, 좋다고. 거기도, 여기도, 다 좋다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교성을 질러가며 대답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엑스타인이 허릿짓을 멈춰버렸다. 아픔은 이미 사라지고 쾌감만 잔뜩 남은 몸은 안달이 났고, 베도야는 엑스타인에게 뭐든지 다 줄 것처럼 애원하며 움직여달라고 간청했다. 엑스타인의 허리를 감싼 다리를 조이고, 엉덩이를 움직였다.

엑스타인이 어느 순간 허리를 거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참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못된 남자의 희롱에 펑펑 울면서 베도야는 엑스타인의 허리에 매달리고 엉덩이를 흔들었다. 이번에도 엑스타인이 멈춘다면 죽어버릴 것 같았다.

절정의 직전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베도야가 소리를 질렀다. 조금만 더하면 갈 수 있다. 엑스타인이 찔러주는 거기를, 좀 더 세게, 난폭하게 찔러주면 갈 수 있을 듯했다. 아아, 뿌려. 뿌려줘. 베도야가 이성을 잃고 울었다. 엑스타인이 줬던 아픔과 괴로움이 또 쾌락으로 변해 부풀었다. 하고 싶었다. 성기의 구멍이 벌름거리고 있었다. 엑스타인이 거의 끝까지 허리를 뺐다.

“또, 이렇게, 해줄 테니까.”

푹, 가장 깊은 곳까지 단번에 찔렸다. 베도야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서리를 쳤다. 몸을 빳빳하게 굳히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몸이 반으로 접혀 있던 탓에 정액이 스스로의 배에 떨어졌다. 엑스타인이 가장 안쪽까지 찌른 상태로 사정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천국을 헤매는 듯 발밑이 어지러웠다.

“……잊지 말고, 와…….”

잔잔히 허리를 움직이며 사정하는 엑스타인이 조용히 속삭여왔다. 뜨거운 액체가 벌컥벌컥 쏟아지며 느끼는 곳을 칠 때마다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베도야가 힘을 주어 엑스타인을 끌어안았다. 그러지 않으면 부서질 것 같았다. 어째서 절정은 이토록 절망을 닮았을까. 베도야는 엑스타인에게 달라붙으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엑스타인이 베도야를 부둥켜안았다.

“키아란.”

격렬한 섹스를 한 탓일까. 최근 일 때문에 수면이 부족했던 베도야는 대책 없이 잠으로 끌려들어갔다. 파도가 치는 듯한 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키아란, 키아란, 키아……. 끊임없는 소리에도 잠에서 깨어날 수 없었다.

평소의 주말 아침보다 더 조용한 아침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엑스타인은 운동을 하지 않고 곧바로 아침 식탁을 차렸다. 베도야는 엑스타인에게 뭘 마실 거냐고 묻지 않고 제멋대로 커피를 끓였다.

식탁에 앉은 베도야가 접시를 내려다보고 흠칫했다. 둥근 접시에는 베도야가 그나마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모든 음식이 담겨 있었다. 어제 심했다는 건 아는 모양이군. 베도야가 흘끗 시선을 들었다.

엑스타인은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덕분에 드러난 어깨에는 커다란 상처가 있었다. 씻으면서 본 자신의 귀에 있는 상처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세게 문 것으로도 부족해서 물어뜯었었는지 상처가 지독했다.

“어깨 치료 안 했어?”

“아, 뭐.”

안 했다는 뜻이다.

단단한 근육으로 무장된 몸이라고 해도 꽤 아파 보여서 베도야는 미간을 찌푸렸다. 일어났을 때 자신의 귀도, 항문도 전부 치료가 되어 있었다. 하다못해 세게 잡아 멍이 든 곳까지도 빠짐없이 연고를 발라놓았으면서 본인의 어깨에는 아무런 치료도 안 했다는 게 어이가 없어 베도야가 입을 열었다.

“대답을 해줄 수 없다면 안 하는 걸로 좋아. ……무슨 일 있었어?”

어제부터 오늘까지.

감정적이라기보다는 반쯤 미친 것처럼 구는 이유가 뭔지 들어나 보고 싶었다.

엑스타인이 자신의 어깨로 시선을 돌렸다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별거 아냐.”

“네 어깨가? 아니면 너에게 있었던 일이?”

베도야가 스크램블드에그를 조금 떠서 먹으며 물었다. 다른 때보다 조금 더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엑스타인이 포크를 내려놓았다. 입맛이 없었다. 포크를 내려놓는 엑스타인의 손을 유심히 보던 베도야가 다시 물었다.

“엑스타인.”

언제는 엑스타인이고 언제는 레이……. 무슨 기준으로 부르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 베도야 본인도 모를 것이다.

엑스타인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베도야의 시선을 피했다.

“레이.”

“우울했을 뿐이야.”

엑스타인의 입이 열리자 베도야가 더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몸이 사라지는 게 날 우울하게 만들어.”

“내가 죽기라도 하는 듯한 말투군.”

베도야의 말에 엑스타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할 말이 없어서인지 말을 하기 싫어서인지, 그는 커피가 물이라도 되는 듯 벌컥벌컥 마셨다. 꼿꼿한 자세의 베도야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자 엑스타인이 빈 머그잔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았다.

“난 네 몸을 5년이나 만났어. 5년이나 사귄 친구가 사라진다는데 이 정도 애도는 괜찮잖아. 어린애 보듯 하지 마.”

엑스타인의 말에 베도야는 아아 하고 중얼거렸다. 이 몸은 엑스타인의 흔적이 잔뜩 남아 있었다.

의외로 감성적이라니까.

베도야는 말없이 식사를 계속했다. 엑스타인의 시선이 따갑다. 아무 말이나 좀 해보라는 시선이다.

베도야도 포크를 내려놓고 머그잔을 들었다. 커피가 평소보다 달콤한 것 같았다. 오늘따라 잘 내린 건지, 아니면 자신의 기분이 그런 건지 알 수 없다.

여덟 번째의 육체 교환.

일곱 개의 육체가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세상은 좋아졌다. 더 이상 사람은 노환으로 죽지 않는다. 뇌만 살릴 수 있다면, 그리고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면 육체는 얼마든지 교환할 수 있다. 빈부의 격차는 더 이상 삶의 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불멸과 일회성을 가르는 신의 의지가 되었다.

교환된 육체는 파기된다. 육체의 파기란 땅에 묻거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불에 태우는 근엄한 것이 아니다. 바이오메디컬 폐기물로 분리되어 수집되고,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수많은 톱날에 갈려 가루가 되어 소각된다. 거기에는 어떤 존엄성도 남아 있지 않다.

그 육체에 대해 애도하는 자는 이제껏 아무도 없었다. 베도야 스스로도 자신의 육체가 그런 꼴로 사라지는 걸 아쉽거나 슬퍼한 적이 없었다.

“넌 가끔 미친 거 같아.”

베도야가 진지하게 말했고 엑스타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예전에도 정신 감정을 받아보라느니 했던 베도야다. 무심하고 잔인한 애인에게 말없이 미간을 좁힌 엑스타인을 향해 하얀 팔이 다가왔다. 베도야의 손이 엑스타인의 머리칼을 넘겨주었다. 어색한 손짓이었다.

엑스타인의 시선이 흘끗 베도야를 향했다.

“너도 정상은 아니잖아.”

베도야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여기에 올 때마다 발정한 몸을 하고 눈이 젖어서 허리를 뒤틀며 오잖아.”

엑스타인이 사납게 말했다.

“창녀보다 음탕한 얼굴을 하고 질질 싸며 오는 주제에 나만 미쳤다는 듯이 굴지 마.”

“네 덕분이지.”

베도야가 심상히 대꾸했다. 한 번 더 덧붙인다.

“나를 그렇게 만든 건 너야.”

베도야의 말에 엑스타인의 입술이 비죽 올라갔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것도 너야. 네가, 나를 이런 놈으로 만들었어.”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둘의 관계는 엑스타인의 협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지나치게 구는 엑스타인에게 베도야가 처음부터 상황을 짚어주려고 했을 때였다. 엑스타인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런데, 너는 이제 이 몸이 아니게 된다고? 하.”

베도야의 파란 눈이 크게 뜨였다. 엑스타인이 분을 못 참는 목소리로 이를 갈았다.

“너만, 또,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엑스타인의 손이 베도야의 목을 움켜쥐었다. 베도야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엑스타인은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지는 않았다. 그저 그 목을 붙잡고만 있을 뿐이었다. 억울하고 분해서 미칠 것 같은 얼굴이 아이러니하게도 슬퍼 보였다.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손목을 붙잡았다.

“처음으로 돌아간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

“레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정신적으로 몰린 건지 알 수가 없다.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애칭을 한 번 더 불렀다. 레이. 그러자 엑스타인이 천천히 손을 떼었다.

“너는.”

엑스타인의 목소리가 낮게 잠겨 있었다. 베도야가 자신의 목을 어루만지면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너는 몸만 미쳤어.”

베도야는 엑스타인을 바라보려 했지만 엑스타인이 일어서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엑스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렸다.

“나는 머리도 몸도 미쳤고.”

뒷모습은 평소와 같이 단단하고 위협적인데 그 목소리는 우울하기 짝이 없다.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뒷모습을 보며 물었다.

“내가 새로운 몸을 갖게 된 다음이 두려운 거야?”

엑스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식당을 나섰다. 성큼성큼 사라지는 당당한 뒷모습이 어쩐지 도망치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닫히는 현관문 소리를 들으며 베도야가 시선을 내렸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잔뜩 담긴 접시가 화사했다.

베도야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조금씩 커졌다.

엑스타인 너는 틀렸어. 나는 머리도 미쳤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너의 이런 난폭한 행동을 귀엽다고 생각할 리가 없잖아.

베도야는 웃으면서 식사를 재개했다. 엑스타인은 그가 좋아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조리 만들었고 그 양은 베도야가 평소 먹는 것의 두 배는 되었다. 그러나 그는 천천히 그 음식을 다 먹었다. 눈앞에는 애인 대신 빈 머그잔 하나만 놓여 있는 외로운 식사였다. 하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다. 베도야는 소년처럼 키들거리면서 끝까지 식사를 마쳤다.

◈ ◈ ◈

다음 달, 엑스타인은 부마인 대공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그는 그 선물을 갖다 버리라고 했다. 그러나 보좌관인 그레이엄이 부마의 비서가 직접 들고 와서 ‘중요한 물건’이라고 했다며 뜯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보좌관인 할슈버트와는 달리 그레이엄은 자신이 주장하는 바는 모기만 한 목소리로도 끝까지 주장하는 타입이었다. 엑스타인이 귀찮은 듯 그레이엄의 앞에서 포장을 북북 찢어 바닥에 던졌다.

베도야는 그 뒤로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사실 엑스타인은 별장을 나와서는 그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혹시 베도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정말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그 자리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그 자리를 떠나면 베도야와는 한참을 만날 수 없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새 몸을 가진 베도야와 만나게 된다. 질질 싸는 구멍도, 도톰한 유두도 없는 그 몸을.

괜히 센티해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정말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화를 내면서도, 엑스타인은 꽤 오랫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베도야는 나오지 않았다. 베도야처럼 단정하고 고요한 정원에서 서 있다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아서 진저리를 치며 나왔다.

하여간 무심하다니까.

엑스타인은 박스를 열려다 말고 눈살을 찌푸렸다. 박스에는 보안 장치가 되어 있었다. 본인이 아니면 못 여는 박스. 가뜩이나 베도야를 못 만나 초조한 기분으로 가득한데 멋대로 보내는 주제에 보안 장치가 된 선물이라니. 확 던져버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엑스타인은 잠자코 스캔 장치에 엄지를 갖다대고 눌렀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걸 보냈는지 확인해주겠다는 심사였다.

상자가 열리자 우단으로 감싸인 선물이 보였다.

열쇠 정도의 크기일까. 요즘 열쇠를 쓸 일이 뭐가 있지? 익명 금고?

엑스타인이 입술을 올렸다.

국책 사업에 참견했다 망신을 당한 이후, 부마는 조용히 살고 있었다.

황제의 엄중한 감시를 받으며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고 있지만 욕구 불만이다 이건가? 아무래도 권력욕이 충족이 안 되시나?

엑스타인은 비웃으며 카드를 보는 둥 마는 둥 내려놓고 물건을 싼 우단을 풀었다.

물건을 보는 순간 엑스타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이게? 엑스타인의 표정을 본 그레이엄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각하?”

처음에 열쇠인 줄 알았던 물건은 자세히 보니 뼈였다. 하얀 뼈가 곱게 비단 위에 놓여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엑스타인은 읽지 않고 책상에 던진 카드를 다시 들었다. 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카드는 다시 보니 친필로 쓰여 있었다. 우아하다기보다는 날카롭고 힘이 들어간, 남자다운 필체였다.

「친애하는 레이에게.」

엑스타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너의 오랜 친구를 애도하며, 키아란.」

엑스타인이 다시 뼈를 들었다. 자세히 보니 그 뼈는 손가락뼈였다. 어느 손가락인지 가늠해보던 엑스타인이 피식 웃었다.

“각하?”

화를 내다 어이없어하다 이제는 웃음을 터뜨리는 상관을, 그레이엄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엑스타인은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베도야가 보내온 왼손 약지의 뼈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