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장, 재회 (15/15)

“늘, 늘, 일을 만드는 건 무신 쪽이오!” 

“지금 말 다 하셨소이까?”

“아직 다 못 했소이다. 전쟁을 일으킬 셈이오? 하,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여론을 모아보겠다 이거요?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식으로 생각 없이 일을 진행할 수가 있소! 당신들 때문에 얼마나 큰 외교 문제가 생겼는지, 눈이 있으면 똑바로 보란 말이오!”

“이쪽도 할 말이 없어서 안 하는 줄 아시나 본데, 그 외교 문제라는 걸 누가 처음에 만들었는지 생각이나 나시오? 당신들이 억지를 써서 임명한 대사가……!”

오랜만에 보는 격렬한 대립이었다. 베도야는 시선으로 회의를 따라가며 머릿속으로 계속 보고를 받았다. 그의 머릿속에 매달린 여섯 개의 채널이 끊임없이 신속한 정보를 전달한다. 테이블에 매립되어 있는 화면에서 끊임없이 보고서가 올라온다. 베도야는 그 보고서에 사인하며 흘끗 시선을 들었다.

두 달 만에 보는 엑스타인이었다. 평소와 똑같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군복에 감싸인 단단한 몸. 냉혹한 표정과 사나운 시선. 오만하게 쳐든 턱. 베도야는 자연스럽게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문신과 무신이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각하, 엑스타인의 비서인 그레이엄 대령의 보고 채널을 잡았습니다. 엑스타인과는 달리 나름대로 얌전한 인물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도청할까요?』

『그만둬.』

『각하, 기회가 아깝습니다.』

테이버가 아쉬움을 떨쳐내지 못한 듯 한 번 더 권했다.

엑스타인은 동물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어 도청하지 못했지만 그레이엄이라면 문제가 없지 않겠느냐는 말투에선 적의마저 느껴진다. 이번 대립의 원인이 되는 사건 때문이다.

베도야가 다른 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만둬. 이렇게 예민한 때에 불씨를 만들지 마라.』

『……알겠습니다.』

내키지 않는 투로 테이버가 대답했다.

머릿속으로 다른 보고가 들어오고 있었다. 지금 무신과 함께 소리를 높여가며 고함을 지르고 있는 남자로부터였다.

『각하, 더 압박할까요?』

이성을 잃은 듯이 고함을 지르고, 탁자를 내리치고, 서류를 집어 던지는 남자의 말투는 뜻밖에도 고요했다.

『조금 더.』

남자에게 연기를 요구한 베도야가 지시했다. 그러자 남자가 벌떡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이래서 무신이라는 것들은!”

그 목소리에 무신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비쩍 곯은 놈이 죽어봐야 정신 차리겠냐!”

개싸움이 따로 없었다. 그 싸움을 은밀히 조정하면서, 베도야는 또 수많은 결재를 해치우고 있었다. 문득 시스템 시야에 새로운 채널이 대기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떴다. 최고 보안 수준의 사생활 채널이다. 베도야가 채널을 열자 늘 그렇듯 짧은 메시지가 날아왔다.

【오늘 밤은?】

【이르게는 못 가겠지만 오늘 밤 안에는 갈 수 있어.】

【그럼 오늘 밤에, 케번 우드에서.】

베도야가 엑스타인에게 시선을 주자 엑스타인의 입술이 조금 움직였다. 옅은 미소는 한순간 사라졌고, 베도야와 엑스타인은 그 이후 단 한 번도 시선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들이 각자 다른 일을 하는 동안 문신과 무신들의 언쟁은 더욱 격렬해졌다.

◈ ◈ ◈

베도야는 언제나 무인 택시를 이용했다.

엑스타인은 한 번 자신이 무인 택시를 이용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베도야의 별장은 철저한 비밀에 싸여 있었고, 엑스타인의 부하들은 그가 매주 찾아오는 이 별장의 주인이 웬 해커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러니 엑스타인은 여기에 오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지만 정작 주인인 베도야는 늘 케번 우드의 어딘가에서 무인 택시를 이용해 자신의 별장에 왔다. 아마 엑스타인의 일행과 마주치는 걸 염려해서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말하자 베도야가 어깨를 으쓱였다. 난 이게 편해. 그 말이 끝이었다.

어딘가에 내려서 무인 택시를 이용하는 덕에 베도야는 대체로 엑스타인보다 늦게 왔다. 더욱이 오늘 베도야는 일 때문에 일찍 오는 건 고사하고 자정에 가까운 시각에야 겨우 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엑스타인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엑스타인?”

베도야가 들어서며 엑스타인을 불렀다.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없자 믿을 수 없게도 조금 쓸쓸해졌다. 그는 재킷을 벗어 소파에 내려놓으며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엑스타인?”

엑스타인이 없었다. 역시 아직 오지 않았나? 베도야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익숙하게 커피를 끓였다. 그때 엑스타인이 현관문이 아닌 온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생각보다 늦었군.”

엑스타인의 말에 베도야가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커피 마실래?”

“아니.”

엑스타인이 성큼성큼 다가와 불을 껐다.

베도야가 그를 돌아보는 순간 엑스타인이 다가왔다. 입술이 겹쳐지는 순간 베도야가 팔을 들어 엑스타인의 목에 감았다. 느릿한 키스에 조금씩 열이 올랐다. 농후하던 키스는 어느새 게걸스러운 것으로 변했다. 엑스타인이 파고들었다. 입안에 닿지 않은 곳이 한 군데라도 있다면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몸이 뒤로 밀렸다. 어느새 싱크대에 몰린 채 입을 맞췄다.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혀를 감아올렸다. 엑스타인이 눈을 내리깔았다.

어둠과 적막이 겹쳐 공기가 무거웠다. 물속에 잠긴 것처럼 답답한 공기가 더욱 흥분을 부추겼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셔츠를 풀었다. 베도야의 눈이 흐릿하게 움직였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남자의 가슴이었다. 별거 없었다. 예전의 베도야의 가슴이 아니었다. 갈색의 도톰한 유두도, 살짝 부푼 듯한 유륜도 없었다. 엑스타인이 베도야를 침대에 밀어뜨리고 그 위를 차지했다. 그가 사납게 베도야의 유두를 깨물었다.

“아파.”

베도야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엑스타인의 입술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베도야는 눈살을 찌푸리며 엑스타인의 머리칼에 작게 입을 맞췄다. 머릿속은 여전히 뜨거워지고 있는데 몸만은 그렇지 못했다. 처음 엑스타인과 몸을 섞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에도 이랬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참이나 애무를 받은 끝에야 몸이 조금씩 더워졌다.

“내일부터는 클립이라도 끼워놓을까?”

엑스타인의 입술이 목에 달라붙었다. 다정한 목소리로 잔인한 계획을 늘어놓았다.

“클립을 달고, 구멍도 다시 개조하고. 이제 한 50년은 이 몸으로 살겠지? 재미있어지겠군.”

말에 흥분한 베도야가 어깨를 부르르 떠는 걸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엑스타인이 몸을 일으켰다. 다리 사이에 베도야를 가두고 군복 셔츠를 벗었다. 베도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엑스타인의 목에서 뭔가가 흔들리고 있었다. 목걸이인가. 조명이라고는 창 밖에서 비추는 정원등밖에 없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도 목걸이처럼 보였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벗겨냈다. 어린애의 옷을 벗기는 것처럼 손쉽게 벗긴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다리를 벌리고 피식 웃었다. 아직 제대로 흥분하지 않는 걸 보면서 엑스타인이 가볍게 입술을 훑었다.

“예전의 너에겐 할 수 없었던 걸 해볼까?”

천천히 엑스타인의 얼굴이 내려온다. 베도야의 눈이 크게 뜨였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성기를 가볍게 혀로 훑고 깊게 물었다. 베도야에게서 늘 봉사를 받는 입장이었던 주제에, 엑스타인은 몹시 능숙했다. 음탕한 애무에 베도야가 팔을 어디 둬야 할지 모르고 허공에서 떨다가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귓가를 무섭게 울렸다. 평소와는 달리 쾌감에 익숙하지 못한 몸은 구음만으로 이미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거 말이야.”

엑스타인이 베도야가 절정의 문턱에 올랐을 때 머리를 물리고 말했다.

“네가 평소에 하는 방식이야.”

그리고 엑스타인의 입안으로 다시 성기가 빨려 들어갔다. 베도야의 입에서 낯익은 교성이 흘렀다.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어깨를 잡고 몸을 뒤틀었다. 베도야의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엑스타인의 어깨 위에 있는 흉터를 거세게 긁으면서 손가락이 시트 위로 떨어졌다.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손을 잡아 깍지를 끼며 더욱 강하게 그의 것을 빨아들였다.

◈ ◈ ◈

베도야가 일어났을 때 엑스타인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같이 누워 있다가 같이 샤워를 하고는 했는데 의외로운 일이었다. 베도야가 침실을 좀 둘러보다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는 내내 베도야는 어젯밤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제 베도야는 엑스타인의 입에다 방출했고, 엑스타인 또한 베도야의 입으로 절정에 달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흥분이 되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울었다. 도저히 뒤로 삽입할 수는 없었지만 오래 걸리지 않겠다며 엑스타인이 웃었다. 그동안은 허리가 빠질 때까지 빨아주겠다는 얼굴이 몹시 얄미웠다.

대충 머리를 닦고 샤워 가운을 입은 채 식당으로 향하는 길, 거실에 앉아 있던 엑스타인이 “늦었네”라고 말을 걸었다. 마치 시간 약속이라도 했었다는 투였다. 베도야가 말없이 머리만 닦자 엑스타인이 일어섰다.

“가자.”

어디를?

엑스타인은 일찍 일어났던 모양인지 머리가 이미 말라 있었다. 카키색 티셔츠에 작업복 바지를 입은 채였다. 베도야가 바지에 말라붙은 흙을 가만히 내려다보자 엑스타인이 손을 내밀었다.

“가자고.”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손을 잡자마자 엑스타인이 성큼성큼 걸었다. 온실을 지나친 엑스타인이 밖으로 나가려 했다. 새벽에 비라도 왔었는지 바닥이 젖어 있었는데 실내 슬리퍼를 신고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베도야가 다리에 힘을 주었다.

“왜?”

엑스타인이 휙 돌아보았다.

어딘가 들뜬 듯한 얼굴이었다.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런 기색이 느껴졌다. 이런 애송이다운 면이 참 귀엽다고 생각하면서도 베도야는 전혀 얼굴에 드러내지 않고 뒤로 물러설 뿐이었다.

“복장이 적절하지 못해서.”

베도야의 말에 엑스타인이 고개를 내렸다. 베도야의 하얀 슬리퍼를 본 엑스타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베도야를 그대로 들어 올렸다. 엑스타인의 어깨에 짐처럼 걸쳐진 베도야가 “엑스타인!” 하고 낮게 소리쳤지만 엑스타인은 코웃음만 쳤다.

산책로를 지나면 나오는 호숫가까지 도착하자 베도야가 말했다.

“알았어, 걸을 테니까.”

“글쎄? 이 정도면 적절한 이동 수단이 되는 거 같은데.”

하여간 심술궂기는.

베도야는 엑스타인의 어깨 위에서 난감한 나머지 입술을 깨물었다. 장신인 엑스타인의 어깨 위에 매달려 있자니 속이 다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게다가 엑스타인은 자신을 한쪽 어깨에 매달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걷고 있었다. 어디까지 갈 건지는 몰라도 이대로 그 목적지까지 향하고도 남을 남자였다.

“엑스타인. ……레이. 알았다고. 그냥 걸을 테니까 내려놔.”

베도야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제발. 그제야 엑스타인이 베도야를 내려주었다. 호숫가의 선착장에 내리는 순간 발에서 철퍽 하는 소리가 났다. 시선을 내리자 새벽에 내린 비로 빗물이 고여 있는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발이 거기에 빠진 것도.

베도야가 어깨를 한 번 가볍게 털고 목욕 가운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목욕 가운 차림으로 선착장에 나오는 날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연애란 사람에게 여러 경험을 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며 베도야는 젖은 슬리퍼를 벗고 맨발로 선착장을 걸었다. 짙은 회색빛 나무 위를 맨발로 걷는 베도야의 모습이 지나치게 관능적이라 엑스타인은 가볍게 혀를 찼다. 베도야의 몸이 예전의 것이었다면 그는 여기서 베도야를 눕히고 자신의 성기를 들이밀었을 것이다. 하지만 베도야는 현재 그런 유희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엑스타인은 치솟으려는 성감을 고개를 저어 털어냈다.

“이런 배가 있었어?”

베도야가 의아한 듯 물었다. 엑스타인과 만나기 전에는 이 별장에 온 적이 거의 없었고, 엑스타인과 만난 이후에는 엑스타인과 지내느라 호숫가까지 올 여유가 없었다. 이 별장이 호숫가에 접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선착장은 처음 오는 곳이었다.

“조금 모습이 바뀌긴 했지만, 네 배인 건 사실이야.”

“네가 바꾼 거야?”

엑스타인이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들뜨게 한 건 이 배가 아닌 모양이다. 하긴. 초라한 나룻배였다. 엑스타인이 먼저 배로 내려가 손을 내밀었다. 베도야는 그 손을 잡지 않고 나룻배로 내려왔다. 엑스타인이 뭔가를 움직였다.

부릉, 부릉. 모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갑자기 엑스타인이 베도야의 허리를 움켜 안았다.

“꽉 잡으라고. 이 배가 좀 부실해.”

돈도 많으면서 하필 당장 가라앉을 것 같은 배를 가지고 있느냐고 엑스타인이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바람과 모터 소리에 묻혀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베도야는 입을 열었다가 결국 다물었다. 악을 쓸 바에는 조금이라도 더 엑스타인에게 매달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성인 남자 둘이 간신히 앉을 수 있는 조각배에 지나친 모터를 단 덕분에 배가 위태롭게 휘청휘청하며 호수를 가로질렀다.

“무서웠어?”

엑스타인이 모터를 껐다. 그러자 소리가 작아지면서 천천히 배가 멈췄다. 베도야가 엑스타인의 품속에서 중얼거렸다. 맙소사. 그 질린 어조에도 엑스타인은 사과하기는커녕 베도야를 안아 일으켰다.

반대편 선착장인가? 베도야는 어느새 도착한 선착장에 힐끗 시선을 주었다.

“여기가 어디지?”

엑스타인이 끌어당기는 대로 선착장 위에 올라선 베도야가 멀리 보이는 저택을 응시하며 물었다.

“내 별장.”

아닌 척하면서 참으로 의기양양하게 엑스타인이 말했다.

“……네 별장?”

베도야가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목욕 가운은 호숫가를 가로지르는 동안 물에 젖어 축축했고 발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목욕 가운 차림으로 호숫가를 이동하다니.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이 모든 난리가 엑스타인의 별장을 보기 위해서였다니.

베도야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직 젖은 그의 머리칼이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자, 이제 넌 네 별장에 바로 와도 돼.”

“응?”

“나 때문에 일부러 무인 택시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야.”

베도야가 이런 하고 입을 다물었다.

엑스타인이 씩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은 소년처럼 자랑스러워하고 있어서 베도야는 곤란해졌다. 분명 자신이 수술을 받는 동안 뭔가를 해주고 싶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베도야는 남들보다 감정이 적은 편이었지만 감정에 대한 이해만은 풍부했다. 그렇지 않다면 정계라는 밀림의 왕이 되진 못했을 것이다.

“레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때 하필이면 엑스타인의 목에 걸린 것이 반짝였다. 티셔츠 안쪽에 있는 것은 베도야가 장난스럽게 보낸 약지 손가락뼈였다. 마치 식인종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뼈를 소중하게 걸고 있는 게 눈에 보이자 목이 콱 막히는 기분마저 들었다.

엑스타인이 어서 말해보라는 듯 웃고 있었다. 베도야가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가 케번 우드에서 무인 택시를 타는 건 보안 때문이야. 난 케번 우드에 여섯 개의 별장이 있고, 어느 별장으로 가는지 알리지 않기 위해서 무인 택시를 타는 거거든. 그러니까.”

엑스타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베도야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한번 토라지면 대책 없이 심술궂어지는 애인을 어떻게 달랠까 고민하던 베도야에게 엑스타인이 다가왔다.

“……고맙…….”

“닥치고 키스나 해줘. 그게 낫겠어.”

엑스타인이 사나운 어조로 말했고 베도야가 팔을 뻗었다. 입술이 닿는 순간, 엄청난 굉음이 들렸고 둘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엑스타인이 무리하게 개조한 조각배가 익사 중이었다. 엑스타인의 얼굴이 확 구겨지는 순간 베도야가 엑스타인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남의 사정도 모르고, 아침 햇살은 호수 위로 근사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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