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몬스터, 디어 히어로(Dear Monster, Dear Hero) 1
프롤로그
“나를…….”
모스의 흙투성이 손이 애처롭게 허공을 갈랐다.
제 색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엉망인 손을 내뻗은 모스의 얼굴은 머리카락이 해초처럼 뒤엉켜 흘러 내려와 있었고, 먼지 때문인지 새까맸다.
또 거적때기를 기워 입은 양 너덜너덜한, 옷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의복을 입고 있었다.
“버, 버리고 가지 마.”
모스는 그러한 흙투성이 손으로 제 앞의 화려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을 움켜쥐었다.
“제발.”
모스의 앞에 선 루인이 제 옷을 붙들고, 엉엉 울며 매달리는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루인, 그는 모든 게 모스와는 정반대인 남자였다.
모스가 그림자라면, 루인은 빛이었다.
모스에게는 손을 대는 게 꺼려질 정도의 악취와 더러움이 있었다. 이와 반면 루인은 닿는 것만으로도 그를 오염시킬 것만 같은 고귀함을 품고 있었고, 그에 걸맞은 아름답고 값비싼 옷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외양은 또 어떻고.
환한 백금발에 꿀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짙은 호박색 눈동자, 그 아래로 곧게 뻗은 콧대와 베일 것만 같은 턱선, 상냥하고 아름다운 외양을 가진 루인의 입에서는 고운 말만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내가, 왜?”
이어 벌어진 잇새로 나온 것은 달콤한 외양과는 달리 서릿발과 같은 목소리와 표정이었다.
그 싸늘한 얼굴과 말투에 루인을 붙든 모스의 턱이 딱딱 소리를 내며 떨렸다.
“나를, 나, 나를, 좋아한다고 했, 했잖아. 그러니 나를 데, 데려가려고 다시 온 거잖아…….”
바들바들 몸을 떨면서도 모스는 용케 루인을 올려다보았다.
그 애처로운 몸짓에도 루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간 뒤 루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래.”
서늘한 얼굴과 달리, 내용은 경쾌하기 그지없었다.
“널 좋아하지.”
루인은 몸을 느릿하게 숙여 제게 매달리는 모스의 턱을 움켜쥐었다.
턱 안에 쥐어진 모스의 얼굴은 무척이나 작고, 조금만 힘을 주면 툭 하고 부러질 것만 같았다.
제 손에 아양을 떨 듯, 살살 뺨을 비비는 모스의 모습을 빤히 보다, 마치 쓰다듬듯 모스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부드럽게 밀어 넣었다. 그리고.
“으윽.”
난데없이 모스의 뺨을 후려쳤다.
‘퍽’하고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격음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둔탁한 소리였다.
모스는 일순 눈앞이 핑 도는지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루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루인은 모스가 자신을 똑바로 볼 여유를 주지 않았다. 순식간에 모스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제 하반신으로 얼굴을 잡아당긴 탓이었다.
“동한다.”
얇은 옷 너머에는 모스의 작은 얼굴만 한, 루인의 커다란 중심이 잔뜩 성이 나 있었다.
“네가 더러운 꼴을 한 괴물 새끼라는 것을 알고도 이것이 동하는 것을 보면.”
그러나 발기한 성기와는 달리, 루인은 표정은 싸늘하기만 했다.
“기억은 없지만, 나는 널 좋아한 건 맞는 거 같다.”
그 말에 허공을 배회하던 녹색 눈동자가 루인에게 고정되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응, 으응. 너, 너는 날 사랑한다 했어, 사랑해, 나를 사랑해.”
루인이 내뱉은 말은 누가 보아도 결코 사랑을 담은 말이 아님에도, 모스는 ‘좋아한다’라는 단어 하나만 들은 이처럼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가, 가지 마. 나를 데려가, 나, 나를 데려가. 약속, 약속했으니까.”
모스는 더듬거리면서도, 자신을 둘러싼 많은 이들에게 겁을 먹은 듯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도 루인에게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다.
“네, 네가 나를 길들였잖아. 괴물인 나를 네가 길들였어……, 나는 더, 더 이상 혼자 살 수 없어. 나는 네가 필요해, 네가…….”
공포에 질려 덜덜 떨면서도 모스는 말을 이었다. 작은 턱이 딱딱 맞물리며 이빨 소리를 내고, 잇새로는 흐느껴 우는 소리가 연신 새어 나왔다.
너무나도 슬프고, 애절하게 우는 모스. 그러나.
“그래. 괴물아.”
루인은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네가 내게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알아내려면. 널 데리고 가야겠지.”
다정한 말투와는 달리 싸늘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모스는 루인이 자신을 황궁으로 데려간다는 사실만을 인지한 이처럼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
“고마워, 고마워.”
그다지 좋은 내용은 아님에도 모스는 고맙다고,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자신의 다리에 매달린 모스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빤히 바라보던 루인의 입술이 열렸다.
“그렇게 나를 따라가고 싶나?”
“으응, 응, 따라가고 싶어, 따라가게 해 줘…….”
모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매달렸다.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루인이 느슨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몸을 세웠다. 그는 마치 측정을 하듯, 제 다리에 매달려 바들바들 떠는 모스를 훑어보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고는 밖의 기사들에게 말했다.
“이 괴물을 넣어 갈 곳이 있나?”
“괴물을 넣어 가신다니, 그게 무슨…….”
“이 괴물은 해를 보면 녹는다. 그러니 상자에 넣어 데려가야 하지.”
기사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모스와 루인을 번갈아 보다 고개를 숙였다.
“폐하, 안타깝지만 저희가 가진 건 이 크기의 상자밖에 없습니다.”
기사가 가리킨 곳에는 식량를 넣어 온 상자인 듯, 성인이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작은 나무 상자가 있었다.
모스는 결코 큰 몸이 아니었다.
작은 체구에, 기워 입은 옷의 틈으로 보이는 속에는 살이 아닌 뼈가 두드러졌지만.
“작구나.”
그래도 애초에 사람을 넣을 용도로 만들어진 게 아닌지라, 상자는 얼핏 보기에도 모스가 들어가기엔 한참 부족했다.
루인이 툭 내뱉은 말에, 모스가 사색이 되었다.
“미, 미안해. 미안, 미안해. 내가 커서, 미안해. 버리지 마, 나 버리지 마…….”
혹여나 자신이 상자에 들어가지 않아, 루인이 자신을 버리는 게 두려운지 모스는 바들거리며 떨었고, 그의 눈동자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뚝뚝 떨어졌다.
“몸을 구기면 드,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내가 해 볼게, 내가.”
기어서 상자로 향하는 몸짓이 애달팠다.
엉금엉금 상자로 기어간 모스가 상자에 몸을 욱여넣었다. 하지만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갖은 수를 써도 다리 한쪽이 삐죽 튀어나왔다.
“시간을 주신다면 마을에서 상자를…….”
기사가 상자를 새로 구해 오겠다고 했으나, 루인은 고개를 가벼이 저으며 “그럴 시간은 없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어, 어떻게 해야, 어떻게, 흐윽.”
모스가 다리를 있는 힘을 다해 제 쪽으로 당겼지만, 쉽지 않았다.
루인은 그 애처로운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기어가는 모스의 앞을 가로막고 손을 내렸다. 마치 눈물을 닦아 줄 것처럼 내밀어지는 손에, 모스가 기대 어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으나.
그를 맞이한 것은 다정한 손이 아닌.
“잘라 줄까, 꺾어 줄까?”
검의 끝이었다.
“자, 자, 잘라?”
검이 어느새 모스의 어깨를 당장이라도 도려낼 것처럼 바짝 붙어 있었다.
가뜩이나 새하얀 모스의 얼굴이 종이처럼 더 새하얗게 질렸다.
“목을 자르는 게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데, 이는 너도 싫을 테고.”
검 끝은 새하얀 얼굴을 도려낼 것처럼 바짝 붙었다.
그러나 루인은 모스의 얼굴을 자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표정을 살짝 구기더니 검을 느릿하게 움직여 상체를 쭉 훑어 내렸다. 이어 다리 위에 검 끝이 닿고 나서야 움직임을 멈추었다.
“다리 하나만 자르면, 딱 들어갈 거 같은데.”
“하, 하지만, 나는 아픈 건, 싫, 너무 싫…….”
“왜? 어차피 다시 자라잖아.”
그러니까 상관없잖아?
루인의 여상한 말투에 매달린 모스의 표정이 순간 창백하게 질렸다.
아무리 재생 가능한 몸을 가지고 있더라도 손끝만 다쳐도 아프다고 우는 모스에게는 다리 하나가 잘리는 것은 죽음이나 다름없었다.
입술을 꾹 깨문 모스가 도리질을 쳤다. 해초 같은 머리칼 틈 사이로, 눈물이 맺힌 녹색 눈동자가 애처로웠다.
“마, 마을에서 상자를, 구해 오면…….”
“비효율적이게, 굳이 왜?”
모스가 멍하니 루인을 바라보았다.
“네 다리 하나를 잘라 내면, 모두가 편한 것을.”
루인은 모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투였다.
인간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양을 가진 루인의 얼굴에 지어진 표정은 정말 상자를 새로 구해 오는 행위 자체가 무척이나 비효율적이고 시간 낭비처럼 느껴진다는, 귀찮음이 묻어 있었다.
“아, 아…….”
설령 그게 자신이 사랑을 속삭이던 이의 다리를 도려내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루인의 말에 모스가 바들바들 떨었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루인을 따라가고 싶은데, 다리 하나를 도려내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서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하기 싫다고 하면?
다리를 잘라 내기 싫다고 하면, 루인은 모스를 가차 없이 버리고 갈 것이다.
‘또다시 혼자 남겨지는 것은 싫어.’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모스가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나 루인의 인내는 짧았고, 애초에 모스에게 선택지를 줄 생각도 없던 듯 여상히 말했다.
“하기야, 피는 귀찮다. 옷감에 묻으면 잘 지워지지도 않지.”
루인은 상자 안에서 몸을 욱여넣은 채 오들오들 떠는 모스의 앞에 느릿하게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리고 모스의 다리 한쪽을 붙잡고, 셈을 하듯 눈을 깜빡였다.
그때마다 팔랑이며 나비가 날갯짓을 하듯 루인의 속눈썹이 춤을 추었다.
이어 그의 손이 나붓하게 움직여.
“그러니 꺾지.”
단숨에 모스의 발목을 붙들었다.
“아, 안, 돼.”
모스는 제 다리를 꺾는다는 루인의 말에 새하얗게 질려 연신 도리질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공포에 질려 우는 모스를 보던 루인이 괴이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왜 울지?”
“흐윽, 아픈 건 시, 싫어, 흐으윽.”
“너는 나를 사랑하잖아.”
그리고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눈길로 모스를 보았다.
“사랑.”
루인은 그 단어를 입 안으로 곱씹듯 씹다가, 도무지 혀에 감기지 않는지 묘한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래, 너는 날 사랑하잖아?”
그런데, 이 정도도 못 해 줘?
하지만 그럼에도 모스의 공포 어린 표정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루인은 덜덜 떠는 모스를 보며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 다리 하나로 황궁에 들어올 수 있다면, 천한 괴물인 네게는 영광 아닌가?”
모스는 루인이 말을 하면 할수록 표정이 더 굳어지더니 이내 대답하기를 포기한 것 같았다.
그는 덜덜 떠는 손으로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가리며 이 모든 것이 빨리 끝나길 바랐고, 손 틈 사이로는 비명 같은 울음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흐윽, 흐으으.”
모스는 더는 부탁을 하지 않았다. 루인에게 아양을 떨지도 않았다. 그저 우는 법밖에 모르는 것처럼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날 봐.”
모스가 얼굴을 가리자, 여태 무표정이던 루인의 표정에 처음으로 금이 갔다.
그는 못마땅하다는 듯 얼굴을 가린 모스의 손을 붙들고 거기에 제 얼굴을 쭉 내밀어 얼굴을 바투 붙였다.
“흐으.”
하지만 눈물을 흘리기 바쁜 모스는 루인을 보지 않았다. 모스는 곧 다가올 고통을 예상한 이처럼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눈물을 뚝뚝 흘리기 바빴다.
모스가 자신을 보지 않는 게 불쾌한지, 루인은 인상을 찌푸린 채로 말없이 모스를 보다가 손을 내밀어 다정하게 그의 발목을 쓸었다.
“소리는 지르지 마.”
루인이 왼손으로 모스의 턱을 우악스레 움켜쥐어 저를 보게 하고, 오른손으로 그의 발목을 붙들었다.
모스가 눈을 부릅뜬 채로, 눈물을 주룩 흘렸다.
“귀 아프니까.”
모스는 다정한 말투와 달리, 차가운 어조에 멍하니 허공을 보다 이전에 루인이 숲에서 함께 지내면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게 사랑이라면, 나는 너를 사랑하는 것 같다.
무표정한 낯으로 사랑을 고하던 루인.
-나는 너를 데리고 갈 것이다.
꼭 자신을 데리고 갈 것이라 말하던 루인.
“시작하지.”
하지만 제 앞에 있는 이는 숲속에서 제게 사랑을 속삭이던 일을 전부 다 까먹고, 제 발목을 잘라 내겠다고 하고 있다.
모스는 모든 것을 포기한 낯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자 길고 길었던 모스의 삶에서 가장 찬란했던 며칠이 떠올랐다.
루인의 그림자에 숨어 지내던 나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