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괴물
아픈 건 싫다.
그래서 해가 싫다.
아침인가.
웅크려 있던 몸을 편 나는 어둠을 비집고 들어온 햇빛 한 줄기를 보고 기겁을 하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아, 안 돼.”
집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했지만 내가 지내는 이 공간은 햇빛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숲 너머 인간들이 사는 집을 모방해서 지은 이 보금자리는 숲에서 죽은 인간들의 옷을 얼기설기 붙이고 또 붙여 햇빛이 한 줄기라도 못 들어오게 막아 놓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찌 된 일인지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햇빛을 공포스럽다는 듯이 보다가 이 빛줄기가 도대체 어디로 들어온 것인지를 깨닫고 입을 벌렸다.
‘맞다. 어제 새벽.’
새벽, 늘 그렇듯 조용했어야 할 숲이 어제는 유독 소란스러웠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밖에 나가 가장 높은 나무에 올라타 둘러보니, 숲 근처를 맴도는 인간들이 무언가를 계속 찾아 헤매고 있었다. 간만에 보게 된 다수의 인간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밝아 와서 허겁지겁 돌아왔고, 급히 오느라 꼼꼼하게 천을 덮지 못했나 보다.
“어, 어떡하지?”
하지만 지금은 어제 인간들이 이 숲 주위를 맴돈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인간들은 숲을 감싼 환각초 때문에 이곳에는 절대 들어오지 못하지만, 햇빛이 내 거처에 들어온 게 문제였다.
채 가리지 못한 천 틈 사이로 들어오는 한 줄기 햇빛을 공포스럽다는 듯 보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고작 햇빛 한 줄기임에도 내 등에는 식은땀이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무서워, 무서워.”
무섭다. 해가 너무 무섭다.
몸을 웅크리고 바들바들 떨던 나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가 몸을 돌렸다.
닿으면 죽는다. 그러기에 당장이라도 천을 뒤집어써야 하는 게 맞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홀린 듯 멍하니 햇빛을 응시했다.
‘예쁘다.’
아롱거리는 불빛. 나무를 갉아 불을 내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자연스레 나타나는 빛은 정말 무서운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시간이 흘렀는지, 나와는 거리가 멀던 햇빛 한 줄기가 점점 내게로 스멀스멀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칠 걸 알면서, 이게 말도 안 되게 아플 것임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빛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치이익…….
“허억.”
곧바로 후회했지만.
고통에 일순 숨이 멈춘 것 같았다.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내 살점이 녹아내린 것이다.
“아아, 아!”
나는 언제 손가락을 내밀었냐는 듯, 재빨리 손을 품 안에 감추었다. 끙끙 앓으며 손가락을 보자, 고작 몇 초 햇빛에 닿았다고 손끝이 반쯤 촛농처럼 녹아 뼈가 보이고 있었다.
“아, 아파! 아파…….”
아픈 건 정말 싫다. 너무 싫다.
내가 왜 그랬을까. 멍청해, 나는 너무 멍청해.
후우, 후우.
이게 도움이 안 될 것임을 알지만 손가락을 향해 계속 입김을 내뱉었다.
몇 번 불자 손끝이 꾸물거리더니 살점이 붙고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언제 녹았냐는 듯 돌아온 손가락을 가만히 바라보다 햇빛을 응시했다.
닿고 싶다.
녹아내릴 것임을 알아도.
녹지 않고 햇빛에 닿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인간들은 낮에 활동한다던데, 저 파란 하늘 아래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햇빛을 쬘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하지만 죽을 때까지 모르겠지.
나는 괴물이니까.
물끄러미 햇빛을 보던 나는 내가 이곳에 처음 태어난 날을 떠올렸다.
***
삶의 시작에서 내 첫 기억은 이끼였다.
태어나자마자 눈을 뜬 곳은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더듬거리며 근처의 물가로 가니, 어둠 속에서도 선연하게 빛나는 희멀건 얼굴 위로 이끼와 다를 바가 없는 녹색 머리카락과 눈이 보였다.
“모스.”
그리하여 나는 머릿속을 떠다니는 단어 하나를 빌려 내 이름을 정했다. 갓 태어났음에도 내 기억 속에는 마치 다 자란 인간처럼 세상의 지식이라는 게 있었고, 내 이름이 무엇인지 의문을 가지자마자 떠오른 것은 모스(moss)였다.
왜 하필 많고 많은 단어 중 뜻이 이끼인 모스라고 지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나도 알 수 없었다. 원래의 내 이름인 양, 영혼에 새겨진 것처럼 나는 저 단어가 떠올랐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졌달까. 내 이름의 음절이 조금 더 길었으면 완벽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름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었고, 이름이 모스라고 해서 내가 정말 이끼인 것은 아니었다. 내 외양은 인간의 성체였고, 인간의 언어를 태어나자마자 할 수 있었으며, 부족한 지식이지만 이런저런 사물들의 이름도 알고 있었으니.
‘나는 인간이구나.’
당연히 나는 내가 인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인간의 몸임에도 그들과 섞여 지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아아!”
태어난 지 몇 시간도 안 돼서 아침을 알리는 햇빛에 몸이 반쯤 녹아내린 것이다.
그 때문에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첫 번째로 배우게 된 것은 고통이었다.
햇빛에 녹는 건 정말 아팠다.
겉살을 녹이고, 속살을 녹이고, 뼈를 녹이고, 몸의 살점들이 흘러내리는 느낌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본능적으로 햇빛을 피해 그늘로 들어가 간신히 살 수 있었지만, 조금만 더 햇빛을 쬐고 있었다면 분명 나는 흙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 나는 겁쟁이가 되었다.
처음 맛보게 된 고통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손끝만 조금 다쳐도, 그게 곧 회복될 것임을 알아도 공포에 질려 자지러지는 겁쟁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 나는 뭐지?’
그리고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내 머릿속의 누가 넣어 줬는지 모를 지식을 아무리 뒤져도 햇빛에 녹는 인간은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무슨 종족인지, 무슨 목적을 위해 태어난 것인지 아무것도 몰라도 태양은 지고 도로 뜨기를 반복했기에 깊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살아갔다.
겁이 많아 숲을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햇빛이 없는 곳을 계속해서 찾으며 태양으로부터 계속 도망쳤다.
간혹 햇빛을 피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죽으면 편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좀 했지만 조금만 아파도 질질 짜는 내가 죽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발치까지 자랐던 파란 풀들이 허리쯤으로 깡충 자라났을 무렵, 그때부터 나는 인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주, 죽었니?”
시체로.
이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저 풀이 허리까지 자란 이후로 숲에 들어온 인간들은 하나같이 전부 죽기 시작했다.
숲 밖의 삶을 겪어 보지 않아 세상을 잘 모르는 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인간들이 죽는 이 숲은 뭔가가 이상했다.
그래서 열일곱 번째 시체에서 얻은 등불을 보고 고개를 기울이다 처음으로 고민했다.
‘이 등불을 들고 밤에 마을로 가 볼까?’
낮에만 활동을 안 하면, 인간들과 섞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등불과 죽은 인간들의 품속에서 수집한 화폐를 들고 숲 근처에 있는 마을을 기웃거리다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한 여인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애들아. 이 너머의 숲은 들어가면 안 된다. 이 숲에는 괴물이 살거든.”
“괴물?”
“그래. 그곳엔 온갖 모험가들이 들어갔지만 돌아오지 않았어. 괴물이 전부 다 잡아먹었기 때문이지.”
“에이 거짓말.”
“진짜란다. 밤에 숲 근처를 보면, 간혹 괴물이 인간을 지켜보고 있다고 해. 어찌나 움직임이 빠른지. 여태 마을의 어르신들이 전부 괴물을 잡아 보려고 했지만, 그 그림자도 못 밟았다고 하더구나.”
나는 움찔했다.
“응? 괴물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음…… 목격된 바에 의하면 괴물의 옷이 실종된 이의 옷이었다고 하더구나.”
헤엑,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놀라는 가운데 나는 움찔하며 내 옷을 바라보았다.
그 말은 맞았다. 나는 죽은 인간들을 묻어 주며 그들이 걸치고 있던 옷들을 내가 입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잡아먹지는 않았는데.’
무언가를 먹지 않아도 죽지 않는 몸이니, 굳이 인간들을 먹을 의향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었다.
“게다가 저 숲은 파란색 풀, 그러니까 환각초로 둘러싸여 있어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니, 절대 가면 안 된단다.”
“파란색 풀?”
“그래. 그 근처에 가는 순간, 정신이 나가 죽는 엄청나게 무서운 풀이란다. 너무 위험해서 제거조차 못 하고 있는 풀이야.”
파란색 풀.
나는 힐끗 시선을 돌려 내가 태어난 이후 쉬지 않고 자라 어느덧 숲을 무성히 뒤덮고 있는 기다랗고 파란 풀들을 바라보았다.
‘인간들은 이걸 환각초라고 부르는구나.’
나는 멀쩡했는데. 만져도 멀쩡하고….
하지만 이 풀이 자라면 자랄수록 죽어 나가는 인간들이 더 많아지고, 숲 근처로 오는 사람들의 수가 확연하게 줄어든 것을 보아, 저기서 떠드는 여자의 말이 틀린 건 아닌 거 같았다.
“그렇구나! 괴물이구나!”
“괴물이야! 무서워! 안 갈래요!”
멍하니 환각초를 보고 있는 사이 재잘재잘 떠들던 아이들이 즐겁다는 듯, 혹은 무섭다는 듯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며 조금씩 멀어졌다.
그들이 멀어지는 모습을 빤히 보던 나는 결국 등불을 든 채로 발을 돌렸다. 그리고 그제야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었다.
‘아, 나는 괴물이구나.’
외양은 인간이지만, 인간을 잡아먹지도 않지만, 누군가를 해친 적도 없지만, 해칠 수도 없는 겁쟁이지만, 인간의 삶을 갈망하지만.
나는 햇빛에 녹으며 환각초를 만져도 미치지 않고 죽지도 않는, 인간과 섞일 수 없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이후의 삶은 뻔했다.
인간들은 구태여 환각초가 자라고, 괴물이 사는 이 숲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지만 간혹 길을 잃고 들어온 인간들이 환각초로 환각을 보다 죽고, 나는 그 시체들을 묻어 주었다.
종종 길을 잃어 죽은 인간들의 옷을 모아 기워 입으며, 엉성한 손놀림으로 보금자리를 만들었고, 낮에는 햇빛이 두려워 도망쳤지만 밤에는 몰래 인간들의 마을을 엿보았다.
물론 가끔, 아주 가끔은 이 반복적이고 따분한 일상이 너무 지루해서 죽는 상상을 하기도 했지만, 그건 생각으로 멈추었다.
햇빛에 몸을 녹여 죽으면 간단하지만, 손가락 하나만 녹아내려도 아파서 어쩔 줄을 모르는 내가 자살을 선택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세월을 의미 없이 흘려보냈다.
내가 괴물이라고 크게 외치던 아이는 결혼을 하고, 무섭다며 울던 아이가 아이를 낳고, 아이들에게 괴물 이야기를 하던 여인은 노파가 되었다.
갓 태어난 아이가 더는 아이가 아닐 무렵부터는 더는 마을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 나는 시체를 파묻으며 생각했다.
아마 나는 인간이 아닌 괴물이니, 죽지 않고 계속 살 것이다. 길잃은 인간들의 뻣뻣한 몸을 이곳에 묻어 주며, 그들의 물건을 하나둘 모아 간직하며.
누군가가 억지로 나를 햇볕으로 끌고 나가 죽여 주지 않는 이상, 괴물 모스는 이리 살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지내던 어느 날.
허리춤까지 자란 풀 사이로, 난생처음 이 숲에서 죽지 않은 아름다운 인간을 만났다.
“사, 사, 살아 있어?”
그게 너였다.
‘인간이 왜 여기 있어?’
어둠을 뚫고 내 보금자리 앞에 일자로 누워 있는 인간을 멍하니 보았다. 여태껏 인간들을 이 숲에서 보긴 보았지만, 내가 맞이한 것은 죄다 환각초에 의해 죽은 인간들뿐이었다.
환각초가 통하지 않는 나와 일부 동물들은 상관없지만, 연약한 인간들은 이 숲에 발을 들이는 순간, 제아무리 날고 기어도 끽해야 연못까지밖에 못 온다.
그런데 이 인간은 내 보금자리 근처까지 와 있었다.
‘몰랐는데.’
나는 당황해서 순간 입술을 깨물었다.
크게 발달한 청각 덕분에 숲의 먼 곳에서 나는 소리까지 모두 들을 수 있었던 나였다. 그런데 오늘은 이 인간이 여기까지 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럴 수가 있나?
‘어디에 묻지.’
자그마한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다가 사라졌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궁금하긴 해도, 그래 봤자 새로운 시체일 뿐이었다.
인간들이란 연약하기 그지없어 환각초에 대한 면역이 없으니, 풀이 눕듯 환각초만 접하면 뒤로 벌러덩 누워 다시 눈을 뜨지 못했으니까.
그러기에 당연히 이 인간 또한 시체인 줄 알고 묻으려고 했는데.
“콜록, 콜록!”
“히, 히익.”
식겁했다.
갑자기 인간이 기침을 하는 것이었다.
‘사, 살아 있어?’
그제야 인간이 숨을 쉬는 것을 깨닫고 주춤 뒤로 물러선 것도 잠시, 어느새 내 등에는 인간이 업혀 있었다.
“무, 무, 무거워.”
더럽게 무거웠다.
아마 이 숲에 온 인간들 중 가장 덩치가 큰 거 같았다. 나보다도 훨씬 큰 인간을 업고 움직이다 보니, 발치에 인간의 발이 질질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얼마나 오랫동안 인간을 옮겼을까.
‘인간이 내 보금자리에 있어.’
……그 상황의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내 보금자리에 누운 인간을 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살아 있는 인간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괜히 손을 허우적거리며 딴짓을 하다가 인간을 힐끔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다시 인간을 힐끔 보고.
묘한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 나는 인간의 옆에 바짝 붙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계속 인간의 주위를 맴돌다가 천천히 그 앞에 주저앉아 코를 들이밀어 냄새를 맡았다.
풀 속에 누워 있어서 그런가. 풀 냄새가 짙게 났다.
“이, 인간이야.”
가지런히 감은 눈은 이슬이라도 맺힌 것처럼 속눈썹이 반짝이고 있었고, 코 아래 놓인 입술 틈으로는 옅은 숨이 오가고 있었다. 머뭇거리다 손끝을 코밑으로 밀어 넣었다.
숨이 느껴졌다.
살아 있는 것의 숨, 그 느낌이 너무 생소하고 어색해 기겁하며 손을 물리다가 괜히 뻘쭘해서 주위를 둘러보며 눈치를 살폈다.
냄새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마를 덮고 있는 머리카락의 색이 반짝반짝 빛났다.
태양, 내가 제일 두려워하지만 닿고 싶은 것. 단 한 번도 제대로 닿아 본 적이 없는 햇빛. 그런 햇빛을 듬뿍 담아 두어 뚝뚝 흘러내리는 것처럼 화사한 머리카락에 홀린 듯이 손을 내밀었다.
“……아.”
손가락 틈 사이로 인간의 머리카락이 휘감겼다. 무척이나 부드럽고, ……부드러웠다.
짐승의 털과는 차원이 다른, 손가락 사이로 물처럼 흘러내리는 결 좋은 머리카락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가 이내 내 손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며 손을 뺐다.
더러웠다.
화사한 햇빛 같은 머리카락과는 달리, 내 손은 먼지로 새까맣고, 엉망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 홧홧 얼굴이 달궈지는 느낌에 허둥지둥 집을 나서 연못으로 향했다.
그리고 연못 물에 손을 담그고 벅벅 문질렀다. 희멀건 피부가 시뻘게질 때까지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나는 그렇게 벌게진 손을 하고 도로 인간의 앞에 앉았다.
“…….”
뭐지, 뭘까.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걸까. 이상한 느낌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슬그머니 인간의 코밑에 손을 밀어 넣었다.
훅, 숨이 손가락의 조글조글한 부분을 간지럽혔다. 나는 또 몸을 뒤로 휙 젖혔다, 다시 느릿하게 몸을 숙여 인간과 내 손을 번갈아 보았다.
간질간질.
방금 인간의 숨이 닿은 부분이 너무 간지러웠다.
그 옆에 몸을 웅크리고 나란히 누워서 빤히 그 얼굴을 바라보다 손을 천천히 뻗어 인간의 이마와 우뚝 솟은 코를 천천히 만져 보았다. 그리고 고집스레 다물린 입술에 닿기 전에 손을 거두었다.
아름답다.
많은 인간을 만나지 않았음에도, 본능적으로 이 자는 다른 인간들과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을 가진 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곳은 환각초에 둘러싸여 있어서 인간들이 못 오는데. 인간아, 너는 어떻게 온 거니.’
차마 입 밖으로 소리를 내 말을 걸 용기는 나지 않아 속으로 조용히 인간에게 물었다.
“…….”
당연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인간이 내 속마음을 읽을 일은 없었고, 그러기에 마음속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꿀꺽, 침을 목 안으로 삼키고 말라붙은 입가를 혀끝으로 살살 훑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너, 는 누, 누구야?”
홀로 사는 이 숲에서 누군가와 대화할 일이 없었기에 쉬어 있는 목소리와 더듬거리는 꼴이 정상과는 멀었다.
그럼에도 나는 희열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나 홀로 허공에 뱉는 무의미한 단어의 조합이 아닌, 제대로 된 의미와 의도를 가지고 말을 내뱉는 행위 자체가 이상하게 벅찼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찬 마음에 심장이 쿵쿵쿵 빠르게 뛰는 느낌이 들었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뒤로 하고,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은 양 멍하니 인간을 보았다.
이 인간은 정말 이상했다.
여기까지 살아서 들어온 것도 이상하고, 햇빛을 타래로 엮어 만든 머리카락 색도 이상하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도 이상했다.
보통 이 숲에서 발견되는 시신에는 하다못해 단검이라도 나오는데, 이 인간은 가진 게 놀라울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최대한 몸을 가볍게 만들려는 게 목적인 이처럼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없었으며 심지어 인간들이 사용하는 화폐도 없었다.
‘옷도 얇아.’
게다가 옷도 지나치게 얇았다. 내가 지내는 이 대륙은 몇백 년 전 용사가 마왕을 토벌한 대가로 마왕의 저주를 받아 늘 냉기가 가득하다고 했다.
그래서 두툼한 옷을 입는 게 일상인데, 이 인간이 입고 온 옷은 지나치게 얇았다. 겉옷도 없었고.
‘인간이 아닌가?’
혹 나와 같은 괴물인가. 그런데 이자는 너무, 지나치게 인간 같았다.
킁킁, 그때 어디서인가 풍기는 달콤한 향을 좇아 고개를 숙였다. 냄새를 따라가니 인간의 입이었다. 그리고 이어 또 인간의 손바닥에서도 똑같은 달달한 향이 났다.
‘혹시 무엇을 쥐고 있었던 것일까?’
궁금해서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 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무언가를 꽉 쥐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듯 벌건 자국과 함께 달큼한 향이 나고 있었지만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았다.
‘어디서 온 거지?’
아무리 뜯어 보아도 이 근처 사람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외지인이라고 하기에는 옷차림이 너무 가볍고, 털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조용히 눈을 감은 인간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점점 인간 쪽으로 향했다.
머리가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는데, 눈도 빛날까? 눈은 무슨 색일까?
촘촘하게 박힌 황금색 속눈썹에 홀린 듯 다가가던 나는.
“아.”
이내 불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확 뒤로 몸을 젖혔다.
분명히 인간과 나의 거리는 팔 하나를 쭉 뻗은 정도였는데, 어느새인가 인간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던 탓이다.
괜히 민망하다. 이렇게 인간과 접촉하는 게 처음이라 그런가.
나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인간에게서 등을 지고 입을 꾹 다물다가.
“…….”
힐끔, 이내 나도 모르게 인간을 또다시 곁눈질해 바라보았다. 이 자가 대체 무슨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시선이 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으응.”
이상하게 목뒤가 간지러웠다. 마치 뒤를 보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손을 뻗어 목뒤를 긁적였다. 그러다 괜히 큰 몸짓으로 팔을 허우적거리다 철퍼덕 인간의 옆에 나란히 몸을 눕히고 등을 졌다.
색색, 인간이 내쉬는 숨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마치 나무를 타고 다니는 짐승들이 내 보금자리 위를 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동물이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소리 없이 지나가지만 풀 위에 자국을 내는 것처럼.
배꼽 위를 깃털로 살살 간지럼 태우는 것만 같은, 묘한 느낌에 결국 등을 지는 것을 포기하고 뒤를 돌았다.
숨을 내쉴 때마다 살짝 올라갔다 내려가는 가슴과 달리 아무런 흔들림이 없는 얼굴. 꿀이라도 발라 놓은 것처럼 어둠 속에서도 등불에 반짝반짝 빛나는 머리카락, 속눈썹.
“…….”
나는 그렇게 해가 뜨는 것도 모르고, 날이 새도록 인간의 얼굴만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가끔 숨소리가 묘하게 불편한 것 같으면 본능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어디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인지,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천천히 인간의 배를 두드렸다.
톡, 토옥…….
인간의 몸을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이상하게 내 심장이 더 빨리 뛰는 것 같았다. 이 해로운 두드림을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참 신기하게도 일정한 속도로 배를 두드릴수록 인간의 불편했던 숨소리가 삽시간에 원래대로의 평온한 숨소리로 돌아오는데, 그때마다 기묘한 만족감이 꽃피었다.
나는 일정하게 인간의 몸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누운 채로 물었다.
“넌 뭐, 뭐야?”
인간은 답 대신, 귓바퀴를 간지럽히는 것만 같은 숨을 내쉬었다.
색색, 인간의 숨소리. 남자가 숨을 한 번 내뱉으면 하늘에 떠 있는 별이 아래로 출렁, 한 번 숨을 마시면 별이 위로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인간의 숨을 지켜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밤이 되어서 잠든 것이 마지막으로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잠을 자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내게 수면이란 본디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낮을 피하기 위해 취하는 수단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밤에 잠을 잤다.
몇 년 만의 불필요한 수면이자, 가장 인간다운 수면이었다.
***
모스의 하루란 본래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종종 숲으로 들어와서 환각초에 면역력이 없는 짐승들이 죽는 것을 구경하다가 시체를 묻어 주는 게 그의 하루였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대부분 시간을 모스는 허공을 보며 때우기 일쑤였다.
“흠, 흐음.”
인간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모스가 해초 같은 머리를 하고 구부정하게 등을 굽힌 채로 바닥을 살펴보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엉망으로 자란 머리 틈 사이로 숲의 녹음을 빼다 박은 것만 같은 아름다운 녹안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몰골이 추레해서인지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모스는 느릿하게 숲을 걸었다.
바스락, 그가 걸어갈 때마다 인간들이라면 치를 떠는 환각초가 발치에 치였지만 애초에 환각초가 통하지 않는 모스에게는 무서울 게 없었다.
그의 발은 마치 허공을 밟는 것처럼 가뿐하게 움직였다. 그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모스가 지나간 자리마다 잠시 고개를 웅크린 풀이 순식간에 다시 생기를 되찾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정도였다. 그런 환각초를 발로 해치며 나아가는 모스의 얼굴은 설렘이 가득했다.
요즘 모스의 일상은 많이 바뀌었다.
낮에는 어두컴컴한 보금자리 속에서 등불 하나를 옆에 두고 잠든 인간을 들여다보기 바빴으며 밤에는 가벼운 발길로 등불을 들고 꽃을 구하러 가기 바빴다.
물론 마왕의 저주 때문인지, 언 땅 위로 꽃이 많이 피지는 않았지만, 반나절 정도 숲을 뱅뱅 돌면 몇 송이는 따올 수 있었다. 모스는 그렇게 고생이란 고생을 다 해 가며 바구니에 한가득 꽃을 따와서.
“예, 예쁘다.”
인간에게 주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꽃을 한가득 안고 들어온 모스가 꽃을 잔뜩 두른 채 누워 있는 인간의 옆에 웅크리고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처음에 맨바닥에 눕혔던 인간은 어느새 모스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모스는 잎과 짚으로 두툼하게 만든 더미 위에 보드라운 늑대 가죽을 깐 후 인간을 눕혔고 엉성한 손길로 엮어 만든 풀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식물에 물을 주듯 종종 얼굴을 살짝 들어 입에 물을 넣어 주었다.
갓 태어난 새끼를 돌보듯, 그는 자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좋고 귀한 것들로 인간을 애지중지 돌보았다.
그 과정을 거치니, 이 공간에서 누구보다도 이질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던 인간은 어느덧 모스의 보금자리의 한 부분으로 당당하게 자리 잡았다.
“…….”
모스는 꽃에 감싸여서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남자를 한참 바라보다 말을 걸었다.
“안녕, 안녕. 나는 모스야. 나는 모스, 내 이, 이름은 모스.”
요 근래 매일 모스가 하는 짓은 바로 남자의 옆에서 제 이름을 읊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무심코 모스는 말문을 열었다가.
“나는 이곳의…….”
다물었다.
‘괴물이야.’
저 뒤에 나올 말은 저것밖에 없었던 탓이다.
모스는 순간 놀란 표정을 보였지만, 이내 울상을 짓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여태 괴물인 자신을 인간들이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떠올린 까닭이다.
“거, 거주민이야.”
그리하여 모스는 엉뚱한 단어를 꺼냈다.
낯선 단어를 꺼낸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거짓을 고한 대가일까. 그의 혀가 씹힐 뻔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이제 그, 그만하자.”
모스는 민망한 낯으로 거짓을 감추려는 이처럼 급히 말을 돌렸다. 이후에 그는 자신에 대해 하려던 말을 하지 않고, 아무 말이나 떠들었다.
오늘 날씨가 좋았고(그래 봤자 이 숲은 날씨의 변화가 없다), 이 꽃은 뭐 다…(독초였다). 그렇게 한참을 나무 위에 사는 몬스터가 먹이를 찾는 얘기를 떠들던 모스는 이내 동작을 멈추었다.
“맞아. 인간, 인간도 밥을 먹어.”
모스는 먹지 않아도 죽지 않는 몸이기에 잊었지만, 으레 평범한 인간이란 짐승처럼 끼니를 챙겨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이 여윈 거 같아.’
그 사실을 떠올린 모스는 여태껏 아무것도 먹지 않은 남자가 엄청나게 여윈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환각초를 버텨 내고 여기까지 온 강인한 인간이지만, 결국 인간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인간사를 안 들여다본 지 오래기에 이제야 그 사실을 떠올린 모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지만, 보금자리 내에 인간이 먹을 만한 제대로 된 음식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인간인 줄 알았던 모스도 머릿속 지식에 따라 어설프게 인간의 식문화를 따라 했으나, 이내 자신이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없음을 알아채고 무의미한 식사는 그만둔 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아!”
그때 무언가를 떠올린 듯, 모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물건들을 정리해 둔 곳들을 뒤적였다.
나오는 것들은 죄다 변변찮았다. 옷가지, 보석, 무기……, 전부 모스가 일일이 시체에게 수거한 것들이었다. 이상한 점을 굳이 꼽는다면, 모스가 가진 물건 중에는 작은 단도와 목걸이가 유독 많았다는 점이다.
모스는 이유를 알 수 없으나 단도와 목걸이에 집착하면서도 두려워했다. 이상하게 작은 단도와 목걸이를 보면 손이 벌벌 떨리거나 땀이 죽죽 새어 나왔다.
‘왜 이러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옷이나 보석, 무기들이 나올 때는 별 표정을 짓지 않았지만 손끝에 목걸이가 걸리기만 해도 놀라고, 단검의 검집이 닿기만 해도 시야가 핑 돌았다.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옛날에 이 두 개의 물건과 얽혔던 적은 없었는데, 정말 이상하다며 모스는 생각했다.
‘아, 찾았다.’
그러나 잡념도 잠시, 그렇게 한참을 뒤적이던 모스는 제 딴에 가장 귀한 것들을 넣어 두는, 나무로 만든 상자를 발견했다.
모스는 인간들에게서 얻어 낸 물건들 중에 작고 특이한 것들을 보물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마음에 드는 것들이 있으면 그는 저 보석함에 넣어 두었다.
달칵, 보석함을 열자 그 안에는 육포가 있었다.
숲을 찾아오는 인간들 중에는 이곳을 탐험하겠다고 오는 모험가들이 많아, 육포는 시체의 가방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육포를 어떻게 주지?’
그러나 아무리 소중하고 잘 보존된 육포라고 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인간에게 딱딱한 육포를 먹으라고 내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육포는 쓸모없었기에 음침한 소리를 내며 열렸던 모스의 보석함은 다시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렇게 한참 고민하던 모스는 돌연 무엇을 떠올린 것인지, 이어 보금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모스는 입구의 천을 걷으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축 가라앉은, 해초 같은 머리카락 틈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가 데굴 구르더니 이내 인간에게 고정되었다.
모스는 느릿하지만 사뿐한 걸음으로 인간의 옆에 앉은 다음에, 인간이 정신을 잃어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을 텐데도 제가 무엇을 구해 왔는지 설명했다.
“이, 이거는 이렇게 나무를 타는 짐승들이 즈, 즐겨 먹는 나무 열매야. 그리고 이거는 땅에 이런 세모 모양 발자국을 내는 몬스터들이 먹는…….”
투두둑, 모스의 품 안에는 색깔은 영 아름답지 않지만 달큼한 향을 풍기는 열매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열매가 아니었다. 모스는 모르지만 그가 가져온 것들은 죄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명약이라고 불리는 것들이었다.
“얘는, 밤에만 열리는 열, 매야.”
그 사실을 모르는 모스는 그저 인간들이 먹을 수 있는 열매이니, 인간의 앞에 놓아두고 마치 친구를 소개하듯, 어떤 짐승들이 이 열매를 먹는지 한참을 설명했다.
드디어 제가 가져온 것들의 소개를 마친 모스는 긴장한 얼굴로 처음 소개한 열매부터 인간의 입에 밀어 넣었다.
“……아?”
입술을 벌리고 열매를 밀어 넣는 순간, 모스는 아차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인간은 의식을 잃어서 음식을 씹어 삼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지 않는가.
“어, 어떡해. 어떡해.”
여기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한 듯, 당황한 모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산스레 주위를 맴돌았다. 빙글빙글, 인간을 중심으로 모스가 종종걸음으로 움직였다. 모스는 급히 밖을 보았다.
설상가상으로 동은 터 오고 있었다.
다시 나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는 햇빛을 막기 위해 빠르게 천을 덧대어 문을 막은 뒤, 뒤를 돌았다.
등불이 누운 인간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인간의 잇새에는 아까 모스가 넣은 열매가 있었는데, 입술에 유독 새빨간 열매의 붉은 즙이 피처럼 고여 있었다.
모스는 주춤거리며 여전히 잠든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입술 틈에 걸려 있던 즙 많은 열매를 들어 올려, 제 입에 밀어 넣었다.
“윽.”
모스에게는 열매가 역하게 느껴졌다.
인간들이 먹는 것을 입에 안 갖다 댄 지 정말 오래되었던 탓에, 새콤한 열매의 향에 모스는 반사적으로 헛구역질을 할 뻔했지만 꾸역꾸역 참아 냈다. 모스는 이로 잘근잘근 열매를 씹고는 고개를 숙였다.
“…….”
그리고 빤히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아름다운 남자는 이 모든 고군분투를 모른 채 색색 잠들어 있었다.
모스는 결연한 표정으로 얼굴을 점점 내렸다. 고개를 숙이면 숙일수록, 인간의 숨결이 모스의 콧등을 간지럽혔다.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모스가 인간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이건 누구에게도 배운 적이 없는 방법이고, 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스는 움직였다. 잘 씹힌 열매를 자신의 입에서 인간의 입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따뜻하다. 부드럽고.
처음 느껴 보는 감각에 모스가 얼빠진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멍하니 인간을 보다 그만 꿀꺽하고 채 인간에게 넘기지 못한 열매를 삼켜 버렸다.
“욱.”
모스가 몸을 뒤로 확 물리며, 목을 감쌌다.
역하다. 수십 년간 아무것도 드나들지 않았던 목구멍에 흘러 들어오는 열매의 진액이 마치 독 같았다. 역한 느낌에 어쩔 줄을 모르던 것도 잠시, 그는 인간의 얼굴을 다시 빤히 바라보았다.
“…….”
인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모스가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짓던 그때, 무언가를 발견하고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인간의 목울대가 꿀렁이며 움직이고, 입은 무언가를 씹는 것처럼 움직인 것이다.
처음 목격하는 인간의 반응에 모스가 멍하니 남자를 보았다.
“사, 살아 있어.”
살아 있었다. 가끔은 잠든 게 아니라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인간은 여전히 살아 있었고, 방금은 움직이기까지 했다.
모스가 상기된 표정으로 인간을 보았다. 몇 밤 자고 일어나면 이 인간은 언젠가 말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모스는 설렜다.
우뚝 멈추어 있던 모스의 손이 열매로 향했다.
주저함은 없었다.
“우욱.”
그는 밤새 헛구역질을 하면서 인간의 입에 숲의 열매들을 밀어 넣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한가득 따 왔던 열매는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다.
드디어 마지막 남은 열매까지 남자의 입에 넣은 모스가 고개를 느릿하게 들어 멍하니 인간을 보았다.
인간의 입술은 열매즙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런 인간에게 어미 새처럼 열매를 먹였던 모스의 입술 또한 새빨간 색이었다.
쿵쿵쿵. 남자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니 모스의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어서 터질 것만 같았다. 목구멍을 간지럽히는 것만 같은 생경한 느낌에 어쩔 줄을 몰라 하던 모스가 더듬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이, 일어날 거지?”
여태 인간이 빨리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뒷전이었는데, 모스는 이제 인간이 더는 잠들어 있지 않았으면 했다.
“일어나서, 나랑, 놀자.”
대답이 없는 인간에게 모스는 계속 말을 걸었다.
오랜 시간 말을 하지 않아, 더듬거림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꾸역꾸역 말했다.
“일어나면 나랑, 재, 재밌게 놀자.”
말은 머저리처럼 더듬어지기 일쑤였고, 발음은 형편없이 뭉개졌으며 어휘력 또한 어린아이의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수, 숲에는 재밌는 게 많아. 별을 가둔 여, 연못도 있고, 모여 사는 다, 다람쥐 동네도 있고, 그리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보금자리, 그 밖으로는 모스가 떠드는 소리가 조용히 새어 나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간들의 시선과 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제가 나고 자란 숲에 속할 수밖에 없기에 모스는 그다지 숲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달랐다.
“그 길을 쭈, 욱 따라가면 네발짐승들이 경계, 를 하는데, 이렇게 고기를 던져 줬더니 이젠 나를 조금 알아, 봐.”
누군가에게 단 한 번도 설명해 보지 못한 숲의 이야기들, 모스만 아는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이 모스의 입을 빌려 인간에게 닿았다.
모스는 제게 할 얘기를 만들어 준 숲에게 처음으로 고마웠다.
말을 하면 할수록 그는 점점 말을 더듬지 않았지만, 이야기하는 재미에 푹 빠진 모스가 그 사실을 알아챌 일은 없었다.
밤새 대답은 없었다.
그럼에도 모스는 행복하게 말을 하다 잠들었고.
“넌 누구지?”
“…커, 커억.”
눈을 제대로 뜨기도 전에 목이 졸렸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모스가 멍하니 제 앞에 바짝 붙은, 짐승의 것처럼 노란 눈을 바라보다가 고통에 발버둥 쳤다.
“아, 아으, 아, 파.”
죽지 않더라도 통각에 지나치게 예민한 몸이었다. 눈물이 맺힌 채로 공포에 질린 모스가 목이 졸린 채로 연신 도리질했다.
“살려, 줘.”
모스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제 앞에 있는 이에게 마냥 부탁했다.
제발 놓아 달라고, 제발 목을 조르는 걸 그만두라고.
그러나 남자는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을 더 주는 것에 모스가 괴로워하며 몸을 비틀었다.
“넌 누구지?”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모스의 귀에 박혔다.
아파, 아파, 아파.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변한 모스가 남자의 손목을 짧은 손톱으로 직직 그었지만, 남자의 피부에는 제대로 된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모스가 울먹이며 통통 남자의 손을 쳤다. 그제야 남자는 모스가 대답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임을 깨닫고,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허억.”
바닥으로 쓰러지듯 엎어진 모스가 제 목을 붙잡았다. 그의 얼굴에는 고통으로 인한 공포가 선연했다.
고통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모스로서는 방금 전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서운지 몸이 벌벌 떨렸지만, 남자는 그가 숨을 고를 시간도 주지 않았다. 남자가 순식간에 몸을 낮춰 모스의 턱을 우악스레 잡아챈 것이다.
모스가 울먹이며 고개를 들었다.
도통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 모스가 드디어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보게 되었고.
모스는 숨을 쉬는 것도 잊은 듯 눈을 홉뜬 채로 굳었다.
“이……, 인간아?”
그가 그간 모스가 애지중지 돌보던 인간임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눈동자 색이 무엇일까, 어떤 성격일까, 어떤 목소리를 지녔을까.’
모스는 그동안 인간이 눈을 뜬 날을 상상하고 기도했다.
눈동자 색은 저처럼 녹색이어도 좋고, 자신이 보지 못하는 파란 하늘을 담은 눈동자도 좋고, 밤을 담은 검정 눈동자도 좋고.
성격은 그저 괴물인 자신을 싫어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목소리는 타인의 목소리를 제대로 길게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말을 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며 홀로 상상하고 기도하는 과정 속에서 모스는 실실 웃고는 했다.
그러나 눈을 뜬 인간을 직면한 이 순간, 그는 온갖 궁금증 속에서 피어난 상상이 아무런 쓸모가 없음을 깨달았다.
이 남자는 모스가 차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보게 된 건 눈동자.
꿀이 흐르는 것만 같은 보석 같은 황금색 눈동자는 말문을 절로 잃게 만들어 모스는 현재의 상황도 잊고 입을 살짝 벌렸다.
인간이라고는 몇 번 접해 본 적 없는 모스는 혼자 지내면서 무언가와 눈을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숲에서 지내면서 볼 수 있는 거라고는 눈 감은 시체나, 고작해야 짐승들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모스가 제 코앞에 붙어 있는 무표정하고도 아름다운 인간의 눈동자에 홀리는 게 당연했다.
보석 같아. 반짝이는 보석, 반짝이는 햇살을 가둔 보석.
“인간, 아?”
남자는 자신의 얼굴을 넋 놓고 “인간아?”만 반복하는 모스를 보며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모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남자는 모스가 헛소리만 지껄이며 멍하니 있는 게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아, 악!”
돌연 모스의 머리채를 잡았다.
어찌나 악력이 강한지, 머리카락이 죄다 뜯기는 고통에 모스가 비명을 질렀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넌 누구지?”
남자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모스의 머리를 죄다 쥐어뜯을 것처럼 흔들 뿐이었다. 그의 손에 붙들려 달랑달랑 목이 흔들리던 모스는 이번에 대답을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울먹이며 급히 말문을 열었다.
“마, 말할게! 말할게.”
아무리 죽지 않는 몸이라고 할지라도 고통을 두려워하는 이상, 자신보다 훨씬 강한 악력과 힘, 체구를 가진 남자 앞에서는 설설 기는 수밖에 없었다.
“나, 나는, 이 숲의…….”
모스가 말을 하려다 멈칫하고는 입술을 달싹였다.
괴물.
남들이 다 저를 부르는 대로, 괴물이라고 말하면 되는데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째서인지 이 남자에게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괴물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괴물이라고 이 남자에게만큼은 절대…….
그래서 모스는 입술을 달싹이며 대답을 주저했지만, 입술의 달싹임은 오래가지 못했다.
“악!”
남자는 모스가 수작을 부린다고 여긴 것인지, 이제는 머리를 터트릴 것처럼 꽉 움켜쥐며 대답을 종용한 것이다.
방금까지는 애들 장난이었다. 두피가 뜯겨 나갈 것만 같은 엄청난 고통에 바들바들 떨던 모스는 결국 머릿속의 떠오르는 단어들을 급히 조합해서 비명처럼 악을 지르며 답했다.
“시체를! 무, 묻어 주는…… 이, 인간!”
그리 말하자마자 남자가 손에 힘을 풀었다. 간신히 남자의 손에서 벗어난 모스는 눈치를 보듯 눈알을 불안하게 굴리며, 바들바들 떨었다.
‘내가 인간이라고 했어. 거짓말을 했어. 들키면 어떡하지? 들키면 죽나?’
모스는 자신이 괴물인 것을 남자가 알아챌까 봐 그를 보며 걱정했지만, 남자는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
남자는 별다른 반응이 없이 가만히 모스를 빗겨 허공을 보다가 순식간에 모스의 턱을 도로 움켜쥐고 돌연 제 쪽으로 끌어왔다.
“아, 아파!”
턱이 부러질 것만 같다. 남자의 커다란 손에 붙잡혀 순식간의 앞으로 끌려간 모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눈 떠.”
너무 무서웠기에 모스는 남자의 말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었다.
눈을 뜨지 않으면 더 큰 일이 생길 것이라고 뇌가 경고하지만, 몸은 이미 공포에 사로잡혀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남자가 모스의 감긴 눈꺼풀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억지로 잡아 벌렸고, 모스는 비명을 지르다 다시금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지 마아, 아파, 하지 마. 아파.”
자비 없는 손이 억지로 드러낸 눈동자. 모스의 눈에서 기어코 눈물이 뚝뚝 흘렀다.
“잡아, 머, 먹지 말아 줘.”
무서워. 무서워. 덜덜 떨며 모스가 몸을 궁상맞게 옹송그리며 빌었다.
“나는 맛없어, 맛없어. 분명 이끼 마, 맛이 날, 날 거야.”
남자의 눈은 너무 아름다웠지만 어찌 보면 초식 동물을 한입에 욱여넣는 포식자의 눈과도 비슷하여 모스는 틀림없이 남자가 자신을 잡아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고개를 숙여 모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다시 모스에게 답을 종용했다.
“말해.”
“으, 응? 나, 나는 인간의 시체를 묻어, 주는…… 이, 인간. 인간이야…요.”
왜 또 물어보는 거지. 혹시 인간이 아닌 것을 들켜서 지금 협박을 하는 걸까.
모스가 바들바들 떨며 남자의 말에 허둥지둥 답을 하던 그때.
“내가 누구지?”
모스의 귀에 이상한 것이 들려왔다.
“……응? 나, 나? 나는 모, 모스.”
모스는 자신의 귀를 믿지 않았다. 공포에 질려 헛것을 들었다고 생각하고 제 이름을 말했으나, 남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또 무엇을 잘못했을까.
무엇을 잘못했기에 저 남자가 눈썹을 이렇게나 사납게 구기는 걸까.
가뜩이나 무서운데 눈썹까지 찡그리자 더욱 큰 공포가 몰려왔다. 겁에 질려 당장이라도 혼절할 것만 같은 얼굴로 모스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눈을 질끈 감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자가 엉뚱한 말을 했다.
모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저도 모르게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남자는.
“나는 누구지?”
말도 안 되는 말을 했다.
“…….”
“…….”
“……히끅.”
너무 놀란 모스가 딸꾹질을 시작했다.
“나는 너를 모, 몰라.”
남자가 누구인지 자신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모스가 더듬거리며 말했지만, 기억을 잃은 남자에게는 그 모든 것이 수상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하면 내가 왜 너와 함께 있는 거지?”
마치 죄인을 몰 듯, 자신을 추궁하며 몰아세우는 남자. 모스는 순간 억울해서 말문을 잃었다.
자신은 그저 제 앞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거둔 것뿐이기에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했다.
“그건…….”
해초 같은 머리카락 틈으로 이끼 색 눈동자가 불안하게 데굴데굴 움직였다.
남자는 입술을 달싹이며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모스를 한참 바라보다, 돌연 성큼성큼 보금자리의, 모스가 몇 겹이나 덧대어 둔 문으로 향했다.
“아, 안 되는데.”
모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환각초.’
밖은 환각초 밭이나 다름없었다. 한 번은 운일지라도, 두 번은 운으로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나가면 죽는다고, 그 말을 하며 남자의 뒤를 따라붙고 싶었지만 그는 모스의 상상 이상으로 재빨랐다.
펄럭, 두꺼운 입구의 문이 열리며 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을 막기 위한 천들이 동시에 펄럭였다. 그리고.
“나가면 안, 아……악!”
남자를 붙잡으려고 발을 내민 모스는 천 틈으로 들어온 햇살에 발등부터 무릎까지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꼈다.
지이익, 지이익……, 뚝뚝.
“아! 아아!!”
끼이익, 탁. 문이 닫히자마자 모스가 고통에 울먹이며 살점이 뚝뚝 흘러내리는 발등을 보곤 그대로 주저앉았다. 무릎부터 발등까지 연기가 나며 녹아내리는 모습은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에 모스의 눈에서는 소리 없는 눈물이 계속 뚝뚝 흘러 무릎 위로 떨어졌다.
“하악……, 아.”
그륵, 그륵. 물이 끓는 것처럼 살갗이 보글거리더니 반쯤 녹아 뼈까지 훤히 드러났던 발등이 서서히 복구되고 있었다.
살이 녹는 것도 녹는 건데, 복구가 되는 과정 또한 맨정신일 경우 그 감각을 전부 느낄 수 있었다.
“사, 살려 줘.”
그러기에 햇빛에 녹으면 모스는 반나절간은 고통에 발버둥을 치며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고통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발을 질질 끌며, 그는 기고 있었다.
“살려 줘.”
문을 향해 살려 달란 말을 하면서.
여전히 발등은 불을 얹어 놓은 것처럼 뜨겁고 아팠지만, 모스의 시선은 발등에 향하지 않았다.
그는 어둠 속에서 그새 틈 하나 없이 닫힌 천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고통에 어깨를 움츠렸다.
“살려 줘…….”
아프다.
너무 아파서 머릿속까지 뜨겁고, 눈은 튀어나올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었다. 움츠렸던 손을 간신히 펴서 바닥을 짚고 하체를 질질 끌어 문 앞까지 간신히 가게 된 모스는 두툼하게 덮인 천을 드디어 움켜쥘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을, 살려 줘.”
인간의 생존을 빌었다.
그는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스스로가 아닌 타인의 생존을 빌었다.
실은, 모스는 남자가 너무 무서웠다.
눈을 뜬 남자는 정신을 잃었을 때와는 비교할 바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척이나 무섭고, 감히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할 정도의 기세와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모스의 직감은 계속해서 그를 피하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 인간은 너를 해칠 거야. 그러니 죽는 게 맞지.’
이성이 남자가 환각초로 인해 죽어야지, 네게 훨씬 이로울 것이라고 귓가에 계속 속삭였다.
하지만 그 판단을 따르기에는 이미 늦었다. 남자가 주저 없이 햇살 아래로 뛰어들어 반짝반짝 빛나며 걸어가는 모습이 모스의 마음에 자리를 잡았던 탓이다.
“죽으면, 안, 돼.”
모스는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었다.
자신은 결코 할 수 없는, 햇살을 가로지르고 걸어가는 남자의 모습을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더.
그러니 남자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어둠 속에서 모스는 멍하니 읊조렸다.
녹아내린 발등이 오늘은 유독 더 아픈 것처럼 느껴졌다.
모스는 밤이 온전히 찾아올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제 앞에 있는 여러 겹의 천들을 손으로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밤이 찾아왔다.
***
그토록 기도하던 밤이 되었다.
해가 온전히 모습을 감추고 나서야, 모스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나섰다.
“누웠어, 여기 누웠어.”
겁이 유독 많은 천성 탓인지, 그는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감과 관찰력, 청력을 가지고 있었다.
귀신같이 풀이 살짝 누운 길을 알아본 모스는 처음에는 걸었고, 나중에는 뛰었다.
‘어떡해.’
별 아래에서 미친 듯이 뛰는 모스. 하지만 뛰면 뛸수록 모스의 표정은 절망스럽게 변했다.
하필 이 길 끝에는 살아 있는 것들을 단숨에 죽이는 강한 환각초가 무수히 많이 자라 있었다.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모스는 허리까지 자란 푸른 풀, 환각초 군락 바로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인간?”
그곳에서 누워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모스가 허둥지둥 그에게로 향했다.
다행히 환각초가 모여 있는 깊숙한 곳까지는 안 갔지만, 환각초에 발 하나 닿았다고 죽은 인간이 널리고 널렸기에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무서운 마음에 덜덜 떠는 손을 감추지 못하고 남자를 확인한 모스는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마치 아까 전 눈을 뜨고 모스와 대화한 게 환상인 양, 남자의 눈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굳게 닫혀 있었던 것이다.
환각초를 밟는 것은 죽음의 문턱에 다가선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환각초를 두 번이나 접하고도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모스가 덜덜 떠는 손으로 인간을 환각초에게서 떨어뜨린 다음, 더듬더듬 남자의 몸을 만졌다.
“차, 차, 차가워.”
모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온기가 은은하게 돌던 남자의 몸은 어디 가고,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하기야 날씨가 추운 편에 속하는 대륙이었다. 이 추운 날에 이렇게 오랜 시간 누워 있으면 인간은 죽지 않는가.
모스는 허둥지둥 남자의 몸 위에 흙을 퍼서 얹었다. 흙을 덮으면 좀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나 그것으로는 남자의 몸을 데울 수 없었기에, 금세 그의 얼굴은 울상으로 변했다.
“죽은, 거니?”
어쩌다 보니 생매장이 된 모습을 한 남자는 답이 없었다.
“가, 가자.”
일단 뭐가 되었든 이 추운 바깥보다는 보금자리가 나을 것이다. 모스가 남자를 엉성하게 들어 올린 채 그의 보금자리로 향했다.
조심히 가고 싶어도 모스가 등에 지고 있는 이의 무게는 여간내기의 것이 아니라서 몇 번이고 고쳐서 업고, 이마가 땀범벅이 되고 나서야 둘은 간신히 보금자리에 도착했다.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모스가 남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허둥지둥 그의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는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까 모스를 죽이려고 했던 기세는 어디 가고, 남자는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있었다.
“이, 이번에야말로 죽었을 거야.”
모스는 문득 제가 등으로 수없이 업어 나르고, 저 앞의 땅이 언덕이 될 정도로 수도 없이 많이 묻었던 시체를 떠올렸다. 이제 남자도 그들과 다름없이 그 언덕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간 수도 없이 많은 시체를 묻으면서도 이런 감정은 들지 않았는데, 모스는 이상하게 이 남자를 묻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지독하게 외로웠다.
혼자 남겨진다. 또, 늘 그랬듯이.
“주, 죽으면 안, 안 되는데.”
남자는 모스를 의심하며 죽이려고 들었지만, 모스는 남자를 포기할 수 없었다. 제 목이 틀어지는 고통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롭지만, 남자의 손이 차게 식는 게 그거보다도 더 싫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떤 관계를 맺지 않은, 무의미한 사이며, 둘 사이에 애틋함이란 모스의 일방적인 감정에 그칠지라도, 모스는 남자를 묻고 싶지는 않았다.
몇십 년 만의 온기였다. 숨이었다. 목소리였다. 모스는 이제 남자의 숨소리 없이 잠들 자신이 없었고, 그의 자리를 정돈해 주는 일과가 없이는 하루를 마칠 수 없었다.
그것에 모스가 덜덜 떨다가 남자에게 제 체온을 나누려는 이처럼 고개를 숙였는데.
“……어?”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둥둥. 작지만 무언가가, 꼭 누가 있음을 알리는 듯한 소리가 일정하게 남자의 안에서 울리고 있었다.
쓸 일이 없어 잊힌 지식 틈 사이로 인간의 심장 소리가 살아 있음을 알린다는 내용을 떠올린 그가 눈을 크게 떴다.
모스는 꼬물꼬물 남자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둥둥둥, 둥둥, 얇은 벽의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것만 같은 소리.
모스는 힘을 주어 남자의 웃옷을 붙들었다.
‘더 듣고 싶어.’
모르겠다. 왜 이러는지는.
다만 그는 이 소리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굳게 닫힌 문을 누군가가 두드리는 것만 같아서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심장 소리를 듣다가, 물끄러미 제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아까부터 여기가 지끈지끈 간지럽더니, 저 남자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 당겨 오는 느낌이 들었다.
모스는 느릿하게 손을 들어 제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둥둥. 남자와 마찬가지로 심장이 뛰고 있었다.
모스는 다시 남자에게 바짝 붙어 귀를 가져다 대었다, 여전히 뛰고 있었다, 다시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여전히 뛰고 있었다.
“……여, 열매.”
그리고 모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남자를 깨우려면, 지난번에 이로 으깨 먹였던 열매를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든 것이다.
그는 서둘러 남자를 위해 틈틈이 모아 둔 열매를 담은 바구니를 가져와, 이로 열매를 으깨 남자에게 먹였다.
모스는 이 숲에서만 나는 이 열매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열매에 무슨 효능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이것을 먹인다면 그가 눈을 뜰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끊임없이 열매를 제 입에 넣고 씹어 남자의 입에 넘겨주었다.
넣고, 또 넣고.
시간이 얼마나 흐른 지 모르겠다.
모스는 계속해서 행위를 반복했다. 그리고 바구니가 비었을 무렵.
“콜록……!”
모스는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콜록, 콜록.”
남자가 기침을 하며 눈을 뜬 것이다.
남자는 미친 듯이 기침을 했다. 옆으로 허리를 굽힐 정도로 거센 기침 끝에 남자는 이어서는 무언가를 게워 내려는 이처럼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어…… 어떡하지? 숨어야 해.’
남자가 눈을 떴다는 안도도 잠시, 둘은 사이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기에 모스는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허둥지둥 달려 나가 늑대 가죽을 뒤집어쓰려고 했다.
하지만.
“아, 악!”
얼마 가지 못해 붙잡혀서 바닥을 굴렀다.
처음 느껴진 고통은 발목이었다. 다짜고짜 누군가가 발목을 꽉 쥔 탓에 앞으로 나아가려던 모스가 바닥에 철푸덕 엎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파…….”
모스가 바닥에 부딪히는 바람에 반으로 쪼개진 것만 같은 무릎을 움켜쥐고 울먹였지만, 세상은 그에게 울먹일 시간을 주지 않았다. 발목을 쥔 힘이 어찌나 억센지 모스는 마치 괴물의 혀에 묶여 그 아가리에 들어가듯 뒤로 질질 끌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모스가 바닥을 긁었지만.
“아, 파. 아파!”
손톱만 상할 뿐이지 뒤로 끌려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는 숨어 보려는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기도 전에 질질 끌려갔다.
그리고 끌려가자마자 모스의 몸을 뒤집어 위에 올라탄 남자는.
“구역질이 나는 풀이었다.”
대뜸, 뜬금없는 말을 했다.
처음에 저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모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말하는 ‘구역질 나는 풀’이 환각초임을 알아챘다.
“그것을 본 순간, 기억은 나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내 기억을 앗아간 존재라는 것은 알아챌 수 있었지. 네가 한 짓인가?”
남자는 역시나 여전히 기억을 잃은 상태였다.
그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일고 기절에 이르게 하는 풀 앞에서 쓰러진 자신을 너무나도 멀쩡하게 데리고 온 모스를 의심하고 있었다.
“난…… 아무, 것도.”
모스는 너무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날 때부터 그 풀에 대해 면역이 있을 뿐이지, 풀을 기르기는커녕 남자에게 허튼수작조차 부리지 않았는데, 자꾸 남자는 자신을 의심했다.
“그, 그냥 너를 살려 주려고, 나는 네가, 인간……이라서…… 그리, 워서.”
모스는 설명을 잘하고 싶었으나, 정작 입 밖으로 나온 단어는 엉망 그 자체였다.
이마에 꽂히는 시선은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했다. 그 때문에 모스는 시선으로 짓눌리는 기분으로 횡설수설했다.
그런 모스를 가만히 쳐다보던 남자가 느릿하게 시선을 움직여 보금자리를 살피기 시작했다.
‘무서워. 괜히 살렸어.’
모스는 저 시선이 제게 닿는 순간 자신의 생명이 무사하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하여 덜덜 떠는데, 남자는 모스를 보지 않고 어느 한 곳에 시선을 멈춘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
무거운 침묵 속에서 남자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무심코 바라본 모스는 상황도 잊고 순간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남자의 시선이 향한 곳은 남자에게 먹이기 위해 새빨간 열매를 담아 왔던 천 바구니였다.
남자는 새빨간 열매 바구니를 가만히 보다가 제 입가를 훑었다. 말라비틀어진 빨간 진액이 부스러기처럼 손끝에 묻어났다.
남자는 그 손가락을 가만히 보다가 대뜸 모스의 입가를 문질렀다.
“아, 으.”
남자는 모스의 입가를 세게 긁듯이 벅벅 문지르다가, 이내 손가락을 모스의 입 안에 넣어 휘저었다.
방금 전까지 모스는 남자에게 입으로 열매를 먹였기에, 붉은 기가 도는 타액이 남자의 손끝에 묻어났고 남자는 그것을 빤히 보다가 헐떡이는 모스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네가 나를 살린 건가?”
낮고, 기품이 넘치는 목소리.
이전과 다름없는 목소리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적대감이 옅은 것에 모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모스는 더 이상 사사로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이, 제 위에 올라탄 남자의 얼굴을 멍하니 보기만 했다.
“그대, 은인이었군.”
은인. 모스는 은인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그가 인간에게 듣는 단어라고는 언제나 괴물밖에 없었으니.
은인이라는 말이 이렇게 간지러운 말인지 처음 안 모스가 굳어 있는 사이, 남자의 말은 이어졌다.
“무례를 진심으로 사과하지.”
전혀 미안해 보이지 않는 투였음에도, 모스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남자가 픽, 살짝 웃었다.
결코 친절한 미소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모스에게는 처음으로 가까이서 보는 인간의 미소였기에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어찌 인간의 얼굴에 저런 수려한 곡선이 있을 수 있을까? 고작 살짝 웃는 것뿐인데, 입가의 작은 호선 하나에 모스는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발가락이 절로 위아래로 까딱이고, 손끝은 어정쩡하게 구부려져 굳고,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려 앞니가 굳게 다물고 있던 아랫입술을 놓쳤다. 픽 하고 잇새로 새 나왔던 소리는 귓가를 간지럽히고도 떠나지 않고 귓바퀴에 잔류했다.
남자가 웃는 순간 모스의 심장은 더는 작게 둥둥거리지 않았다. 작은 소리가 아니라, 이 숲의 심장인 양 커다랗고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으, 은인, 네 은인…….”
이날.
“나는 모스야.”
모스의 세상은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