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발자국
모스는 절벽 끝에 그 누구도 없이 덩그러니 남겨진 발자국을 응시했다. 방금만 해도 루인이 저기 있었다는 것을 알리듯, 이곳에서도 발자국 모양은 지독히도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형님!!!”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무수히 많은 인간들이 루인이 있던 자리로 덮치듯 쏟아져서 그가 남긴 단 하나의 발자국마저도 지워져 점점 보이지 않았다.
눈이란 그렇다. 누군가의 흔적을 쉬이 만들 수 있는 만큼, 쉬이 사라지게도 만든다.
“당장 수색하라!”
“내려갈 준비를 하겠습니다!”
병사들이 절벽 너머로 고개를 내밀며 비명을 지르고, 이어 여럿이 절벽 아래로 내려가고자 요란스레 움직였다. 그 모든 모습을 넋 놓고 보던 모스가 천으로 손을 감고, 제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려는 루인의 기다란 외투를 꾹 움켜쥐었다.
인간들이 발을 구르는 감각, 그들의 표정, 귀를 찌르는 고함.
꿈이 원래 이토록 모든 감각이 선명한 것인가?
‘아니면… 꿈이 아닌가?’
꿈이 아니다?
쿵, 모스의 심장은 일순 내려앉는 것처럼 커다란 굉음을 내 그의 전신을 흔들었다.
방금까지의 일이 만약 꿈이 아니라면? 이 비현실적인 일들이, 방금 제가 본 것들이 전부 꿈이 아니라면?
“정신 차리십시오!”
그때, 카를이 소리쳤다.
모스의 손에 힘이 풀렸는지 그가 쥐고 있던 외투가 흐르듯 떨어지고, 이어 천이 옷에 걸려 걷어지려고 하는 것에 카를이 황급히 천을 추슬러 올리며 윽박지른 것이다.
“녹으실 작정이십니까!!!”
모스는 바짝 다가온 햇빛의 향을 그제야 눈치챘다. 카를이 그를 안은 채 몸을 돌리지 않았다면, 이미 얼굴이 녹았을 정도로 햇빛이 바짝 가까이 있었다.
그런 모스의 얼굴을 카를이 꼼꼼하게 천으로 감싸 고정했다. 그다음 그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모스와 저 멀리 절벽 너머를 번갈아 보다 읊조렸다.
“나보고 대체 어떡하라고! …젠장!”
기사단장인 그는 당장 그의 주군인 루인을 찾으러 가는 게 맞았다. 저런 절벽에서 떨어졌으면 제아무리 괴물 같은 루인일지라도 생존도 불분명하고, 살아 있다 한들 한시라도 빨리 신관에게 가야 할 중상을 입었을 터……,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그가 우선이다.
카를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곳에 오기 전, 루인이 제게 한 말이 떠오른 것이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 폐하께서는 일이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카를은 입술을 꾹 깨물고 이제는 온전히 떠올라 새까맣게 물든 절벽을 서서히 밝히고 있는 태양을 응시했지만 그리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괴물은?”
절벽 끝에 있던 치테이르는 여전히 동요하느라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일부 병사들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 모든 사달이 난 건 저 괴물을 녹이면 봄이 온다는 치테이르의 명 때문이니, 수색을 준비하는 병사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시선이 둘을 향했다.
그때, 카를과 눈이 마주친 병사가 소리쳤다.
“저기 있다! 잡아!!”
“……젠장!”
카를은 모스를 끌고 그대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카를이 초조한 낯을 감추지 못하고 미친 듯이 달리는 가운데, 그에게 손목이 붙들린 모스의 표정은 카를과 정반대였다.
‘왜 꿈에서 안 깨지?’
모스의 표정은 멍했다.
그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을 꿈이라 여기고 있었기에, 카를이 제게 뭐라 소리치든, 뒤에서 자신들을 쫓는 이들이 있든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이상해.’
꿈이 원래 이런 건가?
너무 생생해서 혼란스럽다 못해 머리가 아팠다. 자신을 끌고 가는 사람의 생생한 호흡, 그의 고함, 그리고 짙은 나무의 향, 아침의 기척. 모두 현실보다도 더 현실 같아서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시야가 핑 돌았다.
“……아.”
털썩, 모스가 주저앉았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 순간, 발밑에 있던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진 것이다.
“저기 있다!!!”
“빨리 일어나요!”
카를이 황급히 모스를 일으켜 세운 뒤, 서둘러 모스를 데리고 이 자리를 뜨려고 했으나, 모스의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았다. 그는 눈앞이 안 보이는 이처럼 허우적거렸고, 그 탓에 제대로 도망을 칠 수 없었다.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 카를이 주먹을 꽉 말아쥔 그때.
“꾸, 꿈이.”
카를을 덥썩 모스가 붙잡았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인 양, 애달프게 붙든 모스가 전신을 떨며 말했다.
“왜 아, 안 깨지?”
“……예?”
“꿈이.”
모스가 더듬더듬 말했다.
“안 깨. 꿈인데. 이, 이상하다. 왜.”
흙투성이인 채로, 불안한 듯 자신의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고 웅얼거리며 말하는 모스를 본 카를은 순간 저도 모르게 상황도 잊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즉 깼어야 했는데, 꾸, 꿈이 왜… 머리 아파….”
처음에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모스의 말이 이어질수록 카를의 표정은 굳었다.
꿈, 왜 깨지 않느냐, 이상하다, 그러니까…….
‘이 자는 이 모든 게 꿈이라 여긴 건가?’
카를은 순간 상황도 잊고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지었다.
“이 모든 게 꿈이라고 하셨습니까, 지금?”
카를은 모스의 어깨를 꽈악 붙잡았다. 불안한 듯 제 머리를 붙들고 웅얼거리던 모스의 시선이 카를에게 향하더니 일그러졌다.
“아, 아파.”
“대답하세요. 여태까지 벌어진 일을 모두 꿈으로 착각한 겁니까?”
“으, 으으. 놔. 왜, 왜 이래. 어깨, 가 부서질 것 같…….”
모스가 바들거리며 몸을 뒤틀었다. 꿈, 꿈, 꿈. 그놈의 꿈.
“이게 꿈이라고?”
카를이 바투 얼굴을 붙이고, 이를 악물 듯 한 글자씩 힘주어 말했다. 바르작거리면서 온몸을 뒤틀던 모스의 몸이 우뚝 멈추었다.
“당신이 뭘 모르나 본데, 아픈 건 꿈이 아니야. 현실이지. 꿈은 원래 사지가 뜯겨도, 목이 꺾여도, 온몸이 산산조각 나도 다 허상이기에 아플 수가 없어.”
모스는 눈을 홉뜬 채 굳었다. 천의 틈 사이로 드러난 모스의 이끼색 눈동자 안에 카를의 윤곽이 흐릿하게 담겼다.
그는 이 자가 말하는 것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알았다.
“아, 프면 꿈이, 아니…야?”
이 자가 굳이 거짓을 고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모스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하기야, 허상을 보여 주는 꿈속이라고 하기에는 아픈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머리가 쪼개질 듯 아픈 고통도, 아까부터 미친 듯이 빨리 뛰던 심장도, 바들바들 떨리는 손도. 어느 것 하나 현실 같지 않은 게 없었다.
“아니라, 고?”
모스가 비틀거리다 풀썩 주저앉은 그때.
“잡았습니다!!!”
그의 몸이 확 뒤로 젖혀짐과 동시에 모스는 눈을 크게 떴다. 둘을 쫓던 이들 중 하나가 모스의 어깨를 꽉 붙든 채, 뭐라 소리치자 카를이 제압당해 바닥에 얼굴이 처박혔다.
“당장 도망가십… 크윽!!”
이미 한계에 다다른 카를은 일어나지 못하고 고함쳤지만, 모스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표정은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만 그가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분명한 듯 넋이 나가 있었다.
“끌고 가!”
그런 모스를 제압해서 끌고 가는 건 아기 손목을 비트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모스는 질질 끌려가는 내내 햇빛에 몸이 안 닿으려는 듯 천속에 꾹 제 몸을 욱여넣기만 할 뿐,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다.
“황태제 전하! 데리고 왔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모스를 끌고 간 곳은 바로 황태제, 치테이르의 앞이었다. 그런 치테이르의 주위는 산만했다.
“밧줄을 더 가져와!”
“조심해! 웰슨 경이 떨어졌다!”
“저 아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어둡습니다!!”
정확히는 아수라장이라는 말이 걸맞았다. 병사들은 절벽 아래로 떨어진 황제를 찾으려고 했는데, 절벽의 어느 정도까진 햇빛이 들어 보였지만, 그 아래는 새까매 한 치 앞도 안 보일뿐더러 발을 잘못 디딜 경우 낙사해 죽기 때문이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이 계속 나옵니다!”
“여기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 절벽은 여러모로 유명한 절벽이었다. 해가 제일 먼저 뜨는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죄인들의 시체를 버리는 곳으로 더 유명했다. 때문에 병사들이 절벽에서 찾아내는 시체들은 한두 구가 아니었고, 치테이르는 절벽 가장 끝에 서서 올라오는 시체들을 하나하나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황태제 전하?”
하나 그 모습이 지독히도 아슬했다. 당장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치테이르의 모습에 모스를 데려온 병사들 중 하나가 치테이르를 다시 불렀다. 그 말에 드디어 치테이르가 뒤를 돌았는데, 그의 눈은 새빨갛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전하, 손톱이…!”
손톱은 또 어떻고. 손톱은 얼마나 물어뜯었는지 너덜너덜하고, 피범벅 되어 있었다. 그것에 놀란 듯, 병사가 소리쳤으나 치테이르는 개의치 않는 듯 눈동자를 도륵 굴려 온몸을 꽁꽁 싸맨 모스를 응시했다.
“…….”
침묵이었다. 모스는 천으로 꽁꽁 싸매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었고, 치테이르는 그런 모스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시간이 갈수록 모스를 바라보는 치테이르의 눈은 점점 가라앉았다. 그를 감싼 공기의 흐름이 무겁게 침전하는 것을 깨달은 병사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다, “폐하를 찾겠습니다!”라며 사라졌기에, 한 발이면 떨어질 법한 아슬한 절벽 끝에는 천으로 온몸을 감싼 모스와 치테이르만 남았다.
“형님은 완벽한 황제야.”
그때, 치테이르가 입을 열었다. 고작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인데, 그의 얼굴은 그사이 엄청난 절망과 슬픔으로 망가져 있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게 없었다. 선황제의 말도 안 되는 억압 속에서도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무엇에 연연하는 게 하나 없었기에 완벽한 제국의 황제로 남을 수 있는 자였는데…….”
천으로 가려진 모스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그저 눈이 있는 듯 파인 자국, 오뚝한 코의 모양, 뚝 떨어지는 턱선이 드러난 것이 다였다. 그리고 그렇게 윤곽을 드러낸 작은 얼굴을 보던 치테이르의 얼굴이 일그러짐과 동시에.
“네가 다 망쳤어.”
그의 눈이 분노와 혐오로 얼룩졌다.
“끝까지 영웅이라면 영웅답게 가지 그랬어? 그냥 태어나자마자 녹아 버렸으면 모두가 편했잖니. 이딴 추한 괴물의 모습으로 남지 말고.”
추한 괴물.
천 아래에서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모스가 고개를 느릿하게 들어 올렸다.
모스는 전신이 천으로 뒤덮인 채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치테이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두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그가 한숨처럼 작게 숨을 내쉬었다. 천을 뒤집어쓰고 있어도 느낄 수 있었다. 피부가 간지러운 느낌, 햇살이 닿는 감각, 천 사이로 파고드는 아침의 향.
“진짜 꾸, 꿈이 아니야.”
결코 꿈에서는 구현해 낼 수 없는 그 모든 것들.
“이게 왜… 아니야?”
미치도록 생생한 이 모든 것이 현실임을 알면서도 모스는 고집부리듯 말했다. 어린아이처럼, 현실을 부정하듯이 말하는 모스를 치테이르가 가만히 한동안 말없이 보다가 되물었다.
“이걸 꿈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모든 걸 꿈으로 착각한 모스의 그 말은 누군가를 완벽하게 미치게 하는 말이었다.
“넌 여태 이 모든 걸 꿈으로 착각한 거야?”
치테이르는 모스가 한 말을 곱씹듯 몇 번 말하더니, 이어 실성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모스는 까만 천을 뒤집어쓴 채로 치테이르가 있는 곳을 여전히 멀거니 바라보았다.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는 치테이르의 광기는 둘째 치고, 그의 웃음소리가 정말 루인의 것과 흡사했던 탓이다. 그것에 흠칫하며 몸을 살짝 떠는데.
“고작 이딴 거에게.”
“-아!”
그때, 치테이르가 돌연 모스의 얼굴을 쪼갤 듯 한 손으로 강하게 틀어쥐었다.
그의 손톱이 모스의 얼굴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모스가 뒤집어쓴 천이 치테이르의 손이 닿은 부분부터 피로 검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 모자란 것에게…!”
“아, 아아!”
그는 어딘가에 제 분노를 토해 내고 싶었기에 발버둥 치는 모스의 얼굴에 더 깊게, 더 고통스럽게 손톱으로 얼굴 가죽을 죄다 뜯어 버리려는 이처럼 굴었다.
모스는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피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치테이르가 모스의 머리를 엄청난 힘으로 꽉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픈 와중에, 천이 뜯기며 구멍 난 틈으로 햇빛이 스며들어 얼굴의 일부를 녹였다.
“아아악!!!”
비명은 더 커졌다. 모스는 자지러지듯 발버둥 쳤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한쪽 발이 천 밖으로 삐죽 튀어 나가 발까지 녹고 있었고, 얼굴은 숭숭 구멍이 뚫리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시체가 썩는 것만 같은 냄새, 뇌를 태우는 것만 같은 아픔이 고통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던 와중에 카를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이 뭘 모르나 본데, 아픈 건 꿈이 아니야. 현실이지. 꿈은 원래 사지가 뜯겨도, 목이 꺾여도, 온몸이 산산조각 나도 다 허상이기에 아플 수가 없어.
꿈이 아니라는 그 말.
그래, 이토록 고통이 생생한 걸 보니 그 말은 맞을 것이다. 다만 모스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이게 꿈이길 바라고 있는 걸까?’
왜 자신은 이게 꿈이길 바라며 현실이길 원치 않는 것일까?
그 의문이 커지니, 고통도 순간 잊혔다. 괴물인 그에게 어차피 삶이란 고통의 연장선이었기에 고통스러운 게 꿈이든 현실이든 상관없었다. 근데 지금은 다르다. 그는 명백하게 이 모든 게 꿈이길 바랐다. 이 뒤틀린 것을 고치려면, 차라리 현실이 아닌 꿈이 나으니까.
그래, 뒤틀린 것을…….
‘무언가가 뒤틀렸다고?’
모스는 멈칫했다.
여기서 무엇이 뒤틀렸기에 자신이 이걸 꿈이라고 여기고 싶어 하는지 생각하려고 했으나, 명확히 알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명확히,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한 그때, 그 ‘명확히’라는 글자 위로 흔적을 남기듯 떨어지는 루인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무수히 많은 화살 비를 맞고 절벽으로 떨어지는 루인, 사라지는 루인, 발자국마저 다른 이들의 흔적으로 뒤덮여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루인, 그리고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똑똑히 자신을 보던 눈, 빛나는 태양을 등지고, 그 태양보다 더 반짝 빛나는 그 금안.
아, 이상하게도.
“이제 죽어.”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치테이르는 코를 찌르는 썩은 내와 손가락을 타고 모스의 피가 뚝뚝 흘러내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손끝에 힘을 더 주었다. 다만 문제는 방금까지 꼿꼿하게 등을 세워 버티던 모스가 몸에 힘을 풀었다는 것이다.
그건 예고 없는 움직임이었다.
모스의 몸이 저항 없이 뒤로 기울었다. 기울고, 또 기울었다. 순간 그가 뒤집어쓴 천이 펄럭였다.
“…어.”
놀란 치테이르가 눈을 크게 떴다. 천에 휘감긴 모스가 그대로 허공에 놓였고, 그건 치테이르도 마찬가지였다.
저항 없이 밀려난 모스 때문에 치테이르의 몸 또한 반 이상이 허공을 가르고, 모스와 함께 절벽의 아래로 쏟아져 내릴 듯 기우뚱 기울었다.
“황태제 전하!!!”
뒤늦게 이 상황을 발견한 치테이르의 보좌관과 병사들이 달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치테이르는 모스와 함께 이미 절벽 아래로 반 넘게 몸이 넘어가 있었다.
“아.”
그때, 모스가 작게 신음했다. 햇빛으로 눈이 타들어 가고 있던 지라, 한 치 앞을 보지 못했지만 알았다.
‘나는 추락하고 있다.’
자신이 지금 추락에 이른 것을.
저 멀리서 비명을 지르는 이들의 목소리, 등에 닿는 자유로운 허공의 감각, 하늘과 한없이 멀어지는 느낌.
하나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제 사지가 꺾이고 사라지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리가 터지는 것을 느끼자마자 세상은 새까맣게 변했다.
그대로, 암전.
***
톡, 토독…….
눈을 뜨기 전, 먼저 온몸에 와 닿는 감각은 자신이 지금 ‘춥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눈을 느릿하게 떴을 때, 모스는 제 눈꺼풀에 스며들 듯 눈이 녹아들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사위가 시꺼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 흰 눈만큼은 선명해서 모스는 순간 넋 놓은 채 새까만 밤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응시했다.
‘여기가 어디지.’
어둠에 익숙해진 눈을 한 모스가 몸을 일으키다 축축한 제 몸을 보고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이어 젖은 게 죄다 자신의 피임을 깨닫고 그제야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허공을 가르던 제 몸, 터지던 머리, 뒤틀리고 조각난 자신의 사지들, 그건 전부 사실이었음을.
‘의식을 잃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는 살면서 머리가 터진 적은 없었다. 그러기에 이번에 머리가 터지면 의식을 잃는 것을 처음 깨닫고 신기하다는 듯 피와 뇌수로 진득진득해진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떨어졌어.’
그러기에 이곳은 절벽의 가장 밑바닥일 것이다.
‘그자는?’
모스는 기억을 더듬어, 마지막 순간 자신과 함께 떨어진 것 같은 치테이르를 떠올리고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죽었겠지.’
평범한 인간이라면 이 높이에서 떨어져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사위가 온통 새까만 것을 보니 밤이 찾아온 것일 테고 그럼 최소 반나절 이상 지난 건 분명했다.
‘더 흐른 걸까.’
한데, 고작 반나절이 흘렀다고 하기엔 그마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는 괴물이었고, 괴물의 재생 속도가 아무리 비약적으로 빠르다고 하지만 이렇게 머리까지 다 터졌던 적은 없었던지라, 회복하는데 고작 반나절로 되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이건 대체 무슨 냄새일까.’
온갖 썩은 내가 자꾸 코를 찌른다. 냄새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모스의 시야 끝에 축 늘어진 무언가가 보였다. 어둠 속에 쉬이 적응한 그의 눈에 저것은 틀림없이 사람처럼 보였다. 근데 하나가 아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시체가 셀 수도 없이, 정말 말 그대로 끝도 없이 줄지어 있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토록 많은 시체들이 이 절벽 아래에 있는 건지. 단순히 낙사인 걸까?
얼핏 보기에도 시체들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인지 해골이 된 것도 있었고, 훼손이 심해 인간인지 짐승인지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었고, 손만 달랑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걸 빤히 훑어보던 그때, 모스의 시선에 또 다른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근데 단순히 시체라고 넘길 수 없는 모습이었다.
모스의 심장은 순간 멎는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저 멀리 있는 시체의 머리 색이.
‘…루인?’
루인의 것과 흡사한 금발이었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 제 존재를 드러내듯 반짝거리는 머리를 보자 모스의 표정이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그는 잔뜩 굳은 얼굴로 저 멀리 있는 시체를 보다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금발은 선연하게 보였고, 모스의 걸음은 더 빨라졌다. 이윽고 나중에는 뛰듯이 움직여 순식간에 그 앞에 도착했다.
“하, 아. 하아.”
갑작스러운 뜀박질 때문인지, 아니면 긴장 때문인지 숨이 절로 헐떡거리며 나왔다.
짧게 심호흡을 한 모스가 시체 앞에 조심스레 앉았다.
축 늘어진 그것은 아주 잔인하게 죽어 있었다. 무언가에게 찢긴 듯 배는 다 벌어져 내장이 튀어나왔고, 머리는 터져 머리 색을 제외하고는 도무지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였다.
그럼에도 모스는 그 시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고… 이윽고 그가 아닌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어떻게 이걸 루인과 착각할 수 있을까.
이 자는 아무리 보아도 루인이 아니었다. 금발이라 여기던 머리는 가까이 가니 매우 밝은 갈색의 머리였으며, 루인의 손은 이토록 시꺼멓지 않았다. 그의 손은 유독 희고 긴 구석이 있었다. 그는 시체가 루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자 이상하게 맥이 풀려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다, 행이다.”
그리고 안도했다.
숨 쉬듯 자연스레, 감추지 못한 마음이 잇새를 비집고 나와서, 감히 안도를.
“…!”
모스는 저도 모르게 새 나온 안도에 제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고 눈을 크게 떴다.
죽은 자는 가엾다.
괴물인 그에게 있어서, 이리 쉬이 죽음에 이르는 인간이 늘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 시체들을 하나하나 업어 곱게 흙에 돌아가라며 묻어 주지 않았는가.
하지만, 방금 모스는… 시체 앞에서 안도했다. 온몸이 다 터져, 신원조차 제대로 분별이 안 갈 정도로 안타깝게 죽은 이 인간이, 루인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를 했다.
“왜?”
모스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제 머리를 감쌌다. 하나 이 시체만 가득한 절벽 아래에서 그 누구도 그의 말에 답해 주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물음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그의 입을 빠져나간 소리는 메아리처럼 모스의 귀에 돌아왔고, 또 돌아와서 탓하듯이 계속 물었다.
너는 왜 죽은 이를 보며, 그가 루인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를 했냐며, 원망스럽게.
“아, 니야, 나는…….”
모스는 머리를 감쌌다.
그리고 절벽 위에서 꿈이라 생각하고 그에게 쏟아 낸 말들을 떠올렸다.
-네가 싫어, 네가 미워, 너를 증오해. 차라리 네가 죽었어야 했어.
그때, 제가 내뱉은 말 중에 어느 하나 거짓인 게 없었다. 모스는 정말 루인이 죽길 바랐었다.
그러니 루인이 죽었다면, 그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모스는 이 절벽에서 나가 환각초로 둘러싸인 안전한 숲으로 돌아가서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할 것이다. 더 이상 그 궁에 갇혀 루인의 모든 것들을 감내할 일도 없었고, 매번 괴물이라 천대받던 일도 없을 것이고, 죽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 그러니 이 시체가 루인이었다면, 나는 오히려 좋아해야 하는데….’
한데, 그럼에도 알 수 없었다. 이상하게 숲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도 기쁘다기보단 뭔가 속이 답답했다.
모스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움켜쥐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자신의 속에서 휘몰아치는 이 모순적이고도 기이한 감정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아파.’
알 수 없는 감정이라도, 굳이 따지자면 고통이었다. 아팠다. 분명 햇빛이 들어올 리도 없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아파. 모스는 숨을 들이켰다. 마치 지금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자신이 무너질 것이라는 듯이. 경고라도 하듯 머리가 계속 아팠다.
으득, 으드득…….
하지만 주저앉음도 잠시였다. 모스의 시선 끝에 또 새로운 무언가가 잡혔다. 웅크리고 있는 무언가.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시체, 또 시체, 시체… 그리고.
“크으으…….”
그걸 먹는 무언가.
모스는 시체를 뜯어먹던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 그건 낯익은 괴물이었다. 어둠을 먹고 자란 듯, 온몸에 시꺼먼 털이 북슬북슬하게 자라서, 눈은 새빨갰으며 입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씹다 만 팔이 덜렁덜렁 매달려 있었다.
“크으으, 으으, 크으으.”
낼 줄 아는 소리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밖에 없는지, 오로지 그 소리만을 내는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머리는 인간의 다섯 배 정도로 컸고, 덩치는 말보다 더 컸다.
그림자가 없는데도, 온통 그림자로 뒤덮인 것처럼 새까만 괴물.
모스는 언제였는지 모르지만 숲에서도 저 괴물을 한 번 보았었다.
저것은 제 눈에 보이는 냄새 나는 것들을 모조리 다 먹어 치운다. 그게 사람이든, 동물이든, 무엇이라도.
다만 환각초에는 면역이 없어 두려운지, 몇십 년 전 모스와 한 번 조우한 이후로는 모스가 사는 영역에는 들어오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거처를 옮긴 모양이다.
하기야 이곳에는 시체가 많아, 저 괴물에게도 좋을 것이다.
햇빛을 두려워하고, 인간을 무서워하는 모스가 환각초로 둘러싸인 숲에서 지낸 것처럼, 저 괴물도 이곳에서 살아남는 것을 선택했을 터.
아드득, 아득.
모스와 그 괴물 사이에서 뼈 씹히는 소리 말고 오가는 것은 오로지 시선뿐이었다. 괴물은 어둠 속에서 모스에게 시선을 고정했고, 모스도 그런 괴물에게서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그 괴물이 특별해서? 자신과 같은 괴물이라서?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다만, 그 괴물이 뜯어먹고 있는 시체의 옷이.
“…루, 인?”
루인 윈스의 것이라서.
그래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모스는 절벽 위, 마지막 순간 루인의 옷을 기억했다.
추운 날씨 탓에 대륙에 있는 이들은 옷을 여러 겹 입는다.
루인은 유독 두꺼운 겉옷을 모스에게 걸쳐 주었고, 그 안에 비교적 얇은 외투 하나와 하얀색 상의를 입고 있었다.
“크릉.”
그리고, 저 괴물의 팔뚝에는 얇은 외투와 셔츠가 같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물론 얼핏 보아서는 그게 루인의 옷인지 알 수는 없었다. 이곳은 절벽 가장 아래의 심연이었고, 옷은 찢기고 피로 범벅이 되어 원래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스가 단번에 알아볼 수 있던 이유는 저곳에서 모스의 전부였던 이의 체향이 물씬 묻어났기 때문이다.
그의 체향은 지독한 죽음의 향을 가르고, 눈앞을 가리듯 진한 피 냄새를 이겨 내어, 모스에게 전해졌다. 한때 모스의 곁에 있던 그의 옷이 저것이 맞다고.
“크으…….”
괴물은 모스가 자신에게 덤벼들 기색 없이 가만히 있자, 잘게 우짖듯 으르렁거리고는 이어 시선을 거둔 뒤 먹는데, 집중했다.
모스는 괴물이 허겁지겁 시체를 먹을 동안에도, 한동안 넋을 놓은 표정으로 멍하니 그 모습을 보았다. 그런 모스의 위로 비에 가까운 눈이 계속해서 잘게 떨어졌다. 눈꺼풀로 축축한 눈이 스며들고, 콧등 위에 눈이 쌓였다 녹기를 반복했다.
괴물의 커다란 입은 쉼 없이 새빨간 내장을 삼켰고, 뼈는 몇 번 씹어 목 안쪽으로 넘겨 버렸다. 커다란 시체는 순식간에 반절로 줄어들었고, 그런 괴물의 팔뚝에는 여전히 루인의 옷이 빨래처럼 걸려 펄럭인다.
툭.
결국 괴물의 팔이 움직일 때마다 펄럭이던 옷은 이내 바닥으로 낙하해 피 웅덩이에 잠겨 들었다.
그때, 피 웅덩이에 잠겨 든 옷이 서서히 더 새빨갛게 물드는 모습을 멍하니 보던 모스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홀린 듯 걸어가기 시작했다.
“으릉.”
모스의 움직임에 시체를 먹던 괴물이 고개를 퍼뜩 들어 경고하듯 모스를 향해 소리 냈지만, 모스는 그저 걸어갔다.
그의 발치에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손이 치이고, 짐승의 것인지 인간의 것인지 분별할 수 없는 내장의 일부를 밟고, 곧 먼지처럼 흩날릴 것만 같은 해골을 지나고…, 그렇게 끝끝내 괴물의 앞에 도착한 모스가 손을 뻗었다.
“크! 으으, 크으응-!”
모스가 다가가자 괴물은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뒤로 물렀다.
타닥, 탁.
모스가 바닥에 떨어진 루인의 외투와 셔츠를 집음과 동시에 괴물은 두려움 서린 얼굴로 몸을 물러 도망치기 시작했다. 괴물의 뒷모습을 한동안 말없이 응시하던 모스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제가 들어 올린 축 늘어진 루인의 옷과 시체를 번갈아 보았다.
“…….”
그렇게 모스는 덩어리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괴물이 먹다 만 시체와 루인의 옷과 덩그러니 남았다.
괴물의 뜀박질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은 그때, 모스가 멍하니 으깨진 것처럼 처참한 시체를 보았다.
루인이 입던 옷과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
모든 정황을 따져 보았을 때, 괴물이 먹다 만 시체는 루인이 맞을 것이다.
“…죽…은 거야?”
모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시체를 향해 읊조렸으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소름 끼치는 적막 속, 모스는 문득 절벽 위에서 루인과 했던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
-네가 싫어, 네가 미워, 너를 증오해. 차라리 네가 죽었어야 했어.
당시 절벽 위에서 했던 말들 중에는 어느 것 하나 거짓인 게 없었다.
자신을 매번 극한으로 내모는 루인의 잔혹성과 그의 폭력과 폭언에 이미 잔뜩 지친 상태였기에 모스는 정말 루인이 죽길 바랐었다.
“잘된 거, 거야.”
그러니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환각초로 둘러싸인 안전한 숲으로 돌아간다면 전처럼 평온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그 궁에서 그의 폭언과 폭력에 상처받을 일도 없을 것이며, 매번 괴물이라 천대받던 일도 없을 것이고, 그리고, 그리고…….
“아니야.”
모스는 옷을 툭 바닥에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니야, 아니야.”
그리고 손을 뻗어 시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 아니야, 아니야.”
모스는 다 터지고 짓눌리고 어느 하나 루인이라 말할 수 없는 그 피비린내 가득한 시체를 헤집고 또 헤집었다. 이 시체에는 하필 머리가 없었다. 괴물이 이미 먹은 것인지, 아니면 모스의 머리가 터진 것처럼 이미 터져서 사라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기에 시체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기가 어려웠으나, 그럼에도 모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내장을 움켜쥐어 냄새를 맡아 보고, 팔뚝으로 추측되는 부분을 제 몸에 벅벅 문질러 닦아 살색을 보려고 하고, 머리를 찾기 위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축축한 덩어리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물론 제대로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코를 찌를 듯한 비린내, 핏물, 내장, 뼈, 하나 그럼에도 모스는 계속해서 헤집었다.
그리고 기어코.
“아.”
기어코, 보고야 말았다.
핏물 사이에 섞여 본연의 색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모스에게는 여기에 있는 그 어느 것보다도 더 선연하게 보이는.
“아, 아…….”
세상에 하나뿐이라 여기던 그의 머리칼을.
피로 절여 있어도 단번에 알았다. 이건 루인의 것이 맞았다. 모스는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된 채로 멍하니 제 손에 쥐어진 머리칼을 보았다. 그리고 그걸 본 순간 더는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속을 누군가가 갉아먹는 거 같아.’
불덩이를 삼키면 이런 느낌일까.
속이 너무 뜨겁고, 아팠다. 미칠 것만 같은 울렁거림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입을 벌렸지만, 불덩이가 뱉어지지 않았다.
“아… 으….”
모스는 신음했다. 멍이 든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서 손을 가슴팍에 얹고 더듬거렸으나, 이곳은 생채기 하나 없이 너무 멀쩡했다.
이 고통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이토록 속이 아팠던 적이 없던 지라,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모스는 꺽꺽거리며 엎드렸다.
‘저게 너라고?’
시체라기보다는 고깃덩어리에 가까웠다.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어, 옷과 머리칼만 아니었다면 루인인 걸 절대 알아보지 못할 지독한 모습이었다.
“아, 아니야. 아니야… 잘, 됐어, 오히려 잘…… 허억.”
머리를 붙잡고, 눈을 부릅뜬 채 모스가 중얼거렸다.
“나, 나… 너는, 그랬어. 모, 못됐어. 나를 죽이려고 들고, 때리고 괴, 롭히고, 나를, 내 목을, 졸랐어. 다리도 부, 부러뜨렸고 목도 찔렀고, 그러니 너는… 주, 죽어 마땅해.”
헐떡이면서 계속.
“자, 잘된 일이야. 그러니 네가 이렇게 주, 죽은 건 잘된 일이야. 나, 나는… 숲으로 돌아가서 내 소, 소중한 보금자리에서 너, 너 같은 징그러운 이, 인간 없이, 혼자- 혼자….”
혼자…….
모스는 그 부분부터 말을 잇지 못했다. 혼자 남는다. 혼자 그 숲에 도로 돌아간다.
혼자, 아무도 없이.
다시 그 환각초에 둘러싸여 인간들의 발자국을 훔쳐보며, 인간들의 시체를 흙에 묻으며, 햇빛을 피해 몸을 바짝 풀 밑으로 엎드려 숨으며, 그렇게 다시 혼자…….
-돌아가자.
아. 머리가 아프다. 모스는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벌벌 떨었다.
왜 하필 지금 그의 말이 떠오르는 걸까. 돌아가자며 자신에게 손을 뻗던 절벽 위에서의 그, 흩어지는 햇살처럼 허공을 가르며 빛나던 그의 백금발, 등불에서 가장 밝은 부분처럼 타오르던 눈, 살짝 찡그린 코끝, 그 모든 게 합쳐진 그의 얼굴이….
“아니? 새, 생각하지 마. 잘된 거야. 자, 잘됐어.”
모스가 미친 듯이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며 중얼중얼 읊조렸다.
“잘됐어, 잘됐어. 아주 자, 잘됐어. 네, 가 죽어서, 다행이야, 네가 죽어서 다행이야, 잘됐어. 잘…….”
모스는 머리를 양손으로 꽉 붙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네가 주, 죽기를 기도했어. 주, 죽어서 다행이야. 죽어서. 다행이야, 죽어서, 다행, 다행이야. 죽어서……잘, 됐어…….”
잘됐다는 걸 되뇌지 못하면 죽는 이처럼, 계속.
하지만 그럼에도 두통은 나아지지 않았다.
비릿한 피 냄새 때문일까.
모스는 눈을 감은 채 바닥을 더듬거리다 붙잡힌 루인의 옷을 낚아채듯 집어 들어 제 코에 박았다.
비록 피로 축축하게 젖어 들어 원래의 냄새보다 피 냄새가 더 짙었지만, 그의 기민한 코는 옷에 남겨진 루인의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모스는 루인의 냄새를 깊게 들이마시었다. 더 깊게, 폐부에 가득 차게.
그러자 신기하게도 두통이 잦아들었다. 방금까지 머릿속을 헤집던 두통이 잠잠해지며, 평온해지는 것에 모스는 일그러진 미소를 유지한 채 읊조렸다.
“거, 거봐. 나는 괜찮아.”
모스는 아예 그의 옷에 제 얼굴을 처박았다.
“아, 안 울어. 나는 울지 않았어.”
모스는 그리 말하며 제 얼굴을 더듬었다.
물기 대신 비릿한 피만이 치덕치덕 묻어 있었다. 그는 툭 하면 눈물을 흘리는 자신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루인의 죽음 앞에서, 그는 울지 않았다.
“그러니까 난 괜찮…….”
한데, 모스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루인의 옷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던 그때, 무언가가 코끝에 걸린 것이다.
단추? 하나 단추라고 하기엔 너무 둥그렇고 크며 이질감이 있었다.
돌? 하나 그러기엔 느낌이 익숙했다. 아니, 알고 있던 것이었다. 한때 닳고 닳도록 만진 적이 있던 것처럼.
‘하지만 그게 있을 리가 없지.’
그러나 그걸 떠올리자마자 모스는 제가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다는 양 코웃음을 쳤다.
그게 왜 여깄겠어? 그건 지금쯤 아무도 모르는 구석에서 먼지와 함께 굴러다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닐 것이다, 그리 읊조리면서도 모스의 손은 부지런히 겉옷을 뒤적였다. 그리고 옷 안쪽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무언가를 손에 꺼내 들었다.
천에 소중히 여러 겹으로 감싸여진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이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아주 납작한 것.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갈색에 얼핏 돌멩이처럼 보여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돌 같은 것. 하지만 모스는 그걸 보고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억지로 들어 올렸던 입꼬리가 축 내려앉았다. 가까스로 떨리지 않게 붙들고 있던 두 손도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루인의 안쪽 주머니에 나온 것은, 모스가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던.
“이게, 네게, 왜?”
유일하게 남은 붉은 열매 씨였다.
-먹어.
기억을 잃기 전, 둘이 함께 지내던 숲에서 루인은 붉은 열매를 가져와 모스에게 종종 먹였다. 모스는 그 열매들 중 몇 개는 먹지 않고 몰래 숨겨 두었는데, 결국 열매인지라 나중엔 썩어 씨로 변했다.
그것들은 모스에게 있어서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었고,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으려던 소중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모스는 루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아끼던 보물들을 담아 둔 함을 인간 의원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고, 그때 붉은 열매 씨들도 전부 의원에게 넘어갔다.
그곳에서, 단 하나의 씨를 빼고.
그렇게 둘 사이에 남은 건 씨 하나를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붉은 열매 씨는 모스에게 유일하게 남은 루인과의 추억이자 전부였다. 기억을 잃은 루인의 앞에서 몇 번이나 무너지려고 했을 때, 그를 지탱해 준 것도 숲에서 가져온 붉은 열매 씨였다.
하나 루인은 과거를 떠올리는 것을 싫어해서, 모스는 그에게 들키지 않게 침상 밑에 숨겨 놓고, 너무 힘들 때만 꺼내서 몰래 보았는데.
‘이게 왜 여기 있지?’
대체 이게 왜 루인의 옷에서 나온 것인지, 게다가 과거를 어떻게든 털어 내려던 그가 이걸 버리지 않고 왜 갖고 있었는지. 의문이 가득 차던 그때.
“……아.”
모스가 머리를 붙들었다. 갑자기 눈앞이 핑 흐려지면서 무언가가 불쑥불쑥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몸은 그걸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연신 충돌하는 것에 모스가 너무 아파서 비틀거리다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아아.”
얼굴을 처박고 끙끙대는데, 목뒤로 자꾸만 비릿한 것이 꿀렁꿀렁 넘어가는 느낌에 눈을 휘둥그레 뜬 그가 본능적으로 턱 부근을 더듬었다.
“……피?”
코에서 피가 미친 듯이 흐르고 있었다. 도저히 어찌할 도리도 없이 흐르는 코피, 그리고 엄청난 두통까지.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할 엄청난 고통에 모스가 입을 벌린 채로 꺽꺽거렸다. 그때…….
-지금 이게.
순간, 모든 아픔이 사라졌다.
-뭐 하는 짓이지?!
코앞에 있는 루인의 얼굴이 지나칠 정도로 생생했다. 모스는 멍하니 있다 시선을 내려 손을 보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시체를 뒤적이던 게 맞는지 피로 절은 손은 없고 마냥 희었다.
‘내가 지내던 방?’
게다가 장소는 어떻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은 루인과 함께 지내던 방 안이었다.
‘난 원래 절벽에 있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영문을 알 수 없던 그때.
『너는 평생을 망각 속에서 인간들에게 쫓기는 괴물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가 모스의 귀에 속삭였다.
모스는 고개를 퍼뜩 들었으나, 보이는 이는 루인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하나 이는 루인이 말하는 게 아니었다. 루인의 목소리는 전혀 이런 것이 아니었으며, 입 모양도 하나도 맞지 않았다.
다만 모스는 루인이 뭐라 말하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입 모양만 보일 뿐, 소리는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고, 그저 귀에 속삭이는 소리만이 점점 커졌다.
『네 안에 갇힌 봄은 늘 태양을 탐하나, 네 하등한 육체는 망각 속에서 바닥으로, 지하로, 심연으로 숨어드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로움과 원망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겠지.』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다.
루인이 자꾸 제 몸을 붙든 채 흔들며 뭐라 말하지만, 그건 이제 점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이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여럿이 말하는 것만 같은 그 목소리만을 홀린 듯 듣게 되던 그때.
『녹았어야지.』
쿵.
모스는 심장이 순간 떨어져 내리는 줄 알았다.
『잊지 말라고 했잖아.』
쿵쿵쿵쿵.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모스는 숨을 들이켰다. 방금까지 들리던 목소리는 어디 가고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는데, 그 목소리에는 한이 가득했다.
제게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은 눈물을 담고, 한을 담아, 우짖듯 슬프게 말하는 이의 목소리는.
『그게 네 사명이니까.』
자신의 목소리였다.
자신의 목소리라는 것을 인지한 그 순간, 모스는 돌연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그리고 갈증은 번지듯 전신으로 퍼져, 온몸이 바싹 메마른 것처럼 느껴졌다.
물이 마시고 싶은 건가? 하나 이 갈증은 물로는 해갈되지 않을 것 같았다. 갈증이 있는데, 물이 소용없다니,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그의 시선에 창가가 들어왔다.
‘녹고 싶어.’
그리고 동시에 미친 듯이 갈증이 밀려왔다.
저 햇빛에 뛰어들어 녹아내리지 않는다면 이대로 전신이 메말라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모, 스!!!
달려들었다.
해로 몇 번이고, 미친 듯이.
벽이 생겨도 마찬가지였다. 몸은 햇빛이 어디에 가장 가까이 있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 계속해서 햇빛이 있는 쪽으로 달려 나갔다.
-폐하!!!
뚝, 뚜둑…….
그때 후두둑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모스는 시선을 떨구어 제 손을 보았다.
모스의 손등을 타고 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독한 혈향에 방금 까지만 해도 햇빛에 뛰어들려고 했던 모스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피?’
어리둥절해하던 모스가 고개를 들어 루인을 보았다. 방금만 해도 소리에 홀려 제대로 보이지 않던 루인의 얼굴을 드디어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루인의 모습은 그가 여태 본 적 없는 엉망인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과 목은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었고, 심지어 목덜미에는 왼쪽 귀 아래부터 깊게 파여 살점이 덜렁거릴 정도로 심각한 상처가 나 있었는데.
‘설마…….’
고개를 내려 자신의 손을 보자, 저걸 자신이 했다는 걸 알리기라도 하듯 자신의 손끝에 피와 살점이 끼어 있었다.
‘내가 했어?’
대체 이게 뭔지, 무슨 상황인지 하나도 알 수 없어 하며 당황하던 그때, 드디어 벙긋거리며 열리지 않던 입이 열렸다.
드디어 몸이 움직이는 건가 싶어 안도하며 이게 무슨 상황인지 루인에게 물으려고 했는데.
-노, 녹아야 해.
……모스는 당황했다.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결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었다.
-녹아야 해. 녹게 해, 줘.
자신이 하려던 말은 이런 말이 아닌데, 입은 자꾸 제멋대로 움직였다.
-녹게, 해 줘. 녹게 해 줘.
이윽고 다시 몸이 제멋대로 달려들었다. 그런 모스를 루인이 다시 꽉 껴안아 막았지만, 모스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껴안는 그의 등을 미친 듯이 손끝으로 파냈다. 자신의 발버둥을 막는 루인의 팔뚝의 살을 도려내 삼킬 것처럼 입을 벌려 깨물려고 들었다.
-제발 멈추십시오!!
다른 이들이 달라붙어 말렸지만, 몸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모스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루인을 향해 계속해서 손을 뻗어 상처 입혔다. 할퀴고, 살을 쥐어뜯고, 앞에 있는 이를 어떻게든 치워 버리겠다는 듯 강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루인은 묵묵히 모스를 껴안았다. 한쪽은 한없이 상처를 입히고, 다른 한쪽은 상관없다는 듯 몸을 내주니 상처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새하얀 피부에 빗금이 쳐지고, 피가 흐르고, 그 위에 다시 상처가 새겨졌다.
‘안 돼.’
모스는 이를 막고자 했다.
‘그만해.’
어떻게든 몸을 멈추려고 했다.
하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통제에서 벗어난 모스의 손톱이 다시 루인의 새빨갛게 흐르는 피 사이를 가르고 새로운 피를 흘리게 만든다.
‘제발 그만해.’
눈을 질끈 감았으나, 그럼에도 몸은 멋대로 발악했다.
그리고 한없이 녹으려고 들던 자신과 그런 자신을 한없이 붙들었던 루인의 모습이 계속 펼쳐졌다.
심지어 하루가 아니었다. 차마 며칠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길고 긴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몇 번이나, 몇십 번이나, 차마 셀 수 없는 몇 번의 아침을 맞이했다. 눈을 감았다 뜨면 하루가 지나 있었고, 전날의 상처 위로 새로운 상처가 덧그려진다.
‘대체 이게 뭐야? 이상해.’
그리고 모스는 고개를 도리질하며 부정했다. 이런 기억은 제 머릿속에 없었다.
‘네가 날 저렇게 대했을 리가 없어.’
모스가 아는 루인은 저런 인간이 아니었다. 늘 천하다며 자신을 녹이지 못해 안달이었고, 어떻게든 상처 입히려고 달려들었던 이다. 그런 천것의 생채기를 기꺼이 받아 내는 일을 루인이 할 리가 없었다.
그러니 이 모든 건 거짓일 것이다. 자신의 몸을 꽉 붙들고, 이토록 애절하게 햇빛으로 못 가게 온몸을 다해 막는 이가 루인일 리가 없다.
제가 아는 그는, 아는 그는…….
-폐하. 안 보시고 가셔도 괜찮습니까?
……갑자기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그러더니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뭐지?
새까만 암흑 속에서 모스는 눈을 부릅떴으나, 무언가에 막힌 양 눈이 제대로 뜨여지지 않았다.
손도 마찬가지였다. 손을 움직이려고 들었으나, 제대로 움직여지는 것은 어느 하나 없는 와중에 익숙한 루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게 무엇이 그리 중요하다고? 쓸데없는 말을.
냉정하기 그지없는 루인의 말.
특유의 신경질적이고 감정이 거세된 것처럼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던 모스의 몸이 우뚝 멈추었다.
그래, 이게 그다. 자신이 저 입 때문에 많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알았다.
-가지.
루인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의 걸음은 소리마저도 자비가 없었다. 늘 그렇듯 머뭇거림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 걸음은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한데, 사라졌던 발자국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잘못 들은 게 아닌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다시 루인이 들어왔고, 그게 의아한 듯 모스의 머리맡에 있던 이가 루인을 불렀다.
-폐하? 두고 가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하나 루인은 답하지 않았고, 그저 무언가를 찾는 듯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뒤적거리는 소리는 잠시간 계속되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던 것을 찾은 듯 뒤적이던 소음이 멎어 들었고, 그는 언제 들어왔냐는 듯,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방을 나가려던 그때.
-무엇을 그리 소중하게 챙겨 가십니까?
멈칫, 질문을 들은 루인이 걸음을 멈추었다. 숨 막히는 적막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그가 한동안 말없이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소중하게?
떨떠름하게 묻는 그의 말에는 아까보다도 더 긴 침묵이 더해졌다. 빼곡하게 채워지는 적막 속, 조금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루인이 말했다.
-……모르겠군.
-예?
루인은 제가 말하고도 우스운지 픽 웃었다.
-모르겠다고.
웃음이라고 할 수 없는, 자조 어린 웃음에 묻던 이도 더는 묻지 못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루인은 더는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는 듯, 아까처럼 미련 없이 방을 나섰고 문은 굳게 닫혔다.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또 멀어져서 더는 들리지 않을 그때.
-정말로 저게 무엇이길래, 저토록 소중하게 챙겨 가시는 거지.
모스의 옆에 있던, 남겨진 카를이 중얼거렸다.
-그냥 돌처럼 보이는데.
모스가 눈을 떴다.
방금 제가 보고 들었던 모든 것들이 환상처럼 사라지고, 그는 절벽 아래 현실에 도로 내던져졌다.
눈을 뜬 그의 표정은 멍했다. 그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시선을 떨구어 제가 얼굴을 파묻던 루인의 옷을 보았다. 찢어지고 피에 절여져 형체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옷일지라도, 여전히 이곳에선 그의 체향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아, 으.”
그때, 모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몸이 돌연 아프고, 너무 아팠다. 온갖 내장을 누군가가 위에서 짓누르듯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바짝 온몸을 땅에 붙이자 몸이 절로 배배 꼬여졌다.
그리고, 정말 한없이.
“흐으……?”
슬펐다.
모스가 흐린 시야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지만, 흐느낌은 멈춰지지 않았고 여전히 앞은 흐렸다. 전신이 들썩거리며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잇새로 새 나오는 흐느낌은 멈출 방법이 없어, 모스는 입을 다물려고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모스는 더듬더듬 제 얼굴을 만졌다. 아주 잠시 가져다 댄 것뿐인데, 그새 피로 얼룩진 손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흘러내리는 눈물 사이에 틈은 없었다. 얼굴을 흠뻑 적시며 비처럼 뚝뚝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떻게든 멈춰 보려고 했으나, 멈출 수 없었다.
“왜, 왜, 이래.”
모스가 어떻게든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계속 흐르는 눈물을 벅벅 문질러 닦으려고 했지만, 눈물은 오히려 새빨간 모스의 손을 적실 뿐 멈추지 않았다.
“이, 러지 마.”
무서워. 마치 고장 난 것처럼 계속 흐르는 눈물에 모스가 눈을 꽉 감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눈물은 계속 흘렀고, 흐느낌은 멈추지 않아 어쩔 줄을 몰라 하던 그때.
……툭, 모스가 무의식적으로 꽉 움켜쥐고 있던 씨가 굴러떨어졌다.
피 웅덩이 속에 잠겨 든 붉은 열매 씨.
-무엇인데 그리 소중하게 챙겨 가십니까?
씨는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보다 더 새까만 색이었고, 많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마치…….
-그냥 돌처럼 보이는데.
……돌처럼.
모스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세게 바닥에 처박았다. 갑자기 온몸이 무겁다. 너무 무거워서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저 작은 씨 하나는 증거였다.
모스가 보고 들었던 모든 게 단순 머리가 아파서 헛것을 본 게 아닌, 과거였다는 것을 알리는 명백한 증거.
저 작은 씨 하나가 제 모든 걸 짓눌러 압사시킬 것만 같이 무겁게 느껴졌다. 모스는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이마를 댄 채로 바들바들 떨다가, 이내 표독스럽게 고개를 들어 올리며 탓하듯 소리 질렀다.
“왜! 왜?!”
왜 그랬어?
모스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를 휙 돌아보고, 손도 없는 새빨간 팔뚝인지 정강인지를 모를 살덩이를 붙들고 절규하듯 물었다.
너는 나를 싫어했다.
나를 증오하고 혐오했으며 날 늘 녹여 버리고 싶어서 안달 냈다. 나 같은 천것이랑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매번 입에 달고 살았고, 내가 네 몸에 조금의 먼지를 묻히는 것조차 싫어하는 이라는 것도 알았다.
“왜 가, 가만히 있었어? 왜! 왜!!!”
그런 내가 네 몸에 상처 내는 걸 왜 그냥 내버려 뒀어? 정신이 나간 나를 왜 녹지 못하게 막았어?
막지 않을 수 있었잖아. 정신 나간 내가 녹아 버리면 너도 편하고, 행복한 길이었잖아. 근데 왜 나를 막았어? 그렇게 온몸에 흉이란 흉은 다 져서, 세상에서 제일 귀한 황제라는 인간이 왜 그랬어?
루인은 늘 모스가 숲에서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입에 올리면 죽이려고 들었다. 매번 모스에게 왜 지난 과거를 가져오냐며 괴롭혔고, 모스에게는 삶의 이유였던 숲에서의 추억을 아예 없애 버리려고 했다. 그토록 자신들의 이야기를 부정했으면서, 그랬으면서 정작 그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씨는 소중하게 가져간 것이다.
모스는 탓하듯 시체를 노려보았다.
기억을 다 찾은 너는 그 씨가 무슨 의미인지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왜 그 씨를 챙겨 갔어? 그 씨는 어떻게 찾았어? 왜 그걸 가던 길을 되돌아오면서까지 가지고 간 거야?
그리고 왜.
나를, 대신해 죽었어?
모스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루인의 시체를 보고 손을 벌벌 떨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아, 안 돼….”
그의 사지는 죄다 괴물의 입속으로 들어갔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던 것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내장은 엉망으로 튀어나와 도무지 어떻게 수습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너, 는 황, 제인데, 귀한, 사람인데.”
모스가 울먹이며 손을 움직였다. 뒤늦게 어떻게든 시체를 수습하려고 움직였으나 소용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손이 없다. 아무리 뒤적여도 제가 좋아했던 아름다운 얼굴도 없다. 아무리 헤집어도 그의 단단한 발이 없다.
“나는 괘, 괜찮은데. 너는, 이러면 이렇게 되면, 아, 안 되는데.”
자신은 루인과 달리 가장 천한 괴물이라 죽어도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천한 괴물, 인간 같지 않은데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이 드디어 죽었다며 다들 좋아할 것이지만, 루인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모스와 달리, 루인에게는 책임져야 할 제국과 사람들이 있었다.
빛 하나 들지 않는 음지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모스와 달리, 루인은 가장 빛나는 자리 위에서 사람들의 선망을 받는 이였다.
“네, 가 죽으면 안, 안 됐어. 너는 아, 안 돼. 너는….”
모스가 죽으면 그는 천한 괴물이기에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않을 테지만, 루인의 죽음은 슬퍼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전부인데…….”
그는 제 전부였다.
그를 미워했기에 쉼 없이 부정했으나, 결국 이렇게 되었다. 모스는 루인이 제 전부이자 제 세상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모스의 뺨에서 눈물이 흘렀다.
피범벅이 된 새빨간 얼굴에 눈물 줄기가 희게 자국을 새기며 뺨을 타고 흘러 턱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그게 마치 피눈물처럼 보였다.
새빨갛게 젖은 눈을 한 모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눈은 내리고, 그 눈은 모스의 바로 옆에 있는 시체 위로 쌓이고 있었다. 선홍빛으로 물들며 쌓여 가는 눈을 보면서 모스는 끝내 절규했다.
소리를 지르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제가 내뱉는 소리지만 세상에 없는 소리 같았다. 인간이기를 아예 포기한 정말 괴물이 된 것처럼 절망적이고, 듣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돋을 만한 징그러운 소리였다.
멈추고 싶었다. 제 입을 거쳐 나오는 이 징그럽고 소름 끼치는 소리를 멈추고 싶어 모스는 몇 번이나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비릿한 피 맛만 느껴질 뿐이지, 절규는 막을 수 없었다.
‘있잖아.’
내가 네게 절벽 위에서 했던 말들은 전부 거짓이 아니었다. 그건 전부 진심이었다.
네가 정말 죽어 버렸으면 좋겠고, 사라졌으면 좋겠고, 그냥 너의 존재 자체가 없어져 버리길 기원해 그리 말했다.
한데 결코, 결코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다. 이토록 살덩이로 네가 남기를 바랐던 적은 기필코 없었다. 어느 하나 성한 부분 없이 이토록 춥고 차가운 새까만 바닥에서 괴물의 먹이가 되라는 뜻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자신이 널 미워하고, 증오하고, 죽어 버리라고 소리쳐도.
“나, 는… 어떡, 해? 어떻게, 너, 없이, 사, 살아?”
세상이 사라지면, 결국 자신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스는 서서히 시체 위로 눈이 쌓여 가는 것을 보았다. 그가 숨을 한 번 내뱉으면 하늘에 떠 있는 별이 아래로 출렁, 한 번 숨을 마시면 별이 위로 출렁이는 것만 같았는데, 이제 세상은 정적일 것이다.
그 적막을 자신이 견딜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견딜 수 없다.
결국 엉망이 된 시체 앞에서 모스는 함께 무너져 내렸다.
가슴이 뜯겨 나가는 것만 같은 고통에 꺽꺽 신음을 내뱉던 그는 어느새 해가 제 위에 뜨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해가 뜬다.
하기야, 해는 뜨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이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듯 아침이 밝아 올 때면, 짙은 아침의 향을 맡자마자 그는 한시라도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햇빛을 피해야만 했다.
하나 모스는, 그걸 다 알면서도….
“…….”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머리로는 알았다. 당장 떠오르는 해를 피해 숨어야지만 자신이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저 멀리 꽃이 만개하듯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있자니, 피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더는 춥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는 그저 제 위로 떨어지는 햇빛을 바라만 보았다. 손에 씨를 꼭 쥔 채, 투명한 녹색 눈에 해를 한가득 담은 채. 그렇게, 그렇게…….
“아…….”
녹아내리는 얼굴, 몸.
모스는 눈을 감은 채, 엄청난 고통 속에서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을 말로 읊조리려고 했다.
따뜻해.
하지만 이미 입은 녹아내렸고,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아직 덜 녹은 귀가 어떠한 이의 절규와도 같은 비명을 마지막으로 들려주었지만,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귀가 녹아 버려 그마저도 정확하게 제가 들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자신은 그간 지독한 추위 속에 살고 있었고.
이제는 안식에 다다른 것임을.
***
루인은 인상을 구겼다.
아까부터인지, 아니면 그 전부터인지 웅성이는 소리가 계속 그의 귀를 간지럽혔다.
작은 기척에도 기민한 그이기에, 그는 어떻게든 눈을 뜨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이 뜨이진 않았다. 무언가에 저항을 받는 듯, 아니면 누군가가 손으로 눈을 꾹꾹 누르는 듯, 묘한 감각에 눈썹을 몇 번 꿈틀거리던 그때.
“아!”
반짝, 눈을 뜬 그 순간 외마디 외침이 들렸다.
“일어나셨다!”
“하루밖에 안 됐는데?!”
잠시 흐려졌던 시야가 선명하게 개어지며 보이는 것은 소녀 둘이었다.
그 소녀 둘이서 자신을 보며 뭐라 뭐라 말을 하는데, 이상하게 귀가 웅웅거리며 제대로 들리지 않아 답답해 루인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허…….”
그는 힘을 주어 반쯤 몸을 일으키자마자, 헛숨을 들이켜며 허리를 확 아래로 꺾었다. 내장이 다 휘저어지는 것만 같은 엄청난 고통이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움직이시면 안 돼요!”
그런 루인에게 황급히 소녀 둘이 부축하듯 매달렸다. 루인은 질색을 하며 바로 그 둘을 쳐 내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럴 힘도 없었다. 시선을 움직여 제 몸을 보니, 제대로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손과 발은 온통 천에 휘감겨 있었고, 살짝 드러난 살들도 죄다 시퍼렇게 멍이 들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여긴…… 어디지?”
목소리도 이상했다. 그 괴이한 소리에 멈칫도 잠시,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굴? 하나 이곳은 인간들이 사는 듯, 빛은 거의 없었지만 여러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분명 떨어졌는데.’
루인은 기억을 되짚었다. 절벽에서 떨어질 때, 그는 있는 힘껏 절벽에 매달리긴 했으나,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 기억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그의 사지는 살짝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고, 몸도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일어나셨군요.”
그때, 서늘한 루인의 얼굴을 보고 당황한 듯 허둥지둥 움직이는 두 명의 소녀 뒤로 나이가 있어 보이는 이가 나타났다.
루인은 그를 경계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순간 사지가 찢어지는 것만 같은 엄청난 고통이 느껴져 이내 비틀거리며 몸을 숙였다.
“팔과 다리뼈가 성치 않으시니, 섣불리 일어나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 아니면 그녀?
천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묘하게 중성적인 느낌이 드는 노인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데, 잇새로 풀 향이 났다.
“제국의 태양을 뵈어 영광입니다. 치료를 위해 허락 없이 몸에 손댄 것을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노인이 말했다. 루인은 그 말에 자신의 몸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온몸이 틈 하나 없이 천으로 감겨 있었고, 약초 향이 진동했다.
“…너희는 누구지?”
노인의 뒤로 얼핏 보아도 외모가 제국의 것이 아닌 이들 몇몇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민 것과 동시에 노인이 제가 뒤집어쓴 천을 거두어 온전히 얼굴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본 순간, 루인은 그들이 왜 추방당했는지 알 거 같았다.
“이곳에는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갈 길을 잃은 이들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노인의 이마는 새까만 점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얼핏 보았던 소녀들은 목덜미에, 기웃거리던 다른 이들 또한 자세히 보니 새까만 점들이 몸 곳곳에 있었다.
“다들 신의 저주라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노인은 그 시선을 느낀 듯, 설명을 덧붙였다. 다른 이들도 혹여나 루인의 입에서 삿된 말이 나올까, 제각기 다른 곳에 나 있는 커다란 점을 손으로 가리려고 들었다.
“그게 신의 저주 때문이라고?”
루인은 비웃었다. 과연 이들을 내몬 이들은 정말 이 점들이 신의 저주라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다. 신이 저주를 내렸는지 아닌지를 어찌 인간들이 알겠는가. 그저 자신들과 다르단 이유로, 그 점들이 흉하단 이유로 이들을 내몰아 없애 버린 것이나 다름없지.
“예. 그렇습니다. 제국은 저희가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해 추방했고, 저희는 그 이유로 여태까지 이곳에 모여 살고 있습니다.”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노인의 눈은 루인의 표정을 세세하게 살피고 있었다. 노인뿐만 아니라, 주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루인에게 무언가를 기대라도 하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루인은 이어 이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설명한 의도를 쉬이 알아챌 수 있었다.
‘제국 내에 살 수 있는 터전을 내어 달라는 소리군.’
황제를 구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들은 커다란 포상을 받게 될 것이지 않겠는가.
‘내가 황제여서 살렸군.’
루인은 이들이 순수한 의도로 자신을 살린 게 아닌 것임을 알아도,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황궁으로 돌아가면 이곳에 대해 말하겠다. 대신 내가 묻는 것에 거짓 없이 대답해.”
그리하여 그들이 원하는 말을 내뱉었고, 그러자 여태 안 듣는 척, 딴짓을 하며 귀만 쫑긋거리던 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그들은 죄다 우르르 몰려와 루인의 앞에 넙죽 몸을 엎드리며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제게 말을 계속 건네던 우두머리로 보이는 노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절벽 위로 올라가는 길이 매우 복잡해서 일반적인 경로로 갈 수 없으니, 몸이 어느 정도 나으시면 아이들을 통해 직접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루인은 그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노인이 내뱉은 저 말은 즉 원하는 바를 루인이 이루어 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루인을 내보내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나갈 수 있어!”
“제국에서 살 수 있다니-!”
그들은 벌써부터 미래를 상상하며, 서로의 몸을 얼싸안고 기뻐하고 있었다. 하나 루인은 그 모습을 보고도 감흥이 없었다. 그러기에 무표정한 낯으로 그걸 보다 여전히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노인에게 말문을 열었다.
“어쩌다 나를 구하게 된 거지?”
“이 절벽에서 떨어진 이들 중 살아 있는 이는 여태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한데, 정찰을 나갔던 이가 절벽에서 살아남은 이를 보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리하여 갔더니, 그게 사형수가 아닌, 황제 폐하시기에 모셔 왔습니다.”
노인은 계속 말했다.
“폐하를 모시고 난 이후에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들 대다수가 기사인 것으로 보아, 아마 폐하를 찾으려다 이 험악한 절벽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낙사한 것이겠지요.”
“…시체?”
“맞아요. 오늘만 해도 진짜 많은 시체들을 보았어요!”
루인이 되묻자 노인이 답을 하려고 입을 벌렸으나, 그 사이를 아이들이 비집고 들어와 신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맞아. 아깐 둘이 같이 떨어지는 것도 보였잖아.”
“아 머리 터진 시신들?”
“한 명은 옷이 좀 특이했는데, 다른 한 명은 옷이… 아니 그보다도 체구가 꽤 가늘어서 소년처럼 어려 보였잖아요.”
아이들이 신나서 말문을 열자, 주위를 기웃거리던 이들이 거들더니 이어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이곳은 매일같이 사형수들의 시체가 운반되는 곳이었기에 누군가가 절벽에서 떨어지고 시체를 발견하는 일이 흔한 일이자 일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루인은 별로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하루라.’
아까 눈을 뜨자마자, 어린 소녀들이 “하루밖에 안 됐는데.”라는 식으로 말을 했으니, 아마 하루 정도 정신을 잃은 것이겠지.
루인은 손끝에 힘을 주듯 움직이다 인상을 구겼다. 칼날을 맨손으로 붙잡은 것만 같은 서늘하고도 날카로운 감각이 손바닥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다리에도 힘을 주었다. 손보단 나았지만, 여전히 엄청난 통증이 있었다.
“소년의 머리가 터진 거였어? 이상하다, 난 소년 머리가 붙어 있는 걸 봤는데. 최근에 떨어진 시체 맞아?”
“그래. 맞다니까? 머리가 터져서 없었다니까?”
그사이에도 다른 이들은 이야기 중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시체의 모습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내가 똑똑히 기억해. 같이 떨어진 이의 머리는 없었는데, 앳되어 보이는 소년 같은 애는 머리가 있었어. 얼굴이랑 머리 색도 기억한다니까?”
“머리?”
“그래! 머리 색이 특이해서 기억나. 그게 녹색 같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보다 더 어두운…….”
루인은 한 귀로 흘리듯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이어 녹색 머리라는 이야기에 고개를 휙 들어 올렸다.
녹색 머리. 그게 흔한가? 하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건 결코 흔한 색이 아니었다. 루인은 살면서 모스처럼 그토록 선연한 녹색 머리 색을 가진 이를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하필 지금?’
또한 시기도 이상했다. 그 흔하지 않은 녹색 머리가, 하필 지금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고?
모스가 틀림없다. 모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걸 인지하자마자 루인은 전신의 피가 싹 빠져나가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폐하!”
그러나 이는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가 제아무리 하루 만에 눈을 떴을 정도로 강인한 이라고 하나 그렇다고 상처가 벌써 아물었을 리는 없었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마자 감고 있던 붕대가 시뻘겋게 물들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떡해!!”
“피가 너무 많이 흘러요.”
“제발 앉아 있으세요!”
온몸이 부러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어느 하나 안 아픈 곳이 없는 엄청난 고통에 그는 잠시 비틀거렸으나, 어떻게든 균형을 잡아 똑바로 섰다. 하지만 차라리 쓰러지는 게 나을 정도로, 버티고 선 루인의 상태는 심각했다.
잠시 비틀거렸을 뿐인데, 그의 상체는 순식간에 땀과 피로 젖어 들었고, 군데군데 상처가 터진 듯 핏물이 번져 피 냄새가 진동했다.
“진정하세요. 이대로 움직이시다간 정말 큰일 납니다.”
애초에 절벽에서 살아남아 하루 만에 눈을 뜬 것도 기적인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다니.
저게 사람인지 아니면 괴물인지 모르겠다는 듯, 모두가 경악스러운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모르며 루인을 만류해 보았지만, 루인은 기어코 똑바로 서서 방금 전 신나게 떠든 이인 로크를 응시하며 말했다.
“네가 보았다던 이의 체구는 어느 정도였지? 정확히 언제 보았고?”
로크는 멍하니 루인을 응시했다.
“내가 떨어진 직후였나? 해는? 햇빛이 혹시 그이의 위로 떨어졌나?”
여태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하던 루인이, 돌연 서슬 퍼런 기색으로 자신에게 조목조목 물어보니 말문이 막혀,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루인은 쉴 틈 없이 몰아세웠다.
“머리가 터진 게 아니라 했지. 그럼 머리가 붙어 있는 게 확실한 건가? 네가 직접 본 것인가? 빨리 말해.”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다그치듯 계속해서 말하는 루인의 모습은 참으로 괴이했다.
그의 얼굴과 몸엔 온통 깊은 상처들이 가득했고, 사지는 당장 쓰지 못할 정도였으며, 급하게 몸을 일으킨 바람에 간신히 약초로 막아 둔 상처들이 죄다 터져 피비린내가 진동했는데.
“어서.”
보기만 해도 엄청난 고통일 텐데, 그의 온정신은 오로지 녹색 머리 소년 쪽으로 기운 듯, 제 몸이 시뻘겋게 물들어 가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질문만을 해 대고 있었으니.
‘무서워.’
집요한 수준을 넘어 미친 것처럼 보이는 루인이 코앞에 다가오자 로크가 사색이 되어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무른 그때.
“로크, 빨리 대답해 드리거라!”
이를 지켜보던 노인이 호통치며 로크를 다그쳤다. 짐승의 아가리에 들어간 것처럼 벌벌 사지를 떨며 주춤거리던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노인을 보다, 이내 정신 차린 듯 넙죽 엎드렸다.
“그… 제가 본 녹색 머리 시신은, 키, 키는 이 정도로 보이고, 체구는 꽤 작은 편이었습니다. 머리 색은 노, 녹색이 분명했고, 피부는 피로 절여져 있어 자세히는 못 보았지만, 하얗고….”
“위치는.”
“떨어진 위치는 폐하께서 떨어졌던 곳에서 별로 멀지 않습니…… 폐하!”
이어 대답을 하던 로크를 포함한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야기를 들은 루인이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 넝마 같은 몸을 움직여 동굴 입구 쪽으로 성큼성큼 향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 절벽에서 살아남은 이는 없었다. 정말 그 누구도 없었다. 한데 그 절벽에서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 하루 만에 저리 움직이다니.
그곳에 있는 그 누구도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얼어붙은 양 모두가 가만히 있는 가운데, 그 침묵을 비집고 노인이 말했다.
“로크! 네가 안내해 드리렴.”
저 엉망진창인 몸을 이끌고 거기를 간다고? 그리고 그걸 도우라고? 노인의 말에 모두가 경악했으나, 노인은 이미 동굴 입구 밖으로 나가 사라진 루인의 꽁무니를 보며 말할 뿐이었다.
“폐하를 살리는 것보다, 그 시신을 찾아 황제 폐하께 바쳐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것 같구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이런 절벽 아래가 아닌, 제국의 양지에서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권리와 터전이었다. 그것을 위해 시체를 먹는 으스스한 괴물을 뚫고 황제를 살리고자 데려왔건만, 다시 그 사이를 비집고 가야 한다니.
로크는 가기 싫었으나, 이어 노인의 단호한 얼굴과 기대 어린 사람들의 눈빛에 입을 듯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결국 몸을 일으켜 괴물이 다가왔을 때를 대비해 횃불을 든 뒤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제가 잘 따라붙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는 로크의 새까만 눈동자가 달빛에 반사되어 일순 반짝 빛났다. 동시에 관자놀이에 깊게 찍힌 새까만 점도 푸르게 빛난다.
“길을 잃을 일은 없으니, 널 믿으마.”
그리 말하며 노인도 제 얼굴에서 푸르게 빛나고 있는 점을 만지작거렸다.
노인의 말은 괜히 허세를 부리는 말이 아니었다. 점을 갖고 태어난 그들은 신묘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길눈. 그들은 어둠 속에서도 불 하나 없이 모든 길을 보고 걸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이면 이토록 내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150여 년은 거뜬히 사는 기이한 종족이었고, 다들 몸에 커다란 점이 있었다. 그 탓에 그들은 여태까지 신의 저주를 받은 존재로 핍박받으며 이 절벽으로 내몰려, 숨어 지내고 있었다.
“잘 다녀오렴.”
그렇게 로크가 루인을 따라 사라지고, 노인은 아무런 말 없이 한동안 묵묵히 그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그때, 그런 노인의 옷자락을 어린 소녀가 잡아끌며 물었다.
“할머니, 근데 왜 폐하를 그냥 보내요? 우리가 황제 폐하를 살려야, 우리한테 좋은 거라면서요. 하지만 저렇게 보내면 폐하 몸이 엄청 엄청 아파서 죽으면 어떡해요? 오히려 폐하를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맞지. 네 말이 다 맞단다.”
“하면 왜 그냥 보내셨어요? 우리를 지상으로 끌어내 줄 수 있는 중요한 사람이라면서요!”
노인은 그 얘기에 한동안 말없이 소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이어 그녀의 머리를 뒤로 한번 넘겨 주며 동굴 너머를 응시했다.
“아이야. 너는 그분의 표정을 보았니? 죽다 살아난 제 몸에는 별 감흥도 관심도 없는 것처럼 무표정하시던 그분이, 그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싹 변한 것을?”
“표정이요?”
“그래, 그 표정은…….”
노인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뜬 뒤, 제 손을 보았다. 손가락에 칭칭 감긴 천을 풀자, 뭉툭한 손가락이 드러났다. 그녀의 손가락은 끝마디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었으며 아예 도려낸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부분도 있었다.
노인은 떠올렸다. 갑작스레 찾아온 시리도록 추운 추위에 손가락이 뜯어져도, 발가락이 뜯어져도, 얼굴이 넝마가 되어도, 사지가 당장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파도.
“자신의 목숨이 다하더라도, 사랑하는 이의 시체라도 찾고자 하는 절박함이란다.”
약 300여 년 전, 그 얼어붙는 호수에 잠겨 죽은 핏줄의 손톱이라도 찾으려고 했던 그녀의 절박함을.
***
루인이 동굴을 나서자마자 본 것은 캄캄한 허공이었다. 길은 새까맸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걸었다. 그저 걸었다.
“아래에는 괴물이 나다녀서 이렇게 밝은 횃불을 들고 다녀야 합니다. 폐하, 가, 같이 가시지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모스의 마지막 행방을 말하던 로크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로크가 들고 온 횃불 덕에 사위가 조금 밝아지긴 했으나, 그건 쓸모없는 일이었다.
“어느 방향이지?”
“예? 그건 저쪽…… 폐하!”
불빛이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해서 못 걸어갈 일은 없다. 뒤에서 만류하는 목소리가 계속 들렸지만, 루인은 그저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부지런히 움직여 앞으로 나아갔다.
가는 내내 보이는 시신은 끝도 없다. 발치에 치이는 시신들, 시신이라 할 수 없는 것들. 온갖 죽고 오래된 것들에게서 나는 냄새란 역겨웠으나, 상처가 깊은지라 루인은 더 빨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피가 너무 많이 나세요! 이대로라면…….”
어느새 바짝 붙은 로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루인에게 말했다. 그의 말은 옳은 말이다.
루인도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지금 제 몸에서 비 오듯 흐르는 것이 땀이 아닌 피이며, 이 상태로 더 가다가는 그 어느 것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상관없다.”
하나, 지금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밀려오는 아찔한 고통에 순간순간 시야가 흐릿해지며 몸이 비틀거려도, 그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눈도 발치에 치이는 시신들을 집요할 정도로 훑어 내고 있었다.
‘죽진 않았을 것이다.’
루인은 생각했다. 모스는 죽여도 죽여도 살아 돌아오는 괴물이다. 그러니 이 절벽 아래에 떨어졌다고 해도 무사할 것이며, 게다가 이 절벽 아래에는 햇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니, 해에 녹을 일도 없을 것이고.
‘그리고, 이제 더는 안 녹으려 들었으니.’
또한 그는 마지막으로 모스를 절벽 위에서 보았을 때, 모스가 어떻게든 햇빛에 닿지 않으려고, 햇빛을 피해 몸을 잔뜩 웅크렸던 것을 애써 떠올리며 안심하고자 했다.
‘살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모스가 죽지는 않았을 테지만, 이상하게 루인의 감이 좋지 않았다. 모든 지표가 그가 살아 있을 거라고 말하는데, 자꾸만 생각은 이를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야 할까.
‘전쟁에 나서지 말 것을 그랬나. 아니, 치테이르를 진즉 처리했어야 했다.’
루인의 눈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황좌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게 치테이르가 제 옆을 보좌했고, 그 때문에 그에게 섭정을 맡길 정도로 그를 믿고는 있었지만 이건 별개였다.
감히 내 것을 제멋대로 건드려?
치테이르가 모스를 녹이려고 한다는 카를의 말을 떠올리자,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시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다.
“이쪽으로 오세요.”
로크가 방향을 슬쩍 틀라는 듯 조심스레 손짓했다.
“여기서부터는 피 냄새가 나는 것들은 닥치는 대로 먹는 괴물이 있는데, 이런 불은 꽤 무서워하는지라, 횃불을 든 제가 앞서서 길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제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앞서 걸으며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루인은 제 앞에서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 목덜미의 커다란 검은 점을 보고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이들은 묘하고 계산적으로 굴지만, 그게 나쁘지 않아.’
이들이 감추고 있는 게 더 있는 느낌이 들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다만 자신이 황제가 아니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선의 없이 계산으로만 움직인 행동, 하나 그럼에도 그 계산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만약 돌아간다면 셈을 잘 쳐 줄 생각이었다.
그래, 만약 돌아간다면…….
‘다시 정리해야지.’
그의 손에 절로 힘이 꾹 들어갔다.
모스는 팔다리를 잘라 내도 다시 돋아나니, 제대로 풀지 못하게 묶어 지하에 가둬 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가 해를 다시 두려워하기 시작했으니, 다시 교육한다면 이전처럼 가둬 둔 채 온전히 제게 매달리는 삶을 다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또한 신전의 말을 기억하고 들은 자들은 죄다 혀와 눈을 도려내거나 이 절벽 아래로 내던져 흔적도 없이 지워 버릴 것이다. 그 누구도, 감히 괴물이 영웅이었음을 알지 못하게 전부 죽여 버려서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만들 것이다.
그래. 다시는 그 누구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게.
“폐하.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그나저나 황제 폐하를 발견할 당시, 짙은 피 냄새에 괴물이 꼬일 수도 있어 폐하의 피 젖은 옷은 다른 시체 위에 두어 위장해 두었습니다. 혹 그 옷이 필요하시다면, 옷을 둔 곳에 들를까요?”
“…….”
“폐하?”
하나, 그런 생각은 더 할 수 없었다.
걷는 내내 아릿하던 통증 또한 일순 사라지고, 귀에 들리던 소리도 이어 싹 사라졌다. 온전한 침묵 속에서, 그저 루인의 시선은 저 멀리로 향했다.
“……햇빛이.”
이상하다.
“원래 이리 선명하게 아래를 비추나?”
이 아래는 아득히도 깊은 절벽이기에 빛 하나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야 하는 게 맞는데, 어째서인지 저 너머에서 햇빛이 이곳까지 밝게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루인의 말에 길잡이가 하늘을 보았다. 그들이 걸어오는 사이, 어느덧 해는 밝게 떠올라 사위가 밝았고, 그 탓에 절벽 아래에 있는 시체들의 모습이 노골적으로 보였다. 그것에 길잡이가 놀란 듯 말했다.
“와, 정말 드문 경우에요. 구름 하나 없이, 날이 맑을 때만 가끔 이리 깊게 내리쬐는데. 눈이 내리고 난 다음에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 어?”
하나 루인은 그이의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마치 무언가를 하늘이 가리키듯 한 줄기로 선연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정확히 말하자면 그 안에서…….
“안, 돼.”
녹고 있는 모스를 보았으니까.
그걸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 멀리 떨어지는 햇빛을 온전히 받고 있는 것을 본 로크는, 처음에는 그게 사람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건 정말 기이했다. 사람의 형태처럼 머리와 목, 그리고 굽어진 등의 모양이 확실하나, 앞부분이 도려낸 것처럼 없었다.
심지어 그건 점점 작아지기까지 했다. 누군가가 앞을 갉아먹는 것처럼 점점 작아지고 작아지기에 이를 지켜보던 로크는 당연히 제가 헛것을 본다고 생각했다.
“폐하?”
하지만 같이 있던 이는 아니었나 보다. 그는 저게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본 듯했다.
로크는 제 옆에 있던 루인이 아무런 미동 없이 가만히 있는 것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 뒤, 이내 눈을 크게 떴다.
황제의 저런 얼굴은 처음 보았다.
로크가 생각하기에 황제는 감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였다. 자신의 몸이 넝마가 되어 눈을 뜬 순간마저도 인형처럼 어떠한 감정도 싣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한이 있어도 당황하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루인은 눈을 홉 뜬 채 굳어서 저것을 넋 놓고 보더니, 이내 그 얼굴에 야차와도 같은 새빨간 분노가 일었다.
“안, 돼.”
천으로 돌돌 말린 성치 않은 손을 어찌나 꽉 움켜쥐었는지, 피는 순식간에 천을 붉게 물들이며 새 나와선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에 로크가 경악하듯 루인을 보았으나, 그는 그 고통 속에서도 자세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다만 숨 쉬는 것도 잊고, 자신의 몸이 아픈 것도 잊은 양, 한동안 멍하니 저 너머를 보다가 이어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이처럼 크게 몸을 바르작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웃기지 마, 안 돼. 네가… 감히….”
그러고는 미친 듯이 읊조리기 시작했다.
정신이 나간 듯, 웅얼거리며 믿기지 않는 이처럼 중얼거리던 그는 이어 언제 그랬냐는 듯, 땅을 박차고 뛰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뛰기 시작한 루인을 본 로크는 경악했다. 저게 죽을 고비를 넘긴 이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루인은 정말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가고 있던 것이다.
“폐하!”
뒤에서 로크가 그를 불렀으나, 루인은 들리지 않는 듯 앞만 보고 달렸다.
그의 표정은 넋이 나가 있었다. 그는 햇빛을 온전히 받는 것에 점점 가까이 갔으나, 그가 가까워짐에도 그것은 오히려 더 멀어지듯 작아지고 있었다.
이 짧아 보이던 거리가 이토록 멀었던가. 온몸이 이대로 가다간 죽겠다며 비명을 질렀지만, 루인은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맨발로 뛰어가는 그의 발에 감긴 천이 시뻘겋게 물들다 못해 시꺼멓게 변해도.
그리하여, 그가 그리 온몸을 바쳐 도달한 그곳에는…….
발 두 개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루인은 순간 말문을 잃은 듯 덩그러니 남겨진 발만을 보았다. 다만 발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를 알리는 낡디낡은 옷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 옷은 루인이 아는 이의 것이었다. 원래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인 옷이지만, 그럼에도 루인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네가 싫어.
루인은 저 옷을 입은 이가 그리 말하며, 독기 어린 눈으로 자신을 보던 모습이 마치 그림처럼 떠올랐다. 루인이 넋을 놓고 덩그러니 남은 두 발과 옷을 보던 그때, 남은 발이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발목이 녹아내려 살점이 촛농이 흐르듯 뚝뚝 흐른다.
그렇게 작아지고 또 작아져 사라질 것처럼.
“누구 마음대로.”
그 모습을 보던 루인이 짓씹듯 말했다.
웃기지 말라는 듯, 이죽거리듯 말을 하며 햇빛이 발에 닿는 걸 가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발이 녹아내리는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루인의 눈썹이 사납게 꿈틀거렸으나, 사나운 표정과 그의 행동은 달랐다.
그는 몸을 숙여, 어떻게든 발이 녹아드는 것을 막으려는 이처럼 굴었다. 햇빛에 녹아내리는, 제 손바닥만 한 아주 작은 발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온몸을 비틀어 발을 그러안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제아무리 햇빛을 가리더라도, 이미 햇빛에 녹아 버리던 중인지 녹는 건 멈추지 않았다.
루인, 그 스스로는 알고 있을까. 지금 그는 전쟁에서 제 목숨이 위태한 순간보다도 더 필사적으로 손을 내뻗고 있었다.
햇빛에 닿아 흘러내리는 발을 막고자 어떻게든 손으로 더듬어 감싸려 했지만, 손에 닿는 감각이 낯설다. 그의 손에 감기던 살결은 없고, 시체 썩은 내를 풍기며 촛농처럼 흘러내리는 발목은 이제 어느새 발등까지 녹아 있었다.
루인은 몸을 비틀었다. 몸이 비틀리며 간신히 잘 봉합해 두었던 상처들이 터져 후두둑 핏물이 그 위로 쏟아졌지만, 그는 남은 발만큼은 어떻게든 녹지 못하게 하려 했다.
‘자라날 것이다.’
루인은 제가 만든 그늘막 아래에 있는 발을 집요하게 응시했다. 모스의 육체는 햇빛에서 벗어나면 다시 재생되는 특이한 형질이다. 그러니 이리 그늘을 만들어 주면, 다시 자라날 터.
역시나 발목 위로 그늘이 생기자 발등이 녹는 게 잠시 멈추었다. 이어 마치 재생이라도 할 것처럼 표면이 부글거리기 시작했고 그에 루인의 눈에 잠시 생기가 돌려던 그때.
“-안 돼.”
그런 루인의 기대를 비웃듯, 그 발은 마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부글거리며 살점이 다시 아래로 뚝뚝 흘러내렸다. 제 몸보다 커다란 불덩이를 품은 양초처럼,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녹아내렸다.
“안 돼.”
루인은 소리치며 몸을 웅크렸다. 그 무리한 움직임에 간신히 약초로 피를 멎게 한 상처들마저도 터져, 그의 전신이 온통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전신을 피로 새빨갛게 물들이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남은 발만큼은 녹지 않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햇빛 한 점 받지 않았음에도 야속하게 발은 계속해서 녹아내렸다.
신발이라도 신는 버릇을 들였다면 달랐을까.
어차피 방 안에만 있어서 신을 신기지 않았는데, 신을 신겼더라면 어떻게든 발이 녹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안 돼, 안 돼, 안 돼-!”
대부분의 발등이 녹아내리고, 죄다 녹아내려 살점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루인은 필사적으로 그것들을 움켜쥐어 손에 쥐려고 했지만, 그것은 마치 모래 알갱이들처럼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를 유연하게 빠져나갈 뿐이었다.
그리하여 살점마저도 전부 사라졌을 때.
그의 품 안에는 모스가 입고 있던 옷을 빼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루인이 현실을 부정하듯 고함을 내지르며 옷을 움켜쥔 그 순간, 모스의 옷에서 툭 무언가가 떨어졌다. 루인의 시선이 재빨리 그곳에 향했다. 하나 바짝 긴장한 그의 시선이 떨어진 것에 향했을 때, 그는 순간 충격을 받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소중히 쥐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씨?”
씨 하나였으니까.
루인은 순간 어딘가를 한 대 맞은 이처럼 얼빠진 얼굴로 남겨진 씨를 보았다. 이건 틀림없이 이상하게 눈에 밟혀, 출정을 하기 전 가져간 씨였다.
씨를 챙겨 간 이유는 거창한 게 없었다. 그저 챙겨 가야만 할 것 같았기에 챙겨 갔을 뿐이었다.
왜 저게 눈에 밟혔는지, 왜 저것을 자신이 챙겨 가려고 했는지 설명하라고 한다면 할 수 없을 정도로, 루인 본인조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루인은 그 씨를 쥐었다. 촉감이 역시나 익숙하다.
내리쬐는 햇빛, 아무것도 없는 허공, 그리고 남은 씨. 그 자리에서 한동안 그는 넋을 놓은 채 가만히 있다가, 이어 실성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하.”
그가 피로 축축하게 젖어 든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새하얬던 얼굴이 순식간에 온통 새빨갛게 피로 물들었다.
“하하…하, 하하!”
하나 루인은 개의치 않고, 손가락을 세워 제 머리를 헤집었다. 햇빛에 부딪혀 반짝이던 그의 백금발은 새빨간 피로 젖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시원하게 입 동굴을 드러내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하하!!”
웃음은 유쾌했다. 어느 하나의 슬픔조차 묻어 있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한참을 유쾌하게 웃으며 머리를 헤집은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은 피로 절어 얼룩덜룩 변했다.
“하하하!”
마치 광인처럼, 루인은 피로 절은 아름다운 얼굴로 입을 활짝 벌려 웃었다.
로크는 그 웃음을 보고 더는 루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의 웃음은 보는 이를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엉망진창인 육체에서 뱉어 내는 피는 끝도 없이 흘러,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다 시뻘건 색으로 물들이다 못해 발치에 고였다. 하나 그런 몰골을 하고도 그는 여전히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웃기지 마. 너는 괴물이니, 죽었을 리가 없어.”
한참이나 웃음을 터트리던 루인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누구인지 모를 이에게 말을 걸듯 말했다.
“어딨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위를 배회하듯 서성이며 계속해서 뒤적였다. 그는 먼저 근처에 있던, 무언가에게 먹힌 듯 잔뜩 배가 벌어진, 보기만 해도 끔찍한 시체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지금 나오면 화를 내지 않겠다.”
그리고 그 시체를 지나쳐 어두컴컴한 응달 속에서 서성이면서도, 계속 웃으며 형체 모를 누군가를 회유하듯 말을 걸었다.
주위에는 로크를 제외하고 죽은 것들밖에 없는데, 그 죽은 것들밖에 없는 세상에서 그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빨리 나와. 내 인내가 짧은 건 네가 더 잘 알잖니.”
아마 살아 있을 누군가를 찾는 듯, 계속 말을 걸며.
“어서 나와.”
그는 그 기이한 풍경 속의 하나로 자리 잡은 채, 계속 헤맸다. 그런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피로 얼룩진 발자국이 생겼다.
그럼에도 그는 헤매고, 또 헤매고, 헤맸다. 절벽이 죄다 제 피로 물들어도 상관없다는 듯.
“어서!”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상냥함을 흉내 낸 듯한 목소리는 거칠어졌다.
“빌어먹을 괴물, 나오라고 했지?”
루인은 더는 웃지 않았다.
모스의 옷을 든 채로, 불안하고 초조한 낯으로 그 주위를 서성이며 계속해서 썩은 내를 풍기는 시체들을 뒤적이며 말을 하고.
“또 처맞고 싶어서 이래? 빨리 나와. 죽여 버리기 전에-!”
이어 거칠게 욕을 짓씹으며 사나운 기세로 날뛰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크는 광인처럼 날뛰는 루인을 보고 더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찌 저 모습을 감히 귀한 제국의 황제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구의 것인지 모를 낡아 빠진 옷을 들고, 피로 범벅이 되어. 썩은 내를 풍기며, 새하얗게 질린 그를.
누가 감히 황제라 여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눈?”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진다.
새하얀 게 떨어져 루인과 로크 사이에 내리기 시작했다. 로크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요 며칠 폭설이 내렸건만, 또 눈이 내리는 걸까? 절벽 아래에는 눈이 내리면 유독 더 추워져 고생인데……, 그리 생각하며 로크가 하늘을 응시한 그때.
“말, 도 안 돼.”
로크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들 사이로 흐르듯 내리는 것은 눈이 아니라, 꽃잎이었다.
고개를 바짝 들어 보니, 저 멀리 녹음이 얼핏 보이며, 시체 썩은 내 틈으로 향기로운 꽃 냄새가 난다.
“꽃이 피었어.”
그간 꽃을 피우지 못했던 긴 세월에 항의라도 하듯, 활짝 만개한 꽃들이 바람을 만났다.
그 바람을 못 견딘 꽃잎들이 손짓하듯 하늘하늘 떨어지며 아래로, 더 깊은 아래로… 지하라고 할 수 있는 이 시체 산이 쌓인 절벽 바닥까지 내리고 있었다.
“와…….”
그간 쌓인 눈과 시체의 흔적을 덮듯, 그렇게 한가득 떨어지는 꽃잎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로크가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이는 제가 결코 살아생전 보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풍경이었다.
흩날리는 눈이 아닌 흩날리는 꽃잎, 살갗이 에일 듯 강하게 불던 칼바람 대신 순풍, 한기를 가르는 햇빛이 아닌 포근한 공기를 휘감는 햇빛.
“봄이야.”
여태 단 한 번도 이 땅에서 겪어 보지 못했지만,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봄이다!”
환희롭다.
저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마 이 화창한 날씨를 그새 알아챈 그들의 동족들이 동굴에서 뛰어나와 생전 처음 보는 봄을 맛보고 있는 것이리라.
지상도 직접 보진 못했지만 상황은 훤할 것이다.
제국은 늘 이 저주 같은 추위에 여유를 잃고 살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이리 봄이 활짝 만개한 지금, 모두가 두꺼운 옷을 벗어 던지고 온전히 맨살로 봄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던 그때.
“…폐, 하?”
로크의 시선 끝에 루인이 걸렸다.
루인은 움직임 없이 하늘을 보고 있었는데, 그 표정은 환희와 달랐다.
화사해진 날씨, 이를 알리듯 만개한 꽃들과 환희에 가득 찬 세상 속에서 그는 우두커니 서서 흩날리는 꽃잎들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한참 동안 넋을 놓은 듯, 그 광경을 바라보던 그는 더는 누군가를 찾으려고 들지도, 소리치지도 않았다.
그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읊조릴 뿐이었다.
“기어코.”
그는 명백히 절망하고 있었다.
봄이 와서.
***
나는 신을 증오한다.
루인은 누군가가 신을 믿냐고 그에게 묻는다면,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신 자체를 증오한다고 답할 수 있었다.
황족이 신을 증오한다니. 그건 우스운 일이었다. 애초에 제국의 황족들은 신을 사랑하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루인. 황족에게 신성력이란, 눈이 멀어도 고쳐 주고, 다리가 없다면 만들어 주고, 모든 병이란 병은 다 낫게 해 주는 것이니 우리는 기도를 드려야 한단다.
루인의 어머니는 어린 루인의 손을 잡고, 신전에 기도를 드리러 갈 때면 늘 이리 말했다. 신성력이란, 황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며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황가는 신의 핏줄을 이은 자들이니까.
어린 루인은 당시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나 커 가면서 들은 바로는, 황족은 신의 피를 타고났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신성력은 평범한 제국민들에게는 그리 크게 작용하지 않았지만, 황족들에게는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엄청난 힘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실제 선대들의 기록을 읽어 보면, 신성 치료를 통해 죽다 살아났다는 내용이 있기도 했다.
-기도해야지. 그래야 우리가 완전하단다.
그런 탓일까, 황족들은 늘 초조했다. 대가 거듭되면 될수록 신성력의 효과는 덜해졌고, 그 탓에 기도와 제사를 제대로 지내지 않는다면, 앞으로 후대에는 신성력을 통한 구원은 없을 수도 있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어찌 그 고고하고 게으른 황족들이 매일같이 기도를 올리겠는가.
기도는 힘들었다. 딱딱한 바닥에서 몸을 쭈그리고 앉아 같은 자세로 몇 시간, 며칠을 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황족들의 초조함과 불안은 여전했지만, 게으름은 더해져 갔고.
-앞으로는 네가 우리 황족을 대표해 기도를 드리렴.
이 화살은 황족에서 가장 권력과 힘이 없는 자에게 향했다. 그는 당시, 반란 세력으로 누명을 써 몰살당한 외가를 둔 여섯 살짜리 황자.
-루인 윈스.
루인이었다.
그렇게 여섯 살, 어미도 잃고 아비인 황제에게도 버림받은 것이나 다름없던 루인은 수를 제대로 떼기도 전에 선황제의 압력에 의해 신전에 갇혀 강제로 기도를 올려야만 했다.
하지만 기도는 힘들었다. 기도를 올리는 동안, 신관들이 감시를 하듯 그를 둘러싸고 있었고, 바닥은 딱딱하고, 몹시 추웠으며 기도를 올릴 땐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그래서 때때로 감시라도 하듯 신전에 들어온 황족들에게 루인은 애원했다. 제발 밥을 달라고, 뭐라도 먹을 것 좀 내 달라고.
하지만.
-뭐 해. 밥을 먹고 싶다면, 제대로 기도를 올리렴.
그들은 기도를 하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들의 살은 매일같이 쪄 가는데, 루인은 매일같이 살이 빠졌다.
-멍청한 게 잠만 많아서!
기도를 올리다 졸면 맞았고.
-먹어.
밥을 먹기 위해서 하루 열 시간 이상을 기도를 올려야 했으며, 나온 밥마저도 짐승들이나 먹을 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루인에게는 소중한 한 끼였다. 잔뜩 굶주린 루인은 그의 앞에 나온 식사를 매번 짐승처럼 맨손으로 퍼먹었다.
-예절도 못 배웠니?
맨손으로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루인을 보며 황족들은 헛구역질하곤 그의 예절을 지적했다.
하나 뼈도 제대로 안 자란 어린 시절부터 신전에 갇혀 기도만을 올린 그가 예절을 알 리가 있을까?
-쯧, 게으른 제 어미 태생을 꼭 닮아서는. 너도 그 집안사람들처럼 매질 당하다 죽고 싶은 게 틀림없지.
그뿐인가. 감시역으로 종종 들르던 황족들은 루인이 잠시 쉬려고 하는 참이면, 귀신같이 나타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몰살당한 그의 외가 쪽을 들먹이며 때렸다.
때로는 황제에게, 때로는 황제의 부인들에게, 때로는 형제에게.
그들의 폭력은 나중에 심해지다 못해, 가혹 행위라고 부를 만한 것들로 발전했다.
가히 인생을 죄다 신전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던 루인은 매일 그곳을 도망치고 싶었다. 그는 맞을 때면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살려 주세요, 제발 이곳에서 꺼내 주세요, 라며 신에게 그리 수도 없이 말했다.
하나 신은 응답이 없었다. 제 신전에서 그토록 수많은 가혹한 행위들과 폭력이 있었음에도 매번 응답하지 않았고.
-앞으로 네가 봄의 기원 제사를 지내.
황족들은 더더욱 그를 몰아세우다 못해, 이젠 봄을 돌려 달라는 기도와 제사마저도 루인에게 맡겼다.
루인은 그 순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전쟁을 선택했다.
쇠락한 제국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많이 일어났는데,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황족들이 출전해야만 했다. 하지만 전쟁이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 당연히 모두가 기피하고 꺼려 하는 곳이건만, 그 자리를 루인이 가겠다고 자원한 것이다.
-네가 간다고?
처음에 선황제는 비웃으며 이를 묵살했지만, 전쟁터에 황족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날이 느껴 가고 있었다. 허울뿐인 황자라도, 병사들의 사기의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때마침 선황제는 루인의 눈에 반항기가 어리는 게 거슬리기 시작했기에, 그의 쓰임이 이 정도면 다 했다고 생각해서.
-그래, 네가 가렴.
그를 흔쾌히 전쟁터로 보냈다.
몸이 제대로 여물지도 않은 루인이 제 몸에 맞지 않는 갑옷을 질질 끌고 출전하니, 그 모습을 본 모든 황족들은 생각했다.
저 왜소하고 멍청해 보이는 황자는 틀림없이 첫 번째 전쟁에서 죽을 거라고.
하지만 루인은 무수한 승전보를 올렸다. 못 먹어 왜소했던 몸은 몇 년간 이어진 혹독한 전쟁 속에서 들짐승들을 직접 잡아먹으며 커졌고, 살기 위한 근육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무수한 소문들을 매단 채로 낡고 닳아 가던 제국의 위상을 하늘 무서운 줄 모르게 높이며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사, 살려…… 커억!
모든 황족을 죽였다.
그간 이어지는 승리로 풍요로움의 극치를 달리던 황궁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네, 네가 황제를 하렴. 나는 네가 황제가 되, 될 재목이라고 미리 생각했다, 단다!
-그럼! 무, 물론이지!
다만, 그들을 죽이면서도 루인은 의문이 들었다.
제 얼굴을 보자마자 오줌을 질질 싸는 노인네를 왜 아비랍시고 이리 무서워했을까. 이리 미친 듯이 도망칠 줄밖에 모르는 멍청한 돼지를 왜 형제랍시고 무서워했을까. 화풀이를 하듯 제가 먹을 식사에 장난질을 쳤던, 툭 치면 으스러질 것 같은 저 가는 목들을 한 황제의 부인들은 또 왜 그리 무서워했고?
‘그래 봤자 고깃덩어리들이었는데.’
루인은 황족들을 보며 무슨 감정도 일지 않았다. 억울함도, 분함도 없이 그저 무감(無感)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무감한 날들은 매일같이 이어졌다.
전쟁에 나가서 무수한 이들의 피를 뒤집어써도, 넘치는 성욕으로 밤이면 밤마다 여자들의 몸에 파묻힐 때도, 그토록 싫어하던 신전이건만 봄의 제사를 위해 이리 제 발로 기어들어 올 때도. 무감한 그에게 자극이 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그날은 봄의 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봄의 제사가 마무리되는 날, 황제는 신과 독대를 해야 한다며 늘 이틀 정도는 홀로 기도를 올려야 했다. 이는 이 제국이 설립될 때부터 있던 전통이었다.
-정말 직접 기도를 올리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엇을 신경 쓸 게 있다고.
-하지만…….
유년기에 신전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루인의 정신 상태를 걱정한 카를이 물었지만, 루인은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정말 감흥이 없었다.
신전이 편하지 않고 거부감이 들더라도, 애초에 지금은 몸의 어느 부분이 고장 난 것처럼 뭘 해도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는데.
-아무것도 안 느껴져.
그 역겨운 신성력이 제 몸에 직접적으로 닿는 것만 아니면, 괜찮고 말고 할 게 있겠는가. 그저 귀찮지만, 이 제사를 직접 행하지 않았을 때 들려올 신전의 잔소리가 더 귀찮아서 갈 뿐이었다.
-…….
막상 들어오게 된 신전은 조용했고 지루했다. 대신관 하나를 빼면 아무도 없는 이 안에서, 루인은 아무 자세로 털썩 앉았다. 이런 루인을 보며 대신관이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지만, 그는 더는 어린아이가 아닌 황제였다.
그 어린 시절처럼 몸을 옹송그리며 앉아 기도를 할 필요도, 신의 목소리를 기대할 필요도 이젠 없는 황제.
-지루하군.
그 뭣도 모를 어릴 때, 그토록 무수한 핍박 아래에서 어떻게 기도를 그리 긴 시간 동안 올린 걸까. 새삼스레 기분 더러운 어린 시절이 떠오르자, 루인은 절로 비소가 나와 피식 웃고는 이내 꼿꼿하게 등을 세운 채,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했다.
[지도자야.]
……신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눈을 가리는 풀은 겨울이 좋아, 봄을 삼킨 용사를 지키고 있으니,
밤이면 용사는 제가 삼킨 봄의 차가움에 잠 못 들고,
낮이면 용사는 제가 삼킨 봄의 뜨거움에 녹아들고…….]
그 누구도 점지하지 못한 그날, 신탁은 떨어졌다.
[뛰어난 지도자야, 네가 먹혀진 봄을 잡아 오너라,]
순수한 어린 시절에, 그는 때때로 신탁이 떨어지는 상상을 해 보기도 했으나 막상 들려온 신의 목소리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말을 한다는 느낌이라기보단,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만 같은 소리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신탁을 듣자마자 눈앞에 붓이 움직이듯 지도가 그려졌다. 그가 당장 어디를 가야 하는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까지 전부 뇌리에 새겨졌으니.
그러기에 그가 그 새벽, 이끌리듯 그곳으로 향하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기이한 환각초라는 풀로 둘러싸인 숲으로 갔고…….
-아, 안녕.
모스를 보았고.
“하, 하하.”
지금 모스는…….
“하하하, 하하!”
……녹았다.
[껍데기가 벗겨지면 봄이 오니, 껍데기를 녹여 오너라,
껍데기가 녹으면 봄이 오니, 흔적 없이 전부 녹여 오너라,
껍데기가 녹으면 얼음이 녹고, 얼음이 녹으면 봄만 남으니,
봄만 남으니 어서 뛰어라, 싱그러움을 담은 녹음을 향해,
짙디짙은 녹음을 향해, 어서 뛰어라, 쉴 틈이 없단다,]
신탁대로.
고개를 드니, 이 아득한 절벽 아래에서도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그 하늘을 꾸미기라도 하듯, 잔뜩 우거진 나무의 가지들이 살랑인다.
천연덕스럽게 피어오른 녹음.
그래. 신탁이 맞았다.
마치 신이 미리 안배라도 한 듯, 완벽하게.
모스는 녹았고, 그가 녹자마자 봄이 돌아왔다.
바닥에 잘게 언 얼음들이 녹아 물이 되었으나, 모스는 얼음과 달리 물조차도 남기지 않았다.
정말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그의 위로는 무수히 많은 꽃잎들이 축하라도 하는 양, 떨어진다.
“하하, 하하….”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웃음이 멈추지 않지?
이 모든 상황이 우스웠다. 모스가 죽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요란스레 피어오른 꽃들도 그렇고, 잔뜩 우거진 녹음도 그랬다.
어느 하나 진짜처럼 보이는 것이 없었다. 이 모든 게 헛것 같고, 그저 우스워서 그는 한참을 미치광이처럼 웃음만을 터트렸다.
사람들이 우루루 그에게 몰려올 때까지, 그렇게 우두커니 하늘을 본 채 웃음을 터트렸다.
“폐하!!”
제국의 겨울은 끝났다.
이제 제국은 지독했던 겨울에서 벗어나, 태평성대가 이어질 날만 남았다.
강대국인 제국이 아쉬운 건 계절 하나였다. 마치 저주라도 내린 듯, 살아나기 힘들 정도의 추위가 도사린 제국이었건만, 봄이 온 지금은 이제 자유로웠다. 하지만.
“봄이구나.”
기어코 봄이었다.
그토록 찾고자 하는 봄이었으나, 그에게는 이 녹음이 징그럽게만 느껴졌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꽃잎들이 역겹다. 피부로 달라붙는 따뜻한 바람에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토기에 그가 몸을 훅 숙였다.
“……욱.”
그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속에 있는 것을 게워 내고자 했으나, 나오는 것은 없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그를 지켜보던 이들 중 여럿이 놀란 듯 달라붙었지만,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루인은 그들의 손을 쳐 내듯 밀어 내며 토했다. 토하고, 또 토했다.
마치 내장이라도 뱉어 내려는 이처럼 끊임없이 구역질을 하는데, 그가 간신히 뱉어 낸 건 음식물이 아니라 핏물이었다.
새빨간 피를 그는 계속 토하고, 또 토했지만 속은 개운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그때.
그의 시선이 바로 옆 녹은 얼음이 고인 물웅덩이를 향했다.
그곳에 얼굴을 들이밀자, 일렁이는 야윈 자신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얼굴에 어느 하나 생채기가 나지 않은 곳은 없었으며, 매일같이 이어진 전쟁 속에서도 이리 뒤집어쓴 피가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온통 피로 붉어 악귀 같았다.
그리고 그 새빨간 핏물들 사이로 눈알만이 새하얗게 빛나는데, 이게 마치 금수와 다름없으니.
‘이게 나라고?’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다시 웅덩이를 바라보는 그 순간, 루인의 몸은 힘을 다했다는 듯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쓰러지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수면에는 위풍당당했던 제국 황제의 모습이 아닌, 그저 패잔병과 다름없는 나약해 보이는 이가 있을 뿐이었다.
시선이 미끄러지듯 옆을 향하더니, 이어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거봐.’
그러더니 이내 안심한 듯 눈을 휘며 웃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그의 괴물, 그의 모스를 보고.
‘안 죽었잖아.’
안심하며, 그리고 절망하며.
그림자 없는 모스의 앞에서 그리 눈을 감았다.
***
수없이 그가 보이고 들렸다. 환청으로, 환각으로, 꿈속에서도. 우습게도, 들리는 소리와 표정은 죄다 저주 어린 말뿐인데도, 반가웠다.
하지만 보여도 안을 수 없고, 탐할 수 없고, 어느 하나 자신의 것으로 그러안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리하여 그는.
“폐하!!!”
“당장 의원을 불러!!!”
……눈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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