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 길잡이 (13/21)

11. 길잡이

제국의 구석에 위치한 작은 마을. 그곳에 태어나는 이들은 어찌 된 일인지 하나같이 커다란 반점을 갖고 태어났다.

점의 위치는 다양했고, 크기도 제각각이며 모양 또한 다 달랐다. 다만 점을 갖고 태어난 이들은 참으로 이상했다. 걸음마를 뗀 그 순간부터, 모든 길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굴었다. 틀림없이 처음 가는 길인데 마치 알고 있다는 듯 거침없이 걸어 나갔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밤도 그들에겐 밝게 보여 걸어갈 수 있었다.

“괴, 괴물!”

“사람 같지도 않아!”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보기엔 이들은 그저 불온한 존재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점도 그렇고, 인간보다 느린 노화도 그렇고, 밤에 망설임 없이 어둠으로 뛰어드는 두 발도 그렇다. 결국 그들이 배척당하기 시작할 무렵.

“이곳이 ‘길눈’이 밝은 자들이 사는 곳인가?”

대뜸 그 마을에 용사 일행이 나타났다.

용사 일행은 명성이 자자했다. 그들은 몇 년 전부터 급격히 늘어난 마물의 원인이 마왕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했다. 신의 성물을 들고 나타나 마왕을 죽이겠다고 선포한 오웬, 그리고 그의 친우 셋.

고작 넷뿐이지만, 그들의 발길이 닿는 곳은 말 그대로 마물의 씨가 말랐다.

“여기서 사람 좀 데려가도 되나?”

그런 명성이 자자한 용사 일행이 이 외지고 저주받았다는 라젠타 마을에 오자, 당연히 처음에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이내 마을 사람들은 빠르게 납득했다.

하기야 어디 있는지 모를 마왕을 잡으러 가는 토벌대에, 모든 길을 알고 있다는 듯 구는 이 마을 사람들이 필요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자에 대해선 기록이 없을 걸세. 대신 토벌에 성공한다면, 보수는 톡톡히 주지.”

“기록이 없다니요?”

“당연히 기록을 못 남기죠. 당신들이 마왕의 수족이다, 괴물이다 등등 말이 도는데. 그런 이를 데려가면 저희를 지원하는 이들이 돈을 안 주면 어쩝니까?”

하기야, 마을 사람들은 조만간 자신들이 제국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제국에 커다란 점과 괴이한 능력을 가진 저주를 받은 종족이라는 소문이 꽤 널리 퍼졌음을 알고 있었다.

“청년들 중 그나마 건강하고 점이 없는 이가 있나?”

“아, 저기 작은 집에 동생이랑 둘이 사는 모리스라고-.”

“데려와 봐.”

그리하여 모리스 워커라는, 여동생과 단둘이 사는 이가 용사 일행 앞에 끌려오게 되었다.

그는 머리 색을 빼곤 외모가 지나칠 정도로 평범했다. 다만 대부분 반점이 얼굴에 발현되는 것과 달리, 그는 옆구리에 있어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다.

그런 그를 용사 일행은 한참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중 우두머리인 오웬이 더 집요하게 그를 바라보며 허리춤의 성검을 만지작거리긴 했으나,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로 하지.”

그리하여, 용사 일행은 마을에 있는 이들 중, 가장 반점이 보이지 않고, 건강해 보이는 모리스를 마지막 여정의 길잡이로 선택했다.

“모리스. 우린 이제 마왕이 보낸 마물들의 마지막 토벌까지 끝냈다. 그러니 이제 자네가 우릴 마왕에게로 인도해 줘.”

그리고 성물의 힘을 빌려 모리스에게 마왕의 존재 때문에 세상이 위험하다는 신탁의 내용을 읊어 주었고, 모리스는 비록 기록에 실리지는 않을지언정 그들에게 힘을 빌려주기로 했다.

“마왕이, 있는 곳 마, 말이죠?”

길 안내는 쉬웠다. 라젠타 마을 출신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고자 하는 곳을 떠올리면 당연하게 알 수 있었고, 그중에서 모리스는 유독 길눈이 더 밝은 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마왕에게 가는 길도 쉬이 알 수 있었지만, 조건이 있었다.

“대신 제, 도, 동생도 합류하게 해 주세요. 미, 민폐가 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없으면 동생이, 호, 혼자 있어서…….”

용사 일행은 고민했으나 마을에는 모리스를 제외하고 대체할 인력이 없었다. 하나같이 죄다 어린아이들이나 노인만 있을 뿐이라 그들은 알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합류하게 된 길잡이 모리스 워커는…….

“야 반푼이, 뭐 하냐? 빨리빨리 안 움직이고? 그래서 어디냐고.”

“네, 네에. 잠시만 시, 시간을…….”

……나였다.

***

“제때 마을에 도착하지 않으면 니 동생 먹을 건 오늘 없다?”

“알겠, 알겠어요. 미안해요. 미, 미안해요…….”

나는 커너에게 대답을 하며 길을 찾기 위해 눈을 굴렸다. 제일 가까운 마을은 이곳에서 꽤 먼데, 저들이 원하는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을까 싶었다.

불안함에 덜그럭, 내 턱이 불안하게 움직였다.

“오라버니…….”

옆에서 천으로 얼굴을 꽁꽁 가린 메리가 불안해하는 날 느끼고 내 옷을 붙드는 게 느껴졌다. 이 위험한 길에 동생을 데리고 오긴 싫었는데, 마을에 홀로 그녀를 남겨 두고 올 순 없었다.

“괜, 찮아. 답답하지? 조, 조금만 더 참아. 자, 내 손 꽉 자, 잡고.”

메리는 이마를 덮은 커다란 점이 있었는데, 용사 일행이 메리의 점을 꼴 보기 싫어하는 탓에 천으로 눈까지 가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작은 손을 살짝 힘주어 움켜쥐고, 이어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저, 저쪽에….”

“더듬거리는 거 고치면 안 돼? 듣기 싫어.”

그리 말하며 가리키자, 커너가 비아냥거렸다.

“그, 게…….”

나는 원래부터 말을 더듬지는 않았는데, 어릴 적 마을을 쳐들어온 마물에게 크게 다친 후로 이랬다.

그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턱을 다친 것인지… 아무튼 말을 계속 더듬게 되었고, 고칠 수 없었다.

“미, 미안합니다…….”

하나 그렇다고 그걸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이들과는 곧 헤어진다.

‘닷새.’

마왕이 있는 곳은 이곳에서부터 그리 멀지 않았다. 아무리 늦어도 닷새라고 머릿속에서 외치고 있기에, 이들과의 인연은 닷새 후면 끝날 터.

나는 그때까지만 길 안내만 잘하면 된다. 그러면 빈곤한 우리 마을에 저들이 약속한 돈으로 식량을 수급할 수 있고, 메리도 보살필 수 있을 것이다.

“커너, 그냥 닥치고 가.”

그때 오웬이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턱짓했다. 일행의 머리 격인 오웬이 낸 짜증에 커너도 더는 투덜거리지 못했고, 이후로 우리는 조용히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난감한 상황을 오웬 덕에 간신히 벗어난 나는 어둠 속에서도 화려하게 빛나는 그를 힐끔 보았다.

오웬의 허리춤에는 신의 성물인 단검이 들려 있었다.

나는 문득 저 단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는 저 단검을 내게 쥐여 준 뒤, 신의 신탁을 입에 담아 알려 주었는데, 그 감각이 정말 이상했다. 웅웅거리는 성물에게서 당장 내가 마왕에게로 가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달까. 내 착각일진 모르지만…….

“메리, 아, 안아 줄까?”

“아니야. 괜찮아.”

나는 시선을 내려 메리를 응시했다.

고작 열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험한 길도 곧잘 걸어 나갔다. 눈을 가렸지만, 그녀도 결국 길잡이긴 길잡이였다.

“오라버니, 이쪽이야.”

누가 알려 준 것도 아닌데, 메리는 마을을 향해 가는 길을 알았다. 나는 그녀에게 대답을 하며 뒤를 힐끔 보았다. 피곤한 낯으로 우리를 따라오는 용사 오웬과 커너, 플로이드, 아이작.

“얼른 여관에서 푹 쉬고 싶다! 아, 깜짝이야! 인기척 좀 내!! 뭘 봐?”

커너는 덩치가 크고 커다란 대검을 들고 다니는 이로, 성격은 호쾌하나 나를 싫어한다. 지금도 살짝 쳐다보니까 바로 인상을 구기지 않는가.

“여자는 좀 있으려나? 야, 아이작. 너는 좆은 서냐?”

“나는 신과 결혼한 몸인데, 무슨.”

그리고 플로이드는 여자를 좋아하는 기사이며, 아이작은 신관이다.

“길잡이.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그들을 슬쩍 보고 있는데, 오웬이 바로 나를 보고 뭐라고 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다가 끄덕였다.

“네. 고, 곧 마을인데…….”

그리 답하는 나를 보며 오웬은 대충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알고 있을까. 오웬은 때때로 굉장히 집요할 정도로 나를 바라보는데, 그 눈은 묘했다.

나를 견제할 리는 없지만, 마치 날 견제하는 것 같기도 했고, 날 지나칠 정도로 관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부럽다.’

물론 나는 그런 오웬이 부러웠다.

그는 아마 나와 마을 사람들이 받는 차별은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우리처럼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제국에서도 매우 외곽인 라젠타 마을로 와서 빈곤하게 살 일도, 그리고 저주받은 이라고 돌팔매질을 당한 적도 없었을 것이다.

‘선택받은 이.’

듣자 하니 그는 마물들이 대륙에 날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검을 주웠고, 이어 신전에서 마왕을 잡으라는 계시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계시에 이끌리듯 합류하게 된 소꿉친구 아이작, 커너와 플로이드.

마을에 다다르자 빛이 보였다. 그 빛을 받아 반짝이는 넷을 가만히 응시했다. 같은 빛 아래에 있지만, 나와는 달랐다. 그들은 타고나기를 전부 신의 축복을 받아 태어난 거 같았다.

“마을이다!”

몸에 커다란 점을 갖고 태어나 저주받은 종족이라 일컬어지는 나와는 달리, 우월하게 태어나서 세상을 지키기 위해 마왕을 잡으러 가는 그들을 어찌 내가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도, 도착했어요.”

……부럽다.

나도 만약에, 우리 종족도 만약에. 이런 능력 없이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이리 가난에 허덕이고, 멸시에 버거워하며 지내지 않아도 될 텐데. 저들처럼 저리 자유로이 농담도 치고, 기죽지 않고 살아도 될 텐데.

나는 그들을 보며 그런 생각만 했기에, 그때까지만 해도 예측하지 못했다.

저 넷이 죽고, 나만 홀로 살아남게 된다는 것을.

***

마지막 길은 험했다. 마왕이 있는 곳에 다가가는 것이 맞는지, 마물은 전례 없이 수가 많았다. 하나 아무리 많은 수의 마물들이라도 용사 일행을 이기진 못했다.

그들은 정말 신이 선택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커너의 검이 한 번 움직이면 다섯 마리의 마물의 목이 따라오고, 플로이드의 날렵한 움직임에 마물들은 꼼짝할 수도 없었고, 아이작의 기도에 쏟아지는 신성력을 견디지 못해 녹아내리고.

“죽어.”

오웬의 엄청난 기세에 몰려오던 마물들마저 흠칫할 정도였다.

용사 일행은 소문보다도 더 월등했다. 쉴 틈 없이 몰려오는 마물을 숨 하나 가쁘지 않게 처리하는 그들의 실력을 보면 절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대단했는데…….

“여, 여기까지예요.”

어차피 그런 용사 일행의 모습을 보는 것도 이제 끝이다.

나는 저 너머 보이는 동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 에. 있어요.”

길이 말하고 있다. 저 길을 걸어가면 그들이 원하던 마왕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저, 는 아래에 메리가 기, 다리고 있어서. 이제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마물이 많이 나오는 이곳에 동생을 데리고 올 수도 없는 노릇. 메리는 저 아래 마을에 두고 왔지만, 어린 그녀를 오랜 시간 동안 혼자 둘 수 없었다.

“고생했어요.”

이제 이별이었다. 플로이드가 그리 말하고, 아이작이 내게 가벼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모아 인사했다.

커너는 커너다웠다. 그때까지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은 티를 팍팍 내며 내게 인사를 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려는 듯 등을 졌고, 오웬은 아무런 말 없이 날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그, 그럼 이제 가 볼….”

“잠시만.”

가겠다며 말문을 연 그때, 오웬이 날 붙들었다. 오웬은 대뜸 내 팔을 붙들고선 뭐라 말할 듯 입을 달싹이다 이내 다물었다.

왜 이러는 거지? 의문이 서린 얼굴로 오웬을 바라보는데, 오웬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네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네가 꼭 들어야 하는 이야기야.”

“……네?”

오웬은 여행 내내 내게 사적인 말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길이 어디냐고만 묻는 게 다였는데, 돌연 할 이야기가 있다니?

어리둥절한 얼굴로 오웬을 보니, 그는 고민을 하다가 이내 못 견디겠다는 듯 입을 벌렸다.

“실은…….”

하나, 그의 말은, 이어 후두둑 비처럼 떨어지는 것에 묻혀 사라졌다.

“비?”

옆에 나란히 서 있던 플로이드가 고개를 기울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말대로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물방울이 우리의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피?”

우리는 이윽고 위에서 떨어지는 것이 빗물이 아닌 핏물임을 깨달았다.

고개를 들었다. 내 얼굴로 쏟아지는 핏물, 경악스레 뒤를 돌아보는 플로이드와 아이작의 얼굴.

“커, 너!!!”

그리고 바로 앞에서 반으로 갈라진 커너.

오웬이 비명을 질렀다. 커너는 근육질이다. 마물의 이빨에도 끄떡하지 않는 엄청난 근육질에 우리 중 가장 거대한 몸을 가진 이이건만 지금은 그리 보이지 않았다.

완벽하게 반으로 갈라진 몸, 그 사이로 뒤늦게 쏟아지는 내장들.

그걸 보며 오웬이 절규하듯 커너의 이름을 부름과 동시에 하늘이 어두워졌다. 순식간에 해가 저물더니, 어둠이 도래했다.

그 어둠 속에서 동굴을 걸어 나오는 것.

“이 순간을 기다렸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것’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마주쳤던 그 어떠한 마물과도 비견이 되지 않을 정도로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것의 목소리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형태의 것이었다. 여자도 아니며 남자도 아닌 뇌를 전율하게 만드는 그 목소리는 존재 자체만으로 우리의 목을 꽉 쥐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온통 시꺼먼 것밖에 없는 눈을 하고 이쪽을 바라보는 그것.

“나의 부활을 축하하러 온 이들이여, 어서 오너라.”

마왕.

세상의 모든 사악함을 다 가져다가 만든 것처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을 짓누르는 엄청난 악기(惡氣)가 우리를 덮쳤다. 마왕은 저 멀리서 손 한 번 움직이는 것으로 커너를 반 갈랐고, 등장만으로 세상을 어둠 속으로 가라앉혔다.

나의 몸은 그를 마주하자마자 사시나무처럼 떨려 오기 시작했다. 오웬 일행은 어떻게 저것과 싸울 생각을 한 것이지? 말이 되지 않았다. 저건 결코 인간이 싸워 견뎌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움직여야 해. 움직여…….’

도망쳐야 한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

한데, 이상하게 도망치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왜지? 여태 내게 길은 숨 쉬듯 자연스레 보였던 것인데, 도망치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니?

이런 적은 처음이라 차마 도망조차 칠 수 없어 굳어 있는 사이, 마왕인지 아니면 오웬이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은 내 느릿한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싸우기 시작했다.

다만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앞에 있는 건…….

“가져가!!”

두 다리가 없는 채로 기도하는 아이작, 쏟아지는 내장을 연거푸 쓸어 담는 플로이드.

“가져가라고!!!”

내게 허리춤에 차고 있던 성검을 내미는 오웬.

“이, 게…….”

정신이 멍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전혀 보지 못했는데, 오웬의 왼쪽 팔은 뻥 뚫린 듯 없었다.

“피, 피가-, 피가……!”

오웬, 피가 너무 많이 나요.

그리 말하고 싶었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의 온몸은 피범벅으로, 팔은 없으며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헐떡이고 있었다.

“너야!”

그런 내게 오웬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대뜸 나라는, 절규하듯 말을 쏟아 내는 오웬의 얼굴은 여태 내가 본 적 없는 것이었다.

“용사는 나 같은 게 아니라, 너라고!”

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플로이드랑 커너, 아이작은 내가 용사가 되기를 바라서 숨겼지만. 실은 선택받은 이는 너야.”

채 주워 담지 못하고 내장이 다 바닥으로 떨어진 채 죽은 플로이드, 그런 그의 옆에서 아이작은 피가 줄줄 새는 잘린 다리를 붙들고 기도를 하며 결계를 만들어 마왕을 견제하다가 나를 응시했다.

그가 이 여정에서 매번 내 눈을 제대로 못 바라본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바로 저 이유 때문이었는지 마주친 눈동자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신이 손끝으로 네가 있는 마을을 가리켰고, 거기서 성검이 널 보고 울었어!”

이어 듣게 된 오웬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사실 그들은 신에게 선택받은 용사가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줍게 된 성검으로 마왕을 해하고, 용사가 되고자 한 이들이었다.

이제 와서 염치가 없는 건 안다는 듯, 오웬이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성검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미안해.”

나에겐 그와 유대도 없고, 추억도 없다. 우린 그저 며칠 전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 다였으며, 깊은 이야기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팔 하나 없는 채로 뒤를 돈 오웬의 등,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서 두 다리가 없어도 어떻게든 기도를 올리고자 하는 아이작의 모습은…….

“아, 니. 나는 아니야.”

그들이야말로 용사였다.

나 같은 겁쟁이에 모자란 것이 용사일 리가 없었다. 나에겐 이들처럼 좋은 육체도 없고, 경험도 없으며, 담력도 없었다.

“네가 아는 길로 뛰어!”

오웬은 그리 말하며 달려들었다. 마왕은 그런 오웬을 보며 히죽거리며 웃더니 갖고 놀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는 인간을 보고 아주 재밌는 장난감을 보듯 웃는 마왕은 보기만 해도 소름 끼쳐서 미동도 할 수 없었지만.

“가!!”

기도를 하던 아이작의 외침과 동시에 내 두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도망치는 길은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 가고자 하는 길은 선명히 보였다.

마치 평생을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황금 같은 햇빛 색으로.

“……하, 아. 하아.”

길잡이.

나는 삶의 평생을 산길만을 헤매며 살았다.

마을 사람들 중에서 유독 길눈이 밝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저 내겐 사람들을 살리고자 하는 의지만이 있었다. 나와 동생을 배부르게 해 줄 고기가 있을 것이라는 길을 찾아 걸었고 아픈 이를 낫게 해 준다는 풀이 있다는 길을 찾았고, 새로 난 물길을 찾았고, 그렇게 난 평생을 길을 찾았다.

나는 길잡이니까.

“하아, 하아!!”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아이작을 지나, 오웬을 지나, 마왕을 지나, 동굴 안으로 미친 듯이 질주했다.

동굴 안은 생각보다도 더 길이 복잡했다. 개미굴처럼 온갖 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나에겐 처음부터 길이 하나밖에 없다는 듯이 하나만 보였다.

달리고, 또 달리고, 달렸다.

이리 긴 시간을 맹렬하게 달려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숨이 차지 않았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내가 태어난 것처럼 다리가 움직였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무수한 마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악기도 더해졌다. 평범한 사람은 숨을 들이켜는 것만으로도 죽을 수도 있을 법한 그런 지독한 기운이었지만, 이상하게 나의 몸은 점점 가벼워졌다.

바닥을 밟는데 밟지 않는 것처럼, 허공을 가르는 게 아닌 스며드는 것처럼, 무겁지 않게, 확실하게, 그렇게.

“찾, 았다.”

길 끝에 다다랐다.

“감히!”

그런 내 앞에, 언제 나를 쫓아왔는지 모를 마왕이 날 갈라 버릴 것처럼 손을 내밀었지만 내가 조금 더 빨랐다.

길이 보였다. 그래서 마왕의 손을 왼쪽으로 피하고, 오른손에 쥐고 있던 성검을 왼손으로 던지듯 건넨 뒤 내리찍었다.

확실한 길로, 내가 가장 잘 갈 수 있는 길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마왕의 심장으로.

저 시뻘건 심장을 찌르는 순간 마왕이 뒤로 물러서며 계속 비명을 질렀다. 그건 수십의, 아니 수만의 마물들의 소리를 합쳐 놓은 것만 같은 비명이었다.

그 소리가 너무 아찔해,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안 돼.’

힘이 풀릴 것처럼 마왕의 심장을 내리찍은 손이 덜덜 떨려 왔다. 놓으면 안 된다. 어떻게든 이걸 붙들어야 해.

나는 이를 악물고 내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를 끊어 내듯 꺼내 들어 손에 성검과 심장을 칭칭 감았다. 이 목걸이는 날 낳은 부모가 유일하게 남겨 준 것이라 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조차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저 마왕을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혼란 속에 빠질 것이다.

‘세게, 더 세게 묶어야 해!’

내 손목을 잘라 내지 않는 한, 절대 놓을 수 없게.

“틀림없이 널 죽였는데……!”

마왕은 피눈물을 흘렸다.

“마물을 보내 죽였을 텐데! 어찌 살아 있는 거지?! 아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하는 마왕의 얼굴에는 경악이 가득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그는 내게 온갖 소리가 뒤섞인 괴이한 목소리로 저주를 내리기 시작했다.

“네가 무엇을 포기했는지 아나? 너는 날 죽이기 위해, 봄을 그 빌어먹을 성검을 통해 삼켰다. 대가로 넌 평생을 망각 속에서 인간들에게 쫓기는 괴물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하나 그것을 이해할 수준은 되지 못했다. 마왕의 저주인지, 예언인지 모를 말들을 듣는 순간, 내 귀에서 무언가 터진 것처럼 웅웅거리더니 이어 뚝뚝 피가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팠다. 너무 아파서 무슨 말도 나오지 않고, 입을 벌린 채 ‘어, 어…….’만 하는데, 그때 내 눈앞에 햇빛이 비추는 길이 보였다.

마치 신이 손짓이라도 한 것처럼.

‘호수.’

선연하게 깨달았다. 지금 이 마왕의 심장을 이곳에 오는 길에 보았던 호수에 넣어야 끝난다는 것을.

나는 혼절할 것만 같은 몸을 붙들고 꾸역꾸역 걸어가다 뛰기 시작했다. 마왕은 그런 내게 직접적으로 손을 대지는 못하는지 마물들을 태어나게 만들었다. 그의 손끝에서 꽃처럼 피어난 마물들이 맹렬하게 나를 쫓았고, 그런 마물들의 뒤에서 마왕이 헐떡이며 계속해서 말을 했다.

“네 안에 갇힌 봄은 늘 태양을 탐하나, 네 하등한 육체는 망각 속에서 바닥으로, 지하로, 심연으로 숨어드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로움과 원망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겠지. 살기 위해 봄을 뱉어야 하는 것도 모르고! 망각 속에서!”

조용히 해. 시끄러워.

이 심장을 호수에 밀어 넣어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뛰었다. 생명이 닳도록 미친 듯이 뛰었다. 덤벼드는 마물들 사이로 보이는 햇빛을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간신히 동굴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광경은 처참했다.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고, 어둠 속에서 하반신이 없는 아이작이 기도하는 모양 그대로 죽어 있었고, 그 옆엔 머리가 터진 오웬의 시체가 있었다.

앞에는 반으로 갈라진 커너의 시체가, 그 옆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난도질 된 플로이드의 시체가.

“오, 라버니!!”

하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저 멀리서 동생 메리가 내게 달려오며 소리쳤지만, 내게는 오직 단 하나의 길만이 보일 뿐이었다.

호수.

“안 돼, 안 돼!”

새까만 어둠 속에서 저 호수만이 빛났다. 그리고 저 호수에 뛰어드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이것이.

“모리스 워커!”

길잡이로서의 마지막 길.

나는 호수 아래로 가라앉으며 눈물을 흘렸다. 마왕의 심장과 성검을 껴안은 채 가라앉는 내 위로, 어둠은 물러가고 해가 뜨기 시작하는 것처럼 사위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내 몸이 녹기 시작한 것이다. 몸에 뜨거운 것이 들이차는 느낌이 들며 녹아드는 것은 아주 괴로운 느낌이었지만, 더 이상 움직일 여력은 없었다.

그저 나는 마왕의 심장을 꽉 움켜쥐며 생각할 뿐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한 걸까.’

나의 생은 늘 기구했다. 저주받은 반점이 있다는 이유로 부모는 나와 메리를 버렸고, 우리 둘이서 힘겹게 살아가는 세상은 늘 가혹했다. 그러기에 나는 우리를 멸시하고 괴롭히던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오웬의 눈을 본 순간, 성검이 나를 보며 떨고 있는 것을 본 그 순간.

무엇보다도 햇빛이 내 길을 알려 주는 그 순간, 몸은 절로 움직였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느릿하게 눈이 감기는 가운데, 나는 펄떡거리는 마왕의 심장을 움켜쥐며 다음에 내가 가야 할 길을 떠올렸다.

‘두 번.’

두 번 녹아서 내 안에 갇힌 봄이 빠져나가야 한다. 그러니 절대 잊지 말자.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잊지 말라고.

하지만 이는 우스운 각오였다.

“모, 스?”

나는 고작.

“나, 는 모스?”

반쪽짜리 이름만을 가진 채, 눈을 떴으니까.

결국 나는 마왕의 저주대로, 그의 뜻대로 기억을 잃은 괴물 같은 삶을 살게 되었다. 한 번 더 녹아내리면 원래대로 돌아오는데, 그걸 알지 못하고.

그것도 몇 년이 아닌 몇십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홀로 그 숲에서 지내던 나는……

“안녕, 안녕. 나는 모스야. 나는 모스, 내 이, 이름은 모스.”

너를 만났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우습다. 나는 온전치 않은 반쪽짜리 기억과 이름을 가진 채, 어떻게 그와 사랑에 빠질 수 있던 걸까.

‘아니면 길잡이 아니랄까 봐, 빛나는 네가 길처럼 보였던 건지.’

먼 길을 돌아왔네.

햇빛에 녹아내려 내 안에 갇혀 있던 봄을 내보내고 모든 기억이 돌아오고 있는 지금, 녹는 이 순간까지도 너는 내 머릿속에서 나갈 생각이 없다.

이미 멀어 버린 나의 눈앞에, 우리의 모든 추억이 흩날리듯 스쳐 지나간다.

너와의 첫 만남, 네 숨 하나에 출렁이던 세상, 네가 끝내 내 세상이 되었던 것까지.

어느 하나 잊을 수 없고, 잊어서는 안 될 무수한 이야기들이 녹아드는 나를 붙들려고 하는 것처럼 내 발에 달라붙었다.

되돌이킬 수 있다는 듯, 이리 녹을 필요가 없다는 듯 내 발에 달라붙었지만.

‘…이제 쉬고 싶어.’

나는 원하지 않았다.

지금 너무 따뜻하거든.

“안 돼, 안 돼-!”

근데 이상하다.

그는 죽었는데. 왜 녹는 지금,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까.

그게 꽤 애달프게 들리기도 했으나, 그럴 리가 없었다. 그는 죽었고, 저런 애달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도 아니었다.

‘조용해.’

어느덧 귀가 녹은 듯, 그 목소리마저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사지가 햇빛에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 이 한 가지 생각만은 분명하게 했던 거 같다.

만약 내게 이번 생이라는 것이 또 주어진다면. 이번에는 신의 계시도, 내게 주어진 생의 목표도, 그 어느 것도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것이며.

그리고 기필코,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차피 내가 증오하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동경하고 혐오하고 사랑하는 루인 윈스는 죽었으니까. 봄이 빠져나간 텅 빈 마음을 유지하고 세상을 살다가, 그리 바람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하지만.

“루인 윈스가, 살아…… 있어?”

너는 살아 있었다.

두 눈이 멀고, 두 귀가 멀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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