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 나락 (17/21)

14. 나락

황궁의 하루는 바쁘다. 인력을 아무리 많이 구한다고 할지라도, 손이 계속 모자란 게 황궁이라더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곧 있으면 황궁에서 커다란 연회가 열릴 예정이다 보니, 이번에 들어온 사용인들의 일의 강도는 엄청났다.

“어우, 그놈의 연회가 뭐라고!”

리엘이 불평하며 끝도 없이 쌓이는 빨랫감에 비명을 질렀다. 몇몇 사용인들이 연회 준비를 위해 빠지다 보니, 인력이 말도 안 되게 부족했다.

인원은 줄었는데 궁에서 매일같이 나오는 빨래는 수도 없었고, 황제의 궁은 매우 넓어서 적은 인원으로 청소를 하자니, 끝도 없었다. 게다가 며칠에 한 번씩 황제가 침실을 바꾸다 보니, 방 청소만 해도 하루가 다 갔다.

“어휴, 냄새.”

오늘도 황제의 침실 청소가 당첨된 리엘이 툴툴대면서 피 묻은 침상의 이불을 끙끙 들어 올렸다.

리엘은 유독 이런 방 뒤처리가 많이 걸렸다. 황제가 쓰고 난 침실이나, 살인이 나서 시체만 막 치운 그런 곳. 물론 적응이 쉽지 않았다. 리엘도 처음 이 모든 걸 마주했을 때, 방을 청소하는 걸 무서워했지만 시간이 제법 지난 지금은 아니었다.

“그래도 요즘은 잠잠하니 다행이지.”

황제의 패악이라고 해야 할지, 방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무자비한 살인은 최근 들어서는 제법 잠잠해졌다.

그것뿐인가. 리엘이 건너 듣기로는 황제는 자해도 심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제법 준 듯, 의원들이 이전보다는 덜 황제궁을 들락거린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고. 야!!”

그래도 암살 시도는 여전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피를 한껏 머금은 이불을 끙끙거리며 들어 올리던 리엘이, 생각보다 무거웠는지 도와달라는 듯 그의 일행을 불렀다.

“이것 좀 같이 들…!”

“…….”

“모, 리스?!”

같이 이곳에 청소를 하기 위해 온 이는 모스였다.

모스는 대답을 하는 대신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었다. 그는 입구 근처에 서 있었는데, 마치 벽과 다름없이 느껴질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매우 희미했다.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모스의 모습에 리엘이 순간 당황한 듯 입을 벌린 채 굳었으나, 들고 있는 이불의 무게는 가히 홀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뭐 해! 나 이러다 허리 나가!!”

리엘이 새빨개진 얼굴로 빽 소리치자, 멍하니 입구에 서 있던 모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퍼뜩 들어 올렸다.

“빨리!!”

리엘의 채근에 서둘러 달려온 모스가 일을 도왔다. 간신히 침상에서 이불을 끌어내 복도로 내려 둔 리엘이 허리를 통통 두드리며 모스를 가벼이 흘겨보았다.

“또 졸았어? 너 요즘 밤마다 뭘 하길래 이래? 정신 좀 차려. 여기 황궁이잖아.”

모스는 자신을 향해 쓴소리하는 리엘의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기가 확연히 죽은 듯한 모스의 모습에 리엘이 순간 위로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꾹 다물었다.

리엘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단순히 달래 주기엔 그들이 있는 곳은 너무 위험한 곳이었다. 매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도 불안한데, 이리 정신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됐다.

「미안.」

모스가 수첩에 글을 적어서 보여 주자, 리엘의 눈꼬리가 허물어졌다.

“조심 좀 해. 요즘 황궁 사람들이 연회 때문에 정신이 없긴 한데, 황궁 밖도 영 흉흉한 게 아니라서. 굳이 연회 때문이 아니더라도, 다들 날이 잔뜩 서 있거든. 나라서 봐준 줄 알아.”

리엘은 만약 제게 피붙이 동생이 있었다면, 딱 모스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툴툴댔다. 머리 색도 똑같지, 뭘 해도 손이 많이 가지.

그래선지 모스가 생활의 반을 멍하니 있기에 일의 능률도 좋지 않았지만, 리엘은 그게 영 밉지가 않고 오히려 모스를 잘 챙겨 주었다.

「황궁 밖? 무슨 일 있어?」

그사이, 모스는 리엘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잘 모르는 듯 수첩에 글을 써 내밀었다. 그 글을 본 리엘은 모스가 말을 못 하다 보니, 사람들과 제대로 대화할 기회가 없어 요즘 파다하게 퍼진 소문도 모르는 것을 깨닫고 말꼬를 텄다.

“그니까 근래, 밖에서 매일같이 사람이 무더기로 죽는대.”

「죽어? 왜?」

“그게…….”

리엘은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에게 잔혹한 이야기를 해 줘도 되나 싶은 표정으로 머뭇거리다 혹 농땡이를 피운다며 혼날까 봐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쪽 청소 분담은 둘뿐이라, 다른 사용인들은 없었다.

“요즘 수도에서 사람들이 계속 실종되거나 시체로 발견되나 봐. 이번에 폐하를 대신해 섭정을 맡으신 카를 님도 그거 때문에, 황궁에 못 붙어 있고 계속 조사를 나가고 계신대.”

리엘이 말한 대로, 최근 수도는 굉장히 흉흉했다. 사람들은 해가 지기도 전에 문을 걸어 잠갔으며, 그럼에도 다들 불안에 떨며 잠들었다.

「시체? 실종?」

“응. 발견된 시신들의 모습도 영 이상하대서 더 난리거든. 뭐라고 해야 하나, 마치 무언가에게… 뜯어 먹힌 것처럼 보였댔어. 혹 엄청난 짐승일 수도 있다면서, 유능한 사냥꾼들도 수도로 모여들고 있대.”

여간 일이 아니라는 듯 말하는 리엘의 말투가 꽤 심각해 보여서, 베일 너머의 모스도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에 물어뜯겨? 수도?

‘혹시…….’

모스가 자세한 걸 묻기 위해 수첩을 꺼내 들어 ‘어느 정도로 심각한 일이야? 범인은 잡힐 거 같아? 실마리는?’이라고 적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엘은 대답 대신, 저 멀리서 수다를 떠는 자신들에게 경고하듯 턱을 위로 치켜올리는 관리자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야야! 여기 본다!! 아무튼 마저 바닥 닦고 있어. 나 이것들 좀 갖다 놓고 올게.”

그리 말한 리엘은 방금 밖으로 꺼내 둔 이불을 질질 끌다시피 복도를 지나 사라졌다.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진 리엘의 꽁무니를 멍하니 보던 모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물어봤어야 했는데.’

간혹 이리 답답한 상황이 생겼을 때, 모스는 괜히 말을 못 한다고 해 둔 걸 후회하곤 했다. 말을 했으면 빠르게 물어봤을 수 있었을 텐데.

모스는 홀로 복도에서 남은 뒷정리를 하다가, 고개를 느릿하게 돌려 창밖을 보았다. 어느새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그나저나 정신… 차려야 하는데….’

모스가 한숨을 내쉬며 제 손에 있는 걸레를 보았다.

리엘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이곳은 매일같이 누군가가 죽어 나가도 이상할 게 없는 황궁이며, 곧 있으면 커다란 연회가 열려 더 어수선하니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하지만 모스는 최근 무슨 일이든 제대로 집중을 못 하고 있었다. 최근 그에게 밤마다 잠을 청할 수 없었던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벌써 가야 할 시간이네.’

툭, 모스는 손에 들고 있던 걸레를 내려 두고, 청소 도구를 한쪽으로 모아 놓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텅 빈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 복장을 입은 신관이 달려오더니, 모스의 손목을 붙잡았다.

“……얘, 여기 있었니?! 요즘 따라 왜 이리 늦어!”

신관은 초조한 얼굴로 모스를 질질 끌고 가더니, 향로를 쥐여 주었다.

그러곤 정말 이번엔 시간이 촉박했는지, “시간이 없어! 곧 있으면 효과가 아예 끝나 버릴 거야! 향로는 내일 오전까지 옆방에 갖다 놓고!!”라는 말을 다다다 쏟아 낸 채, 방 안으로 모스를 밀어 넣었다.

쾅! 거센 소리를 내며 닫힌 문, 그 문 앞에서 모스는 향로를 쥔 채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향로에선 그새 연기가 나와 어느덧 발치에 고이듯 뿌옇게 일더니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나, 모스는 그 모습을 오래 볼 수 없었다.

침상 위의 앉아 있던 존재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더니 입을 연 것이다.

“오늘은 늦었네.”

고개를 든 그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이곳에 사는 이라면 누구든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두려운 듯 보던 모스는 입술을 달싹이다, 이윽고 그의 손짓에 창백해진 얼굴로 향로를 문 옆에 내려놓은 뒤 저를 응시하고 있는 인영을 마주 보았다.

“모스.”

그렇다. 그는 바로 루인이었다.

최근 모스는 밤이면 밤마다 다 쓴 향로를 교체하기 위해 신관 대신 방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분명 루인은 잠든 시간이 눈 뜬 시간보다 더 길었다. 하지만 갈수록 향의 효과가 떨어지는지 모스와 마주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모스는 이 모든 상황이 이리 끔찍하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어서 안겨.”

“…….”

“뭘 망설여?”

왜냐하면 모스가 생각하기에, 루인은.

“어차피 곧 사라질 거면서.”

자신을 환영으로 착각하고 있으니까.

팔을 벌린 채, 웃고 있는 루인을 본 모스는 정신이 아득해져 고개를 푹 숙였다. 당장이라도 도망을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왜. 성에 안 차?”

모스가 그가 원하는 대로 다가오지 않자, 그는 싸늘한 표정을 짓더니 순식간에 베개 밑에서 단검을 꺼내 제 배에 가져다 대었다. 고작 몇 초 사이에, 그새 기다란 상처가 나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하나 루인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꾹, 그가 단검을 든 손에 힘을 주자 날카로운 검날이 사정없이 상처를 길게 벌렸다. 모스는 그것을 더는 지켜만 볼 수 없었다. 그는 언제 망설였냐는 듯 단번에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그만해.”

챙그랑, 모스가 루인의 손을 붙들자 그에게 들려 있던 단도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짧은 순간에도 상처가 꽤 깊게 났는지, 피가 줄줄 흘렀다. 하지만 그는 지혈할 생각일랑 전혀 없어 보였다. 그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뻗어 제 앞에 쭈그리듯 주저앉은 모스를 단번에 들어 올리고는 틈 하나 없이 껴안은 채, 그의 목덜미에 코를 박기 급급했다.

“으응.”

이보다 더 깊게 몸이 맞물릴 수 없을 것이다. 자세가 불편한지 모스가 살짝 뒤척였으나, 루인은 아무리 모스와 깊게 닿아도 부족하다는 듯 모스의 목덜미를 잘근잘근 깨물고, 핥았다.

“……아.”

묘한 느낌에 모스가 작게 신음을 내뱉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이어 그는 제 옷 아래로 들어오는 손에 결국 얼굴을 붉히며 울먹였지만, 루인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까슬한 손은 사정없이 모스의 목을, 가슴을, 그리고 은밀한 곳까지 빠르게 훑었고, 결국 순식간에 모스는 나신이 되었다.

그렇게 벌거벗겨진 모스의 다리 사이로 루인이 자리를 잡았고, 모스는 어느새 발기한 루인의 성기 끝이 당장이라도 들어올 것처럼 자신의 비문을 훑는 것에 숨을 헐떡이다 눈을 질끈 감으며 떠올렸다.

어쩌다 두 사람이 이렇게 됐을지에 관한.

이 모든 일의 시작을.

***

그날은 모스가 루인을 처음 만난 날로부터 어느덧 열흘 가까이 흐른 날이었다.

두 사람이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황궁 사용인이 되었다고 해도, 황제를 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는 일이었고, 모스에겐 여유가 없었다. 루인을 만나지 않더라도 매일이 전쟁 같은 하루를 지냈기 때문이다.

시체, 그리고 또 시체.

황제의 상태가 나날이 심각해져 간다며 매일같이 의원들이 황제의 궁을 들락거리고, 시신은 하루 또는 이틀 간격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황궁에 들어올 수 있는 구멍이 많다 보니, 암살자들도 많이 들어왔고, 개중엔 사용인으로 위장해서 들어온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전부…….

“우욱.”

잔혹하게 죽임당했다.

모스가 입을 틀어막았다. 시체의 훼손 정도는 심각했다. 어찌나 처참한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헛구역질이 나와 입을 틀어막아야 할 수준이었다.

“……하아.”

그렇게 얼마나 헛구역질을 했을까. 한참 후에야 간신히 헛구역질을 멈춘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꼴에 인간의 몸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비위가 예전보다 훨씬 안 좋아졌다. 예전에 그는 시체를 보면 이 두 손으로 잘 묻어 주었고, 심지어 시체를 헤집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일단 마저 일을 하고, 이따가 리엘에게 자세히 물어보자.’

모스가 인상을 구겼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신경을 써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그는 낮이고 밤이고 황궁에서 일했고, 틈나는 대로 황궁에 이미 숨어 있을지 모를 마귀의 행방을 알아보고 있으니 몸이 여간 축난 게 아니었다.

잠이 부족했기에 피곤에 찌든 얼굴로 모스가 비틀거리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걸레를 집어 들고, 방 안으로 걸어가 핏물을 닦아 내기 시작했다. 핏물이 어찌나 독하게 스며들었는지, 아무리 벅벅 문질러 닦아도 색은 연해질지언정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 게 보였다.

그래, 사라지지 않는다.

-모스.

이 기억도.

지끈거리는 머리에 모스가 머리를 움켜쥐고 숨을 몰아쉬었다.

루인이 죽었기에 이번 생에서는 루인의 이름을 부르게 될 순간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가 살아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그와 자신 사이의 커다란 격차를 느껴 만나게 될 것이라 여기지도 않았고, 엮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모습은 어떤가.

-루, 인.

황궁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모스는 루인의 이름을 제 입으로 부르게 되고.

-고작 팔 하나로 이리 진짜처럼 굴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짐은 다리도 도려낼 수 있다.

그를 계속 떠올렸다.

손이 쉬자마자 그날의 모습이 또 떠올랐다.

모스는 그 기억을 억지로 지워 내듯 몸을 정신없이 움직이고자 했지만, 그 움직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더뎌졌다.

온몸을 빼곡히 채운 흉, 새빨갛게 흘러나오는 피, 처참할 정도로 너덜너덜하던 그의 몸.

떠올리자마자 또 토를 할 것처럼 속이 좋지 않은 것에 입술을 꾹 깨물고 토기를 내리고자 애쓰며, 눈을 부러 번쩍 떴다.

정신을 차리자며 차가운 물에 걸레를 든 손을 넣고 꽉 쥐어짰다. 그새 걸레에 스며든 피가 물을 탁하게 만들었고, 옷에 비릿한 혈향이 배었지만, 모스는 묵묵히 깨끗해진 걸레로 바닥의 피를 닦았다.

어제, 루인은 보통 침실에서만 난동을 피우는데 복도까지 나와 암살자들을 죽였다고 들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말도 마. 어제는 작정했는지, 수가 많아 복도에 기사들 몇몇도 습격을 받았다고 해. 그래서 폐하께서 직접 복도로 나와서…….

싹 다 죽였대.

눈도 귀도 성치 않은 그가 대체 어떻게 안 것인지, 복도에 숨어 있던 암살자들마저도 싹 다 죽이는데, 그게 평소보다도 배는 난폭해서 한 번 청소했음에도 복도는 꽤 더러웠다고 리엘이 말했었다.

‘왜 이렇게 다들 죽이려고 드는 걸까.’

황제라는 자리가 그 정도의 값어치가 있는 걸까. 하루가 멀다 하고, 루인을 죽이려고 하니.

모스는 한숨을 쉬고는 부산스레 움직이며 바닥을 벅벅 문질렀다. 확실히 여럿의 피라서 그런지, 청소를 이미 한 번 했다고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해도 해도 끝이 없다고 생각하던 그때, 모스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피를 닦던 중, 손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한데, 단순히 걸렸다고 말하기엔 컸다. 그것을 조심스레 집어 든 모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것은 피로 물든 금발이었다.

단순히 뽑힌 게 아닌, 마치 두피를 도려낸 것처럼 살점이 엮여 붙잡히는 머리카락에 모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혹,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에 모스는 그 머리카락들을 손에 든 채로 제 옆에 놓여 있던 물속에 담가서 흔들었다. 그리고 베일까지 들춰서 살펴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이건 루인의 머리카락일 수밖에 없었다.

‘또 다쳤나?’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은 불가항력이라는 단어, 그 외의 것으로 표현할 길이 없는 행위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모스가 곧바로 복도를 두리번거렸다.

때마침 기사들이 교체되는 시간인 듯, 개미조차 없는 것에 모스는 망설임 없이 어느새 해가 져 어둠 속으로 파묻힌 어둑한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다쳤길래, 머리의 살점이 너덜거리는 머리카락이 방에 있던 거지.’

물론 가까이 갈 수도 없고, 간다고 한들 이리 물을 수 없는 것도 알았지만 움직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잘 있는 루인을 봐야지, 토할 것만 같은 이 울렁거림이 멎을 것만 같았다.

‘어디로 가면 되지.’

황궁의 길은 매우 복잡했다.

게다가 루인은 암살자의 위협을 매일같이 받는 탓인지 종종 침실을 바꾸기에, 일개 청소 담당 사용인인 모스가 그의 거취를 알 리가 없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모스는 이상하게도 그의 침실이 어디인지 알 것만 같았다.

그는 개미굴보다도 더 개미굴 같은 이 수많은 방들의 끝없는 행렬 속에 있을 루인을 막연하게 찾을 자신이 있었다. 다른 이는 다 못 찾더라도, 자신만큼은 그 방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확신에 그는 걸어가고, 또 걸어가던 와중.

“……아, 저 못 갖다 놓겠어요.”

정말 싫다는 듯 칭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에 성큼성큼 걸어가던 모스의 발끝이 멈추었다.

“저번처럼 또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떡해요.”

“자네가 여태 잘 갖다 넣었잖아. 다른 이들은 라젠타 마을에서 직접 나무를 잘라 오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넌 이거라도 해야지!”

“그럼 차라리 나도 숲으로 보내 줘요! 오늘은 느낌이 별로라고요!! 꿈자리도 사나웠고!”

“쯧, 유일하게 남은 황실의 핏줄이야. 현 황제 폐하께서 돌아가시면, 더는 우리의 신성력이 통하는 황족이 없고, 그건 우리에게도 큰 손해야. 게다가 카를 경이 친히 우리에게 부탁한 일이니, 그 자리에 있던 자네가 직접 움직여야지!”

무슨 이야기이지?

자연스레 벽 뒤로 숨은 모스는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그곳에는 아주 하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있었는데, 얼핏 보아도 신관처럼 보였다.

하나는 나이가 꽤 많아 보였고, 다른 하나는 모스보다는 조금 덩치가 있고 어려 보이는 녹색 머리를 한 이었다.

“하지만…….”

“자네가 먹고 자고 기도하는 돈이 다 어디서 나온다고 했지? 어서 못 해? 치료는 직접 못 하니, 이렇게 향료에 신성력을 담아 두는 수라도 써야지 않겠나.”

“사실… 눈에 띄는 효과도 없잖아요! 그리고 이건 다른 사람을 시켜도……!”

“자꾸 말대꾸할래? 이 향로가 얼마나 귀한 물건인데, 아무한테나 맡겨! 아무튼 향로를 방 안에 넣고 나올 때까지는, 돌아올 생각일랑 하지도 말어!”

두 사람 사이에는 커다란 향로가 있었는데, 이미 향에 불을 붙여 모스가 있는 쪽까지 맡아질 정도로 연기가 폴폴 나고 있었다. 그런데, 저 향의 냄새가 꽤 익숙하다. 처음에는 저게 왜 익숙한가 싶어 눈을 끔뻑이던 모스는 이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루인의 방에서 났던 냄새가 저거구나.’

당시 루인의 방 안을 빼곡하게 매울 정도로 가득 들이찬 연기와 냄새가 똑같았다. 그때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나른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 탓인가 했는데 아무래도 평범한 향이 아닌, 신전에서 특별히 만든 것이었나 보다.

“신관님!!”

모스가 그 생각을 하는 사이, 나이가 든 신관은 피곤한 얼굴로 휙 몸을 돌려 저 너머의 복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린 신관이 그를 불러 보지만, 그는 매몰차게 자리를 떴다.

홀로 남은 그는 울먹이다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진짜 들어가기 싫은 듯 뭉그적대는 그의 앞에는 오늘따라 유독 커 보이는 문이 있었다.

‘저 사람도 머리가…….’

그 모습을 빤히 보던 모스는 문득 향을 갖다 놓아야 하는 신관의 머리도 녹색인 것을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황제에게 목을 내어 주면 무조건 죽음뿐인데, 그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녹색 머리라고 했다고!

모스는 루인의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 그 말에 대해 자세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만 루인의 방에 들어가는 신관의 머리 색이 녹색인 것을 보니, 그는 리엘이 했던 말이 마냥 거짓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사용인들도 덜 죽는다고, 녹색 머리 사용인들을 더 모집한다고 하더라. 효과가 있다는 거 같다면서.

최근 황제 궁에서 일하는 대부분 사용인들은 모스와 같은 녹색 머리들로 교체되었다.

이후 리엘을 통해 들려오는 말들로는 이전보다는 사용인들이 죽는 횟수가 월등히 줄어들었다고 얼핏 들었다.

-그게 사랑이지 뭐겠어? 눈도 귀도 거의 다 먼 사람이, 오로지 색 하나만 보고 멈추는 게?!

다만…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

리엘의 말이 맞기 위해선, 루인이 녹색 머리를 사랑했다는 말이 전제가 돼야 하는데, 그게 모스로서는 납득이 어려운 부분이었다.

‘녹색 머리를 싫어하는 것이면 모를까.’

모스가 생각하기에 잔혹한 그는 사랑이란 걸 모를뿐더러, 그 상대가 녹색 머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기에 모스는 순전히 녹색 머리와 루인의 일을 우연으로 여기려고 했었다.

마침 그런 생각에 뒷받침이라도 하듯, 신관들이 저 향은 신전에서 특별히 만든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향 때문에 루인의 광증이 우연찮게도 녹색 머리인 이들 앞에서 짧게나마 사그라든 걸 수도 있었다. 그래, 그런 거다. 그저 저 향의 효과가 좋아서…….

-모스.

모스가 숨을 들이켰다.

왜 하필 지금,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뺨에 입을 맞춘 게 떠오른 것일까. 대체 이게 몇 번째인지,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그날의 풍경과 루인의 모습에 모스는 괴로운 듯 미간을 구겼다.

“거기, 누구야?”

그때, 주저앉은 채 절망하고 있던 신관이 모스의 기척을 눈치챈 듯, 고개를 기울인 채 모스 쪽을 보며 물었다.

그제야 모스는 자신도 모르게, 루인 생각을 하다 인기척을 낸 것도 모자라, 제 옆에 기다란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보고 얼어붙었다. 아마 저 신관은 옆으로 삐죽 새어 나온 그림자를 보고 그의 존재를 알아챈 듯했다.

‘어떡하지?’

바보도 아니고, 이렇게나 허술하게 들키다니. 자책도 잠시 모스는 도망을 쳐야 할지 고민했지만, 도망을 치기에는 이미 늦었다. 신관은 벌써 모스가 있는 쪽으로 주춤거리며 다가오고 있었고, 이 복도는 지나칠 만치 길었다.

‘말을… 해야 하나…?’

들켰을 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텐데.

점점 다가오는 신관을 보며 모스가 입술을 달싹이다, 황궁 내에서는 말을 더듬을 바엔 하지 않는 게 나아 입을 다물기로 선택했던 것을 떠올리고 얼어붙었다.

‘말도 안 하고 수습할 수 있을까?’

괜히 일이 커져 불려 나가게 된다면, 여태 말을 안 한 게 문제가 되면서 더 눈에 띌 수도 있을 터.

“저기요?”

그리고 그사이, 신관은 이미 코앞에 와 있었다. 한 걸음만 더 오면 모습이 보일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모스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옆으로 툭 퉁기듯 나와서 넙죽 엎드렸다.

“아!!”

갑작스레 튀어나온 모스를 보고는 주춤이며 다가가던 신관이 놀라 소리를 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스는 넙죽 엎드린 채 연신 머리를 조아리듯 숙인 뒤, 재빨리 수첩을 꺼내 ‘잘못했어요’라고 적어 내밀었다.

“당신…….”

그제야 당장이라도 뭐라 모스를 몰아세우려는 듯 입을 벌렸던 신관의 기세가 누그러졌다. 그는 모스의 행색을 살피듯 눈을 가늘게 떴다.

“이번에 들어온 사용인들 중 하나군요?”

모스가 말을 하지 못하는 이인 것을 알아챈 것은 둘째치고, 얼굴에 뒤집어쓴 베일과 머리 색을 보고 소문이 그토록 무성히 난 녹색 머리 사용인들 중 하나인 것을 알아본 것이다.

“어디까지 들었어요?”

“…….”

모스는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몰라, 펜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분위기상 당연히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고 적어 내야 할 거 같아, 그리 적으려고 했는데…….

“다 들었구나?”

모스는 베일에 가려져 자신의 표정이 안 보였을 텐데, 어떻게 신관이 알아챈 것인지 싶어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신관은 이미 그런 모스의 생각도 다 알겠다는 듯 빙긋 웃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지?’

자신이 행동으로 온갖 티를 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모스의 등줄기에서 땀이 한 줄기 또르르 흘렀다.

“-!”

그때,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신관이 별안간 불쑥 손을 내밀어 모스가 쓴 베일을 걷어 냈다.

얼굴을 확인하려 드는 신관에 모스가 놀란 듯 몸을 크게 물리며 서둘러 베일을 잡아당겼지만 이미 늦었다. 잡아당긴 베일 틈으로 모스의 얼굴을 확인한 신관의 눈꼬리가 샐쭉 접힌 그때, 모스가 사납게 그의 손을 쳐냈다.

“아. 아프네요. 근데 얼굴 봤으니까… 뭐.”

신관은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는 듯 손을 툭 놓고,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당신이 들은 게 맞아요. 저 향은 실은 단순한 향이 아니에요. 신전에서 카를 경의 부탁을 받아, 특별히 수면 향과 섞어 신성력을 은은히 내뱉는 건데, 이 향 한 움큼이 성 하나값을 할 만큼 귀한 몸이죠. 뭐 어떻게 보면… 이게 신성 치료의 일종으로 보이기도 하겠지만.”

신성 치료라는 말에 신관이 픽 웃었다.

남들이 다 위대하다고 말하는 ‘신성 치료’라는 것은 솔직하게 말하면 별거 없었다.

그저 신관이 자신이 내뿜는 성력에 상대가 치유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는 게 다였고, 그게 예로부터 성력에 예민 반응을 보이는 황족들에겐 효과가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배는 클 뿐이었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황족들은 신관을 가까이 곁에 두었으며, 신전에 잘 보이려고 해 그들의 입지는 늘 명확하고 손에 돈이 마르는 일도 없었다.

때문에, 이번 일은 중요했다.

루인 윈스, 황제가 죽으면 더는 황실의 혈통이 없었고, 이 말은 즉 신성력이 앞으로는 황족에게 무용지물 된다는 이야기일 터.

“계속 거부를 하시니, 카를 경께서는 이런 묘책을 둔 것이겠죠.”

그러기에 이번 대 황제를 살려야 했다.

다만 상황이 영 좋지 못했다. 루인은 어린 시절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신성 치료를 거부하는 거의 유일무이한 황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의학 수준으로는 황제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건 무리이니, 카를은 은밀하게 신전에 연락했고, 신전도 뭐라도 해야 하니 일을 추진한 것이다.

“다만 황제 폐하께서 이 향에 성력이 담긴 것을 알면…….”

운이 좋게도, 루인이 아직까진 이 향로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만일 저 향에 성력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에, 신전 측에서는 매일 이리 은밀하게 향로를 운반하고 있었다.

말을 잇던 신관은 제 미래를 떠올린 양 사납게 인상을 구겼고, 그 표정에서 모스는 자신의 안위가 저 신관의 혀에 달렸음을 깨닫고 얼어붙었다.

‘죽을 수도 있겠어.’

아마 이토록 신관과 카를이 은밀하게 움직인 것을 보아, 일개 사용인인 모스가 알아서는 안 될 정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바짝 긴장한 채 신관을 보는데.

“아. 어차피 말을 못 하겠네.”

신관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네. 말을 못 하잖아. 어차피 황제는 눈과 귀도 멀어서, 애초에 네가 말을 전할 수도 없고, 일개 사용인이 쓴 글을 누가 일일이 봐 주고 믿어 줄 일도 없고. 가뜩이나 상대가 나 같은 신관이라면…….”

그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리는 동안 모스는 불안함에 눈동자를 데굴 굴리다 그새 축축해진 손을 허벅지에 문질렀다.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방향은 아닌 거 같다고 생각하던 그때.

“앞으로 네가 폐하의 방에 향로를 갖다드려.”

불쑥, 신관이 예상치 못한 말을 모스에게 내뱉었다.

향로? 넣어?

모스는 너무 예상치도 못한 말에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신관을 보았고, 신관은 더 짙게 웃으며 모스에게 말할 뿐이었다.

“아- 별거 없어요. 매일 이 시간에 오면 되고, 그냥, 음… 저 대신 지금 저 문 앞에 있는 향로를 방 안에 넣어 주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방 안에 연기가 안 나는 향로가 있다면 그것들만 갖고 나오면 끝나요.”

아무렇지 않은 듯, 아주 쉬운 일이라는 듯 말하지만,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기엔 그는 아까 들어가기 싫다고 난리를 치지 않았는가.

게다가 말하면서도 신관의 얼굴은 여전히 새하얗게 질려 있어 말의 신빙성이 없었다.

‘나보고 들어가라고…….’

모스는 신관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저 앞에 있는 문을 응시했다.

황제 궁에 있는 문답게 어느 하나 빈틈이 없이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었다. 다만 모스는 자신이 저곳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음각 하나하나가 지나칠 정도로 세세하고 소름 돋게 느껴지며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하나 그 떨림은 단순히 문의 모양 때문이 아닐 것이다.

‘저 안에는…….’

저 문 너머엔 그가 있을 것이다.

열흘간 불쑥불쑥 머릿속에 떠오른 그가.

그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혀 와, 모스의 얼굴이 경직되었고, 손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모스를 빤히 바라보던 신관도 그것을 알아채고 표정이 굳었다.

하기야 황궁에서 황제의 소문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황제는 매일같이 드나드는 암살자로 극도로 예민해졌고, 그 탓에 무고한 사용인들이 휩쓸려 죽고 있었다.

“안 갈 거예요? 그렇다면 내가 당장 당신들을 관리하는 관리인에게 가서 이번 일에 관해 물을 수밖에 없겠군요. 향로를 교체하는 시간엔 기사들은 물론이고, 사용인들도 이 층에 올 수 없는데. 당신이 쥐새끼처럼 숨어들어 기밀을 알게 되었다고요.”

모스가 들어가지 않으려는 듯 굴자, 초조해진 건 신관이었다. 그는 정말 저 안에 들어가기 싫은지, 이젠 협박 비슷한 것을 모스에게 하고 있었다.

신관이 말하는 것을 가만히 듣던 모스가 고개를 푹 숙이고 펜을 다시 힘주어 잡았다.

“…….”

신관을 대신해 저 안에 들어가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렵겠는가. 저번에 모스는 루인과 둘이 방에 남겨진 적도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그가 이토록 망설이는 건.

-모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 하나 없이 망가진 루인의 모습, 그 모습을 다시 봐야 할 생각을 하니 긴장으로 폐가 굳은 듯 절로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하겠 습니다.」

보고 싶었다.

“다 쓴 향로들은 옆방에 넣어 두시면, 이따 다른 신관들이 와서 수거할 겁니다.”

비록 루인의 모습이 온전치 못 할지라도, 이전처럼 엉망인 모습일지라도. 모스는 루인이 보고 싶었다. 특히 이리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그 충동을 이겨 내기 어려웠다.

“저는 이따가 와서 확인하겠습니다. 내일도 이 시간에 오세요. 도망가거나 허튼 수는 부리지 말아요. 난 당신 얼굴이랑 특징을 아니까.”

모스가 하겠다는 말에 초조하게 주위를 맴돌던 신관의 표정이 누그러지며, 저 말을 남기고는 언제 이곳에 있었냐는 양 서둘러 자리를 떴다.

신관이 떠난 복도에는 끊임없이 연기를 내뱉는 커다란 향로 하나와 모스뿐이었다.

‘빠르네.’

정말 이곳에 있기 싫었나 보다. 텅 빈 복도, 암흑 너머를 응시하던 모스가 제 옆에 놓인 향로를 들어 올렸다. 크기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무게가 여간내기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무거운 향로보다도, 마음이 더 무거웠다.

막상 들어가겠다고 이 앞에 서니, 왜 이리도 몸이 벌벌 떨리는지. 자꾸만 열흘 전에 보았던 피로 얼룩진 침실과 루인이 떠올랐다.

‘됐어. 지금은 아닐 거야.’

그때보다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는가.

모스는 애써 눈을 질끈 감고 지워 내듯 고개를 좌우로 젓고선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모스의 두려움을 알기라도 하듯, 문은 아주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 황궁에서 루인의 침실은 여러 개 있었고, 최근 모스는 루인이 비운 침실들을 청소하며 여러 문을 열어 보았는데 오늘만큼 무거운 문은 처음이었다.

“…….”

방은 온통 어둠과 정적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은 복도에서 쏟아진 빛이 섞여 들어가며 잠깐 사라졌다가 문이 닫힘과 동시에 다시 방을 지배했다.

눈이 적응하도록 몇 번이나 깜빡였을까.

간신히 어둠 속에 익숙해진 눈을 한 모스가 방에 발을 밀어 넣었다.

이전과 달리 방 안에는 연기가 하나 없었지만 연기보다도 시선을 사로잡은 게 있었다. 커다란 침상, 그 한가운데 아주 똑바로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는 자세를 취한 이였다.

‘잠든 건가?’

모스가 이 방에 들어오면서 긴장을 하게 만든 원인이자, 신관이 들어오지 못한 가장 큰 이유. 루인은 잠들어 있는 듯, 모스가 들어와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모스는 문 앞에 우뚝 선 채, 한참 동안 침상을 바라보다 이윽고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들고 있던 향로에서 연기가 잘게 바닥으로 쏟아지듯 일렁였다. 모스가 지나가는 자리에는 기다란 꼬리처럼 연기가 늘어뜨려졌다.

그리고 말없이 걸어가던 그의 걸음이 돌연 우뚝 멈추었다. 늘어지던 연기도, 온전히 어둠 속에 스며들어 그림자도 없어졌다.

‘…잠들었구나.’

며칠 만에 보는 얼굴인지 모르겠다. 침상 위의 주인, 루인 윈스의 얼굴은 깊게 잠들었는지 평온했다. 늘 구겨져 있던 미간은 펴져 있었고, 날을 세우기 급급했던 뾰족한 눈도 굳게 감겨 있었다.

그가 이리 무방비로 잠든 모습을 얼마 만에 보는 걸까. 살을 맞대고 살았을 때도, 몇 번 본 적 없는 모습이었던 탓에 더더욱 시선을 떼기 힘들었다.

‘몸이 더 엉망이야.’

이 향이 효과가 있는 게 맞는가? 의원들이 루인을 제대로 돌보고 있는 게 맞는가?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루인의 몸은 상처가 이전보다 더 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살은 더 빠져 있었다. 이전에도 말라 보였는데 지금은 더 빠져서 그의 굵은 뼈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을 정도로 위험해 보였다.

“아.”

모스의 시선이 그의 눈가에 향하더니 멈칫했다. 이건 언제 보아도 끔찍한 상처였다. 눈을 가로지른 기다란 상처와 흉터들은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처음 보았을 때보다는 덜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여전히 아파 보였다.

귀는… 예전에는 새빨간 피범벅이라서 놀랐는데, 지금은 피범벅까진 아니더라도,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다. 정상적인 모양이 아닌, 일부가 잘려 너덜너덜한 것을 보자니 자꾸 마음이 울렁였다.

‘머리는…….’

그러고 보니, 모스는 아까 복도에서 루인의 두피를 도려낸 것처럼 보이는 것을 발견했던 것을 떠올리고 그의 머리를 보았다. 다만 어두워서 머리 같은 경우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잠시 숨을 짧게 들이쉰 모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방 안에 있던 향로들에서 연기가 올라오지 않고 있는 것을 보아, 그것들이 죄다 명을 달리한 것을 알아챘다.

‘이쪽쯤에 두면…….’

듣자 하니, 이 향은 루인에게 해를 끼치는 건 아닌 거 같았다. 모스는 들고 있던 향로를 루인 가까이에 내려 두었고, 내려 두기 무섭게 향로에서는 연기가 치솟았다.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 동안, 방 안은 고요했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냥 단순히 루인이라는 존재가 있는 방을 들어가기가 무서웠던 걸까?

모스가 그 정적 속에서 그리 생각을 하며 허리를 편 그때, 여전히 잠든 듯 눈을 굳게 닫고 있는 루인의 얼굴이 모스의 시야에 들어왔다.

“…….”

모스는 그 얼굴을 한참이나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느릿하게 손을 뻗어 천천히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훑기 시작했다.

‘다쳤는지 확인만 할 거야.’

사심이란 없다. 스스로에게 변명이라도 하듯 그리 생각을 하며 모스는 천천히 머리 사이에 손가락을 밀어 넣고, 움직였다.

그런데 느낌이 묘했다. 상처를 찾기 위해 머리카락 사이를 더듬는 것뿐인데, 느낌이…… 이상했다. 간지러우면서도 낯선 감각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토록 긴 시간 둘이 붙어 있었으면서 모스는 단 한 번도 루인을 이리 더듬은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는 괴물인 모스보다 더 오랜 시간 깨어 있던 자였기에, 이리 무방비로 잠든 루인의 얼굴을 이토록 세세히, 그리고 이렇게 더듬으면서까지 만질 수가 없었다.

이전 생에서도 못한 걸, 지금 하다니.

인간이라는 건 이래서 좋은 거 같다. 괴물일 때는, 루인의 몸과 닿는 것만으로도 큰 죄를 지은 양, 배덕감이 몰려들었으니까 말이다.

‘지금도… 크게 다를 건 없지만.’

물론 굳이 따지자면 모스는 지금 제 처지도 그때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모스는 황궁에서 가장 낮은 사용인, 루인은 가장 귀한 황제, 둘 사이의 간극은 태생부터 좁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애써 입술을 꾹 깨문 채, 머리카락 사이를 손끝으로 헤집다가 이윽고 상처를 찾아냈다.

아무리 루인이라 할지라도, 연이은 암살자의 등장에 손끝 하나 다치지 않고 지나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른쪽 이마에서 조금 위로 올라간 자리에, 피딱지가 잔뜩 진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한 모스의 손이 잘게 떨렸다.

두피마저 도려낸 것처럼 깊게 움푹 파인 상처는 수습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네가 원하는 대로 했잖아. 이리했는데도, 안 나와? 나랑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나와. 나오라고!

모스는 루인을 재회했을 때를 떠올렸다.

하기야 루인이 늘 그런 모습으로 지냈다면, 그 누구도 그를 제대로 치료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치는 것만으로도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을 죽여 버릴 것만 같은 선득함을 내보였으니 말이다.

그는 그리 생각하며, 채 수습이 되지 않은 루인의 상처를 어떻게든 수습해 주고 싶다는 듯이 한참을 손끝으로 맴돌 듯 더듬다 문득 이 상황이 어이없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우리의 마지막은 엉망이었는데.’

너도, 나도.

모스는 서로의 얼굴에 미운 감정을 온통 쏟아 내고, 다신 마주하지 않을 것처럼 악만 남은 채 소리 지르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날이 어제처럼 생생했기에, 지금 이 마음과 상황이 더더욱 정말 이상했다.

엉망이 된 루인을 보는데, 그렇게 무섭고 힘들고 괴로웠던 일들이 사라지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자꾸만 그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들은 뒤로하고, 제일 예쁘고 좋은 기억들이 도드라져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개중 몇 개 없는 그것들을.’

모스가 루인을 원망스레 바라보았다. 돌이켜 보니 같이 지낸 시간에 비해, 루인과 있던 예쁘고 좋았던 기억은 몇 순간 없었다.

‘넌 내게 예쁜 기억을 몇 개 만들어 주지도 않았으면서.’

그렇지만 그 몇 순간 없는 기억들이.

‘내 전부를 걸게 만들었어.’

모스의 전부를 걸게 만들었다.

신은 참 잔인하고 지혜롭다. 모스는 차라리 루인이 이렇게까지 망가졌지 않았더라면, 그가 이렇게나 아프지 않았더라면, 마귀가 이쪽으로 향하지 않았더라면.

루인을 만날 일도 없었고, 이리 감정에 매몰될 일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입술을 꾹 깨물다 천천히 손을 거두려고 하던 그때.

……꽈악!

모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틀림없이 잠들었다고 생각하던 루인의 손이 모스의 오른쪽 팔뚝을 붙잡고 있었던 탓이다.

“……아!”

어찌나 세게 움켜쥐었는지 절로 신음이 튀어나왔다. 그는 잔뜩 어깨를 움츠렸다, 서둘러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더 움직이다간 손목이 부러질 것만 같은 강한 악력에, 한 손으로는 도무지 밀어 낼 수 없었다. 양손으로 그를 밀어 내고자, 왼쪽 손도 뻗었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손마저도 루인이 손을 뻗어 붙드는 바람에, 그는 양손을 죄다 루인에게 빼앗기듯 내줄 수밖에 없었다.

“이, 이이…….”

제 손을 보며 버둥거리던 모스의 시선이 루인에게 닿음과 동시에 얼어붙었다. 루인의 자세는 여전히 누워 있는 그대로였으나, 표정은 아니었다.

“또다시 날 버리려고?”

루인의 샛노란 금안, 하나 초점이 맞지 않는 그 눈이 부릅떠진 채 살기를 담아 모스를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향에 취했는지, 몽롱해 보이면서 어떻게 보면 한없이 짙어 보이는 그 눈을 본 순간, 모스는 더는 버둥거리지도 못했다. 마치 촘촘하게 짜여진 거미줄에 저도 모르게 걸린 나비처럼 꿈쩍도 하지 못했다.

“아!”

그때, 시야가 뒤집혔다. 모스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바로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하, 읍!”

이게 무슨 일이지?

상황을 파악할 새가 없었다. 황급히 눈을 뜬 모스의 코앞에는 눈을 옅게 뜬, 하지만 초점은 제대로 맞지 않는 루인의 얼굴이 있었다.

바투 붙은 두 몸. 혹여나 도망갈세라 제 얼굴을 꽉 붙든 두 손에 모스는 정신을 차릴 수 없어, 간신히 입만 벌려 숨을 내쉬고자 했다. 하나 그 틈을 노려, 모든 것을 삼켜 버릴 것처럼 휘몰아치듯 루인은 모스에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후, 읍!”

모스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숨을 쉬는 것도 벅찰 정도로 몰아치듯 쏟아지는 입맞춤에, 반사적으로 밀어 내려고 했으나, 상대는 마치 바위처럼 움직일 생각일랑 없었다. 쓰고 있던 베일은 이미 위로 쭉 말려 올라가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되었으나, 그걸 잡아챌 기회도 오지 않았다.

오히려 밀어 내면 밀어 낼수록, 그는 고개를 꺾어 더 깊게, 더 사납게 모스를 몰아세웠다.

모스가 잠깐, 이라고 말할 새도 없이 루인은 한참이나 일방적으로 모스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는 모스가 호응이란 없고, 밀어 내기만 할 뿐인데도, 잔뜩 흥분한 기세로 덮치듯 모스를 찍어 내리눌렀다.

“으, 응…!”

그때, 모스가 신음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시간이 흘렀더라도, 긴 시간 살을 맞대고 지낸 습관은 사라지지 않듯이, 루인이 모스의 가지런한 치아 끝, 입천장과 맞닿는 부분을 훑자 모스가 예민하게 반응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루인의 입맞춤은 기다렸다는 듯 멎었다.

언제 그리 격렬하게 입을 맞추었냐는 양, 모든 움직임을 우뚝 멈췄다. 모스는 새빨갛게 익은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베일은 저 멀리 침상 아래로 떨군 채 루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 아… 하아.”

침묵 속, 모스가 신음을 참지 못하고 헐떡이며 토해 냈다. 모스의 흉통이 위아래로 바삐 움직이는 사이, 루인은 그 초점이 맞지 않는 특유의 탁한 금안으로 연신 눈을 깜빡였다.

느릿하게…, 아주 느릿하게…….

한참을 눈만을 깜빡이던 그가 어느새 상처가 터진 듯 피비린내를 풍기는 커다랗고 투박한 손으로 모스의 뺨을 훑었다.

상처와 흉으로 가득한 엉망진창인 루인의 손은 이전 부드러웠던 과거와 달리 촉감이 까칠하기 그지없었다. 하나 그 낯선 감각마저도 상대가 루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스의 가슴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이 훑는 곳마다 피어나는 그 묘한 감각에 모스가 압도되듯 얼어붙은 그때, 루인의 손은 뺨을 시작으로 착실하게 모스의 입술과 코끝을 훑어, 이윽고 작은 이마에 닿았고.

“와.”

고개를 숙여 그 이마에 제 이마를 툭 맞대고는, 감탄하듯, 기다렸다는 듯.

소년처럼 활짝 웃었다.

그 웃음에는 해맑음과 동시에 선득함이 담겨 있어 위험해 보였다. 때문에, 어서 도망치라며 머리가 제게 경고하고 있었지만, 모스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루인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이젠 어느 하나 예쁜 구석이라고는 없는 얼굴이었다. 흰 피부는 상처와 흉으로 상해서 엉망이었고, 아름다운 금안에는 피고름과 탁함이 가득했고, 연신 그의 몸에서는 좋은 향 대신 피비린내가 났지만, 마주 볼 수밖에 없는 이였다.

여태 모든 순간이 으레 그리하였듯이.

“그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채 뜰 수 없게 만드는 그의 미소에 모스는 숨이 멎는 거 같아, 멍하니 루인을 응시했다.

우습게도 그가 웃는 순간, 그의 흉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롯이 아름다웠다.

‘정신 차려.’

모스는 그에게 현혹되지 않기 위해 정신을 차리고자 했다. 루인은 연인들이 서로를 부르듯 다정한 말투를 쓸 이도 아니었고, 설령 다정하게 자신을 부른 것이어도 이제는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때처럼 반복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이미 저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맞이한 결말을 한번 겪어서 알고 있지 않은가. 하나 머리로는 수도 없이 안 된다고 외쳐 댔지만, 우습게도 그의 심장은 두려울 정도로 떨려 왔다. 마치 처음, 그를 만나, 다시 한번 세상을 빚은 것처럼.

안 돼. 모스는 순간 낭떠러지가 뒤에 있는 것처럼 아찔해져서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틀림없이 등 뒤에는 침상이 있었기에 떨어질 곳이란 없었지만, 루인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 심장이 떨릴 정도로 소년처럼 웃고 있는 그를 여전히 응시하고 있는 지금.

‘무서워.’

너무나도 두려웠다. 당장이라도 추락할까 봐.

두려움에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한 모스가 루인을 휙 밀쳤다. 다행히 루인은 모스가 밀리는 대로 일순 살포시 밀렸고, 모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당장 이 장소에서 벗어나야 했다. 모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나가려던 그 순간.

“내가 병신이라서 무시해?”

스산한 목소리가 방에 퍼졌다. 당장이라도 방을 뛰쳐나갈 것처럼 움직이려던 모스는 그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루인을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밀친 자세 그대로 허공을 보고 있었는데.

“또 버리려고? 어디, 어디 있어. 네가 원하는 대로 다 내어 줬는데, 이젠 무르겠다고?”

이상했다.

정말 많이 이상해서 모스는 순간 나가야 하는 것도 잊고 멍하니 침상 위의 루인을 보았다.

루인이 방금까지 모스가 있던 곳을 미친 듯이 더듬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앞이 정말로 보이지 않는 듯, 그의 눈은 애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손만큼은 바삐 움직였다. 그는 방금까지 모스가 눕다시피 있었던 곳의 천을 움켜쥐듯 쥐어짰고, 손만으로는 못 찾으니 제 몸을 기울여 팔꿈치까지 닿게 해서 넓게 더듬었다.

“모스!!!”

그토록 품위가 넘치던 자다. 자신이 흐트러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제국에서 가장 귀한 황제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어떤가.

누웠다 일어났던 탓에 머리는 산발에 엉망이었고, 옷도 흐트러진 것이 여실히 보일 정도로 흘러내려 바짝 마른 상체를 일부 드러냈다. 움직임은 조급함이 묻어나 품격이라고는 없고, 그저 모스를 찾기 급급한 듯 온몸을 사용해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한데, 그 모습을 보는데.

왜 이렇게 미칠 거 같은지.

모스는 양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물론 안다. 자신이 괴물로 산 세월도 길고, 길잡이였던 적이 있기에 평범한 인간보다도 인기척이 덜한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루인은 여태 모스를 잘 찾았다. 그 넓은 숲에서도, 그리고 이 황궁에서도.

“안 나와? 웃기지 마. 네가 여기 있던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이번엔 너 맞잖아. 네가! 맞잖아!!!”

모스가 어디에 있든, 단 한 번도 그를 찾지 못한 적이 없었다.

모스는 절망했다. 지금도 그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자신과 그의 사이는 가까웠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도 이랬는데…….’

처음 보았던 날에도, 루인은 모스를 찾으려는 듯 방 안을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그 모습은 간혹 꿈에서 나올 정도로 충격적인 모습이었는데, 이 모습을 또 보고 있으니 모스는 미칠 것만 같았다.

“내가 못 찾을 줄 알고 이러나?”

루인은 어느새 침상에서 내려와 저 너머를 미친 듯이 걸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마치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그저 모스를 찾는 것에 온통 몰두해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그의 손은 계속 허공을 휘젓고 있었고, 그때마다 물건들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져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명을 달리했다.

“뭘 할까? 짐이 무얼 하면 돼? 응? 짐이. 그때 널 아득바득 살렸어야 하는데, 그걸 탓하고 싶은 겐가?”

마치 모스에게 말이라도 걸듯, 루인은 계속해서 악을 지르며 소리쳤다.

모스는 그 모습이 영 낯설었다. 제가 아는 루인이란 후회라는 걸 알 리가 없는 이였고, 애달픔이라는 것도 모르는 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저 모습에서 절박함과 애절함, 그리고 후회가 보인다면 괜한 착각일까.

“아니면 짐이 이리 멀쩡해서 원통해?”

루인의 손은 어느새 엉망진창으로 방을 헤집느라 상처가 다 터지다 못해 벌어져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상태가 되어도 멈추는 법을 몰랐다.

“그럼, 아예 이 눈알마저도 다 파 버리면, 되나?”

돌연 소리를 내지르던 루인의 손이 올라갔다. 그러고는 제가 말한 것을 지키려는 이처럼, 당장이라도 눈알을 파 버리려는 듯 눈두덩이에 손끝을 바짝 세워 올렸고, 그가 손에 힘을 주어 핏줄이 선 것을 본 모스는 그걸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그만해, 제발-!”

그는 저 끝으로 단숨에 뛰어갔다. 달려가는 순간, 마치 루인이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는 착각이 들었지만, 그건 너무 찰나였다.

모스는 그대로 달려가 루인의 허리를 붙들고 끌어안았다. 그가 허리를 붙들자마자, 그런 모스의 몸을 루인이 안아 들듯 세게 움켜쥐었다.

“이거구나.”

알 수 없는 말로 작게 읊조린 루인이 정답을 찾은 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입꼬리를 옆으로 쭉 찢었다.

“맞잖아.”

“제발, 제발! 제발!!!”

“내가 맞았어. 너였어.”

“제발, 그만해. 제발……!”

이제 스스로를 그만 망가뜨려.

모스는 그리 말하고 싶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귀가 망가진 루인에게 닿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보처럼 “제발.”과 “그만해.”라는 말만 반복하며 루인의 몸을 끌어안기 급급했다.

“또 가려고, 너를 내가 어찌 믿나. 놓을 수 없다. 나는…….”

그 와중에도 루인은 놓지 않겠다는 듯 모스를 꽉 붙든 채로 불안에 떨듯 말하고 있었다. 모스는 이런 루인의 모습에 당황도 잠시, 이윽고 그를 향한 애원을 멈추고 한동안 물끄러미 그를 응시했다.

루인은 자신의 품에 모스가 있음에도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탁한 눈동자는 연신 떨렸고, 터진 상처에서 흐른 피들을 닦을 생각일랑 전혀 없어 보였지만, 모스를 놓는 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듯 억세게 그를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던 모스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혹시.”

알고 있다. 귀가 들리지 않고, 눈이 보이지 않으니 지금 제가 하려는 말이 그에게 전혀 닿지 않을 것임을. 하지만 그에게 닿지 않더라도, 심지어 자신이 지금 하려는 이 말이 이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 걸 알더라도.

그래도 모스는 예전부터 마음 구석에 남아 있던 의문을 끝내 혀끝에 올렸다.

“날… 좋아했어?”

실은 줄곧 의문이 들었다. 모스는 루인이 결코 사랑이라는 것을 모를 잔혹한 이인 것을 알았지만, 그는 자신이 녹는 걸 막고자 자신을 대신해 절벽 너머로 떨어지고, 저번에도 자신을 찾으며 이름을 부르지 않았는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떠나지 말라며 붙들고, 어떻게든 곁에 두려고 하고. 마치 자신 때문에 미친 것처럼 저리 구니, 모스는 문득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사, 사랑했어?”

사랑. 그 말을 꺼내자마자, 모스는 여태 그에게서 받은 상처로 인해 꽁꽁 얼어 있던 심장이 아주 살짝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이 있을 리가 없었다.

“…….”

루인은 지금 눈도 멀고, 귀도 멀어 정상이 아니었는데 그런 이가 모스의 말을 듣고 대답까지 순순히 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설령 듣고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네가 환영이라도, 못 놔.”

그의 입 밖으로 나오는 것들이란, 이런 것이니.

나는 대체 무엇을 기대했단 말인가. 순간 새 나오는 제 감정을 감출 수 없던 모스는 허무한 표정으로 무너져 내리듯 몸에 힘을 풀었다.

‘여태 나를 환영으로 착각하고 있었어?’

루인의 상태가 엉망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가 눈도, 귀도 제대로 쓸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 모스는 이리 애달프게 자신을 붙드는 것도, 입을 맞춘 것도, 루인이 자신을 알아보았기에 이리 군 것일 수도 있다고 여겼다.

‘너는 또 날 못 알아보고.’

하나 아니었다. 그는 단순히 저 독한 향에 취해, 눈앞에 있는 이를 모스로 착각한 것이며, 이 말은 즉, 모스가 아닌 다른 이들이 왔더라도 이리 굴었을 것이라는 걸 뜻했고.

‘이 모든 걸 꿈이라 착각하겠구나.’

지금 둘 사이의 모든 것들을 꿈이나 환상으로 치부해 버린다는 의미였다. 이리 악을 지르고, 붙들고, 끌어안아도. 이 모든 걸 전부… 환영으로.

‘그간 몇 명에게 이리 군 것일까.’

여태 마주치는 모든 이에게 전부, 이리 굴었겠지.

모스는 아득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그 신관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마 그에게도 이런 식으로 굴었을 것이다. 신관뿐이랴? 이전에 모스가 사용인 신분으로서 들어왔을 때도, 모스를 끌어안고 뺨에 입 맞추지 않았는가.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모스가 울컥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보지도 못한 채, 이리 붙들고, 이리 끌어안고, 이리 입 맞추고…….

순간 치밀어오르는 감정에 모스는 넘어질 듯 몸을 비틀거렸으나, 그 몸뚱이마저도 그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미끄러지듯 주저앉으려는 모스를 루인이 강한 힘으로 끌어안은 것이다.

모스가 고개를 들어 루인을 올려다보았다.

자욱하게 뻗쳐 나간 연기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루인의 눈먼 시선과 그런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는 모스의 시선은 이어지지 못하고, 엇갈렸다.

마치 이미 어긋난 그들의 관계처럼.

하나 잔뜩 엇갈리고 뒤틀린 관계와는 달리, 루인은 모스를 지나칠 정도로 꽉 붙들어 안고 있었다.

마치 손 틈 사이로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모래를 붙들려는 이처럼, 강하고 세게.

아무런 말도 없이 그렇게 얼마나 껴안고 있었을까.

모스의 어깨 위로 루인의 인영이 축 늘어지듯 미끄러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모스가 눈을 크게 떴다.

루인의 상태가 이상했다. 얼굴은 열이 오르는 듯 일부 붉었고, 땀이 미친 듯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듯 계속해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루인의 모습에 모스는 당황한 듯 주위를 둘러보다, 이윽고 어느새 방 안을 자욱하게 채운 연기의 존재를 알아채고 작게 신음했다.

‘내겐 하나도 영향이 없는데, 이게 그에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치는구나.’

향로를 방에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연기가 지나칠 정도로 가득했다. 모스에겐 그저 나무 향이 날 뿐이었는데, 루인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는 듯 그의 몸이 점점 기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모스가 입술을 꾹 깨물고, 루인을 침상 위에 눕히기 위해 그를 업듯이 한 걸음 발을 내디뎌 나아가려고 했다.

“안 돼.”

하지만 그의 걸음은 제대로 걷기도 전에 불발되었다. 마치 의식이 날아간 것처럼 몸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던 루인이 모스의 몸을 꽉 움켜쥔 것이다.

‘아, 아파!’

몸이 망가졌어도 악력은 여전한지, 모스는 루인이 움켜쥔 제 어깨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은 격통에 신음하며 들리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변명하듯 말했다.

“치, 침대에, 누, 눕혀 주려고….”

“안 돼, 안, 돼….”

…침대에 눕혀 주는 걸 이렇게나 거부할 일인가?

모스는 계속해서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하는 루인이 당혹스러워, 루인을 살피듯 샅샅이 훑어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언제부터이지?

그는 진즉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저 향에는 잠을 오게 하고 몸을 나른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거 같은데, 그 탓에 루인의 눈은 이미 잠들기 직전처럼 계속 감기고 있었고, 몸은 연신 축 늘어지기 일쑤였으나.

“절, 대 못 놔.”

루인은 안간힘을 다해 모스를 붙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핏줄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솟아도, 강한 압력으로 상처들 일부가 터져 피가 흘러도. 어떻게든 모스를 놓지 않으려고 버텼다.

“못 가.”

“가, 가는 게 아니라, 나는 너를….”

“내 옆에 있어.”

그럼에도 어느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은 어설프게나마 모스에게 꿋꿋이 향했다. 그 와중에도 어찌나 몸에 힘을 주었는지, 루인을 끌고 움직이는 내내 모스의 땀이 비 오듯이 전신을 적시던 그때.

“혹 눈을 떴을 때, 네가 없다면 이 몸뚱이를 죄다 망가뜨려 버릴 것이다.”

섬뜩한 말에 모스가 움찔했다.

다른 이들이 말했으면 모를까, 상대는 루인이었기에 저 말은 지나칠 정도로 진심처럼 들렸다. 그 얘기를 듣고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모스는 움직임을 멈추었는데.

“자, 잠깐…!”

정말 한계에 다다른 듯, 루인의 눈이 뒤집히며 이윽고 고꾸라지듯 앞으로 몸이 휙 넘어갔다.

그런 루인을 모스가 간신히 받아 들고 침대에 엎어졌는데, 그 탓에 두 사람 사이에는 틈 하나 없이 꽉 맞물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 아. 하아.”

무거워. 몰골이 엉망이 된 모스가 간신히 쓰러지듯 잠든 루인의 위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질식할 거 같아.’

온통 방 안이 뿌옇다.

모스는 한참을 멍하니 연기로 뿌옇게 가득 찬 방을 둘러보듯 두리번거리다 이윽고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든 자신의 뺨을 닦아 낸 뒤 거칠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이걸 내일 또 하라고?’

그가 괴롭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렇게 제정신이 아닌 루인의 얼굴을 볼 바에야, 차라리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안 갈 거예요? 그렇다면 내가 당장 당신들을 관리하는 관리인에게 가서 이번 일에 관해 물을 수밖에 없겠군요.

향.

저것은 루인에게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하는 거 같은데, 저걸 알게 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일개 사용인인 모스가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황궁 측에서는 모스를 제거하려고 들 것이고, 그런 그가 당장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곳을 뜨는 것뿐이었지만… 그마저도 모스는 할 수 없었다.

‘마귀가 곧 나타날 거야.’

솔직히 모스는 자신의 힘으로 마귀를 죽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이전처럼 길잡이도 아니었고, 불사도 아니었으며, 다치면 그대로 다치는 평범하고 나약한 인간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그렇다고 모른 척하며 물러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루인의 목숨이 달리지 않았는가.

‘모르겠어. 신께서 대체 왜 날 이쪽으로 안배하셨는지.’

모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더는 길잡이도 아니고, 무능력하고 어리석은 자신을 왜 자꾸 이리 중요한 인물로 쓰려고 하는지. 그는 이 모든 게 그저 자신의 과한 상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돌리려고 했다.

‘돌아가자.’

지금쯤이면 일을 하고 돌아온 리엘이 모스를 찾고 있을 것이다. 모스는 꺼진 향로들의 위치를 눈으로 확인한 뒤, 그것들을 집어 들기 위해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무언가에 걸리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것에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스의 시선이 이윽고 어딘가에 걸린 양, 팽팽하게 당겨진 제 옷으로 향했다.

“……아.”

루인의 손이었다.

여태까지 잔뜩 긴장했던 모스는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더는 몸을 지탱할만한 기력조차 없는 듯, 맥이 빠진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가 주저앉는 와중에도, 어찌나 힘을 억세게 주었는지 모스의 옷자락을 움켜쥔 루인의 손은 여전했다.

모스는 그 손을 떼어 내려고 옷을 빼내다가, 이윽고 마음처럼 되지 않자 루인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기 시작했다.

‘상처가…….’

문득, 무언가를 발견한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스는 루인의 손을 기억했다. 희고 고운 그 손.

그러나 지금은 이전의 그 손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의 엉망진창인 손을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흉을 어루만지듯 훑었다. 손이 울퉁불퉁하고 죄다 흉으로 뒤덮여 있어서, 보기만 해도 절로 탄식이 나올 지경이었다.

“…으… 음.”

넋을 놓은 채, 그 손가락을 한동안 보던 모스는 손가락의 주인이 내는 작은 신음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는 차마 루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도망치듯 몸을 움직여 입구 쪽에 있는 꺼진 향로 두 개를 들고 서둘러 방을 나섰다.

쿵. 문이 닫히고 나서야 모스는 문에 등을 댄 채로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손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주저앉은 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온몸에 힘이 빠져 축 늘어진 모스는 한참이나 일어나질 못했다.

“진, 짜 뭐야.”

혼란스러웠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이었다.

모스는 눈과 귀가 망가진 그가 다른 이들을 자신으로 착각하고 이리 굴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뻐근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으로 착각한 이들에게 이토록 매달리듯 구니, 그건 또 그거대로…….

‘제정신이 아니니, 어차피 내가 진짜인지도 모를 거야.’

머리가 아프다. 욱신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도리질하고, 향로를 들고 옆방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애써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그 새까맣고 긴 복도를 걸어갔다. 물론 걸어가는 내내, 자꾸만 속에서 무언가가 차오르듯 울컥하고, 잡념이 들었으나 가까스로 추스르고, 방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걸음마다 발바닥이 무거워서, 그 무게가 생각보다 견디기 어렵다고 생각하며 모스는 조금 눈물이 날 뻔했다.

***

연회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어찌나 인력이 부족한지, 거의 청소만을 하던 모스조차도 끌려가서 의자와 테이블을 부지런히 나를 수밖에 없었다.

“아직 거의 한 달이나 남았는데…!”

“전체적인 모습을 봐야 한다잖아. 이거 별로면, 다시 사신다더라.”

“뭐? 이 짓을 또?”

제국은 생각보다도 더 부유했다. 사용인들이 끔찍하다는 듯, 장식품과 테이블을 쉴 틈 없이 옮기고, 빼내고, 치우는 것을 반복했고, 그 탓에 모스는 신관과 약속한 시간을 지킬 수가 없었다.

‘좀 늦은 거 같은데….’

하지만 그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신관과의 약속이 있다고 빠져나올 수 없지 않은가. 따라서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늦게 올 수밖에 없었는데, 늦게 왔을 땐, 상황이 이미 엉망으로 치달아 있었다.

“미쳤어?! 뭐 하다가 이제 와!! 빨리 들어가! 폐하께서 또 광증이 도지셨으니!!”

「일이너무바빴어요」

잔뜩 화가 나 보이는 신관에게 모스가 수첩에 서둘러 글을 써 내밀었다.

“그건 나도 알아! 황후를 맞이하는 연회가 곧 열리니, 너희 사용인들도 바쁘겠지!!!”

황후. 그 말에 움찔도 잠시 모스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광증?’

하나, 곧 모스는 루인이 있는 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저 안에서는 무언가가 쉴 틈 없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고, 그리고…….

비릿한 혈향이 코끝을 스치는 것에 모스가 얼어붙었으나, 신관은 그럴 새도 없다는 듯 그에게 향로를 두 개나 쥐여 주며 등을 떠밀 뿐이었다.

“오늘은 상태가 심각하니, 향로를 두 개를 한 번에 갖다 넣고요!”

모스는 신관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지금 이 소란은 무엇이며, 왜 저 안에서 짐승이 우짖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것이냐며.

하나 상황이 돌아가는 게 심상찮아 보였다.

그럴 시간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통에, 모스는 뭐라 할 새도 없이 빨려 들어가듯 방 안에 밀어 넣어졌다.

쾅!

문이 아주 거센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리고, 등 뒤에 문이 닫힘과 동시에 침상의 한 가운데에 있던 루인이 휙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보이는 게 없을 텐데도, 정확히 모스를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스가 몸을 잘게 떨다가, 이윽고 무언가를 발견하고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루인은 웃옷을 벗고 있었지만, 단순 그것뿐이라면 모스가 이리 놀랄 일은 없었다.

‘몸이…….’

벗은 그의 윗몸에는 방금 막 그은 듯, 기다란 손톱자국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상처들이 꽤나 깊고 매서웠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상처를 내다, 이전에 낸 깊은 상처들도 건드린 것인지, 그의 상체는 온통 터진 상처에서 새어 나온 피로 얼룩져 있었다.

“왔어?”

움찔. 멍하니 상처를 보고 있던 모스는 루인의 스산한 말에 고개를 느릿하게 들어 올렸다.

모스의 말이 들릴 리가 없음에도, 모스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을 텐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스 쪽을 확실하게 바라보는 것에 모스는 순간 그의 눈과 귀가 돌아왔나 생각했지만, 이윽고 자신이 들고 있는 향로를 발견하고 작게 침음했다. 아마 이 향 냄새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알아챈 것이 틀림없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됐어.”

향로를 조심히 내려놓는 모스의 머리맡으로 어느새 다가온 루인이 그리 말했다. 그것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돈 모스의 시야에 루인의 엉망진창으로 직직 그어진 상처들이 가득한 상체가 가장 먼저 들어왔고, 그 뒤에 들어온 것은.

“왜 사라졌지?”

초점이 맞지 않는 두 눈, 하나 누구보다도 또렷하게 모스를 응시하는 것만 같은 시선.

그 눈을 멍하니 보던 모스는 어제 루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혹 눈을 떴을 때, 네가 없다면 이 몸뚱이를 죄다 망가뜨려 버릴 것이다.

……그게 빈말이 아니었어?

그럼 내가 꿈이 아닌 것도 눈치챈 건가?

비록 자신이 진짜 모스임을 알지는 못하더라도, 루인은 이게 어렴풋이 꿈이 아님을 인지하고 있는 거 같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진 모스가 몸을 비틀거리는데, 루인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모스의 어깨를 붙들어, 피범벅인 제 가슴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듯 모스의 얼굴을 끌어당기고선 앉았다.

베일에 핏방울이 아롱거리며 들러붙더니 스며들었다. 이윽고 뺨에도 비릿한 피가 묻고, 입술에도 마찬가지였다. 얼굴 곳곳에 스며들 듯 달라붙는 핏방울들을 느끼던 모스는, 피로 얼룩진 베일에 숨통마저 틀어막히는 기분이 들어 얼굴을 휙 돌렸다.

그리고 돌리자마자, 그는 제 시야 끝에 있는 거울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두 사람이 자리했다.

한 사람은 나무처럼 커다란 몸이지만, 그 커다란 몸에 빈자리 없이 빼곡하게 들이찬 상처들과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품 안에 있는 이를 혹여 놓칠세라 빈틈없이 꽉 끌어안고 있었는데, 그의 품에 있는 작은 이는… 피로 젖은 베일을 쓰고 있었다.

모스는 거울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어찌 보면 그림이라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묘하고도 이질적인 두 사람의 모습…….

모스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그런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루인이 모스의 베일을 걷어 내듯 위로 들어 올림과 동시에 훤히 드러났다.

루인이 모스의 얼굴을 감쌌다. 그가 고개를 틀어, 모스의 코끝에 입을 맞추고, 이윽고 맞물린 입술을 벌리며 깊게 혀를 밀어 넣었다.

긴 시간을 사이에 두었음에도, 몸은 익숙한 자극에 기다렸다는 듯 달궈지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 주체할 수 없이 새빨개지는 얼굴.

그 모든 것을 거울로 보던 모스는 제 미래를 직감한 양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은 틀림없이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도 줄곧 이곳에 향로를 들고 올 것이다.

자신 때문에 상처가 늘어날 루인이 두려워서, 그가 다른 이를 자신으로 착각해 이리 입 맞추는 게 싫어서.

그가 황후를 맞이하는 연회를 열더라도, 그 때문에 이렇게 절망적인 기분이 들지라도.

모스는 루인에게 향을 들고 올 것이며, 그가 잠드는 순간까지 곁에 있을 것이다.

미련하게도.

모스는 스스로의 미련함에 더는 거울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채 팔을 내밀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잔뜩 상처받고 다친 마음을 익숙한 쾌락으로 뒤덮어 버리려는 이처럼.

루인은 휘는 모스의 허리를 다부진 손으로 붙들고, 입을 맞추었다. 그는 모스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타액을 끊임없이 집어삼켰다. 마치 긴 시간 갈증에 시달린 이처럼 게걸스러운 입맞춤이었다. 이어 루인의 손이 모스의 하반신에 곧바로 파고드는 것에 모스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자, 잠…깐.”

이미 얼굴이 새빨개져서 더는 빨개질 곳이 없을 것이라 여기던 모스는 이내 목까지 빨개지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이며 모스가 루인을 밀어 내려는 듯 가슴을 꾹 눌렀지만, 피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오히려 아래를 더듬는 형국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루인의 옷 너머로 잔뜩 발기한 성기를 느끼고 얼어붙었다.

여전히 말도 안 되게 큰 성기는 당장 사정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축축하게 젖어 들어 있었다.

“제대로 감아.”

그러나 발기한 성기와는 달리 루인의 목소리는 담담한 듯 보였다.

게다가 루인은 순간 얼어붙은 모스를 감지한 것처럼, 곧장 자꾸만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모스의 팔을 들어 올리다시피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그대로 제 목에 감고 안아 침상으로 거침없이 걸어갔다.

‘간지러워….’

걷는 동안 루인은 묘하게 동물 같은 행동을 했다. 아마 눈이 보이지 않아 그런 듯 구는 행동이지만 이는 마치 모스에겐 동물들이 서로의 체취를 맡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계속해서 모스가 제 품에 있는 것을 확인하려는 이처럼 코로 모스의 목선, 쇄골, 그리고 가슴까지 더듬듯 훑었고, 그가 훑는 자리마다 모스는 묘한 간지러움에 배 아래에 열이 몰리는 것만 같았다.

“-아!”

이윽고 침상에 모스를 던지듯 내려놓은 루인은 자연스레 모스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자마자 곧바로 그의 바지를 벗겨 냈다.

퉁, 바지를 벗겨 내자마자 발기한 모스의 성기가 가볍게 튕기며 올라왔다. 몸을 반쯤 일으키다가 그 모습을 본 모스는 부끄러움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루인을 밀어 내려고 하다 멈칫했다.

모스의 바지를 벗겨 낸 루인의 움직임이 묘하게 엉성했다.

몸을 오래 섞다 보면, 알고 싶지 않더라도 알게 되는 상대의 습관이라는 것이 있다. 루인은 이리 모스를 벗겨 내면, 늘 습관처럼 모스의 성기를 쥐어짜듯 움켜쥐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안 보이는구나.’

그는 눈이 안 보이기에 그 습관을 바로 하지 못했다. 다만 손으로 다른 곳을 천천히 훑으며 내려가 모스의 성기를 쥐었고, 그 일련의 과정 동안 루인의 시선은 줄곧 그의 얼굴이 아닌 애먼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늘 나를 보았는데.’

그런 루인의 눈을 모스는 빤히 바라보았다. 아마 지금 그의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리라.

“흐, 읍!”

그때, 갑작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돌연 루인이 고개를 숙여 제가 움켜쥔 모스의 성기를 단번에 입으로 문 것이다.

“그, 그, 그만.”

모스가 애원을 하듯 루인의 머리를 손으로, 어깨를 발로 밀어 보지만 루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게 빨아 들이는 것에 모스의 발가락이 굽었다.

지독한 자극에 절로 눈이 뒤집히며 신음이 튀어나왔다. 뜨겁고 축축한 루인의 입 안에 몸이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듯 들썩이자, 그런 모스의 허벅지를 루인이 아래로 세게 짓눌렀다.

깜짝 놀란 모스의 상반신이 튕기듯 위로 솟던 그때, 그는 제 성기를 문 루인의 얼굴을 그대로 보고 온몸을 새빨갛게 붉혔다. 루인은 연신 모스의 것을 세게 빨면서 그의 허벅지 안쪽에 자신의 마른 한쪽 뺨을 비비고 있었고, 헝클어진 백금발 아래로, 반쯤 감긴 금안은 그토록 요사스러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입이 움직일 때마다 모스의 성기가 드러났다 사라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이는 모스에게 충격적일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하으… 나, 나올, 거 같…!”

그에게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모스는 빌었다. 더럽다며 얼른 뱉으라고 소리치기도, 다시 어깨를 밀치기도 했으나 소용없었다.

그리고 뭐라 할 새도 없이.

“흑…….”

사정했다.

‘이게 왜… 왜 이러지.’

사정을 하자마자 모스는 당황했다. 이리 빨리 사정한 적은 없는 거 같은데, 너무 간만에 한 생식 행위에 몸이 절로 달아올라 주체할 수 없었나?

당황도 잠시, 그는 아직도 제 것이 루인의 입 안에 있다는 것에 경악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머, 먹지… 마.”

본능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말을 해도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결국 모스가 비키라는 듯 툭툭 쳤지만, 루인은 미동이 없었다. 가만히 물고 있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는데, 그 눈에는 초점이 없었기에 모스는 이어 다시 한번 더 그를 밀어 냈다.

“먹, 지 마, 말라…고… 히익.”

하나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탓일까. 아니면 본래 모스의 말을 들을 생각조차 없었던 것일까.

꿀꺽, 루인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그는 개의치 않은 얼굴로 제 입에 담긴 모스의 것을 죄다 삼킨 뒤 보란 듯이 벌렸다.

“정말 사, 삼…켜, 켰…… 왜…….”

삼킨 걸 증명하듯 벌린 그의 입은 새빨간 혀만 보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모스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 파!”

그때, 루인이 사정없이 손가락을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수치심에 얼어붙었던 모스가 비명을 질렀다. 손가락의 움직임은 모스의 좁은 속을 고려하지 않았다.

“흐으, 아프, 아파아…….”

그는 제 안을 파고드는 손가락의 개수가 하나둘씩 늘어나는 것에 새하얗게 질린 채, 혹 제 아래가 찢어질까 두려운 듯, 그렁그렁한 얼굴로 도리질을 했다.

“찌, 찢어질 거야.”

애원하듯 말을 걸었지만, 그게 들릴 리가 없었다.

루인은 길고 두꺼운 손가락을 계속 밀어 넣으며 인상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그는 쉬이 들어가지 않는 손가락에 초조한 듯 중간중간 욕설이 들렸으나, 모스는 몸을 반으로 가르는 고통에 정신이 팔려 그것까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윽고 네 번째 손가락이 몸 안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제 성기를 꺼내는 모습에 모스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찢어져, 찢어, 으응! 아!”

루인이 손가락을 빼고 곧장 그 좁은 구멍에 제 좆의 머리를 밀어 넣었다. 모스는 그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연신 도리질하며 그를 밀어 내려고 했다.

“흐윽, 나, 나는 이제, 괴, 괴물이 아, 아니라, 이, 인간인, 데에…….”

아팠다. 미치도록 아팠다.

회복이 미친 듯이 빠르던 괴물인 몸으로도 받아 내기 힘들었던 저 방망이 같은 성기를, 어찌 평범한 인간인 몸으로 받아 들일 수 있겠는가.

“가만히.”

그런 바르작거리는 모스의 다리를 루인이 붙들었다. 말의 온도는 뜨거웠다. 여태 제대로 말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 한 것인지 들끓듯이 말하는 루인의 말에 모스가 순간 멈칫한 그때.

“하, 읏!”

루인이 밀고 들어왔다. 뭐라고 반응을 할 새도 없이, 단번에.

“끄윽…, 끅.”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마치 목이 졸린 이처럼 숨이 막혀 질식할 것처럼 끅끅거리는 소리만이 입 밖으로 나왔고, 허리는 튕기듯 위로 솟구쳐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빡빡한 그의 아래에 루인 또한 사정없이 미간을 구기며 멈추었다. 하나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루인은 모스가 숨을 쉴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흐으, 윽.”

“힘 풀어.”

루인이 손바닥으로 위로 솟구치듯 들린 모스의 엉덩이를 후려치듯 때렸다.

“으응!”

갑작스러운 자극에 모스가 움찔하는 사이, 루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내벽을 사정없이 짓이기며 움직이는 성기의 움직임은 가히 고문에 가까웠는데…….

“좆은 이리 바짝 세우고, 왜 이리 조여.”

루인이 모스의 성기를 감싸며 내뱉은 말은 이상한 것이었다.

‘이렇게 아파 죽겠는데, 내가 발기를 했다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뜬 모스는, 이어 바짝 올려진 허리 때문에 눈앞에 보인 제 성기를 쉬이 발견할 수 있었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곧 쌀 거 같은데.”

루인의 말대로였다. 그가 움켜쥔 모스의 성기는 수치도 모르고 고개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토록 아프면서도 이토록 수치스러운 상황이면서도, 줏대도 없이 퉁퉁 부어오르듯 발기한 제 성기에 모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응.”

루인이 모스의 성기를 쥐어짜듯 움켜쥔 것과 동시에 허리를 움직였다. 처음엔 느릿하다가, 점점 빨라지는 그의 허리 놀림, 그에 따라 점점 고통을 넘어선 쾌락이 피어나, 모스는 결국 신음을 내뱉었다.

“아, 응, 아아, 으응.”

아프다. 정말 아프다.

하나 그 아픔 뒤로 열이 오른다. 아픔마저도 집어삼킬 수 있을 것만 같은 강한 쾌락이 다가온다.

“하읏, 읏…! 으응!”

몸이 덜렁덜렁 그의 아래에서 미친 듯이 흔들린다. 그의 손에 잡힌 성기는 그새 사정을 해서 희뿌연 액체로 범벅이 되었으나, 언제 사정했냐는 듯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다.

“하아.”

그런 모스의 위에는 피와 땀으로 범벅되고, 초점도 맞지 않은 눈을 한 채, 그를 붙들고 사정없이 허리를 움직이는 루인이 있었다.

모스는 제 앞에 땀과 피로 젖어 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루인의 얼굴을 넋을 놓고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신은 대체 왜 자신은 이리 빚었으면서, 루인은 이토록 아름답게 빚은 걸까. 엉망인 흉터로 가득하고, 비위가 상할 정도로 피로 얼룩진 몸이건만. 그럼에도 루인은 처연할 정도로 여전히 아름다웠던 것이다.

“읏, 하으.”

그런 그의 성기에 박힌 채로 흔들리던 모스는 이윽고 천장을 응시했다. 천장에는 아름다운 천사들이 그려진 섬세한 그림이 있었는데, 이 방에서 그간 많은 일이 있다는 걸 알리듯 혈흔이 튀고 번진 자국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그림을 가리듯, 사정없이 허공에서 흔들리는 제 두 발을 본 모스의 얼굴이 돌연 쾌락도 잊은 양, 일그러졌다.

“흐, 읏… 흑!”

모스는 눈을 질끈 감고, 제 얼굴을 가렸다.

일그러진 얼굴과는 달리 모스의 신음은 커지고, 속에서 끝도 없이 열락이 피어올랐다. 필요 이상으로 넘쳐흐르는 쾌락에 몸은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끝도 없이 들뜨게 느껴졌지만, 모스는 그럴수록 더 절망했다.

둘 사이에 해야 할 무수한 말들은 뒤로하고, 짐승처럼 이리 뒹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환멸 난 듯 눈을 질끈 감고, 제 얼굴을 가렸다.

모스는 알고 있었다.

하나는 미쳐서 그 누구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망가진 황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저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이의 아래에서 기꺼이 다리를 벌려 주는 창놈이나 다름없는 천것.

그리하여 이곳이야말로, 그저 짙은 쾌락으로 덮어 둔…… 그와 자신의 나락임을.

***

“너 요즘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 특히 근래- 한 달 정도.”

리엘의 말에 모스는 제가 무언가를 잘못했나 싶어서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리엘의 말을 곱씹어 보니, 저것은 정말 걱정 같았다.

그것에 모스는 무슨 일이 있냐는 듯 꽃병을 내려 두고 침착한 미소를 지었다.

일을 하는 중이기에 글을 적어 줄 수 없어서, 아니라는 듯 좌우로 고개를 젓자 모스의 베일이 살짝 들춰지며 입가가 보였다.

잔잔한 미소를 본 리엘은 자신이 착각한 것이라 생각했는지, 아니면 도를 넘은 질문이라 생각한 것인지 “하기야, 곧 연회니 바빠서 피곤해 보이는 게 당연하지.”라고 말한 뒤 주위를 턱짓했다.

“얼핏 봤는데, 다른 사람들 얼굴도 몰골이 말이 아닌 거 같더라.”

그 말을 한 후, 리엘은 더는 사담할 시간이 없는 것처럼 부지런히 움직였다.

리엘의 말대로, 황궁 사용인들은 지금 엄청나게 바빴다. 황궁에서 열리는 연회가 당장 내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루만 여니까 다행이지.”

연회가 단 하루만 열린다는 건 황궁 사용인 입장으로서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일반적으로 연회는 짧게는 사흘에서 길면 일주일까지 이어지는데, 이번에는 거의 이례적으로 하루만 열린다.

“힘내자. 이 짓도 내일이면 끝이네! 그래도 황궁이라 그런지, 잠은 꼬박꼬박 재워 줘서 좋다. 아, 그리고 마침 황제 폐하께서도 요즘 잠잠하니, 우리도 곧 청소 무덤에서 해방되겠지?!”

상상만으로도 신나는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리엘은 노래를 부르듯 흥얼거렸다. 모스는 리엘이 즐거이 말하는 것을 빤히 보다 가까스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을 깊게 자? 황제가 잠잠해?

잠귀가 밝지 않고, 잠들면 누가 업어 가는 줄 모를 만큼 푹 잠드는 리엘은 모를 것이다.

‘……힘들어.’

근 한 달여간 루인에게 시달려 온 모스의 고충을.

-더, 더는 못…… 하윽.

모스는 질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어젯밤부터 늦은 새벽까지 그의 아래에서 울었던 것이 마치 방금 벌어진 일처럼 선연하게 떠올랐다. 제 위에 올라탄 그, 옅게 일렁이는 등불 새로 드러난 흉투성이의 몸, 그리고 그 아래에 꼿꼿하게 선 말도 안 되는 크기의 그것.

-하아.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인상을 구기면서도 사정없이 제 허리를 붙들고 끌어 내리던 그를 떠올리는 모스는 당장 얼굴이 터지다 못해 폭발할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아파.’

모스가 허리를 통통 두드렸다. 그간 누적된 피로는 상당했다.

이 정사가 어디 어젯밤뿐이던가?

모스는 매일 밤이면 루인의 침실로 향해서 그 짓을 했고, 새벽이면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오길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잠을 제대로 못 자다 보니, 자잘한 실수도 잦아져서 루인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대체 왜 거기는 멀쩡한 거야.’

찌르르, 또 울리는 허리에 신음을 간신히 삼켜 낸 모스가 제 식은땀을 닦아 내며 울상을 지었다.

루인이 아프길 바라진 않는다. 하지만 도가 지나치지 않는가. 다른 덴 다 아픈데, 왜 성욕만은 이전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은 것인지 모스는 알 수 없었다.

지금도 어제의 정사 여파로 다리가 후들거리고 신음을 하도 내뱉는 바람에 목이 따끔거렸다. 통증에 목을 감싸던 모스는 문득 제 손목에 난 자국을 보고 얼굴을 확 붉혔다.

-지, 진짜, 모, 못 해, 못 해.

어제, 그의 아래에서 멈추라고 소리를 지르고, 악을 지르고, 빌어도 보았다. 하지만, 의사소통이 통하지 않는 상대인 것도 제법 큰 문제였다. 몸이 꿰뚫리면서 몇 번이나 루인에게 말을 하고, 견디다 못해 세게 밀쳐 내 보기까지 했는데.

-더 해 달라고?

-내, 내가, 언……하, 으, 으응!

-그리 매달리니, 원하는 대로 해 줘야지.

-아, 아니, 나, 나는……!!

모스는 이 정사의 끝도 소통이 되어야 마무리할 수 있는 거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조금이라도 몸을 물리면 그는 자비 없이 모스를 옭아매었다. 이 손목도 그 증거 중 하나였다.

모스가 물러서려고 하자, 루인이 모스의 손목을 붙든 채로 놔주지 않았기에…….

-어디를.

-허……억.

손목에 옅게 멍이 든 것이다.

손목을 붙들린 채 더 깊게 박히던 감각이 떠오른 모스가 사색이 된 채 무심코 제 바지를 보았다. 분명 씻으면서 안에 있던 걸 다 긁어냈는데, 무언가가 흘러나오는 착각이 들었다.

차라리 쾌락이 없으면 모를까, 루인과의 관계는 무엇이든 ‘적당히’라는 게 없었다. 극한의 쾌락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어느새 루인의 몸에 매달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또 이러네.’

고작 잠깐의 틈을 타, 그새 어젯밤 일을 떠올렸다. 민망함과 부끄러움에 두 뺨이 붉어진 모스가 도리질하며 집중하고자 했다.

하나 그리 다짐했음에도 감기는 눈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지금도 당장 주저앉아 잠들고 싶었지만, 꾸역꾸역 꽃병을 닦아 냈다. 어제만 해도 한두 시간 정도 자고, 이렇게 연회 준비를 했던지라 머리가 띵했다. 한동안 멍하니 손만을 움직이던 모스의 시선 끝에 시계가 걸렸다.

향을 갖다 놔야 할 시간이다.

정신을 차리고자, 고개를 가벼이 흔든 모스가 주위를 두리번 훑어보곤 그림자에 숨어들 듯 조용히 연회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연회장은 연회 준비로 인산인해를 이루어서 정신이 없기에 빠져나가기 쉬웠다. 모스는 연회장을 벗어난 이후에는 사람이 잘 안 다니는 길로 움직여 마음 편히 갈 수 있었다. 이렇게 몇 번이나 이곳을 들락거렸더니 처음에는 마냥 낯설고 어색했던 복도도, 이제는 눈에 익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혹 눈을 떴을 때, 네가 없다면 이 몸뚱이를 죄다 망가뜨려 버릴 것이다.

그는 제가 한 말을 꼭 지키는 이니, 모스는 매일같이 루인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듣고, 누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모스는 그곳에 가면 안 된다는 것도, 설령 누군가가 그의 침실로 향한다고 해도 그게 굳이 자신일 필요가 없다는 것도, 모두 다 알았지만 그럼에도 루인에게 이끌리듯 갈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내가 가지 않아서, 네가 더 다치면 어떡하지.’

루인이 아플까 봐.

‘……다른 이랑 몸을 섞으면 어떡하지.’

또 루인이 다른 이에게 그리 굴까 봐.

물론 그는 누구보다도 이 관계를 더는 유지해선 안 된다는 걸 잘 알았다. 내일이면 루인은 다른 이를 맞이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미련 없이 그를 보내 줘야 한다는 것도.

하지만 다 알면서도 추악한 질투와 주제넘은 걱정, 그리고 미련과 같은 여러 감정은 매번 모스를 침실로 이끌었다. 심지어 연회를 하루 앞둔 오늘조차도.

그때, 익숙한 향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루인의 침실 앞에 도착한 것이다.

이곳은 확실히 길이 많이 복잡한 탓인지, 그간 암살자의 습격이 없었던지라 이례적으로 오래 사용하는 침실이었다.

문 앞에는 향로 두 개만 덩그러니 있는 것에, 모스는 작게 헛웃음을 지었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게 된 계기이자 향로를 떠넘긴 신관은 어느 순간부터 향로만 두고 사라지곤 했는데, 오늘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모스는 익숙한 듯, 향로 두 개를 들어 올렸다. 그때 무언가가 툭 향로에서 떨어졌다.

「내일은 연회가 열리니, 황제 폐하 방 안의 향로를 교체하지 않아도 돼. 대신 내가 이 건물의 일 층 창고로 옮겨 둔 향로들만 신전에 갖다줘. 몇 개는 무거워서 못 옮겼거든.

왼쪽 건물이고, 노란색 기다란 문양이 새겨져 있는 곳이야. 문이 잠겨 있을 텐데, 이 열쇠를 쓰면 돼.」

열쇠 하나와 내용을 적어 둔 종이였다.

이젠 직접 신전에 가라고까지 한다. 하긴, 근 한 달 정도 되어 가는 시간 동안 모스는 하루도 빠짐없이 향로를 교체하고, 맡은 바를 충실히 해 냈으니 믿음이 생기고도 남을 시간이긴 했다.

‘내일 신전…….’

아마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갈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 연회 중, 연회장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일 때가 적기일 것이라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끼이익, 언제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 음산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모스는 당황했다.

루인이 문 바로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이어 모스가 들어오자마자 곧장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느릿하게 돌린 것이다.

‘점점 반응이 빨라지고 있어. 깨어 있는 시간도…….’

모스는 마치 자신을 쳐다보는 것만 같은 물끄러미 떨어지는 그의 시선에 움찔했다.

처음 루인은 모스의 기척도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고, 이 향에 취해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으며, 매번 향 때문에 누군가에게 억지로 목이 졸리는 것처럼 잠들었지만, 갈수록 아니었다.

모스가 느낀 바로는 이제 루인은 새벽까지 모스와 몸을 섞을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점점 또렷해졌고, 반응 속도도 이전과 비교했을 때 사뭇 달라졌다.

“아!”

지금처럼 말이다.

루인은 모스가 문 닫을 시간도 안 줬다. 그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문을 채 닫기도 전에 단번에 모스를 낚아채듯 끌어안은 것이다.

지금 이 움직임조차도 몹시 빠르고 정확해, 순간 모스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회복된 건가?’

이렇듯 근래의 그는 마치 눈과 귀를 쓸 수 있는 이처럼, 이전 멀쩡했던 때처럼 반응하곤 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보아도 그의 귀와 눈은 회복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보였다. 설령 인간답지 않은 몸이라 해도, 이 향에 아무리 신성력이 담겨 있다고 해도… 그게 나을 수 있나?

모스는 루인의 회복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끝까지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그러기에 얼마간 루인을 관찰하듯 빤히 보았지만, 이윽고 의심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문을 제대로 못 닫네.’

열린 문틈으로 바람이 불자, 문을 닫으려고 루인이 움직였는데…… 그 움직임이 몹시 어설펐기 때문이다. 모스는 아직도 문을 제대로 닫지 못한 채, 어설프게 허공을 휘젓는 루인의 손을 빤히 바라보다, 그가 여전히 눈이 안 보이는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자, 잠시…… 으응.”

결국 그는 직접 손을 사용하는 대신 안아 올린 모스의 등으로 밀어 내듯 문을 닫았다.

꽉 닫힌 문에 떨리는 몸을 기댄 채로 고개를 드니, 루인은 향로를 제대로 내려 둘 여유도 주지 않고, 베일을 걷어 내 조급하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흐, 응.”

모스는 작게 신음했다.

루인은 습관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부터 가벼운 입맞춤은 하지 않았다. 항상 밑바닥까지 전부 훑을 것만 같은 깊은 입맞춤이 시작이었다.

‘내게 매달리는 거 같아.’

분명 자세를 보았을 때 매달린 것은 모스이건만, 그가 간혹 이렇게 조급함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에게 입을 맞출 때면, 모스는 때때로 루인이 자신에게 매달리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다만 힘이 너무 좋은 게 문제였다. 자꾸만 등이 떠밀어지듯 밀려나는 것에, 모스가 가까스로 향로를 세워 두고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러자 루인은 자연스레 모스를 들어 올려 침상으로 걸어갔다.

털썩, 모스를 눕히자마자 루인이 모스의 옷을 위로 밀어 올려뜨리고 미끄러지듯 손으로 피부를 훑었다.

은은한 등불에 드러난 모스의 흰 피부는 이 방에 처음 들어왔던 한 달 전과는 사뭇 모습을 달리했다. 집착과 소유욕이 엿보이는 울혈들이 가슴부터 배까지, 그리고 그 아래까지 입을 댈 수 있는 곳이란 곳은 죄다 빼곡하게 채워져 있던 것이다.

“아, 아… 간지러운…데.”

오늘도 어김없이 루인은 모스의 온몸을 씹어 삼킬 것처럼 살결을 빨아 들였다. 이전에는 이게 제법 따끔했지만, 반복이란 무서운 것이다.

간지럽고 따갑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고작 루인이 피부를 제 입으로 삼키듯 빨아 들이는 것만으로도 이어질 익숙한 쾌락을 예상하듯 모스의 허리는 절로 비틀리고, 중심은 고개를 들기 시작했으니.

자연스레 다리가 벌어지고, 그 사이를 루인이 파고들었다. 가슴부터 배, 그리고 그 아래로 내려가려는 루인의 얼굴을 몽롱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모스는 순간…….

‘연회.’

내일이 연회임을 떠올리고 멈칫했다.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내일 중요한 연회가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 연회는… 황후를 맞이하는 연회이고.

“오, 늘은… 하, 지 않는 게….”

모스는 그에게 말을 해봤자 제대로 들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 말하며 루인을 살짝 밀어 냈다. 그러나 루인은 쉬이 밀려나지 않았고, 오히려 왜 그러냐는 듯 표정을 굳혔다.

이럴 때면 참 답답하다. 루인은 보고 들을 수가 없으니, 글로 써서 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눈을 보며 의사를 표현할 수도 없고.

“내, 일 중요한, 일이 있, 잖아. 연…회…….”

황궁의 연회, 황후를 맞이하려는 날.

이날이 올 것임은 한 달 전, 어쩌면 메리에게 들었던 그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음에도, 왜 이렇게 심장이 저릿한지.

“너 예, 예쁘게 하, 하고 오겠네. 귀하디귀하, 한 옷들을 입고, 그렇게…….”

그 저릿함을 숨기고자 모스는 애써 밝게 말했다.

들릴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계속 말했다.

“나, 나도 보, 보고 싶었는데.”

이리 엉망인 몰골이어도 아름다운 이건만, 그런 그를 화려하게 꾸며 연회장에 앉혀 놓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비록 살면서 단 한 번도 연회라는 곳에 가 본 적이 없었음에도, 모스는 알 수 있었다.

“네, 네가 제, 제일 예쁠 거야.”

연회에 그토록 수많은 꽃이 들어가고, 제아무리 빛이 나는 화려한 장식품들이 들어가더라도. 가장 아름다울 것은 그의 인간, 루인일 것임을.

‘비록 나는 보지 못하고, 곁에 있을 수 없더라도.’

물론 내일 모스는 루인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신관의 명대로 향로를 신전에 옮기느라 바쁠 테니까. 하나 아쉬움도 잠시,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모습을 거기서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할 루인의 옆에 황후라는 이가 생기는 것을 가장 아래에서 올려다보게 되면, 나는…….

‘괜찮아. 나는 사라지면 그만이니까.’

심장이 욱신거린다. 모스가 괜스레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어차피 모스는 루인과 달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존재였다.

그러기에 이리 밤 시중을 드는, 몸 파는 이처럼 들락거리는 모스의 존재는 황후를 들인 이후 필요치 않아질 것이며.

‘마귀만 찾으면.’

마귀를 죽이면 더더욱 황궁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원래부터 없던 것처럼, 자연스레 사라지면 더는 루인도 찾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그때쯤 그의 곁에는… 황후가 있을 테니까.

제국의 가장 아름답고 귀한 이를 들이게 되면, 자신 같은 것에게 루인이 시선을 돌리겠는가.

동화책이나 소문으로만 들어도 그렇다. 매번 모든 이야기 속의 황후는 황제의 사랑을 받고, 황제는 그런 황후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지 않는가.

‘루인이 그러는 건 상상이 안 되지만…….’

설령 그 잔혹함으로 인해 이야기 속 황제와 황후처럼 그려지지는 않을지언정, 자신과 지내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나는 아는 것도 없고, 멍청하고, 괴물이었고, 모자람이 많고, 가진 것도 없고, 말도 더듬고, 출신도 천하고…….’

모스는 울상을 지었다.

죄다 알고 있던 것들인데 막상 하나하나 떠올리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런 감상에 젖어 있을 수는 없었다. 모스는 애써 털어 내려는 이처럼 단호하게 고개를 들고, 루인을 보았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여전히 물끄러미 모스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모스는 어차피 그는 귀가 들리지 않는지라 자신의 말은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 잘 지내.”

그래서 닿지 않을 인사를 건네듯 말을 내뱉었다. 모스는 막상 입 밖으로 인사를 건네니, 후련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눈물이 핑 돌았다.

여기서 울면 멍청이다. 그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키며 루인을 꿋꿋하게 응시했다. 착각인지는 몰라도 루인의 눈이 잠시 평소보다 크게 뜨인 거 같았지만, 이어 살짝 고인 눈물에 앞이 흐려져서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나중에 보고 싶으면 어떡하지.’

모스는 거칠게 제 고인 눈물을 닦아 냈다. 루인과 있으면 괴롭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존재더라도, 어디 쉬이 놓을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고인 눈물을 벅벅 긁듯이 문질러 닦아 내던 그때.

“아, 악!!!”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모스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부릅떴다.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거 같아, 전신을 바들바들 떨며 아래를 보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파, 아파! 아아!!!”

방금까지 가만히 있던 루인이 돌연 아래에 제 것을 단번에 뿌리까지 밀어 넣은 것이었다.

오늘 새벽까지 정사를 해, 아무리 녹진하게 풀린 아래라고 할지라도 이건 아니었다.

모스는 눈을 부릅뜬 채, 바들바들 떨며 미친 듯이 루인을 밀어 내려고 했으나 어림도 없는 행동이었다. 악착스레 밀고 들어온 루인의 성기는, 발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음에도 크고 딱딱해 흉기나 다름없었고, 나갈 생각도 없어 보였다.

“끅, 끄으…….”

바들바들 떨면서도 모스는 루인을 밀어 내고자 했다.

당장이라도 거품을 물 것처럼 눈앞이 하얘지고, 정신을 차릴 수 없어 입가에 타액이 줄줄 새어 흐르는 것을 느꼈음에도 입을 다물 수 없었는데.

“가려고?”

고통에 기절이라도 하듯, 아스라이 멀어지던 정신은 루인의 말에 가까스로 돌아왔다.

희게 뒤집힌 눈에 녹색 눈동자가 도로 내려앉고, 이윽고 그 눈은 본인조차 풀어지지 않은 구멍에 밀어 넣는 게 고역이었는지 그새 땀으로 젖어 든 얼굴을 한 루인을 담았다.

“왜. 네 욕구를 그간 풀 만큼 다 풀었다 이건가?”

저게 무슨 말이지.

“그래서 이제 짐이 필요 없나?”

모스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루인을 보았으나, 그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빠르게 내뱉을 뿐이었다.

“넌 이 짓 좋아하잖아. 그래서 여태 이리 찾아온 거고.”

모스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나를 몸 파는 새끼 대하듯 굴며.”

그가 말하는 게 대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그 말에 당황한 모스가 얼어붙은 사이 루인은 모스의 허리를 잡고 아래로 쭉 내렸다.

“하, 하지 마!”

의도가 훤히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하나, 지금 해서는 안 된다. 희게 물든 머릿속에서 다른 건 다 몰라도,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에 모스가 루인을 밀어 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저항이었다. 모스 딴에는 안간힘을 써서 밀어 냈지만, 루인은 밀려나지 않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 마!”

오히려 그는 힘을 더 줘서 모스를 제 쪽으로 더 끌어당기더니 이 말도 안 되는 정사를 이어 나가려고 했다. 모스가 반항하듯 꿈틀거리며 소리쳤지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루인이 모스의 외침을 듣고 멈출 리가 없었다.

“하, 지- 말라…고!”

루인의 아래에서 버둥거리던 모스가 손을 크게 휘저었다. 그 순간, 짜악 소리가 방 안에 크게 울렸다.

결국 사달이 났다. 마구잡이로 루인을 밀어내던 모스가 그만 루인의 뺨을 거의 후려치듯 친 것이다. 어찌나 세게 쳤는지, 루인의 고개가 돌아갈 지경이었다.

“…….”

두 사람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모스도 더는 말을 내뱉지 못했고, 침묵 속 손만이 덜덜 떨려 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날 때릴 거야.’

루인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다만 틀림없이 사납게 표정을 구기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가능하던 그때, 고개가 돌아간 채 있던 루인의 얼굴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본 순간, 모스는 얼어붙었다.

분노? 실망? 짜증? 차라리 그것들이 그의 얼굴에 있었다면 이토록 놀라지 않을 것이다.

루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래, 정말 아무것도.

맞았으면 응당 얼굴에 분노가 실려야 하건만, 루인의 표정은 아무것도 없어서 마치 인형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저 얼굴을 본 순간 모스는 순간 구역질이 일었다.

“우욱.”

토하고 싶어. 무엇이라도 게워 내고 싶어. 그 생각에 도달하니,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모스는 몸을 뒤로 물려 루인의 것을 빼냈다.

엄청난 고통이었지만, 그것보다는 토기가 문제였다. 그는 벌거벗은 몸을 엉성하게 추스른 채, 혹 루인이 붙잡을세라 침실에서 뛰쳐나와 미친 듯이 복도를 질주했다.

“얘, 너 베일도 안 쓰고…!”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사용인들이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내일이 연회인지라, 모두가 바삐 움직이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모스는 그들을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그저 달리고 달려, 외진 곳을 찾자마자 속에 있는 걸 죄다 게워 낼 뿐이었다.

그런 뒤 그는 자리에 주저앉고 머리를 쥐어 짜내듯 움켜쥐었다.

“욱, …끄윽…….”

토할 것처럼 어지럽고, 머리가 너무 아프다. 한데 그 와중에도 루인의 무표정이 선명했다. 그가 자신을 쳐다보던 그 시선, 말투, 말들, 그 모든 게 눈을 제아무리 꾹 내리감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몸 파는 새끼 대하듯 굴며.

어떻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내가 루인을 몸 파는 이처럼 대했다고?

모스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그 말을 떠올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모스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그 누구보다도 자기 주제 파악을 잘하는 이였다. 둘 중 하나를 몸을 파는 이라 칭한다면, 그건 루인이 아닌 자신이었고, 실제로 그는 창놈이란 소리도 들은 적 있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왔는데.’

물론 그는 눈과 귀를 쓸 수 없고, 정신도 이상하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혹 그가 자신을 환영이나 꿈으로 착각을 하는 것과 저 말을 한 게 관련이 있는 걸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모스는 루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대체 어떤 오해가 생겼기에 그러는 걸까.

그러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모스는 단순히 서럽다는 표현 이상으로 가슴이 미어졌다. 루인의 상처받은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왜 그렇게 상처받은 얼굴이야?’

물론 그리 말을 하며 모스를 본 루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모스는 묘하게 그 얼굴에서 상처받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머릿속이 복잡했다.

‘모르겠어.’

억지로 네 것을 쑤셔 넣은 건 너면서, 오히려 아픈 건 나였는데… 왜 네가 더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는지 모스는 루인에게 묻고 싶었다.

이대로는 못 들어갈 거 같아, 한참이나 쭈그려 앉아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사위가 밝아졌다.

고개를 들어 올린 모스는 멍하니 하늘을 보았다. 며칠간 지나칠 정도로 맑았던 날씨는 어디 가고, 굵은 비라도 쏟아질 듯 우중충한 일출이었다.

오지 않으리라 여겼던 연회의 날이 밝았다.

***

“아, 이거 생각보다 더 심각한데요.”

정찰대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과일 가게가 며칠째 열리지 않고 어쩐지 가족이 다 안 보이는 거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왔는데.

“다 뜯어 먹었네.”

집 안은 처참했다. 살아생전 인간이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이곳저곳 널브러진 시신들에 정찰병의 표정이 구겨졌다.

“대체 요즘 왜 이래? 사람이 이럴 수 있나?”

“그냥 몬스터일걸? 요즘 산에 사는 애들이 자꾸 내려온다잖아.”

“하지만, 몬스터가 이렇게까지 흔적을 안 남긴다고?”

이야기를 하던 중 한 병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하고는, 팔만 남은 시신을 “으.”라고 작게 신음하며 들여다보다가 손짓했다.

“그리고 봐 봐. 이거 묘하게 사람 잇자국처럼…….”

“야! 그만해. 가뜩이나 흉흉한데, 너도 말을 보탤 거야? 윗사람들이 알아서 다 해 주겠지. 자꾸 이렇게 일이 터지니까, 몬스터 토벌을 더 많이 나가신다고도 했고.”

“……그래, 뭐.”

하지만 그 의견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금방 묵살됐다. 하기야 요즘 병사들의 인력은 남아나질 않았다.

자꾸 이런 사고가 나니, 더 많이 정찰을 돌아야 하고, 제국민들이 그만큼 불안해하니 더 많이 모습을 노출시키느라, 몸이 열 개어도 모자라기 때문이었다.

“우린 정찰이나 더 강화하라는 지시가 있었어. 더 많이 돌아야 해.”

“뭐? 이 이상??”

“어쩔 수 없지. 곧 있으면 황제 폐하를 비롯한 나라의 귀한 이들이 다 한자리에 모이니까.”

“어, 설마…….”

“그래, 그거.”

그 얘기에 불평을 한가득 쏟아 낼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병사에게 담담하게 말하며 시신을 수습하던 병사가 말했다.

“황후 책봉을 위한 연회 말이야.”

이야기를 나누던 병사들이 집을 빠져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그르렁거리듯 우짖는 소리가 들렸다.

“연, 회?”

그리고 이어 나타난 것은…… ‘무언가’.

그의 입에는 살점이 너덜거리는 손이 물려 있었고, 손톱은 길게 돋아 있어 스치기만 해도 크게 상처를 입을 것처럼 날카로웠다.

툭, 그가 물고 있던 손을 떨군 뒤,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자 두 개의 목소리가 섞이듯 번갈아 그의 입으로 튀어나왔다.

“연회, 황실의 중요한 일이지. 황제, 그가 있는 곳이지. 연회, 기회지. 무슨 기회, 살점을 뜯어낼 수 있는,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뼛조각 하나까지 씹어 낼 수 있는…….”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그렇게 한참을 떠들던 그것은 이윽고 고개를 휙 돌렸다.

“때가 되었다.”

고개를 들어 올린 그의 눈은 방금까지 언제 새빨갰냐는 듯 푸르렀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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