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부(1) (2/8)

1부(1)

어머니가 급사했다. 다행인 점은 어머니가 언젠가 다가올 불행을 대비해 약간의 돈을 모아놨다는 사실이었다. 겨우 10살인 알토는 어머니의 시신 옆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나이토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아래로 꺼지는 아찔한 감각이 그치지 않았다. 분명 앞을 보고 있는데, 앞이 보이지 않았다. 늘 배고파서 위장이 쓰라리던 것도, 그저 그랬다. 처음이었다. 모든 생리적인 것들이 멈춰버린 것은.

그런 나이토를 일깨운 건, 알토의 손길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알토가 굶주린 배를 감싸쥐고 훌쩍거렸다.

‘형, 나 배고파….’

어머니는 죽었지만, 동생은 살아있었다. 이 세상에 남은 혈육마저 잃을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언제나 엄마가 세뇌하듯 반복해서 말하던 게 나이토를 정신 차리게 만들었다.

‘나이토, 알토는 버리면 안 돼. 너희 아버지처럼 되면 안 되는 거야. 알겠지? 알토는 네 동생이니까…. 그리고 알토, 너도 마찬가지야. 항상 형을 믿고 따라야 한다.’

나이토는 옷을 잡고 매달린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아기 때처럼, 너무 작고 보드라워서 약간만 세게 다뤄도 생채기가 생길 것 같았다. 먼지와 눈물이 엉겨 붙은 동생의 뺨을 만져주었다. 뭐라도 먹어야 했는데, 남아있는 건 아주 최소한이었다.

14살인 나이토는 앞으로 다가올 불안한 미래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어머니가 모아놓은 돈으로 한 달은 버틸 수 있다. 그러나 그 후가 문제였다. 과연 14살밖에 되지 않은 자신과 자신보다 어린 알토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빈민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부잣집에 하인으로 팔려가거나, 사창가에 몸을 의탁하거나. 부모가 없는 빈민가 아이들의 미래가 어떤지 뼛속까지 알고 있는 나이토는 그 두 개의 선택지를 제외하고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다. 최악이 아닌 차악의 선택을 해야 한다. 한참을 머리를 싸매고 있던 나이토는 문득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만약 엄마가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지면 그때는 너희 아버지에게 가. 엘시가 폭력적이긴 해도, 아버지니까 버리진 않을 거야.’

어머니는 아버지를 선택하라고 말했다. 나이토는 깡마르고 유약한 몸을 감싸 안았다. 눈을 감고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의 이름은 엘시 제이제단이었다. 18살에 자신을 낳고, 22살에 알토를 낳고서 불현듯 사라져버렸다. 그가 사라진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어머니인 얀 멜시크라츠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새카만 검은 머리에, 보기만 해도 홀릴 것 같은 자색 눈을 소유한 미남자였다. 아버지는 나이토가 커갈 때마다 언성이 높아졌다. 그는 언제나 지긋지긋한 뒷골목 생활을 청산하고 싶어 했다. 구질구질한 가난이 싫다고 했다. 그러던 그는, 나이토가 7살이 되던 해에 짐을 꾸려 나갔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붙잡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방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어린 알토는 어머니 발치에 앉아 해맑게 웃었다.

나이토만이 아버지의 넓은 등을 쫓아 헐레벌떡 뛰어갔다. 짧은 다리로 아버지를 쫓아가던 나이토는 철퍼덕 넘어졌으나, 씩씩하게 일어나 아버지를 붙잡았다. 아버지가 무감한 얼굴로 나이토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은 평상시와 같았지만, 무서움은 배가 되었다. 나이토는 울음을 삼키며 아버지 옷자락을 꼭 잡았다.

‘가지 마, 아빠.’

아버지는 무심한 얼굴로 우는 아들을 쳐다보더니 허리를 숙였다. 그는 우유 냄새가 나는 나이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차갑게 말했다.

‘나이, 아빠는 가야 해.’

아버지는 나이토를 종종 나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렇게 부르는 게 좋아 나이토는 아버지의 상체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냉정하게 나이토를 밀어냈다. 나이토는 서러워서 코를 훌쩍거렸다. 아버지는 혀를 차며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나이토의 코를 닦아주었다.

‘아빠는 더 이상 엄마를 사랑하지 않고. 같이 살고 싶지도 않고.’

그 말은 어린 나이토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 사랑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전에 아버지는 몸을 일으켰다. 가방을 뒤적거리던 그는 나이토의 손에 반지를 올려주고는 다정하게 속삭였다.

‘그렇지만 너희에게 책임감은 느끼고 있단다. 이걸 가지고 엄마한테 가렴. 집 한 채는 살 수 있을 거다.’

‘엄마가 슬퍼해, 아빠. 가지 마.’

반지를 꼭 쥐고서 발을 동동 굴렀다. 오죽했으면 지나다니는 사람들마저도 안쓰러운 시선으로 볼 정도로 나이토는 아버지에게 애걸복걸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잘 지내라는 말 하나 없이 등을 돌렸다. 나이토는 떠나는 아버지의 등을 보며 바닥에 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우리를 버린 거야.’

나이토는 어린 나이에 버림받았다는 걸 알고서 한참을 울었다. 눈물로 흠뻑 젖은 얼굴을 야무진 주먹으로 닦아내고, 어머니에게 갔다. 나이토가 어머니에게 반지를 넘겨 준 그날 이후로 아버지를 잊기로 했다. 그런 식으로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아버지나 어머니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이토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을 사실을 알아챘는지, 아무 말 없이 일을 묵묵히 했다.

그렇게 7년이 흘렀다. 7년이 흘러서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갔고, 남은 건 허름한 집과 동생인 알토, 하나뿐인 친구 레이얀이었다. 혼자 생각에 잠겨있던 나이토는 몸을 일으켰다. 어느 정도 울음을 그친 알토가 무릎으로 기어 나이토에게 다가왔다.

“형아, 나 배고파.”

“나도.”

나이토는 성의 없이 대답하고서 어머니의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다 못해 속이 쓰리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하루에 한 끼, 혹은 아예 굶다 보니 입안도 말라버렸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이 있으니 가장 먼저 식비를 줄이게 되었다. 음식을 주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우유와 빵을 먹다 보니 속이 좋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다. 그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순차적으로 몸을 점령했다. 나이토는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는 알토를 신경 쓰지 않고, 옷장을 계속 뒤졌다. 어머니가 분명히 유언장을 남겼다고 했다. 자신이 혹시나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펼쳐보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나이토가 마지막으로 열어본 건, 냉동실이었다. 나이토는 냉동실 구석에서 얇은 비닐봉투를 발견했다. 그 안에 뭔가 바스락거리는 게 느껴졌다. 동그랗고 딱딱한 것도 손가락에 잡혔다. 이거다. 예감이 확신으로 굳혀졌다. 나이토는 비닐 봉투를 힘을 주어 뜯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가 떠날 때 나이토에게 남겨줬던 반지가 튕기듯 나왔다. 나이토는 그걸 손에 쥐고서 어머니가 남긴 유언장을 살폈다. 유언장은 간략했다. 아버지를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간략한 정보들이 적혀있었다. 반지는 나이토와 알토가 엘시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될 것이라며, 어머니가 남겨놓으셨다.

만약 아버지가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이 반지를 팔아서 먹을 걸 살 예정이었다. 그다음 일은 그다음에 생각하자. 나이토는 깔끔하게 결론을 내리고, 단출한 밥상을 차렸다. 말라버린 비스킷과 우유가 다였다. 알토는 그것도 감사한지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었다. 나이토도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짐승처럼 미친 듯이 음식을 먹었다. 다 먹은 후에 나이토는 알토에게 옷을 챙겨줬다.

“형, 우리 어디 가?”

알토가 옷을 입으며 물었다. 나이토는 썩어가기 시작하는 어머니의 시체를 흘깃 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아버지한테 갈 거야.”

“아빠가 우리 버렸다면서. 우리를 받아줄까?”

알토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낡은 점퍼를 입던 나이토는 알토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대답했다.

“그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데. 너도 잭처럼 죽고 싶지 않잖아. 뭐든 해봐야지.”

옷을 챙겨 입은 나이토는 반지와 돈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그는 바로 옆집에 사는 레이얀에게 향했다. 낡은 문을 몇 번 두들기자 레이얀이 고개를 내밀었다. 레이얀은 나이토와 알토를 보자마자 주인 만난 강아지처럼 신이 나서 뛰어왔다. 레이얀은 나이토에게 덥석 안겼다. 나이토도 환하게 웃으며 레이얀을 반겼다.

“무슨 일이야, 나이?”

레이얀이 추위에 얼어붙은 나이토의 손을 만지며 물었다. 나이토는 머뭇거리다가 숨을 작게 내쉬며 말했다.

“나 수도에 갈 거야.”

“수도에?”

“응. 아버지가 거기 계신대.”

“너희를 버렸다는 그 사람?”

레이얀이 인상을 쓰며 시니컬하게 중얼거렸다. 나이토는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발을 꼼지락거렸다. 레이얀이 싫어할 줄 알았다. 자신도 레이얀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레이얀이 좋긴 하지만, 굶어 죽을 수는 없었다.

“응. 그래도 보호자가 있는 게 나으니까. 그래서 부탁인데, 레이얀. 어머니의 시체를 처리해줄 수 있어? 돈은 줄게.”

레이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해줄 수 있어. 그런데 괜찮겠어? 수도까지 혼자 가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괜찮아. 아버지 주소랑 번호는 아니까. 어머니가 남겨주셨거든.”

나이토가 애써 웃었다. 레이얀도 싱겁게 웃었다. 나이토는 마지막으로 레이얀을 꼭 끌어안으며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수도에 도착하면 연락할게. 꼭 나한테 다시 연락해. 알았지?”

“응. 걱정 마.”

나이토와 레이얀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반드시 다시 만나기로. 나이토는 레이얀에게 시체 처리비용을 넘겼다. 어머니의 시체를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고 가고 싶었으나 그러기엔 수도까지 가는 길이 멀었다. 나이토는 ‘졸리다.’라고 칭얼거리는 알토를 끌고서 기차역으로 향했다. 다행히 기차가 한 대 남아있었다. 새벽 기차라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이토는 알토를 재우고, 눈이 내리는 밖을 보았다.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세상은 고요했다. 적나라한 침묵에 잠긴 도시를 보던 나이토는 불안함에 눈을 감았다.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아버지는 다분히 폭력적이었다. 아버지와 같이 살았을 때, 아버지는 허구한 날 경찰에게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심지어 폭행죄로 짧은 기간이지만 구치소에 있다가 온 적도 있었다. 실제로 아버지가 이웃집 남자를 흠씬 두들겨 팬 걸, 어린 시절 보고 두려움에 떨었다. 정말 아버지는 사람을 죽일 기세였다. 최소한의 사회적 울타리인 법이 없었다면, 그 남자는 진작 죽었으리라.

그래도 그런 아버지 밑에 사는 게, 부잣집에 팔려가는 것보다 나았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미래는 이 나라에서 그리 밝지 않았다. 어린 생명들의 종말을 눈으로 생생히 본 나이토는 절망감에 한숨을 토해냈다.

갑자기 밀려오는 피곤함에 나이토는 창에 머리를 기댔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그저 편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나이토와 알토에게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거 같아, 서글펐다.

*

처음 보는 수도는 불야성 그 자체였다. 빈민가와 다르게 높고 거창한 건물들은 가지각색의 빛을 뽐냈다. 그 밑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빈민가 사람들과 다르게 키 크고, 체격이 좋았으며, 자신감이 넘쳤다. 낡은 점퍼와 후진 운동화를 신고 있는 건, 나이토와 알토뿐인 것 같았다. 자신들을 쳐다보는 시선들을 느낀 나이토와 알토는 수치심에 볼을 붉히고 고개를 돌렸다. 빈민가는 모두가 가난했기에 어떻게 입어도 부끄럽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매춘을 해도 당당한 곳이 빈민가였다.

그러나 이곳은 달랐다. 좋은 옷을 입고,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 사이를 걷는 것 자체가 고욕이었다. 나이토는 수도를 신기하게 볼 틈이 없었다. 그는 어서 배고픔과 수치심으로부터 벗어나 아버지에게 가고 싶었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게 불안하고 껄끄러웠지만, 지금은 오히려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도 어린 자식들이니까 조금이나마 동정심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미약한 희망이 있었다.

“형, 나 배고파.”

몇 시간째 길을 걷던 알토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조금만 더 가면 아빠 집이 나올 거야.”

“아까부터 그 소리잖아! 난 더 이상 걷고 싶지 않단 말이야!”

어머니가 남겨준 돈으로 기차표값을 내고, 지도를 사고, 음식을 산 터라 남은 돈이 얼마 없었다. 나이토는 수중에 남은 돈을 보았다. 혹시 몰라 돌아갈 기차표값으로 남겨둔 거였지만, 우는 동생을 이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알토, 잠깐만 기다려. 빵을 사 올게.”

알토가 훌쩍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토는 지갑과 짐을 알토에게 건네주고, 건너편 빵집으로 달려갔다. 꼬질꼬질한 나이토의 행색에 주인은 질색했다. 그러나 나이토가 애처롭게 빌면서 “동생이 배고파요.”라고 하니, 나이토를 받아들였다. 나이토는 가장 싼 빵을 여러 개 샀다. 동생에게 달려가 입에 빵을 물려주자 동생이 그제야 웃는 얼굴을 보였다. 알토의 옆에 앉은 나이토는 빵을 찢어 입에 넣었다. 빈민가에서 사 먹던 빵보다 훨씬 맛있었다. 입에 넣자마자 녹아내리고, 고소함은 더 오래갔다. 나이토가 빵을 우물거리며 동생을 쳐다보니, 알토가 두 번째 빵에 손을 대고 있었다. 나이토는 동생의 손등을 쳤다.

“왜?”

“이건 이따가 먹자. 혹시 모르니까.”

알토가 나이토 눈치를 살폈다.

“…아버지가 우리를 또 버릴까 봐?”

빵을 정리하던 나이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괜찮아. 반지를 가져왔거든. 이거 팔면 돼.”

“그다음에는?”

“일을 구해야겠지.”

무덤덤한 나이토의 대답에 알토는 고개를 숙였다. 구멍이 난 운동화 사이로 발가락이 초라하게 나왔다.

“우리도 언젠가 빵 많이 먹고, 따뜻한 곳에 살 수 있겠지?”

알토가 희망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나이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는 걸, 주변 사람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굶어 죽지만 않으면 다행이었다. 나이토는 다시 기운을 차려서 동생을 끌고 아버지가 사는 집으로 걸어갔다.

길을 잘 몰라 지도를 들고 헤맸다. 나이토는 용기를 내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길을 물었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이토는 아버지의 집을 끝내 찾아냈다. 아버지의 집은 단순한 집이 아니었다. 집이란 단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소규모 궁이나 다름없는 규모에 입이 떡 벌어졌다. 저 멀리 3층짜리 저택이 떡하니 중앙에 위치해 있었고, 그 양 옆 사이로는 광활한 정원이 있었다. 웅장한 나무들이 세찬 바람에도 꿋꿋하게 서서, 저택을 감싸고 있었다. 불빛이 사이사이 안개처럼 퍼져있어서 그리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은근하게 저택을 빛내고 있어서, 저택의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위기가 잘 살아났다. 더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나무들이 장막처럼 가리고 있어 보이지 않았다. 나이토는 뒤로 물러나 명패를 더듬더듬 읽었다.

“엘시 벤야민 제이제단. 맞아. 아버지 이름이야.”

“그럼 이거 누르면 되는 거야?”

알토가 발뒤꿈치를 들어 올려 초인종을 가리켰다. 나이토는 알토의 허리를 잡아 올려주며 초인종을 누르게 했다. 버튼이 부드럽게 눌렸다. 잠시 후, 붉은 불이 들어왔다.

[누구시죠?]

상냥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용기를 얻은 나이토가 눈을 반짝거렸다.

“저는 나이토 멜시크라츠입니다. 저, 혹시 엘시 제이제단 씨 계신가요?”

머뭇거림 없이 나이토가 바로 물었다. 여자는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신 거죠? 보아하니 공적인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나이토는 대답하기 전, 반지를 꺼내 반짝거리는 곳에 갖다 대었다. 아마 저곳에 카메라가 있을 것 같았다. TV에서 보던 게 있어서 그걸 따라 했다. 그걸 본 여자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나이토와 알토는 서로 얼굴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우선 들어오시죠. 제가 앞으로 나가겠습니다.]

목소리가 끊기면서 거대한 대문이 열렸다. 나이토는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알토도 살짝 겁을 먹었는지, 나이토의 손을 꽉 잡았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해 으리으리한 저택 쪽으로 걸어갔다. 신경 써서 정돈한 길을 천천히 걸었다. 계속 걷던 중, 나이토와 알토는 목소리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가슴 아래로 내려온 긴 금발을 쓸어 올렸다. 어둠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금발이 거두어지자,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어둠 속에서 도드라지게 보였다. 하얗고 뽀얀 피부가 유독 빛을 발하는 미인이었다. 그녀는 수도에서 유행하는 최신식 짧은 원피스에 두터운 털 코트를 두르고 있었다. 눈이 오는 날씨에 춥지도 않은지 맨살이 드러나는 하이힐을 신은 그녀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서 두 사람을 무심히 쳐다보았다.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아버지를 만나러 온 거예요.”

알토가 불쑥 말했다. 깜짝 놀란 나이토가 알토의 입을 막고, 자신이 나섰다. 그러나 이미 여자의 눈빛은 변해있었다. 그녀는 나이토의 말을 듣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나이토와 알토가 따라오지 않자 그녀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녀는 웅장한 저택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버지 만나러 가야죠, 도련님들. 따라오세요.”

나이토는 마른 침을 삼키고 천천히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는 구두를 벗고, 정갈하게 놓인 슬리퍼를 신었다. 나이토도 황급히 허름한 운동화를 벗었다. 가난의 상징을 떨쳐내고 싶은 소망이 깃든 손짓을 알토가 따라 했다. 슬리퍼를 신은 채 안으로 들어갔으나, 아무리 걸어도 실내가 나타나지 않았다. 긴 통로를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했을 때야 넓은 홀이 나타났다. 홀에는 위압적인 계단이 떡하니 있었고, 계단 양옆에는 포효하는 사자상이 있었다. 당장에라도 살아 뛰어내릴 것 같은 모습에 나이토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이름도 모르는 명화가 보였다. 은은한 향을 흘리는 꽃도 시야에 들어왔다. 멍하니 홀을 관찰하는 두 아이를 다정한 눈으로 보던 그녀는 코트를 벗어 대기하던 집사에게 건넸다. 집사가 충직한 태도로 코트를 받아들고 자리를 비웠다.

그녀는 경직된 나이토와 알토의 뺨을 양손으로 감싸며 나긋한 어투로 물었다.

“둘 다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저는 나이토, 얘는 알토예요.”

그녀는 하얗고 부드러운 손을 내밀었다. 마치 생크림 같은 그녀의 손을 빤히 보던 나이토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생각보다 더 부드럽고 따뜻했다. 나이토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엘리예요. 몰시드 사람이죠.”

“네.”

나이토는 딱히 할 말이 없어 대충 대답했다. 그녀는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올리며 덧붙여 말했다.

“그렇게 겁 안 먹어도 돼요. 이상한 일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나는 엘시와 함께 사업을 관리하는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나요?”

나이토가 순진하게 물었다. 그녀는 그것도 모르냐는 눈으로 나이토를 보았다. 그녀가 허리를 더 숙이더니 나이토의 콧등을 살짝 건드렸다.

“아버지는 말이에요, 나이토 도련님. 바로 이 도시에서 유명한…….”

문이 덜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토는 고개를 돌렸다. 키가 매우 큰 남자가, 넓은 어깨를 자랑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존재감만으로 넓은 홀이 가득 찼다.

“애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그녀의 말을 불쑥 자르고 나타난 남자가 성큼성큼 나이토와 알토 앞에 섰다. 상의를 입지 않은 남자는 나이토와 알토 같은 검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시선을 좀 더 올린 나이토는 자신을 보는 강렬한 자색 눈동자에 눈을 크게 떴다. 한 눈에 보자마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잘생긴 외모였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아버지보다 훨씬 잘생겼다. 나른한 잠에 취한 듯, 반쯤 감긴 눈매가 어떤 사람보다 아름다웠다. 그 안에 또렷하게 빛나는 자색 눈동자는 보석을 보는 듯, 황홀함을 안겨주었다. 오뚝한 콧날과 이어진 입술, 남자다운 턱. 허투루 생긴 곳이 없었다. 앞머리를 내린 탓일까. 그의 나이보다 젊어 보였다. 그의 날렵하고 긴 눈이 스르륵 움직였다. 남자의 자색 눈동자와 마주친 나이토가 손을 움찔거렸다. 그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독하고, 위압적이었다. 나른한 우아함이 있긴 했으나, 그의 눈을 보면 마약을 빨아들인 듯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뛰었다. 그것은 공포에 의한 떨림이었다. 마치 뱀이 자신을 노리는 듯한 위협감마저 느껴졌다.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꽂고 아이들을 노려보던 남자는 나이토가 생명줄처럼 쥐고 있던 반지를 뺏어갔다. 그는 진지한 눈으로 반지를 훑어보았다.

“내 거 맞네. 그런데 내가 이걸 언제 준 거지?”

“제가 7살 때, 아버지가 집 나가면서 주신 거예요.”

나이토가 대답했다. 남자는 나이토를 보며 픽, 웃더니 동그란 이마를 검지로 쿡 찌르며 말했다. 고작 살짝 찌르고 밀었을 뿐인데 손힘이 워낙 좋아 깡마른 나이토의 몸이 뒤로 밀렸다.

“너한테 대답하라고 안했다, 나이토. 내가 물어볼 때만 대답해.”

말투는 조근조근하고 나긋했으나 안에 담긴 감정은 분노에 가까웠다. 나이토는 겁을 먹고 알토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반지를 여러 번 보며 살피던 남자는 관심 없다는 태도로 그것을 이엘리에게 넘겼다.

그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두 아이들을 노려보았다. 그의 매서운 눈빛이 닿자 어깨가 움츠러들었으나, 나이토는 몸에 힘을 주고 버텼다.

“내가 그때 정신이 나갔나 보군. 저 반지를 너 따위한테 주다니.”

순간 욱한 나이토가 그를 째려보았다. 남자는 그 시선이 웃긴지, 나직하게 웃었다. 엄청난 장신이라 나이토는 고개를 한껏 들고 그를 봐야 했다. 남자는 그런 나이토와 시선을 마주치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더니, 나이토의 차가운 뺨을 꼬집었다. 불쾌함에 나이토가 인상을 쓰자 남자가 볼을 쥐고서 흔들었다.

“얀을 그대로 닮았네.”

남자는 이번에 알토를 보았다. 그러나 나이토와 대할 때와 다르게 그는 시큰둥하게 보며 중얼거렸다.

“넌 나를 닮았구나.”

그는 허리를 세웠다. 그의 뒤에서 대기하던 이엘리가 다가와서 셔츠를 가져다주었다. 그가 고맙다는 말도 없이 셔츠를 입었다. 위협적이던 몸이 가려져 그나마 덜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팔짱을 끼고서 나이토를 보았다. 왜 왔는지 물어보는 시선에 나이토는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가 피식 웃었다. 자식을 보는 다정다감한 시선도, 어머니를 잃은 불쌍한 아이를 보는 시선도 아니었다. 그는 흥미로움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나보고 너희를 키우라고?”

“키우기 싫으면 안 키우셔도 돼요.”

사실 말과 달랐다. 그가 아이들을 책임지지 않으면 나이토와 알토는 금방 거지가 되리라. 남자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살 건데? 뭐, 얼굴은 꽤 반반하니 어느 집에 가도 먹고 살 수는 있겠네. 금방 죽겠지만.”

나이토는 그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비참했다. 그나마 남아있던 희망이 싹 사라졌다. 그래,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었다. 제멋대로고, 폭력적이었다. 나이토는 실망에 가득 차 바닥을 노려보았다.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어쩌면 삶이 달라질 거라고, 기대했다. 배는 굶지 않고 살겠구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조롱했고 비웃었다. 거기다가 돈이 될 반지까지 뺏겼다. 그걸 보여주는 게 아니었다. 나이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나이토, 고개 들어.”

남자가 다정하게 명령했다. 나이토가 고개를 들었다. 반항과 실망, 체념이 뒤섞인 얼굴을 빤히 본 남자는 턱에 손을 대며 말했다.

“나랑 살고 싶어?”

나이토는 고민했다. 나이토가 바로 대답을 못 하자 남자는 나이토의 날렵한 턱을 잡았다. 커다란 손에 얼굴이 억세게 잡혀, 도망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빨리 대답해. 아니면 쫓아낼 거야.”

“…살게 해줄 거예요?”

나이토가 실낱같은 희망을 잡았다. 비참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그런 강렬한 염원을 눈치챈 듯, 남자가 부드럽게 웃었다. 처음으로 보는 아버지다운 미소에 나이토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네가 원한다면.”

그가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나이토는 자신도 모르게 남자의 손목을 양손으로 잡으며 해맑게 물었다.

“알토도요?”

“그래. 네가 원한다면.”

남자가 나이토의 턱에서 손을 뗐다. 나이토의 손이 그의 손목에서 떨어졌다. 그는 나이토의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돈해주었다. 아버지의 손은 이엘리보단 아니었지만 부드러웠다. 그는 나이토의 여린 뺨을 만지더니 입을 열었다.

“대신 조건이 있다.”

“무슨 조건이요?”

순진무구한 나이토의 물음에 남자는 손가락을 세 개 펴 보였다. 그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말했다.

“첫 번째, 연애질은 안 돼. 두 번째, 학교 끝나면 무조건 집에 와. 세 번째, 저녁은 6시에 반드시 아버지인 나랑 먹어야 해. 그게 조건이야. 이거만 지키면 너희를 키우고, 대학까지 보내주마.”

나이토는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그가 고민한다면 쫓아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나이토의 반응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는 나이토에게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나이토가 손을 내밀어 잡았다. 그의 손은 매우 커서, 나이토의 두 손을 한 손으로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잘 지내보자, 아들.”

그가 씩 웃었다. 유쾌한 미소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안도감이 발밑에서 요동쳤다.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

올해도 어김없이 폭설이었다. 온 세상이 거친 눈에 짓눌린 듯, 창백하게 질려갔다. 학교를 향해가는 차 안에서 밖을 내다보던 나이토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의 새로운 남자 애인인 키샨이 자신을 부른 것이었다.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뺀 나이토는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키샨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안 봐도 뻔했다. 아버지였다. 작게 한숨을 내쉰 나이토는 옆에서 게임에 빠져 있는 알토에게 휴대전화를 넘기려 했다. 그러나 키샨이 고개를 저으며 어눌하게 말했다.

“아니야, 나이토. 너야.”

왜 또 나냐고, 키샨에게 소리쳐서 화낼 뻔했다. 하지만 키샨에게는 죄가 없다. 연거푸 한숨을 내쉰 나이토는 전화를 귓가에 갖다 대었다.

“네.”

[대학에 가고 싶다고?]

아버지는 잘 잤냐는 흔한 인사 없이 나이토가 말하자마자 빈정거렸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뜸을 들이던 나이토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머리가 아파 왔다. 눈을 슬쩍 돌리자 게임에 열중하던 알토가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 동생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나이토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네. 선생님한테도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안 돼.]

“왜?”

안 된다는 말에 반사적으로 분노 섞인 반말이 나왔다. 아버지는 사사건건 이 모양이었다. 연애도 안 된다, 외박도 안 된다, 친구들하고 노는 것도 안 된다. 이 나이 먹도록 친구들하고 음식점이나 볼링장 같은 곳은 가본 적이 없었다. 왜 안 되냐고 화를 내자 아버지는 웃으면서 “그게 조건이었으니까.” 라고 명쾌하게 답했다. 어렸을 때는 몰랐다. 아버지가 요구한 조건이 이렇게 오래 자신을 묶어둘 줄은.

그래도 그게 대학까지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분명히 아버지 입으로 대학도 보내준다고 했으니 어련히 대학에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아버지는 대학에 가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그 이야기로 지금 며칠째 아버지와 크고 작은 다툼을 벌였다. 처음에는 말싸움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몸싸움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몸싸움은 늘 아버지의 승리였다. 나이토가 충동적으로 달려들면 아버지는 손쉽게 나이토를 제압하고, 뒤에서 꽉 안은 채 달래주기 바빴다. 자신이 아파서 헐떡이면 아버지는 귓가에 입술을 댄 채, “괜찮아, 아들.”이라면서 토닥여줬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수치스러웠던 과거를 떠올리던 나이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관자놀이를 만지던 손을 내려 무릎을 톡, 톡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왜 안 되는지 저는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기분 좋은 듯, 소리 내서 웃었다. 신경에 거슬렸다.

[내가 말했잖아. 내가 그냥 보내주기 싫다니까.]

“그냥이라는 게 말이 돼요? 말도 안 되잖아요. 무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알토는 다 된다면서 왜 저한테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화가 나서 차 안에서 노발대발하자, 키샨과 알토가 나이토를 쳐다보았다. 키샨은 부자간의 싸움에 어쩔 줄 몰라 했고, 알토는 턱을 괸 채 지겹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글쎄. 굳이 말하자면 이제는 가족끼리 헤어지기 싫어서?]

아버지가 웃으면서 장난치듯 대꾸했다. 어이없는 말이었다. 가족끼리 헤어지기 싫다는 이유로 대학에 가지 말라니. 가족끼리 헤어지는 게 싫었다면 아버지는 어렸을 때 나이토와 알토를 버렸으면 안 되는 거였다. 가족을 버린 주제에 이제 와서 가족끼리 정을 나누자는 게 웃겼다.

[네가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이 수도에서 멀더라고. 보니까 수도에서 통학은 불가능하던데, 그러면 기숙사 들어갈 거 아니야.]

“제가 집을 떠나는 게 싫다는 말씀이세요?”

[아니. 네가 내 영역을 벗어난다는 게 싫은 거지. 내 것들은 내 눈앞에 있어야 직성이 풀려. 알토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착각하지 마. 넌 절대 대학에 못 가. 보내줄 생각 없어.]

“처음 만났을 때하고 말이 다르잖아!”

웃음기를 거둔 그가 차갑게 말했다.

[그럼 반대로 물어보지. 넌 내 조건 잘 지켰다고 할 수 있어? 몇 번 가출한 걸 잡아온 게 나였는데. 처음부터 조건을 어긴 건 너야. 그러니까 나도 처음 만났을 때 한 말을 지킬 필요가 없는 거지.]

나이토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아버지가 전화를 끊었다. 화가 난 나이토가 휴대전화를 키샨에게 던졌다. 이엘리와 다르게 소심하고 겁이 많은 키샨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나이토가 화를 낼 때면 움츠러들었다. 지금도 나이토가 던진 휴대전화에 머리를 얻어맞아 아플 텐데 화내지 않고 얌전히 조수석에서 휴대전화를 챙겼다. 학교에 도착했지만 화가 식지 않아 가고 싶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끓어올랐다. 애초부터 그 조건이라는 것도 웃겼다. 순전히 자기중심적인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연애질을 하지 마라, 학교를 마치고 바로 와라, 저녁을 같이 먹자. 왜 그런 조건을 걸었냐고 물어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간단하게 말했다.

‘원래 밥 먹으면서 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잖아. 우리가 그동안 너무 멀리 떨어졌으니까, 저녁이나 같이 먹으면서 부자간의 정도 쌓고… 내가 널 가르쳐보려고. 넌 가르칠 게 많거든.’

처음에는 그럭저럭 납득하고, 지켰지만 중학교에 올라가고 친구를 사귀면서 반항이 시작됐다. 다른 친구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 친구들은 학교가 끝나면 노느라 바빴다. 나이토도 친구와 놀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그때마다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게 너무 싫어서 버텨봤지만, 10대 소년이 아버지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또래 아버지들보다 강했고, 억셌다. 나이토의 힘이 통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끌려가 억지로 밥을 먹어야 했다. 먹기 싫다고 버티면, 아버지가 강제로 입을 벌려 밥을 쑤셔 넣었다. 못 참고 토했더니 아버지는 가차 없이 뒷목을 잡으며 말했다.

‘다시 가난하게 살고 싶어? 그렇게 해줄까?’

나이토뿐만 아니라, 알토도 보내버리겠다는 서슬 퍼런 시선에 나이토는 서글픈 눈물을 꾹 참았다. 형과 다르게 자유를 만끽하는 알토는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식탁에서 물러났다. 나이토는 서러움을 참고 밥을 다 먹었다. 그 뒤로 아버지를 보면 소름이 돋아 못 참고 가출했다. 마침 레이얀도 상황이 나아져 수도로 올라오면서 레이얀이 도와주거나, 간혹 친한 친구들이 자신의 집을 빌려주거나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가출할 때마다 아버지가 잡으러 왔다. 나이토는 견디지 못하고 가출을 감행했지만, 아버지에게 늘 잡혀 왔다.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니 어느 정도 순응하고 살았는데 그때 일이 이렇게 돌아오니 화가 나 미칠 거 같았다.

“형, 꼭 대학 가야 해?”

나이토를 따라 차에서 나가지 않던 알토가 물었다. 창밖을 보던 나이토가 그 물음에 고개를 휙 돌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16살이 된 알토는 나이토보다 아버지를 더 따랐다. 아버지가 가진 힘에 심취한 듯, 아버지를 따라 행동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형제 사이는 멀어졌다. 나이토는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고, 알토는 아버지처럼 불야성을 주무르고 싶어 했다. 자신에게 순응하는 알토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버지는 나이토와 다르게 알토에게 자유를 주었다. 알토는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나이토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불순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왜 굳이 아버지 심기를 건드는 거야? 그냥 아버지 말대로 대학 안 가고 집에 살면 되잖아.”

“넌 집이 좋을지 모르지만 난 아니야.”

자신이 집을 반드시 나가야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레이얀 때문이었다. 연애질이 안 된다는 집이니 나가서 레이얀과 실컷 연애할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도 비밀리에 레이얀과 사랑을 나누곤 했지만 그걸로 만족하지 못했다. 레이얀과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다.

알토는 나이토를 물끄러미 보았다. 나이토는 무표정한 얼굴로 동생을 쳐다보았다. 잠시 말이 없던 알토는 장갑을 끼며 말했다.

“대학에 안 가고 아버지 일을 돕는 게 더 나을 거야. 그깟 대학 안 나온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너나 그렇게 해. 난 그렇게 안 살 거니까.”

차 문을 벌컥 연 알토가 밖으로 나갔다. 채찍 같은 바람이 차 안으로 소용돌이치듯 들어왔다. 추위에 살짝 몸을 움츠렸다. 차 문을 닫기 전, 알토가 고개를 숙여 나이토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아버지가 생각보다 형한테 집착하는 거 알고 있지? 그럼 알아서 잘 행동해. 아버지가 진짜로 화나기 전에.”

집착이란 말에 나이토가 얼굴을 굳혔다. 알토는 아버지와 비슷하게 피식 웃더니 덧붙여 말했다.

“형만 얌전히 살면 이상할 거 하나 없어.”

마치 자신이 문제인 것처럼, 비수를 하나 푹 꽂은 채 알토가 사라졌다. 순간 머리가 멍해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알토가 나간 후에도 꽤 긴 시간 차 안에 머물렀다. 오죽했으면 키샨이 이제 안 가냐고 은근히 짜증을 낼 정도였다. 나이토는 키샨의 짜증을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키샨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이미 등교 시간은 훌쩍 지났다. 학교에 갈 생각은 없었다. 뒤에서 키샨이 달려와 팔을 잡았지만, 나이토는 그의 팔을 뿌리치며 사납게 외쳤다.

“집에는 내가 알아서 갈 테니까 너는 가.”

“하지만, 나는 나이토를 데려다줘야 해.”

나이토는 그의 어깨를 거칠게 밀쳤다. 체구가 가는 키샨이 금세 풀썩 넘어졌다.

“가서 아버지 가랑이나 핥아. 네 할 일은 그거잖아.”

수치스러웠는지 그가 볼을 붉혔다. 나이토는 후드 모자를 꺼내 뒤집어썼다. 눈이 빗줄기처럼 내렸다. 나이토는 근처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자리에 앉아 레이얀에게 전화를 걸었다. 레이얀이 받지 않았다. 나이토는 레이얀에게 문자를 남기고서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마침 나온 카페라테를 손에 쥔 채 나이토는 알토의 말을 떠올렸다.

‘형만 얌전히 살면 이상할 거 하나 없어.’

레이얀이 나이토의 얼굴을 붙잡고 속삭이던 말도 떠올랐다.

‘너희 아버지 확실히 이상해. 아들이 아니라 바람 난 애인 대하는 거 같다니까.’

나이토의 사정을 아는 친구들도 하나같이 ‘너희 아버지 유난이야.’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유난인 거지 자신이 얌전히 굴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나이토는 혼란스럽던 머리를 차분히 정리하고서 카페라테를 한 모금씩 마셨다. 따뜻하고 고소한 카페라테를 먹으니 굳어있던 몸이 풀렸다. 카페라테를 마시며 눈에 잠긴 도시를 감상하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레이얀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나이, 왜?]

어렸을 때 애칭을 그대로 불러주는 건, 이제 레이얀밖에 없었다. 나이토는 쓰게 웃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학교야?”

[응.]

“난 오늘 학교 안 갔어.”

[왜?]

레이얀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이토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대학 가지 말래.”

[수도권에 있는 대학으로 바꿔봐. 통학하면 되잖아.]

“하지만 수도는 좀 그래.”

수도에 있는 대학에 다닌다면, 아버지의 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버지는 불야성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자였다. 마약, 매춘을 통해 돈뿐만 아니라 권력도, 사람도 긁어모은 아버지를 내일모레면 20살이 될 나이토가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반드시 수도를 벗어나야 했다. 아버지에게 통제당하는 삶은 지긋지긋했다.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버지한테 여쭤봐. 너희 아버지가 조금 이상하시긴 해도, 수도에 있는 대학까지 못 가게 하실까. 잘 얘기해봐.]

레이얀이 어른스럽게 나이토를 달랬다. 그를 든든하게 지지해주는 어머니가 있어서 그럴까. 레이얀은 확실히 나이토보다 항상 여유가 있었다. 그것이 몹시 부러웠다.

“응.”

나이토가 힘없이 대답했다. 다시 아버지와 마주해 대학 얘기로 싸울 생각을 하니 힘이 빠졌다. 그깟 대학이 뭐라고 이렇게 싸워야 할까. 눈 속에 파묻혀 조용해진 도시를 보던 나이토가 무심코 물었다.

“우리 언제 봐?”

언제나 자신을 달래주고, 사랑해주는 레이얀이 보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건 레이얀밖에 없었다. 알토에게 의지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알토가 아버지의 일을 돕기 시작하면서 그 의지는 산산조각 났다. 알토는 더 이상 자신의 편이 아니다. 순하고 착하던 알토는 이제 없다. 아버지의 힘에 취한 순한 늑대일 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주말에 보자. 도서관에서. 알았지?]

“알았어.”

그나마 주말에 나가게 해줘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것조차 안 됐다면 자신은 비참하게 말라서 죽어버렸을 거다.

*

하교 시간은 보통 오후 4시 30분이었다. 늘 하교 시간에 맞춰 운전기사가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 여유롭게 만화방에서 놀던 나이토는 교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운전기사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30분이 훌쩍 넘어가도 오지 않기에 나이토는 집까지 느리게 걸어갔다. 학교에서 집까지 도보로 40분이 소모되는데 나이토는 그것보다 더 오래 걸려서 집에 도착했다. 고의적으로 늦게 갈 작정이었다. 나이토는 조용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야행성으로 사는 아버지라 취침시간이 남들과 달랐다. 그는 오전에는 쥐 죽은 듯 잤고, 오후와 밤에는 생생하게 행동했다. 보통 6시가 되어서 일어나니 지금은 잘 시간이다. 아버지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니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건 헛된 생각이었다. 홀에 나이토가 들어서자, 유리잔이 벽으로 날아와 부딪혀 깨졌다. 유리 조각 몇 개는 나이토에게 튀어 볼에 생채기를 냈다. 나이토는 무표정한 얼굴로 흐르는 피를 닦고서 아버지가 앉아있는 곳을 보았다. 아버지는 계단에 앉아서 나이토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나이토는 깨진 유리 조각을 발로 툭툭 건들며 성의 없이 말했다.

“환영 인사치고 너무 거창해.”

“내 아들이니 이 정도는 해줘야지.”

느긋한 목소리로 응수한 아버지가 여유롭게 다가왔다. 자신이 14살 때보다 많이 크긴 컸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키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20cm가 차이 나니 아버지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느긋하게 웃으며 나이토의 뺨을 감쌌다. 피가 아버지 손가락에 닿았다. 아버지는 엄지를 느릿하게 움직여 피를 닦아냈다. 긴장하지 않으려 애쓰는데, 아버지의 손이 닿기만 하면 원인도 모르고 가슴이 뛰었다. 아버지의 날 선 분위기와 달리 유순하고 따스한 눈빛에도 나이토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아버지가 눈웃음을 살포시 지었다. 나이토는 숨을 멈추고서, 뒤로 물러나려 했다. 아버지가 놔주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나이토. 응?”

뺨을 닦던 손이 목으로 내려왔다.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아버지는 목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움직여 나이토의 어깨를 툭 쳤다. 나이토가 힘을 주고 버텼다. 툭, 툭 치던 힘이 더 세졌다.

“뭐가 불만이냐고. 그 잘난 입으로 한번 말해봐.”

나이토가 대답을 하지 않고 계속 버텼다. 아버지가 어깨를 한 손으로 퍽, 소리 날 정도로 밀쳤다. 이제 버티는 건 무리였다. 아버지의 힘은 웬만한 운동선수보다 좋았다. 나이토의 몸이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갔다. 문제는 나이토가 넘어지면서 깨진 유리 조각을 손으로 짚었다는 것이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손바닥에 파고들었다. 살이 벌어지는 생경하고, 날카로운 감각에 나이토가 숨 쉬는 걸 멈췄다.

“아으…!”

나이토가 아파서 신음을 흘리니 아버지가 나이토의 머리채를 잡고 일으켰다. 머리 가죽이 뜯길 것처럼 아파 왔다. 아버지는 벗어나려 버둥거리는 아들을 뒤에서 억지로 끌어안았다. 나이토가 아버지의 상체에 푹 안겼다. 나이토가 기겁하고 반항하자, 아버지는 다친 손바닥을 잡아 힘을 빼게 했다.

“아악!”

아찔한 통증에 나이토가 고개를 숙이며 벌벌 떨었다. 아버지는 우는 아들의 상체를 한 팔로 억압한 채, 손바닥을 펴게 했다. 다친 손바닥이 억지로 펴질 때마다 밀려오는 통증에 나이토는 우는 소리를 냈다. 참으려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아픈데, 아버지가 계속 건드리니 홧홧하게 통증이 올라와 사람을 힘들게 했다.

“이런. 이렇게 약하니 아버지로서 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나. 같은 남자가 조금만 밀어도 다치는데.”

상처에서 피가 제법 많이 흘렀다. 아버지는 나이토를 억압하던 팔을 풀었다. 나이토의 몸이 다시 쓰러지려 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재차 안아주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보렴, 나이토. 네가 얼마나 약한 아이인지. 넌 나 없으면 안 돼.”

“놔! 놓으라고!”

나이토가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려 몸을 버둥거렸다. 아버지는 상처가 벌어지자 결국 유리 조각을 거침없이 빼어냈다. 나이토의 손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이토를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그를 안은 채, 자신의 방까지 끌고 갔다. 나이토는 다친 손을 그나마 멀쩡한 손으로 잡고서 떨고 있었다. 아버지는 응급상자를 가지고 왔다. 병 주고 약 주는 아버지의 태도에 나이토는 화가 나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버지가 긴 팔을 뻗어 나이토의 팔을 잡고 침대에 앉혔다. 나이토는 약간의 반동에도 다친 부위가 아파 와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는 부드러운 나이토의 머리카락을 잡고 들어 올렸다. 목이 뻣뻣하게 아파 왔다.

“손 내밀어. 치료해줄 테니까.”

“아, 아버지가…이렇게 만들었잖아.”

“그래. 내가 만들었으니까 책임진다고. 그러니까 손 내밀어.”

신음을 삼킨 나이토가 또렷하게 말했다.

“싫어.”

“싫어?”

아들이 말을 따라 한 아버지가 싱긋 웃었다. 나이토는 불길한 예감에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가 손을 냉큼 뻗어 나이토의 팔을 잡아당겨, 침대에 엎드리게 했다. 아버지는 반사적으로 일어나려는 나이토의 목과 등 부근을 팔로 눌렀다. 무리하게 움직여서 상처가 욱신거리며 아팠다.

“그만해! 내 몸에 손대지 말란 말이야!”

나이토가 절박하게 소리쳤다. 항상 몸싸움을 하면 지는 건 자신 쪽이었고, 결국 비는 것도 자신이었다. 그게 너무 싫었다. 특히 지금처럼 아버지 밑에 깔릴 때면 더더욱.

아버지는 나이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연신 발버둥 치는 나이토를 손쉽게 제압한 후, 허리 부근에 앉아 무릎으로 양팔을 눌렀다. 무릎에 팔뚝이 눌려 아파서 헐떡거렸다. 자연스럽게 완전히 아버지 밑에 깔리게 된 나이토가 숨을 몰아쉬며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아버지는 기쁜 듯이 씩 웃으며 아들의 동그란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착하네, 아들.”

“이게 아버지가 할 짓이라고…악!”

아버지가 다친 아들의 손을 폈다. 피가 흥건하게 흘러 시트까지 적시고 있었다. 응급상자에서 깨끗한 거즈를 꺼낸 아버지가 지혈했다. 나이토는 여전히 화가 났는지 가슴을 들썩이며 아버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가볍게 피식 웃으며 아들의 팔에서 무릎을 떼고, 커다란 손으로 양 손목을 눌렀다. 이미 기운이 빠진 나이토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숨을 쉬고 있었다.

“자, 그럼 아들. 다시 물어볼게.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어서 키샨에게 화내고, 학교도 가지 않은 거지?”

“그걸 몰라서 물어요?”

나이토가 죽일 듯이 째려보며 사납게 되물었다. 아버지는 눈을 감고 생각하는 척 연기했다. 그가 벌을 주듯 나이토의 손목을 더 세게 잡았다. 아버지의 억센 힘에 나이토가 앓는 소리를 냈다. 나이토는 시트에 이마를 비비며 고통을 호소했다. 나이토의 안쓰러운 신음에도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그렇게 대학에 가고 싶어?”

“아버지가 보내준다고 약속했잖아!”

“지금 네가 반말을 할 처지는 아닐 텐데, 나이토.”

“…보내준다고 약속하셨잖아요.”

나이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지그시 아들의 옆모습을 보던 아버지는, 아들의 팔을 아까처럼 무릎으로 눌러 고정시키고 뺨을 어루만졌다. 아버지는 흘러내린 머리카락까지 정리해주고서 들릴 듯 말 듯 속삭였다.

“넌 내 아들이니까 내가 책임져. 이렇게 약한 너를 대학에 보내라고? 마약쟁이에, 남창에, 창녀에, 깡패 새끼들이 득실한 곳에? 절대 안 돼. 난 너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어.”

가소로운 말이었다. 나이토는 이를 악물고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그딴 의무 필요 없어.”

“자식은 그렇게 느끼지만 부모는 아니지.”

“부모면, 자식 이렇게 대해도 되는 법이라도 있어?”

“넌 내 소유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

“난 아버지 소유가 아니야!”

나이토가 소리쳤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절박한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는 아들의 손을 지혈하던 거즈를 떼며 담담히 말할 뿐이었다.

“그건 네 생각일 뿐이지, 나이토. 네가 나 없이 뭘 할 수 있지? 내가 없으면 누가 널 지켜줄까? 응?”

아버지의 나른하고, 우아한 물음에 나이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손바닥 상처는 생각한 것보다 깊었다. 아버지가 잡고 마음대로 흔들어서 더 깊게 찢어졌다. 거즈를 떼면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는 피 때문에 아버지는 급한 대로 이엘리에게 연락했다. 5년 전, 아버지와 크게 다툰 이엘리는 이별 통보를 하고 집을 떠났다. 의대를 나와, 아버지의 연인이자 주치의로 치료를 하던 이엘리는 순하고 착한 여자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었다. 다시는 아버지와 만나지 않을 것처럼 냉정하게 사라졌던 그녀가 1시간도 안 되어서 달려온 것은 다름 아닌 나이토 때문이었다. 어머니까지는 아니지만, 작고 여린 생명체에게 가지는 동정심으로 그녀는 아이들을 챙겨주었다. 떠날 때도 그녀는 문가에 머뭇거리며 서 있는 나이토에게 다가와, 나이토를 한 번 꼭 안아주며 작게 말했다.

‘엘시는 걱정이 안 되는데 네가 많이 걱정되네, 나이토. 혹시 많이 힘들면 언제든지 연락해.’

하지만 나이토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연락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랐으니까. 그녀가 이 이상으로 아버지와 엮여서 불행해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다시 만난 이엘리는 예전처럼 아름다웠다. 어느덧 마흔에 가까워지는 나이였지만 아직 20대인 듯 피부가 맑았다. 언제나 길던 금발은 짧게 잘라서 턱 끝에서 흔들거렸다. 진하게 하던 화장도 수수하게 변해, 길에서 만나면 이엘리라고 생각 못 할 정도였다.

이엘리는 피 냄새가 감도는 방에 들어오자 인상을 팍 썼다. 그녀는 답답한 듯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의자에 던졌다. 셔츠 단추도 빠르게 풀었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엘시를 지나쳐 창백하게 질린 나이토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혀를 쯧, 하고 차더니 나이토의 손바닥을 살폈다. 유리 조각이 헤집고 다닌 손바닥은 곧장 병원에 가야 할 상태였다. 그녀는 심각하게 다친 나이토의 손을 보고는 엘시를 노려보았다. 분노가 서린 그녀의 눈빛에도 엘시는 어깨를 으쓱이며 능청맞게 굴었다.

“내 잘못 아니야. 그냥 툭 밀쳤는데 하필 유리 조각 있는 곳으로 넘어지더라고.”

“툭?”

짧게 웃음을 터트린 그녀가 엘시에게 다가갔다. 가느다란 몸을 가진 이엘리가 엘시 앞에 서자 유난히 작게 느껴졌다. 엘시는 그녀를 무감한 눈으로 보았다.

“네 힘이 일반 사람 힘이야?”

앙칼진 이엘리의 질문에 아버지는 그저 부드럽게 웃었다. 그는 가느다랗고 둥근 이엘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엘리가 황급히 엘시의 손을 밀쳤다. 순순히 밀려난 엘시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나이토를 보며 말했다.

“물론 여자들에겐 센 힘이지. 하지만 쟨 남자잖아. 남자애가 겨우 한 번 세게 밀었다고 쓰러져?”

겨우 한 번이 아니었다고 말해 주려 했지만 그럴 힘이 없어서 잠자코 있었다. 이엘리는 인상을 쓰고서 엘시를 째려봤다.

“네 힘이 나이토랑 같아? 네 성격상 한 번 밀었겠어? 협박하면서 여러 번 밀다가 애가 밀린 거겠지. 아무튼 애 상태가 안 좋아. 병원에 데려가.”

“병원에 데려갈 거였으면 진작 데려갔지.”

“병원에 데려가.”

이엘리가 딱 잘라서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이토가 머무르는 방 안에서 고민을 하던 그녀는 백기를 들었다. 엘시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는 투덜거리면서 가방에서 의료도구를 꺼냈다. 의료용 장갑을 낀 그녀는 나이토의 손바닥을 폈다. 상처를 살펴보던 그녀가 나이토를 올려다봤다.

“뭐 때문에 그런 거야?”

“…몰라요, 저도.”

나이토는 눈을 감고 벽에 몸을 기댔다. 몸이 상당히 지쳐있었다. 이엘리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의 치료는 빠르게 끝났다. 붕대까지 감아준 그녀는 나이토 입에 달달한 레몬 사탕을 넣어주었다. 나이토가 눈을 반쯤 뜬 채 사탕을 빨자, 그녀가 귀엽다는 듯 뺨을 토닥여주었다.

“이제 곧 성인이잖아. 독립할 수 있겠네?”

“네, 뭐.”

대학도 못 가게 하는 아버지 성격상 독립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러나 이엘리에게 괜한 걱정을 주고 싶지 않아 얼버무렸다. 가방을 정리한 그녀는 나이토와 함께 방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알토와 함께 복도에 서 있었다. 키샨은 아버지 뒤에 숨어서 이엘리를 훔쳐보았다. 아버지의 새로운 연인을 불쌍한 시선으로 본 그녀는 알토와 나이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상냥하게 말했다.

“너희들 보려고 온 거야. 다음에 누나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알겠지? 그럼, 잘 있으렴.”

이엘리는 아버지에게 잘 있으라는 말없이 문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말이 없던 아버지는 나이토와 알토의 옆으로 와 사이좋은 부자처럼 어깨동무를 했다. 알토가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움찔거렸고, 나이토는 귀찮음에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의 반응은 보이지도 않는지 아버지는 친근하게 말했다.

“자, 저녁 먹으러 가자.”

나이토는 아버지의 팔 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억세게 가두는 아버지의 팔심에 포기했다. 손바닥은 여전히 욱신거렸고, 아버지에게 강제로 눌렸던 팔도 아팠다. 형제는 아버지에게 이끌려 식당에 가야 했다. 10인용 식탁에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가장 중앙엔 아버지, 왼쪽엔 키샨, 오른쪽엔 나이토, 나이토 옆에는 알토가 앉았다.

하필이면 오른손이 다쳐서 나이토는 어색하게 왼손으로 수저를 들었다. 요리사가 끓여준 수프를 먹으려고 한 숟갈 뜨는데, 아버지가 수저를 뺏어갔다. 나이토가 어리둥절해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친절하게 수프를 떠서 나이토의 입가에 갖다 대었다. 나이토가 무슨 짓이냐고 물으려고 입을 열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수저가 들어왔다. 수프가 적당히 뜨거워서 입이 데지는 않았다. 다만, 부끄러울 뿐이었다. 나이토는 수저를 뺏으려고 했지만 아버지가 나직이 말했다.

“넌 지금 아프잖아.”

“아프게 한 게 아버지잖아요.”

알토와 키샨이 있는 데서 싸우고 싶지 않아 나이토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왜 나라고 생각하지? 난 그냥 밀었을 뿐인데 넘어진 건 너잖아.”

“유리컵을 던지신 건 아버지였죠.”

나이토가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아버지는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고, 턱을 괸 채 나이토를 바라보았다. 아들을 보는 시선이 퍽 다정했다.

“그럼 왜 대학을 가겠다고 그렇게 고집을 부리고, 키샨을 밀치고, 학교도 안 간 거지? 충분히 아버지가 화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대학이 안 된다면 취업이라도 하게 해주세요.”

나이토는 아버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조건을 내걸었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그는 더 해보라는 듯, 나이토만 바라보았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나이토가 결심한 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애들은 대학가거나 취업해요. 저만 집에 있으라고요?”

“그 애들은 그 애들이고. 널 그런 위험한 곳에 보내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버지가 말씀하신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애가 16살밖에 안 된 알토예요. 알토도 일하는데 왜 저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아버지는 소리 내서 웃었다. 그는 반항하는 나이토가 귀여운지, 나이토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나이토가 자신만 보게 손으로 단단히 고정시킨 채,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하면서 말했다.

“나이와 상관없어. 넌 안 돼, 나이토. 알토는 언제든 대학을 가도 되고, 일해도 되지만 넌 안 돼.”

“그렇다면 제 돈으로 벌어서 대학 갈게요. 상관없으시죠?”

거기까지 이야기를 한 나이토는 벌떡 일어섰다. 나이토가 지긋지긋한 저녁 밥상에서 벗어나려는데, 아버지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앉아.”

나이토는 앉지 않았다. 아버지의 명령을 무시하고 방으로 가려 했다. 대학도, 취직도 안 된다는 아버지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자유를 자꾸 옭아매는 아버지가 지겨웠다. 나이토가 계단에 올려가려던 걸, 아버지가 제지했다. 단숨에 다가온 그는 나이토의 다친 손을 일부러 잡고서 뒤로 당겼다. 찌릿하게 올라오는 통증에 나이토가 멈칫하자 아버지가 나이토를 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나이토가 반항하려 해도, 다친 손이 잡혀있으니 제대로 반항할 수 없었다. 나이토는 신음을 삼킨 채, 아버지의 손에 잡혀 방까지 끌려갔다. 나이토를 방에 밀어 넣은 아버지가 문을 잠갔다. 나이토는 어정쩡하게 서서, 숨을 고르며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다른 남자들보다 월등히 키 크고, 덩치가 좋은 아버지가 고개를 숙여 나이토를 보았다. 절로 생성되는 위압적인 분위기에 나이토는 뒤로 물러났다. 손바닥이 욱신거리는데, 아버지의 자색 눈동자가 심장을 조여와 손바닥을 신경 쓸 수 없었다. 어느새 통증이 멎어갔다.

아니, 아버지에게 신경이 온통 쏠려 통증이 무뎌진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을 보며 긴장한 나이토를 귀엽다는 듯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왜 자꾸 대학이니, 취업이니 그런 얘기를 하는 거지? 이 집이 마음에 안 들어?”

“아버지야말로 왜 저를 집에 가두시려는 거예요?”

“왜냐고?”

아버지는 우습다는 듯 중얼거리고, 느릿하게 한 발자국 움직였다. 아버지가 다가올 때마다 나이토는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나이토는 벽에 다다르고 나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어깨와 목 부근을 양손으로 잡았다. 아버지의 커다란 손이 드러난 여린 살을 만지작거렸다. 묘하게 올라오는 서늘한 감각에 나이토가 아버지의 손을 밀치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단단한 팔로 나이토를 자신의 상체에 가두었다. 아버지에게 안긴 나이토는 엉거주춤 서 있었다.

“네가 안 보이면 나는 미칠 거 같거든.”

나이토는 그나마 멀쩡한 손에 힘을 줘 아버지의 상체를 밀었다. 아버지의 상체가 밀렸다. 저건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나이토가 원하는 건, 구체적인 이유였다.

“그딴 걸 이유라고 말하는 거야? 왜 나한테만 그러는 거냐고!”

나이토가 겨우 눌렀던 화를 폭발적으로 터트리며 소리쳤다. 아버지는 그런 나이토가 사랑스럽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그의 행동에 화를 참을 수 없었던 나이토가 그를 밀치고 나가려 하자, 그가 나이토의 손목을 잡고 자신 쪽으로 당겼다. 같은 남자인데, 그의 말처럼 자신이 약하기라도 한 것처럼 속수무책으로 끌려갔다. 나이토의 손목을 잡고 비튼 그가 나이토를 벽에 밀쳤다. 다친 손 쪽이 벽에 닿았다. 찌릿찌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상처가 터질 것 같았다. 나이토가 멀쩡한 왼손으로 벽을 누르며 버텼다.

아버지의 체온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그의 팔이 여유로운 뱀처럼 상체를 타고 올라와, 나이토를 감싸 안았다. 나이토는 겁에 질린 걸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체온이 지척에 닿은 순간, 모든 것은 무력해졌다. 나이토는 가련한 짐승처럼 미세하게 떨며 아버지의 손목을 잡았다.

“널 사랑하니까.”

아버지의 우아한 목소리로 들은 고백에 몸이 흠칫 굳었다. 나이토가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창백해진 나이토의 뺨을 쓰다듬으며 짓궂게 속삭였다.

“물론 자식으로.”

숨이 멎을 정도로, 유해한 고백이었다.

*

자식으로서 사랑한다. 당연한 말이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보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더 많을 테니까. 아버지의 난데없는 고백을 곱씹을수록 이상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이상함이 무엇인지, 전신을 짓누르는 이 기묘한 느낌은 무엇인지 딱 단정 지을 수 없었다. 혼자 고민하던 나이토는 귀에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냈다. 몸을 일으켜 같은 학교 친구이자, 레이얀과의 관계를 잘 아는 아인에게 다가갔다. 둘은 요새 유행하는 FPS 게임에 빠져 나이토가 오는지 모르고 있었다. 둘이 게임을 하는 모습을 지그시 지켜보던 나이토는 아인의 옆에 앉았다. 아인이 딱딱하게 굳은 나이토를 힐끗 보더니 유쾌하게 말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냐? 얼굴이 죽을상이야.”

“걱정이야 늘 있지.”

나이토는 늘어지게 앉아서 뚱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에게 당한 상처는 더디게 낫고 있는 중이었다. 나이토의 상처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던 아버지는 개인 주치의를 불렀다. 나이토가 소소하게 다칠 때마다 소환된 주치의는 어떻게 다쳤냐고, 묻지도 않고 상처를 치료해줬다. 아버지는 나이토가 치료를 받는 동안, 방에서 팔짱을 끼고 나이토를 지켜보았다. 그 시선이 따끔거려 나이토는 줄곧 시선을 상처에 고정하고 있었다.

차라리 병원에 가고 싶었으나, 아버지는 정기검진이나 큰 상처가 아니면 병원에 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귀족이 되기를 갈망하는 자였다. 부, 권력, 명예, 모든 것이 귀족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데도 아버지는 귀족이 되기 위해 하나, 둘씩 습관을 바꿔갔다. 주치의도 아버지의 바뀐 습관 중 하나였고, 나이토와 알토에게도 당연히 적용되었다. 나이토는 선택권조차 없는 삶에 답답함이 느껴졌다. 아버지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식으로서 사랑한다면,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말과 행동이 다른 자태에 지겨움을 넘어서 증오로 응어리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에 간섭하다 못해 통제하려 드는 아버지로부터 멀어지고 싶다. 하지만 어디 가서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다. 레이얀은 자신이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에 슬퍼할 테고, 아인에게 이야기하자니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인이 이해 못 할 것 같았다. 이럴 때 흔한 담배라도 피우면 좋을 텐데. 멍하니 의미 없는 생각을 늘어놓던 나이토는 자신의 이마를 살며시 만지는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자작나무 가지처럼 하얗고 메마른 레이얀의 손이 이마와 관자놀이 부근을 어루만졌다. 나이토는 레이얀이 만져주는 게 기분이 좋아, 눈을 감고 살짝 웃었다. 레이얀의 어깨 쪽으로 고개를 기대었다. 레이얀이 두 팔을 벌려 나이토를 안아주었다.

“또 아버지가 힘들게 해?”

레이얀이 눈치 빠르게 물었다. 나이토는 눈을 떠서 레이얀의 얼굴을 감상했다. 회색빛 빈민가에서도 유달리 빛이 나던 레이얀이었다. 금실로 뽑아 만든 듯한 금발에 맑은 물빛 눈동자,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 오목조목한 이목구비가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도 예쁘장했다. 어엿한 성인이 된 지금은 예쁘면서 잘생겼다. 레이얀의 뺨을 만지던 나이토는 반듯하게 앉아 레이얀과 눈을 맞췄다. 레이얀이 소파에 팔을 기댄 채, 능글맞게 물었다.

“아니면 알토?”

“둘 다라고 해줘.”

나이토가 알토도 자신을 힘들게 한다며 투덜거리자 레이얀이 소리 내서 웃었다. 낮고 그윽한 목소리가 귓가를 감미롭게 사로잡았다. 옆에서 게임기를 정리하던 아인이 그들의 대화를 조용히 듣더니 한마디 했다.

“알토가 아직 16살이잖아. 사춘기지. 아버지는 무섭지, 형은 맨날 아버지랑 싸우고 자신에게 차갑지, 어머니는 부재지. 알토 나름대로 힘든 점도 있을 거야.”

“그건 나도 알아.”

나이토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대꾸했다. 알토의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이 알토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고, 하나뿐인 핏줄을 찾았지만 강압적으로 구는 아버지 밑에서 적응하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이라도 알토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는데, 아버지 때문에 제대로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해줄 수 있는 건, 알토가 울 때마다 안아주는 게 고작이었다. 알토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자신보다 돈도 많고, 힘도 센 아버지 편이 될 수밖에 없겠구나 싶어 씁쓸해졌다.

나이토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레이얀이 눈치를 살폈다. 레이얀은 나이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위로해줬다.

“너도 그때 14살이었어. 애였다고. 뭘 할 수 있었겠어.”

“그땐 아버지와 사는 게 최선일 거라고 생각했어. 최악보단 차악이 나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차라리 그때 다른 곳에 몸을 의탁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우중충해진 나이토의 분위기에 아인도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생각하는 거 아니야. 미래를 생각해야지.”

레이얀이 나이토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붕대에 칭칭 감긴 오른손이 수상했는지, 아인이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왜 다친 거야?”

“아버지랑 싸우느라.”

나이토의 간단한 대답에 레이얀과 아인이 나이토를 보았다. 그들은 기겁한 얼굴로 심각하게 물었다.

“아버지가 고문한 거야?”

“그건 아니야.”

그들이 말이 아예 틀린 건 아니었지만, 뒤에서 아버지에게 안긴 채 고문 비슷한 걸 당했던 사실을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 날이 반사적으로 떠오르니 아버지가 했던 고백도 떠올랐다.

‘널 사랑하니까.’

소름 돋는 고백에 몸이 살짝 떨렸다. 차라리 안 듣는 게 더 나을 뻔했다. 나이토는 뇌에 자리 잡은 아버지의 기억을 지우려 애쓰며 화제를 돌렸다.

“레이얀은 대학이고, 아인은 취업이지?”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나이토는 중학교를 또래 아이들보다 늦게 들어갔다. 그래서 홀로 대학 진학이냐, 취업이냐 결정할 때 레이얀과 아인은 이미 결정을 내린 후였다. 이 겨울이 끝나면, 레이얀과 아인은 학교를 졸업하여 떠날 것이다. 나이토 혼자 학교에 남아 아버지의 감시를 받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절로 답답해졌다.

레이얀이 나이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응.”

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토는 아랫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그들에게 아버지가 대학을 가지 말라고 해서, 못 간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자신이 생각해도 우스웠다. 우선 변명이라도 해야 할 거 같았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답안이 없었다.

그러나 나이토의 고민이 무색하게 아인이 눈치 빠르게 알아챘다.

“아버지가 너 가지 말라고 했구나.”

나이토가 긍정의 침묵을 보였다. 아인과 레이얀이 둘 다 한숨을 내쉬었다. 아인은 답답한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레이얀은 금연을 실천 중이라 아인이 내미는 담배를 거절했다. 아인은 연기를 뿜어내며 빈정거렸다.

“너희 아버지 진짜 유난이야. 왜 대학이 안 된대? 그러고 보니 저번에 여행도 못 가게 했지?”

“여행뿐만이 아니야. 학교에서 하는 행사 참여도 안 된다고 했대.”

레이얀은 나이토의 아버지가 질린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아인이 “와우.”라고 장난스럽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이토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일어나서 냉장고로 걸어갔다. 맥주뿐이었다. 나이토는 맥주를 꺼내 단숨에 한 병 비우고서, 신경질적으로 캔을 던지며 말했다.

“대학도, 취업도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냐?”

나이토는 두 번째 맥주를 꺼냈다. 나이토가 벌컥벌컥 마시니 레이얀이 곁으로 다가와 뺏어 들었다. 레이얀은 적당히 마시라는 듯, 검지로 차가운 입술을 저지했다. 나이토가 홀린 듯한 시선으로 레이얀을 응시하는데, 레이얀이 웃으며 남은 맥주를 뺏어갔다. 맥주를 모조리 마신 레이얀이 나이토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레이얀은 나이토를 안고 다독여주었다. 하지만 레이얀의 다독거림으로도 화는 풀리지 않았다. 나이토는 레이얀의 품에서 나와 초조하게 거실을 돌아다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뭐가?”

아인이 담배를 문 채, 뭉개진 발음으로 물었다. 레이얀과 아인의 눈치를 살핀 나이토가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는 벽에 기대어 서서 팔짱을 꼈다. 오랫동안 숨겨두었던 얘기를 꺼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레이얀도 자세히 모르는 아버지의 집착을.

“알토까지 나한테 그러더라. 아버지가 나한테 집착한다고.”

“집착? 아들한테? 왜?”

아인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인상을 썼다. 나이토도 그것이 알고 싶었다. 아니, 며칠 전에 알아낸 이유가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나이토는 밀려오는 불안함과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며 포기한 듯 말했다.

“내가 약해서 안 된대. 자기가 조금만 밀어도 넘어져서 다친다고.”

“…네가 약하다고?”

레이얀이 별소리를 다 듣는다는 얼굴로 질색했다. 나이토는 평균보다 웃도는 장신에, 지속적인 운동으로 탄탄한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토의 진가를 알아본 체육 선생이 운동선수 하지 않겠냐고 권유할 정도로 운동을 잘하는 편이었다. 또한 지나치게 건강한 청년이었다. 감기에 걸려도 며칠이면 다 낫는 체질이었다. 그런 나이토가 약하다는 이유로 대학도, 취업도 안 된다고 못 박은 아버지가 이해 가지 않는 듯 둘은 멍한 얼굴이었다.

“네가 약하면 나는 뭔데?”

툭하면 비실비실 쓰러지는 아인이 비웃음을 날렸다. 나이토는 그 둘의 반응이 충분히 예상이 가서 놀라지 않았다.

“더 웃긴 건 뭔지 알아? 알토는 다 된다는 거야. 나만 안 되는 거야, 지금.”

“그러고 보니까 너 운전도 못 한다고 하지 않았냐?”

아인이 이제야 생각났는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나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16살이 되면 합법적으로 술, 운전이 허용되는 나라였지만 아버지는 나이토에게 해로운 걸 시킬 수 없다며 모든 걸 저지시켰다. 대부분 애들이 차를 끌고 여행 갈 때, 나이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사회적으로부터 고립시킨 덕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었다. 그것도 못하게 막으려는 아버지의 집착에 나이토는 이제 한계까지 도달했다.

나이토는 아인과 레이얀 앞에 있는 일인용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머리를 감싸며 지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여기에 더 있다간 진짜 내가 미칠지도 몰라.”

“…야, 너희 아버지 장난 아닌데. 집착 수준이 아니잖아. 그거 감금 아니야?”

아인이 거들어주자, 나이토는 답답하던 속이 조금이나마 풀린 기분이었다. 나이토는 풀 죽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집에서 나가고 싶어. 어차피 알토는 아버지 좋아하는데 굳이 내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잖아.”

나이토가 고개를 들어 둘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레이얀이 다가왔다. 그는 나이토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걱정 마. 내가 나가게 도와줄게.”

“그러다 네가 다치면?”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아는 나이토가 걱정에 가득 찬 눈으로 레이얀을 보았다. 레이얀은 나이토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레이얀의 입술이 닿았다. 나이토가 눈을 감고 레이얀의 혀를 받아들였다. 레이얀이 노골적으로 나이토의 입안을 탐했다. 두 사람의 질척거리는 키스에 아인이 알아서 자리를 비웠다. 키스가 너무 끈질겨서 옅은 맥주 맛에 취할 거 같았다. 나이토는 레이얀의 옷자락을 꽉 잡았다. 레이얀이 귀엽다는 듯 작게 웃더니 나이토의 아랫입술을 물었다. 나이토는 장난스럽게 아픈 척하며 그의 등을 안고서 일어났다. 입술을 맞댄 채 일어난 나이토는 그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두 사람의 입술 사이에서 젖은 신음을 잔뜩 흘러나왔다. 나이토는 흥분된 얼굴로 레이얀을 빤히 보며, 그의 옷자락 사이에 손을 넣었다. 레이얀의 부드럽고 하얀 살결이 손바닥에 생생히 닿았다. 만지는 것만으로도 설 거 같았다. 나이토의 눈에 성욕을 드리우자, 레이얀이 묘하게 나이토를 부추겼다.

“아인도 방에 들어갔는데, 어때?”

팔을 스치는 손가락이 야릇했다. 나이토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아인이 화낼걸.”

레이얀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가 나이토의 목에 팔을 둘렀다. 나이토가 흐물흐물 풀어진 얼굴로 웃으면서 레이얀을 꼭 안았다. 레이얀이 나이토를 애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며, 그의 버클을 풀었다. 나이토는 레이얀을 내버려두었다.

“걱정 마, 나이. 곧 그 집에서 나오게 될 거야. 너도 성인인데 못 할 게 뭐 있겠어?”

어린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에 나이토는 안심이 되었다. 레이얀의 말대로라면, 정말 못 할 게 없을 거 같았다. 나이토는 레이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서 그의 체취를 맡았다. 레이얀의 체취가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주었다. 나이토는 눈을 감고서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맞아.”

아버지에게 학대 아닌 학대를 당하고, 거의 감금 상태로 지내는 나이토가 안쓰러워 레이얀은 그를 안아주었다. 그를 안는 레이얀의 눈빛이 선명한 적의로 불타올랐다. 이제 더 이상, 나이토를 그 집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 나이토의 아버지가 하는 행동은 정상적인 아버지가 할 행동이 아니었다….

*

오후 4시 30분이 되자 키샨과 운전기사가 기가 막히게 아인의 집으로 찾아왔다. 나이토는 휴대전화 벨 소리에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밖에서 음식 준비를 하던 아인은 나이토가 옷을 제대로 입고 나오자 이상한 듯 갸웃거렸다.

“벌써 가?”

나이토가 초조하게 대답했다.

“오후 5시까지 들어가야 해.”

“아버지가 부르셔서?”

아인이 비꼬는 듯이 물었다. 나이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나이토가 운동화를 구겨 신으며 고개를 돌렸다. 레이얀이 아픈 허리를 붙잡고 절뚝거리며 나와 나이토에게 짧게 키스했다. 나이토가 상냥하게 웃으며 레이얀의 뺨을 만진 뒤로 물러났다. 레이얀이 피곤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줬다. 아인이 정성껏 만든 파스타를 접시에 담으며 투덜거렸다.

“언제까지 내가 너희 연애를 봐야 하냐? 정말 지겹다, 지겨워.”

나이토는 아버지의 집착에 본의 아니게 아인의 집을 빌려 레이얀과 연애를 했다. 공부를 핑계로 주말마다 도서관이나, 아인의 집, 혹은 레이얀의 집에서 뒹굴었다. 어차피 제시간에 맞춰서 나가기만 하면 되니 걱정은 없었다. 아버지도 제시간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외출을 뭐했는지 딱히 관심을 두는 편은 아니었다. 그것까지는 자신이 배려하겠다는 투로 말하는 걸 떠올리자 속에서 불이 끓어올랐다.

단지, 이렇게 연애 행각을 참아주는 아인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나이토는 미안함에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넘겼다. 아인이 그제야 투덜거림을 멈추고 돈을 잽싸게 받아들였다. 레이얀은 아인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친근하게 말했다.

“조금만 참아, 친구. 나이토가 독립하면 이런 일도 이제 없을 거야.”

“아아, 네. 그러셔요. 알겠습니다. 그때까지 돈은 열심히 받습죠.”

아인이 돈뭉치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둘이 티격태격 싸우는 걸 보고 나이토는 정원으로 걸어갔다. 자신을 데려다줄 차를 기다리는데 득달같이 전화가 울렸다. 키샨의 번호에 한숨부터 나왔다.

“왜.”

[어디야?]

“금방 가.”

차갑게 대꾸한 나이토는 마침 도착한 차에 올라탔다.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돈했다. 손가락으로 대충 쓸어넘기고, 구겨진 옷자락도 폈다. 미리 준비한 사탕을 입에 넣었다. 사탕을 입에서 굴리며 밖으로 나가자 키샨이 자신을 기다리는 게 보였다. 롱코트에 모자, 목도리, 장갑까지 착용한 그가 생각 외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나이토는 건성으로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차에 올라타니 예상외의 운전사가 보였다.

“네가 왜 운전해?”

알토가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알토가 예전부터 몇 번 연수를 받은 건 알고 있었으나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20살인 나이토는 아버지 때문에 운전을 못 하는데, 16살인 알토는 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나이토가 창가에 팔을 기대고서 빈정거리자 알토가 어깨를 으쓱였다. 형이 당하는 차별에도 알토는 딱히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지. 이거 아버지가 생일 선물이라고 사준 거야.”

알토가 굉장히 기분 좋아 보였다. 그걸 보는 나이토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나이토는 그저 눌러 참았다.

“벌써 운전해도 돼?.”

그래도 동생이라고 걱정이 되어 퉁명스레 묻는데, 알토가 편하게 웃으며 말했다.

“연습 엄청 했어.”

사탕을 어금니로 으깨 먹은 나이토는 고개를 돌렸다. 참으려 해도 짜증이 솟구쳤다. 나이토는 그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 이어폰을 끼고 소리를 최대로 올렸다. 웅장한 드럼 소리가 귀가 아플 정도로 울렸다. 차라리 이게 낫다. 포기 섞인 한숨을 내쉰 나이토는 눈에 침몰 되어 온통 하얀 도시를 바라보았다.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도 세상은 이랬다. 자신의 고함이나 분노가 퍼져도 고결한 태도로 서 있을 것 같았다. 어렸을 때도 이 도시는 무서웠는데, 20살인 지금도 무서운 건 변함없었다. 오히려 아버지의 지위와 힘을 알게 되자 겁은 더욱 많아졌다. 그에 비해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는 집에서 요리도 못 하게 했다. 요리는 요리사가 해주는데 네가 왜 하냐며 노발대발했다. 즉, 아버지는 그냥 나이토가 의지대로 하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거다. 그저 인형처럼 자신의 말에 순종하고, 고분고분하게 구는 아들을 원할 뿐이었다. 자신은 사람이니 아버지의 말대로 따를 수 없었다. 자신에게는 의지가 있었고,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었으므로.

[곧 졸업이잖아. 조금만 기다리자.]

레이얀이 보낸 문자였다. 나이토는 [응]이라고 문자를 보낸 후, 턱을 괴고서 어떻게 하면 지옥 같은 집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궁리했다. 차는 운전을 못 하고, 추적당할 수 있으니 포기다. 여권은 애초에 만든 적이 없고, 해외에 나갈 돈도 없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기차나 고속도로였다. 기차를 타고, 배를 타서 아예 섬으로 가버릴까. 거기서 다른 사람의 호적을 사서 살면 될 텐데.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차에 어느새 집이었다.

차에서 내린 나이토는 키샨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계셔.”

‘짜증 나게.’

속으로 중얼거린 나이토는 휴대전화 진동에 손을 움직였다. 어색하게 왼손으로 문자를 확인했다.

[당분간 조용히 살아. 그게 나을 거 같아.]

이번에는 아인이었다. 조용히 살라니. 그게 가능할까. 길고 묵직한 한숨을 푹 내쉰 나이토는 자신을 지나쳐 걸어가는 알토의 팔을 잡았다. 검은 코트 자락 아래로 흐느적거리는 손이 무척 길고 예뻤다. 언제 동생이 저렇게 컸을까.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동생은 늘 엄마를 찾아 우는 어린애였다. 서로 감싸주던 어린 시절이 그리웠던 탓인지, 자기도 모르게 알토의 손을 잡고 말았다. 알토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형의 온기에 눈을 크게 떴다. 나이토는 어색하게 손을 거두며 알토에게 말했다.

“아, 그게…….”

그저 네 손을 한번 잡아보고 싶었다고, 그렇게 말하려는데 알토는 불쑥 뜬금없이 말을 건넸다.

“형은 지금 생활이 마음에 안 들어?”

알토의 질문에 나이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에 잠겼다.

“나는 배고플 때보다 지금이 좋아. 엄마랑 살 때는 빈민가에 살았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번듯한 집에도 살잖아. 좋은 학교도 다니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나이토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알토가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그 조건이 형이었어.”

“네가 그렇게 살 수 있는 조건이 나였다는 거야?”

알토는 나이토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토는 잠시 숨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알토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단번에 이해가 갔다. 아버지와 7년 만에 다시 만났을 때, 자신을 보며 내걸었던 조건과 자신의 모든 삶을 자기 멋대로 좌지우지하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는 눈을 천천히 뜨고서 알토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살고 싶으니까 나더러 아버지한테 얌전히 기어서 살라는 거구나.”

나이토가 핵심을 짚었는지 알토는 입술을 달싹였다. 헛웃음을 터트린 나이토는 멀쩡한 왼손으로 동생의 어깨를 잡았다. 박살을 낼 것처럼, 힘을 줘서 동생의 어깨를 꽉 잡았다. 알토가 아픈지 인상을 찡그렸다. 나이토는 다친 오른손으로 동생의 뺨을 툭툭 건들며 말했다.

“운전도 못 하고, 대학도 못 가고, 취업도 못 하고, 그렇게 집에 갇혀 지내라고? 그런 건, 너나 해. 난 그렇게 살 생각 없어.”

단호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데, 눈을 내리깔고 고민하던 알토가 입술을 달싹였다.

“나 알고 있어. 형이 레이얀 형하고……….”

나이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이토는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주차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이토는 알토를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아무리 알토가 운동을 하고 격투기를 배웠어도 아직 나이토를 이길 수는 없었다. 나이토는 동생의 턱을 억세게 쥐고서 사납게 중얼거렸다. 알토가 아픈지 인상을 찡그렸으나 눈빛만은 매서웠다. 형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은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알면, 뭐. 협박이라도 하려고?”

알토가 가느다란 손으로 나이토의 손목을 잡고서, 내렸다.

“나도 아버지가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하지만……난 더 이상 어렸을 때처럼 살고 싶지 않단 말이야.”

나이토는 동생의 손에 잡힌 자신의 손을 빼냈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동생의 뺨을 거침없이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알토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풀썩 바닥에 쓰러졌다. 나이토는 알토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리고서 읊조리듯 말했다.

“아버지보다 짜증 나는 게 너야, 알토. 네 안위를 위해서 나한테 감히 협박을 해? 그것도 레이얀까지 들먹여서?”

자신은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레이얀을 건드는 건 참을 수 없었다. 한때나마 어린 시절을 챙겨준 레이얀에게 은혜도 모르고, 저렇게 거들먹거리는 게 너무 한심스러웠다. 한끼도 못 먹고 굶을 때, 빵과 우유를 가져다준 건 레이얀밖에 없었다.

“여기에 오자고 한 건 형이었잖아.”

알토가 지지 않고 쏘아붙였다. 어이없다는 듯 짧게 웃은 나이토는 동생의 머리채를 놓았다. 알토가 흐르는 코피를 닦으며 일어섰다. 나이토는 동생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어쩌다 알토가 저렇게 변한 걸까. 아버지가 주는 돈이, 아버지가 주는 안락함이 자신을 버릴 정도로 좋았던 것인가? 아버지에 대한 증오보다 알토를 향한 원망이 커지고 있었다.

나이토는 주먹을 쥐고서 알토를 보며, 가슴에 있는 걸 토해내듯 말했다.

“수도에 오자고 했던 건, 너랑 같이 살기 위해서였어. 다른 애들처럼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 나도 죽고 싶지 않아. 지금도 마찬가지야. 난, 더 이상 그때처럼 살고 싶지 않아.”

“넌 끝까지 자기 중심적이구나.”

정신이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었다. 나이토는 알토를 내버려두고 홀로 향하는 통로로 걸어 들어갔다. 시간이 꽤 지나있었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겠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알토와 말싸움을 한 뒤라 그저 쉬고 싶었다.

아버지는 예상했던 대로 홀에서 나이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통해 어떠한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는 인사 없이 방으로 올라가려는 나이토를 잡았다. 팔이 잡힌 나이토가 인상을 쓰자 아버지는 빙그레 웃었다. 참으로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였지만, 불길한 기운이 올라와 나이토를 좀먹어갔다.

“알토가 뭐라고 한 거지?”

역시 CCTV를 보고 있던 것이다. 나이토가 대답하지 않고 팔을 빼내려 애를 썼다. 아버지는 풀어주지 않았다. 벗어나려 할수록 힘을 줘서 나이토를 구속했다. 나이토는 아픈 티를 내지 않고 아버지를 노려봤다.

“제가 왜 대답해야 하죠?”

아버지의 취향대로 꼬박꼬박 존댓말 해주는데도 아버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고개를 숙여 나이토의 냄새를 맡았다. 어떤 냄새를 감지한 듯, 아버지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나이토가 불길한 예감에 “놔!”하고 소리쳤다.

“어떤 새끼 냄새야?”

나이토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는 갈무리 되지 않은 분노가 담긴 시선으로 아버지를 째려보며 말했다.

“왜요?”

“거슬려.”

“그거 듣기 좋은 말이네요.”

나이토가 존댓말로 삐딱하게 굴자 아버지는 고민에 빠졌다. 이 녀석을 어떻게 처치할까. 그런 눈으로 아들을 훑어보던 그는 결론을 내린 듯, 유쾌하게 웃었다. 그는 나이토의 팔을 풀어주었다. 나이토는 세게 잡혀있던 팔뚝을 다친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 부근이 아려왔다. 항상 이랬다. 아버지의 시선, 눈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는 제대로 아문 적이 없었다. 화상이라도 입은 듯, 뜨겁고 아렸다.

“좋아. 이제부터 넌 주말 외출도 없어.”

“뭐?”

자동적으로 반발이 튀어나갔다. 마침 나이토에게 얻어맞은 알토가 뺨을 만지며 들어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알토에게 이리 오라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알토가 후다닥 달려가니 아버지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앞으로 나이토 감시는 네가 맡아. 만약 얘가 외출하려 하면 다른 경호원 불러서 막아.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보고해.”

“네, 아버지.”

아버지와 자식이 아니라 마치 직장상사와 부하 같은 대화였다. 아버지는 나이토가 반항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나이토의 멱살이 아버지의 커다란 손에 잡혔다. 나이토가 버둥거렸으나,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힘을 줘서 놓아주지 않았다. 숨이 턱 막혔다. 멱살이 잡힌 채, 도착한 곳은 아버지가 애용하는 욕실이었다. 나이토는 물이 가득 채워진 욕조를 보고서 발에 힘을 줘 버텼다. 아버지는 안 가겠다고 버티는 나이토를 두 팔로 번쩍 들었다.

그는 나이토를 욕조에 집어넣었다. 물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나이토가 허우적거리며 나가려 하자, 그가 머리채를 잡고 눌렀다. 숨이 막혀왔다. 나이토가 괴로움에 팔다리를 움직였다. 30초 정도 센 아버지는 나이토의 머리채를 잡고 올렸다. 물에 푹 젖은 나이토가 헐떡이며 욕조에 기댔다. 그는 나이토의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려주었다. 나이토가 왼손으로 그의 손을 밀어냈다.

“저리 치워.”

헉헉 거리는 주제에 자존심은 세서 반항했다. 아버지는 무심한 시선으로 아들을 보며 말했다.

“당하는 게 취미야?”

나이토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눈을 가늘게 떴다. 떨리는 왼손으로 터져 나오려는 기침을 막았다. 눈이 따갑고, 코가 매웠다. 목도 아팠다. 잔기침이 연신 터져 나왔다.

나이토가 대답하지 않자 아버지는 다시 머리채를 잡고 물속에 처박았다. 나이토가 몸을 버둥거렸다. 그때마다 물이 튀어서 아버지의 옷자락을 적셨다. 아버지는 아까보다 더 긴 시간 나이토를 물속에 억지로 들어가게 했다. 일으켜 세웠을 때, 나이토는 힘든지 흐느껴 울고 있었다.

“흑, 읏…….그만, 그만해.”

나이토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힘겹게 뜨며 아버지에게 매달렸다. 애처로운 얼굴이었다.

“당하는 게 취미냐고 물었잖아.”

그런 취미가 있는 사람이 어딨냐고, 대답하려 했다. 나이토는 머리채가 잡힌 상태로 젖은 얼굴을 닦아냈다. 그래 봤자 손도 젖었기에 쓸모없는 짓이었다. 나이토는 눈과 코, 목이 매워서 기침을 하며 힘겹게 말했다.

“아니.”

아버지는 한껏 지친 목소리에 희미하게 웃었다. 나이토는 눈물을 흘러내리며 입가를 가렸다.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근데 왜 자꾸 나한테 반항하는 거지?”

나이토는 마치 자신이 잘못이라는 듯, 핀잔을 주는 질문에 할 말을 잃었다. 자기가 왜 물고문까지 당해야 하는지 몰라, 멍하니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추레하게 변한 나이토의 꼬락서니에 혀를 찼다. 그는 아들을 욕조에서 꺼내주었다. 아버지가 직접 옷을 벗기려 했다. 깜짝 놀란 나이토가 옷자락을 손으로 잡았다. 그는 아버지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지했다.

“내가, 내가 할 거야. 나가. 여기서 나가. 제발.”

나이토가 생명에 위협이라도 느낀 듯 다급하게 외쳤다. 아버지는 웬일로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그는 창백하게 질린 아들의 뺨을 어루만져주며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깨끗이 씻고 나와.”

그의 커다란 손이 뺨을 다 감쌌고, 그의 이마가 나이토의 이마에 닿았다. 나이토는 가만히 서 있었다. 자신을 또렷하게 보는 자색 눈동자가 너무 강렬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대답해야지, 착하게.”

아버지가 은근히 나이토의 귀를 만지작거리며 명령했다. 눈을 감고, 흐르는 눈물을 닦은 나이토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제발 좀 나가주세요.”

나이토의 애원하는 대답에 그가 피식 웃으며 나갔다. 아버지가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한 나이토는 벽에 기대 스르르 무너졌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지독하게 괴로웠다.

젖은 옷을 벗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다친 오른손 때문에 어린아이가 옷을 벗듯이 느리게 꾸물꾸물 벗었다. 상의를 벗었을 때는 오른손이 심각하게 욱신거려서 하의를 벗을 때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씻기 위해 물 온도를 확인했다. 물은 피곤이 노곤하게 풀어질 정도로 따끈했다. 욕조에는 온도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는 기능이 있어서 추울 리가 없는데 아까는 춥다고 느꼈다. 방금 전 일을 떠올리던 나이토는 욕설을 내뱉었다. 천천히 욕조 안에 들어간 나이토는 얼굴을 씻었다. 눈과 코, 목이 아직도 맵고 얼얼했다. 강제로 입수 당했을 때부터 물을 지나치게 많이 먹은 탓이었다.

나이토는 초조함을 못 참고 손톱을 물어뜯었다. 불안할 때면 나오는 습관이었다. 주말 외출마저 아버지 때문에 종지부를 찍었다. 평일도 강제로 집에 돌아와야 했으니, 더 이상 레이얀을 만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주말 외출이 가능해서 틈틈이 짬을 내서 만났는데, 그것마저 못하게 됐으니 막막했다.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암흑의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삶이다. 어렸을 때는 가난하고, 굶어도 자유가 있었다. 지금은 아버지 덕분에 넉넉한 삶을 살고, 굶지 않지만 자유가 사라졌다. 레이얀을 만나지 못하는 삶이 의미가 있을까. 화사하게 웃으며 자신을 안아주던 레이얀을 떠올리자 눈가가 시큰거렸다. 눈물이 나올 거 같아 눈을 꾹 눌러 참고 얼굴을 닦았다. 이럴수록 더 냉정해져야 한다. 상황이 지옥 같을 때 운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정신을 차린 나이토는 그동안 머뭇거리기만 했던 계획을 다시 세우기로 했다.

본격적인 가출을 해야 할 시기다. 아버지가 영원히 자신을 찾을 수 없도록. 레이얀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아버지의 직업을 생각했을 때, 예비용으로 휴대전화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번호는 아버지가 언제나 추적할 수 있으니 집에 두고, 타인의 명의로 만든 휴대전화를 사용할 것이다. 그 외에도 추적당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은 두고 나간다. 신용카드는 사용하지 않으며, 돈은 한 번에 많이 빼지 않는다. 의심받지 않을 정도로 돈을 빼서 남들이 모르는 곳에 보관해 놓을 생각이었다.

문제는 어디로, 어떻게, 몇 시에 집을 나서냐는 것이었다. 가장 괜찮은 방법은 학교에 갔을 때이니 그 틈을 노려서 경로를 짜야 할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나이토는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자신에게 얻어맞아 얼굴이 엉망진창이 된 알토가 문을 열고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얼른 나오래.”

“알았어. 나가.”

차갑게 대답한 나이토는 동생이 나가자, 느리게 욕조에서 나왔다. 너무 오랜 시간 욕조에 있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세면대에 기대서 느리게 숨을 내셨다. 어느 정도 괜찮아졌을 때, 나이토는 대충 비누로 몸을 씻었다. 다 씻고 욕실 문을 열자 은은한 오렌지 불빛으로 적셔진 작은방이 보였다. 이 나라의 귀족들은 씻기 전이나 씻은 후, 항상 작은방에서 몸 정돈을 했다. 말이 작은방이지, 소파, 냉장고, 화장대, 옷장이 다 준비되어 있는 규모였다. 아까는 정신없이 끌려와 작은방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 정도로 정신이 없던 자신이었다.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버석하게 마른 수건을 허리에 둘렀다.

“도련님, 저 컨터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귀족이 아닌 신분이지만 귀족의 관례는 철저하게 따르는 아버지의 성향 때문에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허락 없이 사용인이 있는 방에 들어오지 못한다. 나이토가 수건을 하나 더 꺼내 머리를 닦으며 말했다.

“들어와.”

문이 열리며, 주름 하나 없는 검은 정장을 입은 컨터가 들어왔다. 아버지와 비슷한 키에 체격을 소유한 남자가 방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방도 꽉 찬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이토가 무슨 일이냐는 듯 멀뚱멀뚱 바라보자, 컨터는 커다란 수건을 펼쳐 나이토의 몸을 감쌌다. 아버지의 경호원인 컨터가 자신의 시중을 드는 건, 처음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컨터와 눈이 마주쳤다.

나이토는 무심하게 눈을 깜박거리며, 냉장고를 열었다. 각종 음료가 비치되어 있었다. 나이토는 생수와 음료수를 꺼냈다. 생수는 컨터에게 던졌다. 컨터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생수를 받았다. 나이토는 그가 걸쳐준 수건으로 몸을 폭 감싼 채, 소파에 앉아 붕대를 보았다. 붕대가 기분 나쁘게 푹 젖어있었다. 나이토는 느릿하고 어설픈 동작으로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시켰나 봐?”

나이토가 붕대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물었다. 컨터는 나이토가 던져준 생수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나이토가 마시기 위해 꺼내 든 음료수 병을 들어 올렸다.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컨터는 손이 다쳐 불편한 나이토를 대신해 음료수 뚜껑을 열어주었다. 그가 친절하게 음료수를 내밀었다. 나이토는 음료수를 받아 들어 마셨다. 탄산이 물을 먹어 괴롭혀진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려 갔다. 목이 따가웠다. 나이토는 입가를 가리며 기침했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본 컨터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이제 제가 도련님의 등교와 하교를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또 가출할까 봐?”

나이토가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태연하게 물었다. 컨터는 입을 다물었다. 기대하던 답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이토는 몸을 일으켜 수건을 소파에 내버려두었다. 컨터가 수건을 주섬주섬 받아 정리했다. 나이토는 그가 가져다 준 옷을 입으며 말했다.

“지금은 학교 갈 시간도 아닌데 여기 있는 거 보아하니…….”

옅은 분홍색 스웨터를 입은 나이토가 컨터 쪽으로 다가갔다. 키가 아버지처럼 커서 한참을 올려다봐야 했다.

“내 전담이야?”

“예.”

나이토는 소맷자락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갈라지고, 쉰 목소리였으나 여전히 다정다감했다.

“아버지가 참 이상해.”

컨터가 미동 없는 얼굴로 나이토를 보며 말했다.

“회장님은 언제나 도련님 걱정뿐이십니다.”

“걱정?”

나이토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나이토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컨터를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기 전, 나이토는 고개를 돌려 컨터를 보며 애써 화를 삭인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했다.

“너까지 날 갖고 놀 생각하지 마. 아버지가 날 걱정할 리 없잖아.”

컨터는 자신보다 어린 나이토의 빈정거림에도 반응이 없었다. 그는 그저 말을 잘 듣는 개처럼 나이토의 젖은 옷가지를 챙겨왔다. 나이토는 방까지 쫓아오는 컨터가 거슬려 뒤를 돌아보았다. 컨터는 나이토의 시선을 의식하고서, 손에 든 옷가지를 정리했다. 나이토가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듯 눈빛을 보냈다. 컨터가 입을 열었다.

“회장님께서 휴대전화도 압수하라고….”

나이토는 컨터의 손에 들린 자신의 물건을 모조리 가져갔다. 그의 친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자신을 감시하는 아버지의 시선이 컨터에게 옮겨온 것이다. 욱한 마음에 주먹이 나갈 뻔했다.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려는 화를 눌러 참았다. 나이토는 컨터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내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말라고 전해.”

“도련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나이토는 문을 닫으려던 손을 멈칫했다. 느리게 한숨을 내쉰 나이토는 그를 돌아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너한테 더 이상 화내고 싶지 않아, 브래드. 그만 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가달라고 부탁했다. 컨터는 고요한 눈을 깜박거렸다.

“…회장님의 말씀을 안 들으시면 도련님만 위험해질 뿐입니다.”

“지금보다 더 위험해질 수가 있어?”

컨터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긍정으로 들리는 침묵에 나이토는 가출 계획을 더 촘촘하게 짜겠노라고 마음먹었다. 허공만 보던 컨터는 문득 생각이 났는지, 나이토를 보았다. 그는 한 걸음 정도 여유를 두고 선 채로 고개를 숙였다. 그의 듬직한 상체가 가까워졌다.

“회장님은 지금 많이 참고 계시는 겁니다. 그걸 알아두십시오.”

“참고 있는 게 이 정도라고?”

“저는 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만, 한 가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도련님께서 회장님을 과소평가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제법 사적으로 대화를 길게 한 컨터는 눈치를 살피며 상체를 올렸다. 그는 나이토에게 손을 내밀며 다시 그답게 말했다.

“의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죠.”

나이토는 다친 손을 보았다. 피가 비치고 있었다. 어쩐지 통증이 계속되고 있었다. 쓰게 웃은 나이토는 컨터의 손을 무시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컨터가 그림자처럼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다. 앞으로 저런 존재감으로 자신을 감시할 것이다. 아버지가 없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까짓 감시는 견뎌줄 수 있었다. 자신은 곧 이 집 안을 떠날 것이다. 영원히.

*

처음 보는 경호원의 무시무시한 눈빛과 근육, 덩치에 아인은 마른 침을 삼켰다. 아인은 바뀐 경호원의 분위기에 놀랐는지 아무 말도 못 했다. 성격이 무뚝뚝하지만, 예의는 차리던 나이토는 컨터에게 인사하지 않고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졸업식이 얼마 남지 않은 터라, 학교는 어딘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나이토는 목에 두르고 있던 두툼한 머플러를 끌어올려 입가를 가렸다.

“저 아저씨 누구야?”

“새로운 경호원.”

나이토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나이토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인이 투덜거렸다. 날씬한 몸에 이국적인 외모를 자랑하던 경호원이 보고 싶었는지 아인이 가는 내내 경호원의 이름을 불렀다. 짜증이 난 나이토는 아인의 입술을 찰싹 소리 날 정도로 때렸다. 아인이 욕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 나이토는 미리 준비한 담배를 그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학칙에 어긋나는 일이었으나, 지금은 아인에게 뭔가를 바쳐서 정보를 알아내야 했다. 나이토는 아인을 끌고 한적한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곳은 종종 아이들끼리 밀회를 가질 때 사용하는 체육관이었다. 아인과 나이토는 빛도 들지 않는 구석으로 들어갔다. 나이토가 벽에 기대어 섰고, 아인은 나이토를 마주 보며 서 있었다. 아인은 나이토가 건네준 담뱃갑을 꺼냈다.

“할 말 있어?”

나이토는 말없이 아인이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여줬다. 아인이 담배를 힘껏 빨았다. 볼이 순식간에 오목해졌다. 우선 아인의 기분을 좋게 만든 상태에서 대화를 할 생각이었다. 나이토는 미리 준비해온 현금 뭉치를 아인에게 내밀었다. 엄청난 액수에 아인의 눈이 커졌다.

“이거 뭐야. 뇌물?”

아인은 담배를 문 터라 발음이 상당히 뭉개져 있었다. 그래도 나이토는 알아듣고서 침착하게 되물었다.

“이 돈이면, 신분 하나 살 수 있어?”

나이토의 질문에 아인이 팔짱을 꼈다. 안 되는 것인가. 나이토는 순간 덜컥 겁을 먹었지만, 아인에게 끝까지 부탁해볼 생각이었다. 곱게 자란 부잣집 도련님들 사이에서 자신이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은 아인밖에 없었다. 대놓고 뒷골목에서 활동하는 놈들은 믿을 수 없었다. 각종 사업으로 손을 뻗친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주말 외출도 금지했어. 고장 난 휴대전화도 가져가려고 해.”

“그래서, 집을 나가시겠다?”

아인이 담배 연기를 느리게 내뱉었다. 그는 나이토를 지그시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못해. 그쪽으로 아는 사람이 없어.”

“그럼 타인 명의로 된 휴대전화는 구해줄 수 있어?”

“그건 해줄 수 있어. 나도 아빠 몰래 몇 번 만들어봤거든.”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딱딱하게 굳었던 표정이 미적지근하게 풀어졌다. 액수를 확인한 아인은 나이토가 내민 돈에서 딱 반절만 가져갔다. 남은 돈은 나이토에게 돌려주었다. 아인은 다 피운 담배를 휴대용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는 제법 진지한 눈으로 나이토를 훑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시선에 나이토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봐.”

“이제야 가출 준비하는 게 기특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해서 그렇다.”

“아버지가 그쪽 사람인 거 알잖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어.”

아인이 모호한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의 직업을 어렴풋이 아는 아인이라, 어느 정도 나이토의 상황을 직감한 듯했다. 아인은 말없이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나이토의 어깨를 쳤다. 나이토가 고개를 돌리자 아인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신분을 살 거면 매드타운으로 가. 보요드 항구에 유명한 마약 도시야. 거기는 다 약쟁이에 창녀, 남창, 그런 새끼들이 사는 곳이거든? 아마 거기 가면 쉽게 신분을 살 수 있을 거야.”

“응.”

“레이얀도 데려갈 생각이야?”

직접적인 물음에 나이토는 고민했다. 레이얀을 데려가고 싶었으나, 아직 레이얀의 의사를 묻지 못했다. 휴대전화가 고장 났지만, 주말 내내 외출을 못 했다. 휴대전화를 사러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여태까지 연락을 하지 못했다.

레이얀의 어머니는 공작이었다. 공작의 사생아로 태어난 레이얀은 어머니가 가주가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수도로 올라올 수 있었다. 비록 집안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있긴 했으나 어머니가 대대적으로 지원을 해주다 보니, 레이얀은 나이토처럼 억압받진 않았다. 그는 어머니의 풍족한 애정 아래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 레이얀을 자신의 이기심으로 같이 살자고 해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사랑만으로 살 수 없는 세상이란 걸, 빈민가에서 봤기에 나이토는 더더욱 고민이 되었다.

“네가 레이얀한테 물어봐 줘.”

나이토가 지친 듯 중얼거렸다. 아인이 어깨를 토닥여줬다.

“바로 가출할 거야?”

아인의 물음에 나이토가 유쾌한 웃음을 머금었다. 깨끗하고 단아한 얼굴에 보기 좋은 미소가 감돌았다. 반달로 접힌 눈매가 예뻤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바로 나가겠어? 컨터가 저렇게 버티고 있는데. 우선 기간은 두고 보려고. 아버지가 방심할 때를 노려서 바로 실행할 생각이야.”

“목적지는?”

“바셀.”

사실 진짜 목적지는 가펠론이었다. 그곳을 중심적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언제든지 배를 타고 도망갈 수 있는 도시였다. 또한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만든 여권만 있으면 언제든 옆 나라로 도망갈 수도 있었다. 사방이 트여있어 도망가기에 적합한 도시라고 주말 동안 결론을 내렸다. 가펠론에 머물렀다가, 가능하다면 타국으로 옮겨갈 생각이었다.

나이토가 아인에게 거짓말을 한 건 아버지가 아인을 잡고 추궁할 때를 염려해서였다. 아인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그에게 깊은 속내를 다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아인은 바셀이라는 나이토의 대답에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곧 종이 칠 시간이라 아인이 발걸음을 옮겼다. 아인은 유독 작아 보이는 나이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서, 그만이 들을 수 있게 말했다.

“미친 아버지한테서 잘 도망쳐봐. 잡히는 즉시 너와 나, 둘 다 죽음일 테니까.”

자신의 아버지를 너무나 잘 아는 친구의 충고에 나이토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가 자신을 죽이려 들면, 자신도 그를 죽이려 하면 그만이다. 이제 더 이상 그의 미친 짓을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단지, 컨터의 말이 뇌리에 박혀 그를 꺼림칙하게 만들었다.

[회장님은 지금 많이 참고 계시는 겁니다.]

많이 참고 있다 라. 그가 안 참았다면 지금쯤 자신은 죽었을까. 아니면, 거의 시체 상태로 숨만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었을까. 아버지가 인내하지 않았을 때 상황을 예상해 봤지만 딱히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시체 상태였다. 메마른 웃음을 지은 나이토는 체육관 밖으로 나갔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주변이 싸했다. 추위에 몸을 떨면서 코트를 여몄다. 아인도 추웠는지 몸을 떨며 벗고 있던 두툼한 코트를 걸쳤다. 목도리까지 두른 아인은 나이토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나이토가 의문 섞인 시선으로 응시하자 아인이 짧게 웃었다.

“내가 묻는 것보단 네가 묻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이걸로 연락하고 점심시간에 줘.”

“고마워.”

“고맙기는.”

비록 행실은 불량스럽고 삐딱했지만 아인은 자신에게 좋은 친구였다. 관심 없는 척 굴어도 속이 깊고 신경을 많이 써주는 편이었다. 레이얀과는 다른 다정함에 나이토는 미래에 대해 현실적인 희망을 갖게 되었다.

“너 여름에 졸업한다고 했지?”

아인이 체육관과 본관이 연결된 구름다리로 걸어가며 물었다. 휴대전화로 레이얀에게 문자를 보내던 나이토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를 탈출구로 삼는 거면 난 반대야. 여긴 대중교통이 별로라고.”

“그래?”

막 레이얀에게 장문의 문자를 다 보낸 나이토가 아인에게 되물었다. 막대 사탕을 꺼내 입에 넣은 아인이 우물거리며 나이토를 빤히 보았다. 아인은 나이토의 등을 툭, 치며 짧게 말했다.

“도서관 근처가 바로 기차역이잖아. 내가 예전에 가출했을 때 사용한 루트거든.”

“나도 저번에 도서관에 갔는데 걸렸어.”

나이토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인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어쩌다가 걸렸는데?”

“그때 마침 아버지 직원이 터미널에 있었거든.”

책을 빌리는 척하며 화장실에 들러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완벽한 변장이었다. 당당하게 정문을 통해 나갔고 터미널로 향했다. 그때까지는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터미널에서였다. 아버지는 도망간 남창을 잡기 위해 터미널, 기차, 항구에 사람을 푼 상태였다. 그 사실을 나이토는 모르고 있었다. 나이토는 아버지가 하는 사업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예전부터 아버지 사업은 알토가 이어받기로 했으며, 알토가 그에 관한 수업을 받고 있었기에 나이토는 늘 사업 얘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도서관에 대동한 경호원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대로 도망가면 성공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나이토는 푹 눌러썼던 모자를 살짝 들어 올렸다. 사람이 워낙 많은 터미널이라 안심이 된 것이다. 그 순간, 터미널 입구에서 남창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한 남자가 나이토를 알아보고 다가와 어깨를 잡아챘다. 나이토가 도망가려 했으나, 수십 년을 그 바닥에서 구른 사람을 이기는 건 역부족이었다. 직원은 나이토를 자연스럽게 결박했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땐, 아주 자연스러운 스킨십이었다. 나이토는 자신을 꼼짝달싹 못 하게 붙잡은 직원을 보며 참담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대로 저택까지 끌려갔다. 얻어맞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아버지는 의외로 침착했다. 아버지는 자신을 잡은 직원에게 포상을 줬다. 그뿐이었다. 아버지는 차분하고 우아한 태도로 웃으며 나이토를 보고 말했다.

‘네가 재밌으면 됐어.’

아버지의 눈빛과 목소리가 불에 구운 마시멜로우 같이 포근하고 달아, 나이토는 순간 자신이 잡혀 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어느새 다가온 아버지의 팔이 허리를 휘어 감았다. 다정하게 자신을 옥죄어오는 힘에 놀라서 아버지를 밀어보았지만, 자신보다 20cm나 크고 덩치가 좋은 아버지는 결코 밀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정말 다정한 사람처럼, 눈웃음을 부드럽게 지으며 나이토의 어깨를 세게 잡았다. 비명이 나올 뻔했다.

‘재밌으면 계속해. 나도 너랑 노는 건 재밌어.’

‘놔.’

나이토가 반말로 사납게 얘기하자 아버지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빠한테 그러면 안 되지.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어?’

아버지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 어깨뼈가 부러질 거 같았다. 나이토의 새초롬한 눈매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견고한 아버지의 완력을 이겨내는 건 쉽지 않았다.

‘놔주세요, 라고 해야지.’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고, 혈관을 타고 흘러들어와 심장으로 추락했다. 불편한 다정함이 심장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다정함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이것은 모호하게 뜨거운 다정함이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에게 함락된 채, 고개를 숙이고 띄엄띄엄 말했다.

‘…놔주세요.’

그때의 기억은 마음에 잔재 되어 짙은 안개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무시할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포용할 수도 없는 감정에 한숨만이 나왔다.

아인에게 긴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나이토는 걱정해주는 아인이 고마워서 살포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 방법을 열심히 생각 중이니까.”

아인은 사방에 별 가루가 뿌려진 듯, 화사하게 빛나는 웃음에 나이토의 아버지가 아주 약간 이해가 갔다. 가만히 있을 땐 매우 잘 생겼고, 웃을 땐 예뻤다. 근심을 잊게 해주는 미소였다. 아마 저 외모와 저 미소 때문에 나이토 아버지가 그를 아끼는 게 아닐까, 고민해봤지만 아끼는 수준은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아들을 향한 기이한 애정이었다.

“…그래.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그럼, 난 간다. 점심에 봐.”

“응.”

아버지 성격상, 이번에 걸리면 아예 모든 외출을 금지할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목덜미가 잡히지 않도록 철저하고 완벽하게 계획할 생각이었다.

아인과 헤어진 나이토는 중앙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오전 수업이 한가로운 편이라, 도서관에서 독서를 할 계획이었다.

[전화해.]

방금 온 레이얀의 문자에 나이토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방금 전 있었던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신호음이 몇 번 가기도 전에 레이얀이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걱정이 배인 목소리가 들렸다. 늘 안부를 묻던 레이얀이었으나, 오늘은 그도 다급했는지 불쑥 물었다. 나이토는 한숨을 삼키며 최대한 태연하게 말했다.

“설명하자면 길어. 아무튼 아버지가 주말 외출을 금지했어.”

-주말까지 금지라고?

나이토는 넥타이를 풀었다. 숨이 트였다. 창문을 톡톡 건드린 나이토가 응어리를 토해내듯, 힘겹게 말했다.

“당분간 못 만날 거 같다.”

-왜? 이유를 설명해줘야지.

레이얀이 화를 내며 설명을 요구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시작은 천륜이었다. 평범한 아버지와 아들 관계였는데, 어느 순간 이상하게 분위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틀어졌는지, 아버지가 왜 자신에게 집착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니 레이얀에게 얘기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레이얀에게 짐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오롯이 자신의 문제였다.

“해결되면 다 얘기해줄게. 지금은…어려울 거 같아.”

레이얀은 고통이 묻어있는 답변에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말이 없던 레이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어머니께 말해볼까?

레이얀의 어머니를 떠올린 나이토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해달라는 건 해주었으나, 이번 일은 선뜻 나서지 않을 것이다. 엄연히 한 가정의 일이었다.

“너희 어머니에게 얘기하지 마. 이건 너희 어머니가 와도 해결이 안 되는 일이니까.”

- 아니면 내가 너희 집에 놀러 가면 안 돼?

“허락 안 해줄 거야.”

레이얀답지 않게 저속한 욕설을 내뱉었다. 말없이 그가 아버지를 욕하는 걸 듣고 있던 나이토는 불쑥 말했다.

“나 가출할 거야. 졸업하고 나서.”

-어떻게 가려고?

“방법은 아직 안 짰어. 혹시 레이얀, 너는…….”

나이토가 머뭇거렸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레이얀의 인생까지 진창으로 만들 수 없었다. 그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나이토는 그가 자신을 거부한다 해도 괜찮았다. 레이얀에겐 레이얀의 삶이 있었다.

하지만 레이얀은 나이토의 걱정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그는 달콤한 목소리로 웃으며 달래듯 말했다.

- 나는 당연히 너랑 가야지. 너 없이 어떻게 살겠어.

나이토는 그의 확답에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아서 웃었다. 먼지가 낀 바닥을 물끄러미 보던 나이토는 그와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정말 문득 파티가 생각났다. 귀족들의 유흥 중 하나였는데, 특히 알라시스 대공이 파티를 미친 듯이 좋아했다. 그의 부는 메마르지 않았으며, 그것을 과시하는 걸 삶의 낙으로 여기는 자였다. 오죽했으면 뉴스에서도 그를 ‘파티광’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아버지가 하는 일에 관심이 없던 나이토도 알라시스 대공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 하는 파티에 나이토와 알토를 꼭 대동하고 다녔다. 그도 아버지는 아버지였는지, 자신과 얀을 닮아 잘 생긴 아들들 자랑하는 걸 무척 좋아했다.

‘제 아들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얼굴에 흐뭇함이 올라와 있어서, 정말 자신을 사랑해주는 거 같아서, 그때만큼은 아버지의 손에 자의적으로 갇혀있었다. 홀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버지의 시선에 간혹 헷갈릴 때가 있었다.

정말 자신을 사랑한다는 듯,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에 가슴이 흔들렸다. 그의 시선과 그의 팔이 주던 안온함, 따스함, 애정을 떠올리던 나이토의 눈빛이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아버지의 집착을 떠올리고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도망쳐야 한다. 자신의 삶까지 송두리째 파괴당할 것이다.

“알라시스 대공 파티에 너도 참석해?”

- 아니. 나는 어머니의 정식 자식이 아니라서.

“나는 가족끼리 알라시스 대공 파티에 참석해. 혹시 그날 올 수 있어? 잠깐이라도 만나자.”

- 어머니께 말해볼게.

아버지는 호화스러운 파티를 즐기는 알라시스 대공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그의 취향을 모조리 꿰뚫고 있었고, 그가 만족할 수 있는 매춘부들과 마약을 싼 가격에 제공해주었다. 그들은 서로의 욕구를 충족해주는 공생 관계였다.

그런 아버지이니 이번 파티에도 반드시 참석할 것이다. 또한, 알라시스 대공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쉽게 자리를 비우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의 영역 아래에 있었지만, 아버지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알라시스 대공 파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어보던 나이토는 레이얀에게 조곤조곤 얘기했다.

“우리 집은 오지 마. 졸업 전까지는 얌전하게 아버지 비위를 맞출 생각이야. 휴대전화는 타인 명의로 하나 만들 거니까 기다려줘.”

- 알았어.

“장소는 내가 따로 말해줄게.”

- 그래. 그럼 나중에 꼭 연락해줘. 알라시스 대공 파티에서 보자, 나이.

“응.”

- 걱정 마. 잘 될 거야. 지금까지 잘 견뎌왔잖아.

“…응.”

나이토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감정이 쉴 새 없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불안했지만 희미하게 솟아오른 희망 때문에 가슴이 설렜다. 이제 아버지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번만 성공하면, 자신에게 달콤한 자유가 돌아올 것이다. 그 생각이 나이토를 움직이게 했다.

- 사랑해, 나이.

“나도.”

늘 하던 고백이 오늘따라 쓰게 느껴졌다. 나이토는 전화를 끊고서 한숨을 느리게 토해냈다. 속이 다시 답답해진다.

‘제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시선을 떠올려서일까. 투명한 자색 눈은 자신을 볼 때면 강하게 불타오르는 거 같았다. 알토를 볼 때와 확실히 달랐다. 알토는 의무감으로 아들로 대한다면 자신은 마치 값비싼 물건을 다루 듯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결국 강압적인 관계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자신을 놔주지 않던 손길이 지금도 남아있는 거 같았다. 그에게 잡혔던 허리도, 팔도, 목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이토는 조금이라도 열이 식길 바라며 창문에 이마를 대었다.

하지만 아무리 차가운 바람이 열을 식혀도, 아버지가 근원이 된 열은 식지 않았다. 화상이 남을 것 같은 뜨거움이 괴로웠다.

*

아인이 졸업하기 전에 낡은 휴대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착실하게 통화와 문자 기능만 가능한 휴대전화였다. 아인이 외국인 명의로 개통한 거니 추적당할 걱정은 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나이토는 그동안 아버지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고 얌전히 학교만 다녔다. 그동안 열심히 하던 공부는 그만두었다. 대학이 목표가 아니니 공부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 거의 집에 갇혀있게 된 나이토는 아버지에게 승마장과 운동할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는 말을 잘 듣는 나이토가 기특했는지, 별말 없이 저택 내에 있는 집을 주었다.

그동안 쓰는 이가 없었던, 폐가나 다름없던 집을 리모델링했다. 거대한 정원에는 나이토를 위한 수영장이, 1층에는 체육관, 게임방, 부엌이 있었고, 2층은 일직선으로 방을 이어서 침실로 내주었다. 유독 침실이 거대한 집이었지만 나이토는 개의치 않았다. 아버지가 머무는 집도 침실은 언제나 컸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덩치가 워낙 크니, 취향이 그런 것인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제 자신의 방에서 자신의 집을 갖게 된 나이토는 갇힌 집 안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아버지가 넓게 펼쳐진 승마장을 보여주며 물어봤다. 아버지가 뒤에서 나이토의 허리에 양팔을 두르고 있는 오묘한 상태였다. 종종 하던 자세였는데도, 나이토는 어딘가 불편해 몸을 틀었다.

아버지의 팔을 떼어냈다. 나이토는 등을 돌려 아버지를 마주 보았다. 아버지의 눈이 오늘따라 따사로웠다. 온기가 있었다. 주춤하던 나이토는 용기를 내서 아버지 손을 잡았다. 남자답게 크고, 어른다운 손이었다. 어렸을 때 보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크고, 우람했다. 그의 모든 곳이 말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손을 잡는 나이토를 놓칠세라 뚫어져라 보았다. 자색 눈에 담긴 온도가 점점 올라가는 것을, 정작 나이토는 눈치채지 못하고 웃었다. 햇빛 아래에서 찬란히 부서지는 미소가 피어나는 꽃이 곱고 아름다웠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손을 꽉 잡았다. 아들의 하얀 손이 아버지의 손에 갇혀 보이지 않았다.

‘네, 마음에 들어요.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눈동자가 거침없이 얼굴을 누볐다. 아버지는 손을 뻗어 아들의 뺨을 어루만졌다. 워낙 얼굴이 작아 한 손에 다 들어왔다. 스무 살이지만, 앳된 얼굴을 눈여겨본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인 거야?’

아버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했지만, 그 안에는 잘 벼려진 칼이 있었다. 나이토는 방심하지 않고 아버지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아버지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가요?’

나이토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뺨에서 손을 떼더니 피식 웃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네.’

아버지가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며 나이토의 손에 열쇠를 넘겨줬다. 그는 마지막으로 다정한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너는 이렇게 하면 돼. 내가 주는 돈으로 물건 사고, 내가 주는 음식만 받아먹고, 내 집에서 얌전히 살고.’

나이토는 숨이 막힐 것 같은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신의 얼굴을 잡은 손을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만 보라는 듯, 얼굴을 고정하고 놔주지 않았다. 눈도 아버지에게 붙잡혀 아래로 내리뜨거나, 옆을 볼 수 없었다. 오로지 아버지만 봐야 했다. 뇌까지 익어버릴 거 같은 열기에 숨을 겨우 내쉬며 아버지를 보고 입을 열었다. 아버지의 눈이 이젠 입술에 닿았다. 입술에 개미가 올라간 듯 간지러웠다.

‘그걸 원하세요?’

나이토가 물었지만, 아버지는 답을 주지 않았다. 그는 이 넓은 정원에서 나이토를 안을 것처럼 가까이 다가왔다. 나이토는 피할 길이 없어, 고개를 좀 더 들고 아버지를 보았다. 멀리서 보면 마치 나이토가 아버지에게 매달리는 것 같은 자세였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허리를 끌어안고 당겼다. 코에 아버지의 향수 냄새가 걸렸다. 향수를 강하게 뿌리는 편이 아닌데도, 아버지가 가까이 오면 유독 향이 진하게 느껴졌다. 언제나 이랬다. 역시나 피할 수 없어 꼼짝없이 잡힌 채 아버지를 고스란히 견뎌냈다.

나이토는 손을 뻗어 아버지의 옷자락을 잡으며 물었다.

‘제가 아버지 옆에만 있으면 되는 거예요?’

아버지의 눈이 미묘하게 가늘어졌다. 무언가를 가늠하듯, 눈 안에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다.

‘그래.’

‘아버지 옆에 있으면, 외출은 허락해줄 거예요?’

아버지의 손이 자신의 손목을 꽉 잡았다. 아팠다. 연륜으로 다져진 악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아직 흉터가 남아있는 오른손을 빤히 보더니, 엄지로 흉터를 만졌다. 엄지의 부드러운 살이 흉터를 만질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손을 서서히 놓아주었다. 그는 양손으로 나이토의 뺨을 만졌다. 그는 아들의 하얀 이마에 짧게 키스했다. 처음 받아보는 짧은 키스에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나이토가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더니, 뺨에도 키스했다. 나이토가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그가 나이토를 놓아주었다. 그는 나이토의 뺨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예쁘게 굴어도 안 되는 건 안 돼.’

그는 희미한 웃음을 남기고서, 나이토를 두고 사라졌다. 아버지의 입술이 닿은 부위를 만지작거리던 나이토는 서서히 눈을 일그러뜨렸다. 분노가 차올랐다. 알아서 기어줘도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화가 풀리지 않아, 아버지가 마련해준 헬스장에서 운동으로 3시간을 넘게 보냈다. 이상한 생각이 나지 않도록 운동에 전념했다.

집에 거의 감금 상태로 빈둥거리며 지내다 보니, 어느새 알라시스 대공의 파티 날이었다. 그의 생일까지 겹쳐서 1주일 동안 파티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아버지는 격식 있는 파티에 맞게 최고급 정장을 나이토와 알토에게 선물했다. 은은한 빛이 감도는 부드러운 검은 정장이었다. 정장을 다 입고 의자에 앉자 기다리고 있던 미용사가 머리를 깔끔하게 정돈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선물해준 향수를 뿌렸다. 향이 아버지 취향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참아야 했다. 전신 거울로 자신을 보았다. 왁스로 앞머리를 넘겨 정돈한 평범한 모습이었다.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고개를 돌리니 자신과 비슷한 정장으로 갖춰 입은 아버지가 보였다. 그는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와 나이토를 확인했다. 마치 자신의 상품인 것처럼, 향까지 다 확인한 아버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자세가 너무 자연스럽고 능청맞아 나이토는 반항하지도 못하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겼다.

“자, 그럼 가볼까.”

아버지에게 거의 안긴 자세로 차에 올라타야 했다. 알토가 조수석, 아버지와 나이토는 뒷좌석에 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이토는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이어폰을 꼈다. 하지만 끼자마자 아버지가 이어폰을 빼버렸다. 어이가 없어서 아버지를 바라보자 그가 턱을 괸 채,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지만 술은 안 돼. 물론 담배도. 얌전히 있다가 시간 되면 컨터랑 같이 집에 가.”

“알아요.”

짜증 섞인 답을 내뱉으며 이어폰을 주섬주섬 꼈다. 아버지는 방해하지 않았다. 알라시스 대공의 저택까지 그리 멀지 않아 금세 도착했다. 아버지의 저택도 어마어마했지만, 대공의 저택은 웬만한 고성을 뛰어넘는 거대한 규모였다. 옹기종기 모인 건물들을 헬기로 찍어본다면, 마치 소규모 마을 같았다. 차를 타고 몇십 분을 가야 했다. 턱을 괴고 무료하게 나무들을 감상하다 보니 파티장 앞이었다. 차에서 내린 아버지가 손을 내밀었다. 강인한 손목에 채워진 시계가 보였다. 서민들은 평생을 벌어도 못 살 시계였다. 시계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어서일까.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나이토.”

아버지가 이름을 불렀다. 머뭇거리던 나이토가 천천히 손을 뻗어 잡자, 아버지가 손가락 하나하나 얽히며 들어와 깍지를 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린 나이토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예전과 비슷하게 경건한 분위기였다. 알라시스 대공의 취향답게 고대 신전의 모습으로 설계된 탓일까. 아니면 저곳에서 은은하게 연주되고 있는 클래식 때문일까. 본질은 천박하고 더러운 파티였지만, 그럴싸하게 포장된 껍데기 덕분에 제법 우아해 보였다. 아버지는 그만 보라는 듯, 나이토를 끌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알토는 두 사람 뒤를 아무렇지 않게 따라갔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강압적인 힘에 끌려 알라시스 대공 앞에 섰다. 예의 바르게 알라시스 대공의 손등에 키스하는 아버지를 보며, 나이토는 어색하게 웃었다. 억지로 당겨진 입술 때문에 볼이 땅기는 느낌이었다.

“나이토, 이제 완전히 어른이 되었구나.”

알라시스 대공의 무미건조한 감탄에 나이토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올해 여름에 학교도 졸업합니다.”

아버지가 유쾌한 사람인 척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의 위선적인 태도에 속이 뒤틀렸다. 대공은 나이토에게 다가왔다. 대공은 키가 유달리 작은 터라, 손을 쭈욱 펴서 나이토의 어깨를 두들겼다.

“아버지를 도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이토.”

훌륭한 사람이라. 마약과 난교에 찌들어 사는 대공에게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으나 나이토는 아버지 앞이라 애써 미소를 유지했다.

“예.”

차라리 웃는 가면을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웃느라 얼굴 근육이 다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알토까지 인사를 한 후에 둘은 아버지의 시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나이토는 드넓은 홀을 벗어나 여유롭게 정원을 걸었다. 그는 아인이 준 휴대전화로 레이얀에게 [어디에 있어?]라고 문자를 보낸 뒤, 주변 눈치를 살폈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동이 울렸다. 레이얀이 몇 호에 있다고 알리는 문자였다.

알토는 저 멀리서 또래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알토가 웃는 모습을 눈여겨보던 나이토는 와인 한 병을 챙겨 드넓은 정원을 걷기 시작했다.

밤에 가까운 시간이라 그런지 스산했다. 인위적으로 아름다움을 뽐내던 풍경도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와인을 든 채 한 건물을 향해 계속 걸었다. 파티를 위한 저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단층 건물이 있었다. 언제든 귀족들의 욕구를 풀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은밀한 장소였다. 나이토는 레이얀이 미리 정해놓은 방으로 걸어갔다. 문을 두들길까 고민하다가,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레이얀?”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대 하나와 전신 거울, 소파, 테이블만 있었다. 넓은 방에 장식은 별로 없었으나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흘러 그리 나쁘지 않았다. 와인을 테이블에 두고 욕실로 갔으나 그곳에도 없었다. 혹시 자신이 시간을 잘못 안게 아닐까.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안았다. 깜짝 놀라 돌아보려 했다.

“제가 누굴까요?”

나이토가 능청맞은 질문에 소리 내서 웃었다. 그는 자신의 눈가를 가리고 있는 손을 만지작거렸다. 고생 한 번 안 해본 사람처럼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서서히 손이 자신의 눈가에서 사라졌다. 나이토는 고개를 돌렸다.

“바로 레이얀입니다!”

공작의 아들답게 기품 있는 턱시도를 입은 레이얀이 서 있었다. 몇 년 만에 처음 만난 듯, 얼굴을 보자마자 가슴이 울컥했다. 나이토는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짓궂게 웃는 레이얀의 멱살을 잡고 당겼다. 그대로 입술을 덮쳤다. 레이얀이 키득거리며 웃더니 입술을 벌려, 나이토의 혀를 받아들였다. 혀가 넝쿨처럼 얽혔다. 젖은 소리가 봇물 터지듯 흘러넘쳤다. 나이토는 키스를 하면서 레이얀의 재킷과 드레스 셔츠를 다급하게 벗겼다. 그를 마음껏 탐하고 싶었다. 나이토가 거칠게 옷을 벗기고, 바지까지 손을 뻗자 레이얀이 헐떡이며 작게 속삭였다.

“왜 이렇게 급해. 천천히 해.”

“못 만난 지 무려 한 달이야.”

레이얀이 사랑이 가득 담긴 손길로 얼굴을 만져주었다. 나이토는 레이얀의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으며 숨을 내뱉었다. 그의 냄새가 났다. 나이토는 레이얀을 침대에 눕혔다. 그의 목덜미를 깨물면서 바지를 벗겼다. 참는 게 힘들었다. 나이토는 레이얀의 무릎까지 바지를 벗겼다. 레이얀의 반쯤 발기한 성기를 덥석 잡았다. 레이얀이 신음을 흘리며 나이토의 목을 끌어안았다. 나이토는 그답지 않게 서툴게 성기를 만졌다. 약간은 거칠기까지 한 행동에도 레이얀이 흥분했다. 나이토는 손을 뗀 후, 주머니에 넣어둔 콘돔을 꺼냈다. 이로 콘돔을 거칠게 뜯었다. 레이얀과 키스를 한 순간부터 하반신에 피가 몰리고 있었다. 콘돔을 성기에 씌웠다. 젤까지 꺼내 손에 치덕치덕 바르고서 레이얀의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촘촘한 구멍이 손가락을 조였다.

“하아, 준비는…으읏, 잘 해왔네, 나이토.”

레이얀이 오랜만에 하는 섹스가 아팠는지, 신음을 흘렸다. 찡그린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가 예뻐서 입을 맞추었다. 나이토는 그의 아랫입술을 빨면서 야릇하게 속삭였다.

“당연하지. 오늘만 기다렸어.”

집에서는 레이얀의 모습을 상상하며 자위만 했다. 미칠 것 같았다. 주기적으로 탐하던 이 아름다운 몸을 보지도 못한다는 게 괴로웠다. 그렇기에 오늘은 평소보다 소중했다. 오늘 헤어지면, 한동안 만나지 못할 것이다. 나이토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애정을 담아 어루만져주었다. 레이얀 또한 나이토의 손끝에서 오는 간질간질한 감각에 눈을 가늘게 뜨고 신음했다. 나이토는 발기한 성기를 잡아 구멍에 대고 꾹 눌렀다. 구멍이 서서히 벌어지면서, 귀두를 바짝 조이는 게 느껴졌다. 뜨끈하고 예민하고 붉은 점막이 두툼하고 긴 성기에 달라붙는 게 빛 아래에서 선명하게 보였다. 레이얀의 하얀 엉덩이 사이로 성기가 착실하게 들어가고 있다.

“아앗!”

레이얀이 아팠는지 신음을 흘렸다. 나이토는 신음도 아깝다는 듯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나이토가 레이얀의 입술에 쪽쪽 키스하면서, 차분하고 느리게 성기를 넣었다. 삽입은 아팠지만 키스가 워낙 달콤하고 애절해 고통이 희석되는 것 같았다. 성기가 구멍 안으로 다 들어갔다. 레이얀은 눈물을 살짝 흘리며 다리로 나이토의 허리를 감쌌다. 나이토는 인상을 쓰며 레이얀의 늘씬한 허리를 두 손으로 잡았다.

“레이얀, 아플지도 몰라.”

나이토가 탁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레이얀이 웃으면서 나이토의 목을 감싸 안았다.

“괜찮아.”

레이얀의 허락에 나이토는 허리를 난잡하게 움직였다. 그의 허리를 잡고 미친 듯이 박아댔다. 그가 좋아하는 지점을 찔러주지 않아도, 레이얀은 이 자체로 흥분됐는지 달콤한 신음을 쉴 새 없이 흘렸다. 나이토가 이성을 거의 반쯤 놓은 채, 박는 것에 열중했다. 머리는 이미 쾌감에 점령당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성기를 놓아주지 않고, 꽉꽉 조이는 내부에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아, 앗! 나이, 살살…흐읏, 으윽!”

나이토는 애원하는 레이얀을 억지로 눕히고, 내벽이 빨갛게 부어오를 때까지 박았다. 레이얀은 짧고 빠르게 쳐올리는 힘에 머리를 시트에 비비며 괴로워했다. 나이토가 주는 쾌감에 레이얀도 파도에 쓰러지는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졌다. 온몸이 쾌감에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레이얀은 흐느끼며 나이토의 어깨에 매달렸다. 나이토는 사정의 기미가 다가오자 레이얀을 세게 끌어안았다. 뱃속에서 끓던 열이 성기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토의 긴 눈매가 살짝 일그러졌다. 밤에 출렁이는 심해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는 검푸른 눈이 멍했다. 이성이 없어진 눈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이성을 놓은 나이토가 사랑스러워 레이얀은 희미하게 웃으며 그를 어루만졌다.

그런데 그때, 어떤 이가 방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정중하고, 예의가 있었지만 곧 조급하고 버릇없이 변했다. 몇 번 경험해봤던 일이 신기루처럼 앞에 일렁거리고 있었다.

발목을 타고 사탄의 뱀처럼 타고 올라오는 불길한 예감에 숨을 멈췄다. 레이얀은 여전히 다리를 벌린 채, 헐떡거리며 나이토를 바라보았다. 나이토는 삽입했던 성기를 빼냈다. 콘돔을 빼내고, 서둘러 묶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이토는 서둘러 옷을 입었다. 나이토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레이얀도 이상한 걸 눈치챘는지, 엉성한 자세로 일어나 옷을 입었다.

“나이?”

열리지 않자, 아예 문을 뜯어낼 것처럼 쾅, 쾅 두들기고 있었다. 레이얀은 밖에서 들리는 위협적인 소리에 겁을 먹은 듯, 나이토를 불렀다. 그에 비해 나이토는 차분했다. 그는 레이얀의 옷을 챙겨 그에게 던져주고서, 자신도 서둘러 옷을 입었다.

“조용히 해, 레이얀. 아버지 같아. 어서 옷 입어.”

“아버지? 아버지가 왜?”

레이얀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었다. 밖에서 두들기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지금 이렇게 기다려준 것도 용할 정도였다. 나이토는 고개를 돌렸다. 창문이 보였다. 고대 귀족들의 가옥을 형태로 한 저택이라, 창문이 매우 컸다. 아버지는 불가능하지만, 평균 남자는 창문으로 충분히 도망갈 수 있었다. 나이토는 레이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바지만 겨우 입은 레이얀이 당황한 얼굴로 나이토를 보았다.

그러나 나이토는 창문을 여느라 레이얀의 눈빛을 보지 못했다. 창문을 활짝 연 나이토는 레이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가.”

“너는.”

“우선 너부터 가.”

나이토는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레이얀의 등을 밀었다. 창문이 활짝 열리면서 레이얀의 몸이 잔디밭에 떨어졌다. 나이토는 창문을 닫고, 재빠르게 잠갔다. 커튼까지 친 나이토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아버지는 알아서 들어올 것이다. 나이토는 떨리는 마음이라도 진정시키기 위해 와인 병을 집어 들었다. 우아하게 잔에 따를 시간은 없었다. 막 한 모금 마시고, 문을 바라보았다. 알코올이 확 올라와 사고회로를 마비시키고 있었다. 목이 타들어 갈 것처럼 뜨겁다. 나이토가 열기를 못 참고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문이 활짝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한 손에 들린 열쇠를 공처럼 튕기며 가지고 노는 아버지를 보며 나이토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아버지의 우아한 자태는 처음과 똑같았다.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에 비해 나이토는 누가 보아도 방금 섹스를 한 사람처럼, 온통 흐트러지고 엉망이었다.

“아빠가 부르는데 문을 열어야지, 아들.”

어린 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아버지처럼 상냥하고 부드러운 어투였지만, 아버지의 위압적인 분위기에 몸이 덜덜 떨렸다. 아버지 뒤에 있는 경비 또한 겁을 먹고 몸을 떨고 있었다. 열쇠를 경비에게 공처럼 던진 아버지는 문을 닫고 잠갔다. 그는 굳은 채 서 있는 나이토 앞으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아버지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방 냄새를 맡았다. 그는 고개를 숙여 나이토를 보았다. 쾌감이 몰려있던 눈과 볼이 붉고, 키스를 한 입술은 촉촉했다. 아버지는 웃으며 물었다.

“어떤 새끼랑 잤어?”

나이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고, 손에서 계속 땀이 났다. 아버지는 나이토가 꿋꿋이 서 있자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딱 한마디, 그렇게 내뱉은 그가 나이토의 뺨을 후려쳤다. 머리가 멍할 정도로 엄청난 타격이었다.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일어나지 못하고 바닥에 손을 댄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일어나려는 나이토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장기가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이토가 배를 감싸 안고 고개를 숙이자 그의 발이 나이토의 뒤통수를 꽉 밟았다. 이마가 바닥에 짓눌렸다. 얻어맞은 뺨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어마어마했다. 장기가 짓눌리고, 꼬인 느낌이 들었다. 식은땀이 비 오듯 순식간에 쏟아졌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구둣발에 눌린 채, 그저 숨이라도 제대로 이어보려고 노력했다.

“네가 예쁘게 굴 때부터 의심했지. 네가 그럴 애가 아닌데 말이야.”

뒤통수를 누르고 있는 발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으윽!”

아버지가 나이토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렸다. 강제로 침대에 던져졌다. 나이토가 두 손으로 다가오는 아버지의 상체를 밀어냈다. 하지만 벽이나 다름없는 아버지의 상체가 밀릴 일은 없었다.

“하지 마!”

아버지는 반항하는 나이토의 뺨을 다시 한번 때렸다. 입안에서 피 맛이 났다. 슬쩍 벌어진 입술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나이토의 반항이 잠시 멈추자 아버지는 나이토의 배 위에 앉았다. 컥, 하고 숨 막힌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양손으로 나이토의 목을 잡았다. 가늘고 긴 목이, 크고 두터운 손 안에 들어왔다. 나이토는 눈물을 소리 없이 뚝, 뚝 흘렸다. 생리적인 고통과 공포에서 시작된 눈물이었다.

“누구랑 잤어? 년이야, 놈이야? 응?”

아버지의 목소리는 평상시와 같았다. 눈빛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그는 무척 화가 나 있었다. 나이토는 그가 화를 내는 이유를 알지 못해 당혹스러웠다. 가련하게 울던 나이토는 아버지를 노려보며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아버지랑 무슨 상관이야.”

아버지가 싱긋 웃었다. 그는 양손에 힘을 줘 목을 졸랐다. 인정사정없는 힘에 호흡이 막혔다. 나이토는 처음으로 겪어보는 생명의 위협에 그의 손목을 반사적으로 잡았다. 나이토가 다리를 들썩이며, 몸으로 살려달라고 빌고 있었다. 나이토의 눈에서 초점이 흐려질 때까지 조르던 아버지는, 서서히 손을 풀어줬다. 나이토가 허겁지겁 모자란 숨을 마셨다. 기침이 멈추지 않고 나왔다. 목이 너무 아팠다.

“그만…!”

나이토가 괴로움에 흐느껴 울면서 빌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밑에서 애처롭게 우는 아들의 얼굴을 빤히 보며 상냥하게 물었다.

“누구랑 잤어, 아들. 그것만 말해.”

“모, 몰라…으윽!”

아버지의 손이 재차 목을 졸랐다. 아까보다 강한 힘이었다. 숨이 막혀오고, 의식이 흐려졌다. 두 손이 절박하게 아버지의 손목을 잡았으나 아버지는 들어주지 않았다. 나이토의 반항이 멎을 때쯤, 그가 손을 놓았다. 이번에는 목에서 아예 손을 떼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이토가 울면서 고개를 돌리자 아버지가 그새 빨갛게 부어버린 목을 엄지로 살살 만졌다. 워낙 피부가 하얗고 약한 편이라, 조금만 세게 잡아도 자국이 남는 몸이었다. 내일이면 뽀얀 목에 멍이 들 것 같았다.

“아빠가 그랬지. 연애는 안 된다고.”

나이토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버지를 보았다. 그는 혀를 차며 나이토의 뺨을 때렸다.

아까보다 힘이 덜 했지만, 따갑고 쓰라렸다. 나이토는 얻어맞은 뺨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감쌌다. 아버지는 그 손마저 낚아채 침대에 고정시켰다. 아버지는 자꾸만 고개를 돌리는 나이토의 얼굴을 고정하고서 차갑게 말했다.

“그 새끼 말 안 하면 너만 혼나. 그러고 싶어?”

눈물이 폭포처럼 계속 흘렀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준 건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그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면서 계속 누구랑 잤냐고 다그쳤다. 레이얀의 이름을 말하면 아버지가 레이얀을 죽일 것이다. 레이얀이 공작의 사생아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찾아내 숨통을 끊을 것 같았다. 나이토는 아버지에게 맞으면서도, 레이얀이 걱정되어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오들오들 떨며 울었다.

“마지막으로 묻겠어. 누구야.”

나이토는 그나마 남아있던 힘을 쥐어짰다. 그는 주먹을 쥐고 아버지의 뺨을 인정사정없이 때렸다. 아버지의 고개가 돌아가고 상체가 흔들렸다. 생각지도 않게 나이토에게 얻어맞은 아버지가 아주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이 완전히 변해있었다.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광기로 눈이 번들거렸다. 숲을 군림하는 야수같이, 안광이 번쩍였다.

겁이 안 난다면 거짓일 것이다. 다리는 계속 후들거렸으며 그에게 졸린 목은 심각하게 아팠다. 얻어맞은 뺨도 마찬가지였다. 머리는 둔기로 심하게 얻어맞은 것처럼 어지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토는 뒤로 물러날 수 없었다. 그의 미친 짓은 더 이상 받아주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알아서 뭐하실 건데요. 제가 아버지 애인이라도 돼요?”

아버지는 나이토의 말에 유지하던 미소를 지웠다. 그는 나이토를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응시했다. 나이토는 그의 밑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의 상체를 주먹으로 때렸으나 그가 손목을 강제로 침대에 눌렀다. 나이토의 행동을 저지한 그는 앞선 두 번의 목 조르기와 다르게 진심으로 목을 졸랐다.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목이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나이토는 헐떡거리며 그의 손목을 잡고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숨이 턱없이 부족해지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손목을 잡은 손에서 힘이 빠졌다. 눈도 감기기 시작했다. 나이토의 몸에서 힘이 빠지고 눈이 반쯤 뒤집힐 때쯤, 누군가 들어와 엘시를 잡았다.

“회장님!”

나이토는 급격하게 들어오는 공기에 목을 잡고 기침했다. 목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아팠다. 목을 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 온몸이 심한 감기에 걸린 사람처럼 떨렸다. 숨을 여유롭게 쉴 때가 되어서야 나이토는 마음을 놓고 엉엉 울 수 있었다. 눈물이 계속 후드득 떨어졌다. 이번에는 눈물을 닦아줄 사람도 없었다. 아버지는 우는 나이토를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볼 뿐, 달래주지 않았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시야에 갇힌 상태로 침대 위를 기어 구석진 곳으로 도망갔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아버지의 분노를 막은 사람은 현재 나이토를 경호하는 컨터였다. 컨터가 아버지의 양팔을 잡고 있었다. 세 번이나 목을 졸린 터라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나가라고 하고 싶었다. 나이토가 눈물을 흘리며 컨터를 구원자처럼 바라보자, 컨터가 마지못해 움직였다. 컨터가 아버지를 잡고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 아버지는 날렵하게 움직여 컨터를 주먹으로 갈겼다. 뼈와 뼈가 충돌하는 소리가 들렸다. 컨터도 아버지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그는 벌떡 일어나 아버지를 잡았다. 그는 나이토와 아버지 사이에 서서, 팔을 벌리고 아버지를 막아섰다.

“도련님에게 너무 과하십니다.”

“비켜. 너도 죽고 싶어?”

나긋하지만 명백한 분노에도 컨터가 꿋꿋하게 말했다.

“회장님. 도련님은 회장님의 친아들입니다.”

“알아. 내 아들이니까 내가 관리하는 거지.”

컨터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맞을 각오를 한 듯, 결의에 찬 얼굴로 당당히 말했다.

“정말 도련님이 죽길 바라십니까? 그것도 회장님 손에 말입니다.”

그의 말이 아버지에게 통했는지 아버지가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컨터 뒤에서 목을 잡은 채 우는 나이토를 보던 아버지는 뒤로 물러났다. 완전히 방에서 나가기 전, 아버지는 컨터에게 차갑게 말했다.

“집에 데려가. 의사도 부르고.”

아버지는 홀연히 사라졌다. 아버지가 가고 나서야 나이토는 긴장을 풀고, 침대에 스르르 쓰러졌다. 힘이 빠진 나이토를 받아준 사람은 컨터였다. 그는 사시나무처럼 떠는 나이토를 품에 안아주었다. 소리도 못 내고, 떨리는 손으로 옷자락을 잡고 우는 나이토가 안쓰러운지 그가 등을 토닥여주었다.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그것이 나이토가 들은 마지막 음성이었다.

*

더위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깼다. 성큼 다가온 여름은 지칠 줄 모르고 기세를 뽐내고 있었다. 걷지 않아도, 집에만 있어도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본래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은 나라인지라 이렇게 더운 적이 없었는데 올해는 유난히 더웠다. 에어컨을 켤까 고민하다가, 손을 멈췄다. 에어컨을 켜는 대신 수영을 결정했다. 나이토는 욕실로 걸어갔다.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던진 나이토는 샤워를 시작했다. 가볍게 씻은 후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집 밖으로 나갔다.

나이토는 수영장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적당히 기분 좋은 온도의 물이 자신을 반겼다. 수영선수처럼 군더더기 없는 자세로 수영을 몇 차례 즐긴 나이토는 쏟아져 내려오는 햇빛에 인상을 썼다. 햇빛이 너무 강했다. 마치 레이얀의 금발처럼 눈부신 황금색으로 빛나서, 뜨거운 열에도 불구하고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이토는 수영장에 발만 담근 채, 수면 위에 둥둥 떠다니는 햇빛을 감상했다.

‘넌 내 인생에서 최고의 선물이야, 나이.’

레이얀이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속삭였었다. 그때가 언제였는지 머리를 굴리는데, 문득 발을 첨벙거리다가 그때가 언젠지 기억했다. 레이얀이 수도로 올라온 지 얼마 안 됐던 시기였다. 레이얀이 수도에 올라왔다는 소식에 기분이 좋아서 아버지에게 한참을 졸라 허락을 받아내고, 그를 보러 역까지 뛰어갔다. 알토도 함께였다. 1년 만에 만난 레이얀은 부쩍 큰 상태였다. 옷도 고급스럽게 변해있어서, 처음 봤을 때 레이얀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나이토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만남의 장소에서 헤맬 때, 레이얀이 먼저 그를 알아보았다. 레이얀은 장난스럽게 나이토의 눈을 가리고 뒤에서 장난을 쳤다. 나이토가 손을 빼내고 뒤를 돌아보며 웃자, 레이얀도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만난 둘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레이얀이었다. 단순한 우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얀을 볼 때면, 하반신이 아파 왔다.

사랑이라고 자각할 때쯤, 레이얀이 갑작스레 그런 고백을 해온 것이다. 고백에 가슴이 떨렸다. 나이토가 얼굴을 붉힌 상태로 아무 말도 못 하자, 레이얀은 웃으면서 나이토를 다독여주었다. 그 후, 서로의 마음을 차근차근 알아갔다. 동네 옆집 친구에서, 절친한 친구에서, 드디어 연인까지 이어진 것이다.

레이얀 조드릭을 사랑한다고 알아챈 나이토는 그의 앞에서 수줍게 고백했다.

‘사귀지 않을래?’

황혼이 여물어가던 시간이었다. 타들어 가는 주홍빛 아래에서 레이얀은 나이토를 끌어안았다. 나이토는 품 안 가득 들어오는 레이얀의 온기에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 말을 기다렸어.’

레이얀의 긍정에 나이토는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서 키스했다. 16살 다운 서툰 키스였다. 그래도 사랑만은 누구보다 두터웠다. 어설픈 키스를 마친 나이토는 레이얀의 손에 반지를 올려주었다. 용돈을 모아서 산 반지였다. 레이얀은 감동을 먹고 눈물까지 글썽였다.

‘고마워.’

그랬던 적이 있었다. 설레고, 행복하고, 기쁘고.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랑. 그런 사랑을 레이얀과 나누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심하게 목이 졸린 그 날 이후, 나이토는 한 달 내내 앓았다. 의사는 스트레스로 인한 병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아버지는 나이토가 며칠 정신 차리지 못하고, 말도 못한 채 침대에만 누워있자 정신을 차렸는지 나이토에게 웬만해서 손을 대지 않았다. 매일 찾아와 얼굴을 보거나, 나이토의 뺨을 만지는 게 고작이었다. 나이토가 말을 할 수 있게 된 건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그것도 쇳소리가 낀 것처럼 탁한 목소리만 나왔다. 아픈 탓에 학교는 물론, 외출도 일체 못하게 되었다. 나이토가 할 수 있는 일은 누워서 잠자고, 밥 먹고, 심심하면 태블릿 PC나 만지작거리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조금씩 나이토의 몸이 나아지자 학교에 가는 걸 허락했다. 한결 유해진 그의 반응에 나이토는 용기를 내서 주말 외출을 허락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단칼에 잘랐다. 몸이 약해졌으니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이토는 그의 반응에 백기를 들었다. 물론 겉으로 보여주는 포기였다. 그는 아직도 가출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레이얀, 아인과 메일이나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탈출 경로를 열심히 계획하고 있었다.

“도련님.”

발만 수영장에 담그고서 첨벙거리던 걸 지켜보던 컨터가 나이토를 불렀다. 나이토가 물끄러미 컨터를 보자, 컨터가 다가와서 나이토의 젖은 몸에 수건을 덮어주었다. 종종 나이토가 젖은 몸으로 나오면 컨터는 대기하다가 커다란 수건으로 그를 감싸주었다. 수건을 바짝 끌어당겨 상체를 완전히 가린 나이토가 물었다.

“아버지는?”

“조드릭 공작님께 가셨습니다.”

익숙한 성에 나이토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글쎄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조드릭 공작님께서 먼저 부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굳은 얼굴로 수영장 수면을 보던 나이토가 몸을 일으켰다. 수건을 꼭 잡은 채 집 안으로 들어섰다. 적당히 시원해진 내부가 마음에 들었다. 나이토는 넓은 소파에 나른하게 앉았다. 옷을 갈아입어야 했으나 몸이 노곤해서 움직일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할 말 있어?”

나이토가 되물었다. 컨터는 말없이 옷을 가져왔다.

“옷은 입으셔야죠.”

“내가 알아서 해. 신경 꺼.”

그에게 가라고 명령하자, 컨터가 말 잘 듣는 개처럼 물러났다. 그가 부엌에서 나간 뒤에야 편하게 쉴 수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못 해주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잘 대해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잘해줘도 그는 아버지의 사람이었다. 그에게 빈틈을 보여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컨터가 건네주고 간 옷을 입고 나서 게임방으로 걸어갔다. 게임을 좋아하는 나이토의 성격을 알고, 아버지가 만들어준 방이었다. 최신 컴퓨터, 랩 탑, 게임기, 최신 게임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나이토는 랩 탑 전원을 눌렀다.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서 아인이 만들어준 휴대전화로 레이얀과 메신저를 나누었다.

[몸은 괜찮아?]

매일 묻는 안부에 픽 웃음이 나왔다.

[괜찮아. 너는?]

빠르게 키패드를 치는데 그새 메신저가 왔다.

[졸업식은 안 가?]

나이토는 고민에 빠졌다. 레이얀이 졸업식에 오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가 왔으면 하지만, 괜히 와서 아버지에게 화를 입을까 무서웠다. 나이토는 [오지 마.]라고 보냈다. 레이얀이 우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키득거리며 웃은 나이토가 키패드를 눌렀다.

[졸업식은 갈 거야. 끝나고 잠깐 교문 앞에서 만나자. 친구인 척하고서.]

[괜찮겠어?]

아버지에게 맞아서 아프다고 알고 있는 레이얀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이토는 [걱정 마.]라고 쳤다. 컨터가 부르는 소리에 레이얀은 휴대전화를 숨겨두었다. 문밖으로 나가자, 컨터가 케이크를 들고 있는 게 보였다. 나이토가 당황해서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컨터가 부엌으로 걸어갔다. 그는 케이크 상자에서 케이크를 꺼내 초까지 꽂았다.

“이게 뭐야?”

“도련님 생일파티 때 못 와서 미안하다면서, 이엘리 씨가 주고 가셨습니다.”

나이토의 손이 멈칫했다. 아버지의 허락 없이 선물도 오갈 수 없는 집이었다. 나이토가 받아도 되는 건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는데 컨터는 딱히 별다른 말이 없었다. 컨터는 소담스러운 편지를 내밀었다.

“이엘리 씨의 편지입니다.”

“아, 응.”

나이토는 케이크에 신경 쓰지 않았다. 컨터가 묵묵히 초에 불을 붙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가 촛불을 끄라고 말하고 나서야 촛불을 끄고, 건성으로 케이크를 먹었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이엘리의 편지에 꽂혀있었다.

[안녕, 나이토. 스무 살 생일 축하해! 너무 늦게 보내서 미안해. 20번째 생일 진심으로 축하하고 언제나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랄게. 건강해. - 이엘리]

아버지에게 목이 졸린 시점을 기점으로 해서, 벌써 여름이었다. 졸업식까지 2주 정도 남았다. 나이토는 새삼 빠르게 흐른 시간에 정신을 차렸다. 가출 계획을 미처 다 짜지 못했다. 나이토는 케이크를 쪼개듯이 잘라 입에 넣었다. 넣자마자 녹아내리는 케이크에 깜짝 놀랐다. 꽤 맛있었다. 달달한 케이크 맛에 반해 허겁지겁 케이크를 먹었다. 무심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컨터가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

“회장님께서 졸업식에 참석 못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예. 그때가 알토 도련님 해외 연수가 겹쳐서 같이 가셔야 한다고…….”

나이토는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부딪히는 소리에 컨터가 살짝 놀란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해외 연수?”

“예. 알토 도련님께서 부탁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부탁할 때는 안 된다고 하셨잖아.”

컨터는 말이 없었다. 나이토는 한숨을 내쉬며 식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신을 부르는 컨터를 무시하고 침실로 올라갔다. 침실 문을 잠갔다. 침대에 풀썩 쓰러져 누운 나이토는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

아버지는 주기적으로 집을 비우는 편이었다. 주로 출장이 이유였는데 이번에는 알토의 해외 연수라는 게 의외였다. 하긴, 자신은 아무것도 안 돼도 알토는 되도록 모든 것을 해주는 아버지였다. 멍하니 천장을 보던 나이토는 눈을 감고 몸을 옆으로 돌렸다. 태아처럼 몸을 웅크린 채,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완벽한 가출을 하리라.

*

나이토가 며칠을 밤새워 짠 계획은 단순했다. 아버지가 알토를 데리고 출국한다. 그러면 바로 나가지 않고, 이틀 정도 시간을 둔다. 짐을 치우러 학교에 가야 한다고 말하고, 컨터와 학교로 간다. 컨터에게 고맙다며 수면제가 든 커피를 건넨다. 컨터가 쓰러져서 잠들면 운전기사나 뒤따르는 경호원이 당황할 것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옷을 갈아입고서 후문으로 나간다. 레이얀이나 아인이 대기를 하면, 그들과 함께 비요드 항구로 간다. 물론 비요드 항구로 가기 전까지, 옷차림은 바꿀 생각이었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걸음걸이도, 허리 자세도, 모든 걸 바꿔서 이동할 계획이었다. 비요드 항구까지 가서 급매로 신분을 두 개 산다. 그다음에 가장 빠른 배를 타고, 쿤잔 섬으로 이동한다. 쿤잔 섬에서 섬에서, 섬으로 옮겨 다닌다. 그러다가 여권이 완성되면 다른 항구로 이동해 섬나라로 가는 배를 탄다.

모든 계획은 자신의 머리에 넣어두었다. 레이얀에게는 약속한 날짜와 시간에 후문에서 대기하라는 문자를 남겼다. 계획은 그날 알려주겠다고 보냈다.

“기분이 좋아 보여.”

아버지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빵을 입에 넣은 아버지는 입을 우물거리며 나이토만 보았다. 나이토는 아버지를 보며 피식 웃었다. 대답하지 않고 수프를 한 숟갈 떴다. 천천히 수프를 음미했다. 가볍게 빵을 다 먹은 아버지는 요리사가 가져다준 돼지 통구이를 자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요리사가 잘라주려다가 아버지가 칼을 뺏어가자 당황하지 않고 물러났다. 아버지에 손에 들린 칼이 살인 무기처럼 위협적으로 번뜩였으나,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고기를 자르는 순간 분위기는 급속도로 바뀌었다. 노래가 은은하게 흐르는 듯한 착각이 느껴졌다. 아버지는 가장 먼저 나이토에게 가장 크고 맛있는 부위를 주었다. 알토에게도 고기를 잘라 건네준 아버지가 의자에 천천히 앉으며 물었다.

“몸은 어때? 괜찮아?”

목소리가 버터 바른 빵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워서 귀가 간질거렸다. 나이토는 헛기침을 하며 중얼거렸다.

“네.”

나이토는 아버지가 올려준 돼지고기를 포크로 쿡쿡 찔렀다. 목이 아픈 이후로 고기를 잘 먹지 못했다. 부드러운 음식만 먹다가 완벽히 다 낫고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고기를 좋아하는 나이토가 자신 때문에 고기를 못 먹게 된 게 미안했는지, 그날 이후로 고기를 매일 대령했다. 덕분에 고기가 질리고 있었다. 고기만 봐도 입이 거부했다. 그러나 가출하기 전까진 아버지에게 순종적으로 보여야 했기에, 나이토는 묵묵히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고기를 잘라 입에 넣었다. 맛있긴 맛있었다. 물리는 탓에 몇 번 먹다가 포크를 식탁에 올려두었다.

“나이토.”

“네.”

아버지가 자기 몫의 고기를 자르며 나이토를 불렀다. 나이토는 대답을 했지만, 아버지를 보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를 볼 때면, 그때 자신의 목을 조르던 얼굴이 떠올라 등 뒤가 서늘해졌다. 다 나은 목도 따끔따끔거리는 착각이 들어서 차라리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토가 아무리 강단 있게 버틴다 해도, 아버지의 물리적인 힘을 이길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멱살을 잡아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나이토가 아버지를 노려보며 밀어내려고 손을 올리는데, 아버지가 그 손목을 잡아당겼다.

“이제 아예 말 안 들을 생각이야?”

아버지가 웃음 띤 얼굴로 능청맞게 물었다. 나이토는 아버지를 죽일 듯이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한 짓을 생각해보세요. 말하고 싶겠어요?”

“잘못은 네가 먼저 했잖아. 연애하지 말라고 했던 거, 기억 안 나?”

아버지가 멱살을 놔주면서 그때 졸랐던 목을 매만졌다. 손길이 닿는 것만으로 가슴이 전력 질주한 것처럼 뛰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목을 잡았다.

순간, 아버지의 눈이 살짝 커졌으나 나이토는 고개를 숙인 터라 보지 못했다. 나이토는 단호하게 아버지를 밀어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버지는 어느새 흥미진진한 눈빛을 보내며 웃었다. 그의 미소에 화가 울컥 솟았으나, 밥을 먹으며 눈치를 살피는 알토를 보자 화를 낼 수 없었다.

“…연애가 아닐 수도 있죠. 섹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알토가 듣지 못하게, 은밀하게 속삭였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대답이 귀여웠는지, 입술 끝을 비틀어 웃었다. 계속해보라는 듯, 나이토의 뒷목을 잡아 자신 쪽으로 바짝 당겼다. 아버지에게 안길 것 같은 아슬아슬한 분위기에 나이토가 아버지의 넓은 어깨를 잡았다. 나이토가 숨을 멈추고 불안한 시선으로 보자, 아버지가 뺨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그렇지. 섹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건데….”

아버지는 아프지 않을 정도로, 나이토의 뺨을 툭툭 건드리며 덧붙였다.

“아빠는 화가 나.”

뒷목을 잡은 손이 올라와 머리를 슬슬 쓰다듬었다. 머리채를 잡는 줄 알고 긴장했던 나이토는 안도의 숨을 터트렸다. 아버지가 피식 웃으며, 나이토를 품에 끌어안고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 없는 동안 몸 함부로 굴리지 마.”

바람난 연인을 단속하는 듯한 말에 깜짝 놀라 아버지를 밀어냈다. 나이토의 얼굴이 붉었다. 그 말을 알토도 들었는지, 포크를 떨구고서 당황하고 있었다. 새빨갛게 변한 얼굴을 손으로 가린 나이토가 식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무슨….”

“다시 말해줘?”

아버지가 태연하게 되물었다. 나이토는 황급히 알토를 보았다. 알토가 입을 벙긋거리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고기를 먹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감정에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아버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왜 저한테만 그러시는 데요?”

아버지는 충동적인 질문에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네가 생각해.”

“전 도저히 모르겠어요.”

나이토가 답답함을 토로하는데, 아버지는 보란 듯이 나이토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버지 허벅지 위였다. 당황한 나이토가 일어나려 하는데도, 아버지가 허리를 잡고 놔주지 않았다. 나이토의 얼굴이 어이없다는 듯 굳어가자, 아버지는 슬쩍 웃으며 말했다.

“네 머리로 생각해 봐. 내가 왜 너한테만 이러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상체에서 벗어났다. 아버지는 붙잡지 않았다. 아버지를 피해 나이토는 집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집에 와도, 아버지의 잔향과 체온이 온몸에 들러붙어 사라지지 않았다.

응어리가 잔뜩 배인 한숨을 터트린 나이토는 침대에 누워 몸을 웅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귀를 양손으로 감싸고서 몸을 태아처럼 말았다. 속이 답답해서 당장에라도 집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도망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심지어 이 집도 아버지의 것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어두운 이불 속에 자신을 감춘 나이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끝이 없는 미로를 달리는 비참한 기분이었다. 마치 14살, 어머니를 잃고 살기 위해 아버지에게 가던 그때 같았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막막한 기분이었다. 그때는 아버지라는 답이 있었으나, 지금은 아버지라는 답도 존재하지 않았다.

‘네가 생각해 봐.’

힘이 깃든 목소리가 정신을 지배하고 놔주지 않았다. 머리가 아득해졌다.

*

아버지가 알토를 데리고 해외로 떠났다는 소식이 들리자, 마음을 차지하던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옅어졌다. 우선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편해졌다. 나이토는 평범한 하루를 이어갔다. 아침을 먹고, 학교에 다녀오고, 집에서는 레이얀과 메신저로 연애를 하고. 졸업이 얼마 안 남은 시점이라 공부에 그다지 신경 쓸 필요가 없어, 남은 시간은 게임에 열중했다. 머리가 복잡할 때, 게임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드디어 끝이라는 문구가 화면에 떠올랐다. 의자에 나른하게 앉아, 쥐고 있던 패드를 내려놓았다. 끝, 이라는 단어를 소리 없이 중얼거리며 천장을 보았다. 아버지와 이런 생활도 언젠가 끝이 날 것이다. 언제나 자신의 삶을 마음대로 주무르던 아버지였지만, 이번만큼 ‘끝’이라는 장막을 내리는 건 자신이 되고 싶었다. 정말 끝을 내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 할 시간도 오고 있었다.

‘네가 생각해.’

귓가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음성 때문에 아버지가 이 집 안에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럴 리 없는데. 나이토는 귀를 만졌다. 착각이 아닌 걸까. 뚜벅뚜벅, 구두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구두가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나이토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붙잡으며 고개를 돌아보았다. 아버지가 온 걸까.

하지만 아버지라면… 멍하니 생각하던 나이토는 문이 열리는 걸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버지가 아니라, 정장을 반듯하게 차려입은 레이얀이 서 있었다.

“나이토.”

환상이 아니었다. 레이얀이 다정한 목소리로 나이토를 부르며 한 걸음 다가왔다.

“레이얀?”

나이토가 이름을 부르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레이얀이 슬쩍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아버지가 차 밖에서 손을 내밀 때는 머뭇거리면서도 잡았지만, 지금은 레이얀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레이얀의 등 뒤에 컨터가 있었다. 초여름 햇살 같이 반짝거리는 레이얀의 외모에 정신이 팔려 컨터가 있는지 몰랐다. 당황한 나이토가 컨터를 지그시 바라보자, 컨터가 무뚝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조드릭 공작가 일로 대신 오셨습니다. 도련님이 아프신 걸 알고서 얼굴을 잠시 보고 싶다고 부탁하셔서, 제가 모시고 왔습니다. 회장님께서도 잠시라면 괜찮다고 허락하셨습니다.”

“미안하지만, 잠깐 자리 좀 비켜주겠어?”

레이얀이 공작의 아들답게 위엄을 갖추고서 컨터에게 부탁했다. 명령에 가까운 요청이었다. 컨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나이토는 레이얀의 손목을 잡고, 침실로 이끌었다. 문을 닫자마자 레이얀이 나이토를 끌어안고 급하게 키스했다. 얼굴 이곳저곳을 탐하는 레이얀의 입술에 나이토는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 날 이후로 처음 만나는 레이얀이었다. 아버지의 감시가 두려워 만날 수 없었다.

이렇게 갑자기 만나게 되니 정말로 반가웠다. 감격스러웠다. 나이토는 떨리는 손으로 레이얀의 얼굴을 만졌다. 레이얀이 나이토의 손등에 짧게 키스하며 웃었다. 레이얀의 쾌활한 미소에 나이토도 그제야 마음이 풀렸는지 해맑게 웃었다.

“보고 싶었어.”

“나도.”

“몸은 괜찮아? 그때 밖에서 다 들었어. 많이 맞은 거 같아서 엄청 걱정했다고.”

레이얀의 풀 죽은 목소리에 나이토는 키득거렸다. 그는 장난스럽게 레이얀의 엉덩이를 꽉 잡았다.

“나랑 한 번 하고 헤어져서 슬펐던 건 아니고?”

“내가 그렇게 발정 난 사람으로 보여?”

둘은 대화를 마치고서 깊은 키스를 했다. 레이얀의 입술을 맛보면서 그의 가슴팍도 만졌다.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다. 키스를 하는데, 계속 참고 있었던 성욕이 불타올랐다. 그의 손에서 사정하고 싶었다. 레이얀이 알아챘는지 손을 내려 나이토의 성기를 잡았다. 잡은 것만으로도 사정을 할 것 같았다. 나이토가 신음을 야하게 흘리며 매달리자, 레이얀이 그를 침대에 앉혔다. 나이토는 애무하려는 손을 저지했다.

“안 돼. 집이잖아. 아버지가 뭐라고 할 거야.”

“너희 아버지 해외 가셨잖아.”

능글맞은 말에 나이토는 눈을 크게 떴다.

“다 아는 방법이 있지. 걱정 마. 아버지 안 계시잖아. 삽입도 안 하고, 키스 정도로만 끝날 텐데….”

레이얀은 아버지가 없으니 괜찮다고 그를 달랬다. 그래도 뭔가 불안했다. 하고 싶지만, 무서움에 마음이 움찔거렸다. 나이토는 줄곧 문을 보면서 떨었다. 결국 레이얀의 손을 밀어냈다. 레이얀은 아버지에 대해 모르고, 자신은 아버지에 대해 잘 안다. 이 불안감도, 예감도 레이얀은 모른다.

“안 돼, 레이얀. 아버지가 없어도 컨터가 있어.”

“그가 날 여기로 들여보내 줬어.”

그가 누군지, 허락을 해준 이가 누군지 안다. 레이얀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어도 불안함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도, 난…….”

나이토는 계속 머뭇거렸다. 본래 나이토의 집은 아버지의 허락 없이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아버지가 없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왜 허락을 해주었을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언제나 안 된다고 하는 아버지였는데… 나이토는 레이얀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했다. 그를 여기에 두어서는 안 된다. 나이토가 레이얀을 불안하게 떨리는 눈으로 보는데, 레이얀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미소 지었다. 그 미소 뒤로, 환한 빛이 보였다. 나이토는 레이얀의 등 뒤로 보이는 길고 탄탄한 상체에 눈을 크게 떴다.

나이토의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나이토는 익숙한 형체에 몸을 굳혔다. 레이얀도 점차 굳어지는 나이토의 표정에 심상치 않을 것을 감지하고 고개를 돌렸다. 레이얀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아버지가 발로 레이얀의 얼굴을 후려쳤다. 마치 수박 깨지는 듯한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나이토가 안 된다고 소리치며 아버지를 말리려 했지만 아버지는 나이토를 가볍게 밀쳤다. 이번에는 컨터가 들어와 나이토를 등 뒤에서 잡았다.

“컨터!”

컨터가 나이토의 손을 비틀어 등 뒤로 모았다. 전문 경호원인 컨터를 나이토가 이길 수 없었다. 나이토가 괘씸함을 못 이기고 크게 소리치자, 컨터가 그다운 묵직한 목소리로 담담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거 놔! 컨터! 놓으라고!”

“죄송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자신을 돌봐주는 척, 다정하게 봐주는 척하던 컨터도 결국 아버지의 사람이었다. 그를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그가 유일하게 이 집 안에서 지켜주던 사람이라 믿고 말았다. 나이토는 컨터에게 붙잡혀, 아버지에게 속수무책으로 얻어맞는 레이얀을 보았다. 레이얀이 그동안 배운 실력으로 아버지에게 반항해보아도, 아버지의 힘 앞에선 어린애 수준이었다. 아버지는 레이얀의 멱살을 잡고 벽에 밀쳤다. 레이얀의 예쁘던 얼굴이 멍들고, 코피가 흘러 처참하게 변해있었다. 아버지는 레이얀의 목을 조를 것처럼 멱살을 세게 잡았다. 레이얀이 괴로움에 발을 움직이자, 아버지가 가만히 있으라는 듯 레이얀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악!”

레이얀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나이토는 컨터에게 무력하게 잡힌 채로, 아버지에게 애원했다.

“제발, 제발 그만하세요! 레이얀한테 그러지 마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아버지가 웃는 얼굴로 나이토를 돌아보았다. 그는 공포에 떠는 나이토를 보더니, 레이얀의 목을 팔뚝으로 눌렀다. 아버지는 레이얀의 손목을 부러뜨릴 것처럼 비틀어 잡으며 말했다.

“감히 내 아들 좆을 만져?”

나이토는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저질적인 말에 깜짝 놀랐다. 나이토가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리자, 컨터는 아예 작정한 듯 나이토를 침대에 눕히고 팔을 재빨리 등 뒤로 모아 묶었다. 팔이 묶인 나이토를 본 레이얀이 “나이!”하고 불렀다. 아버지는 둘을 번갈아 가며 보고서 나직하게 웃었다. 우아하게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가 소름 끼쳤다. 나이토는 연신 아버지를 부르며 애절하게 부탁했다.

“아버지, 제발. 레이얀은 잘못 없어요.”

“잘못이 없다고?”

아버지가 짧게 픽, 하고 웃더니 레이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내 아들하고 섹스를 한 것 자체가 잘못이지.”

“아니에요, 아버지! 그 날 저랑 잔 사람은 레이얀이 아니라…….”

“거짓말하지 마.”

아버지는 아니라고 부정하는 나이토에게 쐐기를 박았다. 그는 맞아서 눈만 간신히 뜨는 레이얀의 멱살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미련 없이 레이얀을 계단 아래로 던졌다. 레이얀의 몸이 이리저리 공처럼 굴러 1층 바닥에 널브러졌다. 계단 모서리에 레이얀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은 나이토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애타게 말했다. 눈물이 글썽거리는 애처로운 얼굴을 본 아버지가 눈웃음을 슬슬 지었다.

“저, 저한테만 그러면 되잖아요. 왜 레이얀한테 그러시는 거예요!”

“지금 그것도 짜증 나. 고분고분한 것도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는 거. 지금 저 새끼 살리려고 나한테 이러는 거잖아. 안 그래?”

아버지가 나이토의 턱을 꽉 잡고 흔들었다. 턱이 얼얼하게 아팠다. 아버지는 뒤에서 나이토를 잡고 있는 컨터에게, 나가라고 명령했다. 컨터가 나가기 전, 아버지는 나이토를 등 뒤에서 꼭 안은 자세로 말했다. 나이토는 절망적인 눈으로 컨터의 얼굴을 보았다. 컨터는 동요 없이 서 있었다.

“저 도련님은 치료해서 내보내.”

“예.”

아버지와 단둘이 남게 된 나이토는 아버지가 레이얀을 건들까 봐 무서워서 떨었다. 떨고 싶지 않아도 몸이 계속 떨렸다. 아버지는 뒤에서 나이토를 부드럽게 안고 서서,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가 잡은 것은 레이얀이 만졌던 나이토의 성기였다. 면바지라서 쉽게 잡혔다. 나이토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창백하게 질린 나이토의 뺨에 짧게 키스를 하며 너무나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 확인해봐야겠어.”

나이토는 아버지가 하려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흐느껴 울며 부탁했다. 울고 싶지 않아도 눈물이 흐르고, 목소리가 겁먹은 사람처럼 떨렸다.

“하지 마세요, 아버지.”

아버지의 손이 면바지 안으로 들어왔다. 정말 쉽게 면바지가 벗겨졌다. 아버지는 팬티 안으로 손을 넣어, 공포에 오그라든 성기를 잡았다. 그 순간 소름이 온몸에 돋았다. 나이토가 고개를 흔들며 저항했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괜찮아. 확인만 하는 거니까.”

거짓말이었다. 아버지의 목소리에 흥분이 넘실거렸다. 나이토는 서러움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드디어 아버지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은 나이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친아버지가 친아들에게 성욕을 느끼는 자체가 비윤리적이었다. 자신은 아버지와 섹스할 수 없었다. 나이토는 자신이라도 이성을 차리려 했다. 아버지를 돌아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이런 건, 안 돼. 하면 안 되는 짓이에요.”

“왜 하면 안 되는 거지?”

아버지가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그는 나이토의 성기를 잡고 귀두를 매만졌다. 아버지는 어딜 만지면 흥분하는지 잘 아는 사람처럼, 성기를 빠르게 훑고 강약을 조절하며 어루만졌다. 고환까지 둥글게 만져주는 손길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신음이 가늘게 나왔다. 아버지의 손에서 성기가 착실하게 발기하고 있었다. 직립하는 성기를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아버지의 손이 자극하는 부위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성을 차리는 머리가 우스운지, 몸이 쾌락에 전율하고 있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강한 쾌감이었다. 발끝이 움찔거렸다. 볼이 서서히 붉어 오고, 입이 벌어지며 신음이 나왔다. 나이토가 바들바들 떨며 흥분을 참으려 하자 그는 웃음을 터트리며 더 세게 잡았다. 배 안에 고였던 쾌락이 분수처럼 터질 것 같았다.

“하앗!”

도도하던 눈매가 일그러지며, 눈물이 붉은 뺨을 타고 흘렀다. 속눈썹에 매달린 눈물이 이슬처럼 청초하게 느껴졌다. 당장에라도 빨고 싶은 입술이 타액에 범벅이 되어 떨렸다. 입술 바깥으로 붉은 혀가 애타게 움직였다. 단순한 움직임인데도, 야했다.

“여러 번 돌려봤지. 네가 자위하는 모습.”

뒷목이 싸늘해졌다. 검푸른 눈이 경악에 확장되었다. 아버지는 반항하는 나이토를 침대에 눕혔다. 두 손이 등 뒤로 결박당한 상태라 혼자 일어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체모가 거의 없는 날씬한 나이토의 다리를 벌렸다. 그가 나이토의 성기를 만지며 느긋하게 숨을 내뱉었다. 나이토는 입술을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자각하지 않으려 해도, 아버지의 부드러운 손이 성기에 닿을 때마다 생생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 날 이후로 얼마나 미쳤는지 넌 몰랐을 거야. 종일 그 생각만 났어. 내 아들이 누구랑 했을까? 찾아내서 죽여 버릴까? 그 새끼가 보는 앞에서 섹스를 할까…네가 누구의 아들인지 보여줘야 할 거 같았거든.”

그는 창백하게 질려가는 나이토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고개를 숙여 아들의 입술을 덮쳤다. 나이토가 고개를 틀어 피하려 하자, 억지로 고정시키고 연신 깨물고 핥았다. 나이토는 집요하게 파고드는 아버지의 혀를 참지 못하고 물었다. 혀가 물린 아버지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는 인상을 쓰더니 노려보는 나이토를 보고선 웃었다. 그는 다정하게 나이토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었다. 그러나 화를 참지 못하겠는지, 머리채를 꽉 잡아 침대에 눌렀다. 나이토는 머리카락이 뜯기는 듯한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어떻게 알았냐고? 이 집을 주면서 카메라를 다 설치했어. 네가 자위하는 것도 보고 싶었어.”

“미쳤어?”

나이토가 욕설을 내뱉었다.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이며 유려하게 웃었다. 그는 아직도 옅은 희망을 붙잡고 있는 나이토의 턱을 잡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이제 알았어? 난 아들이랑 섹스하고 싶어.”

“…아들인데도?”

정말 제대로 미친 아버지를 보며 나이토가 물었다. 제발,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이토의 입술을 음란한 의도를 담고 만지며 중얼거렸다.

“아들이니, 아버지니…겨우 그 이유 때문이라니, 시시하잖아. 아버지 좆을 뒤에 넣고 싸는 아들이라…. 생각만 해도 좋은데. 물론, 너도 그렇게 될 거야.”

“이거 풀어, 당장.”

“그럼 넌 가만히 있어. 나만 할 테니까.”

깔끔하게 나이토의 협박을 묵살한 그가 일어서서 정장을 벗었다. 정장을 벗을 때 드러나는 위압적인 근육에 나이토가 마른 침을 삼켰다. 무서웠다.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일어나보려 했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몸이 공포에 잠식된 듯 의지를 벗어나고 있었다. 옷을 다 벗은 그는 나이토를 커다란 침대 가운데에 눕혔다. 나이토의 머리 옆에 손을 짚은 그가 나이토의 유두를 손으로 비틀면서 말했다. 나이토는 아릿한 통증에 다리를 움직였다.

“애초에 침실을 크게 만든 것도, 침대를 이런 걸 산 것도 다 이런 용도를 위해서였어.”

“흐읏…아, 안 돼…싫어…!”

아버지의 손이 성기를 덥석 잡았다. 그는 위아래로 흔들어 흥분을 유도했다. 아버지의 손과 자신의 성기가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찌걱, 찌걱, 하는 젖은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듣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고개를 강제로 돌리게 했다. 어머니인 얀을 닮아 선이 곱고 잘생긴 아들의 얼굴을 감탄하며 보았다. 절대 뜨지 않겠다는 의지로 감긴 눈에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 엉엉 우는 게 보고 싶었다. 아들은 웃는 것보다 우는 게 잘 어울렸다.

그는 아들의 입술을 엄지로 눌렀다. 나이토는 벌어진 입술 사이로 손가락이 들어오자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졸업식은 보내주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서 안타까워.”

그는 나이토가 손가락을 억세게 물기 전에 빼냈다. 그는 나이토의 다리를 벌렸다. 밝은 대낮에 범해질 위기에 처했다. 나이토는 어떻게든 아버지를 막고자 다리로 그를 밀려 했지만, 그가 다리를 활짝 벌려 베개에 닿을 정도로 누르는 탓에 그것도 못했다. 다리를 활짝 벌리게 한 뒤, 그는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아버지는 뻑뻑함에 인상을 찌푸렸고, 나이토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아파…아파요….”

나이토가 울먹거렸다. 고작 하나인데, 식은땀이 흘렀다. 온몸의 신경이 다 아래로 쏠린 듯, 그곳에서만 감각이 느껴졌다. 아버지의 시선이 회음부에 닿았다. 두툼하고 긴 손가락을 오물오물 삼키는 구멍을 감상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여기는 아빠가 처음이야?”

손가락을 하나 더 넣었다. 누군가 침입한 적 없던 구멍에 생소한 손가락 두 개가 들어오자, 이질적인 감각과 고통이 뒤를 이었다. 나이토는 아찔한 통증에 처음으로 애절하게 부탁했다. 그가 그만두기만 한다면, 앞으로 아버지 말을 얌전히 들으며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아버지는 점점 커지는 울음소리에 나이토를 물끄러미 보았다. 땀에 젖은 검은 머리카락과 붉게 달아오른 뺨, 색색거리는 숨과 울음을 뱉어내는 붉은 입술. 그중에서도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는 검푸른 눈이 가장 예뻤다. 밤하늘 아래에 펼쳐진 바다 같은 아름다운 눈이었다. 그 눈에 빗물이 고인 듯, 눈물이 한가득이었다. 나이토는 아버지가 홀린 듯 자신을 보자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제발, 제발, 부탁이야. 하지 말아줘… 제발….”

타인이 들어도 애절하고, 안쓰러운 목소리였다. 서럽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매달리는 나이토를 물끄러미 보던 아버지가 말했다.

“혹시 모르지, 아들. 네가 날 만족시켜서 너에게 자유를 줄지도. 그러니까 참아봐.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마음에 들면 자유롭게 해줄 테니까.”

“아들 상대로, 그런 조건을 거는 게 이상한 거야. 지금이라도 그만해.”

나이토가 그나마 이성적으로 대하려고 하는데도 아버지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나이토의 다리를 내려놓고서, 삽입에 도움이 되는 물건을 가지고 왔다. 나이토가 사용하는 바디 오일이었다. 오일을 손에 듬뿍 바른 아버지는 반항하는 나이토를 엎드리게 했다. 상체를 눕히고, 엉덩이만 들게 한 다음 손가락 두 개를 거침없이 밀어 넣었다. 두 개만 느리게 움직이며 구멍을 확장시켰다. 너무 좁은 구멍이었기에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아버지는 짧게 혀를 차며 세 번째 손가락을 넣으려 했다. 나이토가 입구를 더듬으며 또 들어오는 손가락에 울음을 왈칵 터트렸다.

“아파. 제발…아!”

“참아.”

냉정하게 대답한 아버지가 결국 세 번째 손가락을 넣었다. 밑이 꽉 차고, 찢어질 것 같은 느낌에 숨이 막혔다. 참기 힘들었다. 아버지는 흐느껴 우는 나이토의 뒷목을 잡고 누른 상태로 손가락 세 개를 계속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궁금하겠군. 내가 그 날 네가 거기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파티에 가자마자 내 부하들을 곳곳에 보내놨어. 혹시라도 뭔가 수상한 낌새가 있으면 바로 보고할 수 있게 말이야.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네가 관계를 위한 방으로 들어간 걸 내 부하가 목격한 거야. 불행하게도 그 앞에 들어간 사람은 보지 못했고.”

아버지의 설명이 들리지 않았다. 밑이 너무 아프고, 쓰리고, 아릿했다. 쾌감은 결코 느낄 수 없었다. 구멍이 나무토막같이 단단하고 긴 손가락에 따라 벌어지는 감각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으읏, 아, 아파…아파.”

그는 적당히 벌어지는 구멍을 보고서 손가락을 빼냈다. 그가 흥분한 성기에 오일을 발랐다. 발기한 성기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바게트같이 길고, 두툼한 성기였다. 흉기나 다름없는 성기를 입구에 느리게 비볐다. 입구 아래에 고환에 미끈거리는 귀두가 닿았다. 느끼고 싶지 않은 날 것의 느낌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나이토의 허벅지가 두려움에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다리를 더 넓게 벌리게 한 뒤 귀두만 슬쩍 넣었다. 그러나 그 배려는 무의미했다. 좁은 구멍은 부푼 귀두를 삼키기는 것 자체가 버거웠다.

“흐…!”

나이토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는 게 보였다. 아버지는 겹쳐진 채 묶인 아들의 손목을 잡고서 성기를 빼냈다.

“아빠가 분명히 말했는데. 연애하지 말라고.”

아버지는 빼낸 귀두를 느리게 밀어 넣었다. 주름이 서서히 펴지며 내부가 열렸다. 나이토가 아래에서 바르작거리는 게 느껴졌다. 고통에 끙끙거리는 게 꼭 비 맞은 강아지 같았다. 아버지는 피식 웃으며 성기를 좀 더 넣었다. 누구도 들어오지 못한 구멍은 매우 좁고, 뜨거웠다. 성기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점막은 상상보다 더 좋았다. 나가면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끈끈하게 성기를 조였다. 아버지는 까칠한 주인과 대조적인 내부에 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아직 반도 넣지 않았는데 나이토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는 성기를 빼냈다. 구멍이 느리게 뻐끔거리며 닫혔다. 그는 성기를 그새 부어오른 구멍에 비비며 말했다.

“그제야 이해가 가더라고. 네가 왜 그렇게 비밀이 많았던 건지. 나한테 연애하는 게 들킬까 봐 그런 거였어. 예감은 했지만 현실로 느껴보니 더 기분이 좆 같았지. 나도 만져보지 못한 아들을 그 새끼가 만졌다고 생각하니까.”

아버지는 회음부에 비비던 성기를 꾹 눌렀다. 이번에는 속도를 좀 더 내서 반이나 깊숙하게 넣었다. 나이토는 단숨에 들어온 성기에 주먹을 쥐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너무 아픈 나머지 아프다는 소리도 못하고 겨우 참고 있는 듯했다. 아들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그는 성기를 계속 전진시켰다. 그때마다 나이토의 눈이 일그러지거나, 눈물이 곧바로 시트로 떨어지는 거나, 숨을 삼키느라 목젖이 움직이는 게 세세하게 보였다.

신이 자신에게 내려준 선물 같았다. 자신의 품에 딱 들어오는 알맞은 신체와 선이 고운 얼굴,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 손에 딱 들어오는 엉덩이와 성기까지.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잘 맞는 육체는 없었다. 그는 하얀 엉덩이를 잡아서 벌렸다. 구멍이 힘겹게 열려서 자신의 것을 받아들이는 게, 지나치게 색정적이었다. 그는 촘촘하게 맞닿은 입구 주변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빡빡하게 맞물려 있는 틈으로 오일이 번들거리며 흘러내렸다.

“흐으, 아, 아앗!”

완전히 들어오지 못할 거 같던 거대한 성기가 끝내 들어왔다. 몸이 반으로 쪼개지는 통증이 엄습했다. 너무 아팠다. 처음 겪어보는 생경한 고통에 소리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입에선 연신 ‘제발, 제발…’이라는 애원이 터져 나왔다.

성기를 다 넣은 아버지는 신음을 내뱉었다. 잠시 여유를 가지고, 쫀득한 안을 음미했다. 드디어 그가 엉덩이를 양손에 잡고 벌린 채, 허리를 조금씩 움직였다. 사내를 모르는 구멍이 워낙 성기를 꽉 잡고 있어서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는 인상을 쓰며 성기를 살짝 빼내고, 힘을 실어 박았다.

“아흑!”

아들이 울면서 신음을 흘렸다. 그는 허리를 양손으로 잡고서 성기를 깊숙이 넣었다. 만족스러운 신음을 아들의 하얀 등에 뿌리는 아버지에 비해, 아들은 아버지의 성기를 품고서 숨도 못 쉬고 있었다. 내부가 뻥 뚫리는 느낌이 고통스러웠다. 두꺼운 성기가 강제로 내부로 들어오는 것도 아팠는데, 성기가 고통을 인식시키려는 듯 느릿하게 움직이는 게 미치게 아팠다. 입구는 조금만 더 움직이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건 신경도 안 쓰이는지, 허리를 고정시키고서 느리게 빠져나가고 질퍽한 소리가 날 정도로 깊게 넣었다. 더 깊게 들어오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성기는 처음에 느리게, 그다음부터는 속도를 내서 빠르게 들어왔다. 내부가 점점 뜨거워졌다. 아픔 위로 덧씌워지는 뜨거움에 숨을 헐떡였다. 아프고, 아팠다. 나이토는 자신도 모르게 울면서 ‘아파…’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 손을 내려 성기를 잡고 위아래로 훑었다. 미끈거리는 귀두를 살짝 압박한 뒤에 기둥을 빠르게 훑어주는 손길에 발끝이 움찔거렸다. 그렇게 앞으로 쾌감이 오면, 뒤에서 고통이 잇따랐다.

“영상 보니까 이렇게 만져주는 거 좋아하던데, 우리 아들.”

아버지가 끈덕지게 귓가에 달라붙어 신음을 흘리며 성기를 매만졌다. 하지만 자세가 불편했는지, 성기에서 손을 떼고 허리를 거침없이 움직였다. 점막이 성기에 끈끈하게 달라붙었다가, 떨어지고, 다시 달라붙으며 성기를 조였다. 그때마다 나이토는 전신을 쪼개는 격통과 내부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화끈거림에 울먹거렸다. 얼마나 세게 박는지, 울음도 아버지의 신체에 의해 완성되지 못했다.

“흐으, 아파…그만해, 제발…흣!”

그의 성기가 더 빨라졌다. 젖은 소리가 적나라하게 퍼졌다. 아버지는 아들의 내부를 탐하느라 바빴다. 단단한 성기가 내부를 파고들 때마다 작렬하는 고통에 어깨를 움츠렸다. 고개가 아래로 수그러졌다. 얼굴이 닿은 시트는 이미 타액으로 젖어있었다. 언제쯤 이 고통이 끝날까. 너무 울어서 따끔해진 눈을 돌려 아버지를 보았다. 초점이 흐릿해진 검푸른 눈을 보던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으며 허리를 멈추었다.

“하아…….”

아버지가 나른한 신음을 내뱉으며 땀에 젖은 나이토의 등에 입술을 댔다. 나이토의 체취가 묻어나왔다. 아들의 체취에 성기가 다시 힘을 얻었다. 그는 아들의 손목을 묶어두었던 줄을 풀었다. 힘이 빠진 아들을 정자세로 눕혔다. 떨리는 다리를 오므리려는 아들의 다리를 펴게 하고, 부어버린 구멍을 만지작거렸다. 손가락 두 개를 넣고 긁자 정액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그는 자신의 손에 묻은 정액을 나이토에게 보여줬다.

“네가 이렇게 만든 거야.”

나이토가 멍한 얼굴로 아버지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나이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목에는 줄에 쓸린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 모습을 지그시 지켜보던 그는 아들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나이토의 손을 잡고 내리자,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얼굴이 보였다. 그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면서 착실하게 발기한 성기를 구멍에 갖다 댔다.

나이토는 두툼하고 묵직한 귀두가 닿자 힘겹게 말했다.

“그만……그만해요.”

아버지는 아들의 손에 깍지를 끼고서 시트에 눌렀다.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입안으로 혀를 넣자, 나이토는 힘이 빠진 듯 얌전히 있었다.

그러나 혀를 빨아들이고, 입천장을 핥아주자 반응했다. 나이토의 혀가 미약하게나마 그의 혀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것이 기특해 소리 내서 웃자 나이토가 정신이 흐려진 눈으로 아버지를 보았다. 그는 눈물 젖은 나이토의 뺨을 만지며 속삭였다.

“그만할까.”

나이토가 고개를 힘없이 끄덕였다. 정신적 충격과 육체적 고통으로 정신을 차리는 게 힘들어 보였다. 오로지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듯, 눈빛이 멍했다. 아들을 물끄러미 보던 그는 아들의 손을 잡고 아래로 끌어당겼다. 자신의 성기를 잡게 했다. 나이토가 울음을 삼켰다. 아버지의 성기는 정말 너무 커서, 사람의 몸에 붙어있는 것 같지 않았다. 열기만 아니었다면, 성기가 아니라 거대한 몽둥이를 잡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아버지의 우아한 얼굴을 보던 나이토는 손을 조금씩 움직였다. 힘이 다 빠져서 거의 걸쳐진 상태로 만지는 것과 다름없었는데 아버지는 기분 좋은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나이토를 보았다.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린 반듯한 이마를 본 나이토는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아버지가 저렇게 느슨한 얼굴을 한 적이 있었나? 미간을 찌푸린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나이토가 고통에 힘을 빼고 축 늘어졌고, 아버지는 미련 없이 손바닥에 사정을 하고 떨어졌다. 손가락에 거미줄처럼 정액이 끈끈하게 달라붙었지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쉬고 싶었다.

“잘했어.”

나이토는 간신히 잡고 있던 정신을 놓았다.

*

눈꺼풀에 햇빛이 다량으로 쏟아진 것처럼 따가웠다. 눈을 뜨려고 몇 번이나 노력했으나 떠지지 않았다. 태아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서 야트막한 잠을 청하던 나이토는 선선한 바람에 눈을 아주 살짝 떴다. 물에 물감을 푼 것과 비슷한 색감의 하늘색 커튼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상체만 올린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이토는 창문을 닫으려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 전신을 덮쳤다. 은밀한 부근부터 퍼지는 통증에 간신히 세웠던 상체마저 무너졌다.

“으윽.”

신음을 흘리며 손을 더듬었다.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손까지 후들거려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성인 남자 세 명이 누워도 자리가 남을 것 같은 커다란 침대에 시체처럼 늘어져 누워서 눈을 감았다. 의식이 까마득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드문드문 끊어지는 의식으로도 현실적으로 생각한 나이토는 눈을 재차 떴다. 추가 여러 개 매달린 것처럼 눈이 무겁다. 손바닥으로 눈을 비비자, 따끔거림이 더 심해졌다.

나이토는 흐린 시선으로 침대를 둘러보았다. 아버지의 옷으로 추정되는 상의가 널브러져 있었다. 옷장이 건너편 방이라 움직이기가 쉽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상의를 입었다. 팔 길이가 너무 길어서, 소매를 몇 번 접어 올려야 했다. 옷 한 벌 입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이토는 줄에 쓸려서 아직까지 붉은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일어섰다. 다리의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졌다. 깔아놓은 카펫에 넘어져 타박상은 없었다. 나이토는 바닥에 두 손을 짚고 힘겹게 일어났다. 드레스 셔츠 단추를 느리게 잠근 뒤, 창문가로 발을 질질 끌듯이 걸어갔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티 없이 밝고 깨끗했다. 여과 없이 쏟아지는 햇빛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녹음은 선명하다 못해 눈이 시렸다. 각종 꽃으로 꾸며진 정원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알토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도 정원은 항상 아름다웠다. 정원이 정말 예쁘다며, 알토는 해맑은 얼굴로 정원 곳곳을 누비곤 했다. 자신은 그 뒤를 따르며 꽃냄새를 맡았다. 빈민가에서는 맡아보지 못했던 향긋한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때를 생각하자 가슴 한구석이 시려 왔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분명 자신과 아버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신을 구속하려 했고, 자신은 아버지를 벗어나려 노력했다. 그저 단순하게 아버지로서 자신을 집착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는 상상 이상으로 자신에게 집착한 것이었다. 몸이 아픈 것은 괜찮았다. 그 순간만 참으면 고통은 사라진다. 문제는 정신이었다. 갈수록 아버지 앞에서 자신이 약해지는 걸 느꼈다. 아버지의 강압적인 성격이 몰아칠 때마다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나이토는 손목을 보았다. 쓸려서 붓고, 상처까지 남았다. 헐렁한 드레스 셔츠 자락 사이로 보이는 몸도 엉망진창이었다. 어머니를 닮아 피부가 약해서 멍이 잘 생기는 체질이라 아버지의 흔적이 손쉽게 남아있었다. 허벅지 안쪽은 더 심할 것 같았다. 자조적으로 웃은 나이토는 똑똑,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흠칫 놀랐다. 두 번이나 침입한 아버지 때문에 노이로제가 생겼다.

아버지일까. 아니면 컨터? 혹, 키샨일 수도 있겠지. 제발 아버지만 아니었으면.

하지만 문이 활짝 열렸을 때, 들어온 사람은 아버지였다. 이 시간이면 자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 깔끔한 회색 정장을 입고 나타나자 얼떨떨했다. 심지어 아버지 손에는 트레이가 들려있었다. 아버지는 창가에 서 있는 나이토에게 손가락을 까닥여 오라고 했다. 멀찍이 서서 아버지만 응시하던 나이토는 다리를 질질 끌며 침대에 앉았다.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온 듯한 이동용 배드 테이블을 끌고 왔다. 나이토 앞에 테이블을 놓고, 그 위에 트레이를 올려놓았다. 나이토가 무표정한 얼굴로 올려다보자 아버지가 손을 뻗어 부드럽게 뺨을 만졌다.

“밥 먹어야지.”

나이토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버지의 손을 때렸다. 그래 봤자 약한 힘이라 아버지의 손을 미는 정도였다. 아버지는 개의치 않고 나이토 앞에 섰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자세로 나이토를 내려다보더니, 검지로 테이블을 두들겼다.

“이틀 만에 일어난 거니까 먹어.”

“오늘도 카메라로 보고 있었어?”

나이토가 쉰 목소리로 시큰둥하게 물었다. 은은하게 서려 있던 미소가 짙어졌다. 그는 말없이 휴대전화를 보여주었다. 휴대전화 속에는 CCTV 화면이 떠 있었다. 화질도 제법 선명해서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보였다. 엄청난 장신을 자랑하는 아버지 앞에 유독 작아 보이는 자신이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이토는 비릿하게 웃었다.

“그걸로 날 다 보고 있었겠네.”

“당연하지.”

거기서 이성이 뚝 끊겼다. 나이토는 아버지가 준비해온 아침상을 엎어버렸다. 정확히 아버지 옷자락에. 한순간에 우유와 샐러드, 스콘을 얻어맞은 아버지는 잠시 벙쪄 있었다. 헛웃음을 터트린 아버지는 얼굴까지 튄 음식을 털어냈다. 그는 보란 듯이 앉아있는 아들을 지그시 보더니 눈을 감았다. 화를 참는 듯, 그의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아버지는 주먹을 쥐고, 펴기를 반복하더니 곧이어 눈을 떴다. 그의 자색 눈동자가 희미한 광기로 빛났다.

“좋아. 이 정도는 참아주겠어. 하지만 두 번은 없어, 아들.”

“왜? 죽이기라도 하게?”

나이토가 예의 없게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반항에 능글맞게 웃었다. 그는 음식물로 오염이 된 정장 재킷을 벗어 던졌다. 드레스 셔츠까지 튄 커피 자국을 본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넌 안 죽이지. 얼마나 애지중지 길렀는데.”

이것보다 더 애지중지했다간 진작 죽었을 것이다. 진절머리가 났다. 아버지는 착용하고 있던 시계를 풀어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입고 있던 드레스 셔츠까지 빠르게 벗었다. 옷을 입고 있을 때는 아버지의 몸이 키에 비해 날씬해 보이지만, 막상 벗으면 입이 떡 벌어졌다. 38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게 팔 근육이 튼실했다. 위압적인 근육이 움직일 때마다 힘을 과시했다.나이토의 키와 몸무게를 고려해보면 그리 가벼운 편이 아닌데도 아버지는 나이토를 아이처럼 덥석 안아 올렸다. 저 근육을 어떻게든 버티려 애쓴 자신이 기특할 정도로, 아버지의 근육은 무시무시했다. 아버지는 상의를 탈의한 상태에서 아들을 물끄러미 보았다. 동물적인 감각이 아버지를 피하라고 말했다. 나이토는 엉덩이를 움직여 뒤로 물러나는데 아버지가 나이토의 허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나이토는 순식간에 일어난 행동에 반항도 못 하고서 일어나야 했다.

“아파….”

둔부 사이가 너무 아파와 인상을 쓰며 중얼거리자 아버지가 멈칫했다. 그는 통증을 호소하는 아들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아들이 벗어나려 아등바등거리자 그제야 결심한 듯, 아들의 허리와 무릎을 두 팔로 받쳐 들어 올렸다. 여성들을 타겟으로 한 소설에서 나올 법한 자세였다. 나이토가 수치스러웠는지 아버지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내려놔. 당장!”

나이토가 히스테릭하게 짜증을 부렸지만 아버지는 묵묵부답이었다. 아버지가 나이토를 데리고 간 곳 욕실이었다. 아버지가 들어가도 넉넉한 원형 욕조가 창가 쪽에 위치해 있었으며, 샤워할 수 있는 부스가 오른편에 설치되어 있었다. 직원이 물을 미리 받아놓은 덕분에 나이토를 바로 욕조에 넣을 수 있었다. 드레스 셔츠를 입은 채 욕조에 들어가게 된 나이토가 기겁했다. 예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났는지 아픈 몸을 움직여 나가려고 애썼다. 공포에 질려 나가겠다고 발버둥 치는 나이토를 한 팔로 제압하고,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앉은 상태에서 나이토가 아버지 허벅지 위에 앉았다.

“뭐하는 거야, 지금.”

나이토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아버지는 픽, 웃으며 젖은 드레스 셔츠 때문에 비치는 아들의 유두를 꼬집으며 짓궂게 말했다. 나이토가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물에 젖은 덕분에, 아들의 분홍색 유두가 잘 보였다. 손가락을 집게처럼 모아 꽉 틀었다. 유두가 좀 더 붉어졌다. 유두를 보자, 유두보다 짙은 색의 성기가 떠올랐다. 다른 남자들보다 말랑거리고, 연한 색의 성기는 앙증맞고 귀여웠다.

“씻고, 겸사겸사 이런 것도 하려고.”

다른 손으로 엉덩이 사이를 더듬자 나이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 번 당한 걸로 족했다. 나이토는 젖은 바지를 벗기 시작하는 아버지를 피해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나가려는 나이토의 발목을 잡아당겨서 물에 빠졌다. 두 손으로 턱을 겨우 짚고 일어난 나이토를 반긴 건, 아버지의 우람한 상체였다. 강제로 아버지의 허벅지에 앉게 된 나이토는 다가올 고통에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말했다.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그만해.”

울지 않으려고 하는데, 벌써 목소리가 눈물로 흠뻑 젖었다.

“이 좋은 몸을 두고 한 번으로 만족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

아버지의 기다랗고 두툼한 검지가 내부로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틈을 벌리자 뜨듯한 물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물이 내부를 채우는 감각이 기분이 나빠 고개를 젓자 아버지가 다정한 목소리로 달랬다.

“괜찮아. 처음이 아플 뿐이니까.”

“싫어…아파!”

나이토가 계속 버둥거렸다. 나이토가 아픈 상태라도 힘을 줘서 버둥거리자, 물속에서 제압하기가 힘들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주먹으로 밀쳤다. 그가 멈칫한 사이에 나이토가 나가기 위해 허둥지둥 몸을 움직였다. 나이토의 몸이 탈출하는 데 반 정도 성공했을 때,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나이토를 욕조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놔!”

겁에 질린 나이토가 괴력을 발휘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아들의 반항에 아버지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아들의 목을 잡고 욕조 안으로 밀어 넣었다. 갑작스럽게 입수하게 된 나이토가 물 안에서 괴로워하는 게 보였다. 나이토의 손이 떨면서 무언가라도 잡으려 할 때, 목을 잡고 들어 올렸다.

“커헉! 크흑, 허억, 헉….”

나이토가 강제로 먹어야 했던 물을 토해내며 턱을 기대었다. 셔츠가 물에 젖어, 하얀 나신을 그대로 비추었다. 아버지의 시선이 하얀 엉덩이와 손자국이 고스란히 남은 허벅지에 닿았다. 그의 손이 허리를 잡았다. 나이토는 뜨끈한 체온에 부들부들 떨었지만, 발기한 성기가 느껴지자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미끈거리는 귀두가 회음부를 세게 긁어 내렸다. 헉, 하고 숨을 내쉬며 손을 움직였으나 잡을 것이 없었다.

“아, 으…그만…아!”

귀두가 입구에 파묻히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이토는 장기가 위로 쏠리는 느낌에 고개를 숙였다. 욕조를 잡은 손이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성기가 반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나이토가 통증 때문에 몸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는 다리를 벌리게 했다. 물에 잠긴 다리가 흐느적거리며 움직였다. 아버지가 젖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애정이 가득했지만, 성기가 반이나 박힌 상태에서 나이토는 애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모든 것이 공포였고, 폭력이었다. 나이토가 울먹거리며 뒤를 돌아보자, 아버지는 희열에 찬 얼굴로 웃었다. 역시, 나이토는 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예뻤다. 더 울리고 싶었다. 펑펑 울면서 매달리는 게 보고 싶었다.

“힘 풀어. 너만 아파.”

“흑……아파. 아파…!”

나이토가 눈을 질끈 감고 고통스럽게 울었다. 지금 아버지의 성기는 나이토의 발갛게 부어버린 내부를 점령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구멍도 한 번으로 멈추고 싶지 않다는 듯, 성기를 오물오물 물고 빨아들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자 엉덩이를 잡고 벌렸다. 조금씩, 아주 느리게 성기를 넣었다. 주름을 밀며 성기가 내부에 안착했다. 나이토의 내부는 뜨거웠다. 하반신으로부터 시작된 열이, 나이토에 의해 전신으로 퍼져 머리까지 마비되었다. 아버지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아들의 쫀득한 내부를 탐험했다. 힘이 빠져 자꾸 욕조 안에 빠지려 하는 나이토를, 한 팔로 안아준 상태에서 박아댔다.

철퍽, 철퍽 하는 소리가 아래에서 음란하게 연속적으로 들렸다. 아까 들어왔던 물 덕분에 더욱 수월하게 나이토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조이는 내부를 성기로 가르면서 음모가 하얀 엉덩이에 닿을 때까지 넣었다. 성기가 완전히 들어갔을 때 아버지는 나직한 신음을 나이토의 하얀 목덜미에 흩뿌렸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오들오들 떨며 물속에서 미끄러지는 다리로 중심을 잡았다. 아버지가 허리를 받쳐주지 않았다면 허물어지는 성처럼 금세 무너졌으리라.

나이토는 허리를 꽉 잡은 팔에 몸을 기대고서 숨을 내쉬었다. 내부가 살덩어리로 꽉 찬 느낌이 불쾌했다. 쾌감이 1%도 존재하지 않는 성관계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레이얀과 했을 때의 달콤하던 쾌감은 여기서 느낄 수 없었다. 나이토가 욕조에 이마를 기대고 눈을 감은 채 숨을 내쉬었다. 아버지가 손목을 잡아당겨 성기를 꽉 담고 있는 구멍을 만지게 했다. 팽팽하게 열린 구멍이 느껴졌다. 이대로 망가질까 봐 두려울 정도로, 구멍이 겨우 성기를 물고 있었다. 그것을 피부로 느끼자 나이토는 겁을 먹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버지의 성기는 너무 컸고, 자신의 구멍은 너무 좁았다.

“다 들어갔어. 어때.”

“싫어….”

나이토가 눈물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손목을 더 세게 잡아당겨 부어오른 입구를 만지게 했다. 나이토가 아버지의 의도를 알아챘다. 계속 만지라는 것 같았다. 구멍을 벌리고 억지로 들어와 흥분한 아버지의 성기를 만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만지지 않으면 이상한 짓을 시킬 것 같았다. 나이토는 손가락을 움찔거리며 움직였다. 검지와 중지로 조심스럽게 만지자 활짝 벌어진 구멍이 느껴졌다. 나이토가 성기가 들어간 구멍을 만지는 걸 야릇한 눈으로 본 아버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아들의 손목을 놓아주고, 아들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치며 힘을 실어 박아댔다.

“아, 아! 아흑!”

무력한 신음이 비명처럼 터져 나왔다. 내벽이 얼얼할 정도로 빠르게 빠져나가고, 깊게 찌르는 성기에 온몸이 들썩거렸다. 계속 손에서 힘이 빠져서 상체가 욕조에 들어갈 뻔했다. 물 때문에 불편했는지, 아버지는 아들의 구멍에서 성기를 단숨에 빼냈다. 나이토는 열이 붙은 것처럼 홧홧한 통증에 몸을 웅크렸다. 아버지는 욕조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물속에 주저앉아 흐느껴 우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자신의 허벅지에 앉혔다. 단단한 허벅지에 앉은 나이토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벌리며 발기한 성기를 밀어 넣었다. 발갛게 부어오른 구멍이 서서히 벌어졌다. 밑에서 끊임없이 들어오는 성기에 압박감이 더 컸다. 나이토는 빠듯하게 맞물려 들어오는 성기에 아버지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며 헐떡였다. 아버지는 늘어진 아들의 상체를 끌어안은 채, 아래에서 위로 느리게 움직였다.

나이토는 내벽을 느리고 부드럽게 비비는 성기의 움직임에 인상을 찡그렸다.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채를 잡고 자신 쪽으로 당겼다. 그대로 거칠게 입술을 덮치자, 아들이 야한 신음을 흘리며 아버지의 어깨를 꽉 잡았다. 아들의 덥고 끈적한 신음과 숨이 그대로 아버지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버지의 입술이 불처럼 뜨거웠다. 팔이나 허벅지처럼 단단한 혀가 입술을 가르고 들어와 주인인 것처럼 입안을 누볐다. 아래는 부드럽고, 입술은 거침이 없었다.

“으, 흣…음.”

아버지가 깊숙이 키스하기 위해 뒷목을 잡고 눌렀다. 그새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아래에서 위로 치고 올라오는 성기 때문에 내벽이 쓰라리고 아릿했다. 아버지가 입술을 뗐다. 나이토는 입술을 벌린 채, 헉헉거리며 애원했다.

“그만해요, 너무 아파….”

아들의 붉게 변한 눈가를 만지작거렸다. 눈물이 고였다가 아버지의 손가락 타고 흘러내렸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입술을 강제로 벌리게 한 후, 재차 키스했다. 부드럽고 진중한 키스였다. 아랫입술을 빨면서 잘근잘근 물어주고, 혀를 넣어 입안을 애무하자 아들이 유연해진 신음을 흘렸다.

“진짜 예쁘다니까.”

입술을 맞댄 채, 다정하게 중얼거린 아버지는 아들을 끌어안고 안에 사정했다. 더 깊은 곳에 사정하고 싶었다. 성기를 빼내자 정액이 느리게 흘러내려 물속에 흩어졌다. 아버지는 아들의 목과 어깨에 낙인 같은 키스를 남겼다. 정작 나이토는 처음 했을 때처럼 정신을 잃고, 아버지 어깨에 물 먹은 스펀지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엘시는 기절한 아들을 품에 안고서 욕조에 앉아있었다. 머리에 어지러움이 밀려왔을 때, 아들을 조심스럽게 안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꼼꼼히 나이토를 씻겼다. 나이토는 쥐 죽은 듯 기절해 손끝도 꿈쩍하지 않았다. 다 씻긴 후, 커다란 수건으로 나이토의 몸을 감싸 안았다. 밀가루 포대를 어깨에 걸칠 때처럼 아들을 안고서 2층으로 올라갔다.

거대한 침실이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은은한 파스텔 빛으로 물든 방은 나이토와 잘 어울렸다. 포근하고, 따스하고, 맑다. 나이토를 침대에 눕히자, 나이토가 인상을 쓰며 끙끙 앓았다. 아들의 옆에 앉아서 지그시 지켜보던 그는 아들의 뺨에 짧게 키스했다. 계속 맡고 싶은 냄새가 코 밑에 모였다. 아들의 향이었다. 어렸을 때보다 성숙해지고, 깊어진 향이 잔향처럼 맴돌았다.

“뭐하러 이런 녀석한테 빠져서는.”

엘시는 천연덕스럽게 중얼거리고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직원이 미리 준비해준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아들의 방을 자세히 살펴보던 그는 한 지점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걸어갔다. 나이토는 두 대의 휴대전화가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자신이 만들어준 것, 하나는 나이토가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그걸로 분명히 레이얀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괘씸하면서도 귀여운 아들의 반항에 피식 웃었다.

찾을까, 말까. 고민하던 그는 내버려두었다.

“어차피 당분간 못 나갈 텐데….”

그는 아들의 옆에 풀썩 누웠다. 열이 오른 듯, 발그레해진 뺨에 손을 올렸다. 뺨이 뜨뜻했다. 햇빛이 바람에 떠밀려 들어온 방에서, 아버지는 한참 동안 아들의 잠든 얼굴을 보았다.

*

방에 설치된 카메라를 없애야 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다른 휴대전화를 알아챘을 것이다. 몰랐을 리가 없다. 이 집에 사는 동안 분명히 아버지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컴퓨터로 무엇을 검색했는지 알 것이다. 어제는 원하지 않게 아버지와 욕실에서 섹스를 해서 끝내 얘기하지 못했다. 지금도 아버지가 염탐한다는 생각을 하자 소름이 끼쳤다. 얼마나 자신이 우스웠을까. 여태껏 아버지의 손바닥에서 놀았다는 생각에 화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모든 계획을 뒤엎어야 한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레이얀을 구타하고, 자신을 마음대로 강간한 이상 더더욱 집을 나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빨리 카메라를 없애고 싶었으나 몸이 아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녁까지 기절한 듯이 잤다가 일어나, 아버지가 출근하기 전에 일어났다. 나이토는 드레스룸으로 힘겹게 걸어갔다. 무난한 검은 티셔츠에 통풍이 잘되는 반바지를 입었다. 몸이 아직 안 좋아 추위까지 느껴져 베이지색 카디건을 걸쳤다. 계단을 내려갈 때도 그곳이 너무 아파 거의 울면서 내려갔다. 식은땀을 흘리며 난간에 기대어 서 있는데, 커다란 발이 보였다. 컨터의 발이였다.

나이토는 고개를 들어 컨터를 보았다. 컨터가 나이토를 무심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어디 가시는 겁니까?”

“아버지한테 갈 거야.”

“모셔다드릴까요?”

컨터가 볼품없는 손을 내밀었다. 다가오는 손에 놀라, 그의 손등을 때렸다. 나이토는 컨터의 상체를 밀었다.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토는 문을 활짝 열었다. 꿉꿉한 밤공기가 나이토를 반겼다. 며칠 만에 맡아보는 바깥 냄새에 숨이 트였다. 둥근 보름달이 뜬 보랏빛 저녁 하늘을 감상하던 나이토는 뒤에서 다가오는 컨터를 보았다. 컨터가 그와 거리를 유지한 채, 걸어오고 있었다.

“아버지한테 연락해. 내가 간다고.”

“예.”

컨터가 착실하게 대답했다. 아버지와 간략하게 대화한 컨터가 다가와 보고했다.

“회장님께서 오시라고 하십니다.”

“알았어.”

한숨을 내쉰 나이토는 차근차근 걸어갔다. 걸어가는 내내, 아버지가 가꾼 저택을 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탈출해야 할까. 이대로 가다간 영영 집에 갇히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집을 나갈 명분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 명분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명분을 말해도 아버지가 과연 순순히 믿어 줄지 의문이었다. 지금 아버지의 성격을 어림짐작하면 웃으면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몰아붙일 사람이었다.

이 상황에서 다행인 점은 레이얀이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날 아버지는 레이얀을 죽이지 못했다. 아마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아버지 성격상 그러고도 남았다. 그러나 레이얀은 사생아지만 엄연히 공작이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그걸 잘 알고 있으니 머리를 발로 갈기고, 계단 밑으로 던지는 정도로 끝낸 거다.

나이토는 아버지에게 얻어맞던 레이얀의 얼굴을 떠올렸다. 피를 흘리고, 퉁퉁 부은 레이얀의 얼굴이 마음에 걸렸다. 누구에게 맞아본 적도 없는 레이얀이었다. 자신 때문에 그런 꼴을 당한 레이얀에게 미안했다. 레이얀은 괜찮을까. 밥은 잘 먹고 있을까. 분명히 걱정하고 있을 텐데.

각종 고민들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칠 때쯤, 아버지의 집에 도착했다. 나이토는 거대한 문 앞에 서서 심호흡했다. 몇 달 만에 오는 곳이었다. 손에 힘을 줘서 문을 열었다. 드넓은 홀이 펼쳐져 있었다. 계단도 그대로였다. 저곳에 늘 아버지가 서 있었다. 항상 엄한 모습으로, 자신과 알토를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버지는 평론가처럼 자신과 알토를 꼼꼼히 보았다. 가치가 있나, 없나. 그때부터 아버지의 눈은, 평범한 아버지의 눈이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멍하니 생각하던 나이토는 추위를 느끼고 상체를 끌어안았다.

나이토는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의 집무실로 올라갔다. 아파서 몇 번이고 주저앉을 뻔했지만 묵묵히 올라갔다. 아버지의 집무실은 3층에 있었다. 서재와 집무실은 하나의 방으로 이어져 있었고, 그 옆에 아버지와 키샨이 사용하는 침실이 있다.

나이토는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침실 문을 두들겼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집무실로 걸어갔다. 문을 두들기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느리게 열렸다. 항상 정장을 고수하던 아버지가 오늘은 편한 브이넥 반팔 티셔츠에 편한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었다. 느슨한 옷차림은 오랜만이라, 나이토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런 나이토를 아버지가 부드럽게 감싸 안고 방으로 끌어들였다. 나이토는 생리적인 공포에 짓눌린 듯, 딱딱하게 굳어서 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들어와.”

몇 년 만에 들어간 아버지의 집무실은 복잡했다. 각종 서류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책장에는 책이 넘쳐났다. 아버지의 방을 물끄러미 보던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서재로 갔다. 아버지는 먼저 자신이 소파에 앉고, 자신의 위에 나이토를 앉혔다. 굴욕적인 자세로 아버지에게 안기게 된 나이토가 인상을 팍 찡그리며 일어났다. 딱딱해졌던 몸이 아버지로 인해 깨졌다.

그러나 그 부위와 허리가 아파와 엉거주춤 멈추었다. 아버지는 귀엽다는 듯 웃으며 허리를 잡았다. 나이토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리 단둘이 있어도, 아버지와 애틋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게 부끄러웠다. 아버지는 뻔뻔해도, 자신은 아니었다.

가슴이 롤러코스터 앞에 탔을 때처럼 사정없이 뛰고 있었다. 아버지의 가차없는 폭력을 몸이 익힌 것이다. 나이토는 애써 숨을 고르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이러려고 온 거 아니야.”

“그러면?”

아버지의 팔에서 빠져나와 건너편 소파에 앉았다. 겨우 편한 자세로 앉은 나이토는 아버지의 얼굴을 응시했다. 둘러말하는 재주가 없는 나이토가 툭 던지듯 말했다.

“카메라 없애.”

아버지가 태연히 웃는다. 우아한 몸짓으로 다리를 꼬고, 턱을 괸 아버지가 흥미진진한 눈으로 나이토를 보았다.

“이유가 뭐지?”

“기분 나쁘니까. 아버지가 뭔데 날 감시해?”

“내가 말했잖아. 내 아들이 누구랑 뒹구는지 알아야 했다고. 덕분에 너랑 섹스한 새끼 알아냈고. 뭐, 공작가 아드님을 그렇게 팼으니 만족 해야겠지.”

“내가 아버지 애인이야?”

나이토의 짜증에 아버지는 짧게 소리 내서 웃었다. 그는 검지로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너 도망갈 생각 하더라?”

나이토가 마른 침을 삼켰다. 역시 알고 있었다. 나이토가 초조해져서 주먹을 꽉 쥐자 아버지가 나직하게 웃었다. 그는 손가락을 까닥였다. 이리 오라는 뜻이었다. 나이토가 움직이지 않고 계속 노려보자 아버지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빈정거렸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뭔지 알아? 알면 너 이렇게 못 나와.”

“뭘 생각하는데?”

아버지가 꼬고 있던 다리를 폈다. 그는 긴 다리를 테이블에 올렸다. 그 상태로 나른하게 웃은 그가 말했다.

“다 말해주면 재미없지. 그러니까 내가 참고 있을 때 얼른 이리 와.”

“안 가.”

나이토가 고집을 부리고 앉아있었다. 아버지의 아름다운 얼굴을 응시하며 나이토는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고집했다.

“카메라 없애라고.”

“카메라 없애면 내 아들이 뭘 하는지도 모르는데? 도망갈 계획으로 머리를 엄청 쓰던데, 그런 아들을 내버려두라고? 어디서 굴러먹다 온 뼈다귀가 만들어준 휴대전화로 열심히 연락도 하던데 그것도 내버려두고?”

“내가 도망 안 간다면, 없애줄 거야?”

아버지가 그 말을 듣자 진지하게 얼굴이 변했다. 그는 손가락을 까닥여 오라고 했다. 나이토는 마음을 굳히고, 아버지에게 걸어갔다. 나이토가 자신의 앞에 오자 아버지는 나이토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아들을 끝내 자신의 허벅지에 앉혔다. 어렸을 때도 이렇게 안긴 적이 없었는데. 나이토는 굴욕스러워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며 한껏 낮아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말 도망 안 갈 거야?”

“…도망 안 갈게.”

물론 도망갈 거다. 속으로 다짐했다. 그러나 겉으로 순종하는 척 굴었다. 아버지는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처럼 나이토의 머리를 만지며 허리를 감쌌다. 아버지의 손이 옷자락 안으로 들어오자 소름이 끼쳤다.

“나한테 믿음을 주는 방법은 딱 하나야.”

아버지는 나이토의 턱을 잡고 자신에게 고정시켰다. 아버지가 엄지로 도톰한 아랫입술을 누르며 다정하게 말했다.

“레이얀이 너한테 떨어지게 만들어. 너 스스로. 네가 질려서 떨어지도록.”

“뭐?”

“레이얀의 성격상 널 가만히 두겠어? 자기가 정의의 용사라도 되는 줄 알던데.”

“여기서 레이얀이 왜 나와?”

“마음에 안 드니까.”

아버지의 솔직한 대답에 나이토가 질린 얼굴을 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귀여운지 연신 피식 웃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들의 드러난 허벅지를 매만졌다. 안쪽 살까지 선정적으로 만졌다. 아버지가 만지는 부근에서 열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더불어 부정적인 감정도 부피를 키워갔다. 근원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나이토가 우직하게 행동했지만, 초점이 모진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엘시는 뻔히 알면서도 나이토를 바짝 끌어당겨 안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난 나눠 먹는 습관 없어.”

“내가 무슨 물건이야?”

“내가 낳았잖아. 그러니까 내 거지.”

“날 낳은 건 엄마야. 아버지가 한 건 씨 뿌린 일밖에 없잖아.”

아버지가 잠시 말이 없었다. 생각에 잠겼던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반바지 안으로 손을 더 넣었다. 성기에 닿을 것 같았다. 나이토가 숨을 멈추며 어깨를 들썩였다. 불안이 순간 멈췄다.

“맞는 말이네. 널 낳은 건 얀이지. 하지만 너에게 이런 유전자를 준 건, 나야.”

아버지가 나이토의 성기를 잡으며 말했다. 성기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버지는 속옷 안으로 손을 넣어 성기를 조물조물 만졌다. 커다란 손에 쏙 들어간 성기가 압박당하자 어쩔 수 없이 흥분되었다.

아버지인데, 아버지 손인데.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러나 아버지가 주는 쾌감에 서서히 무너졌다. 아버지의 손은 뜨겁고 적당히 성기를 조였다. 레이얀의 내부로 들어간 것도 아닌데, 그것과 비교될 정도로 황홀했다. 한 번에 다 잡고 흔들어주는 손힘에 참지 못하고 그의 손목을 잡았다. 나이토의 입에서 저절로 ‘하지 마…’란 소리가 나왔다. 아버지가 뒤에서 끌어안으며 말했다.

“내가 만들어줬잖아. 그런데 이렇게 좋은 걸 그 새끼가 만지게 만들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흐으읏!”

“이렇게 좋은 적 있었어? 없었지? 응? 거봐, 아버지니까 널 이렇게 잘 아는 거야.”

나이토는 음담패설에 가까운 말에 고개를 느리게 저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손이 점점 속도를 내서 성기를 흥분시키자 결국 아버지의 손에서 절정을 맞았다.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발끝이 오므라들다가 펴졌고, 밭은 숨이 연신 나왔다. 나이토가 기운이 빠져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버지가 정액이 묻은 손을 나이토의 입술에 비볐다. 비릿한 맛에 나이토가 고개를 돌리자 끝까지 쫓아와 입에 정액을 넣었다.

“처음에 한 날, 내가 봐준 거 알고 있어? 꼴리게 우는데 네가 아프다고 해서 딱 한 번 했잖아. 원래 나였으면 넌 나한테 다섯 번은 먹혔어.”

아버지가 정액을 거부하는 나이토를 놓아주었다. 아버지 품에서 벗어난 나이토가 바닥에 쓰러져 구역질을 했다.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왜 아버지의 손에서 절정을 느낀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혐오감, 모멸감, 수치심으로 마음이 뒤숭숭했다. 나이토가 바닥에 엎드려 흐느껴 우는데도, 아버지는 웃으면서 나이토의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흘러내린 검은 머리 안으로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이 보였다.

“내가 그 정도로 널 애지중지하고 있다는 걸, 넌 알아야 해.”

나이토는 눈물이 매달린 눈으로 아버지를 노려보았으나,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흐트러진 옷과 머리 때문에 분위기가 더욱 애처롭게 보였다. 나이토는 흘러내린 카디건을 움켜잡으며 입을 열었다.

“이게 애지중지야?”

“그럼.”

아버지가 유쾌하게 웃으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는 담배를 물기 전, 나이토의 목을 탐욕스럽게 보며 말했다.

“난 원래 목 조르면서 하는 걸 좋아하는데 너한텐 안 하잖아. 널 얼마나 아끼는데.”

그 말에 나이토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완전히 미쳤어.

나이토는 반쯤 벗겨진 바지를 서둘러 입었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버지는 나가려는 나이토의 날씬한 뒷모습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 연기를 내뱉었다. 잿빛 연기가 사라지면서 아들의 하얀 종아리가 드러났다. 건강하고 탄력적인 피부와 늘씬하게 뻗은 다리가 예뻤다. 다른 남자들과 다른 느낌의 다리였다. 살짝 드러난 허벅지를 보자 아래가 욱신거리며 아파 왔다. 뻐끔거리며 붉은 구멍이 열리고 우윳빛 정액이 흘러내린다. 허벅지 안쪽까지 정액이 빗물처럼 고였을 때가 가장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땀에 젖은 등과 멍으로 얼룩진 팔이 늘어지고, 탄력적인 엉덩이 사이로 흘러내리는 정액이라. 어떤 구도로 찍어도 완벽할 것이다. 정중한 얼굴로 음란한 상상을 하던 엘시는 허락 없이 열리는 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키샨이 화난 얼굴로 들어왔다. 엘시는 언제나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반항적인 나이토도 아버지가 오랫동안 길들인 습관에 따라 문을 두들기고, 열어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키샨이 저렇게 제멋대로 굴고 있었다. 참아줄 이유가 없었다. 엘시가 일어나서 그에게 뭐라고 하려던 때, 키샨이 막 나가려던 나이토를 잡았다. 생각지도 못한 접촉에 놀란 나이토가 눈을 크게 떴다. 나이토가 손쉽게 손을 빼내고, 키샨을 거칠게 밀쳤다.

“무슨 짓이야.”

나이토가 짜증을 내며 나가려 하자, 키샨이 또 나이토를 잡았다. 그는 광기로 눈을 번들거리며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너 엘시랑 잤어?”

나이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애써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온 나이토가 그의 멱살을 잡고 밀쳤다.

“개소리하지 마.”

“그냥 자는 거 말고, 엘시가 너랑 했냐고! 애 갖는 거! 그런 거!”

타국에서 매춘부로 살다가, 한 건 하려고 이 나라에 들어온 키샨은 언어 구사력이 상당히 부족했다. 어눌한 발음이었으나 알아듣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직설적이라 나이토의 가슴을 푹 찔렀다. 나이토가 그의 멱살을 더 세게 움켜쥐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다가와 나이토를 안았다. 흥분한 나이토가 진정하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키샨이 다 알고 있잖아! 무슨 짓을 한 거야!”

“글쎄.”

나이토는 아버지와 한 섹스를 그가 알고 있다는 생각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금기였고, 그 누구도 알면 안 되는 행위였다. 아버지는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떠는 나이토를 두 팔로 꽉 안았다. 아버지의 상체에 구속된 나이토가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키샨 내보내. 어디 가서 말 못하게 해.”

아버지는 표독스럽게 화를 내면서,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는 아들의 모습에 싱긋 웃었다. 아들을 놓아준 엘시는 키샨의 팔을 잡았다. 그가 나가지 않겠다며 버텼다.

하지만 나이토도 제압하는 그가 키샨을 제압하는 것은 더 쉬운 일이었다. 아버지는 가볍게 키샨의 두 손목을 한 손으로 잡았다. 키샨이 나비처럼 파들거리며 엘시를 보았다. 아버지는 키샨의 날렵하고 작은 턱을 잡고서, 키샨이 알아들을 수 있게 또박또박 말했다.

“이제 너 필요 없다고 했잖아. 혹시 돈이 모자라서 그런 거야?”

아이에게 설명하듯 차근차근 말했다. 단숨에 그 말을 이해한 키샨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타국 언어로 빠르게 말했다. 아버지는 인상을 쓰며 가볍게 그의 뺨을 밀었다. 아프지 않았으나 충분히 굴욕과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이었다.

“말해. 뭐 때문에 그래.”

짐짓 다정하기까지 한 목소리에 그가 안심한 듯, 울먹거리며 말했다.

“나, 나, 나는 엘시하고 살고 싶어. 나 내보내지 마. 엘시랑 살래. 내가 좋다고 했잖아.”

“내가? 너한테?”

엘시가 웃었다. 그는 잡고 있던 키샨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 아버지가 두둑한 현금을 꺼내 그의 손에 놓았다. 매춘부들에게 화대를 주던 버릇대로 그에게 주자, 키샨이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울면서 돈은 주섬주섬 챙겨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서 여태까지 끼고 산 거지 좋아한 건 아니야.”

“갑자기 왜 나가라는 건데?”

키샨이 훌쩍거렸다. 아버지가 더러운 걸 봤다는 얼굴로 질색하며 물러났다. 아버지는 불안한 얼굴로 손톱을 물어뜯는 나이토를 가리키며 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속삭였다.

[나이토가 있으니까.]

나이토가 불길함에 다가와 엘시의 팔에 매달렸다. 엘시는 강아지같이 커다란 눈을 깜박거리며 대답을 요구하는 아들이 귀여워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무슨 말이야.”

“별거 아니야.”

어깨를 으쓱인 아버지는 키샨의 귀에 대고 살벌하게 말했다.

[내 아들이 싫어하는 거 하지 말랬잖아. 내 손에 죽기 싫으면 알아서 꺼져.]

아버지는 키샨의 등을 밀었다. 키샨이 넘어졌다. 아버지는 그의 앞에서 나이토를 보란 듯이 안고서 침실로 들어갔다. 침실이 들어가자마자 아버지는 아들을 침대에 눕혔다. 아들의 몸에 올라타 턱을 잡고 혀를 밀어 넣자 나이토가 괴로운지 발을 시트에 비비적거렸다. 추웁, 춥…하고 혀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렸다. 나이토가 완강하게 거부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목을 꽉 잡고 누르고서 연신 입술이며 혀를 빨았다. 호흡이 가빠진 나이토가 고개를 틀었다. 붉어진 얼굴로 색색 숨을 내뱉는 모습이 심각하게 야했다. 투명한 눈물을 매달고 있었으며, 눈가는 자두처럼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귀까지 빨갰다. 입술은 타액으로 젖어 달빛을 받아 은색으로 빛났다. 목젖이 위태롭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나이토는 급기야 눈물을 주르륵 흘러내렸다.

달빛을 받으며 우는 모습이 요정처럼 청초하고 예뻤다. 검은 머리카락이 뺨에 낙엽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그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자, 검푸른 눈이 보였다. 눈물을 머금어 더 투명하게 빛나는 검푸른 눈에 홀린 듯, 엘시가 눈도 깜박이지 못했다.

“하지 말라고 했잖아.”

나이토가 주먹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때리며 말했다. 아들에게 난데없이 얻어맞은 아버지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나이토가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또 때렸다. 아프긴 꽤 아팠다. 엘시는 얻어맞은 뺨을 만졌다. 나이토가 화를 참지 못하고 또 손을 들기에 손목을 잡아 비틀었다.

“아윽!”

“내가 키샨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네가 싫어하는 거 하면, 죽여준다고 했어.”

“뭐?”

나이토가 고통을 참으며 되물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목을 유심히 보았다. 아직 멍이 남아있었다. 멍이 잘 드는 몸이라 걱정이 되긴 했으나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버지는 반항하지 못하게끔 아들의 목을 졸랐다. 절대 죽지 않을 만큼, 적당히 기운을 뺄 만큼 힘을 조절했다. 나이토의 하얀 목이 빨갛게 변해갔다. 나이토가 두 손으로 아버지의 손등을 때렸으나 점점 힘이 빠져 그것마저 못했다. 나이토의 눈이 떨리며 감겼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몸에서 힘이 빠질 때쯤, 손을 뗐다. 나이토가 눈을 크게 뜨더니 서럽다는 듯 눈물을 글썽거렸다. 곧이어 목을 잡고서 모자란 숨을 급하게 마셨다. 작지 않은 몸을 웅크리며 침대에서 우는 모습이 아버지의 가슴에 있는 가학심을 부추겼다.

아버지는 침실에 있는 수납공간에서 수갑을 꺼냈다. 묶어서 멍을 남기니 차라리 수갑이 나을 것 같았다. 나이토는 아버지가 하는 걸 멍하니 지켜보았다. 반항하고 싶어도, 목이 한 차례 졸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가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바지를 벗겼다. 위에는 카디건과 티셔츠, 아래는 홀딱 벗겨진 게 야했다. 목이 졸려서 붉어진 얼굴로 눈을 감고 우는 것도 예뻤다. 자신이 길들였던 매춘부 중, 저렇게 예쁘게 우는 사람은 없었다.

“미안한데, 어쩔 수 없었어.”

아버지는 나이토의 가슴에 앉았다. 나이토는 묵직한 체중에 숨을 급히 들이마셨다. 서서히 이성을 차리는데, 거대한 성기가 보였다. 발기한 성기는 비릿한 냄새가 났으며 쿠퍼액으로 번들거려 무서웠다. 저렇게 크고 두꺼운 게 몸에 들어와 들락날락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나이토가 울면서 고개를 젓자, 아버지가 성기를 잡고 입술에 비볐다. 쿠퍼액이 입술에 닿을 때마다 소름이 끼쳐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입을 벌리면 그대로 들어올까 봐 계속 다문 채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는 흉기나 다름없는 성기를 아들의 입술에 탁탁 때리며 차분하게 말했다.

“윤활제가 없어. 그냥 넣어서 피 흘리고 싶어?”

나이토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그래도 입을 벌리지 않고 버텼다. 아들의 입안으로 성기를 넣고 싶어 미칠 지경이던 아버지는 자신이 한 수 물러났다. 그는 아들의 앞머리를 만져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일요일은 의무적으로 나가게 해줄게. 어때.”

일요일 외출을 대가로 펠라를 해달라는 아버지의 거래에 나이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 해주기 싫었다. 지금 수갑에 묶인 채, 아래에 깔린 것도 충분히 힘들었다. 머리가 누구에게 한 대 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갈수록 강압적이고 이상한 것을 요구하는 아버지가 두려웠다.

직감이 들었다. 이것 말고 더 야한 걸 분명히 시킬 것이다. 나이토는 질 수 없는 태도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나이토가 끝까지 버티자 아버지는 번들거리는 성기로 아들이 뺨을 때리며 말했다.

“나가야 도망 경로도 짜고 그럴 거 아니야. 지금 네가 도망갈 수도 있다는 가설하에 자비롭게 주말 외출시켜주겠다는데, 이럴래? 영원히 집에 갇히고 싶어? 원하면 그렇게 해줄게.”

영원히 집에 갇힌다는 말에 눈을 번쩍 떴다. 정말로 아버지는 자신을 영원히 가둘 거 같았다. 그것만은 죽어도 싫었다. 나이토는 눈물을 삼키며 물었다.

“…일요일 날 내보내 줄 거야?”

“내가 약속 안 지키는 거 봤어?”

아버지가 짙은 미소를 지으며 귀두를 입안으로 넣었다. 귀두를 넣은 것만으로도 입이 답답했다. 아버지는 “착하지, 더 벌려.”라고 명령하며 성기를 더 넣었다. 성기가 반 정도 들어왔는데 죽을 것 같았다. 너무 컸다. 다 삼킬 수 없을 두께와 길이였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머리채를 잡고 고정시킨 채, 허리를 움직여 쑤셔 넣었다. 마치 그곳이 구멍이라도 되는 듯, 목구멍 안까지 찔러댔다. 나이토의 혀가 굳어서 움직이지 않자 아버지가 찔러 넣으며 말했다.

“혀를 써야지. 귀두부터 천천히 빨아봐.”

아버지가 살짝 빼줬다. 숨이 조금 트였다. 나이토는 눈을 감은 채 아버지의 귀두를 빨았다. 미끈거리는 귀두를 머금고서 혀를 이용해 요도를 핥아주었다. 아버지가 신음을 길게 흘렸다. 아버지가 팽팽하게 벌어진 나이토의 입가를 만지며 눈웃음을 지었다. 입술이 전보다 붉어져 있었다.

“레이얀한테도 이렇게 해준 거야?”

나이토가 눈을 찡그리자 아버지가 성기를 처박았다. 단숨에 목구멍까지 들어오는 단단한 성기에 나이토가 숨을 멈췄다. 속에서 뭔가가 올라올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빼지 않고 계속 넣은 채, 아버지가 위에서 허리를 움직였다. 끈적한 타액이 입과 성기에 거미줄처럼 얽혔다.

“허억, 헉…… 흑, 아, 그만.”

나이토가 숨 쉴 수 있게 빼주자, 수갑을 찬 손을 움직이며 어깨를 들썩였다. 답답한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채를 잡은 채 일으켰다. 나이토가 그나마 숨을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아버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이토를 바닥에 무릎 꿇게 했다. 아들의 뒷머리를 잡아 꼿꼿하게 선 성기로 잡아당겼다.

나이토가 헐떡이다가 조심스럽게 귀두부터 삼켰다. 아이스크림을 핥듯이 혀를 내밀어 기둥을 핥았다. 차마 삼킬 용기가 없었는지 묶인 손으로 아버지의 뿌리 부분을 잡고 고개를 느리게 움직여 중간 지점까지 빨아주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하면 남자를 흥분시키는지 잘 아는 아들의 입놀림에 점점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저렇게 꼴리는 얼굴로 레이얀의 성기를 애무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서 더 깊숙이 끌어당겼다. 성기가 목구멍까지 닿았다. 성기를 무참히 찔러 넣을 때 나이토는 괴로움에 어깨를 떨었다. 엉덩이에서 날 법한 질퍽한 소리가 입에서 났다. 나이토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흘러내렸다. 수갑에 묶인 손이 절박하게 아버지의 허벅지를 잡았다.

“너무 잘해서 아빠는 화가 나.”

신음을 잇새로 내뱉으며 말하자 나이토가 기침을 토해냈다. 타액이 턱을 타고 나이토의 하얀 허벅지에 떨어졌다. 한참을 아들의 머리를 잡고 성기를 열심히 처박던 아버지는 나이토가 정신을 잃으려 하자, 성기를 빼냈다.

“허억, 흐윽, 아…! 아, 아파…….”

나이토가 얼얼한 목을 잡으며 울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성기를 이대로 둘 생각이 없었다. 그는 침대에 눕고서, 나이토를 허벅지에 앉혔다. 손을 움직여 나이토의 입구를 더듬거렸다. 아버지는 성기를 잡고, 꽉 다 물린 입구에 꾹 눌렀다. 구멍이 힘겹게 벌어졌다. 나이토는 아래에서 입구를 짓누르며 들어오는 성기에 신음도 못 내고 바들거렸다. 성기가 마른 내부를 가르며 들어갔다. 성기를 조이는 압박감이 끝내줬다. 아버지는 다가올 쾌감을 기대하며 나이토의 허리를 잡았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가슴에 두 손을 올린 채, 흐느껴 울며 말했다.

“그만해요, 그만! 아앗, 아! 아파…!”

아랑곳않고 성기를 다 넣었다. 아버지의 고환이 살에 닿았다. 입구가 찢어질 거 같았다. 배 안은 묵직한 느낌으로 가득했다. 답답하고, 아팠다. 활짝 벌어진 다리도 부끄러워서 오므리고 싶었다.

나이토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수갑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감상하던 아버지는 움직이지 않고, 살짝 상체를 일으켜 손을 뻗어 아들의 유두를 만지작거렸다. 손에 딱 잡기 좋은 분홍색 유두를 빨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껏 아들의 내부를 탐하는 게 먼저였다. 아버지가 허리를 잡고 쳐올렸다. 적셔주지 않고 내부를 휘젓는 터라 참기가 더 괴로웠다. 나이토는 결국 아버지의 상체로 쓰러졌다. 힘없는 갈대처럼 안겨오는 나이토의 상체를 끌어안고, 허리를 난잡하게 움직였다.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변한 입구에서 나무토막 같은 성기가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때마다 맞물린 입구에서 철퍽, 쩌억, 쩍, 하는 음란하게 젖은 소리가 퍼졌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목과 어깨를 깨물었다. 나이토는 아래에서 연속적으로 올라오는 고통에 아버지가 무는지 몰랐다. 그저 아버지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서 고통을 인내할 뿐이었다. 어서 빨리 이 시간이 흘러가길, 무력하게 눈을 감고서 하염없이 기도했다.

“왜 그렇게 잘해. 안 그랬으면, 이 정도로 화가 안 났을 텐데.”

“…흐으, 그만해요.”

내부가 꽉 찬 게 아니라 터질 것 같았다. 몸 안이 불이 붙은 듯 타오르는 것 같았다. 아래에서 박는 걸로는 만족이 안 되는 아버지가 빠르게 나이토를 침대에 눕혔다. 그 탓에 성기가 내부에서 돌아가며, 내부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나이토의 미간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다리를 활짝 벌렸다. 간신히 성기를 물고 있는 구멍이 보였다. 몇 번 몸을 섞었더니 조금이나마 능숙해진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입구를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지금 이 상태로는 자신의 취향을 감당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차근차근 아들을 취향에 맞게 길들일 생각이었다. 지금은 에피타이저 단계였다. 아들의 몸을 알아가며, 어떻게 느끼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했다. 홀로 느끼는 쾌감은 필요 없었다. 아들도 느끼고, 즐겨야 했다.

아버지는 성기를 느리게 움직이며 아들의 성기를 잡았다. 제법 튼실한 성기였다. 자신의 아들다운 성기에 아버지는 흡족하게 웃었다.

“만져주는 거 좋아하잖아.”

“싫어…아.”

허리를 살짝 움직여 내부를 쿡 찌르자 나이토가 약한 신음을 흘렸다. 아버지는 방금 전처럼 성기를 만져보았으나 아래에서 올라오는 통증 때문인지 쉽게 발기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성기를 아주 부드럽고 섬세한 손길로 쓰다듬었다. 나이토가 그만하라는 듯, 묶인 손을 움직여 아버지의 손목을 잡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무시하고 성기를 연신 만졌다. 느리게, 그러다가 점점 속도를 내서 빠르게 기둥을 한 번 훑어주고 조여주자 아들의 성기가 힘을 얻었다. 아버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성기를 강하게 찔러 넣었다. 붉게 변한 점막이 성기에 달라붙었다. 나가지 말라고 붙잡는다. 정액을 안에 싸달라고, 구멍이 바라고 있었다.

“아아…!”

전과는 다른 신음이었다. 아파서 우는 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성기를 좀 더 파묻고, 나이토의 성기를 바짝 조였다. 마치 내부로 들어갔을 때처럼 손으로 그 느낌을 비슷하게 내주자 아들이 정신을 못 차렸다. 탄탄한 고환도 만져주자 자지러졌다. 아버지는 아들의 성기를 만지면서 무릎을 벌리게 했다. 성기를 놓았다. 양쪽 무릎을 잡고 시트에 내리눌렀다. 허리를 세워 망치로 정을 내리치듯, 나이토의 상체가 밀려 침대 헤드에 닿을 때까지 세게 박아댔다.

“사, 살살…! 흐윽!”

음모가 닿을 정도로 깊게 박아 넣고, 느끼는 지점을 문지른 후에 빼냈다. 그때 아들이 “으응…!”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몇십 년을 뒷골목 포주로 구른 아버지답게 아들이 느끼는 위치를 알아냈다. 한 번 더 비슷하게 깊게 넣고, 귀두가 아슬아슬하게 걸릴 때까지 빼내 주었다.

나이토가 뒷머리를 베개에 비비며 울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가느다란 신음에 빙그레 웃으면서 위에서 쉴 새 없이 박았다. 느끼는 지점을 성기가 제대로 만져주자 나이토의 성기가 힘을 얻어 꺼덕거렸다. 정액이 어릴 때 썼던 물총처럼 푸슛, 풋 하며 튀어 올랐다.

“좋아? 응?”

나이토가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알 수 있었다. 나이토의 내부가 제대로 느끼고 자신의 성기를 조여오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꽤 거칠게 박아줘야 느끼는 아들의 성적 취향에 소리 내서 웃었다. 아버지는 작정하고 아들의 내부를 푹, 푹 쑤셨다. 나이토가 흐느껴 울며 수갑으로 묶인 손을 아버지의 팔뚝에 얹었다. 자신의 아래에서 하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채 우는 나이토는 정말 심각하게 예뻤다. 끝까지 박은 후 비빌 때마다 눈을 꼭 감고 매달리는 모습에 아버지는 아랫입술을 핥았다. 모조리 빨아먹고 싶었다. 핏방울 하나 남기지 않고, 다시 자신의 안으로 데려오고 싶었다.

자신이 만든 생명체가 이토록 사랑스러울 줄이야. 엘시는 욕망에 들뜬 눈으로 부드럽게 웃었다.

“좋잖아. 좋은데 왜 대답을 안 해.”

아버지가 아들의 머리채를 잡고 물었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어느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꽤 오랜 시간 아들의 내부를 맛보았다. 1차전이 끝났다는 신호가 온 것이다. 나이토의 내부에 잔뜩 고일 정도로 정액을 뿌려주고 빼냈다. 나이토는 수갑을 찬 손을 가슴에 올려놓은 채, 눈을 반쯤 뜨고 헐떡거렸다. 아버지에게 잡힌 다리, 고문과 비슷한 성관계를 맺은 구멍이 아파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밭은 숨을 내쉬는 아들을 안아 올렸다. 아버지의 품에 힘없이 안겨 키스를 하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아버지는 아들을 허벅지에 앉혀놓고, 구멍을 만지작거렸다. 손가락 두 개를 넣고서 찔꺽거리는 소리가 나게 휘젓자 정액이 후드득 떨어졌다. 아버지는 벌어진 아들의 입안에 자신의 정액을 넣었다. 그것이 뭔지도 모르고 나이토가 멍하니 펠라 하듯 손가락을 빨았다. 아들은 처음 느껴보는 쾌감에 반쯤 정신을 놓은 것 같았다.

“이게 진짜 섹스라는 거야. 레이얀하고 했던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만할래요.”

아들이 조금 정신이 들었는지 존댓말로 칭얼거렸다. 그러나 봐줄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엎드리게 한 뒤, 곧바로 발기한 성기를 넣었다. 이미 무리한 내부였지만 재차 진입한 성기가 반갑다는 듯 반겼다.

“아앗!”

“레이얀 따위 생각 안 나게 해줄게.”

아버지가 방금 전처럼 꾹 집어넣고서 귀두까지 빼냈다. 단숨에 박아 넣어 느끼는 지점을 공략했다. 나이토의 상체가 아래로 쓰러졌다. 수갑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힐끗 보니 나이토가 시트를 잡고 있는 게 보였다. 아버지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는 아들의 하얀 엉덩이를 따갑게 때렸다. 그러자 내부가 오물거리며 성기를 조였다.

“아버지만 생각나게 될 거야.”

“싫어… 아윽. 아, 제발 그만…흐읏.”

퍼억, 소리가 날 정도로 박아주었다. 내벽의 주름을 단번에 펴며 그 지점까지 닿자 나이토가 예쁘게 울며 시트를 붙잡았다. 하얀 손등에 핏줄이 돋아난 게 보였다. 나이토의 허리를 꽉 잡은 그는, 내부가 헐거워질 때까지 박아댔다. 아예 내부의 주름이 없어지게 할 작정인지 빠르고 정확하게 내부를 찔러댔다. 나이토는 그때마다 어떻게 할지 몰라 엉엉 울며 시트를 잡았다. 찔꺽거리는 소리가 멎어 들어갔다. 아버지가 나이토의 안에 사정했다. 성기를 빼내자 정액이 실처럼 이어져 같이 딸려 나왔다. 조금씩 흘러내리는 정액을 손가락을 받아 안으로 넣은 아버지는 나이토의 상태를 살폈다. 기절은 아니었지만, 정신은 차리지 못했다. 미약하게 움직이는 가슴을 보고 아버지는 안심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눈가를 만졌다. 눈을 힘겹게 떠서 아버지를 확인한 나이토는 손을 들어 올렸다. 다치지 말라고 수갑을 채워 놓았는데, 수갑에 손목이 쓸려서 상처가 나 있었다. 피부가 너무 약했다. 흔적을 남기는 족족 진하게 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예전엔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섹스를 하고 나니 흡족한 피부였다. 하얀 피부에 화상처럼 남아 사라지지 않는 흔적은, 소유욕을 더 강하게 자극했다.

“풀어줘.”

눈물에 푹 젖은 목소리로 나이토가 요구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대답 대신 아들의 입술에 짧게 키스한 후, 늘어진 아들의 다리를 들어 올렸다. 발기한 성기를 만지는 아버지의 노련한 손짓에 나이토는 포기한 듯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성기가 입구를 잔인하게 열고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내가 그랬잖아. 너 봐주는 거였다고.”

웃음기 배인 목소리가 꿀에 절인 것처럼 달콤해서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가 다정하길 바랐다. 남들처럼, 자신에게도 다정하고 멋있는 아버지가 생기길 바랐다. 이런 식으로 사랑을 받고, 다정함을 받고 싶지 않았다.

나이토는 밀려오는 서글픔과 절망에 헐떡거리며 울다가도, 아버지가 넣어주는 성기에 느끼며 발가락을 오므렸다.

아버지가 주는 쾌감은 그런 서글픈 감정마저도 우습게 무너뜨렸다. 나이토는 눈을 질끈 감으며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잡을 게 없었다. 허공에 붕 뜬 손이 멍청하게 허우적거렸다.

“아…으윽!”

천천히 들어가다가 중간에 세게 박자 아들이 새된 신음을 흘렸다. 아버지는 키득거리며 웃다가 아들의 다리를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네가 몇 번을 버티나 오늘 시험해보자.”

아버지의 능청스러운 말에 나이토는 묶인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

힘겹게 부여잡고 있던 의식이 소멸되기 전에, 아버지의 어깨에 매달려 부탁했다.

‘키샨… 못 나가게 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없이 쓰다듬고 있던 아버지가 웃었다. 아버지답지 않은 자애로운 미소였다. 그가 나름 배려해 수갑을 채웠으나 흉이 남은 손목을 만졌다. 아릿하게 올라오는 통증에 나이토가 등을 돌리자, 아버지가 등 뒤에서 그를 안았다. 아버지의 넓고 단단한 가슴이 등에 닿는 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어깨에 살짝 키스하더니 나이토를 자신의 품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나이토는 손목을 보며 허망하게 눈을 깜박거렸다.

‘죽여줄까. 아니면 혀를 자르는 방법도… 아니다, 손이 있지. 그럼 손도 잘라야 하나.’

자신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죽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혀를 자른다거나, 손을 자르는 것도 싫었다. 단지,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함구하는 거면 됐다.

‘그냥 못 나가게 해. 이상한 얘기하지 말고.’

그 이상 얘기하는 건 무리였다. 나이토는 지쳐서 눈을 감았다. 마치 죽은 듯 자고 일어났을 때, 그곳은 아버지의 침실이었다. 나이토는 고대 귀족의 침실을 그대로 구현한, 화려함의 정점을 찍는 방 안에 인상을 썼다. 기분이 더러웠다.

아버지의 애인이 된 기분이었다. 아니, 애인도 아니고 잠자리 상대다. 애인이라면 목 조르고 때리거나 수갑으로 손목을 묶는 짓 따위 하지 않을 테니까. 침대에 누워서 눈을 꾹 감자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어젯밤 일이 기억났다. 아버지 밑에서 느끼고, 흐느껴 울며 매달렸다. 나이토는 몇 번이나 아버지의 손에서 절정을 맞이했던 기억에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죽고 싶었다. 아버지와 자는 것도 미친 짓인데 느꼈다. 절망감을 못 느낄 정도로, 좋았다. 자신이 원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자책감과 자괴감이 밀려와 나이토의 정신을 함몰시켰다.

나이토는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서 여기를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다그치고 있었다. 여기서 무슨 일을 벌이는 거냐고, 아버지의 침대에서 섹스 파트너처럼 굴고 싶은 거냐고 누군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떨리는 몸을 팔로 감싸 안고 입을 옷을 찾아다녔다. 나이토를 배려한 듯, 누군가 가져다 놓은 옷이 보였다. 요새 날씨를 고려해 고른 듯한 얇고 가벼운 소재의 옷이었다. 잘 안 올라가는 팔로 끙끙거리며 옷을 입었다. 수전증처럼 손이 떨려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제발, 제발…열려.”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문을 열었다. 주변을 살펴보자 아무도 없었다. 나이토는 다리에 힘을 줘서 계단을 내려가다가 힘이 빠져 그만 계단에서 굴렀다. 머리가 띵했다. 코 밑이 축축해 만져보니 코피까지 흐르고 있었다. 소매로 코를 막고서 저택을 나가려는데, 어떤 사람이 나이토의 손목을 잡았다.

“놔!”

나이토는 누군지 확인하지 않고 버럭 화를 냈다. 나이토의 손에 얻어맞은 사람은 나이토가 열려는 문을 꼭 닫은 채 열어주지 않았다.

“어딜 가려는 거야?”

변성기가 막 지나 아직 어설프게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알토였다. 나이토는 계속 흐르는 피를 막으며 몸으로 문을 막는 동생을 노려보았다. 알토는 죽일 것처럼 보는 형의 눈빛에 겁먹은 듯 마른 침을 삼켰다. 자기 딴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처럼 말을 더듬었다.

“아, 아버지가 형 잘 간호하래. 많이 아프다고.”

“꺼져.”

“형.”

“꺼지라고!”

나이토가 두 손으로 동생의 멱살을 잡아 끌어냈다. 하지만 알토가 금세 자세를 바꿔 나이토의 손목을 잡았다. 나이토는 아직 어리고 작은 알토에게 저지당했다는 충격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알토가 미친 사람처럼 웃는 형을 보며 손을 서서히 내려놓고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아, 형?”

나이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동생의 하얗고 빛이 나는 얼굴을 노려보다가 주먹으로 때렸다. 동생의 얼굴이 돌아가며 피가 튀었다. 알토는 바닥에 쓰러져 뺨을 감쌌다. 알토의 턱을 타고 피 한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피를 닦아 확인한 알토가 화가 났는지, 떨고 있는 나이토에게 소리쳤다.

“아버지한테 당한 걸 왜 나한테 풀어!”

“나 때문에 여기서 빌붙어 먹고 사는 주제에, 나한테 덤비지 마. 아버지한테 말해서 너부터 조져버릴 테니까.”

한때는 소중했고, 진심으로 사랑했던 동생을 증오스럽게 노려보던 나이토는 문을 열고 나갔다. 아버지한테 말해서 조져버리겠다는 말이 효과적이었는지, 알토가 얼빠진 얼굴로 바닥에 얌전히 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무릎에 손을 대고 숨을 헐떡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거 같았다.

나이토는 아버지가 지어준 자신의 집 앞에 섰다. 결국 이것도 아버지의 짓이다. 주변을 둘러본 나이토는 자신을 감싼 아름다운 저택의 정체를 알아챘다. 이곳은 지옥 그 자체였다. 자신의 발로 지옥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 앞에 주저앉았다. 힘이 빠져서 더 이상 두 발로 서있을 수가 없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어머니의 유언이, 살고자 했던 욕망이, 동생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자신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 줄 몰랐다. 가슴을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아팠다. 나이토는 가슴을 부여잡고 서글프게 울었다.

죽은 어머니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왜 저런 남자를 만나 자신을 낳았는지 묻고 싶었다. 자신에게 가난을 물려준 것도 모자라, 저런 미친 아버지를 남겨준 어머니가 이제 와서 원망스러웠다. 알토를 부탁한다는 어머니의 유언이 아니었다면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 알토라도 버렸다면, 이렇게 이 집에 갇혀있을 이유도 없었다. 나이토는 집 앞에 엎드려 찢어지게 아픈 가슴을 붙잡았다.

“도련님.”

컨터의 발이 보였다. 나이토는 눈물을 닦고 그를 보았다. 컨터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무시한 나이토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가 자신을 잡아주려 하기에, 뒤로 물러났다.

“내 몸에 손대지 마.”

“다치셨습니까?”

컨터가 물었다. 나이토는 코를 소매로 닦았다. 굳은 피가 묻어났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득 궁금한 게 떠올랐다. 나이토는 컨터 앞에 섰다. 비틀거리는 나이토를 컨터가 잡아주었다. 컨터가 잡아주는지도 모르고, 나이토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언제부터 아버지 편이 된 거야?”

질문이 이상했다. 그는 늘 아버지 편이었으니까. 대답하려는 컨터를 막고 다시 물었다.

“언제부터 집에 카메라 설치하고 날 감시한 거야? 너도 본 거야?”

“재건축할 때 회장님께서 설치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저는 보지 않았습니다. 도련님에 관한 건, 모두 회장님께서 관리하시니까요.”

“그럼 레이얀이 나랑 잤던 사람이라고 확신했던 이유는?”

아버지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너랑 섹스한 사람을 찾았다고. 아버지는 얼굴도 보지 못한 아들의 상대를 확신한 것이다. 어떻게 아버지가 알았는지 궁금해 묻자, 컨터가 그답지 않게 머뭇거렸다. 아버지가 알게 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이토가 고개를 숙이며, ‘제발…’이라고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마음이 약해졌는지 속삭이듯 말했다.

“회장님께서 파티 명부를 구해 오셔서 도련님과 접점이 있을 법한 분을 다 찾아보셨습니다. 그중에 한 분이 레이얀 님이셨는데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의 고향 친구라고요.”

“계속 얘기해.”

컨터는 답답했는지 재킷 단추를 풀었다.

“본래 조드릭 공작님과 친분이 있으셔서 찾아가셨을 때 여쭤보셨다고 합니다. 레이얀 님과 나이토 님이 친한 친구 사이인 거 아셨냐고요. 그러더니 공작님께서 알고 계셨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덧붙여, 공작님께서 그날따라 아들이 파티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엄청 했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거기서 알아챈 모양이다. 아들의 고향 친구, 공작의 사생아라서 본래 파티에 참석 못 했던 남자. 아버지는 레이얀이 제 발로 나이토에게 찾아올 걸, 확신했던 것이다.

“공작님께서 두 분이 사이가 정말 좋다고, 대학도 같이 가겠다고 했는데 알고 계셨냐고 회장님께 말씀하셨다고 하더군요.”

조드릭 공작, 즉 라이사포네 조드릭은 레이얀을 유독 예뻐했다. 라이사포네 조드릭은 레이얀의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들었다. 그런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라, 아이가 죽을까 봐 일부러 호적에 올리지 않고 빈민가에 살게 했다. 혹여나 아직은 살아있던 아버지가 아들을 죽일까 봐 무서워서 말이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야 아들을 수도로 부른 그녀는 레이얀에게 그동안 못 해줬던 것을 다 해주었다. 손에 든 보석처럼 귀하게 여겼다.

하지만 라이사포네 조드릭 공작의 지나친 정보 제공은, 레이얀에게 피를 불렀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꺼내놓아서 아버지의 의심이 레이얀에게 가도록 만들었다.

“회장님께서는 그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레이얀 님이 찾아오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그때까지는 참겠다고, 하셨죠.”

실제로 몇 달 흘러서 레이얀이 찾아왔으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얼마나 좋았을까. 드디어 찾던 놈이 스스로 왔다면서 박수를 쳤을지도 모른다. 카메라로 감시하며 레이얀이 왔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저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눈을 대신해 감시하는 카메라들이 있는 집은 답답하게 느껴진다. 멍하니 바닥만 보던 나이토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이라면, 레이얀의 안부를 물어도 컨터가 대답해줄 것 같았다.

“레이얀은 괜찮아?”

컨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다치신 곳은 없습니다.”

“…그래.”

레이얀이 괜찮다면, 그것으로 된 거다. 나이토는 레이얀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를 놓아줘야 할 때다. 자신과 얽히면 레이얀에게 더 안 좋은 일만 생길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레이얀이 공작의 사생아가 아니었다면 이미 아버지에게 맞아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레이얀을 위해서라도 그를 포기해야 한다. 레이얀은 듣지 못하는 마지막 고백을 속으로 삼켰다.

‘사랑해, 레이얀.’

몇 번을 해도 부족한 고백이었다.

아무리 울어도 괴로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진실을 알게 되자 모든 것이 그를 압박했다. 도망가고 싶지만 도망갈 수 없는 이곳이 나이토를 너무 괴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이토를 제일 괴롭게 만든 건, 어젯밤 아버지 밑에서 헐떡이던 본인이었다. 애타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아버지의 단단한 손목을 잡았다. 양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으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해낸 나이토는 눈을 감았다. 머리가 멍해졌다.

*

나이토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누군가로부터 들었는지, 아버지는 출근을 포기하고 나이토를 찾아왔다. 그는 계단에서 꾸벅꾸벅 조는 나이토를 안고서 침실로 들어왔다. 자신의 손길을 거부하는 나이토를 억지로 침대에 눕혔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아버지로부터 시선을 피한 나이토는 갑자기 생각난 의문에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가 의자에 앉은 채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차분한 자색 눈동자가 자신을 보자 웃는다.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눈부신 미소에 몸이 움찔 굳었다. 얼굴만 보면 그런 짓을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저 단정한 얼굴과 대조적인 성기를 잘 아는 나이토는 이불을 끌어올렸다. 이불로 얼굴을 가리다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겨 눈을 드러냈다. 아버지는 같은 자세로 앉아 나이토를 지그시 보고 있었다.

주춤하던 나이토는 녹아드는 버터처럼 부드러운 시선에 용기를 얻고,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나랑 하고 싶었어?”

“뭘 하고 싶었는지부터 구체적으로 말해야지. 난 너랑 하고 싶은 게 많았으니까.”

나이토는 인상을 찌푸렸다. 본인의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으나 저렇게 능글맞게 나올 때면, 나이토가 지고 들어가야 했다. 입술을 꾹 다물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입술을 달싹거린 나이토가 시무룩한 얼굴로 물었다.

“언제부터 나랑 섹스하고 싶었던 건지….”

나이토의 볼이 서서히 붉어졌다. 수치심을 못 이긴 나이토가 이불을 끌어올려 눈 끝까지 가렸다. 아버지는 제법 진지한 태도로 턱을 괴고서 고민했다. 나이토의 고운 얼굴을 감상하던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글쎄. 그 새끼랑 네가 섹스한 거 알았을 때?”

“그 전에는 안 그랬다고?”

나이토는 의외의 답에 비웃듯 말했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다가왔다. 침대에 앉은 그가 애정을 담은 손으로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누가 보아도 아버지의 다정한 손길이었다.

하지만 눈빛은 정말 애인을 보는 것처럼 뜨거웠다. 피부에 달라붙는 생생한 열기에 숨이 멎어간다.

“그래.”

“내가 레이얀이랑 섹스한 게, 그렇게 꼴렸던 거야?”

아버지의 손이 멈칫했다. 그의 손이 아래로 내려와 나이토의 입술을 만졌다.

“아니. 내 아들을 뺏겼다는 게 무척 화가 났어. 그래서 내가 다시 찾아오기로 마음먹은 거지. 어차피 넌 내 거였으니 크게 문제 될 것도 없고.”

상당히 이상한 논리를 펼치는 아버지였다. 나이토는 점점 아래까지 들어오는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오늘은 할 수 없었다. 더 했다간, 몸이며 정신이 아작 날 것 같았다.

“하지 마. 오늘은.”

아버지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그럼 내일은?”

“내일도 안 돼.”

“내일 모레는.”

“난 아버지랑 하는 거…싫어. 아버지하고 섹스하고 그런 건, 내 기준에서 안 되는 일이야.”

한 폭의 그림처럼 잘생긴 얼굴이 다가왔다. 38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나이토는 늘 보았으나, 오늘만큼은 다르게 느껴지는 아버지의 얼굴을 피했다.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향수가 끈질기게 다가와 나이토를 괴롭혔다. 묵직하고 시원한 향수 냄새에 후각이 둔해진다. 아버지가 만들어줬던 향수 냄새와 비슷했다. 향에도 집착했던 아버지의 지독한 취향에 질려버렸다.

나이토가 아버지를 피해 뒤로 물러나자, 그가 팔로 막았다. 아버지의 팔이 기둥처럼 나이토를 지지했다.

“너도 좋았잖아.”

“억지로 좋게 한 거겠지.”

아버지는 억지란 말에 빙그레 웃었다.

“난 약 같은 거 안 썼어. 그런 건, 자기한테 자신 없는 새끼들이나 쓰는 거지. 난 워낙 잘해서 필요 없어.”

나이토는 아버지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의 손이 보였다. 정말 컸다. 아이 머리를 우습게 잡을 것 같은 크기였다. 아버지는 일부러 나이토의 등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 앉아, 아들의 둥근 뒤통수를 보며 귀엽다는 듯 웃고 있었다.

“왜 인정 안 해. 내가 찔러주니까 좋아서 질질 쌌으면서.”

그 말에 화가 나, 나이토가 벌떡 일어나 아버지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딴 식으로 얘기하지 마! 귀가 썩을 거 같으니까!”

“걱정 마. 귀 안 썩어.”

말을 못 알아먹는 건지, 일부러 저러는 건지 모를 아버지의 태도에 나이토가 얼굴을 감쌌다. 아버지가 팔을 뻗어 나이토를 품에 끌어당겼다. 아버지의 품에 안기게 된 나이토가 팔로 밀었다. 아버지는 두 팔로 나이토의 상체를 꽉 안아버렸다. 묵직한 벽에 안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품은 단단하고 무서웠다. 아무리 밀어도 밀리지 않는 아버지에게 꼼짝없이 갇힌 나이토는 힘을 빼며 물었다.

“나랑 계속 하고 싶은 거야?”

“응.”

그럴 것 같았다. 지금도 열심히 엉덩이며, 등이며 애무하듯 더듬고 있었다. 나이토는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보다 더 예쁜 애들도 많잖아.”

“네가 더 예뻐.”

난데없는 칭찬에 나이토의 표정이 썩었다. 뭐라는 거야. 나이토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나이토의 입술에 짧게 키스했다. 처음엔 온도만 측정하는 듯한 애틋한 키스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키스가 더욱 농밀해졌다. 섹스할 때와 비슷한 질척거림과 젖은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섹스할 때도 느꼈지만, 아버지는 키스도 잘했다. 적당히 기분 좋게 해주다가 점차 쾌락을 느끼게 해주는 키스였다. 자신도 모르게 신음하던 나이토는 이성을 다잡았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혀가 안으로 자꾸 들어오려 할 때마다 거부했다.

안 돼, 아버지야. 아버지가 나한테 이러는 걸 허락해서는 안 돼.

아버지가 헛된 생각은 하지 말라는 듯, 강하게 입술을 빨아들이고 잘근잘근 물었다. 신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아버지의 어깨를 밀었다. 그러나 밀리는 건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는 더 세게, 자신을 밀어붙였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아버지의 기세에 나이토는 침대에 누워 아버지의 키스를 받아야 했다.

입술을 뗀 아버지는 붉어진 얼굴로 헐떡이는 나이토를 보고 싱긋 웃었다.

“확실히 말해줄게. 너한테만 박고 싶어.”

“난 싫어.”

나이토가 얼굴을 가렸다. 아버지는 손목을 잡고 침대에 눌렀다.

“사실 난 네가 싫었어. 아니, 애들 자체를 싫어해. 왜 태어났나 싶었지. 어릴 때 날 너무 귀찮게 했거든. 근데 네가 태어난 이유를 알 것 같아.”

아버지가 나이토의 얼굴을 한없이 어루만지며 말했다. 아버지의 감정을 깨닫자, 저 손과 눈에 담긴 애정이 싫었다.

“절대 임신할 수 없고, 내 취향이고, 호적에도 내 아들이라고 표시되어 있다니. 완벽하잖아.”

나이토가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셔츠에 손을 넣어 납작한 배를 만지며 속삭였다.

“근데 너라면 내 아이를 낳아도 될 거 같아. 그러면 그 아이는 뭐가 되는 거지? 네 동생? 아니면 네 자식?”

정신이 파스스 부서지는 것 같다. 나이토가 “그만….”이라고 중얼거리며 매달렸다. 아버지는 턱을 붙잡고 말했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그의 입술이 다정하게 달라붙었다. 허공에 붕 떠 있던 나이토의 손이 아버지의 어깨를 잡았다. 힘없는 손길에 키스가 깊어졌다.

*

결국 졸업식은 참석하지 못했다. 나이토가 무단으로 학교를 가지 않은 것이다. 성실하게 학교를 다니던 나이토의 갑작스러운 중단에 아버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수업 일수는 다 채웠다. 마지막 시험도 치른 상태였기에, 졸업식은 가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수영과 승마를 좋아하던 나이토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깊어지자 그것조차 하지 않았다. 학교도 가지 않고, 운동도 포기한 나이토가 하는 거라곤 마구간에 있는 루이스를 보는 일이었다. 나이토가 손을 대자 루이스가 푸흐흥거리며 얼굴을 갖다 댔다. 나이토는 느리게 루이스를 만지며 슬며시 웃었다. 살짝 떨어져 루이스가 발을 굴리는 걸 보았다. 밖에 나가고 싶은 눈치였다.

“미안해, 루이스. 지금은 내가 아파.”

육체도, 정신도 모조리 아버지에게 혹독하게 당하고 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몸이었다. 차라리 죽어버릴까. 문득 그런 충동도 들었으나 아버지 때문에 죽고 싶지 않았다.

“너도 나랑 비슷하구나. 갇혀있고.”

나이토가 루이스를 보며 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구간 지기에게 루이스를 부탁하고, 밖으로 나왔다. 바깥에 나가길 원하는 루이스에게 그것조차 주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워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비가 내렸다. 우산이 없어서 비를 맞은 채 걷는데, 저 멀리서 강아지 한 마리가 뛰어오는 게 보였다. 눈살을 찌푸리고 자세히 보자 누구의 강아지인지 알 수 있었다. 알토의 강아지였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알토에게 선물이라며 아버지가 데려왔다.

강아지는 엄청 빨리 달려 나이토에게 얼굴을 들이박았다. 그대로 대형견을 안게 된 나이토는 빗물이 고인 잔디에 넘어졌다. 아버지에게 혹사당한 그곳이 아파 인상을 찡그렸다.

“체체, 왜 혼자야. 알토는?”

헥헥거리며 애교를 부리는 체체의 얼굴을 만져주자, 체체가 더 엉겨왔다. 체체를 안아주었다. 체체의 고소한 냄새가 비를 맞아서 그런지 진하게 풍겨왔다. 젖은 체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부빈 나이토가 일어섰다. 체체의 주인이 오고 있었다. 우비를 입은 알토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나이토는 체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알토를 가리켰다.

“가, 체체.”

“체체!”

잔뜩 굳어있던 알토는 체체가 달려오자 그제야 안심된 듯 웃었다. 잔디밭을 마음껏 달리는 체체의 뒷모습을 빤히 보던 나이토가 등을 돌렸다. 체체보다 못한 삶은 사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디를 가야 할까. 카메라가 달린 집은 들어가기 싫었다. 갈 곳이 없었다. 비를 맞으며 홀로 서 있는 나이토를 멀리서 지켜보던 알토가 조금씩 발을 뗐다. 알토는 형에게 다가갔다. 알토가 다가온 걸 느낀 나이토가 고개를 돌렸다.

알토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형의 얼굴에 마른 침을 삼켰다. 자신이 아는 형 같지 않았다. 그늘이 진 나이토의 얼굴은 막 죽은 시체와 비슷했다. 창백하고, 힘이 없으며 멍하다. 약을 한 것 같진 않았으나, 눈빛이 흐리멍덩한 게 묘한 느낌을 주었다.

“어디 아파, 형?”

알토의 물음에 나이토는 피식 웃었다. 자기 안부만 찾던 애가 이상하다고 물을 정도였다. 나이토는 비에 젖은 머리를 쓸어올렸다.

“아니.”

“저기, 있잖아. 형.”

알토가 우물거렸다. 답답한 건 딱 질색인 나이토가 팔짱을 끼고 다그쳤다. 빗물이 눈을 쿡쿡 찔러 짜증이 났으나, 알토가 말할 때까지 기다려줬다.

“뭔데.”

“레이얀 형한테 연락 왔어.”

이름만 들어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나이토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해가자 알토가 걱정되었는지 “왜 그래?” 라고 물었다. 흘러내린 빗물을 닦아낸 후, 나이토는 눈치를 살폈다. 그는 알토의 팔을 잡았다. 심각하게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억세게 알토의 팔을 잡고 있었다. 알토가 아프다고 해도, 나이토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레이얀이 뭐라고 했어?”

“별건 아니고. 아인 형이 다쳤다고 병문안 오래.”

“…끝이야?”

“응.”

체체가 멍, 하고 짖었다. 놀고 싶은 얼굴이었다. 나이토는 알토에게 그만 가보라고 말하고서, 발걸음을 옮겼다. 집 안이 환했다. 나이토는 인상을 찡그렸다. 분명히 불을 끄고 나갔는데.

나이토는 철퍽거리는 옷 때문에 인상을 썼다. 침실로 가지 않고 욕실에 들어갔다. 욕조에도 물이 받아져 있다. 이럴 짓을 할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다. 시간을 보니 아버지가 일어나고도 남았다. 아버지가 있을 곳을 지그시 바라본 나이토는 욕조에 몸을 담갔다. 뜨듯한 물에 들어가니 춥던 몸이 조금씩 풀렸다. 꽤 오랜 시간 욕조에서 시간을 보낸 후,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띵했다. 머리를 잡고 인상을 쓰고서, 샤워 부스로 걸어갔다. 느긋하게 씻은 뒤 가운을 입고 나가자, 아버지가 계단을 통해 내려오는 게 보였다. 바지 주머니에 한 손을 넣고 걸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저돌적이며 나른했다. 아버지는 항상 빈틈이 없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도, 종국에는 자신의 뜻대로 되게 만드는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자색 눈이 나이토의 얼굴을 훑었다. 아버지의 손이 느리게 다가와, 나이토의 뒷목을 잡았다. 반항할 새도 없이 아버지의 입술이 포근하게 닿았다. 다른 손으로는 가운에 손을 넣어 촉촉해진 가슴을 만졌다.

“하지 마.”

“아직도 모르겠어?”

아버지가 유두를 확 비틀었다. 통증에 아, 하고 신음을 흘리자 아버지가 엉덩이를 만졌다. 나이토가 뒷걸음질 쳤다. 아버지가 유두를 잡아당겼다. 여린 살이 당겨지는 아릿한 통증에 그만 가느다랗게 신음을 내뱉었다.

“아, 아파!”

나이토가 그대로 끌려왔다. 아버지는 나이토를 품에 안은 채, 메마른 구멍을 만지작거렸다.

“난 너한테만 서.”

나이토는 귀가 썩을 것 같은 고백에 참지 못하고 아버지의 상체를 주먹으로 때렸다. 아버지는 그것도 좋은지 웃었다. 한 바퀴 빙글 돌아서 나이토를 벽에 밀어붙였다. 순간적인 힘에 부딪혀 등이 아팠다.

그러나 아프다고 할 새가 없이 아버지의 입술이 다가왔다. 아버지의 입술이 뜨겁고 달콤했다. 춥,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키스가 기분 나쁜 건 아니었다. 좋았다. 어른다운 키스였으나, 키스를 하는 사람이 아버지라서 문제였다. 아버지는 고개를 계속 비틀 때마다 끝까지 쫓아왔다. 입술을 진득하게 빨아대던 아버지가 나이토의 다리를 벌리게 했다. 나이토를 키스로 정신 나가게 한 뒤, 엉덩이를 벌려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적실 게 없어서 구멍이 빽빽했다.

“자, 잠깐만. 안 돼. 하지 마!”

“뭐가 안 돼.”

나이토가 갑자기 반항이 거세졌다. 아버지는 인상을 쓰며 아들의 팔을 잡고 뒤로 돌리고자 했다. 문제는 고개를 돌렸을 때, 문 앞에 강아지와 함께 서 있는 알토였다. 언제 들어온 건지 우비를 입고, 한 손에 휴대전화를 든 알토가 번개를 맞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짧게 실소했다.

그는 품에서 비틀거리며 빠져나와 가운을 여미는 아들을 보았다. 도망가려는 아들의 손목을 잡아 품으로 끌어당겼다. 아들이 얼굴을 가리며 울먹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프다고 울 때도 저런 얼굴은 하지 않았다.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얼굴로 애써 울음을 참고 있었다.

“놔 줘, 제발.”

아버지는 아들을 물끄러미 보다가, 아들이 자신의 어깨에 이마를 댈 수 있게 안았다. 나이토의 몸이 감기를 심하게 앓은 사람처럼 떨리고 있었다. 키샨이 둘의 관계를 안다고 할 때와 다른 반응이었다. 나이토는 진심으로 충격받은 듯 보였다.

“알토가 알면 안 되잖아요…내보내줘요, 아버지…제발.”

비 맞은 고양이처럼 구는 아들을 귀엽다는 듯 바라본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을 보았다. 알토는 돌이 된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체체만 신이 나서 앞발을 굴렸다.

“어디까지 봤어.”

“그딴 거 물어보지 말고 내보내라고!”

나이토가 아버지의 옷자락에 매달려 다급하게 외쳤다. 아버지는 벗어나려는 나이토를 잡았다. 벌어진 가운 사이로 나이토의 성기가 보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알토를 슬쩍 본 아버지는 나이토의 뒷목을 잡아 제압했다. 계단 난간 쪽으로 몸을 밀어붙였다. 다가올 상황을 감지한 나이토가 계단 난간을 잡은 채, 아버지에게 빌었다. 눈을 질끈 감는데, 그 반동으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제발 그만해요, 아버지.”

“제대로 보여줘서 우리가 무슨 관계인지 알려줘야지.”

나이토는 고개를 흔들며 이 공간을 벗어나려 했다. 아버지는 뒤에서 아들을 안고, 허리를 숙이게 했다. 나이토가 힘을 줘서 버텼다. 결국 아버지의 팔에서 벗어난 나이토가 주먹과 발을 이용해 아버지를 마구 때렸다.

“죽여 버리겠어!”

나이토의 눈은 이미 분노가 극에 달해있었다. 알토 앞에서 아버지와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사실에 분노한 나이토의 주먹이 제대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턱을 얻어맞고 비틀거린 것이다. 아버지가 방심할 틈을 노려 어떻게든 때리려 했으나, 아버지가 나이토의 팔을 잡고 비틀었다.

“윽!”

“손버릇이 안 좋아.”

쯧, 하고 혀를 찬 아버지는 버둥거리는 손을 잡았다. 뒤에서 손목을 한 손으로 결박한 아버지는 벽에 밀어붙였다. 머리를 맞은 나이토가 신음을 흘렸다.

“너 어디까지 봤어.”

아버지가 알토에게 물었다. 알토는 여전히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었다. 체체의 목줄을 잡은 손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버지는 태연한 얼굴로 작은아들을 달랬다.

“어디까지 봤어?”

“키, 키스……보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아인 형이 전화와서….”

아버지는 자신에게 결박당한 채, 무력하게 우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들었지?”

나이토가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어깨가 계속 떨리고 있었다.

“안 돼. 이건 안 되는 일이야…….”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짜증이 가득한 눈으로 알토를 노려보았다. 좋던 분위기를 알토가 다 망쳤다. 아버지는 알토와 나이토를 번갈아 보다가, 알토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말했다. 알토가 겁에 질려 아버지 앞에 걸어갔다. 분위기가 무서운 걸 알았는지 체체가 오지 않겠다고 버텼다. 덩달아 겁먹은 체체를 본 아버지가 말했다.

“체체 놓고 와.”

알토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가왔다. 알토가 자신의 앞에 온 걸 본 아버지는 대뜸 아들의 어깨를 세게 잡았다. 알토가 아픈지 입술을 달싹거렸으나, 아버지의 눈빛이 무서운 탓에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는 한결 누그러진 얼굴로 알토를 보며 말했다.

“너만 눈 감고 나가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알겠어?”

“하지만 형이…….”

알토가 처음으로 용기를 내서 반항 비슷한 것을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이 사나워지자, 말이 쏙 들어갔다. 아버지가 어깨를 잡고 놔주지 않자 알토가 결국 “아파요….”라고 중얼거렸다. 그걸 들은 나이토가 아버지를 사납게 응시하며 말했다.

“아직 애야.”

잔뜩 갈라지고, 쉰 목소리가 흐느끼듯 나왔다. 그걸 들은 아버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알아. 그래도 할 땐 제대로 해야지. 애란 것들은 어릴 때부터 잡지 않으면 기어오르기 마련이니까.”

커다란 손으로 성장이 덜된 알토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알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나이토와 다르게 알토는 이런 식으로 아버지에게 혼나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알토가 지레 겁을 먹고 오들오들 떠는 게, 나이토의 눈에 선명하게 잘 보였다. 잠시 동생의 얼굴을 보던 나이토는 고개를 돌렸다. 엘시는 보지 않아도 좋다는 듯,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움직여 눈을 가렸다. 아버지의 손바닥이 시야를 완전히 차단했다.

그가 주는 아득해지는 어둠이 이윽고 찾아오고 나서야, 아이러니하게 나이토는 조금씩 숨을 마시고, 내쉴 수 있었다.

“너만 눈 감고 나가면 돼.”

엘시는 신화 속 사이렌처럼 알토를 꼬드겼다. 알토는 아버지에게 매료된 아들답게 눈을 깜박거리다가, 아버지의 손에 붙잡혀 꼼짝달싹도 못 하는 형을 보았다. 엘시는 알토가 거의 넘어오자, 어깨를 잡은 손을 떼고 알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버지.”

알토가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는 짧게 웃으며 턱 끝으로 구석에 숨은 체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체체가 귀를 축 늘어뜨리고, 앞발을 모은 채 앉아 순박하고 큰 눈을 굴리고 있었다. 덩치만 컸지, 여전히 아기 같은 체체는 이 분위기가 싫은지 울상이었다.

“네가 이 집에 살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네 형 때문이야. 네 형이 내 마음에 들어서. 체체도 형 때문에 기를 수 있게 된 거지.”

아버지의 비난에 알토가 눈물을 닦았다.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말하지 않아도, 자신과 형이 다르다는 건 알 수 있었으니까. 그걸 몰랐던 사람은 형뿐이었다. 아버지에게 알토는 그저 형과 같이 딸려온 부속품에 불과했다. 아버지의 관심은 오로지 형뿐이었다.

처음에는 질투가 났지만, 지나치게 강압적인 아버지의 행동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알토는 형의 그늘에 있으면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처음에는 형에게 미안했으나 해가 지날수록 무뎌졌다. 익숙해진 것이다.

아버지는 알토의 성격을 알고 그것을 자극했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눈을 감으라고 말했다. 알토는 벗겨진 상태나 다름없는 형을 보았다. 저렇게 약한 형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저렇게 울지 않았다. 한 맺힌 사람처럼 서럽게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이 눈에 걸렸지만, 알토는 뒤로 물러났다. 자신이 비겁한 건 잘 안다.

하지만 형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전 여기서 아무것도 못 봤어요.”

알토가 등을 돌렸다. 서서히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끼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마지막으로 귀를 퉁, 하고 때렸다. 퉁, 퉁, 퉁… 문이 닫힌 소리가 연거푸 마음에서 울렸다.

나이토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눈을 감았다. 절망뿐이었다. 알토가 도와줄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알토 또한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되었고, 아버지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자신이 당한 걸 알면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와르르 무너졌다. 결국 동생이 선택한 게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것과 자신의 불행을 디딤돌 삼아 편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라서.

“이제 됐지?”

아버지는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그가 한 행동은 나이토가 그나마 유지하던 정신을 망가뜨리기 충분했다. 나이토는 아버지가 손을 떼는 데도 가만히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눕히고, 다리를 벌리고, 들어오기 위해 구멍을 강제로 벌리는데도 가만히 있었다. 뜨겁게 발기한 성기가 빽빽한 내부로 들어왔다. 메마른 상태라 어느 때보다 아팠다. 나이토는 카펫을 쥔 채 고통을 인내했다. 아래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너무 크고, 단단하고, 긴 게 몸을 들락날락하는 게 그렇게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나이토는 자꾸 감기려는 눈을 깜박이며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의 자색 눈이 흥분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눈이 보는 것은 오로지 자신이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뺨을 만졌다. 아들이 아버지를 만지는 건 처음이었다. 아버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신음을 흘렸다. 그는 나이토의 어깨를 잡고 눌렀다. 허리가 들리며 아버지의 성기가 더 깊게 들어왔다.

“아들, 더 만져줘.”

아버지가 나이토의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으며 황홀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버지의 음성이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뜨거운 숨이 손바닥을 애무했다.

아버지인데…멍한 머리로 생각하던 나이토는 작렬하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무지막지하게 큰 성기가 안을 파고드는 게 너무 아파서, 참을 수 없었다.

“흐으, 으으…앗!”

나이토는 신음을 흘리면서 아버지의 잘생긴 얼굴과 탄탄한 목을 만졌다. 양손으로 아버지의 목을 감싸 안았다. 아버지가 미간을 찌푸리며 성기를 박아넣었다. 입구가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 틈새 없이 맞물린 곳에서 찌걱거리는 젖은 소리가 음란하게 퍼졌다. 성기가 좁은 구멍을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위협적으로 보일 정도로, 아버지의 성기가 나이토의 내부에 푹푹 들어갔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목을 안고서 당겼다. 아버지의 허리가 난잡하게 움직여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아래에서 몽글몽글하게 피어오르던 쾌감이 거대한 불꽃이 되어 몸을 지배했다.

“내가…아버지를….”

신음을 참고 억눌린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속삭였다. 속삭임을 들은 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아버지가 신음을 나이토의 입술에 쏟아부으며 사정했다. 찡그린 아버지의 얼굴이 아름다웠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가려진 눈이 보고 싶었지만, 그를 보면 정신이 아찔해져서 시선을 고정할 수 없었다.

“죽여준다고? 나를?”

사정을 즐기는 아버지의 얼굴은 너무 자극적이었다. 나이토는 눈을 감고서, 아버지의 목을 더듬으며 말했다.

“반드시 죽일 거야.”

“좋아.”

아버지가 쾌활하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몸을 일으켜 세워, 자신의 허벅지에 앉혔다. 나이토가 한결 깊어진 삽입에 고개를 저었다. 고였던 눈물이 후드득 떨어져 아버지의 볼에 빗물처럼 닿았다.

“너무 깊어….”

아버지는 손을 뻗어 아들의 눈물을 닦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네 손에 죽는다면 그것도 좋겠지. 하지만 실패하지 마. 실패하면, 배로 갚아줄 거야.”

다정한 고백에서 살벌한 위협으로 바뀌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상체로 무너져 내렸다. 힘없이 내려온 나이토의 상체를 꼭 끌어안았다.

“한 번은 봐줘도 두 번은 못 봐줘, 아들.”

아버지가 늘 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

어렸을 때, 나이토는 아버지를 무서워했다. 아버지가 내려다보는 시선이 무서워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겁먹지 말라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이토는 아버지를 피해 근처에 있는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다가와서 말없이 나이토를 안아주었다. 나이토는 어머니에게 안겨, 눈만 내밀어 아버지를 보곤 했다. 아버지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 무덤덤한 시선으로 나이토를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동네 친구와 비 오는 오후에 신나게 놀고 온 나이토가 심한 감기에 걸려서 하루를 꼬박 앓았다. 일을 나가야 하는 어머니는 안절부절못했다. 알토는 너무 어려서 어머니가 이웃집에 맡긴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이토는 차마 맡길 엄두가 나지 않았는지, 어머니는 끙끙 앓는 나이토를 두고 난감해했다. 어머니는 몇 번이나 고민하다가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도 꼬박꼬박 정장을 입고 다녔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눈물 섞인 요청에 짜증을 내더니 정장을 벗었다. 어머니는 나이토에게 ‘아빠가 돌봐주실 거야.’라고 말한 후, 일을 나갔다.

썰렁한 집에 아버지와 단둘이 남게 된 나이토는 열로 가물거리는 눈으로 아버지를 보았다. 햇빛을 등지고 앉은 아버지는 신화 속 신 같았다. 나이토가 색색거리며 보는 게 느껴졌는지 아버지가 보던 신문을 내려놓았다. 그는 타인을 보는 것 같은 매정한 눈으로 나이토를 보더니, 손을 느리게 뻗었다. 아버지의 커다란 손이 나이토의 이마를 다 덮었다. 뜨거운 열에 아버지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다른 병 걸린 거 아니야? 그러게 왜 비 오는 날 나가서 놀아?’

아버지가 진심을 담아 화냈다. 아버지의 화에 놀란 나이토가 눈물을 찔끔 흘렸다. 아버지가 화를 내면 너무 무서웠다.

[잘못했어요, 아빠.]

기력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나약한 목소리에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는 나이토를 내버려두고 밖으로 나갔다.

아빠가 화났구나.

그렇게 느낀 나이토는 훌쩍거리며 등을 돌려 누웠다. 차라리 잠이나 자야겠다. 나이토가 눈을 감고서 막 잠이 들려는데, 아버지가 부드럽게 등을 흔들었다. 몸을 돌리자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의 커다란 손에 어울리지 않는 앙증맞은 어린이용 식기가 들려있었다.

[밥 먹고 약 먹어야 돼.]

[어지러운데….]

아버지가 인상을 팍 쓰며 여유로운 손으로 나이토를 잡아 번쩍 일으켰다. 어린아이에게 하는 것치고 너무 과격한 행동에 나이토는 몸을 움츠렸다. 아버지가 화낼까 봐 무서웠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이토의 예상과 달리 행동했다. 그는 의자에 앉고서 수저로 묽은 고기 스튜를 떴다. 아픈 나이토를 위해 어머니가 큰맘 먹고 끓여준 스튜였다.

[엄마가 꼭 먹으라고 했어. 안 먹으면 엄마한테 혼날 거야, 나이.]

아버지가 엄마를 거들먹거리며 협박했다. 나이토는 삐걱거리는 침대 헤드에 기댔다. 조그마한 입을 벌렸다. 아버지가 적당히 식은 스튜를 넣어주었다. 워낙 작고 여린 나이토였기에 한 끼를 먹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먹다가 입을 다물기 일쑤였고, 씹다가 멈추는 것도 다반사였다. 아픈데도 놀고 싶어서 발을 꼼지락거리며 혼자 장난을 쳤다. 아버지는 짜증을 내지 않고 끝까지 스튜를 먹이고, 약까지 먹였다. 약이 쓰다고 울먹거렸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냉장고에 숨겨둔 초콜릿을 꺼내 입에 넣어줬다. 아마 나이토가 예뻐서 그런 게 아니라 빨리 먹고 잠이나 자라는 뜻이었겠지만, 아무튼 아버지의 행동에 나이토는 꽤 행복했었다.

“밥 안 먹겠다고 시위하는 거야?”

그때와 비슷한 듯하지만 완전히 다른 상황 속에서 나이토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손에는 이제 어린이용 식기가 아니라 어른용 식기가 들려있었다. 자신은 더 이상 아버지가 밥을 먹여줘야 할 정도로 어리지도 않았다. 더 이상 정상적인 부자 관계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연인이나, 섹스 파트너도 아니었다. 둘은 어떠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관계였다.

엘시는 들고 있던 식기를 내려놓았다. 냄새가 그날 먹었던 고기 스튜와 비슷했다. 나체 상태로 이불 속에 죽은 듯 누워있던 나이토가 몸을 휙 돌리자, 아버지가 실소를 터트리는 게 들렸다. 아버지는 묵언 시위를 하는 나이토를 노려보다가 발로 침대를 걷어찼다. 엄청난 힘에 침대가 흔들렸다. 그래도 나이토는 꼼짝하지 않았다.

“겨우 알토가 본 거 때문에 이러는 거야?”

아버지는 알토가 본 일을 겨우 라고 칭했다. 아버지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었을지 몰라도 나이토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당연히 아버지는 나이토가 겪는 감정을 모를 것이다. 언제나 저런 남자였다. 고귀하신 귀족들을 위해서 사람 한 명을 데리고 윤간 컨셉으로 파티도 벌이던 사람이니, 이런 것쯤 그에겐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매트리스가 눌리는 게 느껴졌다. 눈앞에 아버지의 팔뚝이 보였다. 험한 일을 한 사람치고 흉이 없는 매끈한 피부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아버지의 손이 매트리스를 가볍게 유영하며 나이토에게 다가왔다. 그의 손이 자신의 뺨과 턱을 만졌다. 귀를 애무하듯 만지는 손길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버지의 손이 닿을 때마다 아버지 밑에서 헐떡였던 자신이 떠올랐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을 피해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조금이라도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이불을 걷어 나이토의 얼굴을 돌렸다. 머리를 정돈하지 않아 부스스해진 아버지의 앞머리가 이마를 덮고 있는 게 보였다. 저렇게 하니 원래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아버지의 손에 얼굴이 잡혀서 움직일 수 없었다. 나이토는 아버지를 무표정한 얼굴로 응시했다. 잘생긴 얼굴을 찌푸리는데도 잘생겼다. 옷차림도 화보에 나오는 모델 같았다. 아버지는 뭘 해도 잘 생긴 사람이었다.

“뭐가 문제인지, 아버지는 몰라요?”

며칠을 아버지에게 시달려 쉰 목소리로 힘없이 말했다. 아버지는 침대에 앉은 상태에서 나이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아버지의 눈빛이며, 손길, 목소리 같은 게 달라졌다. 거칠고 포악한 건 여전했으나 되도록 배려해주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고마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이토는 이불 속에서 빠져나왔다. 나이토의 상체는 아버지가 남긴 흔적으로 가득했다. 아버지가 문 흔적부터, 묶이고 쓸린 상처가 도드라지게 보였다. 자신이 남긴 흔적으로 발견한 아버지의 얼굴에는 흡족하고 매끄러운 미소가, 아들의 얼굴에는 분노가 서렸다. 나이토는 카메라에 음란해진 몸이 찍힐까 봐 재빨리 이불로 몸을 가렸다. 앉은 상태에서 이불을 둘둘 싸맨 나이토가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내가 가만히 있을 거 같아? 미쳐서 죽든가, 아버지 죽이든가 둘 중 하나야.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

아버지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침대에 앉아서 나이토를 응시하던 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넌 미칠 애는 아니지. 오히려 날 죽이면 몰라도. 내가 네 성격을 모를 거 같아?”

나이토가 입을 다물고 아버지를 노려봤다. 아버지는 귀엽다는 듯, 나이토의 뺨을 장난스럽게 툭툭 치며 말했다.

“넌 청승맞게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 스타일이 아니잖아.”

“이딴 식으로 사람 만지지 마.”

나이토가 아버지의 손을 밀치며 화냈다. 아버지는 스스로 물러나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는 식은 스튜를 들었다.

“날 죽이고 싶다면 밥이나 잘 먹어. 그래야 도망도 가고, 잡혀 오고, 나도 죽여보지.”

“비켜.”

아버지가 식기를 들고서 어깨를 으쓱였다. 그가 나간 자리를 유심히 보던 나이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몸이 비틀거렸으나 익숙하게 중심을 잡고 드레스룸으로 걸어갔다. 아무래도 생각하던 일을 해야 할 거 같았다.

나이토는 헐렁한 푸른색 후드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었다. 서랍을 뒤져 가죽장갑을 꺼냈다. 장갑을 들고나온 나이토는 천천히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시도도 못 할 화려한 장식들이 보였다. 모든 것이 아버지의 취향이었다. 자신의 소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저것들 중 어딘가에 카메라가 숨어있다는 걸 자각하자 숨이 턱 막혔다. 나이토는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못 찾는다면 답은 하나였다.

집을 모조리 부숴버리면 그것들도 없어질 것이다.

나이토는 집 밖을 나가 늙은 집사가 있는 곳에 갔다. 늙은 집사에게 알토가 쓰던 야구 배트를 보여 달라고 하자, 그가 스포츠용품을 모아놓은 방을 보여주었다. 배트를 집어 든 나이토는 집으로 돌아갔다. 한 번 집을 둘러본 나이토가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게임방이었다. 나이토는 야구 배트를 잡기 전, 장갑을 꼈다. 스트레칭을 가볍게 한 나이토는 야구 배트를 능숙하게 잡고, 모든 걸 부수기 시작했다. 랩탑, 컴퓨터, 게임기, 게임, 다 박살 냈다. 헉헉거리며 게임방을 박살 낸 나이토가 향한 곳은 부엌이었다. 이제 카메라 부수는 건 목적이 아니었다.

나이토는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걸 다 박살 냈다. 그것들이 아버지의 소유라고 생각하니 화가 나 참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분노로 달궈져 이성이 날아갔다. 부엌까지 박살 냈는데도 아버지나 경호원들이 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이토는 2층으로 올라가 침실 문을 활짝 열었다.

가장 증오스러운 공간이었다. 처음부터 여길 없앴어야 했다. 유리 조각을 밟아 발바닥에서 피가 나고 있었지만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나이토는 태연히 침실에 들어가 장식과 TV, 그 외의 가구를 박살 냈다. 거창하게 큰 침대만 빼고 모든 게 나이토의 손에 의해 박살 났다. 방에 야구 배트를 던진 나이토는 미리 반바지 안에 넣어두었던 라이터를 꺼냈다.

태워버리면, 모든 게 사라질 것이다. 어디에 있는지 모를 좆 같은 카메라를 없애버린다는 생각에 속이 후련했다. 라이터를 놓으려는데, 기다렸다는 듯 손목을 잡는 손이 느껴졌다. 그럴 것 같았다. 카메라로 일거수일투족을 보는데, 모를 리가 없다. 나이토는 팔을 잡은 사람을 보았다. 커다란 손이 보였다.

“부수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불은 안 돼.”

다정한 목소리로 다그치는 목소리에 나이토가 피식하고 웃었다.

“아쉽네. 불 지르면 재밌었을 거야.”

아버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목을 부러뜨릴 것 같은 힘에 미간을 찌푸렸다. 결국 라이터는 아버지에게 뺏겼다. 아버지는 다친 아들의 발을 보고는 혀를 찼다. 그는 아들의 허리를 잡아 품으로 당겼다. 나이토의 입술에 짧은 키스를 남겼다. 그러면서 나이토의 손에서 장갑을 벗겨낸 아버지가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화는 풀렸어?”

“풀렸을 것 같아?”

나이토가 역으로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에게 잡힌 상태에서 분노를 쏟아냈다.

“처음부터 이럴 목적으로 나를 키운 거야?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데! 내가 아버지한테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거야. 나는, 나는, 난…….”

나이토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흔들렸다. 감정이 격해진 나이토가 눈물을 터트렸다. 서러웠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도, 계속 집착해오는 아버지도, 자신을 외면하는 집안사람들도. 모두가 자신을 힘들고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우는 나이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는 울지 말라는 듯 키스했다. 아버지에게 벗어나려 했지만 허리를 꽉 잡고 부둥켜안아 오자 그럴 수도 없었다. 혀가 뱀처럼 야릇하게 서로 얽혔다. 나이토의 신음과 눈물마저 입안으로 받아낸 아버지가 말했다.

“몇 번을 말해야 되는 거야.”

“…뭘.”

“널 사랑한다고 했잖아.”

“자식으로서 사랑한다고 했잖아.”

아버지는 피식 웃었다.

“그럼 다시 말해줄게.”

그가 미세하게 떨고 있는 나이토를 꼭 끌어안고서 말했다.

“사랑한다니까. 지금은 같은 남자로 사랑하지. 물론 아들이니까 사랑하는 것도 있고.”

“이딴 게 사랑이라고?”

나이토가 아버지의 품에서 되물었다. 감금하고, 집착하고, 두들겨 패고, 목을 조르고, 원하지 않는 관계를 강요하는 게 사랑이라 할 수 없었다. 나이토가 아는 사랑은 포근하고 간지러운, 그래서 참을 수 없는 애틋함이 공존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폭력이 오가고, 죽이겠다고 외치는 건, 사랑 같은 게 아니었다. 구질구질한 욕망일 뿐이었다.

“나한텐 사랑이지.”

자연스러운 대답에 나이토는 아버지의 상체를 거칠게 밀쳤다.

“나한테는 아니라고!”

“네 입장 안 물어봤어.”

아버지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창백하게 질린 아들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내가 사랑이라면 사랑인 거야.”

*

집이 수리될 때까지 나이토는 아버지의 침실에서 머물러야 했다. 알토와는 입안에 든 모래알 같은 사이가 되어버린 터라 나이토는 알토가 집을 나가는 시간에만 방 밖으로 나와 생활했다. 알토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완벽하게 알토를 피할 수 없었다. 문제가 자신 말고 다른 이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아버지였다. 야간에 일하는 아버지는 원래 아침에 푹 잠을 자는 사람이었는데, 나이토가 이 집에 살기 시작하면서 낮에도 깨어나 나이토를 괴롭혔다. 관계는 침실에서만 하는 게 아니었다. 이상한 성벽을 자랑하는 아버지답게 식탁, 소파, 아버지의 서재 책상 등 다양한 장소에서 관계를 맺어야 했다. 두 사람이 관계를 맺는 걸 목격한 알토는 거북했는지 아버지가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들어왔다.

나이토는 욕조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이성을 잃으면 안 된다. 아무리 미칠 것 같아도, 죽을 것 같아도 마음을 강하게 잡아야 한다. 아버지의 뜻대로 체념하고 포기하는 순간, 자신의 삶은 영원히 끝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감았던 눈을 떴다. 나이토는 욕조에 팔을 걸치고서 숨을 작게 내쉬었다. 준비해둔 얼음물을 마시니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잔에서 얼음을 꺼내 입에 넣어 살살 굴리며 욕조에 몸을 푹 담갔다. 뜨거운 물이 그동안 고생했던 몸을 달래주었다.

아버지는 나이토를 풀어줄 생각이 없다. 오히려 나이토의 몸을 마음대로 갖고 놀면서, 더 빠진 듯했다. 이따위 몸이 뭐가 좋다고 짐승처럼 달려드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으로썬 아버지가 나이토에게 푹 빠진 게 맞았다. 몇 번의 실험을 통해 알아낸 사실이었다. 나이토가 스치듯 건네주는 손길에 아버지는 10대 소년처럼 흥분했다. 자색 눈동자가 열에 젖어 빛났다. 그 눈이 나이토를 보며 눈웃음을 짓는 걸 봤을 때, 이 남자가 진심으로 달려들고 있음을 확신했다.

나이토는 알아낸 사실을 이용해 이 집에서 나갈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정기적으로 여름에 휴가를 떠난다. 늘 애인을 데리고 갔으나 이번에는 나이토를 데려갈 확률이 컸다. 나이토는 휴가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척하며 알토도 데려갈 작정이었다. 분명히 알토를 왜 데려가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에게 부탁하면 그만이었다. 자신은 다른 사람이 보는 게 너무 부끄러우니, 그나마 이 사실을 아는 알토를 데려가 별장에서 일을 시키자고. 그가 허락하면 가장 좋지만, 허락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나갈 생각이었다.

그동안 짜놓았던 계획을 머릿속으로 더듬었다. 그 후의 일은 그날 생각할 예정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적당히 반항하고, 기가 죽은 듯 행동하며 선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완전히 순종하면 분명히 또 헛생각한다면서 이상한 짓을 벌일지도 모른다.

나이토는 남은 물을 전부 다 마시고 일어났다. 민무늬 검은색 티셔츠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나갔다. 입맛은 없지만,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부엌으로 걸어갔다. 아버지의 전담 요리사인 조가 빵을 오븐에서 꺼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담백한 빵이었다. 나이토의 시선을 느낀 조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가 손짓으로 케이크를 가리켰다. 나이토가 유독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였다. 그걸 받아들고 서서 먹기 시작했다. 조가 자신을 보는 게 느껴졌다. 나이토는 케이크를 입에 넣으며 물었다.

“왜 그래요?”

어렸을 적부터 본 조라 깍듯하게 존댓말을 썼다. 조는 쓰던 조리도구를 정리하고서 나이토의 옆에 섰다. 그는 비어있는 유리잔에 직접 우유를 따라주었다. 우유를 힐끔 본 나이토는 건성으로 “고맙습니다.”하고 말했다. 조가 나이토의 창백해진 얼굴을 살폈다. 예전보다 더 하얘진 얼굴이 묘하게 청초했다. 새초롬한 눈매가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었다.

“요새 무슨 일 있어?”

조가 은밀하게 물어왔다. 집 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조도 눈치챈 것이다. 나이토는 포크를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내가 여기서 일한 게 10년이 넘어. 모를 거 같아? 지금 회장님이랑 너랑…….”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나이토는 애써 덤덤하게 말했다.

“원래 그랬잖아요, 아버지는. 무엇보다 조 아저씨가 알아도 해주실 수 있는 일은 없어요.”

그게 사실이었다. 이건 공권력이 알아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이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피를 나눈 아버지가 아들과 섹스를 하고, 연인 보듯 한다는 사실을. 아버지의 열렬한 시선을 떠올린 나이토는 입맛이 떨어져 포크를 내려놓았다.

“나이토.”

너무 매정하게 말했나. 조의 눈이 실망으로 가득 찼다. 당황한 나이토는 케이크를 내려놓고 말했다.

“아뇨, 조 아저씨를 못 믿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아버지 성격 아시잖아요. 뭐라고 말해도 안 듣는 거.”

“…그래? 정말 별일 없는 거지?”

조가 약한 가슴을 부여잡고 조마조마하게 물었다. 아버지의 포악한 성격을 잘 아는 조는 아버지가 뭐라 할까 봐 무서워하고 있었다. 엄청난 연봉, 복지, 정년 보장 때문에 아버지의 사람들은 아버지를 무서워하면서도 여기서 일하고 싶어 했다. 아버지는 생각 외로 사람들을 잘 챙기는 편이었다. 심기만 거슬리지 않는다면 아버지는 그들이 실수를 해도 어느 정도 봐주었다. 다만,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을 때가 무서울 뿐이었다. 그래도 아버지와 비슷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고려해본다면, 아버지는 자기 사람들에게 유했다. 그 유함은 정작 아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나이토는 목이 막혀 우유를 나눠서 마셨다. 다 마신 잔을 내려놓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싱긋 웃어주자 조는 마음이 풀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자신을 곤란하게 하거나, 난처한 걸 물어봤을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다정하게 속삭여주고, 눈을 마주친 다음에 씩 웃어주면 잘 먹혔다. 돌아서자마자 미소를 싹 지운 나이토는 욕실로 향했다.

세면대에 팔을 짚고 얼굴을 보았다. 확실히 얼굴이 많이 야위었다. 밖을 나가지 않아 피부는 창백해졌고, 머리는 너무 길어서 눈을 찌를 정도였다. 얼굴을 유심히 보던 나이토는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힘이 빠졌다. 무의식중에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세면대 아래에서 머리를 숙이고 앉은 상태에서 손을 꼭 모았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 거야. 괜찮아질 거야….”

한참을 중얼거리니 가슴이 조금 진정되었다. 하지만 떨림은 여전했다. 주먹을 쥐고 일어났다. 정신을 차린 나이토는 느리게 이를 닦았다. 나이토는 욕실과 연결된 문을 통해 침실로 곧장 들어갔다. 아버지가 곤히 잠이 들어있었다. 커튼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 햇빛이 아버지의 몸을 적시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입을 살짝 벌린 채 자는 걸 보니 꽤 순하게 느껴졌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옆에 슬며시 앉았다. 떨리는 손을 뻗어 아버지의 머리를 만져보았다. 너무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관리를 잘 받은 것처럼 손에서 스르르 빠져나갔다. 어린 시절 알토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기분이었다.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떨리는 손끝으로 뺨을 만졌다. 조각가가 혼신을 다해 만든 듯한 아버지의 얼굴을 매만지던 나이토는 아버지의 목을 보았다.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을까. 저 목을 조르면, 자신은 살 수 있을까?

흔들리던 나이토의 눈동자는 시간이 흐르자 잠잠해졌다. 마치 고요한 수면처럼. 나이토는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지금은 아니야.’

속으로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나이토는 잠든 아버지를 피해 서재로 걸어갔다. 다른 방은 이 저택에 거주하며 일하는 사람들 때문에 불편했다. 그곳에 있다가 아버지가 또 덮칠 수가 있으니, 스스로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수집품을 감상했다. 아버지의 서재에는 다양한 책들이 꽂혀있었다. 포주지만, 공식 사업체를 가진 아버지라 경영에 대해서 공부도 하는 것 같았다. 경영, 정치, 경제, 세계사, 등 정상적인 책들이었다. 그중 가장 끌리는 책을 꺼내서 펼쳤다.

[5초 안에 내 사람 만드는 법]

“5초는 너무 한 거 아니야?”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내용도 웃겼다. 미소가 중요하다, 미소는 이렇게 짓는 거다, 등 이상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인상을 쓰고 책을 보던 나이토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책을 펴보았다. 아버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로맨스 코미디 소설이었다. 실소를 터트린 나이토는 생각보다 재밌는 내용에 빨려들어 갔다. 성관계가 반을 차지하는 그런 류의 소설인데 재밌었다. 귀족으로 태어나 잘생긴 남자를 수집하고 다니던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푹 빠진다는 스토리였다. 동정이고, 순진한 남자는 능수능란한 여자의 잠자리 기술에 빠져 헤어 나올 줄 모른다.

귀족 여자 일리테는 남자 주인공 카샤스를 즐겁게 해주겠다며 눈과 손을 결박하고, 의자에 앉혀놓은 채 그렇고 그런 짓을 했다. 나이토는 갈수록 야해지는 장면에 기겁했다.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어느새 다가온 아버지가 책을 뺏어갔다. 나이토가 당황해 손을 뻗자, 손을 위로 올려 가져가지 못하게 막았다. 나이토가 보던 페이지 내용을 보던 아버지가 씩 웃었다. 책을 덮어 제목을 확인한 아버지가 굳이 책 이름을 소리 내서 말했다.

“길들여줘.”

제목을 들은 나이토의 볼이 붉어졌다.

“책장에 있어서 본 것뿐이야.”

아버지가 책을 제자리에 꽂으며 웃었다.

“누가 뭐래?”

아버지는 뒷걸음질 쳐 도망치는 나이토의 허리를 잡아 책상에 앉혔다. 몇 번이나 겪었던 상황에 나이토가 질색했다. 아직 세상이 밝았다. 나이토는 손등을 성적 의미를 담아 만져오는 아버지의 손을 밀쳤다.

“안 돼.”

“일리테랑 카샤스처럼 해보자고. 내가 일리테고, 네가 카샤스야.”

아버지가 두 손을 책상에 누르고서 키스를 해왔다. 위에서 아래로, 아버지의 입술이 비스듬히 닿았다. 춥, 하고 아랫입술을 여러 번 빨더니 느리게 진입했다. 아버지의 혀가 예민한 부근을 건드리자 신음이 흘러나와 아버지의 입안에 고였다. 나이토가 고개를 젖혀 피했다. 아버지가 입술을 뗐다. 아버지의 눈이 너무 뜨거웠다.

나이토는 닿기만 하면 녹아내릴 것 같은 시선에 눈을 아래로 떴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이 다시 떨리기 시작한다. 나이토가 생리적인 거부감에 아버지에게서 달아나려 하자 아버지가 재빨리 나이토의 손목을 잡았다. 아, 하는 사이에 몸이 뒤집혀 책상에 엎드려져 있었다. 아버지가 서랍을 뒤져 끈을 꺼내는 게 보였다. 도대체 왜 서재 서랍에서 저런 끈이 나오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싫어….”

나이토가 손끝을 오므리며 덜덜 떨었다. 다가올 쾌락이 무서웠다. 차라리 아프기만 하면 나을 것 같았다. 느끼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길고 단단한 성기로 그 부분을 자극하면 자신도 모르게 느껴버렸다. 이성을 잃고 헐떡거릴 걸 생각하자 몸이 움츠러들었다.

“난 하고 싶어.”

아버지가 바르작거리며 움직이는 나이토의 등을 단단한 상체로 누르며 눈을 가렸다. 손과 상체가 불편한 자세로 눌려있어서 반항할 수가 없었다. 단숨에 눈을 가린 아버지는 나이토의 양 손목을 잡아 뒤로 당겼다. 손목에 닿는 감촉에 고개를 숙였다. 숨이 멎었다. 반항할 새도 없이 손목이 끈에 단단히 묶였다. 아버지는 착실하게 나이토의 바지와 속옷을 모두 벗겼다. 차가운 바람이 맨살에 닿았다. 나이토는 엉덩이를 벌리는 손길에 몸을 굳혔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느슨하게 풀린 구멍에 닿았다. 주름까지 부어오른 구멍을 만졌다. 눈이 가려진 상태라 아버지의 숨결과 손끝의 느낌까지 다 선명했다.

무서웠다. 뒤로 느끼고 싶지 않았다. 삽입을 하면서 느꼈던 쾌락은 이제 생각나지 않았다.

“앗, 아윽!”

아버지가 두 손목을 책상에 누르고 삽입을 시도하는 게 느껴졌다. 두툼하고 미끈거리는 귀두가 구멍에 비벼지는 감각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버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의 냄새가 진하게 났다.

“난 이대로 해도 상관없어. 그런데 너는 아니겠지. 일주일 내내 침대에 앓아눕고 싶으면 반항해. 그게 아니라면, 가만히 있어.”

눈을 가린 끈을 풀고 싶었다. 아버지의 손목에 잡힌 손도 빼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방금 전에도 아버지를 죽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이려면 지금은 참아야 한다.

나이토는 눈물을 삼키며 몸에서 힘을 뺐다. 암묵적인 긍정을 알아들은 아버지가 나이토의 다리를 벌렸다. 깨끗하고 향긋한 나이토의 피부를 보자 사타구니가 아파 왔다. 주변을 둘러본 아버지는 윤활제가 없는 걸 알고, 나이토를 책상에서 일으켰다.

아버지는 의자에 앉고서, 아들을 긴 다리 사이에 앉혔다. 나이토는 앞이 보이지 않아 입술을 깨물고 아버지가 하는 대로 얌전히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채를 쥐고서 끌어당겼다. 입술에 아버지의 성기가 닿았다. 화들짝 놀란 나이토가 고개를 틀었다. 아버지의 단단한 허벅지가 느껴졌다.

“적실 게 없잖아.”

나이토는 깜깜한 시야 속에서 고민했다. 반항해봤자 아버지한테 흠씬 당할 것이다. 나이토는 긴장으로 마른 침을 삼켰다. 나이토가 결심한 듯 입을 느릿하게 벌렸다. 머리채를 잡은 손이 앞으로 끌어당겨, 성기를 머금게 했다. 익숙한 감촉에도 몸이 떨렸다. 아버지의 눈은 진지하게 아들의 입술만 보았다. 붉고, 요염한 입술과 그것보다 더 붉은 혀가 성기를 느릿하고 부드럽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을 때처럼, 볼을 오목하게 만들어 흡입하고 혓바닥으로 성기를 감쌌다. 축축하면서 적당히 온기를 가진 점막이 성기를 반 정도 삼켰다. 볼이 더 홀쭉해졌다.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성기와 턱을 타고 흘러 입술을 흠뻑 적셨다. 아버지는 쥐고 있던 머리채를 조종하듯 움직여 혈관까지 꼼꼼하게 핥게 만들었다. 나이토는 성기를 문 채, 막힌 숨을 토해냈다. 더운 숨이 두터운 성기를 간지럽혔다.

아버지는 눈이 끈으로 가려진 채, 하얀 얼굴로 성기를 빠는 아들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삽입하고 싶었다.

하지만 젖은 눈가와 타액으로 젖어 번들거리는 입술, 힘껏 벌어진 턱, 얌전하게 모인 다리를 보자 그럴 수 없었다. 나이토의 모든 부분이 예뻤기 때문이다. 운동으로 인해 다져진 몸이었지만, 본래 나이토의 몸은 뼈대가 가는 편이었다. 요새 몸이 약해져 운동을 못 해서 그런지 예전의 체격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검은 머리를 매만지던 아버지는 참지 못하고 아들의 뒤통수를 눌러 더 삼키게 했다. 성기가 너무 길어서, 다 넣지도 못했는데 목구멍을 쿡쿡 찔렀다. 나이토가 참지 못하고 머리를 틀었다. 성기를 단번에 빼내자 성기의 끝과 입술이 하나의 타액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들은 입을 벌린 채 숨을 몰아쉬었다.

눈을 가린 끈이 젖어있다. 괴로워서 운 것이다.

“헉, 흣, 아…읍!”

울먹이던 나이토의 입에 성기를 처박았다. 단번에 목구멍까지 성기가 들어갔다. 나이토의 상체가 경직되는 게 보였다. 마치 아래 구멍에 박듯이 미친 듯이 박아댔다. 머리채를 꽉 잡은 상태라 나이토의 몸이 뒤로 밀려도 걱정 없었다. 나이토는 입을 벌린 채, 손끝을 움찔거렸다. 너무 괴로웠다. 숨을 쉬고 싶었다. 여린 점막을 세게 비비는 성기 때문에 입안 전체가 얼얼했다. 오래 벌리고 있어 턱이 아팠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성기를 피해 고개를 틀었으나, 벌을 주듯 들어와 숨을 틀어막았다. 아버지가 성기를 입에 박아 넣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사정을 하려는 것 같았다. 나이토는 반항하던 몸을 멈췄다. 얼른 사정하고 나갔으면… 몽롱한 머리로 생각하며 아버지의 성기를 빨아들였다. 본능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아버지는 축축하게 젖은 끈을 보며 싱긋 웃었다.

“예쁘게 구니까 얼마나 좋아.”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가 아들의 머리를 쥐고 사정했다. 나이토가 괴로움을 못 참고 고개를 비틀었다. 아버지가 느리게 성기를 빼내 주자, 나이토가 기침을 하며 정액을 뱉으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이토의 머리채를 잡고 당겨, 정액을 손바닥에 뱉게 했다.

“아래 찢어지고 싶어?”

나이토는 그 말이 무서웠는지 떨다가 정액을 손바닥에 뱉었다. 잘했다는 뜻으로 머리를 쓰다듬는데, 나이토는 미동이 없었다. 아버지는 나이토를 책상에 눕혔다. 나이토의 다리를 활짝 벌리게 한 뒤, 소량의 정액을 구멍에 치덕치덕 발랐다. 아버지의 손가락의 구멍의 주름을 훑자, 나이토가 아랫입술을 질끈 물었다. 아버지는 나른하게 웃으며 성기를 잡았다. 구멍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성기로 회음부를 비볐다. 하얗고 탄탄한 엉덩이 사이를 누비는 성기는 위협적이었다. 나이토의 타액으로 젖은 성기가 정액이 묻은 입구에 닿았다. 아버지가 나이토의 구멍에 대고 성기를 꾸욱 눌렀다. 구멍이 힘겹게 빠끔거리며 열렸다.

“흐윽…!”

아버지의 성기가 내벽을 누르며 들어왔다. 나이토가 주먹을 쥐면서 참았다. 자꾸 입술을 무는 나이토가 거슬렸는지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눌렀다. 그 사이, 성기가 착실하게 안으로 들어가 음모까지 둔부에 닿을 정도였다. 완전히 밀착된 아래를 보면서 아버지가 웃었다. 끈으로 시야가 가려진 나이토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감각에 움찔거렸다. 눈을 가려서인지 보일 때보다 더 예민해져서 민감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어떻게 움직일지 뻔히 아는데, 눈이 안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연약하게 떨고 있었다.

“어때, 카샤스의 마음이 이해가 가?”

나이토가 얼굴을 숙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어깨를 세게 잡았다. 연약한 내벽을 단숨에 가르며 빠져나갔다가 퍽, 소리 나게 박았다.

“아!”

“이해 가냐니까?”

“모, 모르…아, 아앗!”

나이토가 느끼는 부분을 공략하자 금세 흐물흐물해졌다. 아버지는 점점 힘을 얻어가는 나이토의 성기를 보며 좀 더 빠르게 움직였다. 입구에 아슬아슬하게 귀두가 걸리면 더 깊이 들어오라고 내벽이 성기를 붙잡았다. 그러면 성기가 그 요구에 응답하듯 내벽을 짓뭉갤 것처럼 들어왔다. 나이토는 고의적으로 그 부분만 찌르는 성기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뇌가 쾌감으로 달궈졌다. 서서히 남아있던 이성이 타들어 가고, 남은 것은 오로지 아래에서 타고 오르는 쾌감밖에 없었다. 끈으로 가려진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끈은 더 이상 눈물을 흡수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성기가 좁은 구멍을 빠져나가고, 송곳처럼 예리하게 파고들 때 어두운 시야에서 하얀빛이 터졌다. 나이토는 헐떡이면서 울었다.

아버지가 손목을 단단하게 고정했던 끈을 풀어주었다. 손을 등 뒤로 모아 고정한 탓에, 나이토는 끈을 풀어줘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아버지가 성기를 깊게 넣은 채, 손목을 잡아 빼내 주자 나이토는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상체를 끌어안았다. 살고자 하는 욕망이 불러일으킨 행동이었다. 손을 더듬어 아버지의 목에 팔을 두르자, 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이토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이는 걸 유심히 본 그는 입에 걸려있던 미소를 지우며 날씬한 허리를 꽉 잡았다.

“건방지게 굴지 마.”

허리를 잡아 올리며, 성기를 푹 소리 나게 넣었다. 숨 쉬는 것도 잊은 나이토는 아버지의 목을 세게 끌어안고 흐느꼈다.

“하아, 으읏…아! 그만!”

미칠 것 같았다. 아래에서 젖은 소리가 더 커졌다. 찌걱, 거리는 마찰음이 나게끔 빼냈다가 퍽, 하며 박으면 나이토가 애달프게 울었다. 아버지의 목에 간신히 매달렸다. 아버지는 안겨오는 나이토의 입술을 진중하게 빨아들였다. 위에서는 혀가 음란하게 얽히고, 아래에서는 성기가 좁은 구멍을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다리를 더 벌렸다. 나이토의 깊은 내부까지 자신의 정액을 보내고 싶었다.

단단한 성기가 내벽을 세게 비비다가, 한 지점에 멈췄다. 아버지가 사정을 한 것이다. 나이토는 안에 고이는 정액의 느낌에 아버지의 목에서 팔을 뺐다. 아버지는 축 늘어진 나이토의 팔을 잡아 어깨에 걸치게 했다. 아버지의 성기가 나이토의 내부에서 힘을 얻어 서고 있었다. 딱딱하게 발기한 성기가 짓무른 내벽을 누르자 나이토가 울먹거렸다.

“아파.”

“정말 아프기만 해?”

아버지가 달콤하게 물었다. 나이토는 어두운 시야 속에서 아버지가 있을 법한 위치를 찾아 눈을 굴렸다. 하지만 너무 까매서 보이지 않았다. 나이토가 그만하라고 말하려 했으나, 아버지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나이토를 일으켜 책상에 엎드리게 하고 느리게 성기를 넣었다. 성기가 감질나게 아래를 비집고 들어왔다. 엎드린 채로 삽입이 이루어져, 고였던 정액이 아버지의 성기에 베일처럼 달라붙었다. 한 번의 관계로 내벽이 뻐근하면서 아파 왔지만, 아버지의 성기가 들어왔다가 나가면서 쾌감을 불러일으키자 통증은 서서히 무뎌졌다.

나이토는 책상을 잡은 채 애써 버텼다. 눈이 가려진 상태라 아버지의 손끝이 달아오른 피부를 살짝 스치기만 해도 느꼈다. 머리가 터질 거 같았다.

느릿하게 애태우던 성기가 속도를 내고 안으로 잔인하게 파고들었다. 내벽이 조여들 때를 놓치지 않고, 그때마다 구멍을 벌리고 들어왔다.

나이토는 퍽, 퍽 쳐올리는 힘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상체에 힘이 빠졌다. 두 손이 흑갈색 책상에 힘없이 널브러졌다.

“그만…제발.”

나이토가 뒤에서 허리를 잡은 아버지의 손목을 잡으며 애절하게 부탁했다.

“너도 좋잖아.”

아버지가 신음을 내뱉으며 나이토의 발기한 성기를 잡았다. 안 그래도 내부를 자극당해 미칠 지경이었는데 아버지가 성기까지 능숙하게 만져주자 쾌감이 더 커졌다. 아버지는 서서 박아대는 자세가 불편했는지, 나이토를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잠시 빠져나갔던 성기가 뜨거운 내부로 꽉 차게 들어왔다. 내부가 너무 아팠으나 그 뒤에 따라오는 쾌감 때문에 아픔이 멀어졌다.

“으윽, 흑, 아아…흐응…!”

아버지의 성기가 빠르고 정확하게 찔러왔다. 내부가 타들어 가서 없어질 것 같았다. 나이토가 바닥을 손톱을 세워 긁자, 아버지가 손을 뻗어 나이토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그는 나이토의 양쪽 손목을 등에 비틀어 모으고서, 내부를 망가뜨릴 작정으로 박아댔다. 어느 정도 느슨하게 풀린 입구를 타고 정액이 흘렀다. 아버지가 한참 동안 내부를 들쑤시다가 드디어 사정한 것이다. 나이토는 입을 벌리고 숨을 겨우 내뱉었다.

아버지는 성기를 빼내 구멍을 살폈다. 붉게 부어오른 구멍이 빠져나간 성기가 아쉽다는 듯 뻐끔거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붉은 내벽이 보였다. 번들거리는 입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정액이 느릿하게 흘러내렸다. 구멍을 통해 빠져나온 정액이 하얀 허벅지에 타고 흐르는 걸 보자, 성기가 힘을 얻었다. 아버지는 눈이 가려진 채, 시체처럼 누워있는 나이토를 보았다. 저런 모습을 보고도, 아들에게 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아버지는 아들을 일으켰다. 자신이 바닥에 눕고서 아들을 그 위에 앉히고, 벌어진 구멍에 귀두를 넣었다. 나이토가 아버지의 가슴에 두 손을 올렸다. 나이토의 손이 닿은 것만으로도 이성이 날아간 아버지는, 나이토의 허리를 잡고 느릿하게 움직였다.

“으응…아, 그만….”

그만, 이라는 말이 듣고 싶지 않아 아들의 뒷목을 잡아 눌렀다. 달아오른 숨을 내뱉는 입술을 빨아들였다.

“아….”

나이토가 흐릿한 신음을 흘리며, 손을 움직여 아버지의 어깨를 잡았다.

“정말 그만해?”

엘시가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매만지며 물었다. 나이토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가 손을 움직여 끈을 풀어줬다. 나이토는 쉽게 눈을 뜨지 못했다. 아버지가 눈 끝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 준 후에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어준 주제에, 자신을 진심으로 위하는 손길이 너무 다정했다. 아버지의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끝도 없이 묻어나왔다. 꽃잎처럼 달싹거리는 붉은 입술을 보던 아버지는 손을 느릿하게 움직여 뒷목을 잡아 눌렀다. 허리를 잡아오는 강한 팔에 신음을 내뱉자, 그것도 아버지가 앗아갔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소유였다.

<둘만의 밤> 1권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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