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1부(2) (3/8)

1부(2)

청승맞게 내리는 빗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 여름이 한창인데 비가 내려 쌀쌀했다. 자장가처럼 귀를 적시는 빗소리에 가물가물한 눈을 뜨고, 감기를 반복하니 정신이 들었다. 잠이 깨자 안 좋은 점은 허리가 무척 뻐근하다는 것이다. 돌덩이를 얹은 듯 몸이 무거워서 엎드려 누운 자세로 휴대전화만 만졌다. 외출은 불가능한 생활이라 늘 휴대전화를 하다 보니 그마저도 재미가 없었다. 무료함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나이토는 휴대전화로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은 일요일이었으며, 어느새 낮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1주일 중에서 유일하게 외출이 허락된 날인데, 이렇게 늦게 일어난 것이 아까웠다.

나이토는 아픈 몸을 일으켰다. 몸을 살펴보자 아버지의 흔적으로 가득했으나 찝찝함은 없었다. 아버지가 꼼꼼하게 씻겨준 듯했다.

아버지와 원치 않은 관계를 시작하면서 아버지에 대해 알아낸 게 여러 가지가 있었다. 어렸을 적, 같이 살았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욕은 잘 사용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성장 과정을 보면 허구한 날 욕을 쓸 것 같았지만, 아버지는 일부러 욕을 쓰지 않았다. 행동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서, 타인이 보면 아버지는 포주가 아니라 귀족 집안의 자제 같았다.

반항만 안 하면 생각 외로 잠자리는 다정했으며 뒤처리도 깔끔했다. 최근 들어서 묶는 일이 줄어들었다. 아버지가 자주 잡거나, 묶었던 손목은 흔적이 많이 옅어져 있었다. 간혹 아무 생각 없이 누워서 아버지를 보면, 세상 제일 다정한 사람처럼 웃어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보는 게 버거워서 아버지 얼굴을 가렸다. 그러면 그것도 좋다고 손바닥에 키스했다. 그렇게 눈이 맞으면 다시 관계를 맺는 일도 허다했다.

담배도 하루에 한두 개비로 끝이고, 술은 되도록 하지 않으며, 약도 하지 않는다. 매춘부들이 약에 의존하도록 만들면서 정작 본인은 하지 않는다는 게 웃겼다. 왜 약을 하지 않느냐고 넌지시 물어봤을 때, 아버지는 나이토의 허리를 끌어안고서 말했다.

‘난 지배 당하는 게 싫어.’

아버지 성격다운 말이었다. 머리 꼭대기 앉아 조종하는 느낌이 싫다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것도 아버지다웠다.

아버지에 대해 떠올리던 나이토는 정신을 차렸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었다. 서둘러서 밖에 나가야 했다. 나이토는 드레스룸으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오버 핏의 하얀색 반팔 티셔츠, 카디건, 연한 청바지를 입었다. 전신 거울을 보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했다. 시계까지 착용한 뒤, 밖으로 나갔다. 계단을 통해 터덜터덜 내려가자 대기 중인 컨터가 보였다. 컨터와 나이토의 전담 운전기사까지 있었다. 둘은 나이토를 보자 반듯하게 인사했다.

“저와 함께 가시죠, 도련님.”

“일주일 만에 외출하는 건데, 너희가 따라오면 내 기분이 어떻겠어?”

손잡이를 잡은 채 빈정거렸다. 컨터는 무덤덤한 눈으로 나이토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저희와 가셔야 합니다. 회장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그래?”

나이토는 휴대전화로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오늘 아버지는 귀족들이 여는 사냥 대회에 참석하러 페페롱 백작의 사유지에 간 상태였다. 사냥에 열중일 시간이었지만, 나이토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거부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연결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끊기더니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

아버지다운 무심한 인사에 바로 본심을 드러냈다.

“컨터 따라오지 말라고 해요.”

[밖에 나가서 다치면 어떡하려고.]

밖에서는 정말 다정한 아버지인 것처럼 구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나이토를 아들로 보지 않았다. 어젯밤에도 열에 들떠 헐떡거리는 아들을 보며 묘한 눈빛을 보내던 아버지를 떠올린 나이토는 고개를 숙였다. 얼굴에 열이 올랐다. 컨터가 아버지와 자신의 사이를 안다고 해도, 이런 사적인 대화까지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니면 안 다쳐요.”

[아빠 입장에서는 아들 다칠까 봐 혼자는 못 보내겠는데.]

“이것까지 아버지 마음대로 통제하실 거예요? 일요일 외출은 제 마음대로 하게 해주셔야죠. 적어도 아버지라면,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는 거잖아요.”

아버지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해주면, 넌 뭘 해줄 건데?]

충분히 잘 해주고 있었다. 죽지 않고 용케 아버지에게 다리를 벌려주는 것만으로도 잘 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인 앞에서 그런 말은 할 수 없어, 속으로 삼켰다.

[키스해 줘.]

나이토는 굳은 듯 그 자리에 서서 바닥을 보았다. 문득 이 집에서 자신의 위치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교집합처럼 다 걸려있었다. 무거운 숨을 내쉰 나이토는 눈을 찌푸리며 정면을 보았다. 햇빛이 없는데도 눈부실 정도로 찬란한 장식들에 눈이 지끈거렸다.

“아버지 마음대로 하시면서….”

[네가 해주는 건 또 다르지. 그래서 해줄 거야, 말 거야.]

나이토가 말이 없자 아버지가 웃음소리를 고의적으로 흘렸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있던 나이토는 포기한 듯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줄 테니까, 컨터 오지 말라고 해요.”

[거짓말하면 집에 가서 엉덩이 맞는 거야.]

입에서 저급한 욕이 나올 뻔했다. 겨우 욕을 눌러 참고서, 컨터에게 걸어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아버지의 명령을 들은 컨터가 충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회장님.”

컨터가 휴대전화를 나이토의 귀에 대주었다. 나이토는 전화기를 낚아챈 후, 등을 돌렸다. 그 누구도 아버지와 하는 대화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이토.]하고 말했다. 숨을 천천히 내쉰 나이토가 차분히 대답했다.

“왜요?”

[오후 7시까지 들어와. 그 안에 내가 가니까. 허튼짓하지 말고. 알았어?]

“네.”

전화를 끊은 나이토는 빠른 발걸음으로 집에서 나왔다. 비가 밖에서 봤을 때보다 더 세게 내리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데리고 나올 걸 그랬나. 약간 후회가 되었으나 집을 벗어나자 금세 후회는 사라졌다.

드디어 집을 벗어난다. 억압하던 아버지로부터 하루라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았다. 비록 오후 7시까지 들어가면 아버지와 마주해야 하지만, 그 전까지는 오롯이 자신의 시간이었다.

비가 와서 한적한 인도,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사람들, 고소한 냄새가 나는 빵집, 커피 향이 은은한 카페. 나이토는 평범한 일상에 울컥해져 걸음을 멈췄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자신은 달라져 있었다. 예전처럼 잘 웃지 못하고, 만나는 사람이 없으니 얘기도 하지 않는다. 집에 갇혀 아버지와 섹스하고 느끼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버지의 손끝만 스쳐도 숨이 달아오르고, 머리가 멍해지고… 아버지의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팔이 올라가 아버지를 안았다.

수없이 부딪힌 입술이 얼마나 달콤한지 몸이 기억하고 아버지를 찾고 있었다.

‘내가 주는 돈을 쓰고, 내가 주는 밥을 먹고, 내가 사는 집에서만 살면 돼. 넌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아버지가 턱을 부드럽게 잡으며 말했다. 그는 진심으로 순종적인 아들 그 이상을 원하고 있었다. 아들이자 연인이 되길. 그의 눈이 그걸 원하고 있었다.

그의 품에 안겨 목을 끌어당겨 안으며 물었다.

‘그런 한심한 인간을 원하는 거야?’

아버지는 드레스 셔츠 단추를 한 손으로 풀면서 키스했다. 서서히 입술을 부딪쳤다가, 느리게 뗀 그가 눈을 마주치더니 웃었다.

‘그래.’

아버지가 드러난 나이토의 맨살을 만지며 속삭였다.

‘네가 쓸모없다니. 넌 누구보다 쓸모 있는 인간이야.’

‘아버지한테 쓸모 있는 사람인 거지.’

그의 손이 내려와 등을 쓸어 만졌다. 겨우 만졌을 뿐인데, 그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가 뜨겁다. 나이토는 멍한 얼굴로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가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한 미소를 머금으며, 입술에 대고 속삭였다.

‘그거면 됐다니까. 남들처럼 아등바등 일하면서 살 필요 없어.’

아버지와 몸을 섞기 전,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던 나이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평범하지 않은 집에서 태어났으나, 레이얀을 만나 미래는 그래도 밝아질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나이토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언제부터 레이얀 생각을 안 하게 됐지?

그 생각이 나이토의 머리를 강타했다. 레이얀과 사귀면서 하루라도 레이얀 생각을 안 한 적이 없었다. 일상 얘기부터 시작해서 인생에 관한 이야기도 진솔하게 나누었다. 눈을 뜨면 레이얀을 만나러 갈 생각에 행복했고, 주말에 레이얀과 놀면 세상을 다 가진 듯 충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머리에서 레이얀이 점점 옅어지더니 최근엔 아예 들지 않았다. 오로지 이 집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이 나이토를 사로잡은 것이다. 인도 한가운데에 서서 레이얀을 떠올리던 나이토는 허망하게 웃었다.

‘아버지만 생각나게 될 거야.’

아버지의 말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공포에 짓눌려 원하지 않게 머리도 아버지로 가득 찬 것이다. 아버지를 향한 분노보다 자신을 향한 혐오감이 커졌다. 나이토는 들고 있던 우산을 놓았다. 빗물이 그대로 나이토의 몸 위로 떨어졌다. 금세 몸이 젖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이토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나이토는 비를 맞으며 무릎을 잡고 간신히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다.

도망가야 해. 진짜 도망가지 못하면, 아버지한테 다 먹히고 말 거야.

떨리는 몸에 힘을 주고 일어섰다. 떨어진 우산을 집어 들었다. 나이토는 흠뻑 젖은 몸을 이끌고 택시를 잡았다. 아인의 집까지 택시로 20분 정도 걸렸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 피로가 몰려와 꾸벅꾸벅 졸다가, 택시기사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인의 저택이 보였다. 빗물에 흠뻑 젖어 청초해진 정원이 보였다. 솜사탕같이 생긴 옅은 분홍 꽃들을 보던 나이토는 벨을 꾹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아인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야.”

[나이토?]

“어.”

[웬일이야…. 차 보낼 테니까 타고 들어와.]

아인이 어서 오라는 듯, 말을 마쳤다. 우산을 쓰고 하염없이 앞만 보며 차가 오길 기다렸다. 저 멀리서 고급 외제 차가 보였다. 처음 보는 차종이었다. 그새 지겨움을 못 이기고 차를 바꾼 듯했다. 아버지와 비슷한 취향이었다. 여기서도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떠올린 나이토는 미간을 찡그렸다.

문이 열리고, 차가 나이토 앞에 섰다. 나이토가 뒷좌석 문을 열어 올라탔다. 익숙한 기사가 보였다. 짧게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한 나이토는 뒷좌석에 나른하게 앉아 눈을 깜박였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비가 무척 많이 내려, 세상은 물안개로 자욱했다. 차가 계속 달려 아인이 머무는 건물에 도착했다. 자연스러운 태도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홀에 아인이 술병을 든 채 서 있는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아인의 몸에서 술 냄새가 훅 밀려왔다.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넌 뭐했기에 다 젖었어?”

“비 맞았어.”

아인이 인상을 썼다. 아인이 발로 우산을 걷어찼다.

“우산 있는데 왜 맞아?”

“글쎄. 우선 들어가도 될까? 좀 춥거든.”

아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들어오라는 듯, 몸을 비켜줬다. 아인은 나이토를 욕실에 데려갔다. 천천히 비에 젖은 옷을 벗었다. 문제는 그 후였다. 체구가 작은 아인의 옷이 맞을 리 없었다. 작은 옷 때문에 몸에 덕지덕지 남아있는 흔적을 보일 것이다.

샤워 부스에서 씻는 내내, 고민에 사로잡혔다. 흔적을 뭐라고 변명해야 할까. 아버지의 흔적들은 너무 지독해서, 아무리 씻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멍한 눈으로 팔과 허벅지, 배에도 남은 손자국을 보던 나이토는 눈을 감았다. 묵직한 숨을 뱉어내며 눈을 떴다.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거울을 보는데, 아인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깜짝 놀라서 근처에 있던 수건으로 아래를 가렸다.

“말은 하고 들어와!”

“몇 번이나 말했어.”

아인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아인은 손에 들고 있던 옷을 던졌다.

“너 요새 화끈한 누님이랑 사귀냐? 몸이 장난 아니야.”

당연히 아버지와 섹스한다고 생각 못 하는 모양이다. 안심이 된 나이토는 황급히 옷을 입었다. 무난한 하얀 티셔츠에 무릎이 살짝 보이는 반바지였다. 아인이 보는 앞에서 옷을 빠르게 입은 후, 밖으로 나왔다. 나이토가 씻는 사이 아인은 옷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나이토가 먹을 음식까지 차려놓았다. 막 만든 것처럼 따뜻한 도넛이었다. 도넛을 한 입 베어 문 나이토는 아인이 건네주는 우유를 받아들었다. 툴툴거려도 신경은 잘 써주는 친구 덕분에 웃음이 피식 나왔다.

도넛과 우유를 얌전히 먹는 나이토를 지그시 보던 아인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인 아인은 연기를 내뿜으며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근데 너 여자한테 안 서잖아. 레이얀만 생각하는 네가 다른 사람이랑 할 일도 없고.”

입에 든 도넛 때문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도넛을 다 먹은 나이토는 애써 태연하게 행동했다.

“여자하고 할 수도 있지.”

“안 믿기는데.”

아인이 짓궂게 웃으며 담배를 피웠다. 아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나이토는 헛기침을 했다. 최대한 감정동요 없이 행동해야 했다. 나이토는 여기로 오는 내내 고민했던 것을 결심했다.

레이얀과 헤어져야 한다. 그래야 도망칠 때 레이얀에게 해가 안 갈 것이다. 레이얀이 공작의 사생아이긴 해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

“나 레이얀하고 헤어질 거야.”

아인은 놀라는 기색 없이 눈을 가늘게 떴다.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인 아인은 담뱃재를 털며 의심 가득 한 눈초리로 나이토를 보았다.

“너한테 무슨 일 생긴 거 맞네. 그렇게 나오는 거 보니까.”

“내가 어떻게 나오는데?”

나이토가 짜증을 내자 아인이 담배를 끄고서 가까이 다가왔다. 너무 가까워져서 부담스러운 아인의 얼굴을 밀었다. 밀려난 아인은 소파에 늘어지게 앉더니 턱을 괴고서 말했다.

“네가 생각해 봐. 이 세상 사랑꾼인 것처럼 굴던 애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되더니, 찾아오자마자 대뜸 헤어지겠다고 하잖아.”

“연락이 안 된 건 내가 아파서 그랬던 거야.”

아인은 침착하게 대꾸했는데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의심이 확신으로 돌아선 듯,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

“레이얀도 그러더라고. 아파서 연락을 못 했다고. 둘이 동시에 그렇게 얘기하니까 더 수상하네.”

“…레이얀이 왔었어?”

“걔한테 연락을 했는데 안 봤더라고. 어머니한테 연락하니까 입원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찾아갔더니, 걔가 그냥 아파서 연락을 못 했다고 했어. 그런데 딱 보니까 아니야.”

아인이 까닥거리던 발을 멈췄다. 그는 걱정이 스민 얼굴로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레이얀은 누구한테 맞은 모습이었어. 너는 연락이 안 되고. 혹시 너희 아버지가 레이얀하고 네 사이 안 거야? 그래서 그렇게 때린 거야?”

아인의 예감은 예리했다. 레이얀과 나이토 사이에 일어난 일을 제법 그럴싸하게 맞춘 것이다. 나이토는 이대로 가다간 아인이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알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여기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 아인이 더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의자에 꼼짝없이 앉아있었다. 나이토가 불안함에 침묵을 지키고 있자 아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자리를 비웠다. 잠시 후, 아인이 왔을 때 손에는 맥주가 들려있었다.

“원래 이런 얘기에는 술을 마셔야 해. 마셔.”

“아버지가 알면….”

머뭇거리며 아버지 얘기를 꺼내자 아인이 질색했다.

“20살이 된 지 반년도 넘었어. 술도 못 마셔? 그냥 마셔.”

이 술을 마시고 들어가면 아버지가 어떤 말을 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늘 몸으로 치고받고 싸우던 사이였다. 다른 방법으로 반항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화난 얼굴이 무척 보고 싶었다.

나이토는 결심한 듯 맥주 캔을 땄다. 알코올 냄새가 보슬보슬 올라왔다. 나이토는 단숨에 맥주를 반 이상 비운 후, 캔을 내려놓았다.

말없이 맥주를 비운 나이토는 두 번째 맥주에 손을 댔다. 맥주만 마신 탓에 배가 불러와 나이토는 다른 술을 요구했다. 아인은 별 말없이 술병을 들고 왔다.

“이런 거 먹어본 적 없지?”

“응.”

아인이 술 마시는 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얼음을 세 개정도 넣고, 술을 따르면 돼. 많이 젓지 말고.”

“마셔도 돼?”

호박색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굉장히 썼다. 혀가 알코올에 지배당하는 듯했다. 나이토가 인상을 찡그리자 아인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아인은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치즈를 포크로 찔러 입에 넣어주었다. 치즈를 먹자 그나마 살 거 같았다. 치즈를 더 먹은 나이토가 술을 재차 마셨다.

“레이얀하고 헤어지겠다는 거, 진심이야?”

“응.”

그새 술기운이 올라왔다. 나이토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술 마시는 걸 멈추지 않았다. 아인의 손에서 술병을 뺏은 나이토가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호박색 술이 나이토의 마음처럼 흔들거렸다. 아인이 걱정스러운지, 인상을 찡그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후회하지 않겠어? 레이얀이 너 많이 보고 싶어 해.”

“나도 보고 싶어.”

술이 들어가니 발음도 꼬였다. 나이토가 울 듯한 얼굴로 아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헤어져야 해. 레이얀을 위해서.”

아인은 심상치 않은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레이얀을 위해서 헤어져야 한다는 모순적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뜸을 들이던 아인은 술만 벌컥벌컥 마시는 나이토의 손을 잡았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내려서 나이토의 손을 보던 아인은 손목의 이상한 흔적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봐도 묶인 자국이었다. 아까는 스친 듯 봐서 잘 몰랐으나 가까운 곳에서 보니 선명하게 잘 보였다. 누군가에게 세게 잡힌 듯한 자국도 있었다.

“너 손목이 왜 이래?”

나이토가 취했는지, 손목이 잡혀도 가만히 있었다. 나이토는 그저 멍한 얼굴로 아인을 보고 있었다. 아인이 “나이토.”하고 불러도, 나이토는 눈만 깜박이며 아무 말이 없었다.

“…넌, 내가 용서 못 할 짓을 저질러도 이해해줄 거야?”

“당연하지. 난 네 친구잖아.”

나이토가 안심한 듯 웃었다. 이 집에 와서 처음으로 보는, 진심이 담긴 미소였는데도 아인은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나이토가 우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거면 됐어.”

거기까지 말한 나이토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술에 취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신발까지 구겨 신고 문을 열었다. 어디까지 하나, 아인이 지켜보았다. 나이토는 문을 연 뒤, 고꾸라져 넘어졌다. 보다 못한 아인이 달려가 일으키자, 나이토는 이미 기절한 상태였다. 아인은 올 때처럼 비에 젖은 나이토를 낑낑거리며 끌고 들어왔다. 아무래도 보호자에게 전화해서 데려가라고 해야 할 모습이었다. 나이토가 알면 왜 전화했냐고 뭐라 할 테지만, 지금은 별 방도가 없었다. 아인은 나이토의 휴대전화를 꺼냈다. 비밀번호가 걸려있지 않아서 바로 통화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의 번호가 없었다. 연락하는 사람이 없는지 연락처도 빈약했다.

“설마 이 사람이 아버지인가?”

통화목록에 ‘엘시’만 가득했다. 뚫어지게 그 이름을 보던 아인은 마른 침을 삼키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나긋나긋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아인을 반겼다.

[무슨 일이야.]

나이토가 늘 말하던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뭔가 포악하고 제멋대로 굴 것 같은 목소리였는데, 이 목소리는 너무 정중하고 깔끔했다. 군더더기 없는 발음과 우아하게 퍼져가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직감할 수 있었다. 얼굴도 매우 잘 생겼을 것이다.

[나이토?]

가슴을 울리는 다정한 목소리에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신을 차린 아인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 저는 나이토 친구 아인이라고 합니다.”

[…아인 플랜챗?]

나이토가 자기 성까지 알려준 건가. 너무나 빨리 나온 성에 기분이 이상했다. 보통은 아들 친구 이름만 기억하지 않나. 그런 의심은 잠시 누른 아인이 잠든 나이토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네. 저희 집에 나이토가 왔는데, 애가 너무 취해서요. 데려가셔야 할 거 같아서….”

[취했다고?]

아버지가 나긋하게 웃었다.

[내 아들은 술 안 먹는데.]

아인은 네가 먹인 거냐고, 간접적으로 묻는 목소리에 서둘러 말했다.

“어쩌다 보니 마셨어요.”

레이얀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될 것 같아 최대한 둘러댔다. 아버지는 더 이상 듣기 싫었는지 간결하게 말했다.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 주소 문자로 보내주겠어?]

굉장히 부드러운 어투에 저절로 ‘네, 네.’하며 대답했다. 문자로 주소를 보내자 아버지에게 금세 답장이 왔다.

- 3시간 내로 갈게 :)

귀여운 스마일 표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아는 나이토의 아버지는 이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아인은 자신보다 키가 큰 나이토를 현관문 근처에 앉혀놓았다. 비에 젖어서 추울까 봐 이불도 덮어주었다. 소파에 앉아서 축 늘어져 잠든 나이토를 보았다.

나이토는 백설 공주 같은 이미지가 있었다. 검은 머리에 하얀 피부, 무표정한 얼굴. 입술 색도 보기 좋은 붉은색이었다. 늘 뚱하고 무표정한 얼굴이어서 그렇지, 웃으면 더 잘생긴 얼굴이었다. 태양 같은 이미지의 레이얀과 함께 있을 때면 자주 웃어서 보기 좋았다.

그랬던 친구가 버림받은 얼굴로 우니, 안쓰러웠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레이얀에게 가지 않고 자신에게 온 걸까. 레이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말을 안 해주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아인은 제대로 된 설명을 안 해주는 친구들이 야속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TV를 켜서 무료 영화를 보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휴대전화가 울리는 소리에 눈을 슬그머니 떴다. 낯선 소리를 따라 일어났다. 나이토의 휴대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엘시]

“오셨어요?”

[응. 다른 사람이 문을 열어줘서 들어왔어.]

그제야 나이토가 자신의 집으로 찾아왔고, 술까지 거나하게 취했다는 걸 깨달았다. 고개를 힐긋 내리자 술에 취해 잠든 나이토가 보였다. 아인은 그가 집 앞까지 왔다는 소리를 듣고, 천천히 문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축축한 빗물과 눅눅한 습기가 아인의 몸을 감쌌다.

그러나 눈앞의 남자 때문에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안녕. 반가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손을 내미는 나이토의 아버지는 정말 잘 생겨서 입이 떡 벌어졌다. 부드럽게 접히는 눈매는 명화 속 주인공처럼 부드러우면서 섬세했다. 새초롬해서 도도하게 생긴 나이토와 느낌이 달랐다.

푸른빛이 감도는 검은 정장을 입은 그는 귀족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고급스럽고, 우아하나, 사람을 은연중에 압도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이토가 종종 말하는 압박감이 이거였을까. 아인은 엘시의 얼굴에 홀린 듯 눈을 깜박거렸다. 그가 너무 잘 생겨서 정신을 놓고 있었다. 정신을 다잡은 아인이 손을 맞잡았다. 큰 키에 어울리게 손도 매우 컸다.

“아, 저는 아인 플랜챗이라고….”

“알아.”

아버지는 아인의 손을 가볍게 잡고 악수했다. 그의 시선은 곧 나이토에게 꽂혔다. 아버지는 나이토를 물끄러미 보더니 아버지다운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아들을 챙겨줘서 고마워.”

그렇게 얘기한 아버지가 내민 건 두툼한 돈 봉투였다. 깜짝 놀랐으나 돈 봉투를 거절하지 않았다. 부잣집 아들로 부족함 없이 컸지만, 아인은 늘 돈을 좋아했다. 이 세상은 돈이 최고라는 모토로 사는 아인은 한 푼도 무시하지 않았다.

돈 봉투를 열어 금액을 확인했다. 딱 봐도 액수가 어마어마했다. 아인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완전 좋은 아버지였다. 아인은 약 빨면서 여자와 뒹구는 자기 아버지와는 다르게 부드럽고 자애로운 면모에 감동했다.

아버지는 나이토를 구둣발로 툭툭 건드렸다. 그래도 일어나지 않자, 허리를 숙여 나이토를 안아 들었다. 단번에 나이토를 안아 드는 괴력에 아인은 깜짝 놀랐다. 체격이 좋아서 힘도 좋겠구나, 생각했으나 저 정도일 줄 몰랐다. 로맨스 영화에서 볼 법한 두 사람의 모습에 아인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는 시선이 너무 달았다. 아인의 볼이 미미하게 붉어졌다. 이상하게도, 눈을 감고 아버지 품에 안긴 나이토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나는 이만 가볼게. 잘 지내.”

“네, 안녕히 가세요.”

그가 살포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가슴이 순간 두근거렸다. 친구 아버지라는 걸 깨닫고 고개를 저었다.

*

술에 취한 나이토는 집에 돌아올 때까지 아버지에게 포근히 안겨있었다. 아버지는 나이토를 유리 인형 다루듯,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혔다. 불편한 정장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푼 아버지는 아들 옆에 앉아서 하얀 얼굴을 보았다. 술을 마셔서인지 더 창백하게 보였다. 뺨을 감싸자 나이토가 으응,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게 왠지 기분이 나빠 뺨을 잡고 당겼다. 얼굴이 가까워지자 술 냄새가 진하게 올라왔다. 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이토.”

이름을 부르자 반응이 없었다. 몇 번을 불러도 반응이 없기에 뺨을 때렸다. 가볍게 두세 대 때리자 나이토가 눈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아빠…?”

아버지는 말없이 아들의 머리 옆에 손을 댔다. 고개를 숙였다. 나이토가 반사적으로 피하려 했다. 하지만 나이토는 침대에 누워있어서 아버지를 피할 수 없었다. 꼼짝없이 아버지의 상체에 갇혀서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아직 술이 깨지 않아 반쯤 정신이 풀린 눈을 깜박거렸다. 아버지는 술 냄새에 범벅이 된 나이토를 보며 짧게 웃었다. 아들의 귀여운 반항이 마음에 든 듯 아들의 뺨을 문지르며 말했다.

“술은 적당히 해.”

“내가 먹겠다는데 아버지가 무슨 상관이야.”

혀를 술에 담갔는지 발음이 엉켰다. 아버지는 몸을 일으켜 스탠드 옆에 두었던 생수를 가져왔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자 머리가 급격하게 어지러워 나이토는 머리를 붙잡고 끙끙거렸다. 아버지가 건네주는 물을 받아든 나이토가 단숨에 한 병을 비웠다. 술을 마신 터라 갈증이 심했기 때문이다. 차가운 물을 마시자 정신이 들었는지 나이토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이토는 익숙한 침실에 가느다란 숨을 뱉어냈다. 숨에서 술 냄새가 났다. 인상을 찡그린 나이토는 아버지를 보며 물었다.

“아버지가 나 데리고 왔어?”

“아인이 전화했어. 너 데리러 오라고.”

나이토가 침대에 풀썩 누워서 눈을 반쯤 떴다. 검은 융단 같은 어둠을 등진 아버지는 벽화에 그려진 악마 같았다. 잘생겼고, 아름답지만 치명적이고 타락했다. 가족을 버리고 성공에 매달려 수도로 올라갔던 남자. 처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성공을 일 순위로 두었던 아버지가 조건 같은 걸 걸면서 쉽게 나이토와 알토를 받아줄 리가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순진했던 선택이었다. 그걸 모르는 건, 나이토밖에 없었다.

진지한 얘기를 하려면 술 힘을 빌려야 한다는 말처럼, 나이토는 술에 의존해 아버지에게 궁금했던 걸 묻기로 했다.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 물어볼 것 같았다.

나이토는 자신의 손을 아버지의 손등에 올렸다. 같은 남자인데도 아버지의 손이 훨씬 컸다. 아버지의 손을 만지자, 아버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녀석이 도대체 왜 이러나. 의심으로 똘똘 뭉친 눈빛이면서도, 내심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날 언제부터 좋아했어?”

“그게 중요해?”

“나한테는.”

나이토는 몸을 빙글 돌려 아버지 쪽으로 누웠다. 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는 게 느껴졌다. 눈을 감은 채,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사랑이라고 했지만, 나는 사랑 같지 않단 말이야.”

아버지가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쓸어 올려 줬다. 눈을 뜨자, 요기가 감도는 듯한 자색 눈이 뚫어지게 쳐다보는 게 보였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목에 팔을 둘렀다. 아들의 적극적인 스킨십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버지가 나이토에게 안겼다. 나이토의 쇄골 부근에 고개를 내린 아버지는 드러난 살에 키스하며 말했다.

“확실한 건, 내가 그 새끼보다 널 먼저 좋아했다는 거야.”

나이토는 실없이 웃었다. 그는 아버지를 품에서 떼어냈다. 순순히 일어난 아버지가 제법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내가 먼저였어.”

“아들한테 그런 감정 느끼는 거,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

“좋아하는 게 넌데, 그럼 어떻게 해야 돼?”

나이토는 순간적으로 불쑥 들어오는 아버지의 물음에 할 말을 잃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는데, 아버지가 몸을 숙여 입술을 만졌다. 아버지의 향수 냄새가 너무 진했다. 질식할 거 같아서, 아버지의 옷자락을 잡고 매달렸다.

“좋아한다면서, 사랑한다면서 왜 그렇게 때렸던 거야?”

“네가 말을 안 듣잖아.”

아버지가 인상을 썼다.

“알토는 알아서 기는데, 너는 그게 아니었으니까. 맞을 때는 잠깐 기죽어도 또 대들잖아.”

“내 잘못이라는 거야?”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그는 밤하늘보다 짙고, 청아하게 빛나는 검푸른 눈을 지그시 지켜보다 커다란 손으로 가렸다. 아버지의 온기가 눈꺼풀이 닿았다. 그의 손이 눈을 감으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이제 자.”

“이런 게 사랑인 거야? 나 너무 아픈데….”

나이토가 술기운에 울먹거리며 아버지의 손목을 잡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칭얼거림이 좋았는지, 소리 내서 웃었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뺨을 감싸고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오랜만에 그의 다정함에 취한 듯, 나이토가 그의 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이게 어떻게 사랑이야… 아들하고, 아빠가….”

“내가 널 사랑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나이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게 힘들었다. 자신은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랑이었다. 강제적으로 시작한 관계였지만, 분명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의 숨소리만 들려도 머리가 마비되어 갔다.

“나는….”

좀 더 다른 사랑을 하고 싶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가 눈을 감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버지는 이제 그만하고 자라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릴 때와 같았다. 아프던 자신을 달래주던 손길과 같았다. 달라진 건 자신뿐이었다.

나이토는 눈을 겨우 떠서 아버지를 보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얼굴이 지독하게 아름다웠다. 짙푸른 어둠을 등진 그의 얼굴에 정신을 놓고 싶었다. 잡아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아버지가 손을 꼭 잡았다.

“네가 날 사랑하게 된다면….”

아버지가 중얼거렸지만, 끝까지 듣지 못했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을까. 평온한 자색 눈동자를 보던 나이토는 결국 눈을 감았다. 아버지는 눈물을 매달고 색색 자는 아들의 얼굴을 사랑스러운 눈을 보았다.

아버지가 몸을 일으키더니 웃었다. 발밑에 뒹구는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주었다. 가슴팍을 토닥여준 아버지가 들릴 듯, 말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날 사랑하게 된다면, 너만 다정하게 대해줄게.”

넌 내 아들이잖아. 그리고 하나뿐인 내 연인이잖아.

아버지는 속으로 그 말을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

“머리 아파….”

목이 타는 듯한 갈증에 눈을 떴더니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 왔다. 나이토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숙취에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속은 울렁거리고 머리는 계속 아팠다. 일어나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나이토를 알아챈 건, 옆에서 같이 자던 아버지였다. 침착하게 스탠드 불을 켠 아버지는 구석에서 혼자 머리를 싸매고 있는 나이토를 보더니 한숨을 내셨다. 아버지가 일어나서 어딘가로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아버지의 손이 팔을 잡아당겼다.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자, 아버지가 벌어진 입에 약을 넣어주었다.

“물 마셔.”

당장 이 숙취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이토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다 마신 잔을 쥐고 있었다. 아버지가 잔을 가져가 가지런히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나이토는 드문드문 끊긴 의식을 더듬었다. 되게 중요한 말을 한 것 같았으나 기억나는 게 도통 없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은 채, 나이토는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난 어제 아버지가 나랑 섹스할 줄 알았어.”

아버지가 소리 내서 웃는 게 들렸다. 쾌활하게 웃은 아버지가 냉큼 옆으로 왔다.

“내가 철칙이 있거든. 약쟁이랑 안 하고, 술 취한 사람이랑 안 하고, 미성년자랑 안 하는 거.”

무겁게 매달려오는 아버지를 밀려 하는데, 아버지가 도리어 힘을 줘서 안았다.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숙취에 시달리는 몸은 물 먹은 스펀지처럼 무거웠다. 포기하고 가만히 안겨있었다. 아버지는 나이토를 안아 올렸다. 어디로 가나 싶었는데, 눈을 돌려보니 욕실이었다. 아버지는 나이토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웠다. 아버지는 나이토가 입고 있는 옷을 벗겼다. 가만히 서서 아버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모든 게 귀찮았다.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 던진 아버지는 나이토를 이끌었다. 아버지는 샤워기를 들고, 나이토의 몸을 뜨거운 물로 적셔줬다. 눈을 깜박이며 아버지의 가슴팍만 보았다. 근육이 웬만한 젊은 사람보다 더 좋았다. 팔 근육도 매우 단단했다. 아버지는 강아지처럼 순하게 구는 나이토를 빤히 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왜 이렇게 얌전해?”

“귀찮아.”

잔뜩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버지는 꼬락서니가 심각한 아들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토의 몸을 꼼꼼하게 씻긴 아버지도 씻었다. 다 씻은 후에 아버지가 손에 들려준 건 양치 도구였다. 말없이 이를 닦자, 아버지는 욕조에 물을 받았다.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운 아버지가 다가와 키스했다. 촉촉한 혀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의 혀가 능수능란하게 입안 곳곳을 누볐다. 아버지라는 생각만 안 하면 끝내주는 키스였다. 춥, 하고 가볍게 입술을 빨아들인 아버지가 번들거리는 입술을 닦아주었다.

“머리가 너무 아파….”

나이토가 아버지의 팔에 매달려 앓는 소리를 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턱을 들어 올려 얼굴을 보더니 눈웃음을 지었다. 매혹적인 눈웃음이었다.

“안 아프게 해줄게.”

아버지는 나이토를 서게 하고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하고 멍하니 아버지를 보는데 아버지가 나이토의 성기를 잡고 입을 벌리는 게 보였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기 전에 아버지가 성기를 삼켰다. 촉촉하고, 적당히 뜨거운 입안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 성기가 반응했다. 나이토는 얼굴을 붉히며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꽉 잡았다.

“아…!”

나이토는 아버지의 것을 버겁게 삼켰는데, 아버지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나이토의 성기를 다 삼켰다. 강하게 빨아주자 눈앞이 아찔해졌다.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미치게 좋았다. 아버지의 머리를 잡고 헐떡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고 올라오는 쾌감에 못 이겨 다리가 떨리며 숨이 거칠어졌다. 얼굴을 찌푸리고, 눈을 꾹 감은 채 덜덜 떨며 느끼는 나이토를 보며 아버지는 성기를 문 채 웃었다. 아버지가 고환 부분까지 핥아주자 주저앉을 뻔했다. 겨우 힘을 줘 버틴 나이토는 아버지가 한껏 힘을 줘, 성기 전체를 빨아주는 순간 절정에 달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정액을 손바닥에 뱉었다.

“시, 싫어. 이런 거.”

“좋았으면서.”

아버지가 가볍게 무시했다. 위압적으로 나이토 앞에 선 아버지는 손을 뒤로 옮겼다. 나이토의 정액이 나이토의 내부로 들어갔다. 뻐근하게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너 좋아서 바로 싸더라.”

“그딴 식으로 얘기 좀…아읏!”

“물론 아버지가 끝내주긴 했지만. 이번엔 네가 효도해봐, 아들.”

아버지가 구멍을 더 벌렸다. 좁은 구멍이 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나이토가 아버지가 팔뚝을 잡았다. 손가락 한 개가 금세 들어와 내부를 휘저었다.

“이러는 거 좋아하잖아.”

“아…싫어.”

아버지의 손가락이 구멍을 비집고 하나 더 들어왔다. 두 개를 세워서 내벽을 긁어 내리자, 눈앞이 아찔했다. 나이토가 숨을 삼키며 아버지의 어깨에 매달렸다.

“언제쯤 내가 아들 효도를 받아볼 수 있을까.”

“제, 제발…흑…! 아!”

손가락 세 개가 들어와 내부를 채웠다.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는 일부러 감질나게 하려는 듯, 손가락 세 개를 이용해 느릿하게 움직였다. 내부를 넓히려는 행위였지만 오히려 쾌감이 올 듯 말 듯 해 미칠 거 같았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넓은 등에 팔을 둘렀다. 아버지를 잡지 않으면, 아랫배에서 퍼지는 이 은근한 쾌감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넣어줄까?”

아버지가 내부의 주름을 손가락으로 음미하는 것처럼 누르고 매만졌다. 나이토는 고개를 저었다. 죽어도 넣어달라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남은 양심이었다.

“넣어주길 바라잖아. 질질 싸고 싶지 않아?”

나이토가 끝까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집요했다. 그는 계속 줄 듯, 말 듯 한 쾌감을 주며 안에 불을 지폈다.

“말 안 하면 안 넣어줄 거야.”

나이토는 손가락이 동시에 내벽을 긁어대는 통에 움찔거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길고, 단단한 것이 안을 마구잡이로 쑤셔주길 바라고 있었다. 계속해서 자신을 괴롭히는 이 감질나는 쾌감이 견디기 힘들었다. 나이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버지를 보았다. 음란하게 내부를 쑤시는 주제에,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사람인 것처럼 살포시 눈을 접어 웃고 있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목에 팔을 두른 채 매달려 우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넣어줘.”

아버지가 나이토의 몸을 돌렸다. 무언가를 잡을 새도 없이 아버지의 성기가 내부로 잔인하게 들어왔다. 반 이상 단숨에 들어왔다. 숨을 참은 나이토는 인상을 쓰며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성기가 움직이지 않았다. 단단하게 발기한 성기는 내벽을 누르며 남아있을 뿐, 거칠게 움직이지 않았다. 나이토가 반쯤 정신이 나간 눈으로 아버지를 돌아보는데, 아버지가 나이토의 성기를 잡으며 나른하게 말했다.

“또 뭘 해줄까.”

“…알잖아.”

나이토가 포기한 듯 눈을 감았다. 아버지는 웃음을 터트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버지의 손이 느릿하고, 농밀하게 성기를 애무했다. 아버지의 손이 힘을 실어 쓸어주자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몸이 전율하고, 입술에선 뜨겁게 달아오른 숨이 새어 나왔다. 아버지 때문에 다쳐서 흉이 남은 손으로 강인하고 단단한 손목을 꽉 잡았다.

“어떻게 해줘?”

성기가 살짝 움직였다. 좀 더 들어와 느끼는 지점을 누를 것처럼 다가왔다. 겪어본 쾌감이 다가오길 바라고 있었다. 지금은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고 있었다. 나이토는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거울을 통해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도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았다.

그토록 싫어하던 아버지와 섹스를 하면서 느끼는 아들이 보였다. 아버지와는 안 된다고 외치면서, 아버지의 밑에서 헐떡거리는 음란한 아들이었다. 그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의 손에 잡힌 성기가 보였다. 아버지 때문에 발기해서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성기를 만져 주는 걸로는 부족했다. 더 강한 자극이 필요했다. 성기가 들어와 안에 정액을 듬뿍 싸주는 걸 바라고 있었다.

“박아줘, 아무 생각 안 나게.”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잊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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