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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4/8)

2부

선선하면서도 풋풋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잠에 취해 그 냄새가 무엇인지 모르던 나이토는 잠결에 깨달았다. 바다 냄새였다. 나이토는 눈을 떴다. 멀미 때문에 약을 먹고 차에 탄 터라, 눈을 완전히 뜨고 정신을 차리는데 시간이 걸렸다.

눈을 뜨자 왼쪽에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쨍쨍하게 지면을 달구는 태양, 그 아래에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는 TV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귀족들의 소유로 추정되는 호화로운 별장이 보였다. 다채로운 색을 뽐내는 별장 뒤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숲이 있었다. 모두 귀족들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상의 그 어떤 아름다움도 나이토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맛있는 걸 먹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았고, 재밌는 걸 보아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욕구도 사라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상태를 알고 있었으나 딱히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나이토는 술도, 약도 안 된다는 아버지의 강한 신조 때문에 안에서부터 썩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걸 뻔히 알면서도 딱히 별다른 말이 없었다. 오히려 어디까지 심해지는지, 알고 싶다는 듯 지그시 나이토를 응시했다.

“다 왔어.”

아버지의 목소리만 들어도 몸이 흠칫 떨렸다. 나이토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자신에게 쏟아진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의 손에 선글라스가 들려있었다. 아버지가 직접 선글라스를 씌워주었다.

“햇빛이 강해.”

“이런 건 언제 챙긴 거야.”

나이토가 선글라스를 슬쩍 내리며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차에서 내렸다. 늘 칼같이 입던 정장이 아니라 간편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아버지는 언뜻 보기에 평범한 귀족 자제 같았다. 뒤로 넘겨 깔끔하게 고정하던 머리는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이마를 덮었다. 제멋대로 굴던 자색 눈동자도 선글라스에 가려져 있자 아버지의 얼굴이 유순하게 느껴졌다. 나이토가 늦게 내리는 사이, 이미 알토도 조수석에서 내려 아버지 옆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알토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자신만 빼면 완벽한 부자 사이 같았다. 어머니의 복제품 같은 자신과 달리 커갈수록 알토는 아버지를 닮아갔다. 알토는 형의 시선이 닿은 걸 알아챘는지, 슬그머니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삼삼오오 모여 내려가는 젊은 사람이 있었다.

나이토까지 차에서 내리자, 운전기사가 서둘러 다가와 짐을 내렸다. 알토와 아버지가 앞서서 별장으로 걸어가고, 그 뒤를 멜과 나이토가 따라갔다. 아버지의 별장으로 들어가자 관리인이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가볍게 관리인에게 손을 토닥인 아버지는 열쇠를 챙겼다.

“다들 퇴근해.”

“네?”

예상하지 못한 명령에 사람들이 되물었다. 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말했다.

“이번 휴가는 가족끼리 즐기기로 했으니까 가보라고. 너희들도 가서 놀아.”

그들은 난데없는 휴가에 좋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심지어 아버지는 두 사람에게 미리 준비한 돈까지 주었다.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아버지는 “잘 놀아.”라고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뚱하니 지켜보던 나이토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들한테는 온갖 짓을 다 했으면서, 아랫사람들한테는 다정다감한 아버지의 태도가 어이없었다. 그들이 사라진 걸 확인한 아버지가 문을 잠갔다. 알토는 알아서 짐을 집 안으로 옮겼다. 아버지는 연못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는 나이토의 등 뒤로 다가갔다. 그가 두 팔을 활짝 벌려 나이토를 안았다.

“더워.”

나이토가 짜증을 내며 벗어나려 했다. 아버지는 그럴수록 더 세게 안아오며 말했다.

“네가 바라는 대로 보냈잖아.”

이곳으로 휴가 오기 전, 나이토는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다른 사람이 있는 데서 하고 싶지 않으니 아버지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 달라고. 아버지의 목에 매달려 부탁하니, 아버지가 손목을 침대에 누르며 성기를 세게 박았다. 아버지의 성기와 연결된 부위가 찌르르하고 울렸다.

‘너 때문에 내가 별걸 다 하게 생겼어.’

짜증을 약간 내긴 했지만 아버지는 결국 그 약속을 지켰다. 다만, 그날 치러야 했던 대가가 혹독했다. 수치스러웠던 그날을 떠올린 나이토는 아버지의 품에서 거칠게 빠져나왔다.

“사람들 보는 데서 이런 짓 하지 마.”

“왜?”

나이토는 천연덕스러운 아버지의 질문에 인상을 썼다. 선글라스를 써서 아버지의 눈이 가려져 있었지만, 지금 아버지의 눈매가 훤히 보였다. 입술 끝이 체셔 고양이처럼 말려 올라간 걸 보니 필시 웃고 있을 것이다. 나날이 말라가고, 피폐해지는 자신과 달리 한층 더 젊어진 듯한 얼굴에 짜증이 치밀었다.

아버지는 능청맞게 다가와 나이토의 허리를 꽉 안았다. 근육으로 무장된 팔이 허리를 안자,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급기야 아버지는 남은 손으로 나이토의 턱을 만지며 말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야?”

당연한 이치였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성욕을 느끼고, 애인을 대하듯 농염한 스킨십을 하면 안 되는 게 이 세상의 윤리였다. 아버지와 자신이 상당히 틀어진 관계였다.

“아버지랑 아들이 밖에서 이러면 사람들이 오해한다고.”

호적상의 관계를 이야기해줘도 아버지는 손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도망가지 말라는 듯,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듯 강하게 옥죄어온다. 그의 팔이 주는 강인함이 안심을 주면서도, 성큼 다가오는 현실이 무서워 편하게 안길 수 없었다.

“누가 우리를 아버지와 아들로 보겠어.”

“…그래도 싫어. 이거 놔.”

나이토가 고개를 틀며 거부하자 아버지가 순순히 놓아주었다.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난 나이토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 주변은 귀족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별장도 띄엄띄엄 지어져 있었다. 상당한 거리감을 채운 것은 존재감이 뚜렷한 화사한 꽃들과 배경이 되어준 푸른 녹음이었다.

나이토는 키샨과 알토가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알아차린 후로 항상 주변을 경계했다. 안 그래도 예민했던 성격이 더 뾰족하게 변했다. 누군가의 시선만 느껴져도 몸이 움츠러들고, 숨이 가빠져 왔다. 나이토가 겁을 먹고 오들오들 떨 때면 그를 달래주는 건 항상 아버지였다. 늘 그렇듯, 뒤에서 포근하게 몸을 감싸오고 귀에 입술을 대고서 속삭였다.

‘괜찮아. 아빠가 있잖아.’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 정말 괜찮아질 거 같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의 목소리는 우아하고, 낮았다. 꼭 벨벳 같았다. 고급스러운 검은 벨벳이 귀를 감싸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가 귓바퀴를 감싸고 안으로 파고들 때면 목이 간지러웠다. 귀로 들어간 목소리가 목을 타고 내려와 사막화가 진행된 가슴에 닿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목소리는 작은 씨앗이 되어 황폐한 곳에 뿌리를 내렸다. 전혀 자라지 않을 것 같던 씨앗은, 싹을 틔웠다. 가슴을 쪼개며 자라나는 씨앗 때문에 겁은 더욱 많아졌다.

“밖에서는 나 만지지 마.”

나이토가 아버지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버지는 씩 웃었다.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눌러 참았다. 나이토는 아버지를 두고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관리인이 꾸준하게 관리해온 별장은 사치를 뛰어넘었다. 어느 정도의 돈이 쏟아졌는지 가늠도 안 되는 화려함에 질식할 것 같았다. 엘시는 유독 재산을 자랑하는 걸 즐겼다. 검소함과 겸손함이 미덕이라고 자부하는 귀족들과 다른 행보였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엘시는 자신이 성공했다는 걸 어떻게든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나 있었다.

천천히 구경하던 나이토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나이토가 향한 곳은 아버지와 머물게 될 침실이었다. 아버지의 취향답게 침대가 무척 컸다. 침대에 털썩 주저앉은 나이토는 베개를 손으로 눌러보았다. 쓸데없이 베개가 겹겹이 쌓여있어서 손이 푹 들어갔다. 나이토는 다른 손을 베개 아래에 넣었다. 매트리스와 얇은 시트 사이에 빈틈이 없을 것 같았으나, 손가락으로 비비적거리자 틈이 생겼다. 나이토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와 알토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제발, 지금 들어오지 마. 지금은 안 돼.’

초조함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이토는 재빨리 주머니에서 접이식 칼을 꺼냈다. 칼 자체는 작지만 날이 날카로워 단번에 찌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이토는 그 틈새에 칼을 넣어두고, 언제든 손을 넣어 칼을 뺄 수 있게 틈을 더 벌렸다. 시트가 벌어진 것이 티 나지 않게 풍성한 베개들로 눌러 감춘 후 일어났다.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나이토는 숨을 몰아쉬었다.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자 계속 가슴이 뛰었다. 성공해야 아버지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 아버지의 영역에서 영원히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남의 눈이 무섭고, 버겁고…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한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감정을 주는 것들이 사랑일 리가 없다. 이렇게 괴로운 게, 정말 사랑인 걸까.

하지만 아버지만 생각하면 머리가 백지가 되고, 가슴이 뛰는 것이 이상하기도 했다. 볼을 발갛게 물들이고 헐떡이며 올려다볼 때면, 다정하게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이 보였다. 그럴 때면,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보며 빌었다.

차라리 친아버지가 아니게 해달라고. 그렇다면, 이 정도 사랑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소원을 빌어보았으나, 돌고 돌아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였다. 원초적인 관계를 부정할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신이 썩어서 죽어버릴 것이다. 약도, 술도, 담배도, 안된다며 오로지 자신만 받아들이라는 아버지를 피해 달아나야 했다. 냄새, 손끝이 닿는 지점, 그것도 모자라 정신마저 오롯이 자신으로 채우려는 아버지가 무서웠다.

“뭐해?”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이토는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아버지는 휴대전화를 켜서 게임을 하려는 나이토의 옆에 앉아 휴대전화를 뺏었다. 나이토가 노려보자 아버지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휴가 왔으면 나가서 놀아야지. 집에서처럼 게임만 할래?”

“난 이게 노는 거야.”

나이토가 벌떡 일어나자 아버지가 손목을 잡아당겼다. 힘의 차이로 아버지에게 끌려가, 아버지의 허벅지 위에 앉아야 했다. 단단한 허벅지의 감촉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나이토가 질색하며 일어나려 발버둥 치자, 아버지가 허리를 꽉 잡아 눌렀다. 아버지의 손이 뒷목으로 올라왔다. 새벽이슬을 받아먹고 피어난 꽃 같은 눈이 보였다. 쓸데없이 눈 색이 예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완벽한 자색이었다. 뿌옇거나, 짙지 않고 딱 알맞은 색감으로 투명하게 빛나는 보라색 눈을 멍하니 보며 입을 벌렸다. 아버지가 느긋하게 목을 누르며 입을 맞춰왔다. 입술이 따스하게 닿았다. 음란하기 짝이 없던 키스가 아니라 정말 달콤하고 따스한 키스였다. 아버지의 양쪽 어깨를 잡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입술을 느리고 진하게 빨아오던 아버지가 고개를 뗐다. 나이토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숨을 내뱉었다. 아버지의 손이 입술에 남은 타액을 닦아주었다. 그 손길이 퍽 다정해서 나이토는 견딜 수 없었다. 손을 탁, 치고 아버지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방을 나가기 전, 나이토는 아버지를 보지 않고 말했다.

“혼자 놀아.”

나이토가 방 밖으로 나가자,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알토가 보였다. 신이 났는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선크림을 바르고 있었다. 정말 능청맞은 동생의 태도에 밖으로 도망치듯 나갔다. 별장 밖으로 가니 조금이나마 떨리던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나이토는 아버지가 잠근 문을 열고 야트막한 길을 따라 내려갔다.

해변으로 향하는 길과 산책로로 향하는 길,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었다. 잠깐 고민하던 나이토는 해변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아버지를 죽인 후 도망갈 경로를 알아내야 했다. 지도를 보고 오긴 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길 한가운데에 선 나이토는 드넓은 도로에 황망하게 웃었다. 이곳은 수도에서 차로 3시간 떨어진 해변가로, 차가 없으면 도저히 이동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대대로 귀족이나, 돈이 많은 평민들이 사용하는 장소라 인적도 드물 뿐더러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도 없었다. 모두 자신의 자가용이나 요트 등을 통해 이동했기 때문이다. 히치하이킹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멍하니 길에 서서 해변만 뚫어지게 보던 나이토는 등을 건드리는 손짓에 깜짝 놀랐다. 아버지인 줄 알고 기겁했는데, 아버지가 아니었다. 나이토를 건든 사람은 아버지 때문에 몇 번 만난 적 있었던 고야였다.

“오랜만이다.”

고야가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나이토도 떨떠름한 얼굴로 고야의 손을 잡았다. 고야 셀롯은 셀롯 후작가의 장녀로, 일찌감치 대학에 갔다. 원칙대로라면, 셀롯 후작이 사망했으니 그녀가 후작이 되어야 했지만 그녀는 아직 후작의 장녀로 머물러 있었다. 본인의 뜻이었다. 죽을 때까지 집안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면 6년만은 자신을 위해 쓰고 싶다고 했다.

“요새 못 봐서 궁금했어.”

“왜?”

그녀와 그럭저럭 얘기하는 사이였으나, 꽤 친한 사이는 아니었던 터라 의문이 들었다. 나이토가 고개를 갸웃하자 고야가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잘생겨서.”

“그게 이유야?”

“파티에 참석하면 거의 다 못생긴 놈들인데 넌 잘 생겨서, 가는 재미가 있었거든.”

그녀가 초록색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부담스러운 그녀의 눈빛에 나이토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자, 고야가 냉큼 다가와 나이토의 팔뚝을 잡았다.

“왜 도망가?”

“도망간 거 아닌데.”

나이토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뭔가 탐탁지 않은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그러던 중, 고야의 뒤로 예쁘장한 남자가 나타났다. TV에 나오는 배우들 뺨치게 아름다운 외모에 깜짝 놀랐다. 자연스럽게 고야의 허리에 팔을 두른 남자는 나이토를 보자 환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고야는 흐뭇하게 웃으며 남자를 보았다. 애정이 뚝뚝 흐르는 둘 사이는 연인이나 다름없었다.

“애인?”

나이토가 그렇게 묻자 고야가 소리 내서 웃었다. 웃는 것도 교육받는 귀족 집안 자제답게, 웃는 소리도 듣기 좋았다. 미소를 갈무리한 그녀는 남자의 뺨을 검지로 쿡 찌르며 말했다.

“너 영광인 줄 알아. 어디 가서 내 애인 소리 들어보겠어.”

“예, 고야 님.”

고야는 남자의 뺨에서 손을 뗐다. 나이토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허리를 꾸벅 숙였다. 고야는 숙인 남자의 등을 토닥이며 설명했다.

“얘는 제노야. 이름은 몰라. 가게에서 일하는 이름이 제노인 것만 알아.”

단번에 남자의 신분을 알아차렸다. 남자는 고야가 산 매춘부인 것이다. 고야는 제노의 날씬하고 단단한 팔을 잡았다. 제노를 보는 고야의 시선이 꽤 달콤했다. 고야가 상당히 제노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너희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회사에서 일하는 애야. 알아?”

“몰랐는데.”

나이토가 고개를 젓자 고야는 눈웃음을 지었다.

“하긴, 많으니까 모를 수도 있지. 넌 나이토 알아, 제노?”

“당연히 알죠. 회장님이 애지중지하시는 도련님이니까요.”

애지중지라는 말을 듣자 얼굴이 싹 굳었다. 제노는 단번에 딱딱해진 나이토의 얼굴을 보고 싱긋 웃었다. 백치처럼 느껴지는 멍청한 미소였다. 고야는 멍하니 서 있는 나이토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녀의 접촉에 놀라 나이토가 정신을 차리자, 그녀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미리 축하해줄게, 나이토.”

무엇을 축하해주는 거냐고 묻기도 전에,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너희 아버지가, 알라시스 대공의 추천장 받아서 자작이 되실 거야. 물론 왕실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알라시스 대공이 나섰으니 자작은 되시겠지. 축하해. 너도 이제 귀족의 자제야.”

자신은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소리였다. 눈을 깜박이며 앞을 보는데, 고야의 옆에 있던 제노까지 나서서 말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도련님.”

그제야 아버지가 서두르는 행동이 이해가 갔다. 나이토와 마음껏 놀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처음에는 회사 일로 바쁜 줄 알았다. 그러나 그가 요새 들어 더 분주해진 걸 보고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했다. 바쁜 일상에 비해 나날이 얼굴이 좋아지기에 나쁜 일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그가 벌써 귀족이 될 줄은 몰랐다. 본격적으로 왕실을 드나들기 시작하면 이것보다 몇 배는 바빠질 것이다.

나이토의 가슴이 뛰었다. 성공만 하면, 아버지는 귀족이 되는 일 때문에 자신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제대로 죽이지 않아도 왕실 때문에 올 수 없을 것이다. 나이토는 설레는 마음을 겨우 숨기고서 물었다.

“수여식은 언제 하는지 알아?”

“글쎄. 그래도 알라시스 대공이 나섰으니까 빨리 잡히지 않을까?”

나이토는 드디어 살짝 웃었다.

“고마워.”

나이토가 쑥스러운 듯 웃자 고야의 얼굴이 헤실헤실 풀어졌다.

“뭘. 나야말로, 제노같이 잘생긴 애랑 놀 수 있어서 감사하지. 그럼 수여식에서 보자.”

“응.”

제노도 꾸벅 허리를 숙이더니 친근하게 인사했다.

“다음에 뵈어요, 나이토 도련님.”

백치 같은 미소를 지은 제노가 등을 돌려 고야의 옆에 섰다. 고야와 나란히 서서 해변가로 걸어가는 제노를 보던 나이토도 발걸음을 별장으로 옮겼다. 기회를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발만 여기에 묶어두어도, 자신은 더 멀리 갈 수 있다. 나이토는 하얀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손이 불안한지 또 떨리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이토를 발견한 아버지가 턱을 괴고서 웃었다.

“20분 내로 안 오면 잡으러 가려 했는데.”

“도망갈 생각 없어. 걱정 마.”

나이토가 냉정하게 대답하며 아버지 맞은편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테이블에는 아버지가 준비한 듯한 와인이 있었다. 잔이 두 개가 있었다. 아버지는 손가락에 들려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서, 허벅지를 두들겼다. 그쪽으로 오라는 뜻이었다. 한숨을 내쉰 나이토가 일어나서 아버지 허벅지에 털썩 앉았다. 얌전하게 구는 아들이 귀여웠는지, 아버지가 아들을 끌어안고서 말했다.

“이제 포기한 거야?”

“글쎄.”

나이토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와인 잔을 들어 올렸다. 아버지는 와인 잔을 내려놓게 했다. 그는 와인 병을 입에 갖다 대더니, 와인을 한 모금 머금고서 키스했다. 눈을 감고 입술을 벌리자 차가운 와인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조금씩 와인을 입안에 흘려 넣어줬다. 쓰고, 적당히 단 와인이 맛있었다. 눈을 감고서 혀를 내밀어 할짝이자 아버지가 입술을 맞댄 채 웃는 게 느껴졌다. 아버지의 혀가 웃음소리와 함께 들어왔다.

“으음….”

나이토가 막힌 신음을 흘리며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버지의 혀가 입안에서 어린아이 장난치듯 움직였다. 아버지 입안 구석구석에 스민 와인까지 다 빨아먹자, 아버지가 또 와인을 한 모금 머금었다. 도톰한 입술이 와인에 젖어 붉게 빛났다. 눈을 반쯤 내리깔고 있던 나이토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혀를 내밀어 입술에 묻은 와인을 핥아먹었다. 그 모습을 보던 아버지가 충동을 못 이기고 와인을 머금고서, 입술을 강하게 부딪쳤다. 그의 입술은 달콤하고 씁쓸했다.

아버지의 입에 혀를 넣어 와인을 다 받아먹어서일까. 얼굴이 미미하게 붉어졌다. 금세 술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나이토가 아버지의 품에서 반듯하게 앉으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이토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었다. 손가락이 유두를 꼬집고, 엄지로 슬슬 봉긋하게 솟아난 살을 만지자 아래에 열이 단숨에 고였다. 아버지가 말했던 것처럼, 빨기 좋은 연분홍색 성기가 붉게 변하고 있었다. 나이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침대…침대에서 해. 여기선 안 돼.”

“소파에서 하는 것도 좋잖아.”

소파에서 몇 번 뒹굴었던 게 기억났다. 얼굴이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 나이토는 아버지 목에 팔을 두르고 절박하게 매달렸다.

“안 돼. 알토가 있어.”

아버지가 짧게 중얼거렸으나 유두를 지분거리는 손 때문에 집중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나이토를 데리고, 침실로 향했다. 침대에 눕혀졌다. 아버지는 나이토가 입은 옷을 빠르게 벗겨냈다. 한두 번 벗겨본 솜씨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눈이 몇 날 며칠을 물고, 빨아 붉게 부풀어 오른 유두에 닿았다. 처음엔 연한 분홍색이었는데, 얼마나 물고 빨았는지 색이 짙고 오동통하게 부어있었다. 빨고 싶게 생긴 유두를 잠시 보던 아버지가 입을 벌리고 덥석 물었다. 유두가 힘껏 빨려 들어갔다. 없는 젖을 빨아 먹을 것처럼 쪽쪽 흡입했다.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는 혀가 다가와 유두의 얇은 표피를 샅샅이 핥았다. 판판하고 납작한 가슴에 매달린 아버지의 머리를 보던 나이토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가 쭉 펴졌다.

“아!”

곧바로 반응이 왔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유두를 잘근잘근 깨물고, 씹어주는 것만으로 아래가 달아올랐다. 한쪽은 빨아주면서, 다른 쪽은 손가락으로 비트니 미칠 지경이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잡아 올렸다. 쪼옥, 하는 음란한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렸다. 유두에 달라붙어 있던 입술이 강제로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였다. 나이토는 숨을 고르며 앞을 보았다. 머리채가 잡혀 인상을 쓰는 아버지가 보였다. 그래도 아들이라고, 화는 안 내고 가만히 있었다. 아버지의 자색 눈동자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박아.”

아버지가 입술 끝을 올려 웃었다. 그는 테이블에서 뭔가를 들어 올렸다. 젤이었다. 젤을 손에 듬뿍 짠 아버지가 구멍을 만지작거리다가 두 개를 동시에 넣었다. 나이토는 느릿하게 내벽을 애태우는 손가락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버지의 성기에 익숙해진 듯, 몸이 다른 걸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좁은 구멍으로 파고든 건, 손가락도, 성기도 아니었다. 차갑고 딱딱한 무언가가 구멍을 강제로 벌리며 들어왔다. 나이토가 고통에 미간을 찌푸리며 발버둥 치자 아버지가 다정하게 달래며 더 깊숙이 넣었다.

“아, 아파.”

“뭐가 아파. 아버지 것보다 작은데.”

아버지가 키득거리며 웃는 게 다 들렸다. 아버지는 손가락을 이용해 더 밀어 넣었다. 다 넣은 그는 상체를 일으켜 나이토를 바라보았다. 나긋나긋하고, 백지 같은 하얀 몸에 붉은 물감을 터트린 듯 구석구석이 붉었다.

“뭔지 궁금해?”

“이상한 거 아니야?”

나이토가 두려움에 오들오들 떨며 물어보았다. 싱긋 웃은 아버지는 대답 대신, 손을 아래로 내려 무언가를 눌렀다. 그러자 내부에 들어간 게 진동했다. 정확히 나이토가 느끼는 부위 근처에 머문 기계가 미친 듯이 움직였다. 나이토가 빼려 하자 아버지가 나이토의 손목을 잡고 눌렀다. 아버지는 자신의 성기를 잡고서, 이미 무언가가 들어간 내부에 성기를 넣었다. 아직 덜 풀어진 내부가 힘겹게 단단한 성기를 받아들였다. 내부가 홧홧하게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감질나게 느끼는 지점을 애태우는 진동이었다. 부르르, 떨면서 내벽의 조임에 따라 꿈틀꿈틀 움직였다. 쾌감에 따라 조여드는 구멍을 강제로 벌리는 성기가 느껴졌다. 크고, 두꺼웠다. 성기에 점막이 끈끈하게 달라붙어, 질척한 소리가 아래에 고였다.

“아앗!”

아버지의 성기가 진동하는 물건을 들쑤셨다. 순식간에 치고 올라오는 쾌감에 몸이 굳어졌다. 헉, 하고 숨을 참으며 입술을 살짝 물었다. 성기가 벌떡 서서 꺼덕꺼덕거리며 아랫배를 탁탁 때렸다.

“좋아?”

성기가 느리게 빠졌다가, 빠르게 들어와 물건을 꾹 눌렀다. 또다시 미칠 듯한 쾌감이 몸을 휘감았다. 나이토는 너무 심한 쾌감에 눈물을 흘렸다. 고개를 흔들며 울었다. 아버지의 성기가 내부를 문지르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름 모를 무언가가 안에서 진동을 하자 미칠 것 같았다. 이런 지옥 같은 느낌은 처음이었다. 더 세게 박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바이브레이터 넣고 박아주면 다들 좋아죽지.”

“아, 아아! 아! 더, 하읏, 더 해줘…!”

“뭘 더 해줘?”

아버지가 계속 느리게 귀두로 바이브레이터만 꾹꾹 누르면서 속삭였다. 원래 진동에서 한 단계 더 올렸다. 아버지도 속도를 높여서 퍽, 퍽 쳐올렸다. 이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아버지의 팔을 잡고 매달리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귀두가 입구에 빠질 듯, 말 듯 걸쳐지면 간지러웠고, 그 간지러움을 달래주듯 빠르게 가로질러 들어오면 쾌감이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왔다. 애태우는 간지러움이 싫었다. 내부를 성기가 더 세게, 불이 날 정도로 박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이토는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버지의 자색 눈동자에 불이 붙었다. 광기 어린 불은 전염되었다. 나이토의 눈에도 보랏빛을 띠는 불이 붙었다. 아버지가 나이토를 눕히고, 사정 봐주지 않고 박아댔다. 내일 아예 걷지도 못하게 만들 거라는 저의마저 느껴지는 힘에 헐떡거렸다. 더운 숨이 입 밖으로 흘러나와 홀씨처럼 퍼져나갔다.

“아앗…읏, 흐윽!”

“더 조여. 응? 할 수 있잖아.”

더 강한 조임을 원하는지, 아버지의 손이 나이토의 목에 맴돌았다. 하지만 목을 조이진 않았다. 땀에 젖은 하얗고, 마른 목에 머무르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손도 같이 이동했다.

아버지는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허리를 잡고 박아댔다. 주름이 다 닳아 사라질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박아대던 아버지가 드디어 안에 사정했다. 내벽에 정액이 고였다. 한 차례 미칠 듯한 쾌감에 시달린 나이토는 멍한 눈으로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가 웃으면서 내부에 있던 바이브레이터를 빼냈다. 우웅, 하며 진동하는 분홍색 바이브레이터에 탁한 정액과 젤이 묻어있었다. 젖은 눈을 깜박이며 가만히 있는데, 아버지가 몸을 일으키게 했다. 아버지가 어느새 침대에 누워있었고, 자신은 그 위에 올라타 있었다. 아버지가 벌어진 구멍에 바로 성기를 찔러 넣었다. 직선으로 올곧게 가르며 들어오는 성기 때문에 아프다고 느껴야 하는데, 꽉 찬 느낌이 좋았다.

“아, 좋아.”

나이토가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한마디에, 아버지의 눈이 커졌다. 나이토는 눈물을 매단 채,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얼른 해줘.”

“…하.”

짧게 웃은 아버지가 성기를 깊게 넣으며 잇새로 내뱉었다.

“예쁘잖아…내 아들.”

성기가 부어오른 내벽을 찔렀다. 그것만으로도 느껴 나이토는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아버지가 밑에서 허리를 잡고 쳐올렸다. 누웠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야릇하게 올라오는 쾌감에 나이토의 성기가 힘을 얻었다. 바닥만큼 단단한 아버지의 가슴에 손을 얹고 버티자, 아버지가 더 빠르게 성기를 움직였다. 아버지의 성기가 아래에서 자신의 내부를 헤집을 때마다 나이토의 시선은 오로지 한 곳에 향해 있었다.

아버지의 머리 옆, 칼을 숨긴 곳이었다.

*

눈물에 푹 젖은 눈을 떴을 때, 시간은 저녁이 훌쩍 지나있었다. 전날, 밀린 일을 하느라 잠을 거의 자지 못했던 아버지는 계속 이어진 섹스 때문에 나른해졌는지, 순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다. 나이토는 아픈 허리를 붙잡고 일어났다. 신음소리가 나올까 봐 눌러 참고, 떨어진 옷을 주웠다. 허리를 숙인 반동 때문에 안에 고인 정액이 멍든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를 악물었다. 나이토는 잠든 그가 깨지 않게 조심하며, 시트를 뒤적거려 숨겨두었던 칼을 빼냈다. 한 번에 찔러야 한다. 그 생각으로 침대로 올라갔다. 잠든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이토는 떨리는 손으로 베개 하나를 잡아 아버지의 얼굴에 갖다 대려 했다.

그때, 아버지의 눈이 스르르 떠졌다.

나이토는 본능적으로 칼을 들어 아버지의 배를 찔렀다. 위에서 바로 찍어 눌렀으나 칼은 쑥 들어가지 않았다. 손잡이에서 손을 뗀 나이토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로 물러났다. 손이 미친 사람처럼 떨리고 있었다. 뜨끈한 열이 올랐다. 손잡이를 두 번 다시 잡을 수 없었다. 고통을 참느라,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시트를 꽉 잡던 손이 비틀거리며 움직여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게 보였다. 그의 자색 눈이 오롯이 자신만 보고 있었다.

“나이토….”

아버지가 이름을 불렀다. 나이토는 아버지가 쫓아올까 봐, 벌떡 일어나 문으로 뛰어갔다. 문을 열고 나갔다. 고통이 심했는지 아버지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피에 젖은 손을 옷에 아무렇게나 닦은 나이토는 심호흡을 하며 열쇠를 찾았다. 별장열쇠를 찾아야 했다. 아버지가 자주 쓰던 서랍으로 달려가 열었다. 그곳에 열쇠가 있었다. 침실 문을 잠근 나이토는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다음에 나이토가 챙긴 건, 소총이었다. 거실 중앙엔 아버지가 사냥 때 사용하는 소총 두 자루가 교차 되어 걸려있었다. 소총을 빼낸 나이토는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블레이디드 오프 자세를 취했다. 아버지 때문에 소총은 쏘지 못했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소총을 든 나이토는 동생이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문을 발로 걷어찼다. 쾅, 하고 열리는 소리에 놀란 알토가 고개를 돌렸다. 나이토는 피범벅이 된 손으로 소총을 들고, 알토를 겨누고 있었다. 눈이 풀린 형을 본 알토가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형…?”

나이토는 단호하게 말했다.

“일어나.”

“왜, 왜 이래, 형. 소, 소, 손은 왜 이렇게 빨개?”

“일어나!”

알토가 겁에 질려 일어났다. 총으로 동생의 가슴을 찔렀다. 알토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버지를 찾는 눈치였다. 나이토는 다른 곳은 보지 말라는 듯, 소총으로 동생의 턱을 들어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차고로 가.”

처음부터 계획은 이것이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알토를 시켜 차를 운전하게 한다. 어떤 수단을 이용하든 소마까지만 가면 된다. 알토는 나이토의 협박에 겁을 먹고 차고까지 갔다. 알토는 운전석에 오르기 전, 나이토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는?”

“죽였어.”

사실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모른다. 죽었을까. 고작 그 칼 한 번으로… 정면을 빤히 보던 나이토는 소총을 가볍게 쥐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창백한 얼굴을 눈여겨본 알토가 되물었다.

“정말?”

“그래.”

“왜….”

아버지를 왜 죽였냐고 묻는 동생이 피곤했다. 나이토는 눈을 감은 채, 시트에 몸을 기댔다. 가슴이 계속 울렁거리고 따끔거리며 아파와 호흡을 유지하는 것도 버거웠다.

“왜 그랬냐고 묻지 마. 닥치고 운전이나 해.”

알토가 머뭇거리다가 운전석에 올랐다. 차고 문을 미리 열어둔 터라, 시동을 걸고 바로 나가면 됐다. 알토는 떨리는 손으로 시동을 걸었다. 능숙하게 핸들을 돌리면서 나이토를 힐끗 보았다.

“어디로 가야 해?”

“론도.”

알토는 짤막한 대답에 숨을 느리게 내쉬었다.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지, 인상을 찡그리기도 했고 살짝 떨기도 했다. 차를 멈출까 하는 기색도 엿보여서 나이토는 말없이 총구를 들이밀었다. 얼굴에 다가온 총구를 본 알토는 마른 침을 삼키며 되지도 않는 협박을 했다.

“형, 총 한 번도 못 쏴봤잖아.”

“여기서 보여줄까?”

서슬 퍼런 대답에 알토가 입을 다물었다. 론도까지 가는 내내, 나이토는 정말로 아버지가 죽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급하게 찔러 넣어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지도 못했다. 그럴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확인할 용기도 없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피가 묻은 손을 보았다.

손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 불안으로 인해 떨릴 때와 다른 떨림이었다. 아버지를 찔렀을 때 느낌이 생생했다. 살과 근육을 찢고 들어간 칼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정말로 사람을 찌른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다.

나이토는 베개로 아버지의 얼굴을 가리기 전에, 아버지가 자신을 본 걸 떠올렸다.

‘한 번은 봐줘도 두 번은 못 봐줘, 아들.’

기시감이 들었다. 등이 서늘했다. 불길한 예감이 몇 번이나 현실이 되어 자신을 괴롭혔던 것을 떠올렸다. 지금이 몇 번째지? 과거를 더듬던 나이토는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창문을 열었다. 센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들어와 나이토의 머리를 헝클어놓았다. 바람이 흘러내린 눈물을 앗아갔다. 흔적도 거센 바람에 파묻혀 저 멀리 사라졌다.

아버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알면서도, 그의 말처럼 그저 봐준 것에 불과했다. 제대로 아버지를 죽였어야 했다.

아버지가 봐준다고 했을 때, 실패하지 말라고 협박했을 때, 그 말을 떠올렸다면 확실하게 죽일 수 있었을까. 떨리는 손을 꽉 쥔 나이토는 침음했다.

아버지를 죽일 수 없었다. 죽이지 못했다. 그 순간, 아주 짧은 몇 초의 시간이 천 년 같았다. 자신을 버려야 하는지, 아니면 아버지를 버려야 하는지 결정하는 순간에도 고민했다. 그가 자신을 낳아준 친아버지이기 때문인 건가. 아니면, 몸을 수없이 섞은 연인 사이나 다름없는 관계라서 그런 것인가. 지금도 그의 입술 맛이 났다. 와인과 섞여, 달콤하면서도 씁쓸했던 키스가 주홍글씨처럼 입술에 새겨졌다.

아버지, 라고 소리 없이 중얼거린 나이토는 알토에게 차를 세우라고 명령했다. 알토가 길가에 차를 세웠다.

알토와 나이토가 멈춘 곳은 론도로 가기 전, 쉴 수 있는 작은 휴게소였다. 그 뒤로 숲이 보였다. 나이토는 밤이 짙게 드리운 세상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동생을 보았다. 동생은 나이토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닮은 알토를 빤히 보던 나이토는 소총을 내려놓았다. 죽을까 봐 두려움에 떨던 알토는 입으로 불쑥 들어온 알약에 눈을 크게 떴다. 나이토는 짤막하게 “삼켜.”라고 말했다. 알토가 물 없이 캡슐을 꿀꺽 삼켰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삼킨 동생을 무심한 눈으로 보고서, 문을 열었다.

“형…어디 가?”

“기다려.”

탁한 목소리가 어둠 속에 녹진하게 가라앉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알토는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운전석에 앉아 사이드미러를 통해 나이토를 보았다. 한 손에 장갑을 착용한 나이토가 차 문을 열고,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가방이었다. 그 모습을 살피는 알토의 눈이 점차 감겼다. 약을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눈이 나른하게 감겼다. 눈을 뜨고 싶은 의지를 약이 강제로 삼켰다. 알토의 고개가 스르륵 쓰러지고, 핸들을 잡은 손에서도 힘이 빠져 축 늘어졌다. 알토가 잠들 때까지 기다리던 나이토는 운전석으로 걸어갔다. 달빛이 쪼개져 내려 알토의 곱고 잘생긴 얼굴을 보드랍게 덮고 있었다. 신부가 쓰는 베일을 쓴 듯, 어여쁘기까지 했다. 잠자는 모습마저 아버지와 같았다. 그제야 묵직한 숨을 내쉰 나이토는 얼굴을 거칠게 비비고, 휴게소 아래에 만들어진 산책로로 걸어갔다.

숲으로 들어간 나이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물소리가 들렸다. 이쪽 지형을 지도로 미리 보고 왔기에, 그 기억을 따라 움직였다.

휴대전화가 없는 터라 온전히 시각, 청각, 그리고 기억에 의존해 계속 걸었다. 중간 지점에 물이 흐르는 곳을 발견했다. 그곳까지 힘겹게 걸어간 나이토는 달빛에 의지해 앉았다. 물소리가 굉장히 작다고 느꼈는데, 얕게 흐르고 있었다. 발목밖에 닿지 않는 물 깊이에 안도하고, 손을 담갔다. 아버지와 알토의 피로 추정되는 것들을 모조리 닦아냈다. 손이 빨개질 때까지 비벼 닦고 나서, 옷을 벗었다. 떨리는 손으로 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 얇은 카디건을 걸쳤다. 옷을 가방에 넣고 다른 길을 찾았다.

나이토는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을 손전등처럼 사용하며 표지판을 확인하고, 계속 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입구 대신 사각지대를 통해 도로로 나갔다. 도로로 나가자, 멀지 않은 곳에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첫차가 오는 시간을 확인했다. 나이토는 가방을 바닥에 던지고, 그 위에 주저앉았다. 첫차가 새벽 6시에 오니 그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려야 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몸과 마음은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졌는데 잠이 오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나이토는 물로 대충 닦은 손을 보았다. 아버지를 찌르다가 생긴 상처가 보였다. 그 상처 아래엔 예전에 아버지에게 밀려 생긴 상처가 보였다. 그때도 아팠지만, 지금처럼 가슴까지 쿡쿡 찔러오지 않았다. 포크로 가슴을 사정없이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어 머리가 무거워졌다. 토막 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바람을 따라 시나브로 움직이는 별들이 지상으로 쏟아졌다.

눈을 감자 시냇물보다 조용하고, 느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버지를 죽이면, 아버지만 떼어놓으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생각과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무서웠다. 그가 죽는 것도, 살아나서 자신을 찾으러 오는 것도.

아들에게 성욕을 느끼고 범한 아버지의 죄가 클까. 아니면, 아버지를 칼로 찌른 아들의 죄가 클까. 두 가지를 생각하며 저울질을 하던 나이토는 눈을 반쯤 뜨고 허망하게 웃었다.

둘 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 뺨을 감싸자, 눈물이 흘러 아버지로 인해 생긴 상처로 파고 들어갔다. 따끔한 통증에 손이 떨렸다.

‘좋아하는 게 넌데,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물어오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자신은 아버지에게 말했어야 했다.

날 사랑하지 말라고.

‘사랑한다니까.’

세뇌시키려는 듯, 몇 번이나 귀에 대고 속삭이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정말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아버지의 목소리는 끔찍하게 달콤했다.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바늘처럼 곤두선 예민함을 녹였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아버지가… 그 목소리에 이끌려 스스로를 달래려 했다. 무의식에 빠지다가도 어느 순간, 그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걸 깨닫고 괴로움에 이를 악물었다.

싫어야 했는데, 아버지니까 당연히 거부감이 느껴져야 했는데 점점 길들여지는 자신이 보여서 견딜 수 없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나이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어둠에 푹 잠긴 발이 보였다.

*

‘이건 꿈이야.’

자신에게 속삭였다. 그러나 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구멍을 쑤시는 성기가 너무 현실적이었다. 자신의 뒷머리를 강압적으로 누르는 손길도, 사정 봐주지 않고 박아대는 허리 움직임도. 커다란 손은 자비가 없었다. 자신을 못 움직이게 잡아놓고서 자신의 욕구에 급급해 찔러대기 바빴다.

‘느껴?’

그런데 그 거친 움직임에도 느꼈다. 밑에 깔려서 고개를 튼 채 헐떡이자, 위에서 희롱하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단단하고 긴 성기가 예민한 부위를 쿡 찔렀다. 귀두가 노골적으로 느끼는 지점을 비볐다. 참지 못하고 숨을 들이마시자 위에 있던 남자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남자는 목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려서 엉덩이를 벌렸다. 붉어진 구멍이 매우 큰 성기를 야무지게 물고 있는 것이 노골적으로 보였다. 희뿌연 정액, 질척거리는 젤이 엉겨 붙어서 검붉게 발기한 성기가 뿌옇다. 남자는 엉덩이를 잡은 채 허리를 움직였다. 성기가 뭉개질 대로 뭉개진 내벽을 다시 자극했다. 성기가 원하는 도착지점에 다다랐을 때, 나이토는 시트를 힘겹게 잡았다. 핏줄이 도드라지게 선 나이토의 손을 다정하게 잡은 건, 남자의 커다란 손이었다.

‘사실 너도 좋았잖아.’

‘아니야.’

자신은 좋은 적 없었다고, 느낀 적 없었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남자는 가볍게 무시했다. 남자는 벌떡 선 나이토의 성기를 잡고서 상냥하게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 아버지만 생각하면 아래가 뻐근하잖아.’

나이토는 눈을 크게 떴다. 어느새 자세는 바뀌어서 아버지에게 안겨있었다. 여전히 성기는 맞물린 채로, 아버지 허벅지에 앉아있었다. 아버지는 연약한 생명체처럼 오들오들 떠는 나이토의 뺨을 매만졌다. 아버지의 손길이 다정했다. 그토록 잔인하게 굴었으면서, 이제 와서 다정하게 구는 아버지의 손짓에 마음이 흔들리는 아들이 있었다. 좋은 감정은 확실히 아니었다. 사랑한다거나, 좋다거나, 그런 애틋한 감정은 아니었다.

이건 증오와 비슷한 강렬한 감정이었다. 이 사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지독한 중독이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눈가에 매달린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제 인정할 때야.’

‘나는….’

나이토가 말끝을 흐리며 멀어지려 하자, 그가 나이토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성기가 아래에서 치고 올라왔다. 신음을 흘리며 눈으로 고백하는 남자의 어깨를 잡았다. 어깨를 잡은 손이 미끄러져 등으로 흘러내렸다.

‘아버지만 생각나게 될 거야, 언제나.’

“헉…!”

현실에서 들었던 것처럼 생생한 목소리에 나이토는 꽉 막힌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겁에 질린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보이는 것은 허름한 모텔 벽뿐이었다. 몇 번을 확인하고 나서야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창백한 얼굴로 눈을 꾹 감은 나이토는 손을 아래로 내렸다. 꿈 때문인지 성기가 벌떡 서 있었다. 성기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잡았다. 예전처럼 성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으나 뭔가 부족했다. 감질나는 느낌에 발을 침대에서 굴렸다.

누가 쑤셔줬으면. 본능적으로 그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자 나이토의 몸이 굳었다. 자신도 모르게 든 생각을 애써 무시하며 성기에 집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나이토는 떨리는 손으로 한동안 쓰지 않은 구멍에 손을 갖다 대었다. 하나만 넣었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두 개를 넣자 조금 뻐근하면서 만족감이 들었다. 아버지가 내부를 어떻게 쑤셨는지 떠올리며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어느새 나이토는 성기를 매만지는 것보다 뒤를 쑤시는 것에 열중했다. 손가락에 달라붙는 쫀득한 점막이 다칠 정도로, 손가락으로 푹푹 쑤셨다. 찌걱, 거리는 젖은 소리가 이불에 부딪혀 소멸되었다. 나이토는 인상을 찡그리고 눈가를 붉게 물들였다. 눈을 질끈 감았다. 구멍에서 시작된 쾌감이 찌르르하고 울렸다.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아…!”

성기가 정액을 내보냈다. 하지만 아버지와 했을 때처럼 눈앞이 하얘질 정도의 쾌감은 없었다. 하다 만 것 같은 어정쩡한 쾌감에 나이토는 절망적으로 손을 보았다. 탁한 정액으로 얼룩진 손을 씻기 위해 일어났다. 화장실 불을 켜자 이름 모를 검은 벌레가 벽을 기어 다니는 게 보였다. 빈민가에서 살 때 보았던 벌레였다. 나이토는 슬금슬금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손을 닦았다. 아버지를 찌를 때 생겼던 상처는 어느새 아물어, 연한 실금처럼 변해있었다. 손바닥에 뒤덮어진 상처를 지그시 보던 나이토는 주먹을 쥐었다.

나이토는 침대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저택에서 쓰던 침대와 너무 비교되는 침대였다. 매트리스는 딱딱했고, 이불에서는 꿉꿉한 냄새가 진동했다. 빈민가에 살 때보다 좋았지만, 그 사이 편안함에 종속된 몸은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 편안함의 주인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를 잊어보려 노력했지만, 꿈속에서도 현실처럼 생생하게 나온 터라 쉽게 잊을 수 없었다.

잠자는 걸 포기한 나이토는 재킷을 걸쳐 입고 모텔 밖으로 나갔다. 24시로 운영하는 상점으로 들어가자, 최근 들어 친해진 여자 직원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네.”

무뚝뚝하게 대답한 나이토는 주류코너로 향했다. 돈을 아껴 써야 하는 처지라, 가장 싼 맥주 네 캔을 구매했다. 테이블에 캔을 내려놓았다. 직원이 바코드를 찍었다. 그녀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나이토의 표정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 도시에서 보기 드물게 새하얀 피부를 가진 나이토는, 악몽에 시달린 탓인지 피부가 하얗게 질려 외모가 더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눈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나이토는 마치 저 멀리 있는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 아파요?”

그녀가 걱정스러운 어투로 물어보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이토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내밀었다. 그녀가 거스름돈을 바구니에 담아 밀어주자, 나이토가 잔돈을 챙겼다. 그녀는 서둘러 밖을 나가려는 나이토에게 친절하게 말했다.

“아프면 약 사 먹어요.”

“네.”

그녀에게 건성으로 대답한 나이토는 모텔로 느리게 걸어갔다. 모텔은 오늘도 조용했다. 태어나서 모텔이나 호텔에 가본 적 없는 나이토라, 원래 이렇게 조용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이 소도시에서 제일 크고 깨끗한 모텔이라 고른 것인데, 처음 왔을 때를 제외하고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이곳에 머무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의구심이 들어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모텔 주인에게 다가갔다. 주인은 애인과 함께 포르노를 보고 있었다. 나이토가 투명한 유리창을 두들기자 주인이 조그만 창문을 열었다.

“왜? 수건 줘?”

“아뇨. 저 궁금한 게 있어서요.”

“뭔데?”

희미한 오렌지빛으로 듬성듬성 밝혀진 복도를 지그시 보던 나이토가 물었다.

“여기 저밖에 없어요?”

그러자 주인 대신 애인이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여기가 놀러 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원래 한적해. 자기 말고 위층에 몇 사람 더 있어. 그런데 그건 왜 물어봐? 혹시 무서워서 그래? 혼자라서?”

애인이 야릇한 미소를 흘리며 나이토를 어린아이 취급했다. 기분이 불쾌해진 나이토는 창문을 닫았다. 나이토는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재킷을 벗어 던졌다. 가슴이 답답했다. 창문을 반쯤 열고, 그 앞에 앉았다. 맥주를 마시자 막혔던 속이 그나마 뚫렸다. 되찾은 자유는 생각만큼 짜릿하거나 새롭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웠다. 몇 번이나 거듭된 생각에서는 아버지를 죽였을 때 행복했다. 지긋지긋한 아버지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레이얀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꿈꿨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자신은 도망쳤음에도 레이얀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다. 죄책감 때문이었다. 죄책감은 여러 원인에서 시작되었다.

나이토는 이제 레이얀보다 아버지가 생각나는 몸이 되어버렸고, 아버지가 주는 쾌락에 익숙해졌다. 이제는 레이얀을 예전만큼 사랑하는지, 그것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레이얀의 얼굴을 떠올려도 가슴이 뛴다거나, 행복하다거나, 설레는 마음이 순식간에 표백되었다.

아버지에게 벗어나자, 제일 많이 생각난 게 아버지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한다. 아버지가 죽었다고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질 것 같았다. 살았다고 얘기를 들으면, 상상만 해도 등이 서늘했다. 아버지는 반드시 쫓아와 자신을 모조리 씹어 먹을 것이다. 원래 자신의 것이었다면서, 한 점도 남기지 않은 채.

아버지가 싸구려 마약이었다. 싸구려지만, 중독성은 강한 마약. 마약은 핏줄을 타고 흘러 뇌를 멍청하게 만든다. 종국엔 그 마약밖에 생각나지 않게 된다. 완전히 지배당하는 것이다.

지금도 아버지를 원하는 몸을 웅크린 나이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도 그것을 인정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버지와 아들이 진심으로 성적으로 얽힌다는 건, 사회도, 자신의 이성도 용납하지 못하는 일이니까. 그러니 자신은 도망가야 했다. 아버지의 중독이 더 깊어져, 완전히 침식되기 전에.

*

[이번 역은 소마입니다. 잊으신 물건은…….]

소마라는 소리에 나이토는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내려야 할 역을 놓친 것이다. 나이토는 가방을 챙겨, 서둘러 내렸다. 수도와는 다른 광경이 나이토를 반기고 있었다. 도박과 마약, 매춘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라 치안부터 달랐다. 경찰이 총을 들고 다니는 건 기본이었다. 지나다니는 일반 시민들조차 총을 소지하고 다녔다. 사람들을 둘러보던 나이토는 가방을 앞으로 맸다. 소매치기가 기승을 부려서 가방은 반드시 앞에 매고 다녀야 한다고, TV에서도 신신당부했다. 또한 으슥한 뒷골목으로 가면 안 된다. 버려져 있던 도시를 급하게 유흥 도시로 만든 터라, 도로 자체를 정비하지 않고 그 위에 건물을 쌓았다. 그래서 외국인이 함부로 뒷골목이나, 좁은 샛길로 들어가면 돈을 뺏길 확률이 컸다.

여기가 아니라 그 전 도시에서 돈을 벌 계획이었다. 돈을 벌어서 비요드 항구로 가, 신분을 새로 살 생각이었으나 이곳으로 왔으니 다시 돌아가야 했다. 문제는 돌아가려 해도 오늘은 안 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이토는 호텔을 찾아 헤맸다. 윤락가라 그런지, 크고 화려한 호텔이 즐비했다. 딱 봐도 1박에 돈이 많이 들어갈 것 같았다. 도망친 지 3주에 들어선 지금, 남은 돈은 넉넉잡아 1주 동안 숙박과 식비에 쓸 정도로 남았다. 아껴 쓴다고 아껴 썼지만 잡힐까 봐 두려워 도시를 여러 군데 바꿨더니 돈을 금방 써버린 것이다. 최대한 싼 곳을 찾아야 했다.

나이토는 역 근처에 마련된 대형 지도로 걸어갔다. 숙박시설, 사창가, 마약, 도박이 지도에 표기되어 방문자들에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유심히 지도를 보던 나이토는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모텔을 발견했다. 다만, 반대편에 보란 듯이 사창가가 주르륵 있는 것이 걸렸다. 그래도 이 도시에서 노숙하는 것보단 사창가 근처 모텔에 들어가는 게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문제는 사창가 거리에 들어갔을 때 발생했다. 거리에 한 면이 다 사창가였고, 길거리에 매춘부들이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흐리멍덩하고 노골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 울타리에서 고운 화초로 자란 나이토는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 가방을 꽉 잡았다. 원초적이고 강렬한 불빛 아래에서, 근원적인 본능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요사스럽게 웃는 게 낯설었다.

“어머, 오빠. 오늘 혼자야?”

벗은 것과 다름없는 옷차림의 여자가 나이토의 뺨을 만졌다. 식겁한 나이토가 여자의 손을 밀쳤다. 여자를 시작으로, 매춘부들이 다가와 치근덕거렸다. 지독한 향수 냄새, 야릇한 손짓에 나이토는 정신이 없었다. 어떻게 뿌리쳐도 나이토에게 접근해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발 그만하라고, 외치기 직전 누군가 나이토의 손을 잡았다. 강하고 억센 손길이었다. 마치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듯한 손길에 나이토가 확 뿌리치자, 그 사람이 더 세게 잡아왔다. 그 사람은 단숨에 사람들 무리에서 나이토를 빼내 왔다.

“너 몇 살이야.”

남자는 아버지처럼 키가 크지 않았지만, 매우 다부진 체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팔뚝이 웬만한 성인 여성의 허벅지만 했다. 남자에게 손목이 붙잡힌 나이토는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비틀었다.

그러나 손목이 수갑에 단단히 묶인 것처럼 풀리지 않았다. 나이토는 당황함을 애써 속으로 삼키면서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버둥거리면서 벗어나려는 나이토를 더 억세게 잡고 벽 쪽으로 밀쳤다. 하필이면 툭 튀어나온 부분에 부딪혀 나지막한 욕설이 나왔다. 그걸 들은 남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남자는 주변에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호객행위를 하는 매춘부들을 향해 외쳤다.

“어린애들은 상대하지 말라는 거 잊었어? 다들 감옥 가서 썩고 싶어? 똑바로 행동해!”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하고, 안경을 쓴 탓일까. 남자는 나이토를 미성년자라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나이토는 남자가 가슴팍에 매달린 배지를 보았다. 그는 왕실에서 허가받은 보안관이었다. 매춘과 마약을 합법화하는 대신, 범죄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정기적으로 돌아다니면서 단속하는 사람이었다. 보안관에게 잡힌 나이토는 덜컥 겁을 먹었다. 만약 그가 자신을 부모에게 데려다준다고 하면, 아버지나 그의 직원들이 찾으러 올 것이다.

나이토의 불길한 예감이 정확히 현실이 되었다. 보안관은 나이토가 쓰는 안경을 잡고 슬쩍 내렸다. 그는 성인이 되었지만, 앳된 선이 남은 곱상한 얼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꼬마야, 여기는 매춘 거리야. 미성년자도 자기 나이 속이고 매춘하면 감옥에서 최소 십 년 썩는 거 잊었어?”

“저 성인입니다.”

나이토가 가방을 꽉 잡은 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남자는 도통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너 같은 애들이 한둘인 줄 알아? 너 몇 살이야? 어?”

“저 20살 맞아요!”

나이토가 남자를 올려다보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나이토를 살피던 보안관은 어깨를 꽉 잡고 당겼다. 아릿한 통증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우선 서에 가서 조사해보자고. 너 같은 꼬맹이들이 한둘이 아니야. 만약에 미성년자가 맞다면…악!”

이대로 서에 끌려가면 끝장이다. 그 생각을 마치자마자, 나이토는 꽉 쥐고 있던 가방으로 보안관의 얼굴을 세게 후려갈겼다. 묵직한 짐이 든 가방에 정통으로 맞은 보안관이 악, 소리를 내며 나이토의 어깨를 놨다. 나이토는 보안관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사이, 가방을 품에 안고 냅다 거리를 달렸다. 매춘부, 매춘을 하러 온 관광객이 숲을 이룬 거리를 빠르게 달리는 건 힘들었지만, 사람들이 장해물이 되어 보안관도 나이토를 쉽게 잡으러 오지 못했다. 길을 잘 알지 못하는 나이토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가, 무작정 택시를 잡았다.

“야, 너! 거기 안 서!”

남자가 육중한 몸을 잽싸게 움직여 오는 게 보였다. 나이토는 조수석에 냉큼 올라탔다. 점점 가까워지는 멧돼지 같은 보안관을 본 택시기사는 처음에 나가라고 말하려 했지만, 나이토가 내미는 현금다발에 입을 다물었다. 그는 돈을 받아 챙긴 후, 엑셀을 세게 밟았다.

“어디로 가줘?”

“고잔…고잔으로 가주세요.”

나이토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며, 힘겹게 대답했다. 전력질주를 얼마나 했는지 폐가 뻐근하게 아파오고, 목도 쓰렸다. 시소처럼 위아래로 정신없이 움직이는 가슴을 다독였다. 숨을 헐떡이며 사이드미러를 살펴보자, 점차 점이 되어 사라지는 보안관이 보였다. 달려오는 걸 포기한 듯했다. 그제야 안심이 된 나이토는 좌석에 상체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었다. 불안증세로 재차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잡혀서는 안 된다. 아버지에게 잡혀서, 아들인지, 연인인지도 모르는 관계로 지내고 싶지 않았다. 가장 무서운 건, 이 치명적이고 중독적인 관계를 끝내 인정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걸 원하고, 그렇게 만들 사람이었다.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납득시킬 남자였다. 그는 그런 방법으로 피라미드 상층까지 올라간 사람이었으므로, 못할 것도 없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나는…….’

나이토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서럽고 무거운 응어리만이 형체 없이 흐느적거렸다.

*

소마에서 고잔까지 오느라 남은 돈을 모조리 다 써버렸다. 남은 돈이 0이 된 상태에서 나이토는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처음에는 하숙을 시켜주는 집에서 청소와 설거지를 했다.

하지만 며칠 되지 않아 주인집 남자가 나이토에게 추근거리자 남자의 애인이 나이토를 쫓아냈다. 하숙을 조건으로 일을 한 거라 받은 돈이 없었다. 잔고가 0이 된 나이토는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일용직 잡부로 일을 하게 되었다. 딱히 기술이 없는 터라 나이토는 그들이 시키는 고된 일을 도맡아 했다. 벽돌을 나르는 건 기본이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공구를 가져다주고, 청소를 했다. 살아생전 처음 해보는 고되고 힘든 일이었지만, 적어도 그때만큼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그것은 낮에 한정되었다. 먼지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가 누울 때면, 다리를 벌리는 손과 손목을 잡아 누르는 힘, 입술에 닿는 온기까지 선명하게 인식되었다. 그가 어떻게 입술을 빨아들였는지, 그가 얼마나 공들여 유두와 성기를 빨아줬는지, 그가 사정을 하면서 어떤 식으로 웃었는지… 모든 것이 신기루가 아니라 하나의 영화처럼 느리게 보였다. 그를 생각하면 성기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보통 몸이 힘들면 발기도 안 된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망령처럼 전신을 짓눌러 늘 성기를 발기시키고 엉덩이 안쪽을 간지럽게 만들었다.

‘아버지만 생각나게 될 거야, 언제나.’

정말 그의 말처럼 현실이 되고 있었다. 나이토는 숙소라 자위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이불을 꽉 물고 성기를 느릿하게 만졌다.

하지만 늘 따라오는 건 찝찝한 사정과 모호한 쾌락이었다. 멍한 눈으로 불투명한 어둠이 감 돈 숙소를 보던 나이토는 욕설을 속으로 삼켰다. 가면 갈수록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다. 자위로도 아버지를 기억 속에서 지우지 못한 나이토는 술에 의지했다. 술을 마시면, 짧은 시간이나마 잠을 잘 수 있었다. 노동을 마친 후, 술을 사 들고 가서 진탕 먹고 자는 게 일상이 되었다.

술에 의존해 잠들었던 나이토는 직원끼리 쓰는 방에서 나왔다. 공용 샤워실에서 몸을 씻고, 식당으로 가자 차려진 밥상이 보였다. 아버지와 같이 살 때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영양가 있게 차려진 밥상에 만족했다. 막 구운 빵을 집어 반으로 쪼갰다. 버터와 잼을 발랐다. 아무 생각 없이 우물우물 먹었다. 옆에 의자가 끌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같은 구역에서 일을 하는 칼이 서 있었다. 식판을 공용 테이블에 소리 나게 내려놓은 칼이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이번 주 토요일은 쉰대.”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나이토는 무심한 얼굴로 식사에 집중했다. 토요일 날 놀러 갈 얘기로 식당이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사람들 사이에 도무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나이토는 식판을 들고 일어났다. 단정하고 깔끔한 걸음걸이로 식당을 떠나는 나이토의 뒷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니콜이 몸을 일으켰다. 니콜은 나이토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쫓아갔다. 나이토는 세면대에 두 손을 짚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갈색 머리카락이 하얗고, 갸름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힘줄이 돋은 손등에 물방울이 후드득 떨어져 있었다. 앞머리도 살짝 젖어, 커튼 자락처럼 흔들렸다. 적당히 익은 복숭아색으로 물든 손톱은 힘을 주는 바람에 붉게 물들었다. 그 광경은 부싯돌이 탁, 부딪히는 것처럼 니콜의 마음에서 불을 일으켰다. 하얀 피부와 복숭아색 손톱을 보고 볼을 붉히던 니콜은 나이토가 고개를 든 걸 눈치채고 어깨를 흠칫 떨었다.

밤하늘 아래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 같은 눈이 묘한 감정으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오뚝하게 솟은 콧날에 매달린 물방울이 톡, 소리를 내며 사라질 때가 되어서야 니콜은 정신을 차렸다. 머리가 쿵, 하고 울릴 정도로 잘 생긴 나이토는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고의적인 실수를 일으켜도 이유가 합당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것은 범죄이니, 니콜은 고개를 돌리며 손을 씻었다. 애써 손을 씻으며 정신을 가다듬으려 해도, 핏줄이 비치는 새하얀 손등이 보여 힘들었다.

‘손이 엄청 예쁘구나. 얼굴만큼 잘 생겼고, 예쁘다.’

나이토에 대한 생각으로 범벅이 된 니콜을 현실로 끌어들인 건, 나이토의 나긋하고 정중한 목소리였다.

“니콜, 미안한데 전화 좀 빌려줄래?”

니콜이 아무 말 없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니콜의 휴대전화를 받아든 나이토는 화장실 구석에 기대어 섰다. 니콜이 가지 않고 얼굴을 보고 있었다. 나이토는 니콜의 시선을 회피한 채, 레이얀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가락이 번호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쓴웃음을 서서히 지운 나이토는 가슴을 더욱 묵직하게 만드는 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전화가 안 이어졌으면 좋겠다. 영원히 이대로 평행선이 되어 쭉 만나지 않았으면. 레이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레이얀이 자신을 원망해도 좋으니. 다른 사람을 만나 살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이제 어린 시절의 낡은 필름이 되어버렸다. 귀퉁이가 마모되고, 부스러져, 생각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전화를 받지 말아줘. 연결음을 들으며 초조하게 발로 탁탁, 바닥을 건드렸다. 화장실에 고였던 물기가 운동화 바닥에 닿았다. 물기가 다시 바닥으로 돌아갈 때쯤 연결음이 끊겼다.

전화가 이어졌다.

나이토는 눈을 감고 앓는 듯한 신음을 내뱉었다.

[여보세요?]

다정다감한 레이얀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가슴이 울컥했다. 나이토는 바로 입을 열지 못하고, 마른 침만 삼켰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 나이토야?]

눈치가 빠른 레이얀이 물어왔다. 나이토는 힘겹게 대답했다.

“응.”

[너 어디야?]

“너한테는 말 못 해.”

[왜?]

나이토는 감았던 눈을 떴다. 언제까지 현실에서 도망갈 수 없었다. 레이얀의 일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와 자신의 일에, 레이얀까지 동참시킬 수 없었다. 레이얀의 등을 거칠게 밀어서라도 내보내야 했다. 더 이상 전전긍긍 시간을 끌 수 없다는 판단을 끝낸 나이토가 입을 열었다.

“우리 그만 헤어지자.”

[…뭐?]

“진작 말했어야 했어. 레이얀, 우리 그만 헤어지자.”

[지금 몇 달 만에 전화해서….]

레이얀의 목소리가 떨렸다. 한때 로맨틱하게 사랑했고, 지금도 아주 약간이지만 감정이 남아있는 애인을 이런 식으로 잘라내야 한다는 것은 가슴을 쪼개는 듯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관계를 지속했고, 도망친 후로도 아버지를 잊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아버지를 잊지 못하는 주제에 레이얀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레이얀을 기만하는 일이었다.

몸과 정신, 영혼까지 파고든 아버지의 흔적을 다 지우지 않는 이상,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

“그렇게 알고 있어. 그동안 고마웠어.”

[나이토!]

나이토는 마지막이 될 고백을 홀로 끝마쳤다.

“정말 사랑했어, 레이얀.”

레이얀의 대답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나이토는 니콜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옆에서 조마조마하게 대화를 듣고 있던 니콜이 휴대전화를 받아들였다. 나이토는 찬물을 틀고 얼굴을 씻었다. 이런 얼굴로 일을 갈 수는 없었다. 얼굴 가죽을 벗길 듯이 씻는 나이토를 물끄러미 보던 니콜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쉬는 게 어때?”

니콜이 넌지시 던진 말에 나이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수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나이토의 눈가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무심한 시선으로 보던 니콜이 가까이 다가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오늘은 쉬어. 내가 담당한테 말해줄게.”

나이토가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갑자기 쉬게 되면 일할 사람이 없어.”

“내가 두 배로 일할게.”

무뚝뚝하지만 배려 넘치는 니콜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왜 나한테 잘해주는 거야?”

“잘해주고 싶어서?”

처음으로 니콜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레이얀과 비슷한 미소였다. 나이토는 수건으로 젖은 얼굴을 닦았다. 손에 남아있는 물기까지 완벽하게 닦아낸 나이토가 슬쩍 웃었다. 눈이 둥글게 접히고, 입술 끝이 유려하게 위로 올라갔다. 순한 강아지 같은 미소가 얼굴에 보름달처럼 떠올랐다.

“고마워.”

나이토는 선을 분명히 긋고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안전해질 때까지,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니콜은 냉정하게 구는 나이토를 용기 내어 잡았다. 나이토가 차디찬 시선으로 바라보는데도, 니콜이 볼을 살짝 붉힌 채 말했다.

“고마우면, 나랑 술이나 마실래?”

“나 돈 없어.”

빈털터리라 숙소에 같이 사는 처지라고 말하자, 니콜이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살게.”

나이토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술집은 폐가처럼 허름했다. 문은 경칩이 떨어져 끽, 거리는 소리가 났다. 바닥은 칠이 벗겨져 까슬까슬했다. 두 사람은 잘 곳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이토는 싸구려 라이더 재킷을 벗어 의자에 두었다. 하얀 티셔츠를 입었을 뿐인데 나이토의 군더더기 없는 상반신이 엿보였다. 니콜은 얼굴과 마찬가지로 끝내주는 몸을 가진 나이토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이토는 메뉴판을 보면서 정신을 반쯤 놓고 있었다.

뒤늦게 나이토는 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맥주가 나오기 전, 물로 입을 적신 나이토는 무감한 눈으로 밖을 보았다. 외국인 거주자의 비율이 높은 고잔은 건물이 높고 아슬아슬했다. 다닥다닥 닭집처럼 붙어있는 형국이었다. 땅은 좁은데 수용해야 할 인원이 많다 보니 생긴 집들이었다. 빈민가보다 낫긴 나았지만, 수도에 비교하면 허름하기 짝이 없는 도시였다. 새삼스럽게 아버지가 수도에서 만들어낸 부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크리스. 넌 여기서 오래 일할 거야?”

“글쎄.”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한 나이토는 맥주를 꿀꺽꿀꺽 마셨다. 가출을 하면서 좋은 점이 딱 하나 있었다. 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단숨에 한 잔을 비운 나이토는 점원에게 한 잔 더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니콜은 나이토와 다르게 홀짝홀짝 마시면서 나이토의 눈치를 살폈다. 무뚝뚝한 얼굴을 가진 니콜이었는데, 사석에서 보니 표정이 풍부했다. 그 모습이 조금 귀여워서 나이토는 턱을 괴고서 살짝 웃었다. 니콜이 나이토의 미소에 맥주를 마시다가 사레가 걸렸다. 나이토가 물 잔을 내밀자 니콜이 쑥스러운 듯, 볼을 긁적였다.

생각보다 순수한 남자였다, 니콜 레질은. 속으로 생각하던 나이토는 레이저 같은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담당이 너 오래 일했으면 좋겠다고 하던데. 물론 난 여기서 더 일할 거지만.”

결국 나이토도 여기서 오래 일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뻔한 속내였다. 나이토는 니콜이 자신에게 느끼는 호감 이상의 감정을 눈치챘다.

“힘들지 않아?”

나이토가 묻자 니콜이 한숨을 내뱉다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이거만큼 수입이 좋은 게 없어.”

그건 맞는 말이라 나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코올이 몸을 돌자 둘 다 긴장을 풀었다.

“넌 어디까지 일 해봤어?”

니콜이 은근히 물어왔다. 중요한 말이 빠졌지만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이토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서 담담하게 말했다.

“난 몸은 안 팔아.”

“그렇구나.”

어쩐지 니콜이 기뻐하는 눈치였다. 나이토는 배시시 웃는 니콜을 보면서 확신을 가졌다.

나랑 자고 싶어 하는구나.

맥주잔을 내려놓고, 흰 거품이 묻은 입술을 손등으로 가볍게 닦아냈다. 나이토는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재잘재잘 떠드는 니콜을 지그시 보았다. 눈은 니콜을 향해 있었지만, 머리에는 니콜이 없었다.

한 번 자볼까. 정말 어쩌면, 욕구불만이라서 아버지가 기억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이토는 눈을 내리깔고 고요한 황금빛 수면을 보았다. 흰 거품이 거의 사라진 수면은 조용하다. 하지만 저 안에 손톱보다 작은 돌멩이를 던지면, 파동은 엄청나게 커질 테지…….

눈을 들어 올렸다. 어느새 니콜도 대화를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나이토를 보고 있었다. 나이토는 조용히 웃었다. 니콜이 입을 달싹거리며 움직이고 있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지금 드는 생각은 오로지 하나였다.

니콜의 손목을 잡았다. 생각지도 못한 접촉에 니콜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나이토는 구운 마시멜로우처럼 달콤하고 폭신한 목소리로 물었다.

“넌 해봤어?”

니콜이 입을 다물었다.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나이토는 피식, 웃으며 그대로 니콜의 뒷목을 당겨 키스했다. 아주 짧은 키스였다. 입술만 붙고, 차가운 맥주의 온도를 공유하고 떨어졌다. 니콜의 얼굴이 서서히 붉어졌다. 나이토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니콜의 목에서 손을 뗐다.

“이런 거 해봤냐고.”

“…이건 해봤어. 근데 다른 건…안 해봤어.”

니콜이 부끄러운지 눈을 내리깔았다. 감흥은 없었다.

“그래?”

나이토는 일부러 니콜의 여린 손목 살을 엄지로 살살 문지르며 말했다.

“나하고 다 해볼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잠시 대답이 없는 니콜을 쳐다보는 나이토의 시선이 나른했다. 여유는 금세 타들어 갔다.

니콜이 벌떡 일어났다. 허둥지둥 벗은 재킷을 입은 니콜이 나이토의 팔뚝을 잡아 일으켰다. 나이토도 벗어둔 라이더 재킷을 걸쳤다. 술을 빠르게 섭취한 탓일까. 머리가 어지러웠다.

니콜을 어설프게 유혹했던 것도 술기운이 컸다. 아버지에게서 도망친 후로 뒤로 욕구를 풀지 못한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꿈에 아버지가 너무 자주 나와서 자신을 희롱했다. 현실뿐만 아니라 꿈에서도 야릇한 플레이로 지배하는 아버지 때문에 하루하루 버티는 게 힘들었다. 아버지 것과 비슷한 물건이 자신의 뒤를 마구잡이로 쑤셔주길, 바라고 있었다.

이게 다 아버지 때문이다. 빌어먹을 아버지가 이렇게 만들어놔서 만족이 되지 않았다.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섹스가 미치도록 하고 싶었다.

나이토는 니콜이 잡은 방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재킷을 벗지도 않고 격렬하게 키스했다. 입술이 아팠다. 이가 부딪혀, 딱 소리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스는 멈추지 않았다. 키스를 하는 동안 재킷을 벗었다. 침대로 나이토가 쓰러졌다. 니콜이 그 위에 엎드려 거칠게 나이토의 입술을 탐했다.

“아….”

이게 아닌데.

니콜의 뒷목을 끌어안은 나이토가 인상을 썼다. 이런 키스를 원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해주는 것처럼 다정하고, 깊은 키스를 원한 것이었다. 애새끼처럼 무조건 달려드는 키스는 아프기만 할 뿐이다. 나이토는 발정 난 짐승처럼 달려드는 니콜을 떼어내며 헐떡였다.

“살살해. 입술 뜯어지겠어.”

“미안해. 근데, 너무 좋아서.”

니콜이 또다시 거칠게 키스했다. 나이토는 인상을 찌푸리며 이 관계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니콜은 나이토와 하는 것 자체가 좋은지 나이토의 몸을 더듬느라 바빴다.

아버지는 이럴 때 유두를 만졌었다. 비틀고, 빨아주고. 아버지와 하던 섹스를 더듬거리며 떠올리던 나이토는 니콜의 상체를 밀었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구토감이 밑바닥부터 밀려왔다. 화장실로 달려갔으나 나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 변기에 달라붙은 나이토는 눈을 느리게 깜박거렸다.

“왜 그래?”

니콜이 걱정되어 달려왔다. 나이토는 니콜의 손을 뿌리치고, 찬물로 입을 헹궜다.

‘이렇게 좋은 적 있었어? 없었지? 응? 거봐, 아버지니까 널 이렇게 잘 아는 거야.’

아버지가 자신의 성기를 매만지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후로 자신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싫다, 끔찍하다, 하면서 아버지가 주는 쾌락에 끌려가는 모습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싫어서 도망쳐 나온 주제에, 그것도 칼로 찌르고 죽이려고 했던 주제에, 다른 사람과 잠자리에서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이제 스스로가 이해 가지 않았다.

벗어나야 하는데, 왜 벗어나지 못하는 거지?

생각보다 아버지에게 많이 중독된 것 같았다. 이것이 금단 증상이라고 여겨질 만큼.

나이토의 몸이 난데없는 한기에 부들부들 떨렸다. 니콜은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진 나이토를 걱정하며 등을 두들겨 주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자박, 자박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면서, 정갈한 구두 소리. 매우 많이 들어봤던 소음이었다.

반쯤 눈을 감고 있던 나이토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누구지…?”

덜컥, 덜컥.

누가 문을 열려하고 있었다. 나이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이토는 잡아오는 니콜을 뿌리쳤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모텔은 2층 높이였다. 대충 미래를 가늠해보던 나이토는 니콜을 돌아보며 말했다.

“도망 가, 어서!”

콰앙, 소리와 문이 열렸다. 뛰어내리기 전, 나이토는 보았다. 경호원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들어오는 것이. 나이토는 2층에서 뛰어내렸으나 착지를 잘못해 곧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우지끈,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발목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았으나 나이토는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도망가야 해, 여기서. 어서 빨리 도망가야 해.

그 생각에 사로잡혀 다친 발을 질질 끌며 뛰었다. 택시라도 잡아야 했는데, 지나가는 택시도 없었다. 무작정 뛰었다. 저 멀리서 음주단속을 하던 경찰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다가왔다.

“괜찮아요?”

“…도와….”

구두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증폭되면서, 귀에 폭탄처럼 연쇄적으로 들렸다. 몸이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눈이 커지고, 경찰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경찰이 의아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나이토를 불렀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의식에 닿지 않았다. 나이토를 무섭게 하는 구두 소리. 그리고 그 위에 덮어지는 지독하고 향기로운 향수 냄새가 의식을 헝클었다.

나이토는 경찰의 손목을 놓았다.

“여기 있었네, 우리 아들.”

어린 시절보다 농후해지고, 진득한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핏줄이 도드라지게 솟은 손이 드디어 어깨에 닿았다. 아버지의 손바닥은 뜨겁고 단단했지만, 무서운 한기가 몸을 덮쳤다.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아버지는 나직하게 웃으면서 몸을 사시나무처럼 떠는 아들을 끌어당겼다.

경찰에게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경찰은 값비싼 정장에 잘생긴 얼굴을 한 엘시를 보고, 별 의심 없이 물러났다. 엘시는 완벽한 귀족의 모습이었다.

“아들이 가출을 해서요. 찾으러 온 겁니다.”

“아, 그러셨군요.”

경찰은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품에 안겨 아무것도 못 하는 나이토의 턱을 들어 올렸다. 나이토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뺨을 장갑 낀 손으로 매만지며 입술을 열었다.

“즐거웠어? 난 재밌었는데. 너랑 노는 건 늘 재밌거든.”

나이토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손이 목을 꽉 잡았기 때문이다. 위압적으로 나이토의 목을 잡은 아버지가 키 차이 때문에 고개를 숙이며, 안타깝다는 듯 인상을 쓰며 말했다.

“다른 건 다 봐주는데, 다른 남자랑 자는 건 못 봐주겠더라. 그래서 왔어.”

모든 걸 다 보고 있었다는 듯한 말이었다. 아버지는 나이토를 데리고 니콜과 자려 했던 모텔로 갔다. 나이토가 발이 다쳐 제대로 걷지 못하자, 아버지가 직접 공주님처럼 안아 모텔로 들어갔다. 출입구에서 아버지는 나이토를 허리춤에 밀가루 포대처럼 꼈다. 아버지는 주인에게 가진 돈을 다 던져주며 말했다.

“방 다 비워요.”

“안 그래도 손님은 아까 두 분밖에 안 계셨어요.”

주인이 히죽 웃으며 알아서 나갔다며 허리를 숙였다. 그중 한 명이 다시 잡혀 온 걸 모르는 눈치였다. 아버지는 모텔 방 열쇠를 받아들었다. 나이토가 도망가려고 바르작거렸지만, 아버지가 다친 발을 걷어차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발목부터 올라오는 짜르르한 통증에 고개를 숙이고 신음을 삼켰다. 이런 곳에서 볼품없이 울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뒷목을 잡고, 방에 던졌다. 바닥에 넘어진 나이토가 바들바들 떨며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구둣발로 나이토의 다친 발목을 세게 밟았다.

“아아악!”

“걱정 마. 안 그래도 다리 하나는 부러뜨려서 데려갈 생각이었으니까.”

아버지가 고의적으로 다친 부분을 콱, 콱 밟았다. 너무 아팠다. 나이토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손톱으로 바닥을 긁자, 아버지가 전화로 누군가를 불렀다. 아버지의 경호원들이 들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사람을 고문할 때 쓰는 각종 도구가 들려있었다. 그걸 본 나이토가 눈을 크게 뜨고, 몸을 뒤로 움직였지만 그들이 더 빨랐다.

“재갈 물려.”

기어서라도 도망가려는 나이토의 등을 이름 모를 남자가 발로 밟았다. 다른 남자가 다가와서 입에 재갈을 물렸다. 팔이 뒤로 묶였다. 나이토가 덜덜 떨면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다친 다리를 바깥쪽으로 내밀게 했다. 나이토의 숨이 점차 거칠어지고, 얼굴에 열이 올라 붉어졌다.

입에 재갈이 물려 애원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의 손에는 어느새 쇠파이프가 들려있었다. 아버지는 쇠파이프로 다친 다리를 툭툭 두들겼다. 넘어질 때 다치고, 아버지에게 밟혀서 조금만 건드려도 다리가 아팠다. 아버지는 다리를 부러뜨리기 전, 나이토와 눈을 마주쳤다. 눈물로 젖은 나이토의 얼굴을 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너도 이제 알고 있지? 내가 널 일부러 내보내 줬다는 걸.”

나이토가 대답하지 않자, 아버지가 쇠파이프로 다리를 힘을 실어 때렸다. 나이토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재갈을 꽉 문 턱에 힘이 들어갔다.

“대답 안 해? 진짜 한 번 부러져 볼래? 부러진다고 죽진 않으니까.”

나이토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통증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니, 아버지가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린다는 생각에 몸이 계속 떨리는 것이었다. 공포에 질린 나이토를 보며 웃은 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잘 대답하면 안 할 수도 있어. 알겠어?”

나이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나이토 앞에 앉아 다리를 꼬고 담배를 물었다. 그러자 경호원이 다가와 불을 붙여줬다. 쇠파이프를 어깨에 걸친 아버지가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이름 모를 남자가 다리로 등을 받치고, 머리채를 잡아 아버지를 보게 만들었다. 흐린 담배 연기가 사라지며 아버지의 얼굴이 나타났다.

독을 품은 얼굴이었다.

“일부러 풀어주고, 잡아오는 게 힘든 일이지만 이것만큼 확실한 방법도 없지. 그래야 두 번 다시 도망갈 생각을 못 하거든. 사람이라는 게, 못 일어날 정도로 밟히면 그다음은 알아서 기더라고. 내가 수없이 해봐서 잘 아는데, 과연 내 아들도 그럴까?”

나이토는 재갈이 입에 물려있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도 대답을 원한 건 아니었는지, 웃는 얼굴로 담배를 피웠다.

“어때, 즐거웠어?”

나이토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흡족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재밌으면 됐어. 그런데, 다음부턴 같이 즐기자. 알았지?”

그는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구둣발로 비벼 껐다. 아버지가 나이토의 앞으로 다가왔다. 향수 냄새가 진하게 밀려와 후각을 마비시켰다. 몸이 그토록 바라던 아버지의 냄새였다.

“아버지 생각하면서 자위한 적 있어?”

나이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버지는 미모사처럼 오그라들어 떠는 아들을 보며 픽 웃었다. 바람 빠지는 그의 웃음소리가 소름 끼치게 잘 들렸다.

“다시 물어볼게. 아버지 생각하면서 자위한 적 있어? 그건 부족했을 텐데. 내가 넣어주기만 하면 좋아서 우는 너였으니까. 앞으로 만지는 걸로 부족해서, 뒤도 자기가 쑤셨겠지? 안 그래?”

나이토의 몸이 전보다 더 떨리고 있었다. 다가올 고통을 인내하려는 듯이.

아버지는 나이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를 닮아서 흑발인 게 마음에 들었는데 염색해버렸네. 걱정 마. 집에 돌아가면 다시 흑발로 염색해줄게.”

아버지가 일어났다. 눈물로 젖은 눈을 들어 올리자 아버지가 쇠파이프를 잡는 게 보였다. 나이토가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너무 무서웠다. 이 상황이 미치도록 무서웠다.

“자, 아들. 아버지는 인내심이 없어. 그래도 너에게 세 번은 물어봐 줄게.”

아버지가 다친 발쪽에 섰다. 나이토는 눈물로 흠뻑 젖은 눈으로 아버지를 보았다.

“이제 인정하게 됐어? 아버지한테 발정하고 있다는 걸.”

아버지의 시선과 말은 너무 직선적이었다.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사실을 당사자 입으로 통해 듣자 머리가 망치에 맞은 듯 얼얼했다. 어머니인 얀을 닮아 검푸른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극한까지 몰린 아들의 정신 상태를 알면서도 아버지는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시간을 줬으면 결론을 내야지. 내가 괜히 내버려둔 줄 알아?”

아버지가 다친 발목을 발로 걷어찼다. 나이토는 짜릿하게 울리는 통증에 재갈을 꽉 물었다. 떨어질 때 잘못 착지한 것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발로 걷어차고 밟아서 더 악화된 것 같았다. 밀려오는 고통을 힘들게 인내했다.

나이토가 눈을 감았다가 느리게 반쯤 뜬 사이 아버지는 나이토 앞에 정중하게 앉았다. 한쪽 무릎만 바닥에 대고 앉은 자세가 공주를 보필하는 기사 같았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머리채를 잡은 남자에게 나가라고 명령했다. 곧이어 다른 남자도 자리를 비웠다.

싸구려 모텔 방에는 이제 아버지와 나이토만 남았다. 아버지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나이토의 뺨을 잡아 들어 올렸다. 아버지의 손바닥에 기대 잘게 떠는 나이토의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고통을 참느라 식은땀이 얼굴을 흠뻑 적셨고, 눈가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들의 애처로운 모습에 잠시 마음이 흔들린 것일까. 아버지의 매섭던 눈빛이 살짝 누그러졌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뺨을 양손으로 들어 올린 채,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에게 발정하면서 아버지라서 인정하지 못하다니.”

아버지의 느리고 거침없는 말이 나이토의 연약한 내부를 파고들었다. 아버지는 정확하게 나이토의 심리를 파악하고 있었다. 나이토는 자신의 상태를 뻔히 알면서 내보낸 아버지의 심리를 알아채자, 허탈하게 웃었다.

아버지는 나이토가 스스로 아버지를 인정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었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자신에게 종속되길 바라는 것이었다. 지독한 아버지의 소유욕과 집착에 이제 백기를 들어야 하는 건가.

하지만 자신을 응시하는 자색 눈동자를 보자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아버지는 자신을 낳아준 사람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유년시절도 책임지고 길러준 사람이 아니던가. 비록 거칠고 포악하긴 했어도, 때때로 아버지는 다정하게 자신과 알토를 돌봐주곤 했다. 7년을 버렸지만 다시 찾아갔을 때 받아주고 학교까지 책임진 사람도 아버지였다. 어떻게 부정하려 해봐도 결국 아버지는 아버지였고, 자신은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바닥에 기대어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렇게 도망가고 싶었고, 벗어나고 싶었던 굴레에 꼼짝없이 잡혔다. 모든 건 아버지의 뜻대로 흘러갔다.

도대체 자신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아등바등 도망쳤던 것일까. 그나마 이성적으로 지탱했던 것들이 부서져 가루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는 나이토의 뺨을 가볍게 쳐 눈을 뜨게 만들었다. 나이토가 고집이 한풀 꺾인 눈으로 쳐다보자, 아버지가 입술 끝을 당겨 올리며 웃었다.

“어차피 넌 어디도 도망 못 가.”

아버지가 나이토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단숨에 나이토를 일으켜 침대에 던졌다. 다친 발목이 침대에 부딪혀 통증이 한 번에 확 올라왔다. 아파서 몸을 웅크리는데, 아버지가 다가왔다. 그는 나이토의 옆에 앉아 가느다랗게 떨리는 목을 매만졌다. 땀으로 젖은 목이 축축했다. 그 안으로 손을 더 넣어, 맨살을 만지작거린 아버지가 고개를 숙여 아들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친아들이라서 널 받아준 거 같아? 천만에.”

아버지의 손이 아래로 내려와 나이토의 엉덩이를 잡았다. 나이토는 섬뜩하면서도 음란한 손짓에 재갈을 물었다. 눈앞이 뿌옇다. 눈물 때문이었다. 세상이 탁한데도, 아버지의 자색 눈만은 유리창 너머로 본 것처럼 맑게 잘 보였다.

“그때 난 알았거든. 네가 내 아들 이상이 될 거라고. 그래서 성인이 될 때까지 고이 길러준 거야. 학교도 보내주고. 말도 안 되는 조건 걸어서 무조건 집에 있게 만들었지.”

듣기 좋은 목소리로 낮게 웃은 아버지가 성기를 은근히 매만졌다. 성기가 아버지에게 반응한다. 나이토가 숨이 불규칙적으로 변했다.

“내가 그랬잖아. 레이얀이라는 그 남창 새끼보다 내가 널 먼저 좋아했다고.”

아버지가 엎드린 나이토의 몸을 똑바로 눕혔다. 아버지의 고백을 들은 나이토의 몸이 돌풍 속에 선 마른 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이토의 뺨을 어루만졌다. 아버지의 손은 그대로 아래로 내려와 힘이 들어간 턱과 목을 만지고, 셔츠 사이로 파고들었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빳빳하게 선 분홍색 유두를 만졌다. 유두를 살짝 꼬집어주고 비틀자 나이토가 막힌 신음을 내며 다리를 달싹거렸다. 나이토가 통증 때문에 인상을 쓰고, 몸을 움찔거리자 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아버지는 녹아내릴 것 같은 눈빛으로 나이토를 보며 상냥하게 말했다.

“이래도 인정 못 하겠어?”

아버지가 대답을 요구하며 재갈을 풀어줬다. 나이토는 재갈이 풀렸으나 아버지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나이토는 아버지를 뚫어지게 보면서 눈물에 푹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난 아버지처럼 살 수 없어.”

자신이 내린 결론에 아버지는 그다지 화내지 않았다. 아버지는 손을 뻗어 나이토의 뺨을 만지면서 아름답게 웃을 뿐이었다.

“뭐, 차근차근 시작하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아버지는 나이토 위에 올라탔다. 고개를 숙여 아주 달콤한 키스를 선사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아버지의 입술은 뜨거웠다. 치아 사이를 가르며 들어온 혀가 입안을 자유롭게 누볐다. 니콜과 했던 키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움직이지 못하게 머리채를 꽉 잡고서 내리누르는 키스였지만, 익숙한 입술이 닿았다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달아올랐다. 호흡이 거칠어지며 아래가 욱신거렸다.

나이토의 정직한 반응에 아버지는 소리 내서 웃더니, 나이토가 입고 있던 셔츠를 벗겼다. 팔이 뒤로 묶여있어 다 어깨에 반쯤 걸쳐졌다. 아버지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나이토의 상반신을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해성사를 하는 신자처럼 경건하기 그지없는 태도와 목소리에 몸이 굳어간다.

“널 버리는 게 아니었어. 키워서 계속 나만 바라보게 만들었어야 하는 건데.”

“아…!”

아버지의 손가락이 유두를 세게 비틀었다. 따끔했으나 뒤에 밀려오는 쾌감에 눈을 감았다. 신음을 참는 나이토를 본 아버지가 짓궂게 웃었다. 아버지는 손을 아래로 내려 반쯤 선 나이토의 성기를 잡았다.

“사실 내가 화가 좀 났거든. 네가 날 칼로 찌른 건 괜찮은데, 딴 새끼랑 자려는 건 진짜 못 참겠어. 그러니까 잘 참아봐.”

화내는 지점이 남다른 아버지의 성격을 지적해 주려다가, 아버지가 바지를 거칠게 벗기는 바람에 하지 못했다. 다친 발목이 옷에 걸린 것이다. 아버지는 바지를 다 벗기고서 다리를 활짝 벌렸다. 작정하고 왔는지 바지 주머니에서 일회용 젤을 꺼냈다. 아버지는 손바닥 가득 젤을 짜더니, 메마른 구멍을 더듬거리다가 한 개를 푹 넣었다. 한 달이 넘게 섹스를 하지 못한 몸은 손가락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뻑뻑한 내부를 유영하듯 움직였다. 안을 꼼꼼히 만진 아버지는 남은 손으로 나이토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착하게 뒤는 안 대줬나 보네. 뒤까지 대줬으면, 진짜 죽여 버리고 싶었을 거야.”

니콜과 섹스를 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에 화가 났는지 아버지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얼굴 자체가 신이 신경 써서 만든 피조물같이 생긴 아버지라, 광기에 젖어있어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더 이상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건 무리였다. 나이토는 눈을 감고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그러나 눈을 감자, 신기하게도 아버지의 손길이 각인되는 것처럼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버지의 손이 닿는 곳마다 열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손가락 두 개로 쑤시는 내부는 이미 남자의 성기가 그리워서 움찔거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정말로 화가 났는지, 예전처럼 공들여서 애무를 해주지 않았다. 대충 구멍이 풀린 것 같으니 위협적으로 발기한 성기를 바로 갖다 대었다. 미끈거리는 귀두가 느껴졌다. 귀두는 들어가기에 좁은 구멍을 무자비하게 벌리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 아파…흑!”

나이토의 눈이 부릅떠지며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팠다.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고통이 작렬했다. 다리가 다친 것과는 다른 통증이었다. 영혼까지, 산산조각 나는 고통이었다.

“정말 아프기만 해?”

아버지가 성기로 주름을 착실하게 누르며 들어왔다. 아버지가 젤을 끝까지 제대로 발라주지 않아 안이 빡빡해서 아팠다. 나이토가 입술을 악물고서 버티자,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입을 벌리게 했다. 아버지는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성기를 깊숙이 박아 넣었다. 내부 안쪽까지 들어온 길고 단단한 성기의 느낌에 순간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버지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나이토의 입에서 자동적으로 나온 말을 들었다.

아버지는 매끄럽게 웃으며, 나이토의 허리를 꽉 잡고 말했다.

“한 번 더 말해봐.”

아버지의 성기가 내부를 확 가르며 빠져나갔다. 나이토는 화끈한 감각에 가느다란 신음을 흘렸다.

“흐으읏! 아…!”

지금 이 시점에서 나이토는 몸을 탐하는 사람이 아버지라는 생각이 흐려지고 있었다. 인정할 수 없다고, 아버지처럼 살 수 없다고 말한 주제에 입술은 제멋대로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아, 좋아…! 흐으, 더…으으! 아!”

아버지가 종아리를 잡고 아래로 눌렀다. 다친 발목이 뻐근하고 욱신거렸지만 지금은 내부를 들락날락하는 성기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고 있었다. 아버지가 침대 위로 올라와 더 깊숙이 허리를 박아대는 게 느껴졌다. 아버지의 손이 뺨에 닿았다. 아버지는 뺨을 가볍게 쳐서 눈을 뜨게 만들었다. 나이토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퍽, 퍽 박아대면서 눈빛은 봄날 햇살처럼 따스했다. 그 이질감을 견디기 힘들어 눈을 감으려는데, 아버지가 눈웃음을 너무 아름답게 지어서 피할 수 없었다.

“계속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며 아버지가 본격적으로 허리를 움직였다. 일부러 나이토가 느끼는 부분을 피해 가면서 찔러댔다. 나이토는 팍, 하고 터질 듯 말 듯 한 쾌감을 참을 수 없었다.

더, 더 강하게. 그 말을 달싹거리며 손을 움직였다.

아버지가 손을 풀어준 것도 몰랐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아버지의 등을 끌어안고 있었다. 다친 발목에서는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아래에서 폭발적으로 터지는 쾌감에 머리와 몸이 녹아내린다는 느낌뿐이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고급스러운 셔츠를 잡으며 애달프게 흐느꼈다.

“아, 아빠…! 흐응, 응…!”

그런 나이토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아버지는 눈을 반짝였다. 아버지의 손이 연신 나이토의 얼굴을 쓰다듬고, 아버지의 입술이 계속 세뇌시키듯 말했다.

“사랑해, 나이토.”

그 말을 들은 나이토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끊어질 듯, 연약하게 신음만 내뱉는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었다. 아들의 신음까지 모조리 뺏어가겠다는 듯 혀가 억세게 움직였다. 계속 애태우던 성기가 원하는 부근을 건드리자 나이토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못 참겠다는 듯, 아버지의 셔츠 자락을 잡고 버텼다. 힘이 바짝 들어간 나이토의 손등을 본 아버지가 웃으며 허리로 빠르게 느끼는 부근을 만져주었다. 그러자 나이토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 더 세게…더 세게 해줘.”

“존댓말로 말해야지.”

나이토는 아버지의 요구에 눈물이 매달린 눈을 떴다. 그 반동에 눈물이 툭, 시트로 떨어졌다. 나이토의 쾌감을 비집고 사라졌던 이성이 돌아왔다. 하지만 아버지가 허리를 움직여 나이토를 애태우자, 몸이 쾌감으로 달궈졌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어깨를 잡고서 끊길 것 같은 목소리로 간신히 얘기했다.

“더 세게…흐읏, 더 세게 해주세요.”

아버지의 미소가 다정하게 변했다. 정말 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해맑게 빛나는 아버지 얼굴에 나이토는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자신을 잡고 있던 모든 걸 놓고 싶었다.

“잘했어.”

어깨를 잡고 있던 나이토의 손이 시트로 떨어졌다. 하얀 손은 바르작거리며 시트를 꽉 잡았다.

고작 이걸로 끝날 리 없었다. 아버지는 너무 절륜했다.

*

“일어나.”

부드럽지만 엄격한 목소리가 잠든 나이토를 깨웠다. 잠에 푹 젖어있던 나이토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창밖 세상이 온통 푸른 멍으로 뒤덮여있었다. 만약 지평선 끝이 희미한 주홍색으로 불타오르고 있지 않았다면, 무슨 시간대인지 몰랐을 것이다.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 의식으로 지금이 새벽이라는 걸 깨달은 나이토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 부근이 너무 아팠다. 홧홧하게 타오르는 통증에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지금 아버지에게 안겨있었다. 빈틈없이 정장을 갖춰 입은 아버지와 대조적으로 나이토가 입은 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가 나이토의 바지 자락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처음에 입고 있던 옷이 아니었다. 헐렁한 트레이닝 바지였다.

바지 자락을 들어 올리자 깁스가 되어있는 발목이 보였다. 섹스 후 지쳐서 잠든 사이, 치료를 해 준 듯싶었다.

“3주 정도 깁스하면 나을 거야.”

“다리 부러뜨린다면서?”

정신을 차린 나이토가 원래대로 돌아와 빈정거리자 아버지는 피식 웃었다. 아버지는 염색으로 푸석해진 나이토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느긋하게 말했다.

“착한 아들이 아빠 화를 다 풀어줘서 그럴 필요가 없었어.”

나이토는 아파오는 허리를 꽉 잡는 손길에 얼굴을 굳혔다. 서서히 떠오르는 어젯밤 일에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어떻게 아버지에게 매달렸고,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생생히 기억났기 때문이다. 나이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걸 본 아버지는 손을 뻗었다. 긴장을 풀라는 듯, 애정이 담긴 손으로 뺨을 만졌다.

“인정 안 해도 돼.”

그러면서 아버지가 살짝 부어오른 아랫입술을 엄지로 눌렀다.

“이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넌 그대로 있어.”

“정말 계속할 생각이야?”

나이토가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며 물었다. 아버지는 이제 자신의 손길을 피하지 않는 아들을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어젯밤 내가 말한 거 잊었어?”

“……아들 이상이라고?”

“그래.”

아버지가 아들의 허리를 당겼다. 얼굴이 키스할 것처럼 가까워졌다. 아버지의 숨소리가 오케스트라처럼 웅장하게 들렸다. 그것뿐만 아니라 두근거리는 아버지의 심장 소리도 잘 들렸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어깨를 잡고서 안겨있었다. 아버지는 다른 손으로 부드럽게 뺨을 쓸어 만졌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을 내리면서, 아버지에게 차갑게 말했다.

“아들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잖아.”

그러자 아버지가 유쾌하게 웃으며 나이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게 편하면 그렇게 생각해.”

별거 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버지의 거대한 저택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안긴 나이토를 내려놓았다. 아버지의 운전사가 재빠르게 다가와 차 문을 열어줬다. 아버지는 살짝 정신이 나가 있는 나이토를 흘깃 보더니,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널 위해 새로운 집을 만들었어. 너도 아주 마음에 들 거야.”

아버지가 차 밖으로 나가서 나이토를 기다렸다. 운전사도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사라진 이 시간, 나이토는 홀로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듯 정면을 응시했다. 아버지의 저택은 여전히 고고한 자태로 나이토를 위압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름 모를 꽃들이 만개한 정원, 가장 중앙에 위치한 분수, 집 안의 모든 것을 감싸 안을 듯 거대하게 펼쳐진 아버지의 집들까지. 하나하나 눈여겨보던 나이토는 천천히 차 밖으로 나갔다. 나가지 않는다고 버텨도 아버지가 무력으로 끌어내릴 걸 알고 있었다.

나이토가 자기의지로 밖으로 나오자 아버지는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나이토에게 팔을 내밀었다. 나이토는 머리 하나는 더 큰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손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가 손을 잡아왔다. 나이토의 허리도 억센 팔로 감싼 아버지가, 드러난 이마에 짧게 키스하며 나긋하게 말했다.

“피곤할 테니까 가서 자.”

“아버지는?”

아버지는 나이토를 품에 안고 조금씩 앞으로 걸으면서 조용히 얘기했다.

“너 때문에 밀린 일이 많아. 이제 네가 왔으니, 안심하고 일을 처리해야지.”

밀린 일이 무엇일까. 잠깐 생각하던 나이토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자작이 되는 거?”

나이토의 말을 들은 아버지가 걸음을 멈추더니 나이토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나지막이 소리 내서 웃었다. 대답은 해주지 않고 그는 묵묵히 걸어서 금세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본래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 아버지가 지어준 곳이었으나 그 의미가 무색하게 빈집이 되어버렸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이룬 부를 찰나의 순간 지켜보고 저세상으로 가셨기 때문이다. 이쪽까지 올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천천히 둘러보니 참으로 아름다운 집이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품에서 살짝 빠져나와,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또 카메라가 설치된 거야?”

“카메라뿐이겠어.”

아버지의 웃음이 너무 상큼해서 할 말을 잃었다. 나이토는 한 템포 느리게 되물었다.

“…뭐?”

“듣는 것보다 보는 게 빠르지.”

서서히 얼굴이 하얘져 가는 나이토의 얼굴을 보던 아버지가 싱긋 웃으며, 나이토를 끌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새로운 주인인 나이토를 반겨준 것은 텅 빈 중앙이었다. 포근한 카펫과 벽난로를 빼면 아무것도 없었다. 풍경화처럼 아름답던 집 밖과 달리 썰렁한 집 안에 나이토는 얼떨떨한 얼굴이 되었다. 아버지는 나이토를 등 뒤에서 끌어안고서 친절하게 집 안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네가 원하는 건 이곳에서 뭐든지 할 수 있어.”

이곳에서. 유독 그 단어가 귓가에 맴돌았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품에 가만히 안긴 채, 힘없이 중얼거렸다.

“날 밖에 내보낼 생각이 없는 거네.”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어. 밖에 나가면 욕구불만인 아들이 누구하고나 잘 수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손을 내려 나이토의 성기를 잡았다. 나이토는 단호하고 부드러운 손짓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눈을 감았다. 나이토가 살짝 어깨를 떨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만해.”

“내가 만들어준 몸이자, 길들여준 몸으로 아무하고나 붙어먹으면 안 되는 거야. 알겠어?”

“그만하라고!”

아버지가 성기에서 손을 뗐다. 나이토는 아버지 품에서 빠져나와, 아버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순순히 잡혀 와줬으면 된 거잖아!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거야!”

CCTV에 감금까지. 나이토는 머리가 분노로 불타오를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심하게 구속해올 줄 몰랐다.

이제는 최소한의 자유도 안 주고 널 가지겠다는 아버지의 의사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아버지와 붙어먹는 것도 충분히 힘든 일이었다. 납득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감내하면서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었다. 미치지 않을 것만으로도 용할 지경이었다.

나이토는 아버지를 노려보던 눈에서 분노를 죽였다. 그는 이제 아버지의 팔을 잡고 매달려 살짝 잠긴 목소리로 부탁했다.

“내가 뭘 해주길 바라는 거야?”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이토를 지그시 보더니 뺨을 감쌌다. 키스할 것처럼 다가오던 아버지가 멈췄다. 그의 자색 눈동자가 자신의 모든 걸 휘어잡았다.

“나에게 확신을 줘.”

“확신…?”

나이토가 되묻자 아버지가 입술을 끌어올려 웃었다. 그는 나이토의 뺨을 연신 어루만지며 말했다.

“날 떠나지 마.”

순간 그 목소리가 너무 애절해 가슴이 두근거릴 뻔했다. 사랑한다고 속삭였을 때처럼 아버지의 눈동자가 뜨거웠다. 나이토는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단호하게 나이토의 얼굴을 잡았다. 울 것처럼 일그러진 나이토의 얼굴을 보며 아버지가 뒤이어 말했다.

“너도 날 사랑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나에게 이러지 말았어야지.”

니이토는 흔들리던 눈빛을 다잡고 아버지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멋대로 구속하고, 목을 조르고, 레이얀과 연애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강간했던 아버지였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게 용서될 수 없었다. 그까짓 말로 자신을 흔들 수 없었다. 나이토의 내면을 들여다본 것처럼 아버지는 애절하던 눈빛을 지우고 다시 태연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는 한 걸음씩 가까워졌다. 나이토는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고급스러운 정장 재킷을 꽉 잡았다. 20cm나 큰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어떻게 해야 네가 나한테 왔을까. 다정하게 대해주면, 레이얀처럼 사랑한다고 했으면 네가 왔을까? 아니, 넌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갔을 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를 사랑하는 일 따위 없다고 말하려는데, 아버지가 먼저 말을 자르고 제멋대로 말했다.

“그래서 내 방식대로 한 거야. 어차피 어떤 방법으로도 통하지 않을 거면,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제일 빠르거든. 그렇게 해도 반발할 사람도 없고 말이야.”

소리 내서 웃은 아버지가 나이토를 떼어냈다. 그는 마른 낙엽처럼 푸석해진 나이토의 머리채를 꽉 잡고서 낮은 목소리로 다정하게 속삭였다.

“왜냐하면 넌 내 아들이니까. 아버지가 아들 함부로 대하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

처음부터 작정한 것이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철저하게 계산된 아버지의 행동에 치가 떨렸다. 이어오던 반항도 멎었다. 어차피 반항을 해도 아버지가 막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이토가 잠잠해지자 머리채를 잡던 손을 내리고서 나이토의 옷을 느리게 벗겼다. 그는 드러난 어깨에 느리게 키스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자유를 원한다면 나에게 확신을 줘. 네가 날 떠나지 않는다는 확신을.”

나이토는 서서히 달아오르는 욕구를 눌러 참으며 아버지의 어깨를 밀었다. 반쯤 벗겨진 옷을 빠르게 입으며 말했다.

“거짓으로 사랑한단 말이 듣고 싶은 거면, 난 못 해.”

“누가 사랑한다고 말하래?”

아버지도 딱히 여기서 더 할 생각이 없는지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넣었다. 그는 고개만 살짝 내려 위협적으로 내려다보았다. 여태껏 보여주던 다정한 미소와는 달리, 푸른 적의가 감도는 얼굴로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레이얀이라는 남창 새끼가 너한테 기웃거리지 못하게 만들어.”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레이얀이라는 이름에 나이토의 얼굴이 굳었다. 그 이름을 듣자 가슴 한구석이 쓰리게 아팠다. 예전처럼 풋풋하면서 불타오르는 사랑은 아니었지만 아직 레이얀을 향한 애정이 남아있었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마저 아버지에게 빼앗긴 터라, 도저히 그를 사랑하고 생각할 틈이 없었다. 멍하니 레이얀을 떠올리던 나이토는 매섭게 쳐다보는 시선을 감지하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헤어지자고 얘기했어. 그러니까 레이얀은 내버려둬.”

“그래? 근데 그 새끼는 그렇게 생각 안 하던데.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애가 그 지경이 됐냐고 나한테 뭐라 하더라고.”

“레이얀을 만난 거야?”

“이제 곧 자작이 될 몸인데 귀족들하고 만나는 건 당연한 거야.”

아무렇지 않게 나이토를 혼낸 아버지가 구겨진 옷을 피며 냉정하게 덧붙였다.

“공작이 아끼는 애라서 여기까지 봐준 거야. 내가 진짜 미쳐서 그 새끼 죽이기 전에, 네가 알아서 잘라.”

“봐준 게 아니라 못 죽인 거겠지. 아버지는 아직 그럴 힘이 없잖아?”

아버지의 지금 지위와 힘, 권력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웬만한 귀족들을 우습게 만들었다. 밑바닥부터 자신의 힘으로 차근차근 여기까지 올라온 아버지는 독종이었다. 하지만 그런 독종도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굴복하기 마련이었다.

아버지는 현재 조드릭 공작을 이길 힘이 없었다. 아버지가 조드릭 공작이 애정 하는 아들을 건드는 순간, 조드릭 공작은 진심을 다해 아버지를 공격할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이토의 말을 그저 웃어 넘겼다.

“순진하네. 내가 정말 그딴 남창 하나 못 죽일 거라고 생각하다니.”

잠시 한숨을 느리게 내뱉은 아버지는 나이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미치도록 다정했다. 금방 뿌리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아래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아버지는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려 나이토의 하얀 목을 잡았다. 그는 엄지로 나이토의 피부를 만졌다.

“내가 미쳐서 그 새끼 죽이기 전에 네가 알아서 행동해.”

“갇혀있는 내가 어떻게…….”

“방법은 간단해.”

아버지는 나이토의 입술에 짧게 키스했다. 몇 번 쪽쪽 거리던 키스가 깊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입술을 꾹 누르고서 입안으로 혀를 넣었다. 아랫입술을 빨아주자 나이토가 앓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아버지의 넓은 어깨를 꽉 잡았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손에 흥분한 듯 그답지 않게 거칠게 키스했다. 아버지의 이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나이토의 숨과 신음도 못 나가게 입으로 틀어막고 혀로 입안을 누볐다.

나이토는 강렬하고 아찔한 키스에 자꾸만 몸이 흐트러지려는 걸, 겨우 붙잡았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얼굴에서 느리게 떨어졌다. 아버지는 숨을 작게 내쉬며 나이토의 손을 잡았다.

“그때처럼 하면 되는 거야.”

아버지가 말하는 그때를 떠올린 나이토는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 품에서 안겨, 자기도 모르게 좋다고 울던 그때. 나이토는 고개를 숙이다가 아버지의 손이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게 보였다. 아버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이토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버지는 이 관계를 레이얀이 알게 하라는 것이었다. 알토와 키샨이 안 것처럼. 그것도 강제로 아버지에게 안기는 게 아니라 자신이 안겨서 좋다고 우는 걸 보이라고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다른 이에게 이 관계를 보일 수 없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나이토가 스스로 한 발자국 다가오자 아버지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풀어졌다.

“그러지 마.”

“뭘?”

다 알면서 모르는 척 아버지가 심술궂게 웃었다. 나이토는 좀 더 다가갔다.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해.”

“그럼 부탁해봐.”

아버지가 짧게 명령했다. 나이토는 머뭇거리다가, 두 팔을 뻗어 아버지의 상체를 끌어안았다. 아버지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안겨오는 나이토의 몸을 세게 끌어안았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품에 안긴 상태로, 울 듯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그러지 마세요.”

아버지가 느리게 한숨을 내뱉었다.

*

아버지는 다리가 아픈 나이토를 침실까지 안아서 데려다주었다. 언제나처럼 덤벼들 것 같았으나 예상외로 아버지는 침착하게 나이토의 손에 약을 쥐여주었다.

“먹고 자.”

나이토가 대답 없이 아버지를 보다가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손이 정말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상냥한 손길에 눈을 감고 고개를 이불에 파묻었다. 유약한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나이토의 모습에 아버지는 말없이 뒤로 물러났다. 방을 나가기 전에 아버지는 컨터에게 전화했다. 다른 이가 알면 두려워할까, 초조해하는 나이토를 위한 조치였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이마에 짧게 키스를 해주고, 잘 자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아버지가 나가자 집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전신을 억누르는 듯한 침묵에 스르륵 눈을 떴다. 무엇이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워 힘이 나지 않았다. 그저 이대로 사라졌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홀로 깊은 우울 속으로 빠져드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문 열리는 소리만 들려도 몸에 소름이 돋았다. 거듭되는 일에 지레 겁을 먹고 고개를 들었다. 다행히 들어온 사람은 우직한 컨터였다. 컨터는 창백하게 질린 나이토의 얼굴을 보고서 아무렇지 않게 인사했다. 다시 정신을 찾은 나이토가 말했다.

“당장 나가.”

“회장님이 도련님을 보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럼 밖에서 기다려. 안에 있지 말고.”

컨터가 말이 없었다. 생각에 잠긴 듯, 눈을 몇 번 깜박이던 컨터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나이토는 컨터가 나가는 걸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가 완전히 방에서 사라지려 할 때, 나이토는 조용히 물었다.

“알토는?”

컨터가 걸음을 멈췄다. 그는 걱정이 드리운 나이토의 얼굴을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무사하십니다. 지금은 다른 곳에 계십니다.”

“…그래.”

자신에게 못되게 굴었지만 그래도 동생이라고 신경이 쓰였다. 좋든 싫든 여기까지 같이 온 알토였다. 그 아이가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알토의 행복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알토는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불 속에 태아처럼 몸을 말고 누운 나이토는 눈을 반쯤 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생각을 하자 가슴이 꽉 막힌 듯 아파 왔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자신은 이미 아버지라서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아버지의 손이 닿거나 키스할 때마다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 어느새 아버지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그 차이가 견딜 수 없이 싫었다.

참으로 웃긴 사실은 도망칠 때도 그랬지만, 잡혀 온 후에도 온통 아버지 생각뿐이었다.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는 막막한 기분이었다. 나이토는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일어서서 화사한 방 안을 둘러보았다. 공들여서 만든 방은 누가 보아도 신혼부부의 침실이었다. 도저히 아버지와 아들이 쓰는 방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나이토는 마르고 하얀 손으로 이불을 거두고 비틀거리며 수채화가 걸려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원래 여기는 창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이토가 도망갈 걸 걱정했는지, 창문을 모조리 없앤 것 같았다. 거대한 수채화를 무심한 얼굴로 보던 나이토는 실소를 터트렸다. 확신을 달라고 애달프게 말하던 아름답고 잘생긴 얼굴이 떠올랐다. 어차피 확신을 줘봤자 아버지는 나이토를 풀어줄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가슴이 지끈거리며 아파와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었다. 머리 통증까지 심해졌다. 나이토는 침대로 쓰러지듯 누웠다. 지독하게 피곤했다. 눈을 감자, 곧바로 깊은 수면으로 떨어졌다.

꿈을 꾸었다. 꿈이라고 확신한 것은 아버지가 앳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허름하고 냄새나는 방에 아버지와 자신뿐이었다. 코흘리개나 다름없는 자신을 보며 아버지는 화를 냈다.

‘아이 같은 거 키우기 싫다고 했잖아!’

아버지 옆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알토가 있었다. 아버지의 고함에 알토가 얼굴을 찡그리고 울려고 했다. 겁이 났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동생이 울까 봐 나이토는 침대로 올라가 알토를 감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나이토를 노려보고, 어머니를 째려보며 사납게 말했다.

‘내가 저 애새끼 지우라고 했잖아. 왜 안 지웠어.’

아버지가 알토를 가리키며 화냈다. 어머니는 알토를 끌어당겨 안으며 소리쳤다.

‘네 애야! 어떻게 네 아이한테 그럴 수 있어?’

‘실수는 나이토로 충분하니까.’

아버지는 겁에 질린 나이토를 보며 노골적인 비웃음을 머금었다.

‘너만 안 태어났으면 나는 더 행복했을 거야, 아들.’

어머니가 닥치라고 외쳤지만 아버지는 침대 구석으로 도망치는 나이토를 보며 나긋하게 덧붙였다.

‘넌 내 인생 최대의 실수야.’

그랬다. 아버지는 자신을 보고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말했다. 과거를 기반으로 한 꿈을 꾸던 나이토는 어깨를 조금씩 떨었다. 차라리 그때 자신을 지워버렸다면, 이런 고통도 없었을 텐데.

“나이토.”

어렸을 적보다 성숙해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전처럼 거칠지 않고 부드러웠으나 이상하게 속이 간질거려 참을 수 없었다. 나비 여러 마리가 배 속에서 움직이는 듯한 울렁거림이 연신 느껴졌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피해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이불을 빠르게 거두고, 나이토의 상체를 안아 올렸다. 머리가 울렸다. 나이토는 머리를 안고 앓는 소리를 냈다.

“아파….”

“약 먹고 자라고 했잖아.”

아버지가 나이토의 뜨거운 뺨을 만지며 다그쳤다. 나이토는 꾹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떴다. 방이 밝았다. 그 밝은 방 가운데, 아버지가 앞에 앉아있었다. 퇴근하고 바로 왔는지 아버지에게서 바람 냄새가 났다. 나이토는 머리 통증 때문에 멍한 얼굴로 아버지를 보다가 대뜸 입을 열었다.

“나더러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했잖아.”

“내가?”

아버지가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이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나이토가 아픈 걸 알아채고, 다시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혔다. 정장 재킷이 불편했는지 단숨에 벗어서 의자에 걸쳐두었다. 꽉 조인 넥타이도 반쯤 푼 아버지가 느슨한 자태로 옆에 앉았다. 그는 땀에 푹 젖은 나이토의 머리를 쓸어 올려주었다. 나이토는 물기가 선명한 흑청색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아버지를 빤히 보았다.

“분명히 그랬어. 나만 없었으면 아버지가 더 행복했을 거라고….”

“고작 옛날 일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으며 조용히 나이토를 타박했다. 나이토는 미간을 찌푸렸다. 고작 옛날 일이라고 하기엔, 어렸던 자신은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도 아버지의 눈빛과 감정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지.”

아버지가 푸석거리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눈을 반쯤 감고 있는 나이토를 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이 진지했다. 그래서일까. 간지러움이 사그라든다.

“그때는 네가 너무 싫었어. 귀찮았거든. 딱히 얀을 열렬하게 사랑했던 것도 아니고.”

“…엄마랑 왜 살았던 거야.”

“섹스가 끝내줬으니까. 그래서 피임을 열심히 했는데, 덜컥 너랑 알토가 생겼지.”

아버지다운 말이었다. 나이토는 힘없이 웃으며 손을 잡아오는 아버지의 손을 보았다. 어른다운 큰 손이다. 어렸을 때는 이 손이 얼마나 무서웠던가. 지금은 이 손이 주는 쾌감에 길들여져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다. 다른 의미로 무서워진 손이었다. 의식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아버지의 눈이 미세하게 커졌다.

“실수라고 생각했으면 지웠어야지.”

“얀이 안 지웠어.”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아버지는 고개를 숙여 나이토의 이마에 키스했다. 아버지의 얼굴이 너무 가까워 나이토는 눈을 감았다. 아버지의 숨소리가, 향수 냄새가, 체온이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아들 이상이라서?”

아버지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는 이마를 맞댄 채 웃었다. 그의 손이 나이토의 옷 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단숨에 나이토의 위에 올라탔다. 자신보다 크고 무거운 몸이 내리누르자 숨이 막혔다. 나이토가 인상을 쓰자 아버지가 이마를 검지로 꾹 누르며 말했다.

“널 낳길 정말 잘했어. 넌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야, 나이토.”

아버지가 나이토의 얼굴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가 키스해올 걸 알아챘다. 그러나 아버지는 키스 대신, 나이토의 뺨에 입술을 내렸다. 꽃잎처럼 부드럽게 내려앉은 키스에 나이토가 눈을 크게 뜨자 아버지가 웃었다. 그는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주며 속삭였다.

“아픈 사람 붙잡고 박는 취미 없어. 어서 자.”

아버지가 지금 다정한 이유는, 도망을 못 가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 한구석이 편해졌다. 아들과 아버지는 이런 관계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어떠한 관계도 어울릴 수가 없다. 맞닿을 수 없는 평행선으로 사는 게, 지금으로써 최선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아버지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뭐라고 말했지만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아버지의 손길이 무척 따뜻했다는 사실이었다.

*

어디선가 좋은 냄새와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포근함과 따스함에 좀 더 안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체취가 맡아졌다. 어렸을 적부터 많이 맡아본 냄새에 두근거리던 마음이 시나브로 커졌다. 이 아늑하고 넓은 품도 익숙했다. 자주 자신을 안아주던 어른스러운 품이었다. 따스한 온기를 가진 팔이 안아주는 게 좋아, 무의식적으로 꼭 끌어안았다. 기분이 무척 좋았다.

가지 말아줘. 잠결에 웅얼거리며 팔에 힘을 주었다.

자신이 안는 게 상대방도 좋았는지, 나지막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하지만 자신을 안은 사람이 커다란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그는 나이토가 자는 걸 원하고 있었다.

“귀여우니까 좀 더 이러고 있어.”

아, 이 목소리는.

나이토는 눈을 가린 손을 치웠다. 자신을 바라보는 자색 눈이 보였다. 상의를 입고 있지 않은 아버지의 상체도 보였다. 단단한 가슴에 스스로 안겼다는 걸 눈치챈 나이토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자신도 나체고, 아버지도 나체였으나 이렇게 다정하게 안겨서 일어난 적은 거의 없었다. 보통 아버지가 안았지, 나이토가 안은 적은 없었으니까.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품을 찾아 안겼다는 게 놀라서 나이토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나이토가 당황해서 뒤로 물러나 이불 안으로 숨자 아버지는 소리 내서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힘을 줘서 나이토의 이불을 거두자, 창백하게 질린 나이토가 보였다. 나이토의 심리를 꿰뚫은 아버지는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의 체취가 물씬 진해지자 나이토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마저도 아버지가 팔로 막자, 할 수 없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상체에 갇혀 아버지를 바라만 봐야 했다.

“아까 진짜 귀여웠는데.”

나이토가 고개를 숙였다. 시트에 얼굴을 파묻은 나이토가 그 상태로 중얼거렸다.

“그런 식으로 보지 마.”

“왜?”

아버지가 손을 뻗어 나이토의 목을 만졌다. 손이 점점 올라가 검은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을 만졌다. 예전처럼 부드럽지 않은 머리카락 감촉에 아버지가 인상을 찌푸렸다.

“머리카락이 뻣뻣해.”

“염색했으니까.”

여전히 시트에 얼굴을 묻은 채로 나이토가 대답했다. 아버지가 상체를 들어 올리자 나이토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침대 헤드에 상체를 기대고 앉았다. 나이토가 아직도 잠에 취한 얼굴로 멍하니 있자 아버지가 장난스럽게 머리카락을 헤집어 놓았다. 나이토는 짜증을 내며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아버지가 건네주는 잔을 받아들었다. 적당히 차가운 물을 마시자 잠이 서서히 깼다. 잔에 든 얼음을 입에 넣고 굴렸다. 그 모습을 보던 아버지가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엔 얼음을 안에 넣고 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아.”

그 말에 얼음을 씹어 먹던 나이토가 얼굴을 찌푸렸다. 나이토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아버지에게 대꾸했다.

“아들 몸 망가지는 것도 생각해줘야지.”

“생각해서 살살하잖아.”

양심이 존재하지도 않는 아버지의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질린 얼굴로 아버지를 보던 나이토는 잔을 내밀었다. 아버지가 잔을 받아들고 테이블에 놓았다. 간편한 면바지만 입은 아버지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화보 속 모델이었다. 앞머리까지 내려 눈을 살짝 덮고 있어서, 특유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가라앉아 사람이 유순해 보였다. 아버지는 허리에 한 손을 얹은 채 나이토를 보았다.

피부가 약해, 흔적으로 가득한 몸이 하얀 이불 속에 파묻혀있었다. 청초하면서, 가련하다. 아버지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침 먹어야지.”

“안 먹고 싶어.”

나이토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집에 감금된 이후로, 나이토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갈수록 말수가 줄고, 식욕도 없어졌다. 잠을 자면 악몽에 시달렸다. 모든 걸 알고 있었으나 아버지는 나이토를 내버려두었다. 자신이 올 때는 상태가 나아져 말을 하거나, 밥을 먹었기에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도 밥을 안 먹겠다고 버티는 나이토 앞에 아버지는 부드러운 음식들을 준비했다. 유독 고기를 좋아하던 나이토였으나, 최근에 들어서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기에 소화가 빨리 되는 음식들로 마련했다. 막 구운 식빵과 버터, 블루베리, 양송이 수프가 올라와 있었다. 취향에 맞게 올라온 음식들을 보고도 나이토는 한숨을 내셨다. 입맛이 없었다. 나이토는 수프를 떠서 식히는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언제쯤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거야?”

아버지는 수저를 입에 갖다 대었다. 나이토가 입을 벌리자 아버지가 천천히 수저를 입에 넣어주었다. 적당히 잘 익은 양송이가 입안에서 씹히다가 안으로 넘어갔다. 아버지는 두툼한 식빵에 버터를 바르며 나이토를 힐끔 보았다.

“내가 말했잖아. 확신이 생기면 자유를 주겠다고. 다리도 아픈데 어딜 나가려고.”

“다리 이렇게 만든 사람이 아버지야.”

“그래서 여기다 가둬두고 극진하게 모시는 거잖아. 연약한 아드님이라서.”

아버지가 벌어진 입에 작게 자른 식빵을 넣었다. 말없이 우물우물 씹었다. 안 먹으면 옛날처럼 강제로 먹일 것 같았다. 아버지는 자신이 주는 음식을 아기 새처럼 받아먹는 나이토를 보더니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임신이라도 한다면 안심이 될 텐데.”

“뭐?”

없던 입맛이 뚝 떨어졌다. 하지만 아버지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는지, 턱을 괸 채로 나이토를 보며 묵묵히 이어 말했다.

“적어도 애 낳고 도망은 안 갈 거 아니야.”

“…미쳤어?”

나이토가 하얗게 얼굴이 질려서 뒤로 물러났다. 아버지도 더 이상 먹일 생각이 없었는지 테이블을 치우고 냉큼 다가왔다. 나이토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을 때, 반동으로 넘어지자 아버지가 그 위에 올라탔다. 나이토가 손으로 아버지의 상체를 밀려 했지만, 근육으로 무장된 아버지의 상체가 밀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동안 못 먹어서 더 납작해진 나이토의 아랫배를 매만지며 살짝 웃었다. 부드러워 보이는 미소에서 알 수 없는 오한을 느낀 나이토가 어깨를 움츠렸다.

“여기에 아기가 있으면 너도 좋아할 거 같은데.”

잠시 고개를 갸웃하고 고민하던 아버지가 되물었다.

“네 자식으로 할래? 네가 골라. 동생으로 할지, 자식으로 할지. 아님 둘 다?”

나이토는 아버지를 노려보며 말했다.

“걱정 마. 임신할 일은 절대 없으니까.”

“한 번 알아볼까? 남자도 임신할 수 있는지.”

농담이라기엔 지나치게 진지한 아버지의 얼굴에 나이토는 주먹을 쥐었다. 참지 못하고 아버지의 얼굴을 한 대 치려는데 아버지가 빠르게 나이토의 손목을 잡았다. 손목이 잡힌 나이토는 금세 포기한 얼굴로, 지쳐서 말했다.

“안 그래도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 그만해.”

“그런 것치고 어제 잘 버티던데.”

아버지가 무표정한 얼굴로 저속한 말을 하며 엉덩이를 잡았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을 밀어냈다. 이불을 끌어올려 몸을 덮은 나이토는 아버지에게 냉담하게 쏘아붙였다.

“출근이나 해. 수여식 얼마 안 남았다면서.”

“아버지 수여식도 걱정해주는 거야? 착하네.”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려 했던 사건 때문에 수여식과 관련된 일들이 미뤄졌다고 들었다. 지금 하나둘, 그 일들을 처리하느라 아버지는 매일 같이 바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감금된 나이토를 찾아와 꼬박꼬박 밥을 먹이고, 씻기고, 관계까지 맺었다. 다리가 아픈 상태이니 조심하라는 의사의 말대로, 아버지는 격하게 하지 않을 뿐 할 건 다 했다. 어제도 눕혀놓고 정성스럽게 애무해주던 걸 떠올린 나이토는 얼굴을 붉혔다. 아버지 입으로 몇 번이나 갔던 걸 생각하자 온몸이 화끈해졌다. 아버지는 귀까지 빨개져서 웅크리고 있는 나이토를 유심히 보더니, 옆에 앉아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버지가 자작이 되면, 너도 자작의 아들이 되는 거야.”

“그래서? 어차피 나가지도 못하고 이러고 사는데, 그게 뭐가 중요해.”

무기력한 나이토의 말을 듣던 아버지가 고개를 숙였다. 나이토가 아버지의 자색 눈동자를 피해 안으로 숨었다. 아버지는 이불을 내리고, 드러난 나이토의 하얀 뺨에 키스했다. 나이토가 이불 속에서 바르작거리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수여식 끝나면 같이 휴가나 갈까.”

“싫어.”

“그날, 휴가 제대로 못 즐겼잖아. 이번엔 둘이서 가자.”

“…날 믿어?”

“내가 두 번 찔릴 사람처럼 보여? 한 번 찔려서 아픈 걸로 충분해.”

아버지가 나이토의 뺨과 귀에 연신 짧은 키스를 하며 속삭였다.

“너도 내가 진심으로 죽는 걸 원하지 않았잖아. 내가 정말 죽길 바랐다면, 그런 칼로 날 찌르지 않았을 테니까.”

듣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진심은 저 안에 파묻혀있어야 했다.

“그 얘기는 그만해.”

한동안 시선을 피해서 이불 안에만 있던 나이토는 이불에서 나와, 아버지를 보았다. 나이토와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친 아버지가 싱긋 웃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입을 벙긋거리던 나이토는 포기하고, 고개를 돌렸다. 창문이 없는 방이라 가슴이 답답했다.

“조금이라도 밖에 나가게 해주면 안 돼?”

“그건 다리가 다 나으면.”

그렇게 중얼거린 아버지가 뺨에 키스했다. 아버지의 입술이 대범하게 아래로 내려왔다. 옷을 입지 않은 나체라, 유두까지 내려가는 건 아주 가뿐했다. 어젯밤 아버지가 밤새도록 애무해준 유두에 입술이 닿았다. 여린 살이 벗겨졌는지 살짝만 닿아도 따끔했다. 옷도 못 입을 지경이었다. 분홍색 유두가 진한 분홍색으로, 그리고 더욱 붉은색으로 변해갔다.

나이토가 아, 하고 신음을 흘렸다. 발가락이 오므라들며 시트가 밀린다. 아버지는 이불을 아예 밀쳤다. 아버지의 입술이 유두를 머금고 잘근잘근 깨물자, 머리가 서서히 달아올랐다. 나이토는 눈을 감고 숨을 헐떡이며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부드럽고 결이 좋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왔다.

“하, 으……아, 좋아.”

아버지는 자동적으로 튀어나온 “좋아.”라는 말에 유두를 문 상태에서 웃었다. 젖은 소리가 양쪽 유두에서 연신 울렸다. 나이토의 성기가 점점 힘을 얻어 직립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착실하게 유두를 빨아주면서 손을 아래로 내려, 발기한 성기를 잡았다. 뜨겁게 발기한 성기가 손 안에 가득 잡혔다. 가슴에서 얼굴을 뗀 아버지가 붉어진 나이토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래도 빨아줄까.”

나이토가 입술을 깨물었다. 대답하지 않자, 아버지가 성기를 꽉 잡아 대답을 유도했다.

“대답 안 하면 안 빨아줄 거야. 이렇게 있고 싶어?”

몸은 더 강한 자극을 원했다. 눈을 감고 신음을 참던 나이토는 얼굴을 가렸다. 살짝 젖은 목소리로 부탁했다.

“…빨아줘.”

나붓거리는 웃음소리, 젖은 숨결이 분홍색 성기에 닿았다. 간지럽다.

“역시, 내 아들은 착해.”

아버지가 전혀 기분 좋지 않은 칭찬을 늘어놓으며 성기를 입어 넣었다. 촉촉하고 어느 정도 온기가 있는 점막이 성기를 감싸자 쾌감이 밀물처럼 한순간에 밀려왔다. 나이토는 남은 이성을 몰아내는 강한 쾌감에 신음을 한 토막씩, 많이 내뱉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입이 성기를 다 물고서 볼이 오목해질 정도로 빨아주자 턱이 덜덜 떨렸다. 눈을 감자, 하얀 번개들이 눈 안에서 요동쳤다.

아버지가 아래에서 열심히 성기를 빨아주는데,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회장님, 알라시스 대공의 연락입니다.”

집중해서 아들의 성기를 애무해주던 아버지는 얼굴을 찌푸리며 성기를 빼냈다. 막 쾌감에 젖어서 눈물까지 흘리던 나이토는 얼떨떨한 얼굴로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밀친 이불을 들어 올려 아들의 몸에 덮어주었다.

“들어와.”

나이토의 알몸을 다른 사람이 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아버지답게, 이불로 나이토를 꽁꽁 싸맸다. 컨터가 들어와 아버지와 나이토에게 인사를 꾸벅했다. 곧바로 아버지에게 다가와 휴대전화를 아버지 귓가에 대주었다. 컨터에게서 휴대전화를 받아든 아버지가 여유롭게 대답을 했다.

“네.”

하지만 곧 대공의 말을 들은 아버지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아버지는 대공과 통화를 하면서, 나이토의 붉어진 얼굴을 매만졌다. 부자 관계라고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의 행동에도 컨터는 묵묵히 서 있었다. 나이토만 이 상황이 견디기 힘들어서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통화를 이어갔다.

“조드릭 공작님께서 나선 게 아니면 누가 나섰다는 겁니까.”

나이토는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가 나이토의 얼굴을 보고서 화사하게 웃었다.

“그 이유로 수여식을 미뤄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저는 괜찮습니다만…….”

우아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가던 아버지가 웃는 게 들렸다. 곧이어 대공에게 “예,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한 아버지가 컨터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거두었다. 아버지의 자색 눈동자가 불길하게 반짝였다.

“휴가는 다음에 가야겠다.”

“무슨 일 생겼어?”

조드릭 공작이 언급된 순간부터 묻고 싶었다. 아버지는 나이토를 지그시 보더니,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나이토와 코를 맞닿을 것처럼 가까이 다가온 아버지가 말했다.

“왕실에 일이 생겨서 수여식을 미뤄야 한대.”

아버지가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맨살을 만졌다. 이미 컨터는 눈치 빠르게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부자간에 오묘하고 야릇한 분위기가 짙게 흘렀다.

“조드릭 공작이라고 해서 설렌 거야?”

“그런 거 아니야. 헤어졌다고 말했잖아.”

나이토는 손을 뻗어 아버지의 뺨을 만졌다. 아버지의 눈이 커졌다가, 점차 가늘어졌다. 그리고 눈을 감더니, 나이토의 손바닥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손바닥이 아버지의 키스로 인해 간지러웠다. 아버지는 손바닥에 뜨거운 입술을 붙인 채, 눈을 떴다. 그 눈빛이 매우 고혹적이었다.

“레이얀은 이제 나한테 없는 거 알잖아.”

힘이 쭉 빠진 나이토의 대답에 아버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는 천천히 나이토를 침대에 눕혔다. 나이토의 다리 사이를 파고든 아버지는 나이토의 귀를 어루만졌다. 은근하게 올라오는 감각에 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는 깨물지 말라는 듯, 나이토의 아랫입술을 당겼다.

“네 인생에 나만 있었으면 좋겠어.”

“충분히 그렇게 되고 있어.”

아버지 장단을 맞춰주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이제 자신에게 남아있는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대학도 못 가게 했고, 이 집에 가두어 자신만 보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원한 것이 그것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된 것이니 나이토는 사실대로 말했다. 자신의 마음만 쓰리고 허망할 뿐이었다. 나이토는 두 팔을 뻗어 아버지의 목을 끌어당겨 안았다. 소심하던 나이토의 적극적인 태도 전환에 아버지의 눈이 반짝였다. 그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자신이 만져주면 좋아했다. 마치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대형견 같은 느낌도 있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만져주며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날 이렇게 만들었잖아.”

“맞아.”

즉각 대답한 아버지는 나이토를 보고, 행복하게 웃었다.

“그래서 좋아.”

*

다친 다리를 꽁꽁 싸매고 있던 깁스가 풀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집에 갇힌 지도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는 것을. 그리고 아버지에게 안긴 지, 몇 달이 흘렀다는 것도.

그가 떠난 자리를 한참동안 지켜보던 나이토는 이불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이불에서도 아버지의 체취가 남아있는 거 같아, 나이토는 이불을 내렸다. 온통 아버지였다. 모든 순간이, 모든 잔재들이. 심지어 가장 깊숙한 심장에도 아버지란 존재가 콱 박혀 떠나지 않았다.

나이토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상체를 지탱하고 몸을 일으켰다. 두툼한 이불이 상체에서 떨어졌다. 보는 이는 없었지만, 저 멀리서 감시할 사람이 새삼스럽게 떠올라 황급히 이불을 끌어올려 몸을 가렸다. 나이토는 침대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옷을 찾아봤지만, 아버지의 성격상 옷도 남겨두지 않았다.

결국 나이토는 이불에 의지하고서 문까지 슬그머니 걸어갔다. 문을 열까, 말까. 나이토의 손이 허공에서 생명의 마지막 숨처럼 흔들거렸다. 스치는 바람에도 잘게 떠는 낙엽처럼, 한참을 그렇게 움직이던 나이토의 손이 결심한 듯 움직여 문고리를 잡았다.

그가 보고 있다는 걸 알지만, 한 번이라도 좋으니 바깥 냄새를 맡고 싶었다. 그가 유일하게 자신에게서 통제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아주 사소한 갈망이 커졌다. 갈망은 어느새 절실한 원동력이 되어 나이토를 움직였다.

나이토는 계단을 차근차근 내려왔다. 드디어 카펫이 느껴졌다. 늘 있던 방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조금만 더 가면, 아버지가 알아차리고 올 때까지만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거대한 문 앞에 섰다. 나이토의 손이 문고리에 닫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아버지인가. 몸이 굳었다. 순간 가슴이 쿵, 하고 아래로 내려갔다. 나이토는 이불을 더욱 바짝 당기고서, 고개를 돌렸다.

‘도련님.’

아버지가 아니라 늘 아버지의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경호원이었다. 이름은 모른다. 다만, 그가 아버지의 충실한 부하인 건 안다. 나이토의 상태를 훑어보던 그가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그는 다 가려지지 못한 나이토의 다리를 물끄러미 보다가, 이불을 여며주었다.

‘이러시면 안 되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가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탁한 갈색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그는 수염이 돋아난 턱을 매만졌다. 나이토는 그가 하는 행동을 절박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만 잘 설득하면 밖을 잠시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굳힌 듯, 나이토의 팔을 아주 약하게 잡았다.

‘도련님. 이러실수록 도련님만 힘들어집니다. 회장님께 반항하지 마세요. 도련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나이토는 입술을 달싹거릴 뿐, 소리로 낼 수 없었다. 그가 하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나이토가 팔을 비틀며 반항하자,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도련님. 어차피 이곳은 회장님의 세상이니 안심하고 그분께 안기셔도 됩니다.’

겨우 다시 쌓았다고 생각했던 세상이 완벽한 타인으로 인해 무너졌다. 가슴이 아려왔다. 나이토가 눈을 크게 뜨고, 숨을 불규칙적으로 내쉬니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새삼스럽게 왜 그러냐는 듯한 태도에 뭐라도 해주려는데,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게 걱정되어서 도망가셨던 거 아닌가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회장님과 도련님의 사이는….’

‘그만해.’

나이토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나이토는 그를 밀치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가 필사적으로 나이토를 막았다.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이불로 몸을 꽁꽁 싸맨 나이토를 새삼스레 훑어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도련님, 편하게 생각하세요. 어차피 우위를 잡고 있는 건 도련님이십니다. 도련님만 이 관계를 인정하게 되면, 모든 걸 갖게 되실 거예요. 그러니 걱정 마시고, 회장님을 애인으로 인정하셔도 됩니다.’

그가 마치 배려하듯 다정하고 부드럽게 속삭였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애써 가려둔 치부가 다시 쿡쿡 찔렸다. 나이토가 눈을 감았다가, 겨우 뜨고 붉은 카펫에 시선을 고정했다. 피처럼 붉었다. 그때, 아버지의 배를 찔렀을 때와 흘러넘쳤던 것과 비슷했다.

나는 아버지를 죽일 수 없었다. 도망갈 수도 없었다. 벗어날 수도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자신이 죽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죽고 싶지 않았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이었고, 원하는 것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 했다. 어렸을 땐 가난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영양실조, 동상 등 가난을 상징하는 병에 걸려 죽을 뻔했다. 그리고 커가면서, 자유를 하나둘씩 잃어갔고, 포기를 배웠고, 그 결핍들이 이상하게도 살고 싶다는 집념을 만들어 냈다.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살고 싶었다. 무엇이 되었든, 어떻게든 이 현실에서 살고 싶었다.

그 방법 중 하나를 저 남자가 말하고 있었다. 가장 쉬우면서, 가장 납득할 수 없는 것을.

아버지와의 관계를 인정하면 끝이었다. 아버지를 내 남자, 내 애인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그가 주는 걸 편하게 누리면 되었다.

쉽지만, 가장 어려웠다. 이십 년동안 축척했던 사회의 윤리, 도덕, 그런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을 버려야 했다. 모조리 버리고, 그 위에 아버지라는 사람을 새로운 개념으로 도입해야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었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혼자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 줄타기를 더 빠르게 가동시킨 건 아버지도, 알토도 아닌 저 앞에 있는 완벽한 타인이었다.

‘무엇보다 도련님도 이제 회장님께 안기는 걸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좋다고, 더 해달라고 제가 들었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이토는 남자를 있는 힘을 다해 주먹으로 후려갈기고, 비틀거릴 때 밀치고 문을 열었다.

그러나 두 문을 다 열었을 때, 나이토를 반겨준 사람들이 따로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충직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빠르게 다가와 나이토를 단숨에 제압했다. 반항할 새도 없었다. 전문 훈련을 받은 그들은 나이토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입에 재갈을 물렸다.

다시 방에 갇혔다. 침대에 억압된 채 눕혀져, 아버지가 올 때까지 멍하니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재갈을 타고 타액이 뚝뚝 흘러내렸다. 잠을 자고 싶어도, 방금 전 그 남자에게 들은 소리가 계속 머리에 맴돌아 잘 수도 없었다.

너도 아버지에게 안기는 걸 좋아하지 않느냐고.

그 말이 수십번, 수백번, 수천번 횟수를 반복해 나이토의 머리에서 울렸다. 그 생각에 얼마나 지배되었는지 아버지가 들어온지 몰랐다. 그리운 바람 냄새를 온몸에 가득 실고 돌아온 아버지는, 절망과 체념 어린 눈으로 흐느껴 우는 나이토를 보고 무심한 눈을 깜박였다. 아버지는 옷을 여유롭게 벗었다. 그는 고개에 얼굴을 처박고 우는 나이토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나이토가 신음을 흘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뿌연 시야에 아버지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밖에서 일을 하고 왔지만, 전혀 지치지 않은 기색으로 피식 웃은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화는 풀렸어?’

또 그 소리였다. 예전에도 했던 소리였다. 나이토가 서슬 퍼런 분노가 담긴 눈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침대 맡에 무릎 꿇고 앉아, 다정하게 나이토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널 위해서 다 해주는데, 뭐가 불만인 거야. 아빠는 도저히 모르겠네?’

그렇게 중얼거린 아버지는 입에 물린 재갈을 툭툭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과 말투는 한없이 다정했지만, 손끝은 냉정했다. 그는 애정과 강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어차피 네 맘대로 해줘도, 안 들을 거면 내 맘대로 할래.’

단호하게 말을 끝맺은 그가 입고 있던 셔츠 단추를 느리게 풀어냈다. 그의 손끝이 단추를 풀 때마다 나이토의 몸은 경직되었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건, 하반신에 열이 몰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버지의 손이 그저 저 위에서 옷을 벗기 위해 자유롭게 움직일 뿐인데, 벌써부터 머리가 멍해지고 숨이 가빠왔다.

그 모습을 현을 조율하는 연주가처럼 섬세하게 눈여겨보던 아버지는, 마침내 셔츠를 바닥에 벗어던지며 길고 단단한 팔을 움직여 나이토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그는 나이토를 침대에서 일으켜, 바닥에 내던졌다. 나이토가 바닥에 엎어져 끙끙거리자, 아버지가 구둣발로 나이토의 턱 끝을 치켜 올렸다. 날렵한 구두 앞코가 부드러운 턱살을 마구잡이로 건드렸다. 그의 구둣발이 좀 더 올라가, 나이토의 고개도 더 올라갔다.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보자, 아버지가 담배를 문 채 부드럽게 웃고 있는 게 보였다.

‘잘 버텨 봐. 알았지? 기절해도 안 봐줄 거니까.’

그가 라이터를 이용해 불을 붙이더니, 손목에 찬 시계를 힐끔 보았다. 시간을 확인한 그가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빼내며 연기를 뱉어냈다. 연기가 흩어질 때쯤, 그가 입을 열었다.

‘역시…난 아들이랑 노는 게 제일 재밌어. 너도 그래?’

그가 물었지만, 나이토는 대답 할 수 없었다. 재갈이 물려있었다. 나이토가 재갈을 물고, 타액만 뚝뚝 흘리며 지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담배를 물고서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럴 때면, 그는 정말 십대 소년이 된 것처럼 쾌활해졌다.

‘너도 좋아질 거야. 어차피 너도 내 생각밖에 안 나잖아.’

구둣발이 떨어져 나갔다. 고개가 앞으로 축 늘어져, 바닥에 쓰러지기 전에 그가 다리 사이에 앉혔다. 그의 손이 재갈에 닿았다. 꽉 맞물린 곳을 풀어주었다. 재갈이 바닥에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빨아.’

그가 머리채를 틀어잡고 가랑이 사이에 처박으며 명령했다.

*

유독 달무리가 선명하게 반짝이던 밤, 나이토는 아버지 다리 사이에 앉아 강제로 정액을 삼키고 있었다. 거듭되는 펠라로 입술은 붉게 부어올랐고, 하얀 정액이 붙어있었다. 아버지는 친절하게 흘러내린 정액을 손가락으로 훑어 나이토의 입안에 넣어주었다. 눈이 안대로 가려져 있어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나이토는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핥아먹었다. 느리게 입으로 들어온 정액을 삼킨 나이토는 숨을 헐떡였다. 무언가를 잡고 싶어서 손을 움직여봤지만, 손목은 수갑으로 묶여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답답함에 손을 들어 올리려 하면, 아버지가 중간에 매달린 줄을 잡아당겨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다.

“지금 네가 얼마나 야한 줄 알아?”

나긋하고 부드러운 어투의 말이 나이토를 자극했다. 나이토가 대답하지 않자, 아버지가 타액으로 흥건한 귀두를 나이토의 붉은 입술에 문질렀다. 나이토의 입술이 서서히 벌어졌다. 고른 치열 사이로 검붉은 성기가 단숨에 반이나 사라졌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성기를 울음과 함께 삼켜야 했다. 아버지는 나이토가 삼키지 못하고 우물거리자, 거친 손길로 머리채를 잡아 앞으로 당겼다. 커헉, 하는 숨 막히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긴 성기가 나이토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나이토의 목구멍까지 성기를 처박은 아버지가 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그에 비해 나이토의 얼굴은 금세 빨개졌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불편함을 호소했지만 아버지는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나이토의 어깨를 꾹 눌렀다. 그러자 아래에서 요동치는 바이브레이터가 더 깊숙이 들어와 나이토를 괴롭혔다. 위잉, 하고 진동이 나이토가 느끼는 부근까지 전해졌다. 아버지의 성기를 문 채로 흐으, 하며 앓는 소리를 내자 아버지가 위에서 웃었다.

“이러는 데도 발기하다니, 너도 여러모로 야해졌어.”

아버지가 발로 나이토의 성기를 살짝 눌렀다. 거칠고 무자비한 발짓에도 성기가 힘을 얻었다. 나이토는 머릿속이 뜨거워 죽을 것 같았다. 아니, 머리뿐만 아니라 배 안도 끓어오르는 열기로 인해 힘들었다. 입안은 펠라 때문에 헐고 부어서 아팠다. 아래는 커다랗고 긴 바이브레이터가 진동하면서 돌아가 내부를 계속 자극했다. 아버지의 성기만큼 두툼하지만 길이가 묘하게 짧아 느끼는 부분까지 찔러주지 않아 괴로웠다. 그러던 순간, 아버지가 강제로 목구멍에 성기를 처박으며 어깨를 눌러 나이토가 원하던 자극을 준 것이었다.

나이토의 반응을 섬세하게 살피던 아버지는 픽, 웃으며 발을 뗐다. 성기를 살짝 빼주자 나이토가 헐떡거리며 신음을 내뱉었다. 나이토가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입이 벌어졌을 때 성기를 단숨에 목구멍까지 찔러 넣자 나이토의 몸이 굳었다. 안대에 가려진 눈이 파르르 떨리고, 뒤집혔다. 아팠는지 눈물까지 흘렸다. 안대가 축축하게 젖었다. 아버지는 잡고 있던 줄을 당겨 나이토가 좀 더 앞으로 오게 만들었다. 나이토는 자세가 불편해서 인상을 찡그렸다. 나이토는 겨우 묶인 손으로 시트를 부여잡고 매달렸다. 아버지는 나이토가 좀 더 깊이 성기를 삼킬 수 있도록, 다리를 벌리고 뒷머리를 잡아 눌렀다. 입술이 따끔했다. 그 상태로 아버지는 머리채를 잡고 허리를 움직였다. 연약한 점막과 단단한 성기가 부딪혀 찌걱거리는 소리, 성기가 목구멍을 찔러 쿨럭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번갈아가며 들렸다.

소리가 빠르고 커질 때마다 나이토의 얼굴을 새빨갛게 변했다. 입술과 턱 끝에는 타액이 고여 뚝뚝 떨어졌다. 나이토가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열심히 입안을 누비던 아버지가 행동을 멈추었다. 머리채를 놓아준 아버지가 명령했다.

“네가 움직여.”

턱이 계속 벌어져 있었던 터라, 힘들어서 나이토는 아버지의 성기를 문 채 얌전히 있었다. 며칠이 흘렀을까. 나이토는 아버지의 성기를 있는 힘, 없는 힘 쥐어짜서 빨면서 멍하니 생각했다. 며칠이 아닐지도 모른다. 몇 시간일지도. 안대가 벗겨진 적이 없으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사실, 안대가 없어도 늘 환한 빛이 유지되는 방이라 해가 떴는지, 졌는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가 머리채를 쥐어 잡고 당겼다. 발기된 성기가 입술을 툭, 건드리며 빠져나왔다. 귀두와 입술이 기다란 타액으로 연결되어 있다가 결국 끊겼다. 나이토는 안대를 쓴 채로,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입안에 타액과 미처 삼키지 못한 정액이 뭉쳐있었다. 작은 거품들이 붉은 혓바닥과 입술 사이에서 퐁, 퐁 터졌다. 나이토가 고개를 슬쩍 숙이자 하얗고 날렵한 턱을 타고 느리게 흘러내렸다. 입술에 투명한 장막이 낀 것처럼 반짝거렸다.

아버지가 택한 것은, 강제로 오르가즘을 몇 번이나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목구멍까지 좆을 삼키는 건 기본이었다. 정액은 다 받아먹어야 했다. 그 후엔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제발 그만해달라고 울면서 빌 정도로 강한 쾌락에 시달려야 했다. 성기가 서서 묽은 액체를 토해내고 나서도 계속되는 섹스에 기절해도, 뺨을 후려치는 손에 눈을 강제로 떠야했다. 몸은 성기의 움직임에 따라 위로, 아래로 흔들렸다.

결국 먼저 패배 선언을 한 건 나이토였다.

‘잘못했어요….’

연결된 구멍이 얼마나 시달렸는지, 조금만 닿아도 쓰라리고 아려왔다. 그런데 또 막상 박아주면 좋아서 눈앞이 흐려졌다. 모순 그 자체였지만,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잘못했다고 빌었다.

끝내 아버지가 웃었다. 그는 마지막 벌이라며, 오늘도 나이토에게 바이브를 삽입하고 강제로 입에 성기를 처박았다.

나이토는 눈물을 삼키며 아버지의 성기를 빨았다. 턱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어설프게 빨 수밖에 없었다. 혀를 뾰족하게 내밀어 아버지의 요도를 핥았다. 돋아난 핏줄까지 정성껏 핥아주었다. 마치 커다란 사탕을 빨듯이, 혀를 내밀어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포르노보다 훨씬 야했다.

눈은 검은 안대로 가려져 있었고, 그 아래로 날렵한 콧날과 붉게 부어오른 입술이 도드라지게 보였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목젖, 쭉 뻗은 하얀 목, 커다란 하얀색 드레스 셔츠를 입은 상체와 아무것도 입지 않은 하체.

자신의 취향대로 완벽하게 꾸며진 나이토를 사랑스럽다는 시선으로 보며 아버지는 웃었다. 마침 아버지는 나이토의 입안에 사정했다. 비릿한 액체가 혀에 감돌았다. 아버지는 나이토가 삼킬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나이토의 목젖이 움직여 삼킨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아버지는 성기를 빼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몸을 일으켰다. 그는 나이토 내부에 박혀있던 바이브를 단번에 빼냈다.

“아!”

내벽이 쓸리는 통증에 나이토가 아버지의 어깨를 잡았다. 아버지는 그대로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 나이토를 배 위에 앉혔다. 탄탄한 아버지의 가슴과 배가 만져지자 나이토는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수갑도 풀렸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둥글고 하얀 엉덩이를 손으로 쥐며 말했다.

“네가 넣어.”

나이토는 고민했다. 넣어야 하나. 하지만 아버지의 손바닥이 몸을 스치자 그런 생각을 증발되어 사라졌다. 아래가 뻐근했다.

나이토는 이를 악물고 아버지의 발기한 성기를 잡았다. 입구에 몇 번이나 핥고, 빨았던 귀두가 느껴졌다. 나이토는 한 손으로 아버지의 가슴에 손을 올린 채, 허리를 천천히 내렸다. 흉기같이 거대한 성기가 나이토의 하얀 엉덩이 안으로 사라졌다. 붉게 붓고, 쓸린 점막이 성기에 찰싹 달라붙었다. 나이토가 이를 악물고 허리를 계속 내리자, 점막이 반동에 따라 떨어졌다.

완전히 아버지의 성기를 품은 나이토가 고개를 숙였다.

“아, 다 들어왔어……흐읏, 으…! 아!”

아버지가 얕게 허리를 쳐올리자 나이토가 발끝을 오므렸다. 턱이 벌벌 떨리며 입술이 벌어졌다. 타액이 눈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허리를 꽉 잡고서 말했다.

“너도 움직여야지.”

“으응….”

대답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흘린 나이토가 허리를 움직였다. 아버지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무아지경으로 허리를 움직이는 모습은 아버지를 흥분시키고도 남았다. 나이토가 힘이 빠져 잘 움직이지 못하자, 아버지가 나이토에게 삽입한 상태로 몸을 돌렸다. 나이토는 내벽이 휩쓸리는 감각에 짤막한 신음을 내뱉었다.

“아아!”

“다리 벌려.”

자꾸 오므라드는 다리를 활짝 벌리게 하고, 아버지가 위에서 미친 듯이 박아댔다. 나이토의 사정은 봐주지 않고 내벽을 쿵, 쿵, 찧어대자 나이토가 신음도 흘리지 못하고 뒷머리를 시트에 비볐다. 아버지의 목에 매달려 울었다. 아버지가 주는 쾌감이 너무 좋았다. 아무 생각도 안 나게 해주는, 이 거친 섹스가 좋았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널찍한 등에 팔을 둘렀다.

“흐윽, 아…! 더 세게…! 세게 해 줘…흑…!”

“좋아, 아들? 대답해줘.”

아버지가 귀를 물었다. 귓불이 따끔했다. 지금 주는 쾌감으로도 미칠 거 같은데, 아버지의 입술이 상체와 얼굴을 누비자 쾌감에 불이 더 붙었다. 나이토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응, 아읏…좋아!”

아버지는 나이토가 대답을 늦게 하자 목을 세게 물었다. 아프다고 소리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예민한 부근을 찔러댔기 때문이다. 작정하고 그 부분만 노리는 아버지 덕분에 나이토는 어깨를 잡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내벽의 주름이 다 사라질 것 같았다. 조일 틈도 주지 않고 박아대는 성기에 나이토는 점점 정신을 잃어갔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아버지는 체위를 바꿔서 다시 박아대고 있는 중이었다. 엉덩이만 올린 상태로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아버지가 입구에 귀두가 걸쳐질 정도로 쑥 빼내고,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박았다. 내벽에 불이 붙은 것처럼 아파오고 뒤를 이어 쾌감이 밀려왔다. 나이토는 눈을 꾹 감고서 시트를 붙잡았다. 타액으로 범벅이 된 시트가 축축했다.

“기절하지 마.”

아버지가 허리를 두 손으로 꽉 조이며 말했다. 나이토는 양손으로 시트를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나이토가 고개를 숙인 상태로 있자, 아버지가 쓰고 있던 안대를 벗겨주었다. 눈을 가늘게 뜨자 환한 방이 보였다. 울긋불긋한 팔이 보였다. 마치 하얀 도화지에 붉고, 푸른 물감을 퍼트린 것 같았다. 아버지가 물고, 빨고, 깨문 자국이 가득 이었다. 늘 묶인 손목은 쓸린 상처가 화상처럼 남아있다.

“앗!”

아버지가 단숨에 성기를 빼냈다가 뿌리 끝까지 박았다. 내벽이 성기에 마찰 되어 아팠다. 이번에는 아픔이 좀 더 컸다. 나이토가 시트를 잡고 울먹거렸다.

“아파…살살해.”

“다른 생각 하지 마.”

커다랗고 부드러운 손이 성기를 잡고 흔들었다. 적당한 조임이 성기를 감싸오자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앞뒤가 동시에 쾌감으로 휩싸이자 허벅지가 달달 떨렸다. 입술이 제멋대로 벌어지며 달콤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흣…좋아…! 거기…더 세게 해줘. 흐읏.”

“어디? 여기?”

아버지가 느끼는 부분을 푹 찔렀다. 나이토의 상체가 무너졌다. 시트에 이마를 비비적거리며 나이토가 외쳤다.

“응, 거기…아아!”

지금 쾌감을 주는 이가 친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아버지가 내부를 사정없이 들쑤시고 진득한 정액을 사정했을 때, 나이토가 아버지의 손에 사정했다.

그리고 정신이 뚝 끊겼다.

아버지는 예전보다 마른 나이토의 몸을 쓸어 만졌다. 근육도 줄어들어, 피부가 말랑했다. 머리카락도 그새 길어서 목을 다 덮었다. 정액과 온갖 자국으로 도배가 된 하얀 몸을 즐겨 보던 아버지는 짧게 웃었다.

“널 어떻게 해야 할까.”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아버지는, 나이토의 내부에 성기를 넣은 채 옆에 누웠다. 허리를 팔로 감싸자 나이토의 몸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엘시는 나이토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껏 숨을 들이마시자 아들의 체취가 진하게 났다. 딱히 향수를 사용하지 않는데도, 나이토의 몸에서는 늘 좋은 냄새가 났다. 맡을수록 중독이 되는 냄새였다. 한참을 나이토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아버지는 상체를 미는 힘에 눈을 스르륵 떴다. 기절했던 나이토가 정신을 차린 것이다. 나이토는 내부에 흥건히 고인 정액과 그 안에 그대로 있는 아버지 성기에 인상을 찡그렸다.

“빼.”

“빼주세요, 라고 해 봐.”

“왜 자꾸 존댓말을 강요하는 거야?”

나이토가 강인한 상체에서 바르작거리며 반항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뺨을 한 손으로 만지며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네 아빠고, 너보다 18살이 많으니까. 존댓말은 당연한 거잖아.”

“……빼주세요.”

나이토가 한숨을 푹 내쉬며 부탁했다.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성기를 빼냈다. 성기가 빠져나가자, 구멍이 빠끔거리며 아쉽다는 듯 움직였다. 구멍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고였던 정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나이토는 그 느낌이 싫어서 다리를 어정쩡하게 움직였다.

나이토가 불편해하는 이유를 알아챈 아버지가 손을 내려,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그리고 긁어 내렸다. 고였던 정액을 긁어내리는 잔인한 손길에 나이토는 무너졌다. 느끼는 부근을 모호하게 자극하는 손 때문에 힘들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목을 떨리는 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그만…그만해요. 힘들어요.”

“밥을 잘 먹어야지. 밥을 조금 먹으니까 맨날 힘든 거야.”

아버지는 섹스할 때 자꾸 기절하는 나이토가 싫다는 듯, 매일 진수성찬을 차려왔고 어떻게든 먹였다. 그에게 시달린 후에 반항할 힘도 없었던 나이토는 입을 벌려 그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었다.

그는 항상 일정한 양을 먹였다. 그리 많지 않은 양으로, 딱 생명유지를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 생활이 지속되다 보니 자연스레 살이 빠지고, 근육양이 줄어들고, 예전부터 체력이 많이 약해졌다. 쾌감이 연속적으로 휘몰아치면, 버티지 못하고 기절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나이토는 아랫배를 만지작거리는 아버지의 손길을 느끼며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창이 없는 벽이 보였다. 의식하지 않고 보았던 햇빛도, 은은하게 밤하늘을 비추며 등대가 되어주는 달빛도, 이제 그의 허락 없이 볼 수 없었다.

그저 이곳에서 언젠가 아버지가 풀어주길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기다림이 얼마나 지났는지 나이토는 몰랐다. 시간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침대에 누워 잔다. 어느 순간 일어나보면, 아버지가 다정한 눈으로 자신을 보며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 손길이 너무 다정해서, 따뜻해서, 나이토는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아무도 없는 이 공간과 고이지 못하고 그저 흘러버리는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다는 감각을 주는 사람이 아버지였다.

그게 괴로웠다.

결국 나이토가 가장 괴로운 시기에 힘들어할 때, 손을 내밀어주고 잡아준 사람이 유일무이하게 아버지였다.

*

묵직하게 가라앉은 추운 바람이 불었다. 쌀쌀함을 못 이기고 이불을 끌어올려 몸을 감쌌다. 의식이 저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올라오기를 몇 번 반복했을 때가 되어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커다란 침대에 혼자였다. 부스스한 머리를 올리며 주변을 살펴보자, 아버지가 준비해준 물과 약이 있었다. 아버지가 주기적으로 주는 영양제였다. 습관적으로 약을 먹은 나이토는 침대에 힘없이 쓰러져 누웠다. 납작해진 배를 감싼 나이토는 눈을 깜박이며 천장을 보았다.

나이토는 문득 아버지의 연인들을 떠올렸다. 이엘리부터 시작해서 키샨까지.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지만 오래간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자기도 질리면 버려지는 걸까. 버려지면 자신은 어떻게 될까. 약 한 달간 아버지를 떠났던 기간을 떠올린 나이토는 몸을 살짝 떨었다. 도망가도 도망간 것 같지 않았던 그 느낌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버지에게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날 수 없었던 기묘한 느낌.

예전에는 아버지가 자신을 버려줬으면, 자신을 아예 잊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지금은 그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과연 자신이 아버지 없이 살 수 있을까? 제대로 살 수 있을까? 몇 번이나 스스로 되물었지만, 확답은 나오지 않았다. 망설이고 있었다. 양심과 현실의 간극이 너무 컸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나이토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예전만큼 아버지의 손이 싫지 않았다. 반항도 심하지 않았다. 늘 사랑해준다는 말을 해줬으며,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진짜로 사랑이 담긴 눈으로 자신을 볼 때면 정말 사랑받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도 들었다. 어쩌면 이것도 사랑일지 모른다고, 착각의 늪에 한 발자국 가까워졌다.

하지만 뒤늦게 이성이 아버지를 보라며 소리쳤다. 아버지라서 안 된다고 거절했으면서, 이제 와서 아버지를 보며 혼란을 느끼는 자신이 싫었다.

“나이토.”

자신을 끌어안는 다정한 품이 느껴졌다. 떨림이 심한 걸 알았는지 아버지가 품에 안고 나이토를 다독여주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안에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아버지였지만, 힘들 때 안아주는 이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무도 없었다면 자신은 진작 미쳤을 테니까. 나이토는 고개를 슬그머니 들어 올렸다. 나이토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아버지가 웃으면서 입술에 키스했다. 눈을 감고 아버지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혀와 혀가 얽혔다. 아버지와 농밀한 키스를 나누던 나이토는 살짝 입술을 뗐다. 아버지가 따라와 아랫입술을 빨아들였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묻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나랑 언제까지….”

나이토가 말끝을 흐리자, 아버지가 웃으면서 이어 말했다.

“섹스할 거냐고?”

나이토가 하고 싶었던 말을 아버지가 대신 해주었다. 아버지는 나이토가 입고 있는 자신의 셔츠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놔줄 생각 없어.”

“하지만 키샨이나 이엘리는 금방 헤어졌잖아.”

“걔네들하고 널 어떻게 비교해.”

손가락이 나이토의 피부를 스쳤다. 정말 소중한 사람을 대해주는 것 같은 손길에 나이토의 눈이 흔들렸다. 아버지는 상냥한 미소를 띄우며 속삭였다.

“아직도 몰랐어? 키샨은 널 닮은 애에 불과했어. 그 외에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고.”

키샨은 나이토와 같은 흑발이었다.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키샨을 떠올리던 나이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 때문에 6년을 기다린 거야?”

“그래.”

아버지가 나이토의 뺨을 들어 올렸다. 아버지의 자색 눈이 진중하게 빛났다. 나이토는 시선을 내렸다. 도저히 아버지의 눈을 오래 볼 수가 없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탄탄한 허벅지를 보았다. 정장에 둘러싸인 아버지의 허벅지를 보던 나이토의 입가에 쓰디쓴 미소가 올라왔다.

“아버지도 참 특이한 취향이야. 6년 동안 아들만 지켜보다니.”

“원하는 걸 가지려면 그 정도 인내심은 있어야지.”

아버지는 애틋한 시선으로 나이토를 보았다. 그의 시선이 용암보다 뜨겁다. 어째서 자신을 그렇게 보는 거냐고, 정말로 사랑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널 가질 수 있다면, 난 그것보다 더한 것도 기다릴 수 있어.”

“날 사랑하니까?”

결국 나이토가 입 밖으로 꺼냈다. 아버지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그래.”

아버지는 나이토를 꼭 끌어안았다.

“널 사랑해.”

나이토는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거라는 것을 확신했지만, 무슨 일인지 무척 슬퍼졌다. 아버지가 버려주길 소망했으면서도, 버릴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모순적인 자신의 감정에 나이토는 머리가 아파 왔다. 이제 약도 듣지 않았다.

극심한 통증이 일어나 더 이상 안겨있을 수 없었다. 나이토는 통증의 근원인 아버지를 피했다. 아버지를 피하면 통증이 나아질까 싶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가 귀신같이 쫓아와 나이토의 손목을 잡았다. 나이토는 흠칫 놀라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눈이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저 눈빛이 피부를 간지럽혔다. 너무 뜨겁고, 진중하고, 또 소년처럼 순수하게 맑았다.

아버지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다만, 나이토가 견딜 수 없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어 손목을 비틀었으나, 힘이 약해진 나이토가 벗어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머리를 만져주며 조용히 말했다.

“머리가 많이 길었어.”

아버지의 손이 나이토의 입술을 만졌다.

“이제 이 입으로 얌전히 밥도 받아먹으니 새로운 걸 해볼까.”

아버지의 손이 내려와 나이토의 등을 어루만졌다. 나이토는 다정한 아버지의 손길에 이상하게 소름 끼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는 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 넣어, 부드러운 살을 만졌다. 정확히 엉덩이 바로 위 살이었다. 그 부근을 손가락으로 쓸어 만지며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을 새기는 거야.”

“…뭐?”

나이토의 얼굴이 굳었다. 아버지는 몸이 딱딱하게 굳은 나이토를 엎드리게 했다. 셔츠를 들어 올리자, 보기 좋은 엉덩이와 등이 드러났다. 체모가 적어 부드러운 살결을 연신 만지던 아버지가 코를 갖다 댔다. 나이토의 몸에선 아버지가 좋아하는 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입욕제와 비누, 로션을 사용한 덕분이었다. 아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아버지의 취향이었다. 이제 이 취향에 확실한 낙인을 새길 시기가 된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이토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목소리에 불안이 한가득이었다.

“말 그대로야. 내 이름을 새기자고.”

“왜 내가 그래야 하는데!”

“너는 내 거잖아.”

“도망 안 가겠다고 했잖아. 레이얀하고도 헤어졌다고 말했잖아!”

나이토가 등을 돌리며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아버지는 들은 체 하지 않고 나이토의 등과 엉덩이를 어루만졌다. 그때마다 나이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버지가 거짓을 말한 적이 없었으니, 억지로라도 시킬 것 같았다.

“그럼 인두라도 지질까?”

“하지 마!”

“역시 문신이 낫겠지? 인두는 너무 아플 테니까.”

아버지는 이미 결정한 듯 위치를 손가락으로 더듬고 있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을 밀쳤다.

“네가 그랬잖아. 밖에 내보내 달라고.”

“이딴 식으로 내보내는 줄 알았으면 내보내 달라고 안 했어.”

“평생 밖에 안 나갈 생각이야?”

아버지가 싱긋 웃었다. 나이토는 뒤로 물러났다. 가슴이 두려움으로 계속 두근거렸다. 아버지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마음에 봄바람이 든 것처럼 다정해졌다가, 이럴 때는 정말 미친 사람처럼 나이토를 몰아붙였다.

아버지는 잔인했던 말투와 다르게 따스한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내가 하면, 너도 할래?”

“아버지가 왜 해?”

“글쎄. 하고 싶으니까? 각자 이름을 새기는 것도 좋을 거 같아서.”

아버지는 나이토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시선이 왼손 약지에 꽂혀있었다.

“반지는 네가 싫어할 거 아니야. 그렇다고 목걸이를 하는 성격도 아니니까.”

아버지는 커플링이나 커플 목걸이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할 성격도 아니고, 하고 싶지도 않아 하니 몸에 문신을 새겨야겠다고 결심한 듯했다. 참으로 간편한 아버지의 사고방식에 나이토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쌌다. 고민은 깊어졌다. 이대로 안에 갇혀 아버지의 손아귀에 잡혀있을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 이름을 새기고 밖에 나갈 것인가.

“…정말 내보내 줄 거야?”

나이토가 아버지를 간절히 바라보며 묻자, 아버지가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아버지도 내 이름을 새길 거야?”

“그래.”

“어디에 새길 건데?”

나이토의 물음에 아버지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곳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여기에 할 건데.”

뭔가 기분이 묘해진 나이토는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다른 곳에 해. 섹스할 때 내 이름 보이는 거 싫어.”

그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오랜만에 소리 내서 웃었다. 눈을 초승달처럼 접고, 입술 끝을 올려 환하게 웃는 아버지의 얼굴은 순수해 보여서, 가슴이 살짝 두근거렸다.

“그래. 다른 곳에 할게. 네가 못 보는 곳에.”

나직하게 말한 아버지가 나이토의 손등에 키스했다. 나이토는 인상을 찌푸렸다. 사랑받는 이 느낌이 싫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에게 잡힌 손을 빼냈다.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아버지는 그럴 정도로 상냥한 사람이 아니었다. 원하는 건 끝내 이루고, 갖고 싶은 건 쟁취하는 사람이었다. 나이토가 싫다고 해도 강제로 이름을 새길 사람이었다. 나이토는 커다란 수채화가 있는, 원래는 창문이 여러 개 있었을 벽을 바라보았다. 지금이 며칠인지, 몇 월인지 나이토는 모른다. 밖에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다. 이곳에 대략 3주가 넘게 갇혀있었으며 방 밖으로 나가는 것도 아버지가 있을 때만 가능했다. 옷도 아버지가 던져놓고 간 셔츠 빼고 입어본 기억이 없었다. 이 방에서 한 일은 오로지 아버지만 기다리고, 아버지와 섹스하는 일뿐이었다.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아버지만 바라보는 삶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습게도 점점 이 생활에 무뎌지고 있었다. 오히려 아버지가 오래 있지 않거나, 오지 않을 때면 외로움과 불안함에 떨었다. 자신을 사회로부터, 이 집에서부터 고립시킨 아버지였지만 정작 아버지의 품에서 안정을 찾았다. 차라리 아버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폭력적이고 강압적이었다면 나았을 텐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헛웃음이 나왔다. 헛웃음은 점점 일그러져 눈물로 변했다. 나이토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감금 생활 이후, 처음으로 나이토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울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는 나이토를 무심한 시선으로 보았다. 아버지의 손이 나이토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을 매정하게 밀쳤다.

“내버려둬.”

“이제 그만 고민할 때도 되지 않았어? 언제까지 고민하고, 청승맞게 울 거야.”

아버지가 얼굴을 가리는 나이토의 손을 내리누르며 냉정하게 말했다. 자기 기분을 거슬리게 하면 강압적으로 나오는 건 변함없었다. 나이토가 아버지를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난 아버지처럼 살 수 없다고 했잖아. 난 평범한 사람이야.”

“아니. 넌 충분히 강해.”

아버지는 나이토를 끌어당겨 안으며 말했다.

“어중간하게 약한 애들이었으면 자살하겠다고 난리 쳤을걸. 근데 넌 아니잖아?”

나이토는 멍하니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뺨을 느리게 쓸어 만졌다.

“그렇다고 미치지도 않지.”

“아버지가 내 정신 상태를 어떻게 알아?”

자신의 상태를 건성으로 말하는 듯한 아버지의 태도에 화가 나 반발하자 아버지가 웃었다. 그는 정중한 태도로 나이토의 뺨을 어루만졌다.

“매일 보잖아.”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을 내렸다. 아버지와 얘기하는데 진이 빠졌다. 나이토가 눈물을 멈추고, 진정한 듯 보이자 아버지가 웃는 낯으로 물었다.

“자,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밖을 나가는 것조차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삶이었다. 나이토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정신은 강한 모양이었다. 이럴 때 미치지도 않고, 어떻게 해야 현실적으로 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 방에 갇히면서 지독하게 보았던 수채화를 노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시간 감각마저 잊어버렸다. 창문이 없어서 햇볕이 드는지, 안 드는지 모르니까.

나가고 싶다. 이 방은 지긋지긋했다. 아버지가 앞으로 살짝 다가와 나이토의 귀를 만졌다. 나이토가 고개를 돌리자 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대학 가고 싶지 않아?”

“보내주려고?”

“너만 말 잘 들으면.”

무심하던 나이토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아버지는 약점을 잘 잡고 나이토를 살살 구슬렸다.

“나를 떠나지 않으면,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거짓말하지 마. 처음에도 대학 보내주겠다고 했으면서, 안 보내줬잖아.”

나이토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버지는 그런 나이토의 입술을 톡, 건드리며 말했다.

“네가 남창 새끼랑 도망가려 했으니까 그런 거였지. 6년이나 곱게 기른 내 아이인데 보내줄 수 없었어.”

집착과 광기가 느껴지는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애절하고 달달했다. 아버지의 고개가 점차 가까워졌다. 아버지의 입술이 닿자, 기다렸다는 듯 나이토가 눈을 감고 아버지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아주 약한 힘으로 입술을 빨아들였다. 나이토를 달래려는 듯한 잔잔한 키스였다. 쾌감이 격렬하게 몰아붙일 때 하던 키스와는 달랐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셔츠를 잡았다. 나이토의 하얀 손을 맞잡은 아버지가, 입술에 짧게 키스를 남기고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날 떠나지 마. 그거면 돼.”

*

어차피 아버지와 건너면 안 되는 강을 건넌 상태였다. 아버지의 강압으로 인한 시작이었으나, 이젠 아버지의 체취에 반응하고 아버지의 손길에 흥분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아버지의 입술이 다가오면 이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상황인데, 여기서 문신을 못 한다고 거부하는 게 더 우스워 보였다.

나이토는 정원 산책을 조건으로 등에 아버지의 이름을 새겼다.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아픈 정도를 비교하자면, 아버지와 했던 첫 섹스가 아팠다. 그날을 떠올리던 나이토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아버지의 집착이 이 정도로 심하다는 것을. 문신을 진행하면서 나이토는 과거를 더듬어 아버지를 선택했던 이유를 떠올렸다. 빈민가 아이들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였다. 비참하게 죽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지금 나이토는 빈민가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아이들보다 더 기이한 삶을 살고 있었다. 자유가 없었다. 자유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건 아버지의 의사에 따라 달렸다. 그저 어머니의 바람대로, 안정적인 울타리에서 크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이토는 아버지라는 견고한 밀랍의 성에서 사육당하고 있었다.

“예쁘게 잘 됐어.”

아버지가 나이토의 문신을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나이토는 거울을 통해 보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외면하고서 아버지가 건넨 옷을 입었다. 도톰한 분홍색 후드 티셔츠에 진청바지였다. 거기에 아버지가 준 스니커즈를 신었다. 밖에 날씨가 무척 쌀쌀해졌다며 아버지가 걱정 어린 어조로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서, 문을 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문을 열었다. 전문가들이 정성껏 가꾼 정원이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았다. 건물로 이어지는 돌담길을 중심으로 숲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꽃밭은 화려함을 넘어섰다. 천국을 꽃으로 형상화한 느낌이었다. 가지각색의 꽃들이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녹음 안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뺨을 스치는 바람도, 콧속으로 파고드는 꽃향기도, 하늘에 주렁주렁 매달린 솜 같은 구름도.

지상낙원이었다. 아버지가 가꾼 정원 중 가장 아름답다고, 가히 장담할 수 있었다.

정원이 생각보다 넓어서 오랜 시간 밖에 있을 것 같았다. 나이토는 정원 안에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걸었다. 수목원을 누비는 산뜻한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한 걸음 정도 떨어져 나이토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이토는 정원을 계속 걷다가, 집 뒤편에 있는 그네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동화책 속에서 볼 법한 지붕이 있는 2인승 그네였다. 사소한 장식에 불과했지만, 나이토는 홀린 듯 그네로 걸어갔다.

그네에 앉자, 아버지도 따라서 앉았다. 끽,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대학은 어디로 가고 싶어?”

아버지가 물었다. 나이토는 발을 굴리다가, 아버지의 질문에 고개를 돌렸다.

“정말 보내줄 거야?”

“보내준다고 했잖아. 대학이 싫으면, 일해도 좋아.”

매춘으로 돈을 벌고 싶지 않았다. 나이토는 고개를 저었다.

“포주 일은 싫어.”

“그래도 그 일을 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거야.”

아버지가 선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버지의 손길을 가만히 느끼던 나이토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 이유가 뭐야? 확신이 생겨야 보내준다고 했잖아.”

“아들이 이제 아빠 말을 잘 듣는 거 같아서. 레이얀이라는 녀석도 얌전하고.”

“…레이얀이 날 찾으려고 했어?”

“열심히 발로 뛰더라고. 네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그래 봤자 온실 속 도련님이지만.”

키득거리며 웃던 아버지가 미소를 살며시 지웠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턱을 잡고서 우아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네가 날 예전만큼 싫어하지 않으니까, 안심이 되어서.”

나이토는 잠시 숨을 멈췄다. 아버지는 나이토가 경직된 걸 알았는지, 묘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조금씩 나아질 거야.”

“아버지 착각 아니야?”

“착각일 리가.”

확실히 도망 후 잡혀 오면서 나이토의 태도가 변하긴 했다. 이제 아버지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했기 때문에, 불필요한 저항은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저항을 하고 싶어도 힘이 없어서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방식은 나이토의 정신을 굴복시켰다. 반항하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분고분하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아니. 네가 변한 거야.”

확고한 아버지의 태도에 나이토는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혼란함이 불쑥 나이토를 찾아와 괴롭혔다.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아버지가 날 변화시켰다고 말하려는데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이토의 뺨을 감쌌다. 아버지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강렬한 눈이 나이토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숨이 멎었다.

“정말 내가 싫어?”

“그만해.”

나이토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아버지를 거절했다. 나이토가 벌떡 일어나서 도망치려 하자, 아버지가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팔을 잡아당겨 나이토를 억지로 안았다. 나이토가 아버지의 얼굴을 밀치며 반항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이토를 놔주지 않았다.

“놔!”

“이제 내가 싫은 게 아니지? 그렇지?”

아버지가 집요하게 달라붙어 대답을 강요했다. 나이토는 작은 사슴처럼 떨며 아무 짓도 하지 못했다. 나이토의 떨림이 멎을 때까지 아버지가 계속 안아주고, 다독여주었다. 그의 단단한 팔이 허리를 옭아맨다. 쇳덩어리보다 탄탄하고 강한 그의 목소리가 사고회로를 정지시켰다. 휘몰아치는 감정을 아무렇지 않게 치웠다. 머리와 가슴에 남은 건, ‘괜찮아.’라는 단순한 말이었다. 흔한 다독거림이었는데, 아버지의 입을 통해 나온 순간 흔하지 않았다.

믿고 싶었다. 이 상태로, 모든 것을 놓아도 나이토를 잡아줄 것 같았다. 거미줄같이 끈끈한 사랑에 온몸이 얽혀있었다. 바리게이트를 서서히 넘어온 그의 목소리가 가슴에 당도해 버렸다.

“괜찮아, 나이토.”

나이토는 아버지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안정을 찾아갔다. 떨림이 멎었을 때, 나이토는 아버지 품에서 벗어났다. 창백한 나이토의 얼굴을 보던 아버지가 미소 지었다.

“그래서, 어디 대학 가고 싶어? 말만 해. 보내줄게. 공부하고 싶다면 선생님도 소개해줄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아빠한테 얘기해. 다 해줄 테니까.”

나이토의 뺨을 연신 어루만지던 아버지가 키스하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휴대전화가 급하게 울렸다. 미묘하던 분위기가 전화벨 소리에 깨졌다. 아버지는 인상을 쓰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잠시 한숨을 내쉰 아버지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인데.”

처음에는 짜증으로 일그러졌던 아버지의 얼굴이 점차 딱딱해졌다. 저렇게 변한 아버지의 얼굴은 난생처음이라, 나이토도 당황해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기일까. 아버지가 왜 저렇게 당황하는 걸까. 설마 죽었던 할머니나, 어머니가 살아나서 저런 것일까. 황망한 생각도 들었으나 아버지의 입으로 통해 들은 건, 생각 외의 이야기였다.

“알라시스 대공은 끝이라는 건가?”

아버지답게, 곧 이성을 차리고 냉정하게 웃었다. 조용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던 아버지는 묘한 웃음을 흘리며 얘기했다.

“성폭력 사건이면 정치계 재기는 이제 불가능이야. 버릴 카드는 버려야지.”

거기까지 얘기한 아버지는 더 이상 통화를 듣지 않고 끊었다. 아버지는 멍하니 자신만 보는 나이토의 얼굴을 만지면서 애석하다는 듯, 말했다.

“레이얀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야.”

“왜?”

“그 녀석 형도 여기에 연관되어 있거든. 조드릭 공작이 힘들게 됐어. 졸지에 집안을 이을 장남이 성폭력 사건 가해자가 되어버려서. 물론 알라시스 대공도 큰일이지만.”

“아버지는 무사한 거야?”

무심코 나이토가 물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물음이 마음에 들었는지, 해맑게 웃으며 나이토를 꼭 끌어안았다.

“아버지 걱정해주는 거야?”

“…아버지가 연관되지 않았다면 그런 표정 지을 리 없으니까.”

나이토는 애써 냉정하게 말하며 선을 그었다. 아버지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신사처럼 다가온 그 손을 나이토가 붙잡았다. 아버지는 애틋한 눈빛으로 나이토를 훑으며 말했다.

“아마 나도 조만간 조사를 가겠지.”

“위험한 거 아니야?”

“글쎄.”

모호하게 답을 흘린 아버지는 짤막하게 덧붙였다.

“미안하지만, 당분간 더 갇혀있어야겠어.”

아버지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웃었다. 뻔뻔했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아버지는 사과하는 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

알라시스 대공의 성폭력 사건이 터진 후, 아버지는 정말로 바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찾아와 밥을 주고, 화장실을 보내주고, 관계를 맺었다. 부드럽고 다정하지만 집요하게 자신의 몸을 탐하는 아버지에게 정말 큰 일인 거 아니냐고 묻고 싶었으나, 나이토는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에게 더 이상 마음의 문을 열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아버지에게 모든 걸 맡기고 의지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간신히 나이토가 자신을 지켜가던 중, 일이 터졌다.

아버지가 나이토의 등에 새겨진 이름을 만지면서 관계를 맺는데 뜬금없이 비서가 찾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비서를 무시하던 아버지였지만, 비서가 억지로 문을 열고 들어오자 화를 냈다. 비서의 등장에 놀란 나이토는 이불로 몸을 가렸다. 내내 박혀있던 아버지의 성기가 빠져나가자, 고였던 정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으읏.”

쓰라린 내벽이 아직 아파서 신음을 흘리니 아버지가 입술을 손으로 가렸다. 섹스의 흔적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버지는 앞에 서 있는 비서에게 짜증을 냈다.

“무슨 일이야?”

“회장님. 일이 좀 틀어졌습니다.”

비서가 이불로 몸을 가린 나이토를 보며 얼굴을 붉혔지만, 묵묵히 다가와 아버지에게 속삭였다. 너무 차분하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라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알 수 없었다. 비서가 하던 말 중에 유일하게 들을 수 있던 건 영장이었다. 설마 아버지가 구속되는 건가. 나이토는 지레 겁을 먹고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나이토의 걱정 어린 시선을 감지한 엘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아들의 발간 뺨을 만졌다. 그의 손끝이 말해주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뭐, 예상은 했지만…생각보다 빠른데.”

나이토가 손을 뻗어 아버지의 소매를 잡았다. 옷깃이 잡힌 엘시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빠.”

자신도 모르게 아빠, 라고 부르고 말았다. 엘시는 커프스를 채우며 나이토를 다정한 눈으로 응시했다. 그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 일도 아니니까 넌 자고 있어.”

아버지는 더 이상 별말을 하지 않고, 비서를 데리고 나갔다. 아버지의 흔적이 남은 상태로 나이토는 방에 혼자 남게 되었다. 아버지가 없으면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샤워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 아버지의 정액을 안에 두고 잘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이토는 한숨을 내쉬며 구멍 안으로 손을 넣었다. 잔뜩 부은 입구가 느껴졌다. 손가락 두 개를 넣었을 뿐인데 내벽이 아파와 눈물이 찔끔 나왔다. 고인 정액을 손가락으로 긁어 내렸다. 희뿌연 정액이 손가락을 기둥 삼아 주르륵 흘러내려다. 티슈를 뽑아 손을 닦아낸 나이토는 침대에 웅크리고 누웠다.

아버지는 괜찮은 걸까. 갑자기 아버지 걱정이 들었다. 아무리 싫던 아버지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이토는 모로 누운 채 아버지의 굳은 얼굴을 떠올렸다. 전혀 볼 수 없었던 얼굴이었다. 타인한테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사과할 필요성도 생각하지 못하는 남자가 처음으로 보였던 빈틈이 마음에 걸렸다.

오늘은 왠지 아버지가 주고 간 약을 먹고 자야 할 것 같았다. 언제나 아버지와 섹스를 하고 나서, 함께 잠드는 게 일상이었는데 옆에 없으니 불안했다. 불안하다, 라는 감정을 소리 없이 중얼거린 나이토는 쓰게 웃었다. 사람은 적응과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지금 자신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정신도 갉작갉작 긁어대는 불안감에 이불을 뒤척거렸다. 나이토는 아버지가 종종 먹는 수면제를 찾으러 일어났다. 무리하게 일을 할 때면, 아버지는 잠을 푹 자지 못했다. 그러면 신경이 송곳처럼 날카로워졌다. 본인도 그걸 알아서 그럴 때는 꼭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다. 알토를 따돌리기 위해 몰래 한 알 훔쳤던 수면제는 이 집에도 있었다. 서랍에서 약을 꺼냈다. 약을 입에 넣고, 잔에 남은 물을 한 모금씩 나눠서 삼켰다.

힘없는 다리를 질질 끌어 침대로 걸어갔다. 풀썩 쓰러졌다. 누에고치처럼 이불로 몸을 감싼 나이토는 눈을 깜박거렸다.

얼마 되지 않아서 깊은 수면으로 빠졌다. 오랜만에 약을 먹고 잠들어서 악몽을 꾸지 않고 푹 잘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입에 무언가 들어있었다. 밀어내려 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나이토는 끙끙거리며 혀를 움직였다. 그대로였다. 답답함에 인상을 찡그리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찮아.”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반복되어 들려서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괜찮아.’였다. 목소리의 주인이 나이토를 끌어안고, ‘괜찮다.’라고 귀에 속삭이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인가. 하지만 아버지는 이런 식으로 자신을 안지 않았다. 더 크고 널찍한 상체에 나이토를 어렸을 때처럼 안고서 다독여주었다. 나이토는 불편함에 눈을 찡그렸다. 자신을 안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약 때문에 떠지지 않았지만, 나이토는 억지로 눈을 떴다.

촉촉하게 젖은 물빛 눈동자가 보였다. 나이토는 상대방을 확인하고 경악에 눈을 크게 떴다.

“괜찮아.”

레이얀이 나이토를 안고 울고 있었다. 나이토의 숨이 거칠어지자, 레이얀이 나이토의 뺨을 만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 새끼 죽여줄게. 그러니까 걱정 마.”

이게 지금 어떻게 된 일이냐고, 레이얀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입에 재갈이 물려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놀라서 눈을 잘게 떠는 나이토를 빤히 보던 레이얀이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널 구했어, 나이토.”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길, 바라긴 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지금 나이토의 머리에 남은 건, 자신을 보며 웃는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아무 일도 아니니 자고 있으라는 아버지의 말이 귓가에 계속 감돌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나이토는 약 기운이 남은 둔한 머리를 느리게 좌우로 움직였다.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간신히 세워서 차근차근 주변을 살펴보았다. 레이얀은 뛰어난 미모와 어울리지 않는 파란색 청소부 옷을 입고 있었다. 레이얀의 등 뒤에는 종종 저택에서 보았던 청소도구들이 있었다. 가드닝 도구들도 있는 걸로 보아하니 오늘이 저택 대청소 날인 것 같았다. 아버지의 저택은 매일 청소를 하긴 했으나 수영장, 승마장, 그리고 정원 등은 주기적으로 외부에서 사람들이 와서 정리해주곤 했다. 기본적으로 청소를 하긴 했지만 꼼꼼하고 정갈한 청소는 전문 외부업체가 있었기에, 아버지는 그들에게 일을 맡겼다. 그것도 모자라 1달에 한 번은 무조건 대청소를 실시했다. 언제나 저택을 먼지 하나 없는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성격 때문이었다.

레이얀은 아버지의 습관을 알고, 위장을 해서 집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문제는 자신이 감금된 곳을 어떻게 알았냐는 것이었다. 자신이 감금된 곳은, 오로지 아버지가 허락한 사람들만 오갈 수 있었다. 레이얀의 얼굴을 아는 아버지가 레이얀이 들어오게 놔둘 리가 없었다. 나이토가 계속 설명을 갈망하는 얼굴로 레이얀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옆집에서 자라났고, 커서는 같이 수도에서 연인으로 지낸 레이얀은 금세 나이토의 심리를 알아챘다.

그러나 레이얀은 쉽게 나이토의 입에 물린 재갈과 등 뒤로 묶은 손은 풀어주지 않았다. 레이얀은 예전처럼 순하고 맑은 눈을 가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눈은 광기와 분노로 물들어 번쩍거리고 있었다.

나이토는 재갈을 문 채 신음했다. 레이얀이 다 알아버린 것이다. 레이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레이얀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헤어지자고 한 거였는데. 나이토는 여전히 아무것도 입지 않은 다리를 오므렸다. 나이토가 벌거벗은 몸으로 오들오들 떨자 레이얀이 떨어진 담요를 올려 덮어주었다. 나이토는 숙였던 고개를 올려 레이얀을 응시했다. 레이얀은 턱을 괸 상태로 나이토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었다. 나체를 샅샅이 훑어보는 시선이 견딜 수 없어, 나이토는 고개를 돌렸다. 크고 작은 멍과 야릇한 자국이 남은 하얀 목덜미가 도드라지게 보였다. 레이얀은 손을 뻗어 가느다랗지만 탄탄한 나이토의 목을 만졌다. 나이토의 목젖이 느리게 움직였다. 나이토는 눈에 띄게 긴장하고 있었다. 몸이 수축된 상태였다.

레이얀은 시선을 고집스럽게 피하는 나이토의 얼굴을 강제로 잡아 돌렸다. 턱이 얼얼하게 아파와 나이토는 인상을 찡그렸다.

모든 것이 레이얀답지 않았다. 레이얀은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폭신한 마음을 가진 아이였다. 힘들 때면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다정한 연인이었다.

이런 건, 레이얀과 어울리지 않았다.

“왜 그런 얼굴인 거야?”

나이토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레이얀을 보고 있었다. 기묘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있던 레이얀은 서서히 미소를 거두고서, 고개를 삐뚜름하게 기울였다.

“아버지가 쫓아올까 봐 무서운 거야?”

아버지가 널 죽이러 올까 봐 무섭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이토의 불안을 다르게 읽은 레이얀은 엄지로 뺨을 문지르며 나른하게 말했다.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너희 아버지는 지금 아이작 형과 같은 혐의로 끌려갔으니까. 이 일에 얽힌 귀족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 쉽게 나올 수는 없을 거야.”

처음 듣는 이야기에 나이토는 얼굴을 찡그렸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해주지 않았다. 레이얀은 개를 쓰다듬는 것처럼 나이토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나이토가 몰랐던 이야기를 느리게 늘어놓았다.

“알라시스 대공은 윤간을 보는 걸 좋아하거든. 그날도 너희 아버지가 선발한 매춘부가 엎드렸지. 약에 취한 귀족들 여러 명이 그 애를 강간했어. 물론 그 귀족들 중 한 명은 우리 형이었고.”

아버지가 다른 형이었기에 그다지 애정이 없었던 레이얀은 마치 남 이야기를 하듯 태평하게 얘기했다. 나이토도 알라시스 대공의 취미를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단지, 어떻게 이 일이 외부에 유출되었는가. 그것이 무척 궁금했다. 그들은 철저했다.

이런 일로 타격을 입을 정도로, 멍청하게 일을 진행하지 않았을 터이다. 나이토의 머리를 만지던 손이 아래로 내려와 턱을 만졌다. 전보다 날렵해진 턱선을 애무하듯 느릿하게 만진 레이얀이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알라시스 대공이 목을 조르면서 하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그날도 목을 조르면서 하다가 매춘부가 그만 죽어버린 거야. 귀족들은 별로 놀라지도 않았어. 그렇게 하다가 죽은 게 한두 명이 아니었으니까. 너희 아버지는 나서서, 그 애의 시체를 처리했지. 신분도 하찮은 애, 누가 죽는다고 신경 쓰겠어? 문제는 다른 데서 발생했어. 알라시스 대공은 취미로 영상도 찍는데…그 영상이 보관된 컴퓨터가 유출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마치 보란 듯이.”

한 마디로 대공은 누군가에게 발등이 찍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나이토가 머리를 굴려 생각해도, 알라시스 대공은 그렇게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와 한 배를 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배에 아버지도 있었다.

도대체 누가 유출시킨 걸까… 고의인 걸까, 실수인 걸까. 나이토의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유출 덕분에 멜리셔스 공작은 꿈에 그리던 대공 자리에 앉게 된 거지. 알라시스 대공과 그를 따르던 자들은 한순간에 목이 잘리게 되겠지만. 물론 그중에 한 명은 너희 아버지야. 알라시스 대공이 다 말해버렸거든. 아직 증거가 없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선 너희 아버지는 못 움직여. 형도 구속이 되서 열심히 조사를 받고 있어. 어머니가 열심히 형의 무죄를 밝히고 있지만, 밝혀지더라도 형은 보호소에 들어가게 될 거야. 약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니까. 그래도 형 때문에 감사해. 형이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나올 수가 없었을 거야. 어머니는 지금 형 때문에 다른 곳에 신경 쓸 수가 없었고, 나는 어머니가 바쁜 상황을 노려서 널 구한 거야. 어머니는 집에 얌전히 있으라고 했지만….”

레이얀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어머니가 아시면 날 죽이려 들겠지만 어쩔 수 없었어. 네가 나한테 헤어지자고 얘기하고, 그 후로 네가 아버지한테 감금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니까. 널 그냥 혼자 둘 수가 없었어.”

레이얀의 목소리가 차츰 떨려왔다. 나이토는 레이얀에게 그만하고 집으로 가라고 외치고 싶었다. 레이얀의 어머니 성격상, 레이얀이 이렇게 도주한 걸 알았으면 정말 레이얀을 죽이려들 것이다.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그녀는 레이얀을 위해서 무엇이든 해주지만, 자신의 이름에 먹칠이 가는 일이라면 가차 없었다. 조드릭 공작의 냉철한 성격을 어느 정도 아는 나이토였기에 그녀에게 레이얀과 사귄다고 말하지 못했다. 동성애가 핍박받는 사회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존중받는 사회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독실한 종교인인 그녀이니 더더욱 레이얀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레이얀이 긴 설명을 마쳤을 때쯤, 차가 멈추었다. 심각하게 덜컹거리던 움직임도 잦아들었다. 잠시 후, 뒷문이 활짝 열렸다. 레이얀은 몸을 일으켜 내려갔다. 늘씬하고 쭉 뻗은 다리가 엉성하게 자라난 잡초더미에 가려졌다.

“차는요?”

“미리 준비해 놓았습니다.”

“알겠습니다.”

레이얀은 체구가 작고 날렵한 남자에게서 열쇠를 받았다.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나서 청소차 안으로 들어와, 결박된 나이토를 안아 준비된 차로 옮겼다. 준비된 차는 흔히 볼 수 있는 보급형 소형차였다. 뒷좌석에 공주님처럼 곱게 앉혀진 나이토는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달라고 끙끙거렸다. 그러나 레이얀은 눈길도 주지 않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시동을 건 레이얀이 나이토를 뒤돌아보며, 나긋하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포로 갈 거야. 그곳에 마련한 집이 있어. 거기서 풀어줄게.”

남자 둘은 미련 없이 떠났다. 레이얀은 차를 몰아, 국도로 진입했다. 나이토는 여전히 알몸 상태로 묶여서 레이얀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수면제를 먹고 잠을 청한 몸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잠도 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의 긴장감이 극도로 올라가 신경이 예민해졌다.

어둠이 차츰 자취를 감추고, 환한 낮이 될 때까지 차는 달렸다. 도작한 포는 휴양지로 유명했는데 휴가 기간이 끝난지라 도시 자체가 썰렁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어서 오라는 듯 출렁였지만, 나이토의 눈에는 모든 것이 불길한 징조로 보였다. 차는 숲을 지나 도란도란 사는 동네로 들어갔다. 차는 소박한 정원이 있는 조그마한 집에 멈췄다. 레이얀은 차에서 내려 트렁크로 걸어갔다. 트렁크에서 가방을 꺼내 나이토가 있는 뒷좌석으로 들어왔다. 레이얀은 나이토의 입에 오랜 시간 머물렀던 재갈을 풀어주었다. 입안이 욱신거려 나이토는 바로 말을 하지 못했다. 레이얀이 물을 먹여준 후에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수도로 돌아가자.”

“그게 무슨 소리야?”

나이토는 여기로 오는 내내 생각했던 말을 더듬더듬 꺼냈다. 아버지와 레이얀의 어머니 성격을 고려해보면, 이건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명예와 권력, 부를 다 쥐고 있는 어른들을 고작 20살인 레이얀이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레이얀을 이 지옥에 끌어들이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레이얀을 설득해 수도로 보내야 했다. 자신은 이미 아버지와 갈 데까지 간 사이였으나 레이얀은 아니었다. 레이얀의 인생마저 망칠 수 없었다.

눈을 내리뜨고 아버지가 남긴 자국들을 보던 나이토가 말했다.

“널 위해서 헤어지자고 한 거야. 제발, 레이얀. 이러지 마. 돌아가자.”

나이토가 덤덤한 목소리로 설득했다. 레이얀은 무심한 표정으로 나이토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에게 강간당하고, 감금당했으면서 다시 돌아가자는 말이 나오는 거야? 넌 피해자야, 나이토. 이게 뉴스로 나가면, 너희 아버지는 사회에서 매장당해도 모자랄 정도야. 양아들도 아니고, 친아들인 너를 강간하고 감금까지 한 거잖아. 내가 너를 도와줄게. 널 위해서 어머니가 마련해준 재산 다 처리하고 나왔어.”

레이얀의 눈은 모래성으로 만든 희망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파도가 철썩 몰아치면 금방이라도 쓰러져 없어질 희망이었다. 나이토는 아득한 시선으로 레이얀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레이얀을 보낼 수 있을까. 갈등하던 나이토는 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때처럼 하면 되는 거야.’

아버지와의 관계를 인정하면 되는 거였다. 아버지와 지냈던 게 싫지 않았다고, 좋았다고 얘기하면 된다. 그러면 레이얀이 자신에게 질려서 놓아줄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붙어먹고, 쾌락을 느끼는 사람을 누가 이해해줄 것인가. 아버지를 제외하고, 이 넓은 사회에서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정말 내가 싫어?’

차마 아버지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전 애인이었던 레이얀에게 하게 되다니.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나이토는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정말 미치고 싶었다. 미쳐버렸다면,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을 테니까.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았지만 의외로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나이토는 희미한 웃음소리를 서서히 죽이고서 고개를 들어 레이얀을 보았다.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구하러 와준 레이얀이었다. 애틋했다. 한 번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거면 됐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아버지랑 나는….”

하지만 자신의 입은 정반대의 말을 쏟아냈다.

“사랑하는 사이야.”

나이토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고저 없이 단조롭고, 담담했다. 아버지가 그토록 바랐던 인정을 하게 된 나이토는 뭔가 편안해진 마음으로 말했다.

“아버지가 날 사랑한다고 했어.”

적어도 그때 아버지의 눈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 레이얀은 평온하기 그지없는 나이토의 얼굴을 보고 경악했다. 입을 떡 벌리고 눈을 크게 뜬 레이얀이 나이토의 어깨를 잡고 당겼다. 묶인 손목이 아팠지만, 참았다.

“…나이토. 너 지금 제정신이야? 그 사람은 네 친아버지야!”

“알아.”

레이얀의 눈이 더 커졌다. 호수같이 맑고 푸른 눈에 불쾌감이 스며들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친아버지와 사랑에 빠져서 섹스를 하는 자신을 누가 정상적인 시선으로 볼까. 알고 있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다. 못이 박힌 것처럼 아파 왔다.

결국은 아무리 발버둥 치고, 돌고 돌아도, 뫼비우스의 띠였다. 아버지가 정해준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만든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므로.

“내 다리 봤잖아. 나, 아버지가 잡혀가기 전까지 섹스했어. 내가 좋아서 하자고 한 거야. 그러니까….”

“그만해.”

“난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 그래서 헤어지자고 한 거야. 아버지를 사랑해서.”

레이얀이 멍한 얼굴로 나이토를 보았다. 할 말을 잃은 얼굴로, 한참 동안 나이토를 보던 레이얀이 떨리는 손을 뻗었다. 레이얀이 나이토의 얼굴을 감쌌다. 결박된 나이토를 단숨에 자기 쪽으로 끌어온 레이얀이 입술을 힘들게 끌어올렸다. 울 것 같은 미소였다. 고생 한 번 안 해본 손이 하염없이 나이토의 얼굴을 만졌다. 그의 손이 너무 가련하게 떨려서 나이토는 차마 레이얀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시선을 내리자, 레이얀이 소리쳤다.

“날 봐! 정말 날 사랑하지 않아?”

울음이 가득 배인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쐐기를 박을 때가 온 것이다. 나이토는 눈을 세게 감았다가, 떴다. 또렷한 시선이 레이얀을 관통했다.

“난 아버지를 사랑해.”

나는 아버지를 사랑한다. 속으로 당부하듯 말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가 납치된 것은 알고 있을까? 내가 사라진 걸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이것이 사랑인지 자신은 확신할 수 없다. 이 감정을 감히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나이토는 가슴이 싸하게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레이얀의 물빛 눈동자가 텅 빈 게 보였다.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연이어, 자기 애인이 아버지와 붙어먹은 걸 안 눈은 현실을 멀리 떠나가고 있었다. 레이얀은 나이토의 얼굴을 감싼 손을 거두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나이토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늘씬하게 뻗은 다리를 노려보던 레이얀은 담요를 내렸다. 나이토의 허벅지에는 물고 빨고, 핥은 자국이 흐리거나,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사타구니 안쪽은 심각한 멍 자국도 있었다. 나이토는 안을 살펴보는 레이얀의 시선이 두려워 다리를 오므리려 했다.

하지만 레이얀이 손을 더듬어, 아래 구멍을 만지자 그것도 하지 못했다. 부은 구멍을 만지작거리던 손가락이 쑥 안으로 들어왔다. 전날까지 아버지와 격렬하게 섹스를 했던 터라 구멍은 무리 없이 손가락 하나를 삼켰다. 오물거리며 조이는 구멍을 보는 레이얀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미소에 나이토는 다리를 움직여 그를 밀었다.

그러나 레이얀은 다른 손으로 다리를 활짝 벌리며,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깊숙이 넣었다. 내벽에 남아있던 정액이 찌걱, 거리는 소리를 내며 레이얀의 손가락에 달라붙었다.

“아버지랑 하는 게 정말 좋았나 봐.”

“하지 마.”

나이토가 하지 말라고 거부했지만, 레이얀의 손가락이 하나 더 들어왔다. 뜨끈하고 말랑한 내부를 손가락 두 개가 오갔다. 아버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미숙한 손짓이었다. 나이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레이얀이 손가락을 또 넣었다. 금세 세 개가 가득 찬 내부가 빠듯하게 느껴졌다. 예민한 부분을 눌러오는 손가락 때문에 나이토의 입에서 미세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이토의 입에서 아픔이 아니라 쾌락을 원하는 신음이 나오자 레이얀의 눈이 가늘어졌다. 레이얀은 손가락을 빼냈다. 레이얀은 고개를 숙이고 오들오들 떠는 나이토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나이토의 얼굴이 빨갰다. 눈은 묘하게 젖어있었다.

“넌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아버지랑 섹스하면서 좋아하는 몸이라니, 말이 안 되잖아. 그렇지?”

답을 원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레이얀은 나이토의 턱을 억세게 쥐고서 창가로 밀어붙였다. 결박된 몸이 저항 한 번 못하고 눌렸다. 레이얀의 눈이 전보다 진득한 광기로 번들거렸다. 늘 말갛던 물빛 눈이 분노로 짙어져 푸르게 보였다.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는 레이얀의 눈을 보는 나이토는 마른 침을 삼켰다.

“난 제정신이야. 그러니까 나한테 이제 관심 꺼…으읏!”

난 아버지를 사랑하니까, 라고 덧붙여 말하려는데 레이얀의 입술이 거칠게 다가왔다. 이가 부딪혀 아팠다. 통증을 호소하는 입안으로 혀가 들어왔다. 힘으로 밀어붙였다. 나이토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지만 레이얀은 쉽게 밀려나지 않았다. 체구 자체가 호리호리하고 근력이 약한 레이얀이었다. 그런 레이얀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힘에서 밀렸다. 레이얀은 흐르는 피는 신경 쓰지 않고 나이토의 입안을 누비느라 바빴다. 혀가 강제로 들어와 입안이 아릴 정도로 훑었다. 입술이 떨어지자 나이토는 기침을 거칠게 터트렸다. 입술이 너무 아팠다. 레이얀도 나이토처럼 숨을 헐떡이며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 새끼는 좋고, 나는 싫어?”

레이얀은 분노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이토는 상체를 일으켰다.

“애처럼 굴지 마, 레이얀. 우리는 이미 끝났어.”

“끝은 네가 낸 거지. 난 헤어지자고 한 적 없어.”

차갑게 대꾸한 레이얀은 나이토에게 재갈을 강제로 물렸다. 안 하겠다고 반항해봤지만, 상체가 결박된 상태에서 배가 눌리니 어쩔 수 없이 입이 벌어졌다. 나이토의 입에 재갈을 물린 레이얀이 나이토의 상체를 끌어당겨 밖으로 끌어내렸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 오가는 사람이 없어 레이얀은 여유롭게 나이토를 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은 밖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깨끗하고 좋았다. 시야는 금세 빙글 돌아, 바닥에 닿았다. 레이얀이 나이토를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간신히 몸을 가리고 있던 담요를 끌어내렸다. 나이토가 다리를 벌리지 않으려 하자, 레이얀이 힘을 줘서 벌렸다. 나이토가 발로 레이얀을 밀었다. 제법 힘이 실린 발에 레이얀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버지는 되면서, 나는 왜 안 되는데? 이해가 안 간다고. 씨발, 뒤로 가게 된 거면 뒤에 박아 주겠다는데…!”

레이얀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나이토의 성기를 꽉 잡았다. 터트릴 것처럼 잡아오는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이토의 저항이 멎자, 레이얀은 나이토의 부은 구멍을 손가락으로 세게 비볐다. 손가락 두 개를 곧장 찔러 넣고 휘젓자 나이토의 입에서 괴로운 신음소리가 나왔다. 나이토의 눈가에서 눈물이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걸, 레이얀은 보았다. 눈을 찡그린 채 우는 나이토의 모습에 레이얀은 이를 악물었다. 머리가 분노로 가열되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애인이 아버지와 섹스한 것도 모자라 사랑한다고 말하며, 자신을 밀어내는 것이.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무심한 척하지만, 실제로 다정다감하게 웃어주던 나이토였다.

“넌 지금 미쳤어.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아버지랑 섹스하겠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내가 돈은 많이 모아놨거든. 치료받을 돈은 충분할 거야.”

레이얀이 나이토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주었다. 재갈이 툭, 소리를 내며 바닥에 뒹굴었다. 입에 고였던 타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헐떡이던 나이토는 레이얀을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러지 마…….”

나이토는 레이얀에게 당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버거웠다. 이건 자신을 구해주는 게 아니었다. 정말 극한까지 몰고 있었다. 정신이 사포로 문댄 것처럼 가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다.

언제 아버지가 찾으러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레이얀의 분노, 광기. 그것들이 하나로 뭉쳐 나이토를 짓눌렀다. 괴로웠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에게 모진 상처를 받는 건 정말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레이얀은 버클을 풀었다. 속옷까지 내리자 발기한 성기가 튕겨 올라왔다. 쿠퍼액으로 번들거리는 귀두가 예민해진 입구에 닿았다. 나이토는 익숙하지만, 전혀 반갑지 않은 느낌에 눈을 감았다. 하지 말라고 해도 레이얀이 강압적으로 할 것 같았다.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울분을 간신히 삼킨 나이토는 눈을 반쯤 뜨고서, 레이얀을 보며 말했다.

“날 왜 구한 거야. 그냥 내버려두지, 왜 구했어.”

나이토의 눈빛이 체념 속에서 매섭게 변하자 레이얀이 성기를 느리게 삽입하며 비웃었다.

“널 사랑했으니까.”

“나는…윽!”

여린 점막을 파헤치며 들어오는 성기에 숨이 멎어갔다. 결코 작지 않은 성기가 내부를 넓히며 들어오는 느낌은 좋지 않았다. 좁은 곳이 채워지는 불쾌한 감각에 나이토는 이마를 바닥에 댔다. 언제 겪어도 삽입의 순간은 즐겁지 않았다. 음모가 느껴질 정도로 깊게 삽입한 레이얀이 나이토의 성기를 잡았다.

“너희 아버지도 이렇게 해줬어? 너한테?”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아버지에게 강제로 당했던 것처럼, 레이얀에게 당하고 있었다. 사랑이 아니라 분노가 기반이 된 섹스라 기분이 좋기는커녕, 암담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이토는 터지려는 울음을 삼키고서 부탁했다.

“제발, 그만해. 제발…레이얀, 제발 이러지 마….”

“네가 잘못했잖아.”

레이얀이 성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쯔걱, 하고 벌어지는 내벽이 아릿했다. 나이토는 입을 다물었다. 나이토가 입에 힘을 주느라 목에 핏줄이 돋아났다. 레이얀은 아버지의 자국으로 범벅이 된 나이토의 목덜미를 살짝 깨물었다. 혀를 내밀어 여린 살을 쪼옥, 쪽 소리 내서 빨았다. 그러고 나서, 나이토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네가 잘못한 거야.”

나이토가 고개를 저었다. 아래에서 서서히 옅어지는 고통과 밀려오는 쾌감 속에서 나이토는 바르작거리며 저항했다.

“아니야…흑, 아, 앗!”

레이얀의 성기가 느릿하게 내부를 빠져나갔다가 천천히 박아 넣었다. 아버지와는 다른 부드러운 진입에 나이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올 듯 말 듯 한 쾌감에 허벅지가 긴장했다.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내벽 조임이 강해졌다. 쾌감으로 내벽이 조였다, 풀리면서 전율하고 있었다. 좀 더, 갈망하고 있지만 말하지 않았다. 레이얀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한테 흥분하는 몸이라니, 너무 더럽잖아.”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가 올라왔다. 레이얀에게 듣는 비수가 가슴을 너무 세게 후벼 팠다.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든 것처럼 아팠다.

나이토는 레이얀의 성기를 받아들인 채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서럽게 흘렸다. 레이얀은 절망적인 나이토의 가슴과 다르게 정직하게 반응하는 나이토의 성기를 잡았다. 허리를 한 손으로 잡고, 힘을 실어 박자 나이토의 입에서 울음과 함께 신음이 터져 나왔다. 눈을 감고, 입을 무력하게 벌린 채 신음을 흘리는 나이토의 모습은 안쓰러우면서, 야릇했다. 나이토가 눈을 떴다. 애절한 흑청색 눈동자가 레이얀을 보고 있었다. 그 눈을 직시하며 레이얀은 또박또박 말했다.

“너희 아버지처럼 해주고 있잖아. 근데 왜 그렇게 싫어해?”

나이토는 끝까지 레이얀을 볼 수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 바닥이 보였다. 바닥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레이얀이 허리를 잡고, 내벽이 새빨갛게 헐 때까지 박아대는 게 느껴졌다. 자신이 레이얀에게 할 때와는 전혀 달랐다. 레이얀이 내부를 탐닉할 동안, 나이토는 레이얀과 함께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옆집에서 해맑게 웃으며 뛰어나오는 레이얀, 먹을 것 가져다주는 레이얀, 즐거워하던 레이얀.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타락시킨 게 자신인 것 같았다. 아버지의 말처럼, 자신이 확실하게 레이얀을 끊어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미련을 두었던 자신의 잘못이었다. 레이얀의 말처럼, 자신이 잘못한 것이었다.

“으읏…흑, 아아…!”

끊어지는 신음소리를 들은 레이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성기를 조이는 내벽은 마음에 들었지만, 마음은 공허했다. 무언가가 부서져 내린 듯 지탱할 수가 없었다. 나이토가 이해되지 않았다. 친아버지에게 험한 짓을 당했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나이토가 정말로 이상해 보였다. 나이토와 대화를 하면서 깨달았다. 나이토는 미친 거라고. 자신이 나이토라면, 어떻게든 아버지를 피해서 도망쳤을 것이다.

레이얀은 나이토의 등에 엎드렸다. 전보다 마르고 유약해진 몸이었다. 몸에서 나는 향도 달라져 있었다.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레이얀이 알던 나이토가 아니었다.

“…이제 그만해.”

나이토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레이얀은 나이토의 말을 무시하고서, 나이토의 머리를 내리눌렀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에, 나이토는 눈을 감았다. 너무 지쳤다.

*

눈을 떴을 때, 몸이 무거웠다. 그곳은 막대기가 계속 꽂혀있는 것처럼 얼얼하고 쓰라렸다. 은밀하게 퍼져가는 통증에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향이 집에서 맡던 거와 확연히 달랐다. 위화감에 고개를 들어 올리자 머리가 핑 돌았다. 어지러웠다. 입안도 버석하게 말랐다. 몸은 오들오들 떨렸다. 자신이 느껴도 그리 좋지 않은 몸 상태였다.

나이토는 후들거리는 팔로 이불을 끌어올렸다. 이불을 덮었지만, 몸이 너무 추웠다. 눈을 감고서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열이 고여 뜨끈한 눈을 뜨자 익숙한 남자가 보였다. 어엿한 청년이 된 레이얀이 손에 트레이를 들고 있었다. 레이얀은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트레이를 테이블에 올려두고서 나이토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레이얀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졌다.

“열이 높아.”

열이 나고 있었구나. 그래서 추웠구나. 나이토는 멍하니 생각했다. 레이얀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이토의 입에 약을 넣어주었다. 목을 받쳐주고 물을 흘려 넣어주자 나이토가 착한 아이처럼 물을 삼켰다. 약과 물을 삼킨 나이토는 눈을 위로 올려 레이얀을 보았다. 레이얀이 침대에 눕혀주자 떨리는 손을 뻗어 레이얀의 소매를 꼭 잡았다. 나이토의 흑청색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미안하다고 하면…수도로 돌아갈래?”

생각지도 못한 말에 레이얀이 입을 다물었다. 레이얀이 말없이 바라보자 다급해졌는지 나이토가 좀 더 레이얀의 소매를 바짝 잡으며 말했다.

“어머니한테 돌아가.”

“너는 아버지한테 갈 거잖아.”

나이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을까. 예전에는 자신이 말하면, 응하고 대답했던 착한 아이였다. 알토처럼 어딘가 뾰족하게 변한 레이얀이 안타까웠다.

“현실을 생각해. 이게 얼마나 갈 수 있을 거 같아? 아버지 아니면 너희 어머니가 우릴 찾으러 올 거야.”

“상관없어.”

“제발, 레이얀. 내 말 좀 들어.”

레이얀은 고집스러운 얼굴로 나이토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열 때문에 붉어진 나이토의 뺨을 어루만졌다. 아버지보다 훨씬 부드럽고 섬세한 손길이었다. 그 손길이 애틋했지만, 나이토는 미련을 거두기로 했다. 나이토는 가차 없이 레이얀의 손을 내렸다.

“우리는….”

레이얀이 나이토의 입을 막았다. 레이얀은 화가 난 듯한 얼굴로 사납게 말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돌아갈 생각 없어. 그러니까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마.”

잠시 말을 멈춘 레이얀은 그다운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우선 자. 일어나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지금은 네가 아프니까.”

자신이 알던 레이얀으로 돌아온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나이토는 힘없는 목소리로 응, 하고 대답하며 눈을 감았다. 약 기운이 금세 돌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는 내내, 건조한 손이 뺨을 만지는 게 느껴졌다. 뺨, 목에서 머물던 손이 내려와 가슴과 등까지 만졌다. 손은 한 지점에 멈췄다. 그곳엔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엘시. 그 이름을 누군가 소리 내서 읽었다. 엘시란 이름은 이 나라에서 그렇게 흔한 이름이 아니었다. 타국의 언어로 붉은빛이 감도는 보라색 보석을 일컫는 단어였다.

레이얀은 나이토의 하얀 등에 선명하게 새겨진 이름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잇새로 내뱉었다.

“이거 지워버릴 거야.”

잠결에도 어깨가 흠칫 놀랄 정도로 매서운 목소리였다. 눈을 떠서, 등을 만지는 상대를 보고 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었으나 눈이 너무 무거웠다. 깨어나려던 의식이 약 기운에 사로잡혀 깊은 수면 아래 잠들었다. 레이얀은 반항하지 않고 잠만 자는 나이토의 뒷모습을 형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붉은 뺨과 땀이 맺혀 있는 가느다랗고 하얀 목이 어여뻐서 절로 손이 갔다. 떨리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거두자, 풍성하고 가지런한 속눈썹이 보였다. 나이토의 입술은 심각한 열 때문에 창백했고, 말라 있었다. 그 입술은 연약하게 달싹거리면서 한 단어를 뱉어냈다.

“…아빠.”

언제나 깍듯하게 아버지라고 부르던 나이토였는데, 아빠라고 부르는 걸 보자 머리가 하얗게 마비되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나이토의 입에서 들리는 아빠는 평범하게 들리지 않았다. 마치 들어서는 안 될 금기를 듣고, 본 기분이었다. 다잡을 수 없는 분노가 저 밑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레이얀은 손을 내려 나이토의 등에 새겨진 문신을 문질렀다. 멍과 상처가 잘 남는 하얀 피부가 금방 붉어졌다.

“미친 새끼….”

레이얀답지 않게 저속한 욕을 말했다. 레이얀은 양손으로 나이토의 엉덩이를 벌렸다. 아직 열상이 남은 구멍이 빠끔거리는 게 보였다. 부어오른 붉은 구멍과 빠끔거리는 내부가 보였다. 주름이 펴졌다가 오므라들고, 그 움직임에 따라 붉은 속살이 보였다가 사라지는 모습에 정신이 뚝, 하고 끊겼다.

초점이 사라진 눈으로, 마치 넣어달라는 듯 움직이는 구멍을 본 레이얀은 바지 버클을 풀었다. 바지를 내리자 발기하지 못한 말랑한 성기가 나왔다. 몇 번 만지자 성기가 발딱 섰다. 침을 모아 손바닥에 뱉은 레이얀은 거칠게 구멍에 문질렀다. 따끔하고 쓰라렸는지 나이토가 눈을 미미하게 움직였다. 나이토는 무슨 일을 당하는지도 모르고 고이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속이 더 비틀렸다.

나이토를 구하기 위해, 갇혀있던 집에서 힘들게 탈출했다. 재산을 급하게 현금으로 바꾸고 유명한 브로커 루샤 보레드외를 고용했다. 죽을 각오를 무릅쓰고 엘시의 저택에 침입해 나이토를 구해 온 건데, 나이토는 지금까지 아버지만 찾고 있었다. 납득할 수 없었다. 자신이 생각한 나이토는, 구해줘서 너무 기쁘다고 말해야 했다. 지금처럼 잠결에 아버지를 찾는 나이토를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사랑해, 레이얀.’

자신을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목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 없는데. 레이얀의 물빛 눈동자가 푸르게 변해, 비 내리는 바다처럼 변했다.

‘네가 수도로 와서 정말 기뻐.’

“나한테 사랑한다고 그랬잖아….”

레이얀은 들리지 않을 절규를 외치며 발기한 성기를 잠든 나이토에게 삽입했다. 풀어주지 않고 푹, 삽입하는 바람에 나이토가 희미한 신음소리를 냈다.

“아…!”

나이토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자신을 잡아달라고 부탁하는 듯한 안타까운 손짓은 시트에 무너져 내렸다. 레이얀이 그 손을 잡고 비튼 것이다. 갑작스럽게 손이 등에 고정되자 나이토는 파르르 떨리는 눈을 떴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아찔한 통증에 속이 불타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예전에 삽입했던 바이브레이터보다 두껍고 긴 것이 안을 엉망으로 헤집고 있었다. 내부가 배려 없이 짓이겨지는 통증에 눈물이 고여 아래로 떨어졌다. 나이토의 입이 벌어졌으나 심각한 통증 때문에 신음도 내뱉지 못했다. 나이토는 남은 손으로 상체를 지탱했다. 젤도, 전희도 없이 시작된 지독한 섹스에 나이토는 흐느껴 울었다.

“너무 아파…아! 아파!”

레이얀이 사정을 봐주지 않고 박아 넣자 나이토가 어깨를 움츠렸다. 아래가 감각이 없어질 것 같았다. 메마른 내부를 쑤걱쑤걱 쑤시는 성기는 자비가 없었다. 이렇게 고통만이 남은 섹스는 오랜만이라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느끼는 지점을 레이얀이 성기로 비벼주었다. 나이토는 시트를 꽉 잡았다.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손등에 새파란 핏줄이 돋아나며 부들부들 떨렸다. 다리를 벌리지 않고, 반듯하게 눕힌 상태에서 삽입을 하는 거라 느끼지 못할 거라 생각했으나 나이토는 안을 찔러주는 성기에 반응하고 있었다. 눈이 하얗게 점멸해갔다. 나이토가 으응, 하고 달콤하게 울자 레이얀이 성기를 더 깊숙하게 박아 넣으며 고개를 숙였다. 레이얀의 체취가 땀에 젖어 물씬 풍겼다. 나이토는 강제로 머리채를 드는 힘에 딸려 올라갔다.

“이렇게 해줘야 느끼는구나.”

“흐으…으읏…아…!”

찌걱, 하고 벌어진 내벽이 다물어지기 전에 레이얀이 빠르게 넣어 그 부근을 문질러줬다. 머리가 멍해졌다. 입이 벌어지며 헐떡이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레이얀이 쾌감에 부들부들 떠는 나이토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긋하게 속삭였다.

“이런 게 좋았으면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그럼 진작 박아줬을 텐데.”

“아아앗!”

레이얀의 성기가 연달아 그곳만 찌르자 전신이 쾌락에 빠졌다. 눕힌 상태에서 박는 게 불편해지자, 레이얀이 나이토의 허리를 강제로 들게 했다. 다리가 벌어지며 튼실한 성기가 좀 더 수월하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레이얀은 허리를 잡고 퍽, 퍽 박으며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피부를 만졌다. 그는 땀으로 젖은 나이토의 등에 배를 바싹 붙였다. 나이토는 고환까지 달라붙을 정도로 깊게 삽입한 레이얀의 성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거 지워줄게. 섹스하면서 그 새끼 이름 보이니까 기분이 더러워.”

“아, 안 돼…! 윽!”

안 된다고 거부하는 나이토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레이얀의 손이 나이토의 유두를 비틀었다. 저릿저릿한 쾌감이 앞섰다. 나이토는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었다. 레이얀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레이얀의 손이 분홍색 유두를 집요하게 만지자 손이 덜덜 떨렸다. 유두가 레이얀의 하얀 손끝에서 붉게 변해갔다.

아버지처럼 세게 빨아줬으면. 멍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랑 할 때만큼 좋지 않았다. 거칠지만 끝에 갈수록 달콤해지고, 부드러워지는 아버지의 손길을 몸과 머리가 원하고 있었다.

“왜 지우면 안 되는데? 설마, 그 새끼가 싫어할까 봐?”

레이얀의 물음에 나이토는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레이얀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레이얀은 나이토의 머리채를 잡고 올렸다. 나이토의 하얀 목이 뒤로 세게 젖혀졌다. 레이얀은 붉어진 얼굴로 헐떡이는 나이토를 노려보며, 그 시선과 대조적으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새끼 생각 안 나게 해줄게.”

머리채를 놓고서, 입구를 만지는 손가락이 느껴졌다. 섬뜩한 기분에 나이토는 뒤를 돌아보았다. 레이얀이 틈새 없이 맞물린 구멍에 손가락을 넣으려는 게 느껴졌다. 나이토는 아픈 몸으로 반항했다. 나이토가 왼손으로 레이얀의 얼굴을 때렸다. 제법 정확하게 들어간 주먹에 레이얀의 상체가 흔들렸다. 나이토는 레이얀이 방심한 사이에 몸을 일으켰다. 성기가 빠지는 느낌이 생생했다. 방금까지 레이얀의 성기가 짓눌렀던 내부 때문에 나이토는 제대로 걷지 못하고,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도망가야 한다. 레이얀은 미쳤다. 어디로든, 레이얀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서 바닥을 손으로 짚고 일어났으나, 저벅저벅 다가온 레이얀이 머리채를 잡고 뒤로 당겨서 그것도 수포로 돌아갔다. 퍽,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침대에 나이토를 던졌다. 평범한 매트리스로 그대로 떨어진 터라 충격이 없진 않았다. 신음을 삼키며 상체를 일으키자, 레이얀이 본능적으로 나이토의 뺨을 후려쳤다. 뺨을 얻어맞은 나이토는 멍한 눈으로 레이얀을 바라보았다. 뺨을 맞은 것이었는데, 머리를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레이얀도 나이토를 때려서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레이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둘은 거친 숨만 헐떡일 뿐, 말이 없었다. 레이얀은 입술이 터져서 피를 흘리는 나이토를 보다가 도망치듯 방을 떠났다. 나이토는 레이얀이 나갔지만,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얼굴로 침대에 우두커니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은밀한 그곳과 함께 하반신이 너무 아파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깨달았다. 뺨보다 가슴이 아팠다. 엄청난 격통이 올라와 가슴을 들쑤셨다. 기도에 돌이 막힌 것처럼 숨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이토는 엉금엉금 기어 베개까지 다가갔다. 베개에 머리를 대자, 그제야 몸의 긴장이 풀렸다. 힘없는 손으로 이불을 끌어와 몸을 덮었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끝나있을까.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을 속으로 바라며 눈을 감았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었다. 이 아픔이 가시면 레이얀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그 생각을 끝으로 나이토는 정신을 놓았다.

나이토가 정신을 잃고 잠든 사이, 레이얀은 소파에 앉아 절망에 찬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자신이 잠든 나이토를 강간했고, 반항하는 나이토를 때리기까지 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뺨을 맞고 멍한 시선으로 자신을 보던 나이토의 얼굴이 환상처럼 계속 둥둥 떠다녔다. 레이얀은 얼굴을 감쌌다. 이럴 거면 왜 구했냐고, 지친 듯 말하는 나이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말이 회오리처럼 머리에 맴돌았다. 그 말은 표창이 되어 레이얀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정말 나이토를 위했다면,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소중하게 안아주고, 달래줬어야 했다.

레이얀은 나이토를 때렸던 손을 물끄러미 보았다. 나이토의 뺨을 때렸던 그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달려가서 미안하다고 매달리고 싶었지만, 방금 전처럼 바삭하게 말라버린 눈빛을 마주할까 봐 두려워 그러지도 못했다.

어느새 그 남자와 비슷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나이토를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나이토의 마음은 신경 쓰지 않았다.

“왜 그러고 있어?”

레이얀은 물음에 고개를 들었다. 붉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이국적인 미남인 루샤 보레드외였다. 고혹적인 눈웃음을 흘린 루샤가 레이얀의 앞에 술과 잔을 내려놓았다. 입고 있던 재킷을 벗은 루샤는 일인용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루샤가 잔에 술을 반 정도 따라 레이얀 앞에 내밀었다. 레이얀이 마시지 않고 묵묵히 잔만 보자, 루샤가 피식 웃었다.

“저기 도련님은 괜찮아? 아까 소리 들어보니까 장난 아니던데.”

“다 들었던 거야?”

레이얀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루샤는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술을 두 번 만에 다 마신 루샤는 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 짓궂게 웃었다.

“여기는 방음이 약한 거 알잖아. 그렇게 함부로 굴렸다가 저 도련님이 마음 변해서 도망가면 어쩌려고 그래?”

“…도망이라.”

레이얀은 서늘한 목소리로 그 단어를 중얼거리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가볍게 술을 홀짝인 레이얀은 루샤를 바라보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루샤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엘시는 어떻게 됐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아.”

루샤가 태연한 어조로 말을 끊었다. 그는 레이얀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증거가 없으면 풀어줘야 하니까. 지금 귀족들이 하나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는 거 보면 엘시도 마찬가지야. 재수 없게 걸린 몇 명의 귀족을 제외하면, 거의 다 무사하게 풀려날 거야. 원래 이 판이 다 그렇잖아.”

루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레이얀도 동감하는 바였다. 지금 잡혀 들어간 귀족들도 감형을 받거나,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이다.

“배는 구해놨어?”

“그럼. 그것보다, 저 도련님도 같이 갈 거래? 너 하는 거 보니까 저쪽 도련님은 갈 생각 없어 보이던데.”

레이얀은 정곡을 찌르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루샤는 입가에 띄웠던 미소를 지웠다. 그는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흉터가 자잘하게 많은 루샤의 손이 잔을 정갈하게 잡았다. 일부러 힘을 뺀 손으로 잔을 느리게 돌린 루샤는 느릿하게 술을 마셨다. 술로 촉촉해진 입가를 닦은 루샤가 입을 열었다.

“협력하지 않는 자를 강제로 데려가는 게 더 힘든 일이야. 나는 위조신분과 배를 마련해줄 뿐이지, 그다음은 네가 다 해야 해. 할 수 있겠어?”

“나이토는 지금 미쳐서 그런 거니까, 나아지면….”

“그럼 요양병원에 넣던가.”

“뭐?”

“멀리 도망가는 것보다 그게 낫지. 어차피 신분은 구해놨으니 돈만 주면 입원시켜주는 병원에 넣으면 찾는데 꽤 시간 걸릴 거야.”

그럴듯한 말에 설렜지만, 레이얀은 고개를 저었다. 감금된 나이토였는데 또다시 자신이 감금시킬 수 없었다. 레이얀이 시무룩한 얼굴로 돌변하자 루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루샤는 미련 없이 미리 만들어 둔 위조여권을 던졌다.

“엘시가 풀려나기 전까지 여길 떠나. 그럼 난 간다. 내가 할 일은 다 끝났으니까.”

“응.”

루샤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그가 해주는 일은 타고 갈 배를 구해주고, 위조여권을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딱 돈 받은 만큼 일을 하고 사라지는 루샤를 깔끔하게 보내준 레이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나서 나이토가 잠든 방을 바라보았다.

정말 나이토가 원하는 대로 같이 수도로 돌아가야 할까. 머리로는 납득이 가지만, 마음이 용납하지 않았다. 나이토를 사랑하는 마음과 더불어 배신감이 올라와 괴로웠다.

“놔줄 수 없어.”

레이얀은 나이토가 잠든 방을 보며 중얼거렸다. 모든 걸 버려서 데려온 나이토였다. 이제 그 자신의 모든 것은 나이토가 되었으니, 더더욱 도망가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나이토를 때린 건 미안했지만, 이로써 확실하게 다짐했다.

나이토를 보내주지 않을 것이고, 도망가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레이얀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루샤가 주고 간 수면제를 보았다. 계속 재운다면,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간단하게 결심한 레이얀은 약을 쥐고 빙그레 웃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인데, 왜 나이토를 때렸을까.

“우선, 미안하다고 사과해볼까.”

레이얀이 닫은 문을 열었다.

*

수도 중앙검찰청 앞은 수많은 기자들로 북적거렸다. 요새 뉴스를 뜨겁게 달군 ‘알라시스 대공 파티 윤간 사건’ 때문에 나라 전체가 마비가 될 정도였다. 소수의 귀족들은 명백한 증거가 있기에 혐의가 인정되어 구속되었으나 다른 이들은 증거가 없어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시체는 이미 화장되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고아로 자라나 엘시의 가게에 취업을 한 고인을 찾는 이는 없었다. 심지어 화장했던 곳에서도 무명으로 처리하여 기록만 남았을 뿐, 누가 데리고 왔는지, 누가 그의 뼛가루를 가지고 갔는지 남아있지 않았다. 참으로 초라한 죽음이었으나 사람들은 그 죽음보다 이 사건에 연관된 귀족들의 몰락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화두에 떠오른 건 알라시스 대공이었다. 엘시 제이제단은 운 좋게도 그의 그늘에 가려져 관심을 덜 가졌다. 물론 그도 기자들의 카메라를 피할 수 없었다. 풀려난 엘시 앞에 기자들이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어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그때마다 엘시 제이제단은 특유의 선량한 미소를 지어 무마했다.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변호사가 알려준 대로, 딱 거기까지만 말한 후 그는 차에 올라탔다. 차가 기자들 때문에 앞으로 가지 못했다. 운전사가 엘시의 눈치를 살폈다. 엘시는 화를 내기는커녕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앞만 보는 그의 옆모습은 작품처럼 수려하고 우아했다.

더군다나 범접할 수 없는 분위가 은은하게 퍼져 나왔다. 그의 분위기에 압도된 운전사는 초조한 얼굴로 운전대를 만졌다. 느린 속도로 전진하자, 기자들이 아쉬운 얼굴로 물러났다. 기자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차는 8차선 도로에 들어갈 수 있었다.

“회장님, 담배 피우시겠습니까?”

엘시의 오래된 친우이자 비서인 일릭 로우든이 담배를 건넸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간 엘시는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이자, 불쾌하던 기분이 흐려졌다. 일릭이 건네주는 휴대용 재떨이를 받았다. 재를 재떨이에 터는데, 일릭이 눈치를 살피는 게 느껴졌다. 엘시는 담배를 입에 물며 부드럽게 웃었다.

“왜 그래, 너답지 않게.”

다정하게 말했지만 일릭의 굳은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비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난 하늘처럼 일릭의 얼굴은 어두웠다. 차가 검찰청 사거리를 벗어나 한적한 곳으로 들어서자 일릭이 입을 열었다.

“너한텐 미안하다고 미리 말할게.”

“무슨 일인데. 설마 나이토가 진짜 임신한 거야?”

엘시의 눈이 반짝였다. 일릭은 잠시 철없는 애를 보는 시선으로 엘시를 바라보았다.

“아니.”

“아, 아쉽네. 임신인 줄 알고 진짜 설렜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엘시. 나이토가 납치됐어.”

엘시의 얼굴에 스며있던 미소가 싹 씻겼다. 엘시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엘시의 변화에 일릭은 마른 침을 삼켰다. 엘시가 폭주할 것이다. 엘시가 아들에게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 일릭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엘시가 조사를 성실히 받으러 가는 사이, 일릭은 나이토의 감시를 서투르게 하지 않았다. 레이얀이 라이사포네 조드릭의 명령에 따라 집에 갇혀있다는 사실에 안심했던 게 화근이었다.

CCTV를 마비시키고 나이토를 데리고 갈 줄, 누가 알았을까. 그 날 경비로 세워두었던 이들도 한 통속이었는지 사라졌다. 텅 빈 침대를 보고, 서둘러 수많은 CCTV를 확인했으나 이미 모든 기록은 지워진 후였다. 아예 작정하고 나이토를 데리고 간 것이었다.

범인은 한 명이었다. 레이얀 조드릭. 조드릭 공작가를 확인해보니, 라이사포네가 막내아들이 사라진 걸 알고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문제는 그녀도 아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분명히 이쪽으로 특화된 이를 고용해서 도망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레이얀은?”

역시나 엘시가 예상한 질문을 했다. 일릭은 침착하게 대꾸했다.

“몰라.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어.”

엘시가 무표정한 얼굴로 창을 응시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엘시는 차분했다. 무릎을 검지로 톡톡 두들기던 그가 유려한 입술을 열었다.

“조드릭 공작가로 간다.”

“뭐?”

“라이사포네를 만나야겠어.”

일릭은 무슨 꿍꿍이냐고, 엘시에게 물으려고 했다. 그러나 엘시는 이미 모든 계획을 세운 듯, 자신만만한 미소를 띄우고서 얘기했다.

“나 혼자 잡으러 가는 게 아니야. 라이사포네 조드릭과 함께 잡으러 가면, 더 쉽게 끝날 거야.”

“조드릭 공작도 알게 돼. 일이 겨우 잘 풀렸는데, 나이토랑 그런 사이인게 밝혀지면….”

“걱정 마. 거기까지 말할 생각은 없으니까.”

일릭의 말을 자르고 깔끔하게 말한 엘시는 좌석에 상체를 댔다. 말은 태평하게 하고 있었으나 속은 화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자신이 조사를 받으러 간 사이에 보란 듯이 아들을 납치해가다니. 엘시는 눈을 감았다. 눈에 그린 듯, 그날의 일이 선명했다.

레이얀이 능글맞게 웃으며 아들의 좆을 만지던 광경이.

엘시가 눈을 뜨며 고요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때 죽였어야 했는데.”

일릭이 엘시를 한심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레이얀은 공작의 막내아들이야. 죽이지 마.”

“실수로 다리는 잘라도 되잖아.”

“공작이 알면 널 죽일 거야.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나이토 때문에 일을 망칠 거야? 정신 차려. 아무리 친아들하고 하는 게 좋아도 그렇지, 자작이 되는 일까지 망치면 안 돼.”

일릭답게 현실적으로 엘시를 다그쳤다. 일릭은 처음부터 엘시가 나이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어차피 자신의 일이 아니니 상관할 생각은 없었다. 나이토는 엘시와 자신이 함께 걸어가는 길을 망치지만 않으면 됐다. 오히려 엘시가 화를 낼 때나, 신경질을 낼 때 그걸 받아주니 나이토가 있는 편이 더 좋았다.

엘시가 자작이 되고, 그 후에 일릭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면 나이토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다만, 나이토가 이 일을 망치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레이얀 조드릭은 내버려둬. 네 아들만 챙겨.”

“알고는 있는데, 과연 그렇게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엘시가 드디어 소리 내어 웃었다. 멀리서부터 조드릭 공작가가 보였다. 대대로 물려온 부를 자랑하는 조드릭 공작가는 부촌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었다. 숲으로 둘러싸인 성이 보였다. 수도에서 두 번째로 큰 성을 보며 엘시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 새끼 좆을 잘라버려야겠어.”

일릭이 결국 화를 냈다.

“엘시!”

“좆 하나 없다고 죽는 건 아니잖아. 그 새끼는 뒤로 대주는 걸 더 좋아하는 놈이니까, 좆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거야.”

가볍게 고함을 무시한 엘시가 재킷 단추를 잠갔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다정한 아버지로 변장했다. 불과 몇 초만 해도 ‘죽이고 싶다, 다리를 잘라야겠다, 이제는 좆을 잘라야겠다.’고 살벌하게 말하던 남자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말끔한 얼굴이었다. 검은 머리가 이마를 덮고 있었지만, 그 덕분에 분위기가 순해져서 그럴듯했다. 자색 눈동자가 어느새 투명한 구슬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38살 남자다운 연륜으로 치장한 엘시는 턱을 괴고 화사하게 웃었다.

“그럼, 조드릭 공작님께 가보자고.”

햇살이 일직선으로 쭉 뻗어 고성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흔히 볼 수 없는 나뭇가지와 이파리에 걸리는 햇빛은 싸늘한 겨울에 어울리지 않게 벨벳처럼 부드럽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어느덧 성큼 다가온 겨울바람에 엘시는 코트 자락을 여미며 뒤로 물러났다. 선조 때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부를 확장시켜온 조드릭 공작가답게 사소한 것들도 하나같이 기품이 넘쳤다. 엘시는 가죽장갑을 낀 손을 뻗어 문에 장식된 장식을 만졌다. 조드릭 공작가를 상징하는 백사가 포효하고 있었다. 빛을 그대로 흡수해 푸른빛으로 일렁거리는 눈은 사파이어였다. 불순물 없이 푸르게 빛나는 사파이어는 상당한 가치가 있어 보였다. 입술을 매끄럽게 비튼 엘시는 문이 열리자, 손을 가지런히 허벅지에 붙였다.

고성까지 들어오는데 차로 20분을 달려야 했고, 조드릭 공작을 만나기 위해서 이 거대한 철옹성 같은 문 앞에서 5분을 기다려야 했다. 조드릭 공작이 병상에 드러누웠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때 동안 공작답게 자신을 치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엘시는 몇 번 만났던 라이사포네 조드릭의 얼굴을 머릿속에 덧그리며 홀로 들어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광이 나는 엘시의 구두가 바닥에 닿자, 집사를 시작으로 뒤에 선 수많은 시종들이 허리를 구십 도로 꺾어 인사했다. 엘시는 수없이 연습한,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집사는 앳된 얼굴의 여자였다. 짙은 밤색 머리를 동그랗게 말고, 수수한 화장을 한 그녀는 입술에 로봇 같은 웃음을 머금었다. 이곳 고성과 어울리지 않는 말끔한 분위기가 묻어나왔다. 아마 그녀가 입고 있는 정장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것과 다르게 그녀는 간편한 원 버튼 재킷에 카라가 없는 하얀색 드레스 셔츠, 무릎이 드러난 치마를 입고 있었다. 웬만한 모델 뺨치게 쭉 뻗은 다리가 매우 매력적이었다. 엘시는 허벅지에서 펄럭거리는 긴 기장의 코트를 벗었다. 그러자 그녀 뒤에 있던 사람이 예의 바르게 다가와 코트를 받았다. 장갑까지 벗어 천연덕스럽게 건넨 엘시는 느릿하게 입술을 열었다.

“공작께서는?”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고성답게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없어서 오로지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 게 짜증이 났다. 이동할 때마다 몇십 분은 소모해야 하는 고성은 참으로 실용성이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귀족들이 고성을 재산으로만 두는 경우가 허다한데, 조드릭 공작은 꿋꿋하게 고성에서 살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 응접실에 도착했다. 응접실 중앙에는 날렵하게 쭉 뻗은 테이블이, 테이블 가장 위쪽에는 장식이 없는 드레스를 입은 레이얀 공작이 있었다.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모피로 만든 케이프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엘시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병색이 완연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속으로 조소를 터트렸으나, 겉으로는 결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엘시는 그녀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이런 시간에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공작님. 하지만 제 아들과 공작님의 아드님이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레이얀의 행방을 아시나요?”

황금을 녹여 만든 것 같은 금발을 하나로 묶은 탓일까. 라이사포네 조드릭이 소녀 같이 느껴졌다. 팔목을 잡은 손은 평균 여자들보다 작아서 더 약하게 느껴졌다. 라이사포네의 커다란 물빛 눈동자가 걱정과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엘시는 말없이 측은한 얼굴로 공작을 응시했다. 자색 눈 안에 고이는 감정을 읽은 것인지, 라이사포네가 좀 더 엘시에게 바짝 붙었다. 엘시는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잡아주지 않으면, 라이사포네가 쓰러질 것 같았다.

“말해줘요. 그대는 내 아들이 행방을 알고 있나요? 그 아이가 사라진 지 벌써 삼 일이 흘렀어요.”

“저도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엘시는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안겨올 것처럼 달라붙은 라이사포네의 뺨을 후려치고, 목을 졸라서, 내 아들이자 연인을 네 아들이 데려갔다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꾹 눌러 참았다. 사실 엘시에게 그녀의 힘은 필요 없었다. 줄곧 공작으로 살아온 그녀보다 자신이 더 확실하고 빠른 방법을 아니까. 다만, 자신이 그녀를 찾아온 이유는 하나였다. 그녀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서였다.

라이사포네는 엘시에게 너무 가깝게 달라붙은 걸 뒤늦게 알아채고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창백한 뺨 위에 미약한 홍조가 떠올랐다. 엘시는 눈을 살포시 접어 웃어 보였다. 그가 이렇게 눈을 빤히 쳐다보고, 눈웃음을 지어줄 때면 사람들은 금세 호감으로 변해 입을 따박따박 잘 열곤 했다. 그녀의 반응을 보자 그녀도 마음을 쉽게 열 것 같았다.

“아, 미안해요. 앉아요.”

“예.”

엘시는 시종이 뒤로 당겨준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시종이 타임에 딱 맞춰서 의자를 테이블 쪽으로 밀어주었다.

“무엇을 드릴까요? 말씀만 하세요.”

“아, 저는 따뜻한 물 한 잔이면 괜찮습니다.”

라이사포네가 뒤에서 대기하던 집사에게 물 한 잔과 커피를 내오라고 말했다. 집사가 고개를 꾸벅이더니 응접실에서 사라졌다. 집사까지 사라지고 나서, 넓은 응접실에는 라이사포네와 엘시만 남았다. 머리가 아픈지 라이사포네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나른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그대가 알고 있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요. 내가 알고 있는 건, 그 아이가 브로커를 고용했다는 사실이에요. 이쪽 방면으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이름은 루샤 보르드외고, 나이는 32세. 하지만 레이얀도, 그 남자도 얼굴 변장을 했는지 얼굴이 제대로 안 나왔어요. 마지막으로 둘이 만난 장소는 전문 청소 업체 회사였어요. 내가 알아낸 건 이 정도예요. 지금은 사람을 풀어서 찾고 있고요. 왜 레이얀이 브로커를 만나고, 청소 업체에 들어가 변장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큰아들인 아이작은 성폭행 혐의에 휩쓸려 검찰에 끌려갔고, 막내아들인 레이얀은 행방불명이다. 더군다나 막내아들이 게이고, 전 애인이 헤어지자는 말에 화가 나 납치해갔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쓰러지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웃음과 함께 그 말을 안으로 삼켰다. 엘시는 곧바로 나온 따뜻한 물 한 잔을 꼭 쥐었다. 이럴 때는 고심하는 척 고개를 숙여줘야 한다. 앞머리가 흘러내려 엘시의 눈가를 살짝 가렸다. 그 덕분에 눈가에 음영이 드리워 마치 고뇌하는 사내처럼 보였다. 엘시가 머뭇거리는 행동을 보이자 라이사포네가 채근했다.

“어서 말해줘요. 레이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죠?”

“…레이얀과 나이토가 꽤 오래 사귀었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변검을 하듯 얼굴 표정을 바꾼 엘시가 물었다. 엘시의 물음을 이해한 듯 보이지만, 믿을 수 없다는 듯 라이사포네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녀는 한참 뒤에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에 손을 대고 있었다.

“그렇군요.”

“저도 최근에 알았습니다.”

애석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이야기한 엘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의 비밀을 듣고 놀란 아버지처럼 연기하던 엘시는 눈을 들어 올려 그녀를 빤히 보았다. 눈이 굳건하게 빛나고 있었다. 흑단 같은 새카만 검은 머리카락이 앞머리를 덮고 있어서 그런지, 공작이 바라보는 엘시는 사연이 있는 남자처럼 처연하게 느껴졌다. 상처 입은 짐승처럼 눈에는 슬픔도 가득 고였다. 그 눈이 씁쓸한 감정을 띨 때는 가슴이 일렁거렸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공작님께 큰 폐를 끼치겠지만….”

“전 괜찮습니다. 이미 한 번 데여 보니,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 알고서 대응하는 게 더 낫더군요.”

아이작 조드릭을 언급하는 공작을 보며 엘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속에서는 쾌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계획에 차근차근 걸려들고 있었다.

“저는 나이토에게 말했습니다. 레이얀과 사귀는 건, 이제 이쯤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요. 레이얀은 공작의 아들이고, 장차 큰일을 한 사람인데 괜한 추문을 만드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공작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나라가 동성애에 차별을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호의가 있는 나라도 아니니까요. 특히 높으신 분들에게는 민감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물론 귀족들 중에서도 동성애자가 있었다. 다만, 그들은 대놓고 즐기지 않았다.

이 나라가 고대일 때, 동성 연인 때문에 나라를 멸망시킬 뻔한 왕의 말로 때문에 더더욱 귀족들은 동성애를 금단의 구역처럼 여겼다. 그것은 라이사포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 동의를 해주는 척하며, 그녀를 위해 이런 일을 했다는 걸 은근히 내비치며 엘시가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나이토가 그 사실을 알고 타인의 명의로 휴대전화까지 만들어 레이얀과 도망가려 하더군요. 그 사실을 알고, 저는 아들을 제집에 가두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정신병원에 둘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전 안심을 했습니다. 아들을 잠시 가둬두고, 그곳에서 설득을 시키면 나아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나이토도 조금이나마 저에게 마음을 열고 있었기에 더욱 믿고 있었죠.”

여기서 일부러 말을 멈춘 엘시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상태에서 엘시는 입술 끝을 올려 웃었다. 연기에 빠져드는 그녀가 너무 웃겼다. 힘들게 미소를 지운 엘시는 손바닥을 내린 후 그녀를 보았다. 엘시의 눈가에 붉은 기운이 감돌자, 라이사포네는 자기도 모르게 망토 자락을 꽉 잡았다. 아마 그녀도 눈치챘을 것이다. 레이얀이 나이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도망에 실패한 연인을 구하기 위해서 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엘시는 눈을 아래로 깔고서 잔을 잡았다. 물로 입안을 살짝 적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잠겨서 나왔다. 마치 눈물을 참은 것처럼 말이다.

“아내가 죽고 나서 아들과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저한테 비밀로 하고 레이얀에게 기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때 전 알았죠. 이제부터라도 아버지의 역할을 해야겠다고. 그렇게 결심하고 나이토에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몸으로 최선을 다했다. 남자를 모르던 몸이 남자를 알게 되고, 만져주기만 해도 반응을 해왔다. 하얀 몸이 열기를 띠고 들썩이는 걸 상상하자 사타구니가 아파왔다. 그 예쁜 흑청색 눈에 눈물을 머금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얼마나 요염하던지. 그 지점을 비벼주면 좋아서 초점이 멀어진다.

아들을 훔쳐가다니. 가만둘 수 없다. 만나기만 하면, 반쯤 죽여 놓으리라. 음습한 마음을 삼키며 혀로 아랫입술을 핥았다. 그 모습을 본 라이사포네는 얼굴을 살짝 붉히고는 헛기침을 했다. 성직자처럼 경건하게 느껴지는 남자가 혀로 입술을 핥는 걸 보자 기분이 오묘하게 움직였다.

“나이토도 그걸 알아준 거죠. 제가 미안해하는걸. 그런데 갑자기 레이얀이 저택에 찾아와 제 아들을…….”

그날을 떠올린 엘시는 입가를 비틀었다. 경건하던 분위기가 물 씻기듯 사라지고 소름 끼칠 정도로 매서운 미소가 입가에 감돌았다. 엘시의 눈이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레이얀과 똑같은 물빛 눈동자가 경직된 게 보였다.

“강간하려 했습니다.”

“네?”

“제 경호원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아이작 님과 같은 절차는 레이얀이 밟았을 겁니다. 하지만 전 공작님을 위해서, 그리고 레이얀의 미래와 제 아들을 위해서 모든 걸 함구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제가 검찰에 가자마자 제 아들을 납치해갔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강간했을지도…….”

놀란 라이사포네가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정말 사실인가요?”

“증거를 원하신다면 드리겠습니다.”

확언에 라이사포네가 눈을 감았다. 그녀는 거친 호흡을 힘겹게 달래고 있었다. 엘시는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고만 있었다.

“레이얀이 나이토를 납치했다는 증거가……있나요?”

“아직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이토와 레이얀의 사이를 추측했을 때, 충분히 레이얀에게 혐의가 있습니다. 이대로 경찰에 가서 아들에 대해…….”

“경찰이요?”

라이사포네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높아졌다. 그녀는 현재 아이작의 일로 고통받고 있다. 큰아들에 이어서 범죄 의혹이 다분한 아들이 경찰에 신고된다면, 그녀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라이사포네는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어루만졌다. 자신이 보았던 당당하고 우아하던 라이사포네 조드릭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엘시 앞에 있는 건, 아들 일로 정신이 나간 어머니였다. 또한, 조드릭 가의 위엄이 망가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엘시는 라이사포네 쪽으로 상체를 숙였다. 조각처럼 느껴지는 엘시의 얼굴이 다가오자 라이사포네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이작 님은 그렇게 되셨지만, 레이얀은 지키실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공작님.”

“전 믿을 수가 없어요. 레이얀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니…레이얀은 그럴 애가 아닌데…착한 아이에요, 레이얀은….”

“부모라고 해서 자식 일은 다 아는 게 아니더군요. 저도 제 아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라이사포네가 숨을 멈추었다. 그녀는 고민에 빠진 듯 보였다. 거짓으로 밀어붙이기엔 엘시의 태도가 너무나 명확했고, 진실로 받아들이기엔 그녀의 마음이 지금 너무 지쳐있었다. 검찰에 끌려가며 절규하던 아이작의 울음이 생생하게 들렸다.

아들을 지켜야 한다. 엘시의 말처럼 레이얀마저 잃을 수 없었다. 이것이 거짓이라면, 엘시는 귀족 능멸 죄로 형을 살게 된다. 그가 거짓으로 능멸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도 이 일을 크게 부풀릴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자작이 되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자이니, 어설프게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엘시의 말대로 모두의 미래를 위해선 그와 협력하는 게 필요했다.

“나이토를 찾는 데 주력해주세요. 하지만 레이얀의 이름은 되도록 언급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공작님을 위해서 당연히 그렇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엘시가 부드럽게 웃었다.

“전 나이토를 찾을 생각이었습니다.”

“찾다가 레이얀을 발견하면 나에게 데려오세요. 레이얀은 제가 맡을 테니.”

“만약 레이얀이 또 도망가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레이얀이 총을 들고 있어서… 혹여나.”

엘시가 공작의 아들이라 곤란하다는 태도로 중얼거렸다. 라이사포네는 묵묵히 자신의 찻잔을 보았다. 그녀는 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씩 나눠서 마셨다.

“지금 중요한 건, 어떻게 잡아오느냐가 아니라 빨리 잡아오는 것이니…….”

말을 멈춘 라이사포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포박으로 안 되는 상황이라면, 수단을 가리지 말고 생포해주시길 바랍니다.”

“조금 다쳐도 괜찮다는 말씀이십니까?”

엘시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고민하던 라이사포네가 입을 열었다.

“심하게는 안 돼요. 그 아이는, 제 아들이니까요.”

그녀가 허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녀는 검은 물 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느리게 바라보았다. 손가락으로 잔을 건드리자, 수면이 일그러지며 라이사포테의 얼굴도 엉망으로 변했다. 검찰에 끌려가면서 울던 아이작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아이작이 집행유예를 받는다 해도, 그녀는 아이작을 얌전히 둘 생각이 없었다. 아들은 정신병원에서 평생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레이얀은 정신병원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망가진 건, 아이작이면 충분해요.”

말을 깔끔하게 맺은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지친 얼굴을 했지만, 그녀는 어느새 이성을 차린 듯 아까보다 냉정했다. 엘시가 보았던 공작의 고고한 면모가 뚜렷했다. 그녀는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상체를 숙여 엘시를 보았다. 엘시는 붓으로 그린 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엘시의 미소에 그녀도 마주 웃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흡사 연인처럼 보이는 자세였으나 두 사람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증거는 나한테 보내요.”

“공작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엘시는 공작의 자그마한 손을 들어 올렸다. 밀랍처럼 창백한 손등에 천천히 엘시의 입술이 닿았다. 그 상태로 엘시는 눈을 들어 올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강렬한 자색 눈동자를 보는 것뿐인데 가슴이 뛰었다.

잘생긴 외모를 떠나서, 그는 매우 매혹적인 남자였다. 어째서 수도의 귀부인들과 귀족들이 그의 존재에 열광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저에게 또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공작님의 분부대로 이행하겠습니다.”

그렇게 덧붙인 엘시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정중하게 공작에게 인사했다.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시가 사라지는 걸 끝까지 확인한 라이사포네는 비서를 불렀다. 그가 다가오자마자, 라이사포네는 케이프를 건네주며 차갑게 말했다.

“루샤 보르드외를 추적하면서 저자도 추적해.”

“예.”

숨을 삼킨 라이사포네는 미간을 찌푸리며 덧붙였다.

“레이얀 유학 준비해.”

*

조드릭 공작과 만남을 마친 엘시는 곧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오자마자 그는 눌러 참았던 화를 폭발적으로 터트렸다. 그의 사무실은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버렸다. 그때, 나이토가 엘시를 찌르고 도망갔을 때보다 엘시는 더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평정심을 잃은 엘시는 손에서 피가 날 때까지 모든 물건을 때려 부수었다. 와장창, 하는 소리가 멎어갈 때가 되어서야 일릭은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자, 일릭을 가장 먼저 반긴 건 특별히 제작해 맞춘 조각상이었다. 조각상이 다 깨져서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엘시가 개인적으로 후원해주는 화가의 그림도 찢겨 있었다. 엘시의 머릿속처럼 사무실은 혼란 그 자체였다.

일릭은 피가 흐르는 손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엘시에게 다가갔다. 엘시의 입에 물린 담배를 빼냈다. 엘시가 눈을 들어 올려 일릭을 보았다. 팔짱을 낀 일릭이 입을 열었다.

“애들은 다 모아놨어. 이제 어떻게 해.”

“전기톱 준비해.”

“뭐?”

엘시가 품에서 새로운 담배를 꺼내며 피식 웃었다. 그는 담배 필터를 질겅질겅 물고서, 불을 붙였다. 여유롭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인 엘시가, 피로 흥건한 손으로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의 하얀 얼굴에 피가 묻었다.

“전기톱 준비하라고.”

“…정말 자를 거야?”

“생각 중이야.”

태연하게 대답한 엘시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일릭이 건네는 손수건으로 다친 손을 감쌌다. 그래도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도자기를 깨다가 찢어진 것 같았다. 밀려오는 통증에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 보인 엘시는 소리 내서 웃었다.

“나도 지금 미쳐서 뭘 할지 모르겠어.”

“나이토만 데려오면 되는 거잖아. 레이얀은 건드리지 마.”

일릭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엘시는 그런 일릭을 냉소를 머금을 얼굴로 바라보며 짤막하게 말했다.

“넌 입 다물고 내가 말한 대로 실행해. 헬기 띄워.”

종종 출장 갈 때 쓰던 헬기를 언급하자, 일릭이 눈을 가늘게 떴다.

“레이얀 위치를 안 거야?”

“아니. 다른 사람.”

“누군데.”

답을 요구하는 엘리아에게 엘시는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루샤 보드레외. 공작이 찾아냈어.”

손수건을 더 세게 동여맸다. 엘시는 한숨을 내쉬며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래서 애들은 귀찮아.”

*

레이얀은 나이토가 시체처럼 잠든 침대 앞에 우두커니 섰다. 땀에 젖은 메마른 검은 머리카락이 해초와 비슷한 형태로 하얀 시트에 흐트러져 있었다. 드러난 피부는 생크림처럼 하얗고 달콤해 보였다. 최근에 새긴 흔적으로 물든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얇은 피부에 감기는 근육이 매력적이었다. 검지를 좀 더 아래로 내리자 튀어나온 날갯죽지가 느껴졌다. 나이토가 신경 써서 관리한 몸은 전보다 못하지만, 여전히 근육들이 생동감 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필시 감금의 여파로 몸이 약해진 것이리라. 나이토의 아버지에게 유일하게 고마운 점은 이것이었다. 나이토가 몸이 약해져서 제대로 반항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감금당하기 전 나이토였다면, 오히려 레이얀이 당했을 것이다.

입가에 비틀린 미소를 띤 레이얀은 나이토의 엉덩이를 슬며시 잡았다. 슬쩍 벌리자 퉁퉁 부은 구멍과 희뿌옇게 말라붙은 정액, 사타구니 사이에 얼룩덜룩하게 남은 멍 자국이 보였다. 참혹한 광경이었으나 레이얀은 황홀한 얼굴로 마른 침을 삼켰다. 쫀득하게 성기를 조이는 저 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우는 나이토의 목을 잡아 누르고,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을 제멋대로 짓이기고 싶었다. 냉기가 감돌던 얼굴이 쾌락으로 붉게 달아오르고, 눈가가 일그러지며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또 보고 싶었다.

레이얀은 생명줄처럼 꽉 쥐고 있던 수면제를 내려놓았다. 나이토의 엉덩이를 벌렸다. 좀 더 다리를 벌리게 하고, 드러난 구멍을 매만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레이얀은 나이토가 눈을 뜨는 것을 보지 못했다. 완전히 정신을 차린 나이토는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서 일어나지 않는 레이얀을 슬그머니 바라보았다. 나이토는 붓고 내상을 입은 구멍을 벌리는 손가락을 애써 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이는 건, 침대 옆에 마련된 스탠드였다. 나이토는 긴 팔을 느리게 쭉 뻗었다. 스탠드를 잡은 나이토는 거침없이 레이얀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유리 깨지는 소리가 레이얀의 머리에서 사방으로 퍼졌다.

“어?”

레이얀이 멍청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햇빛보다 찬란하던 금발에 피가 후드득 맺혔다. 피가 레이얀의 하얀 얼굴을 가르며 시트로 툭, 툭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자 가슴이 시려 왔으나 이미 자신은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자신이 레이얀을 망친 장본인이라면, 아예 악역이 되어 레이얀을 떨어지게 만들 작정이었다.

그것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어디로 가든 찾아올 테니, 자신은 흔적을 남겨주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레이얀은 수도에 있는 공작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이토는 황급히 침대에서 굴러 내려왔다. 몸이 욱신거렸지만, 레이얀이 움직이지 못할 때 밖으로 나가야 했다. 나이토는 바닥에 손을 짚고 일어났다. 잠깐 뒤를 둘러보자 레이얀이 피 흘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있는 힘, 없는 힘을 쥐어짜서 머리를 내리친 탓에 레이얀은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이토는 레이얀을 두고 방 밖으로 나왔다. 몸이 후들후들거렸다. 금방이라도 바닥에 쓰러질 것 같았다. 나이토는 무릎에 손을 대고 허리를 세웠다. 레이얀이 무식하게 성기를 박아댄 터라 허리에 힘을 주는 게 너무 힘들었다. 소파까지 절뚝거리며 다가간 나이토는 테이블 위에 굴러다니는 휴대전화를 보았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구식 휴대전화였다. 폴더를 올린 나이토는 잠금 화면을 보고 마른 침을 삼켰다. 비밀번호 4자리를 누르라고 떠 있었다.

나이토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자신과 레이얀이 쓰던 번호를 눌렀다. 자신의 생일과 레이얀의 생일을 조합해 만든 번호였다.

설마 했는데, 번호를 누르자 잠금이 풀렸다. 가슴과 손끝, 머리가 싸해졌다. 자신에게 머리를 얻어맞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레이얀이 떠올랐으나 나이토의 손은 이성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나이토의 손은 진작 아버지의 번호를 누르고, 통화까지 누른 상태였다. 단조로운 발신음이 들렸다.

그리고 그토록 듣고 싶었던 다정하고 부드러운 아버지의 목소리가 자신의 귀를 건드렸다.

[나이토.]

달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등 뒤가 싸하게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마치 올가미에 잡힌 듯한 기분에 주먹을 꽉 쥐고 간신히 말했다.

“빨리 와.”

딱 거기까지 얘기한 나이토는 뒤에서 다가오는 레이얀의 붉은 손을 피했다. 휴대전화를 소파에 던진 나이토는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고 섰다. 베개 커버를 머리에 댄 레이얀이 기이한 얼굴로 히죽 웃었다. 붉은 피가 머리와 얼굴, 목을 적셔 섬뜩했다. 아버지를 칼로 찔렀을 때와 비슷한 서늘한 감각이 몸을 짓눌렀다. 나이토는 비틀거리는 다리로 뒤로 물러났다. 벽이 닿았다. 도망갈 곳이 없었다.

“내가 그렇게 싫어?”

피범벅이 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묻는 게 무서웠다.

“…이게 우리를 위한 일이야, 레이얀.”

그러나 레이얀이 나이토의 말을 무시하고서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왔다. 나이토는 소파를 잡고 옆으로 이동했다. 아버지에게 전화했으니, 아버지가 위치를 파악했을 것이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자신이 버틴다면 레이얀도 무사히 돌아가지 않을까. 약간의 낙관적인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모르겠어? 너랑 내가 도망간다 해도, 언젠가 잡혀. 둘이 도망간다 해서 행복해질 거 같아? 빈민가에 살아봐서 알잖아. 가난한 자의 말로는 끔찍해. 난…더 이상 어린 시절처럼 굶고 싶지 않아. 그건 너도 그렇잖아.”

이럴 때 알토가 고마웠다. 알토가 아니었으면, 이런 말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레이얀을 설득하려 했지만, 레이얀은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말했지. 난 돌아갈 생각 없다고.”

레이얀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이토가 피하려 했지만, 이성을 놓은 레이얀의 매서운 손길을 피하기엔 너무 느렸다. 레이얀의 손이 나이토의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던졌다. 딱딱한 바닥에 상체가 닿자마자, 레이얀의 발이 나이토의 옆구리를 서슴없이 걷어찼다. 엄청난 격통이 배에서 시작되어 몸을 뒤덮었다. 기침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 아프고, 아파서 몸이 비틀렸다.

레이얀이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발로 나이토의 옆구리를 찼다. 뼈가 부서질 것 같은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이토가 괴로움에 눈물을 터트리자 레이얀은 듣기 싫다는 듯, 나이토의 턱을 발로 공 차듯 때렸다. 연신 얻어맞은 나이토는 얼얼함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이토가 눈을 떴을 때, 자신은 코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나이토가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어 일어나려 하니, 레이얀이 발로 나이토의 머리를 눌렀다.

“흑…!”

나이토가 마침내 울었다. 거친 숨을 내뱉은 레이얀이 나이토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두피가 뜯어질 것 같은 고통에 나이토가 팔을 버둥거렸다. 레이얀은 반항을 멈추지 않는 나이토를 소파에 내던졌다. 소파에 거칠게 내던져진 나이토가 상체를 웅크렸다. 코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려 나이토의 하얀 나신을 적셨다.

“그 새끼한테 보낼 바에 내가 죽이고 말지.”

서슬 퍼런 눈으로 중얼거린 레이얀은 방으로 들어갔다. 나이토는 도망가기 위해 소파에서 내려와 힘겹게 기어갔다. 그러나 곧바로 다가온 레이얀에게 잡혀, 팔이 비틀렸다. 어깨에서 뿌득하며 뼈가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깨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통증이 올라왔다. 나이토가 소리를 내뱉지 못하고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레이얀에게 맞은 배, 옆구리, 턱, 머리에서 고통이 밀려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레이얀은 나이토의 팔을 등 뒤로 결박하고, 다리도 단단하게 묶었다. 벌리지 않으려는 입을 억지로 벌려, 입안에 수면제를 넣었다. 물을 강제로 들이붓고 틀어막자 나이토가 발을 몸을 들썩거렸다. 나이토가 삼킨 걸 보고 나서야 레이얀이 손을 놔주었다. 나이토가 막혔던 숨을 터트렸다. 가슴과 눈, 코가 쓰라리면서 아릿했다. 통증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이토는 늘어진 몸을 일으켜 질질 끌고 가는 레이얀에게 애절하게 말했다.

“제발, 레이얀…왜 이러는 거야. 너 이런 애가 아니었잖아.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레이얀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차고로 향했다. 레이얀의 눈은 판결을 내린 판사처럼 견고했다. 그는 나이토를 뒷좌석에 태웠다. 운전석에 올라탄 레이얀은 시동을 걸고, 차고를 벗어났다. 그는 아직 정신을 잃지 않는 나이토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방금 전까지 무지막지한 힘으로 나이토를 패던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량한 미소였다.

“우리 같이 죽자. 그러면 공평하잖아.”

“뭐?”

놀란 나이토가 반사적으로 외쳤다. 그러지 말라고 말하려는데, 레이얀이 엑셀을 밟아 속도를 높였다. 결박된 몸이 이리저리 움직여 차에 부딪혔다.

“네가 나랑 죽으면 그 새끼가 얼마나 슬퍼할까.”

“레이얀!”

“걱정 마. 너랑 나, 같이 죽을 테니까.”

공포에 몸이 오들오들 떨려왔다. 레이얀은 결심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하지 말라는 건, 알겠다고 인정하며 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레이얀은 나이토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슨 말을 해야 레이얀이 이 광기를 멈출까. 레이얀에게 돌아간다고 하면, 레이얀이 순순히 수도로 돌아갈까.

혹은 아버지가 자신을 찾으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나이토는 자신이 너무나 무력하다는 것을 느끼고, 참담함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점차 의식이 흐려지는 게 느껴졌다. 레이얀이 먹인 수면제가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대로 가면 레이얀과 죽고 말 것이다.

나이토는 눈에 힘을 줘서 창밖을 보았다. 매서운 추위와 달리 하늘은 너무 푸르고 아름다워 눈이 시렸다. 나이토는 하늘에 멍하니 시선을 고정한 채, 자꾸만 가물거리는 눈을 감았다. 아버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레이얀이 먹인 약 때문에 기다림이 점점 힘들어졌다. 나이토는 고개를 틀어 미친 듯이 엑셀을 밟는 레이얀을 보았다. 피가 묻어 거칠어진 금발을 탁한 눈으로 본 나이토는 입을 달싹거렸다.

“…해.”

‘미안해.’

그러나 중얼거림은 거센 차 소리에 묻혀 닿지 않았다.

레이얀은 인적이 드문 도시에 들렀다. 그는 나이토의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서 차 밖으로 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모든 걸 다 판다고 걸려있는 잡동사니 가게였다. 레이얀은 밧줄과 날렵한 휴대용 칼, 톱을 구매했다. 그다음 레이얀이 향한 곳은 나이토가 좋아하는 스테이크 가게였다. 어린 시절부터 같이 TV를 보면 스테이크 광고가 나왔다. 그러면 나이토와 알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먹고 싶으나 먹고 싶다고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말해도 먹지 못할 걸 아니, 나이토는 속으로 단념하고 말았다.

나이토는 어린 시절부터 강해 보여도 내면은 젤리처럼 말랑하고 연약했다. 조금만 화를 내도 무서워했고, 약간의 애정에도 기뻐서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현실에 적응하려고 무던히 노력하던 아이였다. 가난과 배고픔이 나이토에게 현실에서 체념하는 법을 알려준 것이다.

‘난 배고픈 게 제일 싫어. 어른이 되면,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살 거야.’

나이토가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레이얀의 어깨에 기대 부질없는 희망을 속삭였다. 조금 더 성장했을 때,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되면서 나이토는 다른 희망을 마음에 품었다. 굶주림이 해결된 나이토는 레이얀의 등에 이마를 기대고서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빠가 날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너한테 하는 거 보면, 사랑하시는 거 같아. 단지, 방법이 조금….’

바람 난 애인 잡는 것 같지만. 뒷말을 삼킨 레이얀은 나이토를 안아주었다. 나이토는 레이얀의 등에 흐느적거리는 웃음을 터트린 후에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아빠를…….’

나이도 기억나지 않는, 아득히 멀어져 버린 기억을 떠올린 레이얀은 거칠게 핸들을 내리쳤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애정을 갈구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거친 손길에 화를 냈지만, 간혹 아버지가 선물을 건네주거나 칭찬을 해주면 좋아서 해맑게 웃었다. 아이다운 반응이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법이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해서, 이 비틀어진 관계를 받아들인 것이다. 미친 짓이었다. 어떻게 친아버지와 친아들이 섹스를 할 수 있을까. 천벌을 받아도 변명하지 못할 죄였다. 나이토는 미쳤다. 그의 아버지가 미쳐서, 그런 아버지 밑에서 크다 보니까 나이토가 정신을 놓은 것이다.

레이얀의 마음에서는 집착의 싹이 터 올랐다. 나이토를 그자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다. 죽더라도 옆에 묶어두고 싶었다. 그 욕구가 실현이 된 건, 나이토가 자신의 머리를 서슴없이 내리쳤을 때였다. 나이토는 진심으로 레이얀에게 벗어나 아버지라는 작자에게 가려고 했다.

죽여야 한다. 나이토의 시체 또한 그 남자에게 줄 수 없다. 사체를 처리하기 위한 도구를 철물점에서 구매해 트렁크에 실었다. 그들이 태어났던 빈민가로 돌아가 나이토를 죽이고, 시체를 처리하고, 자신도 그 자리에서 죽으면 끝이었다. 나이토의 흔적을 찾아 헤맬 아버지를 생각하니 속에서 쾌감이 밀려올라 왔다. 나이토에게 집착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과 나이토를 미치게 만든 엘시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인지 레이얀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차는 거침없이 도로를 달렸다.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차는 한 대였다. 휴게소도, 주유소도 없는 허허벌판을 가로질렀다.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이 검게 물들어가는 걸 보았다. 이제 곧 밤아 올 것이다. 나이토와 레이얀이 살아 숨 쉬는 마지막 밤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분노로 들끓던 가슴이 편안해졌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그들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자가 헷갈리도록 휴대전화는 다른 자의 집에 던져놓고 왔다. 루샤가 만들어준 타인 명의 휴대전화는 총 두 대였다. 그 두 개를 모두 분산시켜 놓았으니 아버지는 이상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그 새끼가 미쳐서 날뛰는 걸 봤어야 하는데. 아쉬움에 혀를 찼다. 코너에서 핸들을 천천히 돌렸다. 엑셀에서 발을 떼고 속도를 줄이는데, 사이드미러에 차 한 대가 보였다. 중산층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국내산 세단이었다. 처음에 레이얀은 관심 없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 세단이 속도를 높여 옆으로 다가왔을 때, 레이얀은 일이 이상하게 되어간다는 것을 느꼈다. 나란히 달려오던 세단의 창문이 열렸다. 권총이 창문 틈새로 나와 레이얀을 겨냥했다. 그것을 빠르게 본 레이얀은 속도를 좀 더 내 앞으로 달려갔다. 레이얀이 속도를 내자, 세단이 질 새라 뒤따라 왔다. 부으응, 하고 달려오는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사이드미러를 힐끔 보니 뒤에 한 대가 더 붙어있었다.

“씨발!”

도대체 언제 온 거지? 레이얀은 초조함에 이를 악물었다. 나이토가 전화한 시점부터 수도에서 달려왔다고 하더라도 무리였다. 그곳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이렇게 빨리 올 수가 없었다. 미리 이 위치를 알고 따라 나온 것이라면 몰라도.

순간적으로 레이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자가 있었다. 루샤. 위치를 아는 자는 루샤뿐이었다. 혹시 그 남자가 루샤를 알고서, 루샤를 협박해 위치를 알아낸 게 아닐까?

“씨발, 루샤 이 좆 같은 새끼가!”

레이얀은 직감적으로 확신했다. 루샤가 배신한 것이다. 폭력을 휘둘렀든, 그자가 돈을 써서 루샤를 매수했든, 어쨌든 루샤가 레이얀을 버리고 그 작자에게 모든 걸 알려준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 수도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이렇게 빨리 올 수 없었다.

지금 레이얀을 추적하는 차는 두 대였다. 따돌릴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분기점이 나타난다. 빈민 도시로 진입하느냐, 혹은 쭉 달려 다른 도시로 이동하느냐. 고민하던 레이얀은 분기점이 나오자 핸들을 돌렸다. 속도를 줄이다가, 일직선 도로가 나오자 속력을 냈다. 세단 두 대가 역시나 붕어 똥처럼 따라왔다.

하지만 레이얀은 빈민가에서 10년을 자라온 사람이었다. 이곳 지리는 레이얀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레이얀은 침착하게 속력을 내면서 빈민가로 유명한 도시로 들어섰다. 그러는 사이 차가 한 대 더 늘어났다.

빌어먹을. 잇새로 욕을 내뱉은 레이얀은 4차선 도로로 진입했다. 뒤에 한 대, 그리고 옆에 두 대가 붙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레이얀은 신호도 받지 않고, 가드레일이 사라지는 부근에서 불법 유턴을 시도했다. 빠른 속도로 유턴을 시도했다. 뒤따라오던 차와 옆에 붙어있던 차가 충돌했다. 쾅, 하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그래도 남은 한 대는 꾸준히 레이얀을 따라오고 있었다. 레이얀은 도로가 정비되지 않은 곳으로 차를 끌고 갔다. 이리저리 골목으로 위협적으로 달리자 뒤따라오던 차가 지쳐 하는 게 보였다.

“멍청한 새끼들.”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차가 없었다. 이 골목은 워낙 악명 높은 곳이라, 잘 아는 자가 아니면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저 차도 마찬가지였다. 구불구불한 미로 같은 골목을 벗어난 레이얀은 한가롭게 도로로 들어섰다.

그 순간이었다. 레이얀의 옆으로 차가 들이닥쳤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뒤에서도 차가 달려들었다. 쾅, 쾅! 묵직한 쇠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조용한 도시에 괴성처럼 울렸다. 그러나 굳이 나와서 확인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처음에 박힌 차 때문에 레이얀은 핸들에 머리를 박고 잠깐 의식을 잃었다. 나이토에게 얻어맞은 부위에서 피가 질질 흘러 핸들을 적셨다. 레이얀이 피로 흠뻑 젖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권총이 보였다. 서늘한 금속이 이마에 닿는 게 느껴졌다.

레이얀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이마에 총을 갖다 댄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을 확인한 레이얀의 눈은 충격으로 부릅떠졌다.

“이제 가셔야 합니다, 도련님.”

총을 들이댄 이는 다름 아닌 어머니가 수족처럼 부리는 드욘이었다. 레이얀은 하나둘 맞아 들어가는 퍼즐에 부르르 떨리는 손을 쥐었다. 그의 손은 옆으로 슬금슬금 움직여 숨겨둔 휴대용 칼을 찾고 싶었다. 군대에서 20년을 넘게 지내온 드욘은 레이얀의 어설픈 움직임을 알아채고, 미련 없이 주먹으로 레이얀의 머리를 내리쳤다.

레이얀은 의식을 잃기 전, 드욘의 날렵한 손이 다가와 멱살을 잡는 걸 보았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

수도에 보송보송한 첫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루샤 보드레외가 운영하는 흥신소에 앳된 청년이 찾아왔다. 결이 가늘고 부드러운 머리를 왁스로 고정한 청년은 우아하고 고아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신화 속 천사처럼 아름다운 얼굴과 그가 걸치고 있는 고급스러운 옷 때문일까. 그는 범접하기 힘든 분위기를 내뿜으며 루샤 보드레외에게 돈다발을 던졌다.

돈을 어림잡아 보아도 루샤가 벌어들이는 5달 치 돈보다 웃돌았다. 루샤는 두툼한 돈 봉투를 손으로 훑으며 느긋하게 말했다.

‘뭘 원하시나요, 도련님.’

도련님이라는 칭호가 기분 나빴는지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흘러내린 한 가닥의 머리카락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위조 신분증 두 개, 타인 명의로 된 휴대전화 2대, 포에서 잠시 머무를 집과 떠날 배가 필요해.’

‘성공 보수는?’

‘성공만 하면 이거에 두 배를 주겠다. 어때, 할 수 있겠어?’

루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답을 들은 청년은 마음이 조금 놓였는지, 슬며시 풀어진 얼굴로 다른 본론을 꺼냈다.

‘네가 해줘야 할 일이 또 있어. 그건 바로…….’

“내 집에 들어와서 내 아들을 납치해갈 생각을 하다니 정말 기특해. 기특한 사람한테는 상을 주는 게 마땅한 일이지.”

흐릿한 기억을 헤집은 것은 매우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아나운서 같은 발음에 어울리는 우아한 말투가 참으로 듣기 좋았다. 어머니가 예전에 자신의 머리를 허벅지에 놓고, 동화책을 읽어주는 듯한 안락함이 들 정도였다.

루샤는 서서히 밀려오는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머리가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루샤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덕이자, 목소리의 주인은 소리 내서 웃었다. 뒤이어 위이이잉, 하고 위협적인 엔진 소리가 들렸다. 루샤는 귀를 거슬리게 하는 소리에 미간을 찡그렸다. 위잉, 윙하는 소리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루샤는 결국 비틀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드디어 정신을 차렸네? 상이 기다려졌나 봐.”

위잉, 거리던 소리의 정체는 전기톱이었다. 매섭게 돌아가는 소리에 루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전기톱이 위협적으로 지척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다리를 자를 것처럼 보였다. 루샤는 머리를 굴려 이 상황을 파악했다. 흑발에 자색 눈동자를 소유한 미남자. 정장으로 가려졌지만 격투기 선수 못지않게 단단한 근육을 자랑하는 저 남자가 바로 엘시 제이제단이었다. 매춘과 마약으로 수도에서 자리를 잡고, 엄청난 장사수완으로 확장해 자작이라는 자리까지 노리고 있는 남자. 그를 본 루샤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아드님을 찾으시는 거라면, 제가 돕겠습니다. 뭐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

엘시가 유쾌한 이야기를 듣는 사람처럼 눈웃음을 곱게 지어 보였다. 루샤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서 말을 이었다.

“제가 도와드릴 테니 전기톱은 꺼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겁이 많아서요.”

흥신소를 운영하는 사람이 겁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자, 웃겼는지 엘시가 듣기 좋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는 뒤에서 전기톱을 가지고 대기하는 부하에게 손짓했다. 부하가 엘시의 손짓에 따라 전기톱을 껐다. 안심이 된 루샤는 후우, 하고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의자에 꼼짝없이 묶인 몸이 아팠다. 루샤가 손을 꿈틀거리자 엘시가 다가와 포박된 그의 몸을 풀어주었다. 루샤는 엘시에게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합니다.”하고 말했다. 생각보다 고분고분하게 나오는 루샤의 태도가 엘시는 마음에 들었는지, 피식 웃었다. 얼굴에 감도는 미소는 만개한 장미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레이얀과 아드님은 포에 계십니다.”

“주소는?”

“아, 주소는 제가 기억하고 있으니 적어드리겠습니다.”

엘시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루샤는 엘시의 휴대전화에 레이얀과 나이토가 머무는 집의 주소를 적어주었다. 주소를 확인한 엘시는 곧바로 뒤의 부하에게 말했다.

“헬기 준비해.”

“예.”

“그리고 이 자는…뭘 원해?”

엘시가 고개를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짙은 향수 냄새에 후각이 마비될 것 같았다. 향수 냄새는 계속 짙어져 고뇌로 돌아가는 머리도 마비시킬 듯했다. 루샤는 의자에 깊숙이 앉은 상태에서 손가락을 꼬았다.

사실 이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엘시가 무서워서 어쩔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난데없이 쇠파이프가 날아와 몸을 구타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두들겨 팼다. 이러다 불구가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무자비한 폭력에 루샤는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떴을 땐 전기톱이 협박하고 있었다. 아픈 게 싫어서 병원에 가서 주사도 못 맞는 루샤에게 이런 고문은 너무 잔혹한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루샤는 맞지 않기 위해 열심히 몸을 단련해서 남들을 패고 다녔다. 흥신소 생활 몇년만에 제대로 얻어터진 루샤는 겁을 엄청 먹었다.

그는 구타와 전기톱에 굴복해, 단번에 레이얀을 팔아먹었다.

“전 그냥 무사히 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아. 시간을 단축했으니 그 정도는 해주지.”

엘시가 말을 깔끔하게 맺었다. 그러다가 엘시는 눈을 갸름하게 뜨고서 루샤의 앞에 바짝 다가왔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엘시가 다가오자 위압감에 루샤가 딸꾹질을 했다. 그는 연약한 심장을 부여잡고 울 것 같은 얼굴로 오들오들 떨었다.

“왜, 왜요?”

“내 아들이랑 나랑 무슨 사이인 줄 알고 있어?”

루샤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네, 네, 알죠. 사, 사, 사랑하는 사이죠. 천생연분이시죠. 그러니 절대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인데, 제가 밖에 나가서 떠들겠습니까?”

“조금만 때리면 다 나불거리는데 어떻게 믿지.”

엘시가 고민하는 얼굴로 루샤를 바라보았다. 루샤는 닭똥 같은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엘시에게 매달렸다.

“아닙니다, 제이제단 님!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네가 제일 무서운데 누구한테 얘기하겠냐. 그 말이 목 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루샤는 삼키고 엘시 앞에서 순한 양이 되어 빌었다. 엘시는 오줌이라도 쌀 것처럼 몸을 떠는 루샤에게서 질색하며 떨어졌다. 아들이 아닌 자에게 더 이상의 관용은 사치였다. 엘시는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꽂고서 문으로 걸어갔다. 대기하던 부하가 그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열린 문으로 새카만 어둠이 밀려들어 왔다. 그 어둠을 등 진 엘시는 여전히 겁에 질려 떠는 루샤를 보며 말했다.

“목숨 아까우면 입 관리 잘해. 어디 가서 떠들면, 그 즉시 잘라버릴 테니까.”

“예, 예! 당연하죠!”

간신처럼 비굴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엘시는 입꼬리를 매끄럽게 올렸다. 공작의 일부터 시작해서, 루샤까지 모든 일이 순순히 풀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들을 어서 데려가라는 신의 뜻인 것 같았다. 운명조차 인정하는 사랑이라니. 얼마나 달콤한가.

엘시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중얼거리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대기하는 헬기가 보였다. 엘시는 부하가 건네주는 모직 코트를 걸치며 당당히 앞으로 걸어갔다. 전화가 울리지 않았다면 엘시는 헬기에 즉각 탔겠지만, 전화가 그를 다급하게 막았다. 엘시는 휴대전화에 뜬 영문 모를 번호에 눈을 반짝였다. 느낌이 굉장히 산뜻하고 좋았다. 엘시는 올라왔던 계단으로 내려가 옥상 문을 닫았다.

[아버지.]

울음이 배인 목소리가 애절하게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가슴이 따끔하게 아팠다. 처음 들어보는 아들의 가느다란 목소리에 엘시는 숨이 멎는다는 걸, 경험했다. 아들은 울고 있었다. 슬픔을 억누르는 목소리에 겨우 아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나이토.”

[빨리 와.]

나이토가 기다리고 있었다.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아버지를 잃은 아이처럼 애처롭게 떨렸다. 엘시는 아스라이 사라질 것 같은 목소리에 눈을 감았다. 가슴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처음 느껴보는 통증에 엘시는 눈을 감았다. 아들을 볼 때 느꼈던 설렘, 쾌감, 슬픔, 분노, 희열. 자신이 아들에게 모든 것을 준 것처럼 아들도 자신에게 모든 걸 주고 있었다. 자신이 주는 사랑에 버거워 헐떡이던 아들이, 이제 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하고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시는 감았던 눈을 서서히 뜨고서 올라왔던 계단을 빠르게 올라갔다. 그는 모직 코트의 단추를 여미며 성큼성큼 어둠을 가로질렀다.

*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수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자신에게 거센 폭풍처럼 달려들었던 아버지의 사랑이 두려웠다. 그곳에 침식되면 자신마저 잃을 것 같았다. 사회에서 배워왔던 통념이 산산조각 나 심장을 찔렀다. 감히 아버지에게 발정하느냐고 다른 이들이 손가락질할 것 같았다. 그래, 자신은 두려웠던 거였다.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

그래서 수없이 묻고서, 스스로 도망칠 구멍을 만들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사랑할 용기가 없었고,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모든 걸 떠넘기고 회피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사랑했다.

아버지를 어루만져줄 때마다 아버지는 좋아서 활짝 웃었다. 소년 같은 그 미소가 자신의 가슴을 온통 엉망으로 만들었다. 눈이 마주쳤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면 아버지가 해맑게 웃었다. 그 미소가 눈부셔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신을 향한 애정으로 물든 자색 눈이 웃을 때면 묘한 감각에 부르르 떨었다.

그가 자신을 다정하게 만져주는 손길이 좋았다. 정말 사랑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젠 그의 손이 다가오지 않으면 애가 탔다. 그래서 참을 수 없을 때면,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손을 뻗어 아버지를 부둥켜안았다. 그러면 아버지도 흥분해서 꼭 안아주었다. 넓고 탄탄한 품에 안길 때면 안락함이 들어서 눈을 뜰 수 없었다.

아버지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을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잘근잘근 물어올 때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로지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세상에, 서 있었다. 나이토는 레이얀의 곁에 짧게 머무는 사이 많은 걸 깨달았다. 자신을 미치게 만들었던 혼란도, 괴로움도. 인정하고 나니 혼란과 괴로움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증발되었다. 고통의 흔적은 아버지가 만들어준 상처처럼 남았다. 죄의 낙인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그걸 자각하기도 싫었다. 아버지의 존재가 이제 그런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크게 다가왔으니까. 그가 주는 쾌락이 좋았고, 온기가 따스해서 중독되었고, 그의 손이 스칠 때면 가슴이 저릿했다.

아버지. 나이토는 무의식중에 그를 부르며 감겼던 눈을 떴다. 잠자리 날개처럼 허공에서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이 열렸을 때, 나이토 앞에는 삭막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은 창문이 없는 밀실이었다. 나이토는 밀실 구석에 위치한 일인용 소파에 곱게 앉혀져 있었다. 짙은 회색빛 모직 코트를 입은 아버지는 레이얀의 머리를 발로 짓누르며 고고하게 서 있었다. 아버지의 발밑에 눌린 레이얀의 몸은 피투성이였다. 아버지의 반질반질하던 가죽구두가 붉게 변한 걸 보니, 아버지가 레이얀을 구타한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작정한 사람처럼 밀실에 투박한 경호원들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무심한 표정을 본 나이토는 인상을 쓰며 상체를 일으켰다. 레이얀에게 두들겨 맞았던 몸이 심각하게 아팠다. 뼈가 엇나가는 소리가 들렸던 어깨는 여전히 뻐근했다. 의자에 기대앉은 나이토는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는 아버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실을 자각한 나이토가 입을 슬며시 열었다.

“레이얀은 공작 아들이야.”

“괜찮아, 허락받았으니까.”

나이토는 태연한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마에 손을 댔다. 가장 원하지 않던 상황이 펼쳐졌다. 레이얀과 아버지를 위해서, 레이얀을 수도로 곱게 돌려보내려 했는데. 자신이 아버지에게 전화할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심각한 레이얀의 상태에 나이토는 머뭇거렸다. 레이얀에게 미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를 보면 아직 마음이 애틋하고, 미안했다. 한때 열렬하게 사랑했던 연인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비록 끝으로 갈수록 파멸로 치닫는 관계였지만, 지금도 나이토는 레이얀이 수도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살았으면 했다.

나이토는 우울한 눈으로 레이얀을 보았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시선을 눈치채고서, 레이얀의 턱에 구두를 대고 들어 올렸다.

레이얀이 희미한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본래 레이얀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퉁퉁 부은 얼굴에 나이토는 기겁했다. 얼마나 애를 두들겨 팬 건지, 피범벅이었다.

나이토는 초조하게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나이토가 눈을 뜰 때까지 기다린 것 같았다.

그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대충 알아챈 나이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다 낫지 않은 몸으로 비틀거리며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아버지를 지그시 올려다본 나이토는 두 손을 뻗어 아버지의 얼굴을 감쌌다. 아버지의 얼굴을 자신 쪽으로 당기자 아버지가 순수한 소년처럼 이끌려 왔다. 나이토는 멍한 시선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잘생기고 아름다운 얼굴이다. 그런 뻔한 수식어로 부족한 얼굴이다. 신이 정성껏 빚어 만든 것 같은 얼굴에 나이토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나이토는 그의 입술에 처음으로 스스로 다가갔다. 아버지의 보드라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이 닿았다. 고개를 틀어 아버지의 입술 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아버지의 도톰한 아랫입술을 빨아들이고, 이로 살짝 물어주자 아버지가 허리를 붙잡고 꽉 당겼다.

“흐응…읏.”

아버지가 게걸스럽게 자신의 입안을 탐했다. 혀가 밖으로 나와 서로 얽혔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었지만, 그럴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아버지의 키스는 끝내주게 좋았다. 뇌가 녹아 사라질 것 같은 강렬한 키스였다. 자신의 입술을 빨고, 혀를 옭아매는 힘에 나이토는 아버지의 코트 자락을 붙잡았다. 아버지가 주는 쾌락이 키스를 통해 아래로 뻗어 나갔다. 나이토는 움찔 떨며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았다.

더, 세게. 아버지의 입술에 맞닿은 상태에서 나이토가 헐떡거리며 중얼거렸다. 나이토의 요구를 들은 아버지의 입술 끝이 위로 당겨 올라갔다. 아버지는 나이토와 키스를 하며 더욱 밀착했다. 손을 아래로 내려 성기를 만져주자 나이토의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초점이 서서히 뭉개지는 게 아버지를 기다리는 듯했다. 아버지는 완전히 길들여진 아들의 변화에 미소를 짙게 덧그렸다.

그는 참을성 있는 어른이었다. 바라던 바를 성취하기 위해, 아들에게서 일부러 입술을 떼 내었다. 타액으로 흥건하게 젖은 아들의 입술을 닦아주며, 아버지는 아들의 귀에 대고 말했다.

“레이얀에게 알려줘.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아냐, 레이얀은 알고 있어.”

나이토가 흥분이 다 가라앉지 않은 얼굴로 매달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매정했다. 아버지는 나이토가 입고 있는 얇은 셔츠를 들어 올려 맨살을 만지며 은밀하게 말했다.

“아는 것과 보는 건 다르지. 내가 말했잖아. 확실하게 떼어놓으라고.”

나이토의 눈에 선명한 상처가 생겼지만 아버지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꽉 안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그때처럼 하면 돼. 쉽잖아.”

아버지의 눈은 엄숙했다.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처럼, 한 치의 관용도 없었다. 나이토는 입술을 질끈 물었다. 나이토의 시선은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는 레이얀을 보았다.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게, 부러진 것 같았다. 아버지가 부러뜨린 것일까. 기이한 모양으로 꺾인 두 다리는 제대로 치료받지 않으면 위험할 것이다. 레이얀을 살리고, 아버지도 달래서 수도로 가야 했다.

머릿속에 오직 그 생각이었다. 풀어낼 수 없다면, 얽히고설킨 관계를 끊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나이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버지는 마른 손바닥에서 버석거리며 부딪히는 머리카락의 감촉이 음미하며 속삭이듯 말했다.

“팔도 부러뜨려줄까.”

나이토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던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나이토는 눈을 뜬 레이얀과 눈이 마주쳤다. 물빛 눈동자가 예전처럼 말갛지 않다. 안개가 낀 것처럼 탁하고 흐리멍덩했다. 나이토는 레이얀에게 닿을 수 없는 고백을 삼켰다.

미안해, 레이얀. 너에게 이런 상처를 줘서 미안해.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어.

나이토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몇 번 보았던 이들이었다. 아버지의 사람들이었다. 처음엔 키샨, 알토, 그리고…다른 사람들 앞에서 안겨야 했던 기억을 떠올리던 나이토는 수치심에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아버지는 달래주지 않았다. 그는, 나이토의 결정을 기다리는 듯 냉정하게 서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보았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부드러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이제 결정할 때였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계속 미룬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미 뿌리부터 지독하게 얽혀버렸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코트를 벗겼다. 그가 입고 있는 재킷을 느리게 벗겨냈다. 그의 넥타이를 풀었다. 나이토가 아버지 옷을 벗기는 사이, 눈치 빠른 부하들이 다가와 레이얀을 깨우고 의자에 고정시켰다. 레이얀은 다리가 부러진 고통에 재갈을 물고서 울부짖었다. 입고 있는 셔츠가 다 붉어질 정도로 심하게 구타를 당했는데도 레이얀은 꿋꿋하게 정면을 보았다. 아버지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은 나이토가 보였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바지 버클을 풀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 머뭇거렸다. 여기에 머무는 약 20명 가량의 사람들이 신경 쓰이는 듯 했다. 창백한 볼을 붉힌 나이토가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가라고 하면 안 돼요, 아버지?”

나이토가 착한 아들처럼 존댓말로 부탁했다. 엘시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이토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네 몸을 보여주는 건 싫지만, 레이얀이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 걱정 마. 저들은 보고도 모를 테니까.”

애초에 레이얀은 다리가 부러져 도망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레이얀 앞에서 섹스하는 걸 강요하고 있었다.

배려가 없는 아버지의 말에 나이토는 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버지의 성기를 애무해야 했다. 물론 거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찰나의 순간, 고민했으나 나이토는 아버지의 벨트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딱 달라붙은 드로즈가 보였다. 나이토는 마른 침을 삼키며 아버지의 드로즈를 내렸다. 아직 발기하지 않은 성기가 보였다. 발기하지 않아도 무시무시한 크기였다.

나이토는 조신하게 무릎 꿇고 앉아서, 눈을 감고 아버지의 성기를 삼켰다. 축축한 점막이 말랑한 성기를 감싸는 감각에 아버지는 눈가를 찌푸렸다. 눈을 가늘게 뜬 나이토가 입을 더 벌려 아버지의 성기를 반이나 삼켰다. 웬만한 매춘부들도 삼키지 못할 크기를 나이토는 습관이 된 듯 차근차근 삼켜서 애무했다. 사탕을 빨 듯이 뿌리를 잡고 고개를 움직여 핥았다. 정말 맛있게 빠는 것처럼 추웁, 춥, 하고 젖은 소리가 조용한 밀실에 울렸다.

힘을 줘 입으로 조이자 아버지의 입 새가 벌어지며 신음이 흘러나왔다. 성기가 빠르게 발기했다. 입안에서 부피를 키워가는 성기 때문에 점차 숨을 쉬는 게 힘들어졌으나 인내했다. 괴로움에 붉어진 눈가에 눈물이 고여 떨어졌다. 나이토는 잠깐 고개를 빼내서 심호흡을 했다. 오랜만에 하는 펠라라 그런지 턱과 입안이 얼얼하게 아팠다.

“팔, 부러뜨릴까?”

나이토가 쉬자 아버지가 머리채를 잡으며 웃으며 말했다. 나이토는 고개를 저으며 아버지의 귀두를 덥석 물었다. 쿠퍼 액과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귀두를 오물오물 물고서 혀를 내밀어 요도를 쓸었다. 핏줄이 생생하게 혓바닥에 느껴졌다. 나이토는 혀를 움직여 묵직하고 탄탄한 기둥을 샅샅이 핥았다. 용기를 내어 목구멍에 가득 찰 정도로 아버지의 성기를 삼켰다. 목젖을 찔러와 아팠다. 눈가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버지는 머리채를 잡고서 기특하다는 듯 웃었다. 커다란 손이 뒤통수를 잡고 바짝 당겼다. 더 들어올 수 없다고 느꼈는데, 성기가 가득 들어와 숨통을 막았다. 나이토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흰자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는 도중에 느끼는지, 나이토가 “흐응, 응….”하며 신음했다. 이제 입으로도 느끼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아버지가 목젖에 성기를 바짝 갖다 대고서 정액을 방출했다. 비릿한 정액이 입안에 고였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성기를 문 상태에서 정액을 꿀꺽 삼켰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정액을 삼키는 나이토의 태도에 아버지는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레이얀이 의자에 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 상황이 참을 수 없다는 듯, 눈동자가 경악과 공포로 확장되어 있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처럼 레이얀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레이얀을 등지고 서서, 아버지의 상체를 안았다. 아버지가 포옹에 정신을 차리고, 나이토를 내려다보았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뺨에 손을 갖다 대었다. 나이토의 하얗고 부드러운 손이 닿자 아버지의 눈에서 불씨가 탁 붙었다.

나이토는 떨리는 시선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훑더니, 손가락으로 아버지의 입술을 매만졌다. 나이토가 아버지의 셔츠 단추를 풀며 야릇하게 말했다.

“아버지만 생각나게 해주세요.”

아버지의 손이 허리에서 내려와 엉덩이를 잡았다.

“어떻게?”

“넣어줘요. 아무것도 생각 안 나게.”

아버지의 입술이 나이토의 입술을 거의 물어뜯었다. 나이토가 따끔하고 아릿한 통증에 애달프게 울며 어깨를 떨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넓은 어깨를 부둥켜 잡았다. 무언가를 잡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어깨에 매달려 울었다.

아버지의 키스가 너무 좋아서, 주변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건 아버지와 자신뿐인 것처럼 느껴졌다. 피가 흐를 정도로 나이토의 입술을 거칠게 탐한 아버지가 나이토를 레이얀 쪽을 향해 엎드리게 했다. 아버지가 나이토의 바지와 속옷을 단숨에 벗겼다. 숙달된 장인처럼 나이토의 옷을 벗긴 아버지는 타액으로 축축하게 젖은 성기를 구멍에 대고 문질렀다. 발갛게 부은 구멍이 레이얀의 흔적을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아버지는 빠끔거리는 구멍에 귀두를 넣었다. 천천히 넣었지만, 풀어주지 않고 넣어서 그런지 나이토가 어깨를 움츠렸다. 아픈지 손톱을 세워 바닥을 긁기에 팔을 모아 등 뒤에 고정시켰다. 그래도 성기는 착실하게 붉은 내벽을 가르고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 내벽이 얼얼하게 아파 왔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저 새끼랑 했어, 나이토?”

“으, 으…아파…!”

나이토가 고개를 숙이고서 바들바들 떨었다. 아버지는 여유로운 손을 뻗어 나이토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눈 떠.”

“하윽!”

아버지가 성기를 단숨에 박아 넣으며 차갑게 말했다. 나이토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떴다. 나이토의 닫혔던 입술이 벌어져 신음이 쏟아졌다.

“흐응, 읏……아빠, 거기…! 읏!”

“나이토, 어서 말해. 저 새끼랑 했어?”

“으응…아니, 레이얀이…흑, 마, 맘대로…아아!”

음모와 고환이 닿을 정도로 깊게 박아 넣고 허리를 움직이자 나이토가 예감된 쾌락에 헐떡였다. 묻는 말에 착하게 대답했다.

나이토는 머리가 마비될 정도로 세게 오는 오르가즘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흉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두텁고 긴 성기가 내벽을 험하게 짓이기는데 그곳을 문질러주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이토가 쾌감을 참지 못하고 몸을 비틀며 울 때마다 꽂히는 시선과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 흥분을 참지 못하고 바닥을 두들기는 구두 소리가 들렸지만 나이토는 참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레이얀이 텅 빈 눈으로 자신을 보고 체념 속으로 빠져드는데도 나이토는 아버지를 원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성기가 그곳을 찌를 때마다 번개가 머리에서 내리쳤다. 온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허벅지는 쾌감으로 덜덜 떨렸다. 성기는 만져주지 않아도 벌떡 일어서서 꺼덕거리고 있었다. 나이토는 바닥에 뺨을 대고 울었다. 허리를 잡아주지 않고 박아대는 터라 몸이 쓸리는데 그 탓에 성기가 무자비하게 움직이는 것 같아 쾌락이 더 밀려왔다. 내부 점막이 아버지의 성기에 따라 딸려가는 게 느껴졌다. 메마른 내부가 쓸려서 아팠다. 귀두가 다 빠져나갈 정도로 빼낸 아버지가, 구멍에 대고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넣었다.

“아아아!”

나이토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그걸 보던 한 남자는 못 참겠다고 중얼거렸다. 하얀 몸을 붉게 물들이고, 엉망이 된 얼굴로 우는 나이토는 포르노에 나오는 사람들보다 야했다. 검은 머리가 땀에 젖어 뺨에 달라붙었고, 그 사이로 드러난 피부는 붉고 하얬다. 안 그래도 붉은 입술이 더더욱 붉어져 요염하게 느껴졌다. 신음을 내뱉거나 숨을 들이마실 때 움직이는 목젖은 애틋함을 선사했다. 오르가즘에 전율하는 등은 조각상처럼 아름다웠다.

유독 길고, 날씬한 다리가 달싹거릴 때면 박고 싶다는 충동이 20명의 사람들의 머리를 지배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몸에서 성기를 빠르게 빼냈다. 나이토를 허벅지에 앉히고, 성기를 다시 삽입했다. 부푼 입구를 헤집는 무자비한 성기에 입술이 벌어져 타액이 뚝뚝 흘렀다.

아래에서 내부를 가로지르는 성기의 사나운 움직임에 나이토의 몸이 굳었다. 아팠는지 눈가를 일그러뜨리고 울었다. 아버지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이토는 유일한 안식처인 아버지의 목을 부둥켜안고 헐떡였다. 레이얀은 하얗고 동그란 엉덩이 안으로 사라지는 거대하고 흉흉한 성기를 선명하게 봐야 했다. 무지막지하게 큰 성기가 좁은 구멍을 벌리고 들어가고 나오는 건, 이 방에 있는 모두에게 선정적인 광경이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엉덩이를 잡아 벌리고 구멍에 박아대는 성기 때문에 참기가 힘들었다. 분명히 괴로워야 하는데, 성기가 찌를 때마다 주는 쾌감이 너무 좋아서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어떻게 하지, 저 새끼. 죽이고 싶은데. 네가 말해봐, 나이토.”

성기가 그곳을 예민하게 비볐다. 나이토는 쾌감에 몸부림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이토는 그 질문을 들었지만, 쾌감에 달궈진 머리로 마땅한 답을 할 수 없었다. 대신 나이토는 아버지가 그토록 듣고 싶어 했던 말을 내뱉었다.

“으응…사랑해…흐으…!”

사랑한다는 소리에 아버지의 성기가 멈칫했다. 나이토는 감질거리는 쾌감에 멍한 눈으로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몸에서 성기를 빼내고, 나이토를 반듯하게 눕혔다. 거친 바닥에 눕혀져 나이토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서 성기를 구멍에 댔다. 구멍이 빠끔거리며 어서 넣어달라고 움직였다. 나이토의 성기와 유두도 빨기 좋게 일어나 있었다. 아버지는 손안에 다 들어오는 성기를 능숙하게 매만졌다. 연한 분홍색의 성기가 진하게 변한 지 오래였다. 핏, 핏하고 정액이 튀어 올라 아버지의 얼굴에 튀었다. 나이토는 얼굴을 가리며 흐느껴 울었다.

“다시 말해봐. 뭐라고 했어.”

아버지의 눈이 설렘으로 넘실거렸다. 나이토는 손을 쭉 뻗어 아버지의 목에 팔을 둘렀다. 다정한 연인처럼, 아버지의 목에 두 팔을 감은 나이토는 그대로 끌어당기고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해요, 아빠.”

아들의 열 띤 고백을 들은 아버지의 눈은 이성을 잃었다. 아버지는 절망으로 절규하는 레이얀 앞에서, 나이토의 몸을 수없이 탐했다. 내벽이 흐물거리며 더 이상 조이지 못할 때까지 아들의 내부에 성기를 넣고 박아댔다.

부하가 참지 못하고, 아들과 아버지의 섹스를 보며 흥분해 자위를 하는데 눈치채지 못했다. 어떤 부하는 결국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들만 보았다. 아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안고 흐느껴 우는 아들이 정말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엘시는 레이얀이 아들을 강간했다는 사실을 우선 밀어두고, 아들의 몸이 동이 트고 나서도 탐했다. 밤에서 아침이 될 때까지, 자세를 바꿔가며 나이토의 육체를 제대로 맛본 아버지는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손가락 두 개로 긁어 내리자 정액이 뚝뚝 떨어졌다. 나이토는 오래전 정신을 잃고, 축 늘어져 안겨있었다.

아버지는 정액을 배출하는 아들의 다리를 벌려서 레이얀에게 보여줬다. 레이얀의 공허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운 미소로 바라본 아버지는, 아들의 몸을 돌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등을 보여주었다.

“내 아들이야.”

재갈을 물고 있는 레이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정액을 이름이 새겨진 곳에 비비며 말했다.

“네 마음은 이해해. 내 아들이 워낙 예쁘니까.”

만족스러운 얼굴로 기절한 아들의 얼굴을 본 아버지는 몸을 일으켰다. 코트로 아들의 몸을 감싼 아버지는 레이얀을 내려다보았다. 물빛 눈동자는 자아를 잃은 듯, 이성이 없었다. 본능도 없었다. 모든 것이 파멸된 자의 눈이었다.

“아들이 몸 바쳐서 살려준 목숨이니까 잘 보존하도록 해.”

잇새로 사납게 내뱉은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지하실에서 위로 올라가자, 완벽한 아침이 보였다. 아들을 품에 꼭 안고서 사방에 물든 찬란한 햇살을 본 아버지는 아들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성냥개비를 올려놓아도 될 정도로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너무 연약해 보였다. 사랑한다는 말에 흥분해 심하게 대한 것 같아 아주 조금 미안했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아버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둠이 물러간 인도를 걸어 차에 올라탔다. 반동이 아들한테도 느껴졌는지 나이토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버지는 뽀얗고 하얀 아들의 뺨을 문지르며 다정하게 말했다.

“아빠랑 집에 가자.”

나이토가 그 말에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눈을 감고,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버지는 하얀 이마에 살포시 키스를 남겼다.

<둘만의 밤> 본편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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