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나쁜 밤 (6/8)

나쁜 밤

열을 머금은 밤이 지속되고 있었다.

“아…읏, 흐…으응…!”

아래에 뭉근하게 고인 쾌감은 도저히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배꼽까지 들어온 것 같은 길고 두터운 성기가 안을 휘저으며 지독한 쾌락을 유지했다. 나이토는 무섭기까지 한 쾌감에서 벗어나고자 침대에서 앞으로 기어갔다. 더 했다간, 죽을 것 같았다. 내벽은 얼얼하다 못해 감각을 잃었다. 지금 박혀있는 성기가 빠져나간다면, 내벽도 함께 딸려갈 것 같았다.

살기 위해 시트를 붙잡고 엉금엉금 도망가는데, 구멍에서 찌걱거리며 성기가 빠져나가는 감촉에 잠시 멈춰야 했다. 허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달궈진 내벽은 약간의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빠져나가는 움직임에도 흥분이 되고 있었다.

“귀엽기는.”

픽, 하고 웃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아버지의 나른한 웃음소리에 나이토는 이를 질끈 물었다. 박는 입장에서는 좋겠지만 박히는 입장에서는 고역이었다. 몇 시간을 아버지에게 시달렸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진득한 키스를 해주기에 거기서 끝내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성기를 애무하기 시작하자 그런 생각이 날아갔다. 아버지의 손에 흥분제라도 발라진 것처럼 만져주면 호흡이 달아올랐다.

빌어먹을. 속으로 욕을 하며 나이토는 가장 두꺼운 귀두가 입구에 걸릴 듯, 말 듯 할 때까지 빼냈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촘촘한 근육이 잘 짜인 등과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부근을 보더니, 그 부근을 꽉 잡았다. 봐주지 않고 허리를 아래로 당겼다. 뜨끈하고 말랑한 내벽이 단번에 갈라지며 성기를 조였다.

아버지는 성기를 전체적으로 다 감싸오는 내부를 음미하며 낮은 숨을 내뱉었다. 그에 비해 나이토는 시트에 완전히 밀착한 상태에 흐느껴 울었다. 팔뚝에 이마를 대고 애달픈 울음을 흘렸다. 하얀 시트 위로 무력한 눈물과 신음을 쏟아져 내렸다.

“아파……그만해. 주, 죽을 거……같아…….”

나이토가 울먹거리며 손을 뒤로 뻗어 판판한 아버지의 배를 눌렀다. 손에 닿는 근육의 감촉이 탄탄하고 우람했다. 하얀 손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커다란 손에 잡혔다. 아버지는 팔을 거칠게 당겨 희뿌연 정액과 젤로 뒤엉킨 입구를 만지게 했다. 발갛게 부은 구멍은 손가락이 닿자 움찔거렸다. 나이토는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게 당겨진 구멍 속 감촉에 울었다. 아버지의 성기에 맞게 한계보다 더 벌어지고, 아버지의 성기를 알맞게 조이는 구멍은 이제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긴 검지를 쭉 당겨 아버지의 성기를 오물오물 무는 구멍을 계속 만지게 했다. 나이토의 손이 생경한 느낌에 곱아들었다.

“싫어…….”

“여기는 맛있어서 정액 더 달라고 그러는데?”

나이토는 언제 들어도 적응이 안 되는 야한 농담에 눈을 감았다. 제 어머니인 얀을 닮은 단아한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눈물이 이슬처럼 매달린 것이 예뻐서 아버지는 참지 못하고 아들의 머리를 시트에 꽉 눌렀다. 아버지의 강압적인 손길에 나이토는 체념한 듯 숨을 토해내며 시트를 잡았다. 어차피 뻥 뚫린 것 같은 감각과 쾌락만 느껴지는 곳이니, 더 함부로 한다고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잠자리에선 아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몇 번이나 겪어본 상황에 길들여진 듯, 나이토는 긴장을 풀었다.

나이토는 내부가 찌걱하고 벌어지는 느낌에 시트를 더 세게 잡아당겼다. 아버지가 허리를 잡고, 음모와 고환이 바짝 붙을 때까지 넣었다. 고통을 동반한 쾌감이 나이토의 몸을 덮쳤다.

“아앗! 흑, 흐윽, 아, 아빠…!”

“더 조여.”

다른 사람에게 얻어맞는 듯한 소리가 접합부에서 연달아 들렸다. 퍽, 퍽, 아버지의 치골이 엉덩이 살에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갔다.

이런 식으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섹스를 하면 다음 날 나이토가 걷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는 멈추지 않았다. 나이토는 사고회로를 마비시키는 강렬한 오르가즘에 입을 벌렸다. 아버지의 성기가 얼마나 빠르게 들락날락 거리는지 찌걱거리며 젖는 소리가 닿았다가 금세 사라졌다. 성기와 내벽이 맞물리기도 전에 성기가 주름을 반대로 가르며 나가고, 조여들 틈을 주지 않고 성기가 들어와 그 부근을 강하게 찔렀다. 나이토의 성기는 정액이라고 하기엔 묽은 액체를 내뿜으며 꺼덕거렸다.

이러다가 진짜 죽는 거 아닐까. 단단하고 거대한 성기가 아래를 헤집을 때마다, 배꼽 부근까지 성기가 들어오는 게 느껴질 때마다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다. 다행히 지금까지 살아있었지만, 아버지의 절륜함은 자신이 감당하기에 버거웠다. 이제 39살, 곧 40살이 되는 아버지지만 20대 청년보다 현저히 월등한 정력을 보여주었다. 그 덕분에 죽어 나가는 건 나이토였다.

나이토는 시트에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대고 힘없이 신음만 흘렸다. 입술에는 미처 삼키지 못한 정액이 묻어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정액으로 물든 나이토의 입술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손을 아래로 내려 마른 근육으로 뒤덮인 배를 만지작거렸다. 좀 더 위로 올려 하도 물고 빨아서 멍이 든 맑은 붉은색의 유두를 비틀자 나이토가 숨을 삼켰다.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넣고 빙글 돌렸다. 아버지의 성기를 조이는 힘이 세졌다. 나이토가 숨을 조금씩 토해내도, 움푹 들어간 아랫배는 쉽게 이완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남은 손을 내려 나이토의 성기를 잡았다. 힘을 조절해 적당한 조임으로 잡아주자 나이토의 입에서 앓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흐으으…….”

“이번에는 꼭 임신하자. 알았지?”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 아버지는 집요하게 임신 이야기를 했다. 나이토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느리게 저었다.

“임신……못 해.”

“아니야, 이렇게 듬뿍 싸주는데 왜 못 해. 할 수 있을 거야. 네 배 속에 내 아이가 있다고 생각하면 좋아서 미쳐버릴 거 같아.”

아버지가 음란한 말을 중얼거리며 미끈한 땀으로 범벅이 된 등을 핥았다. 입안에 소금 맛이 고였다. 아버지는 혀로 입술을 핥고서, 속력을 냈다. 박아 넣을 때마다 접합부에서 쿨쩍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였던 정액이 멍든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늘 아버지가 힘을 줘서 허벅지를 벌리는 터라, 안쪽은 멍이 들어있었다. 허벅지뿐만 아니라 유두와 그 주변 살, 손목, 어깨, 가려진 다양한 곳에 멍과 순흔이 남아있었다. 새로운 흔적을 남긴 아버지는 고환까지 삽입할 기세로 깊게 넣었다. 나이토는 장기가 위로 밀리는 기분에 눈을 질끈 감았다. 고였던 눈물이 발갛게 달아오른 뺨으로 흘러내렸다.

“아아…….”

풀어진 구멍에도 정액이 한가득 고였다. 아버지가 사정을 마친 후, 성기를 빼내자 모자르다는 듯 구멍이 벌름거렸다. 정액이 하얀 실금처럼 흔적을 남기며 뚝, 뚝 떨어졌다. 시트에 고이는 정액을 본 아버지는 아깝다는 듯 혀를 찼다. 붉은 속살을 보이며 움찔거리는 구멍을 지그시 보던 아버지는 검지와 중지를 불쑥 넣었다. 구멍은 별 무리 없이 아버지의 손가락을 삼켰다. 아버지는 손가락을 세워 안에 잔뜩 넘실거리는 정액을 긁어 내렸다. 내벽을 긁는 손가락의 감각이 생생해 나이토는 마른 어깨를 움찔거렸다.

“읏, 그만해.”

나이토가 완전히 쉰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긁어낸 정액을 나이토에게 보여주었다. 아버지 손가락에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뿌연 정액을 본 나이토는 입을 벌렸다.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새처럼 이제 아버지의 성기나, 정액을 보면 자동적으로 입을 벌렸다. 아버지가 정액을 입안에 떨어뜨려주자 나이토가 손가락을 핥아서 받아먹었다.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아버지의 정액을 삼킨 나이토는 정신이 반쯤 나간 얼굴로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아버지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올려주었다. 허공에서 흐르던 두 사람의 시선이 한 지점에서 교차했다. 먼저 웃은 건, 언제나처럼 아버지였다. 나이토는 붉은 얼굴을 가리고자 이불을 끌어당겼다.

“씻겨줄게.”

이 상태면, 내일도, 모레도 시체처럼 늘어질 게 분명해 쉽게 수긍했다.

“응.”

나이토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일으켰다. 멍하니 침대 맡에 앉아있자, 아버지가 두 팔을 이용해 나이토의 나신을 안아주었다. 아버지의 강직한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는 욕조에 들어간 뒤였다. 물을 언제 받아놓은 건지, 뜨끈뜨끈했다. 아마 아버지가 미리 언질을 준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늘 욕조에 물이 가득 있었다. 나이토가 학교에 가기 전이나 다녀온 후, 늘 씻는 습관을 아는 아버지가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해두었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게 아버지가 얼마나 집요하게 일상을 관찰했는지 느껴져, 나이토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입에 걸린 쓰라림은 아버지의 심장 박동 소리에 따라 지워졌다.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듯이, 뒤에서 나이토의 허리를 꽉 잡은 채 안고 있었다. 아버지의 가슴에 머리를 나른하게 댔다. 욕조 턱에 팔을 올리고 있던 아버지가 느릿하게 움직여 나이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을 헤집는 손은 상냥하기 그지없었다. 섹스 후 탈력감과 나른함, 허리와 그곳에서 밀려오는 둔탁한 통증 때문에 눈이 감기려고 했다. 눈에 애써 힘을 주었다.

여기서 잠들면, 아버지가 아래를 씻겨줄 것이다. 그게 묘하게 싫었다. 씻겨준다는 명목 하에 아버지는 구멍 안을 손가락으로 벌리고, 그 안으로 물을 넣어 남아있는 젤과 정액을 빼주었다. 그것만 하면 상관없었지만 아버지는 장난꾸러기 같이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면서 손가락을 넣어서 긁어 내렸다. 느끼는 부위까지 건드리는 바람에, 축 늘어져 발기해야 했다.

기절하면 안 깨웠으면 좋겠는데 강제로 깨워서 매달리게 만들었다. 말이 씻는 거지, 결국은 장소를 바꿔서 아버지와 섹스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욕실에서 섹스해서 좋은 적이 별로 없었던 나이토는 감기려는 눈을 힘겹게 떴다. 하지만 눈꺼풀에 추라도 단 것처럼, 눈꺼풀이 무겁게 늘어졌다.

“자도 괜찮아.”

아버지가 젖은 뺨에 입술을 내리누르며 속삭였다. 귀가 간지러웠다. 나이토는 귓속에 스미는 아버지의 들뜬 숨에 움찔거렸다. 나이토는 꾸물거리며 아버지의 품에서 나오려 했으나, 근육밖에 없는 팔을 이겨내는 건 무리였다. 아버지 품에 다소곳하게 안긴 나이토는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씻을 거야.”

“아직 아프지 않아?”

아버지는 레이얀에게 맞아 멍든 아들의 옆구리와 배를 만지작거렸다. 그뿐만 아니라 발로 머리를 걷어차여 콧등도 다친 상태였다. 나이토는 수도로 돌아와 자신의 몸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손목과 팔은 거친 밧줄에 쓸린 흔적과 멍이 짙게 남아있었다. 레이얀이 발로 찬 부위는 새카만 멍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상하게 코피가 많이 난다고 느낀 게 착각은 아니었는지 안면부는 퉁퉁 부어있었다. 누가 보면 깡패들에게 두들겨 맞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런 얼굴과 몸을 보고도 발정한 아버지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이 지극하다고 감탄해야 할지, 아니면 아픈 아들에게 흥분하는 변태라고 해야 할지. 나이토는 잠시 고민했으나 부질없는 고민이기에 접어두었다.

부드러운 온기를 가진 손이 상처 부위를 어루만지자 쓰라리게 아팠다. 그러나 아버지의 손길이 소중한 유리인형을 대해주듯 섬세해서 아픔이 사라지고 따스한 감각이 피어올랐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이 닿는 상체를 내려다보았다. 근육이 남아있긴 하지만, 과거에 잘 단련했던 몸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몸이었다. 납작하고 평평한 배에 감겨있는 아버지의 팔을 보자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해도, 타고난 체격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인가. 작은 체격이 아닌데도, 늘 아버지 품에 폭 안겨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완벽한 역삼각형 몸매를 자랑하는 아버지의 몸은 아무리 많은 돈을 부어도 만들 수 없는 몸이었다.

“할아버지도 몸이 좋았어?”

나이토는 손을 내려 아버지의 허벅지를 문지르며 물었다. 아버지가 나이토의 정수리에 턱을 올렸다. 그 상태에서 아버지가 입술을 움직였다.

“음, 그 시대 사람치고 체격이 좋았지. 왜?”

“아니, 나는…….”

우물쭈물 거리는 나이토의 마음을 알아챈 아버지가 나직하게 소리 내서 웃었다. 아버지의 낮고 우아한 웃음소리에 부끄러워진 나이토가 발가락을 움직였다. 아버지는 나이토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긴, 몇 년을 보아왔으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겠지.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아버지의 손이 나이토의 턱을 들어 올렸다. 비스듬하게 틀어진 나이토의 고개를 따라 아버지의 입술이 따라왔다. 물기에 젖은 입술이 닿았다. 나이토가 아, 소리를 내며 입을 벌리자 아버지의 혀가 들어왔다. 말캉하고 촉촉한 혀가 자신의 영역처럼 입안을 구석구석 누볐다. 자세가 불편해서 나이토가 아버지의 가슴에 자신의 가슴을 맞대고 앉았다. 아버지의 어깨에 두 손을 올렸다. 자신도 손이 큰 편인데, 아버지의 어깨는 워낙 넓어서 다 잡히지 않았다.

“으음.”

미지근하던 입술이 아버지의 키스로 인해서 뜨거워졌다. 머리가 순식간에 아득해지는 키스였다. 나이토가 멍한 시선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자, 아버지가 귀엽다는 듯 입술 끝을 틀어 웃었다. 틈새 없이 맞물린 입술을 떼어냈다. 타액이 길게 연결되었다가 뚝 끊겼다. 나이토가 더운 욕조 안에서 숨을 몰아쉬며 아버지를 몽롱한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다.

“넌 엄마를 닮았어.”

이성을 돌아오게 하는 발언에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알아.”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아버지는 엄지로 나이토의 붉어진 입술을 매만지며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 예뻐, 내 아들.”

미약한 탄성에 나이토는 고개를 숙였다. 나이토의 얼굴에 열이 올라왔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 욕조 밖으로 나갔다.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선 나이토는 붉어진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씻기나 해.”

목까지 얼굴을 붉힌 나이토의 모습에 아버지는 유쾌하게 웃었다.

*

잘게 쪼개진 햇빛이 눈꺼풀을 바늘처럼 쿡쿡 찔렀다. 밤새 울었던 터라 눈이 퉁퉁 부어서 그런지 약간의 눈부심에도 눈이 아팠다. 나이토는 팔로 눈을 가렸다. 그것으로 햇빛을 막기는 부족해서 나이토는 옆에 있던 베개로 얼굴을 가렸다. 아버지의 체취가 묻어나오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자 느린 숨이 나왔다. 베개를 끌어안고 잠을 청하는데 누군가 베개를 쏙 빼갔다. 피하고 싶었던 햇빛이 여과 없이 나이토의 얼굴에 닿았다. 나이토는 앓는 소리를 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손목이 잡혀 침대에 눌렸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건 한 사람밖에 없었다. 나이토는 눈을 꾹 감은 채로 입술을 열었다.

“나 힘들어.”

“네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이야? 지금 하루가 지났어.”

하루가 지났다는 말에 나이토는 거북이가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눈을 떴다. 얼굴이 퉁퉁 부은 나이토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아름다운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왁스로 앞머리를 깔끔하게 넘기고, 목 끝까지 드레스 셔츠 단추를 채운 아버지는 정갈했다. 레이얀의 앞에서, 그리고 이 집에서 놔주지 않고 몇 시간을 탐한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금욕적으로 느껴졌다. 나이토는 눈을 살짝 내리떴다. 겨울용 짙은 회색 정장에 어깨에 검은색 롱코트를 걸친 아버지의 모습에 건조한 웃음을 지었다. 나이토의 옅은 미소에 아버지는 화를 내려다가 참았다. 그는 미간을 여전히 찌푸린 상태에서 손목을 잡은 손을 거두었다. 아버지는 나이토 앞에 손을 펼쳤다.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우아하게 움직였다.

“잡아.”

아버지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이토는 당도한 긴 손을 보고서, 어쩔 수 없이 잡았다. 잡지 않는다면 아버지가 강제로 일으켜 세울 걸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토는 옆구리에서 올라오는 뻐근한 통증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것뿐만 아니라 우득, 소리가 났던 어깨도 아팠다. 아버지는 부스스해진 나이토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아래에서 볕 쬐는 고양이처럼 가만히 있었다.

“선생님 오실 테니까 치료받아.”

“어차피 타박상인데. 약 바르면 나아.”

나이토의 무미건조한 대꾸에 아버지가 머리를 팍 숙이게 했다. 거친 손길에 나이토가 “아!” 하며 화를 냈다.

“아프잖아!”

“아빠가 말하면 들어. 알았어?”

음절 하나하나에 배인 아버지의 화에 나이토는 입을 다물었다.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아버지는 만족한 얼굴로 물러났다. 아버지는 울리는 휴대전화를 힐끔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또 다른 휴대전화와 지갑을 꺼내 나이토에게 던졌다. 나이토가 느릿하게 휴대전화를 받아들었다. 액정을 터치하자 아무것도 장식되지 않은 화면이 나왔다.

“휴대전화 이제 주는 거야?”

“나랑 통화하려면 가지고 있어야지.”

주소록을 누르자 유일하게 저장된 사람이 보였다.

[아빠]

나이토는 허탈하게 웃었다. 아빠로 저장해야 하나, 애인으로 저장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미련 없이 방을 떠났다. 나이토는 아버지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입을 열었다.

“다녀오세요.”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쉰 목소리였지만, 아버지에게 닿았다. 아버지는 다녀오라는 나이토의 말에 발걸음을 멈췄다. 왜 저러시지.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하던 나이토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은 단 한 번도, 여태까지 아버지에게 잘 다녀오라던가, 다녀오셨냐는 안부 인사를 해준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듣는 나이토의 “다녀오세요.” 소리에 아버지가 놀란 것이다. 무의식중에 나온 인사에 나이토는 놀라서 입을 살짝 벌렸다. 자신이 낸 게 맞나 싶어 손가락으로 각질이 일어난 입술을 매만졌다.

아버지는 닫으려던 문을 열고,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햇빛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버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정말 행복해 보이는 미소에 나이토는 눈을 슬그머니 돌렸다.

“응. 다녀올게.”

아버지의 출근을 끝까지 봐주지 못했다. 다른 사람에게 며칠 동안 시달린 몸은 휴가를 원하고 있었다. 지금도 막대기가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그곳이 벌어져 있는 게 느껴졌다. 널 봐주고 있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한 번 시작하면, 아무리 짧아야 다섯 번이었다. 갈증이 난 사람처럼 몸을 요구하는 아버지에게 맞춰주는 게 힘들었다. 아버지가 체력이 약하다며 괜히 약을 먹인 게 아니었다.

[일릭이 약 갖다 줄 거야. 약 먹어XD]

아버지 생각을 곱씹으며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있는데 문자가 왔다. 낯익은 이름에 나이토는 손을 멈칫했다. 일릭이라면, 아버지와 같이 일하는 비서 중 한 명이었다. 아버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싸늘한 시선을 떠올린 나이토는 입안이 버석하게 말라가는 걸 느꼈다. 일릭은 나이토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추측하기로 그는 알토와 나이토가 만드는 사소한 문제를 처리하는 걸 귀찮아했다. 알토는 금방 수긍하고 잘 지내는 편이었지만, 언제나 아버지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나이토에게 그는 질린다는 듯 조곤조곤 화를 냈다.

‘제발 얌전히 다니면 안 되니? 너 때문에 여러 사람이 힘들어하는 거 안 보여? 너만 조용히 살면 다 평화로운데, 왜 이렇게 사고를 치는 거야?’

알토와 비슷한 말을 쏘아붙이던 그를 떠올리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을 마주 해야 하는 건, 고달픈 일이었다. 알토는 동생이라서 그래도 상대하기 편했는데 14살부터 지금까지 보아온 일릭은 껄끄러웠다.

“일릭은 싫은데.”

쓸쓸한 어투로 중얼거린 나이토는 바닥에 떨어진 아버지의 셔츠를 주웠다. 방에서는 옷을 못 입게 하는 고약한 취미를 가진 아버지 때문에 이 넓은 침실에 나이토의 옷은 한 벌도 없었다. 아버지는 수치심을 못 이기고 커다란 드레스 셔츠를 입고 활보하는 나이토의 뒷모습을 즐겼다. 그걸 다 알고 있었지만, 나이토는 아버지를 내버려 두었다. 하지 말라고 해도 끈질기게 달라붙어 할 사람이었으니 어느 정도 져주는 게 편했다.

나이토가 물러난 만큼, 아버지도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반항하지 않는다면 누구보다 귀한 대접을 받으면서 이 집에서 살 수 있었다. 나이토는 손목에 고스란히 남아 사라지지 않는 결박된 흔적을 보았다. 아버지의 다정함이 짙어지면, 이런 멍도 옅어졌다.

연하늘색 드레스 셔츠를 걸치며 나이토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소매가 커서 두 번 접어 올렸다. 단추를 세 개 채웠을 때, 나이토는 문이 벌컥 열리는 걸 들었다. 아버지처럼 완벽한 정장을 갖춰 입은 일릭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정장을 입었어도, 양아치 같은 분위기는 옅어지지 않았다.

“팔자가 좋아졌어.”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감탄하는 말투였다. 아버지와 나이토의 사이를 다 아는 그는 거리낌이 없었다. 나이토의 앞에 선 그는 들고 있던 트레이를 건넸다. 트레이에는 약과 연고, 물이 있었다. 나이토는 그의 손에서 트레이를 받아 들어 허벅지에 올려두었다.

“진작 내 말 듣고 엘시한테 잘하지 그랬어. 그러면 이런 꼴 안 당하고 살 수 있었잖아.”

그의 훈계에 울컥해서 일릭을 노려보았다. 날 선 나이토의 시선에 일릭은 보란 듯이 팔짱을 꼈다.

“너 하나 때문에 엘시가 투자한 시간, 돈, 인력을 생각해봐.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만 해도 오늘이 출근이 아닌데 너 돌봐주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선심 쓰듯 말하는 그의 태도에 나이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저한테 그렇게 말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나이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릭은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아버지가 누구 편인지 아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14살,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고양이처럼 경계하던 눈빛은 여전했다. 엘시를 볼 때와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에 일릭은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래, 그렇게 똑똑하게 굴어. 네가 똑똑하게 나와야 다른 사람이 편해지니까.”

“이기적이시네요.”

나이토가 상처받지 않은 얼굴로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일릭은 부인하지 않았다. 이기적이어도 상관없었다. 일릭은 철저한 공리주의자였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지지하는 일릭은, 나이토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나이토만 고분고분하게 엘시 발아래에 있겠다고 하면, 이런 비밀 쯤 철저하게 지켜줄 수 있었다. 실제로 이 둘의 사이를 아는 자들도 그런 마음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이토가 그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집안의 평화가 어느 때보다 달콤했기 때문이다.

“너도 편하잖아. 맞는 거보단 낫지?”

다정하다고 느껴질 만큼 일릭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생크림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문듯한 달콤함까지 곁들어있었다. 어이가 없어진 나이토는 일릭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에 돌이 켜켜이 쌓인 듯 답답해졌다. 숨까지 편하게 못 쉬고 있었다. 아무리 태연해지려 해도, 이런 식으로 타인에게 아버지와의 관계를 지적받을 때면 발바닥부터 우울감이 확 치솟았다. 걷잡을 수 없는 불길에 허우적거리며, 숨을 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가슴이 뻐근해지고, 머리까지 멍해져 정신 차리기가 힘들었다.

마치 그때와 같았다. 아버지에게 얻어맞고, 억지로 당해야 했을 때. 아버지가 CCTV를 설치한 집에서 옷도 못 입고, 오로지 침대에 누워 아버지만 오기를 기다려야 했을 때. 지금이야 쓰게 웃으며 넘어가지만, 그때는 정말 죽고 싶다는 강렬한 생각이 들 정도로 참담했다. 이젠 좀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치부를 들킬 때마다 발밑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 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뿐이다.

물과 함께 약을 삼킨 나이토는 그에게 트레이를 건넸다. 그가 다리를 볼까 봐, 이불을 끌어당겨 허벅지를 가렸다. 그는 여전히 부끄러움을 느끼는 나이토를 보며 살짝 웃었다.

일릭은 엘시의 하늘색 셔츠를 입고 손을 꼼지락거리는 나이토를 보았다. 확실히 잘생긴 얼굴이었다. 엘시가 자기 아들을 가리켜 백설 공주 같다고 칭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엘시와 같은 검은 머리에 신비로운 흑청색 눈, 붉은 기가 감도는 입술. 엘시가 얼마나 물고 빨았는지 평소보다 더 부은 입술을 보며 일릭은 허탈하게 웃었다. 나이토의 풍성한 속눈썹이 허공에서 가늘게 유영하더니, 위로 곧게 펴졌다. 나이토가 일릭을 응시하며 조개처럼 다 물린 입을 열었다.

“레이얀은 괜찮아요?”

눈이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정말 병이었다. 알토한테도 그랬고, 레이얀한테도, 그리고 엘시한테도 희미한 정이 남은 나이토는 늘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졌다. 그것이 조금은 안쓰러워서 일릭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해주었다.

“나름 괜찮아. 공작이 데려갔으니까.”

“다리는요?”

“부러졌지. 두 다리 다.”

나이토는 입을 다물었다. 일릭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말했다.

“이 일엔 조드릭 공작도 포함되어 있어. 엘시와 조드릭 공작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엘시는 널 구해야 했고, 조드릭 공작은 자기 아들을 우선으로 챙겨야 했으니까. 안 그래도 성폭행 사건으로 난린데, 장남에 이어 사생아 아들까지 미디어에 노출될 바에야 다리라도 부러뜨려서 데려오는 게 공작 입장에선 더 나은 방법이야. 그리고 네가 모르나 본데, 다리를 부러뜨린 건 같이 온 공작의 사람이었어. 엘시가 아니라. 엘시는 그 사람한테 딱 한마디만 했을 뿐이야. 댁네 도련님이 내 아들한테 떨어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고.”

나이토는 레이얀의 팔을 부러뜨린다고 협박했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대놓고 다른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서 섹스를 하라고 강요하던 눈빛이 방금 전 일처럼 그려졌다.

만약 레이얀이 보는 앞에서 섹스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문득 상상을 하던 나이토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가렸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아도 답은 늘 하나였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레이얀 앞에서 섹스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키샨, 알토……. 그리고 그 외 다른 사람들 앞에서 드문드문 보여줬던 섹스가 이젠 비밀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때마다 나이토는 고립되었고, 상처받았지만 아버지는 행복해졌다. 그는 진심으로 나이토의 유일한 세계이자 우주가 되고 싶어 했다. 아버지밖에 없다고 비통해하는 나이토 앞에서 행복해서 환하게 웃던 얼굴이 붓으로 그린 듯 그려졌다.

일릭의 말이 맞았다. 나이토만 이 현실에 타협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행복해졌다. 또한, 아버지도 그에 맞게 다정해졌으니 나이토도 나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 다만, 그 범위가 엘시의 영역뿐이었다.

“그래도 목숨값은 싸게 치렀잖아. 치료가 끝나면 레이얀은 유학을 떠날 거야. 거기서 좋은 짝도 만나서 결혼하겠지.”

레이얀이 결혼이라. 나이토는 한때 레이얀과 꿈꿨던, 이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떠올렸다. 가슴은 아프지 않았다. 덤덤하게 스쳐 지나간 과거를 더듬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생각만 해도 설렜던 기억들은 아버지로 인해 덮어졌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강렬하고 중독 같은 감각이 전신을 지배한다. 나이토는 저려오는 손끝을 다른 손으로 꾹꾹 눌렀다. 일릭은 눈에 띄게 창백해진 나이토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다가 한결 다정해진 목소리로 나이토를 달랬다.

“레이얀은 괜찮으니까 걱정하지도 않아도 돼. 아직 어리니까, 시간이 지나면 너도 잊게 될 거야. 물론 너도 레이얀을 잊을 거고. 넌 엘시만 신경 써. 알았지? 엘시는 널 절대 버리지 않을 테니까.”

나이토는 응어리진 한숨을 내뱉으며 상처가 남은 손끝을 만졌다. 둔탁한 바닥에 긁혀 여린 살이 까져있었다.

“네.”

일릭이 기분 좋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뒷골목에서 마약을 판매할 것처럼 생긴 일릭을 물끄러미 보던 나이토가 고민하던 말을 내뱉었다.

“앞으로 마주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나이토가 명령조로 얘기하자 그는 입술을 슬쩍 올렸다.

“나도 부자간의 섹스는 이제 그만 보고 싶어.”

귀찮다는 듯 투덜거린 일릭이 트레이를 챙겼다. 그의 말투는 더없이 가벼웠다. 눈빛도 느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셔츠를 입은 상태로 멍하니 일릭을 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머리와 가슴이 둔탁하게 아팠다. 늪에 빠진 것처럼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한때 겪었던 불안증세가 몸을 엄습했다. 몸이 미세하게, 그리고 점차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나이토는 손을 맞잡으며 떨림을 멈추려고 노력했으나 부질없었다.

나이토가 눈을 깜박거리며 자신만 바보처럼 보는데, 일릭은 푸근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아, 너 정말 잘하던데. 엘시가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

칭찬이었지만,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나마 무시하려 했던 현실이 성큼 다가와 나이토를 괴롭혔다. 나이토는 그가 떠난 지도 모르고 정적이 남은 방에 홀로 남아 상처가 남은 손등을 보았다.

수많은 고뇌가 나이토의 머리를 점령했다. 그 고뇌의 끝은 하나였다. 자신을 진정으로 안아주고 달래줄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다는 걸. 그 외에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혐오하듯 본다.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알고 나서, 알토, 레이얀, 일릭은 거의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눈에 떠오른 경멸을 안다. 자신은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를 택한 순간, 나이토는 그런 반응은 감당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언제나 현실을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상처받고, 흉이 남았다. 아버지가 오른쪽 손바닥에 남긴 흉터처럼 깊숙이 남아 잊을 수 없었다. 잔상처럼 남은 흉터가 가시를 세우고 나이토를 쿡쿡 찔렀다. 약도, 술도, 그 어느 것도 허용하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이 통증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나이토는 침대에 누워 멍한 눈으로 휴대전화만 보았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오로지 자신만 따스하게 바라봐주는 아버지가 이상하게 보고 싶었다. 나이토는 휴대전화 액정을 터치해서 아버지의 번호를 눌렀지만 다시 꺼버렸다. 일릭과 대화를 했더니 전신이 노곤했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나이토는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눈을 떴다. 아침과 별다를 바 없는 옷차림으로 아버지가 머리맡에 앉아있었다. 나이토는 누워서 아버지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나이토의 절망적인 눈빛에 아버지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어른다운 성숙한 웃음이었다.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다정한 미소에 나이토의 눈빛이 서서히 바뀌었다. 절망에서, 불투명한 베일을 쓴 애정으로. 나이토는 아주 느린 박동으로 달리는 심장을 감지했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내 남자이자, 내 아버지였다.

나이토는 두 팔을 뻗어 아버지를 안았다. 아버지는 폭 안겨오는 나이토를 마주 안아주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재킷을 꽉 잡고서 매달렸다. 애처롭게 안긴 나이토는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버리면 안 돼.”

“응.”

“나만 사랑해야 돼.”

“응.”

나이토를 안은 아버지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숨통을 조이는 안락함이 좋았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재킷을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더 세게 붙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한다고…말해줘.”

아버지는 뜨거운 숨을 나이토의 목덜미에 뱉어냈다.

“사랑해.”

몇 번을 들은 고백이었지만, 유독 오늘의 고백은 가슴을 아프게 했다. 나이토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버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나이토는 흐느껴 울었다. 울지 않으려고 해도, 벼랑 끝에 서 있다고 느낄 때마다 눈물이 솟았다. 나이토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럴 때마다, 나이토를 안아주는 체온도 높아졌다.

차갑게 식은 마음 까지 미적지근하게 데워주는 온도에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

알라시스 대공은 파면되었다. 그와 연관된 자들도 도마뱀 꼬리 잘리듯이 파면되어 더 이상 왕실에 출입할 수 없었다. 그중 한 명이 아이작 조드릭으로, 현재 구치소에 수감 되어 재판을 기다렸다. 승승장구하던 아이작의 추락을 보자 나이토는 씁쓸함을 느꼈다. 결국 TV를 끄고 침대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침대 헤드에 기대 서류를 보고 있었다. 나이토가 침대에 눕자 아버지가 나이토의 머리를 매만졌다. 아버지의 커다란 손이 머리를 만져주는 게 좋아서 가만히 있었다. 각진 어깨에 뺨을 대니 아버지가 말했다.

“아빠 지금 바빠서 못 놀아줘.”

“놀아달라고 한 적 없어.”

무덤덤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나이토는 서류를 슬쩍 보았다. 알라시스 대공 사건과 관련된 서류였다. 나이토는 눈을 들어 올려 아버지의 날렵한 턱을 보았다. 나이토가 자신의 얼굴을 훑는 걸 눈치챈 아버지가 눈을 내려 나이토를 보았다. 눈이 마주친 아버지가 빙그레 웃었다.

“궁금해?”

“…아버지는 진짜 괜찮은 거야?”

아버지는 보고 있던 서류를 스탠드 옆에 내려놓았다. 그는 충성스러운 개처럼 자신만 보는 나이토의 얼굴을 감쌌다. 조그마한 얼굴이 아버지의 손에 완전히 가려졌다. 아버지의 손바닥에서 올라오는 따스함을 느낀 나이토는 눈을 내리떴다. 상의를 입지 않은 아버지의 상체가 보였다. 군살이 전혀 없는 몸이었다. 근육밖에 없는 것 같은 아버지의 배에 손을 올렸다.

“아빠는 괜찮아.”

나이토의 턱을 들어 올린 아버지가 다정하게 말했다.

“이번 일은 알라시스 대공의 책임이 커. 자기 사람 간수 못 한 잘못이지. 그 탓에 여러 사람이 얽혀있어서 다들 다친 거고. 나는 증거가 없으니 잡아들일 수 없어.”

“로펌은 왜 그렇게 자주 다니는 거야?”

“글쎄. 예방이라고 해둘까.”

아버지는 깔끔하게 얘기를 끝내고서 몸을 빙글 돌렸다. 아버지가 나이토를 내리눌렀다. 손에 깍지를 끼고, 시트에 꽉 누르자 나이토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버지의 무감하던 얼굴에 열기가 서서히 올라왔다. 아버지의 얼굴에서 성적 욕구를 읽은 나이토는 마른 침을 삼켰다. 아직 다 낫지 않은 몸으로 섹스를 하는 건 무리였다.

“나 힘들어.”

“흠, 아쉽네.”

“아픈 사람한테 박는 취미 없다면서. 그러니까 나중에 해.”

아버지는 싱긋 웃더니 일어났다. 그가 팔베개를 해주었다. 아버지의 가슴에 등을 맞댄 나이토는, 마디가 툭 튀어나온 아버지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나이토를 내버려 둔 채, 아버지는 나이토의 어깨에 턱을 올렸다. 아버지의 숨결이 닿자 간지러움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대학 가고 싶지 않아?”

“별로.”

“맨날 집에 있으려고? 승마 좋아했잖아. 다시 승마해.”

“싫어.”

“그럼 뭐 하고 싶은데?”

아버지는 뭘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현재 나이토는 무언가를 하고 싶은 욕구가 없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서일까. 쉬고 싶었다. 아버지의 손가락을 갖고 놀던 나이토는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하고 싶었으나 아버지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나이토는 몸을 돌려 아버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은근하게 살을 만져오는 나이토 때문에 아버지의 눈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여행하고 싶어.”

“안돼.”

아버지가 딱 잘라 거절했다. 나이토가 어이없다는 듯, 허무하게 웃었다. 몇 년 동안 된다는 말보다 “안돼.”라는 말을 들어온 터라 이젠 덤덤했다.

“그럴 거면 뭐하러 물어봤어?”

“아빠랑 가.”

“뭐?”

“나랑 여행 가자고. 해외로. 자작 수여식 끝나면 같이 다녀오자.”

“자작이 되는 건 확실한 거야?”

“응.”

아버지는 나이토의 눈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나이토가 숨을 고르게 내뱉었다. 아버지는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얼른 나아서 승마해야지.”

“왜 자꾸 승마 타령해…….”

나이토가 잠결에 투덜거렸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눈가에서 손을 떼고서, 드러난 볼에 짧게 키스했다. 그 부근에 입술을 댄 채로 말했다.

“넌 승마할 때가 제일 섹시해.”

아버지가 허벅지를 꽉 잡았다. 야릇한 감각에 나이토는 눈을 반쯤 뜨고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하지 마.”

“안 해. 다음에 말이나 같이 타자고.”

“말을 어떻게 같이 타?”

나이토가 몸을 휙 돌리며 차갑게 말하자 아버지가 콧노래를 부르며 말했다.

“탈 수 있어. 아빠가 알려줄게.”

뭐라는 거야. 나이토는 알 수 없는 말을 흥얼거리는 아버지를 무시하고 잠을 청했다. 나이토가 말을 같이 타는 방법을 알게 된 건, 훗날의 일이었다.

*

새 휴대전화가 생기자마자 나이토는 그동안 연락을 기다렸을 아인에게 문자를 넣었다. 예상한 것과 다르지 않게 아인은 문자를 보고 나서 전화했다.

[야, 이 개새끼야! 너 미쳤냐? 죽고 싶어? 이 새끼가 어디서 연락을 씹어?]

안부 인사보다 먼저 날라온 욕설에 나이토는 기가 팍 죽었다. 지은 죄가 있으니 당당하지 못했다.

“내가 미안하다니까.”

[미안하면 끝이야? 씨발, 너는 연락 안 되고 레이얀은 미쳐가지고 제정신이 아니고! 니네 둘이 무슨 일 있었지?]

어떤 말을 해줘야 하나. 고민했으나 그리 길지 않게 끝냈다. 나이토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인에게 말했다.

“헤어졌어. 아마 그래서 레이얀이 많이 힘들었을 거야.”

[…걔 지금 병원에 있는 건 알아?]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나이토는 손가락으로 의미 없이 테이블 위를 덧그렸다.

“알아.”

[네가 헤어지자고 한 거지?]

“응.”

아인이 말이 없었다. 푹, 한숨을 내쉰 아인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뭐, 너희들 일이니까 내가 나서봤자 뭐하겠냐. 이미 끝났으니…….]

아인의 말이 맞았다. 레이얀과 자신은 끝났다. 그 방법이 잔인해서 레이얀 마음에 난도질을 했지만 나이토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자신은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실행했을 것이다. 나이토는 침대에 걸터앉아 발을 까닥거렸다. 아버지는 휴대전화를 준 것도 모자라 외출을 허용했다. 단, 조건이 붙었다. 무조건 밤 9시 안으로 와야 하며 술, 담배 금지였다. 외박은 당연히 안 됐다. 딱히 외박할 친구도 없었기에 나이토는 별 반항 없이 아버지의 조건을 수긍했다.

하지만 6년이란 시간을 아버지에게 통제당해서 그런지 막상 외출을 하려니 두려웠다. 과연 내가 나가도 되는 걸까? 묘한 두려움이 밀려와 나이토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도 나가지 않았다. 요새 하는 일도 없어서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너 시간 되면 만날래?]

“…좋아.”

[이제 술 마실 수 있냐?]

아버지가 술을 못 마시게 하는 걸 알고서 아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나이토는 하하, 하고 힘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아니.”

[그럼 나만 마실 테니까 넌 보기나 해라. 넌 시간 언제 괜찮냐?]

“아, 난 다 괜찮아.”

[그래? 내가 시간이랑 장소 잡는다.]

“응.”

나이토는 전화를 끝내고서 침대에 엎어져 누웠다. 쓸모없는 인간의 표본이었다. 아버지가 돈은 잘 버니 쓸 일이 많았지만, 돈을 쓰기 전에 아버지가 다 갖다 주니 쓸 일이 없었다. 돈을 벌면 돈 쓰는 재미가 있으려나. 아버지 말대로 심심하니까 대학이나 다녀볼까. 성적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으니 조금만 공부하면 대학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안 된다면 카페나 차려서 운영이나 할까.

화려한 문양의 천장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나이토는 전화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의 연락이었다. 나이토가 통화 버튼을 당기자, 애정이 듬뿍 배인 중저음이 들렸다.

[내려와.]

“왜?”

[오랜만에 가족끼리 밥 먹자.]

가족끼리라는 말이 이렇게 거슬리다니. 나이토는 입안에 모래가 낀 것처럼 까끌함을 느꼈다. 나이토가 말없이 가만히 있자 아버지가 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

[알토를 평생 안 보고 살건 아니잖아. 형제간의 싸움은 적당히 해.]

“알토도 날 안 보고 싶어 할 거야.”

나이토가 알토 핑계를 대니 아버지가 나지막이 웃었다. 막 집에 들어오는 중이었는지, 아버지가 집사에게 지시를 하는 게 들렸다. 아버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거기서 안 먹어. 여기로 와.]

아버지가 말하는 여기라면 본래 아버지와 나이토, 알토가 살던 집이었다. 이곳에 돌아온 후,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장소였다. 6년 동안 자라온 그 집에 자신의 방이 있었지만 감금당했던 이 집이 편했다. 적어도 이 집에선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까.

[옷 입고 와.]

딱 자기 본론만 말한 아버지가 전화를 끊었다. 나이토는 휴대전화를 침대에 내던졌다. 다정할 땐 미치도록 다정한 아버지였지만, 냉정할 땐 한없이 냉정해졌다. 아버지의 고약한 심보에 나이토는 욕설을 내뱉었다. 안 가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말대로 평생 안 보고 살 수 없었다. 아버지의 영역에 사는 한, 아버지는 자신들을 떼어놓지 않을 것이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셔츠를 입고서 1층으로 내려갔다.

드레스룸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짙은 파랑색 후드티셔츠에 블랙진을 입었다. 거울을 보고서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창문을 보니 눈이 내려 세상이 하얀 도화지 같았다. 이 집에서 아버지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면 10분이 걸린다. 10분 동안 추위를 견딜 것인가, 두툼한 점퍼를 입을 것인가. 고민하던 나이토는 점퍼를 꺼냈다.

문을 열자, 눈과 섞인 바람이 휘몰아쳤다. 엄청난 추위였다. 살이 에일 것 같은 날씨에 나이토는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느긋하게 걸어갔다. 꼭 그때 같았다. 알토가 10살 때, 어머니가 급사하고 살기 위해서 아버지 집으로 찾아갔던 그날. TV로 보았던 웅장하고 아름다운 저택에 나이토는 넋을 놓았다.

하지만 나이토가 제일 정신을 못 차렸던 건, 상의를 탈의하고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던 아버지였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많이 순해졌지만, 그 당시에는 아버지에게 날 선 아름다움이 있었다. 보자마자 숨이 턱 막혔던 미모에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14살 애가 가질 법한 설렘이었다. 자신에게도 아버지가 있다는 안도감, 굶어 죽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감, 다시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설렘. 그걸 아버지는 6년 동안 차근차근 밟고 전혀 다른 애정을 심어주었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과거를 회상하다 보니 어느새 아버지와 알토가 있는 집이었다. 나이토는 알토를 본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렸다.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아는 이를 만날 때마다 드는 불안함이었다. 발목을 꽉 잡아 동여매는 불길함에 머뭇거리던 나이토는 들리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

그렇게 피했던 알토인데, 이토록 쉽게 만나버렸다. 알토도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어깨에 내려앉은 눈을 현관 앞에 서서 털고 있었다. 나이토는 우두커니 서서 알토를 바라보았다. 알토는 그동안 무척 커 있었다. 아직 어설프긴 하지만, 어엿한 청년의 모습이 있었다.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체격이 좋았다. 자신과 엇비슷하게 큰 알토의 키에 나이토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많이 컸네.”

읊조리듯 얘기하는 형의 목소리에 알토가 눈치를 살폈다. 알토는 입을 꾹 다물더니 형을 피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했던 반응이라 나이토는 그저 덤덤했다. 아버지가 마련한 저녁 식사가 빨리 끝나길 기도하면서, 나이토도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과거와 똑같았다. 고대 귀족들의 집을 모방한 넓은 홀은 장식품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중앙에 위치한 계단은 양쪽으로 갈라져 2층에 연결되어 있었다. 압도적인 크기의 샹들리에가 위에서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찬란하게 쏟아지는 백색 바닷속을 걸었다.

왼쪽이 응접실, 오른쪽이 가족들을 위한 식사공간이었다. 나이토는 자신을 의도적으로 피해서 걷는 알토 뒤를 따라갔다. 활짝 열린 공간에 10인용 다이닝 테이블이 떡하니 있었다. 다이닝 테이블 가장 중앙에 아버지가 앉아있었다. 하얀 드레스 셔츠에 짙은 네이비 크레스트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왁스로 깔끔하게 머리를 넘긴 아버지는 턱을 괸 채, 오만한 귀족처럼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버지를 본 알토가 인사했다. 아버지는 알토를 힐긋 보다가 뒤에 서서 오지 못하는 나이토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나이토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점퍼를 벗으며 아버지 옆으로 다가갔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다가와 의자를 빼주었다.

“옷이 그게 뭐야.”

아버지가 나이토를 보며 혀를 찼다. 언제나 쓰리피스 정장을 철저하게 지키는 아버지다운 반응이었다. 나이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옷 맞춰 줄 테니까 예쁘게 입고 다녀.”

“난 이게 편해.”

아버지가 인상을 찡그렸다.

“편하다고 방정맞게 다니면 안 되지. 자작의 아들이 될 텐데.”

“어차피 나한테 이 집을 물려줄 것도 아니잖아.”

나이토가 무심한 목소리로 덧붙이자 아버지가 입을 서서히 다물었다. 정곡이 찔렸는지 아버지는 말없이 앞에 나온 스프를 떠먹었다. 나이토와 알토도 스프를 먹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가족끼리 먹을 때 굳이 귀족의 전형적인 식사순서를 따르지 않았다. 간략하게 샐러드, 스프, 빵, 고기 혹은 해산물, 후식을 먹고 끝냈다. 오늘 나온 건, 나이토가 좋아하는 스테이크였다. 나이프로 살살 자르자 핏물이 흘러나왔다. 나이토는 작게 자른 스테이크를 입에 넣었다. 아버지도 우아하고 정갈한 자세로 스테이크를 먹었다. 소리 없이 음식을 씹어 넘긴 삼킨 아버지는 와인 잔을 잡고 살짝 기울였다. 몇 번 기울여서 허공에 흔든 아버지는 느릿하게 와인을 마셨다. 아버지의 입술이 붉게 물들었다.

와인 잔을 내려놓은 아버지는 알토를 보았다. 아버지의 시선이 무심했다. 아들을 보는 시선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차갑고, 딱딱했다.

“형이랑 화해했어?”

아버지가 생각지도 않은 말을 내뱉었다. 알토와 나이토는 둘 다 입을 다물었다. 지퍼를 단 듯, 절대 열리지 않는 아들들의 입을 본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마를 유려하게 짚으며 입을 열었다.

“적당히 화해해. 계속 이렇게 지낼 거야?”

“…화해할게요.”

알토가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기가 죽은 알토의 대답에 아버지가 턱짓으로 나이토를 가리켰다.

“그럼 지금 해.”

형제 일에 간섭하려는 아버지가 탐탁지 않았다. 알토와 나이토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걸 모르는 게 아닐 텐데, 아버지가 굳이 이런 식으로 나서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한 번도 형제 일에 나선 적이 업었다. 서로를 멀리하게 만드려는 못된 심보마저 느껴질 정도로 방치를 하거나, 한 쪽만 편애했다. 그를 잘 아는 나이토는 알토를 넌지시 보다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애야?”

아버지가 묘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형제가 언제까지 냉랭하게 살 거야? 적당히 화해하고 사이좋게 지내.”

말투는 사근사근하고 부드럽지만, 눈빛은 장전된 총처럼 서늘하고 싸늘하다. 조금만 더 심기를 거슬렸다간, 뺨을 때릴 것 같은 분위기에 나이토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알토도 숨을 멈춘 채,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서릿발 같은 분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스럽게 터득한 방식이었다. 무의식까지 통제하는 아버지의 눈빛, 손짓, 말투에 먼저 승복한 건 알토였다. 겁에 질린 채, 알토가 일어났다. 쭈뼛쭈뼛 거리며 다가온 알토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이 완전히 쭉 뻗어지기 전에 나이토가 덥석 잡았다. 알토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어릴 때는 ‘형!’하며 다가오던 아이가, 어느새 자신을 어색해하고 있었다. 나이토는 묘한 감각 속에서 헤엄치다가, 현실이 주는 부력에 의해 정신을 차렸다.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몰랐다. 나이토는 조금 힘을 줘서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제 이렇게 컸으니 놔줘도 될 것 같았다. 나이토는 아버지가 듣지 못하게끔,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마치 알토가 아주 어릴 때, 잠들 기 전 동화책을 읽어줄 때처럼 말이다.

“다 잊고 잘 살아.”

알토가 나이토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시선을 내렸다. 알토가 흠칫 놀라는 게 느껴졌다. 나이토는 알토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잡고 흔들었다. 그걸 뒤돌아서 지켜보던 아버지는 점차 증가 되는 어색한 분위기에 건조하게 웃었다.

“형이 어색해?”

아버지 물음에 알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손을 떼어내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알토는 쉽게 식사를 이어가지 못했다. 할 말이 있는지, 연신 형을 훔쳐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결국 못 참겠는지, 얌전하게 앉은 형을 힐끗 보다가 아버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형으로 대해요, 아버지 애인으로 대해요?”

“푸흡!”

막 물을 마시던 나이토는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기침했다. 물이 목에 걸려 따끔했다.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며 가라앉길 기다리는데, 알토가 여전히 입을 멈추지 않고 조잘거렸다.

“형으로 대하면 아버지가 화낼 거 같고, 애인으로 대하면 형이 화낼 거 같고.”

알토의 고민은 아버지가 해결해주었다. 고민 없이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랑 같이 침대 쓰는 사람이니 애인으로 대해. 새엄마가 될지도 모르는데.”

“…난 그만 갈래.”

자신을 두고 오가는 대화에 나이토가 얼굴을 붉히며 일어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손이 나이토를 놔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손을 꽉 잡고 의자로 당겼다. 팔꿈치가 의자에 부딪혀 아팠다. 나이토가 인상을 찡그리며 팔꿈치를 만졌다. 아릿하게 올라오는 통증보다 수치심이 더 컸다. 동생에게 저런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니. 나이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먹다 만 스테이크가 보였지만 식욕은 뚝 떨어졌다. 이래서 이 집에 오기 싫었던 거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마음을 알아챘으면서도,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얘기했다.

“정리가 필요해서 부른 거야. 너도 이게 편하잖아. 어중간하게 걸쳐서 고민할 바에 확실하게 결정하는 게 낫지.”

“난…….”

“레이얀 앞에서 섹스했는데 이건 싫어?”

알토가 듣지 못하게 아버지가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 속삭였다. 나이토가 굳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숨만 겨우 내뱉자, 아버지가 은밀하게 사타구니 안을 매만졌다. 자극이 되는 손길에 나이토가 입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나이토는 붉어진 얼굴을 차마 들 수 없었다. 알토가 그 사실을 알까 봐 가슴이 두근거렸다. 슬그머니 올라오는 흥분을 잠재우며 아버지를 힐긋 보았다.

“알토 입장도 생각해줘야지. 너야 내가 좋아서 다리 벌리면 그만이지만, 그걸 보는 알토는 혼란스럽지 않겠어? 형인지, 애인인지, 아니면…정말로 새엄마가 될지도 모르잖아.”

“…알았으니까 제발 그만 해.”

나이토는 울 것 같을 얼굴로 더듬더듬 말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얼굴을 아래에서 바라보았다. 꿀이 뚝뚝 떨어질 법한 자색 눈이 희미하게 웃었다.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아버지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나이토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며 알토를 보았다. 알토는 아버지와 형에게서 흐르는 묘한 분위기에 마른 침을 삼켰다. 강압적이지만 다정한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휘둘리는 형을 보자, 왜 아버지가 저렇게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하얀 얼굴을 붉히고, 아랫입술을 질끈 깨무는 형은 같은 남자가 봐도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새삼스럽게 아버지와 형이 키스하던 장면을 떠올린 알토는 헛기침을 했다. 체구가 그리 작지 않지만, 아버지에게 폭 안겨서 키스를 하고 헐떡이던 형은 너무 야했다. 간혹 아버지의 허락을 받기 위해서 서재나, 침실에 갈 때면 형의 신음소리가 문틈에서 들렸다.

울음을 애써 삼키려고 억눌렀지만, 그걸 비집고 들리는 색스러운 목소리가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쇳소리가 섞인 울음소리는 아프다고 울었지만, 끝은 점점 가느다랗고 달콤해졌다. 그걸 들은 아버지도 덩달아 흥분해서 형을 한계까지 몰곤 했다. 아버지의 거칠고 낮은 신음에 몹쓸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알토는 슬쩍 열린 문틈으로 보았다. 넓은 침실 중앙에 있는 침대에 아버지가 등을 보인 채 앉아있었다. 빛이 깃털처럼 허공을 가로지르며 내려와 아버지의 등에 앉았다. 근육이 역동적으로 꿈틀거렸다. 아버지의 넓은 어깨엔 형의 날씬하고 아름다운 다리가 걸쳐져 있었다. 아버지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상앗빛 다리가 허공에서 힘없이 흔들거렸다. 아버지의 상체는 우람해서, 형의 신체를 다 가리고 있었다. 보이는 건 형의 하얀 발바닥과 탄력 있는 종아리, 아버지의 커다란 손에 잡힌 손목이었다. 형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아버지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울 거나, 발가락 끝을 오므렸다가 피는 정도로 움직였다.

손목을 풀어주면, 형은 줄 끊긴 인형처럼 늘어져 있다가 느릿하게 움직여 아버지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제발……’

아버지에게 빌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들어주지 않았다. 그 손목을 잡고 다시 내리누르며 형에게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형이 울음을 터트리며 애원했다.

‘잘못했어요……제발, 아빠……아아……!’

다리가 재차 흔들렸다. 전보다 더 세게, 빠르게. 형이 시트를 썩은 줄을 잡듯 애타게 잡고 있는 게 보였다. 남자답게 떡 벌어진 어깨에 걸쳐져 있던 다리가 흘러내려 아버지의 팔뚝에 걸쳐졌다. 아버지는 아예 허리에 다리를 감게 하고, 엄청난 속도와 힘으로 성기를 밀어 넣었다. 그때마다 형은 잘못했다고 빌었다.

‘더 울어봐. 넌 울 때가 제일 예뻐.’

아버지의 달콤한 목소리에 알토는 입을 틀어막고 뒤로 물러났다. 그걸 잠시 보던 알토는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겁을 먹고 등을 돌려 도망쳤다. 형의 잘못을 알고 싶지 않았다. 형이 우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형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았다. 집안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아버지가 형이 있는 침실로 향할 때면 슬금슬금 피했다. 간혹 있는 사람들은 얼굴을 붉히며 푹 숙였다. 집안에서 비밀리에 붙인 일이라고 해도, 볼 때마다 당혹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날의 일을 떠올리던 알토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렸다. 정작 이 일의 장본인인 아버지는 혼란스러워 보이는 알토를 보며 깔끔하게 대화를 종결지었다.

“앞으로 아버지 애인으로 대해. 그러면 너도 편하겠지?”

알토는 창백해지는 형을 물끄러미 보다가 늘 그렇듯 무시하며 대답했다.

“네.”

결국 단단히 체했다. 나이토는 먹은 걸 모조리 토해냈고, 아버지는 화장실에서 열심히 등을 두들겨줬다. 변기에 매달리듯 엉겨 붙어 토하던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을 밀쳐냈다. 아버지는 탁, 소리 나게 밀린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았다. 나이토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었다. 입을 헹군 나이토는 세면대에 두 손을 짚고서 거울에 비치는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선명한 분노로 날이 선 눈을 본 아버지는 부드럽게 웃었다.

“내가 미워?”

“굳이 이렇게 할 필요는 없었잖아.”

잔뜩 갈라진 목소리를 여유롭게 듣던 아버지가 나이토의 어깨에 잡았다. 나이토를 당겨 뒤에서 꼭 끌어안은 아버지가 눈물이 날 정도로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렇게 안 해줬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데? 넌 정이 많아서 그런 거 못 하잖아. 그래서 내가 대신해준 건데,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차피 내 인생에 아빠밖에 없는 거 알면서…….”

잠시 말을 흐린 나이토는 거울 속 아버지를 보며 원망스럽게 말했다.

“왜 이렇게 잔인하게 대해?”

“잔인하다니.”

아버지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이토의 몸을 돌렸다. 나이토의 얼굴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아버지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잔인하게 대했으면 넌 걸어서 못 다녀. 힘줄 잘려서 방에 갇혀있었을걸. 내가 말 안 했나? 내가 널 얼마나 아끼는지.”

예전에 들었던 말이었다. 과거를 떠올린 나이토는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아버지는 구겨진 미간을 손가락으로 비벼서 펴주었다. 그는 젖은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한 말투로 나이토를 달랬다.

“알토는 잊어. 그 아이는 자신의 삶을 살 거야. 오히려 네가 어설프게 형으로 남아있으면, 알토는 혼란을 느낄 거야.”

“알아.”

아버지는 무릎을 굽혀 나이토와 눈을 일직선으로 마주치며 빙그레 웃었다. 미소가 너무 맑아서 나이토는 모질게 대한 아버지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아빠만 있으면 된다면서 왜 그렇게 심각해.”

나이토는 힘이 실린 다정함에 고개를 돌렸다. 거울 속 아버지가 천사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오래 볼수록 가슴이 견디기 힘들어 고개를 숙였다.

*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아인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XX바, X일 오후 4시.]

나이토는 아인다운 짤막한 문자에 슬쩍 웃었다. 옆에서 책을 읽던 아버지는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문자를 보고 실실 웃는 나이토가 신경 쓰였는지 아버지는 책을 덮고서 물었다.

“왜 웃어.”

나이토가 말했다.

“아인이 만나자고 해서.”

“아인?”

아인의 이름을 중얼거린 아버지가 짧게 웃었다. 책을 옆에 올려둔 아버지는 모로 누워 나이토의 배를 만졌다. 근육을 덧그리듯 매만지는 손길에 나이토는 순간 숨을 멈췄다. 아버지의 손이 느릿하게 올라와 촉촉하게 젖은 유두를 비틀었다. 잘 다 물렸던 입술에서 미약한 신음이 나왔다. 상체를 비틀자 아버지가 꾹 눌러서 눕혔다. 뜨끈한 숨이 유두에 닿았다. 유륜 전체를 감싸는 입술이 보였다. 아버지는 유두를 입에 넣고 살살 돌렸다. 나이토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눈가와 귀를 새빨갛게 물들이고, 색색 숨을 내뱉는 모습에 아버지는 눈만 접어 웃었다. 나이토는 초승달처럼 접힌 아버지의 눈매를 보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뭔가 진 기분이었다. 나이토의 눈망울에 패배감이 짙게 드리우자 아버지는 유두를 잘근잘근 씹었다.

“아…아파.”

나이토가 아버지의 머리를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손이 손목을 잡고 시트에 눌렀다. 아버지는 혀를 내밀어 유륜을 쓸었다. 신부님처럼 경건한 얼굴로 야한 행동을 하는 아버지가 얄미웠다. 한쪽 유두만 지독하게 괴롭히던 아버지가 남은 유두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아버지는 빨기 전, 나이토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자신을 잡아먹을 것 같은 자색 눈 때문에 입에 고인 침을 삼켰다. 불길함과 기대감이 뒤엉켜 전신을 짓눌렀다.

“빨아줘?”

저릿저릿하게 올라오던 쾌감이 뚝 끊기자 애가 탔다. 나이토는 약에 취한 것처럼 몽롱한 눈을 깜박이며 대답했다.

“응.”

나이토의 목소리에는 기대가 넘쳤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음란한 아들이 되어버렸다. 아버지의 숨이 유륜에 닿더니, 곧이어 적당히 따스한 입술이 유륜을 흡입하듯 빨아주었다. 옅은 분홍색 유두가 빨려서 끝부터 맑은 붉은 색으로 물들어갔다. 쪼옥, 쪽 빨아들이는 힘에 나이토가 저절로 다리를 벌리고 헐떡였다. 아버지는 유두만 빨아줘도 울음을 터트리는 나이토를 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버지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잘생긴 얼굴이 시야에 가득 찼다.

“왜 자꾸 울어.”

“못 참겠어…….”

나이토가 발을 시트에 비비적거리며 애타는 목소리로 매달렸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손목을 잡아서 아래로 당겼다. 아버지가 잡게 한 것은 나이토의 발기한 성기였다. 흥분으로 젖은 성기를 잡게 한 아버지가 나이토를 앞에 앉혔다. 멍이 사라지지 않은 허벅지를 잡아 벌렸다. 얼굴뿐만 아니라 분홍색 성기까지 붉게 물들이고, 헐떡이는 나이토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 갈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나이토 앞에 가까이 앉았다. 상체를 안아 올려 자신의 허벅지에 앉힌 아버지는 쿠퍼 액으로 번들거리는 자신의 성기를 갖다 대었다. 어린아이 팔뚝보다 두꺼운 성기가 자신의 성기에 닿자 나이토는 멍한 얼굴이 되었다. 아버지는 밭은 숨이 나오는 입술을 엄지로 슬슬 매만지며 말했다.

“어디 입으로 먹고 싶어?”

“…우읏.”

아버지가 나이토의 손을 벌려, 두 개의 성기를 잡게 했다. 손 안에 겨우 들어왔다. 아버지의 성기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저렇게 큰 게 내 몸에 들어왔다니. 이성을 잃은 얼굴로 생각을 하던 나이토는 두 손으로 성기를 감쌌다. 아버지의 성기와 자신의 성기가 맞대어져 비벼지고 있었다. 나이토는 약한 울음을 터트리며 아버지 어깨에 머리를 댔다. 아버지가 머리채를 잡아 들어 올렸다. 나이토가 손을 멈추자 아버지가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계속 비벼.”

나이토는 짧은 명령에 따라 두 손을 이용해 성기를 비볐다. 두 손에 들어오는 아버지의 성기가 뜨겁고, 단단해서 미칠 것 같았다.

빛을 받아 성기가 더욱 번들거려 보였다. 나이토는 딱딱한 막대 같은 아버지 성기를 애달프게 비비며 힘겹게 중얼거렸다. 손 안에 갇혀있던 자신의 성기가 위로 삐죽 솟아 쿠퍼액으로 번들거리는 귀두에 닿아 미끄러졌다. 안 그래도 예민해진 성기에 아버지의 성기가 지지대 삼아 마찰 되자, 간질간질하고 애타는 쾌감이 엉덩이를 시작으로 전신에 감전되듯 퍼져나갔다. 기둥을 타고 솟아오른 혈관마저 각인되듯 손바닥에 닿았다. 나이토는 성기로 비비는 것도 모자라 손을 이용해 마찰했다. 손과 성기가 서로 맞닿아 질척거리는 소리가 연신 쿨쩍거리며 울렸다.

“가, 갈 거 같아…….”

“안돼.”

아버지가 나이토의 성기를 꽉 잡았다. 사정이 막혀서 답답했다. 당장 배출하고 싶은데 아버지가 허락해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사정을 강제로 참고 있는 나이토의 얼굴을 보며 짓궂게 얘기했다.

“어디 입으로 먹고 싶냐니까.”

“아아…….”

나이토가 밀려오는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얼굴을 가렸다. 아버지가 얼굴을 가린 손을 내리자 원망으로 가득 찬 얼굴이 보였다. 나이토는 모를 것이다. 저런 얼굴이 아버지의 음심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눈가를 더욱 발갛게 물들인 나이토는 아버지의 어깨를 잡았다. 애교를 부리듯 아버지의 입술에 짤막한 키스를 남기며 나이토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래 입으로 먹고 싶어요.”

음란하기 짝이 없는 말에 아버지의 입술 끝이 올라갔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성기를 잡은 손을 풀어주었다. 나이토가 얼굴을 가리고서 사정했다. 아버지의 손에 묽은 정액이 묻어나왔다. 그 정액을 손 안에 모은 아버지는 나이토의 몸을 뒤집었다. 나이토가 시트에 뺨을 대고서 눈을 감았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구멍을 헤집는 게 느껴졌다. 입구의 주름 하나하나마다 나이토의 정액을 묻혔다. 입구에 묻은 자신의 정액이라니. 생각만으로 머리가 아찔해졌다. 아버지는 손가락 세 개를 넣어 내벽을 긁어 내렸다. 빠듯하게 맞물린 내벽이 묘하게 아팠다.

“아!”

그것으로도 충분했는데, 아버지의 손가락이 더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내벽이 한계까지 팽팽하게 벌어졌다. 주름이 미끈하게 펴졌다. 통증으로 나이토의 멍 든 허벅지가 파들파들 떨렸다.

“몇 개 들어간 줄 알아?”

“모, 모르겠어……아파…….”

나이토가 통증에 울먹거리자 아버지가 손가락을 빙글 돌렸다. 분명히 아파야 했는데. 아픔보다 안에서 쾌감이 소용돌이치듯 올라왔다. 나이토는 빠르게 당도한 저릿한 느낌에 입을 벌렸다. 흐윽, 하고 우는 소리에 흥분이 있었다. 아버지는 손가락 세 개, 그리고 여유롭게 놀고 있던 손가락 두 개를 더 넣었다. 양쪽 손의 손가락들이 들어가 도합 다섯 개나 들어간 것이다. 아버지는 그것으로 모자라 구멍을 조금씩 넓혔다. 구멍이 벌어져 붉게 달아오른 내벽이 살짝 보였다. 아버지는 성기를 기다리는 내벽을 보며 느리게 손가락 다섯 개를 엇박자로 움직였다. 처음에는 손가락 세 개가 밀고 들어와 내벽을 찔렀다가, 빠져나감과 동시에 두 개가 들어와 내벽을 긁어 내렸다. 나이토는 각기 다른 방향과 박자로 내벽을 괴롭히는 손가락에 시트 자락을 부여잡았다. 손등에 핏줄이 융기했다. 입이 벌어지며 타액이 흘렀다. 손가락으로 사정할 것 같았다. 미칠 것 같은 쾌감에 발가락이 곱아들었다. 쾌감을 느낄 때마다 내벽의 조임은 더욱 세졌다. 아버지의 손가락 마디가 내벽을 누를 때마다 나이토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흐느꼈다.

“아, 아아……그, 그만!”

“정말 그만해주길 바라는 거야?”

웃음기가 배인 목소리가 들리더니 내벽을 들쑤시던 손가락의 움직임이 멎었다. 자신을 괴롭히던 쾌감이 아주 천천히 사그라졌다. 오려던 오르가즘이 멈추자 안달이 났다. 나이토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가 흥분한 성기를 잡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초점이 흐릿해진 나이토의 흑청색 눈을 보면서 귀두부터 성기 중간 지점까지 넣었다. 가장 두꺼운 부분을 구멍이 오물오물 조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애석하게도 쭉 빼내고 재차 성기를 찔러 넣었다. 길고 단단한 것이 내벽 주름을 펴주며 들어올 것 같았는데 계속 감질나게 입구에서 들락날락거렸다. 아버지의 의도를 몰라 나이토가 어리숙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이나 중간까지 넣었다가 빼며 나이토를 괴롭혔다.

“뭐가 먹고 싶어?”

아버지가 귀두를 빠르게 넣었다가 빼며 물었다. 나이토는 울음을 삼키며 힘들게 말했다.

“…뭐라고 말해야 넣어줄 거야.”

“네가 생각해봐. 내가 뭐라고 해야 이걸 넣어줄까.”

입구에서 빙글빙글 맴도는 성기를 뭐라고 지칭해야 할까. 나이토는 간지러운 내부를 억지로 인내했다. 마땅한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고민하던 나이토는, 포르노 속 배우처럼 음란한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버지 좆을…안에 넣어주세요.”

“착한 아들이네.”

아버지의 성기가 내부에 푸욱 꽂혔다. 둥근 몽둥이가 꽂힌 것처럼 내벽이 얼얼하게 아팠지만 그 얼얼함 속에는 나이토가 기대하던 쾌락이 있었다. 까슬까슬한 음모가 닿을 정도로 아버지의 삽입이 깊었다. 저릿저릿한 감각이 손끝까지 퍼졌다.

하지만 아버지는 넣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이토가 이를 악물고 뒤를 보았다. 아버지가 판판한 배를 양손으로 꽉 잡고 있었다. 마치 섹스 전, 준비 자세 같았다. 아버지는 허리를 손으로 은근히 잡으며 말했다.

“또 뭘 해줄까?”

나이토는 시트에 얼굴을 묻었다. 눈도 쾌감에 달궈진 듯 뜨거웠다. 열이 고인 눈을 깜박거렸다. 온몸이 열기에 절인 듯 무거웠다. 가장 괴로운 건 배에 끓고 있는 쾌감이었다. 이 쾌감의 폭력성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몇 번이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놓았던 나이토는 수치심을 억눌렀다. 이미 한 번 커다란 일을 겪었더니, 이런 일은 조금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나이토는 손바닥을 시트에 대고 상체를 일으켰다. 접합이 좀 더 깊어지길 바라며 나이토는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망가져도 좋으니까……박아주세요.”

말끝에 울음이 맺혔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말대로 망치로 못을 박듯 성기를 넣었다. 숨이 멎을 정도로 강한 힘에 상체가 위로 밀렸다. 아버지는 위로 올라가는 나이토의 상체를 잡아당겼다. 아버지의 미소가 거칠어졌다. 좀처럼 다듬어지지 않는 미소였다. 귀족의 세계에 진입하기 전 아버지 같았다. 저 미소를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주 어렸을 적, 아버지가 보여주던 풋내 나는 미소였다.

“망가지면 안 되지. 난 아들이랑 오래 하고 싶거든.”

아버지가 빠른 템포로 안을 푹푹 쑤셨다. 예민한 부근만 건드리는 성기에 나이토는 숨을 들이마셨다. 배꼽 밑까지 들어온 성기가 바로 나가지 않고 그곳을 잘게 쳐올리자 쾌감이 연속적으로 올라왔다.

“아, 아아! 앗! 조, 조금만…천천히…하으읏!”

“정말 천천히 했으면 좋겠어?”

아버지가 어린애들처럼 키득거렸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일부러 귀두를 매만졌다. 앞과 뒤가 동시에 만져지자 나이토는 벌벌 떨었다. 파도에 쓰러지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린 나이토는 시트에 누워 무력하게 흔들렸다. 내벽의 조임이 아버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조여들기 전에 파고드는 힘에 울 수도 없었다. 울음이 터질 수 없도록, 아버지가 나이토의 내부를 무작정 쑤셨다. 종마가 달려드는 것 같은 힘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상체만 침대에 걸쳐져 있고 하체는 바닥에 있었다. 무릎을 바닥에 댄 상태로 상체가 침대에 엎드려져 있었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허리를 잡고 열심히 성기를 박아대는 중이었다. 찌걱거리는 야릇한 소리가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수치심에 귀가 또다시 붉어졌다. 아버지는 붉어진 귀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더니 상체를 숙여 귀를 물었다. 따끔하면서도 기분 좋은 통증에 나이토가 인상을 찡그렸다. 하윽, 하고 밭은 신음을 낸 나이토가 눈을 느리게 감았다. 지쳤는지 감은 상태에서 신음을 흘렸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여 이번에 입술을 물었다. 나이토의 신음소리가 아버지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나이토가 입을 벌려 아버지의 혀를 반기자, 아버지는 나이토의 입술을 쪽쪽 빨았다. 무지막지한 힘에 입술과 혀가 빨렸다. 펠라를 한 것도 아닌데 입이 헐 것 같았다.

“아!”

아버지가 또다시 자세를 바꾸었다. 침대에 상체만 눕히고 다리를 활짝 벌렸다. 눈 부신 빛이 눈 위로 여과 없이 쏟아져 내렸다. 나이토는 부끄러움에 팔로 눈을 가렸다. 그걸 두고 볼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나이토 손에 깍지를 끼고 시트에 눌렀다. 빛을 등진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꽤 격렬한 섹스로 아버지의 머리가 젖어서 흘러내렸다. 귀족의 표본처럼 우아하게 웃던 아버지의 얼굴에서 인내심이 없는 남자가 보였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인내심이 사라지는 아버지를 보자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아버지가 철없는 아이 같은 면모를 보일 때면 정말 아버지가 자신의 남자처럼 느껴졌다. 나이토는 깍지를 풀고 아버지의 뺨을 매만졌다. 정신없이 뺨을 매만지고, 아버지의 코와 입술을 쓸어 만지던 나이토가 고개를 들어 올려 키스했다. 혀가 끈끈하게 얽혔다.

아버지가 입술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서 볼이 뜨끈뜨끈해졌다. 나이토는 느릿하게 입술을 떼내었다. 키스로 인해 붉어진 아버지의 입술을 혀로 핥았다. 아버지는 고양이처럼 안겨오는 나이토를 적극적으로 안았다. 아버지 품에 안기자 접합부에서 끈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삽입이 더 깊어졌다. 배 안이 전부 아버지의 것으로 가득 찼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고환이 찰싹거리며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아버지의 어깨에 뺨을 댔다. 아버지가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이 뜨거워.”

“응…….”

마디가 툭 튀어나온 검지가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하게 펴진 입구를 매만졌다. 슬금슬금 올라오는 쾌락에 나이토는 아버지의 어깨에 이마를 비볐다. 뜨겁게 달아오른 나이토의 숨이 아버지의 어깨에 부딪혀 흩어졌다.

“여기도 뜨거워.”

“으읏!”

아버지가 허리를 쳐올리자 쾌감이 찌르르하고 울렸다. 허벅지의 여린 살이 쓰리고 아파 왔다. 너무 오래 벌리고 있어서 그런지, 당겨왔다. 내일이면 근육통에 시달릴 것 같았다. 내일 아인과 만나야 하는데, 제대로 걸을 수 있을까.

나이토는 울먹거리며 고민했지만 고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버지는 침대로 나이토를 안고 올라왔다. 한 번 사정한 내부는 축축하게 젖어 아버지의 성기가 무리 없이 오갔다. 아버지의 성기가 빠져나갈 때, 탁한 정액이 같이 따라 흘러내렸다. 성기로 흘러내린 정액을 훔친 아버지가 말랑해진 내부로 쑥 들어왔다. 허전한 내부를 성기가 금방 채워주었다. 아버지는 나이토를 허벅지 위에 앉혔다. 나이토의 눈물이 아버지의 쇄골에 빗방울처럼 떨어졌다.

“힘들어…….”

아버지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아버지는 빳빳하게 서서 꺼덕거리는 나이토의 성기를 잡아챘다. 나이토가 앓는 소리를 냈다.

“아버지 좆 먹고 싶어서 안달 난 주제에.”

저속한 말은 내뱉는 아버지의 입을 나이토가 붉어진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버지가 허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나이토는 토막 난 신음을 내질렀다.

“앗, 아아, 흐으…아!”

“맛있어?”

아버지가 잇새로 신음을 흘리며 물었다. 나이토는 눈물로 흥건해진 눈을 떴다. 풍성한 속눈썹에 눈물이 맺혀 빛을 받자 반짝거렸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버지의 손이 얼굴을 만져주자 마음이 놓였는지 나이토가 아버지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오목한 부분에 뺨을 댔다.

“아빠 좆 맛있어?”

나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눈가를 발갛게 물들인 나이토를 보며 웃었다. 울음을 겨우 멈춘 얼굴이 야했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쌀 거 같았다. 사정을 잠시 늦춘 아버지는 나이토를 반듯하게 눕혔다. 양쪽 다리를 벌려 어깨에 걸쳤다. 나이토의 허리를 높게 세우고, 성기를 위에서 아래로 쑤셔 넣었다. 내벽이 단숨에 쓸리는 느낌에 나이토가 눈을 감았다. 아버지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서 나지막이 말했다.

“넌 너무 잘 느껴.”

나이토가 기운 없는 손을 뻗어, 아버지 손등을 매만지며 부탁했다.

“그만 해주세요…….”

“이제 한 번 쌌잖아.”

성기가 거의 직각으로 쑤셔오자 내벽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허리가 무리하게 당겨져 힘들었다. 어느 때보다 붉게 부은 구멍이 힘겹게 보였으나 아버지는 멈추지 않고 푹, 푹 쑤셨다. 나이토가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쾌감이, 이 밤이 무서웠다. 쾌감이 임계점을 넘었다. 들끓는 쾌감에 자신이 졌다. 나이토는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나 내일 나가야 하는데…살살…….”

“알아.”

아버지가 성기를 귀두가 입구에 걸릴 정도로 빼내더니, 바로 박아 넣었다. 나이토의 성기가 거기에 맞춰 움직였다. 가느다란 신음을 흘린 나이토가 팔을 내렸다. 초점이 흐려진 흑청색 눈이 사랑스러웠다. 오롯이 자신만 보는 저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처럼, 자신에게 길들어서 버림받을까 봐 우는 눈빛이 사랑스러웠다. 아버지는 눈물로 젖은 나이토의 뺨을 손으로 쓸어 만져주었다. 잔인하게 구는 아래와 달리 녹아내릴 것 같은 손길에 나이토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울먹거렸다. 내보내 준다고 했으면서, 못 나가게 하려는 아버지의 심술이 느껴졌다.

“내일 일찍 와.”

아버지가 성기를 느릿하게 넣으며 말했다. 나이토는 축 늘어져 아버지의 성기를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성기를 빼내고, 나이토의 몸을 엎드리게 했다. 나이토가 부들거리는 손을 시트에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아버지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부위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손가락 피부에 닿는 이 미끈한 감촉이 좋았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여 목덜미를 잘근잘근 씹었다. 나이토가 초식동물처럼 바들바들 떠는 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손을 내려 나이토의 성기를 잡았다. 성기가 뜨겁게 손바닥에서 마찰했다. 부드럽지만 강인한 손에 쥐어진 성기가 금세 반응했다. 묽은 정액이 핏, 하고 터져 나왔다.

“우유 줄 테니까 맛있게 먹어.”

나이토는 고개를 숙인 채 끄덕였다. 약하게 흔들리는 고개를 본 아버지는 발정 난 짐승처럼 박아댔다. 나이토의 가느다란 신음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

“죽을 거 같아…….”

아침에 일어나자 나이토의 전신에 근육통이 엄습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지끈거리며 올라오는 통증에 시트에 누워 끙끙거렸다. 마치 몸살감기에 걸린 듯했다. 몸은 후들거리고, 머리는 아프고, 입안은 사막처럼 말랐다.

고작 섹스를 오래 했을 뿐인데. 어젯밤 일을 떠올린 나이토는 눈을 감고 느리게 숨을 내뱉었다. 고작이란 단어를 붙이기에 어젯밤 섹스는 너무 강렬했다. 그칠 생각을 안 하는 쾌감 때문에 머리가 저릿할 정도였다. 쾌감에 굴복해 아버지의 성기를 저속한 단어로 표현해 넣어달라고 말했던 자신이 떠올랐다. 나이토의 하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수치스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또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어디 아파?”

침대 구석에 웅크리고 누워 바들바들 떠는 나이토를 이상하게 여긴 아버지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나이토가 포갠 팔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들지 않자, 아버지는 근심 어린 얼굴로 나이토의 둥근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빨개진 목덜미를 보더니 입술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감기인가.”

“…감기 아니야.”

엎드려 누워있던 나이토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버지가 나이토 얼굴 옆에 손을 짚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가 가까워질수록 짙어지는 체취에 나이토는 좀 더 고개를 바짝 숙였다. 자신을 피하는 나이토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버지가 힘을 이용해 얼굴을 들게 했다. 나이토는 퉁퉁 부은 눈을 겨우 떠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잘 익은 사과처럼 붉어진 나이토의 뺨을 양손으로 감쌌다. 커다란 손에 얼굴이 다 잡혔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목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 나이토는 시선을 돌리고서 힘없이 말했다.

“물 좀 줘.”

아버지는 일어나서 잔에 물을 한가득 따라왔다. 목이 쓰려서 한 모금씩 나눠서 마셨다. 물을 마시고 나자 목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물 잔을 내려놓은 나이토는 자신의 사타구니를 보았다. 이상하게 쓰리고 아프다 했더니, 여린 살이 아버지의 거친 손길에 쓸려서 멍이 들어있었다. 무릎 아래쪽 살도 딱딱한 것에 눌린 자국이 남아있었다. 아버지가 정자세로 눕힌 후, 무릎을 잡아 누르기 때문에 생긴 자국이었다. 자국을 볼 때마다 연상되는 지난밤에 나이토는 민망함에 얼굴을 붉혔다. 몇 번이나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섹스였다. 나이토는 이불로 다리를 가린 다음,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나이토의 서슬 퍼런 시선에도 아버지는 능글맞게 웃었다. 미소가 얄미워 나이토는 옆에 있던 베개를 집어 매섭게 후려쳤다. 베개에 정통으로 맞은 아버지가 그답지 않게 아야, 소리를 냈다.

“적당히 하라고!”

순순히 맞아주는 아버지가 더 얄미워서 베개로 퍽, 퍽 때리자 아버지가 두 손으로 베개를 막았다. 몇 번 맞아주던 아버지는 이제 한계에 도달했는지 두 팔을 벌려 나이토의 상체를 와락 안았다. 그 상태에서 힘을 줘 나이토를 눕혔다. 아버지의 두꺼운 팔이 머리를 받쳐줘서 아프지 않았다. 이래서 아버지를 완전히 미워할 수 없었다. 한숨을 내쉰 나이토는 등을 돌렸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등에 배를 밀착한 상태에서 턱을 어깨에 댔다. 아버지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숨이 다 느껴지는 거리였다. 나이토는 벗어날 수 없게 깍지를 껴오는 아버지의 손등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몸처럼 크고 우람한 손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저 손은 나이토를 지배하고 있었다. 아빠의 칭찬이 듣고 싶어서, 아빠의 발치에서 맴돌았다. 그런 자신을 보면 아버지는 무심한 듯 보다가 한 번씩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잘했네.’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끔 자신을 보고 웃어주는 눈이 좋아서 몇 번 그랬었다. 아버지의 다정함은 무한할 것 같던 무심함과 폭력성에서 주어지는 단 하나의 빛줄기였다.

그래서 더욱 그 빛줄기에 매달렸다. 아버지가 주는 사랑이 달아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밤에는 자신을 임계점 이상으로 밀어붙이는 아버지가 미웠지만, 낮에는 다정하게 대해주는 아버지가 좋았다. 부정할 수 없었다. 나이토는 커튼을 비집고 들어온 햇빛이 아버지의 손등을 간지럽히는 걸 유심히 보았다. 움푹 팬 자리에 빛이 응고되었다. 잡히지 않은 손을 들어 올려 아버지의 손등을 슬슬 매만졌다. 합판같이 딱딱하게 느껴지는 손등이었다. 아버지는 그 손길이 좋았는지 고양이처럼 나른한 숨을 나이토의 뺨에 흩뿌렸다. 나이토는 옅은 담배 냄새가 섞인 숨에 인상을 찡그렸다.

“담배 끊어.”

나이토의 투정 어린 협박에 아버지가 소리 내서 웃었다. 듣기 좋은 우아한 웃음소리였다. 아버지는 나이토의 뺨에 짧게 키스를 하더니, 검푸른 눈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담배 끊는 게 여러모로 좋겠지? 나중에 애 가지려면…….”

나이토가 애 소리에 질색하며 아버지의 입술을 찰싹 때렸다. 아버지가 또다시 그답지 않게 아야, 소리를 내며 칭얼거렸다.

“그 소리도 그만해. 맨날 틈만 나면 그 얘기야.”

나이토가 감옥 같은 품에서 빠져나왔다. 허리가 지끈거리며 아팠지만, 언제까지 침대에 누워 아버지와 노닥거릴 수 없었다. 씻고, 밥을 먹고, 낮잠을 푹 자준 후에 아인을 만나러 가야 했다. 나이토는 침대에 걸터앉아 멀리 있는 전신거울을 보았다. 한눈에 봐도 심각한 상태였다. 하도 울어서 두 배로 부은 눈꺼풀과 헬쑥해진 볼, 멍과 야릇한 자국으로 얼룩덜룩한 상체까지. 누가 보면 성적으로 학대당한 줄 알 것 같은 몸이었다.

“얼굴 부기부터 빼고 가야겠네.”

어떻게 해야 짧은 시간에 부기가 빠지나. 인터넷 검색을 위해 휴대전화를 찾았다. 아버지는 애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나이토를 보다가, 뒤에서 끌어당겨 안았다. 아버지의 상체에 완전히 포박되었다. 나이토는 아버지 품에 안긴 채로 인터넷 앱을 눌렀다. 검색창을 누르려는데 메인 뉴스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뉴스를 클릭하자 뒤에서 가만히 있던 아버지가 한마디 거들었다.

“멜리셔스 아니면 쿤데넬이 그다음 대공이 될 거라고 예상하는 뉴스야.”

“아버지는 둘 중 누가 될 거 같아?”

나이토의 물음에 아버지는 잠깐 고민하더니 담담하게 답했다.

“아무래도 멜리셔스지. 쿤데넬은 신흥 귀족이잖아. 왕실은 아무래도 보수적인 집단이니까, 자기들이 더 오래 본 사람한테 대공 자리를 줄 거야.”

쿤데넬은 이국의 피가 섞인 여자로, 공작이 된 지 6년밖에 되지 않았다. 본래 아이작 조드릭의 일이 아니었다면 멜리셔스와 조드릭이 대공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싸웠을 것이다. 이 일로 쿤데넬이 대공이 되지 못해도 자신의 지지자들을 만들어 간다면 차기 대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쿤데넬도 그걸 생각하고 열의를 다 하고 있을 것이다.

정치에 대해 생각하던 나이토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생각보다 빨리 풀려난 거 같아.”

“그 정도로 넘어갔으면 여기까지 못 올라왔지.”

아버지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오로지 자기 능력만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아버지였다. 대접받지 못할 자리였으나 아버지는 오히려 그 지위를 살려 정치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영역을 넓혀가며 아버지는 왕실에 인정받는 날까지 온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아버지는 수완이 대단한 남자였다.

“아빠 사업은 누가 맡게 되는 거야?”

나이토는 뉴스에서 관심을 끄고 검색창에 부기 빼는 법을 쳤다. 아버지는 여전히 머리에 턱을 올린 채, 나이토가 검색하는 걸 지그시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외모에 신경을 쓰는 나이토를 사랑스러운 시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토한테 맡길 생각이야.”

“귀족이 되면, 가문은 누가 이어받게 되는데? 알토?”

“…생각 중이야. 누구한테 줄지.”

아버지의 손이 나이토의 아랫배를 매만졌다. 마치 그곳에 있는 다른 무언가를 원하는 듯, 움직임이 단호했다. 하지만 나이토는 검색에 열중하느라 아버지의 손길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이토를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아빠 성격상 타인한테 줄 것 같진 않은데. 입양을 할 생각도 없잖아. 나도 딱히 가문을 이어받고 싶지 않고.”

“방법이야 차차 생각하면 되는 거고.”

아버지는 은밀하게 만지던 것을 멈추었다. 그는 나이토의 머리카락이 엉망이 될 정도로 세게 만지더니, 가볍게 한마디 했다.

“밥 먹게 내려와.”

“아파서 못 내려가.”

나이토가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아버지가 정돈이 안 된 머리를 손으로 대충 정리했다.

“알았어. 가져다줄게.”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나이토는 짧게 웃었다. 낮에는 자신의 말 하나에 눈치를 살피고, 비위를 최대한 맞춰주는 아버지가 묘하게 귀여웠다.

*

아버지는 쓸모없는 친절을 베풀었다. 아픈 나이토를 배려해 직접 아인과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데려다준 것이다. 나이토는 멀리 보이는 고급 바를 보았다. 수도 번화가에 위치한 바는 소규모로 운영되는 고급 바였다. 아인이 말해준 곳을 말했을 때, 아버지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널 뜯어낼 작정인가 보네. 하여간 있는 애들이 더 하다니까…….’

‘원래 그런 애야.’

나이토의 덤덤한 설명에 아버지는 말없이 카드를 내밀었다. 아버지 명의로 된 한도가 없는 카드였다. 당연한 듯 아버지 카드를 받아든 나이토는 조수석 문을 열었다. 막 나가려는데, 아버지가 어깨를 붙잡았다. 고개가 자동적으로 돌아갔다.

부딪힌 것은 아버지의 입술이었다. 오늘 담배를 피우지 않았는지, 아버지 입에서는 담배 냄새가 옅었다. 아버지는 집에서 하던 것과 다르게 몽글몽글한 키스를 했다. 마치 첫 연인들이 하는 것 같은 어설픔마저 느껴졌다. 입술을 전체적으로 한 번 빨아주는 게 다였다. 키스로 인해 희미한 열기를 느낀 나이토가 더 한 것을 갈망하는 눈빛을 보내자 아버지는 그저 웃기만 했다. 아버지는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나이토의 입술을 엄지로 닦아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심한 건 집에서 해야지.’

아버지의 농담 아닌 농담에 나이토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안 할 거야.’

‘술 마시지 말고.’

잔소리가 길어지려는 것 같아 황급히 얘기했다.

‘데리러 오지 마. 혼자 갈 수 있으니까.’

문을 닫으려는데, 그 순간 떠오르는 게 있었다. 나이토는 거의 닫혔던 문을 살짝 열고서 허리를 숙여 아버지를 보았다. 여전히 도로에 차를 세우고, 나이토를 보고 있던 아버지는 아들의 무감한 시선에 다정하게 웃었다.

‘왜?’

‘담배 안 피웠어?’

뜬금없는 물음에 아버지는 핸들을 가볍게 두들겼다. 그는 나이토를 물끄러미 보더니 더없이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아들이 끊으라고 하는데 끊어야지.’

‘잘 생각했어.’

아버지에게 웃으면서 잘했다고 말해주자 아버지가 행복하게 웃었다. 눈이 초승달처럼 예쁜 선을 그리고, 입술 끝이 한없이 위로 올라갔다. 얼굴에 스민 행복에 나이토는 가슴이 간질거려 아버지 얼굴을 오래 볼 수 없었다. 나이토는 빠르게 문을 닫고 바로 걸어갔다. 바는 지하 1층에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자, 신분증을 검사하는 자가 있었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내부로 들어갔다. 이른 시간인데 바는 제법 사람이 많았다. 나이토는 한껏 치장한 아인을 발견했다. 검은 모직 코트에 아이보리색 스웨터를 입은 아인은 꽤 잘생긴 청년이었다. 아인에게 손을 흔들자 호박색 술을 마시던 아인이 피식 웃었다. 미소도 어른스러워졌다. 나이토는 입고 온 코트를 벗어 옆에 의자에 걸쳐두었다. 종업원이 다가와 메뉴판을 놓고 갔다. 나이토는 진지한 얼굴로 메뉴판을 살폈다.

“여기 뭐가 맛있어?”

나이토가 눈을 힐끔 올리며 묻자 아인이 메뉴판을 뺏어갔다.

“난 이게 맛있던데.”

아인이 가리킨 것은 타국에서 먹는 감자요리였다. 으깬 감자와 계란을 섞고, 각종 토핑을 올리는 샐러드에 가까웠다. 나이토는 감자요리와 아인이 마시는 술을 똑같이 주문했다. 애주가인 아인을 따라 하면 실패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나이토가 술 마시는 걸 지켜본 아인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술 마셔도 되는 거야?”

“알 게 뭐야.”

아버지는 술 마시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들을 생각은 없었다. 예전에도 술을 먹고 들어왔지만, 아버지는 별말 없었다. 잠이나 자라. 딱 그 말뿐이었다. 더군다나 자기는 성인이었다. 성인이 술을 마시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나이토는 아인을 따라 세공이 세심하게 된 유리잔에 얼음을 넣었다. 술을 따르자 특유의 알코올 냄새가 올라왔다. 손으로 잔을 흔든 후, 한 모금 마셨다. 처음에는 단맛이, 그다음 서서히 쓴맛이 올라왔다. 맥주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나이토가 새로운 맛에 눈을 반짝거리자 그걸 보던 아인이 웃었다. 그는 막 나온 감자요리를 수저로 떠서 나이토 입에 갖다 댔다. 나이토가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차가운 술과 적당히 뜨거운 감자요리. 완벽한 조합이었다. 나이토는 흐물흐물 풀린 얼굴로 웃었다. 친구 얼굴에 감도는 편안한 미소에 아인은 의자에 상체를 기댔다. 그도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술을 연거푸 마셨다. 단숨에 술을 한 잔 비운 아인은 나이토가 시킨 술을 잔에 따랐다.

“왜 한 잔만 주문한 거야? 아예 병을 시키지.”

나이토의 물음에 아인이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네 돈으로 시켜야지. 너, 나 마음고생 시킨 거 생각하면 더 사줘야 해. 알았냐?”

아인의 협박에 나이토가 백기를 들었다. 두 손을 들어 항복 표시를 한 나이토는 술을 느릿하게 마셨다. 홀짝거리다 보니 어느새 술이 반이나 줄었다. 상당히 독한 술이었는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입은 알코올에 지배된 듯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차갑고 쓴 게 들어가면 술이구나, 싶었다.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던 아인은 긴장이 풀린 나이토를 보며, 그동안 묻고 싶었던 걸 꺼냈다.

“잘 지냈냐.”

“그럭저럭.”

“이제 가출은 생각 안 해? 너 가출하고 싶어서 몸 달아있었잖아.”

노골적인 물음에도 타격을 받지 않았다. 나이토는 수저로 다 식은 감자요리를 펐다. 입에 넣고 덜 으깨진 감자를 이로 뭉갰다. 술의 떫고 쓴맛을 요리가 중화시켜주었다. 나이토는 수저를 소리 나지 않게 테이블에 내려놓고서 아인을 응시했다. 아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많았다. 그러나 막상 얼굴을 보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레이얀을 밀어냈던 것처럼 아인과도 어느 정도 적정선을 지켜야 했다.

아버지에게 다리를 벌리는 친구를 이해해 줄 사람은 없을 테니까. 술기운이지만 자신의 처지는 확실하게 인식했다. 자신이 이 정상적인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아버지가 필요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안락한 세계에서 살아야 했다. 그 세계를 벗어나면, 제정신으로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 아버지와 떨어졌을 때는 몰랐지만, 레이얀을 밀어내기 위해 아버지를 선택했을 때 확실히 느꼈다.

나이토는 어둠 속에서 잘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흔적을 눈으로 좇았다. 소매를 들추면 아버지의 손자국이 보일 것이다. 타인에게 차마 보여줄 수 없어 일부러 소매가 긴 옷을 입고 온 것이었다. 다른 손으로 손목을 매만진 나이토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괜찮아. 아버지랑 타협했거든.”

“그래? 다행이네.”

아인이 무신경한 어투로 대꾸했다. 아인은 술을 반이나 마신 후에 나이토를 지그시 보았다. 확실히 뭔가 분위기가 변했다. 예전에는 사람을 잘 믿지 않는, 버림받은 강아지 같았으나 지금은 누구를 보아도 꼬리를 흔들 강아지 같았다. 레이얀과 사귈 때도 마음을 놓지 못하던 나이토였다. 아버지와 타협했다고 해서 저렇게 변할 애였나. 과거의 나이토를 더듬어 생각했다.

그것으론 뭔가 부족했다. 고민하던 아인은 짓궂은 얼굴로 웃으며 물었다.

“너 애인 생겼지?”

“어?”

정곡이 찔린 나이토가 식은땀을 흘렸다. 입을 다물고 침묵을 유지하던 나이토는 아인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렇긴 한데…….”

“야, 애인이 잘해주나 보다. 너 눈빛이 변했어.”

“그래?”

나이토가 달아오른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모호하게 웃었다. 아인은 다 먹은 요리를 치우고, 새로운 요리를 주문했다. 이번에는 버터 새우구이였다. 요리와 어울리는 또 다른 술을 주문했다. 종업원이 갈 때까지 기다리던 아인은 턱을 괴고서 나이토를 음흉한 눈으로 보았다. 아인의 눈빛이 너무 야릇해서 나이토는 시선을 오래 마주칠 수 없었다. 다 빈 술잔을 매만지며, 어서 종업원이 오길 바랐다.

“레이얀하고 헤어지고 만난 거야?”

“아, 응.”

사실대로 말하면 아인이 술을 얼굴에 뿌리고 뺨을 때릴 것 같아 애써 태연하게 대답했다. 술기운 때문에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한 아인이 느물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둘이 오래 사귀었잖아. 안 맞거나, 지겨워지면 헤어지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눈치를 보냐?”

레이얀과 나이토가 헤어진 이유를 나름대로 추측한 듯했다. 딱히 정정해줄 생각이 없었기에 나이토는 묵묵히 테이블을 보았다. 아인은 나이토가 얼굴을 숙인 터라, 얼굴에 스치고 지나가는 죄책감을 알아내지 못했다. 나이토는 잔에 맺힌 물기를 닦아냈다. 뭐라도 해야, 이 어색한 분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치가 빠른 듯하면서도 이런 데에서는 무신경한 아인이 제멋대로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너희 아버지 때문에 오래 못 갈 줄 알았어. 아니, 너희 아버지뿐만 아니라 레이얀 어머니 성격을 생각해도 둘이 계속 사귀는 건 힘든 일이었어.”

“…그래?”

나이토가 드디어 고개를 들고 물었다.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던 아인은 메마른 웃음을 지었다. 다소 씁쓸한 미소였다. 연기를 느리게 빨아들인 아인은 연기와 함께 말을 뱉어냈다.

“걔네 어머니를 좀 아는데, 무서운 분이야. 괜히 그 자리를 오래 지키고 계신 게 아니라고…….”

담뱃재를 털어낸 아인이 공허한 눈을 깜박였다.

“그 정도면 오래 사귀었지. 헤어질 때도 됐어. 원래 죽고 못 사는 부부들도 안 맞으면 바로 이혼하는 세상인데.”

나이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아인은 갑자기 상체를 일으키더니, 나이토의 볼을 쭉 잡아당겼다. 나이토가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자 아인이 방정맞게 웃으며 말했다.

“야, 좀 환하게 웃어라. 이제 고작 21살이면서 늙은이처럼 웃을래?”

엉성한 발음으로 알았다고 하니 아인이 손을 놓아주었다. 술기운 때문에 힘이 잔뜩 들어가, 볼이 아팠다.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종업원이 와서 새우요리와 술을 놓고 가서 입을 다물었다. 고소한 냄새가 나는 새우를 포크로 찔러 접시에 덜었다. 이미 손질이 다 된 상태라 바로 입에 넣어서 씹으면 됐다. 나이토는 새우를 돌려가며 식혔다. 아인은 나이토의 술잔에 얼음을 넣어주고, 술을 반 정도 따랐다. 주로 독한 술을 즐기는 아인을 따라 마시니 머리가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았다. 그래도 꾹 참은 나이토는 아인이 주는 술을 마셨다.

“그래도 다행이야.”

아인의 말에 나이토가 눈을 들어 올렸다. 아인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상체를 겨우 올리고서, 힘없이 중얼거렸다.

“네가 편안해 보여서.”

나이토는 울컥하는 마음을 달래려 술을 다급히 마셨다. 그것이 문제였다. 나이토는 속에서 올라오는 토기를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아인이 고개를 들어 나이토를 보았다. 나이토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입을 가린 채, 중얼거렸다.

“나, 토할 거 같아…….”

나이토는 화장실을 향해 달렸다.

*

먹은 걸 모조리 토한 나이토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술 때문에 파랗게 질린 나이토의 얼굴에 아버지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아들의 몸에서 나는 술 냄새에 인상을 찡그렸다. 마침 집에서 아버지와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하던 일릭과 다른 사람들은, 부자간의 묘한 기류에 서둘러 자리를 비웠다. 아버지는 일릭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의 정신은 오로지 아들에게 꽂혀있었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입을 양손으로 가리고 딸꾹질을 했다.

딸꾹.

“나이토.”

“으응.”

딸꾹.

계속되는 딸꾹 소리에 아버지는 이마를 짚었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비틀거리는 나이토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정말……누굴 닮아서 말을 이렇게 안 듣는지.”

술기운에 의식이 멀어지는데도, 용케 그 말을 들은 나이토는 심드렁한 어투로 대답했다.

“아빠 닮아서 그렇지.”

짜증에 가까운 말투에 아버지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나이토의 팔뚝을 잡고 욕실로 데려갔다. 아버지에게 팔뚝이 인정사정없이 잡혀 아팠다.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으나, 아버지의 힘을 이기기엔 나이토는 한없이 약했다. 아버지는 욕조에 물을 받았다. 나이토는 꾸벅꾸벅 조느라 바빴다. 욕실 벽에 머리를 대고 앉아 조는 나이토를 보며 아버지는 한숨을 연달아 내쉬었다. 욕조에 물을 다 받은 아버지는 나이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천천히 나이토의 뺨을 매만지자, 나이토가 눈을 느릿하게 떴다. 검푸른 눈은 오늘따라 맑게 느껴져, 아버지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멍하니 아들의 눈을 보던 아버지는 정신을 차리고 옷을 벗겼다. 속옷까지 모조리 벗긴 후, 손에 칫솔을 쥐여 주었다.

“치약은?”

멀쩡히 잘 짜준 치약을 보고서 묻기에, 아버지는 대꾸도 안 하고 칫솔을 입에 넣어버렸다. 쑥 들어온 칫솔에 멍하니 눈을 깜박이다가 배시시 웃었다. 어릴 때나 보았던 근심 하나 없는 미소였다. 나이토는 졸음이 밀려오는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이를 닦았다. 아버지는 옆에서 나이토가 쓰러지려 할 때마다 잡아주었다. 아버지의 품에 안긴 것과 다름없는 자세로 힘겹게 이를 닦은 후, 나이토는 아버지의 손길에 따라 욕조로 걸어갔다. 소매를 걷어붙인 아버지는 나이토의 몸에 물을 천천히 끼얹어주었다. 거품이 몽글몽글 올라온 욕조에 들어가니, 눈이 저절로 감겼다. 아버지는 수면으로 빠지려는 나이토를 잡고서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씻고 자야지.”

“왜?”

나이토가 올라온 거품을 손가락으로 터트리며 물었다. 욕조 턱에 상체를 기댄 나이토가 앞머리를 내려 유순해진 분위기의 아버지를 보았다. 엘시는 침묵을 유지하며 나이토를 내려다보았다. 아버지의 시선에 깔린 얄팍한 다정함에 자신감을 얻은 나이토가 거품을 뭉개며 중얼거렸다.

“예전처럼 물에 안 넣네. 그때도 아인하고 술 마시고 왔는데, 물에 넣었잖아……그때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머리채를 잡고 억지로 물에 입수시켰을 때를 떠올린 나이토가 흐느끼듯 웃었다. 눈물인지, 혹은 물인지 모를 액체가 얼굴에 흠뻑 젖어 흘러내렸다. 온수가 주는 아늑함 때문일까. 나이토가 눈을 나른하게 감고 턱에 완전히 기댔다. 젖은 손끝이 맑은 붉은빛으로 물들어, 섹스할 때처럼 흔들거리고 있었다. 흔들거림이 멎었다. 엘시가 타일에 한쪽 무릎을 대고 앉아 아들의 손을 꽉 잡은 것이다. 나이토가 눈을 반쯤 뜨고 앞을 보았다.

무감함을 위장한 매서운 자색 눈이 자신을 오롯이 보고 있었다. 그의 손이 뺨에 닿고,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내려와 입술을 만졌다. 그의 손이 나이토의 턱을 잡아 들어 올렸다.

“네가 말 잘 들으니까, 그렇게 할 필요가 없지.”

“…내 잘못이었던 거야?”

나이토가 술 때문에 더듬거리면서도, 절박하게 물었다. 아버지는 집요하게 아들을 보더니 싱긋 웃었다.

“알면서 왜 물어.”

나이토의 얼굴이 괴로움에 일그러졌다.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가 얼굴에 엉겨 붙었다. 나이토가 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눈을 감았다. 흘러내리는 눈물의 양이 많아졌다. 나이토가 아버지의 손바닥에 기대어 서럽게 울었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잘게 떨며 우는 모습이 절망 그 자체였다.

“다 내 잘못이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다들, 왜…나한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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