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칠흑같이 어두운 밤.
구름에 완전히 가려진 달은 한 줄기의 빛조차 내비치지 못했다. 대교 변을 따라 설치된 가로등마저 없었다면 새카만 하늘과 그를 비추는 강물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자정을 넘긴 시각, 검은색 고급 승용차 한 대가 한강 다리 위를 빠르게 달려 나갔다. 가로등 불빛을 지나칠 때마다 뒷좌석의 빈자리 위로는 검은 인영이 드리웠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곧게 솟은 이마와 우뚝한 콧대, 매끈한 턱선이 어둠 속에서도 뚜렷한 윤곽을 그려냈다.
그림자의 주인공은 하얀색 태블릿 PC를 손에 든 한 남자였다. 상석에 다리를 꼬고 앉은 그는 이렇다 할 표정 없이 태블릿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무심한 손길로 스크린을 슥 넘기니, 액정 화면 정중앙에 화질이 조금 떨어지는 동영상 하나가 놓였다. 길고 커다란 손가락이 동영상 재생 버튼을 누르자, 곧 단발머리를 한 여성 앵커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뉴스를 전하기 시작했다.
“다음 뉴스입니다.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오늘 새벽,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청사에서 현직 경찰관이 투신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자세한 소식 김대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오늘 새벽,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청사에서 40대 현직 경찰관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숨진 경찰관은 서울청 마약수사대 소속 한 모 경감으로 그가 발견된 마포 청사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한 씨는 새벽 2시경 경찰청 건물 앞 바닥에서 야간 근무를 하던 동료 경찰관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발견 당시 이미 숨진 상태였습니다.
‘당직 근무 중이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쿵! 하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뭔 소린가 확인하려고 나가 보니까 한 경감님이 쓰러져 계시더라고요. 떨어질 때 머리가 깨졌는지 바닥에 피가 흥건해서……. (이진위 경위 (가명))’
경찰은 타살의 흔적이 없고, 평소 한 씨가 과도한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아 왔다는 동료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스스로 옥상에서 투신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장에서 한 씨의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경찰 내부에서는 고인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 사망으로 인정하고 순직 처리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NBC 뉴스 김대한 기자였습니다.”
기자의 인사말을 끝으로 차내에는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남자는 재생이 끝난 동영상을 가만히 내려보다가, 이내 손을 들어 다음 페이지로 화면을 넘겼다.
[경찰의 날 특집 기사] 미래를 밝히는 젊은 형사들 (1)
2020-10-21 10:21:50
(경찰저널=김경찰 기자)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소속 한선우 경위(25)는 동료들 사이에서 ‘천연기념물’로 불린다. 경찰대 출신이 좀처럼 선택하지 않는 형사직을 스스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경찰대 출신 신임 경찰관들은 내근직 행정부서에서 승진을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형사직은 외근이 많고 근무 시간이 일정치 않으며 일의 강도도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순경 출신 형사들의 텃세도 만만치 않아 보통 경찰대 출신들은 선호하지 않는 직군이기도 하다. 실제로 현재 서울청 마약범죄수사대에서 근무하는 형사 중 경찰대 출신은 한선우 경위가 유일하다.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경찰로서 현장에 나가 직접 범인을 체포하는 일만큼 보람찬 일이 있을까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경찰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할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중략)
경찰대학 시절부터 특출났던 한 경위는 경찰대 34기를 차석으로 입학, 수석으로 졸업해 최우수 졸업생이 받는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한편, 한 경위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재직하다 2011년 사망한 고 한재민 경감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경찰의 길을 선택한 그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공정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경찰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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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찰 기자 ([email protected])
기사를 빠르게 읽어 내린 남자가 화면을 다시 위로 올렸다. 기사와 함께 게시된 사진이 액정 한가운데 놓이자, 남자는 그대로 손을 멈췄다. 사진 속에는 말간 눈동자를 가진 앳된 청년이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단정하게 정모까지 갖춘 경찰 제복이 말끔하다 못해 새뽀얀 그와 썩 잘 어울렸다.
사진 속 인물을 감상하던 남자는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태블릿을 두드리다가,
정의. 정의라…….
거슬리는 단어를 입안에서 굴려 보았다.
“그것참,”
비스듬히 올라간 입꼬리에서 비소가 새어 나왔다.
“성가시게 됐네.”
금세 흥미를 잃었다는 듯, 남자는 태블릿을 옆 좌석에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창턱에 팔을 걸친 그는 손등에 얼굴을 괴며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차는 어느새 다리를 벗어나 한강 변을 달리고 있었다.
그새 조금 이동한 구름 사이로 둥글게 뜬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 속을 달리는 검은 승용차 위로 새하얀 달빛이 어렴풋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