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redit Cookie (16/19)

Credit Cookie

The Desperado

202X년 12월의 어느 날

서울특별시 마포구 프리미엄 주거복합단지

‘Sun City, The Solarium’

두두두두-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치던 어느 겨울밤.

요란한 굉음과 함께 근방에서 가장 높은 빌딩 위에 헬기 한 대가 내려앉았다.

검은 정장 차림의 경호원 두 명이 헬기 앞으로 다가섰다. 두 사람의 호위 아래 철문이 열리고, 이내 헬기에서는 검은색 롱코트를 입은 장신의 남자가 내렸다.

뚜벅, 뚜벅.

어둠 속에서도 빛이 나는 검은 구두가 초록색 바닥 위를 시원하게 가로질렀다.

“오랜만입니다, 의원님.”

칼바람이 몰아치는 헬리패드를 흔들림 없이 걸어간 남자는 자신이 ‘의원님’이라 칭한 인물 앞에 섰다.

의원님은 초점이 잡히지 않은 눈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의 주위를 검은 정장 차림을 한 남자의 수행원들이 빙 둘러선 채였다.

한때나마 정말로 전 국민에게 ‘의원님’이라 불리던 그는 호칭이 무색할 정도로 형편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머리는 하얗게 세어 반백이 된 것은 물론이요, 눈은 퀭하고 볼은 푹 꺼진 것이 얼굴은 거죽만 붙었다 뿐이지 해골바가지와 다를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정기를 잃어버린 그는 제대로 된 사고마저 할 수 없는 모양인지, 코앞에서 사람이 말을 걸어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남자는 의원님의 무릎을 발끝으로 가볍게 톡 쳤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흐아아아……!”

의원님은 문득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 살려 줘! 다가오지 마! 으아아악!”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털썩 주저앉은 그는 앉은 자세로 뒷걸음질을 쳤다.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을 둘러싼 수행원에 뒤가 막히자, 그는 앉은 자리에서 사지를 오들오들 떨어 댔다. 남자가 마치 자신을 데리러 온 사자라도 되는 것마냥 그는 공포에 질린 눈을 하고 있었다.

“건강해 보이시니 다행이네요.”

“으아아아, 오지 마! 오지 마……!”

뚜벅, 뚜벅.

남자가 의원님에게 가까이 다가가니 그는 허공으로 손바닥을 내저으며 정신없이 도리질을 쳤다.

뚜벅, 뚜벅.

남자는 개의치 않고 그의 앞에 섰다.

“어떻게, 감방 생활은 좀 즐거우셨어요?”

“……!”

‘감방’이라는 단어에 의원님은 퀭한 눈을 크게 뜨고 곁눈으로 남자를 훔쳐보았다. 그 순간 잠시, 그의 눈에 괴이한 광채가 깃들었다.

“잘 지내시는 것 같더니, 뭐가 이렇게 급하셔서 벌써 나오셨어요.”

남자는 허리를 곧추세운 채 허공에 손바닥을 내보였다. 곧 남자의 손에는 작은 잭나이프 한 자루가 올려졌다. 빨간색 몸체를 가진 잭나이프 한가운데에는 하얀색 십자가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거기 계시는 게 더 편하지 않으시겠어요?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삼시 세끼 시간 맞춰 밥 주고 재워 주고, 때 되면 약도 챙겨 드리는데.”

약……? 의원님의 눈이 뎅그렇게 뜨였다.

“우리 의원님이 거기서 얼마나 계셨죠?”

남자는 날이 선 잭나이프를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며 말했다.

“한, 5년쯤 됐나요?”

“헉……!”

“씨발, 5년.”

“흐아아아악!”

휙! 뾰족한 칼끝이 의원님의 코트 자락 위에 꽂혔다. 의원님은 자지러지게 기겁을 하더니, 두 팔로 머리를 감싸며 바닥에 몸을 옹송그렸다.

“그 짓거리를 하고 빵에 처박힌 게 고작 5년이라니. 우리나라 법이 이렇게 좆같아요, 그쵸?”

뭐 해 보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 목숨을 끊은 것도 좆같았지만, 기껏 처넣었더니 별 같지도 않은 이유로 기어 나온 건 더 좆같았다.

“내가 이래서 법을 별로 안 좋아해요. 벌이 벌다워야 말이지.”

남자는 긴 코트 자락을 뒤로 한 번 펄럭이고는 의원님 앞에 몸을 굽혀 앉았다.

“아프다고 징징대면 내보내고, 용돈이랍시고 위에다 돈 몇 푼 꽂아 주면 풀어 주니 사람이 반성할 시간이 없잖아. 시간이.”

“흐으으으…….”

“안 그래요?”

“으아아악……!”

남자는 의원님의 옷자락에서 나이프를 빼냈다. 남자의 손에서 작은 나이프가 휘리릭 도니, 의원님은 땅을 향해 처박은 머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남자는 수십 번도 더 생각을 해 보았다.

양승준의 출소 소식에 선우는 생각보다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이미 벌을 받은 것이고, 형 집행 정지 또한 법이 그러한 것이니 그 결과를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기까지 속은 얼마나 썩어 문드러졌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어쨌든 겉으로 보기에는 제법 담담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저는 아니었다.

고작 5년으로는 한선우의 잃어버린 시간을 전부 다 보상할 수가 없었다.

“22년이에요. 그 어린 게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 눈물을 삼켜야 했던 세월이.”

남자의 눈짓으로 두 명의 수행원이 양승준에게 붙었다. 느닷없이 양팔이 붙들리며 상체가 일으켜 세워지니, 양승준이 놀란 눈을 하고 양옆을 두리번거렸다. 당황한 그를 뒤로한 채, 수행원들은 그의 오른손을 땅바닥에 펼쳐 놓고, 그의 입에는 구속구를 물렸다.

그리고 푹!

“끄으으으으으윽!”

남자의 손에서 뱅글뱅글 돌던 나이프가 그의 엄지손가락에 내리꽂혔다. 수행원에게 몸을 붙들린 양승준이 온몸을 비틀며 괴성을 내질렀다.

“당신이 내놓을 수 있는 건 이제 이 몸뚱이 하나뿐인데.”

남자는 손끝으로 나이프를 지그시 내리눌렀다.

“마침 이게 딱 스무 개더라고요.”

“끅! 끅! 끄으으윽!”

“해마다 이걸로 죗값을 대신하는 게 어떨까. 그동안 못 받은 약값도 정산할 겸.”

뼈인지 힘줄인지 모를 것에 막혀 칼날이 원하는 만큼 들어가질 않자, 남자는 칼자루를 손에 쥐고 나이프를 더 세게 꽂아 넣었다.

“끄아아아아악!”

그리고 한순간에 손가락에 꽂힌 것을 쑥 빼내니, 칼날에 딸려온 핏방울이 주위 바닥으로 튀었다. 이어 콘크리트 바닥 위에도 얇은 핏줄기 하나가 흘러내렸다.

엎치락뒤치락, 양승준은 붙들린 몸을 사정없이 뒤틀었다. 눈앞에서 짐승 한 마리가 요동을 쳐대자, 남자는 또 한 번 수행원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컥, 이내 양승준의 얼굴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와, 20년이면 진짜 많이 양보했다. 누군 22년을 이유도 모르고 고통 속에 살았는데.”

“흐아악, 흐악…….”

“내가 뼛속까지 장사치라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 안 하는데. 우리 의원님은 워낙 오래 봐 왔으니까 특별히 깎아 드리는 거예요. 아시죠?”

“흐으으…….”

양승준은 목덜미가 붙들린 채로 바닥에 엎어져 움찔움찔 몸을 떨어 댔다. 남자는 한껏 내리깐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칼날의 넓은 면으로 그의 볼을 톡톡 두드렸다.

“의원님.”

“학…!”

“우리 착하게 좀 삽시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정의 구현을 하고 있잖아요, 내가.”

“흡, 흐읍…….”

칼끝에 묻어 있던 피가 파들거리는 볼살에 묻어났다.

“이거, 이거. 잘 지키셔야 해요. 그래야 그 좋아하는 약도 계속하시지.”

남자는 칼끝으로 양승준의 오른쪽 손가락을 하나, 하나 가리키며 말했다. 그때마다 양승준은 히익, 히익하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했다.

뻔한 반응에 금세 시시해진 남자는 시큰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허리를 곧게 편 남자는 나이프를 수행원에게 넘기고 코트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건, 출소 기념 선물이에요.”

툭, 양승준의 눈앞에 하얀 가루가 담긴 비닐 팩이 떨어졌다.

“부디 즐거운 시간 되시길.”

“헉…!”

그와 동시에 붙들린 목이 풀어지자, 양승준은 바닥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뚜벅, 뚜벅. 미련 없이 돌아선 남자는 그새 시동이 꺼진 헬기를 향해 걸었다.

“아, 맞다.”

그러다 우뚝, 제자리에 멈춰 섰다. 남자는 가던 길을 되돌아 양승준 앞에 섰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어디 가서 뛰어내릴 생각 같은 건 하지 마세요.”

“…….”

양승준이 피가 묻은 두 손으로 비닐 팩을 쥐고 남자를 올려다보자,

“애가 너무 힘들어하더라고.”

남자는 싱긋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럼, 내년에 봅시다.”

뚜벅, 뚜벅.

다시 헬기로 향하는 남자의 입에서 언뜻, 상쾌한 휘파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데스페라도 (The Desperado)’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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