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mission 1.
창밖에서는 찌르레기가 우짖고 있었다. 그 소리에 맞추는 것처럼 개가 짖어 대는 소리도 섞인다. 아직 음색이 발랄한 걸 보니 어린놈이 짖나 보다.
무심히 창밖으로 시선을 주던 한무화는 왼쪽 옆에 앉아 있던 상원사범이 눈치라도 주듯이 으흠, 하고 헛기침하는 소리를 듣고는 다시 장내로 시선을 돌렸다. 멀리 새소리가 귀에서 사라지고 그 대신 바로 뒤에서 속달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정련의 정원사범님은 저 작자를 도대체 왜 부르신 거래? 격 떨어지게. 아무리 당신 직계 제자라고는 해도…….’
‘워낙에 아끼셨잖아. 무슨 짓을 저지르고 무슨 소문이 돌아도 말씀 한마디 안 하시고. 그나마 협회에서 서 사범 중원사범으로 승원시키지 않겠다고 결정했을 때 아무 말 안 하셨던 게 용치.’
별로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아도 들려오는 소리들을 흘려 버리며, 한무화는 한창 승단 선수 대표를 하나씩 호명하고 있는 단상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러다 단상 바로 앞, 한무화가 앉아 있는 체련 측 제일 앞자리의 맞은편에 있는 정련 측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뒷자리에서 들려온 그 속삭임의 주인공, 정원사범 한태일---한무화의 백부---의 첫째 직계 제자인 서정운이다.
아까부터 한무화를 보고 있었던 듯, 서정운은 불시에 한무화와 눈이 마주치자 일순 당황한 듯 눈을 껌벅거리다가 아차 싶은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공연히 물잔을 들어 목을 축이는 모습이 어딘지 거북해 보인다. 그는 한무화가 이 자리에 있을 줄---하물며 설마 요즘 한창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체련의 선수일 줄은--- 까맣게 몰랐던 눈치였다. 한무화는 그를 처음부터 알아보았었는데도.
한무화가 한국으로 와 처음 본산에 왔던 날, 그때 저 남자와 스쳐 지났을 때부터 한무화는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일부러 의식해서 기억하려 했던 건 아니다. 그저 본산의 그 오래고 낡은 집채들과 케케묵은 나무 냄새가 섞인 조용하고 묵직한 공기, 그런 것들에 퍽 잘 섞여 드는 사람이라고 문득 생각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뇌리에 남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뿐, 그 뒤로 딱히 기억에서 떠올릴 일은 없었다. 간간이 사람들이 옛일이나 아는 사람들 일, 돌아다니는 소문 따위를 이야기할 때 섞여 나오곤 했던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아아, 그 남자 얘기구나, 라는 정도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서 한강 근처에서 저 남자를 처음 마주쳤을 때---어느새 사라져 버린 강아지가 어디로 갔나 주위를 둘러보다가, 저만치 놀던 강아지가 문득 남자를 보더니 제 주인을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곧바로 그에게 뛰어가는 걸 보고 그리로 걸음을 옮기던 한무화는 곧 남자를 알아보았다. 첫날 본산에서 보았던 그 남자라고.
그러나 그 남자는 한무화를 기억하지 못했고, 한무화는 굳이 알려 주지 않았다. 일부러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일부러 말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그 뒤로도 몇 차례나 우연히---우연치고는 한강변에 나갈 때마다 매우 잦은 빈도수로--- 마주쳤지만, 남자는 여전히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고 한무화도 말하지 않았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정운입니다.’
조금 전, 대수련장 앞에서 그를 마주친 한무화가 자신을 소개하자 뚫어질 듯 자신을 바라보던 남자가 나직이 중얼거리는 걸 보며, 미리 말하면 좋았었을까, 하고 뒤늦게 생각했다.
설마 저렇게 망연한---마음 놓고 있다가 거칠게 얻어맞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을 할 줄은 몰랐다.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텐데, 아니, 스쳐 지나는 순간 잊어버렸을 텐데, 이상하게 그 얼굴이 뇌리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 한국 정무도 경량급 승단 대표, 현 서울 남부 지원 소속 2단 하성광, 앞으로.”
단상에서는 승단 대표 호명이 이어지고 있었고, 각 체급별로, 각 승단 단수별로 서른이나 되는 대표들은 하나씩 단상으로 올라갔다 내려오길 계속하고 있었다. 이제 거의 마지막 순서가 다 되었다.
올라간 선수는 승단서 수여자인 정원사범에게 꾸벅 인사하고, 뒤이어 그 앞자리에 앉아 있던 서정운에게도 꾸벅 인사한 뒤 단상에서 내려갔다. 저 선수도 저 남자가 가르쳤다는 제자 중 하나인가 보다.
“서른 중 넷이라…….”
문득 한무화의 옆에 앉아 있던 한수일이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에는 희미한 감탄이 배어 있다. 다른 이들이 저 남자를 두고 여러 험담을 속삭여도 못 들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그가 낮게 혀를 차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형님이 아낄 만도 하지.”
아쉽기도 하고 못마땅하기도 한 눈길로 맞은편을 바라보는 양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한무화도 서정운을 본다. 그러다 또 눈이 마주쳤다. 어느새 또 한무화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벌써 몇 번째였다. 우연히 한무화가 그쪽을 보면, 세 번 중 두 번은 꼭 눈이 마주쳤다. 그러면 남자는 금세 고개를 돌리곤 했다.
‘사람 다듬는 재주는 있다니까…….’
‘그러면 뭐 해. 저 독설에 끝까지 남아난 제자가 몇이나 된다고. 그렇게 욕 처먹고 남아 있는 놈들도 이상한 놈들이지. 전에 저 사람한테 두어 달 배우다 나온 녀석 얘기를 들었는데, 저 사람만큼 대하기 힘든 사람이 없다더라.’
다시금 뒤쪽 어딘가에서 흘러오는 소리들을 무심히 흘려넘기면서도, 한무화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저 남자와 근래 몇 번이나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대하기 힘들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는데. 아니, 오히려 스스로도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편안한 남자였다. 별반 타인에게 꺼낸 적이 없는 이야기도---일부러 감출 얘기는 아니라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곤 했다.
……그러고 보니 저 남자도 한무화에게 편하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처음 들어 본 말이라 뜻밖이었던 기억이 난다.
역시 사람마다 타인에게 느끼는 감정은 다 다른 법이라고 한무화는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에 승단식의 정해진 식순은 모두 끝났다. 이제 비공식적인 순서,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사범들끼리 점심 식사를 하면서 교류하고는 헤어지면 오늘의 일정은 끝난다. 한무화의 경우는 양아버지와 함께 다니니 저녁까지 손님치레를 해야 할 테지만.
“허허, 너랑 있으니 아주 편안하구나. 이렇게 사람이 많아도 네가 워낙 훤칠하니 사람들에게 치이지를 않아.”
대수련장에서 나가는 인파들에 섞여 걸음을 옮기던 한수일이 한무화를 보며 흐뭇하게 말했다. 이 자리에서 정원사범을 치고 다닐 만한 인물이 누가 있겠냐만, 양아들이 그저 뿌듯하고 흐뭇한 눈치다. “그렇습니까?” 하고 짧게 대답한 한무화가 출입구 가까이까지 오자 더욱 혼잡해지는 사람들을 가볍게 막아 낼 때였다.
막 출입구를 나서 바깥으로 나간 참에, 그 옆쪽의 다른 문으로 나온 한태일 일행과 딱 마주쳤다. 형제라곤 하지만 동시에 천적이기도 한 한태일과 한수일은 삽시에 표정을 굳히면서 “연세도 많으신 분이 일일이 승단서 주느라 힘드셨을 텐데 어서 식사하시고 쉬십시오, 형님.”, “오냐. 내년 승단식에는 단상에 오르는 체련 선수가 더 많기를 바란다.” 하고 뼈가 튼튼히 박힌 말들을 주고받는다.
그러던 차, 한무화는 한태일의 옆에 서 있던 서정운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시선을 돌리지 않는 서정운은, 한강변에서 종종 마주치곤 했던 때와는 달랐다. 한무화를 보면 늘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말을 걸곤 하던 그 기색이라곤 없이, 왠지 좀 난감한 듯, 곤란한 듯, 표정 없는 얼굴로 한무화를 마주 보고 있었다.
낯설다, 한무화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며 왠지 모르게 살짝 묵직해지는 기분으로 서정운을 바라보던 때, 문득 서정운의 눈썹이 아주 약간 올라갔다. 한무화를, 아니 한무화의 귓가 근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가 두어 걸음 걸어서 한무화에게 다가왔다.
“……?!”
서정운이 갑자기 체련 쪽으로 다가서자 일시적으로 사람들의 훤소가 줄어드는가 싶었다. 뭐지, 설마 폭력 사태로 번지는 건 아니겠지, 하고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들 속에서, 서정운이 한무화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한무화는 바로 앞으로 다가온 서정운을 지그시 마주 보았다. 아주 약간 시선이 어긋나 있는 서정운은 한무화의 귓가로 손을 뻗어---사람들이 ‘저대로 뺨이라도 후려쳐서 정련 선수가 체련 선수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싶은 눈길로 지켜보는 가운데--- 가볍게 한무화의 귓가를 건드렸다.
사락.
아주 희미하게 간질이는 기척과 함께 그 손길은 이내 도로 멀어진다. 그 손끝에 잡혀 있는 조그만 것은 민들레 씨앗이다.
한무화는 뚫어져라 서정운을 보았다.
언제부터 그의 귓가 머리카락에 걸려 있었는지 모를 민들레 씨앗을 떼어 낸 서정운은 후, 사람들이 없는 방향으로 씨앗을 불어 낸다. 씨앗은 이내 팔랑, 멀찍이 날아가더니 너울너울 대낮의 햇빛 속으로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봄바람에 날려간 것 같다.
한무화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별안간 봄바람이 불어 날려 버린 것 같다고.
동시에, 눈앞에 서서 자신을 살피는 이 남자가 저 표정 없는 낯선 꺼풀 아래로는 변함없이 한강에서 수차례 마주쳤던 그 낯익은 사람 그대로라는 걸 깨닫는다. 부드럽고 까만---강아지와 꼭 닮은--- 눈매도 변함없이 그대로.
“서정운 사범이 차림새에 신경을 많이 쓰시긴 하나 봅니다, 우리 한 선수 매무시까지 신경 써 주시고. 여자들이 좋아할 만하네요.”
한무화에게서 민들레 씨앗을 떼어 주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자신의 자리로 가서 서는 서정운에게, 저놈이 갑자기 뭔 짓인가 하는 눈으로 쳐다보던 체련의 사범 중 하나가 빈정거리듯 말했다.
서정운은 무심한 눈으로 그 사범을 쳐다보더니 “글쎄요, 별로 신경 쓰는 편은 아닌데, 차림새와 호감도가 딱히 비례하지는 않는 것 같더군요.”라고 무성의하게 대꾸했다. 그러다 빤히 그 사범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주욱 훑어보곤, “사범님께는 참 다행스런 일이겠습니다.”라고 덧붙인다.
사범이 울컥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막 무어라 하려 할 때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자자, 그만 식사들 하러 가십시다.” 하고 얼른 분위기를 수습하려 들었고, 정원사범들이 먼저 걸음을 홱 돌려 버리는 데에야 다른 사람들이 뒤를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한무화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몇 걸음 앞에서 걸어가는 서정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옆에서 걷는 한태일과 뭔가 얘기를 나누던 그가 웃는다. 저것도 낯익은 얼굴이다.
그때 문득 서정운이 뒤를 돌아보았고, 한무화와 눈이 마주쳤다.
서정운은 이제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드디어 한무화가 거기 있을 법한 사람이라는 걸 인식이라도 한 것 같다. 그러나 별다른 말은 없이 잠시 바라보던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렸고, 한무화도 마침 옆에서 말을 거는 양아버지에게 귀를 기울여야 했다.
멀리서 바람이 불어왔다. 봄바람치고는 제법 세차게 불어온 바람은 한무화를 한바탕 휘감고 지나간다.
그사이에 혹시 민들레 씨앗이 있지는 않았을까, 한무화는 무심결에 자신의 귓가에 손을 댄다.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는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던 감촉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