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pin-off. (13/28)

spin-off.

늦은 오후의 따끈따끈한 볕이 내리쬐는 뒤꼍에는 누렁이가 엎드려 강아지들이 엎치락뒤치락 노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꼍이 내려다보이는 툇마루에는 서정운과 한무화가 마주 앉아 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바로 바라보이는 대청을 지나가던 한호영은 얼음 동동 띄운 매실차를 홀짝이며 걸어가다 멈춰 섰다.

휴일이라 사람도 거의 없는 본산의 외당 구석에서 나란히 머리 맞대고 뭐 하나, 슬그머니 고개를 빼서 들여다보자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있다. 가끔 별당에서 할아버지와 바둑을 두곤 하더니 이제 둘이서 두나 보다.

멀어서 바둑판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굳이 볼 필요는 없었다. 사형이 이기고 있겠지. 여러모로 잘난 사형은 정무도 말고 바둑 프로 기사를 해도 될 사람이었다는 얘기도 들었었고, 웬만해서는 바둑에 지는 법이 없는 할아버지도 사형과 대국하면 늘 접전을 벌였다.

그래도 한무화도 가끔 비는 시간엔 홀로 바둑판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곤 하길래 저놈은 실력이 어떤가 물어봤더니, 사형이 ‘응, 금방 배우고 감각도 좋아. 정무도만큼은 아니지만 자질도 썩 좋고.’라고 말한 바 있다. ……즉 사형보다는 뒤처진단 소리다.

저놈은 사형한테 여러모로 배울 거 많아서 좋겠군.

사형도, 사람이 워낙 독하게 말해서 그렇지 다른 사람을 이끌어 주는 게 체질인 사람인데 여러모로 가르칠 보람 많은 놈이 생겨서 좋겠어. ……뭐 같이 있기만 해도 얼굴에 흐드러지게 웃음꽃이 피는 상대이니 뭘 한들 안 좋겠냐만.

왠지 좀 눈꼴이 시고 심술도 솟긴 했지만, 그래도 워낙 평화로운 휴일 오후이다 보니 그런 마음도 시들시들해졌다. 그냥 나른하니 졸린 것이 어디서 낮잠이나 잠깐 즐기면 딱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매실차를 홀짝 삼킨 한호영이 막 걸음을 돌리려 할 때였다.

한무화가 생각 끝에 바둑돌을 내려놓았고, 그걸 본 서정운이 빙그레 웃었다. 아, 저건 ‘참 잘했어요’의 웃음이다.

한호영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 거기에 놓을 줄 짐작하고 있었던 듯 서정운은 오래 생각지 않고 자신의 돌을 내려놓으면서 다른 손을 뻗어 한무화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응?

한호영은 걸음을 뚝 멈추고 눈을 껌벅이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한무화를 쓰다듬던 서정운은 곧 손을 거두었고, 한무화는 그런 줄 아는지 모르는지 바둑판을 내려다보는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앉은 마루 아래에서는 때마침 누렁이가 제 새끼의 머리통을 이쁘다는 듯이 싹싹 핥아 주고 있었다.

*

“무화, 머리 건드리는 거 싫어하지 않아요?”

“응? 아니, 안 그래.”

한호영이 묻자 서정운은 여상하게 고개를 저었다. 별로 얘기할 거리도 못 된다는 듯 얇게 썬 닭고기를 건조기 위에 가지런히 너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고기 몇 근을 사다 말려도 어린것들이 여섯 마리나 조롱조롱 있으면 한입거리라니까.” 하며 한숨을 폭 내쉬는 게 무슨 흥부가 따로 없다.

한호영은 마지막 한 봉 남았다는 닭 육포를 꺼내어 우물거리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이상하네……, 그놈 머리 건드리는 거 싫어할 텐데. 그새 바뀌었나? 아니면 그래도 저 가르쳐 주는 사람이라고 그냥 참는 건가?

지금도 기억나는 게, 한무화가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숙부가 계단에서 미끄러져 인대를 다치기 전, 손수 한무화를 갈고 닦아 보시겠다고 하던 무렵이다. 숙부가 중량급에서 유망한 체련 선수를 하나 데려다 본채 도장에서 한무화와 대련을 시켰고, 그 대련에서 한무화는 그 특유의 웅장하고 호탕한 한 판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때 본채 도장에서 개인 수련을 하고 있었던 한호영은 그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으아 저 괴물…….’ 하고 생각한 한호영과는 대조적으로 숙부는 당연히도 매우 기뻐하셨다.

‘하하, 하하하하, 우리 무화가 역시 기세가 훌륭하구나.’

흐뭇해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까치발 들어 한무화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한무화는 가볍게 고개만 기울여 인사를 대신하고는 잠시 묵묵히 숙부를 바라보다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피했다.

불쾌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명백하게 손길을 피하는 한무화를 숙부가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다가 ‘왜, 싫으냐?’라고 묻자 한무화는 ‘썩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무심히 말했다.

어른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데 버릇없이, 라고 생각하는 듯한 사범들도 몇몇 보였지만, 워낙 한무화가 어여뻐 보이는 숙부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눈치였다. 외려 ‘하하, 그래, 우리 무화가 참 시원시원하고 남자답지.’라고 영문 모를 칭찬을 하더니 더 기뻐하는 것이었다.

저래서 사람이 눈에 콩깍지가 씌면……, 하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돌아섰던 한호영이었다.

“…….”

그래, 분명 그랬던 기억이 있는데…….

한호영은 미심쩍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것 말고도 생각나는 건 더 있다.

한호영은 아버지가 워낙 눈에 불을 켜기도 하고 본산에서 같이 수련하기도 하니 좋으나 싫으나 한무화의 시합을 여러 차례 봤는데, 상대 선수와 엎치락뒤치락하면서도 손발이 머리에 스치거나 닿을라 치면 그전에 뿌리치곤 했고 간혹 상대가 머리 근처를 공격하기라도 하면 그 즉시 무서운 기세로 역공했다. 그런 뒤 가볍게 머리를 털어 내는 모습도 몇 번 봤다.

그런 경기나 대련을 몇 번 보는 사이에 한호영은 자연스럽게 한무화는 머리를 건드리는 걸 싫어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상할 건 없었다. 선수들마다 습관이나 마찬가지로 각자 남에게 닿는 걸 한결 싫어하는 부분이 있었다. 한호영만 해도 별다른 이유는 없었지만 누가 뒷목을 건드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머리 건드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야 흔하지 않은가.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간혹 누가 한무화를 보고 머리에 뭐 묻었다고 손을 뻗으면 ‘여깁니까?’ 하고 본인이 먼저 손을 대거나 하는 걸 보면서도 그래서 그러려니 했다.

한호영이 보아 온 바로는 한무화는 전반적으로 타인과의 신체적 접촉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타인이 본인을 건드리는 것에 대해서는 그나마 크게 개의치는 않지만 본인이 먼저 타인을 건드리는 일은 대련이나 연습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한호영은 준비한 닭고기의 반은 건조기에 넣고 나머지 반은 아주 살짝 간을 해서 채반에 올리면서 “어째 나 먹을 것보다 털 뭉치들 입에 들어갈 게 더 많지……?”라고 투덜거리고 있는 서정운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요즘 귀가하면 매일 밤마다 먹성 좋은 강아지들에게 바칠 육포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더니, 휴일에도 이러고 있다.

“…….”

생각해 보면 한무화는 머리 건드리는 걸 제외하더라도, 사범들이 연습을 시키거나 하면 그 말을 순순히 잘 따르긴 해도 본인 나름대로 판단해서 어느 정도는 걸러 듣는 편인데, 사형이 하는 말은 유난히 잘 듣긴 했었다. 군소리 하나 안 하고 시키는 대로 그대로 했었지. 그렇게 생각하면, 같은 맥락에서 사형이 뭘 시키든 머리를 쓰다듬든 그냥 얌전히 잘 따르나 보다 싶기도 한데…….

“그런데 호영아.”

“예?”

“그 마지막 봉지를 네가 다 먹으면 털 뭉치들은 내일 뭘 먹지?”

“응? 뭐 하루쯤 안 먹으면 어때요. 개 입만 입인가, 사람 입도 입이지. 아무렴 내 입이 소중하지 쟤들 입이 소중하겠어요?”

한호영은 비닐에서 육포를 마저 꺼내 움켜쥐며 말했고, 채반을 바깥 마루에 내놓고 돌아온 서정운은 고개를 기울이곤 한호영을 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중얼거리길,

“개 입도 아닌 것이 왜 나오는 소리는 개소리지?”

“…….”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네 입 하나가 노란 솜털 날리는 털 뭉치 입 여섯만큼 중요하다는 그 터무니없는 소리의 근거가 뭔지나 들어 보자.”

한호영은 손에 쥐고 있던 육포를 비닐에 도로 집어넣고 슬그머니 사형에게로 밀어 놓았다. 입안에 든 것까지 빼앗기지는 않겠노라며 얼른 우물우물 씹어 삼키면서 한호영은 생각했다.

그렇구나, 이제야 알겠다.

저 양반이 말을 저렇게 독하게 하는 양반인데, 별 대단치도 않은 걸로 말대꾸라도 했다간 무슨 독설이 날아올까 싶어서 무화가 억지로 참고 있는 게 분명해 뵌다. 머리 건드리지 말라고 한마디라도 해 봐, ‘네 머리가 머리로서의 기능을 하는 게 이 정도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이런 소리나 하겠지.

한호영은 서정운이 둘둘 말아 냉장고에 도로 넣어 두는 육포를 아쉽게 쳐다보며 공연히 무화가 불쌍하다는 생각이나 했다.

*

라디오에서는 야구 중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따사로운 오후, 라디오 저편에서는 야구를 즐기는 이들의 함성과 응원가가 떠들썩하게 휴일을 달구고 있다.

머리맡에 라디오를 놓아두고 대청에 누운 서정운은 눈을 감고 있었다. 처음에는 라디오를 틀어 놓고 눈 감고 듣나 보다 했는데 이제는 살짝 낮잠이 든 것 같다. 그리고 그 옆에 반듯하게 앉은 한무화는 한 손에 기보 책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바둑알을 바둑판에 내려놓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루 아래에선 누렁이도 배 깔고 엎드려 낮잠을 자고 있었다.

평화로운 휴일 오후다.

한호영은 문을 활짝 열어젖힌 방 안에 누워 선풍기 바람을 쐬며 야구 중계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좀처럼 점수가 나지 않는 경기 중계를 나른하게 듣고 있던 때, 따끈한 볕 아래 단잠에 빠져 있던 누렁이가 뭔가 꿈이라도 꾼 모양이다. 앞발에 괸 머리를 들지도 않고 눈도 감은 채 갑자기 웡, 웡, 목구멍 속으로 두어 번 짖어 댄다. 그러다 제풀에 놀랐는지 반짝 눈을 뜨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눈을 끔벅거렸다.

그 소리에 서정운도 깼다. 부스스 일어나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게, 얼핏 꿈인지 현실인지 바로 분간이 안 되는 모양이다. 그는 바로 눈앞에 앉아 있는 한무화를 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무화는 그런 서정운을 그대로 놔두고 기보만 들여다본다.

그러는 사이에 약간 정신이 들었는지 서정운은 마루 밑의 누렁이를 보고는 “아, 너였구나.”라고 중얼거리곤 누렁이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잠시 살살 쓰다듬어 주다가 다시 한무화를 쓰다듬는다.

“사형, 개 쓰다듬던 손으로 사람을…….”

방 안에서 보고 있던 한호영이 혀를 차자 서정운이 돌아보았다.

“어? 누렁이 어제 씻겨 줬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는 괜찮습니다.”

다시 뭐라고 하려는 한호영을 가로막은 것은 한무화였다. 상관없다는 투로 심상하게 말한 한무화는 별다른 기색도 없이 바둑판을 들여다보았고, 한결 흐뭇하게 한무화를 지켜보며 잠시 쓰다듬던 서정운은 자다 깨서 목이 마른지 옆에 놓아두었던 컵을 집었다. 그러나 컵에 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더워……, 얼음…….” 하고 중얼거린 그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음을 얻으러 가는지 컵만 달랑 들고 외당에서 나가는 서정운을 가느스름하게 바라보던 한호영은 혀를 차곤 한무화에게 말했다.

“억지로 참을 것 없어.”

바둑판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한무화는 약간 사이를 두고서야 한호영을 돌아보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이다.

“사형이 쓰다듬는 거 말이야. 너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사형이 좀 인간이 매몰차고 독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남이 싫다는 걸 억지로 하지는 않아. 싫어하는 건 싫어한다고 말하면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싫으면 억지로 참지 말고 그냥 말해. 너, 남이 너 건드리는 거 싫어하지 않았어?”

한무화는 잠시 물끄러미 한호영을 보았고, 한호영은 역시 이놈은 표정을 읽기가 힘들어, 하고 생각했다. 곧 한무화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편이긴 합니다만 서정운 사범님은 괜찮습니다.”

“……. 왜.”

“손에 힘이 없습니다.”

……엉? 한호영은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해 눈을 껌벅이며 그를 빤히 보았다. 저건 뭔 소리냐.

“다른 사람들은 손에 힘주고 쓰다듬던?”

한호영이 고개를 기울이며 다시 묻자 한무화는 적절한 말을 고르는 듯 잠시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천천히 말한다.

“자연스럽습니다. 그냥 쓰다듬고 싶어서 쓰다듬는 것처럼요.”

“……?”

“보통은 관계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특히 머리는 더 그렇습니다. 아랫사람으로 여기려 하거나 혹은 친분의 거리를 규정하려 드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이 정도는 해도 되는 사이, 이 정도는 해도 되는 위치, 그런 것을 본인 나름대로 재면서 확인하듯이 건드려 보는 것이다. 이 정도는 어때? 여기까지는? 이렇게 탐색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서정운 사범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심이 없는 느낌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뭐라고 할까 말을 고르던 한무화는 그렇게 결론을 낸다. 그 말을 한호영은 이해할 듯 말 듯 했다. 그러나 알 것 같긴 하다.

그래, 그래, 사형이 좀 그렇긴 하지, 명확하게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그 막연한 느낌은 알겠다.

그것은 서정운을 삼십여 년 알아 온 한호영이 여태 생각해 본 적 없는, 그러나 아주 오래전부터 무의식적으로 알고는 있었던 부분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

한호영은 머리를 북북 긁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사심이라……, 사실은 사형이야말로 사심 가득한 손길로 널 만질 양반인데 말이야…….”

“그런 생각은 안 해 봤습니다. 해가 될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사람이겠다는 것밖에는.”

“그건 그렇지.”

한호영은 조금 놀랐다. 뜻밖에 사형을 잘 알고 있잖아. 남에게는 관심 하나 없이 무심하기만 한 놈이.

어쩌면 이놈은 생각보다 더 짐승 같은 남자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사소한 것도 본능적으로 예민하게 구분하며, 의식 위로 떠올리지는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는 많은 것을 캐치하고 있는.

“나는?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

한호영은 문득 궁금해져서 반쯤 장난처럼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자 한무화는 무심히 한호영을 보곤 다시 바둑판으로 시선을 돌린다.

“모르겠습니다. 한 번도 생각 안 해 봤습니다.”

“……어, 그래.”

그래, 얘는 나한테는 의식을 하든 무의식이든 아예 관심이 없었지. 굳이 관심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도 한호영은 괜히 씁쓸해지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몸을 뒤척였다.

그때다.

한무화가 문득 고개를 들더니 기보도, 바둑판도 아닌 외당의 문 쪽으로 물끄러미 시선을 주었다. 아무것도 아무 기척도 없는 그곳으로.

“……?”

한호영이 의아하게 문간을 보는데, 그보다 한발 늦게 마루 아래 엎드려 있던 누렁이가 고개를 들더니 쫑긋 귀를 세운다. 그리고 꼬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문을 쳐다본다.

그런 뒤에야 한호영의 귀에 희미하게 다가오고 있는 발기척이 들려왔다. 곧 서정운이 외당 문을 들어서 모습을 나타낸다.

저를 예뻐해 주는 사람이 돌아오자 누렁이는 낮잠을 자다가도 꼬리를 쳤고, 한무화는 들어오는 서정운과 눈이 마주치자 아주 짧게 눈인사를 하고는 그제야 다시 시선을 바둑판으로 떨어뜨렸다.

“짐승보다 더하잖아…….”

한호영은 저도 모르게 질린 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얼음이 잘랑잘랑 담긴 물컵을 들고 돌아온 서정운은 엎드린 채로도 열렬히 꼬리를 흔들고 있는 누렁이를 쓰다듬으며 대청에 앉았고, 그런 뒤 한무화가 바라보고 있는 바둑판을 들여다보았다.

한무화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바둑돌을 내려놓았고, 가만히 그걸 보고 있던 서정운이 빙그레 웃더니 한무화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한무화는 얌전히 있을 뿐이다.

“……?”

음……? 하고 한호영은 눈을 비볐다. 잠깐 눈에 헛것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무화 엉덩이 뒤로 느리게 흔들리는 굵직한 꼬리가 보이는 것 같았는데…….

눈을 비비고 다시 보자, 역시 사람 엉덩이에 그런 게 달려 있을 리가 없었다. 요즘 날이 더워지니 기력이 허해졌나 보다.

서정운은 여전히 기분 좋게 한무화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고 그 손길이 참 오래도 머무른다 싶었지만, 한호영은 이내 ‘아무렴 어때.’ 하고 신경 끄기로 했다. 정작 당사자가 상관없다는데, 그럼 알 바 아니다.

게다가, 그래, 뭐, 따사롭고 한가로운 휴일 오후에 나름대로 잘 어울리는 정경 같기도 했다.

한호영은 그대로 선풍기 아래 드러누우며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때맞춰 야구 중계에서는 따악--!, 상쾌한 소리가 터져 나왔고, 관중들의 우렁찬 함성이 뒤따랐다.

아아, 정말로 기분 좋은 휴일이구나, 한호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3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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