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4 선생님
사천 국제 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 2학기, 스물여섯 살, 서이수.
사천 국제 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 1학기, 스물세 살, 차재희.
졸업을 맞추기 위해 5일 동안 꽉 채워진 시간표와 함께하고 계절 학기를 두 번이나 들은 재희는 드디어 4학년 1학기를 끝으로 졸업에 필요한 이수 학점을 모두 채웠다.
1년간 휴학 후 공부하고, 사업을 위한 밑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나가던 이수 또한 드디어 4학년 2학기의 마지막 시험을 남겨 두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정말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생활 한문이 졸업의 발목을 잡을 거라고는…….
* * *
“하아…….”
재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수는 샤프를 든 채로 재희를 힐끔거렸다. 재희는 그가 푼 생활 한문 시험지를 들고 채점을 하는 중이었다. 스으윽이 아닌 지익, 하고 색연필이 그어지는 소리만 들어도 시험지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망했다……. 이수는 점수를 가늠하는 것을 포기하고 고개를 돌렸다. 책상 위에 빼곡히 올려진 프린트된 사자성어와 한자들이 눈을 어지럽혔다. 보기만 해도 구토가 나올 정도로 지긋지긋한 한자였다.
생활 한문을 4학년 2학기에 끝내 버리겠다는 건 정말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 빌어먹을 과목은 중간고사 없이 기말고사만 치르는 대신, 점수가 60점을 넘으면 PASS, 그러지 못하면 FAIL을 받게 되는 절대평가 시스템이었다.
이수는 수업을 줄여서 생활 한문에 집중하면 60점은 눈 감고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정말로. 그러니까, 재희가 만든 시험지를 풀이한 점수가 50점을 넘기지 못한다는 걸 알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이걸 대체…….”
재희는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이수를 바라봤다. 이수는 자존심이 상해 시선을 피한 채로 노트만 들여다봤다.
학기가 시작하고부터 재희는 매일 저녁 이수에게 한자를 가르쳤다. 생활 한문 교재에 나오지도 않는 기본 중의 기본인 한자부터, 단어, 사자성어까지. 물론 진도는 매우 매우 느렸다. 이수는 다른 건 몰라도 한문에 대해서만큼은 아주 불성실한 수업 태도를 고수했다.
가르침을 청한 것은 자신이건만, 하는 짓을 보면 네가 그렇게 가르쳐 주고 싶다니 한번 들어는 보마, 이런 자세였다. 하지만 재희는 타고난 인내심과 배려심으로 한자를 싫어하는 이수의 마음을 고려해 상냥하게 수업을 이어 나갔다.
그래도 나름 잘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기말고사를 3주 앞두고 기출 문제를 풀어 보기 전까지는…….
채점을 끝마친 재희가 이수를 직시하며 시험지 위에 점수를 적었다.
47.
거칠게 마침표를 찍고 숫자 아래에 줄까지 긋더니 책상 위에 클립보드를 내려놓았다.
“공부 안 했죠?”
“했는데.”
“‘했는데?’”
“했는데, 요, ……선생님.”
이수는 이를 악물며 대꾸했다.
서이수가 자꾸 태클을 걸고 지랄을 떨어 대서 수업이 끊기기 일쑤였던 어느 날, 그러니까 다섯 번째 시험을 봤던 날의 이야기다. 재희는 자신의 습득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네가 가르치는 방식이 잘못된 거 아니냐, 하고 시비를 걸어 대는 이수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투다가 그만하자는 말로 수업을 끝낸 게 벌써 여러 번이었다. 이러다가는 졸업이 미뤄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재희는 고심하며 조건을 내걸었다.
1. 수업 중에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존댓말을 할 것.
물론 이수는 ‘내가 대가리에 총 맞았냐’ 하고 항변하다가 ‘이거 봐요. 여기서 지금 내가 선배한테 그래서 기억력이 그 모양 그 꼴이었냐고 말하면 싸움이 날 텐데 어떻게 공부를 하겠어요’ 하고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재희에게 설득당했다.
2. 주말에는 게임 하지 말 것. 임의 시험을 봐서 두 번 연속 60점을 넘게 받을 때까지.
이수는 이것도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재희에게 내 여가 시간까지 관리할 자격은 없다고 큰 소리치며 넌 그럼 내가 하지 말라 그러면 요리도 안 할 거냐고 뻔뻔하게 응수했다. 재희는 아주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선배, 오(烏)랑 조(鳥)도 구분 못 하면서 라테르 하고 있는 걸 보면……. 내가 막, 속에서 막, 하아. 천불이 올라와요……. 선배가 내 마음 알긴 해요? 넴드가 어떤 스킬 쓰는지는 그 조그마한 폴리곤 덩어리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만 봐도 알아차리면서, 오랑 조를 구분 못 하는 건…….’
그때 차재희의 목소리에는 한심함이 듬뿍 묻어났고, 이수의 자존심을 왕창 긁어내렸다. 결국 이수는 그것마저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60점, 그까짓 거 정신 차리고 하면 별것도 아니라고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 후로 시험을 열다섯 번 더 봤지만, 이수가 60점을 넘기는 날은 오지 않았다. 스무 번째 시험지가 눈앞에서 팔락였다. 재희는 책상 끄트머리에 턱을 괸 채로 이수를 바라봤다.
“관둘까요?”
“아, 그냥 다시, 아니 다시 해요. 다른 거 보면 60점 넘을 수 있어요.”
전혀 진심이 묻어나지 않는 목소리였다. 재희가 입꼬리를 비스듬히 끌어 올렸다.
“내가 이거 만든다고 밤새 고생하는 거 알면서, 시험을 이따위로 봐 놓고 다른 거 또 가져오라고? 양심이 있어요?”
“선생님. 내가, 지금, 시험을, 일부러, 망친 게 아니잖아요.”
“일부러? 선배, 난 선배랑 같이 졸업하려고 지금 26학점 꽉 채워서 일주일 내내 학교에서 살고, 밤에는 한문 시험지 만들고, 시간 쪼개서 식사 차려 주고, 열 개 과목 시험공부 하는 와중에 수업까지 해 주느라 죽을 것 같은데, 선배는 오늘 하루 뭐 했어요? 말해 봐요.”
재희의 말이 길어질수록 양심에 찔렸다. 그 말 그대로 차재희는 아주 바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내내 학교에서 살았고, 시험 기간을 앞둔 지금은 새벽까지 공부하느라 운동을 할 시간도 없었다.
그에 반해 학점이 널널한 이수는 계획대로 이번 학기에 수업을 딱 세 개 들었다. 최저 학점인 10점을 채워서 생활 한문과 일반교양을 두 개 신청했는데, 그 일반교양 과목들은 심지어 시험 없이 과제만 제출하면 되는 수업이었다.
진작에 과제는 끝내 놓고 제출일만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수는 생활 한문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생활 한문을 공부하는 한 시간이 열 시간처럼 느껴졌고, 도무지 흥미가 붙지 않아 억지로 하다 보니 미쳐 버릴 지경이라 남는 시간을 게임과 게임 기획으로 채웠다는 사실이다.
재희가 보기에 서이수는 24시간 눈앞에 사자성어 사전을 달고 다녀도 부족했는데, 공부 시간을 늘리기는커녕 빈 시간에 게임을 하고 있으니 속이 터져 버릴 지경이었다.
“뭐 했냐고. 말해 보라니까요?”
이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제 입으로 여섯 시간 동안 게임 하고 한 시간 동안 공부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가는, 차재희가 무척 화를 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수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라테르는 메신저가 지원되는 게임이었고, 그 메신저는 휴대폰과 연동이 된다는 것이었다.
최근 재희는 이수의 학습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유를 의심하며 추적을 해 왔다. 그가 최상급 던전 클리어에 하루의 여섯 시간을 소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는 며칠 되지 않았다. 짜증이 난 재희가 비아냥거렸다.
“그래도 양심이 남았나 보죠? 자기 입으로 온종일 라테르 한다는 말은 못 하시겠지.”
“……온종일은 아닌데요?”
“아, 그럼 여섯 시간?”
“…….”
씨발……. 어떻게 알았지? 이수가 샤프를 꽉 쥔 채로 재희의 눈치를 봤다. 차재희는 꽤나 속상해 보였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그럴 것이다. 몇 달 동안 가르치고 있는데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갈 줄은 생각 못 했겠지. 이수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니 차재희는 더 할 것이다.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도무지 외워지지 않는걸.
이수의 눈동자가 책상에 놓인 교재를 훑었다. 1학년 때 산 생활 한문 교재는 끝이 너덜너덜했다. 이수 또한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물론 부족함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노력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뭔가를 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수의 눈에는 한자가 결코 글자로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한자를 외우는 일은 이름도 모르는 화가의 그림을 옮겨 그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대충 느낌은 알겠는데 세세히 그리라고 하면 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리는 느낌이다.
오(烏)와 조(鳥)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자세히 보면 다른 걸 알겠는데, 막상 따로 놓인 글자를 보면 이게 오인지 저게 조인지 알 수가 없었다.
종이 위에 가득 들어찬 한자와 그로 이루어진 한문과 사자성어를 보고 있으니 눈앞이 핑핑 돌았다. 한숨을 삼키는데 재희가 나직이 포기를 선언했다.
“나도 이제 안 할래요. 알아서 해요.”
“뭐?”
“선배가 알아서 하라고. 어차피 내 말 듣지도 않잖아.”
“……화났어?”
차재희는 그답지 않게 냉랭했다.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등을 기댄다. 빤히 바라보는 눈빛이 복잡해 보였다. 2년 넘게 같이 살았지만 저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내가 화를 왜 내?”
“야.”
“패스 못 하면 졸업 못 하는 건 선밴데, 내가 왜 화를 내.”
그 말에 불현듯 깨달음이 일었다. 이수가 졸업을 못 하면 차재희도 한국에 머물러야 한다. 재희는 CIA에 들어가기 전에 식당에서 6개월의 근무 기간을 채워야 했는데, 그렇게 되면 제이슨에게 소개받은 다이닝에도 제때 취직할 수가 없었다.
졸업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 여가 시간이고 나발이고, 이 빌어먹을 걸 해결하지 못하면 모든 계획이 어그러진다. 한문이 너무 싫은 나머지 필사적으로 외면해 왔던 사실이었다.
그런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됐다. 이수는 생활 한문과 정면승부를 보아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진짜 한문 공부만 할게.”
이수는 이제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입에 올리기도 싫은 ‘그’ 과목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 전에 일단 재희의 마음을 풀어 주는 것이 먼저였다. 이수는 그가 자신을 도우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왜 여태 신경을 못 썼지.
왜긴. 이게 다 생활 한문 탓이었다. 좆같은 획 따위를 외우는 데에 심력 소모가 큰 나머지 재희를 살필 여력이 없었다.
“재희야.”
샤프를 내려놓은 이수가 의자를 끌어 재희에게 다가갔다. 잔뜩 심통 난 차재희는 그를 외면하며 고개를 돌렸다. 부드럽게 흩어지는 머리칼 사이로 찡그려진 눈썹이 보였다. 굳게 닫힌 입매는 풀어질 줄 몰랐고, 사선으로 그려진 턱 선은 평소보다 더 날카로워 보였다.
“재희야.”
“…….”
재희가 천천히 얼굴을 돌렸다. 이수가 이름만 몇 번 불러 줘도 기분이 흐물흐물해졌다. 그게 못내 자존심이 상한 재희는 이수를 보며 일부러 인상을 썼다. 이수는 재희를 들여다보다가 그에게 입을 맞췄다. 쪽, 쪽, 가볍게 붙었다 떨어지려는 입술을 차재희가 물고 들어왔다.
“아, 잠깐, 윽!”
재희는 책상 한쪽의 물건을 치워 버리고, 그 위에 이수를 올려 앉혔다.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숨이 먹혔다. 부딪힌 입술이 얼얼하게 아팠다. 짜증이 나면 늘 그렇듯 오늘의 차재희도 거칠었다.
허벅지를 주물럭거리는 것과 동시에 뜨거운 혀가 입을 열고 들어왔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차재희가 아랫도리를 문질렀다. 얇은 면바지 위로 팽팽한 굴곡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수는 현기증을 느끼며 재희의 허리를 붙들었다. 손끝에 닿는 탄탄한 근육이 말도 못 하게 섹시했다.
“선배 진짜 짜증 나…….”
입술을 떼어 낸 재희가 속삭였다. 맞닿은 이마 아래, 새까만 눈동자가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최근 며칠은 섹스할 시간도 없이 바빴다. 얼마 남지 않은 시험 기간을 위해서 참고 있었는데……. 입맞춤이 그 다짐을 손쉽게 무너뜨렸다.
이수의 티셔츠 아래로 손이 들어갔다. 매끈한 살결을 더듬으며 둥그런 귓불을 씹었다. 말랑말랑한 서이수의 귓불을 핥으면 솜털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자신만 알고 있을 터였다.
재희는 이수의 사타구니에 발기한 좆을 비비며 그의 귓바퀴를 물고 빨았다. 질척거리는 소리에 이수는 어깨를 움츠린 채 신음했다. 가쁜 숨결과 그 사이로 뱉어지는 헐떡임이 재희의 욕망에 불을 지폈다.
“내가, 읏, 열심히……. 할, 게, 아!”
목선을 타고 내려온 재희가 이수의 목덜미를 강하게 깨물었다. 빨갛게 잇자국이 남을 정도로 아프게 물자 이수가 고개를 저으며 그를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차재희는 오늘 단단히 심통이 났다.
손을 뻗어 끝에 걸쳐진 책 따위를 모조리 밀어 버리고, 책상 위에 이수를 눕혔다. 딱딱한 나뭇결 위로 새하얀 낯이 보였다. 이리저리 흩어진 갈색 머리칼과 그 사이에서 반짝이는 짙은 호박색 눈동자.
재희는 티셔츠를 끌어 올려 이수의 입에 물려 놓고 유두를 깨물었다. 야들야들한 살덩이는 금세 딱딱하게 굳어졌다. 입 안에 넣고 굴릴 때마다 페니스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흐… 으읏!”
서이수는 예민하다. 자극에 약하다. 그를 함락시키는 것은 재희에게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책상 서랍을 뒤적여 젤을 꺼냈다. 개처럼 여기저기서 붙어먹다 보니 집 안 곳곳에 러브젤이 숨겨져 있었다. 다급한 손길로 바지를 끌어 내리고 이수의 몸을 뒤돌렸다. 책상에 뺨을 댄 이수가 뜨거운 숨을 터트렸다.
짙은 고동색의 책상 끝에 새하얀 엉덩이가 걸쳐졌다. 둥근 곡선 위로 가느다란 허리가 보이고, 마른 살가죽 아래로 갈비뼈의 굴곡이 드러났다. 재희는 고개를 숙여 어깨 살을 깨물고, 이수의 손을 가져와 양 볼기에 올렸다. 재희가 단호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벌려.”
“……뭐?”
이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정욕에 눈이 돌아간 차재희는 종종 남사스러운 요구를 할 때가 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인 것 같았다. 뭘… 하라고? 말의 의미를 정확히 깨닫기 전에 재희가 부연했다.
“열심히 한다고 했잖아요. 구멍 보이게 벌리라고.”
씨발,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이수는 입술을 씹으며 제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이런 식의 수치스러운 행위에는 도통 적응이 되질 않았지만 또 하려고 하면 은근히 흥분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후, 차재희가 볼기 사이로 바람을 불어넣자 메마른 골이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 났다. 몸이 흠칫했다. 뒤에서 음습한 웃음이 터졌다. 차재희가 구멍이 움찔거리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하니 위아래로 피가 몰렸다.
관계 도중 느끼는 수치심은 곧 성감이었다. 책상 끝에 눌린 좆이 아프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수는 눈을 꽉 감은 채 숨을 골랐다. 재희가 중얼거렸다.
“사자성어 열 개도 못 외우면서…….”
“아니, 진짜 외웠! 읏!”
외웠는데 잊어버렸을 뿐이다. 변명하는 와중에 엉덩이 골 사이로 차가운 젤이 쏟아졌다. 구멍을 지나 회음부를 훑고 고환을 적신 채 떨어지는 점액질이 꼭 누군가의 손길 같았다. 이수는 발끝을 오므린 채 입술을 깨물었다. 차재희의 뜨거운 손가락이 거칠게 회음을 매만졌다. 다 틀렸잖아,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고환을 움켜쥐는 힘이 억셌다. 악문 잇새로 신음이 터졌다.
“아, 아파……. 윽!”
“아파요? 이 정도로?”
너울 치는 웃음소리가 꼭 저를 비웃는 것 같았다. 회음을 꾹꾹 누르고, 고환을 잡아당기며 이수를 괴롭히던 재희가 순간 애널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물감에 엉덩이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근육을 풀어 주며 부드럽게 휘저을 때마다 뭉근하게 치솟는 쾌감이 몸을 간지럽혔다. 더 깊이, 조금만 더 깊게. 재희의 손가락을 먹어 치우려 뒤를 벌름거릴 때마다 삽입에 대한 갈증이 일었다.
차재희는 다른 손으로 한쪽 허벅지를 주무르다가, 돌연 책상 위로 다리를 밀어 올렸다. 찌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타구니가 적나라하게 벌어지는 느낌에 이수가 몸을 떨었다. 허벅지 안쪽을 쥐는 힘이 거셌다. 동시에 안을 후비는 손가락이 내벽을 긁었다. 그것보다 더 거친 게 필요했다. 정제되지 않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문제 하나 틀릴 때마다 엉덩이라도 맞을까?”
“지랄, 말고… 아!”
“선생님한테 말조심해야지.”
허벅지를 떠난 손가락이 이수의 머리칼을 그러쥐었다. 두피가 당겨지는 느낌과 함께 또다시 아래로 신경이 쏠렸다. 귀두를 훑어 줬으면 좋겠다. 구멍을 쑤시고 내장을 헤집어 줬으면 좋겠다. 이성을 마비시켜 가는 쾌감 속에서 이수는 심장이 터질 듯 뛰는 것을 느꼈다.
살아 있다는 증거,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 그리고 언제든 죽을지도 모른다는 증거.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을 수 있다. 이수는 언제나 자신을 두렵게 만드는 차재희와의 섹스가 지독히 짜릿하고 아찔했다.
헐떡이는 사이에 손가락이 두 개 더 들어왔다. 며칠만의 섹스에 곤죽이 되어 버린 뇌는 제 몸 안에 뭐가 쑤셔지고 있는지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동그란 손끝이 내벽의 툭 튀어나온 부분을 지그시 누른다. 눈을 크게 뜬 이수가 경련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 흣, 잠깐!”
“하아. 수업 아직 안 끝났잖아요, 선배.”
“아니, 윽!”
순식간에 몸집을 키운 쾌락의 파도가 모든 것을 휩쓸었다. 딱딱한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로 이수는 뒤를 쑤셔지는 손가락에 절정에 치달았다. 퍽, 퍽, 손을 쳐올릴 때마다 사정의 쾌감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모든 생각이 쓸려 가 버린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빨갛게 달아오른 눈매가 축축이 젖어 들어갔다. 좆을 만지지도 않고 사정한다는 건 여러모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남자가 아니게 되는 것 같았고, 뒤로만 가는 일에 익숙해질수록 이수는 재희의 오랄에 집착했다. 해소되지 않는 본능을 그렇게라도 비워 내려 했다.
빨아 줬으면, 좋겠는데……. 재희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나른한 숨을 내쉰 그가 거대하게 부푼 성기를 엉덩이 골에 대고 비볐다. 귀두가 주름을 문지를 때마다 전신의 근육이 수축했다. 삽입을 기대하던 애널은 스치듯 지나가는 좆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거친 몸짓에 맥없이 풀려 버린 다리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이수는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봤다. 열기로 이지러진 차재희의 표정에서 숨길 수 없는 음욕이 엿보였다. 재희는 이수와 시선을 맞춘 채, 천천히 성기를 밀어 넣었다.
“아, 흑!”
“어떻게, 하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멈추지 않고 뿌리까지 쑤셔 넣은 재희가 상체를 굽혔다. 이수의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고 빨면서 허리를 돌린다. 뭉근하게 비벼지는 기둥이 극점을 스치며 지나갔다. 모자란 쾌감이 이수를 움직이게 했다. 이수가 손을 뒤로 돌렸다. 제 구멍에 빠듯하게 파고들어 온 재희의 좆 뿌리를 만지작거리며 애원했다.
“세게, 흐, 빨리… 차재희…….”
“아니야, 아니야. 틀렸잖아요.”
재희는 다정하게 대꾸하며 이수의 뺨에 입을 맞췄다. 안에서 움찔거리는 거대한 흉기는 감질나게 움직였다. 이수는 뒤를 찢을 듯, 안을 뭉개버릴 듯 박아 대는 좆이 좋았다. 촉촉이 젖은 눈을 들어 재희를 바라봤다. 그 간절함을 무시하며 재희는 느른한 움직임으로 허리를 돌렸다.
“수업 안 끝났다고 했잖아요. 그럼… 뭐라고 불러야 되겠어?”
개새끼……. 욕지거리가 튀어나온 순간 재희가 거세게 허리를 쳐올렸다. 퍽, 부서질 듯 안을 쑤셔 대는 통증과 쾌락은 서이수를 자존심 따위는 없는 인간으로 만들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이수는 제 머리 옆에 놓인 재희의 손목을 붙잡았다. 새파랗게 선 핏줄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아프게, 박아 주세요, 선생님…….”
재희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몸을 일으켜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잔뜩 긴장한 내벽이 재희의 성기를 죄었다. 좆이 끊어질 듯한 압박감 속에서 허리 짓을 했다.
철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껏 벌어진 다리 사이로 좆이 드나드는 것이 보였다. 피가 몰려 붉게 물든 애널과, 그 안을 파고드는 검붉은 페니스. 고개도 들지 못하고 신음만 터트리는 서이수와 그를 지배하듯 숨통을 틀어쥔 자신.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이 피어올랐다. 온몸이 근질거렸다.
“하아, 더, 아프게… 해 줘?”
“아, 씨발…….”
낮게 중얼거린 이수가 이내 눈을 감으며 말했다.
“응, 선생님…….”
응, 기분 좋을 때만 나오는 그 대답에 재희가 손아귀에 힘을 더했다. 가느다란 목에 압박이 가해질 때마다 이수는 뒤에 잔뜩 힘을 주어 좆을 물었다. 성기가 뒤로 빠져나올 때마다 흐느끼고, 자신을 망쳐 달라는 듯 끊임없이 폭력 같은 섹스를 요구하는 남자는 한없이 연약해 보였다. 재희는 끓어오르는 사정감을 느끼며 이수의 머리칼을 틀어쥐었다.
억지로 고개를 돌려 젖은 뺨에 입을 맞추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내어 빨고 핥으며 토정했다. 사정하면서도 씹질을 멈추지 않았다. 정액과 뒤섞인 젤이 비린내를 풍기며 밖으로 밀려 나왔다. 찔걱거리는 소리가 크기를 키워 간다. 이수는 숨을 헐떡이며 몇 차례고 몸을 움찔거렸다. 힘없이 풀어진 얼굴이 말도 못 하게 예뻤다.
짜증 내고, 욕하고, 노려보고, 비아냥거리는 주제에, 좆만 박아 넣으면 정신을 못 차리고 허물어지는 서이수가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쾌락과 휘몰아치는 감정이 그로 하여금 뜨거운 고백을 토하게 만들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뺨에 연신 입을 맞춘다. 재희는 이수에게 끝없이 속삭였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세 글자의 고백을, 깊이 새겼다.
『다정하게 불러줘요, 선배』 외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