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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여래 (5) (5/23)

1부 : 여래 (5)

“아이, 씨!”

누운 여래를 잠 못 들게 하는 것은 그림자다.

“미치겠네.”

그림자가 문을 두드린다. 소리도 빛도 아니면서 자꾸만 성가시게 하는 그림자에 여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불이 무슨 보호막이라도 되는 듯 두른 여래는 중얼거렸다.

“왜 안 가고 난리야.”

그림자는 가로등 빛에 실려 안으로 들어왔다.

“이상한 새끼.”

머리맡에서 서성이는 그림자는 여래의 타박에도 아랑곳없었다. 배송지가 적힌 화이트보드와 일별로 철이 된 출고지시서들을 향해 여래는 돌아누웠다. 사무공간으로 사용하는 일층의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벽에 붙은 접이식 침대가 여래의 잠자리다. 건물에 사람이 드나들면 곧바로 알 수 있는 위치에서 여래는 잤다. 목재소가 산의 입구께에 위치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길바닥에서 자는 것이나 다르지 않을 정도로 빛과 소음이 들이치는 자리였다.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여래는 목재소를 지키는 개였다.

오렌지빛의 가로등이 자바라 뼈대 틈으로 준혁을 비추었다. 준혁은 문 앞에 가방을 깔고 앉아있었다. 그림자들 사이로 갇힌 준혁은 꼭 짐승 같았다. 일정한 창살 간격의 우리 안의 짐승 말이었다. 지구상에 단 한 개체만이 남은 고독한 짐승. 누구의 이해도 받지 못하고,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다.

사람 같지 않은 건 너도 마찬가지구나.

중얼거리던 여래는 준혁이 웅크리고 앉았던 자세를 펴고 일어나자 얼른 입을 다물었다. 준혁은 너머에서 목재소를 들여다보며 서 있었다. 여래가 있음직한 자리를 눈으로 더듬는 그는 집요했다.

안은 어두웠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무대 같은 바깥에서야 안은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준혁은 여래가 어디 누운지도 모른다. 그게 빤한데도 여래는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숨을 죽였다. 봄밤은 아직 추웠다. 여래의 코끝이 맹하게 차가워졌으니 밖은 더 하리라. 준혁은 여래의 생각이 간질이기라도 한 듯 작게 재채기를 했다. 부아가 치밀었다.

술래잡기를 하는 거야. 네가 나를 찾는 거야.

“…찾으라고 해서 찾은 거면, 가라고 하면 가야 할 거 아냐.”

꽉 틀어쥔 이불귀가 잔뜩 주름을 그리며 구겨진다. 준혁은 늘 여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 여래는 틀리지도 나쁘지도 않은데 어째서 준혁을 피하고 나면 여래가 인색하고 못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은지.

-에취!

벽 하나를 걸러 듣는 준혁의 재채기 소리가 멀다. 잠자리가 새삼 불편해 여래는 다시 돌아누웠다. 준혁이 훌쩍이며 코를 들이켜자 여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아이씨… 짜증 나!”

* * *

철컹.

“…일어나.”

다리가 저리겠지. 알면서도 여래는 시간을 재며 깐깐하게 눈을 흘겼다. 늦기라도 하면 다시 들어가버리겠다는 여래의 태도에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있던 준혁은 비틀거리면서도 급히 일어났다.

“들어와. 이번만 특별이야. 시간도 너무 늦었으니까.”

“응, 응!”

“에이씨… 이게 뭐야.”

여래는 열쇠를 짤랑거리며 건물을 향해 걸었다. 기계며 자재들의 배치에 낯선 준혁이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넘어지자 여래는 쓴웃음을 지었다.

“바보냐. 잡아.”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난 준혁은 여래를 내려다보았다. 눈꼬리에 접힌 주름을 어루만지는 준혁의 손이 작게 떨렸다. 여래는 손을 쳐내며 고개를 비틀었다.

“만지라고는 안 했어.”

“…미안.”

“좀 좁아. 나 혼자면 충분한데 네가 들어와서 그래 보이는 거야. 싫으면 나가고.”

“안 좁아. 괜찮아.”

두 명분의 체중은 견디지 못할 게 뻔한 간이침대의 프레임에 여래는 침대 옆에 널빤지와 스티로폼을 차례로 바닥에 쌓아 잘 자리를 하나 더 만든다. 이불거리로 쓸만한 모포를 찾느라 여래가 분주한 사이 준혁은 전구 알 아래로 드러난 간소한 살림을 하나하나 구경했다. 계근표를 찍는 기계 옆을 지나 한 바퀴를 모두 둘러본 준혁은 신부의 인형 앞에서 멈춰 그것을 들어 올렸다. 낡은 인형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준혁에 여래는 괜히 목소리를 높였다.

“버리는 거 잊어버렸을 뿐이야. 자, 누워. 이제 네 말대로 다 됐다. 어휴, 이 화상.”

하지만 준혁은 누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준혁은 무슨 권리라도 되는 듯 여래에게 주장했다.

“이 닦고 자야 해. 세수도 해야 돼. 샤워도 못 했어. 잠옷도 필요해.”

여기가 무슨 호텔인 줄 아나? 기가 막혀서 보는 여래에도 준혁은 까딱없었다.

“가지가지 하네, 얘가 진짜. 칫솔은 줄 테니까 이만 닦고 자. 세수는 하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고. 나참,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란다고.”

준혁은 삐죽거렸다.

“네가 깨끗이 하라고.”

“뭐?”

“깨끗이 씻으라고 그랬잖아. 깔끔하게 입으라고도. 나, 그래서 매일 씻었어, 빨래도 매일 했어. 이도 닦고 귀 뒤도 닦고. 겨드랑이도 사타구니도 배꼽도. 매일 매일 닦았어.”

억울한지 다다, 말을 쏟아내는 준혁에게선 특유의 눌변의 흔적이 없었다.

“왜 오늘은 하지 말라는 거야. 네 말대로 했는데. 노력했는데.”

잠시 기세에 눌렸던 여래는 곧 안색을 바꾸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헛기침을 했다.

“오늘은 예외야. 모든 일에는 경우의 수가 있다고.”

“그런 거 몰라.”

“시키는 대로 해, 임마.”

준혁은 들고 있던 인형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눈이 부시다 못해 푸르스름한 형광빛을 띄는 하얀 운동화를 가지런히 벗어놓고 여래가 준비한 잠자리에 구겨져 들어가는 준혁은 바로 눕는 대신 옆으로 틀어 여래의 침대를 보며 모로 누웠다. 간이침대로 올라오는 손에 여래는 눈을 감은 채로 일갈했다.

“야, 놔라.”

“….”

“손대지 말랬지.”

“손만 잡고 잘게.”

“안 놔?”

“예전처럼… 손잡고 자자.”

“성가시게.”

“부탁이야.”

“왜, 무슨 수작을 부리려구.”

“나 잠을 잘 못 자. 센터에서 받은 약 없인 못 자.”

“센터?”

“응.”

“그건 또 뭐야?”

“나는 거기서 연구를 해.”

치, 이건 또 무슨 대단한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대학도 그렇고 센터도 그렇고. 잘나셨어, 정말. 여래가 모르는 준혁의 역사가 왠지 기분이 나쁘다. 배알이 뒤틀리는 걸 내색하지 않으려 일부러 돌아눕자 찾는 손이 다급했다.

“손 잡아줘.”

“아, 귀찮게!”

“손만 잡을 게. 다른 짓 안 할게.”

어리숙하고 바보 같아도 알파는 알파다. 준혁을 데리고 들어온 것만 해도 꽤 순진한 태도였다. 언제 돌변한 준혁이 위협적으로 굴지는 알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여래는 내심 믿고 있었다. 준혁이 자신을 어쩌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네 손 잡으면 잠이 잘 왔어.”

어눌한 만큼 고집스럽다. 대충 넘어가는 법을 모르는 준혁에 여래는 한숨을 쉬며 이불을 들어 올렸다. 그 아래로 손을 찾아 쥔 준혁은 나머지 팔을 고여 베개로 삼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손을 잡으면 잠이 잘 왔다는 말이 대충 둘러대는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낡은 이불의 보풀은 금방 고른 숨에 맞춰 흔들렸다.

“야.”

깊게도 잔다.

“진짜 자냐?”

여래는 포기한 채 준혁에게 맡기듯 손을 늘어뜨렸다. 같이 자자는 말 그대로 준혁은 잠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진짜… 자네.”

“….”

“…이상한 놈.”

오랜만에 은애원 생각이 난다. 여래는 올려다보는 천장에 예전의 기억을 겹쳤다.

“어떻게 그때랑 똑같냐. 시간 지나면 변하기도 해야지.”

여래는 눈을 감았다. 정말로 그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손을 잡은 준혁도 비좁은 침대도 다 그렇다. 변한 건 여래 자신뿐이었다.

* * *

“아오, 미치겠네.”

타인은 성가시다. 늘 혼자였던 공간에 누가 함께인 게 거북한 여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혼잣말을 하며 일어난 여래는 준혁의 얼굴 위로 손을 몇 번 흔들어본다. 준혁은 미동도 없었다. 깊이도 잠들었다. 흐트러진 이불을 턱 끝까지 당겨 덮어준 여래는 사무실을 빠져나온다. 오늘 급하게 나온다고 미뤄놓은 전표도 있었고 선반에 치워두지 않고 널브러진 도구들도 눈에 거슬렸다.

공장을 한 바퀴 돌자 두 시간은 금방이었다. 여래가 불을 켜지 않은 채로 조심히 침대 자리를 향해 더듬어가던 그 때였다.

“하아… 하으….”

최준혁, 어디 아파? 라고 묻지 않은 건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준혁은 여래가 누웠던 침대에 머리를 묻고 앉아있었다. 느리게 들썩거리는 등에 여래가 걱정스레 손을 올리려던 그 순간, 여래의 낯이 확 붉어졌다.

청바지 속에 갇혔음에도 선명한 덩어리가 터질 듯 팽팽하게 준혁의 앞섶을 부풀리고 있었다. 아마도 발기한 남성임이 분명한 물큰한 살덩어리에 뺨은 가는 바늘로 찔린 듯 아플 정도로 빨개졌다. 준혁은 여래의 냄새가 남은 이불을 그러쥐고 어쩔 줄 몰라 했다. 필사적으로 코를 이불에 비비는 준혁은 마치 그것에 남은 여래를 전부 빨아들이고 싶단 듯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

낮은 신음이 터지자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이 미친놈! 성추행범! 악! 여래는 준혁의 등짝을 내려쳤다.

“이… 너… 뭐하는 거야! 최준혁!”

* * *

침대에 앉아 팔짱을 낀 여래 앞으로 준혁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시계는 새벽 네 시였다. 못내 못마땅한 표정으로 시무룩하게 아래만을 쳐다보는 준혁의 앞으로 여래가 꼰 다리가 까딱거렸다.

“너, 잘못한 거 알아 몰라.”

말이 없다.

“대답 안 해?”

하긴 입이 백 개라도 넌 아무 말도 하면 안 된다. 대답을 하면 하는 대로 화를 냈을 거면서 침묵을 지키는 준혁을 보자 머리끝까지 성질이 오른 여래는 언성을 높였다.

“너… 처음부터 그 목적이었지? 오랜만에 본 거 어쩌구 들먹거리면서 끝까지 쫓아올 때부터 알아봤어, 내가! 찾긴 뭘 찾아. 시발 새끼! 어린 게 발랑 까져가지고!”

고개를 든 준혁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억울하단 거였다. 하지만 어림도 없다. 어딜 변명을 하려구! 내가 허락할 때까지는 절대 안 된다. 우성알파라고, 이제껏 다들 떠받들어 줬다고 나한테도 멋대로 굴 수 있다고 여기는 모양인데 착각이 지나쳐! 여긴 내 공간이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곳이다. 네가 아무리 우성알파라도!

여래는 꼰 다리를 풀어 준혁의 가슴에 발을 올렸다. 몸은 밀리지 않았다.

“왜. 나 정도면 그냥 쉽게 한 번 대줄 줄 알았냐?”

“아니야.”

누르는 여래의 발을 버티며 준혁은 무릎에 올린 주먹에 힘을 주었다. 벗은 발을 따라 올라가던 시선은 다리 사이의 깊은 곳에서 머물다가 다시 배를 기어올라 여래의 눈까지 천천히 이동했다.

“아니야. 나… 그냥 참을 수가 없었어.”

“…하…! 짐승이냐? 동물이야? 못 참으면, 어? 막 그래도 돼?”

“여래 냄새가 나서….”

준혁은 말끝을 흐렸다. 부끄럽다는 의식 정도는 있는 모양이었다. 여래는 비죽 웃음이 새려는 입가를 단속했다. 솔직히 우성알파를 무릎 꿇린 채 호통을 치는 상황이 묘한 쾌감이 든단 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아직도 식지 않은 앞을 빳빳하게 세우고 자세를 바꿀 때마다 느껴지는 자극에 야릇하고 짙은 눈이 되는 준혁은 아까 당한 황당한 일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게다가 준혁은 어설픈 여래의 추궁에도 고분고분 했다. 커다란 장난감같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준혁을 보며 여래는 터지려는 조소를 애써 참았다. 준혁은 다시 머리를 수그렸다.

“미안해.”

“기가 막혀. 그게 끝이야? 야, 이 새끼야. 남을 자위 도구로 써?”

“미안합니다.”

“야, 최준혁. 그럼 너 어떻게 하려고 했어? 웃긴다.”

놀리는 데 재미를 붙인 여래는 턱을 괴며 빙긋 웃었다.

“어?”

“끝에는 어떻게 하려고 했냐고.”

“…몰라. 나도 몰라.”

“뭐어?”

“이런 적은 없었어. 난, 나도 모르게… 미안해. 잘못했어. 쫓아내지 마. 오늘 나는 이상해. 예상에 없던 일만 저질러. 미안해. 가라고 하지 마. 잘못했어. 미안.”

두서없이 마구 용서를 비는 준혁이 재미없다.

“뭐야, 시시하게.”

어깨 위에서 꼼지락거리던 발을 도움닫기 하듯 밀어 차낸 여래는 다리를 내렸다. 내린 발끝이 준혁의 허벅지를 스친다. 다리가 갈라진 중심에서 머무르자 아직 기립한 채인 남근이 꿈틀거렸다. 묵지근한 열기에 발바닥이 오므라들었다. 여래는 의아했다.

우성알파라면 여래가 아니더라도 욕구 해소해주겠단 상대쯤은 차고 넘치지 않나?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오메가는 많다. 하필이면 왜, 나를?

당연한 의문이었다. 여래는 호기심으로 무릎 꿇은 준혁을 다시 쳐다보았다.

여래는 이때까지 경험이 없었다. 오메가인 자신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배우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열성이어서 페로몬의 영향도 적게 받았기에 일회적인 섹스를 소비하지도 않았으며 생물학적인 지위에서 오는 이등시민이란 낮은 자존감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여래를 위축시켜 로맨틱한 가능성을 방해하는 데 한몫을 했다. 이렇게 젊음을 낭비하고 밤의 무수한 섹스의 가능성을 잠으로 대신해야 했던 여래는 호기심만이 충만한 상태였다.

말 잘 듣는 우성알파가 단단하게 발기해있다. 따뜻한 딜도처럼 말이다. 굴러 들어온 호박이잖아, 이거?

여래의 발이 허벅지를 눌러오자 준혁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가만있어.”

여래는 머릿속으로 주판을 튕겼다.

준혁은 말을 잘 듣는다. 가끔 핀트가 나가기는 하지만.

준혁은 몸도 좋다. 그걸 어떻게 써야 하는 줄은 모르는 듯하지만.

멋대로 다뤄달라는 듯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준혁의 중심을 향해 발을 옮기며 여래는 삐죽, 미소를 피워 올렸다. 여래가 입고 있는 바지의 허리춤에 손을 가져간 건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채인 준혁의 것을 발로 누르던 것과 동시의 일이었다.

“최준혁. 너만 혼자 좋으려고 했어? 아주 이기적인 거야, 그건.”

지익,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가 조용한 컨테이너 안을 가득 채웠다. 허벅지에 올려진 준혁의 손이 움찔 떨었다.

“한번 해 봐. 너.”

아씨, 완전 떨린다.

여래 인생에서 이렇게 대담한 말을 해 보기란 처음이었다. 하지만 최준혁이면 괜찮았다. 최준혁은 여래라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을 정도로 사족을 못 쓰지 않는가. 그게 어린 시절의 관성이건 뭐건 간에 아직도 준혁은 여래에게 쩔쩔매고 있다. 그러니까 순수하게 자기 본위인 흥미를 채우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상대라는 이야기다.

* * *

팬티는 손으로 빨걸.

팬티바람인 자신의 앞섶을 유심히 보는 준혁에 새삼 입고 있는 속옷의 후줄근함을 떠올린 여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세탁기에 다른 옷가지들과 마구 넣어 돌린 속옷은 낡을 대로 낡았다. 그래도 뭐… 최준혁이 별수 있나? 이제 와서 지가 뭐, 어떡할 건데. 섹시하지 않다고 해서 물릴 거야 뭐야. 치!

주문한 음식의 가격을 걱정하듯 자꾸만 눈치를 보는 스스로가 싫어져 여래는 눈을 감았다.

“너, 나한테 손끝 하나라도 대기만 해. 그 땐 진짜로, 진짜로! 쫓아낸다.”

그 말에 대한 대답처럼 준혁은 늘어난 브리프의 밴드를 앞니로만 물었다. 그대로 준혁이 턱을 아래로 잡아당기자 어이없을 정도로 허술하게 팬티는 벗겨졌다. 간이침대에 앉은 채 다리를 벌린 여래의 사타구니에 고개를 묻은 준혁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코끝이 아래를 급하게 헤치고 들어와 여래는 서둘러 다리를 오므렸다.

“너… 넣는 건 절대 안 돼. 알겠지? 손대는 것도 안 돼!”

완력만으로라면 여래는 준혁에게 진다. 굳이 겨뤄보지 않아도 체구 차이만으로도 그건 분명했다. 손을 쓰지 못하게 하는 데에는 준혁을 골리고 싶은 것 외에도 손을 써서 압박해 오지 못하게 미리 단속하는 의미가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준혁이 여래의 컨트롤 하에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준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넣는 건 절대 안 해. 손도 안 써. 여래가 시키는 대로만 해. 약속 지킬게.”

“…씨이… 못 믿겠는데….”

전적도 있는 주제에! 아까를 떠올리면 의심스럽기가 그지없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멈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여래는 다시 다리를 벌렸다.

내려진 속옷 위로 조금 단단해진 성기가 걸쳐진다. 준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덥석 그것을 물었다. 준혁의 입 안은 뜨거웠다. 까끌한 혀가 귀두를 스치자 여래는 뒤로 몸을 받치고 있는 팔에 단단히 힘을 주었다.

“으응.”

쓸데없이 달콤하게 울리는 콧소리. 여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스스로가 짜증났다. 오메가답지 않으려고 평생을 노력했다. 선입견과 고정관념에서 계속해서 도망쳐왔다. 그런 자신이 지금 부정 당한다.

턱을 가슴에 묻으며 신음을 참아보지만 허사다. 준혁은 입 안에 넣은 여래의 것을 혀 위에서 굴렸다. 머리를 앞뒤로 쓰며 잔뜩 침을 묻힌 준혁은 발기해 선 기둥을 아래서부터 위로 핥는다. 마치 거기에 달콤한 무언가가 묻어 있기라도 한 듯 혀는 바빴다. 그러나 겉을 스치는 감촉만으로는 부족하다.

간지러워. 간지러워. 더 세게 해주길 바란다. 여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 일부러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최준혁.”

너는 내 말 잘 들어야 하니까. 그러기로 한 거니까. 말해도 괜찮지?

“빨아 봐.”

나한테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구. 난 너 예전에 머리도 감겨주고 밥도 떠먹여 줬으니까. 아플 때 간호도 해줬고. 그러니까 이건 네가 은혜 갚는 셈 치면 되는 거야.

“아…!”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여래는 자신의 말을 후회했다. 준혁이 명령 그대로 힘차게 여래의 중심부를 뽑아낼 듯 빨아 당겼기 때문이었다.

“아흐… 읏!”

곱슬기가 있는 억센 준혁의 머리카락이 허벅지 안쪽의 부드러운 살에 박혔다. 여래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아픔을 동반한 쾌감이랄까, 긁으면 긁을수록 시원해지면서도 더욱 가려운 그런 느낌이 아래에서 술렁거렸다. 밭은 숨에 습기를 머금고 옆으로 누운 음모를 코로 흩트리는 준혁은 눈을 들어 여래를 살폈다. 이대로 해도 될지를 묻는 것이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계속한다. 머리를 써서 앞뒤로 빨며 성기를 자극하는 준혁에 여래는 그만 미칠 지경이었다. 준혁을 이용하기로 한 건 여래였는데 왜 범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준혁은 뿌리에서부터 끝을 향해 넓게 혀를 펴 핥아 올린 후 혀끝으로 귀두구를 누르며 자극했다. 일말의 테크닉마저 느껴지는 준혁의 구음에 여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자식 순진한 얼굴을 하구선 완전 사기다! 그냥 멍멍이처럼 할짝거릴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윽.”

…잘하는 거야.

아래가 젖는다. 당연한 일이었다. 섹스의 전희를 흉내 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다음이었다. 준혁은 그것마저 핥고 싶은 모양으로 발딱 세워진 여래의 것 아래로 이어진 부드러운 입구에 입술을 비벼댔다.

“하지 마아… 거긴… 거긴 하지 마.”

딱 죽고 싶다. 누구도 만져본 적 없는 부위였다. 시선이 닿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다.

“손 안 대. 손 안 댈게. 응?”

“그래도 안 돼.”

“손만 대지 말라고 했잖아.”

준혁은 거의 억울하기까지 한 투였다.

“입은 손 아니잖아. 그러니까 해도 돼. 해도 돼, 여래야.”

그, 그럴까?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설득 당한다. 어느새 여래는 오른 무릎을 안아 다리를 벌리며 준혁의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만이야. 그럼.”

최준혁이 조르니까 하게 해주는 거다. 그런 거다. 누구에게 증명할 일도 없는데 여래는 필사적으로 변명을 뇌까렸다. 입구는 가까이서 보는 준혁이 내쉬는 숨만으로도 벌름거렸다. 주름 하나하나를 펼 듯 혀로 눌러 맛본 준혁은 여린 살점을 그대로 입술로 물었다. 강한 흡입에 점막은 부풀어 오르며 움찔거렸다. 허리에 힘이 빠진다.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다. 여래가 그대로 길게 눕자 준혁은 더더욱 세게 아래를 빨아올렸다. 대담하게 혀끝을 세워 안으로 밀어 넣기까지 한다. 안으로 말린 주름이 뜨거운 혀의 감촉에 요동쳤다.

“너, 넣지 말라고 했잖아.”

“손 아니야.”

준혁이 입을 떼자 혀가 벌려놓은 구멍에 서늘한 공기가 스쳐 여래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소름이 돋았다.

“손 아니니까 괜찮아.”

이 자식, 아까부터 그 소리만… 하지만 타박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여래의 눈치를 보며 물러났던 준혁은 이번에는 넣지 말라는 부분에만 주의하려는 것인지 여린 회음부의 살점을 입에 물며 그것을 맛보듯 우물거렸다.

“흐윽….”

각진 턱이 바짝 긴장해 오므라든 아래를 함부로 파고들었다. 침대 위에서 몸을 뒤채자 여래가 입고 있는 후드티는 점점 위로 말려 올라가 거의 그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뭉쳐진 후드 티셔츠에 뺨을 기대며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래는 생각했다. 흥분한 제 얼굴 따위는 절대, 절대 준혁에게 보여주지 않을 거다. 빨아보라고 한 주제에 겁나 덜덜 떠는 자신 따위는 절대!

벗은 배를 보는 준혁의 눈이 다시 짙어졌다.

“여래야.”

분명 손을 대지 말라고 했을 텐데 준혁은 도무지 참지 못하겠다는 듯 침대 바깥으로 나온 여래의 다리를 만지작거렸다. 주의를 줘야 하지만 핥고 빠는 데에 정신이 나갈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만져주는 게 더욱 자극이 되기도 해서 여래는 그런 준혁을 내버려두었다. 그 은근한 용인에 자신을 얻었는지 준혁은 여래의 양말을 벗겼다. 의도를 몰라 가만인 여래의 발을 자기 물건에 가져다 댄 준혁은 거기에 뜨거운 중심을 비벼댔다. 여지껏 방치해 두었는데도 준혁의 성기는 아까의 모양 그대로 빳빳하게 성이 나 있었다.

“야, 너어… 뭐하는…!”

“이건 손 아니니까.”

벌떡 선 준혁의 중심에서는 이미 미끈한 액이 흐른다. 질척이는 끝을 향해 엄지를 눌러 비빈 준혁은 작은 발이 무슨 대단한 자극이라도 되는 듯 한숨을 토한다. 제풀에 꺼떡거리는 중심을 여래의 발로 누른 준혁은 그대로 손을 모아 흔들어댔다.

“후으… 하….”

뭐하는 거야, 바보! 누가 저 기분 좋으라고 하는 줄 알아! 이건 내가 널, 어? 이용하려고, 어? 어라? 야!

하지만 항의는 할 수 없었다. 엄지발가락과 두 번째 발가락 사이 가장 너른 틈으로 귀두를 밀어붙인 준혁은 그 틈으로 자신의 것을 쓸어내렸다. 당겨진 표피에 부풀어 오른 혈관이 위로 두드러졌다. 껍질을 벗고 나올 듯 단단하게 일어선 자지가 흉악하기 그지없어서 여래는 거의 울먹거릴 지경이었다. 애새끼 주제에… 얼굴은 아무것도 모른단 듯 맹한 주제에… 물건은 험악하다. 저, 저런 거 징그럽다고. 색깔도 모양도!

“야…. 야아! 쫌!”

그리고 지금 무엇보다 급한 건 여래의 사정이었다. 준혁이 여래의 왼발에 골몰한 사이 방치된 여래의 남성은 거의 배에 붙은 채 마지막의 자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순간마저도 무표정한 준혁이지마는, 그 와중에도 찡그린 눈썹 사이와 즈려 문 입술로 여래는 준혁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흥분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혼자만 아주 신났다! 우이씨!

“야아…!”

“….”

“야, 최준혁.”

여래는 후드티를 있는 대로 끌어올리며 얼굴을 가렸다. 부탁의 말이 쪽팔렸다.

“나… 나도 손으로 해 줘.”

준혁은 여래의 발을 감싸 쥐고 있던 손을 멈췄다.

“여래가 아까 하지 말라고 했어.”

“시끄러! 내 말 잘 듣지도 않으면서 이제와서 지키는 척이야!”

“그래도.”

“빨리… 만지기나 해.”

준혁이 곧장 일어서자 흉기 같은 그의 것이 앞을 향해 겨눠졌다. 그 흉포스러움에 숨을 잠시 멈춘 여래에게 준혁이 다가왔다.

“그럼 여래가 허락한 거야.”

* * *

침대 무너지는 거 아니야?

하지만 그런 걸 따지려면 애초에 불러 앉히지를 말았어야 했다. 준혁의 무릎에 올라앉은 여래는 제 다리 사이로 선 두 개의 물건을 난감하게 내려다보았다. 아까 준혁이 입으로 애무해 한껏 부드러워진 비부는 저를 압박해오는 묵지근한 살덩어리에 다시금 벌름거렸다. 아이씨… 여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빨리해.”

채근하는 건 준혁이 좋아서가 아니다. 얼른 끝내버리고 싶어서다. 그걸 잘 알아두었으면 한다. 여래가 짧게 채근하자 준혁이 뒤에서 소곤거렸다. 더운 숨이 닿은 등이 달아올랐다.

“기대.”

여래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싫다. 그러면 자세가 완전히 벌어져버리고 만다. 그리고 준혁하고도 너무 가깝다. 물론 아래를 까고 무릎에 앉은 지금이 무슨 내외를 하는 것도 우습지만 이 이상으로 기댄다거나 붙어있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흔드는 여래에 준혁은 허락받은 손을 처음으로 쓴다. 후드 티셔츠 안으로 들어온 손이 여래의 가슴을 세게 쥐었다. 그걸 손잡이로 준혁은 여래를 끌어당겼다.

“나한테 기대. 여래야.”

형이라고 불러! 최준혁은 건방지다. 여래가 세 살이나 위인데.

이것도 미리 시작하기 전에 정해놨어야 했다고 여래는 씨근대지만 유두를 중심으로 가슴을 모아 손안에서 주무르는 준혁에게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작은 알갱이 같은 유두를 만지고 누르고 모은 다음에 뽑을 듯 위로 당긴다. 엄지와 검지로 비벼진 유두는 굳이 보지 않아도 발갛게 부풀어있을 것이었다. 준혁의 손가락 사이에서 으깨지는 젖꼭지에 여래의 성기가 다시 배에 바싹 붙었다.

오른손으로는 겹쳐진 두 개의 성기를, 왼손으로는 여래의 가슴을 주무르며 준혁은 여래의 이름을 귓가에 불어넣었다.

“여래… 여래. 여래.”

하지 마. 부르지 마. 귀가 너무 뜨거워. 여래는 준혁의 어깨에 이마를 비빈다. 여래를 안아 긴장한 가슴과 팔의 근육이 단단하다. 기대라는 말은 말뿐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사는 데가 이래놔서 혼자 있을 때라도 자위도 몇 번 해 본 역사가 드문 여래로서는 인생 최대의 자극이었다.

“하, 아응… 아….”

신음이 무슨 촉매가 되었는지 준혁의 손이 빨라진다. 준혁의 허리가 멋대로 흔들렸다. 절정이 다가올수록 어딘가에 박아 넣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엉덩이 사이를 갈라버릴 듯 튀어 오르는 준혁의 것에 여래는 벌어진 다리의 각도를 신경 쓰지 못하고 자세를 흩트렸다. 우성알파의 날뛰는 성욕을 깔고 앉은 데에 대한 야릇한 정복욕을 느낄 새도 없었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다리 사이로 준혁은 거칠게 손을 위아래로 왕복했다. 좀 더 세게 쳐 내리고 싶단 듯 모아서 쓸어내리는 손이 거칠었다. 못 참겠다. 여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아!”

“큿….”

준혁의 손이 여래의 심장을 쥐어뜯을 듯 가슴을 움켜쥐었다. 파정이었다.

여래는 얼른 입은 후드티의 단을 내려 쏟아지는 정액을 받았다. 이런 순간에도 더러워질까 걱정하는 자신이 싫다. 그러나 침대 시트로 쓰는 차렵을 빨아 말리기에는 아직 날이 추웠다. 두 사람분으로 흥건한 옷을 조심히 벗은 여래가 젖은 데를 중심으로 둘둘 말아 바닥에 내려놓는 동안에도 준혁은 여래를 끌어안은 채 벗은 등에 이마를 기대고 있었다.

“씨이… 아직 추운데.”

게다가 만만한 긴팔 티는 겨울 끝났다고 입고 있던 후드티 하나만 빼고 죄 넣어둔 터였다. 나와 있는 건 반팔뿐이었다. 입내로 투덜거리자 준혁은 입고 있던 티셔츠를 위로 당겨 벗어 그대로 여래에게 덮어씌웠다.

“여래가 입어.”

“너는.”

“나는 필요 없어. 입지 않아도 돼.”

이런 조금 감동이다. 치. 그거 잘한다고 매너까지 좋을 건 또 뭐람. 저도 알파라는 거지? 깔보던 준혁 손에서 멋대로 가버린 데에 묘한 반발심이 들어 고분고분해지지가 않는 여래가 빈정거리는 줄도 모르고 준혁은 조금 더 깊숙이 후드티셔츠로 여래를 감쌌다.

“여래는 감기 걸리면 안 돼.”

“너는 뭐 입게. 너한테 줄 옷 없는데. 있어도 너한테는 다 작을 거라. 그리고 나 반팔밖에 없어. 나한테 옷 주면 넌 반팔 입어야 된다고.”

적어도 두 치수 정도는 차이가 날 준혁의 어깨를 보며 여래는 뾰로통하게 쏘아붙였다. 누가 멋대로 그렇게 커지래.

“나는 더워. 안 입어도 돼. 면역력 강화 주사를 맞고 있어. 철마다 백신도 맞고 있어. 감기 안 걸려. 튼튼해.”

무슨 수작이야. 그, 그런 거 한 번 했다고 애틋하게….

“그러니까 여래가 입어. 누워 있어. 내가 치울게. 여래는 쉬어.”

그렇게 다정하게…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굴면 피곤한데.

누구에게 부림을 당하는 건 익숙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주는 건 영 서투른 여래는 준혁의 만류에 등 떠밀리듯 누워도 거북하기만 하다. 누운 자리에서 꿈틀거리며 여래는 입은 티셔츠의 소매를 걷었다. 손등 위로 넘치는 소매 단은 접어 올려도 계속 흘러내렸다. 준혁의 회색 면 티셔츠에서는 햇볕으로 잘 말린 청결한 세탁물의 냄새가 났다. 냄새에 감싸여 있으려니 아직도 최준혁한테 안겨 있는 것 같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자동으로 아까의 외설스러우리 만치 흠뻑 준혁에게 기댔던 자세가 떠올라 여래는 이불을 당겨 얼굴을 가려버렸다. 등 뒤에서 아프게 느껴지던 시선이 아직도 생생했다. 준혁은 발기해 발그스름해진 여래의 성기를 뚫어지게 보며 중얼거렸다. 여래의 것, 귀여워.

“정말 싫다….”

가장 열 받는 건 슬금슬금 준혁을 살피는 여래를 전혀 모르는 준혁이다. 청바지만 입고 세면대에 서서 후드티를 헹궈낸 준혁은 거품이 잘 나지 않는 마른 비누를 연신 문지르며 심각했다. 비틀어 짠 옷을 털며 준혁은 간이침대로 다가왔다. 움직이는 근육이 만드는 시시각각의 실루엣이 준혁의 배와 허리 근처에서 양감을 드러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걸 보는 여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알파는 알파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여래.”

이불 위로 눈만을 내밀고 있던 여래와 눈이 마주친 준혁은 마치 햇것처럼 소중하게 여래를 불렀다. 바지의 버클 위로 선명한 배렛나루가 아직 체액으로 젖어있는 걸 보며 여래는 순간 긴장했다.

또… 뭘 더 어쩌려구? 보자보자 하니까 아주 뭐 맡겨놓은 것처럼 구네.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확실하게 못을 박아야겠다. 암. 그렇고말고. 대딸 한번 해 줬다고 치근덕대기만 해 봐. 가만 안 둬. 그땐 진짜 확 쫓아내버려야지. 꼭!

잔뜩 귀를 붉히고 눈을 깜빡이는 여래에게 다가온 준혁은 자못 심각하게 물었다.

“여래야. 이거 어디다가 널면 돼?”

“…하?”

“세탁기로 다시 빠는 게 더 좋은데 어디 있는지를 몰라. 그러니까 그냥 널어놓을게.”

할 말이 없다.

“나도 몰라! 이 바보야!”

무슨 잘못을 또 저질러 버렸을까? 준혁은 반성하며 눈을 끔뻑거렸지만 답을 해 줄 여래는 뒤집어쓴 이불을 발로 차느라 바빴다.

* * *

돌아간 학교에서 준혁은 운동장을 백 바퀴 뛰어야만 했다. 외박에 대한 벌이었다. 기숙사 측은 평소에도 문제가 없던 준혁을 참작해서 사후에 작성한 외출계로 넘어가 주었지만 학과 쪽은 달랐다. 체대 특유의 엄격한 기강이 기숙사에 들어오지 않은 지난밤을 걸고넘어졌다.

선배들은 기계적으로 인사만 할 뿐 과의 일에 참여하는 법도 없고 수그리는 법도 없는 준혁을 꺾어놓을 기회를 벼르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요령도 없이 뛰는 준혁에 카운터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스탠드에서 서서 낄낄거리고 있던 선배들의 낯은 점점 내렸다. 마지막 바퀴를 마친 준혁은 그대로 쓰러졌다. 준혁의 주변을 둘러싼 선배들은 호들갑을 떨며 그를 일으켰다.

“저, 적당히 했음 싹싹 비는 맛이 있어야지!”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으니 준혁의 탓이라는 것이었다.

다음 날 밤,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 목재소로 다시 자러 온 준혁이 다리를 후들거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의아하게는 여겼지만 묻지는 않았던 여래가 그 전말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여래는 놀랐다가, 욕을 했다가, 너도 작작 좀 하라고 훈수를 두었지만 준혁은 그저 제자리를 찾은 것이 기쁠 뿐이었다. 여래의 옆으로 스며들 수만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누운 채로 여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준혁은 충만하면서도 위태로웠다. 마음은 가득 담은 물이었다. 아슬아슬한 수위가 출렁이며 넘을 준비를 하고 있는 물.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을 전력으로 질주하고 싶지만 이 가득 찬 마음은 더 이상 속도를 높였다간 그만 엎질러져 버릴지도 몰랐다. 여래의 말을 들어야 했다. 착하게 기다려야 했다. 그러면서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됐다. 한 번 떠난 여래가 두 번은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여래를 어떻게 쥐어야 할지 모르겠다. 세게 쥐면 다치게 할 것 같고 느슨하게 풀어주면 다시 없어질 것 같다. 여래는 신기루였다. 다가간 만큼 거리를 벌리는 신기루.

그래서 모든 일은 천천히 흘러갔다. 지금까지처럼.

* * *

옷에 붙은 톱밥을 떼지도 않은 채 수학 참고서를 보는 여래의 뒤로 지나가듯 던지는 준혁의 가끔의 말로 세월은 하나둘씩 퍼즐처럼 추리되었다. 잘 준비를 하던 준혁의 말에 여래는 보고 있던 책에서 눈을 들었다.

“여기서는 잠이 잘 와.”

“어이구, 좁아 터졌는데 잠은 무슨. 난 담이 결려 죽겠다!”

핀잔을 주는 여래도 아랑곳 않고 준혁은 침상에 붙은 나뭇가루를 꼼꼼히 털었다. 둥지를 손보는 새처럼 바쁘고 분주한 손길이었다.

“나는 자주 깼어. 너무 피곤해서 집중을 못 하는 바람에 혼나기도 했었어.”

“수면 장애, 그런 거? 요새 많다더라.”

“선 채로 졸기도 했었구.”

그래서 다시 만난 날 그렇게 무턱대고 자려고 달려들었던 건가? 여래는 쓰게 웃었다.

“다행이네. 이제 괜찮다니.”

“응.”

결코 웃는 법은 없지만 환해지는 표정을 이제는 알 수 있다. 늘 시큰둥한 주제에 남이 제 걱정을 해주는 건 또 좋아한다니까. 그런 준혁은 우습고 조금 사랑스럽다. 여래가 그 날 치의 문제집을 풀기를 묵묵하게 기다리는 준혁은 산책을 기다리는 개 같았다. 개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잠이 오는지 느릿해진 말투로 준혁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지금 너무 좋아. 코치도 칭찬해줬어. 좋아졌다구. 너랑 있으면 항상 좋아. 좋은 일만 생겨.”

“…으응.”

“나 오늘도 잘했어. 좋았어. 좋아. 좋아해. 너무 좋아.”

“….”

“좋아.”

그만 조용히 하라고 해야 하는데. 그 익숙한 구박이 나오지 않아서 여래는 푹 고개를 숙였다.

“좋아해, 여래야.”

부담스럽다.

“예전에는 말하지 못했어. 나중에는 꼭 하려고 연습을 했어.”

언제? 얼마만큼 예전? 눈으로 묻는 여래를 기특하게도 알아챈 준혁은 기억을 꺼내어 놓는다.

“은애원에서, 병원에서, 주차장에서. 네가 그랬잖아.”

선뜻 그렇다 대답하지 못하는 여래에도 준혁은 낙담하지 않았다.

“그 때 말하고 싶었는데 말이 잘 안 나왔어. 다시 만나면 꼭 이야기해주려고 계속 연습했어.”

“…잠이나 자.”

“응.”

고개를 끄덕이는 준혁이 순했다.

좋아해, 여래야. 여래야, 좋아해.

단어의 순서를 바꾼다고 해서 네 말을 들어주지는 않아. 이 바보야. 그저 힘으로 달려들 뿐인 고백 따위 달갑지 않다고. 여래는 다시 문제집을 본다. 그러나 머리는 다른 생각에 가득 차 눈앞의 수와 단어는 문제로 읽히지 않았다. 해법을 풀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손을 가만히 두고 있으면 준혁이 저를 부를까봐 여래는 대신 별을 그렸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별들의 행렬이 종이 위에서 빛났다.

나보다 좋은 환경에서, 나보다 좋은 조건으로,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내가 가고 싶던 학교에 다니는 너를 나는 싫어하기도 하고 귀찮아하기도 해. 내가 너를 허락한 건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열등한 내가 우성의 너와 견주었을 때 비교 우위를 가질 수 있는 건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그 가냘픈 마음 하나 덕분이었으니까. 그것 없이 내가 어떻게 네 앞에서 나의 초라함을 견딜 수 있었겠어.

하지만 지금은 달라. 너와 나는 이미 자라 버렸다. 너는 나보다 훌륭하게 되어버렸고 내가 가고 싶던 대학의 학생이 되어버렸지. 나는 아직도 검정고시 준비를 하는 고졸이라고.

그러니까 나를 좋아한다고 하지 마. 그 말로 나를 약해지게 하지 마. 내가 필요하다고 하지 마. 내가 왜 또 세상과 너를 통역해야 해? 단지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걸 감당하고 싶지 않아. 나는 나만으로도 벅차. 나는….

안 돼. 더 이상 개입해서는 안 된다. 머리로는 그렇게 외치면서도 좋아한다는 말에는 그대로 파묻혀 버리고 싶어져서, 여래는 펜을 내려놓았다.

결국 문제의 답은 알 수 없었다.

좋아한다는 문장의 삽입만으로 인생의 다른 페이지에 도약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일까. 하지만 서툰 고백은 무엇도 되지 못하고 미숙한 채로 둘의 주변을 부유할 뿐이었다.

좋아한다는 고백에 서둘러 답해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고약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준혁 또한 그저 말했으면 족하다는 듯 여래의 답변을 궁금해하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다만 열렬하게 바라봐오고 그것을 피하는 며칠간이 계속되었다.

알고 지낸 지 십 년이 넘었다고 해도, 해묵은 감정과 긴 공백이 버티고 있는 여래와 준혁은 새로 시작하는 사이나 다름없었다. 여래가 준혁을 완전히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무뚝뚝하고 절제된 감정, 골똘한 시선은 이미 익숙했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오메가인 스스로에 대해 숨기지 않는 점만은 편리했다.

이것저것 미안한 점도 있었다. 버리고 갔다는 부채의식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좋아한다는 감정과 등가로 치환되는 항목들은 아니었다.

오메가로서 거의 발현하지 않은 여래는 남자끼리의 관계에 자신을 대입해 본 적이 없었다. 그걸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여래는 어느새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가장 익숙한 자신의 모습이었으니까.

게다가 아직 여래는 히트 사이클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감기처럼 미열이 오르는 일은 두 달에 한 번 정도로 찾아오곤 했지만 푹 쉬고 나면 나이지는 증상은 심각하지 않았다. 오메가라는 형질 자체가 핸디캡이 되는 사회에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래는 생각했다.

처음 서로가 서로의 자위를 도왔던 그 밤 이후로도 여래가 준혁을 바닥이 아닌 간이침대에 앉히는 것을 신호로 둘은 몇 번이나 행위를 거듭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호의 수요와 공급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거래였을 뿐 딱히 무슨 감정이 수반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여래의 생각은 그랬다.

준혁은 무엇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보고 있을 뿐이었다. 여래의 짧은 지식으로도 그것은 죄가 아니었기에 그만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여래가 물주머니 같은 마음을 어떤 그릇에 담아야 할지 모르고 어영부영하는 사이 준혁은 종종 학교 앞에서 파는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 들고 계속 목재소로 왔다. 처음엔 과자였다. 다소 유행이 지나 잘 먹지 않는 사브레에 여래가 투덜거리자 준혁은 멍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노인네냐. 과자 취향도 참.”

“여래, 이거 좋아하는데.”

“뭐래. 누구 맘대로. 나 이거 안 먹는데?”

“사브레를 안 먹어?”

“과자는 감자칩 같은 게 좋아. 짭짤한 거. 바삭바삭한 거.”

준혁의 당황이 무엇 때문인지 몰라 어깨를 으쓱한 여래는 그 후로는 무얼 사 올지를 일일이 알려주었다. 컵밥, 핫도그, 토스트, 소시지라고 부지런히 적어 내려가는 준혁의 손이 바빴다.

식어서 뻣뻣해진 주전부리를 먹고 나면 책을 붙잡고 끄덕끄덕 조는 여래의 옆으로 준혁은 텔레비전을 보았다. 조심스럽게 여래의 어깨를 안아 자신에게 기대게 한 준혁은 텔레비전이 화면 조정 시간이 되어 오색의 막대기를 송출할 때까지 오래, 그것을 보고 앉아있었다.

* * *

오늘의 메뉴는 닭꼬치였다. 이비에스의 수능 특강 내용을 떠올리며 검지에 뭍은 데리야키 소스를 긁적거리는 여래를 비키게 한 준혁은 짙은 갈색의 자국을 혀로 대신 핥아 올렸다. 아까 너도 먹은 거야. 알고 있는 맛이야. 파를 싫어하는 네가 고기만 먹어버려서 잔소리를 했잖아.

여래는 준혁에게서 손을 빼내며 화제를 돌렸다.

“야, 최준혁. 너… 이거 다 공부한 거니까. 나 가르쳐줘.”

“공부한 거 아니야. 마인드 업로딩을 했어.”

“응? 마인드… 뭐?”

“머리에 외부의 지식을 심는 기술이야. 뇌파는 전자적인 신호를 띄기 때문에 역으로 전자적인 정보화한 지식을 뇌에 주입할 수 있다면 컴퓨터가 데이터를 받아들이듯이 외부 저장장치만을 가지고도 인간은 여러 가지를 기억하거나 알 수 있게 돼. 나는 그 실험의 피실험체로 발탁되었어. 나, 나는 텅 비어 있으니까, 바보라서 오히려 좋은 실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어. 그 실험을 하는 곳이 센터야.”

여래로서는 도무지 모를 말이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단어들의 나열을 이해할 수 없다.

“…뭐야, 갑자기… 천천히 좀 말해 봐.”

“나는 텅 비어있어.”

감정이 실리지 않은 눈.

“그래서 가장 좋은 피실험자가 됐다.”

다시 붙잡힌 손가락을 빨아오는 혀가 뜨거웠다. 혀로 손가락을 얽은 채 눈만을 들어 여래를 보는 준혁은 뺨을 가파르게 만들며 입에 힘을 주었다.

“머리에 답을 심었어. 그래서 어떻게 푸는지는 잘 몰라. 약 이만 칠백종의 문제와 그것의 답을 알 뿐이야.”

“아, 응… 저기 너, 괜찮은 거야?”

자기 일부를 실험 도구로 사용했다고 담담하게 고백하는 준혁이 낯설다. 여래는 슬며시 눈치를 살피지만 준혁은 아무렇지 않은 투로 여래를 향해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여래에게서 배운 제스쳐였다.

“뭐가?”

“…아니야. 됐어.”

다음에는 사람이 물어보면 성의 있게 대답을 해야 한단 걸 가르쳐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여래는 잡힌 손을 뿌리쳐냈다. 어린애 주제에 갑자기 그렇게 의미심장해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려운 기분이 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입맛을 다시며 여래에게서 떨어져 나간 준혁은 아직도 허기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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