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완전한 나신이 된 두 인영이 허름한 정자 안에서 뒤엉켰다. 해랑은 도포 자락 위에 누워 석현이 제게 입맞추는 것 하나하나에 몸을 떨었다. 석현은 해랑의 모든 곳에 입맞출 작정인양 하얀 몸 곳곳에 입술을 내렸다. 가슴에 놓인 작은 돌기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혀를 내어 유두를 간지럽히기도 하다가 유륜 전체를 입에 머금고 빨아들이며 해랑을 애태웠다. 해랑은 잔뜩 민감해진 몸인지라 석현의 혀놀림 하나에도 허리를 들썩거렸다. 본능은 무서울 만큼 단숨에 이성을 잠식했다. 둘 다 처음 하는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멋대로 움직여 댔다. 석현은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정신에도 해랑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점점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 석현의 입술은 해랑의 아랫배, 허벅지 안쪽, 발등에까지 머물렀다. 석현의 두 손은 해랑의 엉덩이를 지분거렸다. 석현은 말캉한 엉덩이를 주물거리며 허벅지 안쪽의 여린 살들을 적시던 입술을 위 쪽으로 옮겨갔다. 석현의 입이 마침내 완전히 서 있는 해랑의 것을 물었다.
“아, 석현아, 잠깐, 아아!”
해랑이 말릴 틈도 없이 해랑의 성기를 입에 담은 석현은 거침이 없었다. 귀두 끝을 혀로 굴려 간지럽히다가도 해랑의 기둥을 입술로 부드러이 쭉 훑어내기도 했다. 간간히 한 손으로 해랑의 기둥을 쓸어내리며 자극하기도 하자 해랑의 뒤에선 애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엉덩이를 주무르던 석현의 손이 축축히 젖을 만큼 흘렀다. 해랑의 몸이 그만큼 애가 닳았다. 빨리 제 안을 채워줬으면 하는 기대감과 동시에 석현의 것이 비좁은 공간을 뚫고 들어올 것에 대한 두려움이 빠르게 교차했다. 석현의 것은 해랑의 것보다 크고 두꺼웠다. 힘줄까지 불툭하게 튀어나와 있어 처음 성교를 경험하는 해랑에게 있어선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석현의 것이 제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이 갈증을 절대로 채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석현은 그런 해랑의 마음을 이미 눈치채기라도 한 걸까. 이미 정신이 나가 통제력을 상실한 석현은 거칠게 해랑을 돌려세워 엉덩이를 하늘 높이 치솟게 했다. 해랑에겐 수치스러울 법한 자세였지만 그런 걸 느낄 만한 여유가 없었다. 빨리 뭐라도 넣어줬으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석현의 혀가 벌름거리는 해랑의 입구 주변을 핥기 시작했다. 채워줬으면 하는 곳을 뭉근히 자극하기만 하자 해랑의 입에선 애달픈 소리가 흘렀다.
“흐응, 흣, 이제, 그마안, 하으…….”
“하아…….”
해랑의 울음섞인 말에 석현이 입을 떼었다. 석현이 핥아 건조해진 해랑의 구멍에서 다시 애액이 넘쳐흘렀다. 그리고 뒤이어 해랑의 입구에 살덩이가 파고들기 시작했다. 석현의 귀두 끝부분이 해랑의 구멍을 열었다. 해랑은 처음 느끼는 감각에 헉소리도 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옴과 동시에 무서워졌다. 만약 저게 다 들어온다면 몸이 망가져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랑이 공포심에 휩싸여 덜덜 떨리는 팔로 앞으로 기어 도망가려 했다. 그 때, 석현의 두 팔이 해랑의 엉덩이를 세게 잡아당겨 제 몸 쪽으로 붙였다. 동시에 석현의 것이 쑤욱 밀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뿌리까지 박아 넣은 석현의 성기에 해랑의 깊숙한 곳이 찔렸다.
“허억!”
해랑의 입이 쩍 벌어지고 눈이 번쩍 떠졌다. 안이 완전히 뚫려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생경한 감각에 몸서리치는 해랑의 몸을 석현의 두 팔이 감싸 안았다. 그에 해랑이 잠시 숨을 내쉬며 어떻게든 고통을 가라앉히려 애를 썼다. 그러자 달래 주듯 안던 팔에 곧바로 힘이 들어갔다. 석현의 팔이 해랑의 몸을 결박한 채로 석현의 것이 해랑의 안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해랑의 비좁은 안쪽을 쑤시는 석현의 기둥에 해랑의 살들이 그대로 쓸려 나가는 것 같았다.
“흐읏, 아! 석현아, 응읍……!”
석현이 휘저을 때마다 자꾸 무너지는 해랑에 석현은 두 팔로 해랑의 몸을 아예 일으켜 세웠다. 해랑의 등이 석현의 가슴팍에 완전히 밀착되자 석현의 것이 해랑의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왔다. 해랑이 깜짝 놀라 숨을 집어먹자 석현의 큼직한 손이 해랑의 턱을 잡아 끌었다. 석현 쪽으로 해랑의 얼굴이 돌아가기 무섭게 석현의 입술이 해랑을 집어 삼킬 듯 베어 물었다. 석현의 입술로 인해 해랑의 소리는 둘의 입 안에서 맴돌기만 했다. 해랑의 손이 더듬거리며 제 몸을 감싼 석현의 손등 위로 얹었다. 서로의 체온을 느껴가며 입맞추던 둘은 다시 입을 떼고 자세를 바꾸었다. 석현이 이끄는 대로 해랑은 그대로 천장을 보고 돌아누웠다. 석현은 제 것을 빼낸 그 잠깐을 참지를 못하고서 다시 해랑의 안으로 성난 기둥을 푹 찔러 넣었다.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고 거세게 밀어붙이는 석현에 해랑은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애원했다.
“나, 아파, 흐아! 아파, 석현아, 아!”
“
석현은 이미 이성을 잃은지 오래였다. 원래의 석현이라면 다정히도 바라보고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을 테지만 지금의 석현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마치 한 마리 금수로 돌변한 듯한 석현은 본능에만 충실해 해랑의 더 깊숙한 곳까지 제 것을 정신없이 박아 넣을 뿐이었다. 해랑 역시 석현의 움직임에 맞추어 정신없이 흔들렸다. 움직임이 반복되자 고통과 동시에 스멀스멀 몰려드는 알 수 없는 기분이 해랑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에 석현의 귀두가 전립선을 찌르는 순간, 해랑은 머릿속에서 번개라도 치는 듯한 쾌감에 온 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제까지 와는 차원이 다른 감각이었다. 해랑의 전과 다른 반응에 석현 또한 자극이 강한 부분을 알아차렸는지 계속해서 그 부분만 자극해 댔다. 해랑은 점점 아픔보다 강렬한 쾌락에 물들어갔다. 정신이 어디론가 날아 갈 것만 같아 미칠 것 같았다. 자꾸 더한 자극을 원하게 만들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져갔다.
“힉, 아흑! 아, 석현아, 으읏……!”
흥건히 젖은 아래에 석현의 것이 들락거릴 때마다 해랑의 입에선 쉴 새 없이 교성이 터져나왔다. 석현은 낮게 목을 울리며 격렬히 허릿짓을 해댔다. 해랑이 우느라 벌개진 두 눈으로 석현을 올려보자 석현이 해랑의 발목을 낚아챘다. 석현의 어깨 위로 해랑의 두 다리가 걸쳐지고 석현이 해랑을 끌어 안 듯 자세를 낮추었다. 가까워진 석현에 해랑은 두 팔을 들어올려 석현의 목에 감았다. 해랑은 석현이 세게 치달을 때마다 더 강하게 석현을 끌어안았다. 석현이 사라지기라도 할까 두려운 것 마냥 석현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애달피 매달리는 해랑에 석현은 다시 해랑의 다리를 내려 빠르게 쳐올리기 시작했다. 석현은 해랑을 완전히 끌어안고서 밀려오는 사정감을 분출하기 위해 해랑을 부술 듯이 박아댔다. 등 밑의 도포자락은 형편없이 구겨져갔다.
“그만, 아, 이제, 그만, 아앗, 뭐가, 나올 것 같…… 아읏!
“하아, 흐, 도련, 님……!”
“아아……! 석현아, 아아앗!”
성교 내내 저를 부르지 않고 아랫입술만 꽉 깨물던 석현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해랑이 눈을 크게 떴다가 질끈 감았다. 석현의 한 손이 해랑의 아래를 꽉 잡고 흔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앞과 뒤에서 동시에 감내할 수 없을 양의 자극이 밀어닥치자 해랑은 허리를 들썩여가며 석현의 팔과 등을 긁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점점 치달아 오르던 둘의 움직임이 멈춘 것은 순식간이었다. 호흡이 점점 가빠져왔고 눈 앞이 아득해져 갈 때쯤, 석현이 순식간에 제 것을 빼냈다. 그대로 안에 머무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도 잘 알았기에 무의식 중에 나온 행동이었다. 석현은 제 것과 해랑의 것을 겹쳐 쥐고선 거칠게 흔들었다. 잔뜩 예민한 성기가 비벼지자 전율이 온 몸에 일었다. 이미 오를대로 오른 열락에 절정은 금방 찾아오고 있었다. 온 몸에 돌던 피가 중심부로 모이는 것 같더니 이윽고 둘의 머릿속이 아예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온 몸의 근육이 수축됨과 동시에 달달 떨렸다. 석현의 손과 해랑의 배 위로 서로의 정액이 튀어 올랐다. 둘의 고개가 절로 젖혀지며 열린 입에선 헐떡임만이 흘러나왔다. 해랑의 위에서 거친 숨을 고르던 석현에 해랑이 손을 뻗었다. 석현은 이제야 겨우 정신이 차려진 듯 보였다. 제 앞에 벌어진 일이 믿기지 않는 듯 멍한 얼굴이었다. 하긴, 그 누구도 이 정자에서 이런 행위를 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 했다. 해랑은 왠지 석현이 걱정되었다.
“석현아…….”
저를 내려다보는 석현의 눈가에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뚝, 떨어져내렸다.
“도련님…….”
“응, 석현아.”
“제가, 제가 무슨 짓을…….”
“괜찮아. 괜찮아, 정말로.”
“제가…… 도련님을, 흐윽…….”
자괴감이 밀려온 석현은 결국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쩔 수 없었던 일임을 알면서도 죄책감과 두려움 등이 석현을 괴롭게 만들었다. 해랑은 그런 석현의 뺨을 감싸주었다. 눈물을 뚝뚝 떨구는 석현의 뺨을 어루만져주다 다시 제 쪽으로 끌어당겨 가벼이 입을 맞추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님을 알려주고 싶었다. 석현은 부드러이 입맞춰오는 해랑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다시 무너지며 해랑에게 더 진한 입맞춤을 선사했다. 정자 안은 아직도 둘의 체향이 잔뜩 어지러진 채였다.
숨겨진 그림자
얼마나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안고, 입맞추고, 채우고, 끌어 당겼던걸까. 정신없이 욕정을 채운 뒤에 해랑은 기절하듯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해랑은 딱딱한 정자 위가 아니었다. 해랑이 다시 눈을 떴을 땐 보드라운 이불 속이었다. 창 틈으로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보니 어느새 아침 해가 떠있었다. 해랑이 놀라 몸을 일으키는데 온 몸이 쑤셨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옷에 쓸리는 살이 쓰렸다. 해랑은 미간을 찌푸리며 제 몸을 살폈다. 몸 구석구석에 석현이 남긴 흔적들이 잔뜩이었다. 그리고 책상 위엔 어제 들고 나갔던 짐보따리가 그대로 놓여있었다. 마음이 소란해졌다. 해랑은 목을 빼고선 다 갈라진 목소리로 석현을 찾았다.
“…석현아, 밖에 있어?”
“예, 도련님.”
마침 방 앞에 서 있던 석현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색한 기운이 둘 사이를 맴돌았다. 해랑은 석현을 먼저 불러 놓고는 막상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눈동자만 굴렸다. 이번엔 석현이 먼저 해랑에게 말을 건넸다.
“몸은…… 괜찮으신지요.”
“어? 어, 어……. 괜찮은 것 같, 으윽!”
해랑은 제게 안위를 묻는 석현에 당황해 한껏 크게 움직이려다 욱신거리는 몸을 못 이기고 결국아픈 티를 냈다. 그에 석현이 당혹스러워하자 해랑은 부끄럽고 미안해서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해랑의 눈 앞에 어제의 석현이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저 커다란 몸을 하고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울던 석현이었다. 해랑은 마음이 아렸다. 왜 하필 그 때 달오름이 온 것인지……. 해랑은 자신의 유별난 몸뚱이가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다.
“……죄송합니다.”
결국 또 석현의 입에서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해랑은 지끈대는 머리를 한 손으로 문지르며 석현을 보았다. 고개를 떨군 채 더 이상 말이 없는 석현에 속이 상한 해랑은 작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석현의 어깨 위에 짐을 하나 더 얹은 기분에 가슴이 꽉 막혀왔다. 해랑 역시 할 말을 잃고 입술을 꾹 닫아 버리자 방 안엔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에 석현이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련님. 물을 받아 놨습니다. 내내 씻지도 못하셨으니 가서 몸을 좀 담그시지요.”
“아, 그래. 그래야겠다.”
해랑이 허둥대며 자리를 일어나는데 또다시 통증이 밀려왔다. 억소리를 내며 무너지는 해랑에 석현이 놀라 급히 달려와 해랑을 붙들었다. 덕분에 가까이 마주한 시선들이 부딪혔다. 흔들리던 두 사람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질 못했다. 해랑이 먼저 민망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석현에 의지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몇 걸음 나아가다 걸음을 멈추었다. 의아한 눈으로 석현이 해랑을 보았다. 석현의 시선을 느낀 해랑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석현의 팔을 붙든 채로 해랑이 조심스레 물었다. 본인 스스로도 참 민망한 질문이었다.
“나 좀… 도와줄래?”
석현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해랑에 대한 미안함과 애정. 양분된 마음이 석현의 속에서 불같이 싸우고 있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 고갤 끄덕였다.
“가시지요.”
*
석현의 부축을 받고 겨우 욕조 앞에 선 해랑이 제 옷을 하나하나 벗겨내기 시작했다. 석현은 해랑이 옷 벗는 것을 받아주었다. 금세 맨살이 드러났다. 해랑이 전부 탈의를 하고는 민망한지 살짝 고갤 비틀어 석현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린 해랑은 천천히 욕탕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석현은 그런 해랑을 멍하니 보기만 했다. 어제의 일이 있은 뒤, 다시 해랑의 맨 몸을 마주한 석현은 충격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하얗기만 하던 해랑의 몸 구석구석이 온통 자신이 만들어 낸 상처들로 가득했다. 석현은 금수같던 어제의 자신을 떠올릴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달오름의 영향에 정신을 놓았다고는 해도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 석현이었다. 아버지도 그저 조심하라 당부하기만 하셨을 뿐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알려 주시지 않았었다. 석현은 엉망이 된 해랑의 몸에 울컥 치미는 마음을 겨우 누르고는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해랑이 들어간 욕조 옆에 섰다.
“물이 너무 뜨겁거나 차진 않으신지요?”
“응. 괜찮아.”
석현은 부드러운 면으로 된 천을 가져와 조심스런 손길로 해랑의 팔부터 닦아내기 시작했다. 이따금 쓰라린지 해랑이 몸을 움찔거렸다. 등을 닦아내고 나서 석현의 움직임이 티나게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상체는 전부 닦아냈으니 하체만 닦으면 되는데 아무래도 민망했다. 해랑이 얼른 눈치를 채고 천을 받아 자신이 닦지 않았다면 더 민망했을 테다. 힘겹게 제 몸을 닦아내는 해랑을 석현이 안쓰러이 쳐다보았다. 겨우 씻은 해랑이 석현에게 천을 건네자 석현이 그보다 더 작은 천 하나를 손에 쥐고 해랑에게 다가갔다. 세안용 천이었다.
“얼굴, 닦으셔야지요.”
해랑은 대답 대신 석현에게로 제 얼굴을 빼어 내맡겼다. 석현은 망설이다 마치 유리구슬이라도 만지듯 조심스럽게 해랑의 얼굴을 감싸 닦기 시작했다. 해랑은 먼저 닦아 달라고 요청해 놓고 선 잔뜩 숨을 집어먹은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에 석현이 움직임을 멈췄다. 석현이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해랑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눈 앞엔 석현이 여전히 자신을 보고 있었다. 두 눈을 마주하자 심장이 쿵, 저 아래로 떨어졌다. 저를 보는 그 눈빛이 너무 서글프다. 해랑은 제 얼굴을 감싼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얹었다. 둘은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마주하면 안된다는 것을. 하지만 한 번 일깨워진 본능은 무섭도록 육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혀왔다. 가까이 마주한 얼굴에 가슴이 떨렸다. 석현이 살짝 입을 열고 참을 수 없는 숨을 뱉어 내자 해랑이 석현 쪽으로 팔을 뻗어왔다. 잔잔하던 욕조 내부가 물결쳤다. 웅크리고 있던 해랑의 몸이 움직여 석현에게로 향했다. 해랑은 주저하듯 멈칫거리며 다가갔다. 그런 해랑의 뺨을 석현의 엄지손가락이 간질이듯 매만졌다. 그리고 이내 석현이 해랑에게 먼저 입맞추었다. 촉촉히 젖은 해랑의 입술이 메마른 석현의 입술 위를 적셨다. 석현의 아랫입술에 물을 건네듯 여러 차례 머금고 핥던 해랑은 곧 자신의 틈으로 들어오는 석현에 당황하여 석현의 옷자락을 꽉 붙들었다. 해랑은 금세 석현이 제 안을 유영하도록 두었다. 절로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
“으음…….”
해랑이 앓는 소리를 냄과 동시에 석현의 정신이 번뜩 들었다. 석현의 두 손이 황급히 해랑을 밀쳐냈고 두 사람의 입이 떨어져 거리를 두었다. 달아오르던 숨이 허공에서 흩어졌다. 여전히 석현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던 해랑이 석현을 올려보았다. 석현은 해랑에게서 시선을 돌린 채로 말했다.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무슨 의미야?”
석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결심한 듯 해랑을 보고 말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도련님 곁을 지키지 못 할 것 같습니다.”
“……! 석현아…!”
“도련님도 저처럼 혼란스러우시 리라 생각합니다.”
해랑도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석현마저도 옆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해랑은 필사적으로 석현을 붙들었다.
“그치만 난……!”
“정리가 되면 다시 곁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해랑이 붙잡을 틈도 없이 석현이 먼저 자릴 빠져나갔다. 텅 빈 욕실에 덩그러니 놓인 해랑이 멍하니 석현이 나간 자릴 바라보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누구에게도 득이 될 관계가 아닌 것은 명확하기 때문에. 이대로 마음이 더 커지고, 혹여 같이 있을 때 또다시 달오름이 오거나 석현에게 해오름이라도 온다면 그 땐 정말 감당할 수 없을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법이다. 하지만 석현에 대한 욕심이 커지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이미 몸정까지 나눈 상태에서 석현을 향한 마음을 지우기엔 너무 커다랗게 부풀어 있었다. 모든 것이 처음 겪는 것들이라 한번 차오른 감정은 쉬이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다만, 서로의 마음이 어떤지 알면서도 밀어내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가 조금 서글플 뿐이었다. 석현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해랑을 밀어냈다. 해랑 역시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서러웠다. 차라리 석현이 노비가 아닌 원래의 양반이라 만나지라도 않았다면 나았을 것을. 해랑은 고개를 떨구었다. 어제 미처 다 쏟지 못한 슬픔이 뒤늦게 터져 나왔다.
*
그 일이 있은 뒤, 해랑은 당분간 석현의 그림자조차 보지를 못했다. 어차피 해랑도 과거시험에 몰두해야 했기에 지난 번처럼 구태여 석현을 찾지 않았다. 심적으로 고단한 건 저 또한 마찬가지이기도 했고. 해랑의 시중은 업득이나 오월이가 대신하였다. 석현은 해랑을 피해 일부러 멀리 심부름을 다녔다. 무언가 사러 가야할 일이 있으면 자처하여 나가곤 했다. 그러다 하루는 관군 몇이 저잣거리에 내려와 벽보 하나를 붙이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 것을 보려고 우르르 몰려든 사람들에 떠밀린 석현은 얼결에 벽보의 내용을 보았다. 전쟁에 동원될 군사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단순한 오랑캐의 침략이 아닌 나라와 나라 간의 전쟁으로 번진 모양새였다. 문득 지난 번 해주를 향해 달려가던 병사들이 석현의 머릿속에 스쳤다.
“해주 땅이 곧 궤멸될지도 모른다지?”
옆에 있던 남자가 불쑥 말을 꺼냈다. 남자의 일행인 듯 보이는 이가 그에 동조하며 고갤 주억거렸다. 숙부가 계시던 해주 땅이 전쟁으로 파괴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석현은 갑자기 속이 거북하여 얼른 사람들 틈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오자 오월이 석현을 반겼다. 오월은 석현의 손에 들린 물건들을 낼름 받아 들더니 턱 끝으로 안채를 가리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라버니! 대감 나으리께서 부르셔요.”
“나를?”
“네. 안으로 들어오라 하시던 데요?”
석현은 뜬금없이 자신을 부른다는 얘기에 순간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곧 눈빛을 바꾸고 안채를 보았다. 틀림없는 기회였다. 오월에게 짐꾸러미를 부탁한 뒤 석현은 안채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