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23화 (21/64)

숨겨진 그림자

23화

어두워진 방 안엔 초 하나 켜져 있지 않았다. 창 틈으로 살짝 스며드는 달빛에 의지한 채 둘은 해랑의 침상 위에 마주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참동안 서로의 입술을 탐하다 해랑이 이끄는 손에 의해 석현은 해랑의 침상 위로 올라왔다. 좀 전의 입맞춤으로 인해 제어하지 못한 체향이 방 안 곳곳에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서로의 향에 기분이 붕 떠 어쩐지 숨이 차오르는 듯했다.

어색하면서도 애틋하게 한참동안 서로를 보다 먼저 움직인 쪽은 석현이었다. 석현의 떨리는 손이 달이 묻은 해랑의 뺨을 쓸었다. 석현의 손이 닿자 해랑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아직 물에 젖은 눈가가 반짝였다. 주저하던 손길이 해랑의 살결에 닿는 순간, 석현은 몇 번이고 해랑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홀린 듯 해랑을 어루만지던 석현은 해랑의 뺨을 감싼 채로 말했다.

“믿기지 않습니다.”

석현이 말에 해랑이 푸스스 웃으며 되물었다.

“뭐가?”

“제가 이렇게 도련님을 만지고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그에 해랑이 석현의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올려 감싸 쥐었다. 그 상태로 잠시 석현의 따뜻한 손을 느끼던 해랑은 스르르 눈을 뜨며 말했다.

“사실 나도 꿈 같아.”

이 순간이 꿈이라면 그만큼 슬픈 일이 어디있을까. 하지만 둘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분명히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정말로 서로를 느끼고 있다고. 절대 꿈이 아니라고.

“내 얼굴 잘 담아둬. 오래 못 보니까. 나도 네 작은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담아 갈게.”

해랑의 말에 석현은 제 손에, 눈에, 가슴에 새겨 넣으려는 듯 해랑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해랑 역시 석현의 얼굴 위로 손 끝을 얹고 찬찬히 훑었다. 석현은 해랑을 뚫어지게 보다 제 입술 위에 얹어진 채 떠나질 못하는 해랑의 손을 붙들었다. 해랑의 두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석현은 해랑에게 천천히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해랑의 이마 위로, 콧등 위로, 뺨 위로, 입술 위로 아주 천천히. 해랑은 제게 애정을 쏟는 석현의 팔을 꽉 붙든 채 석현의 입술이 닿을 때마다 떨리는 몸을 감추려 애를 썼다. 석현이 입술을 떼고 그런 해랑을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해랑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떠 석현을 마주했다.

“나 과거 보러 간 사이에 사라지면 안 돼. 알았지?”

석현의 짙은 눈동자에 해랑이 담겼다. 해랑은 믿을 수가 없었다. 제게 온전히 애정을 고하는 석현의 몸짓들 하나하나가. 생생히 느껴지는 감촉은 지금이 꿈이 아니란 것을 해랑에게 알렸다. 해랑의 불안함을 읽은 석현이 해랑을 달래 주고자 끌어안았다. 아니 어쩌면 해랑을 안은 것은 자신의 불안함을 달래려고 끌어 안았을지도 몰랐다. 그도 아니면 미안함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을 지도 몰랐다.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었다. 석현 자신도, 해랑도 모두 위안받을 수만 있다면.

“불안해 마십시오. 저는 사라지지 않을 테니.”

해랑은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석현이 저를 안을 때면 해랑은 몸도 마음도 녹는 듯했다. 무엇을 말하든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석현은 제 품에 새끼 고양이 마냥 안긴 해랑이 어여뻤다. 하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해랑은 떠날 것이고 자신 역시 사지로 향할 것이다. 석현의 마음 한 켠이 무너졌다. 해랑의 몸을 안은 석현의 팔에 힘이 더욱 강하게 들어갔다.

“도련님을 보고 있으면 자꾸 불경한 마음이 듭니다.”

석현의 말에 해랑이 몸을 떼었다. 해랑은 석현의 손을 감싸 들어올리더니 석현의 손등 위에 입을 맞추었다. 해랑은 저를 보는 석현에게 수줍게 웃어 보였다.

“다행이야. 네 맘과 내 맘이 같아서.”

석현은 해랑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해랑과 함께 웃었다. 그리고는 해랑의 입술 위로 제 입술을 포개었다. 말캉한 아랫입술을 몇 번이고 머금고 간지럽히니 해랑의 입술이 열렸다. 열린 틈새로 석현의 뜨거운 혀가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멀쩡한 정신에 입 안을 헤집는 석현의 혀를 느끼자 해랑의 몸은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다. 자꾸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입맞춤만으로도 아랫도리가 저릿거렸다. 발가락이 오므라들고 온 몸의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진한 입맞춤을 이어가며 석현의 손이 해랑의 뒷머리를 감싸 천천히 뒤로 눕혔다. 침상에 누운 해랑의 숨이 차오르자 석현이 입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해랑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서 석현은 입고 있던 상의를 벗었다. 미끄러지듯 흘러내린 석현의 웃옷이 사라지자 해랑의 눈에 석현의 다부진 몸이 들어왔다. 맨정신에 침상에 누워 석현의 맨몸을 보고 있자니 해랑의 얼굴이 뜨거워져갔다.

시선 둘 곳을 몰라 방황하는 사이 석현의 손이 해랑에게로 뻗어졌다. 해랑의 옷고름이 석현에 의해 천천히 풀어지자 해랑이 움찔하여 석현을 보았다. 석현은 당황한 듯한 해랑을 보고는 슬며시 웃어 보였다. 석현의 얼굴 위로 하얀 달빛이 그려졌다. 그 미소에 해랑의 심장이 곤두박질쳤다.

해랑에게 여유는 더 이상 눈곱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제 옷을 벗겨내는 석현을 해랑이 얌전히 기다리는 것은 그야말로 고문이었다. 해랑의 두 팔이 석현의 목을 휘감았고 해랑은 다급히 석현의 입술을 삼켰다. 격렬히 입맞춰오는 해랑에 석현 역시 조급해져 입을 맞추면서도 해랑의 옷을 빠르게 풀어헤쳤다. 해랑도 하얀 몸을 드러내자 석현이 빠르게 해랑의 몸 위로 입술을 찍어갔다.

석현은 정신이 있을 때고 없을 때고 해랑의 가슴팍에서 오래 머물렀다. 해랑의 판판한 가슴을 몇 번이고 쓸고 주물러댔다. 흥분해 작게 솟아난 유두를 꼬집거나 깨물어가며 해랑을 자극했다. 해랑은 그럴 때마다 몸서리치며 허릴 뒤틀었다. 해랑의 작은 끙끙거림이 석현의 귓가를 간지럽혀댔다.

그 때, 석현의 손이 해랑의 바지를 우악스럽게 벗겨냈다. 휑한 아래가 느껴지자 해랑이 깜짝 놀라 석현의 팔을 붙들었다. 석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해랑의 다리를 잡아 벌려 이미 축축해진 뒤를 확인했다. 해랑의 주름진 입구가 빨리 안을 채워 달라는 듯 벌름거렸다. 해랑은 민망한지 두 손으로 황급히 아래를 가리려고 했다.

“그렇게… 자세히 보지 마아…….”

해랑이 무릎까지 모아가며 필사적으로 석현의 눈길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석현의 힘이 더 셌다. 석현의 두 손이 해랑의 허벅지 안쪽을 잡아 벌리자 해랑은 속수무책으로 다시 제 아래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석현은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해랑의 입구를 손가락 끝으로 뭉근히 문질렀다. 해랑이 그에 ‘히익’소리를 내며 허릴 들었다. 그에 석현의 다른 손이 반쯤 선 해랑의 성기를 감싸쥐었다. 더 강한 자극이 전달되자 해랑의 뒤에서 물이 흘렀다. 정자에서의 석현은 일말의 자비없이 박아 넣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석현은 해랑의 골반을 잡아 조심스레 돌려 엉덩이를 세웠다. 석현의 얼굴에 자신의 엉덩이를 보이게 된 해랑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석현은 해랑의 오동통한 엉덩이를 주무르며 천천히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해랑의 안으로 집어넣었다. 물이 많이 나온 덕에 해랑의 내벽이 석현의 손가락을 기다렸다는 듯 주욱 빨아들였다. 고통스럽진 않았으나 생경한 이물감에 해랑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이미 한 번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웠다. 그도 그럴게 그 땐 정신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해랑의 안을 꾹꾹 누르는 석현의 손가락에 해랑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싫은 것도, 좋은 것도 아닌 기분이었다. 이상하게도 석현의 손가락이 헤집으면 헤집을수록 뭔가 더 강한 자극에 대한 열망이 생겼다. 그 열망이 대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갑자기 해랑의 입에서 헉소리가 튀어나갔다. 동시에 잡념이 사라졌다. 해랑의 안으로 석현의 손가락 하나가 더 밀고 들어온 것이었다.

굵은 손가락 두 개가 자신의 안에서 가위질 치고 쑤셔 대자 해랑의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진짜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 타는 듯한 갈증은 무엇을 바라기에 찾아오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석현의 손가락이 앞으로 구부러지며 해랑의 안을 꾹 누르자 해랑의 허리가 휘며 입을 쩍 벌렸다. 눈이 커진 채로 숨만 집어먹고선 몸을 바르르 떠는 해랑이었다. 석현은 잠시 당황한 듯하더니 이내 그 부분만 계속 찌르기 시작했다.

“힉! 아흑, 흣, 서, 석현아… 그만, 큭, 그마안……!”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치는 기분이었다. 해랑은 제 입에서 튀어나오는 생소한 소리들을 주워담을 생각도 못했다. 온 몸을 관통하는 쾌락에 몸이 제멋대로 반응해댔다. 완전히 적셔진 해랑의 안이 한결 풀린 것을 느낀 석현은 천천히 손가락을 빼냈다. 해랑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거친 숨을 내쉬며 텅 빈 제 안을 느꼈다. 천천히 고갤 돌려 석현 쪽을 바라보니 석현의 우뚝 선 성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해랑은 깨달았다. 제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도련님. 힘드시면 천천히…….”

“석현아.”

힘이 드는 건 맞지만 이대로 멈추는 건 싫었다. 정자에서의 첫경험은 머리보다 몸이 완벽히 기억해내고 있었다. 석현의 말을 끊은 해랑은 다시 침상에 등을 대고 누우며 말했다.

“……넣어줘. 네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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