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로
해랑은 정확히 다섯 밤을 넘기고 나서야 눈을 떴다. 중상인지라 몇 번이고 고열에 시달리며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 사이에 해랑의 꿈엔 몇 번이고 석현이 나와 해랑에게 활을 쏘았다. 상사화를 주었다. 해랑은 꿈에서조차 상사화를 무덤덤히 받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속은 찢어질 듯 아팠으나 받아 들여야 했다. 원수의 집안이다. 석현에겐 자신의 집안이 원수의 집안인데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무거운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올리자 따사로운 햇살이 스며드는 게 보였다. 몇 번 깜빡여 흐린 시야를 또렷하게 만들자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강녕전도, 임시 거처도, 해랑의 별채도 아니었다. 비좁은 방 안에 한약 냄새가 진동을 하기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고갤 돌려 보니 아무래도 내의원인 듯 했다. 해랑은 통나무같이 굳은 몸을 일으키고자 했으나 바로 통증이 몰려 왔다. 윽소리를 내며 해랑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래도 일어나는 것은 무리인 듯 하여 잠긴 소리로 사람을 찾았다.
“밖에…… 누구 계십니까?”
해랑이 죽어가는 소리로 몇 번이고 부르고 나서야 한 의녀가 들어왔다. 의녀는 해랑의 부름에 놀라 달려왔는지 눈이 커진 채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해랑이 눈을 뜬 것을 보자마자 바로 밖에다 대고 환자가 꺠어났음을 알렸다. 그리고는 해랑의 상처 부위를 살폈다. 아직 회복하기엔 멀었으니 이렇게 안정을 더 취해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했다. 해랑은 마지 못해 고갤 끄덕였다. 마음 같아선 당장 일어나 역모에 관련된 일들이 어찌 되었나 알고 싶었다. 다친 몸을 한탄하며 마냥 누워만 있던 중에 다시 방 문이 벌컥 열렸다. 해랑이 고갤 돌리니 문 앞엔 형민이 서 있었다. 해랑이 의식을 되찾았다는 얘기에 한 달음에 달려온 모양이었다.
“전하……!”
해랑이 놀라 몸을 일으키려다 고통스러워 하자 형민이 더 놀라 해랑을 만류했다.
“어허, 괜찮으니 누워있게.”
“송구하옵니다, 전하.”
“괜찮대두.”
“내 환자한테까지 예의를 차리라 명하는 무자비한 자가 아닐세.”
“전하, 저 그게 아니라……!”
형민의 말에 당황한 해랑이 어쩔 줄을 몰라하자 형민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큰 일이 폭풍처럼 들쑤시고 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게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해보이는 형민이었다. 해랑은 조금은 안도했다. 자신의 주군이 겉으론 물렁해보여도 속은 강철같이 단단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형민은 의녀들에게 해랑의 상태를 전해듣고는 얼굴에서 걱정을 약간 덜어냈다. 형민은 해랑을 보며 물었다.
“뭐 궁금한 것 없는가?”
형민의 말에 해랑이 조금의 고민도 없이 바로 몇 개의 질문들을 쏟아냈다. 자신이 화살을 맞은 이후로 어찌 되었는지, 노의석과 해진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또 제 아버지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등등. 형민은 해랑의 질문을 가만히 듣고는 하나 하나 대답해주었다.
“노의석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하지만 역모를 일으킨 죄인이기에 부관참시 되었지. 우해진은 우현영과 함께 투옥되었다. 안타깝게도 자네의 아버지 또한 죄를 면치 못할 걸세.”
“……그렇군요.”
해랑은 형민의 답변을 듣고 잠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씁쓸히 미소지으며 되물었다.
“저 또한 그렇겠지요?”
해랑의 질문에 형민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래. 그렇겠지.”
해랑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형민은 그런 해랑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걸 묻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은 형민은 다시 한 번 더 해랑에게 물었다.
“진짜로 궁금한 것, 없느냐?”
“예?”
“자네가 가장 궁금할 것이 있을 것 같은데?”
“…….”
해랑은 차마 답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꾹 말아 삼켰다. 물어 볼 수 없었다. 형민은 그런 해랑을 알아차리고 먼저 말을 꺼냈다.
“석현이도 지금 치료 받는 중이네.”
“아…….”
해랑은 그 날을 다시 떠올렸다. 피투성이였던 석현을. 저 대신 화살을 맞아 고통스러워 하던 석현을. 해랑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덮고 있던 이불을 두 손으로 꼬옥 그러쥐었다. 석현이 너무 보고 싶은데 볼 자신이 없었다. 그 동안 자신의 마음만 부푼 채로 밀어 붙였던 과거가 갑자기 한심하게 느껴졌다. 석현이 자신으로 인해 힘들었을 시간을 생각하니 가슴이 욱신거렸다.
“석현이는 저를 보면서 그 동안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젖은 눈으로 형민을 바라보며 해랑이 말했다. 형민은 슬픔에 잠긴 해랑을 보니 먹먹해져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저와 제 가족들이 모두 죽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죄를 지었으니 달게 받아야지요. 허나…… 석현이가 그리 억울하게 고통받았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해랑아…….”
“저는 차라리 곧 죽을 테지만 석현이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살겠지요?”
울먹이는 해랑의 입가가 떨렸다. 형민은 착잡한 얼굴로 해랑을 가만히 보았다. 스스로의 목숨보다 사랑하는 이가 지닌 고통의 무게를 더 마음 아파하는 모습이란. 형민은 인자한 얼굴로 해랑의 손을 감싸쥐었다. 손에 느껴지는 따스한 체온에 해랑이 형민 쪽으로 고갤 돌렸다.
“자네가 왜 죽는가?”
“예? 그야 당연히 연좌제로 인해…….”
“내가 자네를 그리 쉽게 보내겠는가?”
형민이 말하며 한 쪽 눈을 찡긋거렸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던 해랑은 한참을 생각하던 끝에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해랑이 깨어나기 이틀 전, 치료를 받느라 쉬던 석현이 형민을 찾아왔다. 붕대를 칭칭 감고 갑자기 나타난 석현에 형민이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아니, 치료 받다 말고 어찌 여기에 왔느냐?”
“전하. 소신이 간곡히 청할 것이 있어 부득이하게 전하께 왔습니다.”
난데없는 청에 형민은 당황했으나 곧 자세를 고쳐잡고 앉아 물었다.
“그래. 무슨 청이냐?”
석현은 아예 이마를 바닥에 맞닿도록 바짝 엎드렸다. 대체 석현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기에 저러는가 싶어 형민이 지켜보던 중, 석현의 입이 열렸다.
“전하. 부디 죄인 우현영과 우해진, 우해랑의 사형을 면해주시고 그들을 유배 보내주시옵소서.”
“뭐? 유배를 보내라?”
“예. 사형 대신 머나먼 섬으로 유배를 보내어 주십시오.”
“어째서인가?”
“우현영은 어차피 몸이 쇠약해져 있어 곧 명이 끊어질 것입니다. 우해진은 사형보다 유배를 보내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두는 것이 더욱 괴로울 것입니다. 우해랑은…….”
해랑의 얘길 꺼내려다 석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해랑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괴로운 모양이었다.
“우해랑은…… 죄가 없습니다.”
석현의 두 주먹이 바들거렸다. 힘겨워하는 석현에 형민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그렇긴 하다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허나.”
형민은 서안 위에 올려두었던 상소들을 가리켰다.
“유생들이 전부 내게 상소를 올렸다. 우해랑을 사형 대신 유배로 감형시켜 달라고.”
“!”
“아마 자네 청을 들어주는게 조금은 수월해지겠지. 문제는 나머지 두 사람이지만.”
석현의 얼굴이 그제야 환해졌다. 해랑은 꼭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해랑을 살리고 우현영과 우해진이 사형되면 해랑이 너무 힘들어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모두 유배를 보내달라는 청을 한 것이었다. 그토록 찢어죽이고 싶던 자들이었으나 막상 모든 일이 끝나자 허탈함만 남았다. 되려 저보다 더 괴로워할 해랑이 가장 걱정이었다. 해랑이 힘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흠……. 이보게, 유 내관. 우현영과 우해진은 사자(死者)로 처리하여 보내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 전례가 있기는 하옵니다.”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형민이 좋은 제안을 꺼냈다. 유 내관이 그에 동의하자 형민은 바로 종이 위에 명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현영, 우해진을 죽은 것으로 처리하여 아무도 살지 않는 섬에 보내고 우해랑은 유배로 감형하겠다고. 거침없이 적어가던 형민이 갑자기 붓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석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해랑이는 어디로 보내는게 좋겠는가?”
형민의 물음에 석현이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아주 적당한 곳이 있습니다.”
*
“아주 적당한 곳으로 자넬 보낼 걸세.”
“그게 어디인지요?”
해랑이 묻자 형민이 해랑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딱딱한 나무패였다. 해랑은 손에 쥐어진 나무패를 눈 앞으로 가져왔다. 나무 위엔 두 글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해주로 가게.”
해주. 나무에 적힌 두 글자를 본 해랑의 두 눈에서 결국 눈물이 흘렀다. 해주성에 출입할 수 있는 나무패였다. 이를 준다는 것은 유배라기보다 업무를 위해 보내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해랑은 일렁이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어 소리내어 울어버렸다. 형민은 그런 해랑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저 같은 것을 어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나한테 망극해할 것 없네. 자네가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예? 그게 누구입니까?”
“누구겠는가?”
“아…….”
예상되는 이는 딱 한 명, 석현 뿐이었다. 해랑은 황송해하던 얼굴을 굳혔다. 형민은 그런 해랑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웃으며 해랑의 손등을 툭툭 쳐주고는 일어섰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해랑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 틈에서 멈추었다. 해랑이 형민을 급히 불러 세웠기 때문이었다.
“전하!”
“왜 그러느냐?”
“저…… 석현이가 이 곳에 오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해랑의 말에 형민이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째서?”
“그 아이의 얼굴을 보면…… 괴로워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해랑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 형민은 잠시 후 고갤 끄덕였다.
“알겠네. 내 그리 명하지.”
형민은 해랑의 청을 들어주고는 내의원을 빠져나갔다. 다시 혼자가 된 해랑은 멍하니 천장을 보았다. 석현의 얼굴을 다시 볼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아예 몰랐으면 좋았으련만. 해랑은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다시 눈을 감았다.
*
석현은 형민에게 해랑의 말을 전해들었다. 해랑이 자신을 거부할 거라 예상은 했으나 속이 쓰렸다. 만나서 이야기하고픈 마음이 그득했지만 석현은 꾹 눌러담았다. 시간이 꽤 오래 걸릴게 분명했다. 억지로 찾아가 해랑의 마음을 괴롭히고 싶진 않았기에 석현은 해랑을 찾아가지 않았다. 물론 해랑이 몇 번이고 생사의 경계에 서 있을 때마다 곁에 있었던 석현이었다. 해랑만 모르고 있을 뿐, 석현은 이미 매일같이 해랑을 찾아갔었다. 해랑의 식은 땀을 닦아내고 해랑이 어둠 속에서 악몽에 시달리는 동안 해랑의 손을 감싸쥐어주던 석현이었다. 석현은 아쉬운 마음을 감추고 해랑이 있는 내의원 대신 해랑의 임시거처 앞으로 찾아갔다. 임시거처 앞엔 석현이 이전부터 놓아둔 꽃도라지 다섯 송이가 쌓여있었다. 석현은 씁쓸히 웃으며 그 위에 한 송이를 더 놓았다.
[작품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