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3/64)

당신에게로

해랑은 열흘 정도가 더 지나고 나서야 완전히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아직은 완벽히 나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움직일 만 했다. 병상에서 벗어난 해랑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의금부였다. 옥에 투옥된 제 아버지가 걱정이 돼 발걸음을 했다. 궁에 들어와 일을 하면서도 의금부엔 올 일이 없었다. 의금부와 관련된 일이 있긴 했어도 직접 방문하여 진행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랑은 의금부 담당 관리와 이야기를 나누고서 안으로 향했다. 옥 특유의 퀘퀘하고 음습한 분위기와 냄새에 해랑의 몸이 절로 움츠러 들었다. 옥을 지키는 병사의 뒤를 따라 어둡고 비좁은 통로를 한참 지나고 나서야 해랑은 걸음을 멈췄다. 옥사의 나무 틀의 비좁은 틈으로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해랑은 수척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 앉았다. 걱정했던 것보다 더 안 좋아 보이는 얼굴에 해랑의 눈가가 젖어들어갔다. 우현영 역시 해랑을 발견하고 앞으로 다가왔다. 우현영 역시 얼마나 울었는지 흰자가 벌개진 채였다.

“해랑아!”

“아버지……!”

“다친 곳은 없느냐? 으응?”

“예. 없습니다.”

해랑은 부러 거짓말하며 아버지를 안심시켰다. 제가 다쳤던 것을 알면 분명 아버지는 놀라 상태가 더 악화될 것이 뻔했다. 해랑은 좁은 틈새로 손을 뻗어 제 얼굴을 쓰다듬는 아버지를 보며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해랑의 무거운 목소리에 힘없이 쓰다듬던 손이 움찔거렸다. 우현영은 해랑과 눈을 마주했다. 흔들림없이 똑바로 마주하는 해랑의 눈동자에 우현영의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물들어갔다. 결국 모든 것을 알게 된 해랑에 우현영은 무어라 말해 줄 수가 없어 불규칙한 숨소리만 뱉었다.

“왜…… 왜 형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까?”

원망섞인 목소리에 우현영의 낯빛이 파랗게 질렸다.

“해랑아…….”

“아버지가 형을 바로 잡고 모든 일을 미리 전하께 알렸다면 적어도 이런 사단은 나지 않았을겁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왜 그러셨어요. 대체 왜!”

“흐흑…….”

“이게 다 뭐에요. 형 하나 때문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아야 해요? 저도, 아무 것도 모르시는 어머니도, 그리고 석현이까지……!”

울부짖으며 무너지는 해랑에 우현영도 함께 울었다. 아버지가 걱정되어 찾아오긴 했으나 막상 마주하니 원망과 야속함이 물 밀 듯이 터져나왔다. 이 곳으로 오면서 아버지를 몰아붙이지 않으리라 몇 번이고 다짐했건만,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한참을 울던 끝에 겨우 진정한 해랑은 곧 쓰러질 것 같은 우현영의 손을 붙들었다. 착잡한 심정이었으나 부모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 존재했다. 해랑은 우현영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마…… 곧 형 집행이 시작될 겁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마십시오. 사형으로 진행되나 처형이 이루어지진 않을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형은 가짜로 집행될 뿐, 죽은 자로 처리되어 멀리 유배되실 겁니다.”

“허나 나는 대역죄인이다. 어찌 그런 것이 가능하단 말이냐?”

“……석현이가 전하께 간절히 요청했다 합니다.”

“뭐, 뭐라……? 석현이가……?”

우현영은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몸에 힘이 쭉 빠져 축 늘어졌다. 그러더니 이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과거의 모든 일들이 우현영의 눈 앞에서 빠르게 스쳐갔다. 마지막엔 소중한 벗이었던 정수환의 얼굴이 남았다. 회한이 밀려왔다. 메이는 가슴을 해소할 길이 없기에 제 가슴을 세게 내리치는 방법 밖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해랑은 그런 아버지를 젖은 눈으로 바라 볼 뿐이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버지.”

해랑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우현영은 급히 따라 일어나며 해랑에게 물었다.

“헌데 너는? 너는 어찌 되는거냐?”

“저도, 형도 마찬가지로 유배갈 것이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우현영이 고갤 끄덕이자 해랑은 꾸벅 인사를 하고는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걷다 해랑이 우뚝 멈추었다. 뭔가 고민에 빠진 듯 한참동안 우두커니 서 있던 해랑은 관리병에게 물었다.

“혹시, 죄인 우해진이 있는 곳은 어딥니까?”

해랑이 묻자 병사는 곧바로 해랑을 더 안쪽으로 안내했다. 빛 한 줄기 비치지 않는 곳에 당도한 해랑은 이미 고문으로 처참해진 해진을 발견했다. 거대한 칼을 목에 찬 채, 온통 피범벅임에도 벽에 기대 앉아 자신을 노려보는 해진에 해랑은 그저 덤덤히 바라 볼 뿐이었다.

“조롱이라도 하러 왔느냐?”

비아냥대는 해진에 해랑의 입에서 작게 한숨이 흘렀다.

“아뇨. 그저 형 집행에 대해 알리러 왔을 뿐입니다.”

“네 놈도 옥에 들어가 썩어야 할 판에, 뭐? 형 집행을 알리러 왔다? 하! 왕을 얼마나 잘 구워삶은게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해랑 역시 투옥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형민의 덕에 치료도 무사히 잘 받고 이렇게 돌아 다닐 수 있었다. 물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늦은 시간에 조심히 다닐 뿐.

“예. 아주 잘 구워삶아서 이리 돌아다닙니다. 아무튼 형님께서도 유배되실 것이니 그리 아십시오.”

“뭐……? 유배? 내가?”

“예. 석현이의 청으로 그리 되었으니 유배로 진행된다 알고 계십시오. 물론 유배됨과 동시에 죽은 자로 처리될 것입니다.”

“하……!”

“……석현이에게 주었던 고통. 그대로 느껴보십시오.”

“하하…… 하하하!”

해진이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크게 웃어댔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였다. 기괴한 소리에 해랑은 소름이 끼쳤다. 얼른 고갤 꾸벅 숙이고 빠르게 옥에서 벗어났다. 등 뒤에서 울리는 해진의 웃음소리는 여전히 울렸다. 해랑은 빠르게 내의원으로 향했다. 해랑이 사라지고 나자 한참을 들썩이던 해진은 얼굴을 가리던 손을 내렸다. 차게 식은 눈빛엔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왜 그 놈과 같은 고통을 느껴야 하는데?”

해진은 바짓춤을 뒤적였다. 그 속엔 감춰두었던 단검 하나가 들어있었다. 날카로운 빛을 내는 작은 칼이었다. 해진은 칼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이내 높이 들어 올렸다. 딱 제 목에 위치하는 높이였다. 생기가 사라진 눈은 정면만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은빛의 단검은 지체없이 해진의 목을 파고 들었다.

*

다음 날, 형민이 해랑을 찾아왔다. 마침 짐을 정리하던 차에 도착한 형민에 해랑은 허리 숙여 인사했다.

“어찌 오셨습니까? 이리 찾아오시면 분명 주변에서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낼 겁니다.”

“해랑아.”

형민이 이 곳에 자주 와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기에 만류하려던 차였다. 헌데 어째 형민의 얼굴이 심상치 않아 해랑은 입을 꾹 다물었다.

“……예, 전하.”

“우해진이 죽었다.”

“예?”

“우해진이 어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해랑은 순간 벙쪄서 아무 소리도 내지를 못했다. 그저 견디기 힘들어 할 것이라는 것만 지레짐작하고 있었는데, 자결이라니.

“아…… 그랬군요.”

그래. 어쩌면 해진다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해랑은 별 다른 반응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두 눈엔 묘한 슬픔이 어려있었다. 형민은 그런 해랑이 오히려 안타까웠다. 얼마나 제 형으로 인해 고통스러웠으면 저리 무던히 넘어가는 걸까 싶어서. 형민은 해랑을 위해 부러 대화의 방향을 틀었다.

“나흘 뒤면 떠나는구나.”

“예. 하여 짐을 정리하고 있던 차입니다.”

“그래…….”

형민은 무언가 말을 덧붙이려다 말고 해랑의 눈치를 살폈다. 왜 그러시느냐 묻는 해랑에 형민은 좀 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석현이는…… 정말 안 보고 갈 게냐?”

해랑은 묵묵부답이었다. 기다 아니다 말하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에 형민이 헛기침을 몇 번 했다.

“내 괜한 소릴 했구나.”

“아뇨, 아닙니다. 전하.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만은…… 더는 그 아이와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 알겠다. 마저 정리하거라.”

“예. 전하.”

형민이 자릴 뜨고 난 뒤 해랑은 다시 부지런히 움직여 짐 정리를 시작했다. 이렇게 떠나는 것이 서로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더는 마주치지 않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

해랑이 떠나는 날은 금세 다가왔다. 다음 날 새벽이면 해랑은 해주 향교로 떠날 것이다. 해주 향교는 다온이 있는 곳이었다. 형민은 특별히 해랑을 향교로 보내 아이들을 가르치라 명했다. 물론 해랑의 신분은 더 이상 양반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노비도 아니었다. 평민으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해랑은 형민의 성은에 감복하여 몇 번이고 절을 했다. 형민은 감사는 됐다고 손사레를 치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형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내의원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 때, 갑자기 누군가가 해랑을 불러 세웠다.

“도련님.”

자신을 이리 부르는 이는 딱 한 사람 뿐임을 해랑은 잘 알았다. 해랑은 한참을 움직이질 못한 채 등만 보였다. 그러다 딱딱히 굳은 얼굴로 돌아섰다. 등 뒤엔 역시나 석현이 서 있었다. 제발 보지 않길 바랐건만 결국 보고야 말았다. 우리가 이리도 질긴 인연인가 싶은 생각이 들자 속에서 설움이 북받쳐올랐다. 허나 터뜨릴 수는 없기에 해랑은 그저 애먼 입술만 잘근 물었다.

“오지 말아달라고 전했을텐데?”

“압니다.”

“허면 오지 말았어야지.”

목소리를 낮게 깔고 조근거리는 해랑에 석현의 마음이 서늘해졌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해랑은 완전히 저를 피하고 있었다. 이러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날선 말들을 뱉은 뒤 매몰차게 돌아서는 해랑에 석현은 반사적으로 달려 해랑의 팔을 붙들었다. 팔이 붙잡히자 해랑의 몸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뿌리치려 하진 않았다. 되려 모든 걸 체념한 듯 힘을 쭉 뺄 뿐이었다. 석현은 그게 더 아팠다.

“그냥 전부 죽게 냅두지. 왜 살렸어?”

담담히 말하지만 해랑의 눈엔 핏발이 섰다. 너무 많은 감정들이 해랑을 뒤덮었다. 석현에 대한 죄책감과 스스로와 집안에 대한 자괴감, 그리고 애정. 그 모든 것들이 해랑의 속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혼란스런 마음은 결국 가시가 되어 튀어나가 버렸다. 제 진심과는 상관없이.

“제가 어찌 도련님을 죽게 둘 수 있습니까?”

“복수할 수 있는 기회였잖아.”

“도련님이 제가 복수할 대상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우리 집안 모두를 살렸잖아.”

“그건…… 막상 기회가 오자 두려워져서 그랬습니다.”

“뭐가?”

석현은 대답하기 전, 손을 뻗어 해랑의 뺨을 쓸었다. 순간 해랑의 심장이 쿵 뛰었다. 달이 비치는 두 눈동자가 일렁였다.

“제가 사랑하는 이가 저 때문에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게 두려워서요.”

한 번 크게 요동친 해랑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툭 떨궈졌다. 석현의 말에 무작정 쏘아붙이고 싶어도 잔뜩 메어버린 목에 해랑은 말을 잃었다. 석현의 손 끝이 눈물자욱을 부드럽게 지워냈다. 한없이 다정한 얼굴로 석현은 해랑을 보았다. 혼란한 해랑의 마음이 또 제멋대로 뒤섞여버렸다. 석현의 손이 떨어졌다. 해랑은 뺨에서 느껴지던 온기가 사라지자 천천히 고갤 들어 석현을 마주보았다.

“괜찮으시다면.”

아팠다. 마주한 얼굴을 보자 너무 아파 해랑은 두 주먹을 꼭 쥐었다.

“해주로 함께 가겠습니다.”

의외의 말에 해랑이 당황했다. 전혀 예상치 못 한 말이라 해랑이 어물거리는 사이, 석현이 싱긋 웃었다. 덕분에 해랑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빠지고야 말았다.

[작품후기]

아마 다음편이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아...허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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