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벽녘
이른 겨울이 찾아온 듯 손마디가 끊어질 것 같았다. 두영은 차갑게 말려들어 간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움켜잡았다. 뻑뻑한 페달을 밟고 고요한 새벽을 유랑했다. 낡아서 해진 신발 밑창으로 페달의 울퉁불퉁한 느낌이 전해졌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얼굴에 스쳤다. 두영은 얼어 버린 얼굴 근육의 감각을 되찾으려고 코를 찡긋 구겼다. 효과는 무의미했다. 그냥 인상을 구긴 사람만 되었다. 볼에 빵빵하게 바람을 불어 넣은 두영은 저 멀리 보이는 고급맨션을 향해 속도를 냈다.
새벽 우유 배달은 두영이 몇 년째 하는 아르바이트다. 어차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아 새벽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다만 추위를 많이 타서 한여름 빼고 항상 손발이 시렸다. 그것 빼고는 딱히 불편한 게 없었다.
맨션 입구에 자전거를 세운 두영은 건물을 올려다봤다. 5층이 최고 층인 고급맨션은 지어진 지 반년도 안 된 따끈따끈한 신축 건물이었다. 그리고 보름 전에 새롭게 추가된 배달지였다. 두영은 매번 이곳에 올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이렇게 번지르르한 집의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고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두영은 맨션 경비원에게 가벼운 목인사를 날렸다. 두영의 얼굴을 확인한 경비원은 뒤늦게 공동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 안면을 익힌 지 몇 주는 된 것 같은데, 경비원은 멀리서 두영을 알아봐도 함부로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오른 두영은 5층을 누르고 옆 머리를 거울 벽에 기댔다. 오늘따라 더디게 바뀌는 붉은 색 디지털 숫자를 멍하니 보며 손에 든 1,000mL 흰 우유를 조몰락거렸다.
층마다 두 가구 있는 맨션은 5층만 한 가구밖에 없었다. 이따금 펜트하우스에 누가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우유를 마시니까 어린아이들이 사는 걸지도 몰랐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두영은 제집보다 넓은 전실을 가로질러 현관문 앞에 섰다. 문고리에 매달린 우유 가방에 우유를 집어넣고 끈을 단단히 조였다. 이걸로 오늘치도 끝냈다.
두 손을 위로 쭉 늘리며 기지개를 켰다. 찬 바람에 쓸린 발목을 손으로 가볍게 문질렀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것도 모르고 목이 짧은 양말을 신었다. 바깥으로 드러난 피부가 까칠까칠했다.
보디로션이 얼마나 남았더라. 거의 다 쓴 것 같은데, 학교 끝나고 마트에 들려야겠다.
그 순간, 수그린 머리맡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든 두영은 제 앞으로 달려드는 육중한 현관문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뭐든 반응이 3초씩 느린 두영은 얼굴이 문짝에 부딪혀 저항 없이 나뒹굴었다. 너무 아파서 외마디 소리도 내지 못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앉아 혹이 난 이마를 매만졌다.
“뭐야.”
무게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흠칫 놀란 두영은 저도 모르게 벌 받는 자세로 앉아 눈앞에 벽을 노려보았다. 지금 이 상황을 집주인에게 해명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았지만, 긴장해서 주둥이가 벌어지지 않았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바짓가랑이를 움켜쥔 두영은 눈을 질끈 감고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우, 우유 훔치려고 했던 거 아니에요…….”
망했다. 두영은 제 입을 주먹으로 좀 치고 싶었다. 더듬더듬 내뱉는 모자란 어투와 물을 머금은 듯한 웅얼거림. 제가 생각해도 한심했다.
벽에 이마를 박은 두영은 의심의 흔적을 어리바리하게 주워 담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저, 저는 우유를 배달하러 온 직원인데…….”
“뭐?”
피곤함에 찌든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바로 제 머리 위에서 들려 두영은 입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당장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낯선 이를 보면 굳는 버릇이 도져 버렸다.
그 순간 센서 등이 꺼졌다. 두영은 갑자기 덮친 암흑에 옆으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하찮은 몸짓에 센서 등이 다시 불을 밝혔다. 그리고 두영은 제 앞에 쭈그려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두영의 심장이 격렬히 발광했다. 남자는 며칠 전에 전학을 온 홍승표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을 마주하자 도저히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안녕.”
홍승표가 나른한 얼굴로 인사했다. 그는 드물게도 고등학교 삼 학년, 가장 애매한 시기에 전학을 왔다. 홍승표가 전학 오던 날 학교는 학생이고 선생이고 그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두영이 그에 관해 들은 소문은 그의 나이가 스무 살이라는 것과 지난 학교에서 사람 하나 죽였다는 것이었다. 후자는 어디서 함부로 떠들 수 없는 어마어마한 내용이었지만, 문제는 사람마다 알고 있는 내용이 조금씩 달랐다는 점이다.
백 명의 사람이 모이면 백 가지 내용이 있다. 천일야화에 버금가는 장르 변주였다. 그들은 그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존재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센서 등이 또다시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에 두영의 어깨가 거나하게 움찔거렸다. 두영은 틈을 노려 홍승표와 거리를 냉큼 두었다. 다시 주변이 환해지자 홍승표의 한쪽 눈이 살짝 구겨져 있었다.
“내가 뭐 했어?”
“…….”
“너무 대놓고 피하는데.”
그의 말에 두영은 시선을 힐끗 들어 올렸다. 홍승표의 머리카락은 침대에서 막 구르다 나온 것처럼 헝클어진 상태였지만, 정교한 이목구비는 자다가 일어난 것 같지 않았다. 늘어지는 목소리도 평소 그의 말투일지 몰랐다.
홍승표는 무심한 눈길로 바닥에 떨어진 우유를 보았다. 두영이 넘어지면서 우유 주머니 밑창을 무릎으로 치는 바람에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가 턱짓으로 우유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까지 네가 배달했어?”
입을 뻐끔거린 두영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홍승표와 대화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상황 자체가 불편하여 얼른 자리를 뜨고 싶었다.
두영은 언제나 왕따였다. 20년 인생을 통틀어서 말이다. 홍승표의 소문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었지만, 12년 동안 왕따로 살아온 제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홍승표는 위험하다고. 어울려서는 안 된다고.
게다가 홍승표는 전학을 오자마자 이주학 패거리와 어울렸다. 그것만으로 그와 어울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홍승표가 기지개를 켜는 짐승처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두영은 그가 헐렁한 면바지만 입은 상태임을 알아차렸다. 두드러진 장골이 유독 눈에 띄었다. 자신과 다르게 단단해 보이는 몸이었다.
우유를 주워 든 홍승표는 아직도 바닥에 앉아 있는 두영을 발견하고 입술을 가볍게 당겼다.
“일으켜 줘?”
고개를 내저은 두영은 머뭇머뭇 일어났다. 어쩐지 얼굴에 열이 몰렸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두영을 보던 홍승표는 닫힌 현관문을 도로 열고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여닫히는 문소리가 새벽의 고요함을 깰 정도로 컸다.
한참을 문 앞에 서 있던 두영은 대뜸 자신의 뺨을 찰지게 때렸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자신이 환멸스러웠다. 맨션에서 나와 세워 둔 자전거에 올라탔다. 넘어진 엉덩이가 뻐근하여 자기혐오가 수면 위까지 넘실거렸다.
자전거를 사무실에 돌려주고 집까지 걸어갔다. 두영의 집은 달동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저 먼 곳에 있는 도심의 마천루가 보이기도 했다. 달동네와 마천루의 유일한 공통점은 하늘에 닿을 듯한 높이였다. 두 곳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은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깨우쳤던 것 같다.
낡은 샷시문을 조심히 열고 들어간 두영은 인기척을 확인했다. 방문 앞에 신발이 없는 것을 보니, 할머니는 일찍이 폐지를 주우러 나간 것 같고, 아버지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두영은 편한 마음으로 방에 들어갔다. 원래 새벽 알바를 끝내면 곧장 학교로 갔지만, 오늘은 조금 피곤한 것 같아 모자란 잠이나 때우려고 돌아왔다. 그런데 막상 자려고 누우니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결국 두영은 잠시 멍을 때리다가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쓰레기만 들어 있는 가방을 학생의 도리로 챙겨 메고 집을 나섰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내내 자빠진 엉덩이가 얼얼했다. 걷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하며 열심히 발을 내디뎠다. 이것보다 더 엉망진창이었을 때도 학교는 잘만 갔다.
춘추복을 뚫고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두영의 피부를 할퀴었다. 그렇게 춥다고 염불을 외웠는데, 고새 까먹고 교복만 달랑 입고 나와 버렸다. 저는 왜 기억력도 이 모양인지 한탄스러웠다. 몸이 허약하면 머리라도 좋아야 하는 거 아닌가, 장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몸뚱이였다.
발걸음을 멈춘 두영은 뒤로 돌아 고불고불한 오르막길을 망연히 올려다봤다. 오늘따라 달동네 계단이 버겁게 느껴졌다. 되돌아가는 걸 포기한 두영은 길을 마저 내려가며 한숨을 집어삼켰다.
그러다 문득 돌부리에 걸려 저 밑바닥까지 굴러가, 갑자기 튀어나온 트럭에 치이는 제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영영 눈을 뜨지 못하는 거다.
이보다 완벽한 시나리오는 없었다.
***
누군가가 두영의 책상을 치고 지나갔다. 움찔 몸을 떤 두영은 책상에 엎어진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시야를 커튼처럼 가린 머리카락 틈 사이로 교실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교실은 등교한 아이들로 북적였다.
두영은 무의식중에 홍승표를 찾았다. 그가 아침 일을 떠벌리고 다닐 정도로 입이 가벼울지, 무거울지 무엇 하나 예상되는 게 없었다.
오늘 새벽에 본 그의 분위기는 겨울바람처럼 묵직했다. 적당히 그을린 피부와 불순물 없이 새까만 눈동자, 유려하게 올라간 입술 선은 장난기 많은 소년처럼 짓궂었다. 오만하게 치켜든 턱이었지만, 허세스럽지 않았다.
학교에서 보던 그는 항상 졸린 사람 같았는데, 사실은 타고나길 나른한 사람이었나 보다. 피곤한 낯빛과 달리 입술의 혈색은 따뜻해 보였으니까.
그때 교실 앞문이 큰 비명을 지르듯 아가리를 벌렸다. 문짝만 한 덩치의 이주학이 교실에 들어왔다. 그 뒤로 김진호가 원 플러스 원처럼 붙어 들어왔다.
과자를 손에 든 이주학이 마지막 조각을 입에 털어 넣으며 완벽한 마무리를 지었다. 빈 봉투는 김진호에게 자연스럽게 건넸다. 익숙한 듯이 쓰레기를 받은 김진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일인자의 꼬붕다운 모습이었다.
쩝쩝 입맛을 다신 이주학이 곧 터질 듯한 바지 주머니에서 사과 맛 주스를 꺼냈다.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 먹는 흡입력이 가히 초인적이었다. 겨우 두 모금 만에 주스 팩이 쪼그라들었다.
“아씨, 배고파.”
여전히 배가 고픈 이주학이 가짜 공복을 드러내며 찡찡댔다. 이주학의 목청은 확성기 같았다. 반경 10미터 내에 있으면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내용도 귓구멍에 처박혔다.
방금 들은 것만 해도 어제 일본산 야동을 봤고 연달아 두 발을 뺐다는 내용이었다. 두영은 책상 위를 굴러다니는 볼펜으로 제 귀를 찌르고 싶었다.
또다시 걸걸한 목소리가 하늘 무섭게 쩌렁쩌렁 울렸다. 다만 전처럼 혼잣말이 아닌 특정한 누군가를 지칭하는 부름이었다.
교실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짜 맞춘 듯이 두영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문 두영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곧바로 이주학과 시선이 겹쳤다.
“똥개 새끼, 인사 안 하냐?”
가까이 다가온 이주학은 두툼한 손바닥으로 두영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고개가 앞으로 꺾인 두영은 그만 입술을 세게 씹어 버렸다. 순식간에 입 안쪽으로 쇠 맛이 퍼졌다.
두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터진 입술을 쪽쪽 빨았다. 뒤통수가 아린 것보다, 입술이 터진 것보다 저를 구경하는 반 아이들의 시선에 극한의 무력감을 느꼈다.
이주학의 등장으로 조용해졌던 교실이 다시 떠들썩해졌다. 두영이 무슨 일을 당하든 다들 일절 관심 없는 태도였다. 이 또한 익숙한 두영은 작은 목소리로,
“안녕…….”
이라고 말했다.
무리에 섞여 수다를 떨던 김진호가 실실 쪼개며 두영에게 다가왔다. 그는 두영의 동그란 머리통을 개처럼 쓰다듬으며 약 올리듯이 말했다.
“똥개 우냐?”
똥개는 이주학이 일 학년 때 지어 준 두영의 별명이었다. 두영을 똥개라고 부르는 사람은 이주학과 김진호밖에 없었다. 암묵적으로 정해진 그들의 같잖은 규칙이었다.
자칭 분노 조절 장애를 앓고 있는 이주학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두 사람을 제외한 이들은 두영을 건드리지 않는 편이기도 했다. 이것도 그들만의 눈꼴사나운 일인자 우대였다.
그래서 학교 내에서 이주학과 김진호 그리고 두영을 엮은 추잡한 소문이 많이 떠돌았다. 내용은 동성애, 원조교제, 삼각관계 그리고 섹스 비디오 따위였다. 그렇게 떠도는 소문을 한곳에 모은다면 책 한 권은 뚝딱이었다. 물론 대부분 사실무근의 카더라였다. ‘대부분’만 말이다.
“왔냐?”
김진호가 앞문을 보며 말했다.
무심코 손에 힘이 들어간 두영은 시선을 슬쩍 들었다. 조용한 발걸음으로 교실에 들어오는 홍승표가 보였다. 김진호의 인사를 건성으로 받아 주던 그의 눈동자가 불시에 두영에게 닿았다. 냉큼 고개를 숙인 두영은 손톱 거스러미를 뜯었다.
홍승표가 오늘 새벽 일을 떠벌리고 다닐까 봐 불안했다. 3년 내내 잘 숨겨 왔는데, 만약 이주학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은 괘씸죄로 맨션에 발가벗겨져 오도 가도 못 할 게 분명했다.
상상만으로 손에 식은땀이 차고 손가락이 차갑게 말려 들어갔다. 서슬 퍼런 날숨을 파르르 내뱉는 순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들자 창가 쪽 자리에 젖은 빨래처럼 느슨히 기대앉은 홍승표가 보였다.
그토록 긴장한 게 억울할 정도로 싱거운 반응이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두영은 홍승표에게 다가가는 김진호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는 홍승표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다가 그의 귀에 꽂힌 이어폰을 발견하고 몸을 돌렸다. 상대의 기분을 살피는 듯한 조심스러운 행동이었다.
생각해 보면 홍승표는 원래 좀 이상했던 것 같다. 전학 온 첫날부터 친구를 쉽게 사귀었지만, 그 안에 그의 노력은 손톱의 때만큼도 없었다. 홍승표는 자기 주변으로 사람이 모이는 게 익숙해 보였다. 행동에서 여유가 여실히 드러났다.
“눈깔 굴리는 거 봐라.”
두영의 현란하게 움직이는 눈동자를 발견한 이주학이 한껏 이죽거리며 말했다. 움찔거린 두영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저도 모르게 홍승표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새 되돌아온 김진호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꺼낸 천 원을 두영의 책상에 올리며 말했다.
“야! 내가 매점 쏜다! 다들 먹고 싶은 거 말해!”
김진호는 이주학의 오른팔로서 정해진 역할이 있었다. 학교를 돌아다니며 그들 눈에 찍힌 아이들의 돈을 뜯고, 기강을 잡는 것. 더불어 기타 오두방정과 나댐을 맡았다.
이주학의 패거리가 고작 천 원으로 살 수 없는 양의 간식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두영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많은 양의 주문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이런 상황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아 속이 타들어 갔다. 그러나 얼굴 밖으로 곤란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제 알량한 자존심이었다.
“홍승표! 너는?”
구겨진 천 원 쪼가리를 조몰락대던 두영은 멈칫했다. 김진호가 대답 없는 홍승표에게 다가가 다시 물어보기까지 했다. 맡은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는 김진호의 모습에 두영은 목구멍까지 위액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폰을 뺀 홍승표가 김진호의 말을 듣고 두영에게 눈길을 주었다. 시선이 아슬아슬하게 겹치는 순간, 이주학이 넙데데한 얼굴을 두영에게 들이댔다. 끔찍한 비주얼에 깜짝 놀란 두영은 저도 모르게 대놓고 움찔해 버렸다. 이주학의 얼굴은 거짓말로도 인상이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기분이 상한 냄새를 폴폴 풍기던 이주학이,
“이 새끼 지금 내 얼굴 보고 놀란 거 맞지?”
라고 말하며 두영의 이마를 손끝으로 밀었다. 멀리서 이 상황을 바라보던 김진호가 실실 쪼개며 대꾸했다.
“맞지맞지. 니 얼굴을 그렇게 들이대면 지나가는 개도 바로 오줌 지리는 거 맞지맞지.”
“시발 누가 똥개 아니랄까 봐.”
두영은 내리뜬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이주학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몹시 송구했지만 좀 억울하기도 했다. 이주학은 골격이 크고 그 위를 덮은 살집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365일 땡볕에 구른 듯이 시꺼메서 별명이 제주 흑돼지였다. 눈도 사선으로 찢어져 늘 화가 난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 멸치 같은 김진호랑 항상 붙어 다니니, 그의 체형이 더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교무실에선 그들을 퉁퉁이와 길쭉이라고 불렀다. 본인들만 모르는 아주 직관적인 별명이었다.
“1교시 시작 전에 돌아와라.”
이주학이 짜게 식은 얼굴로 말했다.
시계를 바라본 두영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첫 교시 시작 3분 전이었다. 이건 그냥 실패하라고 염불을 외는 수준이었다. 두영은 주섬주섬 일어나 교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발에 추가 달린 것처럼 무거웠다.
“야! 안 뛰냐? 늦으면 일 분당 뺨 싸대기 한 대씩이다!”
이주학의 윽박에 두영은 매점으로 달음질했다. 낡은 복도가 괴성을 질렀다. 교실에서 아무리 멀어져도 그들의 비웃음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그들은 약자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 두영은 그저 입맛대로 쉽게 다룰 수 있는 대상일 뿐이었다. 입 밖으로 쏟아 낸 말은 모두 일회용에 불과했다.
학교는 약육강식의 축소판이었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명확한 희생양을 만들어 본인들의 불안감을 잠재워야 했다. 부랴부랴 매점으로 뛰어가는 두영을 보며 누군가는 우월감을, 누군가는 안도감을 느꼈다.
매점을 앞에 둔 두영은 꼬깃꼬깃 움켜쥔 천 원을 먹먹하게 내려다봤다. 그게 꼭 지금의 제 모습 같아서 쓰레기통에 처넣고 싶었다.
신발 밑창에 숨겨 둔 돈을 꺼내 그들이 시킨 것을 매점 아저씨한테 느릿느릿 말했다. 중간에 기억이 안 나는 게 있어 어물거리자, 매점 아저씨는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서 물건을 척척 꺼내 주었다.
“날씨가 춥지?”
“…….”
두영이 가장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자신을 한심하게 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동정은 사양이다.
두영은 매점 아저씨가 내민 간식 봉다리를 무심하게 받고 매점을 나왔다. 매점에서 멀어지는 만큼 자책이 밀려왔다.
‘맞아요, 오늘 추워요. 매점에 계속 있으시면 안 추우세요?’
내뱉지 못한 물음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후회가 서리처럼 쌓여 갔다.
종이 울리자 두영은 계단을 미련하게 뛰어 올라가다가 철푸덕 넘어졌다. 턱에 찍힌 정강이가 얼얼했지만, 귀한 과자를 봉투에 주워 담는 게 우선이었다. 아파하는 건 나중에 해도 충분했다. 일 분에 한 대씩 늘어나고 있을 뺨 싸대기 때문이라도 더 이상 늦장 부릴 수 없었다.
차라리 변기 물로 세수하는 게 나았다. 이주학의 손은 크고 두툼해서 한 번만 맞아도 정신이 가출했다. 담뱃불로 지지는 것도 사양이다.
정신없이 복도를 내달린 두영은 반쯤 열린 교실 뒷문 사이로 뒤뚱거리며 들어갔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교실이 너무 조용했다.
두영은 땅에 박힌 시선을 소심하게 들어 올렸다. 교탁 앞에 담임이 서 있었다. 그제야 한 공간에 있는 수 쌍의 눈동자가 제게 향해 있는 것을 알아챘다.
담임에게 과자 보따리를 빼앗긴 두영은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하필 자리도 교탁 앞이라 꾸짖는 담임의 목소리가 천둥같이 내리쳤다.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 두영은 뒷자리에서 살벌하게 노려보는 이주학의 시선 때문에 식은땀이 등에서 좔좔 흘렀다.
겨우 수업이 시작됐다. 두영은 책상 위에 올린 제 가방을 주섬주섬 내렸다. 그런데 가방 입구가 활짝 열려 있었다. 오늘 학교에 와서 베고만 잤지 열었던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매점에 갔다 온 사이에 이주학 패거리가 가방을 뒤진 모양이었다.
두영은 칠판에 무언가를 쓰는 담임을 힐끗 확인하고 가방 내용물을 살폈다. 구겨진 가정 통신문과 노트 몇 권이 달랑 있었다. 딱히 사라진 게 없었다. 그러다 앞주머니가 열려 있는 걸 발견한 두영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없어진 건 지갑이었다.
어차피 돈 한 푼도 없는 지갑이었다. 언제 돈을 빼앗길지 몰라 신발 밑창이나, 저만 아는 교복 비밀 구멍에 숨겨 두는 편이었다. 그래도 마음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두영은 치밀어 오르는 한숨을 참아 내고 책상 서랍에서 교과서를 꺼냈다. 새 책처럼 빳빳한 종이를 손바닥 두툼한 부분으로 꾹꾹 눌렀다.
수업 내내 멀쩡히 해내지 못한 심부름의 후환이 두려워 다리를 떨었다. 시간은 매정하게 흘러 금방 쉬는 시간이 되었다. 담임이 교실을 나가자 맨 뒷자리에 앉은 이주학이 두영을 호출했다.
“똥개, 알아서 안 오냐?”
두영은 발을 질질 끌며 이주학에게 걸어갔다. 그러다 책상 모서리에 허벅지를 찧었다. 하필 홍승표의 책상이었다.
의자에 느슨히 앉아 있는 홍승표가 두영을 올려다봤다. 두영은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곤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리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미안…….”
홍승표는 시큰둥한 얼굴로 두영을 볼 뿐이었다. 그때 이주학이 두영의 이름을 부르며 윽박질렀다.
“씨발 안 튀어 와?!”
어깨를 움찔 떤 두영은 서둘러 이주학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곧장 뒤통수를 처맞았다. 중심을 잡지 못해 책상을 손으로 짚었지만, 이주학이 두영의 팔을 쳐내 기어코 네 발로 엎어지게 만들었다. 이주학은 일어나려는 두영의 등을 지그시 짓밟았다.
“일 분에 한 대씩 늘어난다고 했지? 50분 늦었으니까 50대 맞아야겠네?”
이주학의 궤변에 두영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수업 시간까지 계산하는 건 반칙이었다. 이주학의 입술이 비열하게 말려 올라갔다.
“선택해. 50대 맞을래, 아니면 쓰레기통까지 개처럼 기어가서…….”
이주학이 씹고 있던 껌을 뱉으며 덧붙였다.
“이거 주워 먹을래.”
껌을 건네받은 이주학의 친구가 쓰레기통에 껌을 버리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던 두영은 바닥을 짚은 손을 말아 쥐었다. 얼른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저를 중심으로 퍼진 교실 안의 침묵에 질식사할 것 같았다.
한 손을 앞으로 내민 두영은 네발짐승처럼 바닥을 기었다. 코앞에 있는 쓰레기통이 닿을 수 없는 존재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땅이 물컹한 슬라임 같았다. 팔꿈치가 꺾일 뻔할 걸 참느라 근육이 크게 조였다가 풀어졌다.
쓰레기통 앞에 도착한 두영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제 앞으로 쓰레기통을 기울였다. 껌 옆에 제 지갑도 있었다. 결국 이주학은 버려진 지갑을 제게 보여 주기 위해 이런 짓을 시킨 모양이었다.
종종 이주학은 두영의 위치를 이런 식으로 세뇌할 때가 있었다. 절대 잊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밑바닥의 제 위치를.
쓰레기통에 손을 집어넣은 두영은 이주학이 씹다 버린 껌을 입 안에 넣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몇 명의 아이가 오바하며 토하는 시늉을 했다.
다시 두영을 자기 앞으로 호출한 이주학은 두영의 머리를 말 잘 듣는 똥개 칭찬해 주듯 쓰다듬었다. 그에 아슬아슬 매달린 두영의 모가지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때였다. 두영의 머리 위로 비구름 같은 그림자가 졌다. 무심코 시선을 들어 올린 두영은 이주학 뒤에 서 있는 홍승표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두영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말했다.
“불 좀.”
순간 두영은 홍승표가 제게 말한 건 줄 알고 입을 달싹거렸다. 그러나 홍승표의 말에 반응한 건 두영뿐만 아니었다. 홍승표 못지않게 커다란 덩치를 가진 이주학이 크게 움찔했다.
“아, 시발 홍승표! 기척 좀 내고 다녀라!”
홍승표는 여전히 두영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손을 까딱였다. 입 닫고 라이터나 내놓으라는 의미가 적나라했다. 두영은 착각한 스스로가 민망하여 급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텅 빈 입 안을 혓바닥으로 쓸었다. 홍승표 때문에 당황하여 껌을 삼켜 버렸다.
이주학은 탐탁지 않은 얼굴로 라이터를 건넸다.
“쓰고 돌려줘라.”
라이터를 챙긴 홍승표가 설렁설렁 뒷문으로 걸어갔다. 쓰레기통에 눈길을 가벼이 주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두영은 앞머리 사이로 훔쳐보았다.
홍승표는 무리 지어 생활하는 학교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꼭 우리에 갇힌 맹수 같은 모습이었다. 새삼 새벽에 잠깐 보았던 그의 반라가 떠올랐다. 체형이나 분위기나 다른 일진 무리와 확연히 달랐다.
“시발 재수 없는 새끼.”
이주학이 삐죽 내민 주둥이로 나불거렸다. 홍승표가 전학 오던 날, 그를 가장 환대한 건 이주학이었다. 급이 맞다느니, 아이돌 연습생이냐느니 지껄이며 거렁뱅이처럼 들러붙었다.
잘사는 편에 가까운 이주학이 홍승표에게 구걸한 건 돈이 아닌 그에게서 풍기는 분위기였다. 이주학뿐만 아니라 그의 패거리도 홍승표에게 달라붙었다. 이주학이 모기라면 기타 패거리는 모기 유충이었다.
그 사실을 용케 깨달은 이주학은 홍승표를 대놓고 무시하진 못하고 은근히 뒤에서 험담했다.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라면 배척하는 게 낫다는 그의 가치론이었다.
문득 두영은 자신에게도 이주학이 가질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다가 작게 조소했다. 그딴 게 제게 있을 리 없었다.
두영은 매 순간 형체가 없는 무언가로부터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건 아주 깊은 무의식에서 탄생했고 날로 몸집을 키웠다. 그 이름 없는 괴물에게 자칫 잡아 먹히면 심연 밑바닥으로 가라앉아야 했다. 그곳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어떠한 빛도 보이지 않기에 죽었다고 생각해야 했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자해뿐이었다. 눈에 보이는 상처를 냄으로써 조류에 휩쓸려 가는 자신을 깨워야 했다. 그게 제가 만든 괴물에게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두영은 학교가 끝날 때까지 화장실 한 번 안 가고 내내 앉아만 있었다. 엉덩이뼈가 저릿저릿했지만, 이까짓 고통 남이 뱉은 껌을 씹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이주학은 홍승표가 라이터를 빌려 간 이후로 두영을 건드리지 않았다. 이유는 알다가도 몰랐다. 오히려 김진호가 할 말이 있는 듯이 수업 내내 두영을 쳐다보았다.
사실 오늘뿐만 아니었다. 때때로 김진호의 시선에서 이주학이 제 몸을 훑는 것과 비슷한 냄새가 났다. 털끝만큼도 아는 체하고 싶지 않은 시선이었다.
두영은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교사 뒤편 소각장에 왔다. 이름만 소각장이지 쓰레기는 쓰레기 차에 던져 넣으면 됐다.
주변을 둥글게 둘러본 두영은 근처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일부러 허술하게 봉한 쓰레기를 입구를 도로 풀었다. 퀴퀴한 냄새가 순식간에 퍼졌다.
소매를 팔죽지까지 걷어붙이고 쓰레기를 뒤졌다. 겨우 손에 닿은 지갑을 밖으로 꺼내서 살폈다. 오물이 묻었지만 천으로 된 동전 지갑이라 빨아서 사용하면 됐다.
두영은 작게 새겨진 고양이 자수를 엄지로 쓸었다. 손재주가 없는 할머니가 어르신 취업 센터에 가서 하루 동안 만들어 온 것이었다. 민무늬 고양이었는데 지금은 삼색 고양이가 되어 버렸다.
침울한 얼굴을 한 두영은 지갑을 대충 털어서 가방 앞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여기서 청승 떨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갑자기 누가 오기라도 하면 쓰레기 뒤지는 왕따로 오해받을 수 있었다.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를 도로 주워 담은 두영은 입구를 단단히 동여맸다. 그때 먼지를 태운 바람이 두영의 눈망울에 스쳤다. 따가운 감각에 눈을 끔뻑끔뻑 감았다가 떴다. 그런데도 이물질이 빠지지 않아 비죽 세운 한쪽 어깨에 눈을 문질렀다.
“울어?”
하늘의 계시처럼 들려온 나직한 물음에 두영은 펄쩍 뛰었다. 자기 꼬리를 노리는 새끼 고양이처럼 빙글빙글 돌며 주변을 살폈으나 아무도 없었다.
“나 여기 있어.”
웃음기 머금은 목소리가 또 한 번의 계시를 주었다. 두영은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별관 1.5층 비상 계단참에서 담배를 태우는 홍승표가 보였다. 그는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두영을 심드렁히 내려다보았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안 우네.”
라고 홍승표가 조금 실망한 듯이 중얼거렸다. 울기를 바란 듯한 말투에 두영은 살짝 당황했다. 홍승표의 뚜렷한 입매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너도 피울래?”
그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담배를 까딱이며 물었다. 듣는 사람도 힘이 빠지는 나태한 목소리였다.
소심하게 고개를 내저은 두영은 들고 있던 쓰레기봉투를 냅다 쓰레기차에 내동댕이쳤다.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려고 조준도 제대로 하지 않고 던졌더니, 애먼 벽에 부딪혀 도로 튕겨 나왔다.
오늘따라 마가 낀 듯했다. 우주의 모든 기운이 너 좆돼 봐라 하고 염불을 외는 것처럼, 무슨 행동을 해도 볼품없는 결과를 내놓았다.
두영은 안 머쓱한 척하며 멀리 떨어진 쓰레기봉투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초라하게 몸을 굽히고 손을 뻗는데,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쓰레기봉투를 대신 주워 들었다. 그러곤 시원한 동작으로 쓰레기차에 골인시켰다.
두영은 허공에 그려진 포물선을 멀뚱멀뚱 보다가 옆에서 손뼉 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손에 묻은 먼지를 털던 홍승표가 저를 쳐다보는 두영을 향해 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싱그러운 투로 말했다.
“훔친 우유 못 먹어서 그래? 힘이 너무 종이짝인데.”
그는 한참 잘못된 정보로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두영은 허겁지겁 해명했다.
“아, 안 훔쳤어! 우유 배달이었단 말이야……!”
“그래?”
“그, 그래…….”
두영의 목소리가 갈수록 기어들어 갔다. 두영은 홍승표의 짙은 시선이 부담스러워 소심하게 거리를 벌렸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몇 걸음 더 물러났다.
홍승표는 이주학을 무시한다. 이주학은 홍승표를 무시하지 못한다. 그럼 자신의 포지션은 정해졌다. 홍승표의 눈에 띄지 않는 것. 그게 제 역할이었다.
두영은 잘못한 강아지처럼 홍승표의 눈치를 힐끗힐끗 살폈다.
“나는 알바가 있어서…….”
“우유 배달?”
“그건 새벽에만…….”
무심코 대꾸한 두영은 홍승표의 입술이 휘어지는 걸 발견했다. 명백히 장난을 치는 표정이었다. 얼떨떨한 기분에 휩싸인 두영은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교문 쪽으로 빠르게 걸었다.
그런데 홍승표가 따라오기 시작했다. 교문까지는 그러려니 했지만, 학교를 벗어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그의 스토킹은 멈추지 않았다. 미운 오리 새끼처럼 졸졸 따라오는 홍승표 때문에 식은땀이 죽죽 샜다.
담배 살 돈이 필요한 건가? 피시방 갈 돈이 필요한 건가?
두영은 홍승표가 자신을 쫓아오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도 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그럴수록 그의 걸음도 함께 빨라지는 것만 같았다. 이제 곧 육교를 건너야 하는데 홍승표가 육교마저 따라 건널까 봐 두영은 피가 바싹 말랐다.
“똥개.”
느닷없는 홍승표의 부름에 두영은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심장 위를 지그시 누른 상태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진짜 돌아보네.”
그의 말 한마디에 두영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역시 홍승표는 이주학의 패거리가 맞았다. 사람 무시를 너무도 손쉽게 했다.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오늘 아침에 본 홍승표의 반라 상태를 떠올리고 울분을 고이 접어 삼켰다. 저 팔에 잘못 맞았다간 인생 종 칠 것이다.
“네 이름이 똥개야?”
홍승표가 여유롭게 거리를 좁히며 물었다.
이름을 잃어버린 두영은 윗니로 아랫입술을 짓이겼다. 세상에 자기 이름을 고르면서 태어나는 아이는 없다. 그러나 자신은 침이나 흘리는 아기가 아님에도 제 의지가 아닌 이름을 받았다.
똥개는 진드기 같은 별명이다. 평생 그 별명으로 불린 것도 아닌데 그새 제 안에 깊이 박혔다. 그 이름으로 불릴수록 제 자아가 침흘리개 아기처럼 흐려지는 것 같았다. 어디에도 허두영은 없었다.
일순 홍승표가 두영에게 손을 뻗었다. 두영은 반사적으로 머리를 감싸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뼈가 어긋나는 통증이 전해지지 않았다.
실눈을 뜬 두영은 그의 손에 들린 제 지갑을 발견하고 무심결에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제 가방 앞주머니를 재빨리 확인했다. 아까 지갑을 집어넣고 지퍼를 안 채웠는지 입구가 활짝 벌어진 상태였다.
뒤늦게 민망함이 몰려든 두영은 그의 손에서 지갑을 빼앗듯이 가져왔다. 그 과정에서 그의 손을 살쾡이처럼 할퀴어 버렸다. 두영은 세상이 무너질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걱정한 것과 달리 홍승표는 웃음 포말을 터뜨리며 웃을 뿐, 손등에 남은 생채기를 두영에게 되돌려 주지 않았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마치 친구를 대하는 듯한, 그 흔한 손 인사였다.
“잘 가.”
부드러운 숨결을 흘리며 다가온 그의 인사는 따뜻했다. 그리고 자연스러웠다. 그가 제 친구라고 착각할 만큼.
홍승표는 두영을 지나쳐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순식간에 형체도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졌다.
두영은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같은 교복을 입은 또래 친구에게 2년 만에 받아 보는 인사였다. 그 인사에 진정성이 담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랜만이었다.
갑자기 그 아이가 보고 싶었다. 봄날처럼 웃던 그 얼굴이 이제는 한참을 생각해야 떠올릴 수 있을 만큼 희미해졌다.
두영은 제 뺨을 때리는 바람을 속수무책 맞았다. 매섭게 추운 날씨가 원망스러웠다. 꼭 그 아이가 설레발치는 저를 보며 느끼는 기분 같아서, 두영은 더욱더 얼굴 근육을 딱딱하게 굳혔다.
웃으면 안 돼. 행복해서도 안 돼.
그 아이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 두영은 스스로를 외로운 섬에 가뒀다. 원망할 상대는 없었다. 미련한 자신이 저지른 죄에 합당을 벌을 받는 것뿐이니까.
***
저녁 알바 마감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두영은 턱을 들어 허공의 냄새를 맡았다. 짙은 가을바람에 다음 계절 냄새가 섞여 있었다. 하늘과 가까워서 그런 걸까. 달동네는 저 아래서 맡는 공기와 확연히 달랐다. 단순한 바람, 자연의 냄새일 뿐인데 말이다.
두영은 초라한 은색 알루미늄 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방문 앞에 있는 제 아비의 신발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그 순간 방문이 거칠게 열리고 허삼혁이 방 밖으로 나왔다.
그는 샷시문 문턱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두영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하얗게 각질이 일어난 입술로 담배를 꼬나문 그가 신발을 구겨 신고 두영에게 걸어갔다.
허삼혁이 가까이 오자 찌든 곰팡냄새가 매섭게 퍼졌다. 그가 입고 있는 옷에 정체불명의 오물이 묻어 있었고, 얼굴에는 개기름이 떡칠 되어 있었다. 한쪽 팔에 바람막이를 걸치고 있는 걸 보니, 갑자기 날이 쌀쌀해진 탓에 겉옷이 필요해 잠시 집에 들른 모양이었다.
더 이상 흰자라고 볼 수 없는 누런 눈이 두영을 아니꼽게 훑었다. 두영은 애꿎은 엄지손톱 주변을 잡아 뜯으며,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물었다.
“할머니는… 아직 안 오셨어요…?”
혀를 찬 허삼혁이 팔을 크게 휘둘렀다. 거친 파열음과 함께 얼굴이 반대편으로 돌아간 두영은 털썩 주저앉았다.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손으로 짚자 그 위로 검붉은 액체가 점을 그렸다. 이명 때문에 사고가 빠르게 돌아가지 않았다. 손등으로 인중을 쓸자 피가 묻어났다.
“더럽게스리……. 애새끼가 애비를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노친네부터 찾아? 애새끼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 쓰벌…….”
성대를 재떨이로 써먹었는지 목소리가 걸걸했다. 목을 긁어낸 허삼혁이 누런 가래를 퉤, 하고 뱉었다.
“비켜, 덜떨어진 새꺄.”
두영은 구석으로 기어가 길을 터 주었다. 허삼혁이 제 앞을 스쳐 지나가자 메케한 불 냄새가 맡아졌다. 그건 지난 기억의 한 조각에 머무는 냄새였다. 두영의 시선이 제 아비의 손에 닿았다가 이내 바닥에 떨어졌다.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둔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멍청해서 맞고만 있는 게 아니다. 멍청해서 안 도망치는 게 아니다. 멍청해서 죽지 못해 사는 게 아니다. 폭력에서 안정을 얻는 사람은 없다. 멍청해서 깨금발을 들게 하는 곳을 보금자리로 삼은 게 아니란 말이다.
두영은 먹먹한 가슴을 때렸다.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렸다. 응어리진 것은 아무리 때려도 내려가지 않았다. 체한 듯하여 손을 따려고 바늘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두영은 이로 손톱 거스러미를 뜯었다. 생살을 벌리고 피가 날 때까지 헤집다가 조금 전에 코피가 났던 것을 떠올리고 스스로를 한심해했다. 피가 이렇게 흥건한데 잘도 체했겠다. 그냥 자신을 해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던 거다. 자기혐오 없이 스스로를 해칠 수 있는 명분이.
두영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방구석에 책가방을 내려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씻는 것을 미루고 고단한 몸부터 뉘었다. 차가운 장판에 맞은 뺨을 갖다 댔다. 얼음주머니가 따로 필요하지 않을 만큼 방은 냉골이었다.
벌써 자정이 넘었는데 할머니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두려움의 대가리가 불쑥 치든 두영은 발딱 일어나 집 밖으로 나왔다. 슬리퍼 뒤꿈치를 끌며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때 내리막길 끄트머리에 손수레를 이끄는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두영은 재빨리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그만 슬리퍼 한 짝이 벗겨졌지만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할무니! 왜 이제 와.”
손주를 발견한 김춘녀가 부스스 웃으며 손짓했다.
“똥강아지 안 자고 왜 나왔어? 어여 올라가, 어여.”
“이리 나와요. 내가 끌게.”
“아이고, 다 왔는데 뭘 나와. 신발이나 제대로 신어.”
슬리퍼에 대충 발을 꾀어 넣은 두영은 기어코 손수레 앞자리를 차지했다. 얼음 기둥 같은 쇠 손잡이를 야무지게 잡고, 허벅지에 힘을 실어 수레를 밀었다. 땅이 평평하지 않아서 올라가는 길이 조금 고됐다.
“왜 안 자고 나왔어?”
“그냥, 잠도 안 오고 그래서.”
“잠을 안 자니까 키가 안 크지.”
“뭐야 그게. 할머니 닮아서 그렇거든?”
“얼씨구. 나 정도면 큰 편이었어.”
“얼씨구.”
두영은 작은 미소를 흘려보내며 오르막길을 계속 올랐다.
“아범은 집에 있고?”
“…아니.”
“쯧쯧. 밥이나 먹고 다니는지 모르겠네.”
쇠 손잡이를 잡은 두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따금 묻고 싶었다. 당신의 자식이 자기 자식을 때려도 여전히 사랑스러운지. 노모를 부양하지 않고 여전히 방황하면서 사는데도, 입으로 내뱉은 모든 말이 날카로운 흉기여도, 그 흉기가 어미인 당신에게 향해도…….
그때 두영의 왼뺨에 건조한 손길이 살포시 닿았다.
“볼때기가 왜 이리 불그스름허까.”
“…추워서. 나 홍조 심하잖아.”
“…그래? 그러면 됐고.”
김춘녀의 눈에 불안이 짧게 스쳐 지나갔다. 자세하게 파고들지 않는 건 서로를 위한 거짓말이고, 초라한 세상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의 세상이 무너지지 않길 바라는 김춘녀의 무심이기도 했다.
김춘녀는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갑갑한 분위기를 풀었다. 두영은 더 이상 정신적으로 피곤해지기 싫어 김춘녀의 노력에 대강 부응해 주었다. 그러자 김춘녀가 볼우물이 파이게 웃었다.
그 미소에 결국 두영은 작게 웃음 지었다. 어쩌면 자신의 회피 성향은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일지 몰랐다. 이따금 허삼혁에게 물려받은 것이 없다고 안심했다. 보편적인 오른손잡이도 그를 닮아 가는 것 같아 억지로 왼손을 썼다. 그래 봐야 양손잡이가 됐지만 말이다.
수레를 적당한 평지에 세워 놓고 집에 들어왔다. 두영은 세수와 양치를 하고 김춘녀의 옆에 누웠다.
“오늘은 왜 이리 늦게 오셨어?”
두영은 왜소한 김춘녀의 등을 손가락으로 긁적대며 물었다. 김춘녀가 간지럽다며 몸을 뒤척였다.
“야간 일자리가 하나 올라왔길래 일 배우고 왔지.”
몸도 불편한 노인의 뜬금없는 일자리 타령에 두영은 상체를 비스듬히 세웠다.
“야간? 어디 야간? 아니, 갑자기 왜…….”
“이제 슬슬 일해야지. 언제까지 몇 푼 안 되는 폐지만 주우러 다닐 수 없으니까.”
두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체한 것처럼 가슴이 갑갑했다.
“야간… 무슨 일? 야간은 많이 힘들지 않을까?”
“요 밑에 있는 식당인데, 노인네도 받아 준다네. 그럼 누구한테 뺏기기 전에 얼른 가야지. 요즘은 100세 인생 훌쩍 넘는다매? 그럼 사지 멀쩡할 때 더 벌어 놔야지. 그래야 내 자식들 맛난 거 사 주고 하지.”
덤덤하게 말하는 김춘녀의 뒷모습에 두영은 속이 쓰렸다. 김춘녀는 몇 년 전에 암으로 수술했다. 지금은 완전히 완치됐지만, 만약이란 생각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그 옛날 느꼈던 피곤함이 다시금 밀려왔다. 가족 중에 누구 한 명이 아프기라도 하면 가족 전체가 힘들었다. 그를 병간호해야 했고, 아픈 사람은 돈을 못 버니 멀쩡한 사람이 그 사람의 몫까지 일을 해야 했다.
그럴 사람이 이 집구석엔 저 하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순수한 마음으로 김춘녀를 응원할 수 없었고, 눈만 감았다 뜨면 불어나는 가난 때문에 일하지 말고 쉬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은 할머니 걱정이 아니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제 암담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모순적인 제 모습에 속이 메슥거렸다. 노모를 부려 먹는 자신이 괴물이 된 것 같아 스스로를 해치고 싶었다.
두영은 목 막힘을 뚫고 작은 소리를 내뱉었다.
“폐지 줍는 거… 많이 힘들었지? 지금까지 고생했어요.”
“고생은 무슨, 우리 똥강이지 사 주고 싶은 것도 못 사 주는데.”
“그런 말 하지 마요.”
“나중에 할미 월급 타면 우리 똥강이지 겨울옷 두툼한 걸로 사자.”
두영은 뜨거운 덩어리가 목에 걸린 것 같아, 한참 뒤에 속삭이듯 대답했다. 반대로 돌아누워 제 허벅지를 손톱으로 세게 긁었다. 쓰라린 통증으로 먹먹한 기분을 상쇄시켰다. 눈을 깜빡이자 옆으로 흐른 눈물이 베개에 스며들었다.
사무치는 암울을 간신히 삼킨 두영은 눈을 감았다. 이제 억지로 잠이 들 시간이었다.
***
달동네 판자촌은 단점이 많았다. 누수가 시도 때도 없이 생겼고, 곳곳에 곰팡이가 폈으며, 공기는 늘 텁텁했다. 여름만 되면 찜질방을 방불케 했고, 겨울만 되면 수도가 어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천천히 심호흡한 두영은 이를 앙다물고 찬물로 얼굴을 적셨지만, 몇 번 적시지도 못하고 냉큼 수건으로 얼굴을 감쌌다. 하마터면 얼굴이 빠개질 뻔했다. 벌써 이토록 추우면 한겨울에는 어쩌려고 이러는지……. 앞날이 캄캄하여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여차여차 양치까지 끝내고 로션을 온몸에 꼼꼼히 발랐다. 교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서자 찬바람에 코가 찡했다. 온기 없는 하늘에 달덩어리가 알몸으로 오롯이 떠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한 두영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깨선이 둥근 강순자가 푸근하게 웃으며 두영의 마른 등을 팡팡 두드렸다. 인사치레가 제법 매워 두영은 볼 안쪽 살을 살짝 깨물었다.
강순자와 함께 일한 지 어언 4년이 되었다. 반년 전부터 배달에 필요한 인력을 대폭 줄이면서 두영은 일자리를 잃을 뻔했지만, 강순자가 특별히 두영에게만 소량의 우유를 떼 주고 일을 부탁했다.
무거운 새벽을 밀어내는 유쾌한 목소리가 두영에게 아침밥을 먹었냐고 물었다.
“아침밥 잘 안 먹어요.”
무뚝뚝하게 대꾸한 두영은 손등으로 턱을 쓸며 강순자에게 조막만 한 시선을 던졌다. 강순자는 밥심을 찬양하는 사람이라 공복이란 말에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이그이그! 니 나이에는 철근도 씹어 먹어야 키가 크는 거야!”
두영은 부자연스럽게 눈을 깜빡였다. 몇 년째 겪는 강순자의 오지랖은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오늘치 할당량을 자전거 뒤에 싣는데, 강순자가 두영의 뒤에 따라붙어 계속 떠들었다.
“요새 여자들도 남자 스펙 본다더라. 나 젊었을 때랑 달라졌어. 우리 남편은 내가 눈만 좀 높았으면 독신으로 살다 죽었을 인간이야. 두영이 우리 딸하고 키 비슷하지?”
“제, 제가 조금 더 커요.”
매가리가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대꾸한 두영은 강순자의 은은한 시선을 피하기 위해 냉큼 자전거에 올라탔다. 무작정 달려 나가려고 하자 강순자가 자전거를 덥석 붙잡았다. 잔교에 매달린 것처럼 조금도 나아갈 수 없었다.
두영은 피할 수 없는 민망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괜히 뻗댄 것 같았다. 비루먹은 강아지가 자존심 좀 세운다고 꼬리를 치켜세웠더니, 도리어 매몰차게 걷어차인 꼴이었다.
“우리 딸이 170인데 두영이 너랑 고만고만하더라.”
확인 사살당한 똥강아지가 주둥이를 삐죽 내밀었다. 강순자가 수더분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두유 뭐로 줄까. 뜨슨 거? 찬 거?”
“뜨슨 걸로… 감사합니다.”
손에 들어온 자그마한 온기에 희미한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배달지에 빗금을 그려 가며 할당량을 채웠다. 마지막 장소를 남겨 두고 아찔한 두통이 찾아왔다. 혹은 자살 충동. 고작 우유 배달하면서 왜 나인지, 왜 하필 나인 건지 생각하며 불행을 모조리 때려 박은 사람처럼 우울해했다.
맨션 정문에 자전거를 세운 두영은 저당으로 인해 떨리는 손으로 두유를 뜯었다. 다람쥐처럼 한 모금 가득 머금고 맨션을 올려다봤다. 다행히 불 켜진 곳이 한 집도 없었지만 도통 안심이 되지 않았다.
눈 한 번 감았다가 뜬 것뿐인데 맨션 5층에 도착해 있었다. 종종 기억이 끊길 때가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이라 딱히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머리 쪽을 자주 맞아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현관문까지 소리 없이 걸어간 다음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날쌔게 임무를 마쳤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그새 1층으로 내려가 있었다.
두영은 엘리베이터 계기판을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올라오는 속도가 더딘 것 같았다. 무언가로부터 쫓기는 것처럼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홍승표가 갑자기 현관문을 부수고 뛰쳐나올 것 같았다.
두영은 이미 식어 버린 두유를 조몰락거리며 얇은 눈꺼풀을 끔뻑였다. 그 순간 정신을 일깨우는 전자음이 울렸다. 육중한 엘리베이터 문이 서서히 열리자 비릿한 냄새와 담배 냄새가 새벽녘 안개처럼 퍼졌다. 그리고 숲 냄새도 함께 났다. 안개처럼 느껴진 이유가 그 때문인 것 같았다.
눈꺼풀에 힘을 준 두영은 엘리베이터 안쪽에 있는 이를 발견하고 손에 든 것을 놓쳤다. 날카로운 파열음이 사방으로 퍼졌다.
벽에 느슨히 기대고 선 홍승표가 시선을 느리게 들어 올렸다. 그는 끈적한 시선으로 두영을 훑다가 유리 파편에 눈길을 고정했다.
“이거, 훔친 거야?”
그의 나른한 목소리가 고장 난 카세트테이프처럼 늘어졌다. 동작은 물에 젖은 솜처럼 느른했다. 허삼혁에게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제야 두영은 사방에 달라붙은 알코올 냄새를 자각했다. 갑자기 눈앞의 존재가 두려워졌다.
홍승표는 대답이 없는 두영에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댔다.
“말 안 해? 음… 말하기 싫어?”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어투였다. 다그치는 게 아니었다. 두영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내 거, 야…….”
“아하, 아침?”
고개를 짧게 끄덕인 두영은 홍승표가 밖으로 나올 수 있게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나 그는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는지 자신을 집요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 만에 흐느적거리며 걸어 나오기 시작한 그가 유리 파편을 처참하게 짓밟았다.
두영은 홍승표를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탔다. 세월아 네월아 닫히는 문 때문에 피가 말랐다. 그때 문틈 사이로 손 하나가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양쪽으로 갈라지더니 그 중심에 삐딱하게 선 홍승표가 있었다.
“너, 이거 안 치워?”
약간 어눌한 말투의 홍승표는 지나치게 무심했다. 생살을 뚫을 것 같은 얼음송곳 같았다. 두영은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지, 지금 치울 거 경비실에 빌리러 가는 거야…….”
“그래?”
문 사이를 가르고 들어온 팔 때문에 문이 닫히지 않았다. 두영은 입술을 물어뜯었다. 그러다 제 입술에 점성 짙은 시선이 닿아 오는 게 느껴져 냉큼 입술을 뱉었다.
“나도 있어.”
“어?”
무심결에 고개를 들고 반응한 두영은 뒤늦은 후회를 했다. 초침처럼 움직이는 홍승표의 시선이 제 몸을 천천히 훑고 있었다.
“걸레도, 빗자루도 있어.”
눅눅한 목소리로 연신 이상한 말을 늘어놓았다. 두영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굳어만 있었다.
일순 공기를 짓누르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상함을 느끼기도 전에 별안간 홍승표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두영의 팔뚝을 잡아챘다. 두영은 본능적으로 발끝에 힘을 주고 버텼지만, 술에 취한 이의 힘을 쉽게 이길 수 없었다.
“왜, 왜 그……!”
밖으로 끌려 나온 두영은 다리가 꼬여 홍승표의 단단한 가슴팍에 얼굴이 부딪쳤다. 퍼뜩 고개를 들자 코앞에 홍승표의 얼굴이 있었다. 작은 움직임조차 없는 눈동자는 죽은 자의 눈 같았다. 혹은 가지고 놀던 잠자리의 날개를 뜯을지, 말지 고민하는 느낌이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은 침묵이 중첩되는 순간, 홍승표가 두영의 팔뚝을 고쳐 잡고 현관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겨, 경비실에, 읏, 말하면…….”
무자비하게 잡아끄는 힘이 도저히 같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현관문 앞에 멈춰 선 홍승표가 도어록 위에서 몇 번의 헛손질을 하고 문을 열었다. 집 안쪽으로 밀쳐진 두영은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에 크게 움찔거렸다. 낯선 장소에 갇힌 기분에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곤두섰다.
“걸…….”
“흐으!”
갑자기 들려온 홍승표의 목소리에 두영은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홍승표는 걸레가 있는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가 제 이마를 머쓱하게 긁적였다.
“걸레, 저 방에 들어가면 있어. 아무 수건이나 꺼내서 사용하면 돼. 엘리베이터는 청소하는 업체 따로 있으니까 대충 정리하고.”
“…….”
“내 말 듣고 있어?”
두영이 눈을 질끈 감고 있자 홍승표가 퍽 난감한 표정으로 웃었다. 머리를 쓸어 넘긴 그는 문에 기댄 몸을 바로 했다. 그러고는 두영의 손목을 잡고 중문을 넘었다.
두영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반항했다. 그러다 불시에 멈춰 선 홍승표의 등에 얼굴을 박고 말았다. 두영은 콧잔등이 아린 것도 잊은 채 그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도망치려고 각을 쟀다.
그때 얼굴 앞으로 무언가가 불쑥 들이밀어졌다. 깜짝 놀란 두영은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쳐냈다. 그러나 굵은 나뭇가지처럼 그의 팔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뭐 해?”
홍승표가 다소 어이없는 말투로 물었다.
“힘이 그게 다야? 어디 뭐, 힘쓰다 왔어? 너무 빈약하잖아. 함부로 하고 싶게.”
덧붙인 뒷말에 두영은 눈을 마구 깜빡였다. 가득 고인 눈물이 무섭게 떨어졌다. 두영의 젖은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홍승표는 손에 든 수건을 팔랑팔랑 흔들며 나직이 말했다.
“내가 무슨 짓 할 줄 알았나 보네.”
“…….”
“좀 더 반항하면 진짜 무슨 짓 할 뻔했어.”
입술을 매끄럽게 휜 홍승표가 두영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거칠게 끌고 온 것과 달리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창문이 없는 옷방은 불을 켜지 않아 칠흑처럼 어두웠다. 어깨를 기댈 달빛조차 없었다. 그 순간 온기를 머금은 것이 두영의 뒷덜미를 짧게 어루만지고 떨어졌다.
고개를 번쩍 든 두영은 홍승표의 오른팔이 짧게 흔들리는 걸 발견했다. 이곳에 저와 홍승표 단둘뿐이었다. 귀신이 아니고서야 뒷덜미를 만질 사람은 홍승표 말고 없었다.
연이은 악재처럼 홍승표가 바지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구멍을 빠져나가는 벨트가 땅을 기어 다니는 뱀 소리를 냈다.
“나 벗는 거 구경하는 거야? 그럼 관람비를 내야지. 내 스트립쇼 비싸.”
두영은 그의 허리춤에 고정한 시선을 들어 올렸다. 한 손으로 능숙하게 버클을 풀던 그가 두영을 향해 짙은 미소를 지었다.
“아님 너도 벗든가.”
수건을 쥔 두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쩐지 온몸이 끈적하게 핥아지는 기분이었다. 날쌘 걸음으로 옷방에서 벗어난 두영은 현관에 도달했다가 이내 당황했다. 처음 보는 방식의 문고리를 어떻게 열어야 할지 몰랐다. 무작정 잡아 비틀었지만, 끝끝내 열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커다란 그림자가 두영을 등 뒤에서 덮쳐 왔다. 그가 가까이 올 때까지 기척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두영은 문고리를 잡은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홍승표가 두영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치고 힘주어서 밀었다. 맑은 울림과 함께 문이 간단하게 열렸다.
“이렇게 여는―.”
두영은 홍승표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뛰쳐나왔다. 비상계단을 두어 칸씩 밟고 내려가며 매음굴 같은 곳에서 전력을 다해 벗어났다.
***
책상에 엎드린 두영은 손에 덕지덕지 붙은 밴드를 보며 멍을 때렸다. 홍승표의 집에서 도망치듯 벗어났지만, 결국 되돌아가 뒷정리했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두영은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새벽 일만 생각하면 이불이라도 차고 싶었다.
“니가 웬 한숨이냐?”
언제 왔는지 김진호가 두영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꺼림칙한 터치에 두영은 목을 움츠렸다.
“그럼 이제 우리 이야기를 해 볼까?”
“…?”
“뭐임? 그 순진한 표정은? 돈값을 해야지.”
그제야 완전히 잊고 있었던 김진호의 심부름이 떠올랐다. 이건 다 홍승표가 제 머릿속을 엉망으로 뒤집어 놔서 그렇다. 두영이 어색하게 눈을 깜빡이자 김진호가 몇 가닥 없는 눈썹을 찡그렸다.
“눈 똑바로 안 뜨냐?”
대체 제 눈이 어떻길래 눈만 깜빡여도 저런 말을 하는 건지 두영은 난감했다. 이런 눈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당장 담임한테 가서 가져오든가, 아님 열 배로 갚든가.”
터무니없는 가격 책정에 두영은 두 눈을 크게 뜨고 김진호를 올려다봤다. 김진호는 두영이 하도 씹어서 붉어진 입술을 은은하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야, 웃기지 않냐? 내 돈으로 심부름했는데 왜 너는 이주학 껌이나 씹어먹고 있냐?”
“그건… 걔가 시켜서…….”
“그러니까!”
김진호의 목청에 두영의 어깨가 비죽 솟았다. 교실에 몇 없는 아이들이 불편한 공기를 못 이겨 교실을 떠났다.
“그러니까 웃기다고! 너 진짜 이주학 거 빨아 줬냐?”
“…뭐?”
“빨아 줬으니까 이주학 말에 고분고분 행동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그보다 더한 사이냐? 이주학 그 새끼는 맨날 구라만 치고 다니니까 어디 믿을 수가 있어야지, 시발.”
“그, 그런 짓 안 했어.”
“그런 짓? 말에 어폐가 좀 있다?”
김진호는 두영의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의자에 발을 올렸다. 두영은 제 가랑이 사이에 들어온 발을 내려다봤다. 신발 끝이 은밀한 부위를 스치자 소름이 뒷덜미를 타고 전신에 퍼졌다.
“그럼 그런 짓 당한 박은식은 어떻게 생각하냐?”
순간 두영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박은식, 그는 제 친구였다. 그들이 감히 입에 담지도 말아야 할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친구.
되바라진 두영의 눈빛에 김진호가 혀를 찼다. 그러고는 두영의 옆통수를 후려쳤다.
“시발놈이 어딜 꼬라.”
주변을 둘러본 김진호가 두영의 멱살을 잡아당겨 사각지대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거칠게 입을 맞췄다.
얼굴에 스치는 김진호의 숨결이 당장 창밖으로 투신하고 싶을 정도로 더러웠다. 너저분하게 입술을 빠는 침 소리와 저를 끈적하게 바라보는 김진호의 눈을 송곳으로 찌르고 싶었다. 두영은 팔에 힘을 실어 김진호를 밀치다가 도저히 밀려나지 않아 그의 입술을 씹었다.
“아! 시발년이!”
두영은 옷소매로 입술을 마구 문질렀다. 김진호가 눈에 살기를 띠며 한쪽 팔을 번쩍 들었다. 두영이 쫄지 않고 끝까지 노려보자 김진호가 헛웃음을 허탈하게 내뱉었다.
“야, 우리 이 정도는 해도 되는 사이잖아.”
“…그 정도 사이가 뭔데?”
“박은식으로 반찬 삼은 사이.”
순간 두영은 높은 곳에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아찔한 감각을 맛봤다.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그저 눈앞에 존재를 해치고 싶다는 마음밖에는. 그러나 힘 한 번 제대로 써 보기도 전에 김진호의 무력에 치여 앞문에 등이 거나하게 부딪혔다.
두영은 문에 기댄 채 주르륵 무너져 내렸다. 이번에도 처참히 무너졌다. 흐릿한 초점을 들어 올리자 교실 한편에 앉아 있는 박은식이 보였다. 그의 얼굴 위로 원망, 슬픔, 분노가 응어리져 있었다.
호흡이 덜컥 멈추고 손발이 오들오들 떨렸다. 그에게 ‘그날’ 일을 변명하고 싶었고, 무릎을 꿇고 빌고 싶었다. 동시에 교실을 떠도는 먼지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아예 사라지고 싶었다.
두영은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 교실 문이 윽박지르듯이 활짝 열렸다. 저절로 몸이 뒤로 기울었지만, 단단한 무언가가 몸을 받쳐 주어 벌러덩 구르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턱을 치들고 위를 올려다봤다. 복도 쪽으로 쏟아지는 햇빛 때문에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두영은 빛을 몰고 온 이에게 초점을 조였다. 그제야 역광 속에 서 있는 이가 홍승표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꼭 빛을 머금은 사람 같아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 눈이 시렸다.
정강이로 두영을 받치고 있던 홍승표가 다리에 가볍게 힘을 주어 기울어진 두영의 몸을 바로 앉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두영은 옆으로 꾸물꾸물 기어갔다. 눈동자만 움직여 박은식을 보았던 곳에 시선을 두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미건조한 얼굴을 한 홍승표는 유독 반짝이는 두영의 입술과 피가 맺힌 김진호의 입술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한 김진호는 두영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 홍승표를 향해 아는 체했다.
“와, 왔냐? 넌 진짜 이주학 말대로 기척 좀 내고 다녀라. 똥개, 너는 오늘 담임한테 그거 못 받아 오면 뒤질 줄 알아.”
김진호가 두영의 엉덩이를 손으로 두드리며 재촉했다. 뒤에선 김진호가 밀고, 앞에는 문을 막고 선 홍승표 때문에 두영은 샌드위치의 햄처럼 끼어 버렸다. 그러다 중심을 잃고 홍승표의 가슴에 손을 얹고 말았다.
무심코 시선을 올린 두영은 멈칫했다. 그는 오늘 새벽에 보았던 음침하고 피폐한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청량함 그 자체라 당황스러웠다. 아침에 조깅하는 흡혈귀를 목도한 기분이었다.
“빨리 나가라고 새끼야.”
“윽, 잠깐…….”
뒤에 서서 엉덩이를 자꾸 지분대는 김진호 때문에 수치심이 들끓었다. 그때 홍승표가 두영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본인 옆에 달랑 세웠다.
사늘한 정적에 가장 당황한 건 김진호였다. 그는 간신배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영과 홍승표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자신을 무생물 보듯이 내려다보는 홍승표를 발견하고 빈정거리며 말했다.
“급식 먹으려고 학교 오냐?”
“그런가 보지.”
홍승표가 무심하게 대꾸하자 김진호가 오바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으으. 그딴 거 누가 먹어.”
“그래? 그런 것치고 넌 꼬박꼬박 먹던데.”
“아까우니까.”
“뭐가?”
“뭐긴 뭐야. 잔밥이 아깝다고 인마.”
“왜?”
“이 자식 오늘따라 왜 이래? 너도 맛없다며.”
“난 안 먹어 봐서 몰라.”
“뭐?”
“잔반이 아깝지 않거든. 그딴 걸 누가 먹어. 안 그래?”
홍승표가 고개를 살포시 기울이며 두영에게 물었다. 제게 말을 걸 줄은 꿈에도 몰랐던지라 두영은 눈을 끔뻑끔뻑 감았다가 떴다.
“뭐지? 이 분위기는?”
명탐정에 빙의한 김진호가 목소리까지 낮추며 진지하게 지껄였다.
“똥개 새끼 이제는 홍승표 라인 타는 거냐?”
“라인?”
홍승표가 건조하게 되물었다. 김진호는 턱짓으로 두영을 가리키며 대꾸했다.
“얘 걸레잖아. 여기저기 잘도 달라붙어서 용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거고. 안 그랬으면 얜 이미…….”
두영은 빈 깡통처럼 나불대는 김진호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그가 내뱉은 말 중에 진실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그 말을 듣고 있을 홍승표가 괜히 신경 쓰였다.
그때였다.
“안 그래 보이던데.”
가만히 듣고만 있던 홍승표가 김진호의 말을 싹둑 끊어 냈다.
“뭐?”
김진호가 얼빵하게 대답했지만, 정작 홍승표는 두영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덧붙였다.
“너 걸레 안 같다구.”
두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홍승표의 턱 언저리를 보았다. 덜 말린 그의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비가 내린 후 젖은 흙내음이 콧속으로 퍼졌다. 잠잠한 고요가 심장의 불안한 진동을 잠재웠다.
상황을 조용히 주시하던 김진호가 별안간 두영을 복도 밖으로 내몰기 시작했다.
“내 말을 개똥같이 듣냐? 빨랑 안 튀어?!”
두영은 민첩한 고양이처럼 잽싸게 튀어 나갔다. 홍승표는 두영의 머리카락이 스친 제 어깨를 손으로 쓸며, 저 멀리 머리칼을 나풀대며 뛰어나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큰 사이즈의 교복 속에 숨은 몸이 얼마나 말랐을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분명 왕따의 젖꼭지 색은 연한 산호색일 것이다.
교무실 앞에 도착한 두영은 같은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두영을 발견한 담임이 발 받침대 아래 보관한 과자 보따리를 꺼내며 물었다.
“할머니는 괜찮으시냐?”
“네.”
“졸업하고 할 일은 있고?”
두영은 배 앞으로 모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가장 불편한 주제였다. 딱히 장래에 뭐 할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내신 관리도, 대학도 전부 관심 없었다. 대학에 간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게 아니니까. 차라리 공장에 들어가 돈이나 버는 게 나았다.
한숨을 내쉰 담임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영은 종일 물어뜯은 손톱을 갉작대며, 자신을 한심하게 보고 있을 담임의 시선을 회피했다.
“성공해서 할머니한테 효도해야지. 벌써 공부 포기하면 안 돼. 니 인생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아. 니가 금수저면 나도 잔소리 안 해, 인마. 이거 다 널 위해서 해 주는 말이니까 아니꼽게 듣지 말고, 알았어? 모든 결과에는 그럴만한 원인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니가 이겨내야 하는 거야. 이겨내서 성공해. 다 니 인생에 거름이 되는 거야. 주눅 들지 말고 당당히 맞서. 어깨도 좀 펴고, 사람 눈도 좀 마주치고. 알아들었으면 이제 가 봐. 수업 시작하겠다.”
교무실에서 벗어난 두영은 문에 기대고 서서 제 앞에 펼쳐진 복도를 텅 빈 눈으로 내다보았다. 한 번도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2학년 담임도, 1학년 담임도 마찬가지였다.
상관없었다. 제 괴로움을 알아 달라고 구걸한 적 없었으니까.
이 학교의 골칫덩어리는 일진 패거리가 아닌 왕따 허두영이었다. 왕따를 감싸면 잃을 게 많았고, 가해자를 감싸면 앞날이 창창했다. 이사장의 손자, 정재계가 모이는 교회 목사의 아들. 이주학이 그런 존재였다.
자신이 학교에서 배운 건 체념이었다. 어른들은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하며 친구는 싸우면서 크는 거니까 일 크게 만들지 말라며, 제게 닥친 일을 학창 시절 누구나 겪는 열병 정도로 취급했다.
근데요, 선생님.
저는요.
친구가 없어요.
어쩐지 명치가 허해 납작한 배를 손으로 문질렀다.
“배고픈가…….”
낮게 읊조린 두영은 계단을 밟고 천천히 올라갔다. 교실이 있는 층에 도착한 두영은 앞뒤로 닫힌 교실 문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아주 고역이었다. 문 여는 소리에 반응한 아이들이 저를 동시에 쳐다본다고 생각하면 식은땀이 미친 듯이 흘렀다.
문 앞에서 밍기적대던 두영은 심호흡을 여러 차례 했다. 문고리에 손을 살포시 올리는 순간,
“뭐 해?”
뒤에서 불쑥 들어온 물음에 두영은 펄쩍 뛰었다. 뒤를 돌아보자 홍승표의 얼굴이 코 앞에 있어서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요절할 뻔한 두영은 심장 부근을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며 뒷걸음질 쳤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문짝에 등이 닿았다. 홍승표는 살짝 굽힌 허리를 펴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두영을 향한 묘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입을 뗐다.
“아까부터 뭐 하는 거야? 문도 안 열고.”
어째 아까부터 저를 보고 있었다는 것처럼 들렸다.
홍승표가 두영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며 물었다.
“렌즈 껴?”
눈 색깔 지적에 두영은 고개를 깊게 숙이고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러다 홍승표의 한쪽 신발이 더러운 걸 발견했다. 조금 전 펄쩍 뛰면서 저도 모르게 밟았나 보다.
두영은 홍승표를 힐끔 보았다가 다시 아래를 보고, 다시 힐끔 보았다가 시선을 내렸다. 두영의 의미 모를 행동에 홍승표는 부드럽게 웃었다.
“뭔데. 할 말 있으면 해. 상냥하게 대답해 줄게.”
“그… 미안, 해…….”
“뭐가? 네가 아침에 내 집 턴 거?”
이건 또 무슨 개똥 같은 소리인가. 수건을 말하는 건가? 멍하게 있던 두영의 눈이 서서히 크게 뜨였다. 홍승표가 새벽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독한 술주정을 부리길래 기억도 못 할 줄 알았는데.
그때, 홍승표의 손이 두영의 목덜미를 간지럽게 쓸고 떨어졌다. 급작스러운 터치에 흠칫 놀란 두영이 목덜미를 손으로 덮고 문짝에 납작 들러붙었다. 그 격한 반응에 홍승표가 두 눈을 깜빡거리다가 나른하게 웃었다. 그러곤 손에 쥔 머리카락 한 올을 하늘하늘 흔들었다.
“이거, 떼 주느라.”
두영은 방어막처럼 끌어안은 과자 보따리를 손톱으로 헤집었다. 지레 겁먹은 스스로가 쪽팔렸다. 그때였다. 홍승표가 다시금 손을 뻗어 두영을 껴안듯이 팔을 둘렀다. 두영은 바짝 긴장했지만 전처럼 놀라지 않았다.
숨결이 스칠 만큼 가까워진 홍승표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상태로 정교한 입술을 벌렸다.
“문, 내년에 열래?”
그리고 문을 냅다 열어젖혔다. 문에 기대고 있던 두영이 뒤로 나자빠질 뻔하자 홍승표가 단단한 팔로 중심을 잡아 주었다. 두영은 야밤에 체력 단련하는 고양이처럼 잽싸게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익숙한 자신의 자리에 앉으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다 자괴감이 밀물처럼 밀려와 샤프로 허벅지를 찔렀다. 아무래도 홍승표는 병 주고 약 주는 게 버릇인 듯했다. 그와 말하기 싫은데 자꾸 마주치게 됐다.
저들이 주는 친절에 속으면 안 됐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는 건 자신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수업이 시작됐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주어진 자습 시간이라 교실은 어느 때보다도 조용했다.
고즈넉함에 까무룩 잠이 든 두영은 주변 소음에 잠에서 깼다. 눈을 벅벅 문지르며 내적 기지개를 켰다. 시간을 보자 어느새 마지막 수업이 끝나기 5분 전이었다.
풍채가 요란한 담임이 칠판에 줄지은 사각형을 그리며 말했다.
“오늘 종례 기니깐 얼른 바꿔라.”
자리 바꾸기가 시작됐다. 두영은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책상을 옮겼다. 어차피 곧 있으면 수능이고 겨울 방학인데 왜 이제 와서 자리를 바꾸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하필 자리도 이주학에게 빼앗기기 좋은 창가 맨 뒷자리였다.
어느 정도 정리된 교실을 보자 자리 배치에 의문이 풀렸다. 자습에 방해되는 아이들을 멀리 떨어뜨리거나 격리한 것이었다. 두영은 모범생도 아니고 양아치도 아닌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한 것인지 가방을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아무래도 귀찮은 존재이니까 후자가 아닐까 싶었다.
아직 자리 이동이 한창인데 성격 급한 담임이 종례를 시작했다. 가방을 챙겨 메던 두영은 갑자기 제 몸을 감싸는 숲 향기에 기름칠하지 않은 목각 인형처럼 뻣뻣하게 고개를 들었다.
새로운 자리의 새 짝꿍은 홍승표였다. 의자에 앉은 그는 시선을 지그시 겹치며 입술을 유연하게 끌어 올렸다. 그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밤하늘의 유일한 별 하나 같았다.
“안녕? 짝꿍.”
졸린 목소리로 하는 작위적인 인사에 두영은 차마 아무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홍승표는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의자에 해파리처럼 늘어졌다. 그러고는 긴 다리로 앞자리 의자를 툭툭 건드렸다.
의자의 주인이 불편함을 티 내지도 못하는 모습에 두영은 괜히 입 안이 텁텁했다. 곁눈으로 바라본 홍승표의 얼굴은 무덤덤했다. 아무도 자기에게 싫은 소리 못 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안하무인의 태도였다.
종례가 끝날 무렵, 담임이 뒤로 밀려난 빈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책상 누구 거야?”
“이주학이랑 김진호요”
“이 새끼들 또 학교 쨌지.”
이주학은 엉덩이가 가벼워 한곳에 오래 있지 못했다. 김진호는 이주학보다 덜했지만, 정확히 그 말대로 4교시만 채우고 학교를 떠났다. 두영은 제 허벅다리에 있는 과자 보따리를 씁쓸하게 내려다봤다. 기껏 다른 건물에 있는 교무실에 다녀온 게 의미 없어졌다.
“네가 먹어.”
조용히 있던 홍승표가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 혀로 건조한 입술을 축인 두영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내 거 아니야…….”
“네가 사 온 거 아니야?”
“내 돈이… 아니야.”
“알 게 뭐야. 그냥 먹어.”
남의 일이니까, 입장이 다르니까 저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거다.
두영은 강경하게 고개를 내젓고 앞을 보았다. 그러다 옆자리가 너무 조용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외눈으로 힐끔 쳐다봤다. 휴대폰을 하던 홍승표는 두영을 보지 않은 채 “뭐.”라고 무심하게 대꾸했다.
옆통수에도 눈이 달렸나? 두영은 다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가방을 챙겨 멨다. 그러다 기다란 가방끈으로 홍승표의 어깨를 후려치고 말았다.
“미, 미안.”
절박한 사과에 홍승표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고는 가방끈을 움켜쥔 두영의 손을 물끄러미 보기 시작했다. 뒤늦게 그의 시선을 의식한 두영은 밴드를 덕지덕지 붙인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새벽에 유리 파편을 치우느라 생긴 상처였다.
종례가 끝나자 그는 귀에 이어폰을 꽂더니 미련 없이 교실을 나섰다. 두영이 처음 경험하는 싱거운 반응이었다. 저 혼자만 폭풍 같은 시간을 견딘 두영은 미숙한 제 반응이 홍승표의 눈에는 얼마나 후지게 보였을지 상상했다. 그런 상상을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두 번 죽이는 일이었다.
마침 창문 옆자리였다. 쪽팔리면 뛰어내리라는 하늘의 계시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