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 온기의 형태 (7/20)

7. 온기의 형태

“들어가.”

홍승표가 현관문을 열고 말했다. 두영은 군말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중간하게 신발장 앞에 서 있으니 홍승표가 욕실 안으로 두영을 밀어 넣었다.

그런데도 두영이 어색한 이방인처럼 서 있기만 하자 홍승표는 팔을 걷어붙이고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따뜻한 수증기가 욕실 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뭉그적거리는 두영을 샤워부스에 세우고 양 팔뚝을 감싸 쥐었다. 그러고는 눈을 지그시 맞춘 채 물었다.

“그 새끼들이 주는 약 먹었어?”

두영은 그 방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입에 뭔가 들어오긴 했지만, 그게 약이었는지 그가 방금 한 말을 통해 알았다. 홍승표는 머뭇거리는 두영의 입술에 집중했다. 한참 만에 나온 대답은 부정이었다.

“확실해? 술은? 물도 안 먹었어?”

“…응.”

술잔이 입에 들이밀어졌지만, 손으로 쳐 냈다. 약이 입에 들어왔지만, 곧바로 뱉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아무것도 안 먹을 수 있었다. 그 대신 뜨거운 매질이 날아왔다.

집요한 확인을 마친 홍승표는 별안간 두영이 입은 코트를 벗기려 했다. 두영이 냉큼 거리를 벌려 멀어졌지만, 눈썹을 삐딱하게 세운 홍승표가 벌어진 거리만큼 다가와 다시 코트를 잡아챘다. 두영은 코트 깃이 안 벌어지게 안쪽에서 붙잡았다.

“힘 풀어.”

“내가… 혼자 할게.”

홍승표는 미덥지 않은 표정으로 두영을 내려다봤다. 흘러가는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불어 터진 얼굴을 보고 있자니 몰아붙이고 싶은 의욕이 사라졌다.

그는 두영을 욕실에 홀로 나누고 옷방에 들어갔다. 옷과 수건을 꺼낸 뒤 포장을 뜯지 않은 드로즈를 꺼냈다. 그러다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있는 속옷을 발견했다. 두영이 신데렐라처럼 벗어 두고 간 팬티였다.

홍승표는 흰색 팬티를 손에 펼치고 물끄러미 보았다. 어쩐지 돌려주기 아까웠다. 그는 두영의 팬티를 곱게 개서 다시 서랍 한편에 넣어 두고 옷방에서 나왔다. 욕실 문 앞에 옷더미를 내려놓고 닫힌 문을 조용히 주시했다. 소심한 허두영이 혼자서 잘 씻고 있을지 당장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고민은 짧았다. 옷을 훌렁훌렁 벗은 홍승표는 욕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던 두영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불청객을 응시했다. 홍승표는 태연하게 몸을 적시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 그의 등장으로 욕조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두영은 무릎을 세워 감싸 안았다. 맞은 편에 홍승표가 있지만, 뿌연 김 때문에 적당히 은신할 수 있어 마냥 불편하지 않았다.

천장에 고인 물방울이 수면 위로 떨어졌다.

뚝, 뚝, 뚝.

네 번째 물의 파동이 퍼지는 순간, 욕조 물이 크게 출렁거렸다. 두영은 고개를 들었다. 홍승표가 물을 가르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두영이 깜짝 놀라기도 전에 잽싸게 팔뚝을 잡아채고 다리 사이로 끌어당겼다. 두영이 꾸물거리며 벗어나려고 하자 단단한 팔로 가는 허리를 감쌌다.

뼈가 앙상한 몸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홍승표는 둥글게 만 손바닥 안쪽에 물을 담아 작은 머리통에 흘려보냈다. 물이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긴장을 느슨하게 했다. 그의 반복적인 행동에 두영의 비죽 솟은 어깨가 점차 내려갔다.

그는 두영의 머리를 섬세하게 감겼다. 적당한 악력으로 두피를 마사지해 주며 두영이 내는 고롱고롱 소리에 귀 기울였다. 우연인 척 얇은 귓바퀴를 건드리고, 뾰족 솟은 직각 어깨를 쓸었다. 튀어나온 목뼈를 엄지로 살살 어루만지자 그제야 두영이 그의 불순함을 감지하고 슬금슬금 벗어나려 했다.

나른한 미소를 지은 홍승표는 두영을 원래 자리로 당겨 오며 샤워기 수압을 약하게 틀었다.

“눈 감아.”

두영의 머리 거품을 헹군 홍승표는 불편하게 앉아 있는 두영을 제 가슴팍에 기대게 했다. 긴장을 풀지 않는 두영의 팔뚝을 느릿느릿 쓸거나 부드럽게 주물렀다. 인내심 있는 손길에 두영은 서서히 긴장을 풀고 완전히 등을 기댔다.

홍승표는 두영의 뒤통수에 코를 묻었다. 몸이 늘어질 만큼 편안한 향이 맡아졌다. 햇볕에 바싹 건조한 이불, 일광욕을 즐기는 고양이, 죄다 이런 이미지만 떠오르는 체취였다.

한참을 따뜻한 물에서 몸을 녹인 두영은 홍승표가 이끄는 대로 샤워부스 안쪽에 들어갔다. 스펀지에 거품을 낸 그는 두영의 몸을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닦아 주기 시작했다. 두영은 어쩐지 사타구니 주변부를 박박 문지르는 홍승표 때문에 슬슬 민망해졌다. 살갗이 약간 따가울 정도였다.

“벽 보고 서.”

순순히 뒤돌아선 두영은 다리가 후들거려 벽에 손을 짚고 섰다. 몸을 낮춘 홍승표가 두영의 발뒤꿈치와 아킬레스건, 오목한 무릎 뒤편과 허벅지에 거품 칠했다.

포슬거리는 거품이 회음부에 스치자 두영은 당황했다. 냉큼 몸을 돌리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반사적으로 그의 어깨를 잡고 중심을 잡았다. 그 과정에서 두영의 성기가 그의 턱에 스쳤다.

“미, 미안.”

홍승표는 두영을 힐끗 올려다볼 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몸을 세운 그는 거품 묻은 손으로 두영의 입술을 거칠게 문질렀다. 두영은 입 안으로 거품이 들어와 고개를 내저었지만, 홍승표가 두영의 뒤통수를 한 손으로 감싸 쥐고 못 움직이게 고정했다.

거칠고 꼼꼼했던 세안이 끝나자 이번에는 그가 손끝에 치약을 묻히고 두영을 빤히 보았다.

“아 해.”

“…….”

두영은 홍승표가 뭘 하려는지 눈치채고 소심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유분 칫솔이 없어서 그런 거라면 그냥 집에 보내 줘도 되는데…….

“어서 아, 해.”

입술을 오물거리던 두영은 천천히 입을 벌렸다. 그의 커다란 두 손이 제 턱을 감싸자 조금 불안해졌다. 그가 조금만 힘을 주면 제 머리통은 수박처럼 터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걱정한 것과 달리 홍승표의 손길은 섬세하고 또 섬세했다. 두영은 입천장과 어금니가 간지러워 발가락을 꼬물거렸다.

그가 가끔 장난을 치듯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볼살을 밀었다. 그러다 이마에 진득한 시선이 달라붙는데, 그게 꼭 자신의 상태를 살피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해졌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두영은 내리뜬 시선을 슬쩍 올렸다. 한쪽으로 비스듬히 올라간 홍승표의 입술이 보였다. 호두알 같은 목울대가 갈증을 달래는 듯이 들썩였다.

어쩐지 예전과 다른 그의 분위기가 낯설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 건지도 몰랐다. 그래서 심장이 날뛰는 거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양치질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가 방금까지 닦아 주던 사타구니처럼.

큰 수건을 어깨에 걸친 두영은 거실 한복판에 서서 넓은 집을 멍하니 둘러봤다. 여전히 이 집은 불을 켜지 않아 어두웠다. 전등이 나가서 안 켜는 걸까? 확인하고 싶었지만 홍승표의 집에서 멋대로 행동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어두운 곳에 혼자 있으려니 느슨했던 신경이 팽팽하게 잡아당겨지는 듯했다. 그때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홍승표가 씻는 소리였다. 적막함이 깨지자 두영을 짓누르던 공포도 사라졌다.

홍승표는 두영이 씻는 내내 픽픽 쓰러지자 먼저 밖에 내보내고 뒤늦게 샤워를 시작했다. 빠르게 씻고 나온 그는 문 앞에 있는 옷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홍승표는 수건 한 장만 걸친 채 덩그러니 서 있는 두영을 발견하고 혀를 찼다. 지금까지 저러고 있는 이유야 뻔했다. 남 눈치 많이 보는 성격 탓에 멋대로 행동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두영에게 다가갔다. 무작정 수건을 빼앗으려 하자 두영이 크게 움찔거리며 그의 턱을 정수리로 가격해 버렸다. 혀를 깨문 홍승표는 고뇌에 빠진 표정을 하고 손으로 입을 감쌌다.

당황한 두영이 허공에 손을 꼼지락대며 하늘이 무너진 듯한 낯빛을 했다. 홍승표는 제 얼굴에 닿을락 말락 하는 두영의 손을 감싸고 옷을 쥐여 주었다.

“이거 입고 있어.”

얼결에 두툼한 옷을 끌어안은 두영은 당황한 표정을 갈무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홍승표는 두영의 행동 하나하나를 신기한 표정으로 관찰하면서 소파를 가리켰다.

“옷 입었으면 저기 앉아서 기다려.”

이렇게 말해 주지 않으면 허두영은 부실한 다리로 서서 자신을 기다릴 것이다. 홍승표는 계획에도 없이 처맞은 아래턱을 쓰다듬으며 옷방에 들어갔다.

혼자 남은 두영은 주먹으로 제 머리를 때렸다. 제법 큰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스스로가 너무 못나서 용서가 되지 않았다.

적당히 땅굴을 파고 올라온 두영은 홍승표가 준 옷을 입고 소파에 가서 앉았다. 팬티가 약간 헐렁하여 음경을 잘 잡아 주지 못했지만, 기모가 붙은 옷감이 부드러워서 자기혐오로 불타던 기분이 조금 말랑해졌다.

금세 옷을 입고 나온 홍승표가 덜 마른 머리를 손으로 털며 부엌으로 향했다. 안쪽에서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에 두영은 주섬주섬 일어났다.

“됐어, 앉아 있어.”

거실로 나온 홍승표가 두영을 도로 앉히고 머그잔을 내밀었다. 두영이 받지 않고 멍하니 보고만 있자 홍승표가 어서 받으라는 듯이 입으로 똑, 소리를 냈다.

두영은 조심스럽게 머그잔을 받았다. 그 안에 담긴 것은 따뜻하게 데운 흰 우유였다. 매일 배달만 했지 직접 마셔 보는 건 처음이었다.

“마셔.”

홍승표가 두영의 뺨을 손등으로 가볍게 쓸어 주면서 권했다. 방금까지 머그잔을 쥐고 있던 손이라 무척 뜨거웠다. 뜨거운 걸 잘 먹지 못하는 두영은 입술만 살짝 적셨다. 너무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따뜻함이었다.

홍승표는 우유를 홀짝이는 두영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다용도실에서 구급 상자를 가져왔다. 맨바닥에 철퍼덕 앉아 두영의 발목을 잡아 들고 분홍색 발바닥을 유심히 훑었다. 맨발인 상태에서 끌고 다녔더니 작은 상처가 자잘하게 남았다.

그는 손가락에 연고를 짜서 상처 위에 조심스럽게 발랐다. 지점토를 오밀조밀 빚어 만든 듯한 발가락이 간지러운 모양인지 안쪽으로 굽었다. 자칫 힘을 주면 뭉개질 것 같아 홍승표는 괜스레 손에 힘을 뺐다.

그의 머리카락에 맺힌 물방울이 두영의 발등 위로 떨어졌다. 작은 감촉도 예민하게 느껴질 만큼 분위기는 날 선 상태였다. 머그잔을 조몰락대던 두영의 목소리가 적막을 파고들었다.

“고마, 워…….”

호흡이 섞인 목소리에 홍승표는 귀가 간지러웠다. 잡아 둘 수 없어 그만큼 안타까웠다. 느지막이 시선을 들어 올린 홍승표가 대뜸 말했다.

“피곤해.”

“어……? 아, 잘 자…….”

홀연히 위층으로 올라가는 홍승표의 뒷모습을 두영은 씁쓸하게 바라보다가 이만 집에 갈 채비를 했다. 머그잔을 개수대에 올려 두고 부엌에서 나오는데 계단 중간에 우뚝 멈춰 선 홍승표를 발견하고 두영도 덩달아 멈칫했다.

홍승표가 서늘한 얼굴로 계단을 마저 내려오며 물었다.

“어디 가?”

어딘가 눅눅한 목소리는 비 내리는 밤바다 같았다. 갑자기 달라진 그의 분위기에 두영은 머뭇머뭇 대답했다.

“…지, 집에.”

“이 시간에? 그 차림으로? 신발도 없잖아.”

어쩐지 취조당하는 기분에 두영은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든 있지도 않은 죄를 찾아 인정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그러다 두영은 홍승표의 손에 들린 베개와 이불을 발견했다. 그제야 그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알아챘다.

“아, 그… 나는 집에 가서 자도 되는데…….”

“왜?”

“왜긴…….”

“그니까 왜?”

점점 숨통을 조여 오는 듯한 말투에 두영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그 순간 홍승표가 바짝 다가오더니 두영을 짐짝처럼 어깨로 들춰 맸다. 바닥이 한순간에 까마득해지자 두영은 꼼짝도 할 수도 없었다. 조금만 반항하면 홍승표가 자신을 내던질까 봐 얌전히 있어야 했다.

그에게 들려 옮겨진 곳은 다시 소파였다. 홍승표는 이불로 보쌈한 두영을 죽부인처럼 껴안고 누웠다. 두영은 눈앞에 펼쳐진 그의 널따란 가슴팍에 눈을 마구 깜빡였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로의 몸이 너무 맞닿아 있는 것 같아 두영은 엉덩이를 뒤로 뺐다. 홍승표는 눈을 감은 상태로 두영을 품에 욱여넣었다. 좀 전보다 빈틈없이 달라붙은 상태가 되자 두영은 소름이 두피까지 타고 올라왔다.

다시 기회를 엿보던 두영은 한쪽 눈만 뜨고 있는 홍승표와 눈이 마주쳤다.

“허튼짓하지 말고 자라.”

그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뜨거운 숨결이 두영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홍승표는 두영이 꼼지락거릴 때마다 두영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두영은 숨쉬기 버거울 때쯤 그의 패턴을 눈치채고 가만히 안겨 있었다.

내쉰 숨이 그의 가슴에 부딪혀, 묵직한 체취를 담아 돌아왔다. 따뜻한 그의 품은 온돌방 같았고, 베고 누운 두툼한 팔은 적당히 단단하고 탄력 있었다. 점점 눈꺼풀에 힘이 풀리고 사지육신이 늘어졌다.

홍승표는 두영이 고른 숨을 쉬는 걸 확인하고 눈을 떴다. 시트를 귀 언저리까지 덮어 주고, 최대한 안정감이 느껴지도록 작은 등을 토닥였다.

타인의 손길로 엉망이 된 허두영을 제 손으로 샅샅이 씻겼다. 씻기면서 확인한 구멍은 그 새끼들의 손이 타지 않았으나 입이 헐어 있었다.

아래 깔린 녀석을 발견한 직후 눈앞에 섬광탄이 터진 듯 기억이 날아갔다. 정신을 차렸을 땐 팔다리가 부러진 개새끼들이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였다. 중구난방으로 뻗은 분노는 허두영에게도 향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모질게 다그쳤다.

허두영이 어떤 이유로 그곳에 간 건지 얼추 감은 잡혔다.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는 녀석이라면 돈 말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허두영이 아무것도 모른 채 스스로 매음굴에 들어갔어도 절반은 녀석의 탓이었다. 특히 이런 얼굴로 생겼다면 말이다.

그때 그의 품에 파묻힌 두영이 작게 앓았다. 홍승표는 저도 모르게 힘주어 안고 있던 두영을 살짝 놔주었다. 그러자 두영이 사라진 온기를 찾아 스스로 안겨 왔다.

멈칫한 홍승표는 두영의 작은 뒤통수를 조심스럽게 손으로 감쌌다. 그러곤 가는 허벅지 사이에 제 허벅지를 끼워 넣고 최대한 밀착했다.

곧 죽어 갈 것처럼 오들오들 떨던 녀석이 제 품에서 편하게 숨을 쉬었다. 자신이 선사한 온기를 받아먹고, 부모의 손을 놓친 아이처럼 애절하게 따라붙었다. 생소한 감각에 단전이 조여 왔다. 한 번만 느끼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감각이었다.

밤바다를 뒤집을 듯한 새까만 하늘이 굵직한 비를 쏟아 냈다. 그는 일정하게 들려오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으며 눈을 감았다. 어쩌면 오늘 밤이 내일을 가져다줄 것 같았다.

***

두영은 옆구리가 허전해 잠에서 깼다. 막상 눈을 떴지만 무엇 때문에 허전한지 알 수 없었다. 소파는 구름처럼 푹신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소파와 한 몸이 될 것 같아 발딱 일어났으나, 아찔한 현기증에 다시 주저앉았다.

두영은 정면에 있는 티브이를 멍하니 보며 피가 돌기를 기다렸다. 까만 화면에 비친 제 모습이 낯설어 고개를 돌렸다. 높은 파노라마 창문은 하늘의 정수리까지 담아냈다. 날씨가 맑으면 좋으련만,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비만 토해 내고 있었다.

현기증을 가라앉힌 두영은 사용한 이불을 각 잡아 접으면서 집 안을 구석구석을 살폈다. 몇 시인지 알고 싶은데 집에 시계가 없는 듯했다. 해라도 떠 있으면 대충이라도 알 텐데 말이다.

내다 꽂히는 물줄기를 계속 보고 있자니 목이 말랐다. 일단 부엌에 들어왔지만, 허락 없이 물을 마셔도 될지 걱정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꿈치를 들고 이 방 저 방을 쑤시고 돌아다녔다. 아무래도 홍승표는 외출을 한 모양이었다.

먹은 것도 없이 움직였더니 기운이 쭉쭉 빠지고 갈증도 심해졌다. 두영은 컵에 수돗물을 받아 꿀꺽꿀꺽 넘겼다. 목이 많이 탔는지 쉬지도 않고 넘어갔다. 마지막 딱 한 모금이 남은 순간, 현관문 도어록이 작동하는 소리에 두영은 그만 컵을 놓쳐 버렸다.

“컥!”

기도로 들어간 물이 코로 역류했다. 미치게 고통스러웠지만, 처참하게 깨진 유리잔의 모습에 아파할 새가 없었다. 냉큼 쭈그려 앉은 두영이 무식하게 맨손으로 유리 조각을 쓸어 모으기 시작했다. 코 안쪽을 손톱으로 긁어내는 듯한 통증이 잇따랐다. 저절로 생리적인 눈물이 맺혔다.

그때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두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홍승표가 무표정으로 두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영은 허둥지둥 변명을 늘어놨다.

“모, 목이 말라서 물만 마시려고 했는데, 갑자기 문 여는 소리가 들려서… 아! 근데 네가 너희 집 문 연 걸로 뭐라고 한 게 아니야! 지, 진짜 아니야…….”

갈수록 기어들어 간 목소리는 “미안해…….” 하며 마무리를 지었다. 두영은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잽싸게 손을 움직였다. 그때였다. 겨드랑이 밑으로 홍승표의 손이 들어와 두영을 달랑 들어 올렸다.

“으읏!”

“움직이지 마. 내던지기 전에.”

입을 앙다문 두영은 간지럼을 참았다. 홍승표는 두영을 홈바에 앉히고 손바닥을 살폈다. 중구난방으로 베인 상처 주변에 피가 낭자했다. 다행히 유리 조각이 박히거나 하지 않았다.

홍승표는 두영의 무모한 행동에 삽시간에 정색하며 두영을 은은하게 노려보았다.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한 두영은 허공의 먼지 개수를 헤아렸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오늘따라 먼지가 잘 보이지 않았다. 계획을 바꿔 바닥 무늬를 섬세하게 관찰하는데 불현듯 홍승표가 피식 웃었다.

그는 구급상자를 홈바 위에 펼치고, 어제 두영의 발바닥에 발라 줬던 연고를 오늘은 손바닥에 발라 주었다. 아픈 건지, 간지러운 건지 두영이 연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입술을 말랑하게 치올린 홍승표는 일부러 느긋하게 연고를 펴 발랐다.

손에 붕대를 감은 두영은 유리 파편을 치우는 홍승표를 멍하니 구경했다. 한곳에 유리를 쓸어 담은 그는 손을 탈탈 떨며 허리를 폈다. 그러다 불쑥 두영을 바라보았다. 터벅터벅 걸어가 거리를 좁힌 그는 두영의 턱을 잡고 시선을 맞췄다.

“울었어?”

두영의 붉어진 눈가를 엄지로 쓸어 주며 물었다. 두영은 눈을 끔뻑거리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코에, 물이 들어가서…….”

어물쩍 대답하자 홍승표의 입술이 매끄럽게 휘었다. 비웃음이 아닌 순수하게 즐거워서 짓는 미소였다. 그것만으로 두영은 자신이 조금 전에 저지른 짓이 한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홍승표의 얼굴이 너무 가까운 것 같아 두영은 돌연 고개를 숙였다. 아쉬운 듯이 입을 달싹거린 홍승표가 머리를 시원하게 쓸어 넘기고 원형 스툴에 걸터앉았다.

서로 앉아 있는 위치가 달라 눈높이 차이가 심했다. 안절부절못하던 두영은 허술한 동작으로 홈바에서 내려오다가 홍승표의 허벅지에 앉고 말았다. 홍승표는 능청스럽게 두영의 허리를 끌어안고 말했다.

“여기 앉게? 뭐, 나는 괜찮아.”

“…안 앉아.”

두영이 쭈뼛대며 일어나자 홍승표는 두영의 뒷덜미를 잡고 제 옆에 끌어다 앉혔다. 밖에서 사 온 도시락을 홈바 위에 세팅하자 두영이 슬쩍 관심을 주었다.

“아침에 연 식당은 여기밖에 없었어. 입에 안 맞으면 억지로 먹지 말고 남겨도 돼. 다 먹으면 좋겠지만.”

홍승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부담감이 백만 배 차오른 두영은 젓가락을 야무지게 쥐고 반찬을 둘러보았다. 한식 도시락은 가짓수가 풍부했다. 된장찌개조차 애호박이나 다슬기 같은 재료가 가득 들어 있어 찌개만으로 한 공기를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두영은 젓가락을 조몰락거렸다. 옆에서 홍승표가 밥을 먹지도 않고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어 난감했다.

“왜 안 먹어? 별로야?

“아, 아니.”

“그럼? 아아, 알겠다.”

홍승표는 대뜸 피식 웃더니 떡갈비 한 점을 먹기 좋게 조각낸 다음 두영의 입술에 들이댔다.

“아 해.”

“…내가 먹을게.”

“하도 안 먹길래 먹여 달라는 줄 알았지.”

그렇게 말한 홍승표는 눈을 빛내면서 떡갈비를 치우지 않았다. 두영은 자칫하면 홍승표 면전에 대고 한숨을 뱉을 것 같아, 얼른 떡갈비를 받아먹고 한숨과 함께 꿀떡 삼켰다.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것이 내심 취향이라 기분이 몰랑해졌다.

눈웃음을 지은 홍승표가 떡갈비를 먹여 준 젓가락을 입에 물고 말했다.

“잘했어.”

두영은 떨떠름한 기분으로 제 턱을 손등으로 쓸었다. 밥만 잘 받아먹어도 칭찬을 듣다니……. 말 잘 듣는 개가 된 기분이라 조금 묘했다.

홍승표가 두영의 귓바퀴를 툭 건드렸다.

“이제 먹어.”

“응.”

어쩐지 어제부터 홍승표가 자꾸 자신을 만지려고 했다. 그전에도 꾸준히 그랬지만, 뭐랄까 좀 더 집요해지고, 좀 더 신중해진 느낌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홍승표다. 그의 변덕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싫증 나면 버려지는 장난감 취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일은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았다. 이 년 전 봄으로 충분했다.

공간이 불편해서 밥알이 시원찮게 넘어갔다. 두영은 조림 당근을 젓가락으로 콕 찍어 입에 넣었다. 먼저 도시락을 비운 홍승표가 돌연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편식을 고쳤나?”

“어?”

“당근 말이야.”

두영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잠시 생각했다가 지난번 급식실에서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저도 모르게 주둥이를 내민 두영은 애꿎은 밥을 젓가락으로 푹푹 찔렀다.

‘자기는 시금치 안 먹으면서…….’

아쉽게 도시락에는 시금치가 없어 증명할 길이 없었다.

먹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자 홍승표가 두영의 도시락을 빼앗았다.

“배부르면 그만 먹어, 억지로 먹지 말고.”

두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사실 아까부터 배가 불러 왔는데 그의 눈치가 보여 꾸역꾸역 먹던 중이었다. 홈바를 정리하기 시작한 홍승표를 따라 두영도 주섬주섬 일어나 손을 보탰다. 그러나 손발에 붕대와 밴드를 칭칭 감아 놓은 상태라 안 도와주느니만 못했다.

두영의 뚝딱거리는 행동에 홍승표가 조용히 웃으며 거실 소파를 가리켰다. 두영은 쭈뼛거리며 부엌에서 나왔다. 소파를 향해 절뚝절뚝 걸어가는데 그 짧은 거리에도 바지가 자꾸 흘러내려 몇 번이나 추어올려야 했다.

소파 끄트머리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은 두영은 티브이에 제 모습이 비치자 옆으로 꼼질꼼질 움직여 이동했다.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창문 너머에 시선을 멀리멀리 던졌다. 빗줄기는 아침보다 조금 가늘어졌으나 단지 그뿐이었다. 비를 맞으며 집에 갈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불현듯 뭔가가 떠오를락 말락 했다.

아, 내 신발. 더불어 옷과 가방까지 모두 그곳에 두고 왔다. 갑자기 머리가 뻐근했다. 뇌가 제멋대로 어제의 일을 수면 위로 꺼냈다. 그 남자들은 살아 있을까? 얼핏 본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관절이 엉망으로 뒤틀린 상태였다.

두영은 창문에 고정한 시선을 홍승표에게 옮겼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나른하고 태연한 모습이었다. 마치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처럼.

정리를 마친 홍승표가 한 손에 머그잔을 들고 나오며 물었다.

“오늘은 파트라슈 명찰 안 달아?”

눈을 끔뻑거린 두영이 되물었다.

“파트… 라슈?”

“우유 배달 말야.”

홍승표는 두영에게 머그잔을 건네고 그 옆에 팔뚝이 스칠 정도로 붙어 앉았다. 김이 피어나는 컵보다 맞닿은 그의 체온이 더 뜨거웠다. 두영은 컵을 조몰락거리며 머쓱하게 대답했다.

“올해부터 토요일은 안 해.”

“카페는?”

“안 가.”

“그럼 비 그칠 때까지 나랑 있으면 되겠다.”

두영은 급하게 할 일이 없는지 생각했다. 하필 이번 주말은 단기 알바를 구해 놓지 않은 상태였다. 난감한 표정으로 우유를 홀짝거린 두영은 혀에 감기는 단맛에 눈을 살짝 크게 떴다. 홍승표가 우유에 꿀을 탄 모양이었다. 어쩐지 입에 착 달라붙었다.

“대답이 없으면 그런 줄 알게.”

저돌적인 홍승표의 태도에 두영은 할 말이 있는 듯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의 시선이 두영의 입가에 묻은 흰 자국에 닿았다.

“할 말 있으면 해.”

“그… 지갑이랑 옷을… 두고 왔어.”

“그래서?”

홍승표의 높낮이 없는 물음에 두영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어, 어떻게 가는지만 알려 주면…….”

“알려 주면 뭐, 다시 찾아가게?”

두영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느릿느릿 끄덕였다. 무표정하게 있던 홍승표가 갑자기 손으로 얼굴을 쓸며 헛웃음을 지었다. 단정한 손톱으로 진한 눈썹을 덧그리던 그는 서서히 미소를 거두고 서슬 퍼런 낯으로 두영을 응시했다.

“내가 이해를 못 해서 그러는데, 대체 거길 왜 돌아가려는 거야? 몇 푼 없는 지갑 때문에? 다 해진 신발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느른했지만, 말투가 딱딱했다.

“말 나온 김에, 어제 거긴 왜 간 거야? 거기가 어떤 곳인지 알고 따라간 거야? 거기는 자기 몸 지킬 줄 모르는 애들이 멍청이라고 생각하는 곳이야. 걔네 부모들은 금칠 바른 곳에 한 자리씩 꿰고 있는 인간들이고, 너 같은 애들이 억울하다고 하소연해 봤자 푼돈이나 쥐여 주고 끝난다고. 그것도 아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겠지. 근데 거길 다시 돌아가겠다고?”

“미치겠네……." 홍승표가 한숨처럼 덧붙였다.

두영은 할 말을 고르지 못하고 시선을 떨구었다. 밥을 먹으면서 나눈 편안함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눈이 급속도로 뜨거워지고 시야가 뭉개졌다.

“넌 수틀리면 우네.“

두영은 팔 아래로 눈가를 거칠게 문질렀다. 곧바로 홍승표가 두영의 손목을 잡고 끌어 내렸다. 그는 머그잔을 빼앗아 바닥에 내려놓고 두영의 양 손목을 수갑처럼 움켜잡았다.

“그거 알아? 너 우는 거 존나 꼴려. 그러니까 내 앞에서 자꾸 울지 마. 난 양심이 좆도 없으니까.”

두영은 눈을 치켜떴다. 홍승표가 한쪽 입술을 비릿하게 세웠다.

“그렇게 노려봐도 꼴리는 건 마찬가지야.”

커다란 눈망울에 맺힌 것이 뺨을 타고 떨어졌다. 홍승표는 눈물의 발자취를 따라 눈동자를 움직였다. 종착지는 단내를 머금은 입술이었다. 제 것을 빠듯하게 물던 입이었다. 앙증맞은 혀는 하루 종일 만지작거리고 싶을 만큼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입이 무슨 맛인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비대하게 커진 호기심은 충동을 키웠다. 홍승표는 반쯤 눈을 뜬 채 두영의 입술을 할짝였다. 달 줄 알았는데 짜고 축축 했다. 그러다 울고 있던 녀석을 떠올리고 이내 납득했다.

가벼운 호기심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웠다. 입술을 부드럽게 머금고 음미하다가 이로 약하게 깨물었다. 그에 두영이 화들짝 놀라며 홍승표를 밀치고 일어났다. 홍승표는 두영의 팔목을 잡고 강제로 소파 위에 눕혔다. 다시 입을 맞추려 하자 두영이 눈을 질끈 감고 살벌하게 떨고 있었다.

순식간에 흥이 식어 버린 그는 모든 동작을 멈추고 두영이 눈을 뜰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던 중 손끝에 얼음장 같은 손이 스쳤다.

“손이 항상 차가운 편이야? 몸도 좀 차가운 것 같은데…….”

그는 두영의 두 손을 한데 모아 따뜻한 숨결을 불어 넣었다. 그때 꼼지락대던 두영이 등을 보이고 엎어졌다. 눈을 가늘게 뜬 홍승표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가늠했다.

“뭐 해?”

“…….”

“뭐 하냐고?”

“이렇게… 해…….”

하찮게 더듬대는 말투는 모난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어쩐지 가슴이 쿡쿡 쑤시는 기분이었다. 머리칼을 쓸어 넘긴 홍승표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화가 났다. 허두영의 찌질하고 순종적인 모습 때문인지, 그렇게 만든 자신을 향한 짜증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마른 등을 녹진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기모가 달린 펑퍼짐하고도 두꺼운 옷을 입었음에도, 그 안에 마른 몸이 연신 드러났다. 홍승표는 손끝으로 두영의 목뼈를 어루만졌다. 그러곤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요추까지 쓰다듬었다. 녀석이 조금이라도 움찔거리면 비죽 올라간 어깨를 다정하게 토닥였다.

머리카락을 살짝 걷어 내자 뒷덜미에 점 하나가 나타났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본인은 영영 모를 위치였다. 실핏줄이 비치는 피부는 약하게만 빨아도 쉽게 자국이 남을 듯했다.

이번에도 호기심을 참지 못한 홍승표는 두영의 목덜미를 한입 가득 깨물었다. 어쩔 수 없었다. 저에게 허두영은 이성을 내버리고 본능대로 움직이게 하는 자극제이자 촉진제였다.

두영은 아프면서 소름이 끼치는 감각에, 홍승표 밑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쳤다. 홍승표는 두영을 다시 돌려 눕히고 시선을 겹쳤다.

“우으, 왜, 왜…….“

지레 겁먹은 두영이 팔로 얼굴을 감싸고 웅얼웅얼 말했다. 홍승표는 눈썹을 들썩이며 대꾸했다.

“왜긴, 나 아직 아무 짓도 안 했어.”

홍승표는 두영의 두 팔을 제 목에 두르고 몸을 낮췄다. 코앞까지 다가온 그의 얼굴은 나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아, 해 봐.”

불안하게 떨리던 두영의 눈동자가 홍승표의 살짝 젖어 있는 입술에 닿았다. 방금까지 제 목덜미를 핥으면서 생긴 침 자국이었다.

홍승표가 침을 삼킨다. 목울대가 들썩인다. 까만 눈동자가 제 얼굴을 꼼꼼히 훑는다. 살짝 벌어진 입술 틈에서 뜨거운 숨결이 나온다. 모두 절 향해 쏟아지는 그런 흔적이었다. 뭐 하나 불쾌하지 않은 게 없었지만, 그게 홍승표라면 어쩐지 괜찮았다.

두영은 꽉 다문 입술을 천천히 벌렸다. 홍승표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드럽게 파고들어 왔다. 홍승표의 숨결이 따뜻했던 이유는 그의 혓바닥이 뜨거워서였나 보다. 아니면 몸이 온돌 같아서일까? 그가 주는 건 뭐든지 따뜻했다. 코트도, 자동차도, 목욕물도, 잠자리도, 흰 우유도…….

입 안에 들어온 뜨거운 혀가 입천장을 가득 쓸자 두영은 당장 뱉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간지러움을 느꼈다. 홍승표가 얼굴을 비스듬히 기울여 입술을 보드랍게 포갰다. 짧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입맞춤이 반복되자 두영은 손을 어디 둬야 할지 몰라, 가슴팍 위에 기도하듯 깍지를 꼈다.

눈을 뜨고 있어야 할지, 감고 있어야 할지 고민됐다. 그러다 무심코 눈을 뜬 두영은 홍승표와 시선이 마주쳤다. 곧바로 눈을 감았지만, 한 번 그를 의식하자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혹여 이 소리가 홍승표에게 들릴까 봐 당장 제 심장을 부숴 버리고 싶었다.

“하아, 조금만 더…….”

홍승표가 애타는 목소리로 졸랐다. 그는 두영의 뒤통수를 한 손으로 감싸고 입술을 깊게 포갰다. 숨쉬기 버거울 만큼 녹진한 입맞춤이었다.

“흐아, 흐으…….”

두영은 숨이 차서 고개를 내저었다. 미련을 뚝뚝 흘리며 떨어진 홍승표가 두영의 인중에 입술을 비비며 아쉬움을 달랬다. 두영은 재차 도리질 쳤다. 혀가 입에 들어오는 것 이상으로 거북한 느낌이었다. 서러울 정도로 악질이었다.

그때 딱딱한 무언가가 두영의 배꼽 아래를 콕콕 찔렀다. 그것이 무엇인지 단숨에 알아차린 두영은 엉덩이를 뒤로 뺐지만, 곧바로 그 뒤로 들어온 손에 엉덩이가 붙잡혀 더 세게 비벼졌다.

배꼽을 파고들 것처럼 허리를 움직이는 홍승표의 눈빛이 탁하게 바뀌었다. 두영은 누가 붙잡지도 않는데 조형물처럼 굳어 다시 홍승표의 입맞춤을 받았다. 어느새 풋풋한 입맞춤은 사라지고 홍승표는 점점 난폭해졌다. 두영은 잠깐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혀뿌리가 뽑힐 때쯤 홍승표가 얼굴을 뒤로 물리고 축축해진 두영의 입술을 불만족스럽게 노려봤다.

“부족해.”

두영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홍승표는 두영의 손을 잡아떼려고 했지만, 두영이 팔에 힘을 주고 버텼다.

“왜 그러는데.”

눈썹 산을 세운 홍승표가 두영의 손을 억지로 떼어 냈다. 그렇게 보게 된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겨우겨우 할딱이는 상태에 홍승표는 한쪽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울어?”

두영은 얼굴을 거칠게 문지르며 설움의 흔적을 빠르게 지웠지만, 눈물이 다시 퐁퐁 맺히고 귓바퀴에 고였다.

“왜 우는데? 응?”

울고 있을 때 왜 우냐고 물어보는 건 반칙이다. 특히 저런 다정한 목소리로 말이다. 전에는 짜증 난다고 그만 울라고 했으면서 지금은 울리려고 작정한 사람같이 다정하게 굴었다.

그냥 예전처럼 등을 돌린 채 그의 욕구만 받아 내는 게 나았다. 이 날것의 감각이 너무나 벅찼다. 심장에 날카로운 통증을 가져다주었다. 맞아서 아픈 것보다 더한 고통이 일었는데, 눈에 보이는 상처가 없어 치료조차 불가능했다.

홍승표가 무서웠다. 이주학을 기어다니는 벌레 취급하는 그가, 눈 한 번 깜박하지 않고 손에 피를 묻히는 그가 꿈에서도 나올까 봐 두려웠다. 그렇지만 그는 몇 번이나 자신을 끔찍한 곳에서 구해 주었다. 손찌검 대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온기를 나눠 주었다.

두영은 새롭게 똬리 트는 감정이 두려웠다. 그것이 나중에 어떻게 변질할지 두려웠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있고 싶었다.

“이, 이렇게… 하, 지 말자…….”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그는 두영의 먹먹한 말을 끊어 내고 둥근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낮게 읊조렸다.

“원래 이렇게 해야 했어.”

두영은 심장의 색깔이 투명해질 정도로 눈물을 쏟아 냈다. 자신의 시궁창에 나타난 홍승표는 백일몽이었다. 언제 깨어나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그런 꿈.

거의 먹히는 것과 다름없는 키스였다. 홍승표는 벗어나려는 두영을 거대한 몸으로 제압하고 키스를 이어 갔다. 두영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미모사에 이슬이 맺힌 것 같았다.

맞닿았다 떨어지는 입술 사이에 긴 실타래가 이어졌다. 귓바퀴를 부드럽게 머금고 뾰족한 송곳니로 살짝살짝 깨물었다. 뾰족하게 세운 혀로 귓구멍을 쑤시자 두영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흐으… 하아…….”

두영은 오싹함에 소름이 연달아 돋아났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자극이라 머리를 세게 흔들자, 홍승표가 두영의 머리를 팔로 감싸 못 움직이게 했다.

그는 두영의 젖꼭지를 엄지로 쓸었다. 어깨를 밀치는 두영의 손목을 머리 위로 잡아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바지를 벗겼다. 납작한 가슴 중앙에 입술을 문지르며 천천히 내려갔다.

“아, 잠시, 만……!”

두영이 아연실색하며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홍승표를 밀쳤다. 그는 두영의 두 손목을 한 손으로 움켜잡고 말캉한 살덩어리를 입 안에서 사탕처럼 굴렸다.

침으로 무르녹은 성기를 뱉은 그가 두영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뺨에 성기를 문질렀다. 투명한 점액질이 그의 얼굴에 묻어 길게 늘어났다.

입술을 길게 당기며 웃은 그는 도톰한 회음부에 코를 묻고 들숨을 쉬었다. 짙은 체취에 이성이 날아갈 것 같았다. 입술로 옅은 살을 쓸다가 강하게 빨아올렸다. 그러곤 다시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불알을 입에 머금었다. 축 처진 성기는 손으로 훑고, 입으로 애무했음에도 여전히 말캉하기만 했다.

“쉽지가 않네.”

홍승표는 어려운 숙제를 맞이한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는 비실거리는 두영의 몸을 반으로 접어, 엉덩이를 얼굴 앞으로 가져왔다. 연한 산호색 구멍이 긴장했는지 벌름거렸다.

그는 눈 한 번 깜빡거리지 않고 그 움직임을 눈에 담다가 주름진 입구에 입을 맞췄다. 깜짝 놀란 두영이 다리를 버둥거리며 벗어나려고 용을 썼다.

홍승표는 두영의 오금을 몸통 쪽으로 짓누르고 수월하게 구멍을 핥았다. 혀 심지를 세워 주름 한 겹, 한 겹 빨다가 그 틈에 혀를 살짝 집어넣었다.

“아읏, 하지, 마……!”

두영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고 울먹였다. 홍승표는 혀를 밖으로 빼내고, 조금 단단해진 두영의 성기를 흔들었다. 그에 작은 불알이 그의 손에 반복적으로 으깨졌다.

귀두 밑동을 둥글게 말아 쥐고 빠르게 흔들자 두영이 입을 작게 벌리고 뻐끔거렸다. 작은 발가락이 굽어 들어가는 순간, 성기 끄트머리에서 우유 같은 분비물이 터졌다.

홍승표는 손에 묻은 정액의 농도를 눈에 담았다. 허두영이 쏘아 올린 양은 우스울 정도로 적었다. 매일같이 딸을 치는 게 아니라면 말도 안 되는 양이었다.

탈력감에 몸을 옹송그린 두영은 무심코 시선을 옮겼다가 홍승표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두영을 빤히 바라보며 손에 묻은 것을 핥았다.

경악으로 물드는 두영의 표정을 무시하고 계속 쩝쩝대며 핥았다. 우유 맛이 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기대했던 것과 달라 약간 허탈했지만, 그러면서도 자꾸 입맛을 다시게 됐다.

두영은 어딘가 맛이 간 것 같은 그의 눈빛에 손을 아래로 뻗어 구멍을 가렸다. 홍승표는 허술한 두영의 방어에 피식 웃음이 샜다.

“네가 쑤시려고?”

그가 살살 웃으며 말하자 구멍을 가린 손이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두영은 이것도 이상한 것 같아 다시 손으로 구멍을 가렸다. 게슴츠레 눈을 뜬 홍승표는 두영의 꼬물거리는 손짓을 보며 낮게 속삭였다.

“…일부러 그러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두영의 표정에 홍승표는 눈썹을 구겼다. 그는 두영의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고 다시 입술을 문댔다. 반대쪽 손으로는 구멍을 지분댔다. 손가락 하나를 빙글빙글 돌리며 구멍 안에 집어넣자 두영이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작게 앓았다.

“벌써 아픈 건 아니지? 내 거 잘만 받아먹었잖아.”

두영이 대답 없이 조용히 흐느끼자 홍승표는 두영의 턱을 잡고 시선을 맞췄다.

“뭐야… 정말 아픈 거야?”

눈을 깜빡인 그는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하고 작게 읊조렸다.

두영은 그게 아니었지만, 아무 설명을 덧붙이지 못했다. 지난날의 홍승표는 직접 입과 손을 써 가며 아래를 풀어 주지 않았다. 손가락은 몇 번 들어왔으나, 대충 휘젓고 바로 삽입을 할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들이 당혹스러웠다.

제 상태를 살피는 듯한 세심한 눈빛, 떨고 있는 몸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는 손길,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곧 깨 버릴 듯한 꿈같아 불현듯 불안해졌다.

홍승표는 구멍을 천천히 넓혔다. 겨우 두 개를 거뜬히 머금을 때쯤부터 안쪽 어딘가에 숨어 있을 스팟을 집중적으로 찾았다.

“흐으…….”

손끝이 어느 지점을 스치자 순간적으로 두영의 동공이 풀리고 야릇한 신음이 샜다. 홍승표는 두영의 울망울망한 눈을 뚫어지게 직시하며 방금 스쳤던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자, 잠깐, 아앗…….”

새된 목소리가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어느새 그의 손가락은 세 개가 되어 있었다. 홍승표는 두영의 몸이 난폭하게 흔들릴 정도로 손목을 털었다.

“아아, 으읏……!”

“여기야? 여기 좋아?“

멍청하게 입을 벌린 두영이 아으아으, 하고 울었다. 지독한 감각이다. 찔꺽찔꺽 물 먹은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아래가 짓물러 형태를 잃은 듯했다.

홍승표는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구부린 상태로 느릿느릿 빼냈다. 그 손으로 아까부터 한계치까지 발기한 제 성기를 잡고 오물거리는 구멍에 맞췄다.

“그만… 그만할래… 안 할래…….”

홍승표는 앞으로 기어가는 두영을 마주 보게 돌아 눕히고 오므린 다리를 벌렸다. 두영은 팔다리를 휘저으며 그를 밀어 냈다. 그러나 힘이 하나도 실려 있지 않아 그의 몸을 만지는 수준이었다.

두영의 몸 곳곳에 입을 맞춘 홍승표는 뭉툭한 성기 끝을 구멍에 맞췄다. 틈을 벌리고 천천히 진입하자 두영은 지난날에 그가 주었던 아픔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얼마나 아플지 상상하자 몸이 긴장으로 굳었다.

구멍에 귀두만 간신히 걸친 홍승표는 턱에 힘을 주고 심호흡했다. 벌써 빠듯하게 조여 오는 구멍에 성기가 끊어질 것 같았다.

그는 상체를 낮춰 두영의 입술을 빨았다. 좌우로 내젓는 얼굴을 끈질기게 따라가 혀를 집어넣고 다정히 위로했다. 그 누구에게도 해 주지 않았던 애무는 두영이 얌전히 받아 줄 때까지 이어졌다.

“쉬이… 힘 풀어.”

“흐읏, 그, 그만…….”

“더 기분 좋게 해 줄게.”

“이상해… 이상해…….”

“이상한 거 아냐. 후우… 힘 풀어.”

홍승표는 두영의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두영은 그가 하는 호흡을 따라 입을 달싹거렸다.

살살 풀린 구멍이 조금씩 공간을 내어 주자 홍승표는 단숨에 뿌리까지 처박았다. 눈을 홉뜬 두영이 안타깝게 울었다. 달달 떨리는 손등으로 입술을 틀어막자 홍승표가 두영의 손바닥에 입술을 묻었다.

두영은 지금 느껴지는 감각이 아픔인지 쾌감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을 아프게 하는 건 홍승표인데, 의지할 사람도 홍승표였다. 두영은 가까이 다가온 홍승표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를 끌어당겼다. 잠시 멈칫한 홍승표가 두영의 등과 뒤통수를 감쌌다.

“…예쁘게 굴어도 안 멈춰.”

호흡을 가다듬은 홍승표는 상의를 벗어젖히고 맨살이 닿는 면적을 넓혔다. 하체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뿌리 깊게 박힌 성기가 납작한 배를 약하게 두드렸다.

“여기 안쪽, 잔뜩 헤집고 싶어.”

“으읏… 으으…….”

“내 걸로 가득 채우고 싶어.”

바닥을 기는 목소리가 곧 있으면 폭발할 듯한 전초전을 암시하는 듯했다. 홍승표는 상체를 세우고 두영의 음부와 배를 한 번에 쓸었다. 배꼽 아래 볼록 튀어나온 형체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귀두 밑동까지 빼냈다가 뿌리까지 단번에 집어넣었다.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연속해서 쳐올리자, 두영이 입을 벌린 채 엉망으로 흔들렸다.

두영은 배가 뚫릴 것 같아 무서웠다. 내장 위치가 뒤죽박죽 섞이는 것 같았다.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 홍승표를 밀어 냈지만, 그는 조금도 밀려 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거세게 허리를 쳐올렸다.

“앗, 으응……!”

“하아, 씹.”

흥분으로 일그러진 그의 눈동자에 갑자기 이채가 돌았다. 홍승표는 작은 망설임도 없이 두영의 입술을 향해 돌진했다. 얼굴 각도를 이리저리 바꾸며 게걸스럽게 물고 빨았다. 두영이 밀어 내려고 하면 귀신같이 눈치채고 손목을 결박했다.

“흐앗… 아으… 응!”

“입술 좀 더, 벌려 봐. 어서…….”

홍승표는 고양잇과 맹수처럼 그르렁거렸다. 두툼한 혓바닥이 두영의 입천장을 긁고 목구멍 깊숙이 들어가 신물이 올라오게 했다.

굵직한 좆 기둥은 중간까지 나갔다가 뿌리까지 퍽퍽 박혀 왔다. 그러다 깊이 쑤셔 박은 상태로 허리를 뭉근하게 비볐다. 두영은 허리를 떨다 못해 경련했다. 예측되지 않는 날것의 감각이 두영의 멱살을 잡아 끌고 갔다.

맞물린 살에서 찌꺽찌꺽 물소리가 났다. 홍승표가 두영의 성기를 젖 짜듯이 조몰락거렸다. 흠칫 놀란 두영이 그의 손목을 잡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에 홍승표는 비릿하게 웃으며 통통한 성기를 요란하게 흔들었다.

“아윽! 싫, 흐……!”

두영은 앞뒤로 전해지는 자극에 결국 홍승표의 손에 사출하고 말았다. 홍승표는 추삽질을 멈추지 않고 두영을 절정으로 몰고 간 지점을 연신 강타했다. 두툼한 살 몽둥이로 쾅쾅 찍어 누르자 두영은 난폭한 주먹질을 아래로 받는 것 같았다.

“으윽… 그마… 그만!”

두영은 입을 벌린 채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입천장이 꾀인 물고기처럼 경련하자 홍승표가 두영의 두 다리를 어깨에 걸치고 퍽퍽 처박기 시작했다.

짧고 굵게 한 번씩 박아 대던 홍승표는 한순간 짙은 탄성을 내뱉었다. 누구 하나 죽일 듯이 노려보던 그의 눈빛이 흐릿하게 변했다. 굳게 다문 입술도 순박한 시골 소년처럼 벌어졌다.

예민한 감각에 울부짖던 두영은 어느새 홍승표의 풀어진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사정 직후의 그의 얼굴은 이번에 처음 봤다.

‘저랬구나. 저렇게 세상 노곤한 표정을 짓는구나.’

제 아래 연결된 그의 분신보다 지금 그가 짓는 저 표정이 백만 배는 야했다.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던 홍승표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러곤 두영의 앙상한 배 위로 정액을 로션처럼 펴 발랐다.

“안쪽이 경련해.”

두영은 배 안쪽에서 꺼떡거리는 움직임을 느꼈다. 사정 후에도 그의 성기는 수그러지지 않았다. 한 번 발기할 때마다 현기증이 올 것 같은 크기임에도 홍승표는 생생하기만 했다.

단지 얼굴을 마주한 정사로 바뀌었을 뿐인데, 일방이 아닌 쌍방이 느끼는 절정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모든 게 달라진 느낌이었다.

적나라한 그의 시선을 감당하기가 벅찼다. 두영은 홍승표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은근히 뒤로 기어갔다. 제 아래 걸쳐 있던 성기가 용수철처럼 퉁, 하고 빠져나와 그의 복근에 딱! 소리를 내며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강직도가 어마어마했다. 딱밤이 아니라 딱추였다.

홍승표는 두영의 경악한 표정을 보며 웃었다.

“그 표정 뭔데?”

융기된 성기를 위아래로 훑은 홍승표는 슬금슬금 거리를 두려는 두영의 발목을 잡아 주욱 끌고 왔다. 등을 눌러 납작 엎어지게 만들고 다시 살을 비집고 들어갔다. 소파에 얼굴을 파묻은 두영이 옹알옹알 울자 홍승표는 한쪽 눈썹을 치들었다.

“뭐라고? 똑바로 말해 못 알아듣겠어.”

너무 커. 너무 두꺼워. 너무 깊고 너무 아파. 그리고 이상해…….

그 무엇도 직접 소리 내서 말하지 못하고 두영은 질질 짜기만 했다. 한숨을 내뱉은 홍승표가 허리를 뭉근하게 돌리며 두영의 뒤통수에 코끝을 비볐다. 그러자 두영의 엉덩이가 저절로 봉긋 세워졌다. 입꼬리를 요사스럽게 올린 홍승표는 뽀얀 궁둥이를 한 손에 꽉 쥐어 손자국을 남겼다.

“힘 좀 풀어 봐, 자지 끊어지겠어.”

그의 남사스러운 단어 선택에 두영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어째 민망함은 홍승표가 아닌 제 몫이었다. 그는 두영의 반응을 빠르게 눈치채고 귓가에 음란한 말을 쏟아 냈다.

“네 엉덩잇살 사이에 있는 구멍이 얼마나 촉촉하고 쫀득한지 알아?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너도 손가락 집어넣어 봐. …아니다, 넣지 마. 넣으면 혼날 줄 알아.”

홍승표가 다시 황소처럼 들이박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빠진 두영은 끙끙 앓는 신음을 연신 뱉어 냈다. 그는 두영의 골반을 쥐고 엉덩이를 치켜들게 했다. 삽입이 원활해지자 홍승표의 허리 짓이 점점 난폭해져 갔다. 그러다 체중을 실어 퍽, 하고 박자 두영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단순히 아프기만 하면 이렇게 서럽지도 않았다. 근데 말 못 할 쾌감이, 배가 저릿저릿한 감각이 너무나 힘들었다. 게다가 이상한 신음이 자꾸 목구멍을 비집고 나와 왠지 더 서러워졌다.

결국 꾹 참던 두영은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허리 짓을 천천히 멈춘 홍승표가 두영을 마주 보는 자세로 돌려 눕혔다. 엉망으로 젖은 두영의 얼굴을 닦아 주며 지긋한 시선을 보냈다.

“아팠어?”

“…….”

“아니면, 서러워?”

그는 진중한 얼굴로 두영의 대답을 기다렸으나 두영은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도리어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내저었다. 거짓투성이 행동에 홍승표의 눈이 가늘게 접혔다.

“나도 말 안 해 주면 몰라. 네가 아픈지, 슬픈지, 좋은지.”

두영을 조용히 내려다보던 그는 허벅다리에 두영을 앉혔다. 내장을 가르고 깊숙이 들어온 성기에 두영은 식겁하며 도로 일어나려고 버둥댔다. 홍승표는 잔잔히 웃으며 두영을 지그시 아래로 눌렀다.

“아프면 네가 움직여.”

“그, 냥 이제… 그만하자…….”

“그건 안 되겠는데.”

“으아!”

그만하자고 했다가 두영은 배가 뚫릴 뻔했다. 홍승표는 조금 전 송곳 같은 삽입에 대해 용서를 구하듯 두영의 척추를 다정히 쓰다듬으며, 뾰족하게 솟은 젖꼭지를 입에 넣고 부드럽게 굴렸다.

참지 못한 충동에 앞니로 잘근잘근 깨물자 지레 겁을 먹은 두영이 홍승표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제법 포근한 품에 홍승표는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입에 흥건하게 침을 묻힌 상태로 고개를 비죽 들었다.

“움직여 보라니까.”

불안하게 눈알을 굴린 두영이 홍승표의 목에 두른 팔을 머뭇머뭇 풀며 말했다.

“그, 그만할래…….”

“싫어, 너도 좋잖아.”

“이상해…….”

“안 이상해.”

두영은 짓무른 눈을 홍승표의 목덜미에 문질렀다. 홍승표는 두영의 뒷덜미를 단단하게 받치고 제 아래 눕혔다. 두영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끔찍하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할 거야.”

좀처럼 바뀌지 않는 체위는 키스하기 좋은 자세였다. 두영이 숨이 차서 고개를 돌리면 홍승표는 개의치 않고 다른 곳을 게걸스럽게 핥았다.

“아, 앗, 흐읏…….”

두영의 입에서 야릇한 신음이 연이어 터졌다. 처음에는 제 목소리가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이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로지 배 안쪽의 저릿저릿 느낌과 홍승표와 이어진 감각만이 전부였다.

벌어진 두영의 두 다리가 공중에 나풀나풀 흔들렸다. 홍승표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투성이지만, 구름 사이로 햇볕이 은은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아마 정오가 지난 듯했다.

두영이 젖은 손으로 홍승표의 몸을 밀었지만, 미끄덩한 두영의 손길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홍승표가 다시 입술을 비벼 왔다. 무거운 바윗덩어리는 조금도 꼼작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의 성기가 정확히 배꼽 아래를 일직선으로 긁었고, 두영은 발작하듯 경련하며 구멍을 힘껏 조였다.

“아, 씹, 끊어, 지겠네…….”

상체를 낮춘 홍승표가 두영의 머리 양옆에 팔꿈치를 괴고 이어진 샅을 반복적으로 마찰했다. 두영의 예민해진 귀두가 홍승표의 단단한 복근에 쓸리며 묽은 정액을 토해 냈다.

거뭇한 음모가 두영의 회음부에 쩍쩍 달라붙고 떨어졌다. 두영은 “제발… 제발…….” 하고 속삭이며 빌었다. 한 번 갔을 땐 제발 멈춰 줬으면 좋겠는데 홍승표는 일부러 그러는 건지 온몸으로 아래를 퍽퍽 쳐 댔다.

절정의 문턱에서 성기를 빼낸 홍승표가 반질반질한 성기를 무섭게 용두질하며, 두영의 음부에 미음처럼 걸쭉한 정액을 울컥울컥 토했다. 날카로운 턱에 맺힌 땀방울이 두영의 배꼽에 떨어졌다.

그는 나른한 시선으로 두영의 몸을 훑다가, 손을 뻗어 두영의 눅진한 가랑이 사이를 쓰다듬었다. 봉긋한 회음부를 꾹꾹 누르고, 불알을 조몰락거리고, 아직 단단하게 서 있는 성기를 손에 쥐고 막무가내로 흔들자 두영이 높은 교성으로 울부짖으며 한 번 더 사정했다.

홍승표는 두영의 초점 잃은 눈동자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다시 성기를 구멍에 꽂았다. 끝나지 않는 정사에 순간적으로 울컥한 두영의 턱이 호두처럼 오돌토돌해졌다. 그 얼굴을 발견한 홍승표가 입술 끝을 비스듬히 올렸다.

“진짜 마지막.”

거짓말. 아까도 마지막이라고 했으면서…….

두영이 신뢰를 잃은 표정으로 할딱이자, 홍승표가 난감하게 웃었다.

“진짜야. 약속.”

홍승표가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얼떨결에 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두영은 자신을 안아 오는 홍승표의 몸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며 진짜 마지막 절정을 향해 내달렸다.

엉덩이에 부딪치는 음낭 소리가 낯부끄럽게 탁탁 울렸다. 짐승 같은 목 울림이 바로 귓전에서 들려오자 두영은 홍승표를 가득 끌어안고 오싹함을 달랬다.

“흐아… 흐읏…….”

워낙 드세게 움직이는 홍승표를 따라 두영의 몸도 난잡하게 흔들렸다. 그 순간 배 안쪽에 꿀렁거리는 게 터졌다. 홍승표는 눈을 안타깝게 찡그리더니, 곧 멍한 시선을 허공에 두고 간헐적으로 떨었다.

초점이 서서히 돌아온 홍승표는 헤벌어진 두영의 입 안에 혀를 집어넣었다. 더운 숨결이 한여름의 무더위처럼 습했다. 물먹은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는 파도처럼 아득히 먼 곳에서 밀려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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