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데워 줄게
바닥으로 몸이 빨려 들어갔다. 일어나고 싶은데 누가 몸을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두영은 저를 누르는 가위에서 깨어나기 위해 근육을 꿈틀거렸다. 겨우 손끝을 움찔거리자 물감이 퍼지듯 전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을 뜨자 익숙한 홍승표의 집 천장이 보였다. 갑자기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천장이 두영에게 쏟아졌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천천히 뜨자 애초에 천장은 무너진 적이 없었다.
열 감기 때문에 몽롱하여 자꾸 헛것이 보였다. 주변에 있는 것들이 두영에게 달려들어 살가죽을 물어뜯었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더워서 이불을 밀치면 몇 초도 안 지나서 겨울 계곡에 빠진 듯 추워져, 다시 이불을 가져와야 했다. 땀으로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어 불편했다. 침이 끈적하고 목이 탔다.
옆으로 돌아누운 두영은 침대 가장자리로 꾸물꾸물 기어갔다. 바닥을 짚고 두 다리로 서는 순간, 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그대로 무너졌다. 다시 팔에 힘을 주고 일어나는데, 계단 난간 너머로 홍승표의 얼굴이 빼꼼 올라온 게 보였다.
그는 단숨에 두영에게 다가와, 두영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고 달랑 안아 들었다. 두영은 간지러워서 입술을 씰룩거렸다. 탈출한 침대에 다시 눕혀진 두영은 홍승표를 혼탁한 시선으로 올려다봤다. 시야가 부예서 그의 이목구비가 잘 보이지 않았다.
홍승표는 두영의 귓구멍에 체온계를 집어넣고 열을 쟀다. 온도를 확인한 그는 두영의 뒷덜미를 주무르며 말했다.
“더 자. 약 먹은 지 얼마 안 됐으니까. 필요한 거 있어?”
“물, 이랑… 화장실 가고 싶어.”
홍승표는 두영의 무릎 아래와 등을 받치고 안아 들었다. 그제야 자신의 맨다리를 발견한 두영은 펑퍼짐한 티셔츠를 허벅지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에 홍승표의 입꼬리가 은근히 휘어 올라갔다.
변기 앞에 두영을 내려 준 그는 뒤에서 두영을 껴안듯이 몸을 밀착했다. 그리고 두영이 입은 티셔츠 밑단을 들췄다. 두영은 고개를 내저으며 홍승표의 팔을 잡았다.
“호, 혼자 할 수 있어.”
“혼자 서 있지도 못하잖아.”
“앉아서 싸면…….”
홍승표는 천연덕스럽게 두영을 무시하고 말랑한 성기를 손에 쥐었다. 변기 입구에 잘 고정하고 두영의 귓가에 쉬이, 하고 보챘다. 두영이 무릎을 비벼 가며 꾸물거리자, 홍승표는 다른 손으로 두영의 아랫배를 지그시 누르며 가득 찬 방광을 자극했다.
“읏…….”
기어이 맑은 소리가 밀폐된 공간에 졸졸 울렸다. 두영은 홍승표의 두꺼운 손목을 동아줄처럼 붙잡고 부르르 떨었다. 오래 참아서 한참이나 소변을 봐야 했다.
볼일을 마치자 홍승표는 두영의 성기 끝에 매달린 물기를 자연스럽게 엄지로 닦았다. 마무리까지 완벽한 손길에 두영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는 두영의 발을 제 발등 위에 올리고 그대로 세면대 앞까지 걸어갔다. 손에 거품을 묻히고 두영의 손을 야물딱지게 조물조물 씻겼다. 다시 복층으로 올라왔을 땐 두영은 다른 의미로 지쳐 있었다.
그는 두영이 덮은 이불을 섬세하게 여며 주며 말했다.
“죽 가져올게. 얌전히 있어.”
두영이 빤히 쳐다보고 있자 홍승표가 두영의 입가를 간지럽게 매만졌다.
“…열 때문에 그런가? 자꾸 나 보면서 웃네.”
이불 안쪽으로 들어온 손이 두영의 허벅지를 살살 쓸었다. 두영이 티셔츠를 아래로 잡아당기고 은밀한 부위를 가리자 홍승표가 가늘게 눈웃음을 지으며 복층을 떠났다.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두영은 방금까지 홍승표가 앉아 있었던 자리를 손으로 쓸었다. 그가 돌아올 걸 아는데도 쓸쓸한 기분이 감당 못 할 정도로 커지는 게 느껴졌다.
옆으로 돌아누운 두영은 왠지 모를 허전함에 새우처럼 몸을 옹송그렸다. 그리고 손등에 붙여진 원형 반창고를 반대쪽 손으로 긁적였다. 이거 말고도 몸 이곳저곳에 약이 발리고 붕대가 감겨 있었다.
승표가 치료해 준 건가?
전에 제 발을 치료해 줄 때도 그렇고, 홍승표는 상처를 치료하는 게 능숙해 보였다. 왜 익숙한지 물어보고 싶어 입이 간지러웠다.
뭔가 모든 것이 편안하고 아득해서 불안했다. 그러다 스멀스멀 눈이 감겼다. 두영은 억지로 눈을 부릅뜨고 참았지만, 지독한 수마에 지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몸이 가벼웠다. 눈이 간지러워 손을 얼굴 앞으로 가져오다가 손등에 꽂힌 주삿바늘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병원이 아닌데 이 링거는 뭔가 싶었다.
그때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홍승표와 낯선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홍승표보다 반 뼘 작았지만, 작은 키는 아니었다. 단정한 생김새의 남자가 두영을 보고 눈을 휘었다.
“깼어요?”
“말 걸지 마.”
홍승표가 얄팍하게 굴며 대화를 단절시켰다. 그러고는 두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덧붙였다.
“너도 말 섞지 마.”
두영은 착한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남자는 그런 취급이 익숙한지 진료 내내 인상 좋은 얼굴을 유지했다. 두영은 저를 빤히 쳐다보는 두 쌍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새벽에 진정제 넣어 주고 갔는데, 좀 괜찮았어요?”
두영은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몰라서 홍승표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나 대답은 단정한 남자가 대신 했다.
“이거, 이거.”
본인의 손등을 톡톡 치며 말하는 남자의 모습에 두영은 링거 바늘에 시선을 주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아주 좋아요. 그럼 열 좀 잴게요.”
남자가 전자 체온계를 들자 홍승표가 유연하게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두영의 체온을 쟀다. 체온을 확인한 남자가 목을 울렸다.
“으음, 아직 열이 덜 내렸네요.”
“돌팔이가 일 똑바로 안 하지.”
“야. 말은 똑바로 하자. 진짜 네가 안 때린 거 맞아?”
“말조심해.”
“애기, 위험하면 당근 흔들어요.”
남자는 두영을 보면서 손에 무언가를 들고 흔드는 시늉을 했다. 남자의 해맑은 말투에 처음 느꼈던 지적인 이미지가 괴상하게 붕괴했다. 두영은 눈을 끔뻑이다가 고개를 숙였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료가 끝나고 홍승표는 남자와 함께 일 층으로 내려갔다. 그가 한쪽 어깨를 중문에 기대고 서자 신발을 신던 이진우가 물었다.
“쟤 진짜 너랑 동갑 맞아?”
홍승표가 대답 없이 휴대폰 화면만 톡톡 두드렸다. 이진우가 미간을 구기고 셔츠 앞주머니에 꽂아 둔 안경을 꺼내 콧잔등에 얹었다.
“이름도 안 알려 주고, 나이도 안 알려 주고. 심지어 안경은 벗고 들어가라 하고. 뭐 이렇게 유난이야.”
홍승표는 휴대폰에 고정한 눈을 이진우를 향해 치켜떴다.
“어쭈 눈에 힘 좀 풀자. 의사로 불렀으면 의사 대접 좀 해 주고. 환자 상태를 자세히 봐야 꼼꼼히 진찰하지.”
“방금도 충분히 잘했어.”
“누워서 떡 주냐?”
엷은 미소를 지은 홍승표가 한 손을 허공에 흔들었다.
“좀 가.”
“오늘 일 승민이한테 말하지 마?”
약지로 이마를 긁적이던 홍승표가 피곤한 듯이 얼굴을 쓸었다.
“어차피 알게 될 거야.”
“그래 그럼.”
“그래도 먼저 말하지 마.”
귀찮게 꼬치꼬치 물어볼 홍승민을 떠올리자 벌써 피곤했다. 이럴 땐 미뤄 둘 수 있을 만큼 미뤄 두는 게 최선이었다.
“내가 네 주치의로 일하면서 단순 감기 때문에 불려 온 건 난생처음이네. 너도 제발 이런 정상적인 걸로 불러 줘.”
“내 주치의로 꼬박꼬박 월급 챙기면서 말이 좀 많네.”
“맞아. 그건 고맙지.”
이진우가 이를 훤히 드러내며 자본에 함락당한 미소를 지었다.
객을 보낸 홍승표는 샤워를 하고 밖에 나와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또 다른 티셔츠를 손에 든 채 위로 올라갔다.
침대 가장자리에 둥글게 튀어나온 덩어리를 보자 잔잔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다섯은 넉넉히 잘 수 있는 침대에 허두영이 태아처럼 웅크려 자고 있었다.
“고양이 새끼도 아니고.”
발소리 없이 조용히 다가간 그는 두영의 머리맡에 앉아 잠든 얼굴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러다 둥글게 말린 손 사이로 새끼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보잘것없는 힘이 그의 손가락을 조여 왔다. 심장이 조이는 듯했다.
한동안 두영을 지켜보고 있던 그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새 한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녀석의 얼굴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일어나.”
작은 등을 토닥이며 깨우자 허두영이 부스스 눈을 떴다.
“어제오늘 밥 한 끼도 안 먹었어.”
두영은 주어가 빠진 말을 멋대로 해석했다. 그가 배고픈 모양이라고. 천천히 일어나 침대 아래로 다리를 내렸다. 손등에 꽂힌 주삿바늘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무작정 뜯어내려고 하자 가까이 다가온 홍승표가 두영의 손을 제지했다.
그는 능숙하게 바늘을 제거하고 마무리로 원형 반창고를 붙여 주었다. 그러고는 침대 한편에 있는 새 티셔츠를 가져오며 말했다.
“만세 하자.”
뒤가 구린 듯한 냄새에 두영은 냅다 의심의 눈초리를 날리며 야무지게 셔츠 밑단도 움켜잡았다. 홍승표는 눈썹을 치들더니 곧 가벼이 웃었다. 그리고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두영을 올려다봤다.
“옷 땀에 젖어서 불편하잖아.”
“그럼 내가 갈아입을게.”
“그건 싫은데.”
홍승표가 두영의 복숭아뼈를 매만지며 대꾸했다. 느리게 올라간 손이 종아리를 주무르고, 무릎 뒤를 손끝으로 살살 긁었다. 점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 손이 매트리스에 눌린 허벅지 뒤편을 꾸욱 눌렀다.
“너 엉덩이 아래 작은 점 있는 거 알아?”
“…….”
“더 깊이 들어가면 또 있어. 바로 여기.”
“읏…….”
불시에 회음부가 꾹 눌렸다.
“여기 핥아 주면 좋아하잖아.”
요사스럽게 치켜뜬 눈이 두영의 얼굴을 응시했다.
“너도 모르는 점을 내가 알고 있을 만큼 볼 장 다 본 사이에, 아직도 부끄러워할 게 남아 있는 네가 나는 가끔 신기해.”
두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점점 난잡하게 움직이려는 그의 손을 허벅지에 힘을 줘서 옥죄었다. 홍승표가 나긋하게 웃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만할게, 안 건드릴게. …근데 손이 안 빠지는데.”
홍승표가 난감한 표정을 손쉽게 지어 보이며 말했다. 허술한 거짓말에 두영은 가랑이를 살짝 벌렸다. 그러자 홍승표의 얼굴에 장난기가 사라지고 표정이 사늘하게 변했다. 혀로 볼 안쪽을 건드린 그가 두영을 불량스럽게 올려다봤다.
“모르고 하는 짓이야?”
어딘가 화나 보이는 듯한 얼굴에 두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소심하게 시선을 떨구자 홍승표가 사늘한 표정을 무너뜨리고 엷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두영의 허리를 두 팔로 껴안고 납작한 배에 얼굴을 문질렀다.
“지금 박으면 평소보다 더 따끈하겠지?”
낮게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언뜻 짜증스러웠다.
두 번째 한숨을 내쉰 그는 육욕을 간신히 참아 내고 두영의 옷을 갈아입혔다. 고작 티셔츠 한 장 벗기고 도로 입히는 것뿐인데 10분이나 소요됐다. 애무, 키스, 손장난. 전부 이따위 것들 때문이었다.
죽을 가져온 홍승표가 두영의 허벅지에 트레이를 올렸다. 두영은 물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흰죽은 열 때문에 미각이 둔해져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만들어 준 성의를 봐서 억지로 꾸역꾸역 먹자 홍승표가 불쑥 수저를 빼앗아 갔다.
“억지로 먹지 마. 따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고.”
“죽… 맛있어. 근데 열 때문에 맛이 안 느껴지는 것 같애…….”
“알아.”
가볍게 대꾸한 홍승표는 두영의 입가를 엄지로 쓸었다. 두영은 입에 뭐가 묻은 줄 알고 손등으로 입을 벅벅 문질렀다. 홍승표는 두영이 하는 짓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트레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입맛이 없어도 감기 걸리면 먹고 싶은 게 하나씩은 있던데. 너는?”
두영은 손가락으로 이불을 꾸깃꾸깃 괴롭혔다. 그러다 아이가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소곤거렸다.
“너, 너도… 아프면 그래?”
“나는 감기에 걸려 본 적이 없어.”
“아…….”
두영은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혼자서 홍승표는 건강 체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제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있어?”
홍승표는 한참 동안 대답이 없는 두영의 턱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저를 보게 만들었다. 호박색 눈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고, 가지런한 눈썹을 엄지로 덧그렸다.
“먹고 싶은 거 있어?”
몇 번이나 반복된 질문을 하는 홍승표는 짜증 난 기색이 없었다. 두영은 머뭇거리다가 떠오르는 것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리임…….”
“응?”
“아이, 스크림…….”
뜸 들이며 말하는 목소리가 흐물흐물 녹아서 뚜껑도 안 따지는 쭈쭈바 같았다. 귓바퀴를 붉게 물들인 두영은 홍승표를 힐끗 보았다가 곧바로 시선을 내렸다. 괜히 말한 것 같아 빠르게 후회가 밀려왔다.
약을 먹은 두영은 다시 천장을 멀뚱멀뚱 보며 누웠다. 아직 열이 덜 내려서 붕 뜬 기분이 그대로였다. 밑에서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적당한 백색소음에 또다시 잠이 들락 말락 했다.
잠들지 않기 위해 몸을 뒤척인 두영은 바닥에 늘어진 홍승표의 흔적을 눈으로 훑었다. 생각보다 독서를 즐겨 하는 모양인지 복층 한편에 책이 늘어져 있었다. 호기심이 동한 두영은 침대에서 벗어나 책 주변을 배회했다. 홍승표의 물건을 허락도 없이 건드려도 될까 싶었다.
문득 두영은 자신의 맨다리를 내려다봤다. 티셔츠가 아래를 넉넉히 가렸지만, 하체가 썰렁한 건 변함없었다. 어차피 복층에만 있을 거라 상관없었다. 그러나 한번 맨다리를 의식하자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두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일 층으로 조심조심 내려갔다. 모퉁이 너머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이제 막 설거지를 끝낸 홍승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홍승표가 기미도 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친 두영은 벽 뒤에서 머쓱하게 나와 화장실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멍청이.”
제 머리를 때리며 나직이 자책했다.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을 들여다봤다. 입술이 터졌고, 왼쪽 눈에 실핏줄이 그어 있었다.
“다행이다…….”
생각보다 흉하지 않아서.
홍승표와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동안 제 얼굴이 어떤지 몰라서 불안했다. 딱히 거북해하는 것 같진 않았는데……. 두영은 제 얼굴을 씁쓸하게 어루만졌다. 타인의 생각을 예측하는 건 힘들었다.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기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없었다.
볼일을 마친 두영은 내친김에 세수도 하고 입을 헹구었다. 수건이 어디 있는지 알았지만, 허락 없이 쓰기가 좀 그랬기에 옷 소매로 물기를 대충 닦았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문 앞에 홍승표가 서 있어서 화들짝 놀랐다. 팔짱을 낀 홍승표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하도 안 나와서 문 따고 들어갈 뻔했어.”
커다란 손이 두영의 젖은 머리카락을 이마 뒤로 쓸어 넘겨 주었다. 두영은 손등으로 아래턱을 쓸며 홍승표를 힐끗 올려다봤다.
“이제 집에 갈게.”
“…왜?”
“불편하니까.”
갑자기 홍승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삽시간에 살벌해지는 그의 분위기는 얼음덩어리를 조각한 듯이 음산했다. 뒤늦게 두영은 자신이 한 말을 떠올리고 서둘러 정정했다.
“나, 나 말고… 네가 불편하니까…….”
미간을 살짝 구긴 홍승표가 엷은 숨을 뱉으며 대꾸했다.
“안 불편해. 그냥 있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두영은 손등에 붙인 반창고 테두리를 손톱으로 갉작댔다. 누군가를 병간호하는 건 참 피곤한 일이다. 옛날에 김춘녀를 병간호해 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은 집주인의 침대를 떡하니 차지한 객이었다. 그가 이런 귀찮은 짓을 하려고 자신을 집에 데려온 게 아닐 것이다.
하지만 홍승표는 열이 내렸는지 확인만 할 뿐 제게 손을 대지 않았다. 두영은 조금 전 거울로 확인한 제 모습을 떠올렸다. 아마 거북한 걸지도 몰랐다.
“무슨 생각해?”
“어?”
“내 욕이라도 했어?”
홍승표가 콧등을 짓궂게 찡그리며 두영의 목뼈를 엄지로 둥글게 굴렸다. 문틀에 옆머리를 기댄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럼 좀 서운한데. 다 죽어 가는 고양이 새끼 주워다가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주고, 죽도 끓여 주고, 오줌도 누게 해 주고…….”
“요, 욕 안 했어.”
“그러면 왜 집에 가려는 건데?”
두영은 난처한 얼굴로 눈을 내리떴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반창고가 결국 바닥에 떨어졌다. 소심하게 치뜬 눈이 홍승표의 목덜미 언저리를 어중간하게 보았다.
“나, 나랑…….”
“응 너랑.”
“나랑… 나랑…….”
“응.”
“자기… 싫어?”
막상 말하고 나니 울적했다. 땅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딱히 무슨 반응을 기대하고 말한 건 아닌데 홍승표가 너무 조용했다. 두영은 불안한 마음에 티셔츠라도 움켜쥐었다.
그때 홍승표가 혀를 차며 삐뚜름하게 섰다.
“어이가 없네. 너랑 자기 싫냐고? 떡 치는 거 말하는 거야? 이거?”
홍승표가 말아 쥔 왼손을 오른손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모래 한 알 없는 곳에서 파도 소리가 철퍽철퍽 울렸다. 음란한 소리에 두영은 입술을 말아 물었다. 홍승표의 손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이주학이 맨날 제 앞에서 하는 손장난이었으니까.
닭살이 돋을 정도로 창피했던 두영은 무작정 현관문으로 뛰어갔다. 중문을 여는 순간 눈에 백색 섬광이 들어오고 시야가 흐무러졌다. 현관문 앞에 있는 신발이 백 켤레의 잔상으로 나누어졌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비틀거린 두영은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뒤따라온 홍승표가 뒷목을 잡으며 한탄했다.
“환장하겠네.”
나직하게 심경을 말한 그는 두영을 안정감 있게 안아 들고 복층으로 올라갔다. 침대에 두영을 눕히고 그새 새로 생긴 이마의 혹을 살폈다.
“이 꼴로 어딜 가겠다고.”
그새 땀으로 젖은 옷이 납작한 몸에 달라붙었다. 부르튼 입술에서 가쁜 숨이 흘러나왔다. 체온을 재자 겨우 내렸던 열이 다시 오른 상태였다.
홍승표는 젖은 수건으로 두영의 몸을 닦아 주고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 눈을 반쯤 뜬 두영이 홍승표를 조용히 올려다봤다. 열 때문에 난시가 심해져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자 홍승표가 두영의 구겨진 미간을 살살 문질러서 펴 주었다.
“집에 가지 마.”
그는 두영의 배를 가만가만 토닥이며 말했다.
“내가 아무리 충동적으로 굴어도 황금알을 낳는 오리 배는 안 가르지.”
뜬금없는 오리 타령에 두영은 누워 있는 상태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픈 애 붙잡고 했다가 죽으면 어떡해. 나 무서워. 뭐… 넌 시체여도 예쁘겠지만.”
그는 웃음기 묻은 목소리로 농담처럼 말했다. 그러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몸을 일으킨 홍승표가 계단 쪽으로 몸을 틀었다. 두영은 무심코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러나 손끝이 아슬아슬하게 스치기만 할 뿐, 초라하게 매트리스 위로 떨어졌다.
그대로 가 버릴 줄 알았던 홍승표가 곧바로 뒤를 돌아봤다. 그는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두영의 손에 눈길을 주다가 천천히 시선을 옮겨 호박색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눈은 꿈을 꾸는 듯이 몽롱했다. 그리고 길을 잃어버린 미아의 눈이었다. 당장 품에 안아 어르고 달래 주고 싶을 만큼.
그는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두영이 베고 있는 베개를 저 멀리 치워 버리고 제 팔을 내주었다. 느린 박자로 가슴팍을 토닥이며 두영의 불안함을 잠재웠다.
타인의 배려와 친절을 쉽게 받지 못하는 녀석은 어르는 손길을 어색해하며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가는 머리칼을 귓등으로 넘겨 주고 계속해서 토닥였다.
긴 속눈썹이 악몽을 꾸는 것처럼 떨리면 귓가에 자장가를 속삭여 주었다. 그럼 녀석은 더 깊은 잠에 빠져들 것처럼 고른 숨을 내뱉었다. 그 모습은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꿈을 꾸는 듯했다.
***
점심쯤 일어난 두영은 김춘녀에게 전화했다. 퇴근하고 돌아왔을 집이 엉망진창이라 많이 놀라셨을 거다. 빨리 전화해야 했었는데 자신도 제정신이 아니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상황을 대강 간추려 설명하자 전화기 너머에서 침음이 들렸다. 그러곤 전혀 생각도 못 한 말이 김춘녀의 입에서 나왔다. 두영은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숨을 터뜨렸다.
“그걸… 왜 줬어요, 할머니…….”
두영이 없는 사이에 김춘녀가 허삼혁에게 돈을 주었다. 인생의 낙오자인 아들을 챙기는 김춘녀가 새삼스럽지 않았지만, 하필 그 아들에게 준 돈이 홍승표가 제게 지갑과 함께 넣어 준 돈이었다.
“대체 왜…….”
두영은 같은 말만 어물거렸다. 허삼혁을 탓하는 게 맞는데, 지금은 할머니가 더 미웠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노쇠한 목소리가 듣기 싫을 만큼. 제 귀를 뜯어내고 싶을 만큼…….
밀물이 밀려오듯 제 안에 죄책감이 가득 들어찼다. 급하게 통화를 마무리하고 끊었다. 가라앉은 기분이 도통 나아지지 않아 피가 고일 정도로 손톱 거스러미를 뜯었다. 때마침 욕실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홍승표가 나왔다. 두영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고개를 들고 말했다.
“이거… 고마워.”
두영은 홍승표에게 빌린 휴대폰을 소파에 내려놓았다. 지난날 안 좋게 헤어진 기억 때문에 할머니에게 전화하는 걸 싫어할 줄 알았다. 그러나 홍승표는 무심하게 휴대폰을 빌려줄 뿐이었다.
두영은 문틀에 기대고 선 홍승표에게 쭈뼛쭈뼛 다가갔다. 그동안 홍승표가 수건으로 몸을 닦아 줘서 찝찝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제대로 씻고 싶었다. 같이 씻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두영은 홍승표의 손에 옷이 벗겨지고 샤워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욕실은 그가 미리 욕조에 받아 둔 물 때문에 사방이 부옜다.
“너무 뜨거우면 말해.”
홍승표가 샤워기 물을 손에 뿌리며 말했다. 벌서는 아이처럼 벽에 바짝 붙어 선 두영이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발치에 닿은 물줄기가 천천히 몸을 적시며 올라왔다. 그는 두영을 마주 보게 돌려세우고 둥근 이마에 손을 얹어 차양을 만들었다. 두영은 머리에서 흐르는 물이 얼굴을 적시지 않아 눈을 감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거대한 아랫도리에 자꾸 시선이 가 결국 눈꺼풀을 닫았다.
거품 샤워까지 끝낸 두영과 홍승표는 욕조에 몸을 담갔다. 그의 가슴에 어색하게 기댄 두영은 등허리에 단단한 것이 닿자 허리를 뻣뻣하게 세웠다. 그러고는 슬금슬금 거리를 두자 홍승표가 두영의 배를 손으로 감싸고 다리 사이로 끌어당겼다.
그는 두영의 튀어나온 목뼈에 입술을 누른 채 느물거리며 말했다.
“대놓고 변태 취급하니까 추잡하게 굴고 싶잖아.”
“…미안.”
“아니, 미안해하지 마. 진짜… 혼자 하고 있으니까.”
두영은 무릎에 턱을 괴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찰박거리는 수면이 크게 굽이졌다. 목덜미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입술이 촉촉한 소리를 흩뿌렸다.
홍승표의 숨이 거칠어지는 순간 두영의 몸이 강제로 돌아갔다. 그는 두영의 입술이 덥석 머금고 난잡하게 물고 빨았다. 침을 삼킬 시간도 주지 않았다. 순식간에 두영의 턱이 침으로 축축해졌고 그는 그것마저도 달게 핥았다.
두영이 자꾸 뒤로 밀리자 홍승표가 두영의 엉덩이를 받쳐 들고 허벅지에 앉혔다. 양손 가득 엉덩이를 쥐고 바깥쪽으로 당겼다가 안쪽으로 모으기를 반복했다. 그러고는 가슴까지 단번에 쓸고 올라와 오목조목한 젖꼭지를 엄지로 살살 굴렸다.
“하으…….”
“만져 줘.”
홍승표가 두영의 손에 제 성기를 쥐여 주며 말했다. 배꼽 위로 융기한 성기는 한 손으로 만지기 벅찬 크기였다. 두영의 생각을 읽은 홍승표는 두영이 두 손을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게 그의 허리를 두 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두영은 난처한 얼굴로 홍승표를 내려다봤다. 두영의 젖꼭지를 입술로 지분대던 그가 눈을 치뜨며 시선을 겹쳤다. 그의 벌게진 눈이 음습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입술을 깨문 두영은 그의 성기를 두 손으로 감싸고 느릿느릿 훑었다.
“조금 더, 조여 봐. 여기처럼…….”
홍승표가 떡처럼 주무르고 있는 두영의 엉덩잇살을 좌우로 벌리고 구멍을 쓸었다. 그러자 구멍이 문어 빨판처럼 그의 지문에 흡착했다.
혀로 입술을 축인 그는 두영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구멍 주변을 자극했다. 불시에 손가락 하나를 집어넣었다. 가볍게 깔짝거리는 짓을 반복하자 두영의 팔뚝 위로 닭살이 돋아났다.
감질나는 자극에 두영은 홍승표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어설프게 입술을 문대자 홍승표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두영을 관찰했다.
그는 두영을 안고 욕실에서 나왔다. 소파에 두영을 내리고 몸을 반으로 접어 오금을 눌렀다. 뻐끔거리는 구멍을 빤히 보던 그는 불시에 입을 맞추고 게걸스럽게 빨았다.
“흐읏, 흐아으…….”
두영의 야한 숨소리에 홍승표는 별안간 풋내 나는 뽀뽀를 구멍에 퍼붓기 시작했다. 두영은 민망해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차라리 난잡하게 쑤셔지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았다.
그때 그의 혀가 구멍을 벌리고 들어와 피스톤질 하듯 안쪽을 자극했다. 손으로는 두영의 성기를 잡고 흔들며 애태웠다.
“흐아… 응…….“
홍승표는 할딱이는 두영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갈고리처럼 구부린 손가락으로 예민한 지점을 꾹꾹 누르자 두영이 홍승표를 애타게 불렀다.
“승표야… 승표야…….”
그 부름에 홍승표의 새까만 눈이 더 짙어졌다.
“괜찮아. 손톱 바짝 잘랐어.”
갑자기 손을 밖으로 빼낸 홍승표가 두영에게 손톱을 보여 주었다.
“봐. 가지런하게 다듬었어.”
“…….”
두영은 제 얼굴 앞에 있는 손 때문에 당황했다. 축축하게 젖은 손이 남사스러워서 더 이상 눈을 뜨고 있지 못하고 질끈 감았다.
어깨를 으쓱거린 홍승표는 한쪽 무릎으로 소파를 짚었다. 예고도 없이 손가락 세 개를 구멍에 쑤셔 넣고 손목을 빠르게 털자 두영이 허리를 들썩이며 발작했다.
“아앗……! 흐윽……!”
두영은 고통 같은 쾌감에 마구 도리질 치며 홍승표의 팔목을 잡았다. 그의 터질 것 같은 전완근 위로 힘줄이 매섭게 솟아 있었다.
구멍을 빠르게 헤집던 홍승표는 아예 손바닥을 회음부에 찰싹 붙인 상태로 두영의 몸 전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불건전하게 아래가 잡힌 두영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힉, 히익.” 같은 소리만 내뱉었다.
그 순간 두영이 발로 소파를 짚은 채 엉덩이를 높게 띄웠다. 허리를 엉망진창으로 들썩이며 사정하는데, 홍승표의 손은 계속해서 두영의 내벽을 들쑤셨다.
“아아! 싫, 그마, 흐이! 아윽!!”
투명한 물 같은 게 두영의 요도구에서 쏘아졌다. 두영은 발뒤꿈치로 소파를 난잡하게 밀어 대며 허공에 뜬 엉덩이를 내리지 못했다. 어깨 힘으로 내벽을 찧던 홍승표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손가락을 밖으로 빼냈다. 그제야 두영의 엉덩이가 소파 위로 털썩 떨어졌다.
두영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래를 가리고 흐느꼈다. 너무 강한 자극은 좋다 못해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단전을 중심으로 몸이 망가진 것 같았다. 아직도 아래가 저릿저릿하고 구멍은 스스로 개폐 운동을 했다.
이런 고통 섞인 쾌감이 있다고 누구 하나 알려 주지 않았다. 원래 이 정도는 기본으로 느끼며 하는 건가? 누구랑 해도 다 똑같은 건가?
두영은 끝나지 않는 쾌감에 등허리를 연신 들썩였다. 그러다 가랑이 사이를 어루만지는 손길에 냉큼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끅끅거리는 울음은 덤이었다. 순식간에 따라붙은 홍승표가 두영을 뒤에서 껴안듯이 붙잡았다.
“이 꼴로 어딜가게.”
“흐으… 그, 흑, 그만…….”
두영은 그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팔을 포롱거리다가 무언가 손등에 부딪혀 무심코 아래를 쳐다봤다. 수직으로 선 홍승표의 성기였다. 제 팔뚝만 한 것을 몇 번이나 받아 봤지만, 아까 맛본 자극 때문에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홍승표가 두영의 한쪽 다리를 팔에 걸고 귀두 끝을 구멍 입구에 맞췄다. 심장이 멎을 것 같은 두려움에 두영은 그만 이성을 잃고 홍승표의 팔을 주먹으로 때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의 것이 못 들어오게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피했다.
턱에 힘을 준 홍승표가 두영의 엉덩이를 받쳐 들었다. 두영은 190cm가 넘는 전경이 아찔해 냉큼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고개를 내저었다.
“미안, 큽, 미안해…….”
두영이 홍승표의 목을 끌어안고 옹알대며 사과했다. 그냥 일단 사과하고 싶었다. 뭘 잘못한 건지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전부 제 잘못 같았다.
“…그만하고 싶어?”
홍승표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두영은 상대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웅얼웅얼 말했다.
그만하고 싶어. 나중에 하자. 내가 미안해. 배 속이 너무 이상해. 네 게 너무 커서 무서워.
“커서 무서워?”
홍승표는 두영이 하는 말을 전부 알아들었지만, 마지막 말만 대꾸했다. 두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짙은 한숨을 뱉은 홍승표가 두영을 바닥에 내려 주었다. 두 발로 선 두영은 반사적으로 현관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가 홍승표에게 뒷덜미를 붙잡혔다.
“한 번만 더 도망치려고 시도하면 네 할머니 앞에서 해 버릴 줄 알아.”
끔찍한 말에 두영이 서럽게 끅끅거렸다. 머리를 쓸어 넘긴 홍승표는 두영이 벽을 보고 서게 했다. 그는 그 뒤에 바짝 붙어 서서 두영의 엉덩잇살에 제 성기를 문질렀다. 두영은 기겁하며 홍승표를 밀쳤다.
“거, 거짓말쟁이!”
“문지르기만 할게. 이 정도는 해도 되잖아.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불쌍하지도 않아?”
그가 단단한 살덩이를 두영의 허벅지 사이에 집어넣고 들락날락했다. 금세 두영의 허벅지가 그의 쿠퍼액으로 흠뻑 젖어 구멍에 직접 박고 흔드는 것만큼 야한 소리가 났다.
“허벅지… 좀 더 조여 봐…….“
홍승표가 두영의 목덜미를 깨물고 거친 숨을 내뱉었다. 두영은 그의 말을 얌전히 따랐으나 워낙 다리에 살집이 없어서 아무리 힘을 주고 오므려도 틈이 헐거웠다.
“이것밖에 안 돼? 그냥 구멍에 박을까?”
입술을 깨문 두영이 아예 발목을 교차하고 섰다. 허벅지가 확실하게 조여지며 홍승표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두영은 허벅지 사이를 드나드는 그의 성기가 너무 적나라하게 느껴져 조금 소름 끼쳤다. 아래로 시선을 슬쩍 내리자 검붉은 살덩어리의 머리가 들락거리는 게 보였다. 제 것보다 아래 있으면서 원근감을 무시하는 크기였다.
홍승표는 두영의 배를 손으로 감싸고 뒤로 당겼다. 두영의 엉덩이가 그의 치골에 뭉개졌다. 그는 눈앞에 있는 귓바퀴를 머금고 빨다가 낮게 속삭였다.
“야한 말 해 줘…….”
두영은 하얀 벽을 노려보며 고민했다. 갑자기 저렇게 말해도 아는 게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홍승표는 두영의 성기를 흔들면서 재촉했다.
“읏, 하짓, 마아…….”
두영이 그의 손목을 붙들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럼 졸라 봐. 응?”
“뭐, 뭐라고…….”
“뭐든.”
눈을 부산스럽게 깜빡거린 두영은 방금 떠오른 말이 야한 말에 해당되는 건지 헷갈렸다. 그래도 저렇게 보채는데 안 하는 것보단 나았다.
“스, 승표야…….“
“응?”
“내 얼굴에… 쌀래?”
전에 홍승표가 제 얼굴에 싸면서 지었던 표정이 떠올라 한 말이었다.
“하아… 씨발.”
낮은 신음이 귓가에 울려 두영은 등골이 오싹했다. 철퍽철퍽 소리가 날 정도로 그의 성기에서 나오는 분비물이 많았다. 그 순간 홍승표가 목을 세게 긁으며 신음했다.
두영은 제 허벅지에 흐르는 따끈따끈한 액체를 눈으로 훑었다. 그의 정액은 투명도가 전혀 없었다. 그가 허리 짓을 한 번씩 할 때마다 정액이 물총처럼 쏘아졌다. 그새 바닥에는 정액이 고인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사정을 끝낸 홍승표가 두영의 가랑이 사이를 더듬으며 온몸에 정액을 펴 발랐다. 두영은 그가 하는 행동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교차한 발목을 풀었다. 그러자 곧바로 무릎이 꺾여 그에게 온전히 기댈 수밖에 없었다.
홍승표는 두영을 가득 껴안고 욕구불만인 짐승처럼 목을 울렸다.
“너 다 낫기만 해 봐.“
소름 끼치는 제 안위 걱정에 차라리 두영은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이미 한 번 씻은 몸이라 두 번째 샤워는 금방 끝났다. 홍승표는 기력이 없는 두영이 자꾸 축 늘어지자 두영을 먼저 씻긴 다음 밖에 내보냈다.
“아무 옷이나 꺼내 입고 얌전히 침대로 돌아가 있어.”
“…….”
“얌전히, 라고 했어.”
튈까, 라고 생각했던 두영은 힘없이 머리를 끄덕이고 옷 방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서랍을 열자 운이 좋게 속옷이 나왔다. 포장된 팬티를 입을지 그가 입던 걸 입을지 고민하는데, 수십 장의 속옷 사이로 익숙한 팬티가 보였다. 흰색의 삼각팬티. 그건 두영의 것이었다.
두영은 반가운 마음으로 제 팬티를 꺼내 입고, 위아래 세트 옷까지 차려입었다. 홍승표가 잘 안 입을 것 같은 서랍 구석탱이의 옷이었다.
“후…….”
옷방에서 나온 두영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몸이 나른해서 정신까지 몽롱했다. 이게 열 감기 때문에 그러는 건지, 조금 전 일 때문에 그러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컵에 수돗물을 받아 마신 두영은 바로 설거지를 해 놓고 부엌에서 나왔다. 거실 통창으로 땅거미 지는 하늘이 보였다. 벅차오르는 풍경에 두영은 창 앞으로 걸어가 하늘을 멍하니 구경했다. 그러다 호기심에 테라스로 통하는 문을 아주 살짝 열어 보았다.
순간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칼바람이 두영의 뺨을 후려쳤다. 냉큼 문을 닫은 두영은 말짱해진 정신으로 뺨을 쓸었다. 홍승표의 집이 따뜻하다고 바보같이 현재 계절까지 까먹은 모양이었다. 하늘이 저리도 붉게 타오르는데 바람은 살얼음이 낄 만큼 차가웠다.
창 너머 풍경을 아득히 내다보던 두영은 이만 계단으로 몸을 틀었다. 불현듯 소파가 묘하게 거슬려 시선을 옮겼다. 그러다 대뜸 옷방으로 뛰어가 수건을 들고 나왔다. 일사불란하게 소파에 묻은 제 흔적을 지웠다. 말라서 굳어 버린 정액은 잘 닦이지도 않았다.
수건에 물을 묻혀 오기 위해 부엌으로 몸을 트는 순간 욕실 문이 열렸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나오던 홍승표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두영을 발견하고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도망가는 중?”
“도, 도망 아냐…….”
두영은 저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어물거리면서 피하고 수건을 등 뒤로 숨겼다. 대충 상황을 파악한 홍승표가 이내 담백하게 웃고는 옷방으로 들어갔다. 안심한 두영은 급한 대로 침을 묻혀 흔적을 빠르게 지웠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아서 빨래통에 수건을 집어넣고 잽싸게 복층으로 올라갔다.
겨우 고것 빨빨거렸다고 남은 기력을 모두 소진했다. 갑자기 세상이 기울더니 몸도 기울어졌다. 다행히 침대 근처까지 와서 쓰러져 모난 곳에 부딪거나 하지 않았다.
침대에 엎어진 두영은 시트에 볼을 비비며 현기증을 가라앉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소리에 두영은 느릿느릿 일어나 앉았다.
홍승표는 올라오자마자 두영의 체온을 쟀다. 두영은 얌전히 귀를 내주고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오늘 카페 쉬어. 아직 열 안 내렸어.”
어제 조퇴까지 한 탓에 유재민에게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제 생각에도 오늘 출근은 무리인 것 같았다.
두영은 휴대폰을 빌려 유재민에게 전화했다. 통화 내내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에 몇 번이나 혀를 씹을 뻔했다. 통화를 끝내고 휴대폰을 돌려주는데 홍승표가 폰을 받지 않고 두영을 지그시 쳐다보기만 했다. 두영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과거를 돌이켜 봤다.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한일자로 굳게 다문 홍승표의 입이 마침내 열렸다.
“번호를 외우고 다녀?”
“그냥, 외워져서…….”
두영은 시트를 꼬집으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부싯돌 같은 그의 눈동자에 곧 불이 붙을 것 같았다.
홍승표는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가 다시 두영을 보았다. 그러고는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이 휴대폰을 받고 두영을 위아래로 훑었다.
“바지는 왜 입었어?“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건가? 사람은 원래 바지를 입는다. 그러나 질문자가 홍승표라면 납득이 됐다.
“추워서 입었어.”
“…….”
“진짠데…….”
두영은 거짓말하면 죽는 병에 걸린 것처럼 눈을 불안하게 깜빡였다. 손톱 거스러미를 쥐어뜯자 홍승표가 두영의 양손을 떼어 놓았다.
평소 나른한 얼굴로 돌아온 홍승표는 태연한 낯짝으로 두영에게 저녁 메뉴를 고르게 했다. 광활한 선택지에 머리가 아플 때쯤 홍승표가 고른 일식으로 정해졌다.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홍승표가 사 온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비싼 편의점 아이스크림은 입맛이 없어도 충분히 달콤했다.
그리고 늦은 저녁. 아침에 보았던 남자가 또 찾아왔다. 남자는 자기를 이진우라고 소개했다.
“멍이랑 부기는 많이 빠졌네요. 이따 가기 전에 멍 빠지는 주사 또 놔 주고 갈게요. 열은… 음, 생각한 것보다 내리지 않았네. 원래 몸이 약한가? 감기에 자주 걸려요?”
두영은 지난날의 몸 상태를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 환절기마다 걸렸어요. 그, 근데 약하지는 않아요.”
“그렇구나, 약하지는 않구나. 누구는 한 번도 안 걸리는데. 그렇죠?”
“주사 안 놔?”
팔짱을 끼고 우두커니 서 있는 홍승표가 삐딱한 어조로 말했다. 따분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 홍승표에 이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곤 두영의 소매를 걷어 팔뚝에 주사를 놔 주었다.
독할 거라는 이진우의 말이 과장은 아닌 듯 곧장 잠이 쏟아졌다. 홍승표는 두영의 가슴팍에 손을 얹고 나긋나긋 토닥였다. 이내 두영은 영원한 동면에 든 것처럼 고요함에 이르렀다.
이따금 홍승표는 두영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심장 박동을 확인할 때가 있었다. 두영이 숨소리 하나 없이 죽은 듯이 잤기 때문이다.
심장이 잘 뛰는 걸 확인한 홍승표는 이진우와 함께 일 층으로 내려갔다. 이진우는 가방에서 하얀색 약통을 꺼내 홈바에 올려 두었다.
“네 거는 여기 올려 둘게.”
“이건 또 누구 부탁이야.”
“홍승민 말고 또 있겠냐. 네 체질에 맞춘 거니까 다른 사람 손 못 대게 관리 잘해. 그리고 멍한 느낌 싫어하는 거 아는데, 네 화 다스리려면 어쩔 수 없어. 오히려 더 세게 해야 할 판이니까.”
홍승표는 홈바에 올려진 약통을 차가운 시선으로 보았다. 어렸을 때는 발악하며 약을 거부했고, 십 대 때는 체념하고 먹었다. 하루라도 멀쩡히 자 보는 게 소원인 날도 있었다. 평범한 사람처럼 평범한 하루를. 통제되지 않는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본 것 같았다.
“너 살 빠졌냐?”
“조금.”
이진우가 안경을 추어올리며 재차 홍승표를 위아래로 훑었다.
“얼마 전에 홍승민이 약 주지 않았어? …가만, 너 한국 와서 약 먹기는 했지?”
“아니.”
“…맹수 새끼를 풀어 두고 있었네.”
이진우가 피곤한 듯 눈을 뒤집어 깠다.
“네 성질 모르고 건드리는 사람 있으면 어떡하려고 약을 안 먹어? 이 약은,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먹어야 하는 거야, 이 이기적인 놈아.”
누구보다 자신이 이기적인 걸 잘 알고 있는 홍승표는 대수롭지 않은 말을 들은 것처럼 무덤덤했다. 그는 웬만한 일에 화가 없었고, 있어도 여유롭게 넘겼다. 단지 문제를 한 번 일으키면 그 사이즈가 클 뿐이었다.
기분이 저조한 날이면 작은 자극에도 회까닥 돌아 버리기 일쑤였다. 퓨즈가 끊기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정신을 차리면 주변에 신체가 훼손된 사람들이 있었다.
죽이진 않은 것 같은데.
사실 이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기억이 온전치 않았기에.
약 복용은 한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진작 중단한 상태였다. 올해로 이 년째가 되었고 이유는 단순했다. 삶을 포기하는 것. 흙으로 돌아가는 것. 하지만 빌어먹게 건강한 몸은 잠을 안 자도, 먹지 않아도 멀쩡했다. 망가지는 건 피폐해지는 정신뿐이었다.
돌아갈 채비를 하던 이진우가 복층을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애 몸에 난 상처, 진짜 네가 그런 거 아니지?”
의문형이었지만, 백 퍼센트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홍승표는 이진우의 기대에 부응해 주기로 했다.
“맞아, 나야. 내가 그랬어. 사람 때리면서 흥분하는 변태 새끼라 아예 집에 들여놓고 즐기기로 했어. 납득됐으면 이제 좀 꺼져.”
홍승표는 이진우를 내쫓고 거실로 돌아왔다. 조용한 집이 마음에 들었다.
문득 떠오른 게 있어 소파로 걸어갔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덜 닦인 녀석의 흔적을 내려다봤다. 나태한 얼굴 위로 잔잔한 미소가 일렁였다.
“열심히 닦더니…….”
시력이 좋지 않은 허두영은 대충 눈에 띄는 것만 급하게 지운 듯했다.
홍승표는 손톱을 세워 이미 굳어 버린 정액을 긁었다. 흰색 가루가 손톱 사이에 꼈다. 그것을 약처럼 혀에 머금고 음미했다. 발정제라도 되는 듯 아래에 열기가 몰렸다.
그는 고개를 쳐들고 작위적으로 눈을 깜빡였다. 요즘은 약을 먹지 않아도 이전처럼 기억이 끊기는 일이 드물었다. 간헐적으로 휘몰아칠 때가 있었으나, 전처럼 심하지 않았고 어느 정도 통제가 됐다. 모두 허두영을 이 집에 들인 순간부터 시작됐다.
홍승표는 약통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에 약을 털어 내고 소변을 갈겼다. 알알이 떠내려가는 약을 무감각한 시선으로 보았다. 마냥 좋다고 할 수 없었던 제 과거가 약과 함께 모조리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적막이 내려앉은 새벽. 홍승표는 작은 기척을 모르는 척하며 눈을 감았다. 허두영은 조심히 일어나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시트의 바스락거림은 어쩔 수 없었다.
실눈을 뜬 홍승표는 우두커니 앉아 있는 두영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작은 등이 한 줌 같아서 초라해 보였다. 녀석은 가끔 잠에서 깨어나 허공을 망연히 볼 때가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다시 몸을 눕혔다. 오늘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다.
홍승표는 두영이 잠든 걸 확인하고 휴대폰을 챙겨 테라스로 나왔다. 까만 하늘에는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 먹물을 뒤집어쓴 듯한 산등성도 캄캄한 밤하늘에 흡수됐다.
그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연기를 가득 머금고 구름처럼 내뱉었다. 망연히 퍼지는 연기를 감상하다가 최근 통화 목록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허두영이 전화를 빌려 쓰고 지우지 않은 번호였다.
김춘녀는 일하는 도중에 전화를 받았다. 홍승표는 두영이 좋아할 만한 모습을 생각하며 응대했다. 다정함을 연기하는 건 쉬웠다. 허두영을 상대한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몸 상태를 묻는 말에는 약간의 양념을 쳤다. 녀석을 시궁창으로 돌려보내지 않기 위해 기관지가 매우 좋지 않다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실제로 좋은지 안 좋은지 알 수 없었지만, 골골대는 허두영을 보면 나쁠 가능성이 농후했다. 고로 방금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예, 어지럼증이 심해서 오래 서 있지 못 합니다. 추위를 많이 타서 여기 있는 게 좋겠고요. 집에 자주 놀러 와서 불편한 거 없어요. 그런 말 마세요. 저희 둘 아주 많이 친하거든요. 한 이불 덮고 잘 만큼. 그러니까 할머니 몸 관리나 잘하세요.”
홍승표는 노골적으로 지껄이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그쪽 손주가 자신과 얼마나 음란하게 노는지 알려 주고 싶었다. 울 때 어찌나 예쁘게 우는지, 정액 맛은 어떻고, 어떤 얼굴로 가는지. 또… 제 옆에서 얼마나 편하게 잠드는지.
통화를 마무리한 홍승표는 집 안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따뜻한 곳에 들어와 손발이 저릿했다. 계단을 소리 없이 밟고 올라가 침대로 향했다. 녀석은 마지막으로 본 자세에서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는 제 몸에 스민 찬기가 두영을 깨울까 봐, 녀석을 이불째 품에 안고 뒷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 정도로 붙어야 녀석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 수 있었다.
홍승표는 다 지난 오늘을 끝내기 위해 눈을 감았다.
외로이 잠 못 드는 밤이 아니었다.
느지막이 일어난 두영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홍승표가 틀어 준 영화를 보았다. 절정에 치달은 영화는 막 시련을 얻은 주인공의 곁을 소중한 사람들이 떠나는 상황이었다.
두영은 약 기운 때문에 몸이 나른했다. 자꾸만 머리가 꾸벅꾸벅 꺾였다. 잠깐 눈만 감고 있으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소파에 모로 누워 있었다. 허리에 뭐가 올라와 있는지 묵직했다. 조금 뒤척거렸더니 허리에 올라온 팔이 두영을 끌어당겼다. 등짝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진해졌다.
“조금만 더 이러고 있어…….“
홍승표가 잠기운이 덕지덕지 묻은 목소리로 보챘다. 그의 커다란 품은 요람처럼 편안했다. 목덜미에 닿는 숨결이 약간 오싹했지만, 두영은 몸에 힘을 풀고 가만히 있었다.
다시금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땐 오후의 한중간이었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잠시 멍을 때리다가 꾸물거리며 일어난 두영은 이불을 가지런하게 개고 소파에서 벗어났다. 복층에 올라가 체온계로 열을 쟀다. 미열이 약간 있었지만, 의사 선생님이 주고 간 약만 꼬박꼬박 먹으면 나을 것 같았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온 두영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창밖을 보았다. 종일 자기만 한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그때 도어록 소리가 미적지근하게 울렸다. 두영은 자책에서 빠져나와 중문을 바라보았다. 홍승표가 모자를 벗으며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편의점 봉투가 들려 있었다.
홍승표는 잠에서 깨어난 두영을 발견하고 큰 보폭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손등으로 열을 체크하고 부엌으로 몸을 돌렸다.
멀뚱히 있던 두영은 홍승표를 따라 부엌에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자, 냉장고에 물건을 넣던 홍승표가 하던 일을 멈추고 잡아당겨진 제 옷을 보았다. 천천히 시선을 겹친 그가 뒤늦게 반응했다.
“왜?”
“전화, 한 번만.”
“아… 난 또. 나 보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네.”
솔직하게 아쉬워하는 모습에 두영은 제 귓불을 뜯었다. 홍승표는 후드티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며 물었다.
“누구한테 전화하게?”
“할머니랑 새벽 알바 하는 곳…….”
“할 필요 없어. 둘 다 전화해서 허락 맡았으니까.”
생각도 하지 못한 그의 대답에 두영은 눈을 끔벅였다.
“무슨… 허락?”
“하나는 너 아파서 출근 못 한다고 했고, 다른 하나는 너 여기서 요양한다고.”
사무실 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한 건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후자의 말이 더 신경 쓰였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두영의 얼굴에 홍승표는 한숨을 늘어뜨리며 덧붙였다.
“너희 집에 아직 아빠 있어.”
두영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마른침을 삼킨 두영은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는 이제 안 나가는 건가? 다시 같이 사는 건가? 부정적인 생각의 종착지는 체념이었다.
“그래도… 이제 돌아갈게.”
“왜?”
“여기 계속 있을 수 없으니깐…….”
“계속 있어. 계속 있으라고 괜찮으니까.”
“할머니가…….”
홍승표가 냉장고 문을 세게 닫았다. 두영은 어깨를 움찔 떨며 한 걸음 물러섰다. 홍승표는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고 두영을 빤히 쳐다봤다.
숨소리만 느껴질 만큼 적막한 상황이었다. 지난번과 똑같은 상황에 두영은 입술을 물어뜯었다. 왜 할머니 얘기만 나오면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평범한 것과 한참 먼 반응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를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홍승표가 한 걸음 다가오자 두영은 두 걸음 물러났다. 그러자 그의 습윤한 눈빛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홍승표가 벽과 제 몸 사이에 두영을 가뒀다. 막연한 신장 차이가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정작 너한테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인간이 뭐가 좋아?”
홍승표가 한껏 낮아진 목소리로 고요를 깨뜨렸다.
“제대로 보호받지도 못하는 곳으로 왜 꾸역꾸역 돌아가는 건데?”
그는 두영의 다물린 입술만 주시하며 반응을 독촉했다. 비로소 입을 연 두영은 어쩌면 그의 뺨을 때린 이후부터 내내 정리했던 생각을 천천히 밖으로 꺼냈다.
“승표야… 나는 할머니밖에… 없어.”
“…….”
“가족이… 할머니뿐이야…….”
두영은 차마 홍승표를 마주 보지 못하고 시선을 먼 곳에 둔 채 말을 이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집을 나갔어. 아버지 몰래 도망칠 수 있게 할머니가 도와주셨어.”
빠르게 마르는 입술을 혀로 축였다. 그리고 다음에 할 말을 생각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한테 맞으면서 사셨어…….”
김춘녀는 나이 스물한 살에 결혼했다. 소녀처럼 웃던 김춘녀는 일 년도 안 지나서 얼굴에 멍을 달았고, 시어미는 지아비 말을 안 들어서 맞는 거라며 오히려 김춘녀를 매도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한테 맞은 것보다, 시어머니가 자기편을 들어 주지 않은 게 그렇게 서러우셨대……. 그래서 우리 엄마가 자기처럼 평생 붙잡혀서 살까 봐, 그래서 새벽에 짐 싸서 도망치라고 길을 터 주신 거야…….”
두영은 엄마가 집을 떠난 순간을 기억한다. 눈이 쌓이는 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추운 겨울이었다. 벽을 보고 누운 어린 두영은 자연스럽게 눈이 뜨였다. 그리고 제 머리를 애틋하게 쓰다듬는 손길로 자연스럽게 알아챘다. 엄마가 저를 버리고 떠난다는 것을.
눈물 콧물로 베개를 적셨지만, 허삼혁이 깰까 봐 훌쩍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지금까지 두영은 엄마를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그해 두영은 여섯 살이었다.
“할머니는 다 자기 때문이라고 하셔. 가난한 것도, 내가 아버지한테 맞는 것도, 엄마가 없는 것도……. 근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두영은 허공을 헤아리는 시선을 홍승표에게 두었다.
“승표야, 부탁할게. 할머니를… 우리 할머니를 미워하지 말아 줘.”
하나뿐인 가족을 내게 빼앗지 말아 줘.
두영은 눈에 힘을 주고 호흡을 나눠서 뱉었다. 뒤로 돌아 현관문을 향해 걸어가자 홍승표가 두영의 손목을 붙잡았다.
“더 있다가.”
“알바 가야…….”
거절하려던 두영은 홍승표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무언가를 참는 것처럼 턱에 힘을 준 상태였다. 기어이 화를 다스린 그는 두영을 원형 스툴에 데려다 앉혔다.
“차로 데려다줄게. 이거 먹고 가.”
시간을 확인한 두영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어쩐지 어색하고 불편해서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무릎을 콕콕 찔렀다. 그때 홈바 위로 작은 그릇이 놓였다. 그 안에는 한 입 크기로 조각낸 복숭아 통조림이 있었다.
“먹어.”
눈을 끔벅거린 두영은 조심스럽게 포크로 한 조각 찍어 먹었다. 익숙한 맛은 옛 추억을 우연히 마주한 것처럼 반가웠다.
거의 이틀 만에 밖으로 나왔다. 그날 밤과 다르게 바람이 거세지 않았다. 눈도 다 녹아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도로 위 차는 정지 신호에 멈추었다. 창밖을 보던 두영은 코앞으로 불쑥 다가온 손 때문에 흠칫 놀랐다. 옆을 돌아보자 홍승표의 표정이 짜게 식어 있었다.
“뭐라도 했으면 억울하지 않지.”
홍승표는 긴 한숨을 섞어 말하며 두영의 광대 부근에 묻은 속눈썹을 떼어 주었다. 두영이 소심하게 사과하자 홍승표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미안할 짓이라도 했으면 이렇게 짜증 나지 않고.”
두영은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심기가 불편한 홍승표를 상대할 땐 인형처럼 가만히 있는 게 유일한 생존 방법이었다. 아무리 예전보다 편해진 그라도 안 무서운 건 아니었다. 방금처럼 예고 없이 커다란 손을 뻗어 오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홍승표라서 무서운 게 아니다. 그냥 덩치가 큰 사람이 무서운 거다. 머리 하나는 차이 나는 홍승표가 작정하고 몸을 들이대면 벽을 마주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홍승표는 무표정과 웃는 얼굴의 분위기가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달랐다. 나른함을 기본으로 깔고 가는 홍승표가 살얼음처럼 정색이라도 하면 당장 오줌을 지릴 것 같았다. 그런 홍승표를 앞에 두고 할머니를 미워하지 말라니. 그땐 자신이 미친 듯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집에 네 아빠 없어.”
불현듯 들린 말에 두영은 늦은 반응을 보였다.
“아까 있다고…….”
“구라야.”
“…….”
그는 구라도 태연하게 쳤다. 얼마나 당당하게 말하는지 그 구라마저 진실이라 믿고 싶을 정도였다.
두영은 차에서 내려 홍승표와 나란히 걸었다. 신호등이 없는 3차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갑자기 홍승표가 두영을 손목을 잡고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두영이 왜라고 물을 새도 없이 방금 서 있던 자리로 큰 화물차가 지나갔다. 홍승표는 화물차 꽁무니를 쏘아보다가 눈동자만 굴려 두영을 내려다봤다.
“너 안전 불감증이라도 있어?”
“그, 그게 뭔데?”
“…모르면 됐어. 앞으로 조심해.”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긴 홍승표가 두영의 손목을 고쳐잡고 차도를 건넜다. 맞은편 인도에 도달했을 때 두영은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그러자 홍승표가 자리에 멈춰 서더니, 날숨을 흩뜨리며 쏟아 내듯이 말했다.
“사과하지 마. 앞으로 뭔 일 생겨도 사과하지 말라고. 어차피 내가 병신 같아서 생긴 일이 테니까.”
불어닥친 바람이 머리카락을 한바탕 헝클어뜨리고 지나갔다. 홍승표는 두영의 이마 혹부터 피딱지가 앉은 입술을 차례차례 훑으며 감정을 한껏 누그러뜨렸다.
“맞는 거 익숙해지지 마. 누가 때리면 너도 때려. 연장이라도 들어서 죽일 마음으로 패.”
무자비한 말과 다르게 상처를 훑는 손길은 부드러웠다. 조마조마해서 간지러웠다. 그제야 두영은 그가 왜 화를 내는지 알아차렸다.
홍승표는 저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두영은 혼자가 익숙해서 세상이 정해 놓은 일차원적 감정 표현이 전부라 여겼다. 행복할 때 웃고, 슬플 때 울고, 화날 때 분노한다. 이게 정답이라 생각했고 일절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쁠 때 울 수 있었고, 슬플 때 웃을 수 있었다.
두영은 지금 좀 울고 싶었다.
가까이 다가온 홍승표가 두영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안 끄덕이고 뭐 해. 빨리 끄덕여.”
두영은 속에서 뭔가가 터질 것 같아 희미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만족스럽지 않은 반응에 두영은 심호흡을 크게 내쉬고 다시 고개를 끄떡였다.
하늘이 극명한 색으로 갈라졌다. 어스레한 저녁 하늘 아래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밤이 찾아와도 어둡지 않았다.
빛은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