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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성애가시 저주 (18/20)

18. 성애가시 저주

병원은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사람으로 가득했다. 아픈 사람 반, 피곤한 사람 반이었다. 건강한 사람은 없었다.

―수면보행증일 수 있어. 내 전공 아니니까 상담받아 보는 걸 추천해.

전화기 너머 이진우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두영 씨는 자기 증상 알아?

모른다. 허두영의 성격상 피해 준다고 생각할지 몰라 일부러 알려 주지 않았다. 그 옛날 똥개 새끼처럼 눈치 보던 때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그 모습을 본다면 눈이 즐거울 수도 있겠지만, 차라리 한 번이라도 더 웃는 게 나았다.

병원 복도 의자에 몸을 늘어뜨린 홍승표가 피곤에 잠긴 목소리를 내뱉었다.

“지금까지 그런 증상 없었어.”

―너라고 다 아는 거 아니잖아. 두영 씨한테 한 번 물어봐, 어렸을 때 몽유병 있었냐고. 대부분 크면서 사라지긴 하는데, 최근에 그런 일도 있었고 스트레스가 쌓여서 일시적으로 나타난 걸 수도 있어.

성의 없는 답변에 홍승표는 통화를 일방적으로 종료했다. 확실하지 않은 답변만 쏟아져 더 듣고 싶지 않았다.

호텔에서의 일이 있고 난 후, 녀석은 종종 자는 도중에 일어나 좀비처럼 집을 거닐었다. 그 과정에서 녀석은 두 번이나 복층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자는 위치만 보완하면 되는 일이라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다른 것이 마음에 걸렸다.

홍승표는 예민한 눈초리로 천장을 쏘아봤다. 며칠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신경이 날로 날카로워졌다. 금방 짜증이 돋고 화가 솟구쳤다.

산만하게 다리를 떨던 그는 늘어지는 몸을 일으켜 창문에 어깨를 기대고 섰다. 유리창에 달라붙은 서리가 그의 체온을 야금야금 빼앗았다. 봄을 맞이했지만 날씨는 도통 따뜻해지지 않았다. 눈으로 버무린 세상은 온통 하얘서 눈이 시릴 정도였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그는 집중치료실로 몸을 돌렸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침음에 빠진 작은 등이 보였다. 홍승표는 입맛을 다시며 손을 뻗었다. 뾰족한 직각 어깨를 손으로 감싸자 두영이 움찔 떨며 고개를 들었다.

“이제 가자.”

며칠간 홍승표는 두영과 함께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을 방문했다. 우선 두영의 상처를 치료받고 다음은 김춘녀를 문병했다. 녀석은 자신이 먼저 집에 가자고 보채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앉아서 김춘녀 옆을 지켰다.

홍승표는 김춘녀의 산소 호흡기를 떼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다행히 허두영이 반항 한 번 없이 제 말을 따랐기에 상상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그는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에게 칭찬을 해 주기로 했다. 두영의 머플러를 여며 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입이 벌어지자 침이 마찰하는 소리가 끈적하게 울렸다.

“당장 네 구멍 핥고 싶어.”

두영은 한쪽 귀를 퍼뜩 틀어막고 김춘녀에게 시선을 주었다. 항상 깨어나길 기도했는데, 지금은 잠든 김춘녀를 보고 안도했다. 언제쯤이면 홍승표의 빨간 맛 대화를 무심하게 받아칠 수 있을까. 남몰래 깊은 속앓이를 한 두영은 머플러를 콧등까지 여미고 집중치료실에서 빠져나왔다.

도망치듯 그에게서 벗어났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붙잡혔다. 홍승표는 품이 큰 코트로 두영을 뒤에서 껴안듯이 감쌌다.

“맛있게 생기지 말든가.”

두영의 목덜미에 코를 파묻은 홍승표가 흉곽이 크게 부풀 만큼 숨을 들이켰다. 녀석의 몸에서 햇볕에 잘 마른 포근한 먼지 냄새가 났다. 저를 찌르던 날카로운 신경이 둥글게 깎이는 게 느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된 두영은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꼬물거렸다. 홍승표는 두영을 품 안에 욱여넣듯이 더 세게 끌어안았다. 체력과 덩치 싸움에 진 두영이 빠르게 항복했다.

“밖에서 저녁 먹고 들어가자.”

그의 말에 두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영의 목 상태는 많이 호전됐지만, 목이 다친 이후로 말수가 확연히 줄었다. 의사는 어린아이가 음식을 잘못 먹고 크게 배앓이를 한 뒤, 특정 음식을 피하는 트라우마와 비슷하다고 했다.

생각에 잠긴 듯한 그는 별안간 팔에 힘을 주었다. 두영은 숨쉬기 버거울 정도로 옥죄는 힘에 흠칫 놀라 뒤를 돌아봤다. 홍승표는 두영의 호박색 눈동자를 하릴없이 보았다. 겨울철 순식간에 불탔다 사라지는 노을 같았다. 잡아 두지 못해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

“아이스크림 사 줄까? 열 개 먹어도 돼.”

뜬금없는 홍승표의 아이스크림 타령에 두영은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홍승표는 두영을 따라 나른한 미소를 머금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홍승표는 두영의 입술부터 찾았다. 두영은 당황해서 굳어 있다가 천천히 그의 입맞춤을 받아 주었다. 후방 주차를 한 터라 차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경 쓰였다. 고개를 살짝 내젓고 그를 밀어 냈지만, 홍승표는 오히려 자극되었는지 두영을 더 몰아붙였다.

두영은 촉수처럼 꿈틀대는 그의 혀를 밀어 내며 어눌하게 말했다.

“지, 집에 가서…….”

홍승표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으로 두영을 지켜보다가 혀를 삐죽 내밀었다.

“맛있게 빨아 주면 그만할게.”

뻔뻔한 요구에 두영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슬쩍 바라본 창밖은 아무도 없었다. 확인을 끝마친 두영은 조심스럽게 홍승표의 혀를 입술로만 물고 오물거렸다. 조금 적응했을 때는 납작한 막대 사탕을 먹는 것처럼 머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혀를 내놓은 홍승표의 턱은 그새 침으로 흥건해졌다. 두영은 그의 턱을 할짝거리다가 다시 두툼한 혀를 쭙쭙 빨았다. 그러다 홍승표의 입꼬리가 움찔거리는 걸 발견하곤 시선을 겹쳤다.

“맛있어?”

“…….”

두영은 대답하지 않고 입술 도장을 꾹꾹 찍었다. 홍승표의 표정이 점점 사늘하게 변했다. 그는 두영의 뒷덜미를 붙잡고 입술을 틈도 없이 포갰다.

그의 혀가 두영의 목구멍 어귀부터 앞니 직전까지 입천장을 세게 긁으며 나왔다. 저절로 생리적인 눈물이 송골송골 맺힌 두영은 홍승표의 옷을 움켜잡고 부르르 떨었다.

홍승표는 입에 침을 모으며 두영의 아래턱을 잡아 눌렀다. 그러곤 자그맣게 벌어진 입에 침을 주욱 늘리며 뱉었다. 기다랗게 이어진 침이 두영의 혓바닥 밑으로 들어갔다.

“삼켜.”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두영은 눈을 내리뜨고 침을 꿀꺽 삼켰다. 목 넘김 소리가 유난히 크고 자극적이었다. 입을 벌린 두영은 홍승표에게 텅 빈 입 안을 보여 주며 침을 삼켰는지 허락받았다.

두영을 따라 마른침을 삼킨 홍승표가 말했다.

“바지 벗어.”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결국 홍승표는 차 안에서 일을 치를 모양이었다. 두영은 허리가 밴딩으로 된 면바지를 느릿느릿 벗었다. 팬티도 벗어야 하는 건지 고민되어 홍승표를 힐끗 보았다. 한쪽 입술을 비죽 끌어 올린 그가 나긋한 목소리로 살살 달래듯 말했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박을 수 있게 스스로 해 보는 거야. 할 수 있지?”

홍승표가 두영의 눈두덩에 입술을 문질렀다. 손가락이 말려 들어갈 정도로 다정한 입맞춤이었다. 그는 두영의 허벅지 안쪽을 큰 손으로 쓰다듬다가 볼록한 성기 부근을 어루만지고 다시 밀가루 같은 허벅지를 주무르며 낮게 중얼거렸다.

“팬티도 벗어.”

두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팬티를 천천히 벗었다. 그동안 홍승표는 차에 시동을 걸고 병원을 빠져나갔다. 두영은 쏘다니는 차의 소음을 들으며 손으로 구멍을 쑤셨다. 공간이 주는 부담감 때문에 학습된 기계처럼 규칙적으로 움직일 뿐, 자세도 불편하여 마음대로 느끼지 못했다.

홍승표는 일부러 신호가 걸리게 운전했다. 그렇게 차가 멈추면 대놓고 두영을 구경했고, 주행 중에는 곁눈질로 보았다. 지금이라도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우고 허두영을 제 위에 앉히고 싶었다.

“흐… 하으…….”

두영이 달뜬 호흡을 뱉으며 가죽 의자에 엉덩이를 비볐다. 안쪽이 간질간질한데 손이 닿지 않았다.

“으, 잠깐만…….”

갑자기 손을 뻗어 온 홍승표가 두영의 성기를 쥐고 가볍게 흔들었다. 애매하게 자극하고 멀어진 손이 다시 핸들을 잡았다.

순간의 자극에 숨을 몰아쉰 두영은 서러워서 입술을 말아 물었다.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아래를 쑤시는 손가락을 빼내서 성기를 잡고 흔들자 홍승표가 두영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씁―. 앞에 건들지 마. 또 만지면 창문 열 거야.”

두영은 홍승표가 한 번 뱉은 말은 꼭 지킨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헐떡대며 다시 아랫구멍에 중지를 집어넣고 들락날락 움직였다. 며칠 전부터 홍승표는 종종 이런 식으로 자신을 괴롭혔다.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뜬 건지, 원래 그의 취향인 건지 알 수 없었다.

솔직히 그가 이럴 때마다 무서웠다. 그렇다고 명령을 어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홍승표가 시키는 건 뭐든 하고 싶었다. 제게 실망하는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부목을 덧댄 발 때문에 어느 자세를 해도 불편했다. 연신 뒤척거리다 보니 어느새 하체가 앞으로 빠져 무기력한 고양이처럼 늘어진 자세가 됐다. 홍승표는 몇 번째인지 모를 정지 신호에 차를 세우며 물었다.

“불편해?”

두영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고민한 그는 두영에게 왼쪽 오금을 붙잡고 있으라 명령하고 구멍 주변을 어루만졌다. 좌석과 매끈한 엉덩이가 끈적한 땀으로 젖어 있었다. 홍승표는 뻐끔거리는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잘게 흔들었다. 두영이 입을 작게 벌리고 할딱였다.

“앞에 만져 주는 것보다 뒤에 쑤셔 주는 게 좋아?”

“으응… 응, 좋아…….”

두영은 스스로 뭐라고 지껄이는지도 모르고 그냥 나오는 대로 뱉었다. 홍승표의 표정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넌 아플 때랑 뒤에 박아 줄 때만 솔직해지는 거 알아?”

“응… 흐읏, 아, 라… 알아…….”

“뭘 알아.”

홍승표가 불시에 손가락을 깊은 곳까지 찔러 넣었다. 갈고리처럼 구부리고 갉작거리자 두영이 울먹거리며 그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중간이 없는 자극에 허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지금도 이렇게 제정신이 아닌데 네가 뭘 알아.”

홍승표의 손등 위로 푸른 산맥이 불거졌다. 점점 힘을 실어 손목을 거칠게 털자 두영이 당황하며 몸을 뒤로 뺐다.

“아야.”

실수로 그의 손을 깔고 앉자 홍승표가 연약한 척 앓는 소리를 흘렸다. 두영은 냉큼 왼쪽 궁둥이를 들고 그의 손을 살폈다. 아팠을까 걱정이 되어 힐끗 시선을 맞추자 홍승표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삽시간에 얼굴 근육을 굳힌 그는 구멍을 거칠게 헤집기 시작했다. 두영은 창문에 이마를 기대고 홍승표의 팔목을 붙잡았다. 그런데도 그는 두영의 손을 대롱대롱 단 채 구멍을 난잡하게 쑤셨다.

“으으, 잠, 시, 으아읏……!”

순식간에 절정에 도달한 두영은 비스듬히 앉아 등허리를 들썩였다. 홍승표는 신호가 바뀐 틈에 갓길에 차를 세웠다. 바지 지퍼를 내리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 두영을 허벅지 위에 앉혔다. 두영은 두꺼운 살 기둥이 뿌리까지 한 번에 박히자 눈을 번쩍 떴다.

“하윽! 하앗, 으응!”

홍승표는 벗어나려는 두영의 골반을 잡고 아래로 꾸욱 눌렀다. 결합한 곳을 뭉근하게 비비다가 불시에 위로 쳐올렸다. 두영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그가 주는 자극을 힘겹게 받아 냈다.

“혼자 가지 말랬지.”

홍승표가 두영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말했다. 두영은 억울해서 홍승표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씨근덕댔다.

“니, 가… 흑, 니가…….”

“내가 뭐.”

두영은 ‘네가 손가락으로 갈 때까지 쑤셨잖아.’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홍승표도 더 들을 생각이 없는지 아래를 빠르게 올려 쳤다. 차 안은 철퍽철퍽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와 두영의 흐느낌으로 가득했다.

위로 턱턱 튕기던 두영은 홍승표의 옷에 제 성기가 비벼지는 걸 발견했다. 그의 어깨를 손으로 짚고 달라붙은 몸을 살짝 떨어뜨렸다. 그러자 하얀 분비물이 그의 옷에 붙어 길게 이어졌다.

홍승표는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걸 용납 못 한다는 듯 두 팔로 두영을 가득 끌어안았다. 다시 성기가 납작 눌린 두영은 그의 어깨를 약하게 때리며 버둥거렸다. 안 그래도 예민해진 성기는 살짝만 스쳐도 갈 것 같은데 그의 옷에 세게 문질러지니 미칠 것 같았다.

“흐아! 흐으읏……!”

두영은 얼마 참지 못하고 두 번째 사정액을 배출했다. 홍승표의 성기는 여전히 경련하는 내벽을 무식하게 치고 들어왔다. 예민해진 몸으로 흉기 같은 성기를 받고 있자 두영은 뇌가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승표야, 하윽……! 빨, 리……!”

물에 담갔다가 뺀 듯한 두영의 축축한 보챔에 홍승표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심장을 노리듯 퍽! 하고 처박아 올리는 순간, 뜨거운 토정액이 두영의 배 안쪽에서 터졌다. 두영은 배가 차가 오르는 느낌에 눈을 게슴츠레 떴다. 몇 번을 느껴도 생소한 감각이었다.

저도 모르게 아래를 조인 두영은 홍승표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사정 직후의 고양감에 흠뻑 취해 무르녹은 상태였다. 불현듯 그가 두영의 배를 손으로 꾹 누르기 시작했다. 배 안쪽에 들어찬 정액이 틈 없이 맞물린 구멍을 비집고 민망한 소리를 내며 나왔다.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은 두영이 그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떼어 냈다. 미운 청개구리는 두영을 빤히 쳐다보면서 계속해서 배를 꾹꾹 눌렀다. 두영이 어떻게 나올지 반응을 살피는 그의 얼굴은 얄미울 정도로 장난스러웠다.

“하지, 마.”

입술을 오물거린 두영이 옆자리로 넘어가려고 허벅지에 힘을 주고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홍승표가 때를 기다린 것처럼 두영을 퍽 주저앉혔다.

“아윽……!”

“어딜 가.”

기어이 눈물을 흐르게 만든 홍승표가 두영의 셔츠 자락을 들쳐 입에 물게 했다. 두영은 엉덩이를 움찔움찔 떨면서 홍승표의 성기를 조였다. 배꼽 아래가 기이하게 튀어나왔다. 홍승표는 옅은 색의 젖꼭지를 빨면서 말했다.

“하아… 세게 박아 주면 조이는 거야?”

“너무… 흐읏, 기, 깊어…….”

“깊어? 근데 이렇게 박아 주면, 더 빨리 느끼잖아.”

두영은 냉큼 부정했지만, 홍승표가 탁탁 쳐올리기 시작하자 아랫입술을 말아 물고 신음을 참았다. 거부할 수 없는 감각이 배 안쪽 중심부터 고르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자지 끊어질 것 같아.”

“아앗, 으응… 하아…….”

“자지 맛있어?”

두영은 주절거리는 홍승표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입을 맞췄다. 그러자 난폭한 몸짓이 우뚝 멈추었다. 두영은 극단적인 쾌감의 여운을 좇아서 허리를 낭창낭창하게 흔들었다.

의자를 뒤로 젖힌 홍승표가 두영이 하는 짓을 지켜보았다. 두영은 그의 배를 짚고 앞뒤로 엉덩이를 흔들었다. 안에 박힌 성기가 내벽 어딜 건드려도 기분 좋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움직이면…….

“으아!”

홍승표가 예고도 없이 체위를 바꾸었다. 두영은 그의 체온으로 달궈진 가죽이 맨살에 닿자 포근함을 느꼈다. 그러나 종마처럼 아래를 들쑤시는 홍승표에 의해 자세에 적응할 새도 없이 할딱거리며 울어야 했다.

두영은 좁은 우리에 갇힌 듯한 느낌에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외투를 벗던 홍승표는 먼저 안겨 오는 두영을 자연스럽게 받아 주며 입술을 간지럽게 맞대고 속삭였다.

“오늘 왜 이렇게 예쁘게 굴지?”

홍승표가 혀를 내밀자 두영은 제 혀를 그의 혀에 서슴없이 비볐다. 창피하거나 더럽지 않았다. 타인의 체액이 불쾌하지 않은 건 서로밖에 없었다.

애초에 홍승표는 남의 침을 먹는 건 오물을 먹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과거의 저를 비웃듯이 두영의 입 안을 지저분하게 빨았다. 녀석의 몸에서 나오는 물이란 물은 전부 삼키고 싶었다.

“네 몸 우물 같아.”

혹은 젤리 같았다.

“내가 이렇게 만든 거야.”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음산했다. 그는 두영의 다리를 어깨에 걸치고 큰 덩치로 짓누르듯 파고들었다. 두영은 빈대떡이 될 것 같아 그를 밀어 냈지만, 홍승표는 더 매섭게 아래를 치고 들어올 뿐이었다.

그 순간 내장이 울릴 정도로 성기가 퍽! 꽂혀 들어왔다. 통증을 동반한 쾌감에 두영은 턱을 치들고 입을 벌렸다. 단말마의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홍승표가 또 한 번 성기를 퍽! 하고 찍었다. 흡사 말뚝을 박는 느낌이었다. 두영은 땀으로 젖은 홍승표의 몸뚱이를 엉망진창으로 밀었다.

“아읏! 승표야, 깊어! 깊……!”

“내가, 이렇게 만들었어.”

딴딴한 홍승표의 음경이 내장을 쾅쾅 찍는 빈도가 늘었다. 두영은 차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려 불안했다. 그렇게 만든 주범이 홍승표인데 지금 상황에서 의지할 사람도 홍승표뿐이었다.

두영은 그의 목을 동아줄처럼 끌어안고 안정을 찾았다. 두영의 성기에서 묽은 정액이 질질 나왔다. 홍승표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칠게 아래를 쩌억쩌억 찍어 눌렀다. 바르작대던 두영이 경련하듯 들썩였다.

“그만……! 젭, 아윽! 아아!!”

“내 거야. 내 거라고.”

두영은 세뇌당한 사람처럼 홍승표의 말에 고개를 끄덕댔다. 그러다 속으로 생각한 말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 나갔다. 자신이 뭐라고 했는지 내뱉는 순간 까먹었지만, 홍승표의 눈빛은 선물 받은 아이처럼 이채가 감돌았다. 두영은 그의 밤하늘 같은 눈동자를 물끄러미 보다가 그 눈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

습한 자동차 안은 두 사람분의 숨소리와 두 사람분의 심장 소리만이 유일했다. 그것만 있어도 모자람 없이 벅찼다.

***

집이 불에 탄 이후로 두영은 홍승표의 집에서 지냈다. 자주 드나든 집이라 어색함이 없었으나 홍승표가 너무 엉겨 붙어 곤란할 뿐이었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사람이길 포기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홍승표는 시도 때도 없이 아랫도리를 세웠고, 두영은 몇 번이든 그를 품어 주었다. 옷을 입고 있을 때보다 맨몸으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엉덩이 사이는 늘 부어 있어 갓 걸음마를 뗀 아기처럼 아장아장 걸어야 했다.

눈을 뜬 두영은 통유리로 보이는 하늘의 색으로 시간을 파악했다. 대충 다섯 시간은 잔 것 같은데 그래도 피곤했다. 자기 전에 홍승표와 나눈 정사 때문인 것 같았다.

손 마디로 눈두덩을 문지른 두영은 천장을 향해 팔을 뻗었다. 며칠 전에 홍승표가 남긴 잇자국이 도통 사라지지 않았다. 짐승에게 이갈이를 당한 것 같았다.

두영은 옆을 힐끗 보았다. 홍승표가 엎드린 자세로 두영의 허리에 한쪽 팔을 올려 둔 채 자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홍승표의 자는 모습이었다.

두영은 잠시 그의 얼굴을 구경했다. 항상 함께 잠이 드는 것 같은데 요즘 그는 부쩍 피곤해 보였다. 눈 밑에 그림자가 져서 전보다 한층 서늘했다. 입 동굴이 보이게 웃어도 퇴폐적인 느낌을 숨길 수 없었다.

문득 예전에 그의 형이 말했던 수면제가 떠올랐다. 약과 관련된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썩 유쾌한 내용이 아닌 것 같아서 물어보지 않았다. 꿈의 세계가 있다면 그는 추방당한 존재 같았다. 무엇이 그를 현실에서 떠돌게 하는지 궁금했다.

두영은 홍승표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가 혹여나 그를 깨울까 봐 다시 거두었다. 목이 말랐다. 제 배 위에 얹어진 그의 팔을 쥐고 조심스럽게 옆에 내려놓았다.

“뭐 하는 거야?”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두영이 화들짝 놀라며 옆을 돌아봤다. 홍승표가 까마득한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어쩐지 잘못을 저지른 기분이라 두영은 더듬더듬 대답했다.

“무, 물… 목말라서…….”

홍승표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두영을 보다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곤 자기 얼굴을 쓸었다. 그는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있어. 내가 가져다줄게.”

두영은 일어나려는 홍승표를 붙잡고 도로 눕혔다. 홍승표는 풀썩 누워서 두영을 의미심장하게 보았다.

“내가 갈게. 너는 계속 자.”

무표정하게 있던 홍승표가 피식 웃었다. 그는 두영을 이불째로 끌어안았다.

“나는 네가 또 하자고 유혹하는 건 줄 알았어.”

두영은 난처하게 눈을 끔뻑였다. 그렇게 해 대고도 홍승표는 늘 모자란 사람처럼 굴었다. 척이 아니라는 점이 가히 무서웠다.

한참 만에 그의 품에서 벗어난 두영은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생수 하나를 꺼내 물을 꼴깍꼴깍 마시며 냉장고에 채워진 것들을 곁눈으로 훑었다.

며칠 전부터 냉장고에 아무도 마시지 않는 흰 우유가 고정적으로 있었다. 변덕이 심한 홍승표가 우유를 입에 대지 않은 지 꽤 되었다. 당연히 배달도 진작 끊은 상태다.

물을 가득 머금은 두영은 우유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날짜가 아슬아슬했다. 나중에 저가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냉장고 문을 닫았다.

남은 물을 머그잔에 가득 따라 소파 뒤쪽으로 향했다.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은 새로운 침대가 자리를 차지했다. 매트리스는 복층에 있는 것과 같은 브랜드지만, 프레임은 달랐다. 훨씬 높고 훨씬 튼튼했다.

두영은 며칠 전 홍승표에게 침실을 왜 바꾸는지 물었고, 그는 기분 전환이라고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마치 미리 생각해 둔 대답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두영은 그가 대답을 회피하는 것 같아서 호기심을 빠르게 접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생긴 비밀이라면 저도 마땅히 거들어야 했다.

두영은 빨래 더미처럼 늘어져 있는 홍승표에게 머그잔을 건넸다. 홍승표가 씩 웃으며 컵을 받았다.

“고마워.”

다정한 인사에 두영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을 들어도 제게는 사치스러운 말 같았다. 침대에 걸터앉은 두영은 다리가 저려 통통 두드렸다. 협탁에 컵을 내려놓은 홍승표가 두영의 다리를 자기 허벅지에 걸치고 적당한 힘으로 종아리를 주물렀다.

“아파?”

두영은 냉큼 고개를 내저었다. 원래 옛날부터 비가 오거나 날이 추워지면 왼쪽 발목과 손목이 저렸다. 왼손잡이라 무게중심도 왼쪽으로 쏠려서 그런 것 같다고 대충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상처도 더디게 나았다. 손은 습관적으로 사용해서 그렇다 치지만, 발목은 왜 안 났는지 모르겠다. 의사 선생님이 재활까지 갈 필요 없다고 했는데, 이러다가는 재활치료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다행인 건 흉터가 그리 심하지 않다는 거다. 왠지 홍승민에게 속은 기분이었다.

두영은 다리를 내리려고 했지만, 홍승표가 잡고 놔주지 않았다. 저는 괜찮은데 홍승표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가 무얼 걱정하는지 몰라 두영은 더 괜찮은 척했다. 홍승표는 두영을 빤히 바라보다가 당연한 수순처럼 입술이 포갰다. 키스는 다음 행위로 향하는 촉진제일 뿐이었다.

기척을 느낀 홍승표는 선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은 새벽 4시. 두영이 활동할 시간이다.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두영에게 눈길을 주었다. 두영은 위아래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었다. 홍승표가 정사 후 기절한 두영에게 입혀 준 옷이었다.

두영은 느린 걸음으로 집 이곳저곳을 터벅터벅 거닐었다.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홍승표는 앞에 걸림돌이 없는지 주시했다. 벽에 부딪힐 것 같으면 슬쩍 방향을 틀어 주고, 발에 무언가가 걸릴 것 같으며 옆으로 치워 주었다.

두영의 몽유병 증상으로 그는 몇 가지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생각보다 녀석의 시력은 많이 안 좋았고, 야맹증도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는 거의 장님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의식이 없는 상태라 그런 걸 수도 있었다. 홍승표는 목 안으로 조용히 웃었다. 어째 허두영은 멀쩡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두영과 산책하는 기분으로 넓은 집을 돌아다녔다. 녀석을 보면서 뒤로 걸을 때도 있었고, 나란히 앞을 보며 걸을 때도 있었다.

이제 슬슬 녀석의 출근 시간이었다. 홍승표는 냉장고에서 우유 하나를 꺼냈다. 허두영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뻔한 일과 더불어 반복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있었다. 그는 후자가 가장 신경 쓰였다.

오늘로 다섯 번째.

녀석은 이 맨션으로 우유를 배달했다.

홍승표는 현관문을 열고 나간 두영에게 우유를 안겨 주었다. 우유를 소중하게 품은 녀석은 전실을 왔다 갔다 돌아다녔다.

엘리베이터 문에 기대고 선 홍승표는 평소와 다름없는 두영의 동선을 지켜봤다. 혹시나 녀석이 다칠까 봐 전실에 있는 화분과 자전거는 치워 둔 상태였다. 비상구 계단도 열리지 않게 잠금을 걸어 놨다. 창문도 찬 바람이 들어올까 봐 꼭꼭 잠가 두었다.

허두영은 흐느적거리면서도 맨발로 대리석을 잘도 밟고 돌아다녔다. 다음에는 카펫을 깔아 줘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새롭게 추가된 두영의 동선에 홍승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두영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 했다.

홍승표는 민첩하게 버튼을 손으로 가렸다. 두영은 애꿎은 그의 손바닥만 꾹꾹 눌렀다. 홍승표는 두영이 의식 없는 상태임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무랐다.

“이건 안 돼.”

“…….”

두영은 포기하지 않고 그의 손바닥을 계속해서 꾹꾹 눌렀다. 누구의 인내심이 강한지 알아보는 눈치 싸움이 시작되었다. 입술을 오물거린 두영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치고 다음 패턴으로 넘어갔다. 현관문 앞으로 걸어가 우유 주머니를 찾는 일이었다.

유유히 다가온 홍승표는 능숙하게 우유를 받아 주며,

“고마워.”

라고 겸사겸사 감사도 곁들였다.

허두영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고마워.’라는 말에 낯을 가렸다. 홍승표는 희미하게 올라간 두영의 입꼬리를 나른한 눈길로 보다가 저도 모르게 입술을 매만졌다. 그러자 두영이 힘없이 무너졌다.

익숙하게 두영을 받은 홍승표는 찬 바닥에 털썩 앉아 현관문에 등을 기댔다. 이곳이 마지막 배달지인 건 잠결에도 변함이 없는 모양이었다. 항상 그가 우유를 받고 나면 두영의 고단한 새벽 일도 끝이 났다. 홍승표는 붕대가 감긴 두영의 발목을 손으로 감쌌다. 이렇게 빨빨거리니 안 낫는 게 당연했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홍승표의 표정이 일순 씁쓸해졌다. 저로 인해 허두영이 다쳤다고 생각하면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진정제를 맞고 쓰러져 있는 동안 녀석이 죽었을까 봐 미쳐 버리는 줄 알았다.

그리고 허두영이 깨어났을 땐 평생 이 상처가 낫지 않기를 바랐다. 뻔뻔하다고 욕을 해도 상관없었다. 허두영이 아닌 인간들이 하는 말에는 관심 없었다. 진심으로 녀석이 절름발이가 되어 제 울타리에서 삶을 영위하길 바랐다. 추잡한 욕망이 제 안에 한계도 모르고 가득가득 들어찼다.

두영의 발이 차가웠다. 홍승표는 자기 성찰을 끝내고 이만 집에 들어왔다. 두영을 침대에 내려 준 그는 두영의 더러운 발을 닦아 주기 위해 마른 수건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세면대 물을 틀고 수건을 적셨다.

홍승표는 문득 제 손목을 보았다. 수갑으로 인해 생긴 상처는 흉터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범상치 않은 회복력은 전혀 달갑지 않았다. 제 불찰로 인해 생긴 상처였는데 허두영은 자기 탓을 했다. 딱히 정정해 주지 않았다. 허두영이 주는 관심은 다디달았다. 철딱서니 없이 계속 걱정을 끼치고 싶었다.

그는 젖은 수건을 들고 나왔다. 얼핏 시야에 무언가가 걸렸다. 고개를 든 홍승표는 멈칫했다. 제일 높은 계단 끄트머리에 두영이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녀석의 새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런 변수가 생길 거라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을 때 알아차려야 했다. 저 높이에서 잘못 떨어졌다간 바로 뇌진탕이었다.

홍승표는 발소리를 죽인 채 다가갔다. 첫 번째 계단을 밟고, 두 번째 계단을 밟았다. 그때 불안하게 흔들리던 두영의 몸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그는 재빨리 몸을 날려 두영을 감쌌다. 쿵 소리가 높은 천장까지 울렸다. 등으로 떨어진 홍승표는 일순 숨이 안 쉬어졌다. 아득해지는 정신에 힘을 주고 급히 두영을 살폈다. 느리게 눈을 깜빡인 두영은 흐리멍덩한 얼굴로 주변을 보았다. 무슨 상황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왜 여기에…….”

그러다 제 아래 깔린 홍승표를 발견하고 눈을 끔뻑였다.

“승표야, 왜…….”

순간 두영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홍승표는 제 품에서 벗어나려는 두영을 붙잡았다. 두영이 심각한 표정으로 버둥거리는데도 홍승표는 두 팔로 두영을 속박하고 도망가지 못하게 막았다.

“병원… 제발 승표야, 이거 놔 봐… 제발……!”

그제야 홍승표는 두영이 왜 이리 겁에 질려 있는지 알아챘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자기 머리를 더듬었다. 이쯤 부딪혔으니 피도 여기서 흐를 것이다.

“괜찮아. 안 죽어.”

놀란 녀석을 달래 주려고 한 말인데 되레 눈물을 뚝뚝 흘린다. 홍승표는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왜 울어? 어디 부딪혔어?”

두영은 그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부분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다친 사람은 홍승표인데 정작 두영이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였다.

홍승표는 그런 두영을 습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허두영이 느끼는 불안함이 애틋해서 불순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자기 몸을 담보로 타인의 관심을 끄는 이들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이 정도의 격한 반응이면 피를 흘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두영이 피가 묻은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미간을 구긴 홍승표가 단번에 일어나 앉아 두영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주었다. 두영은 그의 손길을 밀어 내고는 소매를 당겨 피를 지혈했다. 몇 번이나 병원에 가자고 말했지만, 홍승표는 못 들은 척 무시하며 두영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마, 많이 어지러워?”

“응, 어지러워.”

“그럼 이진우… 이진우 선생님 부르자. 응?”

홍승표가 돌연 피로 젖은 얼굴을 들었다. 서늘한 분위기를 풍긴 그가 두영을 턱을 붙들고 말했다.

“언제 둘이 그렇게 친해졌어?”

“피가… 너무 많이…….”

“내버려 둬. 죽기보다 더하겠어.”

일부러 모난 말을 내뱉자 두영의 눈동자가 유리 파편처럼 흔들렸다. 두영은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내렸다. 더 이상 옷 소매가 피를 흡수하지 못할 정도로 젖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윗옷을 벗어 그의 뒤통수를 감쌌다.

홍승표는 눈앞에 있는 젖꼭지를 날름거리며 빨았다. 두영은 연신 움찔거리며 한 손으로는 지혈하고, 다른 손으로 그를 밀었다. 계속되는 거부에 홍승표는 두영을 깔아 눕히고 양 손목을 머리 위로 결박했다. 한참 동안 눈맞춤을 나누던 그가 나직이 읊조렸다.

“거부하지 마.”

피가 두영의 허연 몸뚱이에 뚝뚝 떨어졌다. 피 냄새에 그의 동공이 확장됐다. 홍승표는 버둥거리는 두영을 무시하고 작은 알갱이를 물고 빨았다. 두영이 숨도 못 쉬고 흐느끼자 그는 옅은 살갗 위에 입술을 문지르며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입을 맞추며 직접적으로 호흡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만 울어.”

“어서… 치료하자…….”

두영이 가엽고 애처롭게 애원했다. 홍승표는 미간을 안타깝게 찡그렸다. 지금 느끼는 기분은 세상에 있는 어느 단어로도 감히 설명할 수 없었다.

“알았어… 갈게.”

그는 뚫린 입으로는 간다고 말했지만 두영의 입술을 집요하게 핥을 뿐이었다.

두영의 얼굴이 차가운 쪽빛으로 물들었다. 동이 떠오르고 있었다.

홍승표는 기어코 이진우를 부르지 않았다. 멀쩡하지 않은 상태로 운전하려는 모습에 두영은 기겁하며 택시를 불렀다. 이른 아침 문을 연 병원이 없어서 응급실로 향했다. 도착하고 돌아본 서로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얼굴과 손이 피범벅이었다. 누구의 피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홍승표는 후두부 쪽을 세 바늘 꿰맸다. 두영은 창백한 얼굴로 제 옷을 움켜잡았다. 심장이 난도질당하는 기분이었다.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는 홍승표는 어딘가 지쳐 보여 목이 멨다.

치료가 끝났지만 두영은 미처 그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어야 했다. 홍승표는 덩그러니 서 있는 두영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기다렸다. 두영은 발이 땅에 달라붙은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린 홍승표가 침대에 걸터앉은 몸을 일으켜 직접 거리를 좁혔다. 두영은 저도 모르게 한 발 물러났다. 잠시 멈칫한 홍승표의 얼굴에 한기가 드리워졌다. 큰 보폭으로 단숨에 거리를 좁힌 그가 두영의 팔뚝을 덥석 붙잡았다.

“뭔데. 장난치지 마.”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너 때문 아니야.”

“나 때문에…….”

두영은 눈도 못 마주치고 자책했다.

세 바늘.

이주학도 세 바늘을 꿰맸다. 이주학이 저를 통해 홍승표에게 살을 날린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저는 홍승표 옆에서 배를 채우고, 따뜻한 곳에서 잠이 들고, 바보처럼 웃고 지냈다. 이주학은 살아서 저를 못살게 굴더니 죽어서는 홍승표를 괴롭혔다. 이건 다 저 때문이었다.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건조한 입술이 하염없이 같은 말만 반복했다. 홍승표는 무표정하게 두영을 내려다보다가 손을 잡고 병원에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찬 바람이 옷 안쪽으로 기어들어 왔다.

홍승표는 외투를 벗어서 두영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피차 집에서 급하게 나오느라 둘 다 얇게 입었다. 두영은 저만 따뜻해지기 싫어서 거부했다. 홍승표는 입으로 뱀 소리를 짧게 내고는 기어코 지퍼까지 채워 주었다.

겨울 동안 내리지 않았던 눈이 봄에 들어서서 미련을 흩날렸다. 벚나무는 만개했지만, 일교차란 뒤통수를 처맞고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었다.

홍승표는 두영과 함께 카페로 들어가 몸을 녹였다. 구석진 자리라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았다. 두영은 주문을 하고 오겠다는 홍승표를 붙잡았다. 홍승표는 도로 옆자리에 앉아 차가운 두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여기 케이크 신상 나왔대.”

그의 말에 두영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테이블에 쓰여 있는 브랜드 이름을 발견했다. 그제야 홍승표가 간식을 자주 사 오던 케이크 집 체인점인 걸 알아차렸다. 그러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두영은 홍승표와 떨어지기 싫었다. 케이크는 나중에 먹을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두영은 홍승표의 품에 파고들어 그의 그늘진 턱선에 제 뺨을 비볐다. 잠시 굳은 채 있던 홍승표가 음습한 숨을 내뱉고는 두영을 마주 껴안았다.

“…나 버릇 들게 하지 마.”

이해하지 못할 말만 하는 홍승표가 두영의 목덜미에 입술을 꾹 눌렀다. 두영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따뜻한 몸에 안겨 있어도 불안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두영이 병든 병아리처럼 몸을 떨자 홍승표가 뼈가 으스러질 만큼 안아 주었다. 두영은 옅은 신음을 흘렸다. 숨이 잘 안 쉬어졌지만, 그가 저를 해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기에 부정적인 생각이 희석되고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홍승표는 휴대폰으로 택시를 호출했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매장 케이크를 종류별로 구매했다. 누가 다 먹을지 뻔했기에 두영은 벌써 속이 매슥거렸다.

집에 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보슬보슬 내리던 비는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매섭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땅에 총알이 박히는 것 같았다.

집에 들어와 바닥에 묻은 피를 함께 치웠다. 홍승표는 자기가 치운다고 두영을 말렸지만, 두영은 저 때문에 흘린 그의 피를 제 손으로 치우고 싶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대충 배를 채우고 고양이처럼 서로 몸을 얽고 낮잠을 잤다. 빗소리는 하늘이 불러 주는 자장가였다. 서늘한 공기에 서로의 온기가 절실했다.

늦은 저녁. 한 통의 전화에 두영은 느지막이 잠에서 깨었다.

김춘녀가 죽었다는 비보였다.

***

삼일장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허삼혁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그 사람은 할머니가 떠난 줄도 모를 거다. 아마 돌아갈 집이 사라진 것도 모를 거다. 그냥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김춘녀가 생전에 술떡을 같이 빚던 박 씨와 농작물 주인 김 씨가 삼일장 내내 빈소에 남아 일을 거들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반듯한 정장을 입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모든 뒤처리를 대신 해 주었다. 맨션 수위 아저씨였다. 그는 아빠뻘처럼 보이는데 홍승표를 깍듯하게 대했다.

안면이 없는 조문객이 중간중간 얼굴을 비췄다. 생각보다 김춘녀가 알고 지낸 사람이 많았다는 것을 두영은 그가 세상에서 사라진 후에 깨달았다. 스물한 해 서로밖에 없는 것처럼 의지하고 살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두영은 그들의 위로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죄책감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행복해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겨서 박은식이 저 대신 할머니를 데려간 것 같았다. 어디선가 이주학이 비웃는 소리도 들렸다.

발인을 끝내고 김춘녀의 뼈를 안치했다. 한 줌밖에 안 되는 뼛가루는 숨 한 번 잘못 쉬면 흩날려 사라질 것 같았다. 그래서 품에 안고 놓아주지 못했다. 그 순간에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두영은 며칠째 이어진 두문불출에 날짜 감각이 사라졌다. 펜스테몬은 몇 번 빠지다 보니 습관이 되어 자주 안 나가게 됐다. 제 안에 숨어 있던 나태함이 서서히 덩치를 키우는 중이었다.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나 보다.

검은 머리 짐승은 쉴 틈도 없이 들어차는 죄책감 때문에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눈꺼풀이 자꾸만 감겼지만, 어떻게든 억지로 뜨고 있었다. 잠이 드는 게 무서웠다.

저도 모르게 재발한 몽유병은 몇 번이나 홍승표를 다치게 했다. 엄마가 떠난 순간에 나타나 자연스럽게 사라진 증상이었다. 그래서 없앨 방법을 몰랐다. 이번에도 시간에 맡길 뿐이었다.

그동안 홍승표가 피곤하고 지쳐 보였던 이유가 전부 저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살가죽이 처참히 뜯기는 기분이었다. 아픈 사람을 간호할 때는 피곤한 티도, 슬픈 티도 쉽게 내지 못했다. 혹시 홍승표도 그랬을까. 불안함이 제 안에서 연신 알을 까고 부화했다.

그래서 홍승표 앞에서만큼은 괜찮은 척 연기했다. 일부러 밖에 나가 활동도 하려 했지만, 홍승표는 자신이 밖에 나가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에 얌전히 있을 때 그의 피곤함이 조금은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가 단순히 그것으로 안정을 느낀다면 여지없이 그렇게 해 줄 것이다. 영원히 햇살 아래 제 그림자를 만들 수 없어도 좋았다.

두영은 바다에 떠 있는 듯한 흔들림을 느꼈다. 어느새 잠이 들어 무의식의 바다에서 표류 중이었다. 두영은 흐릿한 정신을 깨우고 눈을 떴다. 그에 침대에 두영을 내려 주던 홍승표가 나긋한 미소를 지었다.

“깼어?”

두영은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대다가 홍승표의 등 너머로 유리잔이 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입술을 깨문 두영은 곧바로 홍승표의 상태를 확인했다.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가는데 홍승표가 두영을 도로 침대 위에 올렸다.

“다쳐. 내려오지 마.”

두영은 문득 시선을 내렸다. 피로 찍힌 발자국이 보였다.

아… 내가 또…….

두영은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러나 바람이 통한 목구멍은 사막처럼 더 빨리 갈라졌다. 두영은 눈에 힘을 주고 달빛에 반짝이는 유리 조각을 노려보았다. 그때 홍승표가 커다란 손으로 두영의 눈 밑을 쓸었다.

“내가 실수로 깨뜨린 거야. 이상한 생각하지 마.”

실수를 잘 하지 않는 그가 실수까지 할 정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심장이 빠듯해지는 것 같았다. 두영은 덤덤한 척 고개를 끄덕이고 홍승표의 팔목을 잡았다. 그리고 침대에 끌어다 앉혔다.

“내가 치울게.”

홍승표는 두영을 지그시 응시했다. 두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하는 표정이었다. 장난스럽게 한숨을 푹 내쉰 홍승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 한 발짝도 안 움직일 거야.”

“응.”

“진짜 안 도와줄 거야.”

“응.”

“도와 달라고 해도 안 도와준다니까?”

“응.”

두영은 끄덕끄덕 고개를 흔들며 일관되게 대답했다.

“이게 아닌데.”

홍승표가 콧잔등을 살포시 찡그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두영은 결단을 내린 사람처럼 근엄하게 말했다.

“다치니까 내려오지 마. 여기서 기다려.”

“뒷말은 좀 서운하네.”

“그, 그럼… 잠깐만 기다려.”

어설픈 두영의 반응에 홍승표는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두영은 날쌘 동작으로 유리 파편을 치웠다. 치우는 내내 홍승표가 집요하게 쳐다봐서 굳이 안 치워도 될 곳까지 반짝반짝 닦고 쓸었다. 뒤처리까지 완벽하게 끝낸 두영은 손을 꼼꼼히 씻고 구급상자를 챙겨서 홍승표에게 돌아갔다. 맨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홍승표의 다친 발을 조심조심 살폈다.

한 손으로 그의 다리를 들기 벅찼는데, 다행히 홍승표가 두영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스스로 다리를 들었다. 게다가 센스 있게 휴대폰으로 라이트까지 비춰 주었다.

미간에 힘을 준 두영은 소독한 핀셋으로 발바닥에 박힌 유리 파편을 뺐다. 못 발견한 조각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제 얼굴보다 큰 발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얼굴을 들이대고 세심하게 살폈다. 집중하느라 입술도 뚱하게 앞으로 나왔다.

홍승표는 이 와중에 장난을 친답시고 발끝으로 두영의 이마를 간지럽혔다. 두영은 그가 장난을 치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제 할 일에만 집중했다.

완벽하게 유리 조각을 빼낸 두영은 편한 숨을 내쉬었다. 연고를 발라 주려다가 그새 손에 생긴 균이 상처에 옮을까 봐, 냉큼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씻고 돌아왔다.

꼼꼼하게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안 떨어지게 의료용 테이프도 둘둘 감았다. 겉으로 볼 땐 엉망이지만, 그 안에서 열심히 상처가 치료되고 있을 것이다.

치료를 끝낸 두영은 고개를 들었다. 홍승표가 나른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눈을 끔뻑인 두영은 머뭇머뭇 말했다.

“우유… 데워 줄까?”

“…….”

“꿀도 타서.”

홍승표는 두영의 겨드랑이 밑에 손을 집어넣고 자기 허벅지 위에 들어다 앉혔다.

“아니, 키스해 줘. 너 키스 좋아하잖아.”

“너, 너도 좋아하잖아……!”

저도 모르게 맞받아친 두영은 아차 했다. 홍승표의 입술 끝이 요사스럽게 올라갔다.

“맞아 나 키스 좋아해. 근데 키스만 좋아하는 거 아니야. 난 네 엉덩이 사이도…….”

두영은 냉큼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조금만 방심하면 홍승표는 듣기 민망한 말을 쏘아 부었다. 진한 미소를 흘린 홍승표가 두영의 손을 끌어 내리고 살짝 입을 맞췄다. 그리고 얼굴을 좌우로 움직였다.

간지러운 입맞춤에 두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달빛을 등진 홍승표의 얼굴은 짙은 그림자로 얼룩졌지만, 눈빛만큼은 별을 삼킨 까만 우물이었다. 은하수가 가득한 밤하늘이었다.

불현듯 두영은 눈을 내리떴다.

그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겠다.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두영은 홍승표의 뒤통수에 붙은 거즈 테두리를 손끝으로 살짝살짝 건드렸다. 듣는 사람이 홍승표 한 명밖에 없는데, 두영은 누가 숨어서 듣고 있을까 봐 잔뜩 소리를 죽인 채 말문을 텄다.

“네가 다친 건… 이주학이 나를 싫어해서야.”

홍승표가 진한 눈썹을 까딱거렸다.

“무슨 말이야? 걔 이름이 여기서 왜 나와.”

두영은 아무것도 모르는 홍승표에게 죄책감과 죄의식이 들었다.

“이주학은… 나 때문이라고 했어. 가난한 것도, 왕따인 것도, 박은식이… 죽은 것도…….”

가만히 듣고만 있던 홍승표가 두영의 말을 끊었다.

“이주학은 지독한 피해망상증에 열등감 덩어리였어. 네가 자기 뜻대로 안 움직여서 열이 뻗친 것뿐이야.”

“할머니가 돌아가신 건… 내가 박은식이랑 한 약속을 못 지켜서… 내가 행복해서…….”

“알아듣게 말해.”

“행복하면 안 되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

홍승표는 넋이 빠진 것처럼 중얼거리는 두영의 턱을 잡고 그를 직시했다.

“허두영, 정신 차리고 똑바로 말해.”

두영은 목이 뜨겁게 멨다. 할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 없었다. 저는 완전히 혼자가 되어 버렸다. 무당 누나가 말한 제 박복한 업보는 얼마나 크길래 다들 저만 두고 먼저 떠나 버리는 걸까? 저주 덩어리를 실체화하면 저 자신일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홍승표도 홀연히 사라질 것 같아 거듭 불안해졌다.

두영은 점성 짙은 홍승표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그를 깊게 끌어안았다.

태생부터 엉망인 저로 인해 홍승표의 삶까지 망가뜨리기 싫었다. 그는 그만의 인생을 살아야 했다. 그는 저를 구해 주기 위해 온 구원자가 아니다. 앞으로 홍승표가 저 때문에 피를 흘리지 않았으면 했다. 다른 이의 피도 손에 묻히지 않았으면 했다.

이를 뽑는다거나,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도,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것도…….

두영은 홍승표의 넓은 등을 쓸어 주며 마음속으로 그에게 사과했다. 저 따위에게 마음 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자신을 만나서 미안하다고.

가만히 쓰다듬을 받던 홍승표는 두영의 마른 등을 토닥였다. 얇은 목덜미에 얼굴을 깊게 파묻고 숨을 쉬었다. 고즈넉한 밤의 기운을 닮은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내가 니 죄책감의 일부분이야?”

아주 작은 반응도 하기 싫은 물음이었다. 두영은 냉큼 고개를 들고 홍승표와 시선을 맞췄다. 흔들림 없는 홍승표의 눈빛은 장난을 치는 것 같지 않았다.

“왜… 그런 말을 해?”

“나 때문에 박은식이랑 한 약속을 어긴 거잖아. 그렇게 따지면 네 집이 불에 탄 것도, 네 할머니가 죽은 것도 다 내 탓이지. 그 일이 아니었으면 밤마다 좀비처럼 걸어 다니지 않았을 테고.”

“아니, 야……. 그런 말 하지 마. 은식이는 날 구하려다가 대신…….”

홍승표가 코웃음 쳤다.

“그건 걔가 선택한 일이지 네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야. 아니면 네가 당했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두영은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당했어야 할 일.

만약 반항 없이 이주학이 시키는 대로 했더라면 은식이는 안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세상 어딘가에서 그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살고 있을지 모른다.

홍승표는 침착하게 느껴질 정도로 분위기를 가라앉혔지만, 턱 근육이 눈에 띄게 불거졌다.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은 최대한 독을 뺀 상태였다.

“자꾸 죽은 사람과 문제를 엮지 마. 박은식이랑 이주학은 네 죄책감이 만들어 낸 망상이야. 내가 다친 건 원래 일어날 일이었고 네가 후회해도 무르지 못해. 이주학은 죽는 순간까지 나한테 손가락 하나 대지 못했어.”

두영은 그의 입으로 듣는 이주학의 이름이 어색했다. 홍승민에게 전해 들은 것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홍승표는 두영의 입술을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너도 내가 이주학 죽이는 거 봤잖아.”

두영의 얼굴이 지반이 무너지는 것처럼 흔들렸다. 곧바로 표정을 관리했지만, 눈치가 빠른 홍승표는 이미 두영의 표정에서 모든 걸 읽었다.

두영은 홍승표가 저를 구하러 왔을 때 정신이 흐릿하게나마 돌아왔다. 그리고 이주학을 불판에 고기 굽듯이 으깨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목소리를 낼 기력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그를 말리지 않았다.

자신은 홍승표가 손을 더럽히는 걸 동조했다.

갑자기 두영은 속이 뒤집혔다. 저를 향한 구역질이었다. 급히 화장실로 달음박질했다. 뒤따라온 홍승표가 두영의 등을 토닥이며 나긋한 목소리로 달랬다.

“괜찮아. 널 책망하는 게 아니야.”

무엇에 대한 책망인지 두려웠다. 그의 살인을 방관한 것에 대한 책망인지, 할머니의 목숨을 포기한 것에 대한 책망인지.

두영은 끔찍한 자기혐오를 느꼈다. 추잡한 속내가 나날이 드러났다. 발가벗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세상의 모든 손가락이 저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얍삽하게 그의 뒤에 숨어 더러운 짓은 다 하고 있었다. 박은식뿐만 아니라 이주학도, 할머니도 전부 저가 죽인 거다.

다시 변기통을 부여잡고 토했다. 뱃가죽이 등에 닿을 만큼 전부 쏟아 냈다. 불투명한 위액이 목구멍을 찢으며 나왔다.

겨우 진정한 두영이 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떠내려가는 토사물을 보았다. 홍승표는 두영의 등을 쓸어 주며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살인자라서 싫어?”

두영의 숨결이 거친 비바람처럼 휘청거리듯 떨렸다. 홍승표가 무슨 의도를 품고 저런 질문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가끔 심기가 뒤틀린 홍승표는 의도적으로 저를 떠볼 때가 있었다. 지금이 그런 상황인 것 같았다.

자신이 동조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홍승표는 모든 결과를 본인에게 덮어씌웠다. 제 죄책감 일부분도 못 본 척 지나갔다. 그 모습이 오싹하고 같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미워할 수 없었다. 모순된 감정이 통제권을 넘어설 만큼 넘실댔다.

“네가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죽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이주학은 원래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갈 운명이었어. 너와 같은 과거를 공유했다고 해서 똑같은 길을 가지 않아.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어. 모두 죄를 안고 태어나는데 감히 누가 너를 더럽다고 욕해. 감히 누가 너를 원망하냐고.”

뼈를 후려치는 말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공기 중 잔여물처럼 부유했다. 두영은 입을 꾹 다물고 눈을 내리떴다. 동굴 속에 있는 듯한 고요함이 답답했다.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자 홍승표가 두영을 도로 끌어다 앉혔다. 그는 두영의 턱을 쥐고 강제적으로 시선을 맞췄다.

“날 원망해?”

떠보는 게 특기인 홍승표가 마지막 질문을 시험하듯 던졌다. 원하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집요하게 쳐다볼 홍승표였다. 잠시 굳어 있던 두영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에 홍승표의 입술이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내가 이주학이랑 다를 게 뭔데. 똥개 새끼 한 번 따먹겠다고 협박까지 했는데.”

“아니야…….”

“날 한 번도 원망한 적 없어?”

두영은 그의 옷단을 절박하게 움켜쥐었다. 홍승표는 두영의 손을 떼어 내고 대답을 재촉했다.

“피하지 마. 언제까지 피할 수 없으니까. 할 말 없을 때 눈 피하는 버릇도 고쳐.”

두영은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었다. 빨리 제 생각을 홍승표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기도와 식도가 달라붙은 것처럼 목구멍이 조여들었다. 연이어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손가락이 안으로 굽어 들어갔다.

결국 두영은 입을 뻐끔거리는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반응에 홍승표는 한숨을 길게 늘어뜨리며 읊조렸다.

“못 했던 거겠지.”

만약 세상으로부터 허두영이 고립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녀석의 앞에 있는 건 자신이 아닐지도 몰랐다.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단단한 자아를 갖췄더라면 녀석은 제 품에 안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허두영의 불우한 인생과 결핍이 좋았다. 오직 저만 녀석을 이해하고 받아 줄 수 있었다. 녀석이 저를 원망해도 상관없었다. 이미 되돌리기엔 한참 멀리 왔다.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두영을 비릿한 시선으로 보다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켜 욕실 밖으로 나갔다. 목이 메는 갈증에 냉장고 문을 열고 생수를 꺼냈다. 어느새 그를 따라 나온 두영이 거실 한복판에 위태롭게 섰다.

“원망… 안 해. 나는 널… 원망한 적 없어.”

꾸역꾸역 말하는 두영의 목소리가 중심 없이 흔들렸다.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는 두 손이 앞섶을 처량하게 붙잡고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못, 한 것도 아냐……. 그냥 한 적 없…….”

울컥 뜨거운 것이 목을 비집고 넘어오자 두영은 입을 다물었다. 홍승표가 냉장고 문을 닫고 두영에게 다가갔다. 그는 축축하게 젖은 두영의 뺨을 닦아 주고 품으로 잡아당겼다. 두영은 그의 두꺼운 어깨에 턱을 얹었다.

“정말… 원망한 적 없어…….”

“응……. 알아.”

“이, 이주학이랑 너는… 달라.”

처음 홍승표를 보았을 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하늘에 닿지 못하듯이, 바다에서 숨을 쉴 수 없듯이, 홍승표는 제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처음, 그가 제게 손을 뻗었을 땐 두려움에 숨이 안 쉬어졌다. 시간이 조금 흘러서는 먼저 닿고 싶어도 그가 멀리 있는 존재처럼 느껴져 허망했다. 그건 완벽하게 분리된 하늘과 땅이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저와 한 공간에 있다. 자신이 꿈결을 헤매고 있을 때 그는 길동무가 되어 주었고, 저가 슬픔에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그는 기댈 수 있는 나무처럼 곁을 내주었다.

봄날의 새순이 돋아나는데 그 이유를 물을 사람은 없다. 좋아하는 마음이 피어나는 건 당연한 이치였고, 그 수순을 거스르는 불씨는 작디작았다.

그렇지만 애정의 증명은 차고 넘쳤다.

햇빛을 가려 주는 손차양.

언제부터 항시 켜 두는 거실 형광등.

내색하지 않고 먹어 주던 할머니의 한강 라면.

신발을 내어 주고 흙탕물을 밟은 맨발.

밤새 해 주던 병간호.

복숭아 통조림.

수두룩한 증명을 무시하기엔 홍승표의 마음은 선명했고 자신은 애정이 고팠다. 제 나약함을 홍승표가 알아 주었으면 했고, 모른 척해 주길 바랐다. 그리고 용서해 주기를 빌었다.

“그냥, 덜 익은 당근 같은 거야.”

홍승표의 묵직한 목소리에 두영은 바스락대며 고개를 들었다. 창 너머를 고요히 응시하는 그의 옆얼굴이 보였다.

“가난해도 싫어하는 반찬을 남길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일이 있었다고 움츠러들 필요 없어.”

“…….”

“그런데도 분별없는 말로 널 희롱하는 새끼들이 생기면…….”

홍승표는 두영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다 죽일게. 하나도 빠짐없이.”

그의 맹세에 두영은 기어이 서러움을 터뜨렸다.

그 후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두영은 한바탕 울고 나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속이 허해서 손 떨림도 심해졌다.

두영은 홍승표와 함께 패밀리 사이즈 아이스크림을 포크로 퍼 먹었다. 홍승표는 두영이 직접 먹여 주는 것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받아먹었다. 그래서 그가 단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사실을 두영은 한참 뒤에 알았다.

그 후로 미안해서 단 음식을 절대 권하지 않았으나, 이미 버릇이 든 홍승표는 두영이 뭐를 먹기만 하면 옆에 달라붙어 아기 새처럼 입을 벌렸다. 비록 남의 알을 떨어뜨리는 뻔뻔한 뻐꾸기 새끼였지만, 두영은 알 길 없었다. 제 눈에는 아기 새가 맞았다.

나란히 거울을 마주 보고 양치질을 했다. 두영은 입을 헹구다가 문득 홍승표에게 오목눈이가 뭐냐고 물었다. 물을 머금은 홍승표는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대답을 미뤘다. 헹군 물을 퉤 뱉은 그가 담백한 어투로 답했다.

“맹금류.”

두영은 예상치 못한 답변에 눈을 깜빡였다. 오목눈이 정체가 새였다는 것보다 맹금류란 말이 더 놀라웠다. 세상 만만하게 생긴 자신이 맹금류라니. 알고 보면 날렵했던 건가? 두영은 괜히 눈에 힘을 주고 거울 속의 자신을 노려보았다.

양치질을 끝낸 홍승표가 밖으로 나가 휴대폰으로 오목눈이 사진을 굳이 찾아서 보여 주었다. 두영은 홍승표의 휴대폰을 조몰락거렸다. 처음 본 오목눈이는 꽤 똘망똘망하게 생겼다.

오목눈이가 천연기념물 황조롱이로 둔갑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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