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1989년 9월. 문위(文偉) (3/129)

3. 1989년 9월. 문위(文偉)

“와, 삼겹살이다! 오빠, 오늘 삼겹살 파티 하는 거야?!” 

공부 중이었는지, 파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연필을 쥔 그대로 대문을 열어준 혜윤이가 기쁜 듯 탄성을 질렀다. 자신만큼 고기를 좋아하는 혜윤이라서인지, 가끔씩 사 들고 들어가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그래. 휘(輝)는 들어왔냐?”

“어, 지금 숙제하나 봐.”

“샤워할 동안 밥 좀 차려줄래? 오늘은 밤 아르바이트 있는 날이니까 좀 일찍 먹자.”

“응! 작은오빠도 아까부터 배고프다고 그랬는데 잘됐네. 금방 준비할 테니까 빨랑 씻고 와, 오빠.”

남자와의 약속이 있는 금요일이라 위는 저녁 8시까지 계속되는 보충 수업을 그만두고 일찍 귀가했다. 개학을 한 탓에 오후 시간은 자연스레 밤 시간대로 조정했다.

나머지 고객인 다른 두 명의 여자들과는 월요일에 한꺼번에 만나고 있었으므로, 금요일은 위에겐 그 한 주의 고비라고도 말할 수 있는 날이었다. 오늘만 무사히 마치면 자유로운 주말이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부터 권태와 무력감이 피크로 치솟는 금요일을 위해 위는 좋아하는 음식들로 스스로에게 격려를 주고 있었다.

학교 근처 재래시장에서 산 삼겹살 세 근과 상추며 풋고추들을 혜윤이에게 던져주고 위는 갈아입을 옷을 꺼내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왔어, 형?”

책 배낭을 방바닥에 내려놓자 등을 돌린 자세로 책상에 달라붙어 공부 삼매경에 빠져 있던 휘가 엉거주춤 일어서며 싱겁게 웃는다.

“그래. 삼겹살 사 왔으니까 밥 먹자.”

“야아!”

이가 다 드러날 정도로 웃는 휘는 이젠 제법 얼굴에서 어른 티가 난다. 아직 중 2인데도, 위가 그랬던 것처럼 벌써 키가 180cm에 육박한다. 물론 얼굴 표정이며 생각은 여전히 애지만. 휘보다 고작 한 살 아래일 뿐인 혜윤이가 아직 160cm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걸 보면 집안이 남자만 거구인 게 내력인가 보다.

깨끗이 세탁된 속옷과 함께 티셔츠와 청바지를 들고 현관 옆, 창고처럼 붙어 있는 세탁실로 들어갔다. 총 평수가 열 평에도 채 미치지 못할 두 칸짜리 반지하 방에서 유일하게 만족스러운 공간이 있다면 이 세탁실(겸 보일러실)이다. 변소는 1층에 있는 공동 변소를 쓰고 있지만 찬물과 더운물이 모두 나오는 이 자그마한 공간은 겨울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세 계절 동안은 집에서 몸을 씻을 수 있게끔 해주었다. 하루라도 샤워를 하지 않으면 두드러기라도 난 것마냥 온몸이 근질거리는, 반결벽증이 있는 위에게는 그야말로 고마운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제법 가을 분위기를 내며 날씨가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졌지만 아직 더운물 샤워를 할 정도까지는 아니라서 대충 찬물로 몸을 닦고 현관 안으로 들어가니, 혜윤이가 주방 싱크대 앞에 상을 차려놓고 있었다.

“고기 구워야 하니까 방에서 먹는 게 좋겠지, 오빠?”

혜윤이라면 몰라도 커다란 덩치 둘이 함께 모여 앉기엔 주방(겸 복도)은 너무 비좁다. 고개를 끄덕인 위는 같이 들자는 혜윤이를 무시하고 밥상을 번쩍 들어 올린 다음, 방 두 개 중 그나마 큰방인(위와 휘가 함께 쓰고 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함께 썼던 작은방은 혜윤이 차지) 안방으로 들어갔다.

된장찌개와 김, 그리고 김치까지 곁들인 고기상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 아닐 수 없다. 밥상 옆에 신문지를 깔고 부탄가스 버너를 놓은 다음 혜윤이와 휘가 번갈아 고기를 구워 부지런히 상에 올렸다. 허기진 삼남매는 세 근의 삼겹살이 거의 바닥이 날 때까지 정신없이 배를 채웠다.

언제나 그렇듯이 식사 도중 삼남매는 별로 말이 없다. 애정과 신뢰로 똘똘 뭉친 가족이건만, 식탁 위를 떠돌아야 할 유쾌한 웃음과 수다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형이 그렇게 가고,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한 엄마도 마치 형을 뒤따르기라도 하듯, 형이 간 지 두 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년 전, 위가 중학교 3학년이던 해였다.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를 맞고, 태어날 때부터 살아왔던 정든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빚쟁이들의 협박을 견디다 못해 집 뒤 야산에서 아버지가 목을 맨 것은 위가 국민학교 4학년이던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위는 가족의 불행은 노력 여하에 따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었다. 남겨진 사람들은 비록 재산과 남편과 아버지와 정든 집을 한꺼번에 잃어버렸지만 서로를 끔찍이도 아끼고 있었다. 엄마 역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든든한 보호 아래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을 정도로 곱게 살아왔던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억척스러운 또순이로 변해 온갖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해치웠다. 심지어는 보험 일을 하며 알게 된 거래처 남자들에게까지 몸을 팔아 악착같이 빚을 갚아나갔다.

물론 엄마에게 남겨진 4남매가 결코 무너지지 않게끔 힘을 주었을 터이다. 엄마가 몸을 판다는 사실은 위와 여섯 살 터울인 형, 강(剛)밖에 알지 못했지만, 4남매는 모두 엄마의 숨겨진 희생을 어느 정도는 자각하고 있었다. 특히 형, 강의 고통은 남달랐을 것이다. 사춘기로 막 접어든 무렵의, 무척 짧고 강렬했던 한동안의 방황을 거친 형이 대학에 들어가 운동권으로 전향하게 된 배경에는 엄마로 인한 울분이 커다란 몫을 차지하고 있었을 터이다.

아무튼, 그렇게 그럭저럭 자리가 잡혀가던 가족은, 강제 징집으로 군대에 끌려간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다시 한 번 회복 불능의 상처를 입게 되었다. 군대에선 자살이라고 발표했지만 엄마는 발표를 믿지 않았다. 위 또한 믿지 않았다. 한 달이 넘게 이곳저곳 사연을 들어줄 만한 단체를 찾아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하던 엄마는 마침내 그 어떤 몸부림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둘러서 화장된 형의 유골함을 붙들고 통곡에 통곡을 거듭하던 엄마는, 형의 죽음이 두 달째로 접어들었을 무렵부턴 아예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눈물조차도 메마른 삭막한 눈길로 멍하니 형의 사진을 들여다보기 일쑤였다. 다시 일을 시작하긴 했지만 이전의 극성스러움과 표독스러움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어린 삼남매는 잔뜩 겁에 질려 숨을 죽인 채 엄마를 감시했지만, 엄마는 절망을 이겨내기엔 지나치게 여렸고, 또 지나치게 약했다.

엄마가 실종된 지 사흘 후, 경찰은 아버지가 목을 맸던 그 야산의 바로 그 나무에 똑같이 목을 맨 엄마의 시신을 찾아주었다. 엄마에 대한 사랑과 슬픔보다도, 자신들을 버린 엄마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감에 한동안 몸을 떨었던 삼남매는 그날부터 여간해선 웃지 않게 되었다.

억척스러우면서도 끔찍한 애정으로 어린 삼남매를 웃겼던 엄마는, 저세상으로 가며 잔잔한 삶의 기쁨까지 훔쳐가버렸던 거다.

착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삼남매의 지주가 되어주었던 형은, 저세상으로 가며 미래에의 소박한 희망까지 끌고 가버렸던 거다.

두껍고도 묵직한 얼음이 소리 없이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미처 추위를 자각할 여유 따윈 없었다.

그저 살기 위해, 아니, 서로를 살리기 위해 남매는 헐벗은 몸 그대로 끝을 알 수 없는 막막한 여행길에 오르고 있었다.

“……근데 무슨 아르바이튼데 이렇게 늦게 시작해? 낮에 하는 걸로 바꾸면 안 돼, 형?”

“……낮에는 시간이 별로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중학생 과외 가르치는 일이야. 이번에도 교장 선생님이 추천해주셨거든.”

“아아…….”

저녁을 먹은 후, 부지런히 외출 준비를 하는 위를 말똥말똥 지켜보고 있던 휘가 버스 정류장까지 산보를 하겠다며 기어코 따라나서더니 위로선 대답하기 껄끄러운 질문들을 연거푸 던졌다. 자신에게 거는 희망과 기대가 남다를 어린 동생을 향해 몸을 팔고 있다고, 그것이 그나마 가장 수월하게 일을 하며 고액을 벌 수 있는 일이라고 정직한 대꾸를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사실을 알게 된다면, 형인 자신에게 사랑은 물론 절대적인 존경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어린 동생에겐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 될 테니까.

“……나도 아르바이트 할 수 있는데…….”

“해봤자 몇 푼이나 번다고 그래. 넌 아무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알바 한다고 나대다가 성적 떨어져서 행여 장학금이라도 놓치면 그게 더 손해야.”

“…….”

“지난학기 성적표 보니까 수학이 많이 떨어졌던데 열심히 하고는 있는 거야?”

“당근이지! 형은…… 까짓 10점 떨어진 거 갖고…….”

“10점이 15점 되고 15점이 20점 되는 건 순간이야. 평균 1∼2점에 전체 석차 10등이 왔다 갔다 하는 건 물론이고. 다행히 석차까지 떨어진 게 아니라서 그냥 넘어갔지만 이번에 중간고사에서 만회하지 못하면 가만 안 둔다?”

“씨, 그래서 여름방학 때 놀지도 않고 열심히 했잖아. 잔소리는…….”

“학원 보내줄 여유까진 없어. 알지? 네가 경쟁하는 애들은 학원은커녕 수십만 원 내고 고액 과외를 하는 애들이야. 지지 않으려면 그냥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

“안다니까…….”

“…….”

걸어서 15분 거리인 버스 정류장이 어느새 바로 코앞이었다. 시간은 막 7시를 넘어가고 있어, 거리는 하나둘씩 켜지는 가로등이며 상점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들로 환했다. 퇴근 시간이라서인지 오가는 버스마다 만원이었다. 한 시간 가까이나 만원버스에 끼어 시달리게 될 생각을 하면 그야말로 내키지 않는 여정이다. 버스에서 내린 이후의 세 시간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한다. 어쩔 수 없으니까 견디자고, 기왕 견디는 것 힘차게 맞서자고, 위는 안이해지려는 스스로에게 새삼 냉정한 채찍질을 가했다.

“……힘들면 차라리 우릴 버려, 형.”

버스가 오나 고개를 빼고 한참 길 끝을 주시하고 있던 위는 휘의 느닷없는 중얼거림에 한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

“……하지만 엄마 아빠 같은 방식으로는 가지 마. 절대로 그런 방식으로는 가지 마.”

“…….”

놀랍도록 어른스러운 눈길이 위의 험악하게 굳은 얼굴을 빤히 굽어본다.

“……버리려면 그냥…… 혜윤이랑 난 어디 고아원에라도 가서 지내면 되니까…….”

“멍청한 소리 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서 공부나 해!”

정말로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리자 동생은 다시 얌전하고 순종적인 아이의 얼굴로 되돌아가 슬금슬금 위의 눈치를 살폈다.

“……형 차 타는 거 보고…….”

“보긴 뭘 봐! 내가 애냐? 빨리 들어가지 못해?!”

“치, 알았어…… 알았다구…… 인상 쓰긴…… 꼭 조폭같이 생겨가지구…….”

입술을 삐죽이며 방향을 트는 휘의 얼굴은 자신의 뒤만을 졸졸 따라다니며 딱지치기나 다방구 놀이에 끼워달라고 조를 때의 코흘리개 얼굴 그대로여서 위는 자신도 모르게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지그시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치솟던 울화가 순식간에 가라앉은 것은 물론이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흥겨움이 전신을 사로잡는 것이 느껴졌다.

동생의 그리운 표정은 저 행복했던 어린 시절로 위를 고스란히 되돌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살아 있고, 엄마와 형이 살아 있고, 테라스 아래, 봄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이 내다보이는 우리 집으로 조용히 데려갔다. 비록 순간이나마.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에선 이미 낙원이 사라졌지만, 위는 어린 동생의 커다란 덩치가 길 끝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내내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잃어버린 봄을 추억하고 있었다.

“……커진다…… 흑…… 커지고 있…… 흐윽……! 아아…….”

“…….”

“……좋…… 아…… 하앗……! 위…… 위위…….”

“…….”

“……키스해줘…… 윽…… 읍…… 윽…… 웃…… 흐앗……!”

“…….”

남자의 요구대로, 마침 흥분하기 시작한 하반신의 열기를 빌어 위는 남자의 입술을 살짝 물어뜯은 다음 애를 태우듯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입천장을 쓸고, 서로의 혀뿌리를 얽은 다음 힘차게 빨아들였다. 남자가 좋아하는 딥 키스다.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남자의 몸을 양팔로 힘껏 끌어안고 남자가 자지러지도록 목구멍 안쪽까지 혀끝을 깊이 쑤셔 넣었다.

“……하아앙…… 응…… 아흑……!”

흐느끼는 듯한 비음이 남자의 섬세한 모양새의 부드러운 입술을 타고 흘러나온다. 곧 사정을 할 것 같다.

남자가 틀어준 포르노 테이프를 보며 수음을 시켜주는 섹스만으로 벌써 3주째다. 처음 이래, 상처의 후유증 때문인지 남자는 별로 항문을 쓰고 싶지 않아 했다. 덕분에 억지로 발기를 유도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조금 편하기는 했지만, 남자는 위가 흥분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혼자만 가버리는 것이 못내 껄끄러운 눈치였다. 하긴 누구라도 멀쩡한 정신의 남자에게 자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마주 앉아 다리를 겹친 자세로 서로의 성기를 맞비벼대는 자세라니, 보지 않으려 해도 남자의 흥분이 한 치의 가감도 없이 그대로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온다. 상반신만을 벌거벗은 반라 차림이지만 부드러운 감촉의 실크 파자마 역시 허벅지 중간쯤까지 내려가 우뚝 발기한 음경을 노출하고 있어 오히려 다 벗은 것보다도 더 선정성을 부추기고 있다.

맨 정신으로 견디기엔 위로서도 민망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어서, 남자에게 키스며 애무를 해주는 동시에, 부지런히 TV 화면으로 눈길을 돌려 스스로의 흥분을 유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가 구해 오는 포르노는 모두 A급. 여성의 유방이며 성기가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프레임들의 연속이라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것과 그네의 성기를 한꺼번에 틀어쥐고 피스톤 운동을 시키는 남자의 자극도 만만치는 않아서 위 역시 할 때마다 두 번 정도는 반드시 사정을 하곤 했다.

“흐아아…… 아악……! 가…… 간다……! 우악……! 큭……!”

쾌락의 도가니에 빠진 남자가 마침내 위를 침대에 밀어붙였다. 사타구니 사이에서 용두질을 치고 있던 남자의 두 손이 위의 가슴을 지나 목 위로 올라왔다. 아픔이 느껴질 만큼 격렬한 포옹이다. 위 또한 사정감이 극에 달해 있었기에 갑자기 사라져버린 손가락의 조임이 아쉽기 짝이 없었다. 다행히 사타구니 사이로 파고 들어온 남자의 허벅지가 발기할 대로 발기해버린 위의 것을 사정없이 비벼대고 있었다. 남자의 생식기는 위의 아랫배에, 자신의 것은 실크 파자마로 감싸인 남자의 허벅지에 달라붙은 채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후윽……! 후윽……! 으아아…… 아악……!”

“……윽…… 흐읍…… 웃……!”

아랫도리가 나사처럼 죄는 절박감에 진저리를 치며, 위는 남자의 허리에 팔을 감고 자신의 하반신으로 힘껏 끌어당겼다. 벌어진 남자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정신없이 혀를 밀어 넣었다. 달콤한 타액이 서로 섞여들어가며 서로의 목구멍 속으로 삼켜졌다. 뱀처럼 요동치는 혀뿌리가 서로 주도권을 쥐기 위해 맹렬하게 엉켜들었다.

위에서 내리누르고 있던 남자의 몸을 돌려 침대 바닥에 밀어붙인 채 남자가 경련하는 대로 리듬을 타며 마음껏 허리를 흔들었다. 남자의 몸에 비벼지는 생식기에서 불이 나는 것만 같았다. 뇌수가 뽑혀나가는 듯한 쾌감이었다. 앞서 서너 번인가의 사정을 끝낸 남자는 비명에 가까운 교성을 내지르며 또 한 번의 오르가슴을 맞고 있었다. 요동치는 두 몸의 반동으로 침대가 끽끽거리며 요란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흐아악! 아악……! 우아아아……! 위……! 위위…… 익!!!”

“……하아…… 아…… 흡……! 욱…… 윽……!”

“……위위! ……! 위…… 우아……! 악!!!”

“……흡……! 후아아악!!!”

“아악!!!”

거의 동시에 사정을 한 것 같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허리가 끊어지는 것만 같은 지독한 쾌락에 몸서리를 치며 위는 입술을 크게 벌린 채 오르가슴으로 전율하는 남자의 몸을 힘껏 끌어안았다. 마치 떨어지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절박했다.

허리와 등줄기와 겨드랑이 사이를 정신없이 쓸어 내렸다. 탄력 있는 엉덩이를 꼬집어 뜯는 것처럼 쓰다듬었다. 축축하고, 뜨겁고, 미끈거리는 남자의 부드러운 피부가 달라붙듯 위의 상반신으로 착 감겨들었다.

입술에 키스했다. 코에도, 눈시울에도, 뺨에도 정신없이 입을 맞췄다. 오르가슴의 여운으로 어쩔 줄 모르며 꿈틀거리는 몸은 한 치의 저항도 없이 위의 지배를 받아들였다.

여자와 다르지 않았다. 납작한 가슴만 빼면, 축축하고 끈끈하고 음란한 쾌락의 도구라는 점에서 매우 빼어난 육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정도까지 자신을 흥분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리라.

기절을 하진 않았지만 사정을 하고도 꽤 오랫동안 남자는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위의 몸에 찰싹 달라붙은 채, 흐느끼고 떨며 거세게 몸부림을 쳐댔다. 남자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차츰차츰 위의 흥분이 가라앉고 땀에 젖은 몸이 식어들어갈 때쯤이 돼서야 남자는 제정신을 차리고 위의 입술에 부드러운 입맞춤을 해왔다. 역시 기력은 없는지 그저 위의 입술만을 핥는 어린아이 같은 키스였다.

“……좋…… 아…… 좋아…… 위…… 위위…….”

들릴 듯 말 듯한 속삭임은 거의 흐느낌 소리 같다. 자신이 좋단 건지, 자신과의 섹스가 좋다는 건지 의미가 불분명하다. 물론 섹스가 좋다는 뜻일 게다.

남자의 상반신을 부드럽게 포옹해주는 서비스로 대답을 대신했다. 몸을 돌려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운 다음 남자를 위로 오게 했다. 한 손으론 등줄기의 도드라진 척추 뼈를 쓸어주고, 나머지 한 손으로 양쪽 엉덩이를 번갈아 주물러주었다. 그 갈라진 틈에 슬며시 손가락을 밀어 넣어 주름진 돌기마저 쓰다듬자, 끙끙거리는 신음을 흘리며 위의 아랫배와 치부에 자신의 성기를 비벼댄다. 천천히 허리를 흔들고 있지만 더 이상 할 기력은 없는지 움직임은 마냥 부드럽기만 하다. 자신과 남자의 정액으로 질펀한 하반신이 함께 맞닿아 미끈거리는 감촉은 의외로 기분이 좋았다. 힘을 잃은 남자의 음경이며 고환이 자신의 것을 반사적으로 눌러대는 감촉도 그리 불쾌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축축하게 젖은 서로의 음모가 함께 부드러운 자극을 주며 엉켜드는 감촉도, 야릇하지만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좋은 고객이다. 변태스럽긴 하지만 뜻밖에 얌전하고, 섹스도 편하다. 비록 시작할 때마다 여자를 안는 듯한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격렬한 오르가슴을 끌어내주기도 한다.

“……밖에서…… 데이트 같은 건 안 되나……?”

꿈꾸는 듯한 얼굴로 혼잣말을 하듯 물어와서 위는 남자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오르가슴으로 느슨해졌던 신경을 바짝 긴장시켰다.

“……기분이 나쁘겠지…… 아무래도……?”

남자의 날씬한 손가락이 위의 갈비뼈를 거쳐 치골 근처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위의 턱 끝이며 쇄골 부위에 짧은 입맞춤을 거듭 퍼붓고 있던 남자의 고개가 가슴 부근으로 떨어졌다. 잘 발달이 되어 있는 위의 가슴 근육에 천천히 뺨을 문지르기 시작해서 더 이상 표정을 살필 수는 없었다.

“……게이와 데이트라니 아무래도…….”

남자의 목소리엔 쓸쓸한 울림이 있었다. 같은 돈을 받고 섹스 대신 데이트 서비스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시간대만 맞는다면 상관없습니다. 편하고 좋죠, 저로서도.”

“저…… 정말인가?!”

반짝 치켜든 남자의 얼굴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놀라움과 기쁨이 드러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는 규정만 지킨다면 맞춰볼 여지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밖에서의 만남이니까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죠. 추가되는 시간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주신다면 저는 괜찮습니다.”

“당연하지!!!”

순수한 기쁨의 발작이 남자를 덮쳤다. 남자의 얼굴에 닿는 가슴 근육마다 키스의 비가 내렸다. 남자의 자극에 불쑥 도드라진 위의 유두 끝을 입술로 물어뜯으며 희롱을 거듭하던 남자가 꿈꾸는 듯한 어조로 속삭였다.

“……그림 좋아해……?”

“…….”

“……좋아해……?”

“……잘 모릅니다.”

“……나 그림 그리거든…….”

“예.”

“……「왕의 슬픔」이라고 알아……?”

“잘 모릅니다.”

“……뚝뚝 날리는 노란 꽃잎들이 정말 서럽지…….”

“…….”

“……퐁피두센터에 있는 마티스 그림인데 널 보면 그 그림이 생각나…….”

“…….”

“……무나카타 시코의 판화들을 봐도 네가 생각나고…….”

“…….”

“……왜 그렇게 슬플까……?”

“역시 금요일에 오면 됩니까?”

감상에 빠지려는 남자가 거슬린 나머지 불쑥 내뱉는 위의 어조는 퉁명스러웠다.

“……어…… 응……?”

“데이트 말입니다. 금요일엔 저녁때밖에 시간이 없는데 새벽까지 시간을 보내도 상관이 없으신지요?”

“아아, 그래…… 아무래도 새벽까지 노는 건 너무 피곤하겠지? 그럼 토요일은 어때? 학교 끝나고 바로 만나서 놀고 저녁 먹으면…….”

자유로운 주말과 휴일엔 밀린 공부를 하느라 몽땅 투자하고 있었다. 그래도 토요일을 희생하는 대신 금요일로 공부 시간을 당기면 그다지 무리될 건 없을 것이다.

“그럼 토요일로 하겠습니다. 다만 다음번에도 추가 서비스가 필요하실 땐 되도록 평일에 시간을 잡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늦어지더라도 주말보다는 휴일이 편하거든요.”

“……응…… 그래. 그렇게 하마…… 다음 주 토요일만 훔치도록 하지. 학교 끝나는 대로 와주렴…….”

행복이 가득한 눈길이 위의 표정 없는 눈동자에 머물렀다.

가끔 보이는 간질간질한 느낌의 아지랑이가 다시금 남자의 눈동자에 떠올라 있었다. 머리는 온통 땀에 젖은 채 뭉쳐 있고, 역시 촉촉하게 젖은 얼굴은 핑크빛이었다. 코와 입 언저리에 희미한 수염 자국이 보였지만, 언뜻 보면 그저 보이시한 여자로 착각을 할 만큼 곱고 부드러운 이목구비다.

“……아직 30분쯤 남았으니까…….”

위의 주시가 부끄러운 듯, 남자가 희미하게 얼굴을 붉히며 요청했다. 아랫배에 닿아오는 남자의 것이 조금씩 힘을 되찾으며 뻣뻣해지고 있었다.

이미 네다섯 번인가를 쏟아냈었다. 여자처럼 섬세하고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서 이렇게나 밝히는 남자라니 어이가 없다. 남자와 몸을 섞은 지도 벌써 4주째다. 그때마다 세 시간 내내 쉬지 않고 대여섯 번은 기본으로 절정을 맞는 남자에게, 위는 매번 혀를 내둘러야 했다.

남자의 손이 이끄는 대로 손을 가져가 움켜쥐자 위의 목덜미 근처에 탁한 교성을 내뿜으며 남자의 엉덩이가 꿈틀거렸다. 남자의 성기를 손가락으로 조이는 것과 동시에 위의 치부로도 남자의 음란한 손길이 파고 들어왔다.

테이프가 다 돌아갔는지 대형 TV 스크린을 가득 메우고 있던 여자의 확대된 성기 대신 새파란 보호색만이 화면에서 고요하게 명멸하고 있었다. 남자의 침실엔 침대 벽에 고정된 은은한 백열등과 TV에서 쏟아지는 푸른 빛 외엔 더 이상의 빛도 소음도 없었다.

점점 흥분을 더해가는 남자의 가쁜 호흡이 안개처럼 뿌연 공간을 음란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남자의 애무에 반응해 다시 한 번 쾌락에 탐닉하고 싶은 욕망이 일었지만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기운을 아껴야 나머지 고객들에게도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해줄 수 있으니까.

위의 성기를 희롱하던 남자의 손을 치우고, 남자가 좋아하는 회음부며 겨드랑이 안쪽, 엉덩이 사이 움찔거리는 주름을 번갈아 자극하며 빠른 절정을 유도했다.

고맙게도 남자는 위가 애무를 시작한 지 5분 만에 거의 물처럼 변한 체액을 질금질금 쏟으며 꼭대기에 올랐다. 체력이 한계에 달한 모양인지 마침내 위의 품에서 전신을 축 늘어뜨리며 기절을 한 것은 물론이었다. 아무리 색골이라 해도 남자는 위가 이끄는 대로 고스란히 정해진 반응만을 보인다.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죽은 듯 잠이 들어버린 남자의 몸에 침대 시트를 끌어다 덮어준 후, 위는 욕실로 발길을 돌렸다. 시곗바늘은 막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남자의 침대에서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정도로 몸이 노곤했지만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만 했다.

섹스로 기운이 달리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음부턴 여자들의 경우처럼 한 번만 사정을 해야겠다고, 위는 쏟아지는 차가운 물줄기에 몸을 내맡긴 채 멍하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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