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989년 10월. 문위(文偉)
형의 기일에는 비가 내렸다.
지난해에도 비가 내렸던 걸로 기억되는 걸 보면 혹시 앞으로 매번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닐까 비현실적인 추측도 해본다. 아니, 산에 도착하기 전인 오전 중엔 내내 햇빛이 쨍쨍한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였으니 액면 그대로 비 오는 날이라 하기에도 무리가 있긴 하다.
올해에는 마침 개천절이기도 해서(음력으로 기일을 챙기기에) 위는 비교적 여유 있게 아침을 먹은 다음 휘와 혜윤이를 데리고 형이 잠들어 있는 수리산으로 출발했다.
좀 늦게 출발한 탓인지, 전철을 타고 안양역에 내린 다음,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산 입구에 다다랐을 무렵엔 이미 점심때가 훌쩍 지나 있었다.
공휴일이라서 그런지 산은 제법 많은 수의 등산객들로 북적였다. 목적지인 동남능선을 향해 40여 분을 올라가자 익숙한 골짜기가 눈에 들어왔다. 골짜기 앞 나지막한 능선에 돗자리를 펴고, 집에서 가져온 음식들과 술을 늘어놓은 뒤 절을 올렸다.
아버지와 엄마가 그렇듯이 형이라고 변변한 무덤이 있을 까닭은 없다. 엄마는 아버지의 뼈를 뿌린 골짜기에 형의 것을 뿌렸고, 나중에 위 역시 같은 장소에 엄마의 뼛가루마저 뿌렸었다. 그러니 형의 제사라고는 하지만 아버지와 엄마까지 포함된 세 사람분의 제사를 드리는 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휘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세 사람분의 제사였다. 아무리 윽박지르고 타일러도 녀석은 형의 기일 이외엔 절대로 산에 오르려고 하지 않았다. 무책임하게 자신들을 버린 아버지와 엄마를 여전히 원망하고 있는 때문이리라(결국 봄에 있는 아버지의 기일과 두 달 후인 엄마의 기일엔 늘 혜윤이만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처음 한두 번은 언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일단 형의 기일이나마 얌전히 따라와주니 그것만으로 만족하자고 위도 체념을 했다. 말 그대로 무책임한 짓을 저지른 부모임엔 틀림이 없으니 휘의 똥고집 정도는 너그럽게 이해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제사라곤 하지만, 삼남매가 이미 가버린 사람들에 대해 열심히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물론 아니다. 깊이 그리워해봤자 끔찍한 상처를 들쑤시는 결과만 되니까. 그저 예의 바르게 절을 하고, 술을 붓고, 조금 기다렸다가 망자들이 먹고 남은 음식들을 묵묵히 먹어치울 뿐이다. 다행히 공기 좋은 야외인데다 가벼운 등산까지 한 뒤라 제사 후의 식사는 꿀맛이 따로 없다.
슬픔을 삭이기엔 2년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리라. 아물지 않은 상처에선 여전히 피고름이 흘렀고, 사무치는 그리움은 시시각각 가슴을 쳐댔기에, 삼남매는 될수록 형식적인 과정에만 주의를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식사가 끝나고는 학교생활이라거나 연예인들 얘기 같은 이런저런 시시한 수다를 떨어보기도 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날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삼남매는 핑계 김에 일찍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전철에 올라탔을 때만 해도 해가 구름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얼굴을 내밀더니 어느새 거짓말처럼 억수같이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전혀 비라곤 오지 않을 듯한 날씨였기에 미처 우산을 준비 못 한 삼남매는 전철역 앞에서 비닐우산이라도 살까 했지만 곧 돈이 아깝다고 만장일치의 결론을 내렸다(전철역에서 버스 정류장까지의 2∼3분과, 또 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의 15분 때문에 만 원 가까운 돈을 낭비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앞의 2∼3분으로 이미 축축하게 젖은 채 버스에 올라탄 동생들은 아낀 만 원으로 저녁에 피자를 사주겠다고 위가 선언하자 싱글벙글 좋아서 난리가 났다. 피자헛이다, 피자인이다, 자기들끼리 브랜드까지 정하느라 옥신각신하더니 결국 낙찰을 보았는지 피자헛 불고기는 만 원이 넘는다며 슬슬 위의 눈치를 살핀다. 모처럼 먹는 거 맛있는 걸로 하자고(그야, 피자를 싫어하는 자신으로서 그 어떤 브랜드인들 입맛에 맞겠냐마는) 위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동생들의 얼굴은 다시 해바라기처럼 환해졌다.
버스 안에서의 20여 분 내내 희희낙락이던 녀석들은 정류장에 내려서도 여전히 기고만장이었다. 억수처럼 퍼붓는 비에 금세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지만 서둘러 뛰어가는 위를 비웃으며 춤을 추듯 느릿느릿 따라왔다. 고여든 물웅덩이들에 발장구 장난까지 치고 있질 않는가. 어린애들처럼 무슨 짓들인가 하고 혀를 차면서도, 피붙이들의 사랑스러움에 덩달아 입가에 미소가 퍼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뿌옇게 차 오른 물안개 탓에 더더욱 허름하고 가라앉아 보이는 주택가 골목은, 우렁찬 빗소리와 더불어 동생들이 모처럼 터트리는 기분 좋은 웃음소리들로 상쾌하게 깨어나고 있었다.
“빨리 오지 않으면 피자고 뭐고 없어!”
피자 한 판이 녀석들을 이렇게까지 신나게 할 줄은 또 몰랐다고, 위도 속으로 따라 웃으며 짐짓 호통을 쳤다.
그제야 부랴부랴 달려오는 생쥐들을 힐끗 돌아보고 좀 더 속도를 냈다. 가파른 언덕을 뛰어올라 마침내 집 대문이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엔 제법 숨이 턱에 차기까지 했다.
막 대문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10여 미터쯤 떨어져 있던 곳에 주차돼 있던 검정색 승용차 안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것이 보였다. 설핏 드러난 실루엣만으로도 만만찮은 덩치의 사내들 넷이었다.
느닷없는 등장도 그랬지만 한 떼의 장정들이, 그것도 우산조차 받쳐 들 생각도 않고 우르르 몰려나오는 것은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마치 익숙한 풍경을 보기라도 한 것마냥, 위는 모든 동작을 멈춘 채 멍하니 사내들의 움직임을 좇고 있었다.
기세 좋게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가 마치 꺼진 스피커처럼 일거에 사라져버린 듯한 착각이 일었다. 전신을 가볍게 때리던 차가운 빗줄기의 감촉 또한 순간 사라지며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마치 소리도, 빛도 모두 사라진 진공의 공간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
사내들이 입고 있는 무채색 계열의 점퍼나 양복 위로 점점이 물기가 번지는 것이 보인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지만 한결같이 긴장된 무표정들은 낯이 익었다.
똑바로 위의 눈에 시선을 고정한 채, 사내들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보폭으로 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걸음걸이였으나 그렇다고 긴장을 늦추지는 않고 있다. 혹시라도 위가 달아나기라도 할까 조심하는 눈치지만 한심스러울 노릇이다. 도대체 어디로 달아난단 말인가? 저들을 피해 달아날 유토피아가 도무지 그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
“문위지? 좀 같이 가자.”
맨 우측에서 걸어오던 사내가 불쑥 내뱉은 것을 신호로 나머지 사내 둘이 덮치듯 다가들더니 위의 두 팔을 양쪽에서 끼고 끌고 나갔다. 또 다른 사내 하나는 말을 건 사내와 함께 뒤로 돌아가더니 주변을 이리저리 휘둘러보았다. 공휴일인데다 비가 오는 탓인지 골목엔 위 일행 이외엔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수시로 경찰에 불려 다니는 걸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서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오…… 빠……?”
반항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잔뜩 겁에 질린 혜윤이의 부름에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제대로 끌려오지 않자 양팔을 틀어쥔 사내들의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얌전히 따라와!”
“……형!!!”
“오…… 오빠!!! 오빠!!!”
“괜찮아! 아무 일도 아니니까 현준이 형 집에 가 있어! 며칠 돌봐달라고 해! 금방 돌아올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옴짝달싹하는 것도 허용치 않는 사내들 탓에 얌전히 승용차로 끌려가며 가까스로 대답만 던져준다.
최대한 태연하게 외쳤지만 보지 않아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사색이 돼 있을 동생들의 모습이 선하다.
“형!!! 혀엉!!!”
“오빠!!!”
“괜찮다니까! 전에도 그랬잖아! 며칠만 현준이 형 말 잘 듣고 있어! 감기 걸리니까 빨리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채 말을 맺지도 못하고서 승용차 뒷좌석에 밀어 넣어졌다. 사내들이 마저 타고 차 문이 닫히자, 울부짖는 혜윤이와 갈팡질팡하는 휘의 부름은 빗소리와 함께 아득해졌다.
괜찮아……. 그래, 괜찮아, 괜찮을 거야……. 현준 형과 성준이라면 겁에 질린 동생들을 잘 다독여줄 테니…….
이름 모를 곳으로 끌려가는 내내 침울해지려는 스스로를 독려하듯 주문처럼 거듭 뇌까렸다. 그랬다. 동생들만 괜찮다면 아무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조금 귀찮을 뿐, 혹은 조금 마음이 상할 뿐, 며칠만 견디면 다시 동생들 곁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처음 끌려간 곳은 구로경찰서였다.
몇 달 전과 마찬가지로,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위는 단 한 마디의 설명도 없이 독방에 집어넣어졌다. 시계는 물론 배낭과 주머니의 소지품들도 전부 빼앗긴 것은 물론이었다.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가 가구의 전부인 두 평 크기 방은, 창문이 없고 미세한 소음조차 일절 들리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밀폐된 곳이었다.
속옷까지 푹 젖어버린 몸은 시간이 갈수록 온기를 잃고 떨려왔지만, 설령 부탁한다고 해도 마른 옷을 가져다줄 사람들은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바지와 남방을 벗어 테이블에 넌 뒤 팬티와 티셔츠 차림으로 제자리 뛰기나 팔굽혀펴기를 하며 체온을 되돌리기 위해 애썼다.
두세 시간쯤 지났을까, 입고 있던 옷이 그럭저럭 말라갈 무렵 설렁탕 한 그릇이 들여보내졌다. 아쉬웠던 온기도 온기려니와, 허기 또한 극에 달해 있던 참이라 위는 입안이 데는 것도 아랑곳 않고 정신없이 설렁탕을 비웠다.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말끔히 먹어치운 직후, 경찰관 하나가 상하의 세트로 된 트레이닝복 한 벌을 가져다주었다. 얼굴을 보니 설렁탕을 가져다주었던 경찰관과 같은 사람이었다. 아마도 속옷 차림으로 벌벌 떨고 있던 위가 안쓰러워 보였던 모양이었다. 되도록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젊은 경찰관에게 꾸벅 인사를 하곤 사이즈가 한 치수쯤은 작을 트레이닝복을 부지런히 껴입었다. 워낙 싸늘해져 있던 몸이라 얇은 홑겹 트레이닝복 한 벌로 완전히 추위가 가시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은 했다.
한 시간여가 더 흘러갔다.
위를 구로경찰서로 끌고 왔던 사내 셋이 들어오더니 위를 다시 승용차에 싣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경찰서 내에서 취조를 받으리라고 짐작했던 위였기에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20여 분쯤을 달린 것 같았다. 날은 이미 완전히 저물어, 거리마다 불빛이 휘황했지만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승용차가 도착한 곳은 남산이었다. 남산 입구에 차를 세운 사내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다른 승용차에 위를 옮겨 실었다. 처음의 사내 셋은 돌아가고, 다른 승용차에 앉아 있던 사내 둘에 의해 위는 남산 중턱쯤에 위치한 어느 건물의 지하실로 끌려갔다(그곳이 안기부 건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좀 더 나중의 일이었다).
지하실 방은 경찰서 독방과 마찬가지로 세 평이 채 되지 않을 밀폐된 공간이었지만 구조는 조금 달랐다.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가 마주 보고 있는 외에 한쪽 구석에 간이침대 하나가 놓여 있고, 바닥보다 20센티쯤 위로 올라간 채 평행을 이루고 있는 다른 한쪽 구석엔 좌변기와 세면대는 물론 커다란 욕조까지 설치돼 있었다.
심문은 방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되었다.
지하실로 끌고 온 사내 둘이 번갈아, 최근에 윤열이 형을 만난 적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며 윤열이 형의 서울 은신처를 대라고 했다. 일주일 정도 현준이 형 아파트에 묵었었지만 윤열이 형이 다른 은신처는 말해주지 않았었다. 설령 알고 있다고 해도 대답을 해줄 까닭이 없다. 이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윤열이 형은 아직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최근에 만난 적도 없고 은신처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당연한 것처럼 사내들은 믿지 않았다. 정말로 확신을 하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이미 사내들은 형이 현준이 형 아파트에 머물렀던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처음에 사내들의 입을 통해 그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땐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지만, 그쪽 집안의 빵빵한 연줄을 알고 있었으므로 곧 침착성을 되찾았다. 설령 현준이 형이 취조를 받는다고 해도 그저 친구로서 잠시 함께 있었을 뿐이라고 발뺌을 할 터였다. 그게 사실이기도 했고, 또 5∼6공의 핵심 세력들과는 오래전부터 밀월 관계에 있는 현준 형의 부친이 아들의 위험을 간과할 리도 없었다. 일단 지금 자신이 취조를 받고 있는 것만 봐도 현준 형은 이미 수사선상에서 제외돼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다행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심문은 한밤중을 지나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간의 행적과 더불어 현준 형 아파트에서 형을 만난 적이 있음을 시인하라고 집중 추궁당했다. 나아가 그곳에서 만남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이름도 대라고 했다. 여전히 아무도 만난 적이 없다고 완강하게 부인하자 몇몇 그쪽 사람들의 사진까지 보여주며 거듭 다 알고 있노라며 위를 윽박질렀다.
다행히도 그들이 보여준 사진 중에 그 밤의 술판에서 보았던 제적생 둘의 사진은 없었다. 하긴 사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내들의 목적은 윤열이 형의 행방을 좇는 것에만 국한돼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윤열이 형이 속한 단체의 배후를 캔 다음, 빌미 하나를 붙여 공안 사건을 일으키고 그를 통해 조직의 힘을 와해시키려는 것이 저들의 본래 의도였다. 지난번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을 때도 그런 암시를 받았었지만 이번엔 그 정도가 한층 노골적이었다.
위는 무조건 모른다며 완강하게 버티기를 계속했고, 시간이 갈수록 사내들의 언행도 점점 거칠어져갔다. 상소리와 폭언이 쏟아지고 여러 번 따귀도 맞았다. 강이 형 얘기를 꺼내더니 빨갱이 새끼의 동생이라 그런지 역시 지독한 구석이 있다고 비웃었다. 욕조의 물을 틀며 은근히 고문을 암시하기도 했다.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 네 녀석처럼 줄 없고 빽 없는 애송이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만신창이가 되어 나가는 곳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도, 위는 정말 겁이라도 집어먹은 양 떨리는 목소리로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지만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고 있었다.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밀실인지라 정확한 시간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아마도 아침 무렵일 것이다.
다소 지친 기색의 사내들은 지들끼리 뭐라고 한참을 주고받다가 마침내 방을 나갔다. 위를 향해 독한 새끼라며 디저트처럼 욕설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끝없이 담금질을 당하며 밤을 홀딱 새운 터라 위 역시 지치긴 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정신은 맑았다. 감정의 동요도 전혀 일지 않았다.
동생들도 별로 걱정할 게 없고 윤열이 형도 아직 잡히진 않았다. 현준 형도 그다지 문제는 없을 것이다. 된 거다. 그걸로 충분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잡념을 떠올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그렇게 몇 가지 중요한 생각에만 몰두했다.
사내들이 나가고 얼마 안 있어 된장찌개 백반이 들여보내졌다. 아침 식사인 모양이었다. 식욕은 없었지만 설렁탕과 마찬가지로 깨끗이 비워냈다.
식곤증 때문인지 비로소 졸음이 쏟아졌다.
간이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지만, 한 시간도 채 못 돼 다시 돌라온 수사관들에 의해 위는 거칠게 일으켜 세워졌다. 밤의 심문조와는 다른 얼굴들이었다. 태도도 앞서의 사내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위압적인 표정과 협박조의 말투는 사라지고 은근한 미소와 함께 부드러운 말투로 위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윤열이 형을 만난 것과 형의 은신처는 모르는 것으로 인정해주겠다고 했다. 다만 형이 수배되기 전, 저들이 타깃으로 삼고 있는 사진 속의 사람들과 윤열이 형이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에 대해서만은 인정하라고 했다. 강이 형도 관련되어 있으니 위가 모를 리가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물론 그건 그들의 바람일 뿐이었다). 설령 정확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추측은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것만 인정하고 진술서에 서명하면 바로 집으로 돌려보내주겠노라고 했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였다. 지난밤 내내 되풀이한 대답을 다시금 되돌렸다.
부드러운 회유는 방법과 어조를 달리하며 꽤 오래 계속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졸음을 참기 힘들었지만 사내들은 절대로 위를 혼자 두지 않았다. 마침내 그 어떤 회유책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납득한 부드러운 한 조도 떨어져나가고, 간밤의 협박조들이 대신 들어왔다.
그다음은 그야말로 길고 긴 의지력의 싸움이었다.
더 이상의 음식은 주어지지 않았다. 물론 잠도 주어지지 않았다. 담금질을 해대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앵무새처럼 서로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다시 몇 번 뺨을 얻어맞고 주먹으로 복부를 얻어맞았다.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물리적인 폭행은 없었다. 다만 도무지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긴긴 시간 동안 절대로 잠을 재우지 않았다. 배설 욕구를 참지 못해, 사내들이 낄낄거리며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바지춤을 내리고 변기에 주저앉기도 했다.
다시 만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사내들이 그 어떤 폭언과 욕설과 따귀를 올려붙여도, 제대로 눈을 뜨기 힘들 만큼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몰려들고 있었다. 책상 위에 고개를 떨구고 몇 분쯤 잠 속에 틀어박히는 것을 묵인해주던 사내들은 얼마 안 가 가혹하리만큼 거친 몸짓으로 위의 양팔을 끌고 욕조 안으로 밀어붙였다. 시체라도 소스라치듯 깨어 일어날 만큼 차디찬 물이 전신으로 쏟아져 내렸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몸은 다시 책상 앞에 앉혀졌다. 녹음테이프를 튼 것처럼 똑같은 요구가 떨어지면 역시 녹음테이프의 답변도 떨어졌다.
연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 졸음은 견딜 수 없고, 흠뻑 젖은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마치 숫자를 헤아리듯 단 하나의 상념만을 꼭 붙들었다. 사내들도 지쳐가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지쳐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계가 저 앞에 희미하게 보이는 걸 보면 사내들의 사정 역시 다르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의지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을 따를 인간이 별로 없을 거라는 것도 위는 잘 알고 있었다.
마침내 기절한 것과 다름없는 잠에 침몰해버린 위를 다시 깨우기 위해 이런저런 수를 쓰던 사내들이 백기를 들었다. 연행된 지 50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지친 협박조가 나가고 누군가가 다시 들어와 젖어 있던 위의 옷을 벗기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혀주었다. 구로경찰서에 벗어두었던 자신의 청바지와 남방이었다. 의자에 앉은 채 책상에 머리를 박고 널브러져 있던 몸도 간이침대 위로 옮겨졌다(물론 당시엔 완전히 잠에 곯아떨어진 터라 나중에 깨어나고서야 알았다).
길고 긴 시간 동안 심연 같은 잠 속을 떠돌았다. 온갖 귀신과 짐승과 야차들이 눈앞을 왔다 갔다 했다. 소름이 끼치는 끔찍스러운 비명들이 긴 여운을 남기며 연거푸 귓전을 두드렸다. 몸 위로 올라탄 몽마는 위의 목을 꾹꾹 눌러대며 히죽 웃음을 흘렸다.
으슬으슬 떨리는 한기를 참기 힘든 나머지 마지못해 눈을 떴을 때는 연행된 지 나흘째가 되는 금요일 아침이었다.
열두 시간 이상을 잔 것 같았다. 간이침대에 누워 있고 담요까지 덮고 있었지만 몸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다. 전신으로 느껴지는 열기와 더불어 온몸이 쇠사슬에 묶이기라도 한 것마냥 쑤시고 아팠다. 무엇보다도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으슬으슬 떨리는 추위를 참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감기가 든 모양이었다.
소변을 보고, 머리끝까지 담요를 뒤집어쓴 채 다시금 잠 속에 빠지려는 찰나 음식 쟁반 하나가 들여보내졌다. 식욕 따윈 전혀 없었지만 먹어둬야만 했다. 덜덜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가누며 콩나물국과 밥을 조금 떠먹었다. 마치 모래알을 씹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따뜻한 음식이 들어가니 추위는 조금 가라앉았다.
다시 침대에 누워 서너 시간쯤을 더 잔 것 같다. 누군가 어깨를 흔들며 위를 깨우더니 세수도 하고 옷매무새도 바로 하라고 명령했다. 얼굴을 보니 ‘부드러운 한 조’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구로경찰서에서 빼앗겼던 소지품과 배낭들도 돌려받았다. 명령대로 세수를 하고 잔뜩 구겨진 옷을 탈탈 털어 비교적 단정하게 보이게끔 노력했다. 그래봤자 나흘이나 깎지 않은 수염이며, 엉망인 몸 상태를 반영하는 창백한 낯빛이며, 절대로 정상적으로 보일 까닭이 없었다.
사내를 따라, 갇힌 지 만 나흘 만에 지하실을 나왔다. 청명한 가을 날씨를 그대로 반영하듯, 새파란 하늘이며 눈을 찌를 듯이 다가드는 햇빛들에 어지럼증마저 느껴졌다.
그대로 승용차에 태워져 10여 분쯤을 달렸다. 차가 도착한 곳은 전통 한옥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어느 고급 요정 앞이었다. 사내들에게 이끌려 안쪽의 별채로 들어가니 낯익은 얼굴의 사내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창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듯한 혈색 좋은 얼굴.
사내가 걸치고 있는 고급스러운 은회색 슈트며 롤렉스 시계, 그리고 금테 안경이 사내가 획득한 지위와 특권을 은연중에 과시하고 있었다. 막 벗겨지기 시작한 대머리 탓에 실제보다(사내는 40대 초반이었다) 10년쯤은 더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권위를 유달리 좋아하는 것 같은 사내로선 오히려 더 마음에 들어 할 터였다.
“꽤 고생했지? 얘기는 들었네, 위 군.”
몇 번이고 죽었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절대로 잊지 못할 증오스러운 얼굴이 부드러운 웃음을 흘리며 인사를 건넨다.
“와 앉지. 우선 밥부터 먹자고.”
사내와 마찬가지로 호불호의 어떠한 감정도 내비치지 않은 채 커다란 교자상을 사이에 두고 사내와 마주 앉았다.
위를 끌고 왔던 사내 둘이 나가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름다운 20대 여자 하나가 들어와 주문을 받았다. 여자가 나가자 사내는 친밀한 어조로 이런저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직장(안기부 고위 관리다) 얘기며 자식들 얘기, 요즘 떠들썩한 시국 사건이며 창간된 지 얼마 안 되는 한겨레신문 얘기, 하다못해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 얘기까지 줄줄이 늘어놓았다.
가끔가다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일 뿐, 위는 감정을 죽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최후의 고비였다.
이 고비만 넘기면 위는 무사히 동생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설령 그 어떤 지독한 모욕을 당하더라도, 끓어오르는 울분을 가누지 못해 심장이 터져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사내의 도발에 말려 들어가선 안 될 일이었다. 감정을 드러내선 안 될 일이었다.
음식이 들어왔다. 상다리가 휘어질 듯한, 난생처음 보는 진수성찬이었다. 수다의 사이사이, 사내가 호쾌한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권하는 대로, 위는 얌전히 입안으로 음식을 밀어 넣었다. 자칭 대단한 미식가의 입에 든 음식이니만큼 맛도 굉장하겠지만, 위는 미각이든 후각이든 그 어떤 감각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 뜨거운지 찬지, 종류가 한 가지인지 두 가지인지 하는 그 어떤 현실도.
그저 묵묵히 사내와 다름없이, 맛을 음미라도 하는 것처럼 천천히 젓가락을 놀렸다. 식사 중엔 심문을 할 생각이 없는 모양으로, 사내의 태도 또한 처음과 다르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코스대로 나오는 산해진미를 느긋하게 맛본 후, 반주로 나온 정종 반병까지 말끔히 비우고 나서야, 사내는 한참이나 먼저 식사를 끝낸 위를 끌고 다시 장소를 옮겼다.
본론은 지금부터겠지만, 아마도 위의 감정을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을 사내가 식사하는 내내 아무런 도발도 하지 않았을 턱은 없었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권력자의 모습을 유감없이 과시하는 것만으로도 사내는 위에게 그 이상일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형을 죽이고, 어쩌면 형 이외에도 달리 이름 모를 가련한 뭇 생명들을 또 몇 해치고, 그에 더해 무수히 많은 수의 운명들을 비참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렸을 최고의 악당이었다. 악은 건재하며, 단지 건재할 뿐만 아니라 떵떵거리며 세상을 주무르고 있었다. 미꾸라지처럼 약삭빠르게 활개를 치고 있었다. 그랬다. 움직일 수 없는 현실 자체인 사내는 그 존재만으로도 위에겐 끔찍스러운 고통이자 상처였다.
사내의 이름이며 구체적인 신변은 알 수 없었다.
그저 키가 180센티에, 약간 뚱뚱한 몸집을 하고 있고, 정수리 부분 머리가 조금 벗겨졌으며, 안경을 썼고, 서울 말씨를 쓰는 군 출신의 안기부 고위 관리라는 것만 알았다.
몇 달 전의 심문에서 처음 맞닥뜨린 이래, 그 이상의 것은 위가 아무리 노력해도 접근할 수 없는 절대 성역이었다. 물론 알아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설령 알아낸다고 한들 현재의 자신으로서 무얼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내는 자신이 형의 죽음의 배후에 있노라고 껄껄 웃으며 위를 윽박질렀었다. 아마도 위의 기를 꺾을 셈으로 마지못해 실토한 것인지도 몰랐지만, 사내의 기고만장한 태도 어디에서도 뒤탈을 염려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내의 기고만장을 증명이라도 하듯, 위는 경찰서에서 풀려나고서도 그 무엇 하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사내의 처지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와 사내들 셋을 실은 승용차가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어느 일급 호텔이었다.
일반 투숙객들과 다름없는 태연한 몸짓으로 사내들은 자연스럽게 위를 엘리베이터로 이끌었다. 몇 십 층을 오른 끝에 당도한 곳은 호사스러운 응접실이 딸린 스위트룸이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요정에서 식사를 할 때와는 180도 다른 태도로 돌변한 사내의 집중적인 취조가 시작되었다.
지난 나흘간 귀에 못이 박힐 것처럼 들은 터라, 죽을 때까지도 절대로 잊지 못할 이름들이 다시 한 번 줄줄이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몹시 지친 앵무새도 지지 않고 녹음기를 틀어댔다.
일체의 폭력이나 일체의 고문도 없었다. 그러나 위에게 있어선 지난 나흘간의 그 어느 시점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 지독한 고문이었다. 온갖 권위를 끌어다 붙이며 힘없는 고등학생 하나를 실컷 희롱하고 있는 짐승의 목을 당장이라도 조르고 싶은 끔찍스러운 살의가 시시각각 위의 의식을 사로잡은 때문이었다. 기계적으로 앵무새처럼 같은 대답을 반복하는 위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지만 내면에선 광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물론 실천은 아주 쉬워 보였다.
나머지 사내 둘은 룸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형의 원수 또한 무기는 달리 갖고 있지도 않았다. 군 출신이라 비교적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방종한 생활 습관을 반영하듯 몸이나 체력은 많이 망가져 있었다. 발로 복부를 걷어차고, 얼굴을 짓이기고, 이어 손을 뻗어 누르면 단 몇 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쉬웠다. 정말이지 쉬운 일이었다.
열이 점점 더 오르는지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입안의 침은 자꾸만 말라갔다. 욱신욱신 쑤시는 몸의 통증도 더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뜨기도 하고, 몇 번이나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다시 힘을 빼기를 반복했다. 며칠 동안의 긴장과 피로에 더해 감기 기운까지 겹쳤으니, 자신의 판단력이나 의지는 많이 약해져 있을 터였다.
고개를 끄덕이고, 납득을 하고, 꺼져가는 촛불처럼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의지력을 가까스로 되살렸다.
동생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떠올렸다.
지독하게 여윈 윤열이 형의 가슴 아픈 모습도 기억의 갈피 속으로 끌어왔다. 여자처럼 섬세하고 상냥한 성품의 현준 형도, 헌신적이고도 극진한 우정을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성준이 녀석도 떠올렸다.
역시 최고의 에너지가 아닐 수 없었다.
넋을 담금질하던 고통이 문득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왔다.
사나운 살의의 폭풍 역시 언제 그랬냐 싶게 가라앉았다.
멍하니 고개를 들고 맞은편 창문을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일몰의 붉은 빛이 두꺼운 회색 구름층에 부딪쳐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됐다…….
위는 만족스럽게 뇌까렸다.
―이제 되었다……. 끝까지 견뎌냈어……. 이제 돌아갈 수 있다……. 돌아갈 것이다…….
“……지독한 새끼…….”
사내의 입에서 마침내 체념의 한숨이 토해졌다.
“너도 언젠간 니 형처럼 일 낼 새끼야…….”
매캐한 담배 연기를 코앞에 뿜어내며 사내가 이를 갈아붙였다.
“흥, 하긴 그래봤자지. 빨갱이 피가 결국 지 인생이나 조지지 별수 있어?”
언젠가도 들었던 비슷한 저주를 되풀이하며 사내는 침대 위에 벗어두었던 슈트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사내가 나가고 나머지 부드러운 한 조가 교대를 했다. 몇 시간 더 의지싸움이 되풀이됐지만 이미 승패는 난 사안이라는 것을 부드러운 한 조도 인정하고 있었다. 심문은 이전과 달리 매우 형식적으로 변했고 사내들의 태도 또한 몹시 부드러워졌다.
마침내 자정 무렵까지 심문을 계속하던 사내들마저 룸을 빠져나갔고, 위는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 더 이상 어떤 방해도 없었기에, 호화찬란한 스위트룸 침대에 몸을 묻은 채 시체처럼 잠이 들었다.
욱신거리는 온몸의 통증과 열기를 자각하며 문득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쨍쨍한 오전이었다.
감기가 점점 심해지는지 두통은 물론 목까지 따끔거리며 아팠다. 간간이 기침까지 터져 나왔다. 자신이 감기에 걸리다니, 기가 막힌 나머지 웃음이 나왔다. 지난 몇 년간 감기는커녕 사소한 체기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쇠처럼 몸을 단련시켰건만, 역시 정신적인 대미지가 크긴 컸던 모양이었다.
욱신거리는 몸을 끌고 화장실로 가서 볼일을 본 뒤, 이를 닦고 세수를 했다.
침실이나 응접실과 마찬가지로, 호사스러운 대리석 장식과 소품들로 가득 들어찬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며칠 동안 텁수룩하게 자라버린 수염은 그렇다 쳐도, 몇 킬로쯤은 살이 빠져 보일 정도로 해골 같은 얼굴은 정말이지 자신의 그것 같지가 않았다.
피식 쓴웃음을 짓곤, 동생들이 보고 그나마 가슴이 덜 아프게끔 꼼꼼하게 면도를 했다.
비싼 스위트룸이란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화장실엔 없는 게 없었다. 공안 사범을 심문하는 과정 중에 어째서 이런 최고급 스위트룸을 쓰는지 위로서는 도시 이해할 수도 없지만(아마도 소시민의 기를 죽이자는 심보겠지만 자신의 경우를 놓고 보더라도 하등 무의미한 짓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일단 들어온 이상 필요한 대로 거리낌 없이 사용해주었다.
입은 지 닷새째가 넘어가는 속옷이며 티셔츠에선 악취가 풍겼고, 한 번 비에 젖었던 청바지며 남방에서도 쉰 냄새가 풀풀 났다. 결벽증이 있는 자신이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지독하게 더럽혀진 옷가지들을 보니 어쩐지 뿌듯한 만족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과 함께 모처럼의 치열한 전투를 치른 전투복이었다. 더럽다고 코를 싸매며 무시를 하기엔 조금 양심에 걸렸다.
위가 모든 준비를 마치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부드러운 한 조들이 룸 안으로 들어왔다.
“……수고했어. 여기 지장이나 찍어라.”
사내들이 내민 것은 진술서였다. 위가 대답한 그대로인지, 토씨 하나도 빠짐없이 꼼꼼히 읽은 후 지장을 찍어주었다.
“……새꺄, 다음에 또 들어와서 고생하지 말고 앞으로 처신이나 잘해.”
딴에는 연민이 담긴 눈길로 위의 얼굴을 굽어보며 사내 하나가 웃는다. 기가 막힐 대사지만 그 어떤 반응도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위의 감정은 죽어 있었다.
호텔을 나온 사내들이 마지막으로 위를 데려다준 곳은 집 근처 공원이었다.
토요일 오후라 선지 공원 안엔 유달리 꼬마들과 아줌마들이 많았다. 길거리마다 수업을 끝내고 귀가하는 중고생들도 부쩍 눈에 띄었다. 일상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렇게 제 궤도를 돌고 있었다.
익숙한 풍경에 안도하며, 20여 분쯤 되는 거리를 터덜터덜 걸어 집에 도착했다. 비로소 긴장이 풀리는지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떨려왔다. 쑤시는 통증도 유달리 견디기 힘들게 느껴졌다.
“……혜윤아……! 휘야……?”
동생들을 생각해 최대한 떨림을 자제하고 표정도 밝게 꾸민 뒤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계단 아래 현관문이 열리며 뛰쳐나온 이는 동생들이 아닌 성준이었다.
학교에서 바로 왔는지, 녀석은 곤색 블레이저 교복 차림이었다. 막 위의 이름을 부르려 뻥하고 벌어진 입이 그대로 굳어드는 것이 보인다. 기쁨으로 해바라기처럼 활짝 펴지려던 얼굴도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동작마저 굳어버렸는지, 위가 계단을 내려가 바로 코앞에 설 때까지도 녀석은 석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애들은? 혜윤이랑 휘는 어디 있어?”
“…….”
“성준아.”
“…….”
홀린 것처럼 위를 굽어보던 녀석의 눈시울이 빨갛게 변하더니 금세 뿌연 액체로 가득 들어찬다.
―아, 그래…….
문득 또 다른 미세한 아픔이 마음 한구석을 친다.
―……상처받았다……. 이 녀석도 상처를 받았다…….
“애들 어디 갔냐니까?”
되묻는 어조의 퉁명스러움은 위로의 의미였다.
괴롭기도 하고 조금 쑥스럽기도 해서,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줄줄 눈물을 흘리는 녀석을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 집에 있어…….”
가까스로 내뱉는 녀석의 쉬어터진 음성은 차라리 통곡 같았다.
“……녀석들 괜찮아? 걱정 많이 했지?”
“…….”
“현준이 형은 별일 없었냐? 그 사람들이 현준 형에 대해서도 묻던데…….”
“…….”
“새꺄, 벙어리가 됐냐? 답답하니까 대답 좀 해.”
“…….”
“김성준!”
“……애…… 그…… 윽…… 그…… 애들은 괜…….”
위를 따라 기계적인 걸음으로 방에 들어온 녀석이 겨우 대답을 토해냈지만 더 이상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장롱 문을 열던 위를 뒤에서 끌어안더니 숨죽인 오열을 터트린 때문이었다.
통곡은 꽤 오랫동안 서럽게, 서럽게 되풀이되었다.
마음이 여리긴 하지만 자존심도 꽤 세서, 자신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는 녀석이다. 철이 든 이래, 이렇게까지 우는 녀석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몇 번이나 괜찮다며 위로해도 녀석은 좀처럼 진정을 하지 못했다. 아픔이 느껴질 만큼 으스러져라 위의 상반신을 끌어안은 채, 그간 응어리진 상처와 근심과 우정을 미련 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죽여두었던 자신의 약한 감정까지 들추어낼 것만 같은 녀석의 히스테리를 견디다 못해, 위는 할 수 없이 몸을 돌려 녀석을 마주 안아주었다.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조금 마른 등줄기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녀석이 좋아하는 다정한 스킨십을 계속해주고 있는 사이, 조금씩 이성을 찾아가는 듯 울음소리가 잦아들더니 이윽고 녀석 스스로 위의 품에서 빠져나갔다. 쑥스러운지 눈물 콧물 범벅인 얼굴은 온통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현준 형도 너 잡혀 간 날 같이 들어갔었다. 하지만 다음 날 바로 풀려났어. 별로 심하게 당하지도 않았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속옷까지 벗어 던지고 알몸이 되는 위를 짐짓 외면한 채 녀석은 위가 듣고 싶었던 대답을 겨우 들려주었다. 풀려나고 나서도 현준 형 나름대로는 위를 꺼내기 위해 부단히 움직였던 모양이었다. 의절하다시피 한 부친에게 부탁도 해보고, 윤열이 형을 통해 알게 된 그쪽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했단다. 물론 그 어느 쪽도 별 소용은 없었을 것이다.
“……얼굴이 귀신 같다, 새꺄. 냄새도 장난 아냐. 정말 괜찮은 거냐? 어디 아픈 데는 없어?”
그럭저럭 제정신을 찾은 것 같은 녀석이, 면바지와 남방에 두꺼운 터틀넥 스웨터까지 만만찮게 껴입은 위의 어깨를 다시금 감싸 안으며 물어온다.
“괜찮아. 좀 감기기가 있는 거 빼면 아무렇지도 않아.”
욱신거리는 몸엔 녀석의 찰거머리 같은 스킨십도 마냥 아픔일 뿐이라, 슬쩍 몸을 빼며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감기라는 소리에 녀석의 얼굴은 또다시 딱딱하게 굳어졌다. 간간이 기침을 해대는 위를 비로소 깨달은 모양이었다.
“……가…… 감기라니…… 네가……?”
믿어지지 않는 듯 반문하지만 그만큼 얼굴은 근심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여전히 조금 홍조를 띠고 있는 녀석의 뺨이며, 덕지덕지 달라붙은 눈물 자국에 웃음이 난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장대처럼 크게 자라버린 녀석이건만 드라마틱한 표정도, 지도를 그리고 있는 눈물 자국도, 동네방네 쏘다니며 함께 해적놀이를 하던 어릴 때 그대로다. 물론 생김새는 많이 변했다. 지금이야 무슨 아이돌 가수처럼 남자답고 핸섬한 이목구비지만, 어릴 땐 자주 여자애로 오인을 받을 정도로 얼굴이 예쁘장했었다. 위가 계집애 같은 얼굴이라고 약을 올리면 녀석은 지금처럼 저렇게 잔뜩 인상을 구긴 채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었다.
“난 뭐 감기 걸리지 말란 법 있냐?”
“……그 그건 아니지만……. 근데 정말 참을 만한 거야? 이렇게 냄새가 지독한데 샤워도 안 하는 걸 보면 심상치가 않잖아!”
역시 한두 해 짬밥이 아닌 우정인지라, 위의 성벽(性癖)을 훤히 꿰고 있는 녀석이다.
“괜찮다니까. 감기 걸려갖고 샤워하는 얼간이가 어딨냐. 약 먹고 땀 좀 빼면 괜찮아질 거야.”
솔직히 호텔 화장실에선 유혹을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찜찜해도, 열이 피크로 치솟고 계속 오한이 드는 몸에 또다시 물을 들이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깨끗한 옷을 갈아입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열이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할 터였다.
위의 심드렁한 대꾸에도 불구하고 빨리 병원부터 들르라며 우격다짐을 하는 녀석을 일축하고, 위는 비로소 현준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사히 풀려났다는 소식을 전하자 현준 형 역시 성준이 녀석 못지않게 뛸 듯이 기뻐했다. 차례로 바꿔주는 휘와 혜윤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며칠 동안 녀석들이 얼마나 공포와 불안에 떨었을지 눈에 선했다. 단 한 번의 낙인 같은 상처란 평생 메워지지 않을 깊숙한 심연이다. 위에게 사소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어린 동생들은 이미 죽어버린 강이 형과 엄마를 거듭거듭 되풀이 강탈당하고 있었다.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동생들을 겨우겨우 달래 전화를 끊고, 성준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현준 형이 대신 동생들을 데려다준다고 했지만, 더 이상 폐를 끼치는 게 미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한시라도 빨리 동생들을 보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드문 만큼 유달리 눈에 띄는 남자의 은색 BMW가 주차돼 있던 곳은, 공안 요원들의 검정색 승용차가 주차돼 있던 바로 그 장소에서 단 몇 센티도 비껴가지 않은 곳이었다.
막 대문을 나서며, 마치 확인이라도 하듯 무심코 10여 미터 전방으로 시선을 보내는 스스로를 깨닫고, 위는 쓰디쓰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어디서 포획자가 노리고 있지나 않을까 잔뜩 겁에 질려 눈치를 살피는 토끼가 된 듯한 참담함이 위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참담함과 더불어, 뇌수를 찌를 듯이 날카롭게 시야를 점령하며 달려든 것이 남자의 BMW였다.
위가 걸음을 멈추고, 남자가 차 밖으로 나온 것은 거의 동시였던 것 같다.
늘 그렇듯이, 화려하고 세련된 유명 메이커의 옷으로 치장한 남자의 모습은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몹시 조심스러우면서도 수줍어하는 듯한 남자의 익숙한 시선은 홀린 듯 위를 굽어보고 있었다. 위와 시선이 부딪치자마자 화사하게 기쁨의 미소를 퍼트릴 뿐, 남자는 차마 위의 곁으로 다가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성준의 존재를 의식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위가 그토록 꺼리는 사적인 영역에까지 무단으로 침범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 남자는 공안 요원이 아니었다.
남자의 은색 BMW도 공안 요원의 검정색 승용차가 아니었다.
저들처럼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것도 아니요, 저들처럼 위의 인간다움과 품위를 무시한 채 똥물 같은 폭행을 가하는 쓰레기도 아니었다.
그랬다. 지금 현재 위가 간절히 원하고 있는, 사랑하는 동생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일을 방해하러 나타난 이는 그저 사내들을 좋아하는 한 예쁘장한 게이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위는 남자를 발견하자마자 마치 전기가 오르듯이 전신으로 치닫는 혐오감과 증오로 치를 떨어야만 했다.
“……위……?”
몇 걸음 앞서가던 성준이가, 석상처럼 굳은 채 남자를 노려보는 위를 돌아보며 얼굴에 물음표를 떠올리고 있었다.
몸을 파는 일은 녀석에게도 비밀에 부치고 있고, 또 가능하면 무덤까지 가져가자고 작정했었지만, 이미 온 넋이 분노로 들끓고 있는 위의 눈에 친구의 얼굴이 비집고 들어설 틈은 없었다.
친구의 부름은 들은 체도 않고, 위는 천천히 남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안 요원들에게 그러하듯이, 다가가는 보폭에 맞춰 하나하나 숫자를 세며 감정을 죽여가는 것은 물론이었다.
꽃 같은 미소로 화사하게 피어나 있던 남자의 얼굴은 위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더 어색하게 굳어들고 있었다. 엉망으로 초췌해진 위의 몰골 때문인지, 아니면 지독하게 싸늘해져버린 위의 태도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둘 다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시죠, 선생님? 먼저 전화를 주시지 않고요?”
냉랭하기 짝이 없는 어조로 불쑥 내뱉자, 웃을지 찡그릴지 갈팡질팡하던 남자의 얼굴은 말 그대로 사색이 되었다.
문득, 남자와 약속이 되어 있는 금요일을(호텔 스위트룸에서 형의 원수에게서 기묘한 서비스를 받고 있던 바로 어제였다!) 그냥 지나쳤다는 것과, 남자에게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준 적이 없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지만 상관은 없었다. 그저 어떻게든 남자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은 짐승 같은 복수심만으로 온 넋이 부들부들 떨었다.
“……어…… 아…… 그…… 그…… 미안…… 그…… 걱정이 돼서…….”
가느다랗게 주눅이 든 목소리가 남자의 입술을 타고 가까스로 흘러나왔다. 위가 물끄러미 굽어보기만 하자, 남자는 파르르 떨리는 자신의 입술을 초조한 듯 몇 번이나 핥아댔다.
“……어제…… 어…… 어제 약속한 날인데 아무 연락이 없어서……. 한 번도 그런 일 없었잖아…… 그래서…….”
“…….”
“……너…… 너무 걱정이 돼서…….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건 아닌가 해서…….”
“…….”
“……그…… 근데 정말 아팠나 보구나……. 얼굴이 많이 상했어…… 정말 아주 많이 상했어…… 많이…….”
“…….”
“……아…… 아무튼 그래도 괜찮은 거 봤으니까…….”
“…….”
촉촉하게 물기로 젖어드는 섬세한 눈시울이 가까스로 위의 시선을 비껴간다.
“……가…… 갈게……. 연락도 않고 불쑥 찾아와서 미안…….”
허둥거리는 몸짓으로 차 문을 여는 남자의 팔을 무심코 틀어쥐었다.
―그냥 보내줄 줄 알아……?
느닷없는 접촉에 기겁을 하며 위를 돌아보는 눈동자는 토끼처럼 휘둥그레져 있었다.
“……오늘 시간이 괜찮으시면 어제의 결례를 보상해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 괜찮으시겠어요?”
“……그…… 아…….”
“……선생님만 괜찮으시다면 저는 오늘이 편합니다.”
“……하지만 아프잖아……. 너…… 아…… 아픈데…….”
남자는 몹시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제대로 위의 얼굴을 들여다보지도 못하면서 무의미하게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우악스럽게 틀어 잡힌 팔목에 통증을 느끼는 듯, 무의식중에 위의 손등으로 손을 뻗었다간 피부가 맞닿은 즉시 깜짝 놀라 거둬들이길 반복했다.
“별로. 그저 감기일 뿐입니다.”
“……그…… 저…… 나는…….”
쩔쩔매는 남자를 납치하다시피 차 안으로 밀어붙였다.
“위……?!”
“일이 생겨서 지금은 못 가겠다, 성준아. 저녁때쯤 들를게. 그때까지만 동생들 좀 부탁한다.”
“위!!!”
휘둥그레진 눈으로 다급하게 외치는 성준에겐 아랑곳 않고 위는 차 보닛을 돌아 조수석에 몸을 밀어 넣었다.
“……빨리 출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친구한텐 알리고 싶지 않거든요.”
부탁이라기보다 명령에 가까운 냉담한 어조로 남자에게 말했다.
반쯤은 넋이 나가 있는 것 같던 남자는 위가 거듭 냉랭하게 재촉하자 그제야 부랴부랴 차를 출발시켰다.
기침이 심해지고 있었다.
두통은 끔찍했고, 타는 듯한 열기는 더 이상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쑤시는 통증을 동반하며 전신을 담금질해대고 있었다.
결국 복수심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시위인 셈이었다.
…… 무너지진 않는다…… 아무리 짓밟고 짓밟아도 절대로 무너지지는 않아…… 않는다……!
욱신욱신 둔중하게 울려대는 뇌혈관의 리듬에 맞추어 위는 야비하게 뇌까리고 있었다.
……겁에 질린 토끼 새끼처럼 눈치나 불 줄 알고…… 설마…… 쓰레기 같은 새끼들에게 굴복할 줄 알고, 누가!!!
……죽어도 굴복하지 않아!! ……! 아니, 죽지 않는다!!! 절대로 니들이 원하는 대로 죽어주지 않아!!!!!
정말로 겁에 질린 토끼처럼 어쩔 줄 모르며 위의 눈치를 살피는 운전석의 남자를 향해 통렬하게 의지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 순간, 토끼는 결코 자신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