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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989년 10월. 장인환(張仁歡) (9/129)

9. 1989년 10월. 장인환(張仁歡)

식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아둔 음식물찌꺼기며, 난장판인 화실이며, 도무지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부랴부랴 땀 냄새에 찌든 침실을 대충 치우고, 발에 채는 잡동사니를 몽땅 한쪽 구석에 몰아놓는 것으로 임시변통을 해보지만 60평에 가까운 쓰레기장을 30분 만에 정리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사이, 오히려 더 어수선해진 것만 같은 아틀리에를 굽어보며 절망을 하고 있는데 기가 막히는 타이밍으로 현관 벨이 울렸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가 이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커다랗게 심호흡을 한 뒤 현관문을 열었다.

책 배낭을 둘러멘 교복 차림의 그가 조용히 서 있었다.

―아아, 하느님, 다행이다……!

아플 때의 퀭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언제나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영웅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그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자신이 있다.

고작 일주일 사이에 얼굴에 살도 붙고, 무엇보다도 창백한 안색 대신 그 특유의 맑은 황금색 피부를 되찾은 것이 너무나 기뻤다. 스포츠머리에 가까울 정도로 짧게 잘라 만지면 뻣뻣한 감촉으로 다가올 암갈색 머리카락도, 도톰하고 섹시한 윤곽선을 그리고 있는 입술도 그리웠던 나머지 목이 멜 지경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아틀리에까지 걸어서 20분이 넘는 거리를 서둘러 뛰어온 모양으로, 코언저리에 땀이 조금 맺혀 있다. 깊게 음영이 진 맑은 눈은 언제나처럼 표정이 없었지만, 그러나 미묘하게 달라진 그를 깨닫지 못할 인환은 아니었다.

항상 자신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그 대신, 무언가 소탈하고 편안해진 표정의 그가 있었다. 저 병원에서의 진심 어린 사과 이래, 호의라고 불러 마땅할 온화한 분위기가 그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가르쳐주고 인환의 이름도 물어주었다. 절대 금지 구역일 그의 집 안에까지 초대하더니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차 대접까지 해주었다. 입원 이후에 그가 보여준 일련의 몸짓들은, 적어도 그가 인환을 어느 정도는 마음속에 받아들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물론 절대로 주제넘은 착각은 하지 않는다. 어쩜 그것은, 그가 자신을 상처 입힌 데 대한 일시적인 죄의식의 소산일 수도 있고, 또 설령 진짜 호감을 품고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우정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게 우정이 되었든 일시적인 감상이 되었든 인환에게 있어선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기쁨이요, 행복이었다. 아니, 기적이었다. 그에게 혐오감을 주는 것은 아닐지 늘 전전긍긍하며 눈치만을 살피던 자신이 감히 그의 호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니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랴!

“……정말 괜찮으세요?”

살피는 듯한 눈이 인환의 얼굴을 빤히 굽어본다. 정말로 걱정을 해주는 듯한 그의 표정이며 물음에, 전신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달콤한 기쁨이 흘렀다.

“괘…… 괜찮다고 했잖아……. 나아가는 중이라니까…… 그냥 잠만 좀 많이 자는 거랑 기침 좀 하는 거 빼면 기운이 넘친다구…….”

사실이다. 그 어떤 지독한 질병이라도 단숨에 격퇴할 수 있을 정도로 컨디션은 최고였다. 오주희를 만날까 봐 겁이 나서 수업에 며칠 빠지고는 있지만, 또 그녀가 소문이라도 낼까 살얼음판을 딛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어떤 근심거리도 그의 호의를 얻어낸 기쁨을 당해낼 순 없었다.

“……다행입니다.”

온통 빛을 내뿜고 있는 인환을 비로소 납득한 듯 그가 나지막하게 덧붙인다.

“……저…… 정말 집 안이 엉망이지……?”

현관 앞에 배낭을 벗어두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오는 그를 향해 허둥지둥 변명한다. 깔끔한 그에게 부끄러워 죽을 노릇이다.

“별로…….”

건성인 시선으로 한 번 휙 둘러보았을 뿐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여서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밥은? 저녁 아직 안 먹었지?”

애매하게 고개를 흔드는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수업 끝나고 직행했을 테니 당연한 질문인가? 후후…….

“……저녁부터 먹을까? 맛있는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음식점이 있는데…….”

“……별로 상관은 없습니다만 섹스 하기 직전에 식사를 하면 속이 좀 거북해서요. 선생님만 괜찮으시면 하고 나서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덤덤하게 한 말이었지만 인환의 제정신을 차리게 하기엔 더없이 확실한 한마디였다. 바보같이……. 또 오버할 뻔했다. 연인이나 친구가 아니라 그는 남창으로서 온 거다. 자신과 밥이나 먹으며 시시덕거릴 정도로 한가한 그가 아니다.

순식간에 풀이 죽는 인환의 얼굴을 빤히 굽어보는 그 역시 인환의 기분을 알아차렸다.

“아뇨. 제 말은, 말 그대로 섹스 하고 나서 먹고 싶다는 의미였습니다. 어차피 오늘은 수업이 일찍 끝나서 좀 더 오래 있을 수 있거든요. 선생님께 폐가 되지만 않는다면 먹고 가고 싶습니다.”

상냥한 어조였다. 게다가 입가에 희미하게나마 걸린 것은 미소였다. 아아, 정말로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꿀처럼 달콤하다는 게 이런 거로구나 하고 인환은 전율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있을 그와의 결합을 상상하고 온통 시뻘게진 인환을 찬찬히 굽어보며 그가 망설이듯 덧붙였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

“……선생님은 비교적 경제 문제에 여유가 있으신 것 같아서 부탁을 드려보는 것입니다만…….”

“……?”

“……그래도 만약 부담이 되신다면 당연히 거절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이건 제 문제고 달리 다른 고객을 찾아도 되는 일이니까요.”

“……?”

“만남의 횟수를 지금보다 더 늘려줄 수 있으신지요?”

두근…….

“사실 현재 선생님 말고 다른 두 명의 고객과도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만 솔직히 그분들이 까다로운 편이라 좀 애를 먹고 있습니다.”

두근…… 두근…… 두근…….

“선생님은 말씀드렸다시피 굉장히 편하고…… 뭐랄까, 아무튼 무척 관대하게 대해주시기도 하고…… 그래서 가능하다면 그 두 분 대신 당분간은 선생님과만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달리 새로운 고객을 물색할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

“……!”

“…….”

“……선생님……?”

“…….”

“……선생님…….”

“…….”

아아, 안 되는데……. 이러면 그가 달가워하지 않을 텐데……. ……너무 노골적으로 좋아하는 티를 내면…… 그러면 그가 또 경계심을 드러내고 말을 바꿀지도 모르는데…… 아아, 하지만…… 하지만…….

“……울지 마세요…….”

“…….”

“……선생님…….”

“…….”

문득 뺨을 간질이는 따스한 감촉이 느껴졌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그가 눈물범벅인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하지만 딱 1년이에요…….”

“…….”

“……1년이 지나면 계약은 끝납니다. 이해하시죠?”

“…….”

“……선생님은 믿어보고 싶어요. 끝낼 때 주희 씨나 다른 여자 고객들처럼 그렇게 절 괴롭히지는 않으실 분이라는 걸요.”

“…….”

“……울지 마요…….”

“…….”

“……울지 마…….”

“…….”

그의 입술이 내려왔다.

울음을 멈추게 하려는 의도의 키스라면 100프로 성공이다. 감정에 제동을 걸려는 의도의 키스라면 100프로 실패.

그가 학을 떼는 게 아닐까 설핏 걱정이 들 정도로 발정해버렸다. 도무지 내숭을 떨 수가 없었다. 당장 그의 것을 품을 수만 있다면 내일 지구가 깨져도 상관이 없겠다는 짐승의 욕망만을 가졌다. 발버둥 쳤다. 광란했다!!!

……위로하는 듯한 부드러운 입맞춤을, 물어뜯는 흡입으로 맞았다. 껴안고 침실로 걸어가는 그의 허리를 양다리로 친친 동여 감고 암캐처럼 허리를 흔들어댔다. 발기를 위해 비디오를 켜려던 그를 붙잡아 무턱대고 그의 자지를 움켜쥐었다. 마지못한 듯 억지로 일어선 멋진 물건에, 콘돔을 씌우기 위해 잠깐 떨어진 그 몇 초도 못 참은 나머지, 그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미친 듯이 허리를 비벼댔다. 박아, 박아, 박아, 마구 박아줘, 더, 더, 더 해줘, 더……! 마침내 침입한 그의 것에 자지러지며, 창피한 줄도 모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찔러지면 빨아들이고, 더 깊이 찔러지면 더 이상 내보내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똥구멍을 조였다. 그래도 빠져나가면 아쉬워서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애원하듯 울부짖으면 상냥한 그가 다시금 그전보다 격한 파동으로 맹렬하게 찔러들었다. 허리가 타들어가는 것만 같은 절정이 오면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을 활짝 열어 분수처럼 뿜어냈다. 뿜어내고 또 뿜어냈다. 온통 축축하게 젖은 몸 위에 그의 뜨겁고 습한 피부를 느끼면 몸서리를 치고 다시 발기했다. 지독할 정도로 사정을 참아내는 절륜한 테크닉의 그를,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안으로 빨아들였다. 상냥한 그는 지쳐 떨어져 더 이상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지경으로 열에 들뜬 자신의 똥구멍을 물릴 때까지 쑤셔주었다. 쑤시고 또 쑤셔주었다. 마치 대포 같았다. 탱크 같았다. 대포알에 뚫리고 탱크에 짓이겨지며 그와 하나로 달라붙었다. 달라붙은 몸이 좋아 몸서리쳤다. 너무 좋아 믿어지지 않았다. 꿈만 같았다. 좋아……! 좋아해! ……! 그가 좋아서 견딜 수가 없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 이 세상 끝까지 구석구석 못 알아듣는 이가 없을 지경으로 사납게 포효하며 그에의 사랑을 고백했다. 마침내 정말로 산산이 가루로 부서져 폭발하며 인환은 끔찍스러운 오르가슴의 폭풍 속으로 침몰해 들어갔다…….

“……한번…… 더 할래요……?”

“…….”

“……또 하실 기운 있어요……?”

“…….”

눈물과 땀범벅인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그의 손길에 그만 또 발기를 하고 말았다.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저녁을 먹어야 했지만 침대에서 빠져나올 마음은 도무지 들지 않았다. 뜨겁고 축축하고 달콤한 그의 몸에서 한시라도 떨어진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의 등을 껴안고 있던 팔에 좀 더 힘을 주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원을 전달하자 그가 웃는다. 하느님,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미소다. 자신의 몸을 덮치듯 안고 있는 자세 그대로, 콘돔 상자로 팔을 뻗는 그를 무심코 가로막았다. 더 이상 그에게 아무것도 숨기고 싶지 않았다. 다리가 흉한 콤플렉스도, 사생아란 사실이나 지저분하고 게으른 천성이란 것도, 그리고 경험이 없다는 것도…….

“……굳이 매번 콘돔 쓰지 않아도…….”

“……?”

“……사실은 나, 네가 처음이니까…….”

“……!”

“……아…… 그러니까…… 처음이라고 하면 좀 쪽팔리고…… 또 네가 거절할까 봐…….”

“…….”

“……그래서 좀 뻥을 깠어. ……에, 그러니까…… 귀찮게 콘돔 안 써도 된다구. 내가 자본 사람은 네가 유일하니까…… 적어도 너랑 할 동안에는 다른 사람이랑 하지도 않을 거니까 성병 같은 건 걱정 안 해도 돼…….”

조용히 굽어볼 뿐인 그에게 변명하듯 계속 떠들다 보니 좀 쪽이 팔린다. 그래도 고백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넌 잘 참으니까 밖에다 사정하는 것도 잘할 거야. 뭐, 그냥 안에다 싼다 해도 별로…… 솔직히 네 체액을 안에 받으면 정말 좋겠지만…….”

“…….”

아아, 점점 더 쪽 팔린다, 젠장…….

“……아니, 그건 그러니까…… 으……! ……변태 같지? 남자 좆물이나 밝히고…….”

“…….”

“……대답해봐. 놀랐니? 기분 나빠……?”

“……별로……. 혹시 그렇지 않을까 의심했던 적이 있어서 그리 놀랍지는 않습니다.”

얼굴을 쓰다듬는 손놀림이나 어투에도 부드러움이 여전해서 겨우 안심을 했다.

“어, 그랬어? 몰랐네. 그래도 나 노련하게 보이기 위해 기를 썼었는데…….”

“……그럼 교과서는 포르노테이프들이었습니까?”

입가를 씰룩이며 그가 묻는다. 웃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하다. 우씨, 역시 쪽 팔린다.

“……포르노가 실전보다 더 유용하다구. 비웃지 마…….”

“…….”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키스를 해주지만 부들부들 떠는 입술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역시 비웃고 있다, 우쒸…….

“……그래도 안에다 사정하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설사나 복통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말씀대로 밖에다 하도록 해보겠습니다.”

담백하게 내뱉고는 좀 더 집중해서 인환의 몸 이곳저곳에 애무를 하기 시작했다. 뺨과 코끝을 핥고, 목덜미와 귓불을 차례로 물어뜯었다. 겨드랑이와 팔 안쪽, 예민한 부분까지 그의 입술이 내려가자 가뜩이나 부푼 자지가 쓰라릴 지경으로 욕망이 느껴졌다.

“……빨리…… 비디오 틀고…….”

이례적으로 두 번이나 사정한 그의 자지는 축축하게 젖은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어떡하든 빨리 그를 품고 싶은 안타까움에 흥분한 자신의 것을 문지르며 애틋하게 호소했다.

“……비디오는 됐습니다. 그냥 손으로 해보죠.”

비디오 덱까지 가기가 귀찮았는지, 손을 뻗어 스스로 마찰을 시작한다. 줄곧 목 언저리를 맴돌던 입술로 인환의 것을 틀어막고 깊은 키스를 한 것과 거의 동시였다. 목구멍 깊숙이 찔러 들어오는 그의 혀끝에 온몸이 자지러지며 다리가 활짝 열렸다. 이윽고, 거대하게 부푼 그의 몸이 기대감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좁은 문을 헤치고 한껏 미끄러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몸서리쳐지게 기분 좋은 압박감이 항문 벽을 때리고, 단전을 치고, 이어 척추를 지나 정수리 끝까지 뻗쳤다.

마치 스위치가 켜지듯 눈시울 가득 붉은 혈액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성을 앗아가는 아득한 쾌락의 파도에 삼켜지며, 인환은 생애 최고가 될 한 해를 온몸으로 맞아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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