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1990년 10월. 장인환(張仁歡)
의사는 염증이 진행된 상태에서 이를 뽑으면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했었다. 항생제를 투여하고 일단 염증을 가라앉힌 후 이를 뽑자고 덧붙이는 의사에게 자신은 아무래도 좋다고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토록 무서워했던 치과 치료가 그저 꿈속의 일인 것마냥 현실감이 없었던 것도 기억한다. 마취 주사도 꽤 아팠었고, 잇몸을 후벼 파듯이 다가든 포셉의 선뜩한 감촉도 어렴풋이 생각난다. 마취가 풀려가며 느껴지는 지독한 통증에 엉엉 울음을 터트렸던 것도. 치과에서 아틀리에까지 30분이 넘는 여정을 설리 울며 운전을 해 갔던 것도 창피할 정도로 다 기억난다.
참기 힘들 만큼의 끔찍한 통증은 집에 도착해서도 한동안 지속되었다. 치과에서 처방해준 진통제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서 집에 굴러다니던 진통제를 네 알이나 더 삼켜야 했다. 도합 여섯 알의 진통제 덕분에 그럭저럭 통증은 참을 만해졌지만 이를 뽑은 쪽 뺨과 목 언저리는 마치 두꺼비 배처럼 퉁퉁 부어올랐다.
확실히 의사의 조언을 듣지 않은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던가 보았다. 몇 년 전 충치를 하나 치료했을 땐 통증도 그때뿐이었는데, 이번엔 연 이틀을 지독하게 고생해야 했다. 통증도 견디기 괴로웠지만 얼굴과 목의 부기가 좀처럼 빠지지 않아 물 한 모금조차 넘기기 힘든 것은 더더욱 괴로운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성급한 치료를 후회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후회는커녕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지독하게 육체적인 통증에 집중하는 사이, 그보다 더 지독할 다른 고통이 잠시 잊혔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붙들고 싶었던 치통도, 그러나 사흘째가 되니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사흘째의 아침, 부기가 완전히 빠져 멀끔해진 얼굴을 거울로 들여다보며 인환은 다시금 절망했다. 달리 집중할 강력한 무언가를 찾아야만 할 텐데, 당장은 뾰족한 그 어떤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며칠 안 남은 전시회 준비가 있었지만 이미 그려야 할 그림도 모두 완성이 된 상태였다. 초대장과 카탈로그도 다 돌렸고, 몇 십 장 되지도 않을 전시 안내 포스터는 기하 선배가 알아서 알려질 만한 장소에 몽땅 붙여주었다. 액자 집에 맡겼던 그림을 찾아 선 화랑으로 가져다 걸기만 하면 모든 준비는 오케이였다. 그림만 그리던 평상시에 비해 비교적 할 일이 많았던 요 몇 주였지만, 그래봤자 널럴한 백수에겐 일거리랄 수도 없었다. 정작 전시회가 시작된다고 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시장에 죽치고 앉아 초대객들을 접대하거나 혹시 있을지도 모를 잡지사 기자들과의 인터뷰에 짬짬이 응하는 외엔 달리 할 일이라곤 없었다. 그랬다. 절망에 빠질 시간은 치명적일 정도로 넘쳐났다.
만나볼 수 있는 인연들이란 인연들은 몽땅 다 찾아내 매일 만남을 가졌다. 자주 부대끼는 미대 동기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10여 년 이상 만나지 못했던 국민학교 동창들까지 연락해서 새삼스러운 놀이판을 만들었다. 점심 무렵 아틀리에를 빠져나가 새벽녘이 돼서야 고주망태가 돼 돌아오는 방탕한 나날이 연일 계속되었다. 때때로 외박을 하게 된 것은 물론이었다. 그렇게 열흘을 보내는 사이 살이 5킬로그램이나 빠지게 되었다.
전시회 첫날엔 비가 내렸다.
보통은 화창한 날이 많은 10월에 웬 비냐며 기하 선배는 꽤나 찜찜해했다. 미신과 귀신의 신봉자인 기하 선배답다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전날도 미대 동기의 아틀리에에서 날밤을 깐 부스스한 몰골을 하고 마지못해 화랑으로 달려온 자신으로선 만사가 귀찮기만 했다. 기하 선배가 아니었다면, 의외로 발걸음을 해준 꽤 많은 수의 초대객들을 접대하거나 고사를 지내는 귀찮은 일들은 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점심 무렵, 고사떡을 해 갖고 선 화랑에 나타난 엄마는 열흘 만에 거의 반쪽이 되다시피 한 자신의 얼굴을 보곤 기절초풍을 했다. 전시회 준비를 하느라 피곤이 쌓여서 그렇다는 어설픈 변명을 그나마 믿어주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그날로 엄마 집에 끌려가 일주일 내내 잔소리를 들은 것은 물론, 붕어즙이다 자라다 사슴피다 온갖 보양식을 해다가 강제로 먹이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것은 물론이었다.
분신사마의 점괘가 맞아떨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전시회는 비교적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기대할 만한 신인이라며 평단의 반응도 좋은 편이었고, (대부분은 엄마의 거래처 사람들이거나 마해영 같은 친구들이었지만) 그림도 몇 점이나 팔 수 있었다. 학교 은사들과 과 선배 몇은 국전이나 공모전에도 출품을 해보라는 권유를 하기까지 했다. 물론 짜고 치는 고스톱인 국전 따위에 나갈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절대로 패거리를 끼고 가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그림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엄마 집에 끌려간 지 일주일 만에 겨우 훈방 조치가 취해져 아틀리에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사이 조금 붙은 살은 다시 시작된 방탕한 생활로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음은 물론이었다. 엄마 집에 있을 땐 잠깐씩이나마 매일 전시장엘 들러 관람객들을 맞았지만, 아틀리에로 돌아오고 나선 그나마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 직원 두 사람과 함께 전시장을 지키던 사람 좋은 기하 선배가 무책임하다며 참다못해 잔소리를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3주에 걸친 첫 개인전이 끝나던 마지막 날, 놀랍게도 오주희가 전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의 일이었다. 간밤의 숙취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라 마냥 침대 속으로 파고들고픈 날이었다. 마지막 날이 별건가, 그저 벽에서 그림만 떼는 날이 아닌가 하며 불만스러운 기분도 들었었다. 물론 기하 선배가 마련해준 뒤풀이까지 보이콧을 했다간 아무리 사람 좋은 선배라도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해골처럼 퀭하고 푸석한 얼굴을 하고 마지못해 선 화랑으로 들어섰을 때, 인환은 한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좁은 사무실 안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과 동기들과 서클 동료들 틈에서 오주희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어쩜 그 자리에서 그대로 온몸이 굳어버렸거나 창백하게 질린 채 정신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미 자신은 더 이상의 고통은 느낄 수도 없을 만큼 충분히 담금질이 돼 있는 상태였다. 웬만한 자극이나 상처들엔 눈 하나 깜짝 않을 정도로 무감각해져 있었다. 그것은 오주희의 느닷없는 등장에도 거의 다르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죄책감도, 수치도, 하다못해 그녀가 자신을 게이라고 사방팔방에 까발릴까 전전긍긍해하던 해묵은 공포감조차도 거의 느낄 수가 없었다. 그저 멍하니 그녀가 반갑다는 생각만 들었다. 막상 보니 그동안 그녀를 꽤 그리워했다는 사실도 막연히 깨닫고 있었다.
당황한 쪽은 오히려 그녀 같았다. 막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그녀의 눈은 화등잔마냥 휘둥그레져 있었다. 그녀가 왜 이렇게 놀라나 하며 잠시 얼빠진 미소를 짓고 있던 인환은, 얼굴이 왜 그러냐며 그녀와 똑같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호들갑을 떠는 동기들에 의해 비로소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숙취로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몸무게도 갑자기 7킬로나 빠졌으니 한두 달 만에 보는 동기들이 기절초풍할 만도 했다. 전시회 내내 옆에서 자신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던 기하 선배만이 가볍게 혀를 차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을 뿐이었다.
거의 1년 만에 보는 그녀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의 형편없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를 알아왔던 지난 몇 년 그대로, 기승스럽고 도도하며 활기찬 여장부로 되돌아와 있었다. 자신을 대하는 허물없는 태도 역시 그때와 너무나 다름이 없어, 그녀와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닌가 잠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죽을죄를 지었다고, 비겁하고 파렴치하며 교활했던 자신의 행동을 용서해달라고 사과를 하는 것도 새삼 머쓱한 짓거리로 여겨질 정도였다.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턱은 없었다. 세포 하나하나마다 아로새겨진 채, 매 순간 지독한 그리움과 고통을 주고 있는 그의 존재가 그녀와 자신 사이에 가로놓여 있었다. 지금 아픈 것이 현실이라면 그녀에게 사과를 해야만 한다는 것도 생생한 현실이었다. 뒤풀이의 끝 무렵, 주점과 노래방들을 전전한 끝에 오주희는 비로소 그 현실을 인정해주었다. 술기운을 이기지 못해 노래방 입구 계단에 나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는데, 문득 보니 그녀가 옆에 앉아 있었다.
“……스커트 더러워지면 어쩌려고 그래.”
크림색 미니스커트 차림을 하고도 주저 없이 계단에 쪼그리고 앉는 그녀가 기가 막혀 가볍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는 넌? 85학번 회화과 최고 멋쟁이가 그 꼴이 뭐냐? 완죤 주정뱅이가 따로 없구만.”
“내가 뭘…….”
그녀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옷차림을 살펴보곤 차마 말을 맺지 못했다. 일어나자마자 눈에 띄는 대로 대충 걸치고 나온 청바지와 점퍼는 밸런스가 안 맞는 건 둘째치고, 잔뜩 구겨진 채 군데군데 정체불명의 얼룩까지 묻어 있었다. 샤워 후 젖은 머리 그대로 잠이 드는 바람에 제멋대로 뻗친 머리카락이며, 이틀째 면도를 하지 않은 얼굴은 엉망인 옷차림과 한가지일 것이다. 하루도 술을 푸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이니 주정뱅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것은 물론이리라. 가관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 그녀에게 피식피식 웃음만 흘렸다.
“쌤통이다. 그러게 남의 애인은 왜 뺏어, 뺏길. 너 벌 받은 거야, 새꺄.”
“쿡쿡…… 뺏은 거 아니다, 뭘…….”
“구라 까지 마, 이 호모 새꺄. 그게 뺏은 게 아니면 뭐냐?”
“호모는 욕이야. 게이라고 불러.”
“새끼, 니가 지금 나한테 훈계하는 거냐? 뻔스럽게? 욕먹을 짓 했으니까 욕하는 거다, 이 호모 새꺄. 벼룩이도 낯짝이 있지, 어디서 감히 훈계야, 훈계가.”
“아, 씨팔. 자꾸 호모, 호모 그럴래? 소문나면 선배가 책임질 거야? 나 커밍아웃 할 생각 없단 말야, 씨…….”
“허쭈? 겁은 나나 보네? 천하에 밉살맞은 짓은 다 해놓구?”
“우이씨, 미안하다구! 진짜 미안해!”
“뭐, 용서해주지. 나처럼 차여서 울고 있지 않음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원한을 품을라구 그랬는데, 지금 아주 깨소금 맛이니까 봐준다, 이 호모 놈아.”
“맘보 좀 곱게 써. 아파본 사람이 남 아픈 처지도 이해한다는데 선배는 왜 그래?”
“새꺄. 아파봤으니까 고소해하는 거다. 죽을 만큼 아파도 언제 그랬냐 싶게 곧 멀쩡해지니까.”
“거짓말.”
“이 새끼가 속고만 살았나?”
“……정말 죽겠는데……? 괜찮아지기 전에 죽을 것 같은데……?”
“오버하고 자빠졌네. 소설 쓰냐, 장인환? 너 연애가 그렇게 드라마틱한 건 줄 알아?”
“…….”
“믿어. 경험자가 하시는 얘기니까. 한 바가지쯤 눈물 쏟고, 유행가 가사란 가사는 죄다 적어 외울 수 있을 경지가 되면 제정신으로 돌아올 테니.”
“…….”
과연 1년 만에 본 그녀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며 그의 애정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예전의 모습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정말로 한 바가지쯤 눈물을 흘리고 나면 고통이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행가 가사란 가사를 죄다 외워 불러댈 수 있으면 이 화인(火印) 같은 사랑이 잊힐지도. 인환은 반쯤만 믿기로 했다.
“……밥은 먹고 지내는 거니?”
“…….”
“……기하 선배가 걱정 많이 하더라. 딴 놈들도 모두 너 이상하대.”
“…….”
“……너 죽겠다고 나만 들볶아. 그만 용서해주라나. 허 참, 병신 같은 것들이 오지랖만 넓어서는…… 영문도 모르고 뒷다마나 까면서 나만 못된 년 만든다니까.”
“…….”
“……그래서 알긋냐, 이 호모 새꺄? 더 이상 민폐 끼치고 싶지 않음 밥이라도 처먹고 다녀. 술은 그만 퍼대고.”
“…….”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자신은 조금 울었던 것 같다.
그에게서 버림받은 지 34일 만이었다. 34일 만에 처음으로 그에게서 버림받았다는 현실을 인정했다. 깨소금 맛이라서 용서해준다는 오주희 덕분이었다. 같은 사람에게서 똑같이 버림받았던 그녀가 하는 얘기이니 틀림없었다. 그녀는 어깨동무를 하듯 한 팔로 자신을 안아주었다. 그녀에게선 자신과 똑같은 버번 위스키 냄새가 났다.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지 않는 걸 보면 별로 취한 것 같진 않은데 너무나 관대하기만 했다. 대단한 여장부가 아닌가. 근사하지 않은가. 자신 같으면 절대로 안아주지도, 또 위로해주지도 않았을 거라고 속으로 감탄을 했다. 무한한 관용으로 용서를 해주지는 더더욱 않았을 거라고 자신의 속 좁음을 비참해했다.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지독한 고통과 절망을 바로 1년 전 그녀에게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그랬다.
“……집에 가서 좀 자야겠어, 선배.”
눈물을 훔치면서 일어서자 그녀도 따라 일어서더니 먼지투성이가 된 엉덩이며 바짓가랑이를 털어주었다. 그녀의 예쁜 크림색 스커트 역시 새카만 얼룩이 묻어 있었지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래. 가서 푹 자. 전시회도 끝났으니 당분간은 딴생각 말고.”
“……그림이나 열심히 그려야지, 뭘.”
힘겹게 웃는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당분간은 그림도 잘 안 그려질 거야. 차라리 어디 여행이나 갔다 와라. 따뜻한 해변 같은 데. 하와이도 좋고 발리도 괜찮더라.”
“……그럴까? 그러고 보니 좀 춥구나, 요즘.”
10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늦가을로 접어든 스산한 날씨는 이미 겨울을 느끼게 했다. 미처 자각하지 못했지만 쓸쓸한 계절이 주는 외로움 때문에 자신은 더더욱 힘들어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 말대로 따뜻한 해변으로 놀러 가서 기분 전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평에 아틀리에 냈다는 얘기 들었어. 언제 놀러 가도 되지?”
“놀러 오는 건 좋은데, 일단 살부터 좀 찌우고 와. 볼썽사나운 폭탄들은 부정 타니까. 알긋냐? 꽃미남 아니면 내 화실엔 출입 금지란 얘기다.”
“체, 그놈에 꽃미남 밝힘증은 하여간…….”
그녀가 사랑했던 꽃미남 중의 꽃미남이 기습처럼 떠오르는 바람에 또다시 눈물이 핑 돌았다. 대책 없이 후둑후둑 떨어지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고 있던 자신을, 그녀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안아주었다.
“……갈게. 선배들한테 먼저 간다고 좀 전해줘.”
거듭 어리광을 부릴 면목도 없어 서둘러 그녀를 밀어냈다.
“잘 지내. 밥 열심히 먹고.”
“응, 선배도. 전화할게.”
조금씩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며 나머지 계단을 따라 현관 앞까지 내려왔다. 자신을 굽어보는 그녀의 걱정스러운 눈길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돌아보면 또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그대로 현관을 빠져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서자마자 선뜩한 칼바람이 취기로 달아오른 얼굴과 옷깃을 때리고 지나갔다. 정말로 벌써 겨울이 온 건가 싶게 추운 기분이 들었다. 내일 당장 어디로든 뜨자고 작심을 하고 인환은 점퍼 깃을 힘껏 움켜쥐었다.
남쪽이다. 방향은 무조건 남쪽. 따스한 햇볕이 가득한 남쪽 해변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