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 1991년 3월. 장인환(張仁歡) (21/129)

21. 1991년 3월. 장인환(張仁歡)

“……직접 열고 들어오라니까. 비번 알잖니.” 

“그럴 순 없습니다. 열어주시면 들어가겠습니다.”

“……들어와. 현관까지 갈 기운 없어서 그래.”

“인터폰은 거실에 있잖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나 비번 안 바꿔. 그냥 들어와.”

“…….”

조심스럽고도 정중한 거절의 말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았다. 물론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 또한 들려오지 않았다.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한 침묵만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주먹을 꼭 틀어쥔 채 숨을 삼키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당장이라도 그의 얼굴을 보고 싶어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애초부터 고집 싸움에서 그에게 이겨볼 생각을 한 자체가 가당치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친구 관계를 박살낸 주제에 예전처럼 직접 문을 따고 들어오라고 하는 것부터가 주제넘은 욕심일 터였다. 쉬울 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각오한 바였다. 열에 아홉은 자신이 깨지리란 것도 충분히 예상한 일이 아닌가. ……독하게, 독하게.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다음 스스로에게 주입한 주문을 되뇌었다.

힘이 풀린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현관 앞까지 걸어갔다. 그가 직접 열쇠를 따고 들어와주는 것이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꿈이라면, 자신이 직접 문을 열어서라도 그를 맞아들이고 싶었다. 배달부들이나 김천댁 아줌마처럼 그저 버튼 하나 누르는 것으로 무성의한 마중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자신을 그저 낯선 타인인 고객 취급을 할지언정, 자신에게 그는 여전히 세상 누구보다도 소중한 연인이었다.

문을 열기 직전, 현관 앞 붙박이 거울에 비친 자신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았다. 여전히 해골처럼 마르고 새까맣게 그을린 미운 몸이 퀭한 눈을 한 채 이쪽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아침부터 온몸 구석구석을 씻고, 미용실에 가서 최신 유행 커트를 하고, 백화점에서 사 온 최신 유행의 베르사체 옷과 액세서리들로 도배를 했건만, 보기 흉한 모양새는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살이 찔 때까지는 설령 성형 수술을 한대도 별 도움이 못 될 터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찰칵.

잠금쇠를 풀고 천천히 문을 밀어붙였다. 30도쯤 비스듬히 열린 문틈 너머 그리운 얼굴이 보였다. 두근…… 그렇게 각오를 했음에도 심장은 여전히 아래로 뚝 떨어지며 극심한 동요를 일으켰다.

표정 없는 눈동자가 잠시 자신의 전신을 들여다보는 듯하다가는 이내 한쪽 구석으로 시선을 비켰다. 조용히 굳어 있는 얼굴 표정엔 자신에 대한 분노나 혐오의 감정조차 드러나 있지 않았다. ‘상냥 무표정’을 기대할 만큼 뻔뻔스러운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그러나 ‘글루미 무표정’이랄지 ‘사자후 무표정’ 정도는 읽을 수 있을 줄 알았었다. 물론 그 모든 미묘한 표정 변화들이 그가 그만큼 자신에게 마음을 열었기에 읽기가 가능했었다는 것을, 인환은 지금 이 순간 뼈저리게 자각하고 있었다. 다시금 완강하게 마음을 닫아버린 그의 얼굴에선 그저 냉랭한 얼음벽 이외엔 그 어떤 감정의 변화도 읽을 수가 없었다.

……아프지 마. 울컥 치받치는 감정의 응어리를 담담히 주워 삼키며 스스로에게 또다시 주문을 건다. ……독하게, 독하게. 각오한 일 아니니. 이까짓 일로 아프지 마. 상처받지 마. 그를 다시 볼 수 있잖아. 만질 수 있잖아. 안을 수 있잖아. 그러니까 상처받지 마…….

아픔을 주는 얼굴에서 시선을 내리고 그의 몸을 살핀다. 아아, 얼마나 그리워했던 몸이란 말인가. 흠 하나 찾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균형 잡힌 아름다운 실루엣이 눈을 홀린다. 기억에 있는 그대로, 매일 밤 꿈에 보았던 그대로, 길고 늘씬하고 단단한 근육의 흐름이 매끄러운 포름을 만들며 바닥까지 이어지고 있다. 강렬하고 위험스러운 수컷의 몸. 빛바랜 청바지에 잿빛 면 티셔츠, 그리고 며칠 전에 본 감색의 싱글 브레스티드 재킷이 그나마 격렬한 야성을 설핏 숨겨주며 부드럽게 몸을 감싸고 있다. 구두도 며칠 전에 본 옅은 밤색의 랜드로버. 어깨에 둘러멘 책 배낭은 양끝 모서리에 보풀이 일어날 정도로 낡은 고딩 때의 그것이다. 짠돌이 같으니라구. 그저 재킷과 바지 한두 벌, 그리고 랜드로버 한 켤레 장만하는 것으로 새내기 준비를 마감한 모양이다. 가슴 아프게스리, 가방 하나 사는 데 돈이 얼마나 든다고.

“……들어와. 가방 이리 주고.”

“괜찮습니다.”

고딩 때보다는 한결 슬림해진 부피의 배낭으로 손을 뻗자 그가 슬쩍 몸을 틀어 자신의 손길을 피했다. 유연한 움직임으로 신발과 배낭을 벗어 현관 앞에 가지런히 놓아두더니 멍하니 넋을 놓고 있던 자신을 스쳐 거실 안쪽으로 걸어갔다. 무의식적인 거부의 몸짓이었기에 시선으로 외면당한 것보다도 더 속이 쓰렸다. ……아프지 마. 독하게, 독하게, 독하게. 주문 세 번.

“……점심은 먹었니?”

“먼저 씻을까요?”

“…….”

“먼저 씻으시겠습니까?”

재킷을 벗어 거실 소파에 던지며 그가 재차 물었다. 지나칠 정도로 예의 바르고 정중한 어조였다. 무표정한 눈이 자신의 어깨 너머로 환하게 햇살이 들고 있는 거실 창 밖을 조용히 굽어보고 있었다.

“점심 먹었냐고 묻잖아.”

“예, 먹었습니다. 그럼 먼저 씻겠습니다.”

칼로 자르는 듯한 냉담한 대꾸와 함께 막 몸을 돌려 욕실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의 등을 무턱대고 끌어안았다. 움찔 몸을 굳히며 걸음을 멈추는 그가 느껴졌다. 목줄기 아래, 우묵하게 팬 곳에 뺨을 갖다대자 따스한 체온과 더불어 그리운 체취가 폐부 가득 파고들었다. 정신없이 얼굴을 부벼댔다. 그의 앞가슴에 십자가처럼 교차돼 둘러진 자신의 양손은 몹시 떨리고 있었다. 티셔츠 너머, 단단하게 물결치는 가슴 근육과 도드라져 있는 유두 끝이 따스하게 만져졌다. 꿈만 같아서 손바닥으로 몇 번이나 쓰다듬기를 거듭했다. 석상처럼 몸을 굳힌 채 마지못해 자신의 포옹을 견디고 있는 그가 생생히 느껴졌다. 눈시울이 뜨겁고 목이 메는 것이 기쁨 때문인지 아픔 때문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를 다시 품에 안을 수 있게 된 기쁨과 그의 냉랭한 태도가 주는 아픔 중 어느 것이 더 자신을 동요시키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복받치는 감정의 응어리를 눌러 삼키기 위해 기를 썼다. 울진 않겠다. 울 순 없었다. 독하게 마음먹지 않으면 그는 언제라도 가증스러운 우정을 들이밀며 자신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릴 터였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혹은 모래바람처럼.

“……어…… 어디서 먹었니? 학교 식당에서?”

“……예.”

“……싸다고 학교 식당 밥만 먹지 말고 자주 밖에 나와 먹도록 해. 영양 밸런스가 충분하지 않다고 들었거든.”

“…….”

“……휘는 데려왔니?”

“예.”

“건강은 괜찮고?”

“예.”

“……다행이네. 걱정 많이 했단다. 넌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바로 시작하시겠습니까?”

“…….”

“땀 냄새가 괜찮으시다면 저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담담하게 방향을 튼 말머리에서 여전히 철퇴처럼 완강한 벽이 만져졌다. 아무리 각오한 바라지만, 전속력으로 돌진하기만 하는 외사랑이었기에 번번이 벽에 부닥치는 충격은 상당했다.

“……고약하게 굴기로 했니?”

“…….”

“꽤 아프네. 다정하게 해주던 것에 길이 들어버려서 각오했던 것보다 더 아파. 계속 할 생각이니?”

“…….”

“그러지 마. 안 그래도 미움받을 짓 한 거 알아. 배신 때린 거 모를 만큼 염치없지는 않으니까.”

“…….”

“하지만 나 여전히 너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더 참았다간 죽겠어서 그랬어. 미칠 것 같아서 그랬다구. 그것만이라도 알아줄 수 없겠니?”

“…….”

“왜 대답 안 해? 인정 못 하겠어?”

“…….”

“나랑은 이제 얘기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니?”

“죄송합니다만 대화는 친구분들이랑 나누시는 게 어떨까요?”

“…….”

“고객과 서비스 이외의 얘기를 하는 것은 좀 거북합니다. 시간 낭비 없이 바로 시작했으면 하는데요.”

“…….”

너무나 예의 바르고 정중한 말투가 어떻게 차디찬 가시가 될 수 있는지 새삼 실감을 한다. 명치끝이 꽉 막혀오는 통증에, 몇 번이나 커다란 심호흡을 하며 그를 안은 팔에 힘을 주어야 했다. 가시 돋친 어조에선 찬바람이 일어도, 자신의 팔 안에서 탄탄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몸은 여전히 따뜻했다. ……믿어야지. 이 따스한 체온을 믿어야지…….

“……씻지 않아도 돼. 네 냄새는 전부 다 좋으니까. 하지만 지금 당장…….”

채 고통을 삭히지 못한 자신의 목소리가 탁하게 갈라져 나왔다. ……고약하게 굴어도 좋아. 그래도 너무 좋아. 다시 내 거야. 내 것이 됐어. 이거 봐. 정말로 꿈이 아니야…….

무의식적으로 유두를 만지작거리던 자신의 손가락을 억센 손아귀가 움켜쥔다. 아픔이 느껴질 만큼 강력한 악력이었다. 우악스러운 손길은 나무 등걸의 매미처럼 그의 등에 달라붙어 있던 자신을 가차 없이 떼어내고 있었다. 한두 걸음 앞으로 옮겨 자신과 거리를 만든 그가 곧바로 티셔츠를 벗어 던지는 게 보였다. 신경질적이고 난폭한 동작에 따라, 꿈틀거리는 등과 어깨의 근육들이 화살처럼 눈으로 박혀들었다. 낡은 잿빛 티셔츠가 소파 위로 던져졌다. 청바지 벨트를 푸는 날카로운 금속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청바지 역시 티셔츠와 마찬가지로 걸레처럼 팽개쳐졌다. 양말도, 팬티도 한가지였다.

거의 8개월 만에 보는데도 여전히 기억에 생생한 아름다운 나신이 침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손가락의 떨림은 온몸의 떨림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나신을 순식간에 집어삼킨 침실 문이 어둠침침한 동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섹스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은 그대로 입안에 갇히고 말았다.

얘기를 나누고 싶었었다. 이런저런 안부를 다정하게 묻고, 준비해둔 맛있는 간식을 함께 먹고, 화사한 봄기운이 도달한 동네 골목을 산책하다가는, 다시 아틀리에로 돌아와 로맨틱한 음악을 듣고 싶었었다.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TV 9시 뉴스와 주말의 명화도 함께 보다가 침대로 가고 싶었었다. 섹스를 하면 좋겠지만 못 한대도 상관없었다. 그저 저 그립고 아름다운 얼굴을 마주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저 그를 껴안고 잠들 수만 있어도 가슴이 터질 만큼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장은 자신이 미울 테니까, 미워서 쳐다보고 싶지도 않을 테니까 마음을 독하게 먹자고, 언젠가 다시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줄 때까지 독한 마음으로 기다리자고, 지난 며칠 동안 내내 그리 스스로를 독려했었다. 물론, 그 야심찬 다짐과 핑크빛 계획들은 ‘현관문 열기’의 신경전에서부터 여봐란듯이 깨지고 있었다. 쉬울 리는 없었다. 처음부터 각오했던 일이었다. 열에 아홉은 자신이 깨지리란 걸 충분히 예상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여전히 휘청대는 걸음으로 마지못해 침실로 들어갔다. 앞으로 시작될 불순한 정사가 무색할 만큼 침실엔 거실과 마찬가지로 밝은 햇빛이 가득 들어앉아 있었다. 침대 맞은편 비디오 덱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그가 보였다.

“……포르노 테이프들이 보이지 않는군요. 따로 치워두신 겁니까?”

등을 보인 자세 그대로 그가 담담하게 물어왔다. 새하얀 봄볕을 받아 아릿하게 눈을 자극하는 그의 알몸에 홀린 듯 시선을 풀어놓고 있다가 다시금 가슴 저미는 통증을 느꼈다.

“……찾지 마. 전부 버렸으니까.”

“……?”

“……더 이상 필요 없어지더라고. 늘 너만 보며 자위하거든.”

“…….”

“……네 사진만으로도 충분하지. 요즘엔 네 그림까지 가세했는데 그게 또 아주 짜릿해.”

“곤란하군요. 오늘은 어쩔 수 없지만 제 편의를 위해 한두 개 정도는 준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취향은 아시죠?”

“싫어.”

“…….”

“그런 편의 봐줄 수 없어. 네가 다른 여자 보면서 발기하는 거 싫어. 속상하고 아픈 짓 안 할래.”

“…….”

“발기 안 되면 될 때까지 내가 만질 거야. 만지고 또 만질 거야. 반드시 내 손으로만 할 거야.”

“…….”

“그러니까 너도 노력해. 포르노테이프는 없어. 앞으로도 절대 없을 거고.”

“…….”

“…….”

한동안 미동도 않고 있던 몸이 천천히 일어서는 게 보였다. 자신을 향해 돌아선 얼굴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그 주변의 미세한 먼지 입자들도 따라서 파도처럼 일렁였다. 인형처럼 무표정한 얼굴이 천천히 다가왔다. 시선을 맞춰보기 위해 기를 써보지만, 자신의 어깨 너머 한곳으로 완강하게 시선을 비킨 그를 잡기란 도무지 불가능했다.

코앞까지 다가온 그의 시선은 이번엔 자신이 입고 있던 오렌지색 실크 셔츠의 앞섶으로 이동했다. 양손이 앞으로 뻗어왔다. 네 개쯤 채워져 있던 단추를 푸는 손길은 느리고 정중했다.

“……왜 내 얼굴 안 보니?”

“…….”

“내 얼굴 보면서 해. 네 눈 마주 보고 싶어.”

“잘 안 될 것 같아서 그럽니다. 양해해주십시오.”

“처음보다 더 고약하네? 그땐 그래도 최소한 날 외면하지는 않았었는데.”

“…….”

셔츠를 벗겨 콘솔 위에 던진 그의 손길이 다음에 가 닿은 곳은 흰색의 카고 팬츠였다. 벨트를 하지 않아 여밈 단추 하나와 지퍼를 내리는 것으로 풍성하게 다리를 감싸고 있던 바지는 허물처럼 가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그렇게 미우니? 얼굴 보면 발기도 잘 안 될 정도로?”

“…….”

팬티와 양말까지 벗겨지고 나니 지독하게 말라 보기 흉한 나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추위까지 느껴질 정도는 아닌데도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그래. 밉겠지. 지독하게 밉겠지. 대충 알아.”

“…….”

“기분 풀릴 때까지 실컷 심술부리고 나면…… 그러고 나면…… 그다음엔 용서해줄래?”

“…….”

목덜미 근처로 그의 입술이 다가왔다. 땀 냄새와 로션 냄새가 뒤섞인 그의 짙은 체취가 좀 더 강렬하게 맡아졌다.

“……그래도 나 좋아해줬잖아, 친구로서는. 아주 정 떨어져버린 건 아니지?”

“…….”

“……그래, 아닐 거야. 아무리 차가운 척해도 넌 실은 정 많은 녀석이니까. 기분 풀리게 되면…… 아……! 나 용서해줄 거야…… 그럴 거야…… 흑……!”

여기저기 조금씩 빨리고 있던 목덜미가 날을 세운 그의 이에 왈칵 깨물리는 바람에 순식간에 온몸의 힘이 풀리고 말았다. 성적인 흥분을 해서라기보다는 희미하게나마 그의 분노가 읽힌 때문이었다. 용서라니 어림없다고, 소리 없는 증오를 대답으로 들려주었기 때문이었다.

허우적거리듯 그의 허리에 팔을 둘러 체중을 의지했다. 알몸에 닿아오는 그의 뜨거운 체온과 단단한 근육의 감촉에 넋이 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꿈이 아니라고, 이번만큼은 절대로 꿈이 아니라고, 숨을 틀어막는 두려움과 흥분에 전율하며 거듭 뇌까렸다. 아무리 자신을 미워해도, 고약하게 굴어도, 누가 뭐라 해도 이 몸은 다시 내 것이었다.

“……죽겠어서…… 죽을 것 같아서…… 흑……! 읏……! 정말이야, 위야…… 미치겠는 걸 어떡해…… 못 참겠는 걸…… 아아……! 아……! 아읏……! 더…… 더 이상 못…… 못 참겠어서…… 흡……!”

“…….”

“……정리도 못 하고…… 영영…… 못 볼 거 같고…… 너무 좋은데…… 사랑하는데…… 그리워서…… 아…… 아흑!!!”

“…….”

“……용…… 서…… 위야…… 위야, 미안…… 미안…… 흑……! 윽……! 우아…… 앗!!!”

구걸 같은 비굴한 변명을 더 이상 계속할 수는 없었다. 온통 넋을 빼앗는 음란한 애무의 테크닉이 화려하게 펼쳐진 때문이었다. 8개월이나 지났음에도 그는 자신의 성감대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고통과 긴장으로 발기할 기미조차 없던 성기는 그의 능수능란한 손놀림에 금세 백기를 든 채 벌벌 떨었다. 자로 잰 듯 정확하게 계산된 움직임이었다. 잔인할 정도로 저열하고 낯 뜨거운 관능을 부추기며 빨고 어루만지는 몸짓에 넋은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의 가차 없는 대답일 터였다. 사랑하기 때문이었다는 비굴한 변명은 들이밀 여지조차 없었다. 그저 동물적인 욕망에 불과하다고, 섹스에 굶주린 아귀에 불과하다고, 자신의 몸이 직면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었다.

뱀처럼 차고 건조한 눈은 줄곧 자신의 어깨 너머 먼 곳을 응시하거나 눈을 감는 것으로 그런 자신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그의 일방적인 선고를 부정할 만한 자제력 따위가 자신에게 남아 있을 리 없었다. 그의 몸을 다시 접하게 된 자체가 쉬이 소화가 불가능한 충격이었다. 오랜 육체의 부대낌으로 체력 또한 바닥이었다. 그저 그가 조종하는 대로의 반응을 따라가는 데만도 기절할 것처럼 기운이 달렸다. 가슴은 찢어지고 있건만 사랑에 주린 하반신은 한시바삐 극점을 향해 달려가주기를 애원했다.

“……위…… 위야…… 흑……! 윽! 웃……! 위…… 흐앗……!”

그의 허리를 필사적으로 끌어안는 것으로도 힘이 풀린 다리를 더 이상 지탱할 수는 없었다. 무릎이 꺾이며 바닥으로 무너지듯 주저앉자, 자신의 생식기와 회음부를 훑고 있던 그의 두 손이 겨드랑이 틈으로 파고들었다. 발끝이 살짝 들린 채 질질 끌려간 몸이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혀졌다. 더없이 정중한 몸짓임에도 스스로가 마치 불필요한 짐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승스러운 색의 광란에 빠진 낯 뜨거운 짐짝이었다.

자신의 허리께에 자리를 잡고 앉은 그는 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짓누른 채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었다. 한껏 위로 치솟은 자지는 그의 빠른 손놀림 아래서 맹렬하게 헐떡이고 있었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며 별이 보였다. 극심한 쾌감과 함께 어지럼증의 고통 또한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어떡하든 그의 몸에 달라붙고 싶어 팔을 뻗어보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눈부신 햇살뿐이었다. 교묘하게 자신의 포옹을 피하며 음란한 손놀림만을 계속하고 있는 연인 때문이었다.

흐느낌 소리인지 신음 소리인지 알 수 없는 탁한 괴성이 헐떡이는 숨소리와 함께 귓전을 파고들었다. 몹시 귀에 거슬리는, 시끄럽고 추잡한 자신의 소음이었다. 하반신이 바스러지는 듯한 격렬한 쾌감과 함께 사지가 바깥쪽으로 쭉 벋치며 분출이 왔다. 전신의 구멍이란 구멍이 활짝 열리며 지저분한 배설물을 뭉클뭉클 쏟아내고 있었다. 시궁창 같다는 생각이 설핏 스쳐갔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맹렬히 떨어져 내려갔다. 곤두박질친 채 부서진 넋은 한동안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을 만큼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나마 남은 기력을 호흡을 고르는 데만 집중하는데도, 한계치까지 속도가 오른 숨길은 여간해서 잡히지 않았다. 햇빛은 여전히 너무나 밝아서 충혈된 눈시울을 아프게 찔러댔다. 눈꺼풀을 꼭 닫은 채 고문 같은 오르가슴의 폭풍을 견뎠다. 몇 분인지 몇 초인지 모를 혼돈의 시간 뒤에 갈가리 바스러졌던 의식이 가까스로 모였다.

정신이 들자마자 시야를 벗어나 있던 어미 오리부터 찾았다. 자신의 발치에 등을 보인 자세로 앉은 어미 오리는 휴지로 손을 닦고 있었다. 자신의 오물로 더럽혀진 손이었다. ……돌아봐…… 돌아봐, 위야. 돌아봐……. 위야니? 내 위야가 맞는 거니? 꿈이 아니지? 내 사랑, 내 영웅, 내 그리운 위위가 맞는 거니……? 가 닿지 않는 애절한 부름을 끊임없이 속으로 뇌까렸다.

눈부신 빛에 둘러싸인 연인의 몸이 화답하듯 자신을 향하는 게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잡히지 않는 서늘한 시선은 질척해진 자신의 사타구니 사이로 떨어졌을 뿐이었다. 무릎걸음으로 기듯이 다가든 늠름한 몸 탓에 시야가 조금 어두워졌다. 가슴을 더듬는 감촉과 함께 다시금 자지에 강한 압박이 가해졌다. 선단을 훑고 귀두 끝을 손톱 끝으로 찌르는, 재빠른 발기와 사정을 위한 직접적이면서도 강렬한 애무였다. 선뜩한 한기가 느껴지는 그의 의도에 오소소 소름이 일었다. 가면처럼 표정이 없는 얼굴이 끔찍했다.

“……아…… 안아…….”

쥐어짜듯 명령을 내렸다.

“……안아줘, 부드럽게. 자꾸 싸서 지치게 만들 작정인 거면 나도 널 만지게 해줘. 이렇겐 싫어.”

탈진해서 자꾸만 바닥으로 까라지는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랫배에 좀 더 힘을 주었다. 담담하면서도 위엄 있는 어조를 끌어내기 위해 기를 썼다. 갈비뼈 근처를 농염하게 쓸고 있던 그의 손목을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 잠들어 있던 용기란 용기는 박박 다 긁어 일깨웠다. ……독하게, 독하게, 독하게. 각오한 일 아니니. 이까짓 일로 아프지 마. 상처받지 마. 그를 다시 볼 수 있잖아. 만질 수 있잖아. 안을 수 있잖아. 그러니까 상처받지 마.

“……왜 키스는 빼먹니? 키스도 해. 전처럼 아주 정열적이고 따뜻하게…… 는 못 하겠지, 물론? 그럼 그런 흉내라도 내봐. 그렇게 해줘봐.”

“…….”

“……돈에 팔렸다는 거 잊지 마. 넌 날 만족시켜줘야만 할 의무가 있어.”

“…….”

냉랭한 침묵이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방 안 한구석에 조용히 시선을 던지고 있던 그의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들이 스쳐가고 있는가를 상상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증오와 혐오감을 넘어 어딘가 공허해진 내면이 느껴졌다. 그나마 희미하게 분노를 표출하던 조금 전보다도 더 절망적인 체념이 거기에 있었다. 화내고 상처받는 스스로에게조차 염증을 느끼는 것 같았다. 자신이 상처를 입듯이 그 또한 극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입술을 꿰매고 싶을 만치 후회스럽기도 하고, 어차피 막다른 길이라는 홀가분한 심정이 들기도 했다. 바닥을 쳐야만 다시 떠오를 반동도 생기는 법이 아닐까? 그의 신뢰와 우정을 잃은 마당에 마음만 약해질 미련 따윈 깨끗이 접어야 할 일이었다.

시야가 좀 더 어두워졌다. 천천히 상반신을 기울이며 다가든 그의 얼굴 때문이었다. 허전해진 사타구니 사이가 느껴지더니 왼쪽 머리 근처가 푹 눌리며 그가 손바닥으로 체중을 의지하는 게 보였다. 얼굴이 내려왔다. 바라본 시선은, 역시 교묘하게 자신의 목 언저리쯤으로 비껴가 있었다. 짙게 풍겨오는 그리운 체취에 온몸이 기쁨으로 찌릿찌릿 전율을 일으켰다. 느릿한 그의 움직임을 참지 못하고 양팔을 둘러 그의 목을 와락 끌어당겼다.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은 상반신이 자신의 위로 무너져 내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양팔과 다리를 접어 그의 몸을 친친 동여맸다. 접촉되는 피부 감촉도, 눌리는 단단하고 압도적인 무게감도 좋아서 미칠 것만 같았다. 마음은 갈가리 찢겨 너덜하면서도 몸은 짐승스러운 기쁨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접촉되는 곳마다 어루만지고, 부비고, 핥고, 깨물었다. 이리저리 꿈틀대며 넋을 잃고 체온을 섞었다. 거의 경련에 가까울 몇 번의 몸부림에 숨길은 금방 턱 끝까지 차올랐다. 쉬이 힘이 빠져버리는 사지가 안타까워 목이 메었다. 욕심이 끄는 대로 마음껏 연인을 안고 애무를 할 수 없는 기진맥진한 몸 상태가 그저 억울할 뿐이었다.

한동안 꼼짝도 않은 채, 만지게 해달라는 자신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연인의 입술이 이윽고 마지못해 자신의 것에 와 닿았다. 자신의 몸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익숙한 반응을 따라 정확하게 계산된 키스였다.

쪼고, 핥아지고, 깨물렸다. 파고들어온 혀가 이리저리 물결치며 손가락 끝까지 음란한 관능을 일깨웠다. 여전히 너무나 부드럽고 달콤한 울림을 불러일으키는, 최고의 남창다운 능란한 키스에 가슴이 미어졌다. 과연 프로다웠다.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치를 떨면서도 어떻게 이런 넋을 홀리는 키스를 할 수 있는 걸까. 연인의 냉랭한 자제력에 온몸이 시렸다. 독기를 삼킨 부드러움이요, 한을 품은 달콤함이었다.

뼛속까지 얼릴 것 같은 한기에 몸서리치면서도 입술이 부르틀 때까지 거듭 키스를 요구했다. 피부가 닳아 없어질 기세로 거듭거듭 애무하고, 또한 애무받기를 소원했다. 달라붙고 또 달라붙어 서로를 섞으면 이 매서운 추위가 사라질까 기대했다. 텅 빈 배 속이 채워질까 소원했다.

알 수 없는 허기는, 물론 해도 해도 채워지지가 않았다. 몇 번 스스로를 주물럭거린 끝에 가까스로 발기한 그의 것이 내부를 가득 채웠을 때도 그건 한가지였다. 기억에 있는 그대로 거대하고 단단한 흉기였지만, 하반신을 찢어발길 듯이 강렬하게 쳐들어왔지만, 기억에 있는 그 어떤 따스한 충만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교합할수록, 공허한 쾌락의 신음만 메아리쳤다. 안을수록, 혹은 안겨질수록, 서서히 싸늘해져갔다.

이상한 일이었다.

비 오듯 흐르는 땀에 몸은 늪처럼 진득한 열기로 범벅이 되었다. 몇 번이고 토해진 체액들에 사방이 비릿한 섹스의 잔향으로 진동을 했다. 이리저리 체위가 바뀌며 현란한 남창의 기술이 펼쳐졌다. 뜨겁고도 격렬한 섹스였다. 연인은 ‘만족시켜줘야만 하는 남창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당연히 따뜻해져야 했지만, 혹은 적어도 뜨거워지기라도 해야 했지만, 그러나 빙산처럼 안에 거대하게 똬리를 튼 냉기는 여전했다. 뿌리까지 얼어붙은 나머지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었다.

이상도 하지.

표면만 달구어진 질그릇 같았다.

포르노 같았다.

물소리가 들렸다.

녹음이 울창한 계곡을 따라 휘도는 자그마한 개울이 보였다. 언젠가 그와 보성에 놀러 갔을 때 본 그 개울 같기도 하고 처음 보는 개울 같기도 했다. 하나 가득 내려앉은 숲 그림자 탓에 물빛은 녹색이었다. 너무나 평온하고 행복한 기분을 주는 그런 녹색이었다. 개울가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 동안 멍하니 개울물을 바라보다 문득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빼고 허공으로 시선을 가져가자, 물빛과 똑같은 울창한 녹음이 보였다. 짙은 녹색의 이파리들 틈으로 물비늘 같은 햇살이 반짝반짝 비쳐들었다. 눈부신 아름다움에 가만히 손을 위로 뻗다가 홀연 눈물이 나왔다. 뿌리까지 자각되는 고독감에 가슴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낭패감이 들었다. 따끔거리는 눈시울도 아팠지만 어쩐지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한번 울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질 거라는 위기감이 전신을 사로잡은 때문이었다. 필사적인 의지를 기울여 하늘로 붕 몸을 띄웠다. 양다리로는 땅을 박차고 두 손은 위로 쭉 뻗었다. 물비늘 같은 빛살을 손바닥 가득 움켜쥔 채 인환은 간신히 잠에서 깨어났다.

물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몸이 노곤했다. 뻑뻑한 눈꺼풀을 들어 주변을 살폈다. 꿈속의 계곡 풍경이 여전히 망막 속에 살아남은 탓에, 시야로 파고드는 침실 풍경이 무척 낯설어 보였다. 해가 넘어간 지 꽤 오래인 듯, 방 안 가득 어두컴컴한 음영이 들어앉아 있었다.

물소리는 반쯤 열린 욕실 문틈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둑한 방에 그나마 미약한 빛을 부여하고 있는 것도 욕실로부터 새어나오는 불빛이었다. 그가 샤워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인 채 그의 소리를 들었다. 몸을 눈에 그렸다. 부도덕한 매춘의 자취를 말끔히 씻어내고 있을 연인이었다.

마지막 배출 끝에 결국 기절하듯 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몇 번째였던가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체력이 거의 바닥이었던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몸은 반응하고 또 반응했었다. 역시 대단한 테크닉의 남창이 아닌가. 실소했다. 이래서야 만족하지 못했다고, 지독하게 끔찍스러운 체험에 불과했다고 항변할 명분조차 없었다.

물소리가 멎는가 싶더니, 잠시 후 그가 바스 가운 차림으로 욕실을 빠져나왔다. 그의 사이즈에 맞춰 새로 산, 화려한 진초록 빛깔이 아름다운 베네통 가운이었다. 이쪽을 향해 시선을 보내오는 그의 몸짓을 읽고 재빨리 눈을 감아 잠든 체를 했다. 다시금 시작될 고통이 두려웠다. 한기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졌다. 잠시나마 고요한 평화를 만끽하고 싶었다. 물론,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다시금 안절부절 눈을 뜨리란 걸 안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를 눈에 담고, 가슴에 품고, 손으로 만지고픈 나머지 온몸이 저려오겠지.

가까이 다가온 기척과 함께 얼굴에 시선이 느껴졌다. 가슴이 떨렸다. 그가 서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침대 머리맡에서 상큼한 샤워 젤 냄새가 났다. 자신의 라벤더 향기였다. 주시는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토록 잡기 힘들었던 시선이 눈을 감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 축복처럼 안겨오고 있었다.

알고 싶었다. 그는 지금 어떤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가. 여전히 냉랭한 벽을 세운 남창의 눈일까? 아니면 어마어마한 증오와 배신감을 품은 그런 것? 그도 아니라면 혹여 남아 있을지도 모를 우정의 눈빛? 확인하고픈 욕구와, 실망과 고통뿐일 결과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마음이 시소처럼 춤을 추었다.

채 마음을 결정하기도 전에 옷자락이 스치는 흐릿한 소리가 들렸다. 핥듯이 얼굴에 닿아오던 시선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문소리가 났다. 맨발에 가뜩이나 유연한 걸음걸이라 그저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 외엔 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방문까지 닫히고 나니 사방이 쥐 죽은 듯한 고요에 빠졌다.

검은 커튼처럼 묵직하고 으스스한 어둠 속에서 행여나 그의 소리가 다시 잡힐까 귀를 쫑긋 세운 채 한참을 견뎠다. 그러나 침실을 빠져나간 직후, 냉장고 문이 열렸다 닫힌 흐릿한 소음이 한 번 들린 후론 아틀리에 안은 내내 적막한 침묵뿐이었다. 벽시계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만 몹시 커다랗게 들렸다.

한 시간쯤 흘러간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저녁 8시가 조금 넘었다. 자신만큼, 아니, 어쩌면 자신 이상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게 괴로운 모양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침실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토요일 하루는 통째로 그를 샀으므로 그가 집으로 돌아갔을 리는 없다. 벽 너머에서, 그로선 지루하고 괴로울 연옥의 시간을 마지못해 견디고 있을 것이 분명하리라. 그럼에도 소음 하나 일절 들리지 않는 집 안은 그가 한 지붕 아래 있다는 사실이 그야말로 꿈인 것마냥 착각하게끔 만들었다. 그를 배려해 최대한 견디다 나가자고 다짐을 했건만 자꾸 초조한 기분만 들었다.

혹시 가버렸으면 어떡하나. 8천만 원의 빚이고 뭐고, 도로 무르자고 하면 어떡하나. 너 따위 파렴치한 호모 색골은 싫다고, 지긋지긋하다고, 계약을 파기하자고 하면 어떡하나. 파기하지 않으면, 자유롭게 놔주지 않으면, 미성년자 추행과 원조 교제 교사죄로 고발할 거라고 협박이라도 하면. 자신 같으면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았을 텐데. 온갖 비열한 수단을 다 써서라도 벗어나고 말았을 텐데. 너는 너무 정직해. 미련할 지경으로 성실하다구. 내 사랑, 내 영웅, 내 아름다운 위야……. 오만가지 비참한 망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문득 거실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점점 속도를 높여가던 심장의 고동이 순간 뚝 하고 떨어지며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가자. 괴로운 망상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마주하고 괴로운 쪽을 택하자……. 체념에 가까울 작정을 주워들었다. ……어차피 바닥이었다. 더 이상 미움받을 수 없을 만큼 미움을 받고 있었다. 새로 밉상이 더해진들 달라질 게 무어냐. 바닥을 쳤으니 어쩜 이제부턴 올라갈 일만 남은 건지도 모른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면, 다시 열심히 노력을 하면, 이제까지처럼 극진한 사랑을 주면, 어쩜 자신을 용서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용기인지 뻔뻔스러움인지 판단이 아리송할 낙천도 세웠다.

몸을 일으키자, 그저 얼얼함만 주던 항문의 통증이 단숨에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오랜만이기도 했고, 오랜만인 것치곤 지나친 무리를 주었으니 인과응보인 셈이었다. 입술을 사리물며 통증이 익숙해지길 한동안 기다렸다가 바닥에 내려섰다. 하반신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밀어붙여졌음에도, 피는커녕 정액 한 방울조차 흘러내리지 않는 걸 보면 그나마 세심한 배려를 받은 모양이었다. 역시 테크니션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최고의 남창이 아닐 수 없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욱신거리던 아픔은 욕실로 가 샤워를 하고 연고를 바르니 그럭저럭 견딜 만해졌다. 전등을 켜고 방바닥과 콘솔 위에 어지러이 널려 있던 옷들을 천천히 주워 입었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젖히자, 아직은 선선한 기운이 남아 있는 봄바람이 커튼을 하늘거리며 부드럽게 밀려들었다. 퀴퀴한 땀과 비릿한 체액 냄새로 가득했던 방 안 공기는 서글플 정도로 재빠르게 상쾌한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더럽혀진 침대 시트를 벗기고 새 시트마저 씌우니, 정사의 흔적은 눈곱만큼도 찾아지지 않았다. 늘 그립기만 한 그의 체취마저 말끔히 사라져버려 아쉬웠다. 감상에 젖지는 말자고 스스로를 독려했다. 자신은 서운해도 깔끔한 그는 그나마 덜 불쾌해할 것이다.

샤워를 하고 침대 시트를 가는 알량한 노동에 그새 숨이 차고 기운이 달렸다. 바짝 고갈해버린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침대에 앉은 채로 한참 동안 숨을 골랐다. 어지럼증과 함께 지독한 허기도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벌써 9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자신도 그렇지만 그 또한 몹시 배가 고플 것이다. 생각이 그의 허기에까지 미치고 보니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들이닥쳤다. 어서 빨리 살을 찌우고 체력을 보강해야겠다고 새삼 작심을 하며 서둘러 방을 나섰다.

창문을 열어둔 지 꽤 됐는지 침실을 벗어나자마자 선뜩한 한기가 달려들었다. 거실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선 채 어둠을 응시하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의 늠름한 실루엣을 따라 무릎 아래까지 부드럽게 떨어지고 있는 짙은 초록빛 베네통 가운은 너무나 우아해서 차라리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뒷모습이라 표정을 살필 수는 없었지만, 침울한 분위기는 싫을 정도로 읽혔다. 자신의 기척을 들었을 텐데도 역시 시선 한 번 주지 않는 그가 아팠다.

“……배고프지? 밥 차릴까?”

“…….”

“……춥지 않아? 옷 갈아입지 그러니?”

“……입어도 됩니까? 어차피 또 벗어야 할 텐데요?”

여전히 창 밖을 향한 채로 조용한 대꾸가 돌아온다. 신랄한 속뜻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정중한 어조였다. 가슴을 할퀴는 듯한 느낌에 쓴웃음이 일었다. 더도 덜도 아닌 똑같이 반복되는 자극에 여지없이 상처를 입고 마는 자신이 한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만해. 보다시피 체중도 줄었고…… 아픈 지 얼마 안 돼서 체력이 많이 달려. 그냥 잘 거니까 옷 입어.”

앞마당에 보물이라도 묻혀 있는 것처럼 집요하게 시선을 보내고 있던 그의 상반신이 마침내 돌아섰다. 칠흑처럼 새까만 눈동자가 자신의 눈을 휘어잡고 있었다. 거울처럼 자신을 비출 뿐인 텅 빈 시선이었다. 별 기대 없이 바라보고 있었던 터라 느닷없는 시선의 부딪침은 온몸이 저릿저릿한 동요로 다가왔다.

“……바…… 바…… 밥 금방 차려줄게.”

등신. 또 더듬고 말았다. 가뜩이나 기운이 달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렇게 마주하고 싶던 시선이건만 먼저 고개를 떨어트린 쪽은 결국 자신이었다.

“……고맙습니다.”

공허한 감사의 인사에 쫓기듯 주방으로 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다리의 떨림도, 극심한 마음의 동요도, 그저 병신 다리가 좀 더 심하게 키질을 하는 것으로 감춰질 테니 다행이었다.

완벽한 타인의 눈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나마의 분노와 증오감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는 걸 알았다. 진심으로 버려졌다는 것을 이해했다.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눈시울이 불이라도 난 것마냥 화끈거리며 아팠다. ……동요하지 마. 새삼 뭘 기대한 것도 아니잖아? 바닥이야. 그냥 바닥을 친 것뿐이야. 다시 올라가면 돼. 다시 시작하면 돼…….

신선실에서 꺼낸 양념갈비의 불그죽죽한 색이 부옇게 이중으로 보였다. 없는 식욕도 떨어트릴 만큼 불쾌한 빛깔이었다. 팬에 구우면 그나마 먹음직스러워 보일지 모른다. 서둘러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고 프라이팬에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막 떨어지기 직전 간신히 말라붙은 눈물을 다행으로 여겼다. 울지는 않겠다. 울 순 없었다. 뭐라 해도 그는 자신의 것이었다. 적어도 지금 현재는. 과거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도 한가지였다.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익은 갈비를 접시에 담고, 다른 반찬들도 부지런히 꺼내 식탁에 진열하기 시작했다. 어제 아침, 김천댁 아줌마가 만들어주고 간 반찬들이 냉장고 가득이었다. 그를 위한 고기류와 토속적인 밑반찬 일색을 부탁하자 순박한 아줌마는 도련님 식성이 바뀌셨나 봐요 하며 신기해했었다.

고기를 굽고 찌개와 국과 전을 데우는 것으로 진수성찬인 식탁은 10분 만에 초스피드로 완성되었다. 무슨 잔칫상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식탁 모습에 너무 노골적인가 싶어 자격지심이 들기도 했다. 사모하는 기둥서방의 느닷없는 방문을 받은 기생의 꼬락서니가 이렇겠지 싶어 쓴웃음이 일었다. 하긴 뭐, 그가 맛있게 먹어주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쪽 팔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식탁 위에 수저를 놓고 돌아보니, 청바지와 티셔츠로 갈아입은 그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철통같이 단단한 벽으로 둘러쳐진 자신만의 결계 안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이리 와, 위야. 밥 먹자.”

활기찬 목소리를 내기 위해 톤을 높여보지만 어색하게 들뜬 쇳소리만 시끄럽게 울린다. 부도덕한 섹스의 후유증이었다. 포르노그라피의 쾌락에 울며 자신은 그 얼마나 고래고래 교성을 질러댔던가.

“파출부 아줌마더러 너 좋아하는 걸로 많이 만들라고 했거든. 맛있을 거야, 위야. 어서 와.”

여전히 거북한 쇳소리로 덧붙이자 그가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보내왔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그의 유연한 동작을 잠시 바라보다간 곧 식탁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가 식탁 앞으로 다가올수록 또다시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며 숨이 찼다. 명랑한 수다라니, 그런 변죽과 뻔뻔스러움은 아직 무리인가 보았다.

“잘 먹겠습니다.”

식탁 의자에 앉으며 그가 또다시 공허한 인사말을 입에 걸었다. 역시 공허할 그 눈빛을 보기 두려워, 여전히 식탁 위로 시선을 떨군 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릇 부딪치는 소리와 음식물 씹는 소리뿐인 고요한 침묵 속에서 내내 고개를 바닥에 박고 식사를 했다. 그도 자신도, 식사 시간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꽉꽉 눌러 담은 밥 한 공기를 말끔히 비워낸 그에게 덥밥을 권하자, 그는 예의 바른 어조로 사양했다. 아무리 그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상다리가 휘어진들, 그라고 식욕이 동할 리는 없었다. 그나마 한 공기를 깨끗이 비운 그의 철저한 자기 관리에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할 테니까 그냥 둬.”

“아닙니다. 차려주셨으니 설거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그냥 두라니까…….”

말릴 틈이 없었다. 남은 반찬들을 냉장고에 넣고 있는 사이, 싱크대로 다가든 그가 수세미에 세제를 묻히고 있었다. 식탁 옆에 우두커니 선 채로, 설거지를 하는 그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몇 달 전, 자신에게 먹일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해주던 상냥한 모습이 오버랩 되며 눈을 시리게 했다. 아주 잠깐, 과연 잘한 짓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번민했다. 그를 소유하기 위해(그도 길어봐야 고작 몇 년에 불과할 뿐인) 대가로 지불해야 했던 ‘그것’이 어쩌면 자신이 생각한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었던 건 아닐까, 괴로운 회한으로 새삼 몸부림쳤다.

갈수록 약해지려는 심사를 다잡기 위해 주방을 벗어나 거실로 왔다. 오디오 덱에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걸었다. 거실 가득 은은하게 퍼지는 「봄」의 선율이 숨 막힐 듯 괴로운 침묵을 조금 견딜 만한 것으로 바꿔주었다. 두 대째 피워 물고 있는 담배도 맛은 형편없이 느껴졌지만 기분을 안정시키는 데는 도움을 주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해바라기처럼 그에게로만 뻗어가려는 무의식적인 시선을 가까스로 작업대 쪽으로 가져갔다. 작업대 위엔 처절한 그리움의 결과물인 그의 초상화와 드로잉들이 어지러이 펼쳐져 있었다. 이렇게 괴로운 침묵의 시간을 견디느니 차라리 그를 그려볼까 하다가, 그럼에도 1분 1초가 소중한 마당에 웬 청승인가 싶어 마음을 바꿨다.

설거지를 마친 그가 맞은편 소파로 다가와 앉는 게 보였다. 부랴부랴 담배를 비벼 끄고 거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했다. 정말 이번에야말로 담배를 끊어야지 하고 작심 3일에 불과할 의지도 허둥지둥 세워보았다. 피부에도 나쁘고, 무엇보다도 그가 싫어하니까 정말 끊어야만 하리라. 조만간, 반드시. 반드시.

5분쯤 창가에 서서 환기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소파로 가 앉았다. 그의 옆자리에 앉을 용기는커녕 그의 얼굴을 바라볼 용기조차 생기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만의 결계 안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의 허리쯤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동안 베토벤을 들었다. 낡은 잿빛 티셔츠에 감싸인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복근을, 역시 낡은 청바지 차림의 길고 아름다운 다리를, 소파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피아니스트 신동의 길고 우아한 손가락만 뚫어져라 주시했다. 함께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이렇게 눈에 밟히고 있는 동안은, 그가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은 생생한 현실이었다. 한데 왜 이다지도 고독한가. 왜 이다지도 공허한가.

“……기가 막히네…….”

4악장의 끝 무렵, 그의 철통같은 의지의 산물인 침묵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고개를 좀 더 들고 그리운 얼굴을 간신히 눈에 품었다. 아틀리에 한구석을 멍하니 굽어보고 있던 그의 시선이 천천히 자신의 얼굴로 떨어졌다. 워낙 단단히 각오를 하고 있어선지 저 서늘한 타인의 시선도 처음처럼 극심한 동요를 주진 않았다.

“……이렇게까지 할 얘기가 없을 줄은 몰랐는데…….”

“…….”

“……너 되게 무서워. 어떻게 내 입에까지 지퍼를 채울 수가 있어? 무슨 주술이라도 부리고 있는 거니?”

“…….”

“……지독해. 되게 지독한 놈이야, 너.”

“…….”

“……이제 정말 남남이 된 건가, 우리?”

“…….”

“……제발 대답 좀 해. 한 마디라도 좋으니까 좀 해줘봐.”

“…….”

“……위야…….”

“…….”

“……독한 놈. 너 정말 독종이야…….”

“…….”

자신을 굽어보되 보지 않는다. 자신의 얘기가 들리련만 듣지 않는다. 정말로 벽을 상대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숨이 막혔다.

“……산책할래?”

“…….”

“……동네 한 바퀴 돌면 소화도 되고 좋을 거야. 나가자.”

“…….”

대화가 불가능하다면 숨이라도 제대로 쉬어야겠지. 연인 또한 자신 이상으로 이 침묵의 공간에 염증을 느낄 것이다. 물론 돈으로 묶인 상황 자체가 끔찍스러운 것이라면 안이나 밖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머뭇머뭇 다가가 그에게 손을 내밀자, 자신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대신 잠자코 소파 위에 벗어두었던 재킷을 집어 드는 그다. 나가든 말든 그로서는 별 상관이 없다는 소리 없는 대꾸가 조용히 읽혔다. 돈에 팔렸으니 스스로에게 선택권은 없다는, 짐작한 대로의 야유일 것이다.

울컥거리는 목구멍의 응어리를 지그시 눌러 삼키며 현관문을 나섰다. 허리 아래로는 제대로 힘이 실리지 못하는 고단한 몸 상태로 산책은 무리임에 틀림없었지만, 숨 막히는 침묵의 연옥보다는 나을 터였다. 천근처럼 느껴지는 다리를 끌고 걸음을 옮기자 무정한 연인은 몇 발짝쯤 뒤처진 채 마지못해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다.

“……외출하세요? 옆에 친구분은 무척 오랜만이시네요?”

빌라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비 아저씨가 깍듯한 목례를 하며 인사를 챙겼다. 연인에게로만 온 신경이 쏠려 있던 터라, 그네의 틀에 박힌 인사는 부메랑처럼 한 바퀴를 돌아 가까스로 의식의 표면에 걸렸다. 한 템포쯤 느리게 허겁지겁 돌아보며 답례를 하자, 50대 사내는 조금 묘한 표정을 만들며 웃었다. 어딘가 수상쩍은 듯한 그 표정에 문득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계약을 맺었던 지난 1년간, 늘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규칙적으로 방문을 했던 연인을 사내는 기억하고 있었다. 저녁 무렵 찾아와 밤늦게 돌아가는, 보통의 동성 친구라 하기엔 확실히 이상야릇한 방문임엔 틀림이 없었으니, 어쩜 사내는 그와 자신의 관계를 눈치채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됨됨이가 그리 신사로는 보이지 않으니,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자신에 대한 수상쩍은 뒷담을 할지도 또한 모르는 일이었다.

설핏 몸서리가 쳐지는 까닭이 단지 서늘한 밤공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사내가 눈치를 챘다고 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를 잃었던 지난 8개월간의 고통에 비하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아웃팅 당하는 일은 그저 사소한 해프닝처럼만 생각되었다. 그 또한 하나의 대가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잃지 않고 그를 소유할 수는 없으리라. 그를 보고, 만지고, 안길 수 있는 행복을 누리길 원한다면 그에 상응할 대가들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이든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어떤 극심한 고통도 그를 잃는 고통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부지불식간에 다가들었던 불안감이 사라지고 담담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제까지처럼 겁쟁이로 움츠러들지는 말자고, 조용한 각오를 다졌다. 부러 커밍아웃을 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연인으로 인해 어떤 희생이 닥쳤을 때 적어도 필사적으로 정체성을 부정하는 비겁한 짓은 더 이상 하지 말자고.

두세 걸음 뒤처져 마지못해 따라 걷던 그를 향해 돌아서며 오른손을 뻗었다. 문득 그의 손을 잡을 용기가 생긴 것도 새로 다진 각오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말없이 그의 왼손을 잡아 깍지를 끼자 그의 몸이 움찔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흐릿한 가로등 불빛 아래 드러나는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만 잡힌 손을 빼지는 않았다. 역시 남창으로서의 마지못한 복종이겠지.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지는 그의 체온에 비로소 싸늘하게 식어 있던 자신의 손을 자각했다. 조금씩 몸을 떨고 있을 정도로 쌀쌀한 이른 봄밤의 기온도 비로소 자각되었다. 얇은 실크 셔츠 한 장으로 버티기엔 3월의 꽃샘추위는 제법 살벌했다. 점퍼라도 걸치고 나올 것을 하고 조금 후회를 했을 뿐, 그러나 아틀리에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추우면 추울수록 그의 따스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지금이 차라리 행복이었다.

꽤 돈을 바른 단독 주택과 빌라들이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주택가를 오랫동안 걸었다. 독립한 후,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진입해본 적이 없는 길들이었다. 구석구석 숨겨진 골목과 고급 저택들을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 구석구석 헤매었다. 대낮에도 인적이 드문 골목길은 간간이 지나쳐가는 고급 승용차들 외엔 사람들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각자 그럴싸한 외관을 하고서 소유자의 부를 과시하고 있는 건물들을, 높고 낮은 담장 너머로 삐죽이 솟아나와 있는 갖가지 정원수들을 구경했다. 연녹색의 파릇한 이파리들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그들을 무슨 대단히 드라마틱하고 창조적인 영화를 보는 것마냥 흥미진진해했다. 더 이상 구경할 새로운 건물도, 나무들도 없는 마지막 길모퉁이와 이별을 고했을 때는 자막이 올라가는 스크린을 바라볼 때처럼 아쉬움에 가슴을 쳤다.

“손 계속 잡고 계실 겁니까?”

상가가 시작되는 대로변으로 접어들었을 때 문득 그가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마네킹과 걷는 것처럼 단절돼 있던 연인의 느닷없는 접속에 심장이 뚝 하고 아래로 떨어졌다가 서서히 속도를 더하며 울렁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저야 별 상관이 없습니다만 여긴 선생님께서 거주하시는 동네니까요. 아무래도 이상하게 생각할 겁니다.”

과연, 주택가를 산책할 때와는 다르게 한결 눈에 띄는 사람들이었다. 시각은 밤 11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식당이며 슈퍼며 술집들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시선을 모으는 그인데다, 남자끼리 손을 잡고(게다가 깍지까지 끼고!) 걸으니 확실히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혼자만의 상념만 쫓아가느라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거리의 뭇 시선들이 기묘한 눈길로 그와 자신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쳐다보라고 해.”

들뜨고 탁한 음성은 자신의 것 같지가 않았다.

“하나도 안 부끄러워. 안 무서워. 소문나라지 뭐.”

공격적으로까지 느껴질 정도로 단호한 응수 또한 그랬다. ……너는 부끄럽겠지, 이 내가? 소문날까 무섭겠지, 우리들 관계가? 하지만 난 안 그래. 널 완전히 가질 수만 있다면 여기서 발가벗을 수도 있어. 발가벗고 춤을 출 수도 있어. 카메라 들이대고 생중계라도 하라면 해. 난 그래. 그래, 내 사랑.

깍지 낀 손가락에 더더욱 힘을 주곤 일절 표정이 없는 연인의 딱딱한 얼굴을 호전적으로 응시했다. 물론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연인의 철통같은 냉랭한 방벽에 부딪쳐 단숨에 박살이 난 객기가 지렁이처럼 슬금슬금 바닥을 기었다. 1분이 채 못 돼 바닥으로 시선을 깔곤 다시금 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연인에게 백기를 들었다.

그렇게 각자의 벽 속에 틀어박힌 채 말없이 거리를 헤맸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지나가고, 24시간 마트를 지나가고, 오락실을 지나갔다. 병원이랑 화장품 가게랑 슈퍼마켓들도, 주점과 갈비집과 빵집들도 순간순간 망막을 스쳐갔다. 추웠다. 뼛속까지 냉기가 스민 것 같았다. 하반신이 휘청휘청 흔들렸다. 도드라진 보도블록에 발이 걸려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참을 수 있었다. 이런 육체의 불편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가가 필요했다. 그를 갖는 대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문득 눈에 들어온 꽃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슬아슬한 한계가 저 앞에 보였다. 더 이상 전진했다간 그에게 업혀서 되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도…… 돈 있니?”

땅바닥에 주저앉고픈 기분을 필사적으로 누르며 말을 꺼냈다. 추위로 굳어든 턱 때문에 말이 새는 것 같았다. 그의 손가락을 더더욱 꽉 움켜쥐었다.

“……지갑 갖고 있어?”

“……?”

희미한 물음표를 만드는 그의 얼굴을 살피다가 그의 재킷 호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토큰 몇 개만 나왔다. 손을 뒤로 돌려 청바지 뒷주머니를 뒤지니 작고 얄팍한 지갑 하나가 잡혔다. 눈에 익은, 검정 가죽으로 된 낡은 동전 지갑이었다. 내용물을 확인했다. 5000원짜리 한 장과 1000원짜리 두 장, 그리고 동전 대여섯 개가 나왔다.

“저거 사줘.”

눈앞의 유리문 너머,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붉은 장미 더미를 가리키며 명령했다. 11시가 넘었는데 아직까지 문을 열고 있는 가게 주인의 성실함이 고맙고 안쓰러웠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연인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꽃가게 안으로 그를 끌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성큼 다가드는 온기에 부르르 진저리가 쳐졌다. 더더욱 추위가 느껴지는 건 웬일일까 싶었다.

“어서 오십시오∼∼∼.”

가게 안쪽에서 TV를 보던 40대 사내가 하품을 하며 입구 쪽으로 걸어 나왔다.

“……이…… 이거 얼마예요, 아저씨?”

남자 둘이 깍지 낀 손을 알아본 사내의 눈시울이 잠깐 휘둥그레졌다가는 이내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장미 말씀이십니까?”

“예. 빨간 장미요.”

“한 다발에 3만 원인데요?”

7천원으론 턱도 없었다.

“……돈이 모자라서 그러는데 낱개로는 안 파세요?”

“웬걸요. 물론 팔지요. 한 송이에 2000원씩입니다.”

“잘됐다! 세 송이만 포장해주시겠어요?”

“예, 손님.”

“……이쁘게 포장해주세요. 리본도 달아주시구요.”

“예에∼∼∼.”

1∼2분 만에 투명한 비닐과 핑크빛 리본으로 감싸인 장미 세 송이가 품에 안겼다. 사내에게 계산을 하기 위해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움켜쥐고 있던 그의 손가락을 풀었다. 애써 모르는 체 표정 관리를 하는 사내에게 돈을 건네곤 곧바로 여봐란 듯이 다시금 그의 손을 잡았다. 남은 한 손으로 채 다 피지 않은 장미 봉오리의 향기를 맡으며 가게를 빠져나왔다.

“……네가 사준 거야, 이거.”

“…….”

“지…… 진짜야. 6000원 갚으라고 하지 마. 네…… 네가 나한테 선물해준 거야.”

“…….”

대놓고 온몸이 떨리는 통에 어투는 자꾸만 삑사리를 탄다. 부러 한껏 웃음을 머금은 얼굴도 그에겐 얼마나 꼴불견으로 보일 것인가. 파랗게 질린 채 턱을 덜덜 떨고 있으니 말이다.

“……오…… 옷 좀 벗어줘. 추…… 추워 죽겠다.”

“…….”

“……우씨…… 멋 부리다가 정말 얼어 죽겠네…….”

“…….”

잡은 손을 놓아주며 그의 재킷 자락을 움켜쥐자 그가 천천히 재킷을 벗는다.

“……이…… 입혀줘. 꽃 상하게 하지 말고 조심해서…….”

여전히 기계적으로 명령에 복종하는 연인의 손길 아래서 몸은 추위에 의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와우, 여…… 역시 애인 있으니까 좋구나!!! 장미도 선물받고, 다정하게 재킷도 받아 입고!!!”

그의 따스한 체온이 남아 있는 재킷 자락을 두 팔로 껴안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입을 가능한 한 크게 벌리고 흥겨운 웃음을 만들었다. 부대자루를 뒤집어쓴 것마냥 헐렁한 그의 재킷은 그의 온기가 느껴져서 더더욱 자신의 언 몸을 자각시켰다. 몇 번 깡충깡충 뛰며 추위와 싸웠다. 3월 말인데 어째서 이렇게 추운지 모르겠다고 속으로 불평을 했다. 아마도 광대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자신을 굽어보고 있을 그의 표정은 부러 모른 체했다.

“으아, 너무 춥다! 빨리 집에나 가자, 위야!”

후들거리는 병신 다리에 격려를 보내며 귀로에 올랐다. 연인의 따스한 손을 잡을 의욕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따스하되, 실은 싸늘한 그 감촉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서로의 손바닥을 더듬고 장난치며 말보다도 더 친밀한 교감을 나누었던 행복한 기억들을, 더. 이.상. 리플레이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몇 발짝 뒤처졌던 연인은 어느새 자신을 추월하더니 몇 분 만에 아주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목적지가 확실한 것을 빌미로 자신으로부터 되도록 멀리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목 끝까지 차올라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설움이 거대한 바윗돌 같은 크기로 뭉쳐 가슴을 콱콱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추위와 피로로 기진맥진해진 몸을 질질 끌고 아틀리에에 도착하니 11시 반이 지나 있었다. 독하고 고집스러운 연인은 현관 앞에 장승처럼 우두커니 선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 된 입장(아니, 실은 남창 된 입장)으론 죽어도 직접 대문을 열지는 않겠다는 독한 심보이리라. 그의 시선을, 몸을,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도 설움은 복받칠 터였다. 찰랑찰랑 흔들리는 위험 수위를 어렴풋이 인지하며 문을 따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약간의 거리를 둔 채 그가 따라 들어오는 기척을 들었다.

현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눈물이 핑 도는 까닭은 집 안의 따뜻함이 너무나 절실하게 느껴져서겠지. 매운 콧마루를 주물럭거리며 주방으로 갔다. 장미 세 송이의 줄기를 자르고 투명한 크리스털 화병에 꽂았다. 화병째로 코끝에 갖다 대고 도도할 정도로 은근한 향기를 한참 동안 맡았다.

5분쯤 됐을까, 몸의 떨림이 점점 잦아들더니 뼛속까지 파고들었던 추위가 겨우 가셨다. 식탁 위에 화병을 놓고 거실 쪽으로 가니, 그가 욕실에서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이제 자도 됩니까?”

벽시계를 힐끗 살피다가 자신의 얼굴로 떨어진 그의 시선에서 피로가 읽혔다. 가까이 다가가자 이를 닦았는지 희미하게 치약 냄새가 풍겼다.

돌처럼 무표정한 얼굴에 다시금 감당하기 버거운 차디찬 벽을 느꼈다. 안고 싶고, 키스하고 싶은 애달픈 욕망과 매서운 거절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 흔들리는 스스로의 마음은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파자마 줄게.”

두려움이 욕망을 누른 것 또한 한가지. 그저 멍하니 그의 얼굴만 홀린 듯 응시하며 중얼거리자 소름 끼치도록 냉랭하고 담담한 대꾸가 돌아온다.

“괜찮습니다. 바지만 벗으면 편합니다.”

곧바로 침실로 걸어 들어가는 그의 등이 태산처럼 압도적으로 보였다. 여봐란 듯이 닫힌 침실 문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의 집인데도 자신의 집이 아닌 것 같았다. 침실 문이 마치 접근할 수 없는 강력한 결계처럼 느껴졌다. 결계를 부술 용기는, 물론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혹시라도 들릴까 싶어 스토커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한동안 그의 소리를 좇았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라도 잡아낼 기세였지만 무정하게도 시계 초침 소리만 요란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눈앞이 침침해지며 어지럼증이 일었다. 극심한 피로감으로 온몸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마지못해 결계로 손을 뻗었다. 후들후들 떨리는 손가락이 기가 막혔다. 이렇게나 겁을 집어먹다니. 그를 다시 사기 위해 비장하게 다졌던 각오가 우습고, 독기가 가소로웠다. 문이 열렸다. 놀랍게도, 자신의 두려움을 비웃기라도 하듯 결계는 순순히 자신의 접근을 허락하고 있었다.

휘청거리는 다리를 끌고 비죽 입을 벌린 결계 안으로 들어섰다.

침대 머리맡의 스탠드 불빛이 희미하게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벽장을 향한 채 누워 있는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얇은 차렵이불이 그의 허리께까지 덮여 있었다.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는 걸 보니 잠이 든 것 같았다.

숨소리조차 죽인 채 조심스레 옷을 벗었다. 그의 재킷은 구겨지지 않게 콘솔 옆 의자 등받이에 걸고, 자신의 바지는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역시 바닥을 구르고 있던 그의 낡은 청바지는 주워서 콘솔 위에 개켜 두었다. 벽장에서 파자마를 꺼내는 것조차도 귀찮을 지경으로 기력이 바닥이었다.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피로감이 엄습했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침대로 올라갔다. 본능처럼 그의 몸으로 손이 가는 것을 초인적인 의지로 눌러 참곤 그의 굳건한 뒤통수를 굽어보며 태아처럼 몸을 말았다. 행여 그가 깰까 봐 한번 자리를 잡은 뒤엔 그대로 얼음땡이 됐다.

정수리 아래 둥그렇게 물결치는 가마며, 크고 보기 좋은 귓불이며, 부드럽고 숱 많은 암갈색 머리카락을 한동안 뚫어져라 응시했다. 벽 너머의 그리운 연인을 애타게 바라보았다. 벽은 벽이되 그나마 바라볼 권리는 허락한 유리벽이 그나마 다행 아니냐고 시리게 자위했다. 물론, 그리 오래 연인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졸음이 피로한 눈꺼풀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어딘가에 매달리듯, 폭군처럼 무자비한 졸음과 사투를 벌였지만 싸움은 채 몇 분도 끌지 못했다. 까마득히 멀어지는 의식과 함께 전신이 시커먼 몽마(夢魔)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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