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1991년 7월. 장인환(張仁歡)
하루 종일 땡볕 밑에 서 있던 자동차 안은 그야말로 화덕이 따로 없었다. 해가 진 지 꽤 오래인데도 여전한 열기인 걸 보면, 오후 내내 차가 얼마나 지독하게 담금질을 당했던 건지 미루어 짐작이 갔다. 아마도 계속 냉방이 된 실내에 있다 차를 타서 더욱 민감하게 더위에 반응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입고 있는 옷가지들에 불쾌감을 느낄 정도로 온몸은 금세 땀으로 범벅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연인은 좀처럼 에어컨을 켤 생각을 안 한다. 더위를 심하게 타는 연인이면서도 또 에어컨은 꽤나 싫어한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오늘은 좀 다르지 않은가. 선 화랑으로 올 때에도 에어컨을 켠 채 왔기에, 이리 찜통인 실내를 그대로 방치하는 연인이 이상스러웠다. 게다가 창문까지 그대로 꽁꽁 닫혀 있었다. 시동을 걸 때 차창을 바로 열지 않기에 인환으로선 당연히 에어컨을 켤 줄 알았는데. 차는 어느새 벌써 관훈동을 벗어나 경복궁 쪽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저기…… 저기, 위야…….”
“…….”
“……저기, 덥지 않니? 에어컨을 켜야지 않겠어?”
“…….”
내내 운전만 할 뿐 침묵에 잠겨 있던 연인이었다.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것도 같아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참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정말로 찜통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묵묵히 운전 중인 연인도 사정은 한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인환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온통 땀범벅이었다.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 창문을 여는 것조차도 잊은 게 아닐까 싶어 조심스레 말을 붙여본 건데……. 맙소사…….
‘사랑 더듬이’에 빨간 불이 켜졌다! 완전 ‘열대성 저기압’이, 그것도 태풍에 가까운 압도적인 크기의 먹장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대꾸는 없다. 당근 없다. 열대성 폭풍이 불 때 연인은 특별히 더 말수가 적어진다. 오기와 어깃장에 가까운 똥고집이 하늘을 찌른다. 기왕에 미소 한번 구경할 수 없는 비싼 얼굴이지만, 그럴 때의 냉랭한 무표정은 그야말로 노려보는 시선 한 번에 주변 공기를 꽝꽝 얼려버릴 정도로 온도가 극심하게 내려가 있다. 살얼음판이 따로 없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이 내내 정면을 향한 채 운전에만 몰두하고 있다. 언뜻 보면 담담한 시선이지만 시선 끝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날이 서 있다. 매혹적인 분홍빛 입술도(키스를 하면 그토록 부드럽건만!) 꾹 다물린 채 완강한 침묵을 고수하고 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가슴이 또 맹렬하게 뛰기 시작한다. 하느님. 만약 자신이 병으로 죽게 된다면 병명은 심장병이 틀림없을 거다. 물론 연인 덕분에.
“……더우십니까?”
흠칫.
“술을 드셔서 더 덥게 느껴지시나 봅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전 그럭저럭 견딜 만한데요.”
거짓말. 나보다 더 더위를 타면서.
“에어컨 켜드릴까요?”
거짓말. 켜고 싶지 않으면서. 날 고문하려고 그러는 거 다 알아.
“선생님도 에어컨 싫어하시죠? 그럼 저도 그냥 좀 더 참죠. 10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것 같으니까요. 그 모자라도 벗으시면 좀 더 시원하실 겁니다.”
입에 발린 배려의 말을 끝으로, 연인은 다시금 능숙하게 이리저리 핸들만 돌리는 모범 드라이버가 되었다. 실내등도 콩알만 한 후미등 하나만 켜둔 터라 차 안은 거의 연옥 속처럼 어두컴컴하다. 뜨겁고 축축하고 시커먼 연옥이다. 연옥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수장은 비 오듯 흐르는 땀은 아랑곳 않고 그저 정면만 노려본다. 희뿌연 조명 빛을 받은 탓에 더더욱 이목구비가 뚜렷해 보이는 아름다운 프로필이다. 긴장으로 간은 콩알만 하게 졸아붙었어도 훔쳐볼 건 다 훔쳐본다.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자신의 연인. 그래서 더 매섭고 매서운 자신의 연인을.
창문이라도 열어달라는 말은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을 괴롭히고 싶어 스스로에게도 더위로 고문을 하는 연인에게 더한 분노 거리를 보태주고 싶지 않다. 아니, 그럴 용기가 없다. 그래, 맞다. 까짓 더위 따위 못 참을 것도 없다. 연인이 주는 담금질에 비하면 자연이 주는 고문이란 그저 애교 수준일 뿐이니까.
독사가 준 모자를 벗어 크로스백에 넣은 뒤, 땜통과 땀투성이인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몇 번 빗어 내렸다. 모자를 벗어도 시원한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당연하다. 발가벗는다고 해도 여긴 여전한 찜통 속일 거다.
도대체 또 무엇에 화가 치밀었던 것일까?
아무리 궁리해봐도 특별히 연인이 기분 나빠할 만한 짓을 저지른 기억은 없다. 그야 애초부터 연인에겐 지루한 모임에 불과할 술판에 밀어 넣은 것이 잘못이지만, 그건 연인이 자청해서 벌어진 불상사였다. 선 화랑에 데려다주겠다고 먼저 말한 이도 연인이요, 기하 선배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한 이도 연인이다. 술판이 길어질 테니까 먼저 돌아가라고 했지만, 끝까지 기다려주겠다고 황송한 대꾸를 해서 자신을 감동시킨 이도 연인이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을 빼면 연인의 화를 불러일으킬 만한 존재란 독사밖에 없다. 하지만 독사와도 화해를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물론 기하 선배가 억지로 시킨 거긴 하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담백하게 서로 악수하고 서로의 ‘실수’에 대해 사과를 교환했다. 결국 독사도 원인이 아니란 얘기.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후우…….
땅이 꺼져라, 저도 모르게 터지는 긴 한숨. 피로감이 트럭처럼 밀어닥친다.
심장이 너무 괴롭다. 늘상 과부하가 걸리니 심장도 지치는 거겠지. 내일 아침에 샤워하고 나면 머리의 땜통은 또 얼마나 많이 생겨 있을 것인가. 과연 언제까지 버텨줄 것인가. 심장도, 또 머리카락들도.
……이러면 안 돼…… 이렇게 계속하면 안 돼…….
눈을 감고 차창에 머리를 기대자 단숨에 괴로운 ‘생각’이 들이닥친다. 잽싸게 눈을 뜨고 슬쩍 옆자리로 눈을 굴린다. 탄탄한 근육으로 뭉친 길고 늘씬한 허벅지가 시야에 잡힌다. 만지고 싶어……. 가슴이 몹시 설렌다. 고통으로 과부하가 걸릴 때와는 다른 종류의 세동이다. 달콤하고, 노곤하고, 부드러운 울림. ……아아, 행복하다…… 정말 행복해…… 이렇게 언제 어느 때든 마음대로 연인을 볼 수 있잖아……?
입가에 미소가 맺히며 다시 스르륵 눈꺼풀이 감긴다.
……너도 알고 있잖아? 소돔의 씨야…….
그만둬줘, 제발. 너무 피곤해. 피곤하다구.
……퍼질 거야…… 독처럼 퍼져나갈 거야…… 퍼져서 싹이 트게 만들 거야…….
젠장할, 제발 그만두라구!!!
공포에 젖은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 마지못해 또 눈을 뜬다. 이번엔 아예 노골적으로 연인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래, 나 지금 간댕이가 부었다. 부어도 단단히 부었다. 사나운 태풍이 불고 있는 연인의 얼굴을 거침없이 바라보다니. 하지만 아픈걸. 너무너무 아픈걸. 마약이라도 맞아야 좀 정신을 차리지. 그래, 내 마약. 내 연인. 내 숨길. 내 생명…….
시선을 느꼈는지 힐끗 마주 돌아보는 연인이다. 마침 신호 대기가 풀려 앞으로 달려 나가야 했기에 시선의 마주침은 그리 짧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연인의 저 무시무시한 야수를 읽어내기에는.
온통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는 아름다운 몸뚱이가 선언하고 있었다.
―죽여버린다.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는 야수의 정념이 폭풍을 예보하고 있었다.
―죽여버린다.
심장이 너무나 빠르게 뛰고 있었다.
아아, 행복해서 뛰고 있는 건지 괴로워서 뛰고 있는 건지, 이번엔 도무지 잘 알 수 없었다.
천국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 실은 지옥이라 자백해야 할지도…….
“……위…… 위야…… 저…… 저기…….”
차가 빌라 지하 주차장에 멈춰 선 직후, 야수의 억센 손아귀가 인환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저…… 저기…… 조…… 조금만 천천히…… 위야, 아파…….”
“닥치고 빨리 따라와요.”
애원과 닮아 있는 가냘픈 저항은 철저하게 무시됐다.
끌려 내려가다시피 조수석을 빠져나왔고, 그야말로 납치를 당하는 여고생처럼 야수에게 안기다시피 엘리베이터로 끌려갔다. 1층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뜯어 먹히는 것 같은 키스가 들이닥쳤다. 엘리베이터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1층에 도착했지만, 이미 완벽하게 미쳐버린 야수에겐 하등의 영향도 주지 못했다. 출입문이 열리고 나서도 야수의 입술은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고, 기겁한 인환이 몸부림을 치고 나서야 야수는 간신히 떨어져나갔다. 물론 야수는 여전히 지독하게 흥분한 상태였다. 그저 키스만 멈추었을 뿐, 새빨갛게 전신을 붉힌 채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던 인환을 다시금 납치하다시피 품에 끌어안고 아틀리에 현관 앞으로 이끌었다. 그나마 엘리베이터와 집 현관이 로비에선 잘 안 보이는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 경비원에게 들키지 않은 것에 감사 기도라도 드려야 할 판이었다.
72, 01, 19.
야수의 철벽같은 팔을 간신히 뿌리치고 현관 비밀 번호를 누른 이도 인환이었다. 자신이라도 서둘러 문을 열지 않았다면, 현관 앞에서 짐승처럼 얽혀 키스당하는 모습을 결국 경비원에게 들키고 말았을 것이다.
활짝 열어젖혀졌던 현관문이 한 마리 색에 미친 야수와 한 사람 절름발이 게이를 순식간에 집어삼킨 채 다시금 닫혔다. 마치 고래 배 속으로 삼켜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과 끈끈하고 후끈한 한여름 밤의 열기뿐이었다. 진짜로 고래 배 속만 같아 왈칵 불안감이 엄습했다. 고래 배 속이라 두려운 건지, 고래 배 속에 야수와 함께 갇혀 두려운 건지는 물론 잘 알 수가 없었다.
제법 밝은 미등이 켜진 복도와 엘리베이터의 밝음에 익숙해 있던 동공이 휘둥그렇게 뜨였다. 약간이라도 빛을 찾아보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으려 했지만, 필사적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막무가내의 손길이 인환의 상체를 뒤로 잡아당겼기 때문이었다. 폭군처럼 무자비하고 단호한 손길이었다.
후끈하고 찐득한 열기가 또다시 전신으로 다가들었다. 축축하고, 뜨겁고, 음험한 야수의 광기가 전율처럼 피부 위를 스쳐갔다. 마치 전신의 피부가 몹시도 투명하고 얇은 점막으로 화한 것 같았다. 등 뒤로 닿아오는 야수의 단단한 근육들이 마치 바늘 끝처럼 느껴졌고, 그때마다 우릿한 아픔이 척추를 타고 뇌수까지 전달되었다.
신음 같은 한숨을 내뱉으며 야수를 밀어보지만, 상체가 돌려세워져 더더욱 우악스럽게 죄어 안기는 것으로 도리어 보복을 당했다. 목덜미의 여린 피부가 인정사정없이 깨물리고, 곧이어 씹어 먹히는 듯한 키스가 입술을 틀어막았다. 목구멍 안쪽으로 침입한 혀에 순식간에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키스가 아닌 것 같았다. 아니었다. 인간의 힘으론 도무지 감당하기 불가능한 거대한 폭풍이었다. 허리케인이었다.
“……흑……! 흐…… 윽…… 훕……! 위…… 흐읍!!!”
숨이 턱까지 차오르자, 악어의 눈물처럼 가소로운 야수의 자비가 마지못해 떨어졌다. 잠시 떨어져나간 야수의 입술에, 터질 것 같던 폐가 간신히 갈급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셨다.
“……위…… 위…… 위야…… 제…… 흐읍!!!”
일단 침실로 가자든가, 일단 샤워부터 하자는 부탁의 말은 전해질 틈도 없었다. 공기를 충분히 들이마셨다고 판단이 들자마자, 다시금 잽싸게 다가든 야수의 입술에 도로 입술이 틀어막히는 바람에, 입 밖으로 빠져나온 소리란 그저 타액이 뒤섞이는 음란한 질척거림뿐이었다.
“……웁, 웁, 읍……! 윽…… 흡읍!! 흐으응…… 아앙…… 하악……!”
빨리고 깨물리고 찔리고 핥기는 짐승의 카니발이 또다시 끝도 없이 되풀이되었다. 숨이 한가득 차올라 몸부림을 쳐보지만 사지가 완전히 사로잡혀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흡사 관 속에라도 갇힌 것 같았다. 아니, 고래 배 속이었다. 아, 이제 알겠다. 집 안이 고래 배 속이 아니라 야수의 품 안이 바로 고래 배 속이었다. 그래서 자신은 고래 배 속의 어둠에 그토록 겁에 질렸던 거다. 온몸이 마비라도 된 것 같았다. 압도적인 힘이었다. 조금 전, 현관문을 열기 위해 야수의 품 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힘이 아닌 그저 야수의 허락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환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상반신은 점점 더 뒤로 활처럼 휘고, 등 뒤로는 채찍처럼 후려쳐지는 듯한 손가락 마디마디가 느껴졌다. 날렵하고 길고 우아하지만, 일단 공격의 무기로 쓰일 땐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하는 피아니스트 신동의 손가락이었다. 정신없이 쓰다듬고 있을 뿐이지만, 너무나 힘을 주고 있어 애무라 하기보단 등줄기를 바스러뜨리기 위한 그악스러운 폭력처럼 느껴졌다.
“……흐…… 흡……! 웁, 윽……! 흐윽……!”
헐떡이듯 음란한 교성이 잠시 벌어진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아랫도리에 짧고 강렬한 전류를 맞은 것처럼 인환은 단숨에 발기했다. 마치 인환의 입안에 사정이라도 하듯, 야수가 뜨겁고 흥건한 짐승의 타액을 거의 반강제적으로 떠넘기고 있었다. 마치 입안이 성기가 된 것만 같았다. 입안에서 요동치는 야수의 혀는 단순한 혀에 그치지 않았다. 야수의 페니스 그 자체였다.
눈앞에서 샛노란 폭죽이 터졌다. 꼴깍꼴깍 숨이 넘어갈 지경으로 강렬한 유혹이었다. 잔뜩 쪼그라든 넋은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주제에, 음탕한 감각은 도리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그 감각을 일깨우고 있는 이는 당연히 색욕에 환장해버린 야수였다.
“……흐…… 흐읍……! 윽……! 헙……! 읍, 웁…… 흑! 흐아악!!!”
단 2분도 걸리지 않았다.
신발을 신고 선 그대로, 현관 앞 벽에 밀어붙여진 그대로, 인환은 야수의 품 안에서 죽음 같은 절정을 맞았다. 도무지 믿기 힘들었지만 그저 키스만으로 가버렸다.
움찔움찔, 야수의 옷깃을 죽어라 거머쥔 채 간질 환자처럼 한참 동안 무섭게 경련하던 몸이 마침내 뒤로 넘어갔다. 허리가 활처럼 휘며 아래로 주르륵 흘러 떨어지던 상반신은, 그러나 도로 완강하게 끌어올려졌다. 야수의 두 팔이 갈퀴처럼 뻗어와 야수의 품 안으로 끌어당긴 때문이었다.
“……흑!! 흐읏!!!”
다시금 가슴이 짜부라질 것 같은 악력이 상반신을 죄어왔다. 숨이 턱하니 막히는 바람에 저절로 흐느끼는 듯한 비음이 터졌다.
할 수 없다고, 도저히 당장은 더 안 될 것 같다고, 온 몸짓으로 애원했다. 물론 이미 작정을 굳힌 비정한 야수에게 어린애보다도 더 약해 빠진 주정뱅이의 애원이 통할 턱이 없었다. 자력으로라도 빠져나와보려고 잠깐 생각했지만 반항은 애초부터 가당치도 않았다. 기왕의 술기운에다, 처절하게 오르가슴을 맞은 몸엔 깃털 하나만큼의 에너지도 모이지 않았다. 그저 체념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 같았다. 기도만이 최선의 공격 같았다. 포식 직전의 야수가 그만 마음을 바꿔주기를. 좀 더 숙성한 뒤에 먹어야 더 맛있겠지, 입맛을 쩝쩝 다시며 사냥감을 물고 토굴 속으로 사라져주기를.
“……무서워요?”
사자의 발톱 아래 깔린 토끼마냥 벌벌 떨며 최종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야수의 그르렁거림이 들렸다.
“……또 강간을 할까 봐 무서워요, 선생님?”
“…….”
“……겁내지 마요…… 그 짓거린 이제…… 이제 더 이상 안 해요. 제 기분도 더러워지거든요.”
나지막하고, 탁하고, 그래서 더 으스스하게 들리는 야수의 희롱이었다. 그르렁거리는 틈틈이 인환의 목덜미며 턱 끝이며 귓불들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어, 문장이 다 만들어지기까진 평소보다 좀 더 시간이 걸렸다. 야수는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아니, 입맛을 다시는 척하면서 사냥감의 질겁을 부러 즐기고 있었다.
그랬다. 막상 목이 물릴 땐 공포조차 모른다. 사냥감은 이미 절명했으므로. 그러나 절명 직전, 바로 코앞으로 다가든 야수의 이빨만큼 사냥감을 혼비백산하게 만드는 것도 없으리라. 얼굴로 뚝뚝 떨어지는 야수의 타액만큼 사냥감을 질겁하게 만드는 것도.
―……알고 있어? 자넨 이제 곧 먹히게 될 거라는 걸 알아……?
“……선생님도 즐길 수 있는 놀이를 해봐요…….”
쪽, 쪽, 쪽, 쪼오옥…….
야수의 혀가 온 얼굴을 헤매고 다니며 홍수처럼 타액으로 적시고 있었다.
“……그래요. 선생님도 더 뜨거워질 수 있는 섹스를 하고 싶어요. 함께…… 오늘 밤…….”
쪽, 쪽, 쪽, 쮸웁, 춥, 추웁…….
야수의 이빨이 온 두피 속을 헤매고 다니며 굶주린 흡혈귀처럼 물어뜯고 있었다.
“……게이 포르노요…… 낯 뜨거울 정도로 야한 것들이요…….”
쪽, 쮸웁, 춥, 추웁, 쪼오옥, 쮸웁, 춥, 쩜, 춥…….
셔츠가 벗겨져 나갔다. 얼굴과 머리통을 온통 진득한 타액으로 범벅을 만든 야수의 탐욕스러운 입술은 이번엔 인환의 드러난 어깨와 쇄골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그런 식으로 하는 게 훨씬 더 자극적이고 즐거울 것 같더라구요…….”
춥, 추웁, 쪼오옥, 쮸웁, 춥, 쪼오옥, 쮸웁, 쩝, 쩝, 쩝, 츄업…….
정액으로 축축하게 젖은 팬티와 청바지가 그다음 먹잇감이 되었다. 야수의 사나운 손길이 마치 가죽을 벗기는 것처럼 팬티와 청바지를 찢어발겼다. 채 다 벗겨지지 못하고 발목에 걸리는 바람에, 인환은 바싹 마른 낙엽처럼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거침없는 야수의 손아귀가 곧장 사타구니 틈으로 파고들어 인환의 중심을 휘어잡았다. 눈물이 찔끔 솟을 지경으로 사나운 아픔이었다. 삼켜진 비명이 뇌리에서 처절하게 메아리쳤다. 다른 의미로도 인환은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다.
“……요즘…… 머릿속에 아주 야한 상상들만 떠올라요.”
“…….”
“……언젠가 선생님이 보여주신 게이 포르노들요…… 그런 것들이 자꾸…… 머릿속에 병적으로 떠올라와서…… 평범한 섹스는 시시한 거 같아…… 시시하다고…….”
“…….”
“……마치 악마의 속삭임인 것처럼도 여겨지죠. 아니, 아마 다르지 않을 거예요…… 더럽잖아요……? 더럽고 추악하죠…… 아주…… 아…… 주…….”
“…….”
“……더러운 유혹이라서…… 그래서 그렇게 끈질긴 건지도 모르죠…… 안 그래요? 금단의 유혹이란 건 그런 거겠죠…….”
“…….”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추악한 상상을 하면 안 되는데…… 하고…… 지독하게 혐오스럽고…… 또 혐오스럽다고 구토를 하면서도…… 내가 왜 이러나…… 몹시도 자괴감이 들긴 하지만…….”
“…….”
“……그래도 자꾸만…… 자꾸만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지저분한 상상이 멈춰지질 않아…… 일단 한번 그렇게 해보라고…… 일단 한번 해보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것도 같아서요…… 정말 그럴까요……?”
“…….”
“……예? 그럴까요? ……그렇겠죠, 선생님……?”
“…….”
“……일단 한번 해보면…… 끔찍하고 더러워서…… 정말로 추악해서…… 다신 생각도 나지 않겠죠? 그렇겠죠……?”
“…….”
“……그러니까 오늘 밤엔…….”
“…….”
“……그런 걸 해요. 아주아주 추한 거…… 추악한 거…… 더럽고…… 구역질이 올라오지만…… 하지만 그래도 몹시 에로틱한…… 선생님은 그런 거 좋아하시죠……?”
“…….”
“……왜 이렇게 떨어요? 그렇게 기대가 돼요, 선생님?”
“…….”
“……좋았어……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게이들은 원래 그런 거 무척 좋아한다죠……?”
“…….”
“……선생님도…… 무척…… 이렇게 무척 밝히시는 걸 보니까 천상 게이시네요…….”
“…….”
“……좋아요, 그런 거…… 오늘 밤엔…… 참지 마시고 우리 실컷 해봐요…… 상상 속에서만 해봤던 그런 더러운 짓거리들…… 그래요…… 눈앞이 노랄 지경으로 마음껏 뿜어내보자구요, 선생님…….”
“…….”
야수가 발목에 걸린 청바지를 벗기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게 보였다. 팬티와 청바지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집 안으로 들어선 이래, 그토록 벗기 위해 애썼던 신발 또한 겨우 벗을 수가 있었다.
조악하기 짝이 없는 음담패설을 느릿하게 토해내던 것에 비해, 일단 말을 마친 야수는 빛처럼 재빠르고 명징했다. 버석버석 말라비틀어진 낙엽처럼 흐느적거리는 인환의 몸뚱이는 보신탕집의 잡종 개처럼 연인의 팔에 목을 휘감긴 채 침실로 질질 끌려갔다. 뼈와 살과 선지가 각각 따로따로 분리되기 위해 침대에 대자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랬다. 희롱은 이제 끝났다. 마침내 야수는 고대하던 사냥감의 목을 물었고, 사냥감은 비명 소리 한번 내지르지 못한 채 절명했다. 야수는 더 이상 느리게, 느리게 그르렁거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울음을 터트릴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눈물은 살아 있는 자들만의 몫이었다. 아파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았다. 고통 또한 한가지였다. 살아 있는 자들만이 목 놓아 울 수 있었다.
야수의 포르노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게이 포르노였다. 게이 포르노 같았다. 몽롱해진 머리로 열심히 기억을 떠올려보지만, 정말로 게이 포르노가 이랬던가 하고 고개를 갸웃해야만 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오럴도 하고, 트리플 플레이도 하고, 기구도 쓰고, 그룹 플레이에 근친에 수간에 SM에 몰카에 본디지에 하드 고어까지…… 몹시도 다채로웠던 것은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하지만 여전히 정확한 디테일들은 전혀 떠오르지가 않았다. 이상했다. 이상야릇한 일이었다. 장롱 가득 숨겨놓았던 베스트 컬렉션들이, 수시로 꺼내어 보며 자위를 했던 자신의 그 많던 애장판 포르노들이 제목조차 기억이 안 난다는 현실이 참으로 이상했다. 물론 쓰레기통에 내다 버린 지도 꽤 시일이 지난 것으로 기억을 한다. 안 보기 시작한 건 그보다 더 오래전 일이었다. 그러나 그래봤자 고작 2년이었다. 고작 2년이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치매 환자처럼 머릿속이 백지 상태라는 건 이상해도 한참이나 이상하지 않은가.
자신은 게이였다. 그것도 몹시 밝히는 게이였었다(물론 비록 상상력이거나 음란물들을 동원해서 자위만 열나게 했을 뿐이긴 하지만). 섹스는 야하고 지저분할수록, 악마의 유혹처럼 금단의 색체가 강할수록 좀 더 자극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끼던 애장판들도 몽땅 그런 낯부끄러운 종류들뿐이었었다. 그런데도, 백지가 된 머릿속은 단 한 장면의 그림도 떠올려주지 않았다.
그냥 연인의 얼굴만 눈에 선했다.
아름답고, 총명하고, 금욕적이고, 예의 바르고, 동생들에게 다정하고, 친구들에게 상냥하고, 보성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절대 빼먹지 않는 착한 효자에 무뚝뚝하고, 하지만 정 많고, 운동을 잘하고, 공부도 무지 잘하고, 왕자님 같은 카리스마에, 낡은 청바지가 가슴 저리도록 잘 어울리고, 지독한 음치에, 부르는 애국가는 왕코메디, 키스는 달콤하고, 섹스도 달콤하고, 그냥, 마냥, 그저 마냥, 마냥 다 달콤했던 연인만 기억이 났다. 눈에 선했다. 뿌옇게 김이 서린 눈가가 무색하게 마냥 또렷하기만 했다.
그래서 가슴이 아팠다.
내 연인은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애장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시절은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숨어버렸나. 그 많던 ‘싱아’는. 그래, 누가 먹었나. 누가 먹어치워버렸나. 그 많던 싱아는.
아, 참.
여기 있었나 보다.
여기 숨어 있었다.
야수가 있었다.
섹스에 걸신들린 한 마리 야수였다. 섹스로 병이 들어버린 가련한 야수였다. ……소돔의 씨…… 소돔의 씨앗……. 씨앗이 뿌려져 싹이 튼 모양이었다. 그런 사정이었나? 그래서 야수는 병이 들었나? 포르노란 포르노는 다 먹어치웠나? 그 많던 싱아도?
맙소사. 자신의 애장판들은 그곳에 다 있었다. 바로 야수의 머릿속이었다. 음습하고 무시무시한 그 속에 전부 다 끈덕지게 들어앉아 있었다. 세상에. 그걸 잊어버리다니. 자기가 바로 이곳에다 숨겨둔 것을.
……소돔의 씨앗…….
야수의 거대한 페니스가 또다시 인환의 내부로 밀려들고 있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더 이상 세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야수는 사정 시간을 늦추기 위해서인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도통 만족할 줄 모르는 흉기를 거듭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절정 직전이 되면, 야수는 극렬한 피스톤 운동을 멈추고 대신 인환의 온몸에 미친 듯한 오럴을 퍼붓곤 했다. 젖꼭지를 빨고, 발가락을 빨고, 성기를 빨고, 이리저리 다 빨고 돌아다니다가, 피로가 오면 그저 그중 하나만을 기착지로 택했다. 긴 시간, 끈덕지게 빨리고 물리고 핥기고 희롱당한 기착지는 한결같이 피가 슬몃 배어나오곤 했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야수가 온 밤 내내 인환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애초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야수의 스태미나였지만, 그렇다고 무려 여섯 시간에 가까운 마라톤 섹스가 가능할 인간은 없었다. 야수는 처음부터 작정을 했을 것이다. 작정을 하고, 미리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에 시작을 한 것이다.
하긴 줄곧 꿈꾸었다지 않는가. 저 가공할 만한 상상들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저 가공할 만한 씨앗들이.
……소돔의 씨…… 소돔의 씨…… 소돔의 씨앗…….
게이였다. 정말로 게이 같았다. 게이 포르노였다.
―……같은 동성의 남자를 물기 위해 돌아버려요…….
오럴도 하고, 트리플 플레이도 하고, 기구도 쓰고, 그룹 플레이에, 근친에 수간에 SM에 몰카에 본디지에 하드 고어까지…… 있을 건 다 있었다. 야수는 천지를 진동시키는 사나운 발정을 거듭하며 끝없이, 끝없이 울부짖었다. 막을 수 없었다.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에너지가 아니었다. 그 압도적인 크기와 속도에 질겁해선 인환은 그저 눈을 화등잔만 하게 홉뜬 채 벌벌 떠는 수밖엔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다. 온몸이 정신없이 휩쓸려 들어가고 있었다. 과연 포르노의 폭풍이었다. 거대한 포르노의 바다였다. 게이 포르노의 바다였다. 태평양이었다. 대서양이었다. 아니, 코스모스였다. 스타워즈였다.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다스베이더로 거듭나고 있었다. 포르노의 스타워즈였다. 스타워즈에서 살아남으려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야만 했다. 기똥찬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으면 죽고, 죽고, 또 죽고, 끝도 없이 죽어나가야만 했다. 인환은, 그래서 창녀가 되었다. 아니, 되어주기로 했다. 다스베이더에 필적할 만큼, 새까만 소돔의 창녀였다.
……소돔의 씨…… 소돔의 씨…… 소돔의 씨앗…….
―……같은 동성의 남자를 물기 위해 돌아버려요…….
……이러면 안 돼…….
―……어떻게도 안 되는 걸 알죠. 그래서 용서를 할 수가 없어요…….
……이러면 안 돼…… 이렇게 계속하면 안 돼…… 너도 알고 있잖아……?
―……아무리 불쌍하고 가슴이 아파도 오빠도 그들과 똑같은 소돔의 씨일 뿐이니까요…….
……소돔의 씨야…… 퍼질 거야…… 독처럼 퍼져나갈 거야…… 퍼져서 싹이 트게 만들 거야…….
―……같은 동성의 남자를 물기 위해 돌아버려요…….
……독버섯처럼 퍼트리고 있구나…….
―……어떻게도 안 되는 걸 알죠. 그래서 용서를 할 수가 없어요…….
……정말 사랑한다면서…… 지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소중한 연인이라면서…… 잘도 그 소중한 연인에게…… 제대로 더러운 낙인을 찍고 있구나…….
―……아무리 불쌍하고 가슴이 아파도 오빠도 그들과 똑같은 소돔의 씨일 뿐이니까요…….
“……흐윽!! 웃, 웃, 윽!! 흐…… 흐악……!! 큭!!!”
다스베이더가 포효하고 있었다.
소돔의 씨를 받은 다스베이더였다.
씨를 뿌린 자의 양팔이 활짝 벌어졌다. 씨를 받은 자의 팔도 활짝 벌어졌다. 흠뻑 젖은 창녀의 다리 역시 한계까지 벌어졌다. 빠져나갔던 페니스가 단숨에 한계까지 파고들었다. 전립선을 직격하는 새하얀 충격에 창녀의 입술이 크게 벌어지며 자지러졌다. 내장 깊이 꿰뚫려 경련을 일으키던 창녀의 두 다리가 탐욕스레 다스베이더의 허리를 감아들였다. 뱀처럼 끈끈하고 뱀처럼 요사스럽게. 축축하고 은밀하게 꿈틀거리며 힘주어 친친 휘감자, 타락한 다스베이더가 쾌락에 겨운 새하얀 교성을 피워 올렸다. 창녀는 기쁨에 몸서리를 쳤다. 씨를 뿌린 자의 통쾌한 만족감이었다. 카하하하하하하. 창녀의 흉측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쟁쟁했다. 메두사의 머리카락 같았다. 식식대는 숨길을 뿜어내며 뱀의 혓바닥이 사방으로 요사스럽게 날름거렸다. 마침내 기회를 잡은 뱀의 혓바닥이었다. 다가든 다스베이더의 손아귀를 와락 움켜쥐곤 친친 휘감았다. 사나운 수컷의 포효를 날리며 다스베이더가 호응했다. 마주 친친 휘감겨든 것은 다스베이더의 핏물이 뚝뚝 듣는 시뻘건 광선 검. 하반신이 요철처럼 빈틈없이 맞물린 것과 마찬가지로, 시커먼 소돔의 지옥에 빠진 손아귀 역시 갈퀴처럼 서로를 향해 얽혀들었다.
“……응…… 응…… 흐앗……! 악……! 아악……!”
“흐윽…… 큭…… 흡…….”
“……흐앙…… 앙…… 아앙…… 조…… 조앗……! 흐아앙…… 하앙…… 아앙…… 아악……!”
“흣…… 으…… 윽…… 크흑……!”
“……우왓……! 악……! 아악!! 거깃!! 거깃!!! 흐악!!! 하앙!!!!!!”
“읍……! 큭!!!”
“……흐아아앙…… 아아악! 거기잇!! 거…… 위이이잇!!!!!!”
“큽……!”
“……아악! 앗, 흣……! 우아아…… 아악!!! 우아아아아악!!!!!!”
“윽! 큭!! 크아악!!! 크앗!!!!!!”
내장 깊숙이에서 뜨거운 용암이 폭발했다. 창녀가 먼저 고래고래 오르가슴을 선언했고, 다스베이더도 사납게 포효하며 그 뒤를 따랐다. 죽음 같은 쾌락이었다. 황홀한 금단의 포르노였다. 더럽고, 추악하고, 악취가 진동하는 본디지였다. SM이었다. 근친이었다. 수간에 혼음이었다. 스너프였다.
……퍼질 거야…….
……독처럼 퍼져나갈 거야…….
……퍼져서 싹이 트게 만들 거야…….
창녀는 이제 감히 아니라고 대꾸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감히 부인하지 못했다.
지옥 같았다.
아니, 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