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 2003년 7월. 문위(文偉) (61/129)

23. 2003년 7월. 문위(文偉)

“……문 이사님……?!!! 마…… 맙소사, 문 이사님!!!!!!”

“문 이사?!!! 문 이사, 자네 왜 이래?!!! 문 이사!!!!!!”

“문 이사님!!! 아이, 참!!! 어떡해?!!!!! 어떡해!!! 어떻게 된 일이야, 이게?!!!”

“……도…… 돌아가신 거예요……? 그…… 그…… 그런 거예요, 이 실장님……?”

“죽긴 누가 죽어?!!!!!!!”

“……수…… 숨은 쉬고 계세요! 아, 아직 숨을 쉬고…… 맥박도…… 약하지만 아직 뛰고 있습니다! 괜찮아요!!! 아직 살아 계십니다!!!”

“뭐하고 있나, 김 팀장!!! 빨리 문 이사를 안으로 모시지 않고!!! 업어!!! 아, 아니지!!! 그냥 양쪽에서 들어 올리는 게 더 낫겠구만!!! 내가 이쪽 팔을 들 테니까 자넨 왼쪽 팔을 잡게!!! 하나, 둘, 셋, 하면 함께 들어 올리자구!!!!!!”

“어떻게……! 도대체 이게 무슨…….”

“미스 신, 울지만 말고 빨리 병원 응급실에 연락해!!! 어서!!! 의원님께도 전화로 사정 설명하고…… 아, 아니다! 의원님껜 맨 마지막이야!!! 일단 병원부터 옮긴 다음에!!!”

“……그,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의원님께도 빨리 알려드리는 편이…….”

“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야!!! 건강한 청년이야!!! 이깟 비 좀 맞았다고 죽지는 않아!!!”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자신의 굳어버린 몸뚱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란은 한마디도 빠짐없이 고스란히 귓속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눈을 뜨고 자신은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자신의 소중한 동료들일 이 사람들을 진심으로 안심시켜주고 싶었지만, 위는 가위에라도 눌린 것처럼 도무지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스스로의 의지로는 손가락 하나조차 옴짝달싹할 수 없이 굳어버린 몸뚱이도 한가지였다. 그저 자각되는 것이라곤 끝없는 어둠…… 주변을 온통 시커멓게 물들이고 있는 압도적인 어둠뿐이었다.

누군가의 손들이 들것이 되어 자신의 몸을 집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감각이 완전히 사라진 몸으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지만, 뿌옇게 시야를 점령해 들어오고 있는 빛의 잔재는 흐릿하게나마 감지할 수가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어둠 속에만 갇혀 있었기에, 그저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반가운 빛의 흔적이었다. 위는 눈을 최대한 크게 뜨곤 빛이 비치는 방향 쪽으로 시선을 모았다. 마치 위의 태도를 살피고 있었다는 듯, 갑자기 빛의 양이 많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이 원하자마자 빛은 폭발적으로 거대하게 증식하고 있었다. 빛이 거대해지는 것과 동시에 그토록 귓전을 두드려대던 동료들의 말소리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사방은 뿌연 빛의 윤무에 휩싸여 더 이상 어둠의 흔적이라곤 찾을 수가 없었다. 둥그런 달걀 크기만 한 빛의 응어리가 나타나 위의 주변을 빙빙 돌더니 마치 방향을 제시하기라도 하듯 앞으로 쭉 뻗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식간에 한참을 멀어진 것인데도 크기는 변함없이 달걀만 했다. 위는 망설임 없이 그 새하얀 빛의 덩어리를 따라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30분을 걸었는지 한 시간을 걸었는지, 아니면 하루를 걸었는지 시간 감각이 도통 모호해졌다. 자신을 인도해주던 빛의 덩어리는 어느새 거대한 터널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엄마의 자궁처럼 너무나 포근하고 유혹적인 그 모양새에 잠깐 의심이 들긴 했었다. 그러나 질릴 정도로 보아온 어둠만으로 이미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한 위로서는 저 앞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한들 기꺼이 도박을 하고픈 심정이었다. 일말의 망설임이 사라지자 기분은 갈수록 유쾌해졌다. 흥얼흥얼 노랫가락까지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사랑스러운 빛의 알갱이를 어루만지기도 하고, 두 팔을 크게 벌려 품 안 가득 빛의 홍수를 들이켜기도 하면서 위는 서둘러 발길을 재촉했다.

이 길이 행복이었다. 이 길만이 평화였다. 더 이상의 행복은, 평화는 그저 눈속임에 불과한 듯한 확신에 찬 깨달음. 그랬다. 이 길만이 전부였다. 다른 길은 그저 고통일 뿐. 뼈가 갈리고 살이 문드러지는 지독한 고통일 뿐…….

갑자기 심장이 부서지는 듯한 거센 통증이 왔다.

품 안 가득 쏟아져 들어오던 빛의 덩어리가 순식간에 스러지며 위는 다시금 시커먼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싫어, 놔!!!!!!!!

절로 악에 받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귀청이 찢어질 것만 같은 수많은 귀신들의 넋두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쾅!!!

무언가가 가슴께를 내리쳤고, 다시 한 번 심장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왔다.

“……돼…… 됐어! 다시 뛰고 있어!!! 뛰고 있어!!!!!!”

“물러나주십시오!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닙니다! 열이 너무 높아요. 또다시 쇼크가 올 수 있습니다……!”

“……안 돼요!!! 안 돼!!! 절대 안 됩니다!!! 건강한 친구요!!! 이깟 일로 심장이 멈출 친구가 절대로 아니란 말입니다!!!”

“진정하시고 물러나 계십시오! 이러시면 환자를 제대로 살필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걱정이 돼서…….”

“……좀 더 빨리 안 됩니까?!!! 길도 안 막히는데 뭐가 이렇게 느려요!!!”

“곧 병원에 도착합니다. 의료진들이 대기하고 있으니까 안심하십시오.”

“……그래. 그만 좀 진정해, 김 팀장. 자네가 그러니까 더 정신 사나워지잖아.”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잔뜩 겁에 질린 저 목소리가 자신이 알고 있는 김 팀장의 그것인지 조금 의심스러웠다. 윤열이 형의 충실한 오른팔로, 여간한 일엔 좀체 흥분하는 법이 없는 김 팀장이 아닌 것만 같았다.

“……버텨봐, 문 이사. 젊은 사람이 왜 이래? 의원님께서 얼마나 자네한테 의지하시는지 잘 알잖나? 응? 생각이 있는 사람이 이럼 못쓰지. 제발 기운 좀 내. 젊은 사람이 말이야…….”

묘한 일이었다. 한 교수의 어조도 어딘가 이상야릇하기는 한가지였다. 쉰이라는 연배가 믿기 힘들 정도로 젊고 낙천적이며 유머 감각이 넘치는 한 교수 아닌가. 천하무적이라는 측면에서 윤열이 형과 거의 쌍벽이라 칭할 수 있을 만한 사내가 아닌가 말이다. 일이든 정치 문제든, 아무리 곤란한 상황에 처해도 한 교수가 이렇게까지 심각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었다.

“……이리 허약해 빠져서야 진짜 자네가 아니잖아. 철인처럼 으스대며 우릴 비웃고만 다니더니, 그래 이렇게 뒤통수를 쳐? 그러게 내가 일도 좀 쉬어가면서 하라고 그랬잖나, 응? 여행도 좀 하고, 문화생활도 즐기고, 골프 같은 것도 접대용으로만 생색내지를 말고…… 젊은 사람이 말이야, 여유가 있어야지, 여유가. 요즘 세상에 워커홀릭이 어디 자랑인 줄 알아? 촌스럽게 70년대식 개발 독재 망령이라도 붙은 거냐구, 자네?”

한 교수가 아무래도 자신을 나무라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뭔가 변명이라도 흘리려 했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는 몸도 한가지였고, 사방을 에워싼 시커먼 어둠도 여전했다. 얼마 전까지 자신을 이끌었던 빛의 정체는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몇 번이나 말을 꺼내보려 애를 썼고 그 이상으로 몸을 움직이기 위해 기를 썼다. 하지만 그 어떤 시도도 현재의 자신으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김 팀장과 한 교수의 근심 서린 목소리를 얼마 동안 더 들은 것 같았다. 정체가 불분명한 몇 사람인가의 말소리도 두런두런 귀청을 파고들며 무력감에 빠진 자신을 더더욱 담금질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역시 한때뿐이었고, 어느덧 위는 다시금 완벽한 진공 상태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빛도, 소리도, 감각도, 형태도 사라졌다. 어디를 살펴도, 어디를 만져도, 시커먼 공허가 입을 떡 벌린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왜 이렇게 슬픈지, 고통스러운지, 그래서 속수무책으로 절망스러운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뇌가 텅 빈 것마냥 일체의 기억력과 판단력이 몽땅 다 사라져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이 무시무시한 어둠의 심연 속에 홀로 방치된 때문이리라, 막연한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무, 무신…… 이거이 무신 일이당가? 참말로 나 미쳐불겄네…….”

홀로 남겨진 채로 아주 오랫동안 흐느꼈던 것 같았다.

“……요 문딩이 잡눔이 아주 나 주리를 틀라고 작정해부렀구만이라. 니미럴, 정신 채리고 얼렁얼렁 일어나지 못해싸야……?”

익숙하고 그리운 목소리가 끊임없이 자신을 채근하고 있었다. 그리운 목소리는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시커먼 심연까지 뻗어 내려와 뻥 뚫려 있던 자신의 머릿속을 조금씩 따스하게 채우고 있었다. 잔뜩 억눌린 나지막한 톤으로 미루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만큼 서럽게 흐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니, 실은 자신이 흐느낀 것이 아니라 목소리의 주인공이 흐느끼고 있었던 것 같은 판단이 들었다. 저 ‘목소리’를 자각하는 순간, 뼈를 저미는 것 같던 고독감과 슬픔이 슬며시 자취를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느끼다니, 울음을 터트리다니, 어딘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도 들었다. 이미 죽어버렸지만 죽음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고집스러운 좀비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아니, 흘리고 싶어도 흘릴 수가 없었다. 좀비라. 아아, 그렇군. 자신은 이미 죽었던 거다. 이미 죽어버려서 이토록 어둡고 어두운 것이다. 이토록 고독하고 슬픈 것이다. 오로지 홀로, 소중하고 소중한 그 누군가를 잃어버린 채로 홀로 남겨져 죽어버린 것이다.

“……징헌 새끼…… 무작시런 새끼…… 이러지 말어야…… 니가…… 니가 워쩌크름 이럴 수가 있어야…… 니눔마저 강이 짝 나믄 나는 워쩌라고…… 워쩌크름 허라고…….”

설움의 감정 대신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심각한 육체의 통감이었다. 통증은 가운데 심장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심장 근처가 무언가 커다란 돌덩이에 부딪치기라도 한 것마냥 욱신거리며 아팠다. 양쪽 폐에선 정상적으로 호흡을 하기 곤란할 지경으로 쓰라린 압박감이 느껴졌다. 팔다리는 물론, 온몸의 내장이며 머리까지 바늘로 찔리는 것처럼 쑤시고 아팠다. 그러나 그 모든 직접적인 통증보다도 더 참기 힘든 고통은 전신이 마치 얼음물에라도 잠긴 것마냥 느껴지는 극심한 추위였다. 풍 맞은 노인처럼 부들부들 사지를 떨고 있으니, 통증 또한 더더욱 배가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 추위가 느껴지는지, 왜 이렇게 몸이 아픈 것인지, 차분하게 까닭을 따져보기도 전에 먼저 자신의 넋을 사로잡은 것은 분노의 감정이었다. 이렇게 몸이 고통스러워서야 제대로 무언가를 할 수가 없다. 일을 하는 것은 물론, 가족을 부양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그 누군가를 지켜내야만 하는데, 지켜내기는커녕 지켜내야만 한다는 의지를 기억해내는 것조차도 버겁기만 했다.

……붙잡아야 해…… 못 가게 막아야만 해…… 젠장, 용서 못 해…… 몸이 왜 이래…… 날 내버려둬…… 안 돼…… 서…… 거기 서, 장인환…… 이리 와…… 이리 와…… 안 돼…… 움직여…… 제발, 안 돼…… 움직여…… 팔을 뻗어…… 다리를 움직여…… 달리라구…… 그를 붙잡아, 어서…… 달리라니까…… 안 돼……! 제기랄, 몸이 왜 이래……?! 뭐야……?!!! 너는 누구야?!!! 잡아!!! 그를 붙잡아!!! 하느님, 안 돼!! 장인환!!! 거기 섯!!!!!! 거기 서!!!!!! 장인환!!!!!!! 장인환!!!!!!!!!!

“……으…… 흐윽……!”

“위야?!!! 요눔아, 위야!!! 나다!!! 형이다!!! 정신이 드나?!!! 나 알아보겄나?!!! 그려, 싸게 싸게 정신채리리 못해써야?!!! 엉?!!! 요눔아, 요 징헌 눔아!!! 거지발싸개 거튼 눔아!!!”

“……흐윽……! 으…… 하아…….”

“위야!!! 위야, 위야!! 한 교수님, 야 쫌 보소!!! 겨우 정신이 드는갑네?!!!”

“예!!! 다행입니다, 의원님!!! 정말 다행이에요!!!”

“위야!!! 요눔아!!!”

“문 이사! 문 이사, 나야! 의원님도 와 계시네! 정신이 드는가?!”

누군가를 갈기갈기 찢어발기고픈 맹렬한 살의를 움켜쥔 채 위는 가까스로 의식을 일깨웠다.

눈을 찌를 듯 새하얗게 빛나는 삼파장 램프 불빛이 보였다. 불빛 너머로 사나운 폭우 속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그의 뒷모습이 잔상처럼 아득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길고 날카로운 창 하나가 느닷없이 내장을 찔러들었다. 자각은, 감당하기 힘든 극심한 육체의 통증과 함께 단숨에 다가들었다.

……그가 가버렸어…….

한 번 찌르고 두 번 비튼 다음, 창은 그대로 등을 뚫고 날아가 저 멀리, 거무틱틱한 운무로 가득한 허공 어디쯤인가 들어가 박혔다. 분노 같은 것은, 혹은 미칠 듯한 질투심 같은 것은, 거의 자각조차 되지 않았다. 그저 틀렸다 하는 절망, 늦었다 하는 통한의 고통만이 전신을 사로잡아 온몸을 꼼짝달싹할 수조차 없었다. 뼈가 바스러지는 것만 같은 끔찍한 통증이 탱크처럼 전신을 밟고 지나갔다. 꿰뚫린 심장이 이리저리 뒤틀리며 사방으로 시뻘건 핏덩이를 토해내고 있었다. 심장이 아픈 건지, 심장을 제외한 다른 사지가 아픈 건지, 아니면 마음이 아픈 건지, 판단이 모호해졌다. 한계 이상으로 감각을 전율시킨 고통 때문일 것이다.

―장인환!!!!!!!!!!

점점 더 흐릿해지는 그의 잔상에 필사적으로 부르짖어보지만, 어쩐지 목소리로는 토해지지 않고 있었다. 앞으로 질질 끌려가는 빗속의 몸뚱이는 인간의 몸이 아니라 그저 꿈틀거리는 시커먼 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드륵드륵 뼈를 바스러뜨리며 지나가는 탱크 소리가 들렸다. 통각이 마비된 까닭일까, 더 이상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소리만 요란스레 울렸다. 귀를 찢어발길 것처럼 소리만 가득 들어차왔다.

……등신같이…….

누군가를 향한 살의는 더더욱 맹렬해졌다. 그를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아니, 정확히 그의 사랑을 이제야말로 완전히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과 충격이 아무리 컸다고는 해도, 그 순간 얼음땡이 돼버린 등신의 몸뚱이는 도저히 용서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 붙잡지 못했나…… 왜 팔을 뻗지 못한 거지? 왜 달려가지 못했어? 그는 내 것이야. 누가 뭐래도 내 것이라고. 왜 약해져버린 거야. 왜 믿지 못한 거야. 그가 내 것이라는 걸……. 그렇지. 내 거잖아. 내 거야. 내 거라고. 붙잡을 수 있었잖아?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갔더라면 충분히 붙잡을 수 있었단 말이다. 이 팔로, 손으로…… 다시 잡는 순간 다시 내 것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제기랄, 차라리 죽어! 죽어버려, 문위! 진짜로 관속에 들어가버리라구! 죽어버리란 말이다!!!

꿈틀거리던 시커먼 덩어리는 이윽고 광란하듯 요동치는 운무와 뒤섞여 완전히 형태를 잃고 있었다. 눈앞을 가로막고 선 것은 오로지 세찬 비바람과 희뿌연 운무로 탈색된 제주의 이국적 풍광뿐이었다.

“……아프나?!!! 아프지?!!! 이 좆겉은 새끼야!!! 시방 뭘 보고 있능 겨?!!! 나가 뵈는 겨?!!! 니 형이 보이나 말이여?!!! 나다!!! 윤열이 형이다, 이 썩을 노무 새끼야!!! 니 시방 무신 짓을 저질러 뿌린지 알고나 있는 겨? 그 장대비 속에 월매나 오래 서 있었던 겨?!!! 당췌 죽고 잡퍼 환장을 혔어야?!!!”

정겨운 남도 사투리는 잔뜩 물기를 머금은 채 위의 귀청을 쉴 새 없이 때리고 있었다. 운무로 뿌옇게 탈색된 시야 너머로 낯익은 얼굴 하나가 불쑥 다가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새까만 농군의 얼굴이었다. 국회의원이라는 귀족의 신분증은 단연코 사기일 게 뻔한, 불쌍하고 불쌍한 자신의 ‘형’이었다. 사무치도록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이었다. 어쩌면 자신을 사신(死神)으로부터 구한 소중한 존재일 것이지만, 위는 저 언제 봐도 애틋하고 정겨운 윤열이 형의 얼굴에서 더 이상 어떠한 감흥도 끌어낼 수가 없었다. 사라져버린 존재가 주는 상실감과 고통이 너무나 큰 나머지, 자신이 소유한 다른 어떤 것도 생생한 충족감을 주길 거부하고 있었다. ……혼자였다. 자신은 이 헐벗고 고단한 생의 어둠 속에서 영원히 혼자일 터였다.

“……어어어?!!! 뭐허는 거시여, 시방?!!!”

“문 이사, 왜 이래?!!! 일어나려고?!!! 안 돼!!! 당분간은 절대 안정해야만 하네!!! 자네, 죽다 살아났단 말일세!!!”

죽다 살아났다, 라……. 평소에도 별 허풍이 없는 사람이지만 한 교수의 말은 거의 사실인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온몸이 고통스러울 리는 없으니까. 비록 한순간이었을지언정 자신은 진심으로 죽기를 소원했다. 소원은 그 즉시로 하늘에 닿아 단숨에 심판의 낫을 휘두른 모양이었다. 운이라곤 손톱의 때만큼도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자신답다고 해야 할까. 밝고 긍정적인 소원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대신, 비참하고 나약한 마음이 불러낸 악마는 철저하게 자신의 전능한 능력을 발휘했다.

이를 악문 채로 상반신을 일으켜 세우자 윤열이 형과 한 교수가 동시에 다가들며 자신을 도로 침대에 눕히고 있었다. 평소라면 단번에 제압이 가능했을 두 사람이건만 몸이 고장 날 대로 고장 난 모양인지 저항은 도무지 불가능했다. 저항은커녕 잠시 힘을 준 것뿐인데도 심장과 폐로 부서질 듯한 통증이 밀어닥쳤다. 열이 꽤나 높은 모양인지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사지는 입이 딱딱 벌어질 지경으로 쑤시는 통증을 주고 있었다.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통증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은 살아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살아 있어야만 다시 움직일 수 있다. 팔을 뻗을 수 있다. 그를 되찾을 수가 있다, 살아 있는 몸뚱이를 갖고 있어야지만.

“……윤…… 윤 비서…… 윤 실장…… 서, 서울에 연락해서 윤 실장 좀 부, 불러주세요, 형…….”

헐떡이듯 숨을 고르며 간신히 말을 끌어낼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꿈속에서와는 달리 대화는 가능해진 모양이었다.

“윤 비서?!!! 윤 비서는 또 워째 찾는 겨?!!! 시방 일이라도 하겠다는 거여?!!! 한 교수님 말씀 못 들었어야?!!! 니놈 저승 문턱을 허벌나게 넘나든 거 알어, 몰러?!!! 이리 무사허게 깨난 것만도 을매나 다행헌 일인지 니눔이 알어야?!!!”

“……이…… 일 때문이 아닙니다. 그…… 급해요, 형. 제발 불러주세요.”

재차 형을 채근하며 시계를 찾았다. 출입문이 있는 벽 오른편에 부착된 자그마한 은색의 벽시계는 9시 1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며칠…… 오…… 오늘 며칠이죠, 한 교수님?”

피가 마르는 듯한 절박감이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윤열이 형 옆에 서 있던 한 교수의 소맷부리를 와락 움켜쥐는 것과 다급하게 질문을 토해낸 것은 거의 동시였다.

“……며칠이라니……?”

“……어, 얼마 동안 기절해 있었던 겁니까, 제가?”

“그긴 알아 뭐허게, 이눔아?!!! 1년 넘게 저승을 왔닥갔닥혔다고 하면 믿을 껴?!!!”

“……안심하게. 아직 토요일이니까. 아까 빗속에 쓰러져 있는 자넬 발견하고 우리 모두 얼마나 놀랐는지 아나? 정말 죽은 줄 알았다구. 아니, 사실 죽을 뻔하긴 했지. 가슴이 꽤 아프지 않나, 지금? 심장 마사지를 해서 그래.”

다행이었다, 이 역시.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면 찾을 수 있는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

“……유…… 윤 실장 좀 불러주십시오, 한 교수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 좆겉은 새끼가?!!! 여직도 헛소리를!!!”

“의원님 말씀이 맞아. 당분간 일은 잊고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네.”

“……이…… 일 때문이 아닙니다. 더…… 더 중요한 문제라…… 마, 만약 불러주시지 않으면 지금 당장 여길 나갈 겁니다.”

“……그 사람이여?”

격앙된 감정으로 온통 벌게져 있던 윤열이 형의 얼굴이 문득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잖아도 이런 니 혼재 내삘고 워대 갔능가 싶었는디…… 니 요짝 나게 맹근 사람도 그 사람이재……?!”

그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원망이 스스로도 괴로운 듯, 윤열이 형의 얼굴은 어느새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윤…… 실장…… 부…… 불러주세요, 형. 제발…….”

“허이구!!! 이 일을 워째야 쓸 것이다냐!!! 허이구, 이놈아!!! 이 넋 나간 잡놈아!!! 안 된다고 혔지, 나가?!!! 그러게 나가 안 된다고 혔어, 안 혔어?!!! 그 사람허고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안 된다고 혔지 않여?!!! 이놈아, 이 문딩이 화상아!!! 이 호랭이가 칵 씹었다가 뱉을 잡놈아!!! 미친년 속고쟁이 겉은 놈아!!!”

“……의원님, 고정하십시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거칠고 상스러운 욕설의 퍼레이드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꼭지까지 치민 울화를 채 감당하지 못해 벌게진 형의 얼굴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보였다. 아니, 그저 흘러내리지만 않았을 뿐, 붉게 충혈된 눈시울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형의 괴로움이 생생하게 전달이 돼서 저도 모르게 방 천장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선을 피했다. 어차피 신경전을 벌이거나 더 이상 대화를 끌어갈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숨을 쉬기가 이토록 괴로운 것을 보니 폐렴인 모양이었다. 고비를 넘겼다곤 해도 제대로 움직이려면 상당한 시일을 요할 것이다. 혹여 또다시 육체를 방기해버린다면, 그땐 이 정도로 운 좋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최대한 컨디션 조절을 하면서 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제…… 제발요…… 그…… 그 사람을 차…… 찾지…… 못하면…… 모…… 못하면 미치고 말 겁니다…… 미…… 미치고 싶지 않습니다, 형…….”

헐떡이듯 가까스로 띄엄띄엄 말을 뱉어내는 자신이 안쓰러웠는지, 저주처럼 거듭 퍼부어지던 형의 욕설은 어느새 잠잠해져 있었다. 따끔거리듯 닿아오는 시선은 육체의 고통 이상으로 여전한 아픔이었다. 물론 알고 있었다. 그와 관련된 자신의 모든 행동은 형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상처란 것을. 하지만 어쩌겠는가. 연애야말로 인간성을 말살하는 치명적인 광기인 것을. 가족도, 도덕도, 인륜도, 야심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저버리게끔 만드는 추악한 열병인 것을. 솔직히 이 순간 형이 받을 상처 따윈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해버리는 자신의 은밀한 속내가 있었다. 휘와의 절연조차 마냥 무덤덤하기만 했었다. 불쌍하고 불쌍한, 우리 혜윤이. 내 혜윤이. 혜윤이 역시 가뿐하게 외면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랬다.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은. 이미 짐승이었다. 그에게 환장해버린, 완벽하게 돌아버린 미치광이 야수일 뿐이었다.

나지막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나 했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뒤따랐다. 형이 짐승을 외면하는 소리였다. 계속 병실을 지켰다간 자신을 패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 것이다.

“……알겠네. 윤 실장에게 연락해보지. 더 필요한 건 없나?”

윤열이 형보다는 한발 떨어진 동료일 한 교수가 마침내 원하는 답을 주었다.

“……휴대전화…… 제 휴대전화 좀 가져다주시겠습니까?”

“…….”

“……부…… 부탁드립니다. 절대로 무리하진 않겠습니다. 갖다주세요…….”

“……안 가져다주면 정말 병실을 나가버릴 게 아닌가. 자넨 빈말이라곤 않는 친구니까.”

“…….”

“……밖에 김 팀장이랑들 기다리고 있으니까 별장에 갔다 오라고 이르겠네. 쉬게나.”

“……고…… 고맙습니다, 한 교수님…….”

“……허, 참…… 나도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구만…….”

“…….”

뭔가 더 한 교수의 말이 이어졌지만 갈수록 의식이 흐려지는 바람에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왼쪽 손등에 꽂힌 링거액 속에 독한 수면제가 함께 처방돼 있거나 아니면 고열 때문일 것이다.

물론 더 이상 의식을 놓고 있을 틈은 없었다. 그를 찾을 때까지 다신 잠들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뼈를 가는 고통이 닥친다고 해도 더 이상 죽음으로 도피하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 자신의 것이었다. 누가 뭐래도 그는 자신의 소유였다. 되찾을 것이다. 다시 자신의 것으로 찾아올 것이다.

자꾸만 시커먼 아래로 굴러 떨어지려는 의식을 붙들기 위해 위는 기를 쓰고 눈을 부릅떴다. 정확히 초점을 맞추려 해보지만 보이는 거라곤 삭막한 병실 풍경뿐이었다. 고열 때문인지 모든 형태들이 선명하지가 않고 뿌옇게 일렁이듯 보였다. 새하얀 벽지가 발린 천장이며 사면의 벽들, 미색의 블라인드가 쳐진 창문이며 연푸른색의 쇠 침대와 은회색의 첨단 의료 장비들까지, 모두가 잔상으로 남아 있는 운무 속의 감귤 밭과 그닥 다르지 않아 보였다. 온몸을 사로잡고 있는 사무치는 고통이 아니라면 여전히 시커먼 악몽 속에 갇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을 터였다. 물론 현실이라 한들 악몽과 그 얼마나 거리가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떠났다는 현실, 자신이 한사코 거부하고 있는 저 지옥 같은 현실이야말로 최고의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괜…… 괜찮아…….”

“응? 뭐라구? 뭐라고 하는 겐가, 문 이사?”

“……찾을 수 있어…… 괜…… 찮…….”

“문 이사? 문 이사, 이보게……!”

“……다시 찾을 수 있다구…… 내 거…… 내 거야…… 괜찮아…… 찾으러 가면 돼…….”

“허 참, 이거 정말 큰일이로구만! 이런 몸으로 무슨……!”

“…….”

감각이 점점 더 몽롱해지며 어딘가로 굴러 떨어지는 듯한 전조가 느껴졌다. 또 혼절할 것만 같아 위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가쁘게 토해지는 숨결을 따라 찌르는 듯한 통증이 가슴을 압박하고 있었다. 반가운 통증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자신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렇다면 절망 역시 한참이나 이른 셈이었다.

“……기…… 다려…… 봐…… 돌려받으러 가겠다…….”

“……차라리 잠이라도 자게! 응?! 안쓰러워서 봐줄 수가 없다구!”

“……네 것이 아니야…… 착각하지 마…… 이미 하나라구…… 우린 하나란 말이다…….”

그래, 믿어. 믿는 거야, 문위. 그는 내 거야. 처음부터 내 것이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내 것일 사람이라구.

“허어, 참……! 문 이사, 많이 괴로운가……? 가, 가만있자, 간호사라도 불러다줘……?”

간호사보다 윤 실장과 휴대전화를 가져다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전에 한 교수가 방을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긴 이미 혼탁해진 의식으로 제대로 말을 전했을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저절로 토해지는 언어들은 자신이 듣기에도 도무지 두서가 없었다. 그럼에도 좀처럼 절제가 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뇌리 속에 떠오르는 그대로 입술은 앵무새처럼 자동 기술을 반복하고 있었다. 곤혹스러운 열기였다. 그악스럽게 치뜨고 있던 눈꺼풀이 마침내 아래로 떨어지자 어둠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위가 다시 의식을 찾은 것은 그날 밤 11시 무렵이었다.

눈을 떠보니 위의 몸은 어느새 처음의 중환자실이 아닌 보통의 VIP급 입원실로 옮겨져 있었다. 40도를 넘나들던 고열도 2∼3도쯤 떨어져, 내내 불안하게 병실을 지키고 있던 윤열이 형을 겨우 안심시킨 모양이었다.

열이 좀 떨어졌다곤 해도 참기 힘든 오한과 온몸을 쑤시는 듯한 통증은 여전했다. 물론 위로선 반가이 맞아들인 고통들이었다.

내일도 빡빡한 의정 활동이 기다리고 있는 윤열이 형을 반강제로 별장에 돌려보낸 것이 11시 30분 무렵. 윤열이 형과 간병인 역을 교대한 김 팀장을 통해 고대하던 휴대전화를 받아 든 것이 40분 무렵이었다.

한 교수로부터 한밤중에 긴급 호출을 받은 윤 실장은 마지막 비행기 시간을 놓쳐 내일 아침 첫 비행기 편을 예약했다는 전언을 남겼다. 위는 윤 실장이 직접 내려오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는 일부터 차례로 지시를 내렸다. 찾고 있는 휴대전화 번호의 위치 추적 서비스를 알아볼 것과 오늘 서울로 출발한 비행기 편의 탑승객 명단을 가장 먼저 수배하도록 했다. 아직 그가 제주도에 머물고 있을 것을 대비해 제주도 내에 있는 사설탐정 사무소를 알아보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이는 만일의 경우일 뿐이었다. 십중팔구, 큐레이터는 제주도를 뜬 것이 틀림없었다. 자신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루트에 제주도는 포함돼 있지 않을 터였다. 마지막으로, 그간 모아둔 큐레이터에 관한 자료들을 샅샅이 분석해 그가 머물 수 있을 법한 장소들을 빠짐없이 알아내라는 지시도 잊지 않았다. 최선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이었으나, 엄연한 불법 행위라 쉬이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물론 온갖 연줄이란 연줄은 다 동원해볼 요량을 하고 있었다. 이동 통신사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법한 연줄이 어딘가 하나쯤은 존재하고 있을 터였다. 아니, 존재한다고 믿고 싶었다.

“……얼굴이 다시 붉어졌습니다, 문 이사님. 또 열이 오르시나 봐요. 그만 자리에 누우시는 게…….”

윤 실장과 첩보 활동에 가까운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내내 황당한 눈길로 굽어보고 있던 김 팀장이 걱정스레 물었다. 숨을 쉬기가 좀 더 버거워진 것을 보니 조금 떨어졌던 열이 다시 올라간 모양이었다.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자꾸만 휘청거리는 상반신도 다시금 하향 곡선을 그린 몸 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듯했다. 물론 안 그래도 쉴 생각이었다. 쉬지 않으면, 그래서 천덕꾸러기처럼 달라붙은 병마를 몰아내지 않으면 ‘내 것’을 제대로 찾을 수 없을 터였다. 자신을 닮아 지시받은 일이라면 철두철미하게 해치우곤 하는 윤 실장에게 맡겼으니, 이제 자신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예. 저도 쉴 테니까 김 팀장님도 눈 좀 붙이십시오. 곧 자정이로군요.”

화장실 문 옆으로 또 하나 나 있는 방문을 힐끗 가리키며 대꾸하자 평소의 김 팀장답게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은 표정으로 빙그레 웃는 것이 보였다.

“괜찮습니다. 문 이사님께서 주무시는 거 보고 자겠습니다.”

뭐라고 말해도 고집을 세울 듯한 사내였기에 위로서도 더 이상 신경을 쓰는 것을 포기했다. 허튼 곳으로 낭비할 신경 따윈 없었다. 생의 에너지는 거의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상태였다. 오로지 단 한곳으로 집중한다고 해도 이미 터무니없을 만용이었다. 한번 죽음을 끌어들인 넋은 수시로 음울한 아가리를 벌린 채 다시금 삶의 의지를 쓰러트리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호흡을 고르기 위해 상반신을 다시 침대에 묻은 다음 몇 분인가를 쉬었던 것 같다. 열에 들떠 뿌옇게 흐려진 초점을 애써 맞추며 다시금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기력이 좀 더 모일 때까지 기다려보려 했지만 나빠지면 나빠졌지 더 이상 좋아질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맨 마지막으로 미뤄두고 있던 상대의 입력 번호를 누르려는 순간, 시끄러운 호출음과 함께 폴더가 번쩍거리는 것이 보였다. 액정 화면에 나타난 넘버와 이름은 성준이었다. 역시 윤열이 형의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신경증을 일으킨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다시 걱정을 시키게 된 상황도 못마땅했고, 받아봐야 상처나 줄 게 뻔해서, 몇 번이나 호출음이 들렸지만 받지는 않았다. 고비를 넘긴 것은 이미 윤열이 형을 통해 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말린다고 해도 내일 아침이면 부랴부랴 제주도까지 날아올 자신의 또 다른 소중한 가족이었다.

……짐승도 이런 짐승은 없지…….

아프게 흐려지는 친구의 눈빛이 눈앞에 선해 왈칵 목이 메었다.

사랑에 미쳐서…… 환장을 해서…… 점점 인간의 도리를 상실해가는 스스로가 무서웠다. 몇 시간 전, 일순간이나마 죽음을 선택했을 때, 자신의 뇌리 속을 떠돌던 것은 오로지 단 하나의 얼굴뿐이었다. 그 얼굴은 거대한 해일처럼 자신의 넋을 압도한 채 다른 모든 소중한 것들을 휩쓸고 가버렸다. 그 소중한 것들 중엔 물론 성준도 포함돼 있었다. 가차 없이 내친 주제에, 폴더를 열고 시시덕거리며 태연하게 성준의 극진한 애정을 감싸 안을 염치가 없었다.

……아마도 십여 년 전의 그가 꼭 이랬을 것이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자신만을 취하기 위해 그는 그가 가진 다른 모든 소중한 것들을 버린 채 올인했던 거다. 가족도 버리고, 명예도 버리고, 온갖 인간의 모럴도 벗어부치고서 알몸으로 자신에게 부딪쳐왔던 거다. 그리고 딱 10년 만에 이젠 자신이 그와 똑같은 길을 밟고 있었다. 10년 전의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은 기꺼이 미치광이 짐승의 생을 살기로 서원했다. 생살을 뜯기는 아픔이 이만할까 싶었다. 속이 뻥 뚫린 허깨비가 이만큼 무상할까 싶었다.

……그랬나……?

몇 분쯤이나 거듭 되풀이되던 친구의 부름이 겨우 멈췄다. 위는 망설이지 않고 폴더를 밀어 올렸다. 열기로 후들거리는 손가락을 애써 가누며 번호를 누른다. 단축 번호는 2번. 얼마 전 그에게 떠넘긴 단말기 번호의 뒤를 곧바로 잇는 순서였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손톱만큼의 가치조차 없을 타인의 단축 번호치곤 상당히 아이러니한 순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랬었나, 장인환……?

[……XKT 음성 사서함입니다. 고객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몇 번의 신호음에도 익숙한 전자 음성의 여자가 동일한 메시지를 반복해 들려주었다.

……그렇군…… 이런 것이었군…… 너도 이렇게 짐승이 돼갔단 말이로군…… 그렇지……? 너도 이렇게 쓸쓸하고, 아득하고, 무상하게 혼자 어둠 속으로 걸어 내려간 거야…….

[……XKT 음성 사서함입니다. 고객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그래, 혼자…… 오로지 너 혼자 걸어 내려가게끔…… 사무치는 고통 속에 밀어 던지곤 기꺼이 불을 꺼버렸었지…… 기꺼이 널 떠난 거야, 내가…… 이 내가…….

[……XKT 음성 사서함입니다. 고객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뼈를 깎는 회한이 무섭도록 엄습했다. 곱사등이처럼 상반신이 안쪽으로 기울며 괴로운 기침의 발작이 터졌다. 재빨리 다가든 김 팀장의 팔이 부축하듯 상체를 안지 않았다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을 터였다. 불안정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위는 단말기를 생명줄처럼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 눈물이 흘렀다. 기침 때문인 것으로 여겼는지 다행히 김 팀장의 표정엔 그리 변화가 없었다. 아무리 막 나가는 짐승이라지만,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는 동료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은 역시 수치스럽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아직도 인간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을 허영심 많은 사내들에게나 해당할 가당찮은 프라이드였다.

영원처럼 계속되는 듯하던 기침이 겨우 잦아들자 다시 폴더를 열 수 있었다.

[……XKT 음성 사서함입니다. 고객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

[……XKT 음성 사서함입니다. 고객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

[……XKT 음성 사서함입니다. 고객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

[……XKT 음성 사서함입니다. 고객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전원이 꺼져 있는 모양인데 그만 쉬시고 내일 아침에 거시죠, 문 이사님.”

강박증에라도 걸린 듯 몇 초 간격으로 폴더를 내렸다 올렸다 하는 꼬락서니가 영 불안해 보였는지 마침내 김 팀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물론 못 들은 척 무시했다. 환장한 짐승은 인간 세상의 예의범절 따위에 기력을 쏟을 만큼 여유로운 상태가 아니었다.

12시 16분. 숨을 고르듯 다시 한 번 시각을 확인한 후 곧바로 단축 번호를 눌렀다. 꺼져 있는 전원은 물론 여전했다. 열기가 피크로 치솟는 것 같았다. 시야가 점점 흐릿해지며 단말기의 화려한 액정 화면조차 몇 겹으로 겹쳐 보였다. 호흡도 점점 더 가빠져서 김 팀장에게 침대 머리를 올려달라는 부탁을 해야만 했다. 자신의 얼굴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던 김 팀장의 얼굴은 시시각각 굳어지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다시 열이 40도 가까이 치솟은 것 같았다. 짜증이 솟구쳤다.

……빨리 열을 떨어트려야만 하는데…… 그래야 널 다시 찾아올 수 있는데…….

입술은 중얼중얼 헛소리를 뇌까리고, 초조감을 여실히 드러낸 손가락은 강박처럼 부지런히 넘버를 누른다. 몇 번쯤은 1번이나 3번 혹은 4번으로 번호를 잘못 누른 것도 같았다. 그래도 대개는 겨냥이 틀리지 않아서, 위는 전자음의 여자가 앵무새처럼 밉살스레 같은 말을 토해내는 것을 줄곧 꼼짝없이 들어줘야만 했다.

[……여보세요?]

휘청 하며 상반신이 다시금 앞으로 기울었다. 눈앞이 점점 더 흐릿해지고 있었다. 한순간 환청을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여보세요? 말씀하십시오. 누구십니까?]

어느 순간 연결된 단말기 너머에서 낯익은 사내의 목소리가 귀청을 때리고 있었다.

“…….”

[……전화 잘못……?!!!]

“…….”

[…….]

“…….”

[……당신…….]

“…….”

―장인환!!!!!!!!!!

점점 혼미해지는 의식 저 멀리에서부터 아득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장인환!!!!!!!!!!!!

물론 환청이 분명했다. 자신의 목소리와 꼭 닮은 저것이 환청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이 환청일 수 있단 말인가.

[……용건을 말해.]

“…….”

[……용건을 말씀하십시오, 문 이사님.]

전신을 집어삼킨 고열은 맹렬하게 타오르며 넋을 담금질하고 있었다. 거듭 되풀이되는 큐레이터의 싸늘한 일갈이 아니었더라면 금방이라도 혼절을 했을 터였다.

“…….”

―장인환!!!!!!!!!!!!!!!!!

수화기 너머 잔뜩 귀를 곤두세운 채 자신의 필사적인 부름을 듣고 있을 내 것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어쩐지 내 것도 저 기묘한 환청을 듣고 있을 것만 같은 확신이 들었다. 물론, 그 가당찮은 확신과 더불어 자신은 정말로 미쳐버린 모양이라고 씁쓸한 체념 또한 확실하게 뇌리를 스쳐갔다.

“……내 것은 기운을 좀 차렸나……?”

다행이었다. 잔뜩 잠겨 있긴 하지만 목소리는 현실과 환각을 넘나들고 있는 현재의 의식 상태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지는 않는 것 같았다.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댄 채 목소리를 좀 더 평온하게 가다듬기 위해 기를 썼다.

“……이틀 주지…….”

[…….]

“……이틀 안에 제정신으로 돌려놔. 찾으러 갈 테니까.”

“닥쳐.”

[……네가 저지른 미친 짓이니까 제대로 수습해. 박살 나고 싶지 않으면.]

[닥쳐.]

“……이틀. ……이틀이야…… 돌려받으러 가겠다.”

[이미 늦었어. 넌 우릴 못 찾아.]

“……큭큭큭, 우리? 우리라고……?”

[어디 찾을 수 있으면 찾아내봐. 이쪽이야말로 기다려주지.]

“……이틀이 한계일걸? 내 것은 나 없이 이틀 이상은 버티지 못해……. 그러니 기다려보라구, 큐레이터 씨. 조만간 환장하게 될 테니까…….”

[닥쳐! 닥쳐, 닥쳐, 닥쳐!!!!!]

“……돌려받으러 가겠다. 그러니 다시 숨 쉬게 만들어놔.”

[미친 새끼!!!]

쾅!!! 와장창!!! 창!! 뚜우…….

“……문 이사님……?!”

단축 번호를 다시 누르려는데 어쩐지 손가락은 자꾸만 무딘 게걸음질을 거듭하고 있었다. 두 겹, 세 겹, 아니, 대여섯 겹쯤으로 분열한 초점이 파도처럼 시야를 흔들고 있었다.

“문 이사님!!!”

“……괜찮아…… 어차피 또 전원을 꺼놨을 테니까…….”

“……문 이사님,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휴대전화 이리 주십시오! ……이리 주세요!!!”

“……안을까……?”

“무, 문 이사님! 침대에 누우세요! 어서요!”

“……안겠지? 그래…… 참기 힘들겠지, 물론…… 놈도 사내니까…… 시커먼 욕망을 간직한 수컷이니까…… 그래, 맞아. 건드리긴 할 거야. 그렇겠지……?”

“……문 이사님, 괜찮으세요?!!! 의사 부를까요?!!!”

“……주……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릴 거야…… 그…… 그래, 김강원, 박살을 내주지, 언젠가……. 이 빚은 잊지 않고 네게 그대로 갚아주마…….”

“문 이사님……!!!”

뼈를 깎아대던 회한은 어느새 내장을 저미는 질투의 고통으로 변태하고 있었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폐의 어딘가가 틀어막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독을 마신 것처럼 시야가 새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짐승이 떠오르고 있었다.

“……가…… 갈가리 찢어발겨서…… 건드리기만 해봐…… 뼈까지 갈아 마셔줄 테니…….”

시뻘건 피의 장막이 짐승을 향해 통째로 덮쳐드는 것이 보였다. 색색거리는 짐승의 숨소리가 끔직스러웠다. 빈사지경의 숨길이었다. 그 짐승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이 위는 가장 견딜 수 없게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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