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 2003년 7월. 장인환(張仁歡) (64/129)

26. 2003년 7월. 장인환(張仁歡)

남자의 승용차가 멈춘 곳은 개포동의 약간 후미진 곳에 위치한 어느 러브호텔이었다. 

차가 후미진 출입구를 지나 지하 주차장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겨우 잠에서 깬 탓에 인환은 호텔이 자리한 정확한 위치며 외관을 제대로 살필 수가 없었다. 주차장 엘리베이터는 곧장 1층 로비로 올라갔고, 러브호텔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넓고 화려한 로비의 모양새를 통해 꽤나 규모가 큰 호텔이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분명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을 텐데도 실내 공기는 묵직한 답답함보다는 청량한 시원함만이 느껴졌다. 아마도 성능 좋은 공기 청정기가 함께 가동되고 있을 터였다. 차로 이동해 오는 내내, 피부 구석구석 진득하니 달라붙어 있던 습기가 기분 좋게 말라가고 있었다. 이 정도로 성능이 괜찮은 에어컨이라면 에어컨도 그리 나쁠 것은 없다고 흡족해했다.

남자는 객실 중 가장 고급이라는 11층 스위트룸을 택해 일주일에 가까운 장기 예약을 했고, 인환은 아직도 몽롱하게 남아 있는 수면기를 털기 위해 쉴 새 없이 눈꺼풀을 껌뻑이며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러브호텔 로비를 밝히는 조명치곤 밝아도 너무 밝았다. 마치 백화점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호사스러운 샹들리에가 천장 정가운데에 떡하니 장식돼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군데군데 설치된 스탠딩 조명들도 앞 다투어 실내의 화려함에 빛을 더해주고 있었다.

남자 둘이 러브호텔에서 장기 투숙을 한다는 게 이상야릇할 법한데도 프런트에 일렬로 죽 진을 치고 있는 호텔리어들의 표정엔 아무런 동요조차 보이지 않았다. 매니저로 보이는 40대 초반의 사내는 남자를 알고 있는 듯했다. 오랜만이라는 구체적인 인사가 말로 토해지진 않았지만(아마도 다른 파트너를 대동하고 나타난 남자에게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할 만큼 무신경한 호텔리어는 없을 터이다), 반가운 고객을 만났을 때나 지음직한 환한 미소가 사내의 얼굴 가득 떠올라 있었다.

예약을 마친 후 카드 키를 받아 든 남자가 다소 얼떨떨한 표정의 인환에게로 다가왔고, 그 뒤를 벨보이가 따라왔다. 남자는 차 트렁크에서 갖고 올라온 열댓 개의 쇼핑백들을(포천 별장에서 수거해 온 증거 인멸의 결과물들과, LG아트센터 공연 관람 직전에 해치운 초스피드 쇼핑의 결과물들이었다) 벨보이에게 맡긴 후 인환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인도했다.

엘리베이터의 모양새도 지나쳐온 로비만큼이나 고급스러웠다. 외관이야 잘 알 수 없지만, 실내는 아무리 봐도 별이 적어도 네 개는 될 것 같은 호텔이었다. 러브호텔 주제에 별 네 개라면 그 바닥 최고라는 의미. 포천에 남겨두고 온 별장엔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남자는 그래도 나름대로 꽤나 근사한 차선의 도피처를 찾아낸 셈이었다. 옛 주인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별 다섯 개의 유명 호텔은 현명치 못한 선택이 되었을 터, 시설의 고급함이나 편리성은 꽤나 높되, 익명성은 그 이상으로 보장이 되는 장소로 이보다 더 근사한 선택도 달리 없을 것이다.

“……포천 별장보단 못하겠지만 그럭저럭 지내실 만하긴 할 겁니다, 선생님.”

엘리베이터 안에서 단둘만이 되자 냉큼 어깨를 감싸 안은 남자가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어딘가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남자의 어조며 표정에서, ‘고작 러브호텔 따위’의 아우라가 풀풀 풍겨 나왔다. 이만하면 감지덕지라고, 이렇게 괜찮은 러브호텔은 처음이라고 남자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역시 말은 좀처럼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저 남자의 품 안에 머리를 살짝 기대는 것으로 위로의 마음이 전해지길 빌었다. 역시 이심전심 잘도 인환의 마음에 공명하는 남자라, 정수리 위로 대답처럼 떨어지는 부드러운 키스엔 잔잔한 웃음기가 매달려 있었다.

“……언젠가 더 이상 숨을 필요가 없게 되면 진짜로 괜찮은 곳으로만 선생님을 모실 겁니다. 그때까지만 참아주세요.”

순간 악력이 더해진 남자의 팔에서 남자의 단단한 맹세가 읽혔다.

……최고만 드릴 겁니다. 선생님껜 어떻게든 최고만 해드릴 거예요. 사내놈의 치졸한 프라이드라 비웃으셔도 좋습니다. 그래도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로만 골라 드릴 거예요. 맹세합니다, 선생님…….

역시 인환의 가슴을 바윗돌처럼 짓누를 뿐인, 곤란하고 또 곤란할 뿐인 맹세였다.

예약된 11층 스위트룸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위치에 현관문이 나 있었다. 짐작을 하긴 했지만 자신들이 타고 온 엘리베이터는 스위트룸 전용 엘리베이터였다. 반대편에 스위트룸이 하나 더 있긴 하지만 그 역시 따로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것을 인환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별 다섯 개짜리 유명 호텔 체인이 부럽지 않을 호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침실 두 개와 응접실, 그리고 서재 하나와 욕실로 이루어진 스위트룸은 어림잡아 40평이 넘어 보였다. 지중해풍의 앤틱한 분위기로 장식된 실내는 아름다웠고, 또한 로맨틱했다. 만약에 진짜 연인들이 묵게 된다면 웬만해선 룸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따스하고 달콤한 분위기가 가득 흘러넘치는 공간이었다. 호텔이었다. 그것도 어딘가 불온한 기운을 풍기는 ‘러브호텔’. 대단히 섬세하고 날카로운 심미안을 갖춘 실내 장식가의 손을 거치지 않고선, 러브호텔 신분에 이만큼이나 따스하고 가정적인 분위기는 절대로 끌어낼 수 없을 터였다.

남자의 품 안에 상반신을 거의 안기다시피 기댄 채 실내를 찬찬히 둘러보는 사이, 가슴이 또다시 짓눌리는 것처럼 답답해졌다. 이미 최고가 아닌가. 여기서 더 어떻게 최고를 선물해준단 말인가. 그야말로 호사다. 꼭두각시 창녀가 받아서는 절대로 안 될 분에 넘치는 호사.

“……피곤하실 테니 먼저 샤워하세요, 선생님.”

산더미 같은 쇼핑백을 안고 찾아 든 벨보이를 맞으며 남자가 말했다. 공연장에서부터 틈틈이 졸았던 때문인지, 남자의 염려만큼 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피로를 호소해야 할 이는 남자 같건만, 인환을 따스하게 굽어보고 있는 남자의 얼굴 어디서도 피로의 기색은 찾을 수 없었다. ……행복…… 이었다. 그랬다. 남자의 얼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그저 행복한 충만감뿐이었다.

벨보이에게 팁을 건네는 남자를 한동안 멍하니 건너다보다가 인환은 욕실로 들어섰다.

답답하고 또 답답했다. 아프고 또 아팠다. 가슴이. 심장이. 남자의 풀이 죽은 얼굴도, 슬퍼하는 얼굴도 자신을 괴롭히긴 한가지지만, 남자의 행복한 표정 또한 자신을 괴롭힌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였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스스로에게 있는 걸까? 아니, 그런 /자격/이 과연 자신에게 주어져 있기나 하는 걸까?

……가야 하는데…… 어딘가 머나먼 곳으로 가야만 하는데…… 남자는 남아서 남자를 행복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행복하다고 웃으며 행복한 부탁을 한다.

하지만 자신은 가야만 했다. 그곳이 어딘지, 왜 가야 하는지 장소도, 이유도 아득히 잊히긴 했지만,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이라는 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자신은 반드시 되돌아가야 하지만 불행히도 남자는 함께 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것도 기억이 났다. 그래. 그러니 남자를 슬프게 하지 않도록 준비를 해야만 한다. 혼자 버려져도 울지 않도록. 불행해지지 않도록. 절망하지 않도록. 언젠가…… 이제 기억조차 흐릿해져버린 청춘의 어느 한때…… 인환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래. 그렇게 홀로 죽어 버려지지 않도록…… 남자의 가슴속에 새겨진 자신은 다 박박 지우고 떠나야만 한다. 먼 먼…… 어딘가 머나먼 곳에 버려두고 온 자신의 슬픈 집으로……. 자신만의 ‘방’으로……. 아아……! 아아, 하느님! 그림을 그리고 싶어!!!

“……선생님?”

노크 소리와 함께 욕실 문이 빼곡하니 열린다. 30도쯤 열린 문틈으로 남자의 근심에 찬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

“……역시 아직 샤워하지 않으셨네요. 아무리 기다려도 물소리가 나지 않아서 걱정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남자의 기다렸다는 말에 무심코 손목시계를 보니 자정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로비에서 확인한 시각이 11시 20분이었던 걸 보면 욕실 변기 뚜껑 위에 거의 30분 가까이 넋을 빼고 앉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키지 않으시면 그냥 주무셔도 돼요. 아니면 저와 함께 하실까요?”

남자가 근심을 숨긴 장난꾸러기 미소를 입가에 매달곤 재차 물어왔다.

“……지독한 고문이 될 테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참아보겠습니다. 무섭다고 언제까지나 피하긴 싫으니까요. 연인과 함께 하는 샤워만큼 제게 기쁨을 주는 일도 드물지요.”

“…….”

“……괜찮죠? 씻겨드릴게요, 선생님.”

미처 거절할 틈도 없이 남자가 욕실 안으로 들어섰다. 재킷과 넥타이는 미리 벗어둔 모양인지 어느새 셔츠와 팬츠 차림이었고, 그마저도 욕실에 들어서자마자 훌훌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과연 타인의 시선에 좀처럼 거리낌을 느낄 필요조차 없을, 조각처럼 빚어놓은 듯한 아름다운 나신이 순식간에 인환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단 하루도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을 법한, 유연하면서도 차돌처럼 단단한 근육들이 보였다. 환한 낯빛보단 좀 더 구릿빛을 띠는, 건강하고 매끄러운 피부도 보였다. 평균치를 훨씬 웃돌 커다란 몸집이지만, 190은 족히 넘을 큰 키 덕분에 오히려 조금 말라 보이는 강건한 뼈대며, 근육 위로 도드라진 채 남자가 움직일 때마다 따라서 미세하게 불끈거리는 힘줄들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가득 차 보였다. 피부 위를 덮고 있는 부드러운 다갈색의 체모는 남자의 섹시한 아름다움을 빛낼 정도의, 많지도 적지도 않을 딱 적당한 분포만큼 전신에 퍼져 있었다. 배꼽 아래로부터 시작된 새까만 치모 또한 성기 주변에서 무성한 숲을 이룬 채, 15센티는 족히 넘을 듯한 남자의 길고 굵은 페니스와 묵직한 음낭들을 장식하는 훌륭한 장신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역시 조물주는 참 편파적이라는 불평이 슬쩍 뇌리를 스쳐갔다. 옛 주인도 그렇고, 현 주인도 그렇고, 외모에 관한 한 도무지 결점이라곤 찾을 수가 없으니 불공평해도 이만저만 불공평한 게 아니지 않느냐. 아니, 하긴 외모뿐만이 아니지. 두뇌도, 성격도, 운도, 인환 같은 떨거지 낙오자들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차원이 아니더냐. 마치 빼어난 보석을 훔쳐보는 도둑놈의 심정으로 인환은 남자의 아름다운 나신을 하염없이 감상했다. 예쁘다, 예쁘다, 저절로 황홀한 감탄만 연신 흘러나왔다.

옛 주인 이외에, 어떤 형태로든 육체적인 접촉을 나눈 남자의 알몸을 보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란 생각이 얼핏 들었다. 아마도 8∼9년은 족히 되지 않았을까 멍하니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가만있자…… 감옥에 수감됐던 게 93년이었지, 아마……? 수감된 직후부터 거의 1년 반 동안 불특정 다수의 사내들로부터 무수히 거듭됐던 성폭행의 기억들이 흐릿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눈앞의 남자는, 그러나 기억 속의 그 어떤 사내들과도 공통점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들은 남자의 백만 분의 1만큼도 아름답지 않았으며, 남자의 천만 분의 1만큼도 상냥하지 않았다. 다정하지 않았다. 억만 분의 1만큼도 지성적이지 않았으며, 지성은커녕 무지와 폭력과 증오와 죄악과 어둠만이 가득했었다. 인환에게 바라고 있는 것도 180도 달랐다. 감옥 속의 사내들이 그저 억눌린 성욕을 발산하거나 갇혀버린 악당들 특유의 악의와 증오를 해소하기 위한 도구로써 인환의 몸뚱이만을 요구했다면, 남자가 구하고 있는 것은 인환의 마음이었다. ‘데리고 놀기 쉬운 호모 정액받이’가 사내들이 자신에게 붙인 이름이었던 반면, 남자는 인환을 ‘연인’이라 부르고 싶어했다.

아아, 물론. 단 한 가지 공통점이 있긴 했다.

그들도, 남자도, 모두 인환이 조금도 원치 않는 것을 요구했었다는, 그리고 현재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선 별로 다르지 않았다. 사내들의 끊임없는 폭행과 강간을 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자의 저 ‘특별한 감정’을 원한 적도 물론 단 한순간도 없었던 것 같다. 사내들로부터 자신이 원했던 것은 자신을 그저 고요히 내버려두는 ‘평화’였으며, 이 순간 자신이 남자에게 원하고 있는 것도 동일한 우주에 공명하는 예술가 동료로서의 평화로운 ‘우정’이었다.

“……그렇게 절 뚫어지게 바라보시면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고 했죠, 선생님?”

“……?”

“가슴이 두근거려서 견딜 수가 없거든요. 제 모습이 선생님처럼 완벽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눈엔 과연 어떻게 비칠까 겁이 나기도 하고요.”

남자의 하반신을 향해 있던 시선을 들어 남자의 얼굴을 다시 보니, 설핏 홍조가 올라와 있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남자의 미소에도 쑥스러운 기색이 가득해서 평상시의 남자와는 크게 위화감이 느껴졌다.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년 같은 풋풋함마저 느껴지는 건 인환의 착각만은 아닐 터였다. 남의 시선 따윈 개의치 않는 것처럼 훌훌 옷을 벗어젖히던 몇 분 전의 무심한 몸짓이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겁이 난 나머지 무턱대고 덤벼들지도 몰라요. 제가 보기 싫다는 판정을 내리시기 전에, No라는 대답이 나오기 전에 선생님을 강제로라도 정복하고 싶어지거든요. 어쩔 수 없죠. 이런 건 세상 모든 수컷들의 유전자에 각인된 어리석음이자 공포니까요. 간절히 원하는 암컷을 다른 수컷이 빼앗아 가기 전에 무조건 취하고 싶어하는 거죠.”

“…….”

“……제 몸도 얼굴만큼 마음에 드십니까?”

“…….”

“……다행이네요.”

“…….”

“……다행이야. 짐승으로서의 저는 그럭저럭 당신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아…….”

“…….”

“……우선은 그걸로 충분해…… 충분해요, 선생님…….”

“…….”

남자가 벗어둔 옷가지들을 욕실 문 밖으로 던지더니 인환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손길이 천천히 인환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 손을 떨기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마치 인환의 거부를 예상하기라도 하는 듯, 남자의 미묘한 두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손길이었다. 그렇게 겁내지 않아도 저항 따윈 하지 않는다고 남자를 안심시켜주고 싶었다. 물론 역시 가슴 언저리까지 차오른 언어는 채 입술은커녕 목구멍까지도 이르지 못했다. 역시 그저 몸짓으로나마 마음을 전달할밖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남자의 손길에 따라 손을 들어 셔츠 소매를 벗기기 편하게 해주고, 허리를 틀어 바지 지퍼를 열기 쉽게 해주고, 양쪽 발을 차례로 들어 팬티마저 벗기도록 해주었다. 허물처럼 벗겨진 인환의 옷가지도 남자의 그것처럼 욕실 밖으로 내팽개쳐졌다.

남자와 똑같은(그러나 모양새는 천국과 지옥처럼 다른) 나신으로 만든 인환의 몸을 남자는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잔뜩 열에 들뜬, 핥는 듯한 수컷의 시선이었다. 인환의 셔츠 단추에 손을 댔을 때부터 조금씩 발기를 시작한 남자의 페니스가 활처럼 위로 솟아오른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인환의 양팔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이외엔 미동조차 없는 남자 덕분에 저 홀로 흉흉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그것은 어딘가 그로테스크해 보이기까지 했다.

“……언제까지 바라본대도 질릴 것 같지 않아…….”

탁하게 가라앉은 바리톤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씹어뱉듯이 웅얼거린다.

“……이상도 하지…… 참 볼품없는 중년 남자의 몸인데…… 질리지가 않아…… 아무리 봐도 안 질려…… 아름다워…… 너무나 아름다워…… 너무나…….”

“…….”

아마도 혼잣말일 것이다. 영원처럼 계속될 것 같던 주시의 끝에 남자가 결판을 내듯 감상을 말했다. 인환으로선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민망한 감상이긴 했지만. 덕분에 홀린 듯한 눈빛이며, 홀린 듯한 생식기며, 한동안 갈팡질팡 일렁이던 수컷의 본능이 이윽고 조금씩 이성을 추스르는 것 같았다.

인환의 팔을 무의식적으로 쓰다듬고 있던 남자의 오른손이 마지못해 떨어져 나가더니 욕조의 수도꼭지를 틀었다. 욕실 안에 가늘게 퍼지고 있던 두 사람의 숨소리는 시끄러운 물소리로 단숨에 묻혀버렸다. 욕조 속의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제법 널찍한 욕실 안도 금세 뿌연 김으로 가득해졌다. 욕조 가득 물이 들어찰 때까지도 내내 인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인환의 팔이며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던 남자가 먼저 욕조 안으로 들어갔고, 이어 인환의 몸도 욕조 속으로 끌어당겼다.

가슴이 짓눌리는 듯한 답답함은 단지 수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서로 마주 보는 자세로 인환을 허벅지 위에 앉힌 남자가 인환의 얼굴이며 어깨 위에 물을 뿌렸다. 욕조 가에 있던 거품제를 풀어 거품을 내곤 쓰다듬듯이 인환을 씻기기 시작했다. 커다란 손길은 그 크기가 믿기 힘들 정도로 꼼꼼하고 느리고 정성스러웠다. 인환의 몸 구석구석 단 한곳도 허투루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피부 위에 눌어붙어 있던 오물을 씻어내는 손바닥과 손가락의 부드러운 마찰은 차라리 애무였으며, 드러난 피부 위에 끼얹어지는 물줄기는 차라리 키스였다. 2분을 오물을 씻어주는 데 투자했다면, 그 이후 3분은 가만히 인환의 알몸을 끌어안는 데 소비했다. 3분 동안 머리를 감겼다면 그 이후 5분은 인환의 온 얼굴이며 입술을 물고 빠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더 이상 씻어낼 오물이 없는 것처럼 보이자 남자는 마침내 인환의 몸을 끌어안은 채 긴 자위를 했다. 짐승 같은 교성을 토해내며 오르가슴에 올라 삼켜버릴 것 같은 긴 키스를 거듭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딱딱한 흉기로 비벼대며,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끝내 발기하지 않는 인환의 페니스를 안타까워했다. 남자는 이미 인환의 발기 부전에 대해서 훤하게 꿰고 있는 듯했다. 하긴 직접적인 삽입 섹스만 없었다 뿐이지, 만지고 비비고 물고 빠는 유사 섹스의 횟수는 헤아릴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아무리 마음이 없는 상대와의 행위라 해도, 그 정도로 거듭된 물리적인 자극에 요지부동인 몸이라면 이미 정상은 아니었다. 설령 그 방면에 경험이 없는 숫총각이라 해도 그가 남자라면 누구든 인환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을 터였다.

세 번째인가의 오르가슴을 토해내고 나서야 남자의 성욕이 겨우 누그러진 듯했다. 여전히 반쯤 발기한 채 덜렁거리는 성기를 인환의 것에 맞붙인 채 한참을 지분거리던 남자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물론 인환의 상반신을 꼭 끌어안은 채였다. 남자가 욕조의 물을 빼고 샤워기를 틀자 두 사람의 지친 알몸 위로 따스한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남자는 인환을 한 팔로 꼭 껴안은 채로 두 사람의 머리카락과 몸에 남아 있던 비누기를 말끔히 씻어내고는, 물기가 남아 있는 몸에 바스 가운을 입혀주었다. 사이즈가 같은 바스 가운이 남자의 몸에도 걸쳐졌지만 역시 모양새는 극과 극을 보여주었다. 인환에겐 종아리까지 늘어진 부대자루였던 반면, 남자에겐 무릎 근처에서 산뜻하게 떨어지는 근사한 오트쿠튀르 컬렉션이었다. 커다란 타월로 인환의 젖은 머리카락을 털어 대강의 물기마저 제거해준 뒤, 남자는 욕실에 들어선 지 거의 한 시간 만에 인환을 안아 들고 거실로 걸어 나왔다. 욕실보다 상대적으로 밝은 거실 불빛에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물론 불빛보다는 극심한 피로감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저 남자의 끈질긴 애무와 보살핌을 받았을 뿐이건만, 세 번이나 토정을 한 남자보다도 인환이 더 지친 것 같았다.

남자는 인환을 현관에서 좀 더 먼 쪽에 위치한 침실로 데려갔다. 서재에 면한 침실보다 좀 더 넓은 것을 보면 이쪽이 주 침실인 것 같았다. 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넓은 벽장과 킹사이즈의 침대, 부부 테이블 세트와 화장대, 프로젝트 시스템 등등, 주 침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가구와 비품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거실에 면한 욕실보단 한결 규모가 작지만 편리성에 있어선 그리 빠지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욕실까지 딸려 있어 그야말로 부족함이 없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에어컨 온도를 주무시기 좋은 온도로 맞춰놨으니까 답답하시더라도 창문은 열지 마세요, 선생님.”

인환을 침대 위에 내려놓은 남자가 위에서 덮치듯 인환의 상반신을 끌어안은 채 속삭였다.

거의 코가 맞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남자의 아름다운 얼굴이 있었다. 인환의 시선을 꽉 틀어잡고 있는 깊고 깊은 시선이 보였다. 굵은 쌍꺼풀이 진 아름다운 눈시울은 여전히 욕정의 일렁임으로 가득했지만, 남자는 역시 인환이 잘 납득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의지로 그를 지그시 억누르고 있었다.

“……얼굴이 예쁜 분홍빛이에요. 목덜미도, 어깨도, 가슴도……. 제가 너무 오랫동안 욕실에서 괴롭혀드리는 바람에…….”

“…….”

“……너무 귀여워요…….”

쪼옥. 민망한 접촉음이 침실 가득 울려 퍼진다. 남자가 인환의 아랫입술을 살짝 빨아들이듯 짧은 키스를 했기 때문이다.

“……미치도록 귀엽긴 하지만 앞으론 조심할게요. 선생님을 눈도 제대로 못 뜨실 정도로 피로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쪽, 쪽, 쪽, 쪼오옥, 춥…….

“……벌써 1시예요, 선생님. 주무세요. 오늘은 더 이상 괴롭혀드리지 않을게요.”

춥, 츄웁, 츱, 쪼옥.

“……전 저쪽 방에서 잘 테니까 불편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부르세요. 창문은 열지 마시구요. 열대야라 에어컨 없인 아무래도 잠을 설치시게 될 겁니다.”

쪽, 쪽, 쪼옥, 쪼오옥, 촉, 촙…….

“……주무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내 사랑…….”

쪽, 쪼옥, 츱, 쪼옥, 츄웁, 촙, 쪽, 쪼옥, 쪼오옥…….

닭살이 죽죽 돋는 길고 긴 작별 인사는 길고 긴 키스의 핑계거리인 것만 같았다. 잘 자라는 말이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는지 모르겠다. 내 사랑이니, 귀여운 사람이니, 사랑하는 선생님이니, 낯간지러운 호칭도 줄줄이 사탕과 한가지였다. 방금 씻은 것이 무색하게 온 얼굴이 남자의 타액으로 뒤덮였다. 흥건한 자기 타액을 닦아낸다며 다시금 남자의 혓바닥이 싹싹 핥고 지나갔다. 닦인 것보다 더한 진탕한 습기가 얼굴을 새로 뒤덮은 것은 물론이었다. 몇 번이나 떨어져 나가는 듯하다간 이내 발작적인 포옹이 되돌아왔다. 이미 새벽 1시라고, 일찍 자라고 고하더니 결국 남자가 떨어져 나간 시각은 1시 30분이 거의 다 된 무렵이었다.

그렇게 떨어지고 싶지 않으면 떨어지지 말라고 달래주고 싶었다. 키스 하고 싶으면 계속 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안고 싶으면 안아도 된다고 짜증 내고 싶었다. 참지 말라고, 어서 빨리 한 몸이 되자고 호통치고 싶었다. 범하고, 범하고, 또 범하고, 날밤이 새도록, 거기가 문드러지도록 범해도 좋으니까, 제발 어서 빨리 질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피곤했다. 너무나 피곤했다. 눈꺼풀조차 제대로 뜨기 힘들었고, 양팔을 들어 올려 남자를 마주 안아줄 수도 없었다. 다리를 벌리고서 남자의 성기를 유혹할 만한 기력은 물론 손톱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피곤하니까, 조금만…… 그래, 조금만 자고 일어나자고 까무룩 멀어지는 의식의 끝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조금만 자고 일어나 남자를 유혹해보자고…… 아무리 초인적인 의지력을 가진 불가사의한 신사라지만, 그래봤자 남자도 수컷이라고…… 무턱대고 다리를 벌려대는 음란한 싸구려 창녀를 밀어낼 수컷은 그닥 많지 않을 거라고…… 아니, 단 한 마리도 없을 거라고…… 시커먼 잠의 먹장구름에 떠밀려 가면서 인환은 그렇게 스스로를 격려했다.

창 밖으로부터 파리한 여명이 스며들고 있었다. 남자가 두꺼운 이중 커튼을 걷어둔 덕분에, 처음엔 여기가 어딜까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흐릿하게나마 방 안 풍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리저리 헤매는 시야 끝에 걸린 벽시계가 5시 12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잠들기 직전의 극심한 피로감에 비하면 대단히 이른 기상인 셈이었다. 기상인가? 이게 기상인 건가? 홀린 듯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이상야릇한 위화감을 느꼈다. 마치 여전히 꿈속에 있는 듯한 아득하고 혼돈스러운 부유감. 혹은 최면 상태 같기도 했다. 몸은 상쾌함이 느껴질 정도로 가벼웠고, 대신 의식은 흐릿하고 몽롱했다. 몽롱한 의식에 비하면 시야는 꽤나 또렷한 편이었다. 파리한 여명 속에서도 방 안의 구조라든가 가구의 모양새가 비교적 정확하게 인식되었다.

침대에서 내려서다 말고 설핏 몸서리를 쳤다. 반쯤 풀린 바스 가운 틈으로 한기가 느껴진 때문이었다. 남자 말대로 시트를 덮고 자기엔 적당한 온도였으나, 수면으로 내려간 체온에 그대로 와 닿는 공기는 체감 온도를 느끼기에도 충분했다. 침대 옆 협탁을 더듬어 에어컨 리모컨을 찾아내 온도를 높이려다가 그냥 전원을 끄기로 했다. 흐릿한 여명에 의지하기엔 리모컨의 이런저런 조절 버튼들이 지나치게 많았다. 물론 당장에 해치울 일이 에어컨 설정 온도를 높이는 일보다는 훨씬훨씬 중요한 것이기도 했지만.

별로 오래 잔 것 같진 않지만 더 이상 잠은 오지 않는다. 머릿속이 몽롱한 게 현실감은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지금 자신이 몽유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별로 피로한 줄도 모르겠다. 그러니 더 이상 미룰 필요가 없다.

살금살금 까치발로 침실을 나왔다. 열다섯 평은 족히 넘을 거실을 가로질러 서재 옆의 침실로 다가갔다. 발소리를 부러 죽이지 않아도 값비싼 카펫이 깔린 바닥에 소음이 울릴 까닭은 없다. 그럼에도 어쩐지 도둑고양이처럼 조심스러워지는 발걸음을 어쩔 수가 없다. 남자가 미리 깨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아니, 안 된다기보다는…… 그래. 조금 곤란하다. 곤란해질 것 같다. 워낙에 의지력이 끝내주는 남자니까 기습 공격을 하지 않으면 여간해선 넘어오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침실 문 앞에 멈춰 서서 가만히 문에 귀를 대고 남자의 기척을 살폈다. 꽤 오랫동안 가슴을 졸이고 있는데도 두꺼운 나무문 너머로부턴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남자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더 기다려봤자 모험을 해야 하는 상황은 변함이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인환은 마침내 살그머니 문고리를 돌렸다. 다행히 삐거덕거리는 경첩 소리 하나 새어나오지 않는다. 역시 값비싼 별 네 개짜리 러브호텔이 틀림없다고 새삼 감탄을 한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이젠 제법 익숙해진 남자의 체취가 물씬 풍겨 나온다. 파리한 새벽 여명은 남자의 침실에도 살며시 숨어들어 있었다. 어둠에 익숙한 눈이 주 침실보단 규모가 작지만 구조나 시설 면에 있어선 그닥 다르지 않은 방 안 풍경을 더듬듯 확인해갔다. 방 안의 온도는 방금 빠져나온 주 침실과 거의 비슷한 것 같았는데, 그새 조금 운동을 했다고 한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남자는 창가에 면한 싱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시트는 가슴 근처까지 덮여 있고, 오른편으로 몸을 튼 상태에서 두 다리를 약간 구부린 자세였다. 가느다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걸 보면 깊이 잠들어 있는 듯했다. 다행이었다. 자신처럼 이상야릇하게 일찍 눈이 뜨인 게 아닌가 내심 조마조마했었는데.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침대 가까이 다가갔다.

시트 밖으로 삐죽이 빠져나온 남자의 발이 보였다. 옛 주인의 그것처럼 커다랗고 억센 발이었다. 발등이며, 발뒤꿈치며, 발가락까지 조각으로 빚어놓은 것처럼 예쁜 것도 옛 주인을 생각나게 했다. 시선을 좀 더 위로 올리자 고스란히 드러난 늠름한 왼쪽 어깨가 보였다. 단단하고 굵은 목줄기가, 조각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름다운 프로필도 보였다. 밤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이 야성적으로 뒤엉킨 채 베개 위에 제법 길게 펼쳐져 있는 것도 보인다. 우아, 세상에! 무슨 속눈썹이 저렇게 길 수가 있나. 거짓말 안 보태고 1센티는 족히 넘지 싶다. 뺨에 만들어진 그늘이 장난 아니게 우수에 넘친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면 99.9999퍼센트는 늘 웃기만 하는데다, 또 그 웃음이란 것이 사람 눈을 홀리기 딱 좋을 살인미소라 잘 몰랐는데, 눈을 감고 있는 무표정한 얼굴에선 꽤나 서늘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만약 남자를 적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옛 주인의 그것에 버금갈 정도로 무시무시한 보복을 각오해야만 하리라는 확신도 든다. 자기도 모르게 설핏 몸서리를 쳤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도리질을 했다. 차라리 남자의 적으로 치부된다면 다행일 터였다. 차라리 남자의 적이라면, 남자의 분노를 불러일으킬지언정 남자를 상처 입히는 일은 결코 없을 테니까. 남자에게 절망을 주는 짓도, 시커먼 암흑의 심연으로 남자를 끌어들이는 짓도 결코 할 수 없을 테니까.

몇 분쯤 남자의 아름다운 얼굴을 감상하다가 이내 마음을 굳히고 바스 가운을 벗었다. 남자가 세심하게 매듭을 지어준 덕분에 몇 시간 동안이나 깊이 잠에 빠지는 와중에도 배를 내놓지 않을 수 있었다(가운이 풀어졌다면 지금쯤 속을 부글거리며 한바탕 변기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을 터였다).

침대 발치에 가운을 얌전히 밀어두고 역시 고양이 몸짓으로 살그머니 남자의 옆에 올라앉았다. 심장 고동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호흡도 꽤나 가빠져서 자꾸만 크게 심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초조감 때문이리라. 남자가 깨어나기 전에, 그래서 저 불가사의한 초인의 의지력이 발동하기 전에 빨리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일단 한번 방향을 타면 그 이후는 본능이 알아서 처리해줄 것이다. 일단 한번 더러운 쾌락을 맛보고 나면 더 이상 아끼고픈 마음은 들지 않을 것이다. 하고 또 하고, 그래서 서로의 아랫도리가 짓무를 정도가 되면, 남자는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네가 품었던 암컷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 짐승인지를. 지옥을 몰고 다니는 괴물인지를. 독인지, 똥인지, 죽임인지, 혹은 암흑인지를…….

숨을 멈춘 채 살그머니 시트를 걷어낸다. 행여 기척을 눈치채고 벌떡 일어날까 봐 시트를 쥔 두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배 속의 간담은 잔뜩 오그라들어 있다. 그나마 남자가 시트를 다리에 둘둘 말고 있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부드러운 실크의 감촉이 물 흐르듯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완벽하게 증거 인멸을 하듯, 남자의 나신이 고스란히 드러나고도 돌돌 뭉친 시트 더미를 아예 침대 아래로 던져버렸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몇 번이나 심호흡을 거듭하고, 행여나 긴장으로 손이 차가워졌을까 몇 번이나 겨드랑이 틈에 집어넣어 손을 녹인 끝에, 남자의 가랑이 사이로 간신히 손가락을 밀어 넣을 수가 있었다.

음경과 음낭을 조심조심 움켜쥔 채 가만히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몹시 피곤했는지 남자는 미동은커녕 숨결조차 달라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트럭에 떠밀리듯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용기가 좀 더 솟아올랐다. 천천히 마찰을 시작했다. 최대한 신중을 기하면서도 최대한 빨리 발기시킬 수 있도록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역시 가장 최근까지의 경험이 가장 그럴듯한 자료가 되었다. 어떻게 어루만지면 옛 주인이 쉬이 발기했는지, 어떻게 강약을 주면 옛 주인이 야수처럼 돌변했는지, 열심히 기억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노력이 헛되지 않아, 1분이 채 안 돼 남자의 입술 끝에서 나지막한 쾌락의 한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흠칫 놀라 몸이 굳어들었지만, 모로 누워 있던 남자는 마치 더 계속 하라는 듯, 자세를 반듯하게 바꾸며 다리를 약간 벌리기까지 했다.

빙고.

손놀림이 더 대담해졌다. 한 손으론 페니스 기둥을 움켜쥔 채 용두질을 치고, 나머지 한 손으론 두툼한 두 개의 방울을 굴리듯 어루만졌다. 빼곡하게 퍼져 있는 치모를 긁어 올리기도 하고, 아랫배와 허벅지 안쪽의 치명적인 성감대를 음란하게 쓸어 올리기도 했다. 당근, 남자의 페니스가 완전히 발기하는 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됐다. 이만하면 이제 일사천리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만족스러운 미소가 입가에 퍼졌다. 어느새 송골송골 맺힌 이마와 콧등의 식은땀을 훔쳐내곤 남자의 허벅지 근처에 적당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볼일을 보는 자세로 두 다리를 한껏 벌린 채 쪼그리고 앉았다. 좀 꼴사납긴 하지만 남자의 몸에 체중을 싣지 않으면서도 삽입이 가능한 유일한 자세였다. 그물처럼 틀어쥔 오른손 안에선 남자의 거대해진 흉기가 사납게 불끈거리며 허겁지겁 파고들어갈 구멍을 찾고 있었다. 그래, 그래. 알았어. 조금만 기다리시라구요, 주인님.

심호흡을 크게 하며 왼손가락으로 항문의 주름을 넓히기 시작했다. 아릿하게 달려드는 통증에 윤활제가 아쉽긴 했지만 까짓 참을 만할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옛 주인의 분신 또한 남자의 물건 못지않게 흉흉하게 생겨 먹지 않았나. 크기며 굵기며 저 사나운 기세까지, 어느 쪽이 더 대단하다고 우열을 가리기조차 힘이 들지 않았나 말이다. 옛 주인의 그 거대한 것으로 수도 없이 꿰뚫린 전적이 있는 구멍이었다. 쑥쑥 잘도 빨아들이던 바닥 모를 블랙홀이었었다. 낯설긴 하지만 남자의 페니스라고 다를 것은 없을 터였다.

“……흐윽……!”

제법 풀어진 것 같은 구멍에 남자의 귀두를 맞추고 천천히 엉덩이를 내렸다. 찌르는 듯 엄습한 아픔에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귀두의 볼록한 부분만 조금 파묻힌 것뿐인데도 온몸이 바짝 굳어들었다. 좀처럼 견디기 힘든 지독한 통증이었다. 이래서야 더 이상의 전진은 불가능했다. 통증도 문제지만 무리하게 밀어 넣었다간 남자가 깨어날 것만 같았다. 입구가 아직 덜 풀린 상태였다. 젠장.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도로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뿡 하고 공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귀두 부분이 단숨에 빠져나갔다. 나갈 때에도, 찌르는 듯한 고통은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줄어들지가 않았다. 순간이긴 했지만 괄약근이 거대한 귀두 표면에 찰싹 달라붙은 채 딸려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고통으로 찔끔 솟은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남자의 몸에서 내려왔다. 역시 살금살금 도둑고양이 걸음으로. 윤활제로 쓸 만한 게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독수리처럼 눈을 부릅뜬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창문 반대편 벽에 화장대로 쓰일 법한 콘솔이 보였고, 그 위엔 알록달록한 여러 가지 화장품 병들이 놓여 있었다. 살금살금 다가가 개중 가장 큼직한 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로션 같기도 하고 선크림 같기도 했다. 아무것이든 윤활제 역할을 하기엔 충분해 보였다. 병뚜껑을 열자 상큼한 화장품 향수 냄새가 풍겨 나왔다. 손바닥과 손가락에 듬뿍 펴 바른 후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새 자극을 받았다고 괄약근의 예민한 점막은 조금 부어 있는 듯했다. 주변이 흠뻑 젖어들도록 충분히 펴 바른 후, 아릿하게 퍼지는 통증을 무시하고 손가락 두 개를 조금씩 안으로 전진시켰다. 되도록 깊이 집어넣어 로션이 골고루 퍼지도록 했다. 몇 번이나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며 입구를 넓히고 풀어주는 것은 물론이었다. 로션 반통쯤을 거의 들이붓다시피 하고 나서야 통증이 차츰 무뎌졌다.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로션 병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놓고 침대 가로 되돌아왔다.

남자는 자신이 내려올 때의 자세 그대로 똑바로 누운 자세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완전히 발기해 있던 페니스는 어느새 반쯤은 기세를 줄인 채 남자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창 밖으로 비쳐드는 여명이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곧 해가 뜬다. 날이 밝으면 그만큼 남자가 깨어날 확률도 높아진다.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처음 남자 위에 타고 앉을 때보다도 훨씬 더 대담하고 재빠르게 남자의 허리께에 쪼그리고 앉았다. 당장이라도 품어줄 구멍을 애타게 그리고 있는 듯한 남자의 페니스 역시 호기 있게 움켜쥐었다. 몇 번 주무르자 역시 단숨에 좀 전의 위용을 되찾고 있는 흉기다. 크기며 딱딱함이며, 무시무시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입구에 귀두를 맞추느라 몇 초를 허비한 후 그대로 엉덩이를 내렸다.

“……흐윽!!!”

찌르는 듯한 통증과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하반신 전체를 관통했다. 처음보단 덜 빡빡한 듯했지만, 느껴지는 고통은 대동소이했다. 그래도 더 이상 망설일 순 없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손을 내려 접합 부위를 더듬어보았다. 3분의 1쯤 들어간 것 같았다. 됐다. 가장 두꺼운 귀두 부분은 다 들어간 셈이니 나머지는 용기와 고집이 좌우하리라. 커다랗게 심호흡을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남자의 허리 근처를 두 손으로 꼭 움켜쥐는 것과 동시에 허리를 완전히 아래로 내렸다.

“흐아악!!!”

“……으…… 흐읏……?!”

내벽이 쭈욱 쓸리며 눈앞에서 번쩍 불꽃이 튀었다. 눈물이 와락 솟을 지경으로 엄청난 통증이 하반신을 직격했다. 이를 악물었건만 저절로 터지는 신음 소리를 도무지 억제할 수가 없었다. 뿌리까지 완벽하게 다 들어갔는지 회음 근처로 남자의 딱딱한 음낭과 까칠한 치모의 감촉이 무성하게 느껴졌다. 그럭저럭 풀어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너무 무리였던가 보았다. 고통이 너무나 큰 나머지 펌핑 운동은커녕 옴짝달싹할 수조차 없었다. 남자의 허리를 움켜쥔 손에 저절로 와락와락 힘이 들어갔다. 식은땀이 흥건하게 솟아올라, 이마와 콧등 근처를 적시며 방울방울 굴러 떨어졌다. 호흡은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한계치까지 가쁘게 오르내렸다. 입구가 찢어졌는지 끈적하고 뜨거운 액체가 회음 부위를 적시며 허벅지 안쪽으로 길게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온몸이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저절로 힘이 풀린 다리는 지지력을 잃은 채 남자의 단단한 허벅지 위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남자가 깨어날 거라는 불안감 따위, 속수무책의 통증 앞에서 그만 흐릿하게 잊혀버렸다.

“……으…… 흡……! 무…… 무슨……?”

침대 위에 축 늘어져 있던 남자의 양손이 와락 인환의 허리를 움켜쥐는 것이 느껴졌다. 엄청난 악력이었다. 눈물로 뿌옇게 흐려진 시야 너머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우는 남자가 보였다.

“……이…… 인환……? 크윽!!!”

비명에 가까운 경악의 외침과 함께 남자의 허리가 크게 튕겨 올랐다.

“흐악!!!!!”

내벽이 크게 쓸리며 남자의 거대한 흉기가 반쯤 빠져나갔다간 어마어마한 힘으로 다시 안으로 박혀들었다. 하반신을 직격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머리 꼭대기까지 뻗쳐올랐다. 교성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단말마의 비명이 목구멍을 긁으며 뿜어 나왔다.

“……흡! 큭!! 이…… 인환!! 아…… 안 돼!!!!!!”

남자가 경악에 찬 절규와 함께 다시 한 번 허리를 크게 흔들었다. 그리고 또다시 엄습한 무서운 통증. 거대한 흉기로 변한 페니스가 내장 안쪽 가장 깊숙한 곳까지 노도처럼 찔러들었다. 마치 화답처럼, 잔뜩 일어선 인환의 손톱이 남자의 움켜쥔 허리춤을 깊숙이 찔러들었다.

“……큭!! 흐읏!! 인…… 흐앗!!!”

남자가 쾌락에 겨운 비명을 흘리며 다시 한 번 크게 허리를 돌리는 게 보였다. 잠시 뒤로 빠지는 듯하다간 순간 격렬한 인서트. 내벽이 짓이겨지는 무시무시한 통증과 함께 남자의 거대한 흉기가 더할 나위 없이 깊숙한 안쪽까지 또 한 번 힘껏 박혀들었다.

“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 봇물처럼 터졌다. 구명줄처럼 남자의 허리를 힘껏 움켜쥐었다. 인환의 양쪽 허리를 움켜쥔 남자의 두 손 역시 마치 허리를 부러뜨릴 기세로 엄청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완벽하게 상체를 일으켜 세운 남자가 떨어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게 보였다. 혼곤했던 잠에서 완벽하게 깨어났음에도, 남자가 서너 번 격렬한 피스톤질을 한 것은 역시 이미 교접에 들어간 수컷의 본능이었을 것이다.

“……인환!! 흡!!! 흑!!! 서…… 선…… 선생님!!!”

남자가 다시 한 번 격렬하게 허리를 찔러 올렸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며 허리가 뒤로 활처럼 휘어졌다. 비명조차 내지를 겨를이 없었다. 그저 입을 딱 벌린 채 눈을 질끈 감고 고통을 견디는 이외엔.

“……선생님!!!!!”

등 뒤로 죽죽 휘어지는 상반신을 남자의 팔이 그러안는 게 어렴풋이 느껴졌다. 뒤로 넘어갈 때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인환의 상반신은 남자의 품 안으로 재빨리 안겨들었다. 남자가 인환을 두 팔로 와락 끌어안는 것과 동시에 하반신을 가득 채우고 있던 남자의 흉기가 단숨에 빠져나갔다.

“……흐악!!!”

필사적으로 남자의 등을 할퀴며 연달아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삼켰다. 남자의 흉기가 빠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비릿하고 진득한 액체가 허벅지 안쪽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사슬처럼 인환의 상반신을 움켜쥔 남자가 신음인지 교성인지 알 수 없는 괴성을 연신 읊조리며 인환을 침대에 눕히고 있었다. 제멋대로 얽힌 다리가 이리저리 경련하듯 움찔거리더니 꽉 껴안은 상반신과 마찬가지로 하반신 역시 나무뿌리처럼 와락 죄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한계까지 발기한 남자의 흉기가 인환의 허벅지 안쪽이며 아랫배며 사타구니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며 막무가내로 찔러대고 있었다. 짐승의 격렬한 피스톤질이 분명하긴 하되, 인간의 의지로 인해 좌절해버린 수컷 최후의 사나운 몸부림이기도 했다. 남자는 그렇게 덮치듯 인환을 친친 휘감은 채 한동안 목이 잘린 뱀처럼 사납게 요동을 쳤다. 그야말로 통째로 먹히는 것 같았다. 먹히는 것 같은 섹스였다. 그저 안에다 삽입하지 않았다 뿐이지.

남자의 품 안에 박혀 있던 얼굴이 어느새 들어 올려진 채 씹어먹히고 있었다. 입술도 코도 뺨도 몇 번이나 빨리고 핥아지고 깨물렸다. 남자가 격렬하게 피스톤 운동을 할 때마다 하반신 전체가 폭풍을 맞은 것처럼 정신없이 휘말려들었다. 위도, 아래도 남자의 사지에 친친 휘감기지 않았다면 어딘가 멀리로 튕겨 날아가버린대도 하등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직접적인 충격이 덜어지긴 했어도 항문의 상처에선 남자의 몸부림에 따라 여전히 조금씩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광란에 가까운 몇 분이 흘렀을 무렵 남자가 비명처럼 교성을 내뿜으며 사납게 토정했다. 기왕에 남자의 땀과 애액으로 범벅이 돼 있던 아랫배를 새로이 뜨뜻하게 적신 것은 남자의 흥건한 정액이었다. 오르가슴에 오른 남자가 서로의 입술을 틀어막은 채 섹스와 다름없을 격렬한 키스를 했다. 남자의 단말마의 교성은 인환의 목구멍 안쪽으로 깊이깊이 밀려들었다. 목젖 깊숙이 파고든 남자의 혀끝에 토기까지 치밀 지경이었다. 반항 않고 온전히 남자의 음란한 약탈을 받아들였다.

젠장. 위에서 자신을 덮친 채 꿈틀꿈틀 전율하고 있는 남자의 매끄러운 등줄기를 쓰다듬으며 짜증을 세웠다. 젠장. 젠장. 젠장. 저절로 사나운 욕설이 뇌까려졌다. 고통과 고뇌와 열패감이 동시에 뇌수를 직격하는 통에 어느 쪽에다 화풀이를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실패로 돌아간 셈이었다.

지독한 남자였다. 지독해도 여간 지독한 인간이 아니었다. 인환이 원하는 것은 짐승인 남자건만 남자는 끝까지 인간이길 고집스레 버티고 있었다. 인간으로서 인환을 갖겠다고, 인간으로서 구애하겠다고, 독하기 짝이 없는 의지로 독하게 버티고 있었다. 또 언제 기회가 올지 요원했다. 불시의 기습을 했으니 남자의 조심성과 경계심은 더욱더 날카로워지리라.

……가야 하는데…… 어딘가 머나먼 곳으로 가야만 하는데…….

문득 치받치는 초조감과 함께 잊고 있던 무언가가 뇌리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가야 하는데…… 먼 먼…… 어딘가 머나먼 곳에 버려두고 온 내 슬픈 집으로……. 나만의 고독한 ‘방’으로……. 아아……! 아아, 하느님! 그림을 그리고 싶어!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언제 또 기회를 잡는단 말인가. 또 언제.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이틀인데. 벌써 이틀째인데. 이젠 돌아가봐야 하는데. 거대한 바윗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답답함과 암담함은, 인환을 친친 감고 있는 남자의 육중한 체중 때문도,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듯한 남자의 키스 때문도 아닐 것이다.

“……그러지 마요…….”

오르가슴의 여운이 아련히 남아 있는, 너무나 나지막하고 허스키한 속삭임이 귓전을 두드리고 있었다. 서로의 젖은 입술을 거의 맞붙인 채 말을 하고 있어, 입술로 듣고 있는 것인지 귀로 듣고 있는 것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다신 이런 짓 하지 마요…… 강간은 안 한다고 했죠…… 이미 충분하게 당신을 협박하고 있다고 했죠…….”

“…….”

“……아파…… 가슴이 너무 아파요…… 차라리 절 때리고 원망을 해요…… 그렇게 해요, 선생님…….”

“…….”

“……무슨 말이든 해요…… 어떤 말이든…… 욕이든…… 아무리 지독한 욕이든 괜찮으니까…… 제발 목소리를 들려줘요…… 돌아봐주세요…… 절 봐주세요…….”

“…….”

“……다르지 않아…… 모르시겠어요……? 당신과 나는 한 영혼이에요…… 몸만 두 개로 나뉘었을 뿐 넋은 이미 하나예요…… 과장이 아니야…… 난 알 수 있어요, 그러니…… 그러니 절 돌아봐주세요…… 제발 다가와줘요…… 내게 와줘요, 내 사랑…….”

“…….”

자신을 삼켜버릴 것처럼 움켜 안고 있는 강한 남자가 문득 몹시도 작게 느껴진다.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에 남자에 대한 연민과 슬픔이 더해진다. 무게는 조금도 줄지 않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간다. 언젠가 짜부라지겠지. 더 이상 이 압도적인 무게를 견디지 못하게 되는 날.

……가야 하는데…….

한참이나 작아진 남자의 등을 천천히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남자의 입술에 키스를 한다.

……돌아가야만 하는데…….

움찔움찔 몸을 떨며 남자가 감지덕지 창녀의 키스를 받는다. 그럴수록 남자의 크기는 쑥쑥 더 작아만 진다.

……먼 먼…… 어딘가 머나먼 곳에 버려두고 온 내 슬픈 집으로…… 어서 빨리 돌아가야만 하는데…….

키스가 깊어지니 남자의 성기가 그만 또 슬며시 발기를 한다. 거절하려는 남자의 허리를 깊이 끌어안으며 오른손을 내려 남자의 생식기를 통째로 움켜쥔다.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춤을 추듯 강약을 주자 남자가 쾌락의 신음을 내지르며 몸서리를 친다. 남자는 이제 1미터도 채 안 될 난쟁이 크기로 줄어들어 있다. 대신 남자의 성기만 쭉쭉 잘도 커가고 있다.

……이틀이 지났어…….

난쟁이 남자가 인환의 손가락 틈에서 열심히 허리를 흔들고 있다.

……벌써 이틀이 지나버렸어…….

기왕의 정액으로 축축해진 음경 끝으로 수액처럼 진한 남자의 애액이 분수처럼 줄줄 뿜어 나오고 있다. 끙끙대며 헐떡이며 남자가 지독하게 굶주린 키스를 한다. 허겁지겁 우적우적, 인환의 혀와 입술을 잘도 씹어먹고 있다.

……돌아가야만 하는데…… 이제 그만 돌아가야만 하는데…….

이젠 10센티 크기로 줄어든 남자가 인환의 사타구니 사이에 다리를 얽은 채 맹렬하게 용트림을 하고 있다. 인환의 손장난만으론 양에 안 차는지 커다랗고 날씬한 남자의 손을 더 포개고는 미친 듯이 허리를 돌리고 있다. 밀고, 빼고, 찌르고 있다. 물론 그야말로 통째로 먹히는 것 같았다. 먹히는 것 같은 섹스였다. 그저 안에다 삽입하지 않았다 뿐이지.

……어떡해…… 어떡하지……? 기다릴 텐데…… 기다리고 있을 건데…….

흐느끼며, 신음하며, 밀어를 고백하며, 남자가 토정하고 있었다. 남자는 이제 크기도 알 수 없을 만큼 작아져버렸다. 모래 같았다. 아니, 먼지 같았다. 그래서 지금 인환이 안고 있는 것이 남자의 등인지 허공인지 통 분간이 가질 안았다.

……가야 하는데…… 돌아가야만 하는데…… 그가 기다릴 건데…….

하얗게 흩날리는 티끌이 보였다. 마치 뼛가루 같기도 하고 멀리멀리 산등성이로 떨어지는 눈송이 같기도 했다. 죄인의 입술에 살며시 날아든 천사의 깃털 같기도 했다.

……옛 주인이…… 주인이…… 주인이 기다리는데…….

압도적으로 커진 바윗돌이 마침내 갈비뼈를 짜부라트리고 있었다. 빠직 하고 심장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먼 먼…… 어딘가 머나먼 곳에 버려두고 온 내 슬픈 집에서……. 나만의 고독한 ‘방’에서…… 누가……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데…….

아아, 가야지. 이젠 진짜 가야만 하겠다. 흐느적흐느적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핏줄기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가만히 속삭였다.

……이틀이나 지나버렸네요. 가야겠어요. 이젠 가봐야 해요, 천사님. 먼 먼 내 아득한 집으로 돌아가야만 해요……. 속삭여주었다.

……다시 올게요. 짜부라진 심장을 기워서 다시 올게요. 절대로 당신 혼자 울게 두진 않을게요. 누군가처럼 혼자 절망하게 내버려두진 않을게요. 시커먼 죽음 속에 홀로 가두진 않아요. 절대로. 그게 얼마나 아픈지 아니까요. 그러니까 기다려줘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천사님……. 밀어를 고백해주었다.

물론.

남자가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도무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티끌로 변한 남자가 저 멀리 산등성이 아래로 홀연 사라져버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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