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 2003년 7월. 문위(文偉) (69/129)

31. 2003년 7월. 문위(文偉)

시계 종소리가 들렸다. 

거실 벽에 걸린 괘종시계에서 나는 소리였다. 댕, 댕, 댕, 댕, 댕, 댕, 댕, 댕, 댕……. 9시다. 창 밖이 어두운 걸 보면 밤 9시인 모양이다. 언젠가부터 시계 종소리를 꼬박꼬박 세고 있는 자신을 자각하고 있다. 다음번엔 세지 말아야지 하고 작심했다가도, 막상 종소리가 울릴 때면 또 따라서 멍하니 세고 있는 거다. 강박증이다.

창문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멍하니 방 안 풍경을 살핀다.

에어컨과 가습기와 공기 청정기가 동시에 가동이 되고 있는 침실은 이제 침실의 기능을 하고 있다기보단 중환자실 역할을 하고 있다. 콘솔과 협탁이 있던 자리는 심장 박동 조정기며 자동 산소 발생기, 산소 흡입기, 석션기, 네뷸라이저 등등, 온갖 의료기기들로 가득 들어차 있다. 지금 자신이 누워 있는 침대조차 환자용 전동 침대다. 옆방에는 상주 간호사가 들어와 있고, 오전과 오후 한 차례씩 주치의가 다녀간다. 성준이 역시 매일 이곳에서 출퇴근을 한다. 그 며칠 사이에 성준이 얼굴이 반쪽이 됐다. 성준이까지 병이 날까 봐 몹시 걱정이 된다. 집 안에서 병원 냄새가 진동을 한다. 죽음이 소독약 냄새를 따라 어슬렁거리며 주변을 배회한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직후부터 병원에 입원하는 대신 집 안에다 병원을 끌어들인 셈이 되었다. 물론 의도한 일은 아니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 있더라’는 변명이 딱 적당하겠다.

몸이 나날이 쇠약해져가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이렇게 무너져선 안 된다고, 버릇처럼 익숙한 자책을 매시간 되뇌면서도 이상야릇할 정도로 실천이 안 된다. 아니, 실천을 할 수가 없다. 마치 주박에라도 묶인 것만 같다. 사지를 옴짝달싹할 수 없는 강력한 주박에.

일생을 살면서 이렇게 스스로의 육체를 통제할 수 없었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낯설다. 통제되지 않는 자신의 몸은 매우 낯선 이물질이다. 자신이 실제 자신이 아닌 것만 같은 위화감…… 내 몸이 실제 내 몸이 아닌 것만 같은 부유감…… 그런 거다.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상할 정도로 죽음이 선명하게 잘 보인다. 이렇게 사방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는 밤이면 더더욱 그런 기분이 강렬해진다. 마음을 정하는 순간, 저 앞에서 자신이 고개를 끄덕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저 시커먼 존재에게, 그저 가만히 눈짓을 하는 순간, 자신은 조용히 숨을 멈추게 되리라. 심장 박동이 정지하리라.

피로한 때문인 것 같다.

아주 오래전부터 누적된 피로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10년 전, 연인과 헤어진 때부터인 것 같기도 하고, 형이 살해당한 때부터인 것 같기도 하고, 아버지가 목을 맨 때부터인 것 같기도 하다. 신애와의 지긋지긋한 결혼 생활 때부터인 것 같기도 하고, 연인이 자신을 찌르고 감옥에 간 때부터인 것 같기도 하고,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남창질을 시작하던 때부터인 것 같기도 하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꽤나 오래전부터라는 건 알겠다.

너무나 피로하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라곤 이젠 그만 쉬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래. 쉬고 싶은 거다, 이제.

너무나 지쳤다. 기왕에도 전력 질주였다. 더 이상은 달릴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아무리 기를 쓰고 달려봤자 자신은 행복해질 수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행복할 수 있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만 어리석어 기회를 놓쳐버렸다. 뒤에 땅을 치고 울부짖으며 후회에 후회를 거듭하다가 다시 되찾겠다고 용을 써 보았는데, 역시 그도 실패한 것 같다. 하긴 기회가 항상 오는 거라면 그게 기회도 아닌 거겠지. 그래. 그 말처럼 진리 중에 진리인 것도 없겠다. ‘인생이 한 방이더라’…….

연인이 그립다.

아, 그래. 내 연인…….

연인이 있었다. 그 연인이 날 버린 것 같은데, 아직은 잘 믿기지가 않는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버릴 것 같지 않은 연인이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자신은 버려도 연인은 자신을 버리지 못한다고 만용을 부렸는데, 그만 진짜로 만용이 돼버렸단다. 가슴은 그게 아니라고, 내 연인이 그럴 리가 없다고 끝없이 외치고 있지만 머리는 매일 다른 말을 한다. 머리가 생각해보건대 버린 건 확실하단다. 이틀만 지나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돌아오는 걸 보면 자신은 버려진 게 확실하단다.

하동군이라고 했다. 남녘 끝 깡촌 하동군에서도 산속으로 한참을 더 들어간 오지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연인을 사랑한다는 잘난 큐레이터와 함께. 함께 숨어 살며 행복하다고 한다. 자신은 까맣게 잊고서 새 애인과 웃는단다. 웃고 산단다. 큐레이터와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을 처음 보고받았을 땐 진짜 환장하는 줄 알았지. 아무렴. 인생이 한 방이더라.

기회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너무나 날쌔고 재빨라서 일단 한번 놓치면 절대로 다신 손에 쥘 수 없다고들 한다. 그렇게 기회를 잃었다. 유일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남은 건 그저 무덤 같은 적막뿐. 하하. 무덤이라도 상관없다고, 죽어버린 연인과 함께라면 그도 괜찮을 거라고, 그것 역시 또 다른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억지를 부리다가 좆됐다. 좆되고 말았다.

연인이 그립다.

연인의 냄새가 너무나 그립다.

다시 한 번 저 그리운 냄새를 맡을 수만 있다면, 그땐 더 이상 아무 미련도 없이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저기 저 앞에 서서 자신이 고개를 끄덕이길 기다리고 있는 저 시커먼 존재에게. 안녕, 죽음? 이제 됐으니까 함께 가보도록 할까……? 하고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지쳤다. 지쳤어. 그래, 인정해. 다시 그 지옥 같은 10년을 살 순 없어, 인환아. 삶은 내게 늘 지옥인 편이었지만 네가 없는 지난 10년은 기왕의 지옥과는 차원이 다르더구나. 그래. 기왕의 지옥은 지옥 같은 게 아니었나 봐. 인환아. 내 사랑스러운 인환아. 듣고 있니? 네가 없는 지난 10년이 진짜 지옥이더란 말이지. 그래서 피로해. 모르면 어찌어찌 살아갈 수는 있을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 몰랐으니까 널 버렸겠지. 그렇게도 간단하게. 쉽게. 버리고도 괜찮을 줄 알았겠지.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안 될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알아버렸거든. 네가 없으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실은 거기가 바로 진짜 지옥이었다는 걸. 그래서 안 돼. 또 그 지옥을 살아낼 순 없어. 못 할 것 같아. 상상하기만 해도 끔찍해. 너무 끔찍해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어.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이면 다시 또 그 지옥이 시작될 것만 같아서…….

한 숨, 한 숨 힘겹게 호흡을 계속한다.

침대 발치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시커먼 죽음을 응시하며, 그래도 한 가닥 남아 있는 질긴 미련을 움켜쥔 채 가만히 심장 뛰는 소리를 듣는다. 두근두근. 심장이 말을 한다. 그래도 더 기다려봐. 조금만 더 견뎌봐. 연인이 널 떠날 리가 없어. 너는 연인을 버릴 수 있지만 연인은 널 못 버려. 기억해봐. 기억해내, 문위. 연인이 어떻게 네게 다가왔는지를. 어떻게…… 얼마나 예쁘고 귀엽고 또 사랑스럽게 다가왔는지를…… 그래서 어떻게 둘이 사랑을 하고…… 사랑을 하고…….

……댕, 댕, 댕, 댕……. 아아, 또 거실 괘종시계가 울린다. ……댕, 댕, 댕, 댕……. 저 종이 다 울리고 나면 연인이 돌아올 거야…… 돌아올지도 몰라……. 댕, 댕, 댕, 댕……. 11시로군. 너무 늦었어, 그렇다면. 오늘은 너무 늦어서 안 돌아오는 거로군……. 일단 자고 내일 다시 기다려보도록 하자…….

……피로하지? 피로하지 않은가, 문위……? 이제 그만 예스라고 해…… 고개를 끄덕여봐…… 그럼 아주 편해져…… 편안하게 돼…… 더 이상 고통받지 않게 돼…… 알잖아……? 기억하고 있지, 아직?……? 그 지옥에서의 10년을 말이야…… 그 10년을 다시 살 자신이 있어……? 응……? 자신이 있나, 문위……?

아아, 달콤하다. 달콤한 유혹이 온다. 이렇게 고요하고 까만 밤이면…… 모두가 다 잠이 들어버린 깊고 어두운 심연의 밤이면…… 저기 저 앞에서 죽음이 가만히 손짓을 한다…… 몹시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유혹의 손짓을…….

“……당신……! 이……! 이이이!! 나가!!! 당장 나가!!! 당장 나가버려!!!!! 감히…… 가…… 감히 무슨 염치로!!!!!”

“성준아!!”

“왜 왔어!!! 여기가 어디라고 또 들어와!!!!!! 당신 정말 양심이라는 게 있긴 한 거야?!!! 죽일 거야?!!! 우리 위야 아주 죽일 거냐구?!!! 그렇군!!! 그래!!! 아예 끝장을 내려고 온 거군!!!!! 저 자식 완전히 숨통 끊으러 온 거야!!! 그렇지?!!!!!! 그렇지?!!!!!”

“성준아!!! 요 문딩이 자슥, 니 가만 못 있나?!!!”

“놔!!! 이거 놔!!! 이거 놓지 못해, 이윤열?!!!!!”

“허어, 이를 워쩐다야…… 요 미친눔이 지랄 환장을 했어야……. 양 군! 양 군! 요 미친눔 좀 잡아보소……!”

“놔!!! 이거 놔요, 양 실장!!”

“……죄송합니다, 김 박사님…….”

“……허어! 허어! 허어, 참……! 시방 이눔이…… 허어…….”

“……양 실……!”

“……옳지…… 잘하셨소, 양 군. 고맙구만이라……. 욕봤소, 참…… 녀석도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서…….”

“…….”

“……장 선생님께서 이해해주세요. 지난 며칠 동안 성준이도 녀석 걱정하느라 잠 한숨 제대로 못 잤지요. 지금은 약간 환장해 있으니까 말짱한 정신 돌아오면 사과할 겁니다. 그러려니 하세요.”

“…….”

“……예. 그 방입니다. 들어가보세요. 기력이 몹시 떨어져 있지만 의식은 있습니다. 말씀 나눠보세요. 간호사 아가씨도 옆에 있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부르시구요.”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장 선생님…… 정말 이렇게 충격을 받으실 줄은 저도 그만…….”

“…….”

“……들어가보세요. 방 안에까지 부축해드리고 싶지만 역시 혼자 만나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

“……그럼…… 예, 발밑 조심하시고요…….”

“…….”

딸칵.

방문 소리와 함께 홀연 눈이 뜨였다.

……댕, 댕, 댕, 댕, 댕……. 거실 괘종시계가 또 울고 있다. 강박이다. 세고 싶지 않은데 저절로 입속을 맴도는 건 아라비아 숫자다.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자정이다. 너무 늦었다. 일단 자고 내일 다시 기다려보도록 하자…….

다시 눈꺼풀이 감겨든다. 걷잡을 수 없으리만큼 졸음이 쏟아졌다. 아니, 실은 졸음이 아니라 기력이 없는 것이다. 오래 의식을 차리고 있으려면 상당한 기력을 요한다. 기력을 모으려면 식사량을 늘려야 하고, 폐 기능을 마모시키고 있는 고열과 염증도 가라앉아야만 하는데, 양쪽 다 신통치 못하기 때문이다. 2∼3일 전부터 들인 미음은 두어 숟가락 이상을 뜨면 토기가 올라온다. 폐렴의 기세는 소강상태로, 약은 점점 더 독하게 쓰고 있는데 염증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고 한다.

……피곤해…… 내일 다시 기다려보긴 하겠지만…… 너무 피곤해…… 더 기다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환아……. 인환아…… 너무 피곤해…… 인환아…… 인환…… 아…….

“……어…… 어어…… 나…… 나, 나 여깄어, 위야…… 여기 왔어…….”

움찔.

“……죽지 마…… 주…… 주…… 주…… 죽지 마…… 누…… 눈 떠봐…… 위…… 위위…… 위야…….”

연인의 손가락이다.

지금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머리카락 속을 헤집고 있는 건.

“……누…… 누…… 누…… 눈…… 눈 좀 떠봐…… 나, 무서…… 무서…… 워…….”

자신의 코를 매만지다 사납게 꼬집어 뜯는 건…… 입술을 꼬집다가 꾹꾹 눌러대는 건…… 자꾸만 감겨드는 눈꺼풀을 억지로 까뒤집으려 기를 쓰고 있는 건…… 연인의 거칠고 투박한 손가락.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손.

“……무서…… 무서워…… 위…… 위위…… 눈 떠…… 봐봐…… 나, 무서…… 무…… 주…… 죽지 마…… 주…… 주…… 주…… 죽지 마…… 주…… 죽으면 나도 죽어…… 위야 죽으면 나…… 나…… 나…….”

연인의 입술이다.

숨이 가빠 벙하니 벌어진 자신의 메마른 입술 위에 허겁지겁 달려들고 있는 건.

“……주…… 훕…… 읍…… 춥…… 죽어…… 나도 죽어…… 죽을 거야…… 위야 죽으면…… 눈 떠…… 누…… 흡…… 웁 훕…… 춥…… 쪽…… 그…… 죽지 마…… 추웁…… 쪽, 촉…… 웁, 흡…… 위야…… 위야, 죽지 마…… 위…… 위위…… 위야 죽으면 나도 죽어…… 주거어…… 누…… 눈 떠봐…… 누…… 누…… 눈 떠봐, 바아아…….”

자신의 입술을 정신없이 물고 빨고 핥는 건…… 강아지처럼 헐떡이며 막무가내로 달려들고 있는 건…… 흐느끼다가, 헉헉거리다가, 깨물다가, 혀를 집어넣었다가, 혹은 도로 뺏다가…… 중얼중얼 염불처럼 죽지 말라고 애원하다가도…… 도로 강아지가 돼서 핥는 건지 빠는 건지 깨무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키스를 하고 있는 건…… 연인의 축축하고 따스하고 부드러운 입술. 자신의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수용하고 포용해주는 천사의 입술.

“……누…… 눈 좀 떠바아아…… 무서…… 나, 무서…… 위야아아…… 죽는 거야……? 주…… 위위…… 누…… 눈…… 윽…… 흑…… 응…… 응, 응…… 눈…… 눈 뜨네……? 흐윽…… 흐앙…… 눈 뜨네……? 위야아아…….”

연인의 눈시울이다.

개구리눈처럼 퉁퉁 부어오른 채 홍수처럼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건. 하느님, 도대체 그동안 얼마나 울고 있었던 거냐.

“……흐…… 흐아아…… 응…… 흑…… 윽…… 흐아앙…… 윽…… 흑…… 흐어어…… 주…… 죽지 마아아……? 윽, 흑…… 흐어엉…… 죽…… 아…… 안 죽어……? 안 주거……? 흐엉, 흐엉…… 어…… 흑, 윽…… 아…… 안 죽지이……?”

새빨개진 눈자위 안에 끝도 없이 방울방울 이슬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 부리부리하게 홉뜨곤 핥아 먹을 기세로 자신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와락 눈을 감고 왕방울만 한 눈물을 후두득 후드득 떨어트리는 건…… 조금 맑아진 시야가 되면 도로 휘둥그레져선 이리저리 핥아 먹을 것처럼 자신에게 미친 듯한 응시를 거듭하는 건…… 연인의 섬세하고 자그마하고 소박한 눈시울. 늘…… 언제나, 언제까지나 자신만 졸졸 따라다녔던 충직한 강아지의 눈시울.

“……안…… 아…… 안…… 죽어…… 안 주거어…… 위야아…… 윽, 흑, 흐앙…… 안 죽는 거지이……? 이제…… 나 왔어…… 왔어, 위야아…… 이틀 지났어…… 지나…… 흐아아…… 흑…… 흑…… 흐엉…… 어엉엉…… 몸이…… 위야 몸이 왜 이래…… 흐아아…… 얼굴…… 예쁜…… 예쁜 얼굴…… 어…… 얼굴이…… 해골…… 해골이야아…… 어떡…… 윽…… 흐아…… 허어엉…… 위…… 우…… 위이야아아아…… 아…… 흐아앙…….”

연인의 몸이다.

추수가 끝난 들판처럼 헐벗고 메말라…… 메말라서…… 무턱대고 자신의 품 안으로 들이밀고 오는 건. 하느님, 겨우 돌아온 거야.

“……안 죽어…… 누…… 눈…… 눈 떴어…… 흐어어어…… 허엉…… 흐…… 그…… 그러니까 이제…… 이…… 이제 안 죽어…… 위야…… 죽지 마아…… 응……? 흐윽…… 흑…… 윽…… 윽…… 그…… 그러…… 주…… 죽으면…… 우…… 우리 위야 죽으면…… 내…… 나의…… 나…… 나…… 나의…… 위야아…… 윽…… 흐윽…… 그럼 나 죽어…… 나도 죽어어…… 죽을 거야아…….”

내 사랑스러운 몸뚱이.

그래, 이렇게 자신의 품 안에 쏙 들어오는…… 겁에 질려 와들와들 떨고 있는…… 내 것이야…… 내 것…… 그래, 더 파고 들어와봐…… 더 꽉 안아줄 수 있게…… 떨지 말고…… 인환아, 이제 그만 떨지 말고…… 그래, 그렇게 내 목에 팔을 감아…… 다리…… 귀여운 다리도…… 그래, 그렇게 내 허리에 감아…… 있는 힘껏 꽉 감아…… 다신 풀어지지 않게…… 그래…… 내 연인의 몸뚱이. 언제나, 언제까지나 자신에게만 활짝 열려 있던 따스하고 부드럽고 충만한 내 인환이의 몸뚱이.

“……늦…… 었어…….”

아아, 그래. 연인의 냄새다.

“……왜…… 이렇…… 이렇게 늦었나…… 장인환…….”

다디단 내 인환이의 살 냄새.

“……우…… 우아…… 위야아…… 흑…… 흐아아…… 어…… 헝…… 어어…….”

“……기…… 기다리다…… 미치는 줄 알았다…….”

입술과 코와 섹스와 땀구멍들에서 배어나오는 냄새…… 깊숙이 박아 넣으면…… 다신 떨어지지 않도록…… 뜨겁고 축축한 안쪽으로 깊이깊이 박아 넣어 결합할 때…… 아릿하게 콧속으로…… 폐부로…… 저 안쪽 깊숙이까지 파고 들어오는 냄새…… 내 생명의 냄새…… 그립고 그리운 내 인환이의 살 냄새…….

“……우…… 울지 마…… 안 죽어…… 내가 왜 죽나…….”

“……흐어엉…… 흐윽…… 앙…… 아…… 흐아아…….”

“……다…… 닥쳐…… 울지…… 울지 마…… 말랬지…… 하아…… 입 좀…… 키…… 키스 좀 하게…… 입 좀 닥쳐봐…… 하아…… 후우…….”

“……흐…… 어어…… 어헝…… 흡…… 웁…… 흐응…….춥…… 쭙…… 춥…… 응…….”

“……쪽, 쪼옥, 춥…… 그…… 입 다물어…… 후우…… 학…… 춥, 쪼옥…….”

“……추웁…… 쪽, 쪽, 춥, 춥, 쪼오옥…… 흥…… 흐아…… 숨…… 폐…… 숨 못 쉬어…… 안…… 위야…… 수…… 숨 막히면 안 돼…… 훕……!”

“……쭙…… 춥…… 추웁, 쪽, 쪽, 쪼오옥…… 하아……! 후아…….”

“……하악……! 학…… 후읍……! 흐응…… 앙…… 아앙…….”

“……후으…… 으…… 춥…… 하아…… 하아…….”

“……훕……! 훕! 웁, 쪼옥, 쪼오옥, 춥, 츕, 쪽,쪽, 쪽, 추옥…… 하앗……! 후아아…… 아…… 아…….”

“……후우…… 숨…… 숨 쉬어…… 후우…… 하아아…… 이제…… 입 벌리고…… 옳지…….”

“……흑…… 흐으응…… 위위…… 위야아…… 훕……! 쪽……! 흐앙…… 흑…… 숨…… 폐가…….”

“……쪽, 쪽, 쪽, 추웁…… 울지…… 말랬…… 추웁…… 쪽…….”

“……흐…… 흥…… 추웁! 쪼옥! 흑…… 위위…… 위야아아…… 위야아…….”

“……울지 마…… 하아…… 헉…… 하아아…… 울지 말랬지…….”

“……흐어어…… 엉…… 어어…… 어…… 흑…… 아…… 안 죽지……? 안 죽어……?”

“…….”

“……수…… 숨 쉴 수 있어……? 흑…… 흐우으…… 흑흑…… 여…… 여기…… 여기 아파……? 많이 아파……?”

“……안 아파…….”

“……지…… 진짜……? 안 아파……? 아…… 안 죽지, 위야……?”

“……그래…… 그러니까 그만 울어…….”

“……으…… 흐윽…… 응…… 안 아프지…… 안 아파…… 위야 안 죽어…… 안 죽는대애…… 흐엉…… 어어어…… 윽…….”

“……쵸옥…… 춥…….”

“……흐응…… 웁…… 훕…… 쪽, 쪼오옥, 쪽…….”

“……쪽, 쪽, 쪽, 춥…… 후우…… 하아…… 훅…… 그만…… 울지 말아…… 인환아…….”

“……흐어…… 엉…… 어어…… 어어, 위위…… 위위…… 위야아아…….”

“……느…… 늦었어…… 바…… 반쯤 죽여버릴 테니까…… 가…… 각오해, 장인환…….”

“……어…… 어어, 흑…… 미안…… 미안…… 추웁…… 쪽…….”

“……쪽, 쪽, 촙…… 추웁…… 조…… 좋아……?”

“……하아…… 훕……! 웁, 춥……! 우으…… 훕……!”

“……추읍…… 춥…… 쪽쪽…… 후아아…… 조…… 좋지……?”

“……하아…… 하…… 앙…… 하아…….”

“……좋지……? 이…… 인환아…… 내가 좋지……?”

“……하아…… 아아앙…… 흑…… 쪽, 쪼오옥…… 춥…… 흐응…… 흑…… 하아…… 위야…….”

“……그…… 그렇지? 쪼옥…… 쪽…… 내가 좋지……? 응? 춥, 추웁, 쪽, 쪽, 춥…… 응……? 내가 좋은 거지……?”

“……위위…… 흐아…… 훕, 후읍, 읍, 훕…… 하아…… 위…….”

“……대…… 대답해, 인환아…… 나 좋아하지……? 후우…….”

“……위…… 위야아…… 아…… 아아…… 흑…….”

“……대답해…… 내가 좋은 거지……?”

“……흐아앙…… 훕……! 쪼옥…… 쪽…….”

“……추웁…… 쪽, 쪽, 쪼옥…… 대…… 대답 안 해……?! 주…… 죽을래……?”

“……위야…… 아…… 위위…… 흑…… 흐응…… 흐아아…… 흡…… 웁, 웁, 윽…….”

“……춥, 추웁, 쪽, 쪼옥, 쪽, 쪽, 쪼오옥…… 귀여워…… 하느님…… 너무 좋아…….”

“……응, 응, 흐응…… 하아…… 하…… 위위…….”

“……대답…… 빨리 안 해……?!”

“……모…… 몰라…… 흐앙…… 흑…… 위야아…….”

“……귀여워…… 하아…… 귀여…… 워…… 하느님…… 너무 귀여워…….”

“……하아…… 학…… 위위…… 위…… 위야…….”

“……후우…… 내…… 내가 좋아……? 좋…… 지……?”

“……몰라아…… 몰라아…… 그…… 그런 거…… 무서…… 무서워…… 흑…… 흑…… 윽…….”

“……그만…… 우, 울…… 지 말랬지…… 등신같이…….”

“……흐어어…… 엉…… 위야…… 엉…… 흑…… 윽…….”

“……젠장…….”

“……흑…… 윽…… 위위…….”

“……눈…… 눈 감아…… 눈물 닦아줄게…….”

“……흐어…… 흐…… 응…… 위…….”

“……쪼옥…… 촙…… 춥, 춥, 쪽, 쪽, 쪼오옥…….”

“……으응…… 응…… 하아…… 아…….”

“……후우…… 다리…… 풀어봐…… 눕자…… 그만 풀어봐…… 힘드니까 일단 누워보게…….”

“……히…… 힘들어……?!”

“……그래…… 조금…… 그래, 옳지…… 안 돼, 목에 감은 팔은 풀지 말아…… 그래, 그렇게…… 올라와, 내 몸 위로…… 그래, 옳지…….”

“……숨…… 숨 쉬어야 하는데…… 잘…… 여기 안 아파……?”

“……괜찮아.”

“……폐가 약해…… 위야는 폐가 아주 약하대…… 약해졌다고 그 간호사가…….”

“……바지 벗어봐…….”

“……?”

“……후…… 네 바지가 쓸려서 싫어…… 젠장…… 네 안에 들어가고 싶은데…… 후우…… 기운이 달려서 못 하겠어…….”

“……위야…….”

“……발기가 안 되는군…… 젠장…… 후…… 바지…… 그래, 옳지…… 팬티도 벗어…….”

“…….”

“……옳지…… 아래 더 붙여…… 후우…… 후…… 하아…… 딱 붙어, 목에 팔 꼭 감고…… 옳지…… 하아…… 젠장, 왜 이렇게 숨이 찬 거야…… 후우…… 거기도 내 거에 꼭 붙여…… 그래, 그렇게…… 다리는 허벅지에 감고…… 옳지, 그렇게…….”

“……쪽…… 쪼옥, 춥…….”

“……후우…… 그렇게 내 입술 깨물지 마…… 또 키스하고 싶어지니까…….”

“……응…… 응,응…… 추웁…….”

“……턱도 깨물지 마…….”

“……하아…… 위위…… 안 죽어…… 후…… 후후…… 위야가 안 죽는대…… 추웁…… 쪽…….”

“……깨물지 말랬지……? 하아…… 좀 쉬고…… 지쳐서…….”

“……응…… 응, 응…… 위위…… 쪼오옥…….”

“……젠장, 그만해…… 이제 키스할 기운도 없다구…….”

“……응, 응…… 헤헤…… 쪽, 쪽, 쪼옥…….”

“……하아…… 젠장, 왜 이렇게 숨이 차…….”

“……안 죽어…… 위야가 살았어…… 살았어…… 후…… 후후후…… 헤헤…… 쪽…… 쪼옥, 쪽, 츕, 추웁…….”

“……좋으냐?”

“……흐후…… 쪽, 쪽…….”

“……인환아…… 그렇게 내가 좋아……?”

“……쪽, 쪽, 춥, 쪼오옥…… 쪽…….”

“……후우…… 젠장, 키스하지 말랬지? 기운 없어서 이제 못 한다니까…….”

“……어…… 아…… 어어, 응…… 응, 응, 위야…….”

“……좀 쉬고…… 나중에 실컷 키스하자…… 섹스도…… 여기…… 여기 이 귀여운 구멍이 다 헐어버릴 때까지 실컷 박을 거니까…….”

“……어…… 어어…… 응…… 쪽…… 추웁, 쪼옥…….”

“……하아…… 후…….”

“……춥, 쪼옥, 쪽…….”

“……그래…… 좋지……? 내가 좋지, 인환아……?”

“……쪽, 쪽…… 후아아…… 추웁…….”

“……젠장, 내 얼굴을 온통 침 범벅으로 만들 셈이냐……? 샤워도 안 해서 많이 더럽다, 장인환…….”

“……어…… 응…… 응…… 추웁…….”

“……후우…… 정말 못 말리겠군…… 하느님…… 후우…… 귀여워…… 너무 귀여워…… 후…… 후후…… 하하…… 하…… 하아…… 학……!”

“……아, 아파……? 폐가 아파, 또……?”

“……아냐, 웃음이 나와서 그래…….”

“……위위…… 아프지 마…… 아프면 안 돼…….”

“……내가 좋으냐……?”

“……내가 좋지? 그렇지……?”

“…….”

“……대답해, 인환아. 날 좋아하지……?”

“…….”

“……빨리 대답 안 해? 죽을래……?”

“……모…… 몰라…… 무서워…….”

“…….”

“……무서워…… 위야…… 위위…….”

“…….”

“…….”

“……쉬이…… 그래……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렇게 떨지 마라…… 떨지 마…….”

“…….”

“……인환아.”

“…….”

“……젠장…….”

“…….”

“……떨지 말라니까…… 이제 안 물어볼 테니까…….”

“……어…… 응…….”

“…….”

“……쪽…….”

“하하…… 하하…… 하…… 귀여워…… 후으…….”

“……춥…… 쪼옥…….”

“……네 안에 들어가고 싶다…….”

“……응…….”

“……깊이깊이 박아서…… 물릴 때까지 하루 종일…… 종일 떨어지지 않을 텐데…… 젠장…….”

“……위위…… 추웁, 쪽, 쪽, 츕…….”

“……장인환.”

“……응, 위야…….”

“……인환아…….”

“……응……?”

“……하하, 귀여워…… 하…… 후우…… 젠장, 왜 이 지랄로 숨이 찬 거야…… 젠장…… 키스도 못 하게…… 하아…… 귀여워…… 너무 귀여워…… 하느님, 꿈을 꾸는 것 같아…….”

“……아프면 안 돼, 위위…….”

“……네 안에 들어가고 싶다…….”

“……응…… 쪽…… 쪼옥…… 졸려…… 나두…….”

“……인환아…….”

“……응…… 어어…….”

“……인환아…….”

“……춥…… 쪽…….”

“……인환아…….”

“……응……? 위야……?”

“……인환아…….”

“……어…… 응…….”

“……인환아…….”

“……응…… 아프지 마…….”

“……인환아…….”

“……응…… 어어…… 응…… 아프…… 면…… 위야 아프면 나도 죽어…… 죽…….”

“……인환아…….”

“……응, 나도 졸려, 위야아…… 나도…… 죽을 거야…… 위야 죽으면…….”

“……인환아…….”

“……응…… 춥…….”

“……인환아…….”

“……응…… 나두…….”

“……인환아…….”

“……나…… 두…….”

“……인환아…….”

“……응…… 조…… 졸려…… 아프지 마아…….”

“……인환아…….”

“……어…….”

“……인환아…….”

“……어어…… 나…… 나두…….”

“……인환아…….”

“……아프면…… 죽…… 어어…….”

“……인환아…….”

“……어…… 응…… 졸…… 나…….”

“……인환아…….”

“……응…… 좋아…….”

“…….”

“……나두…… 좋아…… 해…… 사…… 랑…… 졸려…….”

“…….”

“……어…… 나…… 두…… 사랑…… 하니까…….”

“…….”

“……죽지…… 마…… 아…….”

“…….”

“……위위…….”

“…….”

“……z…… z…… zzZ…… ZZZ…….”

“…….”

“……ZZZZ…… ZZ…… ZZZZZ…… zzz…… ZZ…… ZZZZZzzzz…….”

“…….”

……사랑한다는 고백의 말은 역시 뱉어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되풀이해 토해지던 것은 연인을 향한 간절한 부름뿐. 기를 쓰고 고백을 주려 했지만, 자신의 ‘사랑’은 얼어붙어버린 지 이미 오래였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에 행해졌던 옛 맹세 때문…… 아주 오래전, 스스로를 묶어버린 맹세의 ‘주박’이었다.

―……딱 한 번이니까…… 딱 한 번만 말하는 거니까…….

대신 연인의 고백을 들었다.

―……사랑해…… 죽을 때까지 당신만 사랑할 거야, 선생님…….

연인이 내린 구원을 받았다.

―……언젠가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당신 이외의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도 없을 거야…… 당신뿐이야…… 일생 당신뿐일 거야, 그러니까…….

하느님…… 하느님…….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풍족할 때나 가난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맹세해…… 맹세한다…… 그러니까…….

인생이 한 방이더라…… 한 방이더라?

―……I do. Oh, yes, I do…….

사방이 찬란한 빛으로 넘실거렸다.

그 압도적인 밝기에 어지럼증이 덮친 나머지 울컥울컥 토기가 느껴질 지경이었다.

침대 발치에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던 시커먼 것이 보인다.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는 것이 보인다. ‘죽음’이었다. 예스를 말하라고, 절망하라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된다고 잔뜩 이기죽거리며 자신의 굴복을 기다리고 있던 ‘죽음’. 그 시커먼 것이 순간 파삭 하고 부서지더니 시커먼 연기처럼, 신기루처럼, 꿈처럼 허망하게 흩어진다. 사방이 빛이다. 온통 빛이다. 아무러면 어둠 나부랭이가 버틸 까닭이 없다.

―……I do. Oh, yes, I do…….

―……응…… 좋아…….

―……I do. Oh, yes, I do…….

―……나두…… 좋아…… 해…… 사…… 랑…… 졸려…….

―……I do. Oh, yes, I do…….

―……어…… 나…… 두…… 사랑…… 하니까…….

―……I do. Oh, yes, I do…….

―……죽지…… 마…… 아…… 위위…….

완벽하게 곯아떨어진 연인의 몸을 좀 더 품 안에 꼭 끌어안았다.

몹시도 기운이 달려 몇 번이나 숨을 헐떡거려야 했지만, 기를 쓰고 연인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이었다. 입술이었다. 눈시울이었다. 몸뚱이였다. 살 냄새였다. 전부 다 내 연인이었다. 내 인환이었다. 내 인환이의 전부가 몽땅 다 자신의 품 안에 있었다. 폐가 짜부라지다 못해 부서져 터진다고 해도 절대 놔줄 수 없었다.

호흡이 점점 더 가빠지며 찌르는 듯한 통증이 폐부를 엄습한다. 기왕에 기진한 사지를 마치 지진이 일어난 양 광란에 빠트리는 오열이 전신을 사로잡는다. 혹여 연인이 깰까 잔뜩 숨죽인 오열이다.

새벽이다.

벽시계 바늘이 1시 6분을 가리키고 있다. 하느님, 너무 늦은 게 아니라 너무 일렀던 거다.

째칵, 째칵, 째칵, 째칵, 째칵, 째칵, 째칵……. 벽시계 초침 소리가 마치 무도장 지르박의 경박스러운 비트 같다. 하하, 맙소사. 여긴 무도장이 아니다. 심장 박동 조정기, 자동 산소 발생기, 산소 흡입기, 석션기, 네뷸라이저 등등 온갖 의료 기기들로 가득 들어차 있지만 종합 병원 중환자실도 아니다. 그래, 물론 잠깐 중환자실로 변하긴 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딜 어떻게 둘러봐도 ‘우리 집’ 안방이다. 품 안에 연인이 있다. 연인만 있으면 어디라도 ‘우리 집’이다. 어떤 끔찍한 폐허라도 마냥 아늑하기만 한 ‘우리 집’ 안방이 된다.

하느님.

구원이 왔다.

좀처럼 오열이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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