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2003년 11월. 장인환(張仁歡)
어렴풋이 의식이 들고 맨 먼저 자각한 것은 눈부신 햇빛이었다.
몇 번 눈을 감았다 뜨자 시린 감각이 사라지며 시야가 확보되었다.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햇빛의 상태로 보아 대충 오후 서너 시쯤 된 것 같았다.
눈만 굴려 방 안을 이리저리 살폈다가, 몸을 움직일 만큼 약효에서 해방된 것도 같아 느릿느릿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풀어주겠다고 하더니 과연 내내 한쪽 발목에 감겨 있던 쇠사슬도 풀려 있었다. 채찍에 맞은 등이나 하반신의 상처도 제법 아물고 있는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하긴 며칠 내리 전문가로 보이는 이들에게서 집중 치료를 받았으니 나을 때도 되지 싶었다.
여전히 침대 하나뿐인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풍성하게 쏟아지고 있는 늦가을 오후의 햇빛과 파자마 차림의 자신뿐이었다. 이 방에 갇힌 지 오늘로 며칠째인지 정확한 가늠은 할 수 없었다. 그저 몇 번의 밤과 낮이 거듭 뒤바뀌었다는 것만 흐릿하게 기억할 뿐.
자신들은 완전히 철수하니 알아서 돌아가라고 하던 사내들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약에 취해 비몽사몽하다 잠이 든 후로 몇 시간이 더 흘러갔는지는 기억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저들이 먹인 게 마약은 아닌 것 같은데, 몸은 마약을 주사 맞고 깨어난 며칠 전 아침처럼 마냥 나른하기만 했다. 아마도 항생제 성분이 포함된 진정제였지 싶었다. 깨어나 그들을 신고할 것도 아닌데 굳이 진정제를 먹인 걸 보면 확실히 후환을 없애자는 전문가다운 냉정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녀가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며 신신당부만 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어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증거 인멸 차원에서라도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이 졸린 채 어딘가에 파묻혔을 테지. 그 점에 대해 그녀에게 감사를 해야 할지는 아직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목숨엔 목숨. 그녀가 자신에게 제시한 대가였다. 생명을 앗아갔으니 인환 자신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라는 요구였다. 약간 의외다 싶었지만, 그 역시 아주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기에 마음대로 하라 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에게 내린 징벌은 자신의 사회적인 죽음이었다. 이미 죽어버린 몸 따윈 가치조차 없다며 인환이 가진 것들 중 그나마 유일하게 가치가 있을 것 같은 것을 빼앗겠다고 그녀는 표독하게 선언했다. 글쎄, 자신에게 죽여버릴 사회적인 명예란 게 있는 걸까 싶어 갸우뚱한 순간이기도 했다. 독기 서린 어두운 눈과 그림, 화가, 명예 등등의 단어들이 단편적으로 들려왔던 것이 기억난다. 약에 취해 있어 조리 있게 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그녀의 사나운 독설이 거듭되는 동안 대충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화가로서 다신 일어설 수 없을 거라는 경고였다. 역시 그 말에도 갸우뚱했다. 그림만 그리면 된다고 여겼지, 애초부터 지켜야 할 화가로서의 확고한 정체성 따위 버린 지 오래였으므로. 그걸 설명하고도 싶었지만 이미 퍼진 약기운에 정상적인 사고는 점점 멀어져갔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가 원하는 목숨 값이 자신에게 존재한다면 그게 뭐든 그녀에게 내줄 의향이었으므로. 자신 또한 그녀로부터 충분할 정도로 얻어내지 않았는가. 자신이 그녀에게 지불할 대가란 그야말로 아이에 대한 것뿐, 자신의 사랑에 대해선 도리어 그녀 쪽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지 않았는가 말이다. 자신은 물론, 지독하게 모독당하고 폄하당하기만 했던 자신의 사랑도 그녀로부터 사과를 받을 자격은 차고도 넘쳤으므로. 사과를 하라 요구한 덕분에 기왕에도 악에 받친 그녀를 더더욱 끔찍한 괴물로 만들고 말았지만, 후회는 없었다. 후회하기엔 너무나 참혹한 진실이었다.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꺼지는 최악의 진실이었다.
지난 석 달 내내 그를 의심하면서도, 그 진실이 주는 극심한 충격과 공포가 두려워 줄곧 움츠러들기만 했던 자신이었다. 진실과 맞닥뜨리고도 미치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에. 그녀라면 그런 자신에게 제동을 걸어줄 것 같았다. 역시 추측은 들어맞았다. 그녀는 진실을 말해주었고,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
충분했다. 육체적으로 몇 번의 죽음을 맞이하든, 혹은 존엄한(자신에게도 존엄성이란 게 남아 있다고 한다면) 한 인간으로서 사회적으로 몇 번이나 살해당하든, 자신이 마침내 인정한 진실의 가치와는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무위(無爲)가 아니었다. 지난날 자신이 저지른 온갖 죄악과, 실수와, 그를 대속하기 위해 자신이 치러낸 그 끔찍한 고통들은 그저 무의미함만은 아니었다. 지나간 세월이 무의미하지만 않다면 자신은 다시 숨 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살아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은 집착은…… 그래, 그랬다. 자신의 집착은 역시 사랑이었던 거다. 그저 광기와 집착이라고만 여겼는데, 그래서 그리도 부끄러워하고 또 부끄러워했는데, 후회하고 또 후회했는데, 그게 아니었단다. 역시 사랑이었단다. 미안하게도 그게 사랑이었단다. 사랑받았었단다. 그러나 그때 그곳으로 가면……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자신의 사랑은…… 불쌍하고 불쌍했던 내 사랑은…… 청춘은…….
한쪽 뺨이 뜨뜻했다. 눈물 한 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전혀 슬프지 않은데도 흐르는 눈물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 그저 생리적인 반응에 불과한 걸까? 과연 눈물은 금세 멈추었고, 머릿속은 다시금 흐릿해졌다. 확실히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자각이 들었다. 그녀로부터 자신이 원해왔을 최고의 것을 얻어낸 셈이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녀에게 진정 감사까지 해야 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지 싶었다. 적어도 목숨줄을 붙여두고 떠난 사실에 한해서만큼은. 차라리 목숨줄마저 가져가주는 게 더한 자비였을지 또 누가 알랴.
침대 끝에 익숙한 옷가지가 보였다. 삼청동 집을 나설 때 입고 나왔던 재킷과 면바지들이었다. 오래 걸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침대에서 내려섰다. 일어서자마자 핑 하니 어지럼증이 일고 몸 여기저기가 아파왔다. 꽤 심하게 자각되는 등과 치부의 통증을 제외하면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는 알 수 없었다. 몸 안에 남아 있는 진정제 기운이 완전히 걷힌다면 한동안은 좀 고생할 듯도 싶었다. 여하튼 진정제 덕분인지 그리 못 참을 정도는 아니어서, 쉬다 말다 하며 천천히 옷을 갈아입었다. 그새 체중이 줄었는지 바지가 꽤나 헐렁했다. 여차하면 흘러내릴 것 같아 벨트 버클을 두 칸이나 줄여야 했다.
방문도 수월하게 열렸다. 복도를 지나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가구 하나 없는 휑한 아래층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십여 평 크기의 저 아담한 공간은 낯이 익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드는 고통스러운 기시감에 마음은 그저 착잡하기만 했다.
그녀가 이곳을 복수의 장소로 정한 것도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지 싶었다. 만약 그가 자신을 찾아내려고 들었다면(아니, 실은 찾아내려고 필사적이겠지. 틀림없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곳은 누구라도 전혀 상상조차 못할 완전히 허를 찌르는 장소였던 것이다. 게다가 바로 그녀의 한이 시작된 장소가 아닌가. 지난 10년 동안 주인만 해도 여럿 바뀌었다는데, 종국엔 그녀의 소유로 돌아간 것을 보면 섭리라는 말의 의미를 절실히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다. 이 가구 하나 없이 을씨년스러운 낡은 별장이야말로 10년 전 자신이 그녀를 납치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이곳에서 그녀의 아이를 잃게 된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으로 해서.
또 한쪽 뺨이 뜨뜻해졌다. 무심코 손등으로 쓱 문지르니 역시 눈물이었다. 무언가 물기가 몸에 넘치나 보다고 설핏 웃음을 물었다. 걸을 때마다 하반신이 점점 심하게 아파와서 못 참을 지경이 되었다. 다행히 보다 무리를 주는 계단은 다 내려왔기에 거실 바닥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창 쪽으로 시선을 가져가자 방치된 지 오래인 것 같은 텃밭이며 정원수들이 보였다. 그 너머로는 가을색이 완연한 산등성이도 보였다. 휘요오오오오. 휘요오오. 귀곡성처럼 음산한 여운을 주는 바람 소리도 들려왔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 창 밖 풍경만 더듬고 있자니, 10년 전의 그때인지, 혹은 진짜 현재인지 현실감이 거의 들지 않았다. 별 차이가 없는 듯도 싶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혼자 남겨졌다는 점에선 한가지였다. 살이 에이고 뼈가 저미는 듯한 고독감도 한가지였다. 어쩌면 현재의 자신은 10년 전의 자신이 꾸는 꿈속의 인물일지도 몰랐다. 혹시 아는가. 깨어나 나가보면 현관 문 밖에서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그녀를 발견하게 될지. 유산한 그녀를 차에 싣고 줄줄 눈물을 쏟으며 가까운 병원을 찾아 필사적으로 달리게 될지.
하반신의 통증이 잦아들자 다시 움직일 의욕이 모였다.
딱히 움직인다고 해서 어딘가 가고픈 곳이 떠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여기서 계속 머물 것도 아니니 일단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가 걱정을 하고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지만, 어쩐지 서둘러 그에게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생전 상상도 못 한 자유가 주어진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젠 그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으면 제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주인이자 절대적인 군주였던 그의 지배력은 적나라하게 드러난 진실 앞에 맥없이 스러져버렸다. 그의 명령에 일일이 따르지 않아도 될 권리가 주어졌다.
물론, 진실과는 별개로 그에게 묶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과오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무조건적으로 그에게 복종하던 자아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은 몹시 슬프고도 이상야릇하며 공허한 감각이었다. 익숙해지려면 평생이 걸릴지도 모를 생뚱맞은 감각이기도 했다. 뭐, 가고픈 기분이 들 때까지 기다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지금 현재의 자신은 정상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니, 정상적인 판단 또한 불가능할 터였다. 진정제의 효과도, 아직 핏속에 남아 있을 마약의 효과도(비록 합의이긴 했으나) 유린당한 몸이 입은 대미지까지 다 소화시키고 나야만 제대로 된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시간은 많았다. 살기를 시작할지, 혹은 이때까지처럼 그냥 포기를 하고 말지, 결정도 얼마든지 미룰 수 있었다. 그에게 돌아가야 한다면, 돌아가고픈 마음도 언젠가는 들 터였다.
그리 느긋하게 생각을 고치자마자 고통스레 구겨지는 그의 얼굴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하지 마……. 무심코 중얼거렸다. 아프지 마……. 재차 보태주었다. 가슴 저린 환영은 다행히 곧 사라졌다. 아프지 말라고 부탁했으니 급할 건 없었다. 아프지 말라는 부탁 정도는 그도 확실히 들어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아프지만 않으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 뒤 현관을 빠져나왔다.
휘요오오오오. 휘요오오. 산등성이로부터 굽이치는 칼바람이 사방으로 귀곡성을 흘려대고 있었다. 순간순간 숨을 틀어막는 무시무시한 칼바람이었다. 너무나 눈이 부셔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을 만큼 찬란한 햇빛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긴 산중의 계절은 도시보다 한 뼘은 더 빨리 다가오는 법이었다. 이제 11월 중순에 접어들었으니 겨울도 머지않았을 터였다.
200여 평쯤 될 정원 부지 너머, 마을까지 죽 이어지는 2차선의 소방 도로가 보였다. 소방 도로 너머엔 논밭과 비닐하우스들이 층층이 늘어선 전형적인 전원 풍경이었다. 한눈에 다른 민가가 눈에 띄지 않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10년 전과 별다름이 없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땐 콘크리트로 대충 포장된 도로였는데 지금은 매끈한 아스팔트로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일단은 마을로 가자고 작정을 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데, 300여 미터쯤 전방의 커브 길에서 자동차 엔진음이 들려왔다. 처음엔 바람 소리인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점점 더 굉음으로 변해가는 소리에 확실한 자동차 소음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도 한두 대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걸음을 멈춘 채 소리가 나는 길 끝으로 시선을 주었다. 여전히 현실감이 떨어지는 눈이기에 순식간에 나타난 자동차들의 행렬을 자못 의심스럽게 바라봐야만 했다. 그러나 불안정한 의심이 곧 확신으로 바뀌는 데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맨 선두에서 마치 로켓처럼 빠르게 달려오는 차는 자신도 익히 아는 차였다. 검정색 메르세데스 벤츠. 뒤따르는 다른 차들도 로켓처럼 달려오기는 한가지였지만, 선두의 검정 세단은 그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여간해선 소음을 내지 않는 차가 저 정도로 시끄럽다면 그 속도가 오죽할까 싶었다. 그의 경호 기사인 고영석은 무술 실력만큼 운전 솜씨 또한 일품이었는데, 안전 수칙은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몹시 걱정스러웠다.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별장 앞마당까지 번개처럼 들이닥친 세단이 요란스레 급정거를 했다. 인환이 서 있던 곳으로부터 10여 미터쯤 떨어진 지점이었다.
급정차와 거의 동시에 뒷좌석의 차 문이 열렸다. 바닥으로 뛰어 내리는 커다란 장신의 덩치가 보였다. 유난히 길고 늘씬한 다리도 보였다. 군함처럼 커다란 발을 감싸고 있는 것은 은색의 스니커즈였다. 감색 면바지에 검정색 폴로셔츠, 그리고 그 위에 은회색 슈트 재킷이라는 언밸런스한 차림인 걸 보니 회사가 아니라 집에서 달려온 모양이었다. 차에서 뛰어내린 거구의 남자가 필사적인 기세로 전력 질주를 시작하는 게 보였다. 압도적인 덩치와 다르게 동작은 고양잇과 짐승마냥 우아하고 유연하기까지 했다. 남자의 움직임을 따라 시간이 점차 느려지는 것만 같았다.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끼이이익. 끼이익. 지면에 바퀴가 미끄러지는 소름 끼치는 소음들이 아득히 이어진다. 세단의 뒤를 이어 줄줄이 도착한 다른 차들이 내지르는 급정차의 비명 소리다. 소리를 따라 흘낏 이동했던 시선이 달려오는 남자에게로 다시금 모였다.
언제 봐도 좀처럼 믿기 힘든 완벽한 이목구비가 보였다. 근데 어째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질 않는다. 머리카락도 며칠은 안 감은 것처럼 뒤죽박죽 수세미 몰골이고, 턱 언저리는 부랑자처럼 덥수룩한 수염으로 뒤덮여 있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빛은 레이저 빔이 쏟아지는 것마냥 형형하고, 입술은 까맣게 타서 재가 된 듯 허옇게 껍질이 일어나 있다. 움푹 팬 채 다크 서클이 한 발이나 내려앉은 눈시울이며, 퀭하게 들어앉은 볼우물들을 보아하니 엄청 아픈 흔적이 역력하다. 망할. 아프지 말랬잖아. 저절로 원망이 뇌까려진다. 아프지 않겠다고 약속하더니, 그 몰골이 다 뭐야.
잔뜩 흘겨볼 요량을 하기도 전에 몸이 거세게 끌어당겨졌다. 무지막지한 힘이었다. 어느새 비호처럼 다가든 거구의 팔이 끊어버릴 기세로 상반신을 죄고 있었다. 등줄기를 미친 듯이 쓰다듬는 손길에 저절로 신음이 터졌다. 채찍으로 맞은 상처 탓이었다. 티를 내면 또 그를 아프게 할 것 같아 입술을 깨물며 필사적으로 신음을 참아내야 했다. 다행히 억센 가슴팍에 틀어박힌 얼굴은 한동안 옴짝달싹할 수도 없어 고통이 서린 표정을 감출 수가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 가득 파고드는 건 그립고도 그리운 냄새였다. 평소보다 한결 짙어진 걸로 짐작하니, 부랑자 몰골이 증거하듯 며칠 동안 샤워도 안 한 모양이었다.
……아팠구나. 그렇게 아프지 말라고 당부를 했는데도 아프고 말았구나. 아프게 만들었구나…….
가슴 저린 회한이 탄식처럼 뇌까려졌다.
……그래도 출장은 무사히 마쳤겠지?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출장 일정이 거의 마무리되는 끝 무렵까지 기다렸다구. 나름대로 많이 배려했단 말야. 모레면 돌아온다기에 그제야 겨우 머릿속에서 마구 독촉을 해대던 그녀에게 전화를 넣었지. 하루 이틀, 자꾸만 늦어지는 일정에 괜히 초조해지기도 했는걸. 넌 서방님 마누라 어쩌고저쩌고 하며 날 놀리기만 했어도…….
중언부언, 연달아 뇌까리고 있는 변명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건지 모르겠다. 으스러져라 자신을 안고 있는 그인지, 혹은 그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자신인지. 아무러면 어떠냐 싶기도 하다. 더 이상 아프지만 않으면 다 용서해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거긴…… 그만 만지면 좋겠다, 위야…….”
신음이 섞인 한숨 같은 중얼거림이었다. 거듭 등줄기를 쓸어대는 억센 애무에 더는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흘린 부탁이었다. 산등성이에 휘몰아치는 바람결에 섞여 그에게 제대로 전달이 됐을까 싶었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마지막 한마디가 떨어지자마자 그의 움직임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마냥 굳어든 것이다. 대신 경련 같은 극심한 떨림이 그의 온몸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선연히 전해졌다.
등을 휘감았던 그의 팔이 양쪽 팔로 옮겨졌다. 얼굴을 짓뭉개고 있던 그의 가슴팍도 차츰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자신의 양쪽 팔을 움켜쥔 그가 끌어들였던 상반신을 천천히 뒤로 밀고 있는 때문이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만큼의 간격은 금방 생겨났다. 고개를 살짝 치켜드는 것과 동시에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아, 하느님! 차라리 고개를 들지 말걸……!
날카로운 메스가 심장 언저리를 스윽 긋고 지나갔다. 당장은 그저 서늘한 한기만을 자각했을 따름이었다. 고통에의 자각은, 찰나의 순간 후에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
빛을 잃은 멍한 눈이 인환을 굽어보고 있었다. 허리를 부서트릴 기세로 끌어안던 격정도, 레이저 빔처럼 형형하던 살기도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크 서클이 한 발이나 내려앉은 움푹 팬 뺨은 온통 젖어 있었다. 기척조차 없이 고요하게 흘러내리고 있던 눈물이 그 원흉이었다. 한강을 이루다 못해 은하수라도 만들 요량인가. 한참이나 넋을 놓고 바라보는데도, 방울방울 흘러 떨어지는 수분은 좀처럼 마를 줄을 몰랐다. 시체처럼 표정이 없는 얼굴로 봐서는 스스로 울고 있다는 자각조차 못 하는 것도 같았다.
“……울지 마…….”
“…….”
“……울지 마…… 응……? 위야…….”
“…….”
가만히 부탁하자 시체가 빙긋이 웃는다. 여전히 눈을 의심할 만큼 예쁜 웃음이었다. 고요하게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만 아니라면.
팔을 잡고 있던 시체의 오른손이 얼굴로 올라왔다. 경련을 일으키듯 와들와들 떨리고 있는 손가락이 가만가만 뺨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눈물은 고요하고, 손길은 폭풍이었다. 너무나 떨고 있어 가슴이 아릴 지경이었다. 아팠구나…… 정말정말 많이 아팠구나…… 한탄 같은 뇌까림은 끝이 없었다.
“……왜 그래…… 그만 울어…… 응?”
“…….”
“……그거 때문에 그래……? 봤어……?”
“…….”
“……아아, 그렇구나…… 봤구나…….”
“…….”
“……근데 그거 별거 아니야, 위야…… 강간도 아니고…… 아, 그야 강간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뭐 그렇게 기분 나쁘지도 않고…… 감옥에서도 수없이 많이 당했는걸, 뭐…… 이 나이에 그런 일 좀 당했다고 새삼 상처받고 하지도 않아…… 진짜야…… 그녀랑 빚 청산 겸 거래를 한 거기도 하고…… 결과도 나쁘지 않고…… 그녀도 꽤 만족한 거 같아서…….”
“아아아아아악!!!!!!!!!!”
느닷없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끔찍한 비명에 그대로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의 체온과 유일하게 이어져 있던 오른팔에 부서지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어마어마한 악력으로 움켜쥔 때문이었다. 물론 아픔보다 더 인환을 놀라게 한 건 그의 비명 소리였다. 숨소리조차도 아끼는 것 같던 고요 속에 있던 그였기에 놀라움은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거북이처럼 둔해진 감각이었기에 망정이지 맨 정신이었다면 그야말로 혼비백산을 했을 터였다.
휘둥그레진 시야에 사정없이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보였다. 정확히는 그의 턱밑이 보였다. 하늘로 고개를 한껏 치켜들고 있어 가뜩이나 20센티 가까이 차이 나는 키 덕에 자세히 보이는 거라곤 부랑자 수염으로 가득 뒤덮인 그의 턱뿐이었다. 다행히 비명은 곧 멈췄는데, 그렇다고 상태가 나아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은 완전 시체의 몰골이고, 사지에서 시작해 전신으로 번져간 것 같은 떨림은 그야말로 경련 수준이었다. 어찌나 힘을 주어 이를 가는지 뿌득뿌득 이 가는 소리가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산등성이를 휘몰아치는 귀곡성까지 보태지니 무슨 호러 영화가 부럽지 않았다.
“……나 진짜 괜찮다니깐…….”
잔뜩 풀 죽은 목소리로 덧붙이자 점입가경, 즉시로 후회해야 했다. 처음보다 더 심한 비명 소리가 대꾸처럼 터져 나왔다. 심한 만큼 더 끔찍한 두 번째 것은 처음보다 훨씬 더 오래 끌다 간신히 잦아들었다. 오른팔에 느껴지는 악력도 처음보다 훨씬 더 아팠음은 물론이었다.
할 수 없이 그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이나 인내심 하나는 끝내주는 성격이니, 곧 진정될 것이다.
아스라이 멀어지는 비명 소리와 함께 하늘을 향했던 고개가 이번엔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덕분에 그제야 표정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는데, 역시 보지 말 걸 하고 즉시로 후회해버린 자신이었다.
세상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을 것 같은 참혹한 고통이 보였다. 부릅뜬 눈에선 여전히 소리 없는 눈물이 줄줄 흘렀고, 입가와 턱 끝은 이를 악문 채 경련을 일으키듯 떨고 있는 통에 혀라도 깨물까 무서웠다. 이마와 콧등조차 식은땀인지 그냥 땀인지, 번들거리는 액체투성이였다. 제일 무서운 건, 여전히 표정이 없다는 거였다. 시체처럼 굳어버린 얼굴에 그저 고통만 고스란히 인화된 것 같은 기괴한 모양새였다. 흐느낌 소리는 물론, 숨소리조차 사라진 적요한 고통은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휘요오오오오. 휘요오오. 바람이 흐느끼듯 섬뜩한 귀곡성을 흘려댄다. 소리를 잃어버린 그의 흐느낌 대신인 것만 같았다. 바람결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그의 머리카락들이 슬로비디오처럼 느리게 보였다. 쉼 없이 뺨으로 굴러 떨어지는 물방울 역시 느리고 또 느리게 보였다. 정지된 시간 속에 고통만 한가득이었다.
그만해……. 안타까이 애원했다. 이제 그만해, 응……? 부릅뜬 아름다운 눈시울에 시선을 주며 눈빛으로 간절히 부탁해보았다. 대답으로 돌아온 건 그의 떨리는 손가락들이었다. 얼굴로 올라온 열 개의 손가락이 부들부들 흔들리며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확인이라도 하는 맹인처럼. 이마를 더듬고, 눈썹을 문지르고, 콧등을 누르고, 눈꺼풀을 간질이고, 입술을 스쳐갔다. 얼굴 탐색을 마친 손가락들이 다음 목표로 삼은 건 순서대로 목덜미와 귓불과 쇄골과 가슴산, 그리고 아랫배였다. 얼굴을 가렸던 손가락들이 치워지자 맹인의 눈동자를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까만 먹빛 눈동자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투명한 동공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무언가 어리바리한 바보스러운 표정이었다.
“……사…… 사장님, 어서…… 우선 치료부터 받게 하셔야만…….”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시체의 몰골을 한 맹인이 움찔 몸을 떨더니 뒤를 돌아본다. 아, 돌아볼 줄 아는 걸 보니 맹인은 아닌가? 그럼 그냥 시체라 치고. 자신도 시체의 시선을 따라 시체의 어깨 너머를 흘끔거렸다. 윤 실장이었다. 항상 반듯하고 단정했던 윤 실장의 몰골 또한 그네의 상사를 본받아 몹시 초췌해져 있었다. 윤 실장 뒤에도 익히 알고 있는 얼굴들이 몇몇 보였다. 모르는 얼굴들은 더더욱 많았다. 아마도 경찰 관계자들인 모양이었다. 그녀와 합의하에 이루어진 일이건만, 윤 실장 뒤로 죽 늘어서 있는 사내들의 면면을 보자니 사태가 원만히 마무리되려면 조금 귀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뭐, 이제 와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오른손으로 따스한 감촉이 다가들었다. 여전히 와들와들 떨리고 있는 시체의 손이 깍지를 끼듯 자신의 것을 움켜쥐고 있었다. 돌아선 시체가 걸음을 옮기자, 시체와 이어진 손도 시체를 따라갔다. 시체가 가는 방향은 전방에 세워진 메르세데스 벤츠였다.
시체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한 걸음쯤 느리게 따라오는 자신을 살피고 있었다. 보폭의 완급을 조절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반응을 살피는, 조심스럽고도 또 조심스러운 몸짓이었다.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여전히 한강을 이루고 있는 고요한 눈물에 입 밖으로 토해지려던 언어는 그대로 쏙 들어가버렸다. 시체가 또 무시무시한 비명을 질러대며 발작을 할까 겁이 난 때문이었다. 자신이 어떤 말로 위로하든 시체의 고통엔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고통이 거듭되는 한, 이렇게 둔중하게 자신의 심장을 옥죄는 아픔도 또한 여전할 터였다. 그나마 정상이 아닌 자신의 상태가 다행이다 싶었다. 감정이고 감각이고, 한 템포 걸러져서 다가오기에 아픔 또한 그닥 생생하게 실감되지는 않았다.
그가 걸음을 멈추는 기색에 따라 자신도 멈춰 섰더니 바로 세단 앞이었다. 고영석이 뒷좌석의 도어록을 잡고 있는 게 보였다. 그가 이끄는 대로 막 차 안으로 들어가려다 문득 고개를 들고 왼쪽 옆을 바라보았다. 낯선 인파들에 가려 보이지 않던 한 남자가 주의를 끈 때문이었다. 둔해진 감각과 의식 속에서도 뭉클한 어떤 것이 목울대를 치고 올라왔다.
드물게 키가 크고 아름다운 남자였다. 인환이 익히 알고 있던 그대로, 자신의 옆에 붙어 서 있는 반(半) 시체만큼이나 타인의 이목을 끄는 남자였다. 남자는 물 빠진 청바지에 적동색 티셔츠, 그리고 그 위에 낡은 갈색 가죽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워낙에 수려한 용모이다 보니 비교적 수수한 차림새임에도 유명 모델의 포스를 뿜어내고 있어 멍하니 감탄까지 흘린 자신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봤을 때 그대로 심하게 여윈 얼굴에 무심코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다. 그러지 마요……. 제발 그러지 마요……. 무슨 의미인지도 알 수 없는 부탁의 말을 뇌까리기도 했다.
남자는 고요한 눈길로 이쪽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안타까운 고뇌 대신 담담한 관조가 느껴져서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쉰 자신이었다. 만약 남자가 지독하게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면 자신 또한 평정을 잃었을 것이다.
아마도 남자는 지난 며칠 동안 촬영된 추악한 그것을 고스란히 지켜보았으리라. 대한민국의 갤러리들이란 갤러리 홈피에는 죄다 올려줄 거라고 그녀는 독설을 퍼부었었다. 남자 덕분에 그나마 부활하는 듯했던 화가로서의 명예가 손쓸 수 없을 지경으로 난자당하는 것을 남자는 생생히 목격했을 것이다. 아아, 그래. 인정한다. 그건 배신이었다. 적어도 저 남자에겐 지독한 배신이었다. 저 남자의 자신을 향한 우정과 헌신과 애정……(그래, 애정이었다. 그것이 애정이 아니라고는, 자신도 더 이상은 우길 수가 없었다. 그녀로부터 찾아낸 진실 속에서 저 남자의 진실 또한 오롯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 모든 숭고한 것들에 대한 끔찍한 배신이었다. 알면서도 그녀와 거래를 한 자신이었다.
아아, 그래. 이런 것이었구나. 새삼 자각을 한다. 자신은 저 거래로 하여 생각보다 많은 것을 잃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녀에게 진정 감사까지 해야 할지는 역시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일 게다. 적어도 목숨줄을 붙여두고 떠난 사실에 한해서만큼은. 차라리 목숨줄마저 가져가주는 게 더한 자비였을지 또 누가 알랴.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더 이상 남자를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배신자답게 가차 없이 눈길을 돌리고 차에 올랐다. 자신에게 속한 시체도 뒤따라 차에 올라타는 게 보인다. 안녕……. 설핏 웃음을 물며 혼자만의 작별 인사를 한다.
……안녕, 아름다운 사람…… 내 수호천사…… 등이 붙은 쌍둥이…… 내 그림…… 내 예술…… 아마도 내 유일할 생의 의미여…….
미약한 진동과 함께 몸이 조금 흔들린다. 차가 출발한 모양이다. 진동 때문인지 한쪽 뺨이 또 뜨뜻하다. 눈물이다. 아까부터 툭하면 오른쪽, 왼쪽 교대로 한 방울씩 주르륵 흘러내리는 걸 보면 확실히 그저 생리적인 반응에 불과한 건가 보다.
깍지 낀 손이 풀리는가 싶더니 어깨가 시체 쪽으로 조심스레 끌려들어간다. 오른쪽 뺨에 닿아오는 건 시체가 걸친 슈트 재킷의 감촉. 더듬더듬 얼굴을 만져오는 건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는 시체의 손가락. 한 줄기 흘러내린 눈물은 이리저리 더듬거리는 손가락들에 의해 말끔히 닦인다. 고개를 살짝 틀어 시체를 본다. 자신의 등에 팔을 둘러 어깨를 끌어안은 채 시체는 전방만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다. 전방에 뭐가 있나 싶지만 그저 고영석의 뒤통수와 을씨년스러운 늦가을 전원 풍경일 뿐이다.
다시 시체의 프로필로 시선을 가져간다. 아까부터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고요한 눈물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선명하게 낙인이 찍힌 고통도 그대로다. 하여, 자신의 심장으로부터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핏줄기도 그대로다. 그나마 거북이처럼 둔해진 감각이 새삼 또 고마운 순간이다. 얼굴을 더듬더듬 추행하는 시체의 손가락에 슬쩍 힘이 실리며 고개를 시체의 어깨에 기대게 만든다. 어차피 반대할 기력도 없어서 흐릿한 코롱 냄새가 밴 재킷에 고개를 완전히 기울인다. 소음이 거의 없는 차의 진동은 핏속을 떠돌고 있는 진정제의 약효에 날개를 달아준다. 솔솔 다가드는 것은 수면기다.
그러고 보니 조금…… 아니, 많이 피로한 건지도…….
까무룩 감기는 눈꺼풀을 의식하며 마지막으로 든 생각이었다.
근 열흘 밤낮을 잠으로 보냈다.
드문드문 깨어나 미음과 약을 먹고, 집까지 왕진해준 의사의 진찰과 치료를 받고 나면 어김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의사가 처방해주는 약에 수면제는 없다는데 이상하게도 미친 듯이 잠이 쏟아졌다. 의사는 차라리 그게 심신의 회복과 안정에는 도움이 된다며 그의 근심을 일축했다. 자신은 여드레 동안 납치돼 있었다고 한다. 8일간. 그녀와의 대면, 거래, 유린, 그리고 치료까지 고작 8일이었단다. 아니, ‘고작 8일’이 아니라 어쩌면 ‘8일 씩이나’일지도. 끊어진 필름들처럼 그저 드문드문 떠오르는 단편적 기억들로만 남아 있는 8일간이었다. 그 8일이 남긴 대미지는 매우 서서히, 느리면서도 악착같이 드러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를 통해서.
자다가 눈을 뜨면 바로 그가 보였다. 밤에도 낮에도, 새벽은 물론, 일몰의 어스름도 가리지 않았다. 항상 그가 눈앞에 있었다. 아마 회사에도 전혀 출근을 않는 모양이었다. 윤 실장이 건네준 서류를 자신이 누워 있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마지못해 들여다보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에 문신처럼 새겨진 고통은 이제 완전히 익숙한 것이 되었다. 하여, 자신의 찢긴 심장에서도 내내 졸졸거리며 피가 스며 나왔다. 이젠 그런가 보다 했다. 아픔은 일상이 된 것 같았다. 그에게나, 또 자신에게나.
그가 겪어내고 있는 고통은(물론 나중에 가서야 실감한 것이긴 하지만) 자신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그녀가 겨냥한 화살이 자신이 아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자신은 그저 복수의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도. 애초부터 그녀는 자신에겐 관심조차 없었다고 한다. 잃어버린 아이까지도 별로 애석해하지 않았다지.
그랬다. 자신에게 한 복수가 아니었다. 그에게 한 복수였다. 그녀를 기만한 죄. 사랑을 기만한 죄. 진실을 기만한 죄. 그녀가 그에게 선고를 내린 죄목들이었다.
만약 그걸 알았어도 자신은 그녀와의 거래에 응했을까? 글쎄, 그건 모를 일이다. 그녀의 목적과는 별개로, 자신은 자신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었다. 그녀가 10년 전 잃어버린 아이를 어떻게 여겼건 자신은 그 부채를 평생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갈 터였고, 무엇보다도 진실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그 진실을 온전한 정신으로 직면하게 해줄 이는 오로지 그녀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녀의 목적을 알았다고 해도 자신은 틀림없이 망설였을 것 같다. 저울질을 했을 거다. 그의 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과, 맨 정신으로 확인받고 싶었던 그의 진실 사이에서. 최종적으로 무엇을 선택했을지는…… 물론, 끝까지 알 수 없겠지.
“아아아아아아악!!!!!!!”
끔찍한 괴성이 집 안에 진동했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양 혼곤한 악몽 속을 떠돌던 넋이 현실로 번쩍 끌려올라왔다.
멍하니 눈을 뜨자, 흐릿한 스탠드 불빛 속에 잠긴 침실 풍경이 보였다. 자신과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것 같던 그는 역시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가 비명을 질러대는 곳은 대개는 4층 서재라고 했다. 시계로 시선을 가져갔다. 새벽 2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자신은 깊은 잠이 들고 고용인들도 모두 별채로 사라진 몽마의 시간. 그가 마음껏 고통을 개방하는 유일한 시간대였다. 비록 비명 소리이긴 하나,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랬다. 그는 언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감금된 곳을 알아내기 하루 전, 그녀의 전화를 받고 나서부터라고 했다. 그 직후부터 의식적으로는 단 한 마디의 말도 뱉어낼 수 없다고 한다.
집에 돌아오고도 사흘 동안은 내내 잠에 취해 지내느라 그 사실을 인지 못 한 자신이었다. 그저 고통이 커서 말수가 줄었겠거니 싶었던 거다. 사흘째 되는 날, 문병차 찾아온 이 의원과 함께 그의 동생 휘가 침실로 들어섰고, 제 형을 보자마자 펑펑 눈물을 쏟는 청년을 통해 그의 실어 증세를 비로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정신과 의사인 김성준이 집으로 출퇴근을 하다시피 하며 그를 필사적으로 돌보고 있지만 열흘이 넘도록 그의 증세는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의원도, 김성준도, 하다못해 파출부 아줌마까지 온 집안 식구들이 근심에 휩싸인 것은 물론이었다. 집 안으로 부지런히 결재 서류를 들이밀고 있는 윤 실장의 표정만 봐도 회사 중역들의 시름이 어떠할지는 일목요연했다. 김성준은 워낙 스트레스와 쇼크가 커서 그럴 뿐이니 고통이 가라앉으면 금방 회복될 일시적 증상이라고 했는데, 말의 내용과는 다르게 표정엔 절망적인 색채가 농후했다. 그저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으아아아아!!!!! 아악!!!!!!”
다시 한 번 끔찍한 괴성이 집 안을 울렸다.
잠이 깬 탓에 이번엔 좀 더 선명하게 전해진 울부짖음이었다.
방음 시설은 딱히 안 돼 있어도 두꺼운 콘크리트 벽들에 의해 웬만한 소음은 그대로 삼켜지는 집이었다. 그런 벽과 벽 사이를 뚫고 저 정도로 집 안을 울리려면 대체 어느 만큼의 성량을 끌어올려야 하는 걸까. 자못 신기하기까지 했다. 하긴 실어증에 걸릴 정도로 고통받고 있는 내면이니 그 속에 쌓이고 쌓인 응어리가 얼마일까도 싶었다. 그 고통이 차마 얼마일까,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비명 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걸로 끝일 수도 있고, 혹은 몇 번 더 계속될 수도 있었다. 지난 열흘 내내, 줄곧 혼몽한 꿈속을 떠돌면서도 인지해낸 빈도수였다.
느릿느릿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간 볼일을 보는 이외에는 제대로 일어설 수가 없을 정도로 심하게 까부라지던 몸도 어느 정도는 기운이 돌아온 것 같았다. 어지럼증도 느껴졌지만 걸음을 못 걸을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었다. 항문과 생식기, 등줄기에 입었던 상처들도 거의 다 아물었는지 통증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비로소 그에게 손을 뻗을 수 있는 기운이 모인 것이다.
입고 있던 파자마 위에 나이트가운을 걸쳤다. 난방은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칠 정도여서, 하늘거리는 실크 한 겹을 걸친 것뿐인데도 한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곧바로 침실을 나와 거실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통로의 미등 몇 개만 밝히고 있어 거실은 전체적으로 어둑했다. 거의 20여일 만에 다시 제대로 보는 거실이었다. ‘우리 집’ 거실이었다. 제법 눈에 익은 가구들은 20일 전에 볼 때와는 많은 부분이 사뭇 달리 보였다. 훨씬 더 아름답고 훨씬 더 정감이 갔다. 정말 우리 집이로구나 하는 사랑스럽고도 애틋한 실감이 일었다. 노예로서가 아니라,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서 사물을 바라본다는 게 이토록 다른 거였다고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이 가는 곳마다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넸다. 새집에게 주는 첫인사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서재까지 도착하는 동안에도 눈에 차는 모든 가구와 벽들과 장식품들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주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나는 장인환이고, 너희들의 주인이야. 너희들의 또 다른 주인인 아름다운 남자의 연인이지. 앞으로 잘 지켜봐줘. 우리를 아껴줘. 우리도 너희들을 아껴줄게…….
아틀리에를 지나 서재 문 앞에 도착했다. 맨발이라 기척을 못 들었을 것 같아서 노크를 할까 싶었지만, 그냥 열고 들어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 고통을 준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인환 자신이었다. 손을 뻗을 때였다. 자신이 준 고통이니 자신이 거두어야 했다. 그가 아프면 자신은 더 아팠다. 그가 고통받으면 자신은 그 수천수만 배는 더 고통받는 것 같았다. 늘 그랬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했다. 그러니 반드시 구해내야만 했다. 노예로서가 아니라 동등한 한 인간으로서, 아니, 동등한 연인으로서 그가 저지른 과오를 단죄하고 마침내 구원해내야 할 터였다.
조용히 문을 열자 흐릿한 미명이 자신을 반겨 맞았다. 침실이나 거실과 마찬가지로 출입구 옆 사이드 조명만 마지못해 밝힌 상태였다. 창문 쪽을 제외한 삼면이 책장으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30평 남짓한 공간이 한눈에 밟혀들었다. 창가에 면한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과 그에 조금 못 미쳐, 커다란 직사각형의 회의용 탁자와 그 둘레를 빙 둘러싸고 있는 소파 세트를 제외하면 가구는 전무했다. 벽 사이드로 드문드문 놓인 대형 화분들과 책상 위의 데스크톱 컴퓨터, 그리고 책상 주변에 완벽하게 세팅된 첨단 오디오 시스템들이 그나마 가구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그 모든 사물들을 뒤로한 채 창가에 서서 정원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 정원을 굽어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지금 실제로 응시하고 있는 것은 창 밖 정원이 아니라 내면의 지옥일지도 몰랐다.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파자마에 나이트가운만 걸친 차림이었다. 맨발인 것도 자신과 한가지였다. 문소리도 살짝 나고, 자신의 기척도 들렸을 법한데도 등을 보인 그는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 잔뜩 굳은 것 같은 어깨 근육이며, 양옆으로 늘어뜨린 채 꽉 움켜쥔 주먹을 통해 그가 확실히 어둠 저편을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비명만 없다 뿐, 여전히 저 너머 심연 어딘가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 걸 그때 왜 날 버렸어?”
움찔 하고 그의 온몸이 회초리를 맞은 것처럼 진저리를 친다. 한동안 여전히 미동도 없다가 이윽고 천천히 돌아서는 그가 보였다. 초췌하다 못해 거의 해골 수준인 아름다운 얼굴이 이쪽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나마 수염이라도 말끔히 깎아선지 열흘 전처럼 아주 형편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시체처럼 창백한 뺨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평택의 감금장소에서 마주쳤을 때처럼, 소리를 삼킨 고요한 눈물이 쉴 새 없이 방울방울 흘러 떨어지고 있었다. 표정 또한 시체처럼 굳어 있어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쉼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도리어 위화감이 일 정도로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머루알처럼 새까만 눈망울은 그저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이었다.
“……그렇게 사랑했으면서 왜 버렸니?”
재차 상처를 던지자, 그제야 희미하게 눈빛이 흔들리는 게 보인다.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간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자신 곁으로 다가온다. 휘청거리는 걸음걸이를 보니 반쯤은 넋이 나간 것도 같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그에게서 익숙하고도 그리운 체취가 물씬 풍겨온다. 맡을 때마다 왈칵 서러움이 치밀곤 하는 그런 냄새다. 손가락들이 얼굴로 올라온다. 바들바들, 피아노를 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물쭈물 벌벌 떨고 있는 주제에 만지고는 싶은가 보다. 열 개의 손가락들이 뺨을 간질이고, 코를 건드리고, 입술을 더듬는다. 눈꺼풀을 만지작거릴 땐 더더욱 수전증이 심해진다. 완전 코끼리 바늘 꿰기다. 물론, 절절한 정성만은 하느님이다. 마치 미녀를 추행하는 야수인 양, 그렇게나 조심스럽고 또 경건할 수가 없다. 가슴이 짠하고 목이 꽉 멘다. 나쁜 놈. 또 눈물 나게 만드네…….
“……이렇게 후회할 걸 왜 버렸어?”
목멘 소리로 또 비수를 찔러본다. 움찔 하고 손가락들이 올 스톱을 한다. 고요한 눈물만 방울방울인 시체의 얼굴을 새초롬하니 노려본다. 고작 이거 갖고 놀래? 하는 으름장이다.
“……사랑한다면서 왜 그랬어? 너 바보지?”
“…….”
“……벙어리가 되면 다니? 그럼 덜 힘들어? 일어났던 일이 안 일어난 게 되나?”
“…….”
“……내가 더럽혀진 게 그렇게 힘들어? 지켜내지 못해서 미치겠니? 그럼 그땐 왜 버렸니? 휴지통에 걸레처럼 팽개쳐서 이리저리 구르고 뒤채다 결국 망가지도록 왜 버렸어? 응? 왜 그랬지?”
“……으…… 우…… 윽……!”
독하게, 독하게. 뇌리로 주문을 건다. 고름을 짜내야 한다. 그와 자신 사이에 맺힌 지독하고 지독한 고름을. 과연, 벌써부터 고통에 몸부림치는 거구의 몸뚱이다. 흠칫흠칫 새어나오는 단말마의 신음성은 괴롭기 짝이 없다. 죽고 싶어도 차마 죽을 수 없는 좀비 시체의 꼬락서니다. 자신의 얼굴에서 떨어져 나간 열손가락들이 바로 코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고 있다. 아파 죽겠는 모양새다. 가련하지만 어림없다. 아직 멀었다. 각오해도 좋아, 바보 멍청이.
“……말을 해봐. 왜 그랬는지. 그땐 더럽혀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니? 다른 사내들에게 수없이 강간당하고 맞아도 괜찮다고 웃었니? 너 영영 잃어버리고 살기도 싫어져서, 그냥 더러운 쓰레기 더미 속을 구르다 죽어버린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그랬니?”
“……으우으으으…… 으아아…… 아아…….”
“……맞구나.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구나. 그래. 그래서 그렇게 돼버린 거구나. 그렇게 돼버렸어. 네가 상관없다고 버리니까 다 그렇게 돼버렸지. 어떻게 됐냐구? 자세히 말해줄까? 내 구멍 속에 박힌 자지가 지금까지 몇 개인 줄이나 아니? 나도 잘 몰라. 하도 많아서 말이지.”
“으아아아아아아악!!!!!!!!!!”
결국 저 끔찍한 비명이 고래고래 내질러진다. 시체의 창백한 얼굴은 어느새 시뻘겋게 변해 있다. 목덜미와 관자놀이께로 굵게 튀어나온 혈관이 보인다. 소름 끼치는 단말마의 절규가 넘나드는 뻥 뚫린 입은 지옥으로 가는 입구처럼 음습하다. 기왕에 홍수를 만들고 있던 눈물은 완전 쓰나미의 기세로 퍼부어진다. 코앞에서 경련을 일으키던 열 손가락이 자신의 가운 앞자락을 와락 움켜쥔다. 그게 옷자락이 아닌 자신의 어깨나 팔이었다면 저 압도적인 힘으로 보건대 뼈에 금이라도 갔을 게다. 고통이 극에 달하면서도, 자신에겐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으려는 절절한 보호 본능이 읽히는 바람에 또 눈물이 난다. 젠장할. 진짜로 나쁜 놈이다. 울면 눈이 아픈데.
“……여기 보이니? 아아, 이제 보이네, 나도. 다 보인다. 여기. 너도 보여? 보이니? 여기 죽죽 그어진 흉터들 보이지? 여기도? 손목뿐이 아냐. 배에도 줄줄이 있어. 엄마 보는 앞에서 배에다 과도를 쑤셔 넣은 적도 있거든. 자, 봐봐. 여기야. 길쭉하게 실밥 자국 보이지?”
“으극! 흑!!! 흐욱!!! 흐아아아…… 악!!!!”
“……이 옆에도 보이니? 이것들은 언제 그런 건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 감옥에서겠지. 세상에, 나도 이제야 보인다. 정신과 의사들이 과거를 직시하면 보일 거라더니 진짜로 보이네? 너 그거 아니? 나 여태까지 내가 자해한 흔적들이 하나도 안 보인 거?”
“으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악!!!!!!”
“……피하지 말고 봐봐. 지금까진 나도 몰래 잘만 훔쳐본 거 같더만. 새삼스레 왜 그래? 보라니까? 진짜 흉하지? 완전 얼룩덜룩 온몸이 흉터투성이네? 세상에, 나도 이 정도인 줄은 진짜 몰랐다. 이런 지저분한 몸뚱이를 잘도 물고 빨고 했구나, 너.”
“으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악!!!!!!!!!!”
“그래도 이것들은 양반이지. 이래 봬도 다 내가 낸 상처들이니까. 근데 아래 구멍이랑 자지들은 더 가관인 거 아니? 감옥 안의 흉악범들이 얼마나 내 몸을 잘 갖고 논 줄 너 모르지? 걔네들 물건도 너처럼 무지하게 크다? 박힐 때마다 맨날 찢어지더라고. 일주일 내내 박히고 나면 똥도 제대로 못 눴어. 그렇게 박히다 똥 누면 완전 피칠갑이 되거든.”
“흐아악!!!! 아악!!!!!!! 으아아아아아!!!!!!”
“……그래서 똥 나올까 봐 밥도 굶어야 했지. 자지랑 불알도 그놈들이 더러운 입으로 어찌나 물고 빨고 하던지 상처랑 염증이 가실 날이 없었어. 사디스트한테 걸리면 담배빵까지 당했거든. 너 요새 나 오럴 자주 해주더라? 그때 못 봤니? 불알 밑에 담배빵 흉터 몇 개 있을 텐데?”
“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 아…… 아악!!!!!!!”
마침내 펑 하고 터져버렸다. 한계였나 보다. 길고 긴 소름 끼치는 비명을 끝으로 처참한 좀비 형상의 거구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무너진다. 양팔로 상체를 공처럼 끌어안은 채 바닥에 미친 듯이 이마를 부딪치고 있는 게 보인다. 탕탕탕, 탕탕. 흡사 망치 소리 같다. 그러다 지치면 미친 듯이 사지를 떨며 경련을 한다. 무릎을 꿇고 헐떡이듯 신음을 흘려대기도 한다. 경련하다, 자해하다, 혹은 신음하다, 아주 매우매우 바쁜 몸뚱이 되시겠다. 무슨 철천지원수라도 된 양 주로 방바닥을 미친 듯이 쳐댄다. 머리로도 치고 주먹으로도 친다. 제법 두껍고 보드라운 카펫이 깔려 있지만 워낙 기세가 거칠다 보니 혹 뇌진탕이라도 일으킬까 걱정이 된다. 예쁜 이마가 찢어져 흉터가 생기는 건 더 반대다. 자신이 너무나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신동의 우아한 손가락이 상하는 건 더, 더, 더 반대다. 어쩐지 좀 더 쥐어짜 내야 할 것도 같지만, 그의 안전에 대한 근심이 다른 모든 의지를 앗아간다. 어쨌든 그가 아픈 건 싫다. 견딜 수 없다. 그가 아프면 자신은 그 몇 배, 몇 천 배는 더 아파야 한다. 봐라. 지금 이렇게 자신의 온 넋도 철철 울고 있지 않느냐.
무릎을 꿇고 공처럼 웅크린 그의 앞에 마주 앉는다. 다시 머리로 방바닥 치기를 시도하려는 야수의 이마에 손바닥을 가져다댄다. 화덕처럼 뜨겁고 축축한 이마다. 자신의 손이 사이를 비집고 드니 광기 어린 자해가 그제야 멈춘다. 전류를 맞은 것처럼 얼음땡이 돼버리는 몸뚱이에 또다시 목이 멘다. 가만가만 이마를 쓰다듬는다. 땀으로 흠뻑 젖은 채 가닥가닥 붙어 있는 머리카락도 떼어주고, 축축한 땀도 손바닥으로 살살 닦아준다. 어느새 상처가 터졌는지 땀과 눈물 외에도 비릿한 쇠 냄새가 느껴진다. 그저 이마 한 번 만져준 것뿐인데 광란한 야수는 순식간에 길이 든 온순한 짐승으로 변태한다. 태아처럼 웅크린 몸이 얼음땡이 된 채 벌벌 떨고 있다. 좀 더 진정할 때까지 한참을 더 어루만져준다. 이윽고, 짐승의 오른손이 자신의 손목을 움켜잡는다. 바닥을 향했던 짐승의 고개가 천천히 들어 올려지는 게 보인다. 시선이 마주친다. 여전히 표정 없는 시커먼 심연의 눈이다. 하도 눈물을 흘려대니 눈시울이 온전할 리가 없다. 발갛게 충혈된 채 퉁퉁 부어올라, 잘생긴 라인은 심하게 허물어져 있다. 안타깝다. 얼마나 기적 같은 용모인데. 이마에 생긴 핏자국도 안타깝긴 한가지. 혹시라도 흉터가 생길까 봐 조마조마하다. 하긴 그래봤자 여전히 세상 누구보다도 예쁘고 예쁠 이목구비지만.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자, 움켜쥔 자신의 손을 입가로 가져가더니 가만가만 핥아댄다. 손가락 마디마디, 손톱 끝, 그 틈바구니, 손바닥은 물론 안쪽 손목까지, 단 한 군데도 놓치는 일이 없다. 마지막으로 빨고 물고, 입 맞추고 하는 곳은 자해의 흔적이 역력한 손목 안쪽이었다. 정확히 다섯 개의 오돌오돌한 융기가 길게 이어져 있다. 이리 심하게 흉터가 남을 정도로 다섯 번이나 그었는데도 족족 살아남은 것이 외려 기적이지 싶다.
가만히 저항하지 않고 있자 그가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상체를 일으켜 세운다. 손목을 잡고 있지 않은 다른 손이 뻗어와 잠시 뺨을 어루만지다간 좀 더 아래로 내려와 나이트가운 끈을 풀고, 이어 파자마 단추를 풀기 시작한다. 줄줄 흐르고 있는 눈물 외엔 무표정한 시체 그대로라, 섹스를 할 생각은 없는 줄 알았는데 의외지 싶다. 별로 반항할 생각도 없어서 가만히 있자, 그는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손가락으로도 수월하게 파자마 윗도리를 벗어 던진다. 무릎을 꿇고 있던 다리도 어느새 엉거주춤 일어나, 파자마 밑에 입고 있던 러닝은 물론 파자마 바지와 팬티까지도 한숨에 벗겨버렸다. 알몸에 다가드는 한기에 반사적으로 설핏 진저리를 치자, 그의 팔이 품 안으로 자신을 끌어들인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몸이 알을 품듯 한동안 자신을 품고 있었다. 마치 스스로의 온기를 나누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서재이다 보니 침실이나 거실보단 확실히 설정 온도가 낮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그의 체온을 나누어 가진 뒤 다시 조금 밀려났다.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그의 손가락이 배 쪽으로 다가온다. 손가락이 가 닿은 곳은 자해한 흉터 자국이었다. 살금살금 도둑질을 하듯 뚫어져라 응시하며 어루만지는 품새가 마치 뇌리에 각인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제야 그가 섹스를 할 생각으로 자신의 옷을 벗긴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손가락이 다음에 도착한 곳도 역시 자해한 흉터 자국이었다. 확인이라도 하듯, 그는 몇 번이나 이리저리 손가락들을 움직이며 흉터를 만져나갔다. 새로운 흉터에 시선 한 번, 다시 새로운 흉터에 시선 한 번, 그렇게 교대로 자신의 얼굴과 상처들을 번갈아 오락가락 보며 수를 헤아리고 있음을 알렸다. 아니, 애초에 그는 수십 번도 더 세어봤지만, 그동안 몰래 세어온 숫자들을 새삼 인환에게 각인시키려는 것으로 보였다. 참혹한 고통이 낙인처럼 찍힌 얼굴과 표정으로.
“……그래서 총 몇 개였어?”
끝없이 흘러내리는 고요한 눈물이 안타까워, 자신도 모르게 그의 뺨으로 손을 뻗으며 물어본다.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다. 자신 또한 눈물을 멈출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의미 없는 질문이라는 듯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고개를 내젓는다. 그의 손가락이 마지막으로 가 닿은 곳은 역시 왼쪽 손목을 길게 가로지르고 있는 상처였다. 다른 한쪽 손가락들은 그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던 자신의 오른쪽 손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게 왜 버렸어, 이 나쁜 놈아…….”
어루만지고 어루만지다 못해 기어코 자신의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마는 그에게 일갈한다.
“……날 사랑했다며…… 너무너무 사랑해서…… 버리고 싶지 않아서 미쳤었다며……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녀를 선택했다며…… 그녀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하는 척 속였다며…… 나도 속이고 그녀도 속였다며…… 이 못된 사기꾼…… 이 지독한 사기꾼에 거짓말쟁이에 나쁜 자식아…… 그럴 바엔 버리지 말지, 왜 그랬어…….”
“…….”
“……이렇게 후회할 걸…… 이렇게 아파할 걸 왜 그랬어, 왜…….”
“……우…… 우아…… 아…… 가…….”
“……혜윤인 어떡해…….”
“……으으…….”
“……어떡하냐구, 우리 혜윤인…….”
“…….”
“……말해주면 좋았잖아…….”
“…….”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좋았잖아…… 그럼 나도 그렇겐 안 미쳤을지도 모르잖아, 이 나쁜 놈아…….”
“…….”
“……나를…… 내가 널 그렇게 사랑하게 만들어놓곤…… 중독시켜놓곤…… 미치게 해놓구선…… 감쪽같이 아니라고 사기치고 버리니깐 나도 미친 거잖아…….”
“…….”
“……어? 말해봐, 이 나쁜 놈아…… 나쁜 새끼야…… 혜윤인 어떡하라구…… 이제 와 우리 혜윤인 어떡하라구…….”
“…….”
“……일어나봐, 나쁜 놈…… 고개 들고 대답이라도 좀 해. 울기만 하면 다니……?”
“…….”
“……좋아…… 들을 테니까 말해. 다 말해. ……내 사랑이 죄가 아니었니? 내가 널 사랑한 게 무의미한 짓거리가 아니었어? 그렇게나 아팠던 게 다 헛수고는 아니었니? 그래? 너도 날 진짜로 사랑했어? 사랑했던 거야?”
“…….”
“……울지만 말고 말을 해! 말을 안 하니까 더 아프잖아, 이 바보 새끼야!”
“……으…… 으…… 어…… 우…… 그…… 그…….”
“……뭐라구? 확실히 말해! 사랑하면 사랑한다, 아니면 아니다, 다 말해! 이번에야말로 정직하게!”
“……으…… 으…… 욱…… 사…… 랑……!”
“…….”
“……사…… 랑…… 해…….”
“…….”
“……그…… 그…… 으으…… 래…… 선생님…….”
“…….”
“……사…… 사랑해…… 사랑해…… 진짜로…… 진짜로 우리 선생님…….”
“……?”
“……나도 사랑해. 환장할 것처럼 사랑해, 선생님…….”
“…….”
한동안 말문을 열기 위해 기를 쓰던 그의 입술에서 비로소 언어다운 언어가 연달아 터져 나온다. 일단 한번 터지자 그다음은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역시 자신의 판단은 옳았다. 고름을 짜내고 해묵은 상처를 드러내고 나니, 그의 언어를 꽁꽁 묶고 있던 저주의 주술이 단숨에 풀려버린 것이다. 시체처럼 죽어 있던 눈에 처음으로 빛이 깃드는 광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먹빛 같은 동공이 번들번들 일렁이는 게 보인다. 격정이었다. 비로소, 그의 몸에서 생동하는 것이 눈물만은 아니게 되었다.
“……사랑한다…….”
두 손이 와락 움켜잡혔다. 바닥에 무릎으로 몸을 지지한 똑바른 자세로 그가 찍어 누를 것처럼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송곳처럼 똑바로 꽂혀드는 눈빛에 저도 모르게 덜컹 긴장해버린 자신이었다. 호흡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사랑한다, 장인환. 사랑해.”
“…….”
“……네 얼굴을 사랑해. 예쁘고 귀여운 이 얼굴…… 네 몸…… 예쁘고 예쁜 네 몸뚱이…… 볼 때마다 안고 싶어서 미친개처럼 침을 흘리게 되는 네 이 예쁜 몸뚱이도 사랑해. 사랑한다. 네 생식기도 사랑해. 세상에, 이 내가 사내새끼 음경을 미친 듯이 빨아먹고 싶을 만큼 사랑이란 걸 한다니, 믿어져?”
“…….”
“알겠지? 전부 다 사랑해. 네 착한 마음씨도, 다정함도, 상냥함도, 연약함도,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재능도, 섬세한 화가의 기질도 다 사랑해. 네 전부를 사랑해, 전부를…….”
“…….”
“장인환.”
“…….”
“장인환.”
“…….”
“장인환.”
“…….”
“선생님.”
“…….”
“……사랑한다…….”
“…….”
“……사랑해…… 죽을 때까지 당신만 사랑할 거야, 선생님.”
“…….”
“……당신뿐이야. 나 역시 일생 당신뿐일 거야, 선생님.”
“…….”
“……언젠가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당신 이외의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도 없을 거야…… 당신뿐이야…… 일생 당신뿐일 거야, 그러니까…….”
“…….”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풍족할 때나 가난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맹세해…… 맹세한다…… 그러니까…….”
“…….”
“……잘 들어, 선생님. 한 번만…… 딱 한 번만 말하는 거야…….”
“…….”
“……앞으로 다신 말하지 않을 테니까…… 딱 한 번만…….”
“…….”
“……딱 한 번이니까…… 딱 한 번만 말하는 거니까…….”
“…….”
“……사랑한다…….”
“…….”
“……사랑한다, 장인환. 사랑해.”
“…….”
“……그렇게…… 말했다…….”
“…….”
“……10년도 더 전에…… 아니, 정확히 12년 전에…… 봄에…… 축제 때…… 혜윤이 교통사고…… 그 밤에…… 곤드레만드레 취해서는 사랑스럽게 널브러진 네게 그렇게 확실히 말했어. 그렇게…… 널 사랑한다고…….”
눈두덩이 너무나 부어올라 제대로 눈을 뜨기도 힘든 모양이었다. 형형하게 일렁이는 심연의 눈은 그래도 기를 쓰고 자신의 시선을 물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눈물이라도 좀 그쳐주면 좋으련만 마치 홍수라도 난 것 같았다. 그래도 다시 시체가 될 것 같진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꿈이…… 아니었어……?”
멍하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홀린 듯 되물었다. 눈물은 자신 역시 걷잡을 수가 없었다. 미처 눈을 깜박거리기도 전에 빠르게 차올라, 맥없이 아래로 뚝뚝 흘러 떨어졌다.
“……그때도 그렇게 물었지, 너는. 이게 꿈이냐고…….”
“…….”
“……물론 꿈이라고 사기를 쳤다. 나는 네 말대로 능란한 사기꾼이었으니까.”
“…….”
“……정정한다, 장인환.”
“…….”
“……절대 꿈이 아니었지, 그건. 그러니 이건 두 번째 고백이다. 확실히 말하라고? 그래, 앞으론 헷갈리지 않게 확실히 말해주마. 사랑하면 사랑한다, 아니면 아니다, 다 말해주마. 이번에야말로 전부 다.”
“……나쁜…….”
“……그래, 나쁜 놈이지.”
“……주, 죽일…….”
“……그래, 내가 죽일 놈이었어.”
“……어…… 어떻게…… 이 나쁜…… 나…… 쁜…….”
“……그래, 네가 나쁜 게 아니었어. 네 사랑은 죄가 아니었다. 날 사랑해준 건 절대로 무의미한 짓이 아니었지. 그렇게나 아팠던 것도 다 헛수고가 아니었던 거야. 그래. 나도 널 사랑했으니까. 우리가 서로 사랑했던 거니까. 그 14년 전에, 너와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순간부터…….”
“……이…… 이이…….”
“……너를 만나 구원을 받았고, 너를 만나 삶을 사는 기쁨을 알았다. 너를 만나 성장할 수 있었고, 너를 만나 어른이 되었다. 너는 내가 가졌던 것들 중에 최고의 축복이었다.”
“…….”
목이 메어 더 이상 대꾸를 이을 수가 없었다. 그가 너무나 밉고 또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너무나 불쌍하고 또 불쌍해서 몸서리가 쳐졌다. 너무나 사랑하고 또 사랑해서 환장할 것만 같았다.
하느님! 아아, 하느님! 하느님, 어떡하면 좋아요! 우리 혜윤이를 어떡하면 좋아요……!
움켜잡힌 손을 사납게 뿌리치곤 그의 어깨를 주먹으로 퍽퍽 때리기 시작했다. 한 군데만 때리면 너무 아플까 봐, 차돌처럼 단단한 가슴팍도 쾅쾅 때리기 시작했다. 퍽퍽퍽, 쾅쾅. 퍽퍽, 쾅쾅쾅. 부서트리고 싶으리만치 미운데, 또 부서질까 봐 겁이 났다. 진짜로 부서지면 자신도 부서질 터였다. 그런데도 좀처럼 때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상처 입히는 짓을 멈출 수 없었다.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면서도 그는 미동조차 않은 채 자신의 폭력을 고스란히 견디고 있었다. 하도 울어서 제대로 뜨기도 힘든 눈꺼풀을 부릅뜨고, 무시무시한 열기를 품은 형형한 눈동자로 자신의 얼굴에 필사적으로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사랑해…… 사랑한다, 장인환. 과거에도 사랑했고, 현재에도 사랑하고, 미래에도 널 사랑할 거다. 내 인생에서, 넋에서, 품고 사랑할 연인이란 오로지 너뿐일 거다. 영원히 너 하나뿐일 거다. 그러니 용서하진 마라. 그런 널 잔인하게 차버렸던 날 죽어도 용서하진 마라. 상처 입게 방치하고, 죽게 내팽개치고, 사내들의 노리개로 돌려지고 돌려지다 못해, 결국 네 빛나는 생기를 말살시켜버린 날 절대로 용서하지 마라. 다만 사랑해다오. 사랑받을 자격 따윈 애저녁에 다 말려 죽인 등신 같은 새끼지만, 바보 천치 얼간이지만, 그래도 단 한 번만 봐다오. 그때처럼 날 사랑해다오. 영원히 사랑해다오. 내 것이 돼다오, 장인환…….”
“흐아아아아아!!!”
더 이상 팰 수도 없었다. 사지에 완전히 힘이 풀려버려 고작 고래고래 통곡을 터트리는 게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울음소리로라도 팰 수 있으면 패고 싶었다. 누군가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더니, 실은 꽃으로라도 때리고 싶은 나쁜 놈이었다. 세상에서 제일로 나쁜 새끼였다.
방바닥으로 주르륵 미끄러지는 사지를 억센 두 팔이 비호처럼 낚아채는 게 느껴졌다. 상반신이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등에 둘린 근육투성이 팔뚝이 막무가내로 조여대고 있었다. 하반신도 사정은 한가지였다. 어느 틈에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그가 자신을 품은 채로 다리를 친친 휘감아 들인 때문이었다. 우느라 벌어진 입으로 그의 나이트가운의 앞자락이 마구 밀려드는 통에 통곡 소리가 간간이 끊기거나 숨이 막힐 뻔하기도 했다. 미친 듯이 파고드는 그의 손가락들에 머리카락들이 마구 헤집어지고 있었다. 이리저리 뻗친 머리는 금세 까치집 형상이 되었다. 자신은 때리고 싶어 떨고, 그는 껴안느라 떨고, 서로 한 덩어리가 돼서는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어댔다. 무언가 무시무시한 게 뒤에서 쫓아오기라도 하는 양 그렇게 무섭게 떨어댔다. 제가 떠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그저 상대방이 떠는 것만 새가슴으로 조마조마 근심했다. 그만 떨지, 가슴이 미어지니까 제발 좀 그만 떨지, 그렇게 서로서로에 대해서만 걱정을 했다. 자신은 소리 내어 울고, 그는 소리 없이 울었다. 수분이란 수분은 죄다 바싹 마를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눈이 썩어문드러질 때까지 실컷 울었다. 불행히 수분은 죽을 때까지 마르지도, 눈도 죽을 때까지 썩어 문드러지지도 않을 거였다. 그러니 안심하고 언제까지나 울어도 좋을 거였다.
뎅, 뎅, 뎅……. 서재의 괘종시계가 세 번 울렸다.
한참을 어린애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었더니 목이 금세 쉬어버린 것 같았다. 기력도 완전 바닥나 더는 울부짖을 수가 없었다. 순전히 육체 문제로 울음을 그친 셈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치니까 따라 그쳤다. 그런 것 같았다. 자신이 진정하니 그도 진정하고, 자신이 덜 아파하니 그도 덜 아파했다. 그런 것 같았다. 아니, 그게 확실했다.
머리카락 속을 쑤시고 들 듯 격정적으로 쓰다듬고 있던 손길이 차츰차츰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자신의 등줄기며 엉덩이며 어깨 등등을 샅샅이 쓸고 돌아다니던 손바닥도 힘을 줄이는 대신 깃털처럼 보드라워지고 있었다. 부드러움을 못 견뎌 깜빡깜빡 졸았다가, 다시 깨어나 조금 훌쩍거렸다가, 얼굴로 그의 가슴팍에 부비부비도 하면서, 그렇게 비누거품처럼 달큰하고 상냥한 애무를 즐겼다. 그렇게 서로 껴안은 채 한참 동안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냈다. 휴식 같기도 하고, 위로 같기도 한 시간이었다. 그저 껴안고 몸을 붙인 채 체온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아니, 치료가 되었다. 자신도, 그도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상처가 너무나 커서 치료가 거의 불가능할 것 같긴 하지만, 일단 시도라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숨을 죽인 채 서로를 안고만 있었다. 설령 치료까지는 아니더라도 위로는 될 수 있을 터였으므로.
벌어진 마음의 상처로부터 철철 흘러내리던 핏줄기도 차츰 잦아들고 있었다. 고통도 그나마 견딜 수 있을 만큼 둔중한 것으로 변했다. 고통이 가라앉으니 곧 평화가 왔다. 평화를 따라 휘몰아치던 격정도 서서히 사그라졌다. 체온도 내려가는지 설핏 진저리가 쳐졌다. 반응은 즉시로 왔다. 그가 나이트가운과 파자마 앞섶을 한꺼번에 벌리더니 그 틈에 자신의 알몸을 쏙 집어넣어주었다. 남은 옷자락들은 그대로 자신의 등을 휘감았다.
기왕에도 뜨거웠던 그의 체온은 맨살에 닿자 용광로와 다름없었다. 그의 팔은 자신의 등과 허리를 껴안고, 자신의 팔은 그의 겨드랑이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단단한 팔뚝과 어깨를 어루만졌다. 비단처럼 매끈매끈한 살결을 더듬다가 문득 거칠게 도드라진 한 ‘고랑’을 자각하고 비몽사몽 헤매던 넋이 소스라쳤다. 자신이 움찔 긴장하자, 그가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 느껴졌다. 몸짓만으로도 그가 ‘왜?’ 하고 묻는 것을 알았다.
“……여기…… 뭔가가 있어…….”
잔뜩 쉰 목소리가 힘없이 기어 나왔다. 그의 등, 정확히는 오른쪽 어깨와 겨드랑이 사이에서 등 쪽으로 7센티쯤 들어간 지점이었다. 감촉만으로도 그게 꽤 심한 흉터 자국이라는 걸 알았다. 그 부분을 손가락으로 살살 문지르자, 그의 몸이 움찔 굳어드는 게 느껴졌다. 느슨하게 풀려 있던 평화가 낯선 긴장감으로 대체되었다. 알몸의 등허리를 주물주물 애무하던 그의 손길도, 뒤통수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던 또 다른 손길도 일순 얼음땡이 된 것은 물론이었다.
잔뜩 긴장한 그의 몸을 통해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것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건 바로 자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라는 사실도.
“……이건 흉터야…… 그렇지? 꽤 커다란 건데 왜 지금까지 몰랐지?”
―……그걸 선택적 기억 상실증이라고 하지요…….
자신의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대답처럼 들려왔다. 물론 뇌리 속에서.
―……소화할 수 있는 한계 이상의 심한 정신적 외상을 받았다거나 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짧은 순간만을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입니다. 그 순간의 기억뿐 아니라 그 기억에 관련된 모든 사물의 촉감, 소리, 냄새, 혹은 지식조차 완전히 망각하게 되는 거지요. 장인환 씨처럼 보여야 할 부분이 보이지 않거나 자각되지 않는 증상도 그런 선택적 기억 상실증의 한가지입니다. 심인성 기억 상실증이라고도 하지요…….
―……답답해하지 마세요. 과거를 직시하고 상처를 극복하게 되면 보이게 될 겁니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의 다른 말도 곧 연달아 재생되었다. 마치 수수께끼의 해답처럼. 그 누군가가 과거에 자신을 진찰한 적이 있는 수많은 정신과 의사들 중 한 명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보여줘, 위야……. 이제 볼 수 있을 것 같아…….”
얼음땡이 된 채 긴장으로 숨을 삼키고 있는 불쌍한 남자를 향해 조용히 부탁했다. 자신의 부탁이 떨어지자마자 움찔 어깨를 떨기까지 했다.
“……알았어……? 내가 이것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걸……?”
흉터 부위를 살살 어루만지며 재차 묻자, 그가 한숨처럼 “아아……” 하고 대꾸를 흘린다. 내키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 겁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지난 의료 기록들을 봤으니까…….”
“……그럼 잘 알겠네. 이젠 봐도 괜찮다는 걸…….”
“…….”
“……괜찮으니까 보여줘, 위야. 난 괜찮아. 이게 만져진다는 사실부터가 과거의 상처와 직면할 수 있게 됐다는 증거야. 아까 들었잖아. 내 상처들도 보이기 시작했다는 걸.”
말을 맺자마자 후욱 하는 괴상한 신음성과 함께 상반신이 또 으스러져라 조여들었다. 역시 겁을 내고 있었다. 자신이 새삼 충격을 받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물론 자신 역시 만지는 것과 보는 것이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반드시 봐주어야만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것도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서로의 상처를 자각하고, 해묵은 상처를 도려내고, 고름도 짜내고 하는 지금 이 순간에.
그의 가슴을 슬쩍 밀고 포옹에서 빠져나오려는 의사 표시를 했다. 한순간은 결사적으로 팔을 풀지 않으려던 그도 재차 “위야, 지금 보여줘. 지금 봐야만 해” 하고 재차 부탁하자 마지못해 팔 힘을 풀어주었다.
먼저 일어나 앉자 그가 따라 일어나 마주 앉는다. 한쪽 팔로 바닥을 짚고 반가부좌를 하고 앉은 그는 나머지 한 손으로 자신의 손목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상반신은 완전히 풀어헤쳐져 있고, 파자마 아랫도리도 치골에 걸린 채 성기 부위를 거의 드러내놓고 있어, 완전히 벌거벗은 자신보다도 더 선정적으로 보였다.
그에게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그의 가운과 파자마를 완전히 벗겨냈다. 완전히 드러난 근육질의 상반신에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무릎걸음으로 조금씩 그의 등 쪽으로 돌아갔다.
그건 5센티 길이에, 폭은 5밀리도 채 안 되는 살점이 위로 살짝 도드라진 흔적이었다. 앞에서 만졌을 때 얼추 상상한 그대로, 눈여겨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제법 크고 또렷한 흉터였다. 일단 부위 면에서도 오른쪽 등과 어깨 사이, 제법 눈에 잘 띄는 위치였고, 도드라진 부위의 피부 빛깔이 주변의 황금빛 피부와는 여실히 대조가 되는 옅은 핑크빛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보더라도 커다란 식칼에 찔린 흉터였다.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한 손가락으로 살살 만져보았다. 자신의 손목에 무수히 그어져 있는 것과 비슷한 감촉이 만져졌다. 감촉을 자각하자마자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무시무시한 기억들이 한순간 벼락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허나 그뿐이었다. 그것이 세세한 디테일로 재생되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다시 마음의 방어 기제가 작동한 덕분이리라.
그렇게 울고도 또 흘릴 눈물이 남아 있었던가. 오른쪽 뺨으로 뜨뜻한 감촉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치 보드라운 꽃잎을 어루만지듯 흉터를 가만가만 어루만졌다. 그는 조신한 새색시마냥 잔뜩 긴장한 채 자신이 하는 대로 가만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
“……여기만이 아니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앞에서도 한 번 찔렀었어…… 피는 거기서 더 많이 나왔었어…… 그랬을 거야…….”
움찔 하고 또 한 번 어깨가 들썩한다. 피식 실소를 흘리곤 무릎걸음으로 다시 그의 정면으로 되돌아왔다. 이번엔 그에게 잡혀 있던 한쪽 손을 들어 그의 가슴 쪽으로 가져갔다. 유두가 잡히는 가슴 근육을 상냥하게 어루만지다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치골 근처까지 더듬고 내려와서야 목적하던 것이 만져졌다. 물론 눈으로도 확연히 알아볼 수 있었다. 역시 오른쪽 치골 바로 위였다. 크기는 등 쪽의 흉터보다 훨씬 작았다. 그러나 그 역시 누가 보더라도 칼에 찔린 흉터임엔 분명했다.
가만가만 어루만지고, 문지르고, 또 눌러보았다. 뇌리에 철저히 각인될 수 있도록.
주르륵. 반대쪽 뺨에서 또 한 방울 흘러내린 것이 느껴졌다. 눈꺼풀 안쪽은 몹시 쓰리고 아팠다. 정말로 눈이 짓무를지도 모르겠다고 가만히 웃었다.
부리부리하게 뜨인 형형한 눈이 자신의 몸짓 하나하나를 삼키듯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도 마주 시선을 옮겨 갔다. 너무나 완벽해서 차라리 인간 같지 않은 아름다운 이목구비였다. 주르륵. 주륵. 연달아 흘러 떨어진 자신의 눈물에, 한동안 사라졌던 고통의 낙인이 연인의 얼굴을 다시금 선명하게 물들이는 것이 보였다. 발갛게 부어오른 연인의 눈에도 자신을 따라 물기가 차오르는 게 보였다. 정말 따라쟁이 팔불출이었다. 연인의 눈도 짓무를지 모르겠다고, 이번엔 진심으로 걱정을 했다. 그래도 웃어주었다. 울상을 지으면 연인은 더 아파할 거였다.
“……아팠니……?”
“…….”
“……그때 아팠지……? 아주 많이…….”
“…….”
“……그러게 왜 버리래…….”
“…….”
“……누가 버리랬어, 이 나쁜 놈아…….”
“…….”
“……이렇게 후회할 거면서…… 아플 거면서…… 그러면서 왜 버렸어…….”
“…….”
잡힌 팔목이 끌려들어가고, 이어 어깨가 끌어당겨지고, 곧 또 한 몸이 되었다.
용광로처럼 뜨겁고 아픈 체온이었다. 추위가 느껴지는 자신의 알몸엔 더할 나위 없는 위로였다. 치유였다. 등 뒤로 교차된 연인의 양팔이 필사적으로 자신을 품어들이고 있었다. 마주 팔을 뻗어 자신도 연인을 꼭 안아주었다. 연인이 자신의 입술에 키스하고, 자신도 연인에게 입을 맞춰주었다. 어루만지고, 쓸고, 꾹꾹 눌러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키스보다 많이 안고, 포옹보다 많이 키스했다. 포옹하고 키스하고, 다시 포옹하고 키스하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로 한 몸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팔로 감고, 다리로 옥죄고, 손가락과 혀로 깊이깊이 서로를 얽었다. 그렇게 서로를 꼭 품은 채 마냥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그저 한 몸처럼 체온을 나누는 것뿐인데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아니, 치료가 되었다. 자신도, 그도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서로 상처가 너무나 커서 치료가 거의 불가능할 것 같지만, 일단 시도라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숨을 죽인 채 서로를 꼭 품고만 있었다.
뎅, 뎅, 뎅, 뎅……. 서재의 괘종시계가 네 번 울렸다.
밤이 물러간다는 소리였다. 새벽이 온다는 사인이었다.
서로의 밤도 영원히 물러갔으면 하고 가만히 빌어보았다.
더는 아프지 않기를, 감히 소원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