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1994년 2월. 장인환(張仁歡)
새벽에 또 꿈을 꾸었다. 그의 꿈이었다.
보성 윤열 씨 본가에 놀러갔을 때의 꿈인 것 같았다. 마음의 작용이 어찌나 교활한지, 실제 일어났던 일과는 달리 교묘하게 윤색이 돼 있는, 그야말로 ‘꿈같을’ 꿈이었다. 붕어잡이를 한 냇가에서 멱을 감고 나와 근처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누웠는데, 그가 사랑이 듬뿍 담긴 눈길로 자신을 내려다보다가 키스를 해주는 꿈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한숨밖에 안 나오는 뚜렷한 이목구비가 감미로운 키스를 거듭하며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기쁨에 겨운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어딘가 묘한 슬픔이 느껴지기도 했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그에게 마주 키스를 하니, 그가 상냥한 몸짓으로 자신의 옷을 벗기고는 몸 안으로 들어왔다. 애틋하게 서로를 어루만지고, 부드럽게 허리를 흔들고, 따스한 입맞춤을 거듭 나누며 오르가슴에 올랐다. 기쁘면서도 슬픈 그런 꿈이었다.
심하게 터진 기침과 오한을 자각하며 깨어 일어나보니 누런 죄수복 아랫도리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눈물로 범벅이 돼 있는 얼굴 또한 축축했다. 옆자리에 웅크려 누워 있던 감방 동기 하나가 시끄럽다고 욕설을 내뱉곤 돌아눕는 게 보였다.
식은땀까지 뻘뻘 솟구치며 한동안 터져 나오던 기침이 겨우 잡혔다. 참으려는 의지가 작용했는지 몇 시간 전의 발작보다는 좀 더 수월하게 잡힌 것 같았다. 대신 오한과 열감은 더 심해져 있었다. 교도관에게 부탁해서 며칠째 감기약을 주워 먹는데도, 걸린 지 이미 3주가 가까워오는 감기 기운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춥고 열악한 감방 안의 환경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한계 이상 망가진 몸뚱이와 체력의 영향이 클 것이다. 약 때문에 오히려 원래 안 좋은 위까지 망가졌는지, 그제 아침부턴 설사까지 하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었다. 결국 약도 끊어버렸는데, 그 탓인지 감기 기운은 확실히 더 심해진 것 같았다.
다섯 명의 미결수 감방 동기들이 웅크려 자고 있는 어둑한 방 안을 더듬어 변기 겸 세면대가 놓인 위치로 걸어갔다. 덮고 자던 담요를 그대로 걸쳤는데도 오한은 여전히 멈추질 않았다. 머리까지 어질어질해서 동기들 몸 위로 걸려 넘어질까 봐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휴지를 뜯어 젖은 아랫도리와 얼굴을 닦아낸 후, 변기 뚜껑 위에 앉아 뜨겁게 토해지는 호흡을 골랐다.
눈을 감은 채 이런저런 육체의 통증과 불편을 삭이고 있는데,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것은 역시 좀 전에 꾼 꿈의 내용이었다. 떠올린 즉시 전신을 사로잡는 기쁨과 애절함에 깊은 죄의식을 느꼈다. 꿈에서라도 더는 보면 안 될 것 같은데, 자꾸만 그가 꿈에 나타나곤 하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이건 이제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고, 그저 광기에 찬 죄악일 뿐이라고 간신히 납득하고 인정을 했음에도, 몸뚱이만은 아직도 여전히 미련을 줄줄 흘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찰나의 꿈속에서나마 그를 만나고 기쁨을 느끼곤 하는 스스로가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아직은 자신 안에 자리한 사랑(이라 착각한 미친 집착)을 죽이는 일이 요원하단 말인가? 멍하니 자문을 흘리는 자신이었다.
자신이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혜윤이가 깨어나는 데 일조한다고 그는 말해주었었다. 죽도록 괴로워하며 살아가라고. 혜윤이가 깨어나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편히 안식에도 들지 말라고. 그러니 그의 명령을 지키려면 단 한순간도 기뻐하거나 행복해하면 안 될 일이었다. 설령 그게 꿈일지라도 말이다. 매번 그리 의지를 세워보는데도, 요망하고 이기적인 꿈은 좀체 자신의 의지를 따라줄 생각을 않고 있었다. 물론 언젠간 꿈속에서조차 그를 떠올리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야말로 자신의 안에서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연인이 아니게 된다. 그때야말로 비로소, 자신 안의 집착이 죽게 될 것이다.
이까지 딱딱 부딪칠 정도로 오한이 심해지는 바람에 다시 웅크려 잠을 청하던 공간으로 되돌아왔다. 초저녁과 이른 새벽에 한 번 보일러가 도는 것으로 아는데 오늘은 어째 방바닥이 여전히 차가웠다. 촘촘한 쇠창살로 틀어막힌, 열 평도 채 안 되는 공간 역시 입김이 보일 정도로 서늘했다. 담요를 둘둘 말아 덮고 태아처럼 몸을 웅크렸다. 오한은 여전하고 열도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또 기침의 발작이 터질 것 같아서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 건너 건너에서 웅크리고 잠든 감방 동기 하나가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바로 너머엔 심하게 코를 고는 사내도 하나 있었다. 화가로서, 혹은 예술가로서, 또 부잣집 사생아 도련님으로서는 상상조차 못했던 수면 환경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이쯤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더 괴로워하라고 했다. 죽도록 괴로워하라고 했다. 단 미리 죽지는 말고. 그럼 우리 불쌍한 누이 혜윤이가 깨어날지도 모른다고 했다. ……응, 그럴게……. 누군가에게 대답을 주었다. 더 이상 사랑해선 안 되는 그 누군가였다. 아니, 기억에조차 떠올리면 안 되는 그 누군가였다. ……더 많이 괴로워할게…… 죽도록 괴로워하며 속죄하며 살아보도록 할게……. 다짐하고 다짐하는 사이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또 그의 꿈을 꾸면 안 되는데.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단 하나의 의지였다.
다음 날 점호 시간 직전까지 일어나지 않는 자신을 감방 동기 중 하나가 발로 툭툭 차다가 혼수상태에 빠진 걸 알고 교도관을 불렀다고 한다. 이미 요주의 골칫덩이로 낙인이 찍힌(수없는 자해 시도와 발광 끝에 구금된 한 달 동안 내내 경찰병원을 들락거렸으니 그들로서도 치가 떨릴 터였다) 탓인지 처음엔 무시하던 교도관들도 이내 자신의 엄청난 열과 식은땀에 놀라 감옥 내 보건실로 급히 옮겼다고 했다. 보건 요원이 병원으로 옮겨야 할 것 같다고 해서 다시 경찰병원으로 후송이 되었다는데 자신으로선 모두 기억에 없었다. 폐렴이었다. 일주일 동안 입원을 했어야 할 만큼 상태가 심각했는데 첫날엔 쇼크로 심장 마비까지 왔었다고 한다. 물론 모두 기억에 없었다.
의식이 돌아오고 좀 더 거동이 가능해질 만큼 몸이 회복된 사흘째엔 도로 감방으로 돌려보내달라는 자신을 향해 담당 의사가 기어이 화를 폭발시켰다. ‘미친놈, 이거 줄 테니 죽으려면 당장에 죽어!’ 하고. 의사가 건넨 것은 가운 주머니에 꽂혀 있던 볼펜이었다. ‘목에다 찔러 넣으면 당장에 골로 간다!’ 재차 고함을 질러대며 윽박지르는 사내에게 ‘아직은 죽으면 안 된다’는 대꾸를 해서 사내를 더욱더 기가 막히게 만들었다. 사내가 화를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간 자신의 미친 발광을 고스란히 지켜봤으므로. 아마도 감방에 돌아가겠다는 얘기를 또 다른 자해나 자살 시도쯤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그저 병실 안이 감방에 비해 너무나 편안하고 따뜻했기에 내린 결정이건만, 말해봤자 의사는 이해 못 할 것이다. ‘수인 생활이 많이 힘드십니까?’라는, 누군가의 준엄한 물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라는 것도.
입원 마지막 날에 변호사와 엄마가 다시 면회를 왔다. 의사에게서 고열로 한때 생명이 위독했다는 말을 들은 엄마는 또 한동안 눈물을 멈추질 않아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 또한 괴로운 일이니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무조건 ‘괴로운’ 일이기만 하면 허용할 수 있었다.
변호사는 선고 공판일이 잡혔다고 했다. 12일이라고 했다.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며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신으로선 그저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전망이 어두울수록 좋다고 속내를 정직하게 말했다간 엄한 엄마의 속만 더 아프게 할 것 같아서였다. 될수록 무거운 형량이 잡히기를 빌었다. 물론 혜윤이가 깨어날 때까지 자신은 반드시 죽도록 괴로워해야 하기 때문에. 설령 일찍 출소한다고 해도 무언가 괴로운 환경을 찾거나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그곳에 칩거할 터였다.
그 이틀 후, 춥고 열악한 감방으로 되돌아와 나름대로 다행이라 여기고 있는데 다시 친구들의 면회 요청이 들어왔다. 오주희와 기하 선배, 경자가 찾아왔다고 했다. 물론 거절했다. 벌써 세 번째나 문전 박대를 했으니 더는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우정이 깊다는 것은 알지만, 더는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인생 낙오자에게 저들이 언제까지 의리를 지켜줄지는 알 수 없었다. 물론 영원한 의리를 맹세해준다 해도 자신 쪽에서 사절이었다. 자신은 ‘죽도록’ 괴로워해야만 했다. 일생 고독하고 아픈 길만을 걸어가야만 할 터였다. 그런 모진 여정에 소중한 친구들까지 끌어들이고픈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엄마가 넣어주고 간 영치금을 감방 동기들에게 전부 나눠주었다. 다들 좋아라 하면서도 품성이 거친 범죄자들답게 ‘저 새끼 진짜 미친 거 아냐?’ 하는 막말과 비아냥을 서슴지 않는 그들에게 만족했다. 영치금이 많으면 그만큼 감방 생활은 편해지기 마련이었다. 편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괴로워야만 했다. 그것도 죽도록. 죽고 싶어지도록. 그러나 절대 죽지는 말고.
마침내 형이 확정되었다. 2년 6개월의 실형이었다.
변호사는 생각보다 더 중형이 떨어졌다며 의아해했지만 사람을 셋이나 죽인데다(정확히는 사람 둘에 태아 하나) 그를 거의 죽음에 근접한 상태까지 데려갔던 대가치고는 대단히 약소한 처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혜윤이는 아직 죽은 게 아니라 식물인간 상태라 했고, 혜윤이가 유발한 사고로 죽은 오토바이 사내도 액면 그대로 자신이 죽인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법이 자신에게 단죄한 부분도 역시 그에 대한 살인 미수와 상해죄에 불과했다. 그러나 드러난 현실 이면의 것을 몰랐다면 모를까, 양심은 알고 있었다. 영혼은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손은 이제 물감만이 아니라 무고한 네 사람이 흘린 피로 영원히 더럽혀졌다는 것을. 그랬다. 자신의 정체성은 이제 더 이상 화가가 아니었다. 살인자였다. 그 어떤 징벌로도 온전히 씻어질 수 없을 극악무도한 죄인이었다.
선고가 내려진 이틀 후 영등포구치소를 나와 안양교도소로 이감되었다. 입소 후 처음 한 일은 미결수의 황토색 수의가 아니라 기결수의 푸른 수의로 갈아입고 검정 고무신을 신은 뒤 신체검사를 받은 것이었다. 다시 한 번 항문 검사도 받아야 했다(항문 안에 흉기를 숨길 수도 있다고 해서 재소자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안전상의 검사였다). 처음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될 때에도 흐릿하게 거부감을 느꼈었는데 안양교도소에서의 그것은 더 선뜩하고 음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교도관들이 더 거칠고 위압적인 때문인지도 몰랐다. 거부감만큼 사랑하는 누이 혜윤이를 깨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역시 반겨 맞은 자신이었다.
695번. 가슴에 붙은 자신의 수인 번호였다. 영등포구치소에서의 수인 번호는 1466번이었었다. 구치소에서도 그랬듯이 교도관들은 하나같이 장인환이라는 이름 대신 수인 번호로만 자신을 호명했다. 처음엔 번호를 기억하지도 못했고, 또 기억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다음에서야 자신을 부른다는 걸 자각하기 일쑤여서 교도관들이나 한 방 안의 다른 동기 재소자들의 눈총을 받곤 했었다. 물론, 오로지 죽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광기가 넋을 사로잡고 있던 때라 누군가가 자신의 옆에 있고, 그들이 또한 자신에게 눈총을 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거의 인지하지 못했었다. 얼추 제정신이 든 것은 엄마가 그의 면회 사실을 알려준 덕분이었다. 마지막 그와의 면담은 확실히 맹목의 눈을 뜨게 만든 계기가 되어주었다. 물론 여전히 지독하게 아픈 경험이었지만, 자신의 자살 시도나 자해 행위가 지금까지 이상으로 더욱더 이기적인 행태라는 것을 겨우 깨달을 수가 있었다. 또한 자신의 목숨 이외엔 달리 속죄할 방법이라곤 없다 여겼는데, 나름대로 다른 현명한 속죄 방법까지 알려주었으니, 참으로 고맙고도 고마운 면담이 아닐 수 없었다.
입소해 처음 배정받은 방에는 인환이 입소하기 전부터 방을 차지하고 있는 사내들이 여섯 명 더 있었다. 대부분 폭력과 강간, 사기 상해 치사 등등 무시무시한 죄목을 달고 있는 이들이었다. 초범인 이도 인환 혼자뿐이었다. 대부분이 전과 3∼4범이었고 대빵을 차지하고 있는 40대 사내는 무려 전과 7범이라고 했다. 대빵은 눈조차 마주치기가 겁이 나는 무시무시한 자였다. 방에 든 첫날, 입소식이라 해서 담요에 둘둘 말린 채 엄청 두들겨 맞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딱 보기에도 약골 같아 대빵이 너무 심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워낙 폭력이라는 것 자체와 인연이 없었던 자신인지라 그 ‘심하지 않은’ 폭력에도 팔이 부러졌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금만 간 상태라 깁스를 하고 일주일쯤 지나니 그다지 아프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물론 깁스는 한 달 동안이나 계속 하고 있어야 했는데, 그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다른 더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될 줄 그땐 차마 짐작조차 못 했던 자신이었다.
입소 후 일주일이 지났을 즈음엔 대충 감방 안의 생활에도 틀이 잡혀가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포함 총 일곱 명으로 이루어진 56호 교정실(감방)은 나름대로 위계질서가 철저하게 지켜지는 곳이었다. 대빵인 40대 남자 아래로 전과 4범인 사내 둘이 대빵의 보좌를 맡고 있고, 그 아래로 3범, 2범의 순이었다. 물론 맨 밑의 쫄다구는 자신이었는데 처음엔 그 분위기에 적응을 못 해서 여러 번 뺨을 얻어맞거나 발로 차여야 했다. 첫날처럼 팔이 부러지는 제법 큰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늘 피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물론 달게 받았다. 자신은 괴로워야만 했다. 그것도 죽도록. 아직은 그 ‘죽도록’이 아니어서 도리어 서운할 지경이었다.
아, 물론, 진짜 그 ‘죽도록’에 근접하는 일이 있긴 있었다. 대빵을 보좌하고 있는 3범 사내가 하나 있었는데, 이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지나칠 정도로 성욕이 넘쳐 보였다. 처음 눈이 마주친 그날부터 자신의 얼굴과 엉덩이를 끈적한 눈길로 훑곤 해서 간담이 서늘해졌었는데 입소한 지 사흘째 되는 날 밤 자신의 담요 속으로 기어 들어왔다. 등에 몸을 딱 붙인 채 가랑이를 내리더니 성기를 자신의 허벅지 사이에 밀어 넣고 허리를 흔들기 시작하지 않는가. 패닉에 빠져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데, ‘가만있지 않으면 죽인다’는 소름 끼치는 위협이 귓전에 전해졌다. 굳어진 몸이 풀린 것은 그즈음이었다. 정신없이 몸부림을 치며 사내를 밀어내곤 반대편 구석으로 가 와들와들 떨어야만 했다. ‘씨팔’ 하고 욕설을 내뱉는 사내를 향해 대빵의 명령이 떨어진 것은 그야말로 구원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시끄럽다.’ 단 한 마디뿐이었지만 사내의 기세를 죽이는 데는 그 이상의 찬물도 없었다. 결국 혼자서 수음을 하는 사내를 두려움에 차서 바라보아야 했다. 그렇다고 그 사내가 동성애자는 아니었는데, 감옥이라는 폐쇄된 공간 자체가 성별에 대한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기 때문일 터였다. 즉 일단 기분이 동하면 주변에서 가장 여자처럼 보이는 자가 타깃이 된다. 그리고 당연하다시피 자신은 타깃이 되기에 가장 적합한 용모와 분위기를 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날 밤만은 두려움에 벌벌 떨며 거의 날밤을 새우다시피 한 자신이었다. 그리고 후일 알았지만 동기인 그 사내 말고도 자신을 점찍은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또한, 그날 밤 자신을 만지며 수음을 하려 했던 사내가 킬킬거리며 음담패설처럼 들려준 얘기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어딜 다니든 몸조심을 하고 다니라고. 역시 간담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충고였다.
그래도 그나마 아직까진 딱히 힘들거나 괴로운 수형 생활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첫인상과는 달리 방장인 대빵 사내는 진중한 성격에 그다지 폭력적이지도 않아서 나름대로 감방의 규율을 잘 세우고 있었고, 나머지 사내들도 자주 가벼운 폭력을 행사하긴 했어도 그럭저럭 인환을 봐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것이 그들과 비슷한 상해 전과자로서의 예우라는 것을 아직은 모르고 있던 자신이었었다. 입소한 지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범죄에 얽힌 비화가 알려지고 또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그들의 호의적인 배려와 나름대로의 보호 행동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마초적인 남성성이 지고의 가치로 추앙되는 집단에서 ‘게이’의 정체성이란 버러지만도 못한 존재였다. 폐쇄된 성욕을 어쩌지 못해 서로 만지고 섹스를 할지언정, 그런 사내들조차 스스로를 게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행위를 하는 자체가 무엇에도 걸림 없는 남성성의 극치로까지 미화시키는 위선이 거기 있었던 것이다.
입소한 지 열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엄마가 다시 면회를 왔다. 충분하다고 하는데도 또 영치금을 한도까지 전해주며 눈물을 글썽여서 마음이 아팠음은 물론이었다. 자신이 아픈 건 상관없는데 엄마가 아픈 것은 아무리 해도 초연해지지가 않았다. 그저 넘어져 다친 것뿐이라고 하는데도 엄마는 연신 깁스한 팔만 들여다보며 눈물 섞인 한숨만 토해내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이 더 이상 자해를 하지 않고 어느 정도 정신적으로 평온해 보이는 점이 그나마 엄마에겐 희망을 주는 모양이었다. 그저 그가 고맙다는 말만 연신 되풀이하며, 자신을 죽여버려도 시원치 않을 텐데 이렇게 용서해주고 다시 살아갈 용기까지 주었으니 할 수만 있다면 만나서 무릎을 꿇고 인사라도 하고프다고 했다. 그가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용기를 주었는지를 안다면 물론 엄마는 지금과 같은 말은 하지 않겠지. 흐릿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엄마에게 동조를 하는 척하자, 엄마의 희망은 더더욱 불타오르는 모양이었다. 죽을죄를 지은 걸 생각해서라도 앞으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갈 궁리를 하라며 엄마 특유의 부드러운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그 청년에 대한 집착은 놓으라고. 그래야 천인공노할 죄를 빨리 갚는 길이라고. 전적으로 동감이어서 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었다. 만약, 이어지는 엄마의 한마디만 없었다면, 자신은 그렇게 엄마를 희망으로 잔뜩 고무시키는 것으로 면회를 끝마쳤을 터였다.
“……네 선고 공판이 있던 날 약혼녀와 결혼식을 올린 모양이더라. 그 소식을 듣고 보니 다 하늘의 섭리지 싶더구나.”
잠깐 동안은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입력이 되질 않았다. 이쪽을 건너다보는 엄마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눈치채고 나서야 자신의 낯빛이 꽤나 창백해졌다는 걸 얼추 깨달았다.
“……이, 인환이, 너…… 아, 아직도……?”
엄마의 더듬거리는 목소리가 순간 멍해진 의식을 일깨웠다. 거칠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인했다. 그럴 리가 있나. 그럴 리가 있나. 그토록 열심히 지우고 있는데. 그토록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는데. 사랑하지 않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사랑하면 안 돼. 이건 절대 사랑이 아니야.
“……아냐, 엄마. 그냥 좀 놀라서…… 진짜 우연치곤 하느님도 참 절묘하다 싶어서…….”
피식 실소를 흘리며 재차 부인하자 그제야 엄마의 굳은 얼굴이 풀리고 있었다.
그래. 그저 조금 놀란 것뿐이야.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호흡이 가빠지는 것 같은 건. 봐라.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그와 그녀에 관한 소식인데도 예전처럼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거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걸. 잘하고 있어. 아주 잘하고 있는 거야, 장인환. 이대로 계속 노력하다 보면 매일 밤 꿈속에서 그를 보는 일도 차츰 사라질 거야. 아무렴. 그렇고말고. 이건 사랑이 아니야. 그저 미친 집착일 뿐이지. 그것도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 무시무시한 집착 말이야…….
웃어주고 부인을 해도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감방 안 동료들 얘기로 화제를 전환했다. 다들 나름대로 자신을 잘 대해주고 있노라고. 거칠고 난폭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제법 의리도 있는 것 같고, 알고 보면 순진한 구석도 많은 사람들이라며 추켜세워주었다. 물론 대부분 과장이 섞인 평가였지만 이래저래 노심초사할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한 거짓말도 할 수 있었다. 순진한 엄마는 너무나 고맙다며 그들에게 줄 영치금도 준비해야겠다고 또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해서 자신을 아차 싶게 만들긴 했지만 말이다. 돈 자랑 하는 동료들은 외려 왕따를 당하게 된다는 말로 겨우 엄마를 만류했음은 물론이었다. 영등포구치소에 있을 때 영치금을 나눠주었다가 뒤로 욕설과 경멸을 들은 뒤에 얻게 된 산지식이었다. 그들은 동정으로 돈을 직접 하사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영치금을 빼앗는 쪽을 더 명예롭게 여기는 자들이었다.
몇 가지 위기가 있긴 했으나 그래도 얼추 성공적인 면회를 마무리하고 56호 교정실로 되돌아왔다. 돌아오는 내내 엄마의 그 특별한 한마디가 떠올라 가슴이 두근거리긴 했지만, 그럭저럭 평정을 유지할 순 있었다.
―……네 선고 공판이 있던 날 약혼녀와 결혼식을 올린 모양이더라…….
마음은 고요한데 이상할 정도로 뇌리를 떠나지 않는 한마디였다. 빨리 사라져라. 빨리. 약간 짜증이 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느끼며 뇌까린 자신이었다.
교정실로 돌아와 습관대로 대빵 이하 선배들에게 신고 인사를 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분위기가 싸늘했다. 평소라면 거칠지언정 나름대로 인간 대접은 해주는 그들 특유의 알은체를 해왔을 사내들인데 어째 방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두서넛은 혐오감이 그득한 눈길로 노려보기까지 했고, 가장 젊은(인환보다 네 살이 아래였으나 별은 세 개나 달린 나름대로 선배였다) 하나는 사나운 욕설까지 내뱉기도 했다. 방장인 대빵은 아예 자신을 쳐다보지조차 않았다. 알아서 기어야 하는 분위기인 것 같아서, 늘 자신이 앉아 있곤 하는 가장 쫄다구 자리인 변기 옆 구석으로 얌전히 가 앉았다. 막 바닥에 앉는 순간, 눈이 마주치자마자 욕설을 내뱉었던 사내가 나지막이 덧붙이는 소리를 들었다.
“씨팔, 더러운 절름발이 호모 새끼.”
잠시 아찔한 충격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리까지 휘청거려서 막 앉으려고 몸을 구부지지 않았다면 엉덩방아라도 찧었을 터였다. 서슬 퍼런 한기가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실제로 자신을 주시하는 사내는 없었지만, 차라리 대놓고 노려보는 편이 이토록 냉기 서린 무시보다는 훨씬 관대하게 느껴졌을 터였다.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아무것도 못 들은 척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별로 많이 타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았는데, 보니 손가락 끝이 아련히 떨리고 있었다. 살을 파고들어오는 것 같은 거친 사내들의 혐오와 증오가 조금 괴롭게 생각되었다. 물론, 괜찮았다. 어차피 언젠간 알려질지 모른다고 각오했던 일이었다. 생각보다 빠르긴 했지만 그 또한 엄마가 말한 ‘섭리’일 터였다. 괜찮아, 괜찮아. 위로인지 격려인지 자위인지 모를 뇌까림이 버릇처럼 스쳐갔다.
―……평생 괴로워하며 사세요.
시금석이 될 지침도 또한 따라서 뇌리를 스쳐갔다.
―……평생 어둠만을 좇으며 죄인답게 버러지처럼 살아가세요.
……응, 그럴게……. 지침을 준 누군가에게 대답을 주었다. 더 이상 사랑해선 안 되는 그 누군가였다. 아니, 될수록 기억에조차 떠올리면 안 되는 그 누군가였다. ……더 많이 괴로워할게…… 죽도록 괴로워하며 속죄하며 살아보도록 할게……. 떨리는 손끝을 마주잡으며 버릇이 된 약속을 주었다.
또 그의 꿈이었다.
안 돼. 그의 꿈을 꾸면 안 돼. 그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자각몽 비슷한 자신의 의식이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매일 밤 그의 꿈을 꾸는데다, 그런 자신을 필사적으로 억제하려 기를 쓰고 있는 터라 이젠 꿈속에서조차 자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깨어 있는 일부 의식이 아무리 제동을 건들, 압도적인 무의식의 욕망을 어쩌지는 못했다. 점점 더 확실해지는 그의 형상을 따라 달콤하고 나른한 기쁨이 넋을 사로잡고 있었다.
이번엔 처음 그에게 말을 걸던 날의 꿈이었다. 8월의 땡볕이 내리쬐고 있는 오주희의 아파트 앞이었다. 역시 꿈답게 제 좋을 대로의 윤색이 가해진 꿈이었다. ……너, 남자와도 거래해보지 않을래……? 속으로 벌벌 떨며, 그러나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은 그에게 대담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일체의 표정이 거의 없는, 아직 소년티가 조금 남아 있는 아름다운 청년의 얼굴이 조금씩 표정을 만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눈매가 부드럽게 휘더니 잘생긴 섹시한 입술 끝도 비죽 올라가는 게 보였다. 너무나 상냥하고 다정한 미소에 문득 가슴이 저린 자신이었다. ……사랑한다……. 그가 슬픈 음색으로 고백하고 있었다. ……사랑한다, 장인환. 사랑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다정한 반말로 애절하게 고백하고 있었다. ……응, 응…… 나도, 위야…… 나도 널 사랑해, 위위……. 이상하게 슬퍼져서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도 자신 또한 고백했다. 그가 울고 있는 자신을 품에 안아들였고 이어 다정한 애무와 함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엔 이미 그에게 안겨 있었다. 온갖 물감 냄새와 흐릿한 담배 냄새, 그리고 갖가지 화구와 완성된 캔버스들로 가득 들어차 있는 성북동 아틀리에의 침실 안이었다. 서로 연결된 채 그가 맹렬하게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위야…… 위위…… 위야……. 내내 안타까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교성을 흘리는 자신이었다. ……사랑…… 해…… 사랑해…… 위야…… 사랑해……. 어떡해도 이 벅찬 감정을 전할 길이 없어 그저 고백하고 또 고백하기만 했다. ……장인환…… 선생님…… 사랑한다…… 사랑해……. 죽을 때까지 당신만 사랑할 거야…… 잘 들어, 선생님…… 한 번만…… 딱 한 번만 말하는 거야…… 사랑한다…… 사랑한다, 장인환. 사랑해…….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절실한 고백을 주고 있었다. 역시 실제로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루어질 가능성조차 없는 절실한 고백이었다. 눈물과 기쁨과 웃음과 행복 속에서 그와 오르가슴을 맞고 있었다. ‘영원’ 같은 사랑이었다. 천국의 기쁨이 내리기 직전, 누군가 ‘그러지 마!’ 하고 제동을 걸었지만 무의식의 욕망은 언제나처럼 무시했다. ‘그러지 마! 그런 꿈을 꾸면 안 돼! 안 되는 거야! 그를 더 이상 사랑해선 안 되는 거야!’ 누군가가 절박하게 외치고 또 외치고 있었지만, 욕망은 원하는 대로 힘껏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산산이 부서져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큭큭큭…… 만져주니 좋은가 보지, 695번……?”
문득, 쇠를 긁는 듯 거칠고 낯선 목소리가 귓전을 파고들었다. 지독한 악취를 동반한 낯선 사내의 체취도 코끝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호모라서 그런가? 역시 달라…… 느끼는 소리 하며 요망스레 허릿짓 하는 거 하며, 천하의 명기 같어, 명기…….”
바로 귓가에서 재차 속삭이듯 떨어지는 탁한 목소리에 움찔 소스라쳤다. 지독한 악취는 사내가 숨을 토해낼 때마다 나는 입 냄새였다. 비몽사몽 속에서 수면기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심장이 무섭게 뛰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이미 육중한 사내의 몸에 완벽하게 깔린 터라 옴짝달싹할 수조차 없었다. 뒤에서 자신을 깔아뭉개고 있는 사내는 한 팔로는 자신의 깁스한 왼팔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팔로는 엎드려 누운 자신의 가랑이 사이 성기를 움켜쥐고 있었다. 꿈의 여운 탓인지 잔뜩 발기된 그것은 이미 한 차례 체액을 내뿜었는지 뜨겁고 축축한 감촉을 전해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는 것보다도 빠르게 자각이 되었다. 자각보다도 빠르게 취했던 몸짓은 물론, 기를 쓰고 반항을 하는 것이었다. 팔꿈치를 세워 등 뒤의 사내를 가격했고, 머리로 사내의 얼굴을 짓찧으며 박치기를 시도했다. 그 모든 시도들은 일부는 성공했고, 일부는 그 몇 배는 더할 타격으로 되돌아왔다. 움켜쥐어진 성기로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왔다. 사내의 손이 흡사 터트릴 기세로 엄청난 악력을 가한 때문이었다. 아악! 참지 못한 비명을 내질렀지만 ‘조용히 해.’하는 대빵의 제지는 더 이상 없었다. 대신 들려온 것은 대빵 아래, 56호 교정실 2인자인 사내의 킬킬대는 비아냥 소리였다. “소리 좋은데? 난 아무리 꼴려도 사내놈 똥구멍은 드러워서 싫더구만, 그 계집은 좀 다른 것 같네? 떠들지는 말고 처리해라. 성태 형님 주무시는 거 방해하면 너도 재미없을 기다, 좆발아.” 더 이상 꿈도 아니고 장난도 아니었다. 성기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몸이 돌려세워지더니 사내의 주먹이 얼굴 정면으로 날아왔다. 눈앞에서 불이 번쩍한 것 같았다. 코뼈가 부서지는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을 자각한 것과 동시에 의식이 점점 멀어졌다. 역시 저들은 지금까지 자신을 꽤나 봐주고 있었던 거라고 새삼 자각한 것이, 기절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뇌리를 스쳐간 생각이었다.
몇 분의 시간이 흐른 걸까? 얼굴과 항문 쪽으로 엄청난 통증을 자각하며 의식이 돌아왔다. 개구리처럼 엎드린 채 꿰뚫리고 있는 중이었다. 코피가 터졌는지, 꾸덕하게 마른 액체가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는 얼굴이 그나마 견딜 만했고, 하반신으로부터 올라오고 있는 것은 불에 지지는 것만 같은 지독한 통증이었다. 아랫도리 수의는 팬티와 함께 발목까지 벗겨져 있었다. 사내는 인환의 양팔을 십자가처럼 벌려 짓누른 채 등 뒤에서 덮치고 있었다. 입소 첫날 받은 인상대로 과도할 정도의 성욕을 가진 자였다. 성기만을 꺼내 든 채 그저 무식하게 박고 또 박기만 할 뿐인 행위가 거의 한 시간이 넘게 계속된 것 같았다. 잠깐 깨어났던 정신은 10여 분도 채 견디지 못하고 다시 기절했다. 순전히 육체적인 통증 때문이었다. 얼마 후에 도로 깨어났을 때에도 사내는 여전히 박고 있었다. 게이가 아닌 때문인지 얼굴을 정면에서 보고 하는 건 싫은 모양이었다. 내내 같은 후배위 자세만을 고집하는 게 나중엔 우스울 지경이었다. 이미 찢어져 피범벅이 돼 있을 하반신은 이제 아예 감각이 없을 지경이었다. 대신 한 시간 넘게 바닥에 거듭 쓸리고 있던 뺨이며 어깨, 그리고 무릎이 지독하게 아팠다. 처음의 충격이 사라지고, 두 번째로 기절했다 깨어났을 때부터는 무심한 체념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워낙 육체적인 통증이 극심했기 때문에 그저 빨리 끝나기만을 기도했을 정도였다. 마침내 세 번째로 기절했다 일어났을 때는 날이 밝아 있었다.
아침 점호에도 일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대신해 2인자인 사내가 좀 아픈 것 같다고 교도관에게 변명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일에는 이미 익숙한지, 담요로 덮인 자신의 몸뚱이를 흘낏 일별한 교도관은 모르는 체하며 방을 나갔을 뿐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러 나가는 사내들의 뒷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온몸에서 불덩어리처럼 열이 나고 있었다. 폐렴에 걸렸을 때처럼 전신이 바늘 끝으로 찌르는 것처럼 쑤셔댔다. 참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역시 마음의 고통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그것이 말로만 듣던 교도소 내 강간이라는 것도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다. 그저 몸도 마음도 많이 아프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내들이 몹시 두렵다는 생각도. 사내들이 모두 식당으로 사라질 때까지 온몸은 참을 수 없을 지경으로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영등포구치소에 있을 때에도 그랬지만 안양교도소에 이송돼서도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등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자신이었다. 아직까지도 담당 교도관들은 물론, 같은 56호 교정실의 재소자들 얼굴조차 단 하나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이었다. 그저 대충 그때그때 분위기와 인상으로 그들을 구분했을 뿐. 조용히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며 낯설고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는 데 급급했다. 그동안 사내들이 거칠긴 해도 나름대로 자신이 소화할 수 있을 만큼의 가벼운 폭력과 폭언을 행사했기에 자신도 그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러나 어젯밤과 오늘 아침의 기억은 그들에 대한 기존의 인식이 얼마나 안이했었는지를 뼈저리게 각성한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것이 시작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교도소나 군대 내에서 이루어지는 동성애자들의 강간과 강제 성추행 같은 인권 유린 관련 지식들도 얼추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때문이었다. 막상 그 무자비하고 지독한 것을 겪어보고 나니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 있는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감옥에 갇혔다는 실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들이닥친 또 다른 쇼크였다. 막연한 지식과 실제로 겪어보는 것은 그토록이나 차이가 있었다.
점심때가 돼도 일어나지 못하고 노역에도 참가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러 좀 더 높은 위치의 교도관이 56호실로 찾아왔다. 피멍으로 낭자한 코와 푸른 수의를 얼룩덜룩 물들이고 있는 하반신의 핏자국을 보고 단숨에 상황을 알아차린 사내는 인상을 잔뜩 쓰며 다른 교도관들을 불렀다. ‘고자질하면 죽어.’ 자신을 강간했던 사내가 위협적인 눈빛을 보내오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이미 온몸이 열로 펄펄 끓고 있어 반쯤은 정신이 나간 상태라, 감방 사내들의 파충류처럼 무감정한 시선에도 더는 두려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교도관들에게 양쪽에서 부축을 받으며 보건실로 옮겨졌다. 보건실 교도관이 ‘또 너냐?’ 하는 시선으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피얼룩투성이의 하반신을 발견했는지 이내 얼굴을 찌푸리곤 치료를 시작했다. 역시 이런 일엔 많이 익숙한 모양이었다. “게이라면서?” 코뼈가 부러진 건 아닌지를 확인한 다음, 항문을 소독하고 연고를 발라주며 사내가 무심하게 물어왔다. “하루빨리 아무나 힘센 놈 하나 잡아서 기둥서방으로 만들어. 그래야 고생이 덜해.” 대꾸가 없자 재차 떨어진 사내의 무심한 조언이었다.
항생제와 진정제 주사까지 맞고 곧 잠이 들었다. 꿈도 없는 잠이었다. 그 끔찍한 비극의 날 이래 매일 밤 꿈에 보이던 그가 처음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이상할 정도로 서늘하고 황량한 허무감이었다. 그와의 마지막 대면이 있은 후, 그토록 마음속으로 원했던 일이건만 이상하게도 기쁘다거나 시원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공허하고 슬플 뿐이었다.
……쇼크를 받아서일지도 몰라……. 어쩐지 그렇게 변명을 하는 자신이 있었다. ……안 그래? 너무 아팠잖아. 생각보다도 너무…… 그래, 진짜 괴로웠었지. 그래서일 거야. 그저 일시적인 상태일 뿐일 거야. 그러니깐 앞으로도 더 열심히 노력하자. 이건 사랑이 아니라고, 집착일 뿐이라고 매일매일 각인을 시키자. 그래야 해. 틀림없이 오늘 밤 꿈에도 다시 나타나고 말 테니까 말야……. 구질구질하다 싶을 정도로 구차한 변명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었다. 흡사 그토록 버려야만 한다고 세뇌를 시키는 중인 저 위험한 ‘집착’과도 닮아 있는 것 같다는, 은밀한 자각 따윈 모른 척해버렸다.
보건실 교도관이 가져다주는 식사를 하고 볼일을 보러 화장실 변기에 앉았다가 피만 한 사발이나 쏟아내야 했다. 눈물이 콸콸 쏟아질 정도로 아팠다. 정말이지 너무 아파서 어린애처럼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죽도록 괴로워하시며 사세요…….
통곡의 한가운데, 시금석이 될 지침이 홀연 떠올라왔다. 고통을 느낄 때마다 버릇처럼 떠올리곤 하는 신성 불가침의 명령이었다.
―……평생 어둠만을 좇으며 죄인답게 버러지처럼 살아가세요.
……응, 그럴게…….
지침을 준 누군가에게 대답을 주었다. 역시 버릇이 된 대꾸였다. 더 이상 사랑해선 안 되는 그 누군가였다. 아니, 될수록 기억에조차 떠올리면 안 되는 그 누군가였다.
……더 많이 괴로워할게…… 죽도록 괴로워하며 속죄하며 살아보도록 할게…….
홍수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을 두 손바닥으로 연신 훔쳐내며 버릇이 된 약속을 주었다.
―……그것이 혜윤이를 그렇게 만든 당신에게 내리는 벌이라 여기시고 무사히 살아가세요. 평생 어둠만을 좇으며 죄인답게 버러지처럼 살아가세요.
……응, 응…… 꼭 그렇게 할게…… 약속할게, 위야…….
마지막으로 입에 담아본 이름에 너무나 가슴이 떨려서 설움은 더욱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근데 있지, 위야…… 나, 만약 더 이상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로워지면 있지…… 그땐 나 또다시 쉬이 편해지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까도 너무 힘들었거든…… 진짜 많이 괴롭고 많이 무서웠어, 위야…… 그래서 부탁하는 건데 말야…… 만약…… 만약 나 여기서 너무 힘들어서 더는 견디지 못하게 되면 말이지…… 그땐 그냥 나 먼저 갈게…… 나중에 혹 알게 되더라도 나 너무 미워하진 마…… 응……? 그저 내가 너무 약골이라…… 너도 알다시피 내가 좀 철없는 도련님이잖니…… 세상 무서운 줄도 몰랐던…… 그니깐…… 만약 내가 참지 못하고 미리 가더라도 좀 용서해주라…… 혜윤이 깨어나는 것도 기다리지 못하고 나 먼저 가버렸다고…… 너무 화내지 말고…… 응? 내가 마지막으로 부탁할게, 위야…… 진짜야…… 이제 마지막이야…… 그런 거 같애…… 이제 진짜로 더 이상 네 이름을 기억에 떠올리는 일은 없을 거야…… 그니깐…… 그러니깐…….
끙끙거리며 엉금엉금 기다시피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똥구멍이 지독하게 아픈 탓인지 눈물이 좀처럼 멎지를 않았다. 괜찮아. 괜찮아. 버릇이 된 중얼거림을 흘렸다. 넌 좀 더 아파야 해. 좀 더 괴로워해야 해. 죽도록 괴로워해야 해. 물론 아주 죽지는 말고…….
겨우 보건실 침대에 도달해 누워 잠을 청했다. 그 누군가의 이름은 이제 다신 기억에 떠올릴 수 없지만, 무의식이야 자신의 의지 밖이니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빨리 잠이 들고 싶었다. 그저 너무 아프고 피곤해서일 뿐이었다. 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집착’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게 변명을 했다.
꿈조차 없는 잠이 이틀 동안 계속되었다.
아니, 꿈을 꾼 것 같긴 했다. 대부분 두서없거나 악몽 비슷한 것들이었다. 크림색 스웨터를 흠뻑 적시고 있는 피 얼룩과 식칼, 그리고 부서진 오토바이와 피로 더럽혀진 핑크색 곰돌이 양말 같은 것들이 소품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식은땀으로 전신을 흠씬 적시는 지독한 악몽이었다. 그가 더 이상 꿈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보건실에서 내리 이틀을 잠만 자며 보냈지만 어째 단 1초도 등장하지 않았다. 사내의 강간이 준 대미지는 그토록이나 지대했던 모양이었다.
56호 교정실로 돌아와 다시금 사내들의 난폭하고 잔인한 기류에 섞여들고 나서도 그런 증상은 매일 밤 되풀이되었다. 2월의 마지막 날도 한참을 지나, 교도소 담장 너머로 개나리꽃이 피는 봄이 왔어도 사정은 한가지였다. 의식적으로도 떠올리지 않는데다 꿈에서조차 보지 못하니 점차 그의 얼굴도 희미해지고 있었다.
교도소 단체 급식 식당에 설치돼 있는 조그만 흑백 TV에서 여의도 윤중로에 벚꽃이 피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밥을 먹는 것도 잊은 채 그 하얀 솜덩이 같은 화면 속 벚꽃을 넋을 잃고 바라본 자신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간 자신은 그 밤의 사내로부터 대여섯 번 더 강간을 당했다. 요즘 사내가 자신을 다른 난폭한 재소자들로부터 지켜주고 있는 쪽이니 너무 앙탈을 부리진 말라는 사내의 공치사도 들었다. 때때로 사내가 자신의 성기를 열심히 주무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발기하지 않는다며 투덜거리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언제부터 발기를 하지 않게 된 걸까?
날이 밝아 교정실에 혼자 있게 됐을 때 시험 삼아 자위를 해보았다. 요지부동이었다. 10분쯤, 땀이 뻘뻘 흐르게 될 때까지 해보았지만 역시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내의 행위가 워낙 거칠고 난폭한 때문이 아니었다. 이런 것도 괴로운 일에 속하는 걸까 하고 문득 자문해보았다. 잘 모르겠다는 답이 떨어졌다. 괴롭지도, 그렇다고 즐겁지도 않은, 그저 무덤덤한 느낌만 의식에 남아 있었다.
늘 자신을 욕망에 떨게 했던 그 누군가가 설핏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선 안 된다는 마음속 울림이 있었지만, 그저 시험 삼아 해보는 거니 그리 민감해질 필요는 없을 거라는 다른 울림도 들렸다. 그러고 보니 꽤나 오랫동안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리지 않던 존재였다. 꿈속에서조차 한가지였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이목구비의 형태조차 그저 아리송하기만 했다. 그래도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 그 누군가의 인상을 좇으며 성기를 주물렀다. 역시 요지부동이었다.
30여 분에 걸친 도로(徒勞) 끝에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토록 죽이고자 애쓴 사랑이, 아니, ‘집착’이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떠나갔다는 것을.
자각과 동시에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역시 이상할 정도로 서늘하고 황량한 허무감이었다. 그 누군가와의 마지막 대면이 있은 후, 그토록 마음속으로 원했던 일이건만 이상하게도 기쁘다거나 시원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공허하고 슬플 뿐이었다. 이제 그 누군가에 대해 남아 있는 집착이란 오로지 저 단 한 가지, 자신의 입버릇처럼 돼버린 ‘시금석’뿐이었다.
―……죽도록 괴로워하시며 사세요…….
다시금 그 누군가가 홀연 명령했다.
―……평생 어둠만을 좇으며 죄인답게 버러지처럼 살아가세요.
재차 명령했다.
……응, 그럴게…….
명령을 내려준 누군가에게 대답을 주었다. 역시 버릇이 된 대꾸였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그 누군가였다. 아니, 집착하지 않게 된 누군가였다. 이젠 기억에서조차 마냥 흐릿해져버린 그 누군가였다.
……더 많이 괴로워할게…… 죽도록 괴로워하며 속죄하며 살아보도록 할게…….
푸른 수의 속으로 축 늘어진 볼품없는 성기를 집어넣으며 버릇이 된 약속을 주었다.
―……그것이 혜윤이를 그렇게 만든 당신에게 내리는 벌이라 여기시고 무사히 살아가세요. 평생 어둠만을 좇으며 죄인답게 버러지처럼 살아가세요.
……응, 응…… 꼭 그렇게 할게…… 약속할게…….
되풀이, 되풀이해 맹세를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