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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99년 1월. 장인환(張仁歡) (101/129)

2. 1999년 1월. 장인환(張仁歡)

그의 꿈을 꾸었다. 

곧 함박눈이라도 내릴 듯 어둠침침한 하늘 때문이었을까? 그런 이상야릇한 꿈을 꾼 것이? 날이 날인지라, 카 센터에도 별로 손님이 없어 구석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었다. 그 잠깐의 토막잠에 놀랍게도 그를 만난 것이다.

깨고 나선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공허감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아련하고 애틋한 애수와도 닮은 어떤 것.

도대체 얼마 만에 그의 꿈을 꾼 걸까? 멍하니 햇수를 헤아려보는 자신이 있었다. 수감된 1994년 봄 이래로 그의 꿈을 꾸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아니, 실은 거의 없다고 봐야 옳았다. 그인지 아닌지 모호한 어떤 인상 같은 것을 나중에 깨고 나서 그가 아니었을까, 잠시 의심해보는 수준이 다였다. 그런데 좀 전에 꾼 꿈에 등장한 사람은 확실히 그가 맞았다. 확실하게 그의 꿈을 꾼 것은 그러니까 꼭 5년 만인 셈이었다.

이제는 기억에 떠올리려 해도 그저 흐릿한 인상으로만 남아 있는 남자였다. 한때 미친 듯 사랑했으나 실은 그게 사랑이 아니었던 남자. 그 남자에 대한 지독한 집착으로 자신은 죄인이 되었었다.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끔찍한 죄를 지었다.

그저 떠올리면 아픔과 고통뿐인 남자라,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거의 잊었다 여겼는데 그도 아닌 모양이었다. 이리도 뜬금없이 홀연 그의 꿈을 꾼 것을 보면 말이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자신의 모교인 홍대 캠퍼스 안인 모양이었다. 적어도 5센티는 쌓이고도 여전히 펑펑 쏟아지고 있는 함박눈의 기세는 조금도 줄어들 생각을 않고 있었다.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가 자신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기다리는 것을 유달리 싫어하는 남자였다. 질척하고 교통에도 지장을 주는 눈도 물론 꽤나 달가워하지 않는 남자였다. 폭설이 될 기세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는 눈보라 속에서 자신을 기다리다 혹시라도 그냥 가버릴까 봐 몹시도 초조했다. 선 화랑 동료들과 눈싸움을 하고 노느라 약속 시간을 그만 깜빡하고 말았다.

인환아. 인환아, 어딨어.

자신을 부르는 연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몇 번이나 되풀이되는 부름에 초조하고 안타까운 와중에도 기분은 날아갈 듯이 행복했다. 열심히 달리는데도 좀처럼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초조해하고 있는데 인문관 쪽에 면한 오솔길에서 이리로 시선을 주고 있는 그가 보였다. 자신과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한숨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이목구비가 살짝 찌푸려지는 게 보였다.

위야아아아…….

괴성에 가까울 커다란 부름을 던지며 그를 향해 마구 달려갔다. 두 팔을 하늘까지 쳐들어 마구마구 흔들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양팔을 벌리며 자신을 맞아주는 늠름한 가슴팍에 와락 뛰어들었다. 위야, 위야, 위야아아아아…….

멍청이. 내 그럴 줄 알았다.

품 안으로 폭 안겨드는 자신을 양팔로 마주 꼭 끌어안아주며 그가 타박을 던졌다. 꽁꽁 얼어붙은 자신의 두 손을 연인의 코트 깃을 열어 어미닭처럼 품어준 것은 물론이었다.

장갑이랑 목도리 꼭 하고 다니랬지.

차갑게 얼어붙은 뺨에도 쪽쪽, 입을 맞추며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 연인이었다.

어어, 미안. 까먹었어, 위야. 헤헤헤…….

한껏 애교를 담아 열심히 변명을 했다. 마음에 안 드는지 미간을 슬쩍 구기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입술에 끝도 없이 입을 맞춰준 그였다. 자신도 그에게 열심히 뽀뽀를 돌려주었다.

근데 참 이상했다. 아무리 많이 그와 입을 맞춰도 이상야릇한 갈증만 났다. 꼭 안아주는 그의 늠름한 몸을 자신도 양팔에 힘을 주어 으스러져라 안고 또 안았다. 아무리 힘껏 끌어안는데도 이상야릇한 공허와 슬픔이 느껴졌다.

사방이 온통 새하얗기만 했다.

겨울이었다.

한 몸이 된 두 개의 몸뚱이 위로 새하얀 눈 꽃잎들이 나풀나풀 휘날리고 있었다.

<환몽(幻夢)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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