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2003년 11월. 문위(文偉)
위는 사옥 현관 앞으로 막 들어서고 있는 자신의 검정 세단을 주시했다. 저녁 7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사위는 벌써 짙은 땅거미로 물들고 있었다. 초겨울 한기마저 코트 깃 틈으로 파고들자, 기왕의 초조감은 차츰 신경증적인 불안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움켜쥔 손에 지그시 힘을 더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코트 주머니 속에서 내내 만지작거린 탓인지 휴대전화에선 뜨끈한 열기마저 느껴졌다.
익숙해진 고통이지만 자신은 참을 것이고, 또 참다 보면 고통의 순간은 지나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당장이라도 연인에게 전화를 걸고 싶은 가쁜 충동만은 참기가 꽤나 힘이 들었다. 하지만 이 역시 자신은 참을 것이다. 연인과 떨어져 있을 때 하는 통화는 하루 두 번 이하로 할 것.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오늘은 오전 중에 한 번 통화했으니, 이제 허락된 것은 단 한 번.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다가 걸어볼 참이다. 30분 남짓이면 집에 도착할 테니 끝까지 참을 수 있다면 또한 금상첨화이겠고.
수시로 연인의 목소리라도 듣지 않으면 자신은 머저리처럼 겁에 질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성준이는 이도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가 낳은 일종의 공황 장애라 했다. 스스로가 내린 진단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젠 빼도 박도 못 할 미친놈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한들, 그저 병일 뿐이니 나으면 그만일 일이다. 엄살을 피울 생각은 없다. 이 또한 운명이 내린 대가이자 징벌이라면 오히려 고마워할 일이다. 무엇보다, 그런 자신의 상태까지 연인에게 알려진다면 연인에게도 더 이상의 평화는 없으리라. 곁으로 돌아가줄 때까지 자신을 근심하느라 어느 미친놈 못지않을 생지옥을 겪어내겠지.
묵직한 두통과 함께 식은땀이 솟아오르고 숨이 가빠왔다. 심장 고동도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였다. 공황 증세가 또 시작된 모양이었다. 하긴, 하루 종일 꽤나 잘 참는다 했더니.
기색을 읽은 윤 실장이 옆에 서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게 보였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사장님? 걱정스러운 눈빛에는 채 토해내지 못한 물음이 가득했다.
“……윤 실장도 그만 퇴근하세요. 내일도 정시 출근할 테니 그렇게 일정 준비해주십시오.”
떨리는 목소리를 가누기 위해 부러 차갑게 말하자 윤 실장이 대뜸 목례를 하고 뒤로 물러섰다. 오전에 ‘더 이상의 병자 취급은 사양합니다’로 시작되는 잔소리를 통해 속내를 알린 덕분이리라. 마침 차가 코앞에 당도해 고영석이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윤 실장에게 짧게 목례를 하고 바로 차에 올랐다. 차가 대로변으로 들어설 때까지도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않고 이쪽을 응시하는 윤 실장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더 이상 그쪽에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다. 한계였다.
손바닥 안에서 따끈하게 익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애써 가누며 단축 번호 1번을 눌렀다. 익숙한 신호음은 아득하게 여운을 끌었다.
이상했다. 1분이었나? 아니, 2분쯤이었나? 하여간 꽤 오래 신호음이 울린 것 같은데 연인의 목소리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숨이 가빠지다 못해 거의 먹힐 지경이었다. 침착해. 제발 침착해. 별일 아닐 거야. 휴대전화를 두고 욕실에라도 들어간 거겠지. 아니면 선잠이라도 든 건지 모르고.
맥이 풀린 손가락 끝에서 휴대전화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까스로 숨을 고르며 차창 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 가로등과 거리의 입간판 불빛들이 불길한 어둠 속에 반딧불들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익숙한 길인데도 정확히 어디쯤인지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질겁한 광증은 이러저러한 판단력들을 현저하게 떨어트리곤 했다. 하루빨리 증세를 호전시키지 않으면 안 될 까닭이 거기 있었다. 만약 이대로 정신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조만간 일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일 자체야 다른 누구에게든 넘기면 그만이라지만, 궁극에는 연인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히게 될까 그것이 가장 두려웠다.
조금 숨길이 트이자 이번엔 집 전화로 걸어보았다. 세 번 신호음이 가고, 곧 미스 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삼청동입니다. 얌전한 어린 아가씨를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는 배려조차 잊은 채 다짜고짜 연인의 상태부터 물었다.
[……서, 선생님이요? 저…… 아까부터 작업실에서 일하시는 것 같았는데요…… 전화를 안 받으세요? 이상하네…… 예! 예, 사장님! 지, 지금 당장 올라가보겠습니다! 빨리 전화 드리라고 말씀드릴게요! 네? 네, 넷! 그럼 사장님께서 곧 전화하신다고, 받으시라고만 전해드리겠습니다! ……예, 예에, 사장님! 걱정하시지 않게 잘 말씀드릴게요!]
미스 원의 당혹한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자신의 어조가 지독히도 위압적이고 냉랭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 그래도 자신만 보면 얼굴을 붉히고 수줍어하곤 하는 친구이니 많이 놀랐으리라. 어쩔 수가 없었다. 미친놈의 정서 불안을 숨기기 위한 자기 방편이니, 증세가 사라지지 않는 한 막돼먹은 고용주의 역할이라도 만족해야만 할 터였다.
전화를 끊은 채 물끄러미 시계 초침만 들여다보았다. 메이드가 작업실로 올라가 연인에게 전언을 줄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면 충분할까? 2분? 3분? 아니면 5분? 그래, 5분이면 충분하겠지. 식은땀이 얼굴과 등줄기를 축축하게 적셔왔다. 광증 속의 5분은 다섯 시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50시간과 맞먹을지도.
마침내 5분이 지났고 다시 연인의 단축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 끝은 긴장으로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아무 일도 없다. 아무 일도 없겠지. 그럴 거야. 이성과 광증이 맹렬하게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었다. 신호음이 아득하게 귓전을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받지 않는다. 여전히 받지 않았다. 열 번 이상이 울렸을 때에는 더 이상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다시금 호흡이 가빠오고 있었다. 입안이 마르고 심장이 불규칙한 세동을 거듭했다. 별일이야 있으려고. 그냥 잠이라도 든 거겠지. 깨우느라 늦는 걸 거야. 아무렴. 괜찮아.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그래, 5분만 더 기다렸다가 다시 걸어보자구. 그래, 일단 끊어. 끊어라, 문위…… 미친 새끼, 당장 끊으란 말이다……!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끝끝내 응답 없는 휴대전화를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강박증에 치가 떨렸다.
이를 악물고 간신히 폴더를 닫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사, 사장님……!]
어린 여자의 혼란스러운 목소리가 폴더를 타고 흘러들었다. 미스 원이었다. 불길한 전조처럼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는 공황 발작이 금방이라도 치고 올라올 것만 같았다. ……사라지면 안 돼! 또 사라지면 안 돼, 인환아! 그러면 나는…… 나는……!
“……무…… 슨…… 일입니까……?”
[……저기…… 저, 저기, 선생님께서…….]
“무슨 일입니까, 미스 원?!”
[……우…… 울고 계세요…… 저기…… 저기…… 그냥 막 울고 계셔서…… 어,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동안 너무 많이 울고 계셨나 봐요…… 누, 눈꺼풀이 막 퉁퉁 부으셔서…… 작업실에만 계셔서 저희는 그런 줄도 모르고…… 어디가 편찮으시냐고 여쭤봐도 그냥 아무 대답도 안 하시고…… 막 눈물만 펑펑 흘리시는데…… 저희들도 어째야 좋을지 몰라서…….]
“…….”
[……저기…… 의사 선생님이라도 불러야 하는지…….]
“…….”
[……사장님……?]
“그 사람 옆에 경호원들은 있습니까?”
[예, 예에! 그러잖아도 두 분 모두 지금 선생님 옆에서 지키고 계세요. 혹시 무슨 위험한 사고라도 생길까 봐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말고 지켜보라고 하세요. 혼자 있고 싶다고 해도 절대 들어주면 안 됩니다. 곧 도착하니까 의사를 부르는 일은 일단 보류해주세요.”
폴더를 닫고 순간순간 막혔던 숨을 길게 토해냈다. 등줄기의 식은땀은 서늘했고, 핏기를 잃은 두 손도 여전히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사라진 것은 아니니 됐다. 그것만 아니면 된다. 울고 있나? 또 상처 입었나? 아니, 기왕의 상처가 덧나버렸나? 괜찮다. 그런 것쯤은 언제든 각오한 일이니 괜찮다. 울면 눈물을 닦아주면 되고, 곪아 터진 상처는 핥아주면 된다. 아파하면 함께 아프도록 하지 무얼. 그러니, 괜찮다. 사라지지만 않으면 돼. 함께인 거면 살 수 있어. 그저 함께인 거면 충분해…….
거듭거듭 위로를 주는데도 겁에 질려 요동치기만 하는 미친놈의 육체는 좀처럼 진정의 기미가 없었다. 하느님, 제발……! 막 퇴근 시간대로 접어들어서인지 교통 체증의 기미가 보이자 차가 속도를 줄이는 것이 느껴졌다. 핑계를 발견한 광증이 묵혀둔 고름처럼 왈칵 터져 나왔다. 영석 씨, 속도 더 내요. 날카롭게 말하니 룸미러 너머로 고영석이 흠칫 시선을 보내왔다. 좀 막히는군요, 사장님. 슬그머니 흘러나온 변명에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샛길로 빠지든 어떻게든 속도를 내봐요! 능력 있잖습니까! 앞으로 10분 더 드리겠습니다. 10분 안에 집에 도착해주세요!”
벽력같은 고함 소리였다. 움찔 하고 고영석의 어깨가 떨리는 것 같더니 오른편에서 막 나타난 2차선 도로로 급하게 핸들을 트는 게 보였다. 급회전 탓에 자신의 몸도 반대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빨리! 더 빨리 달려요, 빨리! 빨리, 빨리, 빨리!!!”
짐승처럼 길길이 날뛰는 자신의 고함 소리가 이명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누구라도 염증이 날 만큼 한심스러운 작태였지만, 그런 자괴감조차 자각되지 않았다. 당장에 연인을 보지 않으면 정말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자신이 사라질까 봐 무서운 건지, 아니면 연인이 사라질까 봐 무서운 건지, 그조차 분별이 들지 않았다. 그저 두려울 뿐이었다. 이성은커녕 그 어떤 위로와 자기 암시로도 통제가 불가능한 두려움이었다. 저 밑바닥으로부터 기어 올라온 시커먼 어둠이 호시탐탐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 자신은 통째로 집어삼켜질 터였다.
“사장님……!”
검은 어둠 저편에서 고영석의 긴장된 부름 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소스라쳐 보니, 차창 너머로 익숙한 건물의 모습이 부옇게 떠올라 있었다. 거의 곡예에 가까운 운전 솜씨를 보여준 고영석이 긴 심호흡과 함께 현관 앞에 차를 세우고 있었다. 채 엔진 소리가 멎기도 전에 차 문을 박차고 나와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익숙한 얼굴들 몇이 불안한 표정으로 현관 앞에 죽 늘어서 있는 게 어렴풋이 자각되었지만, 인사를 받아줄 정신줄 따윈 물론 없었다. 집 안 곳곳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불빛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야는 어둑어둑하게 느껴졌다. 단숨에 4층 계단을 뛰어올라, 연인의 작업실 문을 열어젖혔다.
“사장님……!”
반사적으로 이쪽을 돌아보는 경호원 둘의 얼굴이 먼저 보였다. 그 너머, 4∼5미터쯤 떨어진 방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웅크리고 있는 왜소한 몸뚱이가 보였다. 연인이었다.
어둑어둑했던 시야가 서서히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비로소 자각하자 몸은 식은땀으로 푹 젖은 채였고, 입안에선 단내가 났다. 두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고, 전신의 맥이 탁 풀리는 바람에 당장이라도 연인의 앞에 고꾸라지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내야만 했다. 그나마 의지대로 버텨주는 사지가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봐도 봐도 가슴 저미게 그립기만 한 몸뚱이를 눈에 담고 보니 비로소 제대로 숨통이 틔었다. 패닉 상태에 돌입해 있던 육체도, 광증에 빠져 있던 정신도 서서히 제 길을 찾아갔다. 알고 있었다. 자신은 정상이어야만 했다. 혼자 고통으로 나자빠지는 한이 있어도 미칠 수만은 없었다. 적어도 연인 곁에서만큼은. 교활하기 짝이 없는 광기였다.
“……사장님, 아무래도 의사를…….”
뭐라 의견을 말하기 시작한 경호원을 눈빛으로 제지하고 연인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골수까지 찍어낼 기세로 소중한 몸뚱이 전부를 샅샅이 투시했다.
겨자색 니트 티에 연갈색 면 팬츠. 아침에 본 차림 그대로였다. 작업용 앞치마를 두르지 않은 걸 보니 작업 중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닌 듯했다. 울음소리는커녕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미미하게 떨리고 있는 어깨며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는 자세엔 차고도 넘칠 듯한 울음의 기색이 역력했다. 즉시로 공명한 넋은 흡사 기다렸다는 듯 마주 울음보를 터트리려 했다. 언제부턴가 주인의 말을 절대 안 듣는 눈시울이 금세 뜨거워졌다. 목구멍을 치받는 응어리에 몇 번이나 긴 심호흡을 삼켜야만 했다.
됐다고? 그저 사라지지만 않으면 된다고? 하. 이런 뻔뻔스러운 허세가 다 있을까. 될 턱이 없다. 괜찮을 까닭이 없다. 이렇게 아픈데, 가슴이 찢어지는데, 잘도 괜찮다고 허풍을 날릴 수 있었구나. 함께 있는 것만으론 충분하지가 않아.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데, 다신 울게 하고 싶지 않은데, 늘 울리고 만다. 묻지 않아도 안다. 저 가슴 저미는 비통의 원인은 오로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뿐이라는 것을. 그게 저주인지 축복인지는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그저 이제는 그만. 부디 제발 멈춰주었으면. 더 이상 연인을 상처 주는 자신 따위란 그저 연기처럼 증발해버렸으면.
“……인환아…….”
연인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흡사 신 앞에 오체투지를 하듯. 아니, 이 세상 끝, 우주 구석구석까지 통틀어 존재하는 그 어떤 위대한 신이라 한들 지금 이 순간의 연인보다 더한 경배를 받을 수는 없으리라.
연인의 어깨에 손을 가져가자, 니트티 아래로 연인의 마른 쇄골 마디가 고스란히 만져졌다. 고통과 두려움과 스스로에 대한 환멸을 필사적으로 숨긴 광신도의 손가락은 여전히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연인의 어깨에서 목덜미로, 이어 뺨으로 더듬더듬 기어 올라간 손바닥에 뜨겁고 흥건한 습기가 만져졌다. 인환아……! 간절한 부름의 언어는 채 토해지지 못한 채 목구멍에서 그대로 틀어막혔다. 습기를 자각한 순간 화석처럼 굳어버린 육체 때문이었다. 미동조차 없이 한동안 연인의 고요한 통곡에 공명해야 했다. 차라리 소리라도 내지. 그나마 덜 아플지도 모르잖나. 애틋한 원망마저 가슴을 저몄다. 뜨거운 습기는 화석이 된 손바닥 아래서 강물처럼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 끝이 어디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문득 뜨거워진 뺨이 자각되었다. 참지 못한 눈물이 기어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낭패감과 함께 몸을 옥죄고 있던 사슬이 풀어졌다. 겨우 연인의 위로 몸을 기울일 수가 있었다. 남은 한 팔로 연인을 보듬어 안고 동그란 정수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부드럽게 감겨드는 머리카락의 감촉과 폐부 가득 밀려드는 익숙한 체취에 새삼 억장이 무너졌다. 품 안의 가는 몸뚱이가 사무치도록 소중했다. 너무나 소중하고 소중해서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았다. 절대 울리고 싶지 않았다. 제발 더 이상은. 울지 마. 울지 마라, 제발. 제발…….
문득, 뒷덜미 위로 더듬거리는 손가락의 감촉이 느껴졌다. 연인이었다. 머리카락 틈새를 헤치고 들어온 손가락이 뒤통수와 관자놀이 사이를 오가며 어루만지고 있었다. 자신의 것 이상으로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는 손이었다. 굳은 듯 미동조차 보이지 않던 몸뚱이에서도 비로소 가는 떨림이 느껴졌다. 흡사 막 혈류의 흐름이 시작된 것 같은 느닷없는 전율이었다.
“……인환아, 제발…….”
겨우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연인에게서 생명의 흔적이 느껴지니 자신을 묶고 있던 주박도 풀리는 모양이었다. 대답처럼 천천히 고개를 드는 연인이 느껴졌다. 연인을 따라 자신도 얼굴을 들었다. 연인이 태아 자세를 풀고 몸을 일으킨 탓에 포옹은 풀어주었지만, 상반신을 휘감은 양팔의 힘은 풀지 않았다. 덕분에 10센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연인의 얼굴이 보였다. 각오는 했으나 온통 눈물범벅인 얼굴은 역시 지독한 상처였다. 사랑스러운 이목구비가 열기로 불그스름해진 채 퉁퉁 부어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울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 언어를 돌려준 그 밤에도 연인의 얼굴은 저렇게 참담했었으니까.
“……울지 마……. 울지 마라, 제발…….”
멍하니 중얼거려보는데 연인의 입가가 위로 희미하게 올라가는 게 보였다. 미소였다. 좀처럼 믿기 힘들었지만 연인은 웃고 있었다. 쓰라린 회한이 담긴 예쁜 눈동자는 여전히 홍수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입술만은 틀림없이 웃고 있었다.
“……인환아……?”
뺨으로 깃털처럼 부드러운 감촉이 내려왔다. 자신의 머리카락 틈새를 어루만지고 있던 연인의 손이었다. 가만가만 어루만지는 연인의 손바닥 위로 역시 홍수 같은 눈물이 닦이고 있었다.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자신의 것이었다.
“……누가 따라쟁이 아니랄까 봐…….”
웃음기가 묻어나는 핀잔. 잔뜩 쉰, 필사적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제대로 알아듣기도 힘들 만큼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뒤에서 아득하게 문소리도 들린 것 같았다. 경호원들이 방을 나가는 소리였다. 자신보다 먼저 연인의 웃음기를 포착한 것으로, 그리 위험한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여…… 행…… 가야 해…….”
퉁퉁 부은 눈꺼풀 너머 멍하니 흔들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여행이라는 단어와 어딘가 먼 곳을 헤매는 것 같은 아련한 눈빛에 다시금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간다고? 또 사라질 거라고? 또 날 버린다고? 안 돼. 가긴 어딜 가. 못 가. 안 보내. 안 보낸다, 장인환. 당장이라도 목구멍 밖으로 터져 나올 것 같은 편집증적 절규가 뇌리에서 들끓었다. 이미 먼 곳을 달리고 있는 듯한 연인의 넋을 끌어오기 위해 기를 써야만 했다. 넋을 끌어올 수 없다면 저 시선만이라도 자신에게 묶어놔야 했다. 자신의 눈동자에 갈퀴라도 달고픈 미친 욕구까지 일었다.
“……어딜 보는 거냐? 나를 봐라…… 제발 나를 봐…….”
끊임없이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는 연인의 손등에 자신의 손바닥을 포갠 채 으르렁거렸다. 들끓는 마음만큼 난폭하고 무도한 손길이었다. 소중하고 소중해서 차마 손대기도 겁을 냈던 몇 분 전의 자신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홀연 시선을 맞춘 연인이 다시 한 번 살풋 웃음을 머금었다. 이번엔 눈동자 깊숙이까지 가 닿은 확실한 웃음이었다.
“……응, 보고 있어…… 나는 항상 너만 보고 있어…… 그러니까 화내지 마, 위야…….”
“…….”
“……근데 여행 가야 해…… 일본…… 신혼여행…….”
“……?”
“……주셨어…… 항공권…… 료칸에 예약도 해줬다……? 누가 해줬는지 알면 너 진짜 까무러친다……? 진짜야…… 넌 내 따라쟁이니깐…….”
“인환아……?”
“……갈 수 있어…… 이제 너랑 가도 아무도 뭐라고 안 그래…… 이제 아무도…… 더러운 호모가 너 꼬여냈다고 손가락질 같은 거 안 해…… 허락해줬어…… 휘야 군이…… 휘야 군이…… 있지, 위야…… 윤열 씨랑 휘야 군이랑 있지, 오늘…… 그러니까 이제 진짜 결혼도 하고…… 신혼여행도 하고…… 그런 거 너랑 나랑 다 해도…… 남들처럼…… 보통 연인처럼…… 사랑해도 되고…… 부부가 돼서…… 가족…… 너랑…… 가족…… 모두 한 가족…… 나도…… 너랑…… 윤열 씨랑…… 휘야 군이랑…… 혜윤이랑…… 혜윤이…… 우리 불쌍한 혜윤이…… 성준 씨랑 모두 다…… 그러니까 울 엄마도 함께면 진짜 좋을 텐데…… 그래도 뭐…….”
“…….”
웃음기와 함께 잦아든 것 같던 눈물보가 도로 봇물처럼 터지고 있었다. 와들와들 떨기 시작한 연인의 가는 몸은 흡사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진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얼굴은 하회탈처럼 일그러진 채 웃고, 눈시울은 이러다 아예 짓무르는 게 아닐까 질겁할 지경으로 온통 눈물바다였다. 차마 더는 볼 수가 없어 와락, 품 안에 끌어안았다.
“……인환아…….”
아기 새처럼 보듬어 안고 필사적으로 쓰다듬기를 거듭해도 연인은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속수무책이었다. 무슨 수를 쓴대도 당분간은 흥분을 멈추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나마 횡설수설 떨어지는 말마디에서 연인에게 이토록이나 충격을 준 까닭을 짚어낼 수 있었지만, 그를 액면 그대로 기뻐하고픈 생각은 손톱만큼도 들지 않았다. 히스테리에 가까운 기쁨의 폭발은 기왕의 지독한 상처를 담보로 한 대가였다. 이럴 바엔 차라리 덜 기뻐해주는 게 나았다.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주는 게 더 나았다. 아니, 차라리 휘야에게 그러지 말라고 할 걸 그랬다. 그제 저녁, 녀석이 정식으로 사과하고 형수가 돼달라 부탁할 거라고 말해주었을 때, 냉큼 좋아라 하지 말 걸 그랬다. 조금쯤은 더 시간이 지난 다음에, 언젠가 연인의 상처가 조금은 더 아물었을 그때 하라고 할 걸 그랬다. 어차피 이제 한 가족인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서둘러 매듭을 지으려 했을까, 자신은.
“……결혼했으니까…… 신혼여행 가도 된다고…… 그러니깐…… 이제 너 안아도 되고…… 이제 죄받는 거 아니지, 위야? 응……? 그러니깐…… 그러니깐…… 이제 이렇게 너 만져도…… 키스해도…… 껴안고 키스해도…… 안기고…… 맘껏…… 맘껏…… 이렇게 마음껏 해도…….”
“……인환아!”
가만가만 얼굴을 쓰다듬던 손가락들이 사라지고 대신 뜨겁게 달아오른 연인의 입술이 자신의 얼굴 이곳저곳을 뒤덮기 시작했다. 이마와 눈썹산과 눈꺼풀과 양쪽 뺨과 턱 끝과 미간과 콧등, 그리고 입술이 번갈아가며 맹렬히 핥아지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흥분을 진정시키기 위해 연인을 밀어내려 했지만, 연인은 가슴이 아릴 만큼 필사적이었다. 물감 냄새가 가득 밴 연인의 뭉툭한 손가락이 기를 쓰고 자신의 양쪽 코트 깃을 움켜쥐고 있었다. 마디가 하얗게 드러날 정도로 힘이 들어간 손가락에 시선이 가 닿자, 떼어내기는커녕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는 연인의 이것이 정열인지 히스테리인지 몰랐다. 더 이상 상관이 없을 것도 같았다. 그저 무엇이든 연인이 하고 싶어하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타오르고 타오르다 끝내는 죽음이 덮친다 해도, 그로써 연인의 곪아터진 상처가 치유될 수만 있다면 뭐든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억지로 진정시키려는 기도를 포기하고 두 사람분의 체중을 지탱하고 있던 다리의 힘을 풀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연인의 온몸이 통째로 덮쳐들었다. 바닥에 부딪친 등과 뒤통수로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개의치 않았다. 최대한 연인이 다치지 않도록 연인의 허리를 품은 채 일체의 저항을 멈췄다. 연인의 회오리 같은 키스가 얼굴 곳곳을 삼키고 있었다. 좀처럼 눈을 뜨기 힘들 지경이었다. 양팔은 코트 깃을 옥죄고, 양쪽 다리는 갈퀴처럼 자신의 다리를 죄어들었다. 평소의 연약하고 수동적인 몸짓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거칠고 우악스러운 힘이었다. 상처 입은 짐승의 몸부림과 흡사하기만 해서 설움만 사무쳤다. 가슴 저린 포옹도, 키스의 소나기도 절대 막지 않았다. 그저 눈을 부릅뜬 채 연인만 삼킬 듯 응시했다. 그래…… 함께 가자……. 그저 이렇게 함께만 가자, 인환아…….
문득 겹쳐진 사타구니 사이로 딱딱한 무언인가가 스쳐갔다.
두근…….
순간, 회초리를 맞은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설마……?
심장이 움직임을 멈춘 것만 같았다. 당장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어든 몸이 방바닥에 이리저리 부딪치며 미세한 소음을 흘리고 있었다. 바닥을 덮고 있는 부드러운 카펫 탓에 거의 들리지도 않는 그것엔 일정한 리듬이 있었다. 퉁, 퉁, 퉁, 퉁……. 퉁, 퉁……. 소리 없는 계시처럼, 리듬은 사타구니와 엉덩이 근처에서 확실하게 존재감을 잡아가고 있었다. 설마가 아니었다. 아랫배와 사타구니 사이를 규칙적인 리듬으로 치대고 있는 것은 딱딱하게 굳은 그 무엇인가였다.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연인이 다친 이래, 여간해선 욕망을 느끼지 않는 자신을 알고 있었다. 아니, 욕망을 느끼지 않기로 작정을 한 자신을 알고 있었다. 하느님! 그러니 이것은 연인의 것이 틀림없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잠시 멈춘 듯했던 심장이 다시금 맹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눈을 부릅뜬 채 필사적으로 연인에게 시선을 맞췄다. 새빨갛게 핏발이 선 연인의 눈시울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여전히 홍수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는 가슴 저린 모습이었다. 붉게 달아오른 뺨과 이마와 콧날도 보였다. 석류처럼 새빨갛게 부풀어 오른 입술은 자신의 온 얼굴을 타액 범벅으로 만들고 있었다. 흥분하다 못해 황홀경에 빠진 수컷의 얼굴이 보였다. 내 것이었다. 사랑스러운 내 것의 얼굴이었다.
“……아…… 아아…… 아……! 이…… 인…… 아……!”
하느님. 아아, 하느님! 인환아! 인환아, 인환아, 인환아!!!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내 것의 흥분이 문제가 아니었다. 머릿속이 텅 비며 지난 14년간의 기억들이 해일처럼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내 것을 만나고, 사랑하고, 버리고, 되찾고, 또 버려지고…… 낯설어했고, 설레었고, 또는 수줍었으며, 좋아했고, 좋아한 나머지 상처 입고, 상처를 입히고, 결국엔 미친 듯이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맞닥뜨려야만 했던 절망의 묵시록이었다. 내 것과의 역사였다.
“……아……! 아아……! 이…… 인……!”
기왕에 와들와들 떨리고 있던 사지는 더 이상 가누기 힘들 만큼 경련을 시작하고 있었다. 심장은 폭발할 것처럼 빠르게 뛰고, 뜨거운 열기가 정수리 끝까지 치고 올라왔다. 믿을 수 없으리만큼 지독한 희열이 온 넋을 사로잡고 있었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하는데, 내 사랑스러운 것의 이름이라도 부르고 싶은데, 머저리처럼 웅얼웅얼 떨리고 있는 입술에선 제대로 된 소리라곤 터져 나오지 않았다. 온몸의 세포란 세포가 화염처럼 달아오르고, 순식간에 아랫도리로 혈류가 모여들며 성기가 뻣뻣해졌다. 교수대에 매달린 사형수처럼 머릿속이 몽롱해지고, 맹수에 뒤쫓기는 들개 떼마냥 숨이 헐떡거렸다. 느닷없이 닥친 극상의 지복감은 제정신으론 도무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흥분한 채 자신에게 막무가내로 달려들고 있는 내 것을 보호할 기력은커녕, 의지조차도 깡그리 날아갔다. 너라도 정신을 차리라고, 그래야 내 것이 다치지 않는다고, 짜부라져 시체만 남은 이성이 명령하는 소리가 아득하게 뇌리를 스쳐갔다. 그래. 본능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차려야지, 나라도. 그러나 책임지지 못할 약속이었다.
코트 단추가 몇 개 뜯겨나갔다. 내 것의 갈퀴 같은 손아귀 짓이었다. 넥타이가 풀리다 말고, 재킷과 셔츠 단추가 통째로 뜯기며 사방으로 튀었다. 턱이 깨물리고 코가 깨물렸다. 입술도 깨물렸다. 피가 배어나온 모양인지, 안으로 파고 든 내 것의 젖은 혀끝에서 짙은 쇠 맛이 났다. 서로의 타액과 함께 서로의 눈물이 입안에서 섞여들었다. 멍하니 웃음을 만들었다가 혀까지 씹히고 말았다. 이번엔 흐릿하게 통증을 느꼈다. 입안의 쇠 맛은 점점 더 짙어졌다. 서로의 젖은 입가가 자신의 피로 금세 붉게 물들었다. 그래도 웃음은 좀처럼 멎지 않았다. 한참 동안 입안을 휘젓고 돌아다니던 내 것의 혀가 빠져나가더니 다시 온 얼굴로 키스의 비가 퍼부어졌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시울에다 입가엔 핏자국까지 낭자하고 보니 영락없는 흡혈귀의 모양새였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흡혈귀라면 온몸의 피를 다 빨린대도 황홀할 거라고 홀린 듯 뇌까렸다. 피투성이 입술은 다시 얼굴에서 목으로, 이어 쇄골과 가슴 언저리까지 내려갔다. 때론 빨리고, 때론 핥기다가, 대부분의 살점은 곧 입술과 혀 못지않게 상처투성이가 됐다. 좋아서, 너무 좋아서 미칠 것만 같았다. 환희를 못 참고 히죽거리던 얼간이의 웃음은 마침내 하하하 하는 박장대소로 폭발할 기세였다. 양쪽 대흉근이 미친 듯이 빨리다 못해 으깨지듯 유두가 깨물리지 않았더라면, 마침내 회복된 기력이 태풍 같은 광소를 이끌어냈을 것이다.
“흐윽……!”
지복의 희열이 짐승의 성욕으로 뒤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엄마 젖을 빠는 신생아처럼 한쪽 유두를 힘차게 빨아 당기는 입술의 감촉에 온몸이 활처럼 뒤틀렸다. 몸서리치는 전율이 사지 끝에서 끝으로 내달렸다. 뻣뻣해진 성기가 팬츠 속에서 경련을 일으키며 한계까지 곤두섰다. 당장이라도 내 것 속으로 뚫고 들어가고픈 야수의 욕구가 핏속을 들끓었다. 하느님, 안 돼……!
……정신을…… 정신을 차려야지,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아아, 하느님. 하느님……!
쿵, 쿵, 쿵, 쿵, 쿵, 쿵……. 가까스로 되잡은 다짐은, 그러나 마주 부딪쳐 오는 거센 용두질에 떠밀려 다시금 본능 뒤로 아득히 멀어졌다. 한계까지 발기한 채 자신의 사타구니 틈새며 허벅지, 그리고 치골과 성기까지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치대고 있는 그것은 내 것의 생식기였다.
떨리다 못해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팔을 필사적으로 내뻗었다. 정신없이 지퍼를 내리고, 속옷을 헤치고 들어가 자신의 ‘구원’을 어루만져보았다. 단단하게 굳은 그것은 축축하고 뜨겁게 달아오른 채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제멋대로 요동을 치고 있었다. 흡사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송어처럼 당당하고 거칠고 힘이 넘쳤다. 꿈에도 잊지 못했던, 젊은 날의 사랑스러움 그대로였다. 끝이 조금 휜, 자신보단 많이 작지만, 기능 면에선 못지않게 훌륭히 제 구실을 해내곤 하던 물건이었다. 미치도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것의 물건이었다. 와락 움켜쥐자, 품 안의 몸뚱이가 부르르 전율을 흘리는 것이 보였다. 흐아아앙……! 자신의 양쪽 유두를 흡혈귀처럼 빨아대던 입술이 문득 벌어지더니 소름 끼치는 교성을 내질렀다. 쿵, 쿵, 쿵, 쿵, 쿵. 바짝 치켜진 채 손바닥 표면을 문지르며 앞뒤로 용두질을 칠 때마다 자신의 하반신 역시 바닥으로 떠밀리며 동시에 리듬을 탔다. 미친 듯이 도리질을 치며 죽음 같은 쾌락에 빠져든 내 것의 뒷덜미를 끌어당겨 입술을 틀어막았다. 흐앙, 흐앙, 흐아하. 채 다 토해지지 못한 교성은 자신의 폐부 안쪽으로 깊이깊이 파고들었다. 함께 빨려들어온 내 것의 혀가 목구멍 깊숙이까지 유린하며 정신없이 피스톤질을 해댔다. 손바닥이 품고 있는 사랑스러움과 한가지였다. 하하하. 쿵, 쿵, 쿵. 하하하하. 콩, 쿵. 하하하……. 채 입 밖으로 토해지지 못한 광소가 내 것의 사랑스러운 용두질과 함께 오르가슴의 리듬을 타고 있었다. 삽입하고자 하는 야수의 욕구는 삽입당하는 쾌락으로 변신했다. 자신이 연인의 페니스가 되어 자신 스스로를 꿰뚫고 있었다. 아니, 연인을 꿰뚫고 있었다. 아니, 아니, 서로가 서로를 꿰뚫고 들어가 미친 듯이 박아대고 있었다. 극상의 쾌락으로 혼몽해진 넋은 박히는지 박는지 분별할 도리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손바닥을 매개로 달라붙은 서로의 몸뚱이가 함께 완전한 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누가 연인이고 누가 자신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손안의 성기가 자신의 것인지, 혹은 연인의 것인지 몰랐다. 몰라도 상관없었다. 그저 연인과 자신은 완전한 한 몸이라는 극치의 황홀감이 중요할 뿐이었다. 그건 생생한 사실이자 현실이었다. ‘진리’였다. 어차피 기적이었다. 부활이었다. 구원이었다.
흐아아아아! 아아아악! 무아지경 속에서 오르가슴에 치를 떠는 야수의 포효를 들었다. 역시, 자신의 것인지 연인의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서로의 것이었으리라. 아니, 이미 하나가 돼버렸으니 더 이상 ‘서로’라는 구별조차 무의미한 짓일 터였다.
“……해…… 해…… 위…… 야…… 흑…….”
얼마를 무아경의 오르가슴 속에 파묻혀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새하얀 빛 가운데서 사랑스러운 할딱임이 들려왔다. 학. 학. 하악……. 금방 끊어질 듯하다가도 가늘게 이어지곤 하는 애처로운 소원이 안타까워, 마지못해 완벽한 법열의 상태에서 빠져나왔다.
불빛이 보였다. 눈에 익은 천장 벽지도 보였다. 살짝 아래로 시선을 내리니 눈물겹도록 그리운 정수리가 보였다. 자신의 몸뚱이 위에 기진맥진 늘어져 있는 겨자색의 덩어리가 보였다. 연인이었다. 온몸의 감각이 천천히 되돌아오고 있었다. 하반신 사이에서 오물오물 꼼지락거리고 있는 손길도 차츰 자각이 되었다. 기력이 다한 것 같은 손가락임에도 필사적인 시도는 나름대로 성과를 이루고 있었다. 허리를 묶고 있던 벨트는 이미 활짝 풀린 채였고, 속옷과 지퍼는 허벅지 근처까지 내려가 있었다. 가늘게 떨리고 있는 화가의 손바닥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자신의 성기였다. 자각도 못 한 사이 그것은 다시금 꼿꼿이 발기해 있었다.
“……해…… 더 하자…… 하…… 자…….”
엉망으로 풀어헤쳐진 가슴팍 위에서 자신의 유두를 힘들게 빨고 있는 것도 내 것의 입술이었다. 뜨겁다 못해 아픔까지 느껴지는 눈시울에서 다시금 새로운 눈물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극치의 오르가슴에 올라 있던 동안에도, 후에 혼절한 동안에도 내내 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두 팔을 내려 겨드랑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내 것의 상반신을 위로 끌어올렸다. 자신 이상으로 기진맥진한 몸은 너무나 쉽사리 끌려올라왔다. 눈물과 콧물 범벅으로 온통 발갛게 부어오른 얼굴이 보였다. 핏자국이 여전한 입술과 입가와 턱 언저리도 보였다. 막 자신의 유두를 빼앗긴 입술에선 슬쩍 벌어진 틈새로 말간 타액이 길게 줄을 지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뭉클한 감동, 사랑스러움, 연민, 순간 극단으로 치밀어 오르는 성욕이 뒤범벅이 된 넋이 또다시 벅찬 희열로 사무쳤다.
시선이 마주쳤다. 해죽 하고 침과 콧물과 눈물 속에서 내 것이 사랑스러운 웃음을 만들어냈다. 반사적으로 자신의 입꼬리에서도 히죽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둘 다 백치 같은 웃음보였다. 둘 다…… 눈물만 철철 흘리고 있는 꼬락서니도 한가지였다.
“……응……? 하자…… 또 하자, 위야…… 하자…….”
완전히 쉬어터진 나른한 목소리였다. 탈진하다 못해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는 기력을 반영하듯 거의 들리지조차 않았지만, 입술의 움직임만으로도 뜻은 고스란히 전달이 되었다. 아니, 이미 말 따윈 더 이상 필요하지조차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심중이 읽혔다. 아니, 그저 이렇게 서로의 몸이 마주 닿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새삼 의사 전달은 필요가 없었다. 말보다 먼저 서로의 생각이 읽혔다. 생각보다 먼저 그에 화답하는 서로의 생각이 읽혔다.
망가질지도 몰라. 시작하면 좀처럼 멈추지 못할 거야, 인환아.
응. 망가뜨려도 괜찮아.
생각으로 전하니, 생각으로 대꾸가 돌아왔다.
망가져도 상관없어. 너니까. 다 괜찮아. 너는 다 괜찮아.
정말 해도 되나?
응. 해줘. 하자, 위야. 하자. 망가질 때까지 하자. 망가져서 더 이상 못 하게 될 때까지 하자. 아니, 망가져도 하자. 그러자.
그건 안 돼. 망가뜨릴 수 없어. 너 망가뜨리는 건 단 한 번만으로도 충분해. 충분히 지옥이었지. 더는 안 해.
그럼 망가지지 않을 때까지만이라도 하자.
겁이 나.
괜찮을 거라니깐.
자신 없어. 미쳐서 망가뜨릴지도 모르니까.
망가지지 않아. 이젠 절대 망가지지 않아. 않을 거야. 넌 내 거니까. 나도 네 거니까. 원래가 하나였으니까 원래로 되돌아가는 것뿐인걸. 그러니까 더 이상 망가지는 일은 없어.
…….
눈물로 전하니, 하염없는 눈물방울로 대꾸가 돌아왔다.
팔 조금만 들어봐. 옷 벗기게.
근데 기운이 좀 없어, 위야.
괜찮아. 이리 기대봐. 옳지. 그냥 넌 이대로 쉬어. 내가 다 할 테니까.
좋아……. 너무 좋아, 위야.
응.
너무 좋아, 네 냄새…….
응.
네 감촉…… 네 체온…… 아직도 꿈만 같아…… 너무 좋아…….
응.
사랑해.
응.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
사랑해, 위야……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응, 응…….
진짜야. 너무 널 사랑해서 미치겠어. 진짜로 돌아버릴 거 같애. 너무 좋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만 말해. 날 기쁨으로 죽일 셈이냐, 내 고양이?
위야. 위야, 위야, 위야, 위위…… 위위…….
하느님, 제발……!
제정신의 인내는 그것으로 홀연 사라지고 말았다. 필사적인 조심성으로 내 것의 옷을 벗겨내던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그다음은 그저 붉어진 야수의 성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작업실 방바닥에서의 불편한 섹스라는 뇌리 한구석의 우려 또한 말끔히 날아갔다. 제멋대로 벗어 던진 서로의 옷가지를 쿠션 삼아 내 것의 몸을 눕히고 단숨에 안으로 파고들었다. 윤활제를 써야 한다는 의식조차 없었다. 몸을 활짝 열어젖힌 채 자신을 온 넋으로 받아들이는 내 것의 몸짓에만 눈이 뒤집혔다. 빡빡했는지 헐거웠는지, 아니면 아팠는지 즐거웠는지, 촉촉했는지 뜨거웠는지…… 환장한 야수는 처음 꿰뚫고 들어갈 때의 감각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한 몸이 되는 것에만 혈안이 돼 무턱대고 돌진했다.
“……흑……! 흐아앙……!”
“큭!!!”
단번에 내벽 가장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간 귀두 끝이 어느 한 지점에 부딪치며 서로의 몸뚱이가 부르르 전율했다. 뜨겁고 찰진 내벽이 경련을 일으키며 와락 페니스를 조여왔다. 정수리 끝까지 치고 올라온 극치의 쾌감을 좇아 허리가 미친 듯한 율동을 거듭했다. 밀려들 때마다 조이고, 빠져나올 때마다 경련하는 내벽에 몸서리가 쳐졌다. 엉덩이 틈새에 맞부딪치는 고환으로부터 퍼져 올라오는 쾌감 또한 한가지였다. 아랫배 밑에서 내 것의 페니스도 바짝 굳어진 채 인정사정없이 짓이겨졌다. 그 감각은 직접 성기를 삽입한 쾌락 그 이상이었다. 안쪽의 전립선을 긁어댈 때마다 짓이겨진 고환과 자그마한 페니스 끝에선 질금질금 수액이 흘러나와 자신의 하반신을 낭자하게 적셔갔다. 몇 번이나 내 사랑스러운 존재의 흥분을 직접 체험하면서도 여전히 좀처럼 믿어지지가 않는 꿈같은 현실이었다. 마치 살아 있는 독립된 생명체처럼 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감도로 자신의 움직임에 일일이 화답했다. 빠지면 부르르 떨고, 깊숙이 뚫고 들어가 극점을 찌르면 한계까지 꼿꼿하게 일어섰다. 하반신의 반응 못지않게, 뒤틀린 사지로 몸서리를 치면서도 자신에 의해 틀어막힌 내 것의 입술에선 깊은 키스가 되돌려졌다. 손톱을 세워 자신의 등을 사정없이 할퀴고, 허리를 활처럼 뒤로 휘며 스스로가 느끼고 있음을 여실히 증거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온 넋도 극상의 기쁨에 사무쳤다. 너무나 황홀한 나머지 사방에 짐승 같은 교성을 토해내야만 했다. 통제되지 못한 쾌감은 몇 번 흔들지도 않았는데 벌써 극점에 도달해 있었다. 뿌듯한 사정감이 일며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최후로 한 번 더 치고 들어가자, 조여든 내벽이 지진을 일으키며 진동했다. 내 것이 몇 초쯤 먼저 오르가슴에 올랐고, 곧 자신도 그 뒤를 따라 무너졌다.
잠깐 정신을 놓았고, 아직 연결된 채로 의식을 차리자마자 다시금 피스톤 운동을 시작했다. 거듭된 사정에도 불구하고 페니스는 여전히 부푼 채였다. 품 안에 축 늘어진 내 소중한 존재의 안위는 이미 완전히 깨어나버린 짐승의 의식엔 더 이상 가 닿지도 않았다. 망가지지 않는다 했다. 기왕에 한 몸이니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것뿐이라고 했다. 자신의 연인이자 주인이고, 예언자이자 신(神)인 존재의 말이니 그건 사실일 터였다. 그러니 짐승은 더 이상 구애될 필요가 없었다. 그게 짐승의 자기 변명인지 아니면 성스러운 믿음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뭐든 상관하지 않겠다. 뿌듯하게 밀려오는 전신의 쾌락에 몸서리를 치며 히죽 뇌까렸다. 속수무책이었다.
몇 분인지, 혹은 몇 십 분인지의 피스톤 운동 끝에 자신의 연인이자 주인이자 예언자이자 혹은 신(神)이기도 한 존재가 어렴풋이 눈을 떴다. 허벅지를 벌리고 앉은 채 연인을 마주 품은 자세여서 연인이 차츰 의식을 차리고 있는 전 과정을 황홀하게 지켜보았다. 전립선을 찌를 때마다 움찔거리며 찌푸려지는 미간이 애처로우면서도 아름다워 가슴이 몹시 설레었다. 온통 땀에 젖어 이마 위로 가닥가닥 달라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소중히 떼어 뒤로 넘겨주었다. 동그스름하게 예쁜 이마가 고스란히 드러나 애수 띤 인상은 좀 더 소년에 가깝게 변했다. 길러서 묶고 다니게 할까? 행복한 망상까지 일었다.
“흑……! 아…… 아아…… 흐우…….”
다시 양손으로 허리를 단단히 받쳐 안은 채 거세게 내벽을 찔러들자, 힘겹게 교성을 토해내는 내 것이었다. 그것은 흐느낌 같기도 하고, 호소 같기도 하고, 혹은 애교 같기도 했다. 그 어느 쪽이라 해도 걷잡을 수 없이 사랑스럽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았다.
“……위…… 야아…… 흐윽……!”
“……아픈가?”
아니. 아니, 아니…….
황홀하게 마주 응시해오는 눈이 대꾸를 주었다.
좋아. 함께여서 좋아. 더 해, 위야. 더 해…….
확인은 자신의 아랫배에 빈틈없이 밀착돼 있는 자그마한 생식기로 충분했다. 의식을 차리기 전부터도 그것은 자신 못지않게 발기된 상태였다. 다시 한 번 힘껏 튕기자, 연인이 눈꺼풀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뒤로 활짝 젖히는 게 보였다. 눈앞에 드러난 앙증맞은 목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 한입에 덥석 빨아들였다. 쪼오옥. 질척한 점막이 뭉개지도록 빨고 또 빨았다. 파고든 내벽에서 잠시 멈춘 채 전립선 부위를 귀두로 거세게 문지르자 품 안의 여윈 몸뚱이가 심하게 파드득거렸다. 무의미하게 허공을 휘젓는가 싶던 양팔이 자신의 목덜미를 휘감았고, 이어 필사적인 기세로 안겨들었다. 오른편 관자놀이 근처로 파묻힌 연인의 입술로부터 할딱이는 숨소리와 함께 가뿐 교성이 내내 넘실거렸다. 한 번 더 깊게 찌르고 들어가자, 흐느끼듯 교성을 토해낸 입술이 자신의 귓바퀴를 발작처럼 깨물었다. 마치 화인처럼, 깨물린 부위로부터 전신으로 찌르르한 쾌락의 전율이 흘러갔다. 안 돼, 아직! 아직은 더!
반사적으로 사정하려는 하반신을 필사적인 인내로 억눌렀다. 온 밤 내내 붙어 있을 작정이었다. 또다시 쉽게 사정해버리면 연인의 몸에서 잠시라도 떨어져 있어야만 할 터이다. 그건 극치의 오르가슴을 못 느끼는 것보다도 더, 수배, 아니, 수십 배는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체의 움직임을 멈춘 채 양팔로 연인의 등을 꼭 끌어안고서 숨을 골랐다. 자신의 생각을 읽은 연인도 자신의 목에 양팔을 휘감은 자세 그대로 미동조차 없었다. 고요한 열락 속에서 서로의 가쁜 숨소리와 시계 초침 소리만이 은은하게 울리고 있었다. 연인의 것과 완전히 뒤섞여버린 자신의 체취와 땀 냄새와 정액 냄새가 온갖 물감 냄새들 틈바구니 속에서도 흐릿하게 코끝을 간질였다. 아마도, 자각되는 이상으로 정사의 내음이 실내를 진동시키고 있을 터였다.
몇 십 초쯤이 흐르자, 사정 욕구가 간신히 가라앉았고 다시금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순간순간 빠르게 폭주하고픈 욕구는 역시 필사적인 인내로 참아냈다. 느리고 완만한 대신 강하고 깊게 찔러들었다. 탁, 탁, 탁, 찌걱찌걱……. 접합 부위로부터 흘러나오는 교합 소리조차 음란하기 짝이 없어, 항진된 성욕은 제아무리 강하게 연인을 비비고 찔러대도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연인의 가쁜 숨소리와 쾌락에 떠는 자지러지는 교성은 더한 자극이었다. 허스키한 신음성과 교성이 토해질 때마다 사정 욕구는 한계까지 치밀곤 했다. 궁여지책으로 키스를 통해 입술을 틀어막는 수밖에 없었는데, 슬픈 현실은, 기갈 든 짐승의 욕구가 연인의 입술만 먹고 싶은 게 아니라는 데 있었다. 찌푸린 콧등, 도드라진 턱 언저리, 섬세하고 가느다란 목덜미, 볼록 솟은 목울대, 도톰하게 먹음직한 귓불, 쇄골과 유려하게 떨어지는 어깨선 등등, 한도 끝도 없었다. 욕구대로 입술을 움직여가다 보면 어느새 귓전으론 세상에서 가장 유혹적일 교성이 성기처럼 파고들었다.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해야 했고, 끝없이 경련하는 몸을 바닥에 누인 채 무아경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음경은 여전히 연인의 따스한 몸속에 파묻혀 있었다. 희희낙락, 곧바로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음은 물론이었다. 나중에 기억이 난 사실이지만, 그나마도 한 시간이 넘게 피스톤질을 하며 견딘 끝에 온 오르가슴이었으니, 얼마나 성욕이 항진된 상태였는지 스스로도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물론 그 이후의 교합은 더더욱 길게, 흡사 영원처럼 아득하게 이어졌다.
“저어…… 저…… 사장님.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경호원들이 퇴근해도 될지 여쭤보라고 하는데…….”
멀리서 현실의 부름이 들려왔다. 아니, 바로 코앞까지 다가든 현실이었다. 두 시간? 아니, 어쩌면 세 시간 가까이 연인의 안에 머물러 있는 중이었을 것이다. 미스 원의 음성이었는지, 미스 정의 음성이었는지는 불확실했다. 그저 메이드 둘 중 하나였다는 것만 의식에 있었다. 문소리도 들은 것 같았다. 기다리다 못해 노크를 했을 것이다. 아무리 노크해도 대꾸가 없자 상황이 상황인지라 걱정이 됐을 테고, 살짝 문을 열어본 것도 충분히 가능할 일이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는 짤막한 외마디 신음성과 함께 절단 나버리고 곧 도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죄, 죄송합니다, 사장님!!! ……정말 죄송해요!!!”
놀라다 못해 울 것 같은 어린 아가씨의 음성은 좀 더 확실한 현실감으로 다가왔다. 막 찔러든 내벽에서 경련과 같은 조임이 시작되었지만, 역시 가까스로 사정 욕구를 참으며 현실을 일별했다.
“……모두 퇴근하라고 해요. 내일 아침, 따로 부를 때까지 본채엔 우리 둘만 있도록 해주시오.”
잔뜩 가라앉은 자신의 중저음이 들렸다. 정사의 기색이 역력한, 음란한 나른함과 색정이 뒤범벅이 돼 있는 음색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한마디의 현실조차 거슬리고 짜증이 났으니, 더 이상의 배려 따윈 할 수가 없었다. 메이드의 대꾸가 되돌아왔는지는 의식에 없었다. 오르가슴의 격랑을 참는 것만으로 모든 전투력이 집중된 때문이었다. 마침내 현실은 다시금 문 너머로 아득히 사라졌다.
쉬었다 움직이고, 다시 쉬었다가 허리를 움직였다. 바닥에 앉아서도 하고, 눕혀서도 하고, 작업실 테이블에 기대 선 채 달라붙기도 했다. 작업실 한구석에 유명무실하게 놓여 있던 3인용 소파 또한 훌륭한 침대 역할을 해주었다. 품 안의 연인은 그때마다 몇 번이나 혼절했고, 다시금 깨어나 품 안으로 파고들곤 했다. 마치 어미를 찾는 새끼 고양이처럼. 다신 깨어날 것 같지 않다고, 이제 마지막이라고 안타까워하면 기적처럼 도로 눈을 뜨고 마주 흥분해주었다. 마주 안아주고, 마주 입술을 부비고, 마주 성기를 맞대주었다. 그때마다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을 했다. 매번 확인을 하면서도 의심으로 불안해했고, 즉시로 자신의 두려움을 눈치챈 연인은 그때마다 힘겹게 분신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확인 즉시, 겁에 질린 광신도 대신 희열에 찬 야수가 다시금 깨어나곤 했음은 물론이었다.
마침내 어찌해도 기어이 눈을 뜨지 못하는 순간이 왔고, 홀연 깨어난 의식이 이성을 불러들였다. 멍해진 시야에 비친 작업실 풍경은 그야말로 난장판 그 자체였다. 연인의 몸뚱이도 보였다. 사랑스러운 그것은 땀과 눈물과 정액과 핏자국은 물론, 불그스름한 자신의 마킹들로 범벅이 돼 있었다. 열기가 사라진 기진맥진한 얼굴은 그저 시체처럼 창백하기만 했다. 순간, 철렁 내려앉아버린 심장을 애써 가누며 연인의 가슴팍에 바짝 귀를 기울였다. 시체 같은 형상과 달리 힘차게 뛰고 있는 생명의 소리가 질겁한 넋을 안심시켰다.
혹여 부서질세라 조심조심 안아 들고 작업실을 빠져나왔다. 흐릿하게 복도를 밝히고 있는 불빛 외엔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멀리서 괘종시계 소리가 울렸다. 1층 거실로부터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방금 빠져나온 작업실로부터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다섯 번을 울리는 걸 보니 새벽 5시인 모양이었다.
기분이 이상야릇했다. 그렇다면 열 시간 가까이 연인을 안았다는 건데, 도저히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성기는 물론 몸 이곳저곳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지기는 했으나, 밤을 하얗게 새워 마라톤 섹스를 한 육체라 하기엔 여전히 왕성한 활력이 느껴졌다. 피로감은커녕 사지엔 힘이 넘치고, 의식은 거울처럼 명료하기만 했다. 몇 센티쯤 허공에 몸이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품 안의 연인에게조차 무게감을 거의 느낄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도 그냥 계단으로 갈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저녁 식사도 거른 채건만 공복감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흐릿하게 자각되는 건 그저 약간의 갈증뿐이었다. 이상야릇하면서도 신비로웠다. 지극히 비현실적인 감각이었으나, 한편으론 당연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죽어 있던 존재가 되살아났으니 모든 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랬다. 자신은 더 이상 좀비가 아니었다. 육체도, 또한 정신도. 물론, 영혼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침실에 도착해 연인을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눕혔다. 눕혀놓고도 한동안 홀린 듯이 바라보기만 했다. 극한의 기쁨은 극한의 침묵과도 통하는 모양이었다. 황홀한 법열의 상태에서 그저 고요히 연인만 바라보았다. 손을 뻗어 어루만지는 것조차 불필요했다. 시선을 고정한 채 그저 고요한 열락을 흘릴 뿐. 한기를 느끼는지, 설핏 떠는 몸뚱이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화석이 됐을지도 몰랐다.
겨우 되돌아온 이성에 욕실부터 들어갔다. 커다란 타월 다섯 장에 뜨거운 물을 묻혀 침대로 가져갔다. 도자기를 어루만지듯, 극도의 조심성으로 연인의 몸을 천천히 닦아나갔다. 사타구니 틈새와 성기와 항문 주변은 더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열 시간이 넘게 미친 듯이 박아댄 것에 비해선 연인의 아랫도리 상태는 꽤나 양호한 편이었다. 그저 입구 주변이 슬쩍 부어올라 있을 뿐 외상은 없어 보였다. 이성적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이 역시 쉽게 납득해버렸다. 망가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자신의 신이 그리 예언했다. 기왕에 하나가 될 몸이었으니 본래대로 되돌아가는 것뿐이라고. 그러니 망가질 까닭이 없다고. 30여 분에 걸쳐 연인을 정성껏 씻기고, 관장을 시키고(도대체 얼마나 싸댄 건지, 관장하는 내내 연인의 내벽에선 희뿌연 정액이 끝도 없이 흘러내렸다), 부어오른 입구와 내벽엔 꼼꼼하게 연고를 발랐다. 빨리고 깨물려 마킹이 심한 상처에도 연고를 발랐다. 마지막으로 설핏 한기에 떠는 몸에 담요와 이불을 겹겹이 둘러주었다. 마치 요람에 감싸인 아기처럼 무방비한 그 모양새에 새삼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내 아기. 오로지 내게만 속한 아기. 내 연인. 내 예언자. 내 하느님. 그래…… 내 세상의 단 하나뿐인 유일신…….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자, 또 한동안 멍하니 연인의 잠든 얼굴만 들여다보았다. 보고 또 봐도 그립고, 그립고 또 그리워도 자신보다 더 한없이 친밀했다.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자니, 또 불쑥 안고 싶어져서 할 수 없이 욕실로 도망쳐야 했다. 아무리 망가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젠 쉬게 해줄 때였다. 기갈 든 야수도 그 정도의 분별은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 정도의 분별이라도 되돌아와준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꼿꼿이 서버린 음경과 빠짝 부푼 음낭엔 대책이 서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할 수 없이 한꺼번에 움켜쥐고 자위를 했다. 눈을 감고, 연인의 안에 있는 것처럼 상상을 모았다. 재빨리 끝내고 진짜 연인에게로 되돌아가야 했기에, 끝까지 가는 데는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하얗게 포말을 이루며 바닥에 떨어지는 정액은 거의 물처럼 변해 있었다. 잠시 욕조 벽에 기대섰다가 샤워기를 틀었다.
뜨거운 물줄기가 온몸으로 쏟아져 내리자 그제야 몸 이곳저곳의 통증이 자각되었다. 시선을 들어 욕조 천장 거울에 비친 알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금색의 근육질 몸 곳곳이 깨물리고 빨린 마킹투성이였다. 선명한 잇자국은 물론, 상처가 깊어 꽤나 피를 흘렸을 법한 곳도 더러 보였다. 등줄기가 심하게 쓰라린 걸 보니 손가락으로 할퀸 상처도 만만치 않을 듯싶었다. 특히 유두와 입술과 성기 근처는 낯이 다 뜨거워질 지경이었다. 그만큼 연인의 흥분이 실감나서 또다시 온몸이 노곤할 지경으로 황홀해졌다. 흥분한 하반신이 금세 반쯤 일어섰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다. 대신,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에 크게 입을 벌린 채 아까부터 신경이 쓰이던 갈증을 해소했다. 뜨끈한 수돗물의 염소 맛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감로수보다도 달고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저 비누 거품만 한 번 내는 것으로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침실로 되돌아왔다. 다행히 연인은 좀 전 그대로 미동도 않은 채 잠에 빠져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춘 채 고개를 아래로 기울였다. 닿을 듯 말 듯, 살며시 입술을 포개고 립 키스를 주었다. 대충 털어버린 머리카락에서 물방울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톡톡. 톡. 입술을 떼고 보니, 연인의 뺨과 이마 위로 떨어진 물방울들에서 불빛이 반사돼 나왔다. 그게 또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한동안 멍하니 들여다보다가, 너무 밝은 불빛이 연인의 숙면을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즉시로 천장과 양쪽 사이드 조명을 끄고, 침대 맞은편 테이블 위에 있던 스탠드 스위치를 올렸다. 와트 수치가 낮아 그다지 밝지 않은데다 그나마 침대 끝에 위치해 있어, 침실은 그저 희끄무레한 박명의 자취만 남게 되었다. 연인의 이목구비까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건 불만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마지못해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가 연인을 품고 누웠다. 연인의 얼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마주 보듯이 모로 들어 누워야만 했다. 연인의 몸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거의 코를 맞댄 자세로 누워 다시금 연인의 얼굴만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어둑하게 음영이 진 얼굴도 나름대로 신비로워서 그제야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문득 소스라쳐 눈을 뜨고 보니 창 밖으로 날이 훤하게 밝아 있었다. 시계를 살폈다. 바늘은 막 7시 26분을 지나고 있었다. 평소라면 주방으로부터 음식 냄새가 풍겨올 시간이었으나, 음식 냄새는커녕 집안 식구들의 기색조차 일절 읽히지 않았다.
―내일 아침, 따로 부를 때까지 본채엔 우리 둘만 있도록 해주시오…….
그제야 간밤의 어렴풋한 기억 한 조각이 뇌리에서 건져졌다. 새빨개진 낯빛을 한 채 기겁해서 돌아서던 메이드의 뒤태도 기억이 났다. 적나라한 정사 장면을 어린 아가씨한테 들켜버렸다는 데 약간의 당혹감이 느껴졌지만 그도 찰나에 불과했다. 어쩌면 앞으로도 수시로 벌어질 일이니 이참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어쨌든 방해받지 않고 더 오래 함께 있을 수 있겠군. 품 안의 연인을 새삼 양팔로 꼭 조이며 흘린 최후의 뇌까림이었다.
꿈도 없는 깊은 잠이 다시 늪처럼 찾아들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는 역시 기억에 없었다. 귓전을 파고든 요란스러운 소음에 소스라쳐 일어났을 땐 창 밖은 풍성한 햇빛으로 넘치고 있었다.
띠리리리리∼∼∼∼띠리리리∼∼∼.
가슴이 철렁해선 번개처럼 한 팔을 위로 내뻗었다. 소음의 주범은 침대 머리맡의 무선 전화기였다. 다행히 품 안의 연인은 그저 잠시 얼굴을 찌푸렸을 뿐, 잠에서 깨어나진 못했다. 기왕에도 늦잠이 많은 연인이긴 했지만, 소음에도 불구하고 이리도 시체처럼 잠에 빠질 수 있는 건 간밤의 과도한 흥분과 성적인 혹사 탓일 터였다.
[사장님?]
윤 실장이었다. 걱정이 한사발인 목소리에 그제야 회사 일이 기억에서 건져졌다. 낭패감과 함께 시선은 자연스레 시계로 가 닿았다. 8시 50분이었다. 정시 출근을 하라 했으니 윤 실장 이하 비서진들은 8시 30분 이전에 출근해 있었을 터였다. 더구나 9시 30분엔 중역들 몇과 함께 대전 공장을 방문할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쪽 노조로부터 한 달 전부터 잡다한 불만 사항들이 접수되고 있는 형편이었고, 연인의 실종 사고 탓에 본격적인 수습이 지금까지 미뤄져왔었다. 더 이상은 늑장을 부릴 수 없는 까닭이기도 했다.
“……늦잠을 잤습니다. 9시 반까진 도착하니까 일단 헬기는 대기시켜주세요.”
마지못해 대꾸를 주면서도 눈길은 연인의 얼굴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연인을 꼭 품은 채 폐부 깊숙이 연인의 냄새를 들이마셨다. 5초만 더…… 아니, 10초만 더…… 아니아니, 20초만 더……. 그렇게 안타까운 미련을 몇 분이나 더 물고 늘어진 끝에, 겨우 연인을 품 안에서 떼어놓을 용기가 모였다.
일단 침대를 벗어나고부턴 일절 시선을 주지 않았다. 일단 바라보기 시작하면 참지 못하고 도로 안아버릴 것 같아서였다. 다행히 몸은 재빨리 움직여주었다. 인터폰으로 별채에 연락을 넣고, 욕실로 들어가 간단히 이만 닦았다. 옷을 갈아입고 침실을 나서는 데에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미 대기하고 있었던 듯, 현관 밖으로 나가니 고영석이 차 문을 연 채 목례를 했고, 현관 앞에 줄줄이 늘어서 있던 경호원 둘과 홍 기사, 그리고 다른 집 식구들 모두가 일제히 아침 인사를 보내왔다. 고개를 숙인 미스 원의 얼굴은 물론 목덜미까지 온통 새빨개져 있어 어젯밤의 목격자가 그녀라는 걸 알았다. 피식 웃으며 마주 일별하고, 아주머니 둘과 경호원들에게 연인에 대한 철저한 당부를 주었다. 깰 때까지 그냥 두세요. 일어나면 식사 꼭 하게 해주시구요. 네, 사장님. 오늘은 특별히 더 세심하게 살펴봐주시오. 혹시 어디 몸이 불편하다고 하면 반드시 내게 연락부터 해야 합니다. 예, 사장님. 염려 마십시오. 식사 꼭 하게 하세요. 입맛이 없다고 해도 꼭 먹이셔야 합니다. 예, 사장님. 우리 장 선생님은 염려 마시고 어여 출근하셔요. 최 씨 아주머니의 호탕한 다짐에 겨우 마음을 돌리고 차에 올랐다.
막 대문을 빠져나가는 차의 진동을 느끼면서도 질긴 미련은 거미줄처럼 전신을 휘감아 돌고 있었다. 돌아보지 않기 위해 아프도록 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연인에게 깨물린 상처에서 곧 피가 터지더니 입안으로 찝찔한 쇠 맛이 퍼졌다. 그제야 입술이며 턱이며 얼굴이 깨물린 상처투성이라는 게 자각되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을 바라보던 집안 식구들의 얼굴 표정이 하나같이 묘하게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아졌다. 잠시 쑥스러웠던 감정은 이내 흥겨운 기쁨으로 화했다.
막 대로변으로 들어선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난히 맑은 날이었다. 헐벗은 가로수들이며, 두꺼운 코트와 스웨터들로 무장한 인파들이며, 거리는 11월도 만 하루만 남겨놓고 있는 농익은 가을 색으로 완연히 물들어 있었다. 쏟아지는 햇빛은 밝다 못해 눈이 시릴 지경이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드높았다. 고뇌는 비집고 들어설 수 없을 만큼 청명한 기운으로 넘치는 풍경이었다.
기분 탓인가? 물론 그러하겠지. 부활한 전직 좀비의 눈에 무언들 빛나 보이지 않으랴.
용서받았다고 믿어보고 싶어졌다. 아니, 그도 아니라면 막 용서받기 시작했노라고. 그게 운명이든 신(神)이든, 일생을 두고 자신을 가혹하게 괴롭히던 존재가 비로소 자신에게 연민을 나눠주기 시작했노라고. 명징하게 닦인 이성은 이내 그건 아닐 거라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그래도 그리 믿고 싶어졌다. 아니, 그렇게 해달라고 빌었다. 부디 이제 그만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간절하다 못해 비굴할 정도로 빌고 있는 자신이었다.
“……저, 그게…… 장 선생님께서 공장 앞에 내려와 계신답니다, 사장님.”
두근…….
샌드위치 두 개와 오렌지 주스 한 잔으로 만 하루를 버틴 상태였다. 시곗바늘은 오후 5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주력 공장 하나와 하청 업체 공장 몇몇 곳까지 돌아보고, 노조 대표들과 마주 앉아 마라톤 협상을 벌인 끝에 힘겹게 타협안에 사인한 뒤끝이었다. 최종 타협안이 상정되기 며칠 전부터 중역들 사이에서 대강의 합의는 맞춰둔 상태였지만, 막판 타협 직전까지 노조와의 신경전은 여전했다. 평소라면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상황이었지만 부활한 좀비에겐 그쯤은 일도 아니었다. 결국 서로 적정선에서 산뜻하게 마무리를 한 후, 노조 간부들과 중역들이 낀 회식 장소로 이동 중이었다. 윤 실장이 건네준 서류 더미를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휴대전화가 울었다. 일단 집중하면 주변이 잘 보이지도, 또 들리지도 않는 터라 미처 코트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가 울리는 줄도 몰랐던 자신이었다. 옆 좌석에 앉은 윤 실장이 대신 꺼내 받는 것만 어렴풋이 인지했을 따름이었다. 재차 떨어진 윤 실장의 부름 끝에 마지못해 집중 상태로부터 빠져나왔고, 얼떨떨한 상태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듣게 된 셈이었다.
누가? 장 선생님? 내 인환이? 인환이가? 어디에 내려와 있다고?
현실을 완전히 자각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한동안 멍하니 윤 실장의 얼굴만 바라보아야 했으니까.
“……장 선생님께서 대전 공장으로 내려오셨다는군요. 비서실에다 일정을 여쭤보신 모양입니다. 못 내려오게 하실까 봐 미리 전화를 드릴 순 없으셨다네요.”
그제야 하루 종일 연인에게 전화를 넣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각되었다. 전화든 뭐든 수시로 연인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공포에 질리곤 하는 자신의 공황증이 오늘만큼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연인을 잊어서가 아니었다. 잊기는커녕, 막판 협상을 벌이는 와중에도 연인의 얼굴은 늘 시야에 오롯이 살아 있었다. 코앞에서 언성을 높이는 노조 간부들을 상대하는 와중에도 가슴은 무시로 설레었고, 손가락 끝은 연인의 감촉을 그리며 파드득 떨리곤 했었다. 그래도 새삼 전화를 넣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목소리를 듣고 나면 일이고 뭐고 당장 달려 올라가고 싶어질 테니까. 공황증 따윈 기갈에 날뛰는 간절한 그리움 앞에선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얼떨떨한 충격에서 벗어나자마자 즉시로 심장이 무섭도록 뛰기 시작했다. 호흡이 달뜨고, 손안에 쥐여 있던 서류철이 스륵 빠져나갔다. 번개처럼 스쳐간 간밤의 기억들에 낯빛은 더 이상 붉어질 수 없을 만큼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다, 당장 차를 대화동으로 돌려요! 영석 씨, 어서! 서둘러주시오!”
잔뜩 쉬어터진 목소리가 겨우 터져 나올 수 있었다. 윤 실장으로부터 돌려받은 휴대전화를 신주단지처럼 움켜쥔 채 초조하게 시간을 쟀다. 연인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그러면 더 참기 힘들 것 같아 그만두었다. 공단까지 고작해야 20분. 그러나 영원처럼 길고 길 20분이었다. 좌불안석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자신을 윤 실장이며 고영석이 수시로 힐끔거리며 웃음을 삼키곤 했지만, 자신은 눈치조차 못 채고 있었다.
회식과 남은 뒤처리는 윤 실장이 알아서 해주세요.
예, 사장님.
난 그 사람과 나중에 올라갈 테니 뒤처리 끝나면 윤 실장은 먼저 올라가도록 해요.
예, 사장님. 그러겠습니다.
영석 씨, 오늘은 공단 앞에 절 내려주신 뒤 윤 실장과 동행해주세요. 일이 마무리되면 댁까지 모셔다주시고, 영석 씨도 바로 퇴근하십시오.
예, 사장님.
그리고 내일 일정은 모두 접어주세요, 윤 실장.
…….
하늘이 두 조각 나도 내일만큼은 쉴 겁니다.
……사장님, 내일은 일요일입니다…….
!!!
………… …… …….
…….
………….
…….
……사장님?
……대전 시내에 묵을 만한 괜찮은 호텔이 있습니까?
그, 글쎄요……. 저도 잘은 모릅니다만, 접대 일로 사용한 호텔들 중에 아드리아 호텔이라고 있는데, 공장 직원들 말로는 제법 깔끔하다고 합니다. 특급 호텔은 아니지만 서비스도 괜찮다고 하고요.
위치가 어딥니까?
봉명동입니다. 유성온천과도 가까워서 시간 여유 되시면 온천에 들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봉명동이면 공단에서도 그리 멀리 떨어지진 않았군요.
예, 사장님. 차로 한 20분쯤이면…….
채 숨기지 못한 웃음보를 입가에 가득 머금은 채, 윤 실장은 얄미울 정도로 척척 대꾸를 주워섬겼다. 그러고 보니, 잇자욱이 선명한 자신의 얼굴을 아침부터 내내 안 보는 체하면서 죄다 훔쳐본 친구라는 게 기억났다. 수시로 얼간이 같은 웃음을 흘려대며 반쯤은 넋을 빼놓고 있던 자신을, 모르는 체 열심히 서포트 해주고 있다는 사실도 물론 알아채고 있었다. 하지만 이 눈치 빠르고 사려 깊은 비서가 오늘만큼 얄밉게 느껴진 적도 달리 없는 것 같았다.
구겨진 체면에 잠깐 울컥했던 심사는, 그러나 곧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공단 건물들의 모습에 말끔히 날아가고 말았다. 기왕에 방망이질을 시작한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거세게 뛰어댔다. 한 호흡 한 호흡, 곧 만나게 될 자신의 전부를 뇌리에 새기며 가쁘게 숨을 토해냈다. 간밤의 몽롱했던 기억이 스칠 때마다 즉시로 흥분하려는 아랫도리를 참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병은 거의 다 나았습니다, 윤 실장.
예?
아니, 곧 다 나을 겁니다. 이제 더 이상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사장님…….
우린 괜찮을 겁니다, 이제.
…….
괜찮을 거요.
사장님…….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는 사이 차가 멈춰 섰다. 고영석이 내리기도 전에 먼저 차에서 튀어나갔다. 전후좌우를 확인할 여유 따윈 없었다. 흥분과 기대와 그리움은 거의 폭발할 지경이었다. 10여 미터쯤 전방에 경비실과 인접한 공장 입구가 보였다. 눈에 익은 황금색 볼보가 2미터 높이의 콘크리트 담장 한쪽 구석에 주차돼 있었다. 뒤따라 내린 듯, 윤 실장과 고영석이 인사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물론, 대꾸할 이성 따윈 말끔히 달아난 지 오래였다. 지금 자신의 의식을 온통 점령하고 있는 것은 뇌리 속에 박힌 연인의 얼굴이었고, 시선을 통째로 점령하고 있는 것도 눈앞의 익숙한 황금색뿐이었다. 길 양쪽으로 하염없이 죽 늘어서 있는 삭막한 공단 건물들 틈새에서 그것은 자신을 향해 오롯이 빛나고 있는 구원 그 자체였다.
비틀비틀, 몇 걸음 더 앞으로 걸어 나가자 뒷좌석 문이 열리는 게 보였다. 곧이어 앞좌석 문이 열리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차에서 빠져나온 이들은 도합 네 명의 남자. 앞에선 홍 기사와 경호원 한 명이, 뒤에선 나머지 경호원 한 명과…… 그리고 ‘연인’이었다. 연인이 차에서 내려선 채 이쪽을 빤히 굽어보고 있었다.
형체를 확인하자마자 버릇 같은 전율이 전신을 스쳐갔다. 그건 기쁨이었다. 몸이, 그리고 마음이, 또한 혼이 기뻐 날뛰고 있는 흔적이었다. 그건 어딘가 오래된 흉터와도 닮아 있었다.
물 빠진 잿빛 진 팬츠와 까만 터틀넥 스웨터, 그리고 잿빛의 버버리코트가 연인의 왜소한 몸을 자연스레 감싸고 있었다. 아침에 마지막으로 본 그대로, 연인의 얼굴엔 잔뜩 부기가 올라와 있었다. 낯빛은 푸석했고, 눈 밑엔 다크 서클이 선연했으며, 머리카락도 사방으로 뻗쳐 있었다. 점차 기세를 잃어가고 있는 햇살조차 눈이 부신 듯, 가늘게 뜬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눈시울이 애처로웠다. 그러나 시선을 마주친 이래 그것은 단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다. 자신과 한가지였다. 자신처럼 완전히 넋이 나간 듯, 어리둥절한 표정에 그저 눈빛만 형형할 뿐이었다.
휘청휘청, 연인에게로 다가갔다. 순식간에 빠져버린 기력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스스로도 믿기 힘든 최상의 컨디션으로 맹렬하게 내달려온 하루가 거짓말 같았다. 연인을 마주한 극상의 기쁨 때문인지, 아니면 거의 날밤을 새우다시피 한 후 스트레스의 강행군에 돌입한 여파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전자 때문일 확률이 훨씬 높을 터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마침내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이르자 홀린 듯 시선만 보내오던 연인이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창백하고 투박한 화가의 손. 주저하듯 살며시 움켜쥔 것은 자신의 왼쪽 소매 깃이었다. 시선만 거미줄처럼 붙들고 있던 형형한 눈길이 마침내 뺨으로, 콧날로, 그리고 이마로, 이어 어깨와 가슴과 다리로 천천히 내려갔다. 느릿하면서도 강렬한 주시였다. 흡사 투시라도 하는 것 같았다. 도로 올라온 시선이 다시금 자신의 것과 얽혀들었다. 깊고도 깊은 내 예언자의 눈동자. 순간, 불꽃처럼 커다랗게 일렁이는 무언가를 설핏 본 것 같았다.
갑자기 상반신이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연인의 양팔이 목을 휘감아 끌어당긴 때문이었다. 엄청난 힘이었다. 지금처럼 기력이 다하지 않았다 해도 좀처럼 떨칠 순 없었을 터였다. 물론, 떨칠 마음 따윈 손톱만큼도 없었을 테지만.
그리운 체취가 사방에 낭자했다. 목덜미가 올가미처럼 죄어들고, 양쪽 허벅지도 사정없이 죄어들었다. 주범은 연인의 양팔과 다리였다. 코트 깃 안쪽으로 파고든 얼굴이 상반신 곳곳에 막무가내로 입술을 눌러대고 있었다. 거친 움직임을 따라 입가 근처를 간질이고 있는 것은 사방팔방 사랑스럽게 뻗쳐 나온 머리카락들이었다. 하반신에 딱딱하게 부딪쳐오는 그것은 여전한 ‘구원’의 흔적이었다. 눈시울로 순식간에 뜨거운 물기가 모여들고, 숨길이 틀어막힐 것처럼 목이 메어왔다. 사랑인지, 감격인지, 열정인지, 혹은 성욕인지…… 뒤죽박죽 뒤엉켜 복받치는 수만 가지 감정에 신경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것만 같았다.
자신의 몸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필사적으로 달라붙고 있는 몸뚱이에 마주 팔을 뻗었다. 여윈 등줄기를 휘감아 품 안에 단단히 고정했다. 끌어안고 또 끌어안았다. 동그란 정수리 위에 입술을 비비고 또 비벼댔다.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좋기만 한 그리운 체취를 들이마시고 또 들이마셨다.
“……인환아……!”
“응.”
“인환아! 인환아! 인환아……!”
“응, 응…… 응…….”
“…….”
“……응, 왔어. 아까 불렀지? 그래서 왔어…….”
“…….”
“……함께…… 함께 있을 거야…… 이제부턴 영원히…… 진짜야. 절대 떠나지 않아.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마, 위야…….”
“…….”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던 몸뚱이가 다시금 기력을 되찾고 있었다. 아니, 되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혼자는 쓰러질 수 있어도, 내 것을 품은 바엔 사정은 같지 않았다. 죽어도 품 안의 것을 놓칠 순 없었다.
“……사…… 사장님……! 사장님, 사람들이…….”
연인과 자신을 에워싸듯 가까이 다가든 경호원들 중 한 명이 빠르게 속살거렸다. 머리카락 틈바구니에 파묻혀 있던 얼굴을 들어 앞을 보니, 멀리 정문 안쪽에서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공장 제복 차림에 점퍼를 걸친 것으로 봐서 노조 사람들 같았다. ‘현실’의 눈들이었다. 굳이 소문거리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경계심이 흐릿하게 뇌리를 파고들었다.
경호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에워싸듯 서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홍 기사에게 눈짓을 주자,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않는 내 것을 품은 채 가까스로 뒷좌석에 올랐다. 뒤따라 차에 오르려는 경호원들에겐 호텔 이름을 알려주고 다른 차로 뒤따르라 하고서 차를 출발시켰다.
쪽, 쪽, 쪼옥, 쪽, 츠웁……. 자신의 얼굴 곳곳으로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는 내 것의 입맞춤 소리가 차 안을 크게 울렸다. 내 소중한 것의 타오르는 열기는 마주 입을 맞출 잠시의 틈새도 허락하지 않았다. 키스를 주고픈 의지는 키스를 받는 극도의 희열에 떠밀려 아득히 잊혔다. 온몸이 벌벌 떨리고 또다시 사지의 힘이 풀렸다. 전신을 강타하는 기쁨의 전율 탓이었다. 내 것을 감싸 안았던 양팔의 힘이 느슨해진 틈을 타 무도한 손길이 셔츠 안쪽 맨살로 파고들었다. 잡아 뜯듯이 난폭하게 벌어진 탓에 떨어진 단추 두어 개가 의자 바닥으로 튀어나갔다. 온 얼굴을 타액 범벅으로 만든 내 것의 입술이 목울대와 쇄골과 흉근을 거쳐 왕(王)자 모양 복직근까지 비벼지듯 떠밀려왔다. 기왕에 뻣뻣하게 일어선 페니스 끝에서 액이 스미며 질척하게 앞섶을 적시는 것이 느껴졌다. 도드라진 여덟 개의 복직근을 한동안 일일이 물고 빨던 입술이 배꼽 쪽으로 다가들었고, 이내 움푹 팬 구멍 안으로 혀끝이 파고들자 흥분은 도저히 걷잡을 수가 없어졌다. 참지 못한 교성이 끊어질 듯 목울대를 치고 올라왔다. 전신으로 전율이 치달았고, 금방이라도 사정할 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안 돼! 입술을 사리물고 도리질을 치며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이동 중인 차 안에서, 그것도 내 것의 몸뚱이와 따로 떨어진 채로 쏟아내고 싶진 않았다. 시뻘게진 눈시울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기갈 들린 짐승처럼 미친 듯이 자신의 아랫도리를 빨아대고 있는 내 것의 정수리가 보였다. 뜨거운 혓바닥과 입술은 어느새 배꼽 주변에서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 치모 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허리 벨트가 풀린 것도, 팬츠는 물론 속옷까지 반쯤 아래로 내려가 성기 전체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것도 그제야 자각이 되었다. 아차 하는 위기감이 뇌리를 스친 순간, 뜨거운 것이 페니스와 음낭 전체를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내 것의 손가락이었다. 음낭과 뿌리 근처를 양손으로 잡자마자 내 것의 입술이 크게 벌어지는 것이 보였다. 막을 틈도, 막을 의지도 일절 남아 있지 않았다. 곧바로 내 것의 입술이 페니스를 통째로 삼킨 때문이었다. 흑! 흐웁! 읏! 단말마의 교성과 함께 본능적으로 내 것의 정수리에 손을 뻗었다. 사르륵 감겨드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와락 움켜쥐었다. 이동 중인 차 안이라는 현재도, 고스란히 다 듣고 있을 운전석의 홍 기사도 의식에서 사라졌다. 그저 짐승이 돼서 미친 듯이 허리를 흔들 뿐이었다. 자기 통제를 놓아버리기로 결심한 순간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그런 의식조차도 없이 그저 본능에 이끌려간 것 같았다. 내 것의 목구멍을 가차 없이 유린하고 있는 짐승의 작태도 의식에 없었다. 내 것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손가락에 난폭한 힘을 가하고 있는 것도 몰랐다. 아픔과 이물감에 끙끙대며 바르작거리는 왜소한 몸뚱이도 그저 까마득해졌다. 당연히, 극점까지 오르는 데는 단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성이 돌아온 순간, 흐릿해진 시야를 파고들어온 것은 희끗한 정액으로 낭자해진 내 것의 얼굴이었다.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서 고개를 들고 허기진 시선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눈길은 여전히 뜨겁고 형형했다. 희열과 전율로 타버릴 것만 같은, 열렬한 숭배의 시선이었다. 데자뷔였다.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온통 거기 있었다. 14년 전, 맹목적인 애정으로 자신만을 해바라기하던 순수한 청년의 눈망울이 거기 있었다. 생의 고통과 절망을 전 존재로 겪어내며 지나온 천재 화가의 관조가, 그리고 절대적인 헌신과 애정을 맹세하는 영원의 시간이 거기 있었다.
문득 눈가가 시큰해지며 감정이 복받쳤다. 움켜쥔 머리카락에 와락 힘을 주며 위로 끌어올리자, 살풋 미간을 찌푸린 얼굴이 따라 올라왔다. 시큼한 정액 냄새가 진동을 하는 사랑스러운 얼굴에 미친 듯이 입을 맞추고 비벼댔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토해낸 사랑의 액체는 새로 추가된 습기와 더불어 내 것의 얼굴을 온통 축축하게 더럽히고 있었다. 개의치 않았다. 미친 듯이 서로 입을 맞추고, 혀를 섞고, 서로의 얼굴에 낭자한 정액과 눈물과 타액들을 흠뻑 빨아 삼켰다.
입맞춤에 몰두해 있던 내내, 자신의 허리 아래서 무심히 피스톤질을 하고 있던 내 것의 하반신으로 손을 뻗은 것도 그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진 바지 단추를 풀고, 속옷과 함께 단숨에 벗겨 내린 다음, 또다시 묵직하게 부어오른 성기를 내 것의 뜨거운 곳으로 쑤셔 넣은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윤활제 없이도 내 것의 입구는 부드럽게 열리며 자신을 맞아들였다. 팽팽하게 부푼 두 개의 고환까지 쑤셔 넣을 기세로 허리를 밀었고, 단숨에 한계까지 치솟은 흉기는 뿌리 끝까지 삼켜졌다. 한 몸이 된 충격적인 기쁨에, 달라붙은 짐승 두 마리가 간헐적으로 전율을 흘리며 교성과 신음을 번갈아 토해냈다. 비좁은 차 안이라는 현실도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허벅지 위에 조이듯 앉힌 채 서로를 빈틈없이 꼭 끌어안자, 자동차 뒷좌석 안은 더 이상 부러울 게 없을 만큼 훌륭한 사랑의 장소가 돼주었다.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느릿하면서도 힘차게 허리를 흔들며 서로가 서로를 박았다. 어떻게 움직이든, 빠르기도 강도도 서로가 놀라우리만큼 훌륭한 하모니를 이뤘다. 자신이 안쪽의 전립선을 쑤시면, 내벽은 뜨거운 경련으로 기쁘게 조여들었다. 자신이 입구 근처까지 물러나면, 치골 근처에서 비벼지고 있던 내 것의 딱딱해진 성기가 배꼽 언저리까지 튀어 오르며 자신의 아랫배를 쑤시곤 했다. 삽입한 쪽은 자신이었으나 자신의 소중한 것 역시 자신을 향해 마음껏 수컷의 역할을 즐기고 있었다. 자신의 몸 전체를 꿰뚫을 기세로 박고 또 박아대곤 해서, 아래쪽에서 내벽 깊숙이 거듭 찌르고 있는 자신의 분신이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황홀한 혼돈이 다시금 내려왔다. 더 이상의 열락은 존재하지 않을 극치의 일체감이었다. 그러기를 몇 분, 혹은 몇 만 분…… 몸서리쳐지는 쾌감과 함께 지복(至福)의 순간이 왔다.
내 것이 먼저 숨을 할딱거리며 무아경에 돌입했다. 자신의 양쪽 코트 깃을 움켜쥐고 있던 손가락이 쫙 펴지며 상반신이 경련을 일으켰다. 일순 숨조차 멎은 것처럼 보였다. 반쯤 입을 딱 벌린 채 흐릿하게 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듯하다가는 이내 뒤로 고개가 넘어갔다. 허리가 몇 번 크게 요동을 쳤다. 반사적으로 내 것의 등을 꽉 끌어안아 중심을 유지했다. 흐느끼는 듯한 오르가슴의 교성이 뇌리를 강타했고, 그것은 더 이상 참기 힘든 최후의 한 방이었다. 성기를 끊어댈 기세로 조여든 내벽이 경련을 일으켰고, 이를 사리문 채 마지막으로 크게 뒤로 빠졌다가 맹렬하게 치고 들어갔다. 전립선을 무자비하게 할퀴고 지나간 귀두 끝이 내벽 안쪽 깊은 곳에 부딪치며 찌르르한 지진이 시작됐다. 페니스의 표면 위로 흡사 접착제마냥 들어붙은 내벽이 통째로 경련을 일으키며 움찔거리고 있었다. 비명이 터질 것 같은 입을 가까스로 내 것의 입술에 고정할 수 있었다. 겨우 붙잡은 마지막 이성이었다. 분수처럼 솟구치는 하반신의 약동을 어렴풋이 인지하며 몸을 굳혔다. 온몸이 갈가리 부서지는 것 같은 극치의 쾌감을 자각하는 순간, 의식이 멀어졌다. 지복으로 부상한 넋은 까마득한 빛 속으로 남김없이 빨려 들어갔다.
“……사, 사장님…… 사장님…….”
멀리서 현실의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방도 저희가 예약해두었으니 이제 올라가 쉬시기만 하면 됩니다…….”
“…….”
“……사장님? 사장님……!”
거듭 되풀이된 부름이 있고서야 그것이 홍 기사의 목소리라는 걸 겨우 알아차릴 수 있었다.
눈을 뜨고 앞을 보자 기진맥진한 채 품 안에서 숨을 할딱이고 있는 내 것이 보였다. 뺨을 자신의 벌어진 가슴팍에 기댄 채 내 것은 완전히 기운을 잃은 듯 보였다. 눈을 감고 있긴 했지만 완전히 의식을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내 것의 상태도 그렇고, 자신 또한 당장은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찰나의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호텔에 도착해 이미 객실 예약까지 마쳤다고 하니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의식을 잃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차 안엔 온통 정액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고, 내 것이며 자신의 흐트러진 몰골은 그야말로 광기 어린 정사의 자취로 낭자했다. 더구나 내 것의 하반신은 양말을 제외하곤 완전히 발가벗겨진 상태였다. 그제야 제정신이 아니었던 스스로의 행위에 얼핏 자괴감이 일었다. 뒷좌석의 짐승스러운 광란을 모르는 척, 묵묵히 운전대를 잡아준 홍 기사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후회스러운 기분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고용주로서 체면에 손상이 가는 것과, 좀 전에 겪었던 극치의 오르가슴을 저울로 단다면 무게 중심은 당연히 후자로 기울고도 남았다.
“묵을 방은 따로 잡아두셨습니까?”
룸미러로는 일절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앞만 주시하고 있던 홍 기사에게 겨우 물음을 던졌다. 정사의 흔적이 역력한 허스키한 중저음에 슬며시 얼굴이 붉어졌다. 한참이나 연배가 위인 사내에게 치부를 낱낱이 내보인 현실은 아무리 해도 완전히 무시하기 힘든 노릇이었다.
“예, 사장님.”
“경호원들은요?”
“예, 먼저 방으로 올라가 대기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내일 오전 중에나 서울로 출발하실 것 같아서요. 사장님께서 묵으실 방과 같은 층에 3인용 객실을 하나 잡았습니다. 저희들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잘하셨습니다. 차 키와 룸 키를 제게 주시고 홍 기사님도 올라가 쉬십시오. 내일 아침까지 부를 일은 없을 겁니다.”
“……그게…… 사장님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
“……장 선생님을 모시고 올라가시려면…… 아무래도 탈진하신 것 같아 보여서요.”
“……괜찮습니다. 저 혼자서도 충분히 안고 갈 수 있습니다. 먼저 올라가서 쉬십시오.”
“……예, 그럼…… 편히 쉬십시오, 사장님.”
단호한 명령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적거리던 홍 기사가 이윽고 키 두 개를 뒷좌석으로 넘겼다. 상반신을 틀어 뒤를 향했으나 고개는 옆으로 비낀 자세에 실소가 터졌다. 최대한 이쪽을 보지 않으려는 점잖은 신사에게 새삼 못 할 짓을 했구나 싶었다.
키를 받아 쥐자, 홍 기사는 역시 고개만 돌아간 목례와 함께 서둘러 차 문을 열고 사라졌다. 멀어지는 홍 기사를 따라 차창 밖을 보니, 어둑한 조명 아래 일렬로 죽 세워진 승용차들의 무리가 보였다. 호텔 주차장 안인 모양이었다. 대충 추스른 후 엘리베이터까지만 가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서도 호텔 객실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개를 내려 다시 연인에게로 시선을 가져갔다. 정사의 여운이 낭자한 상기된 낯빛은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워서 가슴이 벅찼다. 반사적으로 감긴 눈꺼풀에 키스하자, 의자 아래 축 늘어져 있던 손이 대답처럼 목을 감싸 안아왔다. 의식은 있으되 기운은 바닥인지, 자신의 목덜미를 껴안은 양팔에 힘은 거의 들어가 있지 않았다. 팔을 들어 올린 것만도 힘에 겨운지, 달뜬 호흡은 더더욱 가쁘게 들렸다. 진정시키듯 껴안은 팔에 힘을 주고 가만가만 등줄기를 쓰다듬었다. 어깨와 팔도 소중하게 어루만지고, 땀범벅인 뒤통수로 손가락을 밀어 넣어 빗질하듯 쓸어내리기도 했다. 버릇 같은 립 키스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정수리 근처를 헤매 다녔다. 아무리 안고 또 안아도 꿈만 같다고 문득 생각을 흘렸다. 어루만지고 또 만져도 신기루처럼 안타깝고 절실하기는 한가지였다. 내 것…… 내 소중한 사랑…… 내 사랑. 내 연인, 내 예언자, 그리고 내 아내……. 오로지 나만의 것인 사랑…….
절절한 뇌까림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가 들리며 턱 끝으로 보드라운 감촉이 스쳤다. 내 것의 애절한 립 키스였다. 눈꺼풀을 반쯤 들어 올린 게슴츠레한 눈길이 자신의 시선과 얽혀들었다. 응, 나도 사랑해, 위야……. 소리가 없어 더욱 애틋한 대꾸였다. 당장은 목소리를 내기도 힘든 것처럼 보였다.
뒤통수를 감싸 쥔 손바닥에 좀 더 힘을 기울였다. 덕분에 가느다란 윤곽선을 그리는 턱 끝이 수평을 이루며 내 것의 고개가 좀 더 위로 들렸다. 바짝 다가든 입술에 고개를 숙여 자신의 것을 포갰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천천히 빨아들이다가, 곧 깊숙이 혀를 집어넣었다. 점막 사이로 질척하게 얽히는 교성이 새어나왔다. 애틋하게 시작했던 입맞춤은 곧 전율이 흐르는 농염한 것으로 변했다. 숨이 막히는지, 자신의 가슴을 밀어내듯 움찔움찔 몸을 떨던 내 것이 품 안에서 자지러졌다. 맙소사. 계속했다간 또다시 차 안에서 판을 벌이게 될 것 같았다.
필사적인 의지를 세우고 입술을 떼어냈다. 실처럼 이어진 서로의 타액을 말끔히 빨아 삼킨 후 내 것의 몸뚱이를 옆으로 밀어 의자 등받이에 기대게 했다. 잠시의 떨어짐도 마음에 안 드는지, 내 것의 양팔은 여전히 자신의 목에 반쯤은 감아들일 듯 걸쳐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들을 주워 입히고, 벗겨진 운동화도 꼼꼼히 신겨주었다. 내 것의 모양새를 다듬어준 후엔 자신의 옷매무새도 대충 정리했다. 정액과 땀으로 얼룩진 채 잔뜩 구겨진 슈트였지만 언뜻 보기에 정사의 자취라곤 그닥 감지되지 않았다. 호텔 객실까지 가는 동안만 세상의 눈을 가려주면 되니 상관은 없었다. 그렇게 서로의 몸가짐을 추스르는 동안, 여전히 자꾸만 달라붙으려 하는 내 것이었다. 절박하고 애처로운 그 몸짓에 동작은 더디고 손길은 어설퍼지기 일쑤였다. 북받친 심장은 내내 아프게 울어야 했다.
겨우 정상처럼 보이는 내 것을 안고 차를 빠져나왔다. 주차장 엘리베이터까지 이동하는 내내, 내 것의 양팔은 여전히 필사적으로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있었다. 만일 그 모습 그대로 사람들 눈에 뜨였다면 정상처럼 보이게끔 옷매무새를 고친 것도 다 소용없었을 터였다. 다행히 주차장에서 호텔 객실로 올라가는 직통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객실이 위치한 8층 복도엔 인적이라곤 없었다. 저녁 6시를 갓 넘긴, 애매한 시간대여서인 모양이었다.
출입문을 닫아걸고 곧장 침실로 들어가 침대 위에 내 것을 눕혔다. 여전히 기를 쓰고 달라붙으려 하는 내 것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옷가지를 벗기고, 자신도 부지런히 알몸이 되었다. 암막처럼 닫힌 묵직한 커튼을 걷는 것도, 여러 가지 오물 범벅인 서로의 몸을 씻는 것도 뒷전이었다. 만 하루 동안 배 속으로 들어간 음식이라곤 샌드위치 두 개와 오렌지 주스 한 잔뿐인 헛헛한 배 속도 전혀 의식되지 않았다.
알몸으로 달라붙은 서로의 몸뚱이를 빳빳하게 풀을 먹인 침대 시트 속으로 밀어 넣었다. 지칠 대로 지친 내 것의 몸 안에 바로 자신을 묻을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품 안에 껴안고 잠시라도 재울 셈이었지만, 기진맥진해하면서도 곧바로 물건을 세운 채 달려드는 내 것의 유혹은 자신으로서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랬다. 결정권은 더 이상 자신에게 있지 않았다. 결정은커녕, 그저 명령에 따르는 데만도 몸서리쳐지는 희열에 떨었다. 노예처럼, 혹은 버러지처럼 손끝으로 부려진다 한들 미쳐버린 광신도는 감지덕지할 터였다. 감히 내 것의 의사에 반하는 짓 따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고 싶지조차 않았다.
기진해 엎드려 누운 가는 몸 위에 자신을 겹친 채 뒤로 뚫고 들어갔다. 흥분하기에 따로 자극이 필요하진 않았다. 자신의 페니스는 사정 직후의 몇 분을 제외하면 늘 딱딱하게 발기된 상태였다. 당연했다.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성욕은 병적으로 항진돼 있었다. 몇 날 며칠 날밤을 새우며 이 짓만 하라고 해도 희희낙락 빠져들 수 있을 터였다.
기왕에 자신의 정액으로 흠뻑 젖어 있는 내 것의 내부는 너무나 수월하게 자신을 받아들였다. 흉기와도 다름없이 거대하고 단단하게 페니스를 부풀린 채 한계까지 파고들어가 안착했다. 양팔을 앞으로 뻗어 내 것의 가슴 언저리와 성기를 감싸 쥔 채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흐릿한 섬유 유연제 냄새를 풍기던 침대 시트 속은 금세 짙은 정사의 내음으로 가득해졌다. 안을 찔러들 때마다 움찔움찔 자지러지며 손바닥 안의 자그마한 성기도 팽창했다. 치고 빠지는 허리의 움직임에 맞춰 엄지손가락으로 내 것의 귀두 끝을 자극하며 기둥을 조이듯 긁어댔다. 다른 한 손으로 목덜미, 가슴산, 뾰족하게 솟은 양쪽 유두와 아랫배와 음모를 오락가락하며 리듬을 탔다. 내벽을 찌르는 것과 동시에 음경을 뿌리 끝까지 긁어내리길 반복하자, 열락의 기쁨을 대변하듯 가쁜 숨소리에 섞여 저릿한 교성이 내 것의 목구멍을 울리며 토해졌다. 그것은 그대로 자신의 참기 힘든 교성을 불러왔다. 내 것의 흥분한 목소리는 성기에 가해지는 몸서리쳐지는 쾌락 이상이었다. 열기에 휩싸인 두 몸뚱이는 곧 무아지경의 짐승이 되었다.
정수리를 이로 물고, 목덜미를 빨고, 귓바퀴를 입술로 지분거렸다. 정열을 못이긴 손가락은 삐죽 솟은 젖꼭지를 애무하다 못해 꼬집어 뜯을 기세로 지분거렸다. 뒤로 돌아온 내 것의 손가락들도 거칠기는 한가지였다. 자신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쓸고, 꼬집고, 핏발이 피칠 정도로 격렬하게 할퀴어댔다. 엉덩이 틈으로 비집고 들어온 손가락이 항문 언저리를 더듬다간 주름을 헤치고 들어와 내벽을 애무하는 순간도 부지기수였다. 낯선 이물감은 이내 깊숙이 파고들어온 내 것의 손가락이 전립선 근처를 건드리는 것과 동시에 난생처음일 환장할 것 같은 쾌감으로 터져 나왔다. 제법 규칙적이었던 리듬은 즉시 거센 폭풍우로 돌변했다. 찌르고 비비고, 찌르고 비비고, 막판엔 그저 안에서 머물며 전립선 부위만 미친 듯이 긁어내렸다. 항문 안쪽으로 파고든 내 것의 검지와 중지 손가락 끝이 자신의 전립선을 긁어내리는 피스톤질과 한가지였다. 전신을 전율처럼 휩싸고 도는 교합의 흥분은 더 이상 통제가 불가능할 지경이 되었다. 뒤돌아선 내 것의 얼굴 곳곳에 소나기 같은 키스를 퍼붓고, 입을 맞춘 후엔 서로의 숨이 막힐 때까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여윈 등줄기와 목덜미를 오르내리며 키스인지 폭력인지 모를 거친 애무를 되풀이했다. 통제되지 못한 흥분은 오르가슴에 오르기까지 채 십여 분이 걸리지 않았다. 손바닥 안에서 움찔거리며 정액을 토해내는 내 것의 무아경이 어렴풋이 자각되었다.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자신 또한 오르가슴에 올랐고, 나락에 떨어지는 듯한 방출의 쾌감과 함께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힘을 잃은 몸은 그대로 내 것의 몸뚱이 위에 무너져 내렸다.
다시 얼마 동안 혼절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의식을 차렸을 땐, 내 것의 얼굴이 바로 정면에 있었다. 놀랍게도 똑바로 누운 자신의 배 위에 주저앉은 채 내 것이 다리를 벌리고서 몸을 연결하고 있었다. 거의 힘이 빠져 중심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는 몸이었다. 표정은 나른하고, 붉게 젖은 몽롱한 눈빛은 섹스의 쾌락에 흠뻑 빠진 창녀의 그것 같았다. 이 이상 자신을 흥분시킬 존재라곤 다시없을, 세상 최고의 창녀였다. 양팔을 뻗어 내 것의 겨드랑이 틈으로 집어넣었다. 피스톤질이라기엔 아쉬운, 그저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릴 뿐인 상반신을 품에 안아들여 자세를 뒤집었다. 연결한 채로 정상위를 만들자 고통이 느껴지는지 내 것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철렁해선 허리를 뒤로 빼 자세를 잡고 다시 삽입해 들어갔다. 후배위 자세는 좋지 않다는 판단이 설핏 스쳐갔다. 내 것의 손가락이 자신의 전립선을 자극하면 더 이상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다는 깨달음 덕분이었다. 극치의 쾌락은 내 것에 대한 일말의 배려심조차도 앗아갔다. 자신의 안에서 통제 불능의 야수가 깨어나는 것은 절대 달갑지 않았다. 서로 아무리 좋은들 내 것을 상처 입힐 위험까지 감수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어깨 위에 내 것의 양쪽 다리를 걸치게 한 후 다시금 안쪽 깊숙이 파고들었다. 귀두 끝으로 전립선 근처를 스치며 상체를 기울여 가냘픈 어깨를 감싸 안자, 흐앙 하고 흐느끼는 듯한 교성이 울었다. 양쪽 겨드랑이 근처로 파고든 두 손으로 사랑스러운 화답이 왔다. 자신만큼, 아니, 어쩌면 자신 이상으로 성욕 항진 증세를 보이고 있는 내 것이었다. 그러나 극단으로 폭발하고 있는 욕망에 비해 체력은 이미 내리막길을 걷다 못해 바닥을 치고 있을 터였다. 온통 땀범벅인 얼굴은 섹스를 하는 표정이라기보단 흡사 열병에 걸린 환자처럼 아파 보였다. 메말라 터진 입술은 수시로 가늘게 떨리고, 묵직하게 내려앉은 눈꺼풀은 좀처럼 뜨일 기미가 안 보였다. 눈을 뜰 기력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이번을 끝으로 반드시 쉬게 하겠다고, 단호하게 맹세를 되뇔 수밖에 없는 애틋한 모양새였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어떤 경우라도 먼저 기절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자신 역시 체력이 바닥인 것은 알고 있었다. 오르가슴 끝에 또다시 혼절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도. 그럼에도 자신에 대한 의심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온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은 결심을 실천할 터였다. 내 것의 안위가 걸려 있는 한, 자신은 언제든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닌 진실이었다. 소망이 아닌 사실이자 현실이었다.
귓바퀴 근처가 자꾸만 간질거렸다. 신경 쓰이는 감각은 잠든 의식을 일깨웠고, 혼몽한 가운데 멀리서 빛이 느껴졌다. 빛을 따라 멍하니 걸어가다가 힘들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까무잡잡한 피부가 사랑스러운 왜소한 어깨가 보였다. 사방으로 뻗쳐 있는 젖은 머리카락도 보였다. 자신의 상반신을 깔다시피 한 채, 자신의 왼쪽 귓불과 귓바퀴를 입술로 빨고 있는 ‘내 것’이었다. 내 아내였다. 연인이었다.
빛은 연인의 어깨 너머, 침대 사이드테이블에 놓인 스탠드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방 안 곳곳에 부드럽게 스미는 불빛은 창 밖에서 비쳐드는 어스름한 여명과 닮은 짙은 보랏빛이었다.
어느새 또 잠이 들었군. 자조의 뇌까림과 함께 양팔을 둘러 연인의 상반신을 끌어안았다. 어깨와 등줄기, 허리를 번갈아 쓰다듬어 내리자, 귓불을 씹다시피 핥고 있던 내 것의 입술에서 흐릿한 신음이 터졌다. 부르르 어깨를 떠는 모양새가 아기 고양이의 기지개 같아 흐릿하게 웃었다. 매번 이 이상은 더 사랑스러울 수가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 단언은 채 몇 분도 가지 않아 깨지고 만다. 몇 시간 전보다 몇 분 전이, 그리고 그 몇 분 전보다 지금 이 순간이 몇 배는 더 사랑스럽다. 아마도 몇 분 후엔 지금 현재보다도 몇 십 배는 더, 더욱더 사랑스러우리라.
허리 아래, 도톰하게 올라붙은 둔덕을 어루만지자, 기어이 못 참고 자신의 품 안에 쓰러지듯 매달리는 내 것이다. 엉덩이 틈새로 손가락을 넣어 젖은 입구를 깃털처럼 애무했다. 서로 맞닿은 사타구니 틈새로 바르르 떨리는 성기가 몸서리쳐지도록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금세 딱딱해진 채 자신의 것을 찔러대고 있는 수컷에, 반쯤 남아 있던 수면 기운은 말끔히 날아갔다.
흥분한 이상으로 아픔이 느껴지는지 봉두난발 젖은 머리카락 틈새로 살짝 구겨지는 이마가 보였다. 자신 역시 한가지라, 항문 근처를 더듬었던 손가락을 빼 가느다란 허리춤으로 되돌렸다. 다른 한 손으로 뒤통수를 살살 어루만지며 고개를 들게 했다. 피로의 기색이 완연한 여윈 얼굴은 흥분의 여운 탓인지 흐릿한 분홍빛이었다. 마주친 눈시울도 촉촉하게 젖은 채 은은한 열기를 품고 있었다. 흑요석처럼 까맣고 순한 눈망울이 게슴츠레하게 뜬 눈꺼풀 속에서 빤히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안 해?
강아지 같은 눈망울엔 순진한 물음이 떠올라 있었다.
자고 일어났으니까 또 해도 되잖아.
울컥 밀려든 희열 탓에 저절로 입가가 벌어지려는 것을 지그시 억누르며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안 해. 더 하면 이번엔 진짜로 다치게 될 거야.
소리 없는 대답이 불만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하곤 다시 품 안에 얼굴을 묻는 내 강아지.
가슴 위로 올라온 내 것의 손가락이 유두 근처를 쓸자 아릿한 통증과 함께 성기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불만이 그득한 손길은 순수할 정도로 노골적이기만 해서, 다시 한 번 희열에 겨운 웃음이 스며 나왔다. 그러나 도발이 아무리 사랑스러운들 이 이상 섹스를 하는 것은 자해와 다름없을 터이다. 자신에게도 그러했고, 물론 연인의 상태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대전 시내에 있는 모 호텔에 든 시각이 어제 저녁 6시쯤. 이후 홀린 듯 몇 시간째 서로에게만 탐닉해 들어갔었다. 섹스하고, 키스하고, 애무하고, 들여다보고, 소리 없는 사랑을 고백하고…… 샤워를 하고, 룸서비스를 불러 저녁을 먹이고, 한 시간가량 억지로 잠을 재운 것을 제외하곤, 본드로 붙인 것마냥 서로에게 달라붙어 홀린 듯 서로만 탐했었다. 그러기를 무려 아홉 시간, 마침내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는 시점이 왔다. 새벽 3시 무렵이었다. 악착같이 견딘 끝에 먼저 기절하듯 잠에 빠진 연인을 젖은 수건으로 말끔히 씻긴 후, 품에 안은 채 하염없이 바라보았었다. 밤을 새워서 바라보며 지킬 요량이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지기 일쑤였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혹시라도 깨어난 연인이 다시금 자신을 탐하지 않을까 이상야릇한 불침번을 서야 했던 거다.
침대 맞은편 벽에 걸린 시계를 살폈다. 아침 7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각이 새벽 5시 무렵. 의지가 무색하게 시체처럼 잠이 들어버린 걸 보니, 역시 자신의 체력 또한 이미 한계를 넘고 있었나 보다. 어젯밤과 오늘 아침, 대여섯 시간이나마 눈을 붙인 연인과 달리 자신은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한 채 곧바로 출근을 했고, 그 여파가 나타난 때문이리라. 이틀 연속 철야를 한 상태로 하드 섹스에 몰두했으니 탈진할 지경이라 한들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하긴 근 한 달 가까이 심각한 불면증과 악몽, 온갖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에 시달린 자신이 아니었나. 아무리 철인 같은 체력을 자랑하는 자신일지언정 이틀이나 철야를 거듭하며 마라톤 섹스를 감당할 체력은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단 몇 시간의 섹스조차 감당할 기운은 애초부터 아예 없었다. 그런 자신을 한계 이상 몰아붙인 것은 바로 연인이었다. 연인의 흥분이었고, 연인의 애정이었으며, 연인의 재생이었다. 14년 전 여름, 그 찬란히 빛나던 날…… 전직 모교 교생과 찢어지게 가난한 고삐리 신분으로 처음 만난 이래, 자신에게 절대적인 애정만을 선사해주었던 젊은 연인이 고스란히 되돌아와준 것이다. 다 타버린 줄 알았던 잿더미 속에서 새롭게 피어오른 불씨. 온 넋이 천상의 희열에 떨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도무지 믿기 힘든 기적이었으니, 육체가 기왕의 한계치를 뛰어넘는 기적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일 터였다.
“……거기 피 안 났어…….”
쉬어버릴 대로 쉬어버린 가는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무려 열세 시간 남짓 만에 듣는 연인의 제대로 된 언어였다. 가슴팍 위에서 빼꼼 쳐든 얼굴엔 여전히 불만의 기색이 역력했다.
“……봐. 내 말대로 안 다치잖아. 그렇게 많이 했는데…… 그러니까 더 해도 안 다칠 건데…….”
무의식적인 어리광이 듬뿍 담긴 그것에 도저히 더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까지 보일 정도로 입술을 크게 벌린 채 희열에 겨운 웃음을 머금자, 불쑥 위로 쫓아 올라온 입술이 오른편 귓불을 한입에 삼켜버렸다. 암팡지게 깨물리는 감각에 아픔보단 하반신이 터질 지경으로 갈급한 충동을 느껴야 했다. 물론 충동에 질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아래는 괜찮을지 몰라도 심장엔 문제가 생길 거야. 마누라 몸이 아무리 달콤한들 침대 위에서 복상사시킬 생각은 없다.”
“…………!!!!”
“나도 그렇고. 이제야 겨우 마누라 물건이 살아나줬는데 실컷 맛보지도 못한 채 복상사로 죽을 생각 따윈 추호도 없거든.”
“………….”
“그러니까 앞으로 적어도 사흘은 섹스 금지다, 우리 마누라.”
“…….”
슬쩍 눈길을 돌리니 자신의 귓불을 깨문 채로 연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온통 수줍게 붉어진 얼굴과 목덜미를 보니 비로소 안도의 숨결이 새어나왔다. 유난히 수줍음을 타는 평소의 연인으로 겨우 되돌아와준 것이다. 더 이상은 연인의 이상 성욕 항진 상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연인이 어느 정도든 분별력을 찾아준다면, 그다음은 연인을 통제할 자신이 있었다. 아니, 초강력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연인의 명령에 옴짝달싹 못 하는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을 터였다.
“……서, 성욕 대마왕 주제에…….”
“아하하하하하…….”
불퉁하게 덧붙여진 허스키한 음성에, 기어이 자지러지는 웃음을 터트려야만 했다. 등줄기를 안은 양팔에 와락 힘을 주어 으스러져라 끌어안았음은 물론이었다. 어깨와 목덜미 사이, 예민한 피부에 얼굴을 파묻은 채 립 키스를 퍼부으며 꼬리를 물고 폭발하려는 웃음을 삼켰다. 어깨를 떨며 연신 끅끅거리자, “웃지 마” 하는 억울한 듯한 음성과 함께 다시 한 번 암팡지게 귓불이 깨물렸다. 아마도 잇자국이 선명하게 들어박혔을 것이다.
잔뜩 부풀어 오른 채 연인의 샅을 찔러대고 있는 스스로를 고요히 진정시키며, 품 안의 사랑스러움을 만끽했다. 눈물겹도록 행복했다. 여기서 물 한 방울 크기만큼의 행복감이 더 보태진다면 자신은 그야말로 발광이라도 할 터였다. 죽을 때까지 광소를 터트리며 행복해할 터였다.
할짝할짝. 깨물린 부위를 핥는지, 혀의 질척거리는 접촉 소리가 아득하게 귓전을 울렸다. 이번엔 꽤나 참기 힘든 유혹이었다. 의도적인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으로. 그러나 곧이어 아련하게 흘러나온 연인의 목소리엔 그저 순수하고 맹목적인 애정만 절실했다.
“……귓속의 작은 사람을 알아, 위야?”
“……?”
“있잖아, 한의사들이 어딘가 아프면 귀에다 이침(耳針)을 놓기도 하잖아. 그 침을 놓는 부위를 경혈이라고 하는 건 알지? 근데 그 경혈 점들을 전부 이어보면 말야, 거꾸로 서 있는 태아 모양이 된대.”
“…….”
“귓속에 또 다른 작은 태아가 있는 거지.”
“…….”
“그러니까 이곳엔 아주 작은 위야가 숨어 있는 거야. 태어나기도 전의 내 위야가 말야.”
“…….”
“……나는 말야, 아기 때 위야도 만나고 싶어. 내가 모르는…… 어머니 배 속에서 고물고물 숨 쉬고 있었을 아주 작은 위야도 보고 싶어. 아니, 보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아. 만나면 지금처럼 안아주고 싶어. 안기고 싶어. 이렇게 품에다가 꼭 안아서. 아프지 않게, 상처받지 않게, 품 안에다가 꼭 숨겨두고서 고이고이 키워주고 싶어.”
“…….”
“……그런데 내 위야는 이미 이렇게 다 커버렸으니까…… 나도 모르게 자라서, 내가 지켜줄 수도 없게 다 자라버려서…… 세상에 심하게 상처 입어버렸지. 그게 참 슬퍼. 여기 귓속의 조그만 아기 그대로 만났더라면 좋았을걸. 처음부터 함께 꼭 붙어서 태어났더라면 내가 악착같이 지켜주었을 텐데.”
“…….”
“……할 수 없지, 뭘. 그게 운명이었던 거면 어쩌겠어. 그냥 요기 귓속에 사는 조그만 위야한테나 만족해야지. 적어도 요기 사는 아기만큼은 지켜줄 수 있을 테니까. 앞으로 영원히 떨어지지 않고 지킬 거니까.”
“…….”
아무래도 구제 불능 울보 얼간이가 된 것 같았다, 자신은.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돼버린 것 같았다. 수시로 눈시울을 찌르듯 뿜어 나오는 물기엔 참으로 대책이 서질 않았다. 할짝할짝. 조심스럽게 귓바퀴 안으로 파고든 혀가 구석구석 옮겨 다니며 무언가를 핥고 있었다. 정말로 귓속에 태아 모양을 한 자신이 있고, 연인의 혀가 키스하고 있는 것은 그 어린 자신의 모습인 것만 같았다. 아니, 확실히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몸이 점점 작아지고 작아지더니 이윽고는 어린 태아의 모습을 한 자신이 보였다. 연인의 사랑스러운 몸은 마치 어미 새처럼 자신을 품 안에 꼭 껴안고 있었다. 품에 안긴 어린 자신은 흡사 완벽한 법열 상태에서 연인의 키스를 받고 있었다. 더 이상의 상처는 존재하지 않았다. 고통도 존재하지 않았다. 분노, 저주, 폭력, 질병, 죽음조차도 홀연 사라지고 없었다. 태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이대로 연인의 품 안에서 오롯이 둘만 존재하고 싶었다. 전설에 존재한다는 낙원이 그곳에 있었다. 아니, 연인이 바로 낙원이었다.
경건한 의식처럼 연인의 키스는 꽤 오랫동안 되풀이되었다. 울보 얼간이의 눈시울에선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렸다.
“……왜 울어…… 울지 마, 위야…….”
이윽고 현실로 되돌아온 연인이 문득 얼굴을 찡그리는 게 보였다. 자신을 따라 금세 붉어지는 사랑스러운 눈시울도 보였다. ‘따라쟁이’란 별명은 연인에게도 해당하는 것만 같았다.
“……울지 마아…… 울지 마…… 응……?”
벌써 눈물을 펑펑 흘려대는 연인의 얼굴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어물어물 떨리는 입술에 자신을 겹친 채 어른의 키스를 했다. 성스러운 낙원을 짓밟고 더럽혔던 죄인의 입맞춤이었다. 어떻게도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어둠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에 치를 떨면서도 물론, 죄인은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소중하고 소중한 낙원의 다리를 활짝 열고 죽음처럼 깊게 몸을 파묻은 것은 또한 당연한 유린이었다. 따로 떨어져 있다는 현실을 죄인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차마 범하진 못하고서, 그저 그렇게 서로를 연결한 채 키스만 했다. 이렇게 연결돼 있으면 어리고 순결했던 태아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고통도 죽음도 없는 그곳에서 오롯이 둘만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원히 그럴 거였다.
한 몸으로 연결된 채로 끝없이 키스만 되풀이했던 것 같았다. 누가 먼저 잠이 든 건지도 잘 몰랐다. 자신이 먼저였던 것도 같고, 연인 먼저 잠이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아니, 기왕에 한 몸이니 누가 먼저인들 어쩌랴 싶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완전히 날이 밝아 있었다. 시곗바늘은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꿈도 없는 깊은 숙면을 깨운 것은 간밤에 맡겨두었던 세탁 서비스였다. 품 안의 연인도 소리를 들었는지, 눈꺼풀을 떨며 신음 같은 긴 한숨을 토해냈다. 하반신은 여전히 연결된 채였다. 연인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움켜쥐고 천천히 성기를 빼냈다. 반쯤 발기한 상태의 페니스가 내벽을 스치자 연인은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신음을 토했다. 아픔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흠칫 굳어진 채 가만히 있자, 서서히 표정이 풀리는 게 보였다. 몇 번 눈꺼풀을 깜빡이는 것도 보였다. 그제야 연인이 완전히 깨어난 것을 알았다. 더 재우고 싶었건만. 아쉬운 한숨과 함께 반쯤 빼낸 페니스를 마저 빼낸 후 연인을 침대 위에 똑바로 눕혀주었다. 연결된 채 자신의 위에 누워 엎드린 자세로 잠이 들었으니, 꽤나 불편했을 터였다.
똑똑. 손님, 세탁 서비스입니다.
양팔로 상체를 지지한 채 홀린 듯 연인이 눈뜨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호텔 하우스맨의 콜이 들렸다. 순간, 반짝 뜨인 까만 눈망울이 정면으로 시선을 부딪쳐왔다.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재촉하는 문밖의 하우스맨의 존재도 홀연 잊혔다. 맨 정신으로 다시금 서로의 존재를 각인하는 순간은 여전히 믿기 힘든 기적처럼 느껴졌다. 연인도 같은 심정인지, 꼼짝도 않고서 자신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서서히 입술 끝이 말려 올라가며 웃음을 머금자, 따라서 설핏 미소를 짓는 내 것…… 내 아내…….
“……좀 잤나?”
쪽 하고 정성스레 입을 맞추며 하릴없는 말을 던졌다.
가슴이 두근거려.
되돌아온 것은 아련한 동문서답. 순하고 까만 눈망울이 별처럼 일렁이는 것에 비해 입가에 걸렸던 미미한 웃음기는 여전했다.
눈을 뜨자마자 네 얼굴이 정면으로 보이니까.
덧붙인 한마디에 겨우 의미를 이해했다. 입가의 미소는 사라지고, 대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가슴이 몹시 설레었다.
너무 예뻐서 가슴이 아파. 정말 심장에 나쁜 얼굴이야.
“……심장에 나쁜 쪽은 너지.”
똑똑. 손님, 손님? 똑똑. 똑똑. 손님, 아직 주무십니까? 8시 30분에 가져다달라고 하셨는데요?
젠장.
“잠시 기다려주시오! 곧 나가겠소!”
시선은 여전히 연인에게 고정한 채 고개만 출입문 쪽으로 빼서 외쳤다. 대꾸가 전해졌는지 문밖이 겨우 잠잠해졌다.
눈싸움을 하듯 다시 서로에게 시선을 박은 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동당동당 성급하게 뛰는 심장의 울림이 자신의 것인지, 연인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손끝까지 떨려오는 설렘을 못 참고 깊은 입맞춤을 하고 나서야 겨우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참으로 심장에 나쁜 내 연인이었다. 키스를 끝내고도 여전히 입술을 맞붙인 채 조용히 웃었다. 연인의 입술도 웃고 있었다. 조금은 수줍고 쑥스러운……. 마흔이 가까운 아저씨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 곱고 여리기만 한 웃음이었다.
바쁜 사람 괜히 기다리게 하지 말고 얼른 나가봐.
사려 깊은 한마디에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침대 아래 팽개쳐둔 가운을 대강 걸친 후 응접실 쪽으로 걸어 나갔다. 간밤에 룸서비스를 시키며 세탁물을 맡길 땐 이리 귀찮을 줄 미처 몰랐었다. 하우스맨 입장으로선 물론 애먼 짜증이었으리라. 잔뜩 굳어진 얼굴로 세탁물을 받아 든 뒤 고맙다는 립 서비스는 물론, 팁도 없이 문을 닫아버렸다. 침실 외에 응접실까지 딸린, 제법 특실로 보이는 방이었지만 스위트룸 수준도 아니라 아마도 팁은 따로 지불되는 것이 맞을 터였다. 뒤늦게 자각은 했으되, 지갑을 뒤져 다시 문밖으로 나가고픈 의욕은 눈곱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말끔히 세탁된 자신과 연인의 옷가지를 응접실 소파 위에 두고 부랴부랴 침실로 되돌아갔다. 연인은 시트를 가운 삼아 몸에 둘둘 만 채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창백하게 여윈 얼굴엔 여전히 부기와 다크 서클이 선연했다. 반쯤 걷혀진 커튼 틈새로 방 안 구석구석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고, 빛 속에 드러난 연인의 얼굴 모양새는 흐릿한 조명 속에서보다도 훨씬 안쓰럽게 보였다. 과도하게 항진됐던 색욕이 사라지고 나니 내내 흐릿하게 얼굴을 물들이고 있던 분홍빛 홍조도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자신에게 더 이상 흥분하지 않는 연인의 태도만큼, 역시 좀 섭섭한 부분이었다. 혹여 흥분한다 해도 극구 말려야 할 상황이건만, 청개구리도 이런 발칙한 청개구리가 없었다.
냉큼 마주 앉아 시트째로 품 안에 감아들였다. 꼭 껴안은 채 양쪽 뺨을 붙잡고 아쉬웠던 키스부터 했다. 쪽, 쪽, 쪼옥…… 춥, 추읍. 쪽……. 몇 번이나 이리저리 각도를 바꿔가며 기갈에 날뛰던 욕구를 잠재웠다. 마주 등을 감싸오는 양팔의 감촉에 또 얼간이 같은 웃음기가 비어져 나왔다. 힘은 그닥 들어가 있지 않아도, 자신에 대한 절실한 애정만큼은 방 안 가득 들어찬 햇빛만큼이나 선명했다.
“……왜 벌써 일어나? 좀 더 자두는 게 좋을 텐데?”
길고 긴 입맞춤 끝에 마지못해 탐욕스러운 혀를 끌어들였다. 입술만은 여전히 맞붙인 채 가만히 물음을 던졌다. 이렇게 서로 마주 안고 키스하는 것이 기뻐 죽을 지경이긴 했지만, 더 재우고픈 마음 또한 진심이었다. 머리카락을 살살 어루만지며 마주 댄 입술을 비비자, 배시시 사랑스러운 웃음이 대꾸처럼 피어올랐다.
“……많이 잤는걸. 나만 혼자 자는 것도 싫고…….”
“…….”
“……나 때문에 넌 별로 자지도 못했잖아. 너무 창피해, 사실은……. 그제랑 어제, 나 좀 미친 거 같았지? 그런 나 걱정하느라 너도 잘 잠들지 못한 거 알아.”
“…….”
“……그래도 더 이상 악몽은 안 꾸는 거 같아서 다행이지. 정말 기뻐.”
“!!”
“후후, 몰랐어? 핀트가 완전히 나간 거 같아도 그런 건 다 체크하고 있었는걸.”
“…….”
“응, 나도 많이 사랑하니까. 너만큼 많이 사랑하니까. 아주 많이…….”
“…….”
“또 눈이 빨개지네……? 참, 나…… 여기서 멈춰야겠다. 너 울면 나도 눈물 난단 말야…….”
“…….”
“……배 안 고파? 난 무지 배고픈데.”
“…….”
장난꾸러기처럼 눈가를 찡그리며 웃는 연인에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정말 연인이 멈추지 않았다면, 울보 얼간이는 틀림없이 또 홍수처럼 눈물을 쏟아냈을 터였다.
비틀비틀 사지를 휘청거리며 일어나 내선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메뉴는 뭐가 좋으려나…… 장부가 약한 연인이니 부드러운 죽 종류가 좋을까나……?
띠리리리리∼∼∼∼.
어젯밤에 읽어두었던 메뉴판을 뇌리 속에서 더듬고 있는데 느닷없이 휴대전화 소리가 들려왔다. 응접실 테이블에 놓아둔 자신의 휴대전화 벨소리였다. 잠시 무시할까 하다가, 같은 층에 묵는다는 홍 기사와 경호원들일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수화기를 도로 내려놓은 뒤 침실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동선이 움직일 때마다 꼬리처럼 따라붙는 깊은 시선에, 슬며시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은 사춘기 소년처럼 마냥 설레었다. 등줄기로 간질간질한 소년의 수줍음을 매단 채 응접실로 걸어 나왔다. 폴더를 열면서도 의식은 온통 침실 문 너머 연인에게만 닿아 있었다. 여보세요. 무심결에 응수를 던지고 나서야 미처 번호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귀찮은 전화라면 그냥 끊어버리리라. 여보세요? 가볍게 마음을 접고, 좀처럼 대꾸가 없는 폴더 너머 상대를 재차 불러보았다. 한동안 가쁜 숨소리만 들려왔다. 희미한 짜증은 곧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말씀하십시오.”
끊어버려야지. 불길하게 뛰기 시작한 심장의 울림을 자각하며 최후 통첩을 날렸다. 대답을 재촉하긴 했으나 단 몇 초도 기다려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막 폴더를 내리려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힘겹게 흘러나왔다.
[……무…… 문 서방인가? 날세…… 신애 에미야…….]
젠장! 젠장, 젠장, 젠장!!!!!
단 1초도 기다리지 말았어야 했다고…… 아니, 아예 받지도 말았어야 했다고, 혀를 깨무는 심정으로 뇌까린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