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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2004년 2월. 장인환(張仁歡) (110/129)

50. 2004년 2월. 장인환(張仁歡)

아랫배가 뿌듯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몸 안의 에너지가 쭉쭉 빨려나가는 것만 같은 달콤한 흡입이 사타구니 사이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어질어질한 감각과 익숙한 쾌락에의 기대가 의식의 한가운데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좀 더, 좀 더……. 누군가를 향한 애원과 함께 더 강한 자극을 찾아 본능처럼 허리를 흔들었다. 닿을 듯 닿을 듯 애만 태울 뿐, 기대하고 있는 극점은 좀처럼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안타까움에 입안이 바짝 타들어갔다. 수면 아래서 몽롱하게 떠돌고만 있던 의지를 가까스로 끌어올렸다. 깨어나야만 한다. 스스로에게 명령을 던졌다. 깨어나야만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었다. 오지 않는다면 제 스스로 빼앗아 와야 했다. 

헐떡이듯 하반신을 뒤틀며 와락 주먹을 움켜쥐었다. 머리카락이 만져졌다. 부드러우면서도 풍성하게 감겨드는, 익숙한 머리카락의 감촉이었다. 연인의 것이었다.

“……흐앗……!”

본능적으로 가랑이를 활짝 열었다. 그래야 연인이 좀 더 잘 빨아줄 터였다. 과연, 기둥뿌리까지 빨려 들어가는 강렬한 흡입에, 자지러지는 탄성이 터졌다. 눈을 번쩍 치켜떴다. 푸르스름한 여명이 비쳐드는 낯선 천장이 보였다. 이상야릇한 위화감에 몇 번 눈꺼풀을 깜빡이다가 쾌감이 올라오는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연인의 짙은 갈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자신의 오른손은 정수리 근처에서 연인의 머리카락을 갈퀴처럼 움켜쥐고 있었다. 꿈의 연장인지 현실인지 잠깐 동안 분별이 가지 않았다. 잠에선 완전히 깨어났지만 무언가 이상야릇한 위화감 또한 여전했기 때문이었다.

연인은 침대 위에 엎드린 자세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욕망을 빨아주고 있었다. 자신의 허벅지를 양팔로 감싸 안듯 휘어잡은 채 느리게 피스톤 운동을 하고 있는 정수리가 보였다. 움켜쥔 머리카락을 조금 당기자 연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붉은 눈이었다. 마주친 시선에 문득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위야……?”

핏발이 선명하게 떠오른 눈시울이 푸르스름한 여명 속에서 오롯이 빛나고 있었다. 사랑을 나눌 때면 늘 보통 때보다도 더 강렬한 주시를 해오곤 하는 연인이지만 지금의 저 눈빛은 유독 더 깊고 음산했다. 게다가 붉은 눈시울은 확연한 울음의 흔적이었다. 꽤나 부어오른 눈꺼풀에서도 울음의 흔적은 여실했다.

……뭐지? 연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심장의 반사적인 통증과 함께 불안한 의문이 뇌리를 스쳐갔다. 쾌락으로 인한 흥분이 아닌, 다른 이유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스러지려던 욕망은, 그러나 다시 한 번 연인의 강력한 흡입을 만나 도로 극점까지 피어올랐다.

“흐앗…….”

저절로 뒤로 목이 확 꺾이며 사지가 뒤틀렸다. 반사적으로 와락 감겨버린 눈꺼풀 탓이었을까?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해하게 다가온 것은. ‘아, 그래!’ 문득 뇌까렸다. 확실하게 각성이 왔다. 담배 냄새였다!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나고 있었다! 아니, 담배 냄새뿐만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달랐다. 다른 냄새였다. 우리 집의 냄새가 아니었다. 우리 집의 침실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눈을 뜨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천장도 처음 보는 낯선 것이었다는 게 기억났다.

딱 사정하지 않을 정도로만 아슬아슬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연인에 떠밀리며 다시금 가까스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시선을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냄새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였다. 희미하게 자각되던 불안감은 절대 있을 것 같지 않은 냄새 탓에 극도의 공포감으로 증폭돼 있었다.

갑자기 양쪽 다리가 위로 확 들렸다. 연인이 양다리를 연인의 어깨에 걸친 채 삽입 자세를 취한 때문이었다. 덕분에 담배 냄새의 진원지를 찾으려던 시도는 완전히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연인의 얼굴로 다시 시선이 돌아왔고, 연인은 자신의 몸뚱이를 한계까지 반으로 접으며 몸을 겹치고 있었다. 그제야 이미 질척하게 젖어 있는 항문 주변이 자각되었다. ……뭐지? 뭐지?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약을 먹지 않았나? 영원히 잠드는 약이라고 했는데? 근데 여긴 어디지? 언제 여길 온 거야? 아니, 지금은 며칠인 거지……? 쾌락에 찌든 몸뚱이와는 별개로 뇌리 속에선 온갖 기억과 생각들이 폭죽처럼 터지며 뒤죽박죽 엉키고 있었다.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다. 아니, 모든 게 명확한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연인에게 안기는 자신도, 안고 있는 연인도, 낯선 냄새가 나는 낯선 장소도, 그리고 무언가 낯선 기척도.

“……위…… 위야……? 여…… 여기……? 나…… 흐앗!!!”

불쑥 입구가 벌어지며 익숙한 흉기가 단숨에 파고들었다. 그대로 전립선을 가차 없이 긁어내리는 충격에 온갖 생각들로 뒤엉키던 뇌리 속이 순간 텅 비고 말았다.

“……흐앙……! 앗……! 후아앗……! 앗, 악……!”

느리고 부드러운 공격이었지만 정확히 포인트만을 쑤시는 엄청난 자극이었다. 고개를 돌리기는커녕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도 힘이 들었다. 허리가 뒤로 활처럼 휘었다. 필사적으로 침대 시트를 움켜쥐며 전율할 것 같은 쾌감이 주는 자극을 견디기 위해 기를 썼다.

“……앗……! 흐악……! 앗……! 흐아앙…… 앙…… 아앗…… 위…… 위야…… 아앗!!!”

막 전립선을 긁으며 앞으로 다가드는 연인의 목을 팔을 뻗어 와락 끌어당겼다. 연인은 저항 없이 끌려왔다. 완전히 반으로 접힌 몸 위에 자신의 허벅지를 양팔을 뻗어 누른 자세로 침대 바닥을 누르며 상체를 지지하고 있었다. 피스톤 운동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자신에게 연인의 무게를 싣지 않기 위한 배려 같았다. 바닥까지 떨어진 자신의 기력을 근심해서일 것이다. 하긴 별로 오래 연인을 받아들인 것 같지도 않은데 이미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머릿속은 어질어질하고, 숨은 턱까지 차올라 색색거리는 거친 소리가 났다. 빨리 끝내야 할 것 같은 마음과, 연인이 주는 쾌락을 좀 더 오래 지속시키고도 싶은 욕망 사이에서 의식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연인의 느리면서도 철저한 공격 때문일 것이다. 연인은 냉정할 정도로 정확한 이성으로 자신의 몸 상태를 지켜보며 피스톤질의 페이스를 조절하고 있었다. 기운이 달려 혼절할 것 같으면 속도를 줄이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거나, 얼굴 곳곳에 깃털 같은 립 키스를 떨어뜨렸다. 연인을 조르듯 내벽 속의 흉기를 물어뜯으면 그제야 도로 빠져나갔다가 엄청난 기세로 전립선을 긁으며 깊은 안쪽까지 페니스를 때려 박았다.

“……흑, 웃, 우앗……! 더…… 위…… 위위…… 후앗……! 거기…… 거…… 흐앙…… 악……!”

점점 더 포위하듯 다가오는 극치의 감각에 쫓기고 있었다. 연인의 목을 감아들인 두 팔에 필사적으로 힘을 주며 연인에게 매달렸다. 잡힐 듯 잡혀주지 않는 오르가슴에 애가 탔다. 좀 더 쑤셔주기를, 좀 더 거칠게 박아주기를 원하는 욕망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모자랐다. 어딘가 모자랐다. 창녀가 깨어나고 있었다. 짐승이 깨어나고 있었다. 나쁜…… 나빠……. 머리 꼭대기까지 치민 욕구 불만에 문득 욕설까지 터졌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그걸 해주지 않아? 왜 거길 더 힘껏 박아주지 않는 거지? 더 해. 더 쑤셔줘. 부서트려줘, 제발……. 머릿속이 짐승의 욕망으로 터지는 것 같았다. 허리를 뱀처럼 돌리며 연인의 페니스를 꽉꽉 조여댔다. 깊이 들어와 박히면 더 이상 빠져나가지 못하게 안으로 빨아들였다. 진공 흡입기라도 돼서 연인의 전부를 영원히 안으로 삼키고 싶었다.

문득, 뿌리치듯 빠져나간 흉기가 더 이상의 진입을 않고 있었다. 안 돼! 반사적으로 사지를 뒤틀며 잃어버린 반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 것은 그저 텅 빈 허공뿐이었다. 허전하게 비어버린 아랫도리가 절박해진 나머지 입구 주름이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흐아앙…… 위…… 위위……!”

흐느끼듯 애절한 교성을 내지르며 연인을 불렀다. 연인의 얼굴이 다가왔다. 얼핏 핏발이 선 눈시울을 본 것 같았다. 그러나 그저 찰나의 순간이었을 뿐, 시야가 가로막히는 바람에 세상은 갑자기 암흑천지가 되었다. 연인의 손가락이 자신의 두 눈을 가린 때문이었다. 애타게 허공을 휘젓던 두 팔 안으로 연인의 목이 만져졌다. 필사적으로 끌어당기자 연인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겹쳐왔다. 허겁지겁 입을 벌리고 연인을 빨아들였다. 연인의 까끌한 혀가 농염한 율동으로 춤을 추며 자신의 것과 겹쳐졌다. 서로의 혓바닥을 비비고, 입천장을 긁고, 치아를 더듬었다. 물고 빨고 비비고 목구멍 안쪽까지 깊이 쑤시고 들었다. 어느새 침대 바닥에 늘어져 있던 다리가 활짝 들렸다. 단단한 손아귀가 자신의 양쪽 발목을 틀어쥐고 있었다. 비부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하늘 높이 들린 자세가 자각되자, 기대감으로 입구 주름이 움찔움찔 떠는 것이 느껴졌다. 사타구니 안쪽을 들쑤시고 있던 처절한 교합에의 욕망이 들불보다도 빠르게 감각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다. ……어서…… 어서 빨리…… 빨리 박아줘…… 박아줘…… 제발…… 얼른…… 얼른…… 어서 빨리 그 두꺼운 것으로…… 네 커다란 그걸로…… 여길 꽉꽉 채워줘…… 쑤셔줘…… 부서트려줘……! 내벽이 미친 듯이 경련하며 소리 없는 창녀의 애원을 흘리고 있었다.

마침내 뭉툭한 귀두 끝이 불쑥 안으로 파고들었다. 내부의 창녀가 소리 없는 희열의 탄성을 내질렀다. 입안으로 파고들어온 혀가 안쪽 깊숙이 박혀드는 것과 동시에 압도적인 크기의 음경이 단숨에 뿌리까지 쑤셔들었다.

“흐아아앙……!!!”

전립선을 스치며 내벽 끝에 박히는 귀두의 감촉에 온몸이 뒤틀리는 창녀의 교성이 터졌다. 평소와 달리 어딘가 불안정한 삽입이 더 미치도록 자극적이었다. 뭉근하게 진동하며 내벽을 짓이기는 흉기의 도발에 창녀는 몸서리를 치며 파도치는 장내 근육의 율동과 끊어버릴 듯한 조임으로 화답했다. 깊숙이 파고든 딱딱하고 굵은 육봉 또한 결합의 기쁨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귀두 끝으로 점막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연인의 머리카락을 잡아 뜯을 듯 움켜쥐고 빠르게 허리를 흔들었다. 서로를 최고의 쾌락으로 이끄는 격렬한 피스톤질로의 초대였다. 과연 부르르 진동하던 음경 기둥이 슬쩍 뒤로 빠지는 듯하다가 도로 힘차게 내벽으로 파고들었다. 몇 번이나 세찬 공격을 퍼부으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전립선을 비껴가는 자극에 몹시도 애가 탔다. 흐앙, 흐앙, 발정 난 고양이의 교성을 질러대며 연인을 더욱더 재촉했다. 애원이 통했을까? 마침내 입구 근처까지 빠져나갔던 두툼한 육봉 끝이 꼬챙이처럼 힘차고 날카롭게 전립선을 직격했다. 찌르르하게 치고 올라온 엄청난 쾌락에 뇌리 속이 하얗게 변했다. 경련하듯 페니스를 물어뜯는 조임으로 화답하자 마침내 연인도 짐승처럼 흥분한 것 같았다.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허리를 흔들며 전립선만을 쑤셔대기 시작한다. 격렬하게 입술을 빨아대는 깊은 키스 또한 호흡 곤란의 원인이었다. 심하게 헐떡이며 도리질을 하자 겨우 연인의 입술이 떨어져나갔다.

공기, 공기, 공기! 거칠게 숨을 할딱이며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몸서리를 쳤다. 너무나 좋은 만큼 빨리 가고 싶지 않았다. 더 원했다. 더 강하게 박아주길 원했다. 아직은 아니야. 맹렬하게 할딱이며 되뇌었다. 지걱, 찌걱, 찌걱, 축, 축, 츕, 추웁, 찌걱, 찌걱…… 페니스가 들락날락하며 질척하고 끈끈하고 야한 접촉음이 쉴 새 없이 귓전을 두드리고 있었다. 탁, 탁, 탁, 탁, 힘차게 엉덩이 골을 치대는 고환의 울림은 흡사 기관총 소리만 같았다. 연인의 손에 시야가 가려진 터라 그건 아랫도리에 직접적으로 찔러주는 자극 못지않은 엄청난 쾌락이었다. 깊이 파고들 때마다 와락와락 페니스를 죄며, 엄청난 기쁨을 안겨주는 연인의 성기에 경배했다. 창녀의 경배였다.

가까스로 부족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우는가 싶자 다시금 연인의 입술이 다가들었다. 입술이 빨리고, 깨물리고, 이어 굶주린 듯한 짐승의 혓바닥이 요동치며 안으로 침입했다. 아랫도리의 격한 삽입과 거의 동시로 꿰뚫리는 순간이었다. 다시금 뇌리 속이 하얗게 변했다.

“흐아아아앙!!! 아앙, 아흣, 앙, 흐앙……!”

도무지 억제되지 못한 천박한 교성이 맞물린 입술 틈으로 연달아 고래고래 터져 나왔다.

입술을 파먹을 기세로 유린하는 연인의 목을 졸라 죽일 기세로 끌어당겼다. 미친 듯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연인의 타액을 삼키고, 피스톤질의 리듬에 맞춰 물레방아처럼 허리를 돌리고 흔들었다.

담배 냄새가 났다. 땀 냄새와 섞인 연인의 알싸하고 짙은 체취와 함께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났다. 이번엔 처음에 자각한 것보다도 더 짙은 감각이었다. 문득 그것이 현재 자신의 입술을 엄청난 열정으로 빨아대고 있는 연인의 입안에서 난다는 것이 얼핏 자각되었다. 뭐지……?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상야릇한 위화감이 들었다. 쾌락에 넋이 나가버린 창녀의 의식을 뚫고 흐릿하게 이지(理智)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손가락 사이로 만져지는 연인의 머리카락들도 이상했다. 부드럽고 숱이 많은 것은 한가지였으나 길이가 연인보다는 한참이나 길었다. 언제나처럼 단정하게 잘린 뒤통수가 아니라, 목덜미 근처까지 길게 늘어뜨려진 감촉에 문득 서늘한 한기가 전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다시금 강렬하게 찔려 들어온 전립선!

“우아아아악……!!!!!”

소리소리 교성을 질러내며 사방으로 도리질을 쳤다. 덕분에 떨어져나간 연인의 입술은 이번엔 귓바퀴를 통째로 입안에 넣은 채 잘근잘근 씹어 먹고 있었다. 오르가슴 직전의 광란이 맞붙은 두 마리 짐승을 동시에 강타하고 있었다. 문득 눈앞을 가렸던 연인의 손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갑자기 다가온 빛에 감았던 눈꺼풀을 번쩍 뜨며 연인을 찾았다. 오르가슴만은 연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서 맞고 싶었다.

새파랗게 불길이 일고 있는 아름다운 눈시울이 보였다. 음산한 쾌락의 열기로 붉게 달아올라 있는 화려한 이목구비도 보였다. 온 얼굴에 번들거리고 있는 땀방울들이 폭풍처럼 흔들리고 있는 수컷의 피스톤질에 따라 자신의 얼굴과 가슴은 물론 사방으로 튀고 있었다. 나른하게 뜬 깊은 눈시울이 자신의 눈동자 속으로 화살처럼 박혀들고 있었다. 굵게 쌍꺼풀이 진 천사의 눈시울이었다. 서로의 타액으로 번들거리고 입가도 보였다. 얄팍하면서도 섹시한, ‘그 남자’의 도발적인 입술 모양새였다. 물에 푹 젖은 것만 같은 자연스러운 웨이브를 그리고 있는 남자의 머리카락이 바람을 마주하고 있는 사자 갈기처럼 사납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과 이어진 아랫도리의 피스톤질과 동일한 리듬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바람이었다.

충격은 미처 의식 속으로 침투하지도 못했다. 채 의문을 느낄 새도 없이 연인이 태풍과 같은 속도로 전립선만을 찔러대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무서울 정도의 엄청난 쾌락이 하반신을 강타하고 있었다. 몸서리를 치며, 소리소리 교성을 질러대며, 피스톤질에 맞춰 정신없이 허리를 흔들었다. 본능적으로 내뻗은 팔로 연인의 등을 미친 듯이 끌어안았다. 움직일 때마다 울퉁불퉁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등 근육의 매끈거리는 감촉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손톱을 세워 가차 없이 긁어내렸다. 그 외엔 이토록 좋은 끔찍한 쾌락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다시 연인의 입술이 내려왔다. 잡아먹힐 듯한 키스에 열렬히 반응했다. 서로의 혀를 꼬아 얽고, 혀끼리 부벼대고, 물고, 빨고, 씹고, 서로의 타액까지 주린 듯이 빨아 삼켰다. 짙은 담배 냄새마저 화냥년의 허기와 갈증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담배 냄새라고? 순간, 흐릿하게 스쳐간 자각과 얼굴 가득 쏟아져 내리는 긴 머리카락의 감촉에 다시 한 번 의아함을 느꼈다가, 곧 또 모든 것이 새하얗게 비었다. 두 다리가 옆으로 활짝 벌어지며 귀두 끝으로 강렬하게 찔러든 전립선 때문이었다.

지진 같은 경련이 온몸을 강타했다. 심연을 향해 아득하게 떨어지는 것 같은 지옥의 쾌락이었다. 두려운 나머지 두 팔은 물론 양쪽 다리로 연인의 몸뚱이를 친친 휘감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두 발목 모두 연인의 손아귀에 단단히 틀어잡힌 때문이었다. 두 팔과 양손가락으로 연인의 등줄기를 갈퀴처럼 끌어안는 외엔 하반신은 옴짝달싹할 수조차 없었다. 끌어안다가 어루만지다가 그도 안타까우면 손톱을 세워 마구 꼬집거나 할퀴어댔다. 연인이 극도의 빠르기로 찔러대며 결승점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일체의 기교도, 절제도 잊은 채 무턱대고 찌르고 빠지고 찌르고 빠지는, 발정의 광란이었다. 접합된 부분과 안쪽의 점막과 더 깊은 곳에 숨은 전립선만이, 타버릴 정도로 격렬하게 비벼지고 있었다. 뿌리까지 박힐 때마다 자신의 엉덩이 골과 샅에 연인의 고환과 치골이 연달아 부딪치며 내는 색음(色音)이 흡사 거대한 폭포수 소리처럼 증폭돼 들릴 지경이었다. 동작이 위험스러울 정도로 난폭해지는 바람에 서로의 입술조차 제대로 맞물릴 수 없었다. 그저 서로의 입가에 닿는 상대의 몸뚱이 어느 곳이든 닥치는 대로 빨고 핥고 씹고 물어뜯는 수밖에 없었다. 콧망울을 빨고, 턱 끝을 씹고, 귓불을 깨물고, 목덜미를 핥고, 어깨를 물어뜯었다.

무아지경의 끔찍한 쾌락의 폭풍 속, 잘게 부서지며 폭발하는 빛이 보였다. 점점 더 아득해지는 의식의 끝으로 연인의 얼굴을 설핏 본 것 같았다. 참혹하게 일그러진 고통이 거기 있었다. 거꾸로 뒤집힌 고개 탓에 머리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연인을 겨우 인지한 것이다. 왜 저기에 연인이 있지? 오르가슴 직전, 찰나로 스친 의문이었다. 연인은 지금 자신에게 달라붙어 연신 자신의 목덜미 이곳저곳을 흡혈귀처럼 빨고 있는데? 다시금 난폭하게 찔러든 귀두에 허리가 접히며 상체가 뒤로 확 휘어졌다. 이해할 수 없는 혼란에 의지력을 세울 틈도 없이 엄청난 오르가슴이 닥치고 있었다.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폭발하는 쾌락의 홍수 속에서 의식은 더 이상 통제 불능이었다.

“흐앙…… 아…… 우아아아아악!!!!!”

“……큭…… 흐우윽!!……! 크읏!!!!!”

억눌린 오르가슴의 교성이 두 개의 몸뚱이로부터 거의 동시에 터져 나왔다. 자신이 뿜어낸 새하얀 포말이 얼굴까지 튀어 오르는 것이 설핏 보였다. 거의 동시에 안쪽 깊은 곳으로 확 끼쳐드는 뜨거운 체액을 느낀 것도 같았다. 그러곤 곧 수직으로 곤두박질쳤다. 새까만 어둠이었다. 속수무책이었다.

얼굴 곳곳으로 떨어지는 정열적인 립 키스가 의식을 일깨우고 있었다. 뜨겁고 축축한 감촉이었다. 낯선 키스였다. 지독하게 이질적인 입맞춤이었다. 담배 냄새가 났다. 지독하게 짙은 담배 냄새였다. 이상했다. 도무지 눈물이 멈출 줄을 몰랐다. 언제부터 울기 시작한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몸 안에는 여전히 딱딱하게 발기해 있는 거대한 페니스가 박혀 있었다. 하늘까지 활짝 벌어졌던 자신의 두 다리는 지금 자신을 범하고 있는 남자의 허리에 반강제로 감겨 있었다. 남자의 커다란 두 손이 자신의 종아리를 틀어 쥔 채 남자의 허리에 완강하게 밀착시키고 있었다. 발기한 남자치곤 창백하게 굳은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 어딘가 열에 들뜬 듯한, 그러나 깊은 고뇌가 서린 아름다운 눈시울도 보였다. 역시 강간하는 남자의 눈빛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굵게 만들어진 쌍꺼풀이 천사들을 그린 르네상스 시대 종교화를 연상시켰다. 섬세하면서도 육감적인 입술에 걸린 처연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가 많이 아파 보였다. 저런 ‘빛’의 남자에게 담배 냄새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강간은 물론 더더욱.

처음으로 자세히 보게 된 남자의 알몸은 온통 근육뿐이었다. 섬세하면서도 부드럽게 짜인 아름다운 근육이 맑고 깨끗한 피부 밑에서 맥동하는 것은 그대로 인간의 육체에 대한 찬미처럼 느껴졌다. 기왕에 저 육체가 던져주는 극치의 쾌락을 맛봐서일까? 더 이상 낯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낯설기는커녕, 연인의 몸뚱이만큼이나 친밀하고 애틋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 역시 연인의 교활하고 치밀한 계산과 다름없었으리라.

남자가 느리게 피스톤질을 할 때마다 땀에 흠뻑 젖은 남자의 머리카락과 얼굴에서 눈물 같은 땀방울들이 뚝뚝 떨어졌다. 기진맥진한 자신을 배려하는 건지, 남자의 피스톤질은 교묘하게 전립선만을 피해 박혀들고 있었다. 단 한 번, 짐승의 섹스로 남자는 자신의 몸에 대해 구석구석 알아낸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얼추 익혔든가, 아니면 연인이 직접적으로 귀띔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디를 만지면 흥분하는지, 어디를 빨아주면 자지러지는지, 어디를 어떻게 박아주면 참지 못하는지, 짐승이 되는지……. 왜 아니겠는가. 연인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괴물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걸 차지하기 위해선 지고의 천사라도 악마의 꼬임으로 끌어들일 괴물이었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악당에, 사기꾼에, 이기적인 괴물이었다. 그리고 그 괴물을 목숨처럼 사랑하는 외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는 더한 괴물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이었다.

다시금 자신의 입술을 틀어막으려는 남자의 입술을 간신히 고개를 돌려 피했다. 남자의 입술은 대신 자신의 뺨에 달라붙어 눈물범벅인 얼굴을 개처럼 핥고 있었다.

“……위…… 야…… 위…… 위야아…… 아…….”

완전히 쉬어버린데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흐느적거리는 부름이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저것이 자신의 목소리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단 한 마디를 뱉는 중에도 그대로 의식을 놓을 것만 같아서 이를 악물어야 했다. 괴물을 잡아야 했다. 내 불쌍한 괴물을 잡아야 했다. 자신을 도로 데려가달라고 명령해야만 했다.

“……위야아…… 위위…… 위…… 위야…… 아…….”

가까스로 손을 들어 허우적거리며 연인을 불렀다. 남자에게 꽉 맞물린 아랫도리는 옴짝달싹할 수조차 없었다. 설령 남자가 삽입을 풀더라도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들 지경으로 바닥까지 떨어진 기운으론 단 한 발짝도 걸을 수 없을 것이다. 갈 수가 없었다. 자신의 힘으론 연인에게 갈 수가 없었다. 연인이 와야 했다. 곁으로 와줘야만 했다. 명령이었다. 연인은 자신의 명령을 들어줘야만 했다. 물론 들어줄 것이다. 따라쟁이 팔불출에 변태 색정광인 연인이 아닌가. 자신에게만 미쳐 있는 중독자가 아닌가. 아무리 안 그런 척 근엄하게 후까시를 잡아도 그게 다 사기란 걸 이젠 안다. 자신의 ‘서방님’ 소리 한 마디에 흐물흐물 녹아버리는, 자신을 거의 종교로까지 신봉하는 장인환교(敎) 열성 신도다. 장인환 주인의 노예다. 장인환 연인의 연인이다. 장인환 마누라의 남편이다. 그래, 내 것이다. 전부 다 내 소유인 남자다. 괴물이다. 그러니 와야 한다. 괴물은 장인환 구세주의 명령을 들어줄 의무가 있다. 장인환 주인의 지시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마누라의 손짓 한 번에 ‘네, 마님’ 하고 넙죽 엎드려야만 할 의무가 있다.

“……위…… 이…… 이이…… 야…… 위…….”

가물가물 흐려지려는 의식을 가까스로 잡아채며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꺼져버릴 것 같은 목소리이지만 자신의 열성 신도는 알아들을 것이다. 제 구세주의 단호한 의지를 읽을 것이다. 설마 가롯 유다처럼 이리 배신한 상태로 자신으로부터 도망쳐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위위…….”

느릿한 리듬으로 거듭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던 피스톤질이 멎었다. 괴물의 뜻대로 유혹에 저버린 타락 천사 또한 자신의 의지를 읽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깊이 삽입된 물건을 빼지는 않았다.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쓸어내리거나, 끊임없이 자신의 몸뚱이 곳곳을 핥고 빠는 음습하고 끈끈한 애무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소중했던 친구는, ‘소울메이트’였던 아름다운 남자는, 자신이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죽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소중한 친구 대신 짐승의 섹스에 눈을 뜬 탐욕스러운 수컷이 존재를 들이밀고 있었다. 역시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또 다른 ‘배신’이었다. 두 마리 괴물에게 철저하게 뒤통수를 후려 맞은 케이스였다.

풍랑을 만난 돛단배처럼 허우적거리던 오른손이 허공에서 단단하게 정지했다. 손바닥과 손등으로 따스하다 못해 뜨거운 온기가 와락 달려들었다. 익숙한 체온이었다. 유난히 높은 체온이라, 유난히 더위를 잘 타는 괴물이었다. 괴물의 양손바닥 안에 갇힌 손가락들 위로 괴물의 입술이 밀어붙여졌다.

“……그래…….”

잔뜩 쉰 중저음이 손가락 위에서 웅얼거렸다. 눈물인지 타액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손가락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하늘을 향했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손에 뜨거운 체온을 전해주고 있는 ‘배신자’를 향해서였다.

알몸의 연인이 침대 가에 앉아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오르가슴의 직전, 자신의 시야를 스쳐갔던 참혹한 고통의 표정은 괴물의 얼굴에 여전히 문신처럼 남아 있었다. 소리 없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이 너무나 아파서 차라리 정신을 놓고 싶은 욕망이 극으로 치솟았다. 순간, 끊어질 듯 가쁘게 숨을 헐떡인 건 체력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지독한 감정적 동요 탓이었으리라. 미웠다.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기운만 있다면 갈가리 찢어 죽이고 자신도 죽어버릴 거였다. 또 당했다. 또 사기를 친 거다, 이 악당은. 이 세상 최고의 사기꾼에 이기주의자에 괴물인 자신의 연인은!

“……학…… 하아…… 배…… 배…… 신자…… 하악…… 하아…… 헉…….”

자꾸만 닫히려는 눈꺼풀을 필사적으로 부릅뜬 채 괴물의 고통을 직시했다. 물론 가차 없는 단죄와 함께였다.

“……응, 그래…….”

“……하아…… 하아…… 와…… 완전히 잠들 수 있는 약…… 이라고…… 하악…… 하아…… 약이라고 하고서…… 속였지…… 속였어…… 나쁜 놈…… 나쁜…… 하아…… 하아…… 하…… 주…… 죽일 놈…… 씨팔 놈…… 쌍놈의 새끼…… 학, 학, 하아…… 하아…… 하…… 나쁜…… 씨팔 놈의…… 하아…… 학…… 학…….”

“……숨부터 쉬어, 내 강아지…… 착하지…… 응? 착하다…… 숨 쉬어…….”

“……나쁜…… 용…… 하아…… 용서 못 해…… 용…… 나쁜 놈…… 죽일 놈…….”

“……응, 그래…… 그래, 인환아…… 그래…….”

“……학, 학, 학…… 하아…… 죽일…… 보…… 복수할 거야…… 쌍놈의 새끼…… 같이…… 같이…… 잠들자고 하고는…… 하악…… 같이…… 죽으면…… 죽으면…… 함께…… 다시 행복해지는데…….”

“……미안……. 잠깐 유혹을 당하긴 했지. 그러면 편해질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역시 할 수 없었다, 내 강아지…….”

“……함께…… 함께…… 잠들고…… 하아…… 그러고 싶었는데…… 힘들어…… 너무…… 아파…… 힘들어…… 피로해서…… 나쁜 놈…… 나쁜 새끼…….”

“……응, 응…… 욕심이 나서…… 살아 있는 네가 미련이 남아서…… 네 따스한 체온…… 부드러운 몸…… 미소…… 수줍은 미소…… 도저히 없애버릴 수가 없어서…….”

“……배신자……! 변…… 명…… 하아…… 학…… 호, 혼자만…… 나 혼자만 또 버리는 거야……!”

“……아니야, 내 강아지……. 네가 날 버리는 거야…… 날 단죄하는 거야. ……보이나……? 보이지……? 내가 지금 얼마나 아픈지 보이지? 널 잃는 건 내가 죽는 거야…… 내 넋이 죽는 거야. ……알아듣지? 네 복수는 오늘 이루어졌어. 내게 고통을 주기 위해 더 이상 널 파괴할 필요는 없다…… 지금 내 피눈물이 보이나? 보이지? 이미 충분히 죽어버렸거든? 알아듣지, 마누라? 그러니 이제 너는 살아…… 살아, 인환아…… 보내줄게…… 보내줄게…… 네가 바라는 천벌…… 용서받지 못할 우리들의 죄…… 혜윤이…… 장모님…… 내가 다 받고 있을 테니까…… 네 몫까지 다 내가 떠안을 테니까…… 넌 이 남자와 살아…… 따뜻한 체온과…… 부드러운 피부와…… 생기와…… 내 강아지의 빛을…… 이 남자가 다시 네게 돌려줄 거야…… 그러니 너도 이 남자를 사랑하고 살아…… 그래서 내가 벌 다 받으면…… 아주 먼 훗날에 다 받았을 것 같으면…… 그래서 용서해주고픈 마음이 생기면…… 그땐 우리 다시 같이 살자…… 내가 용서되고…… 그리고 너도 용서가 되면…… 그때…… 그때는 우리 함께 살자…… 함께 오순도순…… 호호백발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그리고 함께 죽자…… 한 날 한시에…… 그렇게 죽자…… 인환아…….”

“……흑……! 흐윽! 웃, 윽……!”

“……만약 죽을 때까지도 용서가 안 된다면…… 그래…… 그래도 상관은 없어…… 괜찮다, 내 강아지…… 네가 행복하기만 하면 돼. 살아주면 돼. 그러면 나도 행복할 거다. 나는 이미 죽었으니까…… 내 남은 무엇은 네가 전부 가져갔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네가 행복하면 네 속에 있는 나도 행복해지는 거야. 알아듣나? 알아듣지?”

“……윽, 흐아아앙…… 흐아아…… 시…… 하악…… 시, 싫어…… 싫…… 데려가……! 나도 데려가…… 나 버리지 마……! 위야…… 위위…… 버리지……! 하아…… 하아…… 하아…… 학…… 안……!”

“……사랑한다, 내 강아지…….”

“……안 돼…… 위…… 야아…… 안……!”

“……영원히 사랑할 거다. 너만을 영원히.”

“……안…….”

줄곧 양손에 감싸 쥔 자신의 손가락에만 끊임없이 키스를 거듭하던 연인이 상체를 기울여 가까이 다가들었다. 줄곧 자신의 목덜미를 혀로 애무하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드는 것과 동시에 연인의 입술이 대신 자신의 입술을 덮었다. 힘겹게 튀어나가려던 부정의 애원은 무덤처럼 깊숙이 파묻히고 말았다. 입술 표면만 부드럽게 핥다가 가만히 대고만 있는 고요한 입맞춤이었다. 이별의 의식이었다! 하느님!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럴 수는 없다! 감히, 감히 구세주의 명령을 무시하다니! 주인의 명령을 씹는 노예라니! 마누라의 애원을 홀대하는 변태 팔불출이라니!

숨이 멈춘 것만 같았다. 부들부들 떨며 눈을 부릅뜬 채 코앞의 연인만 들여다보았다. 꼭 감긴 눈꺼풀과 흠뻑 젖은 속눈썹, 온통 젖어서 번들거리는 창백한 얼굴이 정말로 시체의 그것 같았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연인의 뺨으로부터 떨어진 세 개의 눈물방울은 흡사 무덤을 장식하는 촛농처럼 불길하고도 뜨겁게 느껴졌다.

마침내 연인의 입술이 떨어져나갔다. 고개만 살짝 든 채 가만히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는 눈길엔 그저 애틋한 애정만이 가득했다. 모든 것을 체념했는지 더 이상 참혹한 고통의 흔적조차 사라지고 없었다. 긴 세월, 마냥 느릿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다만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

이윽고 자세를 바로 하는 연인이 보였다. 잠깐의 따뜻한 일별은 곧 등을 돌린 차가운 단절로 이어졌다. 벌거벗은 나신의 늠름한 몸뚱이가 침대 아래로 내려서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를 주워 들려는지 허리를 굽히며 아래로 팔을 뻗는 게 보였다. 약간 비틀거리긴 했으나 너무나 태연하고 자연스러운 몸짓이었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만 아니라면 정말로 좋아서 버리고 가는 것처럼도 보였을 거였다. 그리도 표표하고 시원스러웠다.

심장이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숨을 헐떡이며,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신음성을 삼켰다. 잡아야 하는데, 자신도 도로 데려가달라고 단호하게 명령을 내려야만 하는데, 입술에 마비가 온 듯 단 한 마디의 말도 토해지지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리도 아픈데…… 온몸이, 온 넋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만 같은데, 연인을 잡을 그 단 한 마디를 뱉어낼 수가 없다니! 연인을 용서한다는, 인환 자신을 용서한다는, 아니, 아니, 우리 두 사람을 모두 용서한다는 그 단 한 마디를!

벼락같은 자각이 뇌수를 치며 전신의 신경줄을 관통하고 있었다. 정말로 또 버려진다! 버려지고 있어! 아니, 버리고 있구나! 자신이 연인을 잔혹하게 내팽개치고 있는 거구나!!!

아아, 그랬다. 자신은 연인을 잡을 수 없었다.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용서해야 하는데 그도 못 했다. 불행해야만 했다. 평생 용서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도 불행하고 자신도 불행해야만 했다. 그것이 우리 불쌍한 혜윤이에 대한 속죄였다. 엄마에 대한 속죄였다. 연인과 자신은 행복해지면 절대 안 되는, 절대 용서받아선 안 되는 끔찍한 괴물들이어야 했다. 연인은 그런 자신의 숨겨진 속내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으…… 으우어…… 워어…… 어…… 아…… 아아…….”

말이 되지 못한 언어는 짐승의 신음 소리로 돌변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왔다. 고개를 바짝 옆으로 돌려 휘둥그렇게 눈을 부릅떴다. 눈빛으로라도 초능력을 발휘하고 싶은 필사적인 바람이었을 것이다. 버리는 주제에 가지 말라고 강제로 붙잡으려 하는, 괴물의 이율배반이었다. 양손에 쥐고 절대로 놓지 않으려 떼를 쓰는, 철부지 어린애의 그것이었다.

흐릿하게 색이 빠진 빈티지 진에 은빛의 실크 셔츠가 보였다. 유난히 잘 어울려서 마냥 홀린 듯 바라보았던 연인의 평상복 차림이었다. 잔뜩 구겨져 제 빛을 잃은 셔츠 위에 검정색 알파카 코트가 걸쳐지는 것도 보였다. 소매에 양팔을 꿰는 모양새가 흡사 춤을 추는 것처럼 자유로워 보였다. 날아가려 힘차게 도약하려는 새의 몸짓 같기도 했다. 가증스러웠다.

……혼자만 날아가다니. 날 버리고 자기 혼자만. 아니지, 내가 버린 거니까 쫓겨나는 거구나. 하하하, 그렇구나. 그렇지. 용서 못 해. 용서하나 봐라…….

대상을 알 길 없는 증오와 독기가 불길처럼 뿜어 나왔다.

……용서하지 못해. 안 해. 하지만 보내줄 순 없어. 아파도 함께 아파야지. 나만 행복하면 된다고? 개소리. 나쁜 놈, 나쁜 놈, 개새끼, 씹새끼, 죽일 놈의 새끼, 악마구리 같은 괴물 새끼. 지옥에 떨어지려면 함께 지옥으로 떨어져야지. 혼자 보낼 줄 알아? 안 돼. 안 해. 이리 와. 명령이니까 이리 와서 나를 데려가. 데려가, 얼간아. 네 구세주를, 네 주인을, 네 마누라를 데려가…….

“……으으…… 아…… 위…… 위야…… 안…… 우…… 우아아…….”

괴물의 신음 소리로, 눈빛에서 쏘아 보내는 초능력의 불길로, 필사적으로 불러보지만 연인은 돌아보지조차 않았다. 코트를 걸친 연인이 침실 문 쪽으로 걸어가는 게 보였다. 잠시 다리가 휘청거렸을 뿐,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문을 열었고, 연인을 삼킨 문은 도로 조용히 닫히고 말았다. 갑자기 사방이 암흑이 된 것만 같았다. 캄캄했다. 아침을 맞아 이미 완전히 밝아진 방 안이었건만, 갑자기 일식이라도 온 듯 어두컴컴해진 시야가 이상스러웠다. 찢어지는 것만 같은 고통을 일으키던 심장도 순간 멎어버린 것처럼 고요했다. 얼떨떨해져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멍하니 방 안을 굽어보는데 밖에서 아득하게 차 소리가 났다. 귀에 익은 황금색 볼보의 엔진 음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악……!!!!!!!!”

어디서 끔찍스러운 절규가 들려왔다. 괴물의 절규였다. 양쪽 다 차지할 수 없어 떼를 쓰는 철부지 괴물이었다.

무언가가 입술을 틀어막았다. 빈틈없이 꽉꽉 틀어막힌 덕분에 괴물의 고성은 읍읍거리는 흐릿한 반항의 신음성으로 잦아들었다. 남자의 입술이었다. 착한 수호천사에서 순식간에 괴물과 손을 잡고 만, 희대의 강간범으로 전락한 남자였다. 팔을 뒤틀며 달라붙은 남자의 가슴팍을 힘껏 쳐내보려 하지만 이내 기력을 잃고 침대 바닥에 툭 떨어졌다. 고개를 흔들며 빠져나가려고도 해보지만, 남자의 무쇠 같은 악력이 양쪽 뺨을 움켜쥔 채 사냥당한 박제처럼 자신의 얼굴을 고정하고 있었다.

기진맥진한 몸이 일체의 저항도 없이 축 늘어지자, 마침내 남자의 혀가 천천히 들어왔다. 동시에, 뒤로 슬쩍 빠져나갔던 페니스가 전립선을 향해 정확히 찔러들었다. 찌르르한 전율이 단전을 치고 정수리 위까지 단숨에 치달았다. 자신도 모르게 침대 시트를 와락 움켜쥐며 목구멍으로 창녀의 교성을 흘렸다. 뇌리 속이 하얗게 탈색되며 저절로 허리가 흔들렸다.

남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담배 냄새가 짙은 선정적인 혀뿌리가 입천장을 농염하게 훑으며 자신의 짐승을 들쑤시고 있었다. 울며불며 새카만 어둠에 절망하던 넋은 슬며시 파고든 빛에 홀연 빠져들었다. 덫이 덫인 줄도 모르고 마냥 먹이에 홀려버린 짐승과 한가지였다. 이 길로 가면 더는 아프지 않을지도 몰라. 또 다른 괴물이 유혹했다. 이렇게 사방이 어둡지 않을지도 몰라.

살며시 마주 걸어오는 자신의 혀를 흡반처럼 거칠게 빨아들이며 남자가 빠르게 피스톤질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 전립선만 긁어대는, 철저하게 이성을 앗아가는 짐승의 유혹이었다. 이미 한 번 맛본 금단의 쾌락은 단숨에 창녀의 피를 들끓게 했다. 사지를 활짝 벌려 늘어뜨린 채 남자가 더 깊숙이 들어오도록 구멍을 열었다. 남자는 정확히 괴물의 기대에 부응했다.

“……흐앙…… 아앙…… 앗…… 앗…… 우아악…… 악…… 하으…… 윽…… 학…….”

“……읍…… 윽…… 흡…… 으으…….”

“……흐아악…… 흐앙, 앙…… 아아…… 하아…… 학…… 앙, 앙…… 거기……! 후앗……!”

“……으으…… 흣…… 웁…… 큭…….”

“……아악……! 거기……! 거기……! 으악!!……! 하악……! 우와앗…… 앙…… 하앙…… 우아…….”

“……큭……! 여기……? 여기를 찔러드릴까요, 선생님……?”

“……우왓……! 앗……! 아아아……! 흐아앙…… 아앙…… 더…… 더해…… 우아악!!!”

“……그래…… 여, 여기……? 큭!!……! 흡…… 큭…… 윽!!!”

“……아아아…… 아아…… 앙!!……! 흐아아앗!!!!!”

“……크윽……!!!!!”

아침이 밝아오는 낯선 방 안은 두 마리 짐승들의 교합이 뿜어내고 있는 소름 끼치는 교성과 접합음과 가쁜 숨소리와 땀 냄새와 정액 냄새들로 가득 차고 있었다.

짐승은 심연 깊이 떨어졌던 가냘픈 생명의 불꽃을 단숨에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저 박고 박힐 뿐인, 일체의 이지가 사라진 수컷과 암컷은 오로지 육체에 부여된 본능의 쾌락을 통해 서로의 에너지를 끌어 모으고 있었다. 타락한 수컷이 불을 켜면 애초 괴물이었던 암컷이 울며불며 동조했다. 침대 바닥에 축 늘어져 있던 사지는 미친 듯한 생명의 열기에 떠밀려 위로, 위로 내뻗었다. 자신의 내부에 생명의 불길을 지피는 사랑스러운 수컷의 몸뚱이를 향해서였다. 목을 휘감고 엉덩이와 허벅지를 갈퀴처럼 조이며 달라붙었다. 손가락 끝에 닿는 몸뚱이마다 닥치는 대로 꼬집고 할퀴고 긁어내렸다. 목을 쭉 뽑아 수컷의 입술을 찾아 날아올랐다. 애타게 입술을 빨고, 혀를 넣어 서로를 얽고, 꿀처럼 다디단 수컷의 타액을 실컷 빨아 삼켰다. 이미 친숙해져버린 수컷의 담배 냄새조차 몸서리가 쳐지도록 좋았다. 아래로 들락날락거리며 사무치는 쾌락을 선사해주는 거대한 흉기도, 탕탕탕 하고 흉기를 따라 힘차게 자신의 샅에 키스를 해오는 불알도, 온몸에 비 오듯 낙인처럼 떨어져 내리는 땀방울들도, 열기에 젖어 음탕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게슴츠레한 눈길도, 모두 소름이 끼치도록 황홀하기만 했다. 강간이라고? 개가 웃을 소리였다. 이렇게 좋은 것을, 이리도 좋아서 고래고래 교성을 지를 것을 왜 사양하려 했을까? 하하하하, 통렬한 웃음보를 터트린 창녀였다. 괴물이었다.

오르가슴의 끝, 저 멀리 연인이 보였다. 자신이 내버린 자신의 분신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생명이었다.

문신처럼 새겨진 참혹한 고통의 눈시울이 괴물로 변해 다른 몸뚱이와 교접 중인 자신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통렬하게 비웃어주었다.

……용서 못 해. 용서 안 해.

이를 갈았다.

……혼자만 지옥에 떨어지겠다고? 하, 누가 니 맘대로 하게 둔대?

보너스로 야비한 협박도 던져주었다.

……나도 지옥에 있을 거야. 너는 거기 지옥에, 나는 여기 지옥에. 그럼 넌 나중에 가서야 땅을 치고 후회하겠지. 함께 영원히 잠들지 못했던 것을. 함께 안식의 천국에 들지 않은 것을…….

남자가 최후의 일격을 때려 박았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온몸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시야가 하얗게 변하며 아래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정액이 봇물처럼 뿜어 나오고 있었다. 다른 몸뚱이를 향한 경배였다. 배신이었다. 몰락이었다.

……봤니?

혼절해버리려는 넋을 필사적으로 추스르며 약을 올렸다.

……다 봤지, 멍청아?

끝까지 연인을 노려보았다. 체념한 듯 고요히 눈물만 흘리고 있는 연인이었다. 역시 자신의 따라쟁이 팔불출이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증오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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