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2297년 8월. 에녹(Enoch Salisbury Eden)
[급류로는 헤엄치지 마세요! 급류는 물살이 셉니다! 물에 빠집니다! 헤엄을 잘 치는 특수 방위군도 물에 빠질 수 있습니다!]
열심히 수화를 해보지만 그는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벌거벗고 수영을 하고 있는데, 언어 번역기는 그가 벗어둔 셔츠에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그쪽으론 헤엄치지 마세요! 안 돼요! 돌아오세요! 더 이상 가면 제가 들어갈 거예요!]
못 알아듣는다는 걸 알면서도 에녹은 자꾸만 수화를 계속했다.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수화라도 해야만 조금이라도 참을 수 있었다. 간절한 기분이 전해졌는지, 그가 급류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방향을 틀어 되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휴우. 커다란 안도의 한숨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만약 그가 방향을 틀지 않았다면 에녹은 그의 규정(명령)에도 불구하고 강물 속으로 뛰어 들어갔을 것이다.
3일 전에 사냥을 하면서 입은 겨드랑이의 상처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강물 속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특별한 임시 규정을 명령했었다. 상처가 나을 때까지는 습기가 상처에 좋지 않기 때문에 물에 들어가면 안 된다. 물론 자신은 건강 상태가 매우 양호하기 때문에 상처에 새로 염증이 생기는 일은 없다. 하지만 그는 믿어주지 않기 때문에 그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선 그의 임시 규정을 따라야만 한다.
가까이 헤엄쳐 다가오는 그의 얼굴은 많이많이 즐거워 보인다. 그가 급류에 빠질까 봐 두려운 기분이 사라졌기 때문에 에녹도 많이 즐거워졌다. 그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많이 즐겁다. 그가 많이 즐거워하며 헤엄을 치는 것을 보는 건 더 많이 즐겁다. 그는 헤엄을 잘 친다. 특수 방위군만큼 잘 치는 것 같다. 다른 건 일반 시민처럼 약한데 헤엄만 잘 친다.
처음 그가 답답하다고 외부 식재료 채취 작업에 동참하겠다고 했을 땐 에녹은 많이 걱정을 했었다. 그는 일반 시민이라 생존 지수가 매우 낮아서 외부 환경에선 많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많이 답답하다고, 자꾸만 함께 나가자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그가 튼튼하고 강하다는 여러 증거들을 제시했다. 헤엄을 잘 치고 달리기도 잘하고 힘도 세다는 사항들이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모두 사실인 것 같았다. 그가 한 일이 건축 노동자인데 건축 노동자 일은 다른 일반 시민들보다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한다. 물론 특수 방위군의 힘엔 2분의 1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그가 진짜로 힘이 세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아무튼 자신은 여전히 걱정스러워서 좀 더 망설였더니 그가 막 화를 내며 야단을 쳤다. 아직도 그를 못 믿는 거냐고 막 소리를 쳤다. 믿을 수 없는 연인과는 사랑을 할 수도 없다고 그날 밤에 자신을 숙소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너무나 슬퍼서 문밖에서 엉엉 울다가 결국 에녹은 허락을 하고 말았다. 그와 사랑을 못 하는 것도 너무 슬펐지만 그가 그렇게 외부로 나가고 싶어하는데 계속 넬슨호에 가둬두는 것도 많이 슬펐기 때문이다. 그가 다치고 상처를 입을까 봐 많이 걱정되고 심장이 조여드는 것처럼 아플 때가 있지만,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에녹도 많이 즐거운 일이라고 다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허락을 하고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그와 세 번 사냥을 함께 했다. 다행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딱 한 번, 세 번째 사냥날인 3일 전에 이름을 모르는 사나운 네발짐승에게 쫓기는 일이 있긴 했지만 그가 다치지는 않았다. 자신이 나서서 그를 보호했기 때문이다. 50센티 크기의 그 짐승은 작지만 많이 사나워서 죽이는 데 애를 먹었다.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총을 쐈을 텐데 갑자기 숲에서 튀어나와 그에게 덤벼드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몸으로 막지 않으면 안 됐다. 여러 번 공수도로 짐승의 정수리를 치고 나서야 겨우 목을 부러뜨릴 수 있었다.
그때 일을 기억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섭다.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를 구하려다가 자신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아직 완쾌되지 않은 겨드랑이의 상처는 바로 그날 입은 상처다. 짐승의 앞발이 오른쪽 겨드랑이 부근을 깊숙이 할퀴고 말았다.
그는 에녹을 많이 칭찬해주었다. 그것 보라고, 위험하면 네가 지켜주면 되잖아 하고 햇살처럼 웃어주었다. 처음에 걱정한 것이 지나친 걱정이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그가 한 말이 옳은 것 같다. 아니, 그는 언제나 옳은 말만 한다. 일반 시민은 특수 방위군 사병보다 영리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에녹은 다음부터 그가 하는 제안이나 규정은 모두 들어주자고 다짐했다.
오늘은 사냥 날은 아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그가 휴게실에서 음악을 듣는 대신 외부의 강물에서 수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수영은 그가 강하고 높은 기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운동이다. 그가 10일 전에도 그런 사항들을 말해주었지만 자신은 그가 헤엄을 치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강물에서 헤엄치는 건 위험하다고 대답하니 그는 또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웃었다. 내가 벌거벗고 헤엄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하며 예쁘게 웃었다. 고양이처럼 눈을 치켜뜨고 자신을 째려보는, 아주 가끔씩 보여주는 예쁘고 이상한 표정이었다. 이상하다는 건 그가 그런 표정을 보여줄 때마다 자신의 생식기가 막 발기하기 때문이다. 그를 안고, 만지고, 섹스하고 싶은 기분이 넘치게 되는 얼굴이라서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래 생각해보니 그의 얼굴은 거의 전부 다 이상한 얼굴인 것 같다. 고양이처럼 눈이 올라간 이상한 표정을 보여주지 않아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생식기가 근질근질해지면서 허리가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자꾸 헤엄을 치겠다는 그에게 결국 허락을 하고 말았다. 그는 영리하다. 저능아인 특수 방위군 에녹보다도 많이많이 영리하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말은 들어줘도 괜찮다. 단지 그의 부족한 생존 지수가 걱정이지만 그것은 자신의 노력으로 끌어올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기억들을 떠올리니 안심한 기분이 되면서 심장 고동을 느리게 만들었다. 그가 급류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되돌아와서 안심한 기분은 좀 더 많아진 것 같았다. 헤엄을 치며 즐거워하는 그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니 안심한 기분에다 많이 기쁜 기분까지 더해졌다. 물에 푹 젖은 그의 까만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난다. 자신에게 섹스를 해줄 때처럼 반짝거린다. 자신의 몸을 다정하게 만져줄 때처럼 촉촉하게 젖어서 빛이 난다. 아, 또 거기가 근질근질해진다.
하루 네 번 이상 사정하는 것은 몸에 무리가 간다고 그가 말해주었다. 자위도 하루에 네 번 이상은 나쁘다고 한다. 아, 심장이 또 빨리 뛰기 시작한다. 큰일 났다. 아침에 한 번 했기 때문에 지금 또 해버리면 이따가 밤에 그가 만져주는 더 큰 즐거움이 줄어들어버린다. 지금 자위를 한 번 해버리면 밤에 두 번밖에 하지 못한다. 그건 싫다.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몸을 조금 만지고, 그리고 그의 예쁜 손이 자신의 페니스를 막 비벼줄 때의 기쁨은 자위를 할 때의 기쁨과는 비교가 안 된다.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을 만큼 굉장히 기분이 좋아서, 온몸이 막 부서져서 하늘로 둥실둥실 떠올라가는 것만 같아진다. 연인과 하는 섹스는 정말 굉장히 기쁘고 즐거운 행위이다. 지금까지 연인인 그와 섹스 하는 일만큼 즐겁고 기쁜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즐겁고 기쁜 일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참아야지. 꾹 참았다가 밤에 세 번 해야지.
그를 계속 바라보고 싶은 기분을 간신히 억누르고 시선을 돌렸다. 그를 보지 않아야만 생식기가 더 크게 발기하지 않는다. 그를 보지 않고 쭉 괴로운 생각들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크게 발기했다가도 생식기는 어느새 작아져 있다. 물론 작아질 때까지 많이 괴롭긴 하다. 자꾸 만지고 싶고 그가 해주는 것처럼 막 문지르고 싶어진다. 그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막 문지르고 싶어져서 너무너무 참기가 힘들어질 때가 많으니까. 하하, 하지만 참아야지. 너무 많이 하면 기력이 떨어져서 그를 위해 사냥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를 지켜줄 수도 없게 된다. 3일 전처럼 모르는 짐승이 갑자기 그를 공격해도 자신은 기운이 없어서 그냥 가만히 서 있게만 된다. 그럼 그가 다치게 되고 상처를 입게 될 거다. 그건 너무 괴롭다. 아아, 그가 상처를 입는 건 정말 괴롭다. 그가 아파서 숨을 몰아쉬는 건 정말 괴로워서 심장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다행히 그는 아직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 몇 달 전에 넬슨호 부선장이 그에게도 외부 작업 사냥을 시켜서 딱 한 번 조금 다친 것이 전부다. 아, 아니구나. 자신이 넬슨호의 살아 있는 일반 시민들을 모두 소거시킬 때에도 그는 조금 다쳤다. 자신이 그도 소거할까 봐 맨발로 달아나다가 발바닥을 조금 다쳤다. 조금 다쳤는데도 자신은 마음이 무척 괴로웠다. 긁히고 피가 나는 그의 발바닥을 더 아프게 할까 봐 자신은 손을 벌벌 떨며 간신히 치료해주었었다. 만약 발바닥보다 더 큰 상처를 그가 입는다면 자신은 무섭고 괴로워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그가 다치는 괴로운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어느새 생식기가 작아져 있었다. 휴. 다행이다. 지금은 처벌받는 일을 일부러 생각해내지 않았는데도 생식기가 작아졌다. 음, 그가 다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처벌받는 일을 생각하는 것은 괴롭지만 그가 다치는 생각이 열 배는 더 괴롭다. 열 배나 더 괴로운 생각을 했으니까 생식기가 더 빨리 작아졌나 보다.
갑자기 얼굴로 물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깜짝 놀라서 하늘을 보니 어느새 햇빛이 사라지고 온통 새까만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큰일 났다. 또 소나기다.
행성 DITER-11의 우기(雨期)가 시작된 건 8일 전이다. 우기 때의 소나기는 굉장히 무섭다. 2∼3분 만에 강물이 크게 불어버릴 정도로 갑자기 많이 쏟아져 내리기 때문이다.
겁이 더럭 난 나머지 심장이 또 두근두근 뛴다. 아직 그가 강물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강물에 뛰어들어서 그를 데리고 나와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있는데, 다행히 강기슭으로 서둘러 헤엄쳐 나오고 있는 그가 보였다. 정신없이 그에게 달려갔다. 자신과는 20미터쯤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앞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가 강가 모래사장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팬티만 걸친 그의 알몸에 심장이 또 한 번 쿵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지만 막 쏟아지기 시작한 장대비에 정신이 들었다.
“……큰일이네. 옷 입을 틈도 없겠다.”
그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리며 작은 바윗돌 위에 벗어둔 옷가지들을 주워들었다. 그가 옷을 줍자마자 바로 그의 손을 끌어당겼다. 갑자기 만지는 것을 싫어하는 그였지만 지금은 많이 다급한 상황이라선지 별로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최대한 속도를 높여 달렸다. 이미 흠뻑 젖어버린 군복이 무겁게 온몸에 달라붙어 있어 빨리 달리는 데 방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달리기가 자신보다도 한참을 더 늦었기 때문에 속도는 자꾸만 느려졌다. 순식간에 불어나버린 강물이 굉장한 기세로 기슭을 가르며 흘러나갔다. 2∼3분 안에 넬슨호가 세워져 있는 가파른 구릉 지대로 올라가지 않으면 강물에 휩쓸릴 것 같았다.
가쁘게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자신의 손에 이끌려 오던 그가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렸다. 덕분에 자신도 뛰기를 멈추고 그가 중심을 잡도록 기다렸다. 걸린 발가락이 아픈지 그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져 있었다. 자신의 얼굴도 따라서 찡그려졌다. 화살처럼 내리 퍼붓는 빗줄기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힘들어하는 게 생생했다. 가슴이 죄어왔다. 그가 싫어해도 할 수 없었다. 헐떡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는 그의 몸을 번쩍 안아 올렸다. 펄쩍 뛰듯이 놀란 몸짓을 했지만 다행히 거부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목에 양팔을 감아 바짝 몸을 기대오기까지 했다. 자신이 그를 안고 달리는 것이 훨씬 빠르다고 그도 생각한 모양이었다.
달리기 쉽게 그를 더 안정된 자세로 깊이 안아 들곤 눈을 깜박여 정확한 시야를 확보했다. 억수같이 퍼붓는 비에 뿌연 운무까지 겹쳐서 앞을 제대로 분간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힐끗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느새 누르스름한 흙탕물이 된 강물의 수위가 1미터는 높아진 것 같았다. 멀리 서쪽 능선에선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커다란 흙더미가 나무와 풀들과 함께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경사면 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암벽 등반 기술을 써야 할 것만 같은 급경사인데다 그를 안고 있어 꽤 힘이 들었지만, 확실히 그가 같이 달릴 때보다 속도는 훨씬 빨랐다. 몇 초 만에 수위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강물은 볼 때마다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뭐, 그래봤자 자신의 달리기 속도를 따라오진 못했지만.
2∼3분 만에 넬슨호의 출입 독에 도착해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면은 비가 퍼붓기 전보다 50여 미터쯤 불어나 있었다. 다행히 처음 기세만큼은 빠르게 수위가 높아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우기 때의 홍수는 안심할 수 없다고 레드필드 중위님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안심할 수 없다는 말은 생존 지수에 위협을 준다는 의미다. 앞으로 석 달간 계속될 행성 DITER-11의 우기는 이제 막 시작이었다. 맑은 날씨가 계속되는 것처럼 보여도 지금처럼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폭우 때문에 넬슨호가 불시착해 있는 높이까지 홍수가 덮칠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물론 그럴 경우 사라가 경고를 해줄 것이다. 사라의 경고가 떨어지면 넬슨호를 버리거나, 아니면 우기가 지나갈 때까지 출입 독을 완전히 폐쇄하고 넬슨호 안에서만 생활해야 한다. 양쪽 다 생존 지수는 급격하게 떨어지는 쪽이라 현명한 선택이 요구된다. 물론 자신보다 훨씬 현명한 일반 시민인 그가 최선의 결정을 해줄 것이다. 자신은 그저 그의 명령에 따라 다음 행동을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추워…….”
가느다란 음성이 귓가에 토해졌다. 아차, 멍하니 수면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잊고 말았다. 바보 에녹!
“……추워 죽겠네. 빨리 들어가든지 내려주든지 하라구.”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니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다. 비가 쏟아지면 기온도 섭씨 10도 아래로 급강하해버리는 걸 깜빡 잊었다. 그를 안고 달린데다 옷을 입고 있는 자신과 달리 그는 방금 전까지 헤엄을 친데다 거의 벌거벗고 있었다. 추우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다. 바보 에녹! 저능아 에녹!
독을 열고 넬슨호 안으로 부랴부랴 뛰어 들어갔다. 소독 캡슐 앞에서 그가 내려달라고 해서 그를 내려놓고 재빨리 소독을 명령했다. 뿌연 소독제와 더불어 서늘한 기운이 온몸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었다. 그가 더 추운지 몸을 더 심하게 떨어댔다. 걱정이 된 나머지 소독이 이루어지는 15초 동안 그의 어깨와 팔을 부지런히 문지르며 마사지했다. 추위에만 신경을 쓰고 있어선지, 거칠게 만져도 그는 자신을 밀쳐내지 않았다. 파랗게 질린 입술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떨고 있는 그를 보니 가슴이 몹시 저렸다. 좀 더 빨리 달릴걸. 처음부터 그를 안고 달릴걸. 독에 도착해서도 아래를 내려다보지 말고 바로 들어올걸. 괴로운 생각이 자꾸만 연달아서 뇌 속으로 튀어나왔다.
출입 독에서 그의 숙소까지는 한참을 이동해야 해서 가까이 있는 서브통제실로 달려갔다. 서브통제실에는 몸을 녹일 수 있는 수면 캡슐과 욕실이 있기 때문이다. 벌벌 떨며 숙소 쪽으로 걸어가려던 그를 다시 안아 들고 서브통제실로 뛰었다. 계속 자신의 뜻대로 몸을 맡기던 그가 처음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불평을 했다. 서브통제실로 가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번역기도 없고 말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등을 주먹으로 때리며 심하게 몸을 뒤트는 그를 무시하고 1분쯤 달리고 나니 반가운 서브통제실이 나타났다. 겨우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그제야 그가 몸부림을 멈춰주었다. 다행이다.
“……미안…….”
서브통제실 안쪽의 수면 캡슐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자 그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가 왜 사과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가 야단을 치는 건 당연하다.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갑자기 그를 안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말을 할 줄 알면 야단을 맞지 않아도 되지만 자신이 말을 못 하기 때문에 그가 화를 내고 야단을 치는 건 당연하다. 말을 못 하는 건 무척 안타깝고 초조한 일이다. 요즘은 그가 이렇게 야단을 치고 조금 후에 사과를 하는 사건이 가끔씩 일어난다. 전부 다 자신이 말을 못 하는 것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말을 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그를 처음 보지 않았을 때에는 별로 말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자신은 자폐증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벌써 그를 만나버렸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에게는 말을 하고 싶다. 아주 많이 하고 싶다. 지금처럼 언어 번역기가 없어도 마음대로. 아주 많은 말을 마음대로. 그러면 그가 자신에게 화를 내거나 야단을 치는 일이 더 많이 줄어들 텐데.
수면 캡슐 옆 욕실로 들어가 그를 내려놓고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물이 받아지는 5분 동안 그는 아주 많이 몸을 떨었다. 얼굴도 창백하고 입술도 여전히 파랗게 질려 있어 가슴이 저렸다. 손바닥으로 다시 그의 몸을 마사지하려고 다가갔다. 막 젖은 팬티를 벗고 있는 그의 등에 손을 대자 그가 펄쩍 뛰며 자신의 손을 쳐냈다.
“뭐야! 손대지 마!!!”
“…….”
“……젠장, 갑자기 손대지 말랬잖아…….”
“…….”
야단칠 때처럼 사나웠던 목소리가 금세 부드럽게 바뀐다. 다행이다. 화가 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울지 마. 야단치는 거 아니니까.”
진짜로 화를 낼까 봐 뒤로 물러나서 그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그가 살짝 웃으며 중얼거렸다. 우는 거 아닌데. 그에겐 우는 얼굴로 보이나 보다. 자신이 그가 화낼까 겁을 내거나 가슴이 아파서 숨을 가다듬고 있으면 그는 항상 그렇게 말을 한다. 이상하다. 겁이 나거나 가슴이 아플 때에는 자신의 얼굴이 우는 얼굴이 되는가 보다.
“……그럼 문질러줘. 몸도 빨리 녹을 테지.”
그가 다시 중얼거리며 자신의 오른손을 가져가 그의 가슴께에 붙였다. 미지근한 그의 체온이 손바닥에 가득 차올랐다. 여전히 벌벌 떨고 있는 가느다란 몸이 가슴 아팠지만 골똘히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문질렀다. 어깨와 가슴과 등과 팔과 다리들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열이 느껴질 만큼 열심히 문질렀다.
욕실 안에 김이 가득 차올랐다. 더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흠뻑 젖은 옷을 아직도 입고 있었다. 지금까진 잘 느끼지 못했는데 몸이 더워지니 조금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불쾌해도 참자고 생각한다. 그의 몸을 녹이는 게 더 급하니까.
욕조물이 반쯤 차올랐다. 따뜻한 김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마시지를 해서인지, 그는 가끔씩만 진저리를 칠 뿐 더 이상 몸을 떨지 않았다.
“이제 됐어. 너도 젖은 옷은 벗어버리고 샤워해.”
그가 자신의 손을 밀어내곤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막 열심히 마사지를 해서인지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잠깐 얼이 빠졌다. 그의 마르고 부드러운 살집의 감촉이 손바닥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무언가 허전하고 계속 만지고 싶은 기분이 들어, 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기분이 좋은 듯 조금 웃는 얼굴로 욕조에 길게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핏기가 돌아오는 부드러운 얼굴이 예뻤다. 젖어서 이마 위에 가닥가닥 붙어 있는 머리카락이 너무나 귀엽다. ……만지고 싶어……. 하지만 만지면 안 된다. 그가 만지라고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로 만질 수 없다.
“……뭘 하고 있어?”
그의 놀란 듯한 목소리에 소스라쳐서 고개를 들었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앉아서 뭘 하고 있냐니까? 기도하냐?”
욕조 위에 두 손을 얹은 채 무릎을 꿇고 앉은 자신의 모습이 자각되었다. 고개까지 바닥으로 푹 숙이고 있어서 기도하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를 만지고 싶어 견딜 수 없어지면 이렇게 시선을 내리고 눈을 감는다는 걸 그는 모른다. 달리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보 에녹. 저능아 에녹이니까 바보 에녹이다.
“젖은 옷 안 벗어? 상처에 물도 들어갔을 텐데, 빨리 샤워하고 옷 갈아입어야지?”
멍하니 예쁜 그의 얼굴만 보고 있었더니 그가 또 조금 짜증이 난 목소리로 묻는다. 그가 화를 낼까 봐 또 조금 가슴이 뛰었다. 허둥지둥 일어나 젖은 옷가지들을 벗었다. 반팔 티셔츠와 군용 팬츠는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어 벗는 데 애를 먹었다. 팬티를 벗는 데는 별로 힘이 들지 않았지만 커다랗게 발기해 있는 생식기 때문에 괴로웠다. 팬티 천이 스치니 더 크게 발기했기 때문이다.
헤엄을 치는 그를 보고 있을 때보다 더 참기가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까 자신도 그를 바라보는 것을 더 참을 수가 없다. 그를 바라보니까 생식기가 자꾸만 더 커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랫배가 찌릿찌릿하고 가슴이 심하게 뛰었다. 얼굴이랑 몸이 불이 난 것처럼 뜨거워졌다. 최고로 커진 페니스가 위로 휘어서 아랫배를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만지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자위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잠자는 시간이 되려면 아직 두 시간쯤이나 더 지나야 하는데, 이렇게 커진 생식기를 하고 두 시간은 못 참기 때문이다.
그가 보지 않게 몸을 돌린 뒤 욕조 벽에 설치돼 있는 샤워기를 틀었다. 발기한 생식기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은 창피한 짓이라고 그가 전에 주의를 주었기 때문이다. 창피한 짓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일반 시민들은 창피한 짓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가 야단을 치는 것이 싫기 때문에 자신도 창피한 짓은 안 하고 싶다.
빗방울 같은 샤워물이 쏴아아 하고 자신의 몸 위로 떨어졌다. 물이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오른손을 생식기로 가져가 열심히 마사지했다. 그가 해줄 때처럼 부드럽게 쥐었다가 귀두 부분을 엄지손톱으로 꼭 누르기도 하고, 약간 힘을 줘서 위아래로 흔들기도 했다. 그가 해줄 때와 비교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허리가 녹아내리는 것처럼 즐거운 기분이 눈앞에서 번쩍번쩍하는 건 여전했다.
“……흐…… 우…… 웃……! 윽……! 흡……!”
표범이 우는 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가 목구멍에서 마구 터져 나온다. 이렇게 거기를 만질 때에는 목소리가 잘 나오는데 어째서 말소리는 안 나오는 걸까. 머리랑 거기가 폭발하는 것 같은 굉장한 느낌과 함께 뭔가 슬픈 생각이 스쳐갔다. 그를 보고 싶다. 그의 예쁜 얼굴을 보고 싶다. 그를 만지고 싶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그의 몸을 안고 싶다. 몸이 막 어딘가로 떠밀려가는 것 같다. 전투 비행선이 웜홀로 진입할 때처럼 온몸이 바스러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와 함께 떠밀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의 몸을 꼭 껴안고 함께 바스러지고 싶다는 생각도. 이상한 생각이다. 이상한 생각이지만 멈출 수가 없다. 아아, 만지고 싶어. 안고 싶어. 그를 너무너무 안고 싶어……!
“……흑! 큭! 흐앗! 흐아아악!!!!!”
전부 바스러져서 가루가 됐다.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오줌 줄기처럼 위로 솟구친 정액이 손가락 틈으로 휙 빠져나갔다. 욕실 벽에 지저분하게 튀는 것이 흐릿하게 보였지만 닦을 기력이 나지 않았다. 그를 안고 싶다는 마음만 머릿속에 가득 차서 다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온몸의 근육이 마구 경련을 하며 즐거운 기분을 만끽하면서도 가슴속 어딘가가 허전하고 안타까웠다. 슬픈 기분하고 비슷했다. 그래선지 눈물도 조금 솟아났다. 이럴 때 그를 만질 수 있다면, 껴안을 수 있다면 슬픈 기분은 조금도 안 들 텐데. 생각을 쫓아갔더니 왠지 목이 메었다. 눈물이 자꾸만 더 솟아나왔다.
“……정말 못 말리는 정력이로구나, 너는.”
몽롱하고 먹먹해진 귓가로 그의 웃음이 섞인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 좋겠지. 그래도 독신 성향인 몸보다는 그렇게 수시로 욕망을 느끼고 쾌락을 발산할 수 있는 육체가 정신 건강엔 더 좋을 테니까. 부럽구만, 카사노바 씨.”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말도 덧붙인다.
사정을 하고 후들거리는 몸을 욕실 벽에 기대고 서 있다가 용기를 내서 그를 바라보았다. 웃음이 들어간 그의 목소리가 상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참지 못하고 또 자위를 한다고, 혹은 창피도 모르는 무식한 군바리라고 이상한 욕도 하지 않아서 더 안심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몸이 다 녹은 것 같았다. 발갛게 홍조가 오른 얼굴로 빤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발그스름한 뺨도, 젖어서 이마 위에 가닥가닥 달라붙어 있는 검은 머리카락도, 송골송골 땀이 맺힌 콧등도, 모두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가슴이 조여들었다. 햇빛 아래서 보면 밝은 갈색으로 보이는 그의 눈은 지금은 까만 흑요석처럼 새까맣게 보였다. 멍하니 보고 있자니 그 까만 동공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뭐야……? 너 우는 거냐……?”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미간을 찌푸린다. 샤워물이 계속 머리 위에서 쏟아지고 있어서 눈물이 보이지 않을 텐데도, 그는 신기하게 잘 알아챈다. 그의 예쁜 얼굴에 정신이 팔려 자신도 울고 있다는 걸 까먹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눈시울이 무지 뜨겁게 느껴졌다. 굉장히 많은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증거다. 이상하다. 그냥 조금 안타깝고 슬픈 기분이 들 뿐인데 왜 이렇게 눈물이 흘러나오는 걸까?
“……왜 그래? 기분 나쁘게…….”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그가 투덜거렸다. 미간이 더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그가 또 화를 내는 걸까? 이번엔 자신이 뭘 잘못한 걸까? 불안한 나머지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한다. 아랫도리가 찌릿찌릿해서 보니 설상가상으로 또 생식기가 발기하고 있었다. 이크, 큰일 났다. 자위를 또 하면 그는 진짜로 화를 낼지도 모르는데. 야단을 칠지도 모르는데. 저절로 고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를 보지 않으면 발기를 멈출 수도 있을 테니까.
“맙소사, 또냐? 정말 가관이로군. 질질 짜면서도 물건 하난 잘도 세워대는구나.”
덧붙인 말은 조금 상냥하게 들렸다. 심장이 막 두근거리면서 저리고, 또 눈시울은 더욱더 뜨거워졌다. 목이 메어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콧물까지 줄줄 쏟아졌다. 샤워물이 계속 쏟아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눈물이랑 콧물을 바로 씻어 내려주고, 사방에 뿌연 김이 가득 차서 또다시 커다랗게 발기한 자신의 창피한 모습을 조금 가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리 와봐. 그만 울고…….”
“…….”
“……왜 우는 거야? 내가 놀려서?”
“…….”
“……이리 오라니까. 야단 안 쳐. 안아줄게.”
“…….”
“……아직 섹스 하기엔 이르지만…… 뭐 조금 일찍 시작한대도…….”
“…….”
“이리 와, 겁내지 말고. 내 몸 만지고 싶지? 오늘은 조금 만지게 해줄게.”
“…….”
“……괜찮다니까. 고집부리면 섹스 안 해준다?”
“…….”
야단맞을 것만 겁내고 있어서 처음엔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꾸 되풀이되는 그의 다정하고 상냥한 말투에 두근거리던 심장이 차츰 가라앉았다.
“……그래, 옳지. 바닥만 보지 말고 내 얼굴도 봐. 섹스 해준다니까. 발기해도 괜찮아.”
욕조를 사이에 두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봐도 좋다고 하지만, 섹스를 해주겠다고 하지만, 평소의 그의 규정과는 다르기 때문에 가슴이 터질 것처럼 기쁜 와중에도 불안했다. 자꾸만 몸이 떨리고 그의 얼굴을 보기가 겁이 났다. 그의 상냥한 말 때문인지 그를 보지 않는데도 생식기가 벌써 최고로 발기해 있었다.
그의 손이 천천히 다가오더니 자신의 관자놀이 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그 부드러운 감촉에 허리가 저절로 튕기며 이상한 승냥이 소리가 목구멍으로 터져 나왔다. 너무나 좋아서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머리카락 틈을 헤집으며 그가 두피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천천히 어루만지더니 다음엔 귓불을 만지작거리고, 그다음엔 뺨까지 쓰다듬어주었다. 그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움켜쥐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그가 만지라고 허락하기 전엔 그를 만져선 안 된다.
욕조를 움켜쥐고 있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도 힘을 줘서 욕조가 부서지는 게 아닐까 겁이 났다. 그의 나머지 한 손이 욕조 가장자리에 얹힌 자신의 손 위에 포개졌다. 따뜻한 물에 불어 새하얗게 보이는 예쁜 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손을 움켜쥐어 입가에 가져갔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져버린 것만 같았다. 정신없이 혀를 놀리고 있다가 소스라쳐 눈을 뜨니 자신은 그의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중지와 검지를 한꺼번에 입에 넣고 깨물기도 하고, 하나하나 쪽쪽 소리가 날 만큼 힘껏 빨아 먹기도 했다. 그가 뺨을 후려치며 자신을 밀쳐낼 거라고 멍하니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행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손가락을 먹는 줄 알고 깜짝 놀랄지도 모르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아아,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고 안타까웠다.
“……그렇게 겁을 내면서도 잘도 더러운 짓을 하는구나…….”
“…….”
“……괜찮아. 만지게 해준다고 그랬지? 손가락에 키스하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뭐, 봐주지. 우린 연인 사이잖아……?”
“…….”
“울지 마. 왜 자꾸 우는 거냐? 뭐가 불만인데?”
“…….”
“……일어서봐. 욕실에선 한 번도 안 해봤지? 손에 물이 묻어서 더 기분이 좋을 거다.”
“…….”
그가 몸을 일으키며 자신의 팔을 잡더니 힘껏 일으켜 세웠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흥분해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리가 떨리고, 그에게 갑자기 끌려 일어나는 바람에 몸의 중심도 잘 잡히지 않았다. 흐느적거리는 발이 욕조 벽에 부딪쳐 상반신이 앞으로 기우뚱했다.
“어어어?! 조심해!”
다급하게 토해지는 그의 목소리를 자각했을 때는 이미 욕조에 상반신이 거꾸로 빠진 후였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진 그의 몸 위에 겹치듯 넘어진 것 같았다. 풍덩 하는 물소리와 함께 눈과 코로 뜨거운 물이 마구 들어왔다. 눈은 쓰라리고, 코는 쓰라릴 정도로 매웠다. 당황한 나머지 진짜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가 또 야단을 치겠구나 하는 생각만 설핏 스쳐갔다. 다행히 사방 2미터 폭의 둥그런 욕조는 많이 커서, 그도 잠깐 얼굴이 물에 빠졌을 뿐 욕조 모서리에 머리나 몸이 부딪치진 않은 것 같았다. 자신만큼 꿈지럭거리고 있는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은 채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애를 썼다. 무릎을 세우고 중심을 잡은 뒤 상반신을 일으켜 세우자, 간신히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하하하 하는 커다란 웃음소리가 욕실 안을 크게 울렸다. 품 안의 상반신이 웃음소리에 따라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그가 웃고 있었다.
야단치는 게 아닌가? 멍하니 의문이 떠오르며 그의 얼굴을 살피고 싶었지만 머리카락에서 줄줄줄 흘러내리는 물 때문에 재빨리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간절한 기분으로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은 채 물이 다 흘러내리기를 기다렸다. 맨살에 닿아오는 그의 촉촉하고 매끄러운 피부가 너무 좋아서 도저히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가 제발 자신을 밀쳐내지 않기를 빌고 또 빌지 않을 수 없었다.
“……크크크큭…… 표정이 진짜 웃겨…… 얼굴은 왜 그렇게 찡그리는 건데……? 꼭 물벼락 맞은 고양이 같구만…… 거울 보여주고 싶은 걸…….”
한참 동안 상반신을 떨며 웃어대던 그가 헐떡이듯 중얼거렸다. 자신을 밀쳐내지도, 또 야단을 치지도 않았다. 계속 눈을 꼭 감은 채 더 많이 빌었다. 제발 그가 밀쳐내지 않게 해주세요. 때리지 않게 해주세요. 야단치지 않게 해주세요.
“……답답해…….”
그가 다시 중얼거렸다. 안고 있는 몸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걸 보면 웃음을 완전히 그친 것 같았다.
“……이렇게 달라붙으면 섹스 못 하잖아…….”
나지막하고 다정한 목소리. 잘 모르지만 어쩐지 오늘 그는 자신을 밀어내지 않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만지거나 껴안아도 사납게 소리를 지르지 않을 것 같았다. 안도감과 함께 가슴이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서 둥실둥실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너무 기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를 이렇게 가만히 꼭 껴안고 싶기도 하고, 그가 자신의 생식기를 만지기 좋게 조금 떨어지고 싶기도 하고, 그의 몸 여기저기를 막 쓰다듬고 입술로 빨고 싶기도 하고, 생식기를 그의 몸 어느 곳에든지 막 비비고 싶기도 하고, 진짜 특수 방위군 기초 교본에 나오는 것처럼 그의 몸 안에 자신의 생식기를 깊이 집어넣고 진짜 섹스를 하고 싶기도 했다. 물론 그 어느 것도 자신으로선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가 절대로 허락을 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이렇게 숨을 죽인 채 그의 눈치를 살피며 그가 허락해주는 섹스와 만지기와 껴안기뿐이었다. 몰론 그것만으로도 자신은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황홀하기만 했다. 이렇게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어도 그가 밀어내지 않는다. 입술이 맞닿은 곳, 그의 어깨와 목덜미 사이 부드러운 피부에 살짝 키스해도 뺨을 때리지 않는다. 그의 자그마한 생식기 부위에 자신의 발기한 것을 조심조심 비벼보았지만 화를 내며 욕을 하지도 않았다. 그냥 조용히 한숨을 쉬며 자신에게 몸을 맡기고만 있을 뿐이었다. 다정한 말소리와 부드러운 몸짓으로 자신의 행동을 용서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로 꿈속 같았다. 너무나 기쁘고 행복해서 이대로 꼭 끌어안은 채 죽고만 싶었다. 욕조에 빠지면서 그쳤던 눈물이 또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상하다. 지금은 정말 행복하고 기뻐서 죽을 것 같은데 왜 또 눈물이 나오는 걸까.
“……아야, 자꾸 찌르지 마. 정말 기세도 좋구나, 너.”
“…….”
“좀 떨어지라니까. 빨리 한 번 하고 물에서 나가야지. 상처 덧나도 나 모른다?”
“…….”
“……그렇게 내가 좋아?”
“…….”
“……내 어디가 그렇게 좋아? 별로 잘생긴 것도 아닌데. 나이도 많고, 성격도 나쁘잖아.”
“…….”
“……모르겠다. 어째서…… 왜 나 같은 독신 성향의 남자가 좋다는 건지…….”
“…….”
“……분명 좋은 인연은 아닐 테지. 서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
“……그래, 너도 참 딱한 놈이지, 사실은. 그렇게 많이 사람을 죽였는데…… 아니, 여기 낙오되기 전부터도 이미 다른 무수한 생명체들을 살상했겠지. 그 많은 업을 떠안게 됐으니, 너도 참…….”
“…….”
“……울지 마. 나도 좋은 기분은 아니야. 괴롭히고 싶어서 괴롭히는 거 아니라구.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네가 한 짓이 자꾸 생각난단 말야. 그때마다 나도 내 마음을 주체 못 하겠는 걸 어떡해.”
“…….”
“……악연인 거야, 너랑 나랑은. 서로 만나지 말았어야 할 인연이라구. 알겠어?”
“…….”
“……아니, 모르겠지. 아이큐 60의 저능아가 무슨 제대로 된 생각이 있겠어.”
“…….”
“……허리 들어봐. 섹스 해줄게.”
욕조 바닥에 힘없이 놓여 있던 그의 두 손이 뻗어와 엉덩이 굴곡을 더듬었다. 익숙하면서도 찌릿찌릿한 자극이 아랫배와 허리를 녹아내리게 했다. 불쑥 단숨에 각도가 커진 생식기를 그의 생식기에 비벼댔다.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승냥이가 우는 소리 같은 시끄러운 소리가 목을 크릉크릉 울리며 터져 나왔다. 그의 허리를 안은 팔에도 힘이 들어갔다. 손바닥에 닿아오는 그의 허리 굴곡의 감촉이 너무 좋아서 자기도 모르게 힘을 잔뜩 주어 쓰다듬게 되었다.
“……아파…….”
그의 흐릿한 신음이 귓가에서 토해졌다.
“자꾸 나한테 비비지 말랬지. 난 그런 거 싫다니까.”
……알아요…… 아아, 알아요, 알아요…… 하지만 멈출 수가 없어요…… 멈출 수가 없어…… 당신이 좋아…… 당신이 좋아요…… 너무 좋아…… 아아, 당신이 너무너무 좋아요!!!
전해지지 못하고 가슴속에서만 메아리칠 수밖에 없는 말이 안타까웠다. 안타까운 나머지 행복한 가운데도 슬픈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좋아하는 기분이, 안타까움이, 행복한 기쁨과 답답한 슬픔이 가슴에서 흘러넘쳐 사방으로 홍수가 일어난 것만 같았다.
“……울지 마…….”
자신의 엉덩이를 어루만지던 그의 손이 얼굴로 올라왔다. 뺨으로 줄줄 흐르는 눈물을 그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닦아주고 있었다. 토끼털처럼 간지럽고, 봄바람처럼 따뜻한 손길이었다.
“……미안…….”
“……?”
“……미안해…… 너도 날 용서해주렴.”
“……?”
촉촉한 입김이 이마에 와 닿았다. 닿은 듯 안 닿은 듯 간질간질하고 따스한 감촉. 그가 키스를 해주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때가 되면…… 아마도…….”
심장이 너무나 급하게 뛰기 시작해서 혹시 터져버리는 게 아닐까 겁이 났다. 자신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눈을 뜨면 진짜로 꿈에서 깰까 봐 무섭기도 했다. 눈을 뜨면 안 된다. 눈을 뜨면 기도가 효험이 없을지도 모른다. ……제발 그가 밀쳐내지 않게 해주세요…… 때리지 않게 해주세요…… 야단치지 않게 해주세요…….
“……울지 마…… 기분 좋게 해준다니까…….”
그의 한 손이 다시 아래로 내려가 자신의 사타구니 사이를 더듬는 것이 느껴졌다. 저절로 허리가 흔들리며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의 다른 한 팔이 머리를 감싸 쥐며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얼굴에 꼭 밀착된 그의 따뜻한 피부에서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냄새가 났다. 그가 손으로 섹스를 해주고 있었다. 기둥을 어루만지고, 귀두를 찌르고, 페니스 아래 둥그런 주머니를 힘 있게 굴려주고 있었다. 그러면 자신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흔들며 그의 허리를 껴안은 팔에 힘을 주고 괴성을 질러댔다. 그의 목덜미며 머리카락이며 뺨이며 닥치는 대로 키스하고 빨아먹었다. 그의 몸에 그림을 그리듯이 손바닥으로 더듬고 또 더듬었다. 자신의 허벅지로 그의 가느다란 다리를 친친 감아 막무가내로 비벼댔다. 자신이 그를 껴안고 흔들 때마다 욕조 안의 물도 홍수가 난 것처럼 따라서 출렁거렸다. 행성 DITER-11의 우기 같았다. 우기 때의 강물처럼 요란스럽고 빠르고 힘이 넘쳤다.
피가 빠르게 뛰면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너무나 빨리 호흡을 해서 폐가 터져버리는 것 같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믿을 수 없는 기쁨. 즐거움. 행복. 달콤한 느낌. 아픈 것처럼 달콤한 느낌……. 섹스를 하면서 그를 꼭 껴안고 만져도 된다니, 즐거움과 기쁨은 자신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너무나 좋아서 저절로 헤헤 웃으며 벌어진 입술 끝으로 뜨거운 눈물이 방울방울 굴러 떨어졌다. 자꾸만 목이 메는 바람에 웃음소리가 꺽꺽거리는 솔개 소리처럼 굉장히 흉하게 들렸다.
죽을 때까지 눈을 뜨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죽을 때까지 꿈을 꾸자고 맹세했다. 그러면 이렇게 그의 몸에 영원히 달라붙어 있을 수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