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 1989년 12월. 장인환(張仁歡) (124/129)

13. 1989년 12월. 장인환(張仁歡)

“……전생…… 퇴행이라고요……?” 

그가 잘 못 알아듣겠다는 듯 눈을 둥그렇게 뜬 채 되물었다. 아니, 못 알아들었을 리는 없다. 횡설수설하긴 했지만 최면이니, 전생 요법이니, 항간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 「환생 여행」이니 하는 얘기들을 빠짐없이 설명했기 때문이다. 어마무시하게 머리가 좋은 그가 자신이 한 말을 못 알아들었을 리는 없다. 못 알아들은 척은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 그는 기가 막혀 하고 있었다. 전생이라니 뜬금없이 그 무슨 미신 같은 얘기냐고, 우회적으로 돌려서 자신을 질책하고 있었다. 다행히 웃고 있지는 않았지만(그야, 그의 얼굴은 거의 항상 무표정하다!) 분명 속으로는 한심하다고 비웃고 있을 것이다. 대학까지 졸업한 다 큰 어른이 무슨 그딴 미신을 믿느냐고.

“……어…… 어어…… 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일반화되지 않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최면을 통해 전생을 기억하게 하는 일이 무척 많이 일어난대.”

“…….”

“……모…… 모두 조금씩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인데, 약물이랑 다른 여러 심리 치료들을 해봐도 소용이 없을 경우 일부 의사들은 그런 치료법도 쓴다는구나. 최면술로 전생까지 의식을 퇴행시켜서 전생에 일어났던 불행한 사건들과 상처들을 기억시키는 거지. 물론 그 기억을 통해 환자들은 마음이 정화되는 거고. 그럼 신기하게도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더라구.”

“…….”

“그…… 안 믿어지지?”

“…….”

“……하지만 진짜 많대. 미국에서도, 스위스에서도, 독일에서도, 이미 그 요법은 국제적으로도 높은 인정을 받고 있다니까?”

“…….”

“진짜야! 정 도사도…… 아, 아니, 정 도사가 아니라 정호준 박사라구, 해영이 형 친구거든. 해영이 형이 정 도사, 정 도사 해서 우리도 정 도사라고 부르거든. 아무튼 그 정 도사도 그러더라구. 언젠간 우리나라에서도 전생 치료법을 도입하는 정신과 의사가 나올 거라구…….”

“…….”

“……그…… 근데 진짜 그 사람 굉장하거든. 미국 유명 대학에서 심리학이랑 의학을 전공했는데, 버지니아주립병원에서 정신 분석의 생활도 했다가 귀국한 사람인데, 아무튼 미국에서 실력을 꽤 알아줬었다나 봐. 근데 다 팽개치고 도 닦으려고 귀국한 거거든. 속리산의 어느 큰스님 문하로 들어가서 몇 년 수행하다가 지금은 어느 개인 선원을 하나 차리고 열심히 수행 정진 중이래.”

“…….”

“……그…… 그건 그래. 파계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그 사람 성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응, 그 사람도 게이거든…….”

“…….”

“하…… 하지만 그 사람 굉장한 건 맞아. 실없는 농담도 잘하고 가벼운 사람 같지만, 사람 얼굴 딱 한 번 보고 그 사람의 궁합이랑 사주를 줄줄이 꿰고, 전생이나 업까지 단숨에 알아맞히더라구…… 그걸 전문 용어로는 천안통이 열린 거라고 한다더구나. 진짜 신기하지 않니? 완전 족집게야, 족집게!”

“…….”

“……아…… 아무튼 그 사람이 내 전생도 기억하게 해줬는데 말이지! 하…… 한번 해보면 너도 믿지 않을 수 없을 거야! 진짜야, 위야!!! 거짓말 아니야!!! 내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하겠니!!!”

“…….”

“……위야……?”

“…….”

말을 덧붙이면 덧붙일수록 유치하고 너절하고 궁색한 변명으로 변해버리는 것이 이상했다. 말을 덧붙이면 덧붙일수록 희미하게 번지는 입가의 웃음기와 더불어 점점 곤란한 기색이 짙어지는 그의 표정을 보니 더더욱 변명에 열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애초에 그의 이해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아니, 이해를 받기는커녕 그에게 죽어도 얘기하고 싶지 않은 주제였다. 아무리 그가 자신의 몸 안에 분신을 밀어 넣은 채로 상냥하게 구슬렸다고 해도, 아무리 그가 허리를 녹아내리게 하는 현란한 테크닉으로 자신을 몇 번이나 천국으로 보내주었다고 해도, 안 웃을 테니까 이유를 말해달라는, 궁금하고 불안해서 참을 수가 없다며 짐짓 우울하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달콤하게 속삭여주었다고 해도 절대로 유혹에 넘어가선 안 되는 거였다.

아아, 인환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절대로, 전적으로 그가 사실을 알게 되면 배를 쥐고 웃어버리리라고. 예의 바르고 신사적인 그인 만큼 면전에서 웃음거리 삼아 놀리진 않겠지만 틀림없이 자신이 안 보는 곳에서 박장대소를 하리라고.

그래서 지난 2주간, 천지가 뒤집히는 것같이 충격적이고, 또 지옥같이 슬프고 절망적인 놀라운 체험을 하면서도 자신은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지나치리만큼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그가 전생이니 윤회니 하는 미신적인 얘기를 믿을 리가 없었다. 아니, 백보 양보해서 미신이 아니라 종교적인 문제라고 질을 격상시킨다고 해도, 그는 보일 듯 말듯 입가를 끌어올리며 웃음이나 참는 게 고작일 터였다.

역시 그의 반응은 인환의 예상에서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눈을 마주치며 열심히 변명을 주워섬기는 자신에 비해,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눈을 피하려 들었다. 점점 더 절박해지고 진지해지는 자신에 비해, 그는 갈수록 편안하고 느긋한 얼굴이 되어갔다. 편안하고 느긋한 얼굴? 젠장. 느긋하다 못해 하품을 참는 기색까지 역력했다!

……아아, 젠장!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래서 내가 말 안 하려고 했던 건데…… 나빴어, 위야……!!! 정말 너무해!!!

묵묵부답 침묵을 지킨 채, 그는 부드럽게 인환의 등줄기와 겨드랑이만을 애무하고 있었다. 점점 의욕을 잃고 꼬리를 말아버린 인환의 마지막 부름과 함께 침실 안에는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서운한 나머지 또다시 눈물이 핑 돌았다.

“……선생님……?”

“…….”

“……선생님, 또 우세요……?!”

“…….”

약간의 당혹감이 서려 있지만 그보다 더한 웃음기가 말투에서 역력히 배어나왔다. 자신이 열심히 설명할 땐 슬슬 시선을 피하더니, 눈물을 글썽거리니까 그제야 허둥지둥 시선을 맞추기 바쁘다.

마주 보고 그의 무릎에 걸터앉은 자세로 가만히 결합해 있은 지도 벌써 한 시간이 넘었다. 발기가 스러질 것 같으면 몇 번 허리를 튕겨 결합을 지속시키고, 사정감이 느껴지면 움직임을 멈춰 마냥 박고만 있는 초 절륜 테크닉으로 한 시간 동안 자신을 맛 가게 만든 인간이다. 아니, ‘인간’이 아니다. 사정도 않고 한 시간 동안이나 안에서 자지를 발기시킬 수 있는 변강쇠가 어디 인간이더냐. 괴물이지, 쓰펄. 하긴 알렉 놈을 생각해봐라. 이 여자, 저 여자 놀아난 사교계의 여자들 수만 해도 수십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전설이 된 희대의 바람둥이 출신이라는 얘기다. 전생에 그렇게 갈고닦은 실력이니 오죽하겠나. 괴물이 되는 것도 당연하지. 젠장, 또 씨바랄이다.

……나쁜 놈. 무정한 놈. 진짜 못됐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독종 같으니…….

지난 2주간의 슬픔과 원망과 고뇌가 또 미움으로 변태를 한다.

자신의 목숨 건 사랑을 그토록 매몰차게 거절하고, 아니, 거절하다 못해 비웃고 침을 뱉었던 알렉. 못되고, 잔인하고, 무신경하기까지 했던 색마. 도저히 내 위야일 리가 없다고, 기를 쓰고 부정해보았지만 틀림없었다.

모습은 달라도, 인종과 국적과 시대는 달라도, 자신이 연인을 못 알아볼 리가 없다. 연인의 냄새를 모를 리가 없다. 자취를 못 알아챌 리가 없다. 알렉은 위야다. 내 위야…… 내 사랑하는 위위. 내 사상, 내 영웅, 내 그림, 내 기쁨, 내 행복, 내 인생, 내 종교……. 그래, 그런 내 모든 것…….

……그토록 사랑을 주었었는데…… 정말로 너무나 좋아서…… 아프도록 좋아서…… 사모해서…… 널 위해선 목숨을 바칠 각오까지 했었는데…… 아니, 진짜로 목숨을 바친 셈이 되었나……? 그래…… 네가 날 그렇게 매몰차게 쫓아내고 난 고작 6년을 더 살았을 뿐이니까…… 나쁜 놈…… 너, 진짜 나쁜 놈이야…… 비열한 놈이야…… 그거 알아……? 아무 데나 가서 다른 남색가나 찾아보라니…… 다…… 다른 남색가라니…… 젠장……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너, 알았잖아…… 내가 너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잖아…… 근데 어떻게 그런 잔인한 말을 할 수가 있어……? 어떻게 그래……? 나빠…… 진짜로 나쁜 놈이야, 너…… 하지만 그래도 난…… 그래…… 그래도 난 네가 정말 좋아서…… 너무너무 좋아서…….

“……선생님……!”

후득후득 뺨으로 떨어지는 눈물을 그가 손바닥으로 닦아주며 상냥하면서도 안타까운 어조로 부른다.

그렇게 부르지 마, 나쁜 놈. 사기꾼. 색마. 바람둥이.

“……선생님, 그러지 마세요. 전생이라니 그런 게 어딨어요. 저도 그런 비슷한 얘기 들은 적은 있지만, 그런 거 다 점쟁이들이 사기 치려고 하는 소리라더군요. 심리적인 전술을 쓰는 것뿐이란 거죠. 그저 자기 암시에 걸리게끔 유도하는 거라고…….”

바보, 네가 사기 치는 건지 아닌지 진짜로 봤어? 점쟁이 맘속에 들어가보기라도 했냐? 잘난 척은, 나쁜 놈. 쪼금(아니, 솔직히 진짜로는 많이) 영리하고 똑똑하다고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잘난 척하구……. 그래, 너 잘났다, 이 나쁜 놈아! 우씨…….

“……아, 이런…… 또 우시네…… 울지 마세요, 선생님……! 참, 나…… 원…… 선생님……?”

줄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꼬락서니가 안쓰러웠는지, 그의 달콤한 목소리에선 더 이상 웃음기는 묻어나오지 않았다. 어쩐지 동정을 받고 있는 듯해 더 설움이 복받쳤다.

자신은 늘 그의 동정이거나 멸시만 받는다. 이승에서도, 그리고 전생에서도. 그전의 전생에서도. 또 그전의 전의 전전생에서도. 결코 그 이상의 감정과 정성을 보내주진 않는다. 그야, 자신과 같은 정도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전생 동안 자신의 반의반도 못 되는 얄팍한 감정만을 보답해줬을 뿐이니까 진짜로 야박하다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을 거다, 나쁜 놈. 아아, 근데 이번 생에도 그렇다니…….

……오로지 자신만 사랑한다. 자신만 그를 보고 첫눈에 반하고, 짝사랑하고, 그리고 그를 위해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희생하리라고 맹세를 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아프다. 서운하고, 안타깝고, 슬프고, 절망스럽고, 그립고…… 전생의 데이빈이 느낀 그 모든 감정이 그대로 절절하게 전해져온다. 데이빈으로서의 삶은 바로 오늘 오전의 최면 퇴행으로 기억해낸 전생이라 그런지 더더욱 선명하게 감정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며칠 전에 기억해낸 희운(僖雲)이로서의 전생도 아프고 비참하긴 한가지였지만, 데이빈은 더 심하다. 진짜진짜 심하게 비참하다, 쓰버럴…….

“……울지 마세요…… 제발 울지 마세요, 선생님…….”

그의 입술이 살며시 다가와 자신의 것을 빨아 당긴다. 입술 아래까지 흘러든 짭짤한 눈물을 그가 혀로 부드럽게 핥으며 달래듯 속삭이고 있었다. 아아, 이렇게 다정하고 상냥해도 가슴은 마냥 아팠다. 그저 고객이니까 다정하게 대해주는 거겠지. 고객을 즐겁게 해줘야 하는 게 네 의무니까.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다 자신의 주제넘은 응석일 뿐이라는 거. 그를 사랑하는 것도, 그를 원망하는 것도 전부 주제넘은 짓이라는 거. 자신은 그저 그의 고객. 그의 몸을 돈으로 산 고객일 뿐이다. 돈을 주고 그가 주는 육체의 쾌락만 받아들이면 된다. 언감생심 그에게 애정과 관심을 요구할 권리란 털끝만큼도 없다.

그랬다. 그렇게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자꾸만 그가 서운하고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아아, 젠장. 등신같이 어쩌자고 그런 장난을 해버린 걸까. 전생이라니. 소울메이트라니. 자신도 그와 똑같았다. 정 도사에게서 최면 퇴행을 받기 전까진 그딴 건 하나도 안 믿었었다. ‘도를 믿으십니까?’ 하고 누가 팔을 잡으면 줄행랑치기에 바빴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제가 어떻게 해드릴까요? 한 번 더 즐겁게 해드릴까요? 오늘 꽤 여러 번 했지만 그래도 아직 한 번은 더 하실 수 있죠?”

“…….”

“……선생님?”

“…….”

“……선생님…….”

“…….”

“……하, 참…… 이거야…….”

“…….”

젠장, 한심해하지 마. 나도 한심한 거 다 안다구. 누군 뭐 울고 싶어서 우는 줄 알아? 2주 동안 하도 울어서 눈에 진물이 다 날 지경이다, 뭐.

“……제가 뭘 해드리면 웃으실래요? 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할게요. 네, 선생님……?”

자학의 와중에도 솔깃.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해줄 거라는 그의 상냥한 제안에 또 등신같이 솔깃.

“……그…… 그럼 가서 맹세해줄 수 있어?”

“……?”

“……정 도사가 그러는데, 너랑 나랑은 지독한 악연으로 연결된 소울메이트래. 웬만한 노력이 아니고서는 쉽게 사랑을 이룰 수가 없대. 이번 생에서도 무지무지 장애가 많아서…… 암튼 이번 생에선 서로 연인은 못 되겠지만…… 그래도 서로 호감을 가진 친구로 재출발할 수도 있는 거니깐…….”

아아, 또 말이 많아진다. 그의 상냥함에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좀처럼 멈출 수가 없다. 하지만 할 수 없잖아. 전생에도, 이생에도, 게다가 미래 생까지…… 아아, 젠장. 계속…… 막, 막 비참하게 살게 생겼는데 어떡해!

“…….”

“……그, 저…… 마…… 만약 내가 여자로 태어나면…… 후생에 다시 여자로 태어난다면 그땐 나랑 연인 해주겠다구…….”

“?!!!”

아, 씨. 눈 휘둥그레지는 거 봐라. 젠장, 알어. 나도 쪽 팔린다구. 나라고 이런 황당한 부탁 하고 싶겠냐?

“……아…… 아니, 그러니깐, 내가 그냥 남자로 태어나더라도 네가 대신 여자로 태어나면 되지. 아무튼 우리 중 아무라도 여자로 태어나면 우린 정상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거잖아? 하긴 만약 내가 지금처럼 다시 동성애자로 태어나더라도 네가 나처럼 동성애자로 태어나도 되는 거고…… 저기…… 저, 그러니까 내 말은…….”

“…….”

그의 얼굴이 씰룩씰룩 요상해진다. 입술과 턱 끝이 벌벌 떨리는 게 보인다. 웃음이 나와 미치겠는데 억지로 참고 있는 냄새가 풀풀 풍긴다. 아, 씨. 진짜 쪽 팔려. 다 큰 변태 어른이 건전한 고등어 하나를 데리고 이 무슨 해괴망측한 수작이란 말이냐.

“……우…… 웃기는 짓이란 건 알지만…… 그…… 그래도 정 도사가 영혼을 걸고 진심으로 맹세하면 이루어질 수 있는 거라고…… 진짜로 그랬단 말야. ‘마음이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려내는데 오온이 마음 따라 생기어서 무슨 법이나 못 만들어내는 것 없네…….’ 이 노래 알아? 불교 경전인데…… 「화엄경」이라구 알지? 거기 나오는데 무슨 보살의 게송이래. 그거 막 정 도사가 읊으면서 다 우리가 마음먹기 나름이라구. 인생사, 업보, 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거라구. 그러니까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하면 그렇게 이룰 수 있대. 이뤄진대, 위야. 그러니까…….”

“…….”

“……아…… 아무튼 넌 안 믿는 거니까 그냥 속는 셈치고 정 도사 앞에 가서 맹세해주면 안 돼……?”

“…….”

그의 어깨가 기어코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가 쿡쿡거리며 웃음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참다가는 와락 자신의 상반신을 끌어안아오며 경기를 일으키는 것처럼 몸을 떨었다. 그의 소리 없는 웃음은 마치 발작이 일어난 것 같았다.

“……우…… 웃지 마! 아, 씨…… 난 심각한데…….”

“……그…… 죄…… 죄송…….”

헐떡거리느라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그가 더더욱 상반신을 죄어왔다. 등줄기를 어루만지고 있는 손길은 몹시 다정하면서도 정열적이었다. 웃어서 미안한 마음을 애무로 얼버무리는 게 아닌가, 꽤나 속이 상했다. 자신의 왼쪽 목덜미 가운데에 파묻혀 있는 그의 얼굴 근육에서도 웃음의 흔적은 역력했다. 소리 없이 낄낄거리는 그의 움직임에 따라,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그의 자지가 내벽을 불끈불끈 쑤셔댔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리 지쳤어도 단숨에 발기해버렸을 황홀한 자극이지만 잔뜩 풀이 죽은 마음은 좀처럼 회동하지 않았다. 그저 마냥 슬프기만 했다. 절대로 이해해줄 리가 없는, 이해는커녕 믿어주지도 않기에, 그를 정 도사 앞으로 데리고 가는 일은 거의 실현 불가능한 소망일 터였다.

“……그…… 그야…… 정말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그냥 네 말대로 암시에 걸린 걸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너무 슬프잖아…… 만약 진짜면 어떡해…… 나만…… 나만 널 좋아하구…… 전생에도…… 앞으로도 계속…… 계속 나만 널 좋아해서…… 그런 거 저주잖아…… 너무너무 슬픈 저주잖아…… 나만 널 영원히 좋아하고…… 그…… 그게 한 번도 아니고…….”

안타깝고 절박한 마음을 그대로 담아 간절하게 말해보았다.

자신의 진지함이 그나마 전해졌는지, 발작처럼 흔들리고 있던 그의 몸이 차츰차츰 조용해지고 있었다. 목덜미에 닿아 있던 그의 입술이 자잘한 키스를 거듭하며 입술 근처로 올라와, 눈물로 얼룩진 주변을 살며시 핥아주고 있었다. 등과 어깨와 겨드랑이와 가슴 근육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애무를 거듭하고 있는 손길도 깃털처럼 부드럽고 섬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꽉 맞물린 채 느릿하게 내벽을 애무하는 거대한 흉기의 움직임은 그대로 천국의 쾌락이었다. 더 이상 바랄 수 없을 만큼 달콤한 서비스였다.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아아, 평소의 자신이었더라면 지금 얼마나 꿈결 같은 기분일 것인가. 사랑에 빠진 변태 게이의 욕심이란 이다지도 탐욕스럽고 추한 것이란 말이냐.

“……믿지 않는데 그 맹세에 진정이 담길 수는 없잖아요, 선생님.”

“……?”

그가 귓바퀴를 자근자근 물어뜯으며 속삭이듯 일침한다.

“……그야…… 어차피 믿지도 않으니까 대충 맹세 같은 거 해드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건 선생님 진심에 대한 실례가 될 겁니다.”

“…….”

“……그래요. 정말 실례지요. 장난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선생님도 가벼운 마음이시라면 상관없지만 아니시잖아요.”

“…….”

“……선생님 마음에 보답을 드릴 수는 없어도 선생님 마음을 존중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아니, 정말로 진심으로 존중해드리고 싶어요. 선생님이 절 얼마나 깊이 사랑해주시는지, 아껴주시는지…… 무척 마음은 아프지만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 선생님 무척 좋아해요. 알고 계시죠?”

“…….”

“……그래서 그런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에는 동참하고 싶지가 않아요. 다만 저도 좀 더 알아는 보겠습니다. 그 전생이라는 거…… 최면 퇴행이라는 거…… 공부해보고 조금이라도 믿음이 간다거나 한다면 다시 생각해볼게요. 괜찮죠?”

쪼듯이 자신의 입술에 자잘한 키스를 거듭하며 말을 마친 그가 자신과의 사이에 약간의 틈을 만들며 시선을 맞춰왔다.

지독하게 성실하고 진지한, 기계처럼 무표정해 보이지만 속 깊은 애정과 다정다감한 성품을 그 안에 숨기고 있는 단아한 눈시울이 보였다. 근심과 플라토닉한 우정과 애틋한 연민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상냥한 눈동자. 그 눈동자에 자신의 넋을 전부 빠트리곤 인환은 한참 동안 홀린 듯이 들여다보았다.

아아, 그래. 자신이 지금 사랑하는 건 바로 이 눈이다. 이 진지함. 이 성실함. 야심. 정열. 서늘한 이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완벽한 아름다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영웅이다. 달리 뭐가 더 필요할 것인가. 지금 이렇게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그래서 안타깝고, 슬프고, 그러나 그 이상으로 기쁘고 행복한 것을.

알렉이 다 뭐냐. 준오 놈은 또 뭐냐구. 그따위 바람둥이 난봉꾼에다 돈에만 혈안이 돼 있던 수전노 놈들은 내 위야가 절대로 아니라구. 위야는 알렉처럼 치마만 둘렀다 하면 무조건 덤벼드는 카사노바도 아니고(색탐은커녕 이쪽이 민망할 정도로 금욕적인 신사란 말이다!) 가족이고 뭐고 돈과 지위만 생각하는 불한당도 아니고, 준오처럼 비열한 수단으로 주인인 자신의 재산을 가로채는 종놈도 아니고, 무자비하게 영주민을 착취하며 영토 확장에만 눈이 먼 베르니니 공작도 아니고, 친구인 자신의 아내를 겁탈하고 그도 모자라 자신마저 겁탈한 뒤 죽여버리는 디에고도 아니란 말이다.

내가 현재 사랑하는 연인은 그 누구보다도 점잖고, 금욕적이고, 가족을 끔찍이도 사랑하고, 친구를 아껴줄 줄 알고, 하늘만큼 프라이드가 높고, 무지무지 영리하고, 그래서 전교 수석만 하고, 뿐이냐, 이 늠름한 몸과 황홀하게 잘생긴 얼굴을 보라구. 이렇게 완벽하게 아름다운 미남 있으면 나와보라구 그래. 그래, 그렇지. 내가 사랑하는 건 여기 이 위위뿐이야. 지금 이렇게 내 몸과 연결돼 있는 위야뿐이라구. 나의 위위…… 내 사랑하는 위위…… 근사한 내 위야…… 그래, 바로 내 영웅뿐이란 말이다!!!

“……공부해보고 조금이라도 믿음이 간다거나 한다면 다시 생각해볼게요. 괜찮죠?”

대답을 구하고 있는 상냥한 연인에게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자 빙그레 환한 웃음이 번지며 그의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두근…….

심장이 아래로 뚝 내려앉는 것처럼 심하게 요동쳤다. 정말로 아주 드물게만 보이는 그의 눈부신 웃음이다. 정말로 그가 즐거울 때만 짓는 웃음. 아아, 정말 좋아…… 정말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위야, 사랑해……. 새삼 가슴이 벅찰 정도로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는 사랑의 감정에 제대로 숨을 쉬기도 버거웠다. ……그래! 전생 따위가 다 뭐야! 후생 따위가 뭐냐구! 지금 이렇게 사랑하는데! 지금 이렇게 가슴이 터져버릴 만큼 그가 좋아서 견딜 수 없는데! 이렇게 사랑하는 그와 한 몸이 돼 있는데 뭐가 불만이냐구!!!!!

흘러넘치는 마음 그대로 와락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있는 힘껏 팔을 길게 늘여 그를 조이고 또 조였다. 허벅지와 정강이에도 최대한 힘을 줘서 그의 허리를 문어처럼 친친 감아들였다.

“……한 번 더 해도 되죠……?”

착 가라앉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귓가에 뜨거운 열기를 불어넣었다. 젖꼭지를 주물주물 꼬집으며 애무를 주던 그의 두 손가락이 허리 아래로 내려가더니 강하게 조여댔다. 자신의 애정에 대한 화답처럼만 느껴져서 감동한 나머지 목이 메었다.

“……꽤 쉬셨으니까…… 한 번 더 느끼게 해드릴게요…….”

귓불을 더듬던 입술 틈으로 뱀의 그것처럼 날름거리던 혀끝이 뜨겁게 파고들었다. 이미 그의 자지에 의해 몇 번이나 힘껏 내벽이 쑤셔지고 있던 참이라 대답을 할 여유 따윈 없었다. 헐떡거리며 신음을 토하자 귓구멍을 공략하던 그의 입술이 도로 다가와 빈틈없이 입을 맞추고 있었다. 혀뿌리를 얽어오며 기회를 살피던 그것이 목구멍 깊이 쑤셔들었다. 조금 후퇴하는 듯하던 그의 자지가 단숨에 내벽 가장 깊은 곳까지 힘껏 파고든 순간이었다.

“흐읍!!!!!”

정통으로 건드려진 포인트에 단숨에 아래로 피가 몰려들었다. 허리가 뒤로 활처럼 휘었다. 뜨겁고 격렬한 입술은 봐주지 않고 따라와 잡아먹을 듯한 키스를 거듭했다. 자지와 불알이 터질 것처럼 위로 발기해 그의 아랫배에 짓눌렸다.

“후앗!!!!!”

다시 한 번 느리고 강렬한 인서트!

몸서리쳐지는 감각에 경련하듯 도리도리를 하며 그의 목에 매달렸다. ……아…… 안 돼……! 그만!!! 견디기 힘들 만큼 지독한 자극에 숨넘어가는 애원이 흘러나왔다. 아니, 흘러나왔다고 흐릿하게 느껴졌다. 실제로는 뱀처럼 음란한 교성에 묻혀 사라졌을 터였다. 물론 설령 애원이 전해졌다고 해도 그만 멈춰줄 연인이 아니었다.

막 비상을 시작한 연인의 번들거리는 몸이 인환의 온몸으로 착 감겨들었다. 연인이 무릎을 세우자 탄탄한 허벅지마저 인환의 허리와 등줄기를 짓누르듯 조여들고 있었다.

“흐아악!!!!!”

다시 한 번, 짓뭉개버릴 듯한 연인의 무자비한 삽입에 몸서리를 치며 내벽이 조여들었다. 고래고래 질러대는 자신의 낯 뜨거운 교성은 다행히 연인의 입술에 대부분 가로막히고 있었다.

“웁!!! 움, 웅, 응……!!! 흐웁……!!! 흑!!! 우앗!!!!!”

빠르고, 가차 없고, 격렬한 연인의 피스톤질이 시작되고 있었다. 연인의 흉기가 찔러들 때마다 기함해 넘어가면서도 질세라 연인을 물어뜯었다. 하나라고, 이렇게 하나로 달라붙어 죽어도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여봐란 듯이 교성을 울려주었다. 암캐처럼 음란하게 허리를 흔들며 힘껏 연인의 자지를 빨아들였다. 조금도 부끄럽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더 이상 슬프지도 않았다.

이 순간 연인과 자신은 한 몸이었다.

순간은 영원도 될 수 있었다.

아니, 바로 영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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