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년 만의 귀향
[1]
돌아오고 싶지 않은 고향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목사로 배정되었을 때 마음 한구석에 똬리 틀고 있던 옅은 향수가고개를 치든 것 역시 사실이었다. 십 년간의 떠돌이 생활이 내게 그 끔찍한 기억을 희석시킨 것일까? 역에서 내려 덜컥거리는 역마차에 몸을 싣고 좁은 시골길을 따라 들어가는 동안 나는 양옆으로 펼쳐진 푸른 밀밭을 굽어보며 폐부로 스며드는 맑은 고향 공기에 불안감이 조금씩 가라앉는것을 느꼈다.
십 년이었다. 이 조그마한 시골 마을의 풍경은 예전과 다름없었지만 십 년이라는 시간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기엔 충분한 기간이었다. 나를 볼 때마다 이맛살을 찌푸리며 ‘오늘은 또 무슨 못된 짓을 하려는 게냐, 이 꼬마 악마야!'라고호통치던 늙은 산지기는 그렇지 않아도 구부정하던 허리가더욱 꼬부라진 채 밀짚모자를 벗어 내게 인사했다.
'새로 오신 목사님입지요? 처음 뵙겠습니다.'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웃으며 그에게 내가 기억나지 않느냐 물었다.늙은이는 침침한 눈을 비비고 내 얼굴을 구석구석 뜯어보았다. 기억이 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나는 그 늙은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만큼 대단한 아이가 되지 못했다. 그저 가끔 산기슭에 숨어 들어가 관솔불을 켜고 밤을 구워먹다 걸리는 그런 애송이 가운데 하나였지.
“대장장이 앤드루의 아들 앤더슨Anderson 입니다. 십 년 전에 이 마을을 떠났었죠. 기억나지 않으세요?"
“아아, 앤더슨! 그래, 이제야 기억이 나는군. 예전부터 똘똘하고 예의 바른 아이라 내 이리될 줄 알고 있었네.”
유달리 호들갑을 떠는 말투, 그리고 십 년 전 이곳에 살적, 나의 평판과는 판이한 이야기에 나는 그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하지만 모르는 체 웃으며 ‘네맞아요, 십 년 전과 변함없이 정정하시네요' 그런 뻔한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교회로 들어섰다.
이 마을과 어울리는 작은 교회였다. 이십여 년 전 큰 산불로 목조 건물이 불탄 이후로 벽돌을 모아 새로 쌓은 교회. 어릴 적 이 교회가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것을 보며 친구들과 함께 벽돌 조각을 가지고 장난을 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교회의 꼭대기에 노란 금종이 달리던 날, 모든 마을 사람들이 이 앞에 모여 모자를 벗고 성호를 그었었다.
'신이시여'
관사에는 전 목사가 남긴 세간살이들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가구와 식기들을 새로 구입할 일에 눈앞이 캄캄했던 아내는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인 놋그릇에 제 얼굴을 비추며 뿌듯이 웃었다.
“전 이곳이 마음에 들어요. 당신의 고향이기도 하고 사람들도 모두 좋아 보이고요. 관사도 깨끗하네요. 아이를 키우기 좋은 곳 같아요."
갓난쟁이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등은 메마른 대지처럼 갈라져 있었다. 나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더 이상 그녀가 식당 일로 혹사당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못난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그녀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가. 이제는 그녀에게 평범한 일상을 선사하고 싶었다. 나는 그녀의 손등에 내 손을 겹치며 다짐했다. 앞으로 그 어떤 시험이 있을지라도 이겨 내겠노라. 과거의 어둠과 악령을 내몰고 올곧게 주를 향하겠노라.
그리고 나의 아내. 그녀를 반드시 행복하게 해 주겠노라. 교회 주변을 한 바퀴 돌며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으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어린 시절, 내가 친구들과 어울려 키 큰 밀밭 사이를 누비며 장난질을 치는 사이 아버지의 대장간에 큰 불이 났었다. 화마는 삽시간에 모든 가족을 덮쳤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물을 날랐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동무들의 집을 전전하며 밥을 얻어먹고 남의 집 헛간에 웅크려 잠을 청해야 했다. 처음에는 불쌍하다고 무엇이라도 챙겨 주려 하던 동무들도 첫사랑 마거릿도 어느 순간부터 나를 피했다. 나 역시 그들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꾀죄죄한 몰골에 부지불식간에 지독한 악취까지 풍기게 된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서기엔 스스로가 너무나 비참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나는 때마다 울리는 교회 종을 바라보며 뇌까렸었다.
'신이시여.'
내가 바라보는 종은 언제나 물기를 먹어 부연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그 위에 번듯 솟은 십자가 역시, 뎅그렁뎅그렁, 벽력같은 종소리가 여윈 몸을 내려치는 바람에 나는 죄지은 탕아처럼 덤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었다.
[2]
새 목사가 부임했다는 소식에 스미스 부인이 갓 구운 빵과 사과잼을 바구니에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언덕을 올라왔다. 그녀는 내 이름을 듣더니 한참 동안 기억을 더듬은 뒤에야 자신이 창틀에 올려 둔 빵을 집어 가던 더러운 꼬맹이를 상기하였다.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다”라며 울먹이는 모습에 괜히 내 콧날까지 시큰해졌다. 그녀는 매번 빵을 도둑맞으면서도 매일같이 같은 자리에 빵을 두었었다. 가끔은 갓 짠 우유를 곁들여서.
“장과 가끔 네 얘기를 나누었단다. 지금 그 녀석은 밀밭에 있을 게다. 온 김에 얼굴이라도 보여 주렴.”
그녀가 아내와 아이를 보며 호들갑을 떠는 사이 나는 챙넓은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스미스 씨의 밀밭으로 내려갔다. 장은 내 오랜 친구였다. 그가 첫사랑 마거릿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었다. 사실 그때는 첫사랑에 대한 아쉬움을 느낄 조금의 여유도 남아 있지 않았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둘은 잘 살고 있겠지. 일찍 결혼을 하였으니 아이들도 장성했을 것이다. 내가 찾아가면 놀랄 부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비탈에 멈춰 그들이 일하고 있을 밀밭 쪽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잔잔하게 부는 바람에 푸른 물결이 일렁였다. 허수아비도 덩달아 너울너울 춤을 추며 덜그럭덜그럭 양철통들을 흔들었다. 그 바람에 놀라 포르르 날아오르는 참새 떼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멀리로 우뚝 솟아 있는 저택이 보였다.
달턴Dalton가의 저택.
갑작스레 오한이 밀려왔다. 도망치듯 비탈길을 내려갔다. 비탈이 끝나는 곳에 해바라기들이 심어져 있었다. 누가 이곳에 해바라기 밭을 일군 것일까? 태양을 향해 줄지어선 노란 대가리들이 저택의 형상을 가렸기에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해바라기 줄기 사이로 밀밭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수건으로 머리를 싸맨 아낙네 하나가 새참이 가득 든 바구니를 끼고 밀밭을 가로질렀다. 어디선가 허리를굽히고 있던 남자가 번뜩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구릿빛 피부가 태양 아래에서 반질반질 윤이 흘렀다.
장과 마거릿이었다.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 먼곳에서 굽어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반가움에 입술을 벌렸다. 그 순간, 내 앞에 어른거리던 노란 꽃잎 사이로 새까만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검은 머리, 검은 옷. 유달리 창백한 피부. 하얗고 섬세한손가락이 해바라기 줄기를 하나하나 훑으며, 그는 유령처럼 소리도 없이 해바라기 밭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굳어 그림자 같은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흘렀다.목소리가 말라붙어 벌어진 입술 사이로는 서늘한 숨결만흘러나올 뿐이었다. 눈을 깜박였다. 눈꺼풀까지 내려왔던땀방울이 눈물처럼 눈썹 아래로 툭 떨어졌다. 가슴까지 벅차오른 숨을 간신히 토하며 다시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설마, 설마, 설마?
“달턴 씨?"
아득한 곳까지 멀어졌을 것만 같던 남자가 의외로 멀지않은 곳에서 멈춰 섰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몸이 휘청거려 무엇이라도 짚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것이라고는 힘없는 해바라기 줄기뿐이었다.
남자는 곧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해바라기 그림자가 드리워 얼굴이 잘 보이질 않았다. 유달리 붉은 빛을 띤 엷은 입술이 살짝 비틀린 미소를 머금더니 곧장 다시 해바라기들을 훑으며 멀어져 버렸다.
“앤더슨? 앤더슨!"
나도 모르는 사이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다. 장이 다급하게 나를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다시 눈을 떴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는 마거릿과 스미스 부인의 모습이 보였다.
꿈이라도 꾼 것일까? 하긴 마을 초입에 들어선 직후부터 그에 대한 악몽으로 몸서리치고 있었으니 그런 환영을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리라. 병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스미스 부인의 걱정에 손사래를 치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손을 맞잡았다.
그날 저녁 식사는 장의 집에서 함께하였다. 한밤중 어스름한 달빛을 벗 삼아 아내와 함께 교회로 돌아가는 길, 나는 그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하였지만 악령은 그 이후로 자취를 감추었다.
[3]
부임 후 첫 예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이미 안면을 튼지라 다들 정답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항상 우러러보기만 했던 고향의 강대에 서자 기분이 새로웠다. “떨지말라고!” 장난스럽게 외치는 장에게 눈을 찡긋한 뒤 낡은 성경을 펼쳤다. 기도문을 읊고 성가대의 노랫소리에 호흡을 가다듬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아멘'
가느다란 선율에 실린 찬송가가 끝나기도 전에 예배당의 문이 열렸다. 눈부신 햇살이 스며들어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이내 예배에 늦은 이들을 향해 불쾌함을 표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억지로 입꼬리를 빙긋이 말아 올려야 했지만.
두 남자가 빛을 등지고 들어왔다. 교회지기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예배당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은은히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 비로소 그들의 모습이 바로 비쳤다. 새까만 머리칼, 검은 정장. 유달리 붉은 입술에 예의 바른 미소를 머금은 채 암녹색 눈동자를 똑바로 들어 나를 쳐다보는,
에단Edan. 에단 달턴.
“아시다시피 달턴 씨께서는 몸이 불편하신지라. 목사님의 첫 예배만큼은 늦지 않고 싶었습니다만……….”
“달턴 씨는 십 년째 지병으로 운신이 힘드십니다. 그래도 예배에는 빠짐없이 참석하려 하시죠."
부목사 에브라함이 빠르게 속삭였다. 하지만 내 귀에는 웅웅거리는 울림으로만 들릴 뿐이었다. 입술이 파삭 말라붙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최대한 의연하게 스스로를 다잡으며 에단에게 의지한 채 서 있는 달턴 씨, 아마도 헨리 Henry 달턴이었을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찬란했던 금빛 머리칼은 마른 지푸라기처럼 푸석해졌고 재 넘어 있는 호수의 물빛처럼 짙푸르던 눈동자는 잿빛 구름으로 뒤덮여 버렸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한 손을 휘휘 저어 의자를 더듬으며 사람들이 비켜 준 자리에 앉으려다 그만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에단은 그런 헨리의 허리를 능숙하게 끌어당겨 그가 완전히 나동그라지지 않도록 지지해 주었다. 나란히 앉은 뒤에도 연신 귓가에 무엇이라 속삭였다. 헨리는 힘없이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 역시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아마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떠날 때 그는 삼십 대 후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지금은 쉰에 가까울 나이. 그는 십 년이라는 세월에 기력 없이 몸을 내던진 사람처럼 늙어 버렸다. 그러나 에단은 십 년 전 그때보다도 더 싱그러운 젊음을 유지한 채 앳된 소년처럼 웃으며 헨리에게 연신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성경을 펼쳤다. 아마도 우리가 읽고 있었을 한 구절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읊어 주었을 것이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마가복음 1장 12절-13절)
“저 두 분은 누굽니까?”
모르는 체 물어보았다.
“저 달턴 저택의 주인이신 헨리 달턴 씨와 에단 달턴 씨입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제발 아니길 바랐던 그 이름이 나온 순간, 나는 또 한 번 ‘신이시여’를 읊조리고 말았다.
십 년 전 사라졌으리라 생각했던 달턴 저택의 악마는 아직도 검은 날개를 드리운 채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에단 달턴.
……나의 주인님.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