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Quo Vadis, Domine
[1]
다음 날부터 남자들은 창녀와 남창들을 이끌고 저택을찾았다. 딸려 온 손님들은 물론 응접실에 들어가지 못했다.남자들은 헨리가 능욕당하는 모습을 보며 물건을 세웠고끝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창녀, 그리고 아마도 남창들을데리고 손님방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는 음탕한 소리가밤새도록 울려 퍼졌다고 했다. 하녀장은 혀를 차며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큰 주인님께서는 이 집안을 매음굴로 만드실 속셈인 게야'라며 속모를 소리를 해댔다.
나는 그날 헨리가 잠에서 깨어나면 에단에게 욕설을 퍼붓고 다시 이 집에서 달아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헨리는 아침 햇살에 눈을 뜬 그 순간부터 순한 양처럼 식당으로 내려가 에단과 식사를 했다. 에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면서 조슈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고기를 써는 헨리의 칼끝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식사를 마친 뒤 에단이 에스코트를 해 주기 위해 헨리의뒤로 다가왔다. 그가 어깨를 짚는 순간 헨리는 헛구역질을하며 눈물을 떨궜다.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다리가 풀려 그만 그 자리에 넘어져 버렸다. 내가 허둥지둥 대야를가져왔지만 이미 늦었다. 헨리는 바닥에 아침 식사를 한 것을 모두 게우고 말았다. 토사물을 내려다보며 헨리는 온몸으로 사과했다. 어금니를 따각따각 부딪치면서 에단 쪽은올려다볼 생각도 못하고 중얼거렸다.
"잘못했어. 에단 미안해 ・・・・・・ 욱......!"욱…………!”
그리고 또 다시 멀건 위액을 뱉었다. '이제 가지가지 하는구나.' 하녀들이 혀를 차면서 달려와 바닥을 치웠다. 에단은 정중한 몸짓으로 헨리를 부축해 세웠다. 그런 뒤 실크손수건으로 입가에 묻은 오물을 닦아 주었다.
"몸이 좋지 않으신가보군요? 무리하실 필요 없습니다.방으로 가죠.”
헨리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두 눈을 꾹 감고 에단의 다음처분을 기다렸다. 그러나 에단은 그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내게 깨끗한 잠옷으로 다시 갈아입혀 드리라고 명령한 뒤 그를 침대에 눕혔다. 젖은 수건으로 이마에, 목덜미에 배어 난 식은땀을 닦아 주었다. 그리고 다정하게 웃으면서 시를 읊어 주었다.
Let not Ambition mock their useful toil,
Their homely joys, and destiny obscure;
Nor Grandeur hear with a disdainful smile
The short and simple annals of the poor.
The boast of heraldry, the pomp of power,
And all that beauty, all the wealth e'er gave,
Awaits alike th'inevitable hour:
The paths of glory lead but to the grave.
야망 있는 자들이여 그들의 쓸모 있는 일을,
그들의 소박한 즐거움, 그리고 보잘것없는 운명을 조롱 마라.
위대한 자들 역시 경멸적인 미소로
가난한 이들의 짧고 단순한 생애를 조롱 마라.
유서 깊은 명문가, 화려한 권력,
그 아름다움과 부가 준 모든 것에는
피할 수 없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 영광의 길은 모두 무덤으로 향할 뿐이다.
- 토마스 그레이,<시골 묘지에서 읊은 만가 Elegy written in a country churchyard> 중
그렇게 낮 동안 에단은 입안의 혀처럼 상냥하게 굴었다.성적인 함의가 담긴 몸짓도 하지 않았다. 시종일관 정중하게 책을 읽어 주고 울고 있는 헨리를 달래 주었다. 그가 순간의 분을 이기지 못해 무언가를 집어 던져도 낯빛을 붉히지 않고 얌전히 주워 오거나 치워 주었다. 헨리는 이러지말라고 애원했다. 헨리에게는 에단의 친절이 오히려 공포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에단은 마치 무슨 말인지 전혀모르는 양 헨리의 이마에 키스하며 그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다 밤이 되면 에단은 헨리의 손에 억지로 돈을 쥐여주고 응접실로 내려 보냈다. 첫 날 헨리는 차마 응접실의문을 열고 들어가질 못했다. 내게 매달려 제발 돌아가게해 달라고 애원했다. 나도 그렇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애석하게도 나는 지시하지 않은 일을 할 수 없었다. 그토록아끼는 헨리에게도 그런 무참한 짓을 하는 에단이거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내겐 어떻겠는가? 나도 헨리도 에단의 앞에서는 그저 포식자 앞의 여린 짐승들일 뿐이었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나리. 말을 들으시는 편이 좋아요. 그렇지 않으면 또 주인님의 노염을 사세요.”
나는 헨리를 위해 그렇게 해야만 했다. 응접실의 문을 열고 억지로 그의 등을 떠밀었다. 헨리는 자신을 탐욕스럽게 훑어보는 남자들의 앞에 무방비로 던져졌다.
“허허 오늘은 좀 끗발이 붙나 봅니다?”
“또 레이습니까? 허, 달턴 씨 과감하시군요?"
“하긴 그런 상황에서도 그렇게 달아오르시는 걸 보면 화끈하신 분이긴 합니다만.”
헨리는 은근한 모욕 속에서 몇 번이나 판을 끝내기 위해 올인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지지 못했다. 늘 지기만 하던 그에게 오늘따라 남자들은 칩을 몰아주었다. 카드를 오픈했다. 세 탑을 쥐고 헨리는 오백 파운드를 벌었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대박'이었지만 헨리는 자신의 앞으로 몰리는 칩들을 바라보며 애달프게 중얼거렸다.
“제발 지게 해 줘. 이 판을 끝내게 해 줘…………” 남자들이 왁자하게 웃었다.
“꼬마, 네 주인께서 목이 마른 모양이다. 어서 술을 따라오지 못해?"
그리고 나를 채근했다. 새 병을 열어 위스키를 가득 따라주었다. 헨리가 잔을 받아 들려 하는데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술잔을 가로챘다. 어안이 벙벙해진 내 앞에서 그는 보란듯이 하얀 가루약을 술에 탔다.
“자, 마시십시오."
“저 무슨 짓이십니까! 주인님께 이런 것을 드릴 수는 없어요!"
나는 헨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에단 달턴 씨의 지시다. 비켜, 꼬맹이.”
하지만 이 말에는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 남자들은 에단의 수하들이었다. 그들도 에단을 두려워했다. 에단의 지시 없이 독단적으로 이런 짓을 할 리 없었다. 헨리는 고개를 저으며 거부하려 했지만 남자들이 에단에게 말을 하겠다고 윽박지르는 바람에 그 술잔을 비워야 했다.
“자 자, 카드를 돌립시다."
헨리의 카드는 굳이 뒤집어 놓지도 않았다. 앞면을 훤히 드러낸 채 던진 패는 로열 스트레이트 플래시 헨리는 일생에 한번 쥐기 힘들 최상의 패를 보며 어금니를 악물고 다시 흐느꼈다. 이들이 지금까지 자신을 우롱해 왔음을 헨리는 이제야 깨달았다.
“어이구, 신의 가호가 함께 하시는가 봅니다. 달턴 씨, 오늘 밤새 달리셔도 되겠습니다?"
“포 카드를 쥐고도 지다니 허허, 내 생에 이런 날이 올 줄은 또 몰랐습니다. 자, 자, 어서 칩을 가져가세요.”
"그런데 어째 얼굴빛이 좋지 않습니까?"
“열이라도 나시는 겁니까, 달턴 씨?”
설움과 흥분감 때문에 헨리는 열병이 든 환자처럼 헐떡거렸다.
"꼬마야, 주인님께서 열이 나시는 모양이다. 옷을 벗겨서 열을 식혀 드려야지.”
“어서. 저러다 달턴 씨 숨 넘어 가겠구나.”
나는 헨리의 옷을 벗기며 수도 없이 용서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나리. 그렇지만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제발 저를 용서해 주세요. 나리, 정말 죄송합니다.' 헨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옷자락이 스치는 감촉에 가는 신음을 흘리기만 했을 뿐이었다. 하얀 나신이 불빛 아래에 드러났다. 전날의 흔적이 여기저기에 얼룩덜룩 남은 채였다. 유두는 곤두서 있었지만 아직 발기하지는 않았다. 헨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허허 달턴 씨, 열이 심하신 줄 알았는데 게임이 잘 풀려 흥분하신 모양입니다?”
"그것 참 보기보다 성욕이 왕성하시군요. 가슴을 발딱세우시고 ・・・ ・・・ . 그런데 앞은 어째 그대로일까요?"
“저는 달턴 씨께서는 앞으로 느끼는 분이 아닌 걸로 압니다만."
“오호라, 그럼 뒤가 젖어 있겠군요?”
“에이 설마. 그래도 명문가의 후계자가 되시는데 남창처럼 뒤를 적시고 계실까요?"
“달턴 씨 돌아서 보시죠? 뒤를 적시지 않았다고 증명해주십시오."
“그러게 말입니다. 달턴 씨도 이런 누명이 불쾌하지 않으십니까?"
누군가 헨리의 팔을 잡았다. 헨리는 미약하게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곧 테이블에 상체를 의지한 채 엉덩이를 드러내고 말았다. 남자들이 뒤로 몰려왔다. 엉덩이를 양쪽으로 벌리고 빨간 구멍을 들여다보며 잘 보이지 않는다고 저희끼리 시시덕거렸다. 누군가가 그 위로 향유를 들이부었다.
'역시 젖었군요. '어쩌다 이런 음탕한 몸이 되셨을까?' 그렇게 낄낄거리면서도 더 이상의 행위는 하지 못했다. 한명이 손가락을 들이대려 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이 말렸다. 그들이 ‘그만둬, 에단에게 죽을 셈이야?'라고 쑥덕거리는 것을 듣고 나서야 나는 그들이 헨리를 놀리기는 해도 범하지는 못하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헨리를 다시 의자에 앉혔다. 달뜬 숨을 허덕거렸다. 허벅지를 억지로 벌리게 했다. ‘하던 것이나 마저 합시다’라면서 헨리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헨리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느라 그들이 카드를 준 줄도 알지 못했다. 남자들은 카드 끝으로 헨리의 유두를 툭툭 튕겨 댔다. 그제야 헨리가 소스라치게 놀라 카드를 받으려 했지만 헨리가 손을 뻗을 때마다 약 올리듯 뺏어가며 그의 유두와 성기만을 건드려 댔다.
“제발 그냥 주………… 싫어…………. 흣, 흐읏…………!”
한 놈은 한술 더 떠 카드 모서리로 헨리의 요도를 쿡쿡쑤셨다. 헨리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허리를 뒤틀면서 그만하라고 빌었다. 그렇다고 그만둘 남자들이 아니었지만.
“역시 달턴 씨는 이 카드가 좋긴 한 모양입니다. 카드만갖다 대도 이렇게 서는군요?"
“히익, 안 돼, 싫어, 아, 하지 마, 으응, 에단, 에단!”
남자들은 헉헉 숨을 몰아쉬어 대며 또 다시 자신의 바지위를 주물럭거렸다. 세 남자에게 둘러싸인 채 헨리는 자신을 파묻는 뜨거운 숨소리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앤디, 에단을 불러와, 제발! 에단을 데려와줘! 흐윽, 아아, 앗・・・・・…!"
“어이쿠, 이거 카드가 더러워졌습니다?"
“이렇게 좋아하실 줄은・・・・・・ 큿, 하 진짜 참기 힘들구먼.”
“제 형을 범하겠다기에 역시 미친놈이구나 싶었지만 이런 몸뚱이라면야 에단 그놈의 심사도 이해가 가는군.”
“싫증이 나면 버리지 않을까?”
“글쎄. 우리에게 돌려나 주고 죽였으면 좋겠는데.”
허둥지둥 응접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닫히는 문틈으로남자들이 내 눈치를 봐 가며 헨리의 몸에 손을 뻗는 것이보였다. 그들은 내가 에단에게 일러바치는 것이 두려워 헨리를 마음껏 주무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다녀오는 동안 무슨 일이 있을지 몰랐다. 온 힘을 다해 달렸다.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무슨 일이지?"
에단은 외알 안경을 벗지도 않고 물었다.
“지, 지금 빨리 응접실로 가셔야 하 할 것 같습니다. 주인님!"
“돈을 빌려오라고 하더냐?”
수표책을 꺼냈다. 의뭉을 떨고 있는 그가 야속해 하마터면 울음이 터질 뻔했다.
“아닙니다, 큰 주인님께서는 지금 애타게 주인님을 부르고 계십니다. 빨리 가 주십시오. 지금………… 막.…….”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에단은 깃펜을 들어 앞에 있던 서류들에 사인만 해댈 뿐이었다. 나는 그만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맞비볐다. '주인님, 제발 서둘러 주세요. 그 자들이 큰 주인님께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큰 주인님께서 주인님만을 찾고 있어요. 주인님만 큰 주인님을 구해 주실 수 있으세요.’ 나도 헨리도, 이 파국을 에단이 이끌고 온 것임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둘 다, 에단이 헨리를 '구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왜였을까? 에단이 심어 놓은 어떤 씨앗이 우리의 머릿속에 싹을 틔운 탓일까? 에단은 마지막 서류에까지 사인을 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무슨 짓이냐. 일어서.”
나는 그때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꼴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코를 훌쩍거리며 에단을 따라 나갔다. 그의 걸음이 유달리도 느렸다. 응접실까지 거리가 이토록 아득한지 그날 처음 알았다.
"히익, 힉, 힉, 윽・・・ ・・・ ! 히익 ・・・・・・”
헨리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의자에 앉은 채로 혼자 허리를 들썩거렸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발딱 선 성기가 위아래로 꺼덕거렸다. 앞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이미 몇 번 사정을 한 것 같았다.
“형님, 이게 무슨 꼴입니까? 비록 형님의 실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하나 아무 데서나 옷을 벗고 물건을 세우면 안 되지요.”
"에단, 에다안………….”
나는 헨리가 그에게 저주를 퍼부을 줄 알았다. 그러나 헨리는.
“에단, 왜 이제야 왔느냐. 윽…………. 에단. 날 만져 줘…제발 네가 해 다오. 저자들에게 날 맡기지 마. 에단…………!”
그 순간 나는 보았다. 에단의 암녹색 눈동자에 환희가 넘쳐흐르는 것을. 헨리는 너무나 빠르게 무너졌다. 첨예한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몸을 가누고 있던 그는 그만 일순간 몰아친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거꾸러져 추락해 버렸다.
신의 은총이 닿지 않는 지옥의 골짜기로.
[2]
헨리는 더 이상 한나에게 시를 읊어 주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오는 발코니에 앉아 한 손에는 반쯤 연 펜던트를 들고 저 멀리로 뎅그렁거리는 교회 종만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점심 식사를 가져다주면 꾸역꾸역 그릇을 비웠다. 티타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먹다 한계에 달하면 구토를 하고 에단에게 이르지 말라며 내게 빌었다. 그 오만하던 남자가 두 손을 모아 내게 빌었다.
이따금 찻잔을 집어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찻잔은 힘없는 포물선을 그리다 몇 걸음 가지도 않은 곳에 툭 떨어졌다. 나도 헨리도 그 어이없는 낙하를 앞에 두고 침묵했다.
매달 조슈아에게 엽서가 왔다. 내용이 중간중간 끊겨 있는 것을 보아 헨리에게 전달되는 것은 극히 일부뿐인 것 같았다. 헨리는 그래도 불만을 표할 수 없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조슈아의 소식을 듣는 것조차 막힐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헨리는 엽서를 받을 때마다 악력이 형편없어진 손으로 펜을 쥐고 사각사각 답장을 썼다. 그리고 그것을 밀랍으로 단단히 봉해 내게 주었다.
“조슈아에게 반드시 전해 줘."
나는 그것을 저택에 들르는 우편배달부에게 은화와 함께 찔러 넣었다. 에단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는 한 달에 한 번뿐인 부자 간의 소통까지 틀어막지는 않았다.
“너무 파랗구나."
헨리는 앉아 있을 기운도 없었는지 발코니 테이블에 비스듬히 엎드려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파란 밀밭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너무 파래.”
손에 들고 있던 펜던트를 꾹 움켜쥐었다. 웃고 있던 한나의 얼굴이 정교하게 세공된 뚜껑에 덮여 버렸다.
“곧 가을이 올 겁니다, 나리. 그럼 황금빛으로 물들 거예요."
“앤디, 저 곳에 해바라기를 심어다오.”
“네?”
헨리는 다시 펜던트 뚜껑을 열고 한나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백금발이 길게 늘어져 얼굴을 가리는 바람에 그의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약하게 어깨를 떠는 것을 보아 또 흐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가을에 씨를 구해 보겠습니다.”
빈말이었다. 헨리도 내 목소리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고맙다는 대꾸도 없이 한나의 이름만을 되뇌었겠지. 나는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이다돌아섰다. 그러다 헨리의 방문 앞에 서서 이쪽을 보고 있는에단과 마주쳤다. 심장이 뱃속까지 내려앉는 것 같았다. 헨리를 부르려 했지만 에단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며칠 뒤 에단은 펜던트 속 한나의 모습을 큼직하게 확대하여 그린 초상화를 하나 가져왔다. 헨리는 자신의 방 벽한 면을 채운 그녀의 얼굴에 황홀해했다. '고마워, 에단.'조심스럽게 감사를 표했다. 에단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헨리는 한나절 동안 행복했을 것이다. 그날 밤 에단이한나가 지켜보는 그 아래에서 헨리를 범할 때까지는 말이다.
에단은 싫다고 울부짖는 헨리의 머리채를 잡고 한나의초상화 앞에 대면시킨 뒤 그의 뒤를 무참하게 꿰뚫으며 헨리가 한나의 얼굴을 향해 음탕한 소리를 지르도록 만들었다. 헨리는 목소리가 쉬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절규했다.그리고 한나의 얼굴에 몇 번이나 사정해야 했다. 순하디순한 한나의 눈에서 하얀 액체가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이 심판자의 그것처럼 두려운 존재가 되었을 때, 헨리는 에단의 품으로 파고들며 제발 저것을 치워 달라고 애원했다. 에단은 그의 뜻대로 해 주었다.발코니 아래에서 한나의 초상이 불타는 것을 보며 헨리는 펜던트를 뒤로 삼켜야 했다. 그 뒤로 펜던트는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헨리가 발코니에 나가는 일도 없었다. 항상 열어 두었던 창문에는 커튼을 치고 어두컴컴한 방에서 항상 두려움에 떨었다.
“내 전부터 이리될 줄 알고 있었어. 술이라는 것이 사람의 정신을 좀먹는 법이거든. 드디어 미친 거야. 요양원에라도 보내야지, 저러다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른다니까?”
끔찍한 말을 하면서 하녀장의 목소리는 즐거운 기색까지 띠고 있었다.
“불쌍하신 분이에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참다못해 한마디 하고 말았다. 하녀장은 더없이 측은해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혀를 찼다.
“앤디, 이 착해 빠진 것.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그분을 동정하는구나. 하지만 조심하거라. 큰 주인님은 겉모습은 천사 같으셔도, 하긴 지금은 천사 같지도 않다만, 그래도 속은 시커먼 악마 같은 분이야. 큰 마님의 몸을 망가트렸고 착하디착한 작은 주인님의 인생을 짓밟았지. 아아, 작은 주인님께서는 빨리 이 집을 나가 좋은 아내를 얻어 행복하게 사셔야 할 텐데. 어째서 다들 이렇게 물러 터졌을까?"
나는 그만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하녀장은 그것을 그간의 설움이 폭발한 것이라고 여겼는지 내등까지 도닥이며 위로해 주었다.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벌거벗고 풍랑 속을 헤매는 것이 더 나은 일인 줄 알았다면 나는 에단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일을 그만둔다 하더라도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된 나를 에단이 곱게 보내 줄 리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헨리가 걱정되었다. 내가 있다고 한들 그의 처지가 더 나아질 리 없건마는 얄팍한 양심이 나를 붙잡았다. 사실 포기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폭풍이 몰아치던 날 죽었고 이곳은 신을 모독했던 나에 대한 단죄의 지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3]
도박 친구들은 매일 같이 저택을 찾아왔다.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그들은 음탕한 장난감을 가져와 헨리를 희롱하기도 했다. 그리고 종국에는 형식적으로 하던 카드놀이까지 제쳐둔 채 응접실에 들어온 헨리를 남창처럼 놀려 먹으며 즐거워했다. 헨리는 그들의 우악스런 손에 시달리면서애타게 에단을 불렀다. 에단은 항상 한 박자 정도 늦게 찾아와 헨리를 구해 주었다.
이 광란의 연회가 수도 없이 이어지던 어느 날, 그들이달걀만 한 구슬을 꿰어 놓은 모양의 이상한 장난감을 가져왔다. 끝에는 작은 태엽과 끈이 달려 있었는데 끈을 죽 당기면 구슬을 묶은 부분이 진동하는 그런 모양새였다. 헨리는 내 바지를 잡고 늘어졌다. '앤디, 도와줘, 저런 걸 넣고싶지 않아!’ 나는 그날도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밖에 해 줄수가 없었다. 헨리는 테이블을 짚고 선 채로 구슬에 달린달걀 같은 것들을 세 개나 뒤에 넣어야 했다.
남자들은 그것을 넣은 채로 헨리를 의자에 앉혔다. 다리를 벌리게 하고 에단의 낙인을 쿡쿡 찔러 가며 확인시켜 준뒤 태엽을 당겼다. 나는 헨리가 발작을 하는 줄 알았다.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아랫도리를 펄떡거렸기 때문이었다. 부축하려 하였으나 남자 하나가 나를 막았다. 진동이끝나자 또다시 태엽을 당겼다.
“에단! 에단! 에단!"
그들은 그가 절정에 이르며 아우의 이름을 부른다고 놀려 댔다. 나는 에단을 부르러 가기 위해 허둥거렸지만 다른남자에게 붙잡혀 그럴 수가 없었다. ‘좀 두고 봐 봐. 네 주인도 저렇게 좋아하잖느냐?'남자들은 건장한 팔뚝으로내 목을 콱 조인 채 헨리가 하는 양을 지켜보게 했다. 몇 번이나 태엽을 당겼다. 견디다 못해 구슬이 삐져나오면 다시쑤셔 넣었다. 헨리는 에단만을 애타게 부르다 거품을 물고눈을 까뒤집었다. 그제야 남자들이 나를 놓아주었다.
에단은 진동하는 구슬을 내놓으면서 꿈틀꿈틀 발작하는헨리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장난이 지나치셨군요.”
남자들이 파랗게 질렸다. 에단은 조용히 문을 가리켰다. 남자들이 앞다투어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줄을 잡아당기자 헨리는 다시 바닥을 바득바득 긁으며 기어서 달아나려 했다.
“헨리, 접니다. 에단이요."
그러나 이 음성에 발악을 멈추고 그 자리에 푹 고꾸라져버렸다. 해진 입구로 구슬을 힘겹게 뱉었다. 헨리는 눈물과 콧물, 그리고 침으로 엉망이 된 채 에단을 원망했다. 아니, 그것을 원망이라고 해도 좋을까? 흡사 어린아이가 앙탈을 부리듯 에단의 가슴팍을 부여잡고 왜 빨리 와서 자신을 구해 주지 않았냐고 소리 지르다 그의 품에 그만 얼굴을 묻고 마는 것을. 나는 순간적으로 그들이 마치 결백한 연인같다는 착각을 느꼈다. 에단이 다음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미안합니다, 헨리. 밀린 일이 있어서요. 많이 힘들었죠? 그래도 그런 자들의 앞에서 이렇게 세우는 것은 불쾌하네요. 싫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느꼈잖아요. 어땠습니까? 제가 해 드리는 것보다 저 물건이 더 마음에 들었나요? 솔직하게 대답하세요. 밤새 즐기게 해 드릴 수도 있으니까요.”
헨리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정신없이 에단의 뺨을 잡고 제 쪽으로 끌어당기더니 입을 맞췄다. 음탕한 창부처럼 헐떡거리면서 에단의 입술을 벌리고 혀를 얽었다. 에단은 헨리가 하는 대로 가만히 그의 키스를 받았다.
“에단, 그러지 마. 네 걸 줘. 난 네 것이 좋아, 저런 끔찍한 것을 넣는다는 말 하지 마, 에단."
헨리는 필사적이었다. 에단의 바지를 내리고 그의 것을 게걸스럽게 핥았다.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 에단의 눈치를 살폈다. 에단은 좋다는 말 대신 헨리의 머리를 사타구니에꾹 짓누르기만 했다. 목구멍이 막혀 숨을 쉬기 힘들 때마다 도드라진 날개 뼈가 경련했다. 여느 때 같으면 에단의 것을뱉으려 애를 쓰던 헨리였지만 이날은 구역질마저도 참고헌신적으로 구음했다.
“에단, 에단의 것이 좋아. 넣고 싶어. 넣어도 돼? 응? 에단."
적당히 섰다고 생각했는지 에단의 무릎 위로 타고 올라갔다. 괴상한 도구 때문에 한껏 벌어져 아직도 닫히지 않은입구에 에단의 것을 맞췄다. 근육이 풀려 경련하는 얼굴로그는 웃었다. 마치 정말로 이 행위를 바라마지 않아 온 것처럼 행복하게 웃었다. 허리를 내렸다. 아팠을 것이다. 비명을 지르다가도 그 끝에는 ‘좋아’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고통 때문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헨리는 좋다고 말했다.
"좋아 에단, 악, 더 깊이 넣어 줘! 악, 더 세게! 좋아, 너무좋아!"
“후. 헨리. 갈수록 음란해지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애타게 조이는 걸 보니 온종일 기대해 온 것 같군요?”
“응, 에단. 하루 종일 너만 생각했어. 네 것을 받고 싶어서, 훗!"
“제게 그런 짓을 한 징벌을 받고 있다는 자각이 없군요.죄의 대가를 이렇게 즐겨도 되는 겁니까?”
“으흑, 윽, 하지만 에단."
헨리는 고양이처럼 에단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날 이렇게 만든 건 너잖아………….”
헨리는 그날 에단에게 완전히 굴복하고 말았다. 내가 저택에 온 지 사 년 만의 일이었다.
[4]
에단은 더 이상 도박 친구들을 부르게 하지 않았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모두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헨리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식사를 하고 책을 읽다 갑자기 성욕에 미친 사람처럼 자위를 했다. 손가락으로 뒤를 쑤시다 손에 잡히는 것이라면 아무것이나 그곳에 집어넣고에단의 이름만을 불렀다. 그럴 때면 나는 에단에게 달려가 헨리의 상태를 알려야 했다. 에단은 기꺼이 헨리의 몸을 취하였다. 물론 헨리가 늘 미쳐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정상적인 상태일 때에도 헨리는 방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그만 보아도 경멸의 빛을 감추지 않는 아랫것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린 시절부터 겪어 온 일이면서도 헨리는 그들의 그런 눈을 볼 때마다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내가 그럴 생각이 없었다고 말해도 그들은 믿어 주지않아. 그들은 나를 사탄이 들린 마귀라고 생각하지. 아아,그들의 말이 맞았어. 나는 내 어머니의 몸을 망가트렸고 에단과 한나의 인생을 짓밟았어. 한나, 불쌍한 한나. 나만 아니었다면 사랑하는 에단과 조슈아를 낳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갖고 싶었던 모든 것을 놓아도 그녀만은갖고 싶어서 그런 끔찍한 과오를 저지르고 말았어. 그래서는 안됐는데. 이 모든 것은 그 대가야. 나는 이런 것들을 즐겨선 안 돼. 그런데 몸이…………. 이 빌어먹을 몸뚱이가 자꾸 쾌락에 찌들어. 아아……….”
그는 이미 조슈아가 에단의 아이임을 알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앤디, 한나의 얼굴이 떠오르질 않아. 그녀는 어떻게 생겼었지?"
“붉은 머리에 미소가 참으로 아름다운 분이셨습니다, 나리.”
“붉은 머리………. 맞아. 햇빛을 받으면 잘 익은 곡식과 같은 빛깔을 하고 있었어. 그런데 얼굴은 어땠더라? 기억이 나지 않아."
조슈아에게 엽서가 도착했다. 헨리는 ‘앞으로는 엽서를 보내지 말고 공부에 매진해라'라고 짤막하게 답장을 휘갈겨 보냈다.
"조가 다시는 이 저택에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나리. 사랑하는 아드님이잖아요?”
“이 저택은 들어온 사람들 모두를 비참하게 만들지. 조도 이곳에 있을 때에는 건강이 좋지 않았잖느냐? 런던은 좋은 곳이다, 앤디. 조슈아는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친구라고 소개해 준 사람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집안의 자제들이더구나. 내가 만약 죽으면 너는 그곳으로 가거라. 조슈아에게 추천장을 써 두겠다."
“그런 말씀 마세요, 나리.”
“아, 앤디. 한나의 얼굴이 떠올랐어. 저 앞에 어른거리는 구나. 검은 머리가 참으로 아름답지 않느냐?"
"나리?"
“밤물결처럼 새까만 머리에 에메랄드 같은 눈동자로구나. 한나. 시를 읊어 줘야 하는데 생각나는 시가 없네. 미안해, 한나."
헨리는 며칠 동안 심한 열병을 앓았다. 혼곤함 속에서 그는 처음에는 한나를 부르다 점점 그녀의 이름마저 혼동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에단만을 입술에 올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헨리는 더 이상 한나를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헨리의 머릿속에서 다 타 버린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초상화가 그랬듯이.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