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 세계의 끝 (9/12)

9. 세계의 끝

[1]

그날도 여느 때와 같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헨리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와 에단이 올때까지 몸을 달궜다. 한창 자위를 하고 있을 무렵 에단이 들어왔다. 헨리는 질척거리는 아랫도리를 이끌고 에단의 앞에 쪼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그의 목에 매달려 키스했다.에단은 헨리의 여윈 몸을 끌어안고 향유로 축축하게 적셔둔 그의 안에 손가락을 넣어 만져 주었다. 헨리는 에단을눕힌 뒤 그의 위에 올라타 스스로 허리를 놀렸다. 커튼 틈으로 어스름히 스며든 달빛이 그의 창백한 속살을 비쳤다.땀에 젖어 눈을 찌르는 금발을 연신 뒤로 넘기면서 헨리는에단의 가슴팍을 간신히 의지한 채 능숙하게 몸을 들썩거렸다. 음탕한 숨소리가 방 안을 스멀스멀 채워 나갔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헨리가 자신의 수중에 떨어졌을때에는 그토록 기쁜 표정을 지었던 에단이 정작 헨리가 자신만을 갈구하고 그를 위해 필사적으로 봉사하기 시작하자 그리 기쁜 내색을 비치지 않는 것이 말이었다. 물론 그가 헨리에게 흥미가 식은 것 같지는 않았다. 에단은 여전히 헨리의 몸을 맹렬히 탐했고 헨리에게 작은 이상이라도 생기면 평정심을 잃었다.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수치스러운 꼴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괴롭힘이 멈춘 것도 아니었다. 며칠에 한 번 꼴로 에단은 헨리의 팔과 다리를 결박한 뒤 약을 탄 술을 먹였다. 자위를 하지도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헨리에게 사정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면서 뒤에 도구들을 넣고 흔들었다. 헨리는 어떻게든 에단의 요구를 들어주려 했지만 결국은 항상 먼저 사정을 하고 말았다.

에단은 화를 내지는 않았다. 대신 미안하다고 하는 헨리를 향해 가볍게 웃으며 벌을 주었다. 운이 좋으면 가죽끈따위로 성기 끝이 묶이는 정도에서 그쳤지만, 어떤 날은 바늘같이 뾰족하게 깎아 놓은 나뭇조각을 요도에 넣어 고통을 주었다. 에단이 하는 일은 이제 무엇이든 따르는 헨리였지만 그것만큼은 참기 힘들었던 것 같았다. 헨리는 에단이그 나뭇조각을 꺼내 오기만 하면 필사적으로 매달려 애교같지 않은 애교를 부렸다.

생각해 보면 헨리는 항상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애원했고 에단은 그런 그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헨리는그 끔찍한 것으로 앞이 막힌 채 에단의 위에서 허리를 놀려야 했다. 생리적으로 눈물과 콧물이 흘러나와 온 얼굴을 적셨다. 헨리는 목 놓아 울부짖으면서도 한 번도 에단을 원망하지 않았다. 에단의 뺨을 쓸고 그의 이마와 코와 입술에 키스하면서 눈물이 없는 남자에게 눈물을 나눠 주었을 뿐이었다. 에단은 헨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들을 그에게서 내몰아 버린 뒤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비로소 헨리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말은 오가지 않았으나 헨리는 온몸으로그에게 사랑을 표했다.

하지만 에단은 사랑한다는 말도, 행동도 그 무엇도 헨리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그의 몸을 격정적으로 탐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헨리가 이 모든 것이 에단의 복수라고, 그렇게 알아주길 바란 것일까. 나는 에단의 그런 태도에 불만은커녕 의문 한번표하지 않는 헨리가 안쓰러웠다. 그때는 헨리가 '에단에게저지른 잘못’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감히 요구를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헨리는 요구를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정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생애 단 한 번도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받아 본 경험이 없었으니 말이다.

정사가 끝나고 난 뒤 에단은 지쳐 잠든 헨리의 금발을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그때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는알지 못한다. 그저 커튼 틈으로 가늘게 비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을 지켜보았을 뿐.

“앤디,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다고 했지?”

"네, 주인님."

“부모의 얼굴이 기억나나?"

“어렴풋이 기억은 납니다.”

“어떤 모습이지?"

“아버지께서 대장간에서 일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너른 등을 가진 건장한 분이셨지요. 모루 위에 쇠망치를 두드릴 때마다 신이 나서 창문에 매달려 구경을 하였답니다. 어머니는 자기 전 제 이마에 키스해 주시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평소에는 억세고 무서우신 분이었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제가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습이라기보다 장면이군

“그렇지요.”

“그럼 앤디, 네 인생에 가장 잊지 못할 장면은 무엇이지?"

뜻밖의 질문에 나는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가늠하려 하였다.

“솔직히 답해."

그러나 뒤이은 에단의 말에 그만 반사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그것이야 제 모든 것을 잃은 그날이지요. 집에 불이 나 모든 것이 타오르던 날 말입니다, 주인님. 정확하게는 모르나 새빨간 불꽃이 모든 것을 삼키고 새까만 밤하늘을 향해 일렁이고 있던 모습은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에단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기도 했다. 무엇이 되었건 내 대답에 만족한 것 같아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헨리는 이따금씩 잠꼬대를 했다. '에단, 가지 마.’ 에단은 헨리의 손을 꼭 쥐어 주었다. 헨리는 그제야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평화로워 보이는 밤이었다. 그때의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에단이 아주 조금만 더 평범하게 헨리를 안아준다면 모두가 행복해질 텐데’와 같은 소박한 희망만을 품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에단은 아침 일찍부터 나를 찾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그에게 달려갔을 때 에단이 어쩐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앤디, 헨리를 준비시켜. 호수에 가자.”

[2]

갑작스런 소풍이었지만 나는 귀찮다기보다 신이 났다. 옷장을 뒤져 가장 세련되고 아름다운 옷을 꺼내 와 헨리에게 입혀 주었다. 섭식을 제대로 하지 못해 야윈 데다 밤마다 에단에게 괴롭힘을 당해 헨리는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갔으나, 여전히 빛바래지 않은 고귀한 아름다움 같은 것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단추를 꼼꼼하게 채운 뒤 그의 황금빛머리칼을 깔끔하게 빗겨 짙은 밤하늘색 같은 끈으로 느슨하게 묶었다. 향유를 발라 잔머리를 꼼꼼히 넘긴 뒤 챙 넓은 모자를 씌워 주었다.

“오늘 정말 근사하세요, 나리.”

헨리는 전신 거울 앞에 서서 한 바퀴 빙그르 돌아본 뒤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그가 이런 표정을 지으리라고는 한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어 나는 그만 소리 내어 웃어 버리고 말았다. 헨리가 입을 비쭉 내밀었다. 그래도 촛대 따위를 집어 던지지는 않았다. 나는 그것이 고마워 냉큼 사과하였다.

“죄송합니다, 나리. 너무 기분이 좋아 실례를 범하고 말았어요.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분명 즐거운 소풍이 될 겁니다.”

저택 마당에는 이미 에단이 옷을 차려입고 내려와 있었다. 헨리를 에스코트하여 마차에 태워 주었다. 뒤이어 에단이 마차에 올랐다. 나도 그들을 따라 올라가 마차 문을 닫았다. 주먹코는 힘차게 말을 몰았다. 덜컹거리는 고갯길을 넘어 호수에 당도했다.

대단한 일은 없었다. 둘은 도시락을 먹고 호숫가에 앉아 한참 동안이나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헨리가 웃었다. 어린아이처럼 맑게 웃었다.

“오늘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헨리는 에단의 어깨에 기댄 채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에단은 그런 헨리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쌌다.

"행복해"

헨리가 마지막으로 행복을 입에 올렸던 것이 언제였을까. 그는 참으로 어색하게 이 단어를 말하고 에단의 품에 얼굴을 감췄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아아, 이제야 헨리가 그가 행한 모든 죄의 대가를 치렀구나. 그래서 신이 그의 죄를 사하고 이제 앞날에 무궁한 행복을 안겨 주려 하시는구나.

돌아오는 길, 지쳐 잠든 헨리를 에단은 오래도록 품고 있었다. 저택에 당도할 때까지 쭉.

[3]

그 옛날 훔쳐봤던 에단의 일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랑만큼이나 변덕스런 감정이 또 있을까. 사랑은 변한다. 그러나 죄의식만은 뼛속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는다. 카인에게 새겨진 낙인처럼.

에단은 사랑을 믿지 않았다. 감히 추측컨대, 그것은 그의 출생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닌가 한다. 모든 고용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헨리의 어머니, 달턴 부인은 남편 제임스 달턴과 지극히도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였다고. 그런 그녀도 몸이 망가지자 남편이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했다. 그리고 제임스 달턴은 그녀가 추천한 여자를 겁간하고 첩으로 삼아 아이를 낳게 만들었다. 이것이 사랑하는 부부의 모습인가? 적어도 헨리가 태어난 직후 그들의 사랑은 깨졌다. 신의 앞에서 영원할 것이라고 맹약했던 그 불길 같은 사랑은 빠르게도 꺼져 잿더미만이 남아 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릴리는 잊지 못했다. 에단을 보면서 죄책감에 가슴을 부여잡으며 그녀에게 저지른 자신들의 죄악을 되새기고 또 되새겨야 했다. 에단은 그들이 자신을 바라볼 때 그 위에 릴리의 모습을 덧씌워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대신 공포와 죄책감, 그것에 얽힌 모든 악몽 같은 기억들을 신봉했다.

헨리는 기분 좋게 저녁 식사를 마쳤다. 몸을 씻기 위해 먼저 방으로 올라왔다. 막 욕실로 향하는데 에단이 뒤따라 들어왔다. 에단은 침대 옆에 겉옷을 벗어 둔 뒤 헨리를 데리고 욕실에 데려가 함께 몸을 씻었다. 욕실 안에서 간간히 헨리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간지러워, 에단!' 나는 그 악마 같은 남자가 헨리를 간지럽히며 장난치는 모습을 떠올리며 그만 오싹 몸을 떨고 말았다. 웃어야 할 부분에서 공포를 느끼고 말다니. 앞으로 몇 번 더 보게 되면 익숙해질까? 물기를 닦을 수건과 실크 가운을 준비했다. 헨리는 욕실 안의 훈기 때문에 빨갛게 익은 얼굴로 나왔다.

에단은 가운을 걸칠 새도 없이 헨리를 번뜩 안아 올렸다. 헨리는 물론이거니와 나마저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침대까지 그를 안아서 데려간 에단은 물기가 가시지 않은 헨리의 이마에, 양 볼에 다정하게 입을 맞추며 그의 위로 올라갔다. 달콤한 애무, 부드러운 섹스. 그랬다. 그들이 했던 수많은 행위 중, 섹스라고 이름 붙일 만한 행위는 그날 밤의 그것뿐이었다. 헨리는 처음으로 아픔의 눈물 대신 쾌락에 달뜬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에단을 받아들였다. 에단은 쉴 새 없이 그의 몸 구석구석에 입술 자국을 남겼다. 헨리는 두 번 모두 절정을 느끼면서 사정했다. 에단도 함께였다.

그날 에단은 내 손에 뒤처리를 맡기지도 않았다. 자신이 손수 물을 적셔 와 헨리의 아랫도리를 닦아 주었다. 그리고 침대에 올라가 헨리를 품에 안은 채 함께 누웠다. 나는 에단이 명령하기 전까지는 방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상황이 참으로 난감했다. 그래도 헨리를 위해 말을 거는 대신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잠시 졸았다. 그 와중에도 귀만은 뜨여 있었다. 헨리가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용케도 들었다.

“에단, 오늘은 참 이상하구나."

“무엇이 이상합니까, 헨리?”

“다정해.”

“그런가요?”

헨리는 또 다시 가볍게 웃었다.

“에단, 나는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 중 오늘이 가장 행복했다."

"별말씀을요."

"아니, 정말이야. 잠이 들기가 싫구나. 오늘이 가는 것이 두려워."

둘은 잠시 대화가 없었다.

"에단."

“네?”

“에단…………”

나는 그제야 눈을 비비면서 고개를 들었다. 헨리가 스르르 일어나 앉았다. 에단도 그를 따라 일어났다. 둘이 마주보고 있었다.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무릎으로 꾹 누르고 숨을 죽였다.

“나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서 참아 왔지만, 에단. 오늘이 가기 전에 꼭 이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은 꿈결같은 날이니까. 자고 일어나면 깰 꿈이라 할지라도 나는 이 말을 해야겠어. 그래도 될까, 에단?”

“기꺼이요.”

하얀 팔이 에단의 몸을 휘감아 안았다. 헨리는 억누른 목소리로, 그러나 가슴속에 맺혔던 무언가를 터트리듯 외쳤다.

"사랑해."

에단은 잠시 그 자리에 굳었다. 그는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헨리를 바라보았다. 정적이 흘렀다. 헨리는 긴장해서인지 힘겹게 숨을 몰아쉬다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니, 사실은 얼마 흐르지않았는지도 모른다. 에단이 두 손으로 헨리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헨리가 고개를 들었다. 나도 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헨리, 아아, 헨리. 다시 한 번 그 말을 해줘요."

“에?”

“제발 다시 한 번. 제게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헨리.”

헨리는 잔뜩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래도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사랑해, 에단.”

“한 번만 더요.”

“사랑해.”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헨리의 목소리가 점차 들떴다.

“응. 에단. 사랑해.”

에단은 헨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아, 길게 탄식하면서그의 머리칼을 더듬고 뺨을 맞비볐다.

"헨리, 아아, 헨리. 이제야 제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군요. 제가 그 말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아십니까?”

“나, 나는 네가 불쾌해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헨리, 오늘 당신이 제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는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저는, 저는 당신의 입술에서 그 말을 듣기 위해 그 많은 시간을…………. 헨리, 다시 한 번 말해 줘요.당신의 목소리로, 당신의 입술로.”

"사랑해."

에단은 그 사랑스러운 말을 한 헨리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둘은 오래도록 키스를 했다. 나는 알 수 없는 감격에 사로잡혀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되도록 그들이 나를 의식하지 않았으면 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헨리는 질릴 때까지 그 단어를 에단에게 속삭여 주어야 했다. 에단은 마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그의 말을 채근하면서도,

이상하게도 그의 입으로는 사랑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내뱉지 않았다.

***

졸렸다. 나는 웅크린 채 다시 한잠을 잤다.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커튼을 여는 소리에 문득 잠이 깼다. 고개를 들었다. 어슴푸레한 새벽하늘을 등지고 언제 옷을 챙겨 입은 것인지 에단이 그 자리에 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러야 하나? 그러나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에?”

빛 때문이었을까. 헨리도 곧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아침은 아니지? 왜 벌써 깬 거야?"

에단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천천히 돌아섰다.

“…………에단?”

헨리의 목소리에 불안한 기색이 서리기 시작해서야 비로소 나는 에단이 무언가를 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에단, 뭘 하는 거야. 왜 그런 걸 가지고 있는 거지? 에단?"

총이었다.

“아………. 나, 날 죽이려고 하는 거야?”

총구가 헨리를 겨누고 있었다.

“......괜찮아, 에단 쏴, 나는 너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어. 어차피 죽었어야 할 목숨, 네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해 죽을게.”

헨리는 담담했다.

“헨리.”

그제야 에단이 잠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응, 에단.”

“다시 한 번 말해 주세요."

“………사랑해.”

에단은 웃었다. 배를 잡고 웃었다.

“아…………. 헨리. 사랑하는 헨리."

그리고 이제야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오늘을 기억하세요. 영원히 잊지 말아요. 전에 말했죠? 당신은 제 허락 없이는 죽어서도, 다쳐서도 안 됩니다. 헨리, 되도록, 할 수 있는 한 오래도록 저만을 품고 살아가세요. 사랑하는 헨리. 내 사랑. 저는 말입니다."

헨리를 향했던 총구가 아주 천천히 에단의 관자놀이로 옮겨 갔다.

“당신이 사랑하기 때문에 죽는 겁니다."

헨리가 다급히 일어났다. 그를 막기 위해 손을 뻗었다.

“당신이 사랑하니까.” 그러나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에단은 “바로 당신 때문에.” 빨랐다.

-탕.

외마디 총성이 울렸다. 에단은 그 자리에 끈 떨어진 마리오네트처럼 허물어졌다. 나 역시 황급히 가려 했지만 다리가 풀려 네 발로 기듯 헨리에게 달려갔다. 헨리는 온몸에에단의 피를 뒤집어쓴 채, 파란 눈동자를 부릅뜨고 에단의시체를 끌어안았다. 벌어진 입에서 아무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핏물로 젖은 검은 머리칼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아아아아아아아아!"

참으로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에단을 흔들며, 에단에게입을 맞추며, 에단의 성기를 만지며, 반응 없는 그의 모습에 절망하며, 정신이 끊어질 때까지. 정신이 들면 다시 정신을 놓을 때까지 끊임없이, 계속.

·절규했다.

주여 깨어나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어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시옵소서.

(시편 44장 23절)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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