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15)

4.

침대에 웅크린 태주는 몸을 덜덜 떨었다. 입술은 터져서 피딱지가 크게 앉아 있었고, 뺨은 푸르죽죽했으며, 한쪽 눈가에는 보랏빛 멍이 들었다. 그와 비슷한 것이 온몸에 빼곡했다.

도망쳤다가 고작 몇 시간 만에 잡혀 들어와 VVIP 룸에 들어간 뒤, 그러니까 계범호가 수표 몇 장을 남기고 떠난 뒤에, 정태주는 사장실로 끌려 들어가 미친 듯이 맞았다. 곧장 때리지 않았던 것은 계범호가 자신을 찾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머리를 좀 얻어맞는다거나 뺨을 가볍게 맞는 수준의 폭력이 아니었다. 정태주는 비명을 지르며 살려 달라고 빌어야 했고, 한참을 맞고 나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너한테는 이제 선택권 없다.’

조덕현에게 진 빚을 박의성이 들고 왔다. 태주는 이제 박의성에게 돈을 갚게 되었고, 월급은 한 푼도 빠짐없이 압수된다.

이자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대로 몇 달만 지나면 이자가 원금을 뛰어넘으리라.

결국 예상대로 되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이 변해 절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추측 말이다. 그 추측이 그날 태주를 도망가게 만들었는데, 그날의 도망으로 오히려 그 시기가 앞당겨졌다.

이제 자신은 이곳에서, 갚아도 줄어들지 않는 빚을 갚으려 몸을 팔 것이다. 매달 돈을 갚지 못하면 빚은 더 늘어날 것이고, 그럼 또 갚아야 하는 빚은 더 커지고…. 이곳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

욕조차 나오지 않았다. 바짝 마른 입술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몸이 아팠다. 태주는 텅 빈 눈만 깜박였다.

그나마 빚을 갚아 보려면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데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날 몸이 좀 혹사당했던가. 벽을 타고, 산을 넘고, 강간을 당하고, 밟히고….

방으로 짐짝처럼 들려온 태주를 보며 룸메이트들은 혀를 찼었다. 덩치들이 떠나고 난 뒤 그들은 ‘멍청한 새끼야. 도망 못 친다니까.’ ‘근데 너도 존나 대단하다. 어떻게 벽을 타고 내려갈 생각을 하냐, 이 높이에서.’ 하고 말했다.

그런 거다. 도망을 결심했던 그때는 이 높이에서 벽을 타고 내려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그러지 못할 것이다.

자신도 변할 테니까. 외출하더라도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탈출하려는 사람을 한심하게 여기는 사람들처럼.

“하아.”

태주는 웃음 같은 한숨을 내뱉었다. 겨우 그것뿐인데 배가 당겨 더듬거리며 배를 붙잡았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는 제 거친 호흡이 잘 들렸다. 경준은 태주에게 좀 자라며 방문을 닫아주고는 며칠째 다른 방에서 잤다. 거실에서 잤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경준은 좀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도망친 탓에 같은 방을 쓰는 경준도 몇 대 맞은 듯했으니까.

그 생각을 하자 몸이 더욱 추웠다. 태주는 몸을 조금 더 웅크리며 환한 창을 내다보았다.

창문에는 없었던 철창이 생겼다. 아마 거실 창도 마찬가지일 테니, 다른 룸메이트들에게도 미움을 받겠구나 싶었다.

뭐 어때. 생각하며 태주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채로 한참을 떨었던 것 같은데, 다시 눈을 떴을 땐 주변이 어두워져 있었고 온몸은 땀에 젖어 있었다. 열이 내린 것 같았다.

“씨발….”

몸을 일으킨 태주는 욕설을 뱉어냈다. 몸살 기운은 사라진 듯했으나 여전히 온몸이 욱신거렸다.

태주는 조심스럽게 일어서서 바깥으로 나갔다. 숙소는 고요했고, 벽에 붙은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모두 출근했을 시간이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복도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태주는 눈살을 조금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다.

“마침 일어났네. 야, 출근해라.”

정태주는 덩치 큰 사내를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이 새끼가 왜 대답이 없어.”

사내가 신발을 벗고 들어올 것처럼 걸음을 내디뎠다. 순간 태주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꾸물거리지 말고. 내가 또 찾으러 올라오면 넌 뒤진다.”

“…예.”

예전 같으면 대답하면서 노려보기라도 했을 텐데, 태주는 고개를 돌리고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겨우 몸을 움직여 씻었다. 온통 타박상을 입은 살갗은 물줄기가 닿는 것만으로도 아팠다.

머리를 말릴 힘은 없어 수건으로 대충 닦기만 한 채 방으로 돌아왔다. 유니폼 바지를 입고, 셔츠를 걸치고 있을 때쯤이었다.

현관문이 성급하게 열리는 소리가 나고 쿵, 쿵 발소리가 났다. 태주는 밑에서부터 단추를 빠르게 채워 올렸다.

그런데 미처 단추를 전부 잠그기도 전에 방문이 벌컥, 열렸다.

“씨발 새끼가 빨리빨리 오라고 했지.”

퍽. 뒤통수를 얻어맞는 일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가슴이 벌렁거리며 뛰었다. 고개를 푹 숙인 태주의 머리채를 쥔 덩치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끌려가느라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태주는 행여 입 밖으로 신음이라도 흘러나갈까 봐 이를 악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에 내려 매화로 들어갔다. 그때가 되어서야 덩치는 주변 시선을 인식했는지 머리채를 놓고 손을 툭툭 털었다. 태주의 머리에서 덩치의 손으로 옮겨 묻은 물기가 허공에 튀었다.

“VVIP 룸. 빨리 들어가라.”

“…….”

태주는 눈을 크게 뜬 채 고개를 돌렸다. 아직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더군다나 그가 올 줄 몰랐던 터라 ‘준비’도 하지 않았다. 샤워를 하면서 확인해 본 구멍은 아직도 조금 부어 있었다.

그러나 태주는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더 처맞을래?”

뒤에서 사납게 눈을 부릅뜬 덩치 때문인지.

‘너한테는 이제 선택권 없다.’

그 말 때문인지.

‘내가 널 기다려서야 되겠어?’

낮고 음침했던 그 목소리 때문인지.

어쨌든 제 의지 없이 등 떠밀려 가는 인생이었다.

태주는 오랜만에 VVIP 룸의 방문을 두드렸다. 바람이 있다면 남자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는 것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땐 그가 구멍을 이용하지 않는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간 룸에는 남자뿐이었다.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아 다른 일거리를 찾으려 눈을 굴려 보아도 테이블은 이미 세팅되어 있었다.

“이리 와.”

낮은 목소리에 태주는 무거운 다리를 움직여 소파로 다가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벽에서 떨어질 때 삐끗한 발목이 조금은 나았다는 거다. 얻어맞고 며칠 침대에서 누워만 있어 그런 것 같았다.

참 좋겠네. 스스로에게 빈정거리며 태주는 남자의 옆에 느리게 앉았다. 그러자 밀도가 높은 시선이 옆얼굴에 닿았다.

무서웠다. 왜 빨리 오지 않았냐고 또 억지로 몰아붙이는 게 아닐까. 오늘까지 그런 식으로 좆을 받으면 정말 몸이 망가질지도 몰랐다.

정태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계범호는 자신을 뚫어지게 보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적막이 흐르고 이따금 들리는 소음은 담배를 피우는 한숨 소리뿐이었다.

바짝 긴장한 태주와 달리 계범호의 시선은 느릿하게 움직였다. 한쪽 눈에 든 멍과 부은 뺨, 터진 입술. 축축하게 젖은 머리에서 떨어진 물방울 때문에 살갗에 달라붙은 셔츠. 그 아래 보이는 멍들.

계범호는 뺨이 팰 만큼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 이내 침잠한 목소리가 흰 담배 연기와 함께 허공에 흩어졌다.

“애를, 개 패듯이 패놨네.”

“…….”

태주는 내리깔고 있던 눈을 크게 떴다. 낮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고, 커다란 손이 불쑥 시야로 들어와 미처 잠그지 못한 셔츠 깃을 쥐었다. 셔츠 안을 들여다보는 듯하던 남자는 이내 옷매무새를 바로 해 주고 손을 거뒀다.

그 순간 태주의 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치솟았다.

또 기다리게 했다고 화를 내든가, 평소처럼 옷을 벗으라고 하는, 자신이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라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혹은 화가 나서.

이런 몸 상태로 뒤가 뚫리게 될까 봐 겁을 먹었던 것도, 구멍을 진작 풀어놓을 걸 그랬다고 후회했던 것도, 박의성과 자신을 때린 깡패들에게도 전부 화가 났다.

결국 도망친 스스로에게도 화가 났는데, 그것은 퍽 비참한 일이었으니 대상은 조금 빗겨 나갔다.

‘내가 널 기다려서야 되겠어?’

고통을 견딘 뒤 들었던 그 음성이 때마침 떠오르자,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안 왔잖아요.”

억눌린 목소리로 하는 말에 계범호가 고개를 기울였다. 작은 목소리라 듣지 못한 거였다. 이때 멈추면 좋았을 것을 태주는 고개를 치켜들고 눈을 부릅떴다.

“손님이 안 왔잖아요.”

겁도 없이 남자를 노려보는 정태주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계속 기다렸는데, 손님이 안 왔잖아요.”

물기가 차올라 반질거리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곧은 코끝도 금방 새빨개졌다.

“…….”

계범호는 제 탓을 하며 엉엉 우는 정태주를 빤히 바라보았다. 담뱃재를 터는 것도 멈춘 채, 멍든 얼굴이 축축하게 젖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다 문득 손을 뻗었다. 우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정태주는 몸을 움츠렸고, 계범호는 조금 더 느린 움직임으로 다가갔다.

손끝이 멍든 뺨에 가볍게 닿았다가 멀어졌다. 물기가 옮겨간 제 손가락을 잠깐 내려다보던 그가 성마르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갑작스럽게 담배가 당기는 사람처럼 필터 끝까지 빠르게 피우고는 또 새것을 꺼내 물었다.

“씨발…. 다 손님이 안 와서…. 안 올 거면 말을 해, 흐으… 주든가….”

며칠 전엔 몸을 덜덜 떨며 무서워했으면서 지금은 우느라 잊은 건지,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온 건지. 계범호는 날카로운 웃음을 뱉어내며 중얼거렸다.

“내가 이 새끼를 왜 가만두지.”

그 말을 들었는지 정태주가 토끼 눈을 하고 쳐다봤다. 눈물 콧물 범벅된 얼굴이 끅끅거리며 또 말을 했다.

“아니…. 그니까, 제가 흐윽, 제가 먼저 기다렸다고요….”

계범호는 어딘가 골치가 아픈 듯 미간을 차츰 찌푸리더니 아…, 하고 탄식했다. 기다렸다고, 하고 몇 번 되뇌면서는 묘하게 입매를 비틀었다.

이내 그가 담배를 끼운 손으로 정태주의 뺨을 가볍게 감쌌다. 정태주가 조용히 훌쩍거리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멍들고 붉고 축축한 그 얼굴을 보며, 남자는 입을 열었다.

“계속 기다려.”

“…흐으, 네?”

계범호는 멍하게 묻는 정태주의 뺨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온통 젖어 눈물이 제대로 닦이진 않았다.

“잘 기다리면 상 줄게.”

“히끅, 도, 돈이요?”

부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꼴이 우스웠다. 계범호는 발개진 눈 밑을 엄지로 문지르며, 그래, 하고 나직이 내뱉었다.

“대신 또 도망치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그의 시선이 내리깔렸다.

“그땐 내가 직접 벌줘야겠다, 태주야.”

다시 마주친 남자의 눈빛은 서늘하게 빛났다. 겁에 질린 태주가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으니 그가 턱 아래를 툭, 건드리며 대답을 종용했다.

“네, 네.”

태주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의 손이 머리 위로 올라왔다. 빨간 담뱃불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태주는 버릇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얼굴에 드리워졌던 그림자가 멀어졌다. 천천히 눈을 떴을 때, 커다란 손은 재떨이에 담배를 끄는 중이었다. 그것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그 손이 다시 다가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직 축축한 머리끝을 만지고 귓가에 머물러 있다가 목 뒤를 들춰보았다.

“옷 벗어.”

“예….”

정태주는 곧 이어질 섹스가 두려워 입술을 질끈 깨물면서도 얌전히 옷을 벗었다. 그 모습을 보며 계범호의 눈매가 부드러워졌다.

태주는 항상 그러는 것처럼 속옷까지 전부 벗었다. 그리고 잠깐 망설이다 엎드리려는데, 큰 손이 그것을 제지하고 팔을 잡아당겼다.

계범호는 태주를 제 다리 사이로 끌어당겨 세워놓고 몸을 확인했다. 희미한 멍이 남은 갈비뼈를 손끝으로 더듬고, 등과 허리, 무릎의 멍도 만져 보았다. 그런 다음엔 엉덩이 사이도 살폈다.

태주는 이것이 제게 수치심을 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계범호는 재미로 행하는데 자신만 모욕을 느끼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범호는 마지막으로 태주의 발목에 손을 댔다. 큰 손에 발목이 붙잡힌 태주가 옅은 신음을 흘리자 남자가 흘긋 시선을 줬다. 고작 시선에도 겁을 먹어 태주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발목을 가볍게 감싸고 있던 손은 발목을 천천히 돌린 뒤, 복숭아뼈를 스치고 멀어졌다.

계범호는 엎드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눈치를 살피는 태주에게 옷 입으라고 짧게 말했을 뿐이었다.

태주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자리에 앉았고, 계범호는 술을 조금 마신 뒤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태주에게 두 가지를 건넸다.

수표와 명함.

“쓸데없이 전화하지는 말고.”

계범호가 낮은 설명을 덧붙였다. 태주는 손바닥만 한 명함을 멍하게 내려다보았다. 전화하면 도움을 주겠다는 뜻인가. 명함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없던 태주는 불현듯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명함은 전에도 주셨….”

“버렸을 텐데.”

“…아니, 아닌데요.”

찢어서 버렸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으므로, 태주는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계범호가 같잖다는 듯 말했다.

“가지고 있었으면 니 성격에 어떻게든 전화를 했겠지.”

“…….”

태주는 제게 뻗어지는 손에 움찔 눈을 감았다.

“맞을 짓을 왜 해, 태주야.”

“죄송….”

“말은 똑바로.”

“죄송합니다.”

코맹맹이 소리로 깍듯이 대답해 봤자 우스웠다. 태주의 귓불을 살짝 꼬집은 계범호는 운 자국이 역력한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정태주는 남자의 커다란 뒷모습과 손에 쥔 수표, 명함을 번갈아 보다가 알아차렸다.

‘내가 널 기다려서야 되겠어?’

그 말은, 그가 자신을 많이 기다렸다는 뜻이었다.

그날 뿌옇던 공기와 서늘한 눈빛, 담배꽁초가 틈 없이 꽂힌 재떨이가 떠올랐다.

***

창문을 넘어 도망을 쳤던 날, 무언가 많은 것이 변한 것 같다. 태주의 인생과 태주도 그렇거니와, 계범호도 그랬다.

사람이 달라졌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매섭게 손찌검을 하는 것이나 태주를 사람 취급 안 하는 것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럼 어떤 것이 변했느냐 하면……. 태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가 허리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에 얼굴을 와락 구겼다.

“아!”

태주는 고개를 돌렸다. 셔츠 밑으로 손을 넣고 맨 허리를 만지작거리던 계범호 짓이었다. 계범호는 보지도 않고 멍이 든 곳을 정확히 눌러냈다.

“심심하면 내려가서 좆 빨래?”

지금 이곳에는 계범호의 부하들도 있었다. 이런 곳에서 좆을 빨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남자가 시키면 해야 했다.

눈치를 살피며 아래로 내려가려 하는데, 테이블이 탁-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니 남자의 잔이 비어 있는 게 보였다.

“죄송합니다.”

태주는 재빠르게 남자의 잔을 채웠다. 남자는 단순히 태주가 돈 받을 짓을 제대로 못 해서 지적한 건지 가만히 허리를 만지고만 있었다.

살결을 쓰다듬던 손은 어느새 바지 속으로 파고들었다. 태주는 허리를 곧추세웠다. 설마 여기서 바지를 벗으라는 건 아니겠지. 태주의 얼굴이 굳었다.

그런데 남자는 엉뚱한 말을 중얼거렸다.

“살이 빠졌나.”

“예?”

되묻는 말은 가볍게 무시한 계범호가 태주의 얼굴을 반대 손으로 잡아채고는 빤히 쳐다봤다.

멍이 든 얼굴을 조심성 없이 꾹 붙잡고 누르는 손길이 아팠다. 얼굴을 찡그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남자가 고개를 기울였다. 붓기 때문에 살이 빠졌는지 아닌지 확신을 못 하는 모양이었다.

태주는 살이 좀 빠졌다. 빚은 늘어가고, 계범호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때부터 입맛이 없어 밥을 자주 안 먹긴 했었다. 그런데 도망갔다가 붙잡혀 들어 온 뒤 사흘을 앓고, 그 뒤로도 입맛이 없었던 바람에 사실 언제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입맛이 도는 게 신기할 일이다. 제 인생이 시궁창으로 처박힌 지금 입에 뭘 넣을 수가 있을까. 태주는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

기운도 많이 잃었다. 예전 같으면 제 머리채를 잡는 매니저에게 대들었을 텐데, 지금은 조용히 시키는 일만 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에 가까웠다.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사실 훨씬 처참했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아질 수 없는 현실이라면 대체 뭘 해야 하는 걸까. 그냥 시키는 대로, 그렇게만 살아야 하나. 그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태주의 눈이 공허하게 비어갈 즈음, 몸이 불쑥 들렸다. 계범호가 태주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일어선 것이었다.

부목을 댄 발목에 순간 통증이 일어 태주는 휘청거렸다. 남자의 돌덩이 같은 가슴에 멍든 얼굴을 박고 나서야 제대로 중심을 잡았다.

“아….”

태주가 얼굴로 손을 가져다 대며 아파하자 계범호가 그 손을 가볍게 쳐냈다.

“엄살은.”

그렇게 말했으면서 계범호는 커다란 손바닥을 태주의 뺨에 가만히 대주었다. 태주는 제 얼굴을 살피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

기본적으로 남자는 강압적인 편이었고, 섹스할 때도 태주를 완전히 휘두르고 싶어 했다. 그런 부분은 변하지 않았는데 뭐랄까….

혼란스러워 보였다.

태주는 고개를 들어 계범호를 쳐다보았다. 섹스를 마친 뒤의 남자는 무척이나 나른한 얼굴을 했다. 여전히 근육통이 있는 몸으로 남자를 받아낸 태주는 팔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그는 만족한 모양이었다.

당장 몸을 일으킬 생각이 없는지 남자는 베개에 기대어 담배를 물었다. 그런 그에게 태주는 흘긋거리던 시선을 들켰다. 눈이 마주치자 남자가 눈짓했다.

태주는 부들거리는 팔로 몸을 일으켰다. 무릎걸음으로 다가오는 태주를 빤히 보던 남자가 손을 뻗었다. 그는 태주의 허리를 가볍게 낚아채 자기 옆으로 끌어왔고, 태주는 남자의 몸과 팔 사이에 무릎을 꿇은 채 앉게 되었다.

남자는 태주의 몸을 훑어보다가 말했다.

“멍이 안 빠지네.”

존나 처맞았으니까요. 태주는 속으로만 남자에게 대꾸했다.

그 전엔 입 밖으로 툭 튀어 나갔을지도 모를 말인데, 이젠 스스로를 좀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충격 요법이 그런 효과가 아니겠는가.

저번엔 칼을 무는 정도로 끝났지만 또 한 번 남자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그 칼이 몸의 어딘가에 박힐지도 몰랐다.

계범호는 태주의 몸에 남은 멍을 손끝으로 만졌다. 그가 세게 누를까 봐 태주가 몸에 움찔 힘을 줬을 때는 슬며시 웃었다.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남자가 혀를 차는 것을 보며 태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계범호가 매화에 관여하지 않는다지만, 태주를 때린 사람들은 결국 계범호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야무지게 때리게끔 해놓고 저따위 말이라니.

개씨발새…….

태주는 속으로 하던 욕을 멈췄다. 계범호가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탓이다.

“왜… 요?”

태주가 어색한 투로 물었다. 남자는 눈을 깜박이는 태주를 물끄러미 보다가 손을 들었다. 태주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는데, 남자의 손은 뺨을 문지르기만 했다.

“매니저가 머리채를 쥔다고 그랬었나.”

“네.”

계범호가 이제는 많이 자란 태주의 머리를 들춰보며 한 말에 태주는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때리기도 하고?”

“…네.”

관심도 없더니 복수라도 해 줄 생각인가. 떡정 한번 대단….

“그래, 그렇겠다.”

“……?”

계범호는 멍이 빠지지 않은 조그만 얼굴이 눈을 깜박이는 것을 보며 픽, 웃었다.

맞을 짓을 한다는 건가. 태주가 뒤늦게 그의 말을 이해하고 살짝 미간을 구기자 계범호가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아주 아픈 것은 아니었으나 태주는 이마를 두 손으로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가린다고 못 때릴까 봐.”

남자는 그런 태주를 비웃었다.

태주가 어색하게 손을 내리자 그는 담배를 피우며 태주를 바라보았다.

요즘 계범호는 섹스를 하다가도, 혹은 술을 마시다가도 문득 자신을 저렇게 쳐다볼 때가 있었다.

예전에도 빤히 쳐다본 적은 많지만 지금과 같은 눈빛은 아니었다. 무언가 난감한 것을 보는 것도 같았고, 태주의 처우를 고민하는 것도 같았다.

처음에는 덜컥 겁이 났었다. 어디를 때릴지 가늠하는 게 아닌가 해서. 그런데 그게 아니란 것은 금방 알게 되었다.

저런 눈빛으로 바라본 뒤에는 꼭 태주의 살결을 건드리니까.

이번엔 뺨이었다.

“장사는 잘 되고?”

태주의 뺨을 손가락 옆으로 간질이던 계범호가 문득 물었다.

“네.”

“잘 된다고?”

남자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되물었다. 멍하게 있던 태주는 놀라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뇨. 아뇨.”

“잘 된다고, 안 된다고.”

인내심이 닳은 듯한 목소리에 태주는 마른 숨을 들이마시며 답했다.

“존나 안 돼요!”

남자의 미간이 구겨지는 걸 보며 태주는 황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다행히 남자는 알몸이라서 칼이 손에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남자의 손이 움직였을 때 태주는 좀 맞겠구나, 했다. 그런데 남자는 태주의 머리를 조금 거칠게 헝클이고는 말버릇, 하고 주의를 준 게 다였다.

“그래. 이 꼴로 손님 받을 수는 없겠지.”

그런 뒤에는 어쩐지 느슨한 얼굴로 말했다.

태주는 계범호가 자신이 다친 것을 불쌍히 여기는지, 만족하는 것인지 순간 혼란이 왔다. 멍을 매번 살피는 게 멍이 빨리 빠지길 바라서가 아니라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서였던가. 설마 몸이 낫고 나면 때리려고….

“저 멍들면 빨리 안 나아요.”

그 말에 계범호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그래서?”

“그냥, 그렇다고요….”

정태주는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곤 눈을 굴리다 물었다.

“또 언제 오세요?”

“…….”

계범호는 아무 말도 없이 태주를 쳐다보기만 했다. 어둑하게 내리깔린 눈빛의 의미를 알 수 없어 태주는 그와 시선을 마주하고만 있었다.

“돈 받고 싶어서 하는 말에 내가…….”

계범호는 혼잣말처럼 말하다가 스스로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곤 태주의 엉덩이를 콱 움켜쥐었다. 살이 완전히 찌그러지자 고통이 상당했다.

“아악!”

비명을 지른 태주가 엉덩이를 들썩이는 것을 보며 계범호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말랑한 엉덩이를 터뜨릴 듯 주무르다가 흰 엉덩이에 손자국이 제대로 생기고 나서야 놓아줬다. 아픔에 눈물이 고인 태주에게 그는 “여기 멍 빠지기 전에 올게.” 했다.

태주는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태주의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엄지로 꾹 닦아내며 또 물끄러미 시선을 줬다.

***

그 눈빛이 자신에겐 독일 수도 있겠단 생각은 남자의 그다음 방문에 했다.

남자는 부하 여럿과 함께였고, 태주는 다른 여자 직원들과 함께 룸으로 들어갔다. 별다를 것 없는 시간이었다. 몸을 파는 사람들과 그걸 사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란 늘 비슷했다.

마치 물건처럼 남자의 옆에 얌전히 앉은 채 태주는 이따금 술을 마셨다. 입술을 적실 만큼만 넘기고 금방 술잔을 내려놓는 게 뭐가 웃긴지, 계범호는 피식피식 웃었다.

오늘도 오후 늦게 일어나 곧장 출근을 했기 때문에 빈속이었다. 목구멍을 타고 배까지 얼얼하게 아픈 느낌이라 인상을 찌푸리는데 대각선에 앉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름이 민정이었던가, 지현이었던가. 어쨌든 꽤 살가운 성격이었다.

‘물 마셔, 물.’

그녀가 입 모양으로 말했다. 태주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아.”

낮은 음성이 탄식했다. 고개를 돌린 태주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보는 계범호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태주도 여자 끼고 놀고 싶겠다.”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뇨.”

“솔직하게 말해도 돼. 좆질하고 싶을 거 아니야.”

계범호는 유난히 다정한 말투를 했다. 그러면서 선심 쓰듯 말했다.

“일어서서 지퍼 내려 봐.”

“…….”

태주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소곤거리던 대화는 어느새 멎어 있었고, 시선 몇 개가 이쪽으로 와 붙었다.

적막 속에서 태주는 천천히 일어났다.

남자가 웃는 낯으로 손짓했다. 태주는 테이블과 남자의 사이로 들어가 선 뒤, 주먹을 움켜쥐었다. 등 뒤쪽으로 닿는 시선들이 따가웠다.

씨발. 씨발. 속으로 욕을 되뇌어 보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좆같은지만 더욱 강렬히 인지하게 될 뿐이었다.

태주는 힘주어 쥔 주먹을 펴고 제 바지 버클을 풀었다. 그러자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던 계범호가 손을 내밀었다.

“아쉬운 대로.”

굳은살이 여기저기 박인 거친 손바닥이 둥글게 말렸다. 멍하게 그것을 보고 있는데, 계범호가 여상히 말했다.

“여기다 해 봐.”

태주는 빈주먹을 쥔 커다란 손을 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반항은 의미 없었다. 남자가 원하는 일은 결국 남자가 원하는 대로 된다. 태주가 몇 대 맞고 되느냐, 곧장 되느냐의 문제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커다란 테이블의 모서리가 꺾인 부분부터 앉아 있기 때문에, 태주의 성기를 완전히 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위안을 삼아 보는 거였다.

정태주는 제 성기를 붙잡고 그의 주먹으로 가져갔다. 말랑한 선단이 남의 살갗에 닿자 움찔 배에 힘이 들어갔다. 곁눈질로 살핀 남자는 지루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얼굴에 터질 것처럼 열이 올라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태주는 질끈 눈을 감았다 뜨며 허리를 세웠다.

여린 살덩이가 커다란 손바닥 안쪽으로 굳은살을 스치며 파고들었다. 아래에서부터 피어난 소름이 온몸으로 퍼졌다.

계범호는 정태주가 뻣뻣이 허리를 움직이는 꼴을 비웃었다.

“이래서 좆질 하겠어? 세우지도 못하고.”

남자의 손에 문지르고는 있으나 태주의 성기는 여전히 축 처진 채였다. 혀를 찬 남자가 손아귀에 조금 더 힘을 주어 태주의 성기를 압박했다.

작은 호흡이라도 튀어 나갈까 태주는 이를 악물었다. 시큰거리는 눈을 부릅뜨고 남자의 셔츠 단추만 노려보았다.

“고개 들어.”

남자는 그것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

끔찍한 순간은 선명하게 흘러갔다. 외면하고 싶은 제 모습이 담긴 검은 눈동자, 거칠고 딱딱한 손바닥, 희미한 담배 냄새, 저를 가둔 허벅지, 무감한 얼굴에 숨은 흉포한 기운. 손을 내주고도 오히려 남자가 태주를 범하는 것 같았다.

태주는 거칠게 가슴을 들썩였다. 반복적인 자극은 결국 달갑지 않은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으나, 남자는 잔인하게도 기어이 태주가 자기 손을 적시게 만들었다.

“…….”

정태주는 턱 끝에 걸린 호흡을 조용히 내리눌렀다. 오랫동안 거칠게 마찰된 여린 살갗이 쓰라렸다.

적막은 여전했다.

평소에 음담패설을 그렇게 잘하던 계범호의 부하들은 눈치가 빨랐다. 계범호의 심기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아는 거였다.

제 급소를 쥐고 있던 남자의 손이 천천히 멀어졌다. 그 순간에는 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이면 여자가 도망가겠어.”

“…….”

계범호가 자기 손을 구경하듯 내려다보며 말했다.

“응? 태주야. 도망간 애들 없어?”

“…네.”

태주는 가쁜 호흡을 삼키며 대답했다.

“이상하네. 좆질 해본 적도 없는 것 아니야?”

남자는 피식 웃으며 빈정거렸고, 태주는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수치심에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네, 없어요.”

이를 악물고 한 말에 계범호가 고개를 들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시선인데, 태주는 그의 발밑에 엎드려 있는 것처럼 초라해졌다. 태주는 눈을 감듯이 내리깐 채 입 안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

그사이에 누그러진 계범호의 눈빛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냅킨으로 손을 닦고, 그것을 바닥에 떨어뜨린 뒤, 자신의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는 손만 내린 눈으로 좇았을 뿐이었다.

“그래. 제대로 세우지도 못하는 걸로 뭘 하겠어.”

낮은 목소리가 조곤조곤한 투로 말했다.

태주는 시선을 들어 올려 계범호를 쳐다보았다. 그는 다정한 척을 하던 좀 전과 달리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쓰지 마, 그냥.”

***

솔직히 계범호의 변화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보진 않았었다. 기다리라는 말도, 상을 준다는 말도, 다시 받은 명함도. 큰 의미가 없었다.

자신은 이곳에 갇혀 몸을 팔고, 계범호는 그걸 산다. 다른 건 안 찾을 만큼 태주가 파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만, 결국 그뿐이다. 판매자와 단골의 관계는 그리 견고하지 않다.

계범호만을 기다리던 자신이 어땠는가. 멍청하게 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줄로만 알았지 않았나.

이번 달엔 어찌 됐든 돈을 맞출 수 있었지만, 다음 달엔 어떻게 될지 몰랐다. 계범호의 방문이 조금만 늦어져도 도저히 상환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차라리 조덕현에게 상환하던 때가 훨씬 나을 정도였다. 상환일에 조금만 늦어지면 이자는 무섭도록 불어났고, 이대로 몇 달만 지나면 이자가 원금을 훌쩍 넘을 것이다.

막막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끝났구나. 그런 생각뿐이었다.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진 거구나. 발버둥을 치며 힘을 뺄 바엔 그냥, 가만히 빠져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번엔 남자의 명함을 버리지 않았다. 정말로 의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 그러지 않기가 힘들었다.

“태주야, 가자.”

“아.”

문가에서 경준이 불렀다. 다른 사람들은 먼저 나간 듯 숙소는 조용했다.

룸메이트들과는 사이가 좀 멀어졌다. 그들은 태주가 자신들에게 술을 먹이고 탈출을 했다는 사실에 괘씸함을 느낀 것 같았다. 그리고 창마다 생긴 쇠창살도 무척 싫어했다. 이래선 정말 감옥이 아니냐고.

다른 직원들의 숙소에도 모두 그런 것이 생겼으므로, 그들의 태도도 어딘가 달라졌다. 크게 티는 내지 않지만 눈빛이 조금 싸늘하다든지, 태주가 있으면 묘하게 대화가 어색해진다든지 하는 거였다.

게다가 태주도 그들이 어색해졌다. 도망쳤다 붙잡혀 온 일도 그런데, 지난주에는 사람 많은 룸에서 바지를 내리고 못 볼 꼴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경준은 아직도 태주를 챙겼다.

“주방에서 뭐 좀 달라고 해.”

“괜찮아요. 출근 시간도 거의 다 됐고요.”

태주가 고개를 젓자 경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오늘은 안주 좀 많이 집어먹어.”

“그러다 저 쫓겨나면 어떡해요.”

“그럼 다른 방 가서 또 먹으면 되지.”

경준의 말에 태주가 작게 웃었다. 경준도 살짝 미소를 걸치고 태주의 등을 쓰다듬었다.

“오늘도 파이팅하자.”

“네. 파이팅.”

태주는 덤덤히 그 말을 뱉어냈다. 힘은 조금도 나지 않았다.

출근을 한 뒤에는 바쁘게 움직이느라 잡생각이 사라졌다. 그래서 차라리 일할 때가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 적이 있는데, 그런 생각은 자신이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을 더욱 키웠다.

아무튼 바쁜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수요일 밤치고는 시끄러운 룸에 들어가서 태주는 테이블 세팅을 하고, 팔을 붙잡아 끌어당기는 손길에 소파의 한자리를 차지했다.

처음엔 조용하던 손님들은 술이 들어갈수록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물론 태주가 그들을 웃긴 것은 아니었다. 다른 형들은 말을 참 재밌게 했고, 센스도 넘쳐서 술자리를 더 즐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태주도 이번엔 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다.

“아, 묘하게 예쁘게 생겼다 자기는.”

옆자리 앉은 여자가 태주의 생김새를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이었다. 눈이 조금 풀린 여자는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이며 태주의 얼굴을 구경했다. 노골적이고 무례한 시선이지만 태주에게 오만 원짜리 몇 장을 쥐여 준 여자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피부도 진짜 새하얗고. 햇빛 안 봐?”

그렇다. 원래도 하얀 편이긴 했지만, 이 건물 내에서만 생활한 것이 벌써 몇 달이 되다 보니 피부가 창백할 정도로 하얘졌다.

그러나 손님이 듣기엔 불편할 얘기였고, 그녀가 컴플레인이라도 걸면 얻어맞는 건 태주였다.

손님에게 자기가 갇혀 있다며 도움을 청하면 어디 하나 불구가 될 정도로 맞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고 한다. 그 얘기를 해 준 직원들은 정말 사실이라고 재차 강조하여 말했는데, 태주는 이제 그 말을 확실히 믿게 됐다.

이 새끼들은 무슨 짓이든 할 놈들이다.

“원래 하얘요.”

태주의 말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술잔을 들었다.

“아!”

조금 급하게 잔을 기울인 탓에 술이 여자의 턱에 묻어 뚝뚝 떨어졌다. 태주는 재빨리 냅킨을 가져와 그녀의 턱에 댔다. 젖은 턱과 긴 머리칼을 조심히 닦아 주며 태주가 말했다.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

여자의 손을 닦아 주고 있던 태주는 제 얼굴에 닿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반쯤 눈을 감은 여자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고 태주는 피하지 않았다.

몇 달간 이곳에 있으면서 보고 배운 대로 혀를 움직이자 여자가 몸에 힘을 풀고 기대왔다. 태주는 그런 그녀를 살짝 붙잡았다. 그러자 여자가 태주의 목에 팔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 나 설레.”

할 말이 없어 태주는 여자의 등을 쓰다듬었다. 여자는 술 냄새가 나는 숨을 훅, 내쉬며 태주의 어깨에 이마를 댔다. 그러고 몇 마디를 했다. 술주정에 가까운 말에 태주는 “네.” “그렇구나.” 같은 말만 했고, 여자는 그것이 웃긴지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러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목덜미에 부드러운 것이 스쳤던 것 같다.

“위에 올라갈까?”

“아…. 제가 2차는 안 나가서요.”

솔직히 이제는 2차도 나갈 수 있었다. 기다려온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주 보았던 계범호의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질 나쁜 장난인 것 같았고, 갑자기 좆질이니 어쩌니 했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함부로 2차를 나갔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비싸네.”

여자는 조금 기분이 상한 듯했으나, 그렇다고 태주를 안은 팔을 풀지는 않았다. 그러다 그녀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쟤 또 저러네. 술만 마시면 잔다니까.”

반대쪽에 앉아 있던 일행이 혀를 차며 말했다. 태주는 곯아떨어진 여자를 흘긋 내려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소파에 눕혔다. 그러고 여자의 외투를 무릎에 덮어둔 뒤 몸을 일으킬 때였다.

“팁 줘야지, 팁….”

여자가 반쯤 감긴 눈으로 외투를 더듬더니 지갑을 꺼냈다. 태주에게 곧장 5만 원짜리 2개가 내밀어졌다.

“감사합니다.”

여자는 감은 눈으로 웃더니 금세 입을 벌리고 잠이 들었다. 태주는 그녀를 잠깐 내려다보다가 다른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룸을 벗어났다.

손등으로 입술을 문질러 닦으며 직원 공간으로 향할 때였다. VVIP가 도착했다는 무전이 들려왔다.

그 순간 태주는 타이밍이 잘 맞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여자 손님의 방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계범호에게 보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계범호가 이곳에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닌데.

그러나 그 생각은 잠시 후 계범호가 온 뒤 현실이 되었다.

다른 직원과 함께 테이블을 세팅한 뒤 태주는 자연스럽게 남자의 옆에 남게 되었다. 미리 연락을 하고 왔기에 테이블 세팅도 빨랐는데, 계범호는 그새를 못 참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가까이 와.”

그가 손짓했다. 울퉁불퉁하고 커다란 손을 보자마자 지난주의 일이 떠올라 속이 불편해졌다. 태주는 입 안의 살을 꾹 깨물고 난 뒤 그의 옆으로 조금 더 붙어 앉았다.

계범호는 태주의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삐진 건가.”

“…….”

존나 사이코패슨가. 공감 능력이 결여된 게 분명했다. 입술을 꾹 다문 태주의 얼굴을 재밌어하는 표정을 보니 딱 그랬다.

게다가 삐지긴 씨발. 남자의 입으로 나온 단어치고는 너무 친근하고 귀엽지 않은가.

“좆 좀 보여준 게 별거라고.”

“…안 삐졌어요.”

태주가 이를 악물었다가 대답했다. 그러자 계범호는 피식 웃더니 태주의 뒤통수에 손을 댔다. 머리를 헝클인 커다란 손은 곧장 멀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손가락 끝이 귓가에 닿은 채 멈췄다. 남자의 팔을 어깨에 얹은 태주가 고개를 돌렸다.계범호는 무언가를 빤히 보고 있었다.

“왜… 요?”

태주가 묘한 불안감을 느끼며 물었을 때가 되어서야 계범호는 시선을 뗐다. 그리고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빨고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아, 이거 좆같네.”

“…….”

스스로도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 계범호를 보며 태주는 주춤 고개를 뒤로 뺐다. 그러나 목 근처에 가만히 닿아 있던 손이 목덜미를 억세게 끌어당겼다. 내리깔고 있던 시선을 바로 한 채 남자가 태주를 똑바로 응시했다. 눈빛은 음산했다.

태주는 영문을 몰라 긴장했고, 남자는 그런 태주의 목덜미 어딘가를 세게 짓눌렀다.

“콜록, 콜록.”

기침을 하며 태주는 제 목을 만져 보았다. 손가락에 붉은색 립스틱이 묻어나왔다. 좀 전의 손님이 묻힌 것일 테다.

“묻어 있었구나. 죄송합니다.”

정태주가 퍽 자연스러운 태도로 사과했다. 흰 목덜미에 묻은 립스틱을 짜증스럽게 보던 계범호는 돌연 사납게 미간을 구겼다.

“씨발, 냄새.”

태주의 몸에는 항상 누군가의 향수 냄새나 담배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것이 새로운 것도 아니면서, 계범호는 불쾌해했다. 그러고 난 뒤였다.

“제가 닦을…… 우읍…!”

차가운 액체가 태주의 머리 위로 왈칵 쏟아졌다.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은 태주는 그것이 위스키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계범호가 위스키 한 병을 통째로 자신의 머리에 쏟아부은 거였다.

“성실한 건 좋은데 태주야. 예의는 지켜야지.”

거친 속삭임이 먹먹하게 들렸다. 호박색 액체가 태주의 머리카락과 얼굴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계범호는 빈 병을 내팽개치고 정태주의 목덜미를 거칠게 문질렀다. 희미하게 남아 있던 립스틱 자국이 닦였다. 코를 찌르는 역겨운 향수 냄새는 독한 위스키 향에 가려졌다.

“후으….”

정태주가 손등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눈을 떴다. 젖은 속눈썹을 파르르 떨고서 태주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귓가로 무미건조한 음성이 파고들었다.

“이제야 좀 낫네.”

태주는 허벅지 옆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나 이 미친 짓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기분이 풀리지 않은 남자가 더 심한 짓을 할까 봐 걱정하는 제 자신에게는 화가 났다.

태주는 입을 꾹 다문 채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문질렀다. 손도 젖어 있어 큰 효과는 없었다.

“뭐 했는지 말해 봐.”

“…….”

태주는 따가운 눈을 비비며 고개를 돌렸다. 계범호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묘하게 번들거리는 눈동자에는 이상한 것이 고여 있었다.

“구멍을 대주진 않았을 테고.”

태주의 굳은 얼굴을 툭툭 치며 남자가 물었다. 그러더니 아…. 하고는 태주의 팔을 잡아당겼다.

“태주는 여자한테도 깔리나.”

태주가 잡힌 팔을 뿌리쳐 보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남자는 억센 손길로 태주를 일으키고, 찢어발길 듯이 바지를 벗겼다. 젖은 속옷까지 한 번에 내리고 곧장 엉덩이를 더듬었다.

“응? 왜 말이 없어.”

“…….”

“뭐 했냐고.”

계범호가 음산하게 물었다. 바람피운 애인을 추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태주는 와락 얼굴을 구겼다. 가슴에서 울렁거리는 감정을 도저히 참지 못해 눈을 치켜떴다.

“키스했어요. 근데 그게 뭐요? 후장도 파는데 다른 걸 못 팔겠어요, 씨발.”

“이 새끼가 돌았나….”

헛웃음을 내뱉은 계범호가 정태주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턱 아래가 바짝 조이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정태주는 입을 열었다.

“저한테 왜 그러세요?”

억눌린 듯한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였다. 노려보는 눈에도 금방 물기가 고인 채, 정태주는 거칠게 가슴을 들썩였다.

“왜 기분 나빠 하냐고요. 난 내 일 한 거예요.”

거친 손등 위로 위스키 몇 방울이 떨어졌다. 붉은 눈망울이 어른거렸고 계범호는 요즘의 그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정태주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젖은 태주의 몸이 서늘하게 식었을 때쯤 남자는 덤덤한 말을 내놓았다.

“그래. 그게 네 일이지.”

그러곤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던 것처럼 굴었다.

평소처럼 관계를 가졌다. 특별히 아프거나 강압적인 형태는 아니었다. 남자는 늘 그러는 만큼만 했다.

그러나 남자의 눈은 일부러 집중하는 사람처럼 흔들리지 않았고, 태주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았다.

소파에 앉은 남자의 위에서 몸을 흔들자 독한 향이 나는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젖은 셔츠는 몸에 달라붙어 기이할 만큼 목을 옥좼다. 숨이 막혔다.

“허윽….”

저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내자 계범호가 고개를 들었다. 태주의 허리를 흔드는 손은 멈추지 않아 호박색 물방울이 그의 얼굴에도 튀었다.

태주는 입술을 꾹 깨물며 그를 응시했다. 잠깐 눈을 맞추는가 싶던 남자는 꼭 시선을 피하듯 태주의 등을 끌어당겼다.

몸이 앞으로 쏠린 태주가 휘청거리며 남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얼굴이 남자의 얼굴과 부딪힐 듯 가까워졌다.

경직되어 있던 공기가 확연히 달라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오랫동안 깨물고 있어 피가 몰린 입술이 남자의 턱에 난 흉터를 스쳤을 때.

계범호는 뺨을 지나 멀어지려는 그 입술을 무의식처럼 쫓아갔다. 곧이어 닿은 부드러운 촉감과 젖은 숨결. 미간을 좁히며 그가 정태주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그 후의 공기는 빠르고 정신없이 흘러갔다.

“우읍…. 흐으….”

계범호는 색이 진한 입술을 모두 삼켜버릴 것처럼 빨고 짓씹다가, 고통에 벌어진 입 속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태주가 내뱉는 신음을 혀끝으로 느끼며 조그만 혀를 휘감고 문질렀다.

집중하지 못했던 허릿짓은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멈춘 채, 작은 얼굴을 붙잡고 더욱 입을 벌리게끔 했다. 혀를 길게 빼고, 좆을 수도 없이 비벼댔던 입천장과 볼 안쪽의 여린 살까지 맛봤다. 그럼에도 갈증이 좀처럼 채워지지 않아, 한 손에 들어오는 뒤통수를 억세게 끌어당겼다.

“아, 으읍, 흐으…!”

마른 손이 한계에 다다른 듯 다급하게 어깨를 두드렸다. 아쉽게 물러난 계범호는 가쁜 숨을 내쉬는 입술을 성마르게 핥았다. 닿는 숨결이 달갑고 애가 타 고개를 기울인 채 열중하다가, 그는 문득 짧은 탄식을 내놓았다.

“아.”

이성이 차츰 되돌아왔다. 그런데도 다른 년의 무엇을 빨았을지 모르는 입술을 핥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계범호는 말했다.

“태주야. 너 좆 된 것 같아.”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도 남자의 눈빛은 선명했고, 막힘없었다.

“…….”

계범호는 드디어 태주의 처우를 결정한 것 같았다. 묘한 오싹함에 태주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런 태주의 얼굴 곳곳을 바라보며 계범호가 손을 움직였다. 셔츠 단추를 천천히 풀어내고, 몸에 달라붙은 천을 벗겨냈다.

거칠지 않은 손길에 태주는 오히려 더 겁을 먹었다. 공기에 노출된 살갗에 소름이 돋은 것이 추위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구부정하게 웅크린 등 위를 넓고 거친 손바닥이 부드럽게 훑어 내렸다. 다른 손은 태주의 뺨을 감싸고 엄지로 젖은 입술을 문질렀다. 집요하고 어두운 시선에 태주가 입을 다물자, 굵은 엄지가 곧장 입술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박 사장한테 빚을 졌나.”

“우으….”

혓바닥을 꾹 누르며 하는 재촉에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그래, 하고는 혀 옆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쏟아져 나온 침을 목구멍으로 넘기느라 움찔거리는 혀를 빤히 쳐다보던 남자가 입을 연 것은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였다.

“푼돈 받겠다고 아무거나 입에 넣지 마.”

낮은 음성이 한 말에, 태주의 눈에 억울함이 서렸다. 남자는 그것을 무심한 듯 바라보다가 손톱으로 혀를 짓눌렀다.

“으으…!”

“그렇다고 내가 태주를 안 볼 건 아닌데….”

더 깊숙이 들어오는 남자의 손가락에 태주의 턱이 크게 벌어졌다. 커다란 손을 막아내듯 치아가 그의 살에 박혔으나,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주의 혀를 꾹꾹 눌렀다. 구멍이라도 낼 것처럼 거친 손길이었다. 구역감과 통증에 태주의 눈이 붉어졌다.

“더러워진 부분은 잘라내려고.”

태주는 눈을 크게 떴다. 새카만 남자의 눈동자에 자신이 꼼짝없이 담긴 것을 보고 나서, 급히 대답했다.

“네….”

어눌한 대답을 하고 고개도 몇 번 끄덕이자 남자의 손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곧장 태주의 뺨을 감싼 남자가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

가까이 앉은 태주의 머리 위로 술을 쏟아부었으므로 남자의 옷도 조금 젖어 있었다. 남자는 태주의 셔츠를 벗길 때보다 거칠게 자기 옷을 벗었다. 거대한 몸을 버겁게 담고 있던 셔츠에서는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흐읍….”

“숨 쉬어.”

계범호는 헐떡이는 정태주에게 속삭여놓고 입술을 끊임없이 핥았다. 숨이 막힌 태주가 고개를 비틀자 그의 혀가 태주의 뺨에 닿았다. 살결에서는 위스키 맛밖에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침이 고였다.

“씨발.”

욕설을 흘린 계범호가 태주의 뺨에서 혀를 미끄러뜨렸다. 살이 빠져 도드라진 턱선을 혀로 더듬어 올라가다 귓불을 쭉쭉 빨았다.

“아!”

짧은 비명을 터뜨리는 태주의 등을 토닥이며 그가 허리를 쳐올렸다. 멈춰 있는 동안 그의 성기에 꼭 맞게 달라붙었던 내벽이 마찰되자 정태주가 신음을 흘렸다.

계범호는 태주를 안고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테이블 위에 태주를 눕힌 남자가 태주의 다리를 끌어당겨 성기를 완전히 삽입했다.

“으응….”

하얀 목덜미를 핥으려 남자의 거대한 등이 잔뜩 굽어졌다. 오른쪽 어깨의 짐승은 몰두한 그의 움직임을 따라 일렁이듯 움직였다.

부드러운 살결을 입술 사이로 빨아들이고 핥던 계범호의 시선이 문득 립스틱이 묻었던 자리에 고였다. 내리깐 눈빛이 번뜩였다.

“아아악! 악!”

마치 사냥당하는 것처럼 목덜미를 물어뜯긴 정태주가 비명을 질렀다.

계범호는 몸을 뒤트는 태주의 어깨를 테이블로 짓누른 채 살갗을 씹었다. 립스틱 자국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살결이 붉어지고, 기어이 연한 핏물까지 흐르게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야 잇자국 위를 싹싹 핥아내며 고개를 들었다.

“흐으, 으….”

“태주야, 아까 내가 뭐라고 했지.”

남자가 낮게 잠긴 목소리로 다정한 척을 했다. 고통에 신음을 내뱉던 태주가 겁에 질린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자, 자른다고요. 더러워지면….”

“옳지. 제대로 기억하네.”

계범호는 만족스럽게 태주의 뺨을 토닥였다. 그러곤 온통 짓씹어 놓은 목덜미를 느릿하게 문질렀다. 태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칼도 쥐지 않은 손인데 살결을 도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 남자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태주 불쌍하니까 오늘은 아니고.”

태주는 살며시 눈을 떴다. 웃고 있는 남자의 눈은 조금 전부터 기이하게 빛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서늘했던 몸이 더욱 식었다.

“아, 아파요….”

“지금도?”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몸을 웅크린 태주를 빤히 내려다보다 어이가 없다는 듯 짧은 숨을 터뜨렸다.

“이걸 엄살 못 부리게 패놓을 수도 없고.”

중얼거리듯 말한 그가 태주의 골반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퍽, 소리가 나게 좆을 처박았다.

“흐으윽…. 으읏, 읏, 아, 살살요….”

“좆 세워놓고 살살은. 더 세게 박아 주세요, 해야지.”

“아읏, 더…. 더, 세게 박아 주세요….”

신음이 섞인 목소리를 내며 태주가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감각을 못 견디겠다는 것처럼 가까이 있는 계범호의 팔을 붙잡으면서.

와락 인상을 구긴 계범호가 다시 정태주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눈에 띄게 긴장한 어깨 위를 핥고 가슴팍으로 내려가면서, 마치 짐승의 교미처럼 빠르게 허리를 쳐올렸다.

“씨발, 달아.”

짓씹듯 중얼거린 그의 혀끝에 오똑 솟은 돌기가 걸렸다. 사내새끼가 꼴 보기 싫게 젖을 세운 게 뭐라고. 계범호는 옅은 색의 유두를 입술 사이로 물고 맛있는 것처럼 쪽쪽 빨았다.

“으응…! 아! 이거 이상해요.”

“창놈이 젖으로 느끼는 게 뭐가 이상해, 태주야.”

사납게 웃은 남자가 납작한 가슴팍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살결이 뜯어질 듯해 태주가 미간을 찌푸리자 또 그 위로 입을 맞췄다.

계범호는 정태주의 온몸을 맛보고 싶은 것처럼 굴었다. 지친 태주가 무의식적으로 그의 얼굴을 밀어냈을 때는 손가락까지 입 안에 넣고 빨았다.

태주가 흠칫 손을 빼려고 하자 손가락을 잇새로 깨물어 고정한 뒤, 태주의 몸 위로 무게를 실었다. 문신이 빼곡한 넓은 어깨에 다리를 걸친 채 태주의 몸이 반으로 접혔다.

“아으으…! 으읏, 아…!”

위에서 아래로 퍽퍽 내리찍는 좆이 전립선을 후벼팠다. 태주는 눈꼬리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다리를 버둥거렸다. 발뒤꿈치가 어깨 뒤쪽을 두드리는데도 계범호는 멈추지 않았다.

태주의 손가락을 무느라 턱에 힘을 준 남자의 목에 핏대가 섰다. 핏줄이 불거진 억센 손은 태주가 움직이지 못하게끔 팔뚝을 단단히 붙잡았다.

양팔이 몸에 붙여지고, 손은 남자의 잇새로 고정되어 꼼짝도 할 수 없는 태주에게 계범호는 폭력적으로 좆을 쑤셔 박았다.

“흐으…! 아…. 아아! 아, 읏, 그만….”

부푼 입술이 흘려내는 신음이 뚝뚝 끊어졌다. 계범호는 혀를 굴려 딱딱한 손톱과 여린 살결을 맛보며 쾌감에 젖은 태주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가물가물한 시선으로 태주가 눈을 맞췄을 때,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태주의 팔을 부러뜨릴 듯 세게 붙잡은 그의 아랫배에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온몸의 근육을 팽창시킨 채 남자는 태주를 조금 더 깔아뭉갰다.

“아악…! 너무 깊어요, 흐으, 무서워요, 흐….”

눈을 크게 뜬 정태주가 겁먹은 얼굴을 했다. 입 안에 물고 있는 손가락도 꼬물거리며 남자의 혀를 자극했다. 씹. 욕설을 짓씹은 남자가 좆을 끊어먹을 듯 조여오는 내벽 깊숙한 곳에 사정했다.

남자에게서 짙은 한숨이 흘러나오고 태주의 손은 자유를 되찾았다. 정태주는 제 손을 가슴으로 가져와 다른 손으로 움켜쥐었다.

눈가가 발개진 채 히끅거리는 얼굴을 잠깐 보던 남자가 태주의 팔을 놓아주었다. 남자의 팔뚝에 비하면 가느다란 팔에 붉은 손자국이 생겼다.

계범호는 그것을 쓱쓱 문지른 뒤 테이블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손바닥에 닿는 차가움에 정신이 조금 맑아져 하얀 몸을 훑어보았다.

“흐윽, 읏….”

정태주는 만신창이였다. 젖은 머리칼에서부터 덜덜 떨리는 하얀 허벅지까지 멀쩡한 구석이 없었다. 목덜미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엉망이었고 새하얀 가슴팍에도 붉은 자국이 남았다. 남자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움켜쥔 허리나 팔도 그랬다.

계범호는 천천히 좆을 빼냈다. 정태주를 일으켜 앉히고 등에 손을 대자 살결이 차가웠다.

“음.”

사정하지 못해 꼿꼿하게 선 태주의 성기를 흘긋 살핀 남자가 태주를 안고 소파에 앉았다. 남자의 무릎에 앉혀진 태주는 부은 눈을 크게 떴다.

계범호는 도톰하게 부은 눈꺼풀을 맛있는 음식이라도 보는 것처럼 입맛을 다시다가, 그런 제 자신을 문득 깨닫고 혀를 찼다.

“다리 벌려.”

태주가 자신의 가슴에 기대게끔 허리를 안으며 계범호가 말했다. 힘이 빠진 태주가 굼뜨게 행동하자 커다란 손이 무릎을 완전히 감싸고 벌렸다.

태주의 엉덩이에 단단한 살덩이가 닿았다. 겁먹은 듯 크게 들썩인 태주의 가슴팍을 쓰다듬은 남자가 속삭였다.

“지금 안 할 테니까.”

태주는 반신반의하다가 긴장한 몸에 겨우 힘을 풀었다. 남자는 태주의 자세를 편하게 고치고 태주의 좆을 만졌다.

꼿꼿이 섰으나 아직 사정하지 못한 성기는 몇 번 쓰다듬어 주자 금방 토정했다. 남자는 희끗한 액체를 태주의 좆에 장난스럽게 펴 바르고는 그 아래 동그란 고환까지 만지작거렸다.

“하아….”

태주가 나른한 숨을 내쉬자 계범호가 관자놀이에 입을 맞췄다.

그 뒤로는 또 난폭하게 굴었으나, 분명 그런 순간순간이 있었다.

태주를 구멍으로만 보는 게 아닌 것 같은. 몸을 팔고 사는 관계가 아니라 꼭,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정한 순간 말이다.

소파에 힘없이 엎드린 태주는 문득 표정을 굳혔다. 이상하고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뭘 먹는 꼴을 본 적이 없으니.”

엎드린 태주의 엉덩이를 떡 주무르듯 주무르던 계범호가 제 한 손에 들어오는 허벅지를 쥐며 혀를 찼다. 그러다 그가 태주의 엉덩이를 가볍게 짝, 때리고 말했다.

“일어나.”

태주는 힘없이 몸을 일으켰다.

담배를 입에 문 계범호가 시계를 보았다.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인 것을 확인한 그의 시선이 축축하게 젖은 태주의 머리로 옮겨갔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퇴근해.”

“…….”

“가는 길에 박 사장 불러오고.”

태주는 깊이 담배를 빨아들이는 계범호의 옆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시선을 줬다. 태주의 울긋불긋한 얼굴과 몸, 꼿꼿이 선 유두를 본 다음에는 말을 고쳤다.

“아니다. 그냥 바로 숙소로 올라가.”

정태주는 왜요? 같은 말은 내뱉지 않았다. 몸은 무척 피로했고, 남자에게 반문했다가는 반대쪽 목덜미가 걸레짝이 될지도 몰랐다.

“네.”

쉰 목소리로 얌전히 대답한 태주는 바닥에서 제 옷을 주웠다. 구겨진 바지를 입고, 호박색 액체로 축축한 셔츠를 입었다. 차가움에 몸을 조금 경직시킨 채 아래에서부터 단추를 채우는데 커다란 손이 손목을 잡았다.

남자는 자기 셔츠를 내밀었다. 태주의 셔츠보다는 덜 젖었던 데다가 그사이 말라 상태는 훨씬 나았다. 태주는 순순히 그의 것을 겹쳐 입었다.

옷 위에 입었음에도 품이 무척 커서 어깨선이 팔로 한참이나 내려갔다. 헐렁한 소매 사이로 나온 흰 손이 아래에서부터 단추를 잠그는 모습을 보며 계범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매캐한 연기를 흘려낸 그가 낮게 내리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가까이 와.”

목 끝까지 단추를 잠근 태주가 남자의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남자는 담배를 재떨이로 튕겨 던지고는 태주의 양 뺨을 감쌌다.

홍조가 도는 뺨을 문지르던 손길이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젖어서 그대로 고정된 머리에서는 머리카락이 몇 가닥만 내려와 이마를 간지럽혔다.

“태주야. 네 일은 서빙으로 해.”

“…….”

태주는 멍하게 남자를 쳐다봤다. 그러자 남자가 설명을 덧붙였다.

“다른 거 팔지 말고, 서빙만 하라고.”

“…네.”

“주말에 올 테니까 얌전히 기다려.”

“네.”

고개를 끄덕이는 조그만 얼굴을 보며 계범호가 “대답은 잘하지.” 했다. 그는 뺨을 좀 만지작거리다가 자기가 짓씹어 놓은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린 태주를 보며 피식 웃은 남자는 이내 손을 거두고는 소파에 등을 기댔다.

늘어지듯 편하게 몸을 묻은 남자가 새 담배를 입에 무는 모습을 보며 태주는 조용히 일어났다. 그러나 테이블을 빠져나가려다가 우뚝 멈춰 섰다.

“오늘…. 팁, 안 주셨는데요….”

망설이며 말하면서 태주는 뒷걸음질을 쳤다. 맞을까 봐 그런 거였다. 남자는 그런 태주를 비스듬히 보다가 픽, 웃음을 흘렸다.

“지갑 가져와.”

태주는 재빠르게 남자의 재킷에서 지갑을 꺼내 공손히 두 손으로 내밀었다. 남자는 입에 담배를 물고 지갑을 받아 수표 몇 장을 건넸다.

태주는 인사를 꾸벅 한 뒤 곧장 룸을 벗어났다. 뒤통수로 진득한 시선이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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