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퍼라도] 68. 하몬의 후계자
데스퍼라도(Desperado)
하몬의 후계자
최연소의 나이로 아미라스루텐 제국의 제3군단장에 오른 캐시어스는 전 대륙에 걸쳐 있는 각 수많은 제국들 사이에 이미 영웅 리스트에 올라있었다. 아미라스루텐 제국의 최고 명문가문중 하나인 반테라스본에서 외동딸로 태어난 그녀는 어릴 적부터 가문의 전승 비전절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최고의 검술 교관 혹은 당대에서 마법력이 가장 높은 궁정 노마법사 등에게 사사 받기에 이른다. 실전경험을 위해 13살이란 나이로 군 입대를 하였고 그녀의 천재성은 군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녀가 사상유례 없을 정도로 승승장구(乘勝長驅)하며 빠른 진급을 하게 한 원동력은 바로 반테라스본 가문에 전승되어진 비전절기 덕분이었다. 캐시어스는 17살에 이미 비전절기를 마스터할 수 있었고 수많은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니 드디어 페몬 수호전사에 등극을 하였고 20살에 이르러서는 제3군단장이란 사령관직위에 오를 수 있었다. 과연 캐시어스의 가문인 반테라스본의 비전절기가 얼마나 위력이 있기에 그녀를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최연소 군단장 자리 오르게 할 수 있었는가? 사실 그 누구도 캐시어스의 비전절기에 대해 그 원류(原流)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반테라스본 가문에서 전승되어지고 그 전투기술이 상당히 독특하다 것 이외에는..폭풍과 비, 천둥, 번개를 동반하는 그녀의 비전절기는 속칭 천애검법(天愛劍法)이라 부른다. 정확한 명칭이 없는 그녀의 비전절기를 세인들이 갖다 붙여 만든 이름인 것으로 참으로 독특한 이름이었다. 하늘을 사랑하는 검법이라. 캐시어스는 전쟁 전에 늘 하늘을 보며 기도하는 버릇이 있었고 그녀의 비전절기를 시전하기 전에도 하늘을 보며 애원하는 것처럼 뭐라 중얼거리는 습관이 있었으니 아마도 사람들이 천애검법(天愛劍法)이라 부르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천애검법의 위력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강력한 폭풍을 동반하고 천둥으로서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뇌우(雷雨)로서 소멸시키니 사실 캐시어스의 비전절기는 상상도할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이고 무시무시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하늘과 관계된 전투기술을 사용하는 캐시어스의 반테라스본 가문의 비전절기가 이곳 사계(四界)에 존재하는 5 개 종족 중 신비종족으로 알려진 천상인(天上人-고대전쟁기록서에 언급될 뿐 그들의 존재와 영역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바 없다.)에 그 원류(原流)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쨌든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했나? 제법 시간이 흘러 어느새 밤이 깊었건만 캐시어스와 리크는 아직도 회의 막사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막사 밖에는 친위대들이 있었고
친위대장 폰티앙은 다소 지루한지 고개를 좌우로 아래위로 풀어주고 있었다. 풀벌레들이 우는소리가 합창곡교향곡을 부르는 것처럼 밤의 적막을 무너트리는 것 같았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또 다른 밤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 같았다. 막사 안에서 벌써 3시간째 앉아있던 리크는 졸려운지 자기도 모르게 하품을 하였고 이를 본 캐시어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피곤하시죠?"
"아..아닙니다."
"차 한잔하시겠어요. 졸음을 쫒는 데에는 하몬 차가 좋아요."
"하몬 차라니요?"
"호호. 제가 갖다 붙인 이름이에요. 어느 이름 없는 나무 열매인데요 향이 너무 좋아 다려 마시곤 합니다. 신기하게도 정신을 맑게 해주고요. 그리고 제 존경의 대상인 하몬님의 이름을 빌린 거죠. 호호 제가 원래 이래요. 3군단을 책임지는 사령관치고는 좀 감성적이죠."
"그래도 전쟁시에는 그 어느 군단장보다는 용맹하시다도 말씀 들었습니다."
"진..진짜요. 와우. 누가 그래요. 호호. 감격..또 감격이 되네요."
"모든 병사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흠. 정말 고맙군요. 그나저나 리크님은 항상 묻는 말에만 대답해요. 흠. 뭐라 할까. 다소 말수가 없는 것 같아요. 차분할 정도의 말투와 표정변화 역시 거의 없는데."
"쑥맥이죠.."
"쑥..쑥맥이라니요?"
"하하. 세아린이 늘 저를 놀리며 하는 말이죠."
"세아린이라니? 이름을 들어보니 혹시 여자친구?"
"원래 남자친구였는데 여자로 변했어요. 어느 순간 패샷보이란 친구 놈이 세아린이란 숙녀로 변한 거죠."
"남..남자였는데 여자로 변하다니..호호호. 이제 보니 농담도 하실 줄 아시네요. 호호호."
"................"
리크는 괜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한편 캐시어스는 자신이 너무 방정맞게 웃어서 리크의 표정이 가라앉았나 하고 그녀 역시 웃음을 멈추었다. 다소 어색한 침묵이 흘렀을 때 막사 밖에서 친위대장 폰티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단장님!! 내일 먼길을 떠나시려면 이쯤에서 쉬시는 것이.."
캐시어스는 갑자기 장난기 있는 표정으로 리크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후. 정말 시어머니가 따로 없어요. 친위대장님은 나만 보면 그저 잔소리 또 잔소리.."
"저..저기 찬위대장님 말씀이 옳으신 것 같습니다. 이만 오늘 쉬시는 것이.."
"하여간 남자들이란 낭만이라고는 전혀 모른다니까.."
"그럼 전 이만..물러가겠습니다."
리크가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 밖으로 나가려하자 캐시어스가 리크를 다시 불렀다.
"후. 정말 오늘 즐거웠어요. 그리고 아까 리크님의 부탁대로 일단은 하몬의 휴계자에 대한 것은 우리끼리 비밀로 지킬게요. 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제 참모가 되어주셔야 해요. 사실 하몬의 후계자께서 일개 군단장의 참모라면 자존심 상하실지 모르시겠지만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단지 리크님과 가까이 있고 싶어서니까요. 후후. 그러고 보니 내 속마음을 또 털어 났네. 난 언제 철들지.."
막사 밖으로 나온 리크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음. 아직도 정신이 없군. 참 독특하신 군단장님이야. 마치 데이트를 하고 난 기분이랄까. 후후.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그때 리크 뒤에서 누군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크 가벤더 아크 수호전사.."
리크는 순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친위대장 폰티앙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몸이 경직됨을 느꼈다.
"부르셨습니까!!!"
"기분이 어떠신가?"
"..........."
"후후. 아름답고 우아한 군단장님과의 대화가?"
"무..무슨 말씀을?"
폰티앙의 말투는 마치 비꼬는 듯한 투와 가시가 돋친 투가 어우러진 것 같았다.
"후후. 이 새끼가 완전히 정신이 빠졌군. 오늘 낮에 공 한번 세운 거 가지고 군단장님이 오랜 시간 대화까지 해주니 넋이 나간 모양이지."
"아..아닙니다."
"후후. 아니라고..네 놈의 표정을 보니 완전 맛이 간 놈 같은데."
"아닙니다!!"
"캐시어스 군단장님은 공과 사를 정확하게 하시는 분이지. 그리고 오늘은 그분이 사적인 감정으로 너를 대했으리라 추측이든다. 바로 너 같은 하찮은 새끼한테. 정말 울화통 터지는 일이지. 아무튼 오늘 일로 캐시어스 군단장님에 대해 누가 끼치는 소문이나 불미스런 일이 생기면 넌 그걸로 끝장이야. 알았어. 이 새끼야!!"
"예! 알겠습니다!"
폰티잉은 못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리크를 한참동안이나 노려보았다.
"가봐! 빌어먹을.."
"그럼 이만.."
잠시후 자신의 막사로 돌라온 리크는 잠자리에 들었다. 아직도 오늘 벌어진 일들이 혼란스러운 듯 이리저리 뒤척일 뿐 잠이 오지가 않았다. 결국 눈을 뜨고 막사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으니 묘한 감정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흠. 그러고 보니 비슷한 점이 많군. 후후. 캐시어스 군단장님과 세아린이라..'
***
캐시어스 제3군단이 소도시를 떠난 지 약 일주일이 흘렀다. 험준한 산악지역을 벗어나 드넓은 대 평야 지대를 접한 3 군단 지휘부는 앞으로 마족들을 만난다면 평야 전쟁은 소규모 전투가 아니라 전면전의 상황까지 고려해야한다는 생각에 저마다 긴장을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군대가 적을 만나면 용감하게 싸우는 것은 기본이지만 적어도 캐시어스 3군단은 그들의 목적지인 하몬디아 제국까지 무사히 도달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길은 멀었다. 현재 그들은 원래의 목적지에 10분 1정도 왔을까. 아무튼 진정 힘겨운 여행은 지금부터 시작이었으리라.
또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드넓은 평야는 그 끝이 안보일 정도였고 3군단은 계속 행진만을 할뿐이었다. 풀들만 없었다면 이건 완전히 사막이나 진배없었다. 말이 현실로 나타난 그랬나. 정말 풀들이 점차적으로 사라지면서 토양이 모래로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전진할수록 지대가 사막처럼 황량해지니 제3군단 지휘부는 긴급회의를 열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 쿤 황제께서 주신 카밀로스탄 대륙 지도를 다시 한번 봅시다."
캐시어스 군단장은 거대한 지도를 임시 탁자에 짝 펼쳤고 각 고위 장성들이 모여들더니 현재위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잠시후 아멜리온 페몬 수호전사가 뭐라 말했다.
"뭔가 이상한데요. 우리의 현 위치는 분명 이점인데. 그렇다면 주변은 초목이 있고 강이 흘러야함이 분명한데. 여긴 온통 사막지대이니. 이것 참."
"그러게 말입니다. 지도상으로 볼 때에는 분명 그러한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곳에 와있는 것 같으니 말이오."
그때 캐시어스가 갑자기 하늘을 보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느 방향을 가르켜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저기를 보시오."
모두들 캐시어스 군단장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에 주목했다.
"저긴 아직도 물기가 있어 땅 색깔이 다른 주변 색보다 진한 것 같군요. 그리고 지대도 얕고 한 방향으로 길게 패여 있지요. 그렇다면 필시 전에는 저 지대가 강이었단 말이지요."
캐시어스는 다시 땅에서 한줌의 흙을 집어들었다.
"이 토양은 모래가 아니라 습기가 전혀 없고 너무 건조하여 마치 사막의 토양 같지만 사실 일반 토양으로 보이는데요. 그렇다면 여기도 전에는 풀과 나무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군요. 후. 분명 우리는 지도상으로 볼 때 제대로 된 행로를 가는 중이지요. 단지 문제는 왜 이 지역이 이렇게 변했나 하는 거죠. 더욱 심각한 것은 앞으로의 진군이오. 만약 이런 지대가 계속 된다면 우린 한동안 물을 구경조차 할 수 없을 것인데."
캐시어스는 높은 지대에서 자신의 3군단 병력을 바라보며 다시 말문을 이었다.
"전쟁에서 진짜 무서운 적은 마족 보다도 바로 자연이지요. 이곳 지형의 왜 이렇게 변했는지 그 원인을 모르고 무조건 전진하면 저 4 만 여명이나 되는 3군단이 일시에 목이 말라 전멸될 수가 있습니다. 당분간은 이곳에서 여장을 풀고 식수는 땅을 파서 임시 우물을 만들도록 하세요. 얕은 지대가 축축한걸 보니 아직 이곳에서는 물을 구할 수 있을 것이오."
그날저녁 군단장의 막사실 밖에는 캐시어스를 비롯한 친위대들이 저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캐시어스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벌써 30여분이나 고개를 하늘로 향하고 있었으니
친위대들 역시 무슨 일인가 하고 하늘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처럼 밤하늘에는 세 개의 위성이 떠있었고 수많은 별들이 박혀 있었다. 그때 친위 대장 폰티앙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군단장님 하늘에 뭔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까부터 하늘만 쳐다보시게.."
"흠. 별 빛이 흐려요."
"흐리다니요. 제 눈엔 그저 똑같은데요."
"육안으로는 그렇겠죠. 제 말은 기운(氣運)이 그렇다는 거죠."
"기운(氣運)도 눈에 보입니까?
"느낌으로 볼 수 있지요. 아무튼 이 지역에 머무르는 동안 각 지휘부에 경계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하세요. 후. 왜 이리 마음이 불안한지."
"예 알겠습니다."
한편 리크 역시 자신의 막사에서 나와 아직도 불씨가 남아있는 모닥불 가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리크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하몬 검을 손으로 이리저리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후. 전에 없었던 일인데..뭔가 답답한 심정이 저 가슴속 깊이로부터 밀려오는 듯하니. 오늘따라 왜 이러지? 마치 뭔가 큰일이 벌어지려는 느낌을 애써 지울 수가 없으니 말이야. 게다가 느닷없이 하몬의 검이 진동을 일으키다니."
리크는 갑자기 가부좌자세를 취하더니 눈을 지긋이 감았다.
"후. 이럴 때에는 심법을 가다듬는 것이 좋은 방법이지."
제법 시간이 흐르자 리크는 갑자기 눈을 떴고 이내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갈비아스 파동검법 제 2공격 파장분열술이라. 후 이름 한번 근사하군 파장을 분열시키다라. 내 개념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군."
다음날 아침.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3군단의 막사 전체에 우렁찬 기상나팔이 울렸다. 각 막사 인원점검 준비가 시작되려던 참 이었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지 평소 때처럼 병사들의 신속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꾸역꾸역 하나 둘씩 겨우 막사 안으로부터 나오더니 비틀비틀 거리기 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시간이 제법 흘렀건만 아직 절반도 안된 병력만이 막사 앞에 겨우 버티고 서있었다. 순간 각 지휘관들은 분명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각 상관들에 보고하였고 이내 캐시어스 군단장에게까지 보고가 들어갔다.
3군단의 초비상이 걸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각 고위장성들은 저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막사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자 못한 병사들은 마치 악몽을 꾸는 것처럼 고통에 찬 신음을 내고 있었고 그나마 잠에서 깬 자들 역시 넋이 나간 사람들과도 같았다. 도대체 지난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