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퍼라도] 101. 하몬의 두 얼굴
데스퍼라도(Desperado)
하몬의 두 얼굴.
하몬의 출현으로 인하여 인간종족들뿐만 아니라 어둠의 종족과 마족들에게 조차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인간종족에게는 23 만년 전 갈비아스 시조 이후에 나타난 구세주이자 대영웅 하몬은 그야말로 전 대륙의 인간 제국들을 뒤흔들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다른 종족들은 과거 2000 년 전 그의 행적에 대하여 그 반응이 가지각색이었다. 특히 마족들은 하몬을 칭하기를 희대의 대살육자로 간주했지만 어둠의 종족들 사이에서는 하몬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과연 그가 대의 명분을 중요시하는 전사인가 아니면 살육을 즐겨하는 광기의 대살육전사인가 하는 문제가 붉어져 나오고 있었다. 사실 로엔스톤 대륙의 [하늘이 열리는 곳]의 전설이 도래할 무렵 하몬의 출현도 거대한 파장을 몰고 왔지만 아무르 위성의 빛을 받은 프리즘 전사들에 관한 소문도 모든 대륙에서 화자거리로 떠오르고 있었다. 인간 종족, 마족, 어둠의 종족이 기아몬 신전이라는 곳에 충돌 없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그들이 프리즘의 빛을 받은 같은 공조 체계의 전사들이란 점이 무척 기이하게 여겼던 것이다. 비록 천상인의 도래와 그들을 막는다는 의미에 이들 세 종족간에 더 이상의 전쟁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처럼 서로 다른 종족들의 상급전사들이 프리즘의 전사란 명칭으로 공조체계를 이루었다는 것은 파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프리즘의 전사들 중 과연 하몬이 그러한 자격을 갖추었는냐 하는 논란이 마족과 어둠의 종족들 사이에서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으니 이는 그의 과거 행적에서 원인이 생긴 것이었다.
그 습성이 잔인하다는 마족 조차 하몬의 만행은 대의적인 전쟁에서 한참 벗어난 행태라 규명 지었고 어둠의 종족 역시 마족들의 의견에 동조를 하는 것 같았다. 군인들이 아닌 일반 민간인들에게 자행되었던 고문과 살육의 현장은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도저히 두 눈을 뜨고는 못 볼 광경이었던 것이다. 태우고 절단 내고 쇠꼬챙이로 몸을 관통시켜 매달고 심지어 물에 삶는 엽기적인 짓을 인간 영웅인 하몬이 저질렀단 말인가? 그러나 오늘날 명백한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적에 관해 분분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직접 그와 같은 짓을 행한 현장증거가 없기 때문이었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가 소수 정예병력을 이끌고 지나간 지역에서 그와 같은 이들이 벌어졌을 뿐 그가 직접적으로 행했다는 것을 목격한 증인들이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즉 마족들이 의도적으로 그와 같은 소문을 조장해서 퍼트렸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어쨌든 하몬이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가 지나간 지역과 대륙에서는 처참하게 고문 살육 당한 마을들이 적지 않게 발견되었으니 인간종족을 제외한 마족과 어둠의 종족들은 그의 짓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하몬과 한 시대를 살았던 어둠의 종족 헬시 전사 슬레이어와 스스로 천상인이라 칭하는 고룡(古龍) 카리펠리오는 하몬에게 떠도는 소문을 일축했다. 그들이 하몬이라는 전사의 면면을 살펴 볼 때 도저히 그와 같은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 당시 슬레이어는 하몬과의 대결을 펼치고 결국 자신이 졌을 때 전사의 예우를 갖추어 준 그에게 대전사로서의 기질을 찾아볼 수 있었고 고룡(古龍) 카라펠리오 역시 하몬과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의 인품에 매료된 적이 있었기에 세간에 떠도는 소문은 그저 마족들이 지어낸 얘기라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 슬레이어와 카라펠리오는 하몬이란 전사에 대해서 적지 않은 혼란함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아무르 위성의 빛을 받기 위해 몰려든 상급전사에 관한 얘기가 그 당시 기아몬 신전에 참석한 여러 사람들의 의하여 세간에 알려지면서 부터였다. 특히 하몬의 후계자인 리크가 하몬의 검을 빼어드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하몬이 검을 뺐고는 백색의 빛을 받은 다음 사라졌다는 소문에 슬레이어와 카라펠리오는 당혹 감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슬레이어와 카라펠리오는 2000년만에 갑자기 나타난 하몬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기아몬 신전에 있었던 일 등과 갑자기 사라진 리크의 행방에 대해서 물어보기로 하였던 것이다.
슬레이어와 카라펠리오는 현재 하몬이 로엔스톤 대륙의 연안도시 제르모에 거쳐한다는 사실을 입수했고 곧바로 그를 찾아 먼 여행길에 올랐다. 드디어 그들은 3 개 월 여의 긴 항해 끝에 이 곳 [하늘이 열리는 곳]의 전설이 시작되는 로엔스톤 대륙에 도착했다. 제르모라는 연안 도시는 3개 종족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곳으로 서로간의 무력 불가침 법칙이 시행되는 대도시였다. 하루에도 인간, 마족, 어둠의 종족들 수백명이 이곳 먼 항해를 거쳐 이곳 대륙에 쏟아져 들어왔고 슬레이어와 카라펠리오도 이들과 섞여서 배에서 내렸다.
"흠. 로엔스톤 대륙이라..드디어 도착했군."
"후후. 여기 항구부터 벌써 사람들이 북적거리는데..꽤난 복잡하군."
"그나저나 분명 하몬이 이곳 제르모 대도시에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아무르 위성의 기연을 얻은 그의 다음 목표가 바로 이곳 로엔스톤 대륙이라 생각하는데."
"순서대로라면 그 역시 로엔스톤 대륙 [하늘이 열리는 곳]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겠지. 어쨌든 그를 서둘러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물론 이곳 인간들에게 하몬을 물어보면 그의 거처가 당장 나오겠지. 워낙 유명한 인물이라서.."
"후. 이거 어째 떨리는데. 2000년만에 그를 다시 보게 되다니."
"그나저나 리크 이 녀석 꽤나 마음의 상처가 클텐데. 어디로 사라져 버렸지 도대체 자기 집으로 돌아올 생각을 안 하니 말이야."
"글세. 충격이 너무 컸나? 자신이 후계자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건만 느닷없이 하몬이 나타나 검을 뺐고 사라져 버렸으니. 더구나 아무르 위성의 빛이 리크를 거부했다고 그러는데."
"참. 묘한 일이야. 분명 하몬의 검은 리크를 택했고 갈비아스 파동검술 마저 아무런 부작용 없이 그에게서 운용이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아무르 위성이 그를 거부하다니."
"아무튼 리크 그녀석이 전사이든 아니든 난 하루빨리 보고싶다네."
"그거야 나도 마찬가지이지. 정말 착한 녀석이었는데."
"착하다 못해 맑고 순수했었지. 정말 인간 종족치고는 묘한 내력이 흐르는 놈이었어. 후후."
"아무튼 이번에 기아몬 시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하몬에게 따질 참이네..후. 그 답지 않게 다짜고짜 리크에게서 검을 취하고는 사라져버리다니.."
"하긴 하몬이 자신의 후계자인 리크에게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은 체 도망치듯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네."
"무슨 곡절이 있겠지. 아무튼 그를 만나보면 알 거야."
이 둘의 예상대로 하몬이 현재 머무르는 곳을 알아내는데는 그다지 어렵지 안았다. 제르모 대도시에 거주하는 인간종족들 대부분이 하몬이 사는 곳을 알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하몬이 사는 곳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제르모 대도시 동쪽에 르노므와라 불리는 협곡 지역에 있었다. 깎아지를 듯한 거대한 절벽이 구름을 뚫고 하늘 높이 솟아있었고 절벽 아래로는 올텐이라 부르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올텐 강은 바로 제르모 대도시의 관통해서 흐르고 바다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쨌든 저 지대인 연안 도시 주변에 그처럼 높은 협곡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신기할 정도였다. 하몬은 바로 르노므와 정상에 위치한 제르모 신전에 자신의 임시 거처를 마련했던 것이다. 제르모 대도시의 사람들은 하몬이 이 곳 로엔스톤 대륙에 도착한 첫날부터 그를 위해 축제를 열었다. 드디어 대 영웅이 구세주처럼 나타났고 이젠 아예 그를 신(神)처럼 추앙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마족들과 어둠의 종족들의 반응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보이지 않는 적대감을 일으켰다. 알다시피 제르모 대도시는 3개 종족이 서로간의 조화와 단결로서 지탱되는 곳이기도 하였다. 또한 하몬이 인간 종족 외의 다른 종족에게는 그다지 환영을 받지는 못한 것은 당연했다. 그들 눈에는 그가 대영웅 대신 대살육자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종족간에 그런 데로 평화를 유지해왔지만 한순간에 도시 전체가 심상치 않을 정도의 분위기로 치 닫기까지 하자 현 제르모 도시 전체 행정 관할을 맡고 있던 인간종족이 일단 하몬 거처를 도시와 외떨어진 르노므와 협곡의 제르모 신전 쪽으로 부리나케 옮긴 것이었다. 제르모 도시를 대표하는 제르모 신전이 르노므와 협곡 정상에 있었고 급기야는 그 누구도 출입을 금했던 신성한 신전에 하몬이 머물도록 배려를 하였다. 물론 그 르노므와 협곡으로 가는 길목마다 인간 병사들에 의해 철통같이 지켜져 있었다. 더구나 천애의 자연적 조건까지 더해지니 그 누구도 하몬이 사는 제르모 신전에 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였다.
구름보다도 높은 하늘을 비행하는 두 물체가 있었다. 거대한 용과 그보다 훨씬 작은 검은 전투복의 전사가 르노므와 협곡 상공에서 그 아래로 하강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슬레이어와 카라펠리오였다. 물론 그들의 비행 능력으로 하몬이 사는 협곡 제르모 신전에 도달한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후. 협곡 경치 하나는 그야말로 끝내주는군."
"일반사람들은 감히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험한 지형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군. 신비한 기암절벽과 괴석들 말이야. 더구나 협곡 아래로는 파란 강물이 흐르고 있으니 가끔 수영도 즐기고.."
"후후. 슬레이어 자네 혹시 정신 나간 거 아닌가? 저 밑에 흐르는 강물은 보기보다 물살이 셀 것 같은데 수영은 뭔 놈의 수영을.."
"카라펠리오! 말이 그렇다는 거지 꼭 따지기는.."
"빌어먹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점점 늙어가더니 뭘 그렇게 궁시렁 궁시렁 되는 지 나 원 참."
"뭐야. 이 잡놈이 내가 늙어 가는데 뭐 보태 준거라도 있어!
"허 이것 참 잡놈이라니? 그래도 어둠의 종족에서 전통 있는 명문 집안 출신으로 헬시급 전사인 내가 잡놈처럼 보이나?"
"야 이놈아! 요즘 나타난 헬전사이니 프리즘의 전사들이니 갑자기 하늘과도 같은 자들이 판을 치는데 고작 헬시급 가지고 명함을 내미냐. 후후. 2000년 전에야 하몬과 네놈 슬레이어가 한 시대를 주름잡았지만 지금 어디 가서 헬시급이라 떠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웃는다 웃어. 그나마 하몬은 아무르 위성의 기연을 얻었으니 이미 우리들 보다 그 레벨이 한참 위일 테고.."
"후. 단번에 기를 죽이는군"
그때였다. 아래 협곡에서 계곡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내 오랜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2000년 전에도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 다투더니 지금까지도 싸우나?]
"헉! 하몬 자네 맞나?"
"하몬의 목소리가 틀림없는데."
[하하. 언제까지 하늘을 떠다닐 참인가. 그대들 바로 아래 횐 사원이 보이지. 보인다면 그리로 내려오게.]
잠시후 슬레이어와 카라펠리오가 아래 협곡 정상에 안착을 하였다. 그리고 신전 입구에서 하몬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새 하얀 제사장 복을 입은 하몬이 뒤짐을 진 체 느릿느릿하게 걸어왔다.
"허허. 이게 얼마 만인가?"
슬레이어와 카라펠리오는 하몬의 모습을 보더니 깜짝 놀란 표정으로 변했다.
"하몬.."
"하몬 정녕 자네란 말인가?"
"그럼 내가 누구란 말인가? 하하."
회색빛 긴 머리칼을 뒤로 가지런히 빚어 넘긴 30대 중반의 사나이가 엷은 미소를 머금고 이들을 맞아주었다. 그 누가 보아도 대영웅의 위엄이 베여있었고 그윽한 눈매마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풀 것 같았다. 오똑 한 콧날과 다소곳이 다문 입술은 마치 속세를 등지고 살아가는 현자의 모습과도 같았으니 과연 2000년 전의 대전사와는 편이하게 다른 거룩한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슬레이어와 카라펠리오는 전혀 다른 기가 그에게서 느껴지자 조금은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세월이 자네를 변하게 했나? 후. 도대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는 건가?"
"하하. 내가 변하다니? 난 그대들의 벗인 그 옛날의 하몬이란 말일세.."
이들은 잠시후 서로 다가가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연신 포옹을 하였다."
"안으로 들어감세. 나 역시 그대들이 날 찾아오지 않았다면 내가 찾으러 다니려고 했다네."
"하하. 진짜인가? 어쨌든 말만이라도 듣기는 좋군."
"내가 말만 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 보는가?"
"하긴 자네의 신의(信義)는 내가 잘 알지."
그때 고룡(古龍) 카라펠리오가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하몬 놈아! 네 눈에는 슬레이어만 보이냐. 아는 척도 안 하게."
"풋. 그 성질머리는 여전하군. 그래 자칭 천상인이라 칭하는 고룡은 어떻게 지내나? 옛날에도 늙는다고 푸념을 해댔건만 또 다시 2000살을 더 먹었으니 기분이 어떤가?"
"이런 빌어먹을 놈이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하하하. 카라펠리오. 그저 농담이네."
"그래 그건 그렇고 이놈아. 네 놈의 후계라 불리던 리크의 검을 빼앗은 기분이 어떠냐? 네 놈이 그렇게 파렴치 한 놈이었던가? 적어도 2000년 전 내 기억으로는 그렇게 까지 망가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순간 하몬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그는 애써 표정을 감추고 다시 미소를 지었다.
"흠. 후계자라..그리고 그 아이 이름이 리크였던가?"
"그래 이놈아! 네놈이 달라고 하면 리크가 어련히 하몬의 검을 줄텐데. 그걸 뺐고 허둥지둥 도망치 듯이 사라질건 뭐냐?"
"허허. 2000년만에 만나자마자 다구치는군. 이거 어디 무서워서 살겠나. 하하."
"은근히 말 돌리지 말고 얘기를 해 봐! 더구나 과거 네 행적에 대해서 말들이 많은데 그거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얘기 좀 해보게나."
"흠. 갑자기 심문이라도 당하는 기분이군. 그나저나 설마 자네들 마저 날 의심하는 것은 아니겠지."
순간 하몬의 눈이 번뜩거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계속